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e PARIS 자유로운 영혼의 안식처
2008-08-06  |   10,462 읽음
파리에서의 여행은 ‘고독’이라는 테마와 어울린다. 파리의 하늘이 새파랗든 아니면 우울 모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파리의 중심가인 샬렛 거리를 걷거나 에펠탑, 샹젤리제로 대변되는 흔한 관광지를 배회하더라도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폼나게 깃을 올려 세우거나, 바람에 흩날리는 파리지엥의 스카프 향수향 너머로도 고독 모드 여행의 잔상은 묻어난다.

계절이 달리 중요한 것은 아니어서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에서의 파리 역시 잔뜩 파리스럽다. 파리에 대한 인상을 달리 언어로 규정짓기 힘들 듯, 여행자에게 파리는 오랜 시간 막연하게 꿈꿔 왔던 로망과도 같은 도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곳에서의 환상은 늘 타인과 공유된다. 누구나 레드 와인 한 잔에 낭만을 논하고, 세련된 패션에 눈을 지치게 하며, 고풍스런 건물들이 감싸고 있는 오래된 것에 현혹된다. 파리답지 못한, 회색빛 빌딩만 높게 솟은 다른 나라의 수도들은 억울하게 저급한 것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몽마르뜨 언덕 위에서 파리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망울은 그런 동질의식 때문인지 어느 정도 닮아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로떼르담 성당이 솟은 시떼 섬으로 연결되는 파리의 골목들을 칭송하고, 세느 강변의 다리 위를 서성거리며, 뤽상부르 공원에서의 달콤한 낮잠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파리를 오가는 수많은 이방인들의 배낭 안에는 딱딱한 바게뜨 빵이 소담스러운 상징처럼 꽂혀 있다.

파리를 공유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은 여기저기서 무의식적으로 이뤄진다. 인파를 피해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한적한 골목에 들어서거나 어둑한 조명의 낯선 카페를 기웃거리게 된다.

그 작은 소망을 가슴에 담고 메트로에 오른 뒤 소르본느 대학을 찾는다. 서울의 대학로나 홍대 앞을 기대했건만 무수한 호텔과 헌책방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우선 생뚱맞다. 대학정문 앞 노천카페는 샤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자주 들렀다는데 이미 여러 여행 책자에 소개된 곳이다. 카페 안에는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한가로운 대화를 나누거나 대낮부터 생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시인이 된 폼으로 앉아 있는 관광객들이 빼곡하다. 대신 정문 옆을 지나치면 작은 공원이 있고 공원을 바라보고 한적한 바들이 있다. 그 공원의 얼룩진 계단에 앉아 책을 읽거나 어두침침한 바에 앉아 흐르는 음악소리에 몇몇 청춘들이 몸을 들썩인다. 바로 보고 싶었던 파리의 풍경이다.

골목길에서 맞는 또 다른 여유
파리에서의 여행은 반복과 함께 일종의 업그레이드 수순을 밟게 된다. 예를 들면 할인쿠폰을 들고 세느 강에서 바토무슈 유람선을 타는 것보다 퐁데자르 다리 난간에서 유람선을 발 밑으로 내려다보며 한가롭게 앉아 있는 것이 운치 있다. ‘예술의 다리’라는 별칭답게 나무로 바닥을 채운 퐁데자르는 세느 강의 다리 중 유일한 보행자 전용 다리인데 해질녘 그곳에 앉아 병에 담긴 와인을 기울이는 것으로 파리지앵 흉내를 내볼 수 있다.

이왕 흉내를 낸다면 시떼 섬에서 세인트 미첼 거리로 이어지는 노천카페에도 무심코 시간을 쪼개 볼 일이다. 볕이 드는 큰 도로에 늘어선 카페들의 테이블 좌석은 한 방향만 바라보고 겹겹이 늘어서 있다. 마치 파리의 정경과 지나치는 사람들을 하나의 동영상처럼 감상하는 구조다. 커피 값은 2유로. 1,600원대로 환율이 올랐지만 한국 돈 3,000원 정도의 값이다. 파리 지하철 가격이 1.5유로인 것을 감안하면 오후의 여유를 즐기는 것에 있어 이곳에서는 누구에게나 낮은 평등이 주어진다. 한국 카페의 커피 값이 5,000원을 넘나들고 지하철 요금의 5배에 가까운 것을 생각하면 커피 한 잔의 여유에 대한 차별은 오히려 한국이 냉혹하다.

마주하는 소통보다는 대범하게 바라보거나 그 시선을 받아들이는 파리지앵들에게는 그들만의 여유로움이 깃들어 있다. 땀을 흘리며 도시 구석구석을 훑어보지 않더라도 그렇게 다가오고 사라지는 장면들 속에서 그들은 파리를 호흡하고 즐긴다. 낯선 여행자라면 루브르 박물관의 고풍스런 작품을 꼼꼼히 둘러 봤다가도 늦은 오후가 되면 퐁삐두 센터 앞에 앉아 독특한 건물을 바라보며 딱딱한 바게뜨와 책을 벗삼는 모습이 몸에 익숙해지면 되는 것이다.

파리에 대한 시선은 외곽으로 흐르면서 더욱 고즈넉해진다.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향하는 단골 코스가 귀에 친숙하지만 고흐가 마지막 작품 활동을 하며 생을 마감한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들려 프랑스 시골마을의 한가로운 풍경에 취해 보는 것도 좋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향하는 열차는 파리에 사는 구성원들이 세련된 파리지앵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듬성듬성한 열차 자리는 촌스러운 시골 청년과 다양한 유색인종들로 채워져 있다.

이곳에서 가장 낯선 풍경은 몇 안 되는 동양인 관광객이다. 고흐는 이곳에서 70여 점의 마지막 작품을 남겼고 고흐의 생가는 1층이 아직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청, 교회, 공동묘지가 그림의 배경이 됐으며 세잔, 도비니 등 인상파 화가들도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오베르에서는 옆집 아저씨 같은 골목길 아뜰리에의 주인과 수다를 떤 뒤 고흐의 동상이 놓여 있는 한적한 공원에 앉아 나른하게 낮잠을 즐겨도 좋다. 자신의 귀까지 자르고 자살을 선택한 천재 화가의 최후는 섬뜩하지만 머릿속에서 지운 채 말이다. 이 모든 것이 파리를 즐기는 또 하나의 여유이자 방법이다.

TRAVEL TIP
파리는 열차 여행의 교두보와도 같다. 파리를 시작으로 호수도시 안시를 거쳐 지중해의 니스 해변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프랑스의 도시, 산,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다. 이동 때는 TGV를 이용하는데 주말에는 일찌감치 만석이 되니 사전 좌석 예약은 필수다. 파리에서 오베르 쉬르 우아즈까지는 페르상 보몽행 기차를 탄 뒤 퐁트와즈행 열차로 갈아탄다. 파리시내의 이동은 메트로가 편리한데 10장 묶음, 1주일권 등 다양한 할인티켓이 있다.

패션에 관심이 많다면 상제리제 인근의 몽테뉴 거리에서 명품 숍들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라데팡스 지역의 신개선문 역시 파리의 새로운 단면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파리의 유명한 먹자골목은 시떼 섬에서 소르본느 대학으로 향하는 세인트 미첼 거리 뒤편에 조성돼 있다. 이보다는 어둑어둑하고 간판 작은 로컬 레스토랑에서 와인 한 잔에 식사를 즐겨도 좋을 듯. 대부분 점심시간에는 와인과 메인음식이 포함된 세트 메뉴를 싼 값에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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