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퍼와 여행자의 천국 - OKINAWA
2008-10-11  |   7,848 읽음

가즈토시가 청이의 젖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겨주었다. 청이는 일본인들과 달리 앞이마를 면도하지 않은 채 뒤로 넘겨 붙들어 맨 가즈토시의 상투머리 동곳을 뽑고 매듭을 풀었다. 그의 긴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가즈토시가 물속에서 청이의 가슴께를 어루만지고 무릎에서 허벅지 아래로 하여 둔부를 두 손으로 쓸어내리면서 얼굴을 기울여 청이의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중략>…… 청이가 말했다.
“방으로 가셔요. 너무 더워요.”

황석영의 소설 ‘심청’의 일부분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심청은 황석영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그는 소설에서 근세판 심청의 파란만장한 삶의 행간에 이부자리 얘기를 질펀하게 쏟아낸다.
구한말 제물포에서 중국 상인들한테 팔려간 15살의 심청은 인당수의 제물이 되는 대신에 중국 난징으로 끌려가 부호의 첩실이 되어 유곽으로 술집으로 떠도는 화류(花柳) 오디세이의 서막을 연다. 난징에서 진장으로, 대만으로, 싱가포르로 떠돌다가 배를 타고 류큐까지 왔을 때 제물포를 떠난 지 10년이 흘러 그녀 나이 스물다섯이 된다. 앞의 인용부분은 그녀가 나하에 차린 술집 ‘용궁’에서 수심에 가득 찬 왕족 가즈토시를 만나 밤을 보내는 장면이다.

파란만장한 오키나와의 역사

류큐는 지금의 오키나와로, 소설 속 심청이 류큐에 흘러들어갔을 때는 이미 일본이 오키나와를 점령하고 있을 때였다. 때문에 류큐의 왕족인 가즈토시는 답답한 가슴에 술만 퍼부어 댈 수밖에.
사쓰마 번의 시마즈 다이묘가 바쿠후(幕府)로부터 류큐 침공 허가를 받은 것은 200여 년 전이다. 철포와 장창으로 무장한 병력 삼천 명이 전선 1천여 척에 나누어 타고 가고시마의 야마가와 항에서부터 서남쪽으로 연이어진 섬의 길을 따라서 출전했다. 그들은 아마미 제도를 차례로 휩쓸고, 출정한 지 한 달도 못 되는 같은 해 사월 초하루에 우치나의 나하에 상륙하여 슈리성을 점령해버렸다.

류큐에는 궁성을 지키는 군사 수백이 의례에나 쓰는 무장을 하고 있었지만 당시의 쇼네이(尙寧) 왕은 화친을 원하고 있었다. 그들은 류큐의 왕과 사족들을 사츠마를 거쳐 에도(도쿄까지 연행해 갔다. 왕과 대신들은 에도에서 2년 반 동안 잡혀 있어야 했고 쇼네이 왕과 중신들 모두가 사츠마 번에 종속되기를 서약한다는 내용의 기청문에 서명을 하고서야 풀려나 고국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사쓰마 번은 류큐 왕국의 통치 지역이던 아마미 제도를 직할영지로 선포했고, 우치나를 오키나와로 바꾸고는 남쪽 섬들은 쇼네이 왕의 지배권을 인정한다는 지행목록(知行目錄)을 내려서 번의 다이묘가 토지를 가신에게 내려주는 형식을 취했다. 그리고는 류큐로 하여금 겉으로는 형식적인 왕국을 유지하도록 했다. 그것은 중국과의 조공 무역을 유지시키기 위해서였다.

오키나와는 역사의 바람 따라 이리저리 휩쓸렸다. 류큐 왕국의 잔상은 일본의 그늘에서 점차 빛이 바래졌다. 그리고 마침내 2차 대전의 패전국이 된 일본은 오키나와를 미국에 넘긴다. 지금은 오키나와가 다시 일본 영토가 되었지만 오키나와 사람들 가슴 속엔 류큐 왕국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고, 미군들은 아직까지 오키나와 땅의 10%를 기지로 사용하고 있다.

자신들만의 문화를 이어가는 오키나와

오키나와 사람이 동경에 가면 “일본말을 현지인처럼 잘 하네요”라는 말을 곧잘 듣는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 국적으로 태어나 일본 이름을 얻어 일본어를 들으며 자라났지만 그들의 모습은 일본 본토인의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가무잡잡한 동남아 사람에 가깝다.

오키나와 문화의 뿌리는 일본 본토보다 가까운 중국에 치우쳐 있다. 오키나와의 수많은 섬을 끌어 모아도 경상남북도보다 작고 인구는 150만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드넓은 북해도가 완전히 일본 문화에 녹아들어 원주민인 아이누 족의 뿌리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데 비해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 문화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신들의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가고 있다.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키고 있는 오키나와에는 볼거리가 수두룩하다. 류큐 왕조 시대의 슈리성을 비롯해 300여 채의 유곽에 3천 명의 아름다운 기녀들이 있었다는 유곽터는 지금도 요정과 클럽이 줄을 잇고 있다. 지금의 유곽터는 아름다운 기녀들 대신 늘씬한 아가씨들이 헤픈 웃음을 날리는 곳이 되었다.

오키나와 본섬 북부 서해안 모토부쵸에 자리 잡은 해양박람회 공원의 쓰라우미 수족관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7천500톤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수족관은 직사광선이 들어오게 설계되어 산호초가 살아 있다. 바다 그대로인 셈이다. 세계적 희귀종인 거대한 고래상어와 농구코트만한 쥐가오리가 떼 지어 유영하는 모습은 대장관이다.

여행하기도 골프 하기도 좋은 철
오키나와엔 16개의 골프코스가 흩어져 있다. 좋은 골프 코스를 찾아갈 수 있는 베이스캠프로는 전일본항공(ANA)이 운영하는 만자비치호텔이 안성맞춤이다. 오키나와 최대이자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이 리조트 호텔은 수많은 놀이시설이 있어 가족들을 호텔에 떨어뜨려 놓고 골프코스로 내빼도 불평을 들을 일이 전혀 없어 좋다.

해양 박람회 공원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아라시야마 GC는 울창한 아열대 우림에 둘러싸인 전장 6천930야드의 챔피언 코스다. 아라시야마 GC는 남성적 코스 설계로 유명한 아라이 쓰요시의 작품으로 구릉지형을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아라시야마 GC의 코스는 페어웨이가 험악한 계곡을 건너뛰고, 숨막히는 산허리를 돌다가 널찍하고 평탄한 개활지를 지나며 골퍼의 가슴을 쓸어내게 하는가 하면 갑자기 워터 해저드가 앞을 가로막는 등 난이도 템포가 절묘하다. 페어웨이, 그린, 벙커 모두가 최상이다. 모든 홀이 원 그린이지만 특이하게도 파3, 4번 홀은 그린이 두 개다. 시그니처 홀인 파 4천 411야드 12번 홀은 드라이브샷은 워터 해저드를 끼고 내려갔다가 세컨드샷은 물을 건너며 올라가야 하는 롤러코스터 홀이다.

아라시야마 GC는 베이스캠프인 만자비치 호텔에서 40분이 걸리지만 현대적 골프 코스인 부세나 GC는 10분 거리로 가까워 골퍼들이 많이 찾는 곳 중 하나다. 거의 매홀 코발트색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타테라스 GC도 10분 거리에 있다. 오키나와는 그야말로 골퍼에게도 여행객에게도 천국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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