한 줄 문장으로 가슴을 적시고 세상을 움직이다 카피라이터 김욱현,
2004-10-25  |   7,384 읽음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습니다.’ 그의 인생을 움직인 것은 이 한 줄의 문장이었다. 10여 년 전의 식품공학도 김욱현은 우연히 찾은 대형서점에서 우연찮게 한 권의 책을 집어들고 필연적으로 이 글을 만나 광고 카피라이터라는 새로운 세계를 찾았다. 지금은 세계적인 광고대행사 덴츠(일본)의 한국 합작법인인 덴츠이노백의 크리에이티브 디비전 부장. 만약 그때 그의 가슴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혹은 이런 일조차 없었다면?
“지금쯤 식품회사 연구실에서 비커를 흔들고 있겠지요.”

광고 카피에 마음 빼앗겨 카피라이터로
연(然)이란 단어에는 ‘그러하다’는 두루뭉실한 뜻이 담겨 있지만 그 위력은 참 대단하다. 사람, 환경, 시기 등의 조건이 얽힌 무한수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연은 결국 사람과 환경, 세계를 움직인다. 김 씨는 세종대학교 식품공학과 4학년 때 예의 문장을 발견했고 이내 카피라이터로의 연을 느꼈다.
“가슴으로 총알이 뚫고 지나가는 느낌이었어요. ‘아, 이 짧은 글이 사람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구나’ 하면서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 날 이후 광고제작 학원을 다니면서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지요.”
김 씨는 일본 상지대학원에서 저널리즘 광고 커뮤니케이션 석사과정을 마치고 세계적인 광고대행사로 꼽히는 일본 덴츠에서 카피라이터로의 첫 발을 내디뎠다. 95년 일본의 유력 광고 공모전인 SCA에서 외국인으로는 처음 카피라이터상을 수상하고 이듬해에는 덴츠가 수여한 광고논문상도 거머쥐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지난 97년. 멕켄에릭슨코리아와 제일기획, TWBA, 웰콤 등 국내에 손꼽히는 메이저 광고대행사와 함께 하는 동안에도 뉴욕 페스티벌, 클리오, 크레스타, 크리에이티비티 등의 해외 광고전에서 24번이나 수상하며 ‘카피라이터 김욱현’의 이름을 알려갔다.
“카피라이터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찾는 작업이에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면 장소는 어디든 좋습니다. 옆 사람의 모니터를 보면서도, 책을 읽거나 거리를 걷는 도중에도 불쑥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거든요. 프로젝트를 맡은 그 날부터는 머리맡에 수첩을 펼쳐두고 눕습니다. 잠자리에 들라치면 머릿속에서 오만 공상이 다 떠오르면서 ‘번쩍’ 하고 좋은 문장이 스치는 순간이 있어요. 이때 메모해두지 않으면……. 영영 기억해내지 못하지요.”
‘난, 나야!’(리바이스), ‘넘고 싶은 것은 163cm의 높이가 아니라 장애를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입니다’(SK), ‘서류뭉치 속의 똑같은 한 장이 되고 싶지는 않다’(OB맥주)……. 김욱현 부장의 포트폴리오를 들추다보면 참 따뜻한 기운과 희망이 느껴진다. 하지만 다양한 기업, 수많은 제품을 상대하는 카피라이터에게 그만의 스타일이 느껴진다는 것이 딴은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맞아요. 카피라이터는 많이 알아도 깊게는 알지 않는 잡학다식의 표본이지요. 하지만 나름대로 내면의 열정과 꿈, 도전이 담긴 힘있는 카피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감동을 주고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그래서 결국에는 어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따뜻한 광고지요. 제가 만드는 광고와 짤막한 한 줄의 글이 좀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작은 소품이라도 될 수 있으면 만족하겠어요.”
인간미가 물씬한 목소리에 세뇌가 된 것일까. 그의 해맑은 웃음이 참 아름답다. 맹렬히 달리다가 거칠게 스핀 턴을 한 뒤 도어가 열리고 늘씬한 미녀가 내리기 일쑤인 국내의 자동차광고에 내심 불만이 쌓인 기자는 그에게 “구태의연하지 않고 쌈박한 자동차 광고를 만들어달라”고 떼를 썼다.
“하하! 광고의 성격은 광고주의 마인드가 큰 비중을 차지해요. 은유적이고 유머러스한 광고도 좋지만 우리 정서에 어울리는지도 고려해야 되고요. 얼마 전부터 렉서스 광고를 맡게 돼서 다른 메이커의 매장까지 골고루 돌아봤는데, 자동차에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습니다.”
“자동차에도 사랑을 느꼈는데, 결혼은 안 하세요?” “그게, 결혼이란 것이 하늘의 의지가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거참. 저 분이 이제 움직이실 때도 됐는데…….”
직업적인 특성상 많은 사람을 만나고 감동하는, 그리고 한 줄의 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카피라이터 김욱현. 하지만 하늘과 가까운 35층의 사무실에서도 하늘의 의지는 움직일 수 없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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