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나들길, 옛것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2012-08-28  |   12,667 읽음

바야흐로 완연한 여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때다. 무더위를 피해 가족 혹은 연인과 함께 즐기는 달콤한 여름휴가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한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듯한 여행 말고 일상을 떠나 재충전의 기회로 삼을 만한 휴가를 보내고 싶은 것은 모두의 바람. 그런 이들에게 강화나들길은 가볍게 떠나 풍성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는 쉼터이자 추천할 만한 트레킹 코스다. 쭉쭉 뻗은 길이 답답한 가슴과 머리를 시원하게 풀어주기에 나들길의 멋은 한층 더해진다.

강화도는 서울에서 자동차를 타고 1시간 30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다. 올림픽대로를 통과해 김포 방향으로 쭈욱 가다보면 48번 국도에 이른다. 이곳을 지나 강화대교를 목표로 삼는다. 한강과 임진강 어귀 건너편에 위치한 강화읍내 방향으로 들어오면 용흥궁, 성공회 강화성당, 고려궁지 등이 한데 몰려 있다. 바로 도보여행의 시작점이다.

느리게 걸어도 즐거운 곳
강화도는 오래된 섬이다. 신라시대에는 해구로 불리다가 고려시대 초기에 이르러 강화도란 이름이 붙여졌다. 강화나들길은 ‘나들이 가듯 걷는 길’이라는 뜻이다. 화남 고재형 선생이 1906년 강화도의 유구한 역사와 수려한 자연을 노래하며 걸었던 길을 복원하고 연결한 길이다. 바다가 있고 강이 있으며 생태계의 보고인 세계 5대 갯벌 또한 품고 있다. 강화 본섬에 9개, 교동도 2개, 석모도, 주문도 코스, 불음도 등 전부 14개 코스에 246.8km에 달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강화 중심을 통과하는 나들길 제1코스(18km)를 걷다보면 세월의 흔적이 아득하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천년을 넘나드는 타임머신을 탄 듯하다.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다녀올 만큼 무난한 코스이므로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강화문학관과 용흥궁에서부터 연미정과 갑곶돈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역사적인 유적지가 있어 자녀들과 함께 걷기에도 그만이다.

강화읍 관청리 용흥궁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강화나들길 1코스의 출발점이다. 그 전에 용흥궁 공원 안에 있는 강화문학관을 둘러본다. 강화도에 대한 기초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어린이부터 성인들의 눈높이에 맞게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 1층에는 강화에서 활동한 문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고 2층에는 언론인이자 수필가로 활동한 월당 조경희 선생의 수필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곧바로 용흥궁을 향해 발을 옮겼다. 강화도령이라 불렸던 조선 제25대 철종이 1850년 왕위에 오르기 전에 19세까지 살던 잠저(임금이 되기 전에 살던 집)로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가 건물을 새로 지어 ‘용흥궁’이라 이름붙였다고 한다. 궁이라고 하지만 그 규모는 조금 큰 기와집 정도. 마치 창덕궁의 연경당과 낙선재 같이 눈에 익은 풍경이다. 근사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살림집 느낌의 한옥처럼 보인다고 하면 이해하기 쉽겠다.

용흥궁 뒤쪽으로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는 성공회 강화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힘을 낼 것도 없이 몇 발자국만 걸으면 강화성당 입구로 접어든다. 1900년 대한성공회 초대 주교인 존 코르페에 의해 건립된 이곳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손꼽는 명성에 걸맞게 고상하고 멋스런 풍취를 간직하고 있다. 내부는 동서로 10칸, 남북으로 4칸 규모에 서양의 성당 구조인 바실리카 양식을 접목했다. 그럼에도 겉모습은 한식 목구조와 기와지붕으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태를 한껏 뽐낸다. 건물 구조는 배 모양을 본떠 뱃머리 쪽에는 외삼문과 내삼문, 동종을 배치하고 중앙에 성당을 두었으며 후미에는 사제관이 자리한다. 인위적인 느낌 없이 고고한 매력이 특징.

