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모험 그리고 끝없는 도전 ④사람편 - 국내 최고 4WD 랠리스트 곽용기
2004-09-17  |   5,514 읽음
정글을 헤치다가 갑작스런 폭우로 물이 불어난 강을 건너고,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희뿌연 먼지 속을 질주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 펼쳐지지만 그들의 앞길을 막지는 못한다.
최근 ‘레인포레스트’와 ‘아시아 크로스컨트리 랠리’ 같은 해외 경기에 관심을 갖는 4WD 매니아가 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랠리 드라이버는 곽용기(36) 씨. 2000년 말레이시아 정글을 무대로 열리는 레인포레스트 참가를 시작으로, 2002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시아 크로스컨트리 랠리에 출전했다. 같은 해 12월 다시 레인포레스트에 참가, 디젤 부문 2위에 올랐다. 지난해 아시아 크로스컨트리 랠리에서는 대회 홍보를 위해 탤런트 박세준 씨의 코드라이버로 나서기도 했다.

2002년 레인포레스트 디젤 부문 2위
재미 삼아 ‘99년 대우파워어드벤처’ 경기에 참가한 것이 시작이었다. 준결승에서 떨어졌지만 결선에 오른 차가 적어 패자부활전이 열렸고, 운 좋게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그 뒤 ‘해피평창 700랠리’, ‘금강산 랠리’를 뛰며 경험을 쌓는다. 그 전에 이미 TV를 통해 오프로드 경기의 박진감에 흠뻑 빠져 있던 상태였다.
“아시아 크로스컨트리 랠리 위원인 서규원 씨의 98년 레인포레스트 경기 모습에 매료되었습니다. 국산차를 몰고 경기에 참가, 1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솟더군요.”
쌍용 무쏘로 첫 출전한 2000년 레인포레스트를 잊을 수가 없다. 예비 부품을 준비했지만 트랜스퍼 케이스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부품을 구하기 위해 600km나 떨어진 콸라룸프로 가야 했다. 코스로 돌아올 때까지 뜬눈으로 보낸 ‘무박 3일’의 기억이 생생하다. 정글에서 텐트를 치고 불을 피우면 멀지 않은 곳에서 야생동물이 눈을 번득이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텐트 주위에 호랑이 발자국이 널려 있는 것을 보고 소름이 돋기도 했다.
랠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드리이빙 테크닉은 기본, 경기 특성을 파악하고 여기에 맞게 차를 세팅해야 한다.
“레인포레스트는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와 쏟아지는 장대비, 이로 인해 갑자기 생기는 늪과 눈 깜짝 할 사이에 차오르는 강물 등 상상을 초월하는 장애물이 놓여 있습니다. 동남아를 무대로 열리는 아시아 크로스컨트리 랠리는 FIA 공인대회로 정해진 구간을 한 번이라도 포기하면 끝입니다. 해마다 코스가 바뀌어요.”
경기에 출전하기 전 곽 선수가 확보한 자료는 경기 모습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 하나. 여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비디오 테이프에 나온 화면을 통해 기후 특성을 체크하고 모래와 진흙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고민했다. 경주차 세팅도 힘겨웠다. 이곳저곳 찾아가 비디오 테이프를 보여주며 같은 모습으로 꾸며 달라고 주문했다. 국내에는 대회 규정에 맞는 헬멧이 없어 일본에 주문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경험이 쌓여 주먹구구식 준비는 벗어났다. 세팅 기술이나 드라이빙 테크닉도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 승패는 곳곳에 숨겨진 페널티, 즉 위기에 얼마만큼 빠르게 대처하는가에 달려 있다. 뜨거운 열기와 높은 습도를 이겨내는 체력도 중요하다.
스폰서를 못 구해 자비로 출전하는 현실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해외에서 열리는 자동차 경기를 보면 국산차인데도 외국인 선수가 타고 있습니다. 기량이 뛰어나기 때문이겠지요. 국내 선수들의 실력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도 듭니다.”
곽 선수도 올 8월 아시아 크로스컨트리 랠리 출전을 위해 전력을 쏟았지만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출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국내 선수들의 수준이 많이 높아졌어요. 미국 포드는 석 대의 출전차 외에 경기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지원했습니다. 스폰서의 요구는 ‘한 대만이라도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라’는 것이었다고 하더군요.”
랠리스트와 기업체 모두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기브 앤드 테이크’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선수들은 국산차를 타고 경기에 나선다는 자랑스러움을, 스폰서는 그들이 지원한 제품으로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내년 경기를 목표로 다시 고삐를 죄고 있는 곽 선수는 예비 랠리스트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 또 다른 파트너인 네바퀴굴림차가 삼위일체가 되었을 때 좋은 결과는 자연히 따라옵니다. 경쟁자는 다른 나라 선수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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