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한국의 아름다움 - 86, 선비들의 길을 걷다 2015-09-08
새가 날아서 넘기 힘든 높고 험한 고개, 풀이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우리재 사이, 새로 된 고개……. 모두 새재를 가리켜 이르는 말들이다. 위치는 경상북도 문경시와 충청북도 괴산군 사이, 높이는 1,026m에 이른다. 이곳은 명승 제32호이자 지난해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 관광 100선’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 인기만큼이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수없이 많은데, 하나하나 살피다 보면 당시의 문화를 누리며 즐길 수 있다.  임진왜란 이후 지어진 3개의 관문문경새재는 제1관문인 주흘관, 2관문인 조곡관, 3관문인 조령관까지 총 6.5km로 이뤄진다. 성인 걸음으로 편도 2시간 정도가 걸리며, 구간마다 구경거리가 많아 가족이나 연인이 함께 거닐기에 좋다. 86이 먼저 포즈를 취한 장소는 제1관문인 주흘관 앞이다. 새재의 3개 관문 중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으며, 규모도 으뜸이다.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해 숙종 34년(1708년)에 지어졌고, 문의 높이는 3.6m, 폭은 3.4m, 길이 5.4m이다. 좌우를 둘러싼 높이 4.5m의 석성 길이는 무려 188m다. 그 옆의 성벽도 동측 길이가 500m, 서측 길이가 400m로 무척이나 웅장하다. 원래는 차가 다닐 수 없지만 문경새재도립공원의 <카라이프>를 향한 배려와 협조로 새벽녘에 방문, 역사적이고 멋진 사진을 찰칵 남겼다.  주흘관에서 3.1km 거리에 위치한 제2관문 조곡관은 선조 27년(1594년)에 지어졌다. 문의 높이 3.6m, 길이 5.8m이고, 좌우 석성 높이는 4.5m로 길이가 73m에 이른다. 그 옆 성벽의 길이는 동측이 400m, 서측이 100m로 이뤄져 있다. 거의 원형 그대로인 주흘관과 달리 1907년에 훼손되어 현재는 1975년에 복원된 모습이다. 제3관문인 조령관은 새재 정상에 위치한다.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해 선조 초에 쌓았고, 숙종 34년(1708년)에 주흘관과 함께 다시 지어졌다. 조곡관처럼 1907년에 불에 타 훼손되어 1976년에 복원되었다. 문의 높이는 3.5m, 길이가 185m이고 성벽의 길이는 동서 각각 400m다. 제2관문인 조곡관은 1594년에 지어졌지만 현재의 모습은 1975년에 복원된 것이다 이 세 관문이 지어진 계기는 다름 아닌 임진왜란(1592년)이다. 전략적 요충지인 새재에 성벽 하나 없어서 왜군이 한양까지 쉽게 이르렀고, 결국 나라 전체가 왜에 넘어가게 된 것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치른 후 숙종 때에 이르러서야 주흘관이 지어졌으니, 소 잃은 지 100년 넘게 지나고 나서야 외양간을 고친 셈이다. 게을러도 이렇게 게으를 데가!문경새재는 경사가 심하지 않고 흙길이기 때문에 자연 속에서 산책을 즐기듯 걷기에 최고다. 아울러 문경시의 옛길 걷기 체험이나 과거길 재현과 같은 다양한 행사가 수시로 열려 조선시대 옛길 및 선비문화를 즐기며 누릴 수 있는 좋은 자원으로 꼽힌다. 특히 조선 후기의 한글 비석인 ‘산불됴심비’나 7선녀가 구름을 타고와 목욕을 했다는 여궁폭포를 지날 때는 반드시 발길을 멈추도록 하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는 국영여관인 조령원 터를 둘러보는 재미도 놓치지 말도록.  입신양명의 꿈을 이루려는 선비들의 발자취문경새재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과거시험을 보러 가기 위한 길목이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죽령과 추풍령, 그리고 문경새재가 있었는데 선비들은 세 가지 경로 중 문경새재를 주로 지났다고 한다.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낙방하고, 죽령을 넘으면 시험에서 죽죽 미끄러진다는 재미난 설 때문이었다. 반면 문경새재는 가장 먼저 듣는(聞, 들을 문) 경사(慶, 경사 경)를 의미했고, 또 문경의 옛 지명인 문희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하여 입신양명의 꿈을 이루려는 과거 길로 인기가 으뜸이었다. ‘택리지’에서 ‘조선 관리의 반이 영남에서 배출되었다’는 구절로 미루어 보아 실제로도 많은 선비들이 이곳을 지났음을 짐작케 된다. 흙길을 향해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한 발자국씩 내딛다 보면 마치 조선시대의 선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긴 세월 쌓아올려진 소원성취탑. 간절한 소원이 하나하나 모여 그 어떤 탑보다 견고해졌다 제1관문과 2관문 사이의 주막은 과거시험 길에 오른 지친 몸을 한 잔 술로 달래기 위한 쉼터였다. 현재는 원래의 것이 아니라 복원되어 있는 상태. 또 오랜 세월 차곡차곡 쌓인 소원성취탑도 눈길을 끈다. 이곳을 지나는 길손들이 돌을 쌓아 소원을 빌면 선비는 급제하고, 몸이 허약한 사람은 쾌차하며, 상인은 부를 얻고, 아들을 낳지 못한 부녀자는 옥동자를 얻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이곳만큼 시로 많이 다뤄진 길도 없다. 정약용의 ‘겨울날 서울 가는 길에 새재를 넘으며’, 김시습의 ‘새재를 넘어 시골집에 묵다’, 이이의 ‘새재에서 묵다’, 이황의 ‘새재로 가는 길’등 문경새재가 품고 있는 시는 수백 편에 이른다.   ROAD차로 넘는 백두대간 이화령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해 금강산과 설악산을 지나 태백산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고는 지리산에서 마무리되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이다. 이화령은 백두대간에 속하는 소백산과 속리산 사이의 고개로 높이 548m다. 이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이화령로는 1925년에 개통, 문경새재를 대신하는 도로로 쓰였지만, 1998년에 이화령 터널이 개통되면서 그 역할을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평일 낮 시간에는 시간당 차량통행량이 5대를 넘지 않을 정도로 차가 없어 민폐 끼치지 않고 와인딩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다. 다만 자전거를 타는 라이더들이 갑자기 나타날 수 있으니 블라인드 코너에서는 최대한 감속한 후 코너에 진입해야 한다. 이화령로는 차들의 통행이 거의 없는데다 총 길이가 20km라서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다만 곳곳에 깔린 모래는 주의해야 한다 업힐은 문경새재도립공원으로부터 약 3km 거리에 있는 각서1리 마을회관 앞에서 시작한다. 스타트 지점을 찾기 힘들다면 내비게이션에 ‘각서1리 마을회관’이라고 입력해 와인딩 초입을 마주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부터 이화령로를 타고 86의 스티어링을 이리저리 휘저을 계획이었다. 