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코리아 관장·의학박사 최낙원 “마음까지 정화해주는 그림이 진짜 작품”
2004-06-08  |   6,528 읽음
물밑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냇가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들, 리어카 위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실뜨기를 하는 모녀, 꽃을 꺾고 있는 소녀들……. 물감에 빛이라도 풀었을까. 자연광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화폭에는 따스하고 눈부신 유년의 풍경이 가득하다. 중국 동포작가이며 이 시대 마지막 서정화가로 불리는 허문(55)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코리아(서울 중구 태평로1가 파이낸스 빌딩 지하 3층). 그림을 바라보는 최낙원(53) 관장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어린 시절 그대로지요. 지금은 우리나라에 없는 풍경이에요. 허 문 선생님을 뵙고 그림을 보면서 가슴이 벅찼습니다. 욕심과 편견, 마초적인 쾌감만 있는 현실에서 일순간 동심으로 돌아간 느낌이었지요. 보는 이의 마음까지 깨끗하게 정화해주는 진짜 그림들입니다.”
최 관장이 허문의 작품전을 열게 된 이유다. 회색 일색의 빌딩 숲, 현대화라는 이름 아래 사라지는 정취, 벽돌과 시멘트뿐인 메마른 도시를 떠나 순수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는 89년 처음 백두산과 연길을 찾았다. 민족의 원류를 찾아 성지순례에 나서는 마음이었다. 그곳에서 최 관장이 만난 것은 그렇게 그리워했던 우리의 옛 모습이었다. 그와 사회주의권 작가들의 작품은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
“그동안 중국이나 러시아의 작품을 많이 모았습니다. 첫째는 기본적 구상력, 데생이나 크로키가 정확합니다. 어려서부터 아카데믹한 교육을 받기 때문에 탄탄한 구도 등 기본기가 뛰어나요. 둘째로는 황금만능주의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소위 말해 돈 냄새가 안 나는 그림들이지요. 팔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린 기교적인 작품과는 질이 달라요. 그런 그림 옆에는 아예 가지도 않습니다.”
의학박사로, 성북성심병원 원장으로, 그림과는 인연이 없는 길을 걸어왔지만 최 관장이 늘 갈망했던 것은 그림이었다. 어린 시절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꿈을 접었고, 어느 정도 여유를 갖게 되면서부터는 미친 듯이 좋은 그림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갤러리 코리아’의 문을 열고 ‘그사모(그림을 사모하는 모임)’라는 동호회까지 만들었다. 갤러리 코리아라는 이름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화랑으로서 한국의 작품을 세계에 알리고, 세계의 작품을 한국에 소개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사모에는 국내외 숨은 작가들의 작품을 발굴해 전시회를 열고, 함께 모여 감상의 시간을 갖고 작품을 고르기도 하는 미술 매니아들이 모였다.

국내외 작가 지원하고 작품 알리는 데 힘써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들 하지요. 그 말이 진리입니다. 한국의 정서가 물씬한 작품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찬사를 받습니다. 좋은 작가들을 발굴해 세계 곳곳에 소개하는 일들을 계속해나갈 겁니다. 개인으로 뛰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니까요. 내가 그림을 좋아하고 갤러리를 운영하는 것을 호사가의 취미 정도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분명히 잘못된 시선입니다. 저는 제 일생에서 꼭 하고 싶었던 일을 지금 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러나 화가의 길을 걷지 못한 아쉬움은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 지금은 너무 바빠서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언젠가 현업에서 물러나면 직접 붓을 들 참이다.
“차라리 의사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합니다. 훌륭한 작가들의 작품을 계속 보다 보니 내가 화가라면 화가 중에서도 돌팔이가 되었겠다 싶어요(웃음). 지금은 이 정도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간간이 진료차트에 환자들 손이나 발 같은 신체 부위를 잘 그리는 것으로 뿌듯해 하면서(웃음).”
바쁘게만 돌아가는 세상에 브레이크를 걸고, 좋은 그림을 보는 여유를 가지라고 말하는 이 사람. 자동차에 관해서도 쓴 소리를 한 마디 한다.
“요즘 차들에서는 옛날 차들의 기계적인 정직성이나 순수성을 찾기 어려워요. 모든 기능이 전자식으로 바뀌어서 문제가 생겨도 고치기가 쉽지 않고…….”
최 관장은 20여 년 전 운전을 시작하며 처음 선택한 중고 마크Ⅳ를 “속을 많이 썩이며 미운 정 고운 정을 쌓아 가장 기억에 남는 차”로 꼽는다. 그 뒤 5∼6대의 차를 거쳤고 지금은 BMW 745Li를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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