다음 행선지인 고려궁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도보 지점마다 안내판과 이정표가 눈에 띈다. 강화나들길을 알려주는 안내표시는 다양하다. 특히 페인트칠된 파란 바탕의 분홍색 화살표가 자주 나타났다. 그런 까닭에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 교회와 대월초등학교 앞길로 조금 올라가면 고려궁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려시대의 옛 궁터다. 고려왕조가 1232년에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왕도를 강화를 옮긴 이후 1270년 개성으로 환도할 때까지 39년 동안 사용되어온 왕궁 터라고 한다. 하지만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에 의해 행궁, 장녕전, 만녕전 등이 불타 지금은 섬세하고 수수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동헌과 이방청만 남아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고려궁지를 나와 강화여자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지나면 북문으로 연결된 아스팔트 숲길이 보인다. 숨을 깊이 들여 마시고 오른다. 완만한 오르막이어서 느릿한 걸음으로 걷더라도 충분하다. 산들바람이 땀을 식혀주고 길 양쪽으로 그늘이 드리워진 덕분에 고요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온통 초록빛이라 그런지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과 함께 얼굴에 절로 미소가 감돈다. 20분 정도를 걷다 보면 강화산성 북문이 나타난다.

강화산성은 1232년 고려시대 말 강화도 읍기에 내성으로 축조되었으며 개경으로 환도할 때 몽골의 요구로 헐리는 수모를 당했다. 이후 조선 전기에 강화성이 다시 건축됐지만 병자호란 때 청군에 의해 파괴당했다가 숙종 때 다시 성을 보수하면서 남산까지 넓혔다. 진송루 현판이 걸린 북문 오른쪽 길에는 성곽을 지키는 장수의 지휘소인 북장대터가 자리한다. 첫 인상은 위풍당당. 강화산성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무궁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하지만 성벽이 군데군데 훼손된 것이 못내 안타깝다. 북장대터 꼭대기에 오르면 여름 정취를 한껏 머금은 강화 들판과 서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특히 북한 땅인 황해도 개풍군이 장쾌하게 펼쳐지니 꼭 한번 올라가 보길 권한다. 날이 다소 흐렸는데도 시계가 말끔했다. 시원한 조망이 풀어낸 풍광이 일품이다.

다시 강화산성 북문 밑으로 들어서면 오읍약수가 나온다. 차갑고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이며 갈증을 해소한다. 이윽고 강화도 북서쪽 바닷가 언덕에 있는 연미정을 향해 나아간다. 도중에 물길바람터에 들러 잠시 쉬어가도 좋겠다. 개와 고양이가 방문객을 반긴다. 평일 오후라 한적한 분위기가 여행자들에게 소중한 쉼터 역할을 한다. 평평한 숲속 벤치에 앉아 시원한 냉수나 커피 한잔을 마시고 담소를 나누며 여유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연미정은 고려시대에 세워진 정자이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한 줄기는 서해로, 또 다른 한 줄기는 강화해협 염하로 흘러드는 모양새가 제비꼬리 같아서 지어진 이름이란다. 여기까지 오면 1코스의 종착지인 갑곶돈대에 다다르게 된다. 연미정에 올라서자 어지간한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이 굳건한 500년생 느티나무 두 그루가 뿌리를 박고 있다. 그 형상이 당당하고 늠름해 보인다. 덕분에 품 넓은 그늘을 선사한다. 그늘이 드리워진 고목 아래에서 바라보는 유도섬(무인도)과 한강이 바다로 합류하는 수려한 풍광이 한 폭의 그림같다.

이제 종착점인 갑곶돈대로 향한다. 갑곶돈대는 제물진에 소속된 돈대로 소대 규모의 수비병이 지키던 요새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군사시설로 다양한 포가 전시되어 있다. 돈대에서 보는 주변 조망이 한눈에 쏙 들어왔다. 갑곶돈대 안에는 비석군과 탱자나무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나들이를 호젓하게 마무리하기에 좋다.    

< 저작권자 -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