2월 초였기에 노면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다행히 눈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문제는 모래였다. 통행량이 없어도 너무 없기 때문인지 모래가 융단처럼 깔려 있어 액셀 페달을 깊게 밟으면 뒤가 꿈틀거렸고, 조금만 오버스피드로 진입하면 차가 주욱 미끄러졌다. 장맛비가 쉼 없이 내려야만 씻겨 내려갈 판이다. 결국 86은 제 성능을 뽐내지 못한 채 눈길 달리듯 서행해야만 했다. 정상의 이화령휴게소에서는 괴산군과 문경시를 내려다 볼 수 있다 각서1리 마을회관을 출발해 4.8km의 업힐을 달리면 정상에서 이화령휴게소가 우리를 반긴다. 전망대에서 북서쪽의 괴산군, 동서쪽의 문경시를 내려다보니 노면 상황 탓에 짜증이 가득했던 기분이 확 풀린다. 이화령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했다면 지나왔던 길로 돌아내려가지 말고 가던 방향으로 약 4.9km를 더 내려가자. 그러면 형촌로터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이화령 와인딩의 피니시 라인이다. 이렇게 달려온 거리는 약 10km. 결국 왕복 20km의 와인딩 코스가 완성됐다. 차가 거의 없는 백두대간 이화령 와인딩,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달려보기를 추천한다. 단, 노면을 뒤덮은 모래들이 씻겨 내려간 후에. 이화령은 백두대간에 속하는, 소백산과 속리산 사이의 고개다  
Delicious Table in Spring 2014-02-25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무용을 전공한 28살 박예나입니다. 어릴 때부터 무용을한 탓에 체중 관리를 위해 먹고 싶은 것을 제대로 먹어본 기억이 없네요. 학창시절부터 같이 무용을 배우며 친하게 지내온 동생들이 있는데 그들 또한 마찬가지랍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친구들과 만나 어울릴 때도 늘 식단에 신경 쓰다 보니 아쉬울 때가 많아요. 평소 자주 보던 카라이프와 한국토요타자동차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이벤트를 보고 사연을 보냅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멋진 장소에서 요리도 하고, 내가 만든 음식을 마음껏 먹어보고 싶습니다. 제 소원 들어주실 거죠?”  <카라이프> 편집부로 날아온 메일에는 진수성찬 앞에서 입맛만 다셔야 하는 세 여자들의 간절함(?)이 묻어나는 사연이 담겨 있었다. 먹지 못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박예나(28), 신지연(27), 송지윤(25) 씨에게 맛있는 하루를 선사하기로 했다.  Step 1요리의 시작은 장보기부터 봄비가 촉촉이 내리던 날, 알록달록 컬러풀한 우산을 받쳐 든 세 여자가 화사한 미소로 나타났다. 예나 씨와 지연 씨, 지윤 씨 모두 무용학도답게 날씬하고 균형 잡힌 몸매를 과시했다. 평소에는 편한 차림으로 만나는 막역한 사이이지만 이날은 특별한 날인만큼 한껏 멋을 냈다고. 기억에 남는 하루를 보내기 위해 세 명의 여성이 선택한 차는 토요타의 대표적인 패밀리 세단 ‘캠리’. 미혼인 지윤 씨는 현재 소형차를 타고 다니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넉넉한 공간이 장점인 ‘캠리’의 오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곤 했단다. “예전에 캠리를 타본 적이 있는데 실내 곳곳의 다양한 수납공간이 참 매력적이었어요. 여자들은 커피를 자주 마시기 때문에 컵홀더가 필수요소인데 ‘캠리’는 지금까지 타본 차 중 컵홀더가 가장 많았거든요.”  이들의 첫 목적지는 대형마트. 쉐프에게 직접 요리를 배우기로 한 이들은 직접 신선하고 저렴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 마트를 찾았다. 무용전공자인 이들은 체중관리 때문에 평소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지 못하는 남다른 고충이 있었다. 하지만 요리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해 직접 요리를 해서 가까운 지인들과 나눠 먹는 것을 즐긴다고. 미리 적어온 구매 리스트를 보고 꼼꼼하게 재료를 고르는 예나 씨의 장보기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오늘의 요리를 위해 마트에 들러 필요한 재료 구매에 나선 예나, 지연, 지윤 씨 “인스턴트 같은 가공식품은 몰라도 야채나 과일 같은 건 질 좋고 신선한 제품을 고르기 위해 주의해야 할 점이 많아요. 그래서 장을 보기 전에 미리 인터넷을 보고 구매할 제품에 대해 검색해보는 버릇이 있어요. 조금 번거롭기는 해도 질 좋은 제품을 구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더라구요.”베테랑 주부 못지않은 예나 씨의 철저한 준비성 덕분에 일사천리로 장보기를 마쳤다. 20대 미혼의 무용학도라는 말에 내심 걱정을 한 기자의 우려는 말끔히 사라졌다. 넉넉한 공간을 자랑하는 캠리. 예나 씨와 친구들은 캠리에게 ‘넉넉이’라는 귀여운 별명을 지어주었다  Step 2음식은 손맛과 정성필요한 재료들을 구입했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울 차례. 경기도 분당에 자리한 로네펠트 티하우스의 쉐프 정호연(28) 씨가 일일 요리 선생님으로 나섰다. 본격적인 요리에 앞서 주의사항을 전해들은 주인공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어지는 쉐프의 시범, 손동작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고 주시하는 세 여자의 얼굴에 진지함이 묻어났다. “전문가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에요. 요리는 손맛이라는데 역시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네요.” 지윤 씨가 연신 감탄사를 쏟아낸다. 정호연 쉐프의 요리 시범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진지한 그녀들 그녀들이 도전한 첫 번째 요리는 단호박 소스와 자색고구마 샐러드를 곁들인 가리비&영계 에피타이저. 이 메뉴는 로네펠트 티하우스의 대표적인 에피타이저 메뉴이기도 하지만 평소 단호박을 즐겨 먹는다는 주인공들을 배려한 정호연 쉐프의 선택이기도 했다. “훌륭한 쉐프는 예정된 각본과 레시피 없이도 그날의 가장 좋은 재료를 활용해 즉석에서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정 쉐프의 이야기에 세 여자들은 머리를 끄덕이며 감탄 섞인 반응을 보였다. 예나, 지연, 지윤 씨는 먼저 단호박을 저온으로 장시간 조리해 만든 퓨레에 생크림과 우유로 삶은 자색고구마를 얹어 만드는 가리비영계구이에 도전했다. “단호박을 조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긴 것 같다”는 예나 씨의 말에 정 쉐프는 “프랑스식 요리들은 필연적으로 긴 시간의 조리 과정을 거쳐야만 녹는 듯한 식감을 만들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에피타이저 위에 다진 브로콜리를 조심스레 올리는 지연 씨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그럴싸해 보이는 에피타이저가 완성됐다. 