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l-Heinz Kalbfell 21세기 롤스로이스 이끄는 ‘저먼 체어맨’
2004-08-23  |   5,356 읽음
롤스로이스는 한 세기 전 태어날 때부터 원한다고 해서 누구든 탈 수 있는 차가 아니었다. 최상의 기술과 품위, 장인들의 자부심과 정성을 가득 담은 롤스로이스는 ‘영국의 전통과 명예’로까지 받들어진 명차. 지난 7월 1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롤스로이스 쇼룸에서 열린 팬텀 론칭 행사에 크리스토퍼 로빈 주한 영국 대리대사가 직접 참석한 것도, 또 그가 “롤스로이스는 단순한 고급차가 아니라 영국의 아이콘”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상징성 때문이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기계 예술의 극치’라는 평가를 받은 첫차 실버고스트(1906~25년)는 롤스로이스의 화려한 출발을 알린 서곡이었다. 최고의 자재와 최상의 기술력을 구현하기에는 지상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지, 롤스로이스는 콩코드기의 이글 엔진을 만드는 등 세계 최고의 항공기 엔진 메이커로도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항공기 엔진 분야에 대한 과도한 투자는 롤스로이스의 발목을 붙들었고, 결국 1971년 파산한 뒤 질곡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1998년 폭스바겐(유형 자산)과 BMW(브랜드 소유권)로 나눠 매각된 롤스로이스는 지난해 1월 1일 영국 굿우드 페스티벌에서 팬텀을 발표하며 21세기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21세기에 부활한 영국 프레스티지카의 전통
“한국 시장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커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요한 축을 형성할 것입니다. 목표는 한국 프레스티지카 시장 넘버원입니다.”
팬텀 론칭에 발맞춰 서울을 찾은 칼 하인츠 칼프펠(55세) 롤스로이스 회장의 첫마디는 당당한 체구만큼이나 자신만만했다. 1977년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로 BMW 근무를 시작한 칼프펠 회장은 이후 BMW 모터 스포츠 회장과 그룹 브랜드·제품 전략 담당 부사장, 그룹 마케팅 총괄 수석 부사장 등을 거쳐온 ‘정통 BMW 맨’ 출신 경영인. 지난 1999년 롤스로이스 프로젝트 담당 이사를 겸하며 롤스로이스의 새로운 출발을 첫 단계에서부터 지휘해온 그는, 롤스로이스 비상임 이사를 거쳐 올해 5월 롤스로이스 회장에 선임되었다.
“롤스로이스는 지난 18개월 동안 한국을 비롯해 호주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홍콩, 중국,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지역 판매망 구축을 마무리했습니다. 아시겠지만 롤스로이스는 판매대수만으로 시장을 평가하지 않아요. 가능성과 잠재력, 기타 브랜드 영향력 등을 고루 감안합니다. 베이징과 상하이, 광조우 등 3곳의 거점을 마련한 중국 시장의 미래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만 한국 역시 일본과 더불어 이 지역 3대 잠재 시장으로 꼽고 있습니다.”
한국 내 잠재고객들과의 사전면담을 통해 10% 안팎의 구매 의사를 확인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연간 15대 정도의 판매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 시장에 대한 분석은 팬텀을 선보이기 이전에 이미 낱낱이 마친 상태.
“공식수입원인 HBC 코오롱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수입차 시장에 대한 깊은 분석을 해왔습니다. BMW 그룹의 일원이라는 사실은 시장 정보 수집에도 유리한 조건이었지요. 국내외에서 모아둔 탄탄한 시장 자료를 바탕으로 완벽한 애프터서비스 준비까지 마쳤습니다.”
98년 이전 판매 모델에 대한 부품 공급은 유형자산과 함께 폭스바겐 그룹으로 넘어간 벤틀리가 맡기로 되어 있어 구형 롤스로이스를 갖고 있는 고객들의 애프터서비스도 문제될 게 없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했어도 BMW에서만 27년을 일해온 독일인으로서, 영국의 전통을 모조리 담아냈다는 롤스로이스를 경영하기란 말처럼 간단치만은 않았을 터.
“롤스로이스는 BMW 그룹의 일원이지만 메커니즘 등 모든 면에서 철저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인수 초기부터 ‘역량은 공유하되 부품은 공유하지 않는다’는 모토를 내걸고 업무에 집중해왔어요. 98년부터 휴가는 무조건 영국에서 보내며 영국을 배웠고, 그 덕분인지 프로젝트는 대성공이었습니다. BMW의 손길이 닿았어도, 우리의 결과물은 완벽한 영국차입니다.”
지금 영국 굿우드 공장에서는 자동차는 물론 가구와 가죽 가공, 오디오 등 다양한 분야의 장인들이 해마다 1천 대 정도의 팬텀을 수작업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인수 당시 롤스로이스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숙련공들 상당수가 인수대상에서 빠졌어도 최상의 인력을 충분히 보강해 제작과정에서 달라진 점은 전혀 없다. 수제작 공정의 비율 또한 예전과 비슷한 수준.
“팬텀은 완전히 새로운 시설에서 완전히 새로운 인력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롤스로이스입니다. 첨단장비와 현대적 기술을 많이 접목했지만, 굳이 영국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클래식 롤스로이스에서 스타일링 영감을 얻어왔을 정도로 전통의 계승에 정성을 기울였어요. 고유의 문화와 전통, 확고한 신뢰성은 팬텀을 말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둘러본 팬텀은, 범접하기 어려울 만큼 화려했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고고한 기품은 분명 ‘영국 프레스티지카’의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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