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DRIVE]경부고속도로의 재발견 - THE ROAD OF LEGEND(2)
2008-12-17  |   14,698 읽음

빠른 완공, 보수 작업에 돈 더 들어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수도권을 벗어나자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중앙 분리대도 없던 왕복 4차선의 단촐한 도로가 이제는 약 158km 구간이 6~8차선으로 확장되었다.
기술도 경험도 없던 시절 ‘하면 된다’ 정신으로 밀어붙인 경부고속도로는 경제 발전을 위한 한국인의 의지와 열정을 세상에 보여준 신호탄이기도 했지만, 2년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저돌적으로 밀어붙인 대공사는 훗날 여러가지 취약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개통 당시 소요된 공사비는 약 430억 원으로 1km에 평균 1억 원밖에 들지 않았다고 자랑했지만 그만큼 날림이어서 아스팔트 평균 두께가 독일 아우토반(200mm)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80mm 수준에 머물렀다.

일단 적은 돈으로 빨리 만들어 놓고 꾸준히 보수해 나간다는 개념으로 완성하긴 했지만, 빈약한 도로는 훗날 엄청난 유지 보수비용이 들어갔고, 무수히 반복된 덧씌우기 작업에 힘입어 지금은 아우토반에 필적하는 평균 두께 200mm의 노면을 갖게 되었다. 한 조사발표에 의하면 지금까지 경부고속도로에 들어간 유지보수 비용이 2천 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원화가치의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결코 적지 않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차를 모는 사이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탈 수 있는 신갈JC가 나타났다. 영동고속도로는 주말에 극심한 정체를 빚기로 악명이 높다. 신갈을 지나 수원에 이르렀을 때 평균 주행속도는 시속 80km 이상으로 올라가 제한속도인 100km에 육박하고 있었다. 수도권을 빠져나오느라 10km/ℓ 수준으로 떨어졌던 연비는 시속 100~110km로 정속주행하자 공인연비인 15.6km/ℓ에 가까워진다. 출발 때 840km 였던 주행가능거리도 정체구간을 지나며 780km로 떨어졌다가 교통흐름이 원활해지자 다시 860km 수준으로 향상됐다. 주위의 차들도 화물차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힘차게 달리는 화물차들을 보고 있으니 고속도로를 국가 산업의 대동맥이라고 표현했던 이유를 알겠다.

오산과 안성, 천안을 지나 대구를 향하다 보면 옥천터널이 나타난다. 이곳은 건설 당시 가장 험난했던 구간으로, 많은 희생자를 냈다. 공사 중 사상자가 속출하자 겁에 질린 인부들이 손사래를 치며 현장을 떠났고, 급료를 두 배로 올려도 일할 사람을 구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옥천터널을 나가자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금강휴게소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름 그대로 금강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금강휴게소는 발코니로 꾸민 기다란 전망대는 물론이고 화장실에서도 금강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멋진 조망을 감상할 수 있다. 금강휴게소 주변에는 민물매운탕집이 즐비했다.

추풍령 기념탑, 경부고속도로의 산 기록
금강휴게소를 나가 남서쪽으로 더 달리면 영동과 황간을 거쳐 추풍령이 나타난다. 추풍령은 경부고속도로의 중간지점으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든 추풍령을 지나면 절반을 달렸다는 뜻이다. 이 같은 추풍령 휴게소 근처에는 ‘서울 부산간 고속도로 준공 기념탑’이 있다. 경부고속도로는 1968년 2월 1일 착공에 들어간 뒤 2년 5개월 동안 77명이 공사 현장에서 순직했다. 기념탑은 이들의 희생을 추모함과 동시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글씨와 공사 인력, 장비, 자재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한편 추풍령 휴게소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 휴게소다. 1971년 개장 당시 메뉴는 육개장과 설렁탕, 비빔밥이 전부였고 음료는 콜라와 사이다, 커피밖에 없었다고. 개통 후 몇 년 동안대전 이남으로는 차가 뜸해 인근 주민들이 차를 구경하기 위해 휴게소를 찾았다고 한다.

추풍령까지 평균시속 105km, 6단 2천100rpm 정도를 유지하며 꾸준히 달려온 덕에 주행가능거리는 940km까지 올라갔다. 추풍령을 넘으면 김천과 구미, 왜관, 칠곡을 지나 대구로 접어들고, 새로 뚫린 대구-부산간 고속도로의 이정표가 보인다. 대구에서 영천, 경주, 울산을 빙 둘러 부산으로 이어지는 경부고속도로의 비효율성을 비웃듯 일직선으로 닦인 도로는 30분 앞당겨 부산에 도착하게 해준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이 목적이므로 30분 단축의 유혹을 뿌리치고 경주로 향했다. 
 
대구에서 경주로 이어지는 구간은 38년전 개통 당시의 풍경을 보는 듯 편도 2차선 도로에 커브가 쉬지 않고 이어진다. 요즘 건설되는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국도와 비교해도 민망할 정도다. 덕지덕지 누더기 같던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콘크리트로 다시 깐 도로와 중앙분리대를 빼면 경부고속도로의 본래 모습에 가장 가까운 구간일 것 같다.

푸조 308SW HDi는 구불거리는 도로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안정감으로 장거리 운전의 피로를 덜어 주었다. 짧은 한나절짜리 시승에서는 별로 느낄 수 없었던 또다른 장점들이 장거리 달리기를 통해 서서히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308SW HDi도 오래 탈수록 제맛을 느낄 수 있는 차 중의 하나인 듯.

편도 2차선 도로를 한참 달리니 경주휴게소가 눈앞에 나타난다. 기자가 이곳에 들른 이유는 한우 내장으로 담백하게 끊여낸 우장탕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주휴게소 역시 지역 특산물은 물론이고 다양한 즐길거리를 갖춘 복합 문화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배고픔과 급한 볼일을 처리하던 휴게소가 지역색과 테마를 갖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해 고속도로 여행자들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고 있다.

마지막 휴게소인 언양휴게소를 지나면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대장정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변의 차들은 컨테이너와 짐을 실은 화물차가 대부분이고 부산 톨게이트가 가까워지자 그 비율이 더 높아진다. 부산 톨게이트에 다다랐을 때 확인한 푸조 308SW HDi의 연비는 15.9km/ℓ. 계기판에 찍힌 주행거리는 403.7km였다. 서울 톨게이트에서 부산 톨게이트까지를 기준으로 했기에 실제 경부고속도로의 길이보다는 짧게 나온 것. 주유계 바늘은 절반 이상 남아 있고 남은 연료로 주행 가능한 예상 거리는 500km 이상이다.

38년 전 한국 경제의 아이콘이었던 경부고속도로는 이제 그 엄청난 상징성을 벗어버리고 전국을 잇는 교통 대동맥으로서 든든한 위치를 지키고 있다. 무작정 길을 떠나고 싶을 때는 일단 경부고속도로를 타라. 돈도 기술도 경험도… 아무 것도 없던 시절, 우리의 아버지들이 맨손으로 일군 이 길을 달리다 보면 어쩐지 힘이 솟을 것 같지 않은가.

< 저작권자 -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