그러나 완성의 기쁨도 잠시, 음식의 온기가 식기 전에 식사를 해야만 최상의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서둘러 메인 요리 준비에 들어갔다. 메인 요리는 라구와 버섯 프리카세를 곁들인 한우 채끝 스테이크. 스테이크 재료로는 맛은 등심과 비슷하지만 육질은 오히려 더 부드러운 등뼈허리 채끝살을 택했다. 혹자는 질 좋은 재료 선택만으로도 요리의 반 이상은 성공이라고 하지만 이들에겐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우채끝 스테이크는 향신료와 와인을 사용해 프랑스 요리의 풍미를 잘 살려주는 것이 관건이지만 전문가가 아닌 예나 씨와 친구들에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비교적 간단했던 에피타이저와 달리 결국 메인 요리를 만드는 데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고기 부위 선택에서부터 소스를 만드는 일까지 몇 차례의 재시도 끝에 정 쉐프의 OK 사인이 떨어지자 예나 씨와 친구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번졌다.   Step 3맛있는 식사, 그리고 이야기메인 요리까지 마친 그녀들은 홍차로 만든 크림무스와 홍차를 곁들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산다는 것이 프랑스 사람들의 가치관이라는데, 무용을 하는 저희들에게는 정말 꿈 같은 이야기랍니다. 하지만 이렇게 요리를 배우고 직접 우리가 만든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니 너무 행복해요.” 비록 단 하루의 만찬이지만 예나, 지연, 지윤 씨는 프랑스식 정찬의 여유로움을 한껏 즐겼다. 프랑스식 정찬 풀코스는 10가지가 넘고 먹는 시간만 3시간 이상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요즘은 코스를 묶거나 생략해서 3~8단계로 압축한 레스토랑이 대부분인데, 이 정도의 코스라면 가끔은 그 여유로움에 빠져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경기도 분당에 자리한 로네펠트 티하우스에서 잊지 못할 런치를 즐기는 예나, 지연, 지윤 씨 본인들이 직접 요리한 에피타이저와 스테이크를 먹는 예나 씨와 친구들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서툰 손놀림 때문에 마음을 졸이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쉐프에게 요리를 배우는 과정이 무척이나 재미있고 뿌듯했다며 재잘거린다. 지연 씨는 “직접 설명을 들어가며 요리했기 때문인지 고기를 씹을 때 느껴지는 질감과 육즙에서 흘러나오는 진한 풍미를 더 깊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요리 강습을 마친 뒤 잠깐의 휴식시간. 로네펠트 티하우스 1층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맛있는 수다를 떠는 그녀들 “맛있는 요리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정성은 물론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새삼 그런 과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번에 배운 레시피 잊지 않고 있다가 다음에 꼭 초대해 대접할게요.”맛있는 하루를 보낸 그녀들의 마음속에는 어느새 넉넉한 인심이 배어 있었다. 동행한 기자의 마음도 함께 훈훈해졌다. 식사를 마치고 산책에 나선 주인공들의 발걸음이 더없이 경쾌해 보인다  
정도전이 도담삼봉을 사랑한 이유 2014-02-21
팔경(八景)이란 어떤 지역에서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덟 군데의 경치를 이르는 말이다. 유래는 ‘소상팔경’으로 널리 알려진 중국 후난 성의 샤오샹팔경. 우리나라에서는 동해안의 관동팔경과 충북의 단양팔경을 그에 견줄 팔경으로 꼽곤 한다. 이 중 단양팔경은 단양군에서 12km 안팎에 자리한 기암과 산봉우리들로, 남한강과 그 지류에서 빼어난 경치를 뽐낸다. 그 아름다움은 금강산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알려지며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옥순봉,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사인암이 그를 이루고 있다. 이들 중 도담삼봉(嶋潭三峰)은 단양팔경 중 으뜸인 존재. 그 독특한 위치와 생김새 탓에 2008년에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명승 제44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단양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도담삼봉의 위치는 충북 단양군 매포읍 도담리로 남한강 줄기 한가운데에 선 세 개의 봉우리를 일컫는다. 푸른 강물을 뚫고 우뚝 선 기암괴석은 모두 남쪽을 향해 살짝 기울어져 있는데, 가운데인 주봉은 높이 약 6m의 크기다. 북쪽인 상류 방향으로 옆에 선 봉우리(사진 좌측)는 첩봉 또는 딸봉이라 하고, 하류 쪽에 선 봉우리는 처봉 또는 아들봉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름 때문인지 전설에 따르면 ‘남편이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들이자 심통이 난 아내가 새침하게 돌아앉은 모습’이라고 전해진다. 그 아름다움이 가히 으뜸이라서 이황을 비롯한 김홍도, 김정희 등이 그 모습을 글과 그림으로 남겨 놓기도 했다. 도담삼봉에 관해서는 여러 설화가 내려오는데 조선왕조의 개국공신 정도전에 관한 것이 많다. 그는 도담삼봉을 무척 좋아해 주봉에 정자를 짓고 이따금 찾아와 풍월을 읊었다고 하며, 애착이 워낙 커서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고 지을 정도였다고. 도담삼봉은 강원도 정선군에 자리했던 삼봉산이 홍수로 떠내려온 것이라는 민담도 전해진다. 그래서 정선은 단양에 자기네 산에 대한 세금을 내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다. 이를 두고 소년 시절의 정도전이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했다고. 그 뒤부터 단양은 억울한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장회나루 휴게소의 전망대에서는 구담봉과 충주호를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날이 샐 무렵에 찾을 것을 추천한다. 동쪽에서 서서히 해가 차오르다보면 주봉의 정자가 해를 담아 장관을 연출하기 때문. 토요타 86과 우리는 이 모습을 담기 위해 새벽부터 채비를 마쳤다. 서울에서 도담삼봉까지의 거리는 약 170km. 2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새벽녘이지만 도담삼봉 앞에는 커다란 카메라를 든 인파들이 적지 않다. 자신을 사진작가라고 소개한 한 사내는 매일 일출을 앞둔 시각마다 도담삼봉에 셔터 소리가 끊이질 않는단다. 새벽녘에 찾는다면 물가까지 차를 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새벽녘에 도담삼봉을 찾는다면 강가까지 차를 댈 수 있다 도담삼봉의 어깨 너머로 해가 드리우고 나면 곧바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86과 함께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수많은 사진가들의 셔터 소리가 들릴 때쯤, 우리도 함께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되는 상황. 