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상처를 성장의 밑거름으로 - 체코
2008-10-13  |   11,197 읽음

체코 프라하 거리를 걷다 보면 베트남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베트남도 이제 해외여행 붐이 일어나 이 먼 곳까지 활개치고 다니는구나’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1960년대 중반, 인도차이나 반도가 베트남 전쟁으로 불을 뿜을 때 미국을 대적해 싸우던 월맹과 베트콩 뒤엔 소련이 버티고 있었다. 그 당시 다른 동구 국가와 마찬가지로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체코슬로바키아는 소련의 압력으로 무기를 제조해서 월맹으로 보냈다.

무상은 아니었고 차관 형식이었으니 외상 장사를 한 셈이다. 1975년, 마침내 월남이 패망하자 미국은 시궁창에서 발을 빼 제 나라로 돌아가고 월맹은 승리의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러자 체코슬로바키아는 빚 독촉을 시작했다. 하지만 월맹은 승전은 했지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국고는 땡전 한 푼 없이 비어 있어 월맹은 인력송출이라는 결제수단을 제시해서 체코슬로바키아의 양해를 받았다. 당시 동구의 여러 소련위성국 가운데서도 체코슬로바키아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하나의 국기를 사용한 체코와 슬로바키아

체코슬로바키아는 특히 기계 제작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 많은 공장이 활발하게 돌아갔다. 일손이 모자라던 차에 월맹으로부터 3만 명의 인력을 공급받아 3D 업종에 밀어 넣었다. 월맹에서는 지원자가 넘쳐났다. 월급의 반 이상을 국가에 바쳐 채무 변제에 충당했지만 월맹 청년들에게는 인생을 바꿀 호기였다. 그들은 유럽이라는 신천지에서 열심히 일해 월맹은 국가 채무를 모두 갚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는 3D 업종의 갑작스런 공백을 우려해 그들에게 영주권을 주어 붙잡았다. 지금 체코에는 6만 명의 베트남인들(주로 하노이쪽 사람)이 살고 있고, 여러 분야에서 뿌리를 내려 젊은 월남인들은 패션도 산뜻하고 골프장에서 여유 있게 라운딩하는 모습도 보인다.

중국의 대표 영화감독 ‘장이모’가 연출한 화려한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 끝나자 세계의 이목은 ‘누가 첫 금메달을 목에 걸까’에 쏠렸다. 지난 8월 9일, 베이징사격관에서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 올림픽 신기록이 터졌다. 첫 금메달의 주인공은 체코의 카트리나 에몬스. 그녀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격 선수들이 사용한 총은 모두 체코제였다. 이는 월남전에 체코가 무기를 수출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체코의 기계 공업이 얼마나 발달하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본에서 들여온 차가 가뭄에 콩 나듯이 돌아다니고 일본인이 차린 자동차 수리점이 우리나라 자동차공업의 효시일 때인 1920년대, 체코는 벌써 완성차를 생산해 냈다. 슈코다(SKODA)라는 브랜드로 생산된 자동차가 바로 그것. 이 차는 상당한 인기를 얻어 냉전시대 땐 공산권에 대량 수출되었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슈코다는 인기모델로 출고되어 지구촌 곳곳을 누빈다. 슈코다의 주식은 폭스바겐으로 넘어갔지만 슈코다는 여전히 체코차다. 슈코다 옥타비아(1.8L&2.0L)는 폭스바겐 파사트, 슈코다 파비아(1.3L&1.5L)는 폭스바겐 골프와 엔진이 같다. 체코에서는 자동차가 무척 비싸다. 우리나라에서 6,000만 원대인 아우디 A6(2.0L)가 체코에서는 9,000만 원이 넘는다.
우리의 현대가 기계공업이 꽃피는 나라를 외면할 리가 없다. 현대는 체코의 동북쪽, 오스트라바에 공장을 짓고 있다. 오는 11월이면 i30을 주력으로 몇 가지 모델을 생산 출시할 예정이다. 옆 나라 슬로바키아에는 기아자동차 공장이 활발하게 돌아간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원래 인종도 다른 이웃나라였다. 1차대전에 휩쓸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게르만에 혼쭐이 난 미국이 게르만 인접국가인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나라를 통합, 힘을 키워야 게르만이 쉽게 넘보지 못할 거라고 설득했다. 마침내 1918년 두 나라는 ‘체코슬로바키아’라는 이름 밑에 프라하를 수도로 한 나라가 되었다. 냉전시대를 거쳐 소련이 와해되고 동구의 위성국가들이 소련으로부터 해방되던 1990년대 초, 체코슬로바키아도 민중 봉기로 총성 한 번 없이 공산당 지배에서 벗어났다. 소위 ‘벨벳혁명’이 성공한 것이다. 1차대전 후 반강제적으로 통합했던 나라를 원위치로 돌려놓자는 데 양쪽의 의견이 일치, 한 나라 국기 밑에 있던 두 나라는 1993년 체코 공화국(CZECH REPUBLICS)과 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체코는 냉전시대, 소련의 지배 아래 있던 잃어버린 50년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그 세월, 자본주의 체제하에 국가가 발전했다면 세계의 부국대열에 진입했을 거라는 아쉬움 때문이다. 체코의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뒷걸음치는 우리와는 달리 전력질주를 하고 있다. 땅은 남한보다 조금 좁고 인구는 우리나라의 4분의 1도 안 되는 이 맹랑한 나라는 실업률 제로의 완전 고용상태다.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가득률 높은 관광사업이다. 비공식 통계이지만 연간 1억 명이 넘는 관광객이 달러를 뿌리고 다닌다.

프라하는 이웃나라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와 극명하게 비교된다. 폴란드는 1939년 침공하는 독일군에 격렬하게 맞섰고 체코슬로바키아는 일찌감치 역부족을 간파, 두 손을 들어버렸다. 고색창연하던 바르샤바는 초토화되었고 프라하는 가로등 하나 넘어지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되었다. 오늘날 달러 지갑은 바르샤바가 아닌 프라하에서 열린다. 누가 프라하는 겁쟁이였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에서 체코 프라하까지는 체코항공과 대한항공의 직항 비행기가 주 4편 운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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