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4WD 랠리의 부흥을 꿈꾼다 ⑤사람편 - 코리아모터스포츠센터(KMC) 기획부장 김도형
2004-09-17  |   6,822 읽음
오른 손에 꼭 쥐어진 무전기가 더위에 녹아 내릴 듯 쉴 새 없이 빽빽거리고 있었다. 씨름선수처럼 떡 벌어진 어깨에는 앙증맞은 크로스백이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대롱거린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덥수룩한 수염, 긴장감이 감도는 매서운 눈초리가 우락부락한 랠리 머신과 닮았다는 생각이 스쳐 지난다. 순간, 무전기 스피커가 거칠게 요동친다.

“엔트리 넘버 16번! 두 번째 언덕에서 전복!”
무전기를 감싸 쥔 손가락이 하얗게 변하는가 싶더니 김도형(35) KMC 부장이 사고현장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그에게 인터뷰를 하자고 덤비던 기자도 함께 달린다. 천만다행이다. 옆으로 누운 머신에서 빠져 나오는 드라이버의 얼굴에 멋쩍은 미소가 흘렀다. 굳어졌던 그의 얼굴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 국내 유일의 4WD 랠리 축제인 ‘2004 KRF 3전’은 그렇게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경기장을 휘젓고 다니는 ‘KRF 매니저’ 김도형 부장의 검게 탄 얼굴이 또 한 겹 그을리고 있었다.

KMC 홈페이지 만들다 모터스포츠에 눈떠
경기장에 있는 사람은 누구랄 것 없이 그를 ‘김 부장’이라고 불렀다. 성은 김이요, 이름은 ‘부장’이라는 투다. 몇 사람을 붙들고 물어도 그의 공식직함이 ‘코리아모터스포츠센터(Korea Motorsports Center) 기획실 부장’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KMC라면 올해 초, F1 그랑프리와 함께 세계 모터스포츠의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챔피언십 오토 레이싱 팀즈(CART) 월드 시리즈’를 유치해 유명세를 타고 있는 전문 프로모터다.
오는 10월 서울에서 소프라노톤의 인디카 엔진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고마워 할 일이다. 그런데 온로드 레이싱을 준비해야 할 KMC 기획부장이 왜 4WD 랠리 머신의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일까.
“그게 궁금하셨군요. 지난 99년이었어요. 해병대 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뒤 경실련에서 PC 프로그램 제작을 맡아 했습니다. 당시 KMC측에서 홈페이지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어요. 홈페이지를 만들려면 해당 분야의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잖아요. 모터스포츠 자료를 뒤지고, 현장을 드나들다 보니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자연스럽게 모터스포츠에 뛰어들자는 결심이 뒤따랐지요.”
대구광역시가 대구월드컵경기장 활성화 방안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터스포츠 이벤트를 제안했다. 결과는 단번에 OK. 김도형 부장은 드레그 레이스와 슬라럼, 카트, RC카는 물론 4WD 경기를 아우른 복합적인 경기를 계획했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한국자동차경주협회(KARA)가 공인하는 정규 4WD 랠리가 탄생한 것이다. 그때가 2002년 4월이었다.
“그렇게 코리아 레이싱 페스티벌(Korea Racing Festival) 제1전이 대구월드컵경기장 주 진입로에서 치러졌어요. 대단했지요. 관람객만 3만 명이 몰렸으니까요. 여러 장르의 레이스가 한 자리에서 열린 것도 처음이지만 볼거리가 많아 관중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KRF 개막전의 성공에 취해 있을 즈음, 당시 대구시장이었던 문희갑 씨가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되고 말았다. 김도형 부장으로서는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경기일정과 내용, 장소를 모두 수정했습니다. 드래그 레이스의 경우 선수들이 부담해야 하는 튜닝비용도 문제가 되었지요. 결국 2002년 6월 열린 2전까지만 대구에서 치렀고, 3전부터는 강원도 인제군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경기방식도 4WD 전문 랠리로 탈바꿈했고요.”
위기가 기회로 바뀌어 2002년 7월 인제군 4WD 전용 경기장에서 열린 제3전은 참가자가 60여 명에 달했다. 이후 KRF는 올해까지 매년 50명 이상의 선수가 뛰는 국내 최대의 4WD 랠리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경기가 끝난 뒤 표창대에 올라 샴페인을 터뜨리는 선두들의 환호성이 늘 새롭게 들린다는 김도형 부장. 매년 경기 시작 전에는 랠리 동호회의 의견을 듣기 위해 전국 안 가본 데가 없다. 경기 운영방식에 불만을 제기하는 선수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든든한 스폰서 하나 없는 현실이 힘겹지만 포기할 수 없다고 이를 악물 때 떠오르는 것도 선수들의 얼굴이다.
“올해 1, 2전에서 우승한 팀이 8월 초 열린 아시아 크로스컨트리 랠리에 참가한 것이 가장 큰 성과예요. 해마다 단축되는 기록을 보면 뿌듯한 보람을 느껴요. 하지만 시작일 뿐입니다.”
서른다섯의 적지 않은 나이에 아직 미혼이지만 “제대로 된 4WD 랠리 경기장을 만들기 전에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하는 그의 얼굴에 4WD 랠리 머신의 다부진 모습이 스쳐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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