하지만 일출 시간이 지나도 해는 떠오르지 않았다. 시계의 고장을 의심했지만 카메라를 든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그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안개 때문. 이날 단양은 오전 9시가 지나도록 뿌연 안개로 도시 전체가 침침했다.  하지만 안개가 선사하는 고즈넉한 분위기로 인해 오히려 더 큰 매력을 찾을 수 있었다. 버섯처럼 솟은 도담삼봉, 그를 휘감은 푸른 강물과 말 없는 안개는 꿈결 속 한 장면처럼 잘 어울렸다. 찰랑거리는 물소리도, 새의 지저귐도, 솔솔 부는 바람도 없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 가만히 세 개의 돌 봉우리를 바라보니 정도전의 도담삼봉을 향한 애착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감상에 젖은 후배 기자에게 침묵을 깨고 농담을 건넸다. “여기 그림 같지 않아요?” 물론 그 중 일부는 진담이었다. 도담삼봉의 모습은 그야말로 그림 같았기에. 단양의 야경을 책임지는 고수대교 앞에서 한 컷!  ROAD굽이치는 36번 국도와 양방산전망대36번 국도는 전국 25개 동서노선 중 하나로 충남 보령시 청라면에서 경북 울진 근남면에 이른다. 이 중 단양 시내에서 시작해 충주시 수산면과의 경계까지 이어지는 장회재 구간은 오른편에 충주호를 두고 달리는 맛이 최고다. 특히 등산안내소인 얼음골탐방지원센터부터 충주호 유람선을 탈 수 있는 장회나루까지는 구불구불한 코너가 4km 넘게 이어져 86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코스. 통행량이 그리 많지 않고 도로 폭이 넓어 시야나 안전에 대한 부담도 적다. 36번 국도 장회재 구간은 눈앞에 구담봉을, 옆구리에 충주호를 끼고 달리는 맛이 일품이다 윈드실드 너머 펼쳐지는 풍경은 레이싱 게임 속에서나 감상할 수 있던 절경을 뽐내는데, 그 정체는 바로 단양팔경 중 하나인 구담봉이다. 말목산 끄트머리의 구담봉은 바위가 거북 무늬로 되어 있고 절벽의 돌이 거북처럼 생겨 붙은 이름. 그 장대한 크기와 아름다움은 7,500rpm으로 회전하며 정신없이 폭발하던 수평대향 엔진을 아이들 상태로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장회나루 휴게소에 주차하고 충주호 유람선선착장을 찾으면 구담봉의 모습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오므로 절대 그냥 지나치지 말자. 양방산 정상에 오르면 단양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단양 시내의 야경을 책임지는 고수대교를 지나 오른쪽의 작은 길로 들어서면 양방산에 오를 수 있는 좁은 도로가 나온다. 이곳을 따라 약 3km 거리를 오르면 양방산 전망대가 자리한다. 경사가 심하고 길이 좁아 86은 1단 기어에 고정한 채 올라야 할 정도였고, 상태가 좋지 않은 차라면 냉각수 온도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눈이 녹지 않아 뒷바퀴굴림이라면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이 따름에도 이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여기서 단양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 양방산전망대는 해발 664m로 차를 타고 오르는 높이로는 제법이다. 전망대 앞에 패러글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활공장이 마련되어 있는 데서 이곳의 넓게 펼쳐지는 시야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양방산 전망대는 차를 타고 오를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울산바위가 외설악에 눌러앉은 사연 2014-02-26
울산바위. 강원도 속초시 외설악 북서쪽에 자리한 이곳은 여섯 개의 봉우리로 이뤄진 바위산으로, 거대한 크기와 해발 873m에 이르는 높이는 동양의 돌산 중 으뜸이라고 알려져 있다. 기이한 형태가 울타리를 닮아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천둥이 치면 하늘이 울린다고 해서 천후(天吼)로 불리기도 한다고.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당시 울산에서 지내던 울산바위는 이 소식을 듣고 자신감 가득한 눈빛과 함께 금강산으로 향했다. 하지만 거대한 덩치와 몸무게는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고, 결국 울산바위는 약속했던 시간 내에 금강산에 다다르지 못했다. 금강산을 대표하는 봉우리가 되겠다는 다짐과 함께 당당하게 고향을 떠났는데, 다시 귀향할 생각을 하니 영 체면이 서지 않았다. 이미 약속시간이 지났으니 더 이상 금강산으로 향할 필요도 없었다. 결국 울산바위는 걸음을 멈춘 채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로 결심했다. 그날 밤이 깊어갔고 다음 날 해가 떠올랐다. 울산바위가 잠을 청했던 곳은 다름 아닌 설악산. 우연찮게 찾은 이곳은 울산바위의 눈에 금강산에 버금가는 절경으로 비춰졌다. 그곳은 정확히 지금의 외설악 북쪽 지역이었다. 이때부터 울산바위는 여기에 엉덩이를 꾹 붙이기로 다짐했다. 울산바위가 눌러앉자 설악산은 이전보다 더욱 멋진 모습을 뽐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울산바위를 만나기로 약속한 날, 새벽 3시의 서울. 이 시각 평일 도심은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죽은 도시처럼 너무나도 고요했다. 짧은 크랭킹과 함께 86의 복서 엔진을 깨우자 정적도 함께 깨지고야 말았다. 잠이 덜 깬 탓인지 울산바위를 감상한다는 벅찬 기대보다는 그저 차분하고 감상적이기만 하다. 수평대향 엔진의 실린더 내벽에서 가솔린이 폭발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고, 터덜거리는 배기음은 꿈결처럼 보드랍게 느껴진다. 금세 서울을 빠져나와 쭉 뻗은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타고 빨려들듯 속초로 향했다. 도착에는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고, 동이 트기까지는 1시간 정도가 남았다. 남은 시간 동안 울산바위가 한눈에 들어올 만한 곳을 뒤졌고, 마침내 적절한 곳을 찾아 토요타 86의 주차 브레이크를 힘껏 당겼다. 새벽부터 발걸음을 재촉한 보람이 헛되지 않게, 울산바위가 장엄한 자태를 남김없이 뽐냈다 드디어 오전 7시. 차디찬 공기를 뚫고 샛노란 해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수평선 너머에서부터 동해를 서서히 비추더니 이윽고 6개의 봉우리와 설악산을 노란 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목구멍에서 입김과 함께 ‘하아’ 하는 탄성이 절로 튀어나온다. 대한민국에 이렇게 멋진 바위산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따름이다. 오렌지색 86도 그 경치에 감탄했는지 이리저리 포즈를 취해보였다. 