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렉스와 이재천 RC에 인생 승부를 걸었다
2004-08-31  |   5,332 읽음
인생을 한 점에서 출발해 다른 한 점에 도착하는 직선이라고 가정하자. 누구든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점에 부딪히고, 어떤 점은 인생의 방향을 틀어 놓기도 한다. 이재천(31) 씨도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점 하나를 만난다.
중학교 때 정규수업 외에 취미활동으로 일주일에 한 시간을 보내는 ‘특별활동’ 시간이 있었다. 어느 날 친구가 특별활동으로 RC카를 가지고 나왔는데 그 신기한 모습에 홀려 버렸다. ‘어떻게 하면 RC카를 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신문을 한 달만 배달하면 3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수업이 끝난 뒤 석간신문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일해서 번 돈으로 찜해둔 2만5천 원짜리 ‘록버스터’를 사는 데 성공했다.

부품제작 위해 직업전문학교 수료
“신문배달하는 것이 들통나 호된 꾸지람을 들었지만 애초 필요한지조차 몰랐던 4만 원짜리 조정간과 배터리를 선물받았으니 일거양득 아닌가요?”
그 뒤로 타미야의 RC들과 와일드 윌리, 클로드 버스터, 킹 블랙 풋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몬스터 RC카를 굴리며 세월을 보냈다. 중2 때 만난 점의 실체를 알아본 것은 2000년 10월이었다. 취미로 들락거리던 인터넷의 몬스터 RC 동호회에서 마음이 맞은 두 사람과 RC 관련사업을 벌이기로 한 것. 2001년 12월 직장을 그만둔 뒤 몬스터 RC숍을 열고, 프레임 등 부품도 제작했다. 하지만 RC 인구가 많지 않은 탓에 사업은 신통치 않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한창일 때 가게 문을 닫고 말았어요. 금전적인 손해도 컸지요. 서너 개의 경쟁업체가 있었지만 그곳도 마찬가지였습니다. RC카 10대 분인 휠 40개를 만들어도 1년이 지나야 다 팔리는 현실이었으니까요.”
불확실한 전망 때문에 두 동업자는 떨어져 나갔지만 그는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4평 남짓한 지하에서 시작한 숍은 임대료가 싼 곳을 찾아다니느라 종로를 거쳐 양천구 목동으로 옮겨졌다. 지금도 지하에 머물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 RC 수입업체들이 부품제작을 맡겨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브랜드 ‘노바렉스’(Novarex)의 인지도도 제법 높아졌다.
“지금도 많이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아주 고단한 시간이었어요.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RC에 매달렸으니까요. 광고도 안했는데 알음알음 숍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만나면 눈물이 나오려고 해요.”
지난해 11월에는 200만 원을 들여 한 공업사에 부품제작을 맡겼는데, 치수가 틀려 폐기 처분하면서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다. 어째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지 스스로 의문을 갖기도 하지만 몬스터 RC를 좋아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몬스터 RC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우람한 모습에, 작은 덩치로 박력 있게 달리는 모습에 반했고, 제 삶도 그 모습을 닮고 싶어요. 국내 몬스터 RC 시장이 보잘 것 없지만 저 나름대로 저변확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 강한 의지를 내보이는 이재천 씨. RC에 빠진 남편을 둔 죄(?)로 신혼시절부터 고생만 하고 있는 동갑내기 아내 김미경 씨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해해 주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재천 씨의 RC에 대한 열정과 지식은 듣고 또 들어도 끝이 없었다. 부품 가공기술을 배우기 위해 직업전문학교도 수료했다. 선진국의 RC문화를 자세히 설명하고, 국내 RC문화와 산업의 문제점을 일목요연하게 진단하기도 했다. 앞날의 계획도 RC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재천 씨는 한마디로 인생의 승부를 RC에 걸고 있는 매니아였다.
“실제로 탈 수 있는 버기를 만들고 싶어요. 몬스터 RC와 버기의 구조가 똑같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버기 제작에 대한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버기를 제작하면 실차와 똑같은 정교한 RC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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