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산 바다에 소금꽃 피면 - 영광
2008-10-12  |   9,546 읽음

밤마다 조기떼들의 울음소리가 자는 머리맡까지 들리던 때가 있었다.
조기가 어찌나 많은지 어부들은 조기가 아닌 ‘돈을 실으러 간다’며 허풍 아닌 허풍을 떨었던 때다.
성대한 조기 파시가 열리던 법성포는 밤마다 어부들의 술판에 불야성을 이루고 각시들의 노랫가락은
포구의 비린내와 섞여 춤을 추었다. 그렇듯 씨알이 많던 조기가 지금은 어디로 사라지고
어부의 한숨은 그늘처럼 늘어진 지 오래다.
과거의 영광이 희미하게 기억되는 쓸쓸한 바닷가,
법성포의 그날은 다시 못 올 축제인가…….

나체를 드러낸 모래톱 위로 해수(海水)에 잠겨 있던 밑바닥이 드러난다.
자신은 끝까지 보일 수 없었던 속내를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내보일 때면 현실은 초라해진다.
허나 때로는 극명하게 마주하는 현실이 따뜻한 위로가 되기도 하니
물이 빠지고 헐벗은 갯벌이 그렇다.
질퍽한 갯벌이 늙고 보잘것없는 어머니의 품처럼 맥없이 가슴 시리다.

조선 강항(姜沆) 선생의 기백만큼 곧고 위용스런 홍살문이 내산서원을 지키고 서 있다. 고택의 묵은 목향이 바람을 타고 코끝을 간질이고, 빛바랜 툇마루 끝으로 입신양명을 꿈꾸던 선비들의 낭랑한 글소리가 들릴 듯하다. 안뜰의 빛은 맑고 솔잎의 흔들림이 청명하니 잠시 세월을 잊은 길손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한때다.

가을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논이다. 벼 익는 소리는 오감을 동원해야 비로소 들린다. 소슬바람의 스침은 그 소리마저 푸르고 빛의 흐름은 찬란하다 못해 극적이다.
풀벌레의 울음은 하나가 아니고, 벼잎의 서걱거림도 한 소리가 아니다.
       자연은 이렇게 인간에게 듣는 법을 가르친다.
발아래 떨어진 햇살 한 조각이 가을처럼 노랗게 물이 든다.

짓뭉개진 둑길 옆 무채색 수면 위로 흰 꽃이 폈다. 그 꽃이 쌓이니 소금산이다.
점점 쇠락해 가는 염전은 설 자리를 잃어가며 어느덧 천덕꾸러기 신세.
한 시인은 염전을 두고 갯바람과 쓰라린 뙤약볕을 인내하며

소금을 잉태하는 ‘자궁’과 같은 존재라 했다.
              그래서 소금의 맛은 하늘이 결정한다 했던가…….

하늘과 바다에 믿음을 둔 순박한 염부의 어깨는 오늘도 산파의 역할을 묵묵히 짊어진다.

누구든 한번쯤은 세상을 내동댕이치고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휘청대듯 달리다 보면 마음을 위로하는 것들을 만나게 된다.
백수해안도로의 길이 그렇다. 이런 것을 눈에 담으려고 여기까지 왔던가…….
해무(海霧), 파도의 출렁임, 해당화 향기,
모든 것이 허기진 마음을 달래기 충분하다.

운이 좋아 낙조라도 볼 수 있다면 더 이상의 여행은 낭비일 터.

Travel Tip
전남 영광 가는 길은 서해안고속도로가 가장 빠르다. 서울에서 영광IC까지는 약 3시간. 영광IC를 나와 22번 국도를 타고 5분쯤 달리면 영광읍이 나온다. 백암리에서 법성포를 잇는 백수해안도로(77번 국도)는 탁 트인 바다와 완만한 해안선이 가히 환상적. 중간지점에 있는 동백마을은 영화 ‘마파도’의 배경으로 영화 속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염산면 두우리에는 바닷물이 빠지면 약 4km를 자동차로 달릴 수 있는 갯벌이 있다. 바닷물이 배어 있는 곳을 호미로 파면 백합과 맛조개 등을 채취할 수 있다. 영광 하면 역시 굴비다. 법성포항 근처엔 유명한 굴비정식집이 많은데, 1인분 1만5,000원이면 수라상 부럽지 않은 상차림을 맛볼 수 있다.
취재차 BMW X6, 직렬 6기통 CRDi 디젤 3.0L 235마력 엔진, 9,390만 원, 080-269-2200

< 저작권자 -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