장관에 취한 사진기자는 순간을 놓칠세라 수십 번 셔터를 눌러댔고 “새벽부터 발걸음을 재촉한 보람이 있다”며 결과물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했다. 금강산에 다다르지 못했던 울산바위가 이곳에 자리를 틀 때 처음 느꼈을 그 기분, 분명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과 같았으리라.  ROAD울산바위를 끼고 달리는 미시령 와인딩2007년 5월 미시령터널의 개통으로 이제는 미시령 옛길로 불리는 미시령 와인딩. 평범한 운전자라면 미시령터널을 두고 왜 험한 길을 찾느냐고 묻겠지만 86을 사랑하는 매니아라면 무조건 미시령 옛길을 이용할 것을 권한다. 와인딩은 정상의 미시령 휴게소를 기점으로 인제 방면과 속초 방면으로 나뉜다. 인제 쪽 도로는 편도 3.2km로 거리가 짧고 경사가 필요 이상으로 심해 오르막에선 출력에 대한 스트레스가, 내리막에서는 브레이크와 타이어에 큰 부담이 있기에 그리 권하지 않는다. 하지만 속초 방면으로는 편도 6.4km의 적당한 거리, 적절한 경사, 코너 각을 품고 있어 업힐과 다운힐 모두 무척이나 재미있는 코스. 아울러 대부분의 차들이 미시령 옛길 대신 미시령터널을 이용하기에 통행량이 극히 적고 노면 상태도 비교적 좋은 편이다. 미시령 휴게소로부터 속초 방면으로 내달리는 6.4km의 와인딩은 적절히 굽은 수십 개의 코너가 커다란 재미를 선사한다. 윈드실드 너머 펼쳐지는 설악의 절경은 덤! 무엇보다도 미시령 와인딩을 달릴 때는 울산바위와 설악산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미시령터널 속에 가득 찬 매연과 달리 설악산이 품은 피톤치드를 마음껏 들이킬 수 있고 오픈 모델이라면 계곡을 타고 튕겨지는 배기음을 감상하기에도 최고의 환경이다. 주의할 점은 일부 블라인드 코너와 요즘 같을 때 도로에 쌓인 낙엽들, 그리고 겨울에는 응달진 곳의 빙판이다. 아울러 미시령은 내륙에 비해 겨울이 빨리 찾아오기 때문에 달리기에 앞서 노면 온도를 면밀히 체크할 필요가 있다.  늘 강조하지만 차는 목적에 맞게 타야 한다. 구불거리는 도로를 즐기기 위해 탄생한 86의 운전대를 잡은 입장에서 산길을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수평대향 엔진이 선사하는 낮은 무게중심과 53:47의 무게배분, 7,500rpm까지 회전하는 엔진과 짧은 스트로크의 수동변속기는 운전재미를 부추기며 미시령을 제압했다. 언더스티어를 모르는 코너링은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바라보면 즉시 그곳으로 몸을 틀었다. 헤어핀에서 액셀 페달을 서서히 누르면 아름답고 점진적인 리어 슬라이드와 함께 코너 안쪽을 매콤하게 찔렀다. 감동적인 움직임은 폭 205mm의 타이어 그립 한계를 무시한 느낌마저 든다. 스포츠드라이빙을 철저히 고려한 페달 배치는 그 어떤 스포츠카보다 쉬운 힐앤토를 가능하게 만들고 기어노브와 스티어링 휠 사이의 거리는 한 뼘이 채 되지 않았다. 토요타 엔지니어들은 우리가 86을 이렇게 타기를 원하고 이 차를 개발했을 것이다. 그 어느 아침, 미시령 와인딩의 악동은 단연코 오렌지색 86이었다. 
그 여자의 프로포즈 - 토요타 프리우스 2013-12-27
‘제대로 된 선물을 해주고 싶어 고민하던 찰나, 토요타와 카라이프가 소원 성취 이벤트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좋은 기회인 것 같아 신청해봅니다. 항상 퍼주기만 하는 남자친구와는 달리 저는 마음에도 없는 말로 그 사람에게 상처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화를 내기보다 저를 다독여주는 모습을 보며 이 사람이라면 나를 평생 웃게 해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어요. 여자로서 프러포즈를 한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사랑의 힘으로 용기를 내봅니다. 차를 좋아하는 남자친구에게 토요타를 탈 수 있는 기회와 함께 깜짝 프러포즈를 한다면 100%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토요일은 토요타와 함께! 시즌2’의 첫 주인공은 26세의 여성, 오소원 씨다. 앞부분만 읽고 당연히 남자가 보낸 사연이겠거니 하며 프러포즈 받을 여자에 빙의해 얼굴이 발그레해졌던 것도 잠시, 남자친구를 위해 프러포즈할 거란 그녀의 당당함에 머릿속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여자의 프러포즈라……. 이 사연, 왠지 끌리는 걸?   프러포즈 키 프로젝트‘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 기자는 겨울동화의 주옥같은 명대사를 바탕으로 오소원 씨를 위한 프러포즈의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드라마처럼 돈으로 마음을 사려는 게 아니라 남자친구가 평소 차를 좋아했다는 점을 이용해 토요타를 선물하고 주말 내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름하야 ‘프러포즈 키’ 프로젝트! 남자가 여자에게 바치는 프러포즈 링도 아름답지만 여자가 바치는 차 키도 남자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매력적일 것이다. 비록 차를 구입해주는 건 아니지만 차키를 건네는 순간만큼은 ‘나와 결혼하면 이 차 정도는 사 줄게’라는 환상에 취해 프러포즈를 승낙하게끔 하는 것이 목표다. 네이비 컬러의 프리우스에 핫핑크 리본을 달아 프러포즈 카의 귀여움을 더했다 공개적으로 하는 프러포즈이니 무조건 오케이 사인을 받아내겠다는 그녀의 강한 의지에 진행팀도 바짝 긴장해 ‘시라노 연애 조작단’ 못지않은 준비 태세를 갖췄다. 제일 먼저 프러포즈 카를 선택하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86과 프리우스를 고민하다가 마지막에 결국 프리우스를 택했다. 스포츠카를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마음에 걸렸지만 연비가 좋기로 소문난 하이브리드카인 프리우스처럼 알뜰살뜰 잘 살아보자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대신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네이비 컬러의 모델을 선택해 아쉬움을 달랬다. 거기에 웨딩카에서 많이 사용하는 생화나 풍선 장식 대신 핫핑크 컬러의 리본만으로 프러포즈 카의 느낌을 살렸다. ‘웨딩카’스러운 모습에 남자친구가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나 버릴까 싶어 그런 게 아니라, 귀여운 차에 리본을 달아 ‘선물’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였다. 호텔 허니문 패키지로 제공되는 펄풍선과 장미꽃잎 장식으로 프러포즈 데이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프러포즈 장소는 파주에 자리한 벽초지 수목원. 산책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연애 초기에 자주 찾았던 수목원인데, 예전부터 오소원 씨가 이곳에 자리한 유럽 스타일의 조각 공원을 프러포즈 장소로 미리 점찍어뒀었다. “항상 생각만 했지 실제로 이곳에서 프러포즈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막상 거사를 앞두고 있으니 기분이 묘한 걸요?” 프러포즈가 성공하면 두 사람은 일산 엠블호텔에서 하루를 보낼 예정이다. 결혼을 약속한 밤에 무엇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겠냐만 행복한 기분에 더욱 취할 수 있도록 호텔 측에 허니문 패키지를 부탁했다. 오소원 씨는 평소 같았으면 오글거려 상상도 못했을 일이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한껏 유치해지고 싶다며 풍선을 띄우고, 침대 위에 장미꽃잎 장식을 하는 등 들뜬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단계가 남았다. 무뚝뚝한 성격 탓에 그동안 말로는 차마 하지 못했던 진솔한 마음을 카드에 담아 전하기로 했는데, 한 글자 한 글자 적을 때마다 고민을 거듭하는 그녀의 신중함에 남자친구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모든 준비는 끝났다. 프러포즈 카부터 호텔, 데이트 코스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 이제 남자친구는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듯 그냥 ‘OK’라고 답하기만 하면 된다. 남자친구에게 솔직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카드를 쓰기로 한 사연의 주인공. 어떤 내용으로 써야 프러포즈에 성공할까?  프러포즈 장소에 다다르자 미리 약속장소에 나와 있는 남자친구 백승진 씨가 멀리 보였다.  눈치라도 챈 건지 멀끔하게 차려입은 옷차림에 상기된 얼굴이 눈에 띄었다. 이윽고 그의 앞에 거대한 리본 장식을 한 프리우스가 멈췄고, 차문이 열리면서 그의 연인 오소원 씨가 내렸다.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백승진 씨. 꽃다발을 든 여자친구의 모습에 이내 함박웃음이 터지더니, ‘어디서 난 차냐,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냐’며 질문 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그녀는 웃음기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프러포즈를 시작했다. 장황한 말 대신 미리 적어둔 카드와 차 키를 전하며 짧게 건넨 한 마디. 과연 그의 마음에 얼마나 큰 소용돌이를 일으킬까?“오빠를 위해 이 차를 준비했어. 나랑 결혼해줄래?”  평소 애교 없고 무뚝뚝한 성격의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위해 큰 용기를 냈고, 백승진 씨는 그런 여자친구의 모습을 잘 알기에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그렇게 프러포즈는 대성공을 거뒀고, 두 사람에게 이 날은 토요타와 함께 한 최고의 로맨틱한 토요일이 되었다. 직접 쓴 카드와 함께 반지 대신 프러포즈 키를 선물한 여자친구 한편 감동적인 포옹이 끝나자마자 백승진 씨는 바로 차에 눈길을 돌렸다. “1박2일 동안 프리우스를 타고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여행을 즐길 수 있다니 무척 설레요.” 한 손에는 프러포즈 키를, 다른 한 손에는 오소원 씨의 손을 꼭 쥔 채 그가 말했다. 이제 프러포즈도 성공했으니 프리우스를 타고 마음껏 여행을 즐길 차례. 평소 사람 많고 복잡한 곳은 질색이라는 이 커플은 파주에 머물며 둘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산책을 좋아하는 오소원 씨와 드라이브를 즐기는 백승진 씨 모두 만족스러운 여행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다.   로맨틱한 주말 데이트먼저 둘만의 추억이 담긴 벽초지 수목원을 거닐며 아직 끝나지 않은 프러포즈의 여운을 이어가기로 했다. 두 사람이 데이트를 즐긴 이곳은 봄과 가을에는 화려함을, 여름에는 시원한 나무그늘과 풀 냄새를, 겨울에는 살짝 언 얼음연못의 운치를 느낄 수 있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색다른 매력을 선사하는 곳이다. 프러포즈를 위해 찾은 11월 중순에는 알록달록한 단풍과 하늘거리는 갈대가 어우러져 멋스러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손을 꼭 잡고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걸으니 마치 영화 주인공이 된 것 같다는 오소원 씨는 연애 초부터 오던 곳에서 프러포즈하게 돼 앞으로 수목원을 더 자주 찾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즐기는 식사. 프러포즈에 성공한 후라 더욱 다정한 모습이다 산책을 마친 후에는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자유로운 데이트를 즐겼는데, 같은 파주에 자리한 곳이지만 두 사람 모두 헤이리 예술마을은 처음이란다. “헤이리 예술마을은 유명세 때문에 사람이 많을까봐 걱정했는데 막상 오니 마을 전체가 여유롭고 서울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도 이렇게 이국적인 곳이 있었나 싶어요. 멋진 건축물과 자연이 어우러진 풍경을 보니 저희 마음도 편안해지네요. 결혼해서 이렇게 한적한 곳에 살아도 좋을 것 같은데요?” 11월 중순의 벽초지 수목원은 알록달록 물든 단풍과 하늘거리는 갈대가 어우러져 영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파주에서의 로맨틱한 데이트를 마친 두 사람은 해가 저물자 일산에 자리한 엠블 호텔로 향했다.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10km 거리인 이 호텔은 객실 창 너머로 킨텍스와 일산 호수공원을 내려다볼 수 있다. 미리 준비된 풍선과 장미 장식에 한 번 더 감동을 받은 남자친구와 여느 때보다 긴 하루를 보낸 오소원 씨는 와인과 함께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지었다.  “사실 네가 이런 이벤트를 준비할줄 몰랐어. 남자인 내가 먼저 했어야 하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덕분에 멋진 데이트와 맛있는 식사, 그리고 와인까지. 너무 행복해. 앞으로는 내가 매일매일 오늘처럼 행복하게 해줄게. 사랑해.” “나도 프러포즈 준비하면서 오빠에 대한 내 마음이 이렇게 컸구나 하고 다시 한번 느꼈어. 많이 떨렸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아하는 오빠의 모습을 보니까 신청하길 잘한 거 같아. 우리 앞으로 잘 살자. 나도 사랑해.”  TOYOTA PRIUS보디형식, 승차정원  5도어 해치백, 5명길이×너비×높이  4480×1750×1505mm휠베이스 2700mm트레드 앞/뒤 1525/1520mm무게 1395kg서스펜션 앞/뒤 스트럿/토션 빔스티어링 랙 앤 피니언(전동 파워)브레이크 앞/뒤 V디스크/디스크타이어 195/65 R15엔진형식 직렬 4기통 밸브구성 DOHC 16밸브배기량 1798cc엔진 최고출력 99마력/5200rpm모터 최고출력 82마력/4000rpm시스템 최고출력 136마력구동계 배치 앞 엔진 앞바퀴굴림변속기 형식 CVT연비 21.0km/L(도심 21.7, 고속 20.1)에너지소비효율 1등급CO₂ 배출량 77g/km 값 3,130만~4,120만원 
중국에서 오래된 한국차 운행하기 2 2013-12-10
사람보다 차가 우선인 중국 교통문화알다시피 중국의 교통문화는 이제 막 발전하는 단계다. 운전이 거친 것은 당연하고 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우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만도 하루 평균 200여 건이 넘는다.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면 그날은 교통두절이라고 봐야 한다. 차들로 가득 찬 이우 도로의 모습. 차가 많고 교통문화마저 후진적이라 이우에서만 하루 평균 200여 건의 교통사고가 일어난다 평소 만만디로 유명한 중국인들도 운전대만 잡으면 야수로 변한다. 앞차가 조금이라도 늦게 가면 경적을 울려대고 도로가 막히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인도로 달린다. 없는 길도 만들어 가는 중국인들이다. 고속도로에서도 길이 막히면 거침없이 노견으로 달린다. 역주행뿐 아니라 인도로 달리는 차도 흔히 볼 수 있다 끼어들기를 하면서도 방향지시등을 거의 켜지 않는다.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는데도 모험을 하려는 듯 마구잡이로 들어온다. 두 개 차선을 겹쳐 달리면서 다른 차의 진행을 방해하는 경우도 많은데, 운전자는 전혀 개의치 않고 태연하게 운전한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있어도 이를 무시하고 달린다. 중국에서는 사람보다 차가 우선이다.  한 픽업트럭이 과감하게 1차로로 역주행을 하자 놀란 시로코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피하고 있다. 중국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지난번에 한 외국인이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차가 서지 않자 자동차의 보닛을 양손으로 내리치는 모습을 보았다. 화가 잔뜩 나 있었는데 왜 사람이 건너가고 있는데 차로 밀고 들어오느냐는 항의의 표시였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중국에 처음 온 외국인임에 틀림없다. 요즘 이우 도로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위험천만한 모습. 마치 유행처럼 선루프 바깥으로 얼굴을 내미는 아이들이 많은데, 부모들의 안전불감증이 심각하다 필자는 매년 우리 회사 직원 중에서 우수사원을 뽑아 매년 한 명씩 한국으로 여행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한국으로 떠나기 전 한 남자 직원이 필자에게 “한국에 가면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차들이 서는지 안 서는지 확인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 직원은 “모든 차들이 거짓말처럼 섰다”며 놀라워했다. 횡단보도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걸어 들어갔는데, 오던 차들이 모두 정지를 하고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더라는 것이다. 우리로선 당연한 일이지만 차가 우선인 중국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으리라. 긴장된 모습으로 검문을 받고 있는 중국의 스쿠터 운전자. 중국에서는 모터사이클 검문이 대단히 엄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스갯소리로 “중국에서 운전을 하려면 눈이 4개는 있어야 한다”거나 “중국에서의 운전은 완전히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모험”이라들 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 차를 타면서는 아직 가벼운 접촉사고도 낸 적이 없다. 한국에서 역시 한 번도 교통사고는 낸 적이 없는 녹색면허증 소지자였다. 그러나 이 차를 몰기 전에는 두 건의 교통사고를 경험했다.  중국에서는 오토바이를 다양하게 사용한다  중국에서 경험한 아찔한 교통사고2002년 중국에 정착하고서도 이 험한 환경에서 한동안 무사고 운전기록을 이어갔는데, 얼마 뒤 마침내 신화(?)가 깨졌다. 때는 바야흐로 2004년 설 연휴를 앞둔 무렵. 한국으로 납품할 물건을 컨테이너에 싣지 못해 칭다오로 직접 가지고 가서 선적하려고 달려가던 중이었다. 이우에서 밤새도록 운전을 해서 그 다음 날 아침 소금 생산지로 유명한 장수성 옌청(盐城)에 도착했다.  부부처럼 보이는 이들의 관계는 운전사와 승객이다. 일명 오토바이택시다 그런데 안개가 짙게 깔려 5m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금은 고속도로에 안개가 짙게 끼면 진입을 시키지 않지만 당시에는 그런 제한이 없었다. 주행선으로 거의 기어가다시피 달리고 있는데 추월선으로 시속 80km가 넘는 속도로 차들이 지나갔다. 간담이 서늘했다. “중국인들은 눈이 참 좋은 모양이다. 이런 안개 속에서 저렇게 빨리 달리 수 있으니 말이다.” 옆에 탄 직원에게 이 말을 한 뒤, 필자는 기억을 잃고 말았다.  경찰차나 군용차는 흰색 바탕에 검정색 글씨를 쓴 번호판을 달아 멀리서도 구분된다 한참을 잔 것 같은데 발목이 아파서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하얗게 보이는 병원 천장 아래서 조선족 직원과 간호사가 내 발에 엑스레이 기계를 갖다 대고 있었다. 직원 말로는 내가 전방에 고장이 나서 서 있는 고속버스를 발견하고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그 순간 고속으로 뒤따라오던 다른 고속버스가 우리 차를 받았고, 이어 달려오던 다른 고속버스가 한 번 더 추돌해서 4중 추돌사고가 났다고 했다. 사고의 충격으로 내가 운전대와 의자 사이에 끼어 1시간여 동안 꼼짝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외국인 차량은 검정색 바탕에 흰색 글씨를 사용한 번호판을 쓴다. 사진은 중국과 홍콩 번호판을 모두 단 모습 이 사고로 필자는 얼굴과 팔, 다리의 일부가 찢어져 40바늘 이상을 꿰맸고 발의 뼈가 다섯 조각으로 갈라져 수술을 받아야 했다. 당시 나를 치료했던 중국인 의사의 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선생이 이 병원 개원 이래 처음 입원한 외국인이어서 병원장 이하 모든 의료진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당시 현대자동차가 그곳에 엔진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어서 한국인에 대해 특별 대우를 해주는 느낌이었다.  교육용 차량, 대형버스, 대형트럭 등 상용차의 번호판은 노란색 바탕에 검정글씨다. 사진은 원저우와 우루무치의 4,230km를 달리는 침대버스 이후 중국에서 한 번 더 사고를 경험했다. 신호를 위반하고 들어온 차에 옆구리를 받힌 것. 다행히도 큰 사고가 아니어서 심한 부상은 입지 않았다. 2층침대가 있는 실내에서는 신발을 벗어 비닐봉지에 담아 보관해야 한다. 안전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일고 있지만 4,000여km의 거리를 밤낮으로 달려 갈 수 있는 대안은 많지 않다  중국에서 자가용을 굴리려면SM520의 차량등록세는 1년에 1,200위안(약 21만원)이다. 보험료는 2013년 기준으로 2,650위안(약 46만원)을 지불했는데 앞에서 말한 대로 자차 보상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우는 공사를 하는 곳이 많아서 먼지가 많기 때문에 비교적 세차를 자주 하는 편이다. 며칠만 세워 놓아도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는다.  살수차가 다니기는 하지만 효과가 그다지 없다 SM520의 색상이 먼지가 묻어도 지저분한 느낌이 들지 않는 컬러이지만 가능하면 항상 깨끗하다는 인상을 주려고 일주일마다 세차를 한다. 세차비용은 20위안(약 3,500원)이다. 손세차인데 내부까지 닦아주고 진공청소기까지 동원해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해준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가격이지만 지난해는 10위안(약 1,750원)이었는데 1년 사이에 배로 오를 것이다. 손세차 비용이 20위안(약 3,500원)으로 저렴한 편. 1년 사이에 10위안(약 1,750원)에서 배로 올랐지만 한국에 비하면 여전히 싸다 중국의 차량 번호판은 파란색 바탕에 흰 글자로 한자와 영어를 같이 표기한다. 예를 들어 ‘浙A 51193’이라 표기되어 있다면 절강성 항저우에 등록된 차라는 뜻이다. 맨 앞의 한자는 해당 성(省)이고 다음 영문은 도시 그리고 아라비아 숫자는 차량번호다. 전국이 동일하게 같은 형식을 사용하고 군용과 경찰 차량은 흰색 바탕에 검정과 빨간 글자, 버스와 대형트럭 등 7인 이상이 탑승하는 차량과 연수용 차량에는 노란 바탕에 검정 글자를 사용한다.  일반 자동차의 번호판은 파란색 바탕에 흰색 글씨를 사용한다 필자의 차는 검정색 바탕에 흰색 글자로 된 번호판을 달고 있다. 검정색 번호판은 외국인이 등록한 차다. 지금은 이 외국인 번호판 제도가 폐지되어 예전에 이 번호판을 단 차들이 아주 가끔 눈에 띌 뿐이다. 앞서 말했지만 이우에는 검정색 번호판의 차가 필자의 SM520밖에 없다. SM520은 지금은 제도가 없어진 외국인 차량용 번호판을 그대로 달고 있어 종종 특수기관 차로 오해받기도 한다 아직까지 차가 말썽을 부린 일이 없지만 만약 차에 문제가 생긴다면 필자가 이용하는 정비업소의 쉬(徐: 우리의 서씨) 사장을 호출하면 된다. 쉬 사장은 장소에 관계없이 24시간 언제든지 출동한다. 정비경력 15년의 베테랑인 그는 전에 마쓰다에서 5년간 근무했다고 한다.  정비업소의 쉬 사장 그런데 일반도로에서 고장이 나면 문제가 없는데 고속도로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일전에 우리 사무실에서 가지고 있던 빵차(한국의 다마스 같은 소형 상용차)를 가지고 타이조우(台州)에 간 적이 있다. 이우에서 타이조우까지는 약 3시간 반이 소요된다. 빵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것이 위험해서 장거리를 갈 때에는 주로 일반 승용차를 대절해서 가지만 그때는 비용을 좀 아낄 요량으로 우리 회사의 빵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빵처럼 생겼다고 해서 빵차라고 부르는 소형 승합차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2시간 정도를 갔는데 엔진오일 경고등이 들어오고 머플러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고속도로에서 달리 손쓸 방법이 없어 고속도로에 설치되어 있는 응급전화로 연락을 했더니 견인차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기다린 지 30여 분 후에 견인차가 와서 우리 차를 끌고 가는데 큰 도시의 정비소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산속에 있는 허름한 정비업소로 끌어다주었다. 고속도로에서 고장이 발생한 차량은 고속도로 관리업체와 계약되어 있는 정비업소로만 갈 수 있단다. 그런데 밖을 둘러보니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첩첩산중에 정비도구라고는 리프트 하나 달랑 있는 정비업소여서 제대로 수리가 될지 걱정이 앞섰다.  중국의 톨게이트 엔진을 뜯어서 한참을 정비하고 다시 조립했는데 걱정했던 대로 엔진이 작동되지 않았다. 다시 엔진을 분해하고 조립하기를 세 번이나 더 한 후 밤 10시가 되어서야 수리가 끝났다. 품질이 떨어지는 중국의 엔진오일이 엔진 안에 떡처럼 눌러 붙어 있어 오일이 순환을 하지 못하도록 관을 막은 것이 고장의 원인이었다. 정비업소 사장은 수리비로 3,000위안(약 53만원)을 청구했다. 엔진을 열어서 엔진오일 찌꺼기를 털어낸 것밖에 없는데 3,000위안이라니!  정말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돈이 그 정도가 안 된다고 하니 돈을 구해와서 차를 찾아 가라며 막무가내였다. 인상도 험하고 체격도 엄청 큰 그들과 입씨름을 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인적도 없는 첩첩산중의 깜깜한 한밤중에, 더 달라고 위협하지 않는 것이 다행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겨우 사정을 해서 1,500위안(약 27만원)에 합의를 하고 수리비를 지불했다.   비용을 좀 아끼려고 빵차를 타고 가다가 몇 배나 더 많은 돈을 지불한 셈이다. 사고로 인해 그날 예정했던 일마저 처리하지 못해 인근 호텔에서 자야 했으니 이래저래 손해가 막심했다. 정말이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하루였다. 고속도로에서 차에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가장 가까운 톨게이트로 재빨리 빠져나오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앞으로 이 차를 얼마나 더 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능한 한 오랫동안 보유하려고 한다. 이 상태로 타고 다닌다면 10년 정도는 충분히 더 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때가 되면 아마 필자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사업에서 은퇴하기 전 중국을 자동차로 한 바퀴 돌아볼 작정인데 그때 이 차를 이용하는 것은 아마도 무리일까?  양인환 중국통신원 1957년 8월 서울에서 태어나 91년까지 금융권에서 일하다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자동차와 함께 하는 삶에 새롭게 도전했다. 91년 국산 자동차로 미국 48개 주를 일주해 기네스북에 등재된 것을 시작으로, 92년 아시아 록스타로 호주를 일주했다. 93년 호주 웨스턴 랠리스쿨을 이수한 뒤 호주 웨스턴 랠리 침피언십, 홍콩-북경 랠리(94년), 태국 랠리(94년) 등에서 전문 드라이버로 활동했다. 93년부터 96년까지 본지의 객원기자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참가한 랠리를 비롯해 세계의 다양한 자동차 경주와 시승기를 소개했다. 저서로 ‘대머리 돈키호테’, ‘차를 알고 문화를 세우는 여유로운 운전’이 있다.11년째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양인환 통신원은 앞으로 중국을 비롯한 북미, 남미, 아시아, 유럽 등의 재미있는 여행기를 소개할 계획이다. 머지않아 미국과 호주에 이어 중국과 남미대륙을 일주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글·사진 양인환 중국통신원
중국에서 오래된 한국차 운행하기 1 2013-12-01
올해 초 우연한 기회에 10여 년 전 생산된 삼성 SM520을 손에 넣게 되었다. 오래된 차라 6개월에 한 번씩 차량검사를 해야 하고 부품을 구하는 일도 만만치 않지만 상태가 좋아 가능하다면 오래 탈 생각이다. 필자가 거주하는 이우에는 단 한 대밖에 없는 차라 눈에 확 띄며, 외국인 차량용 검정색 번호판을 단 덕분에 특수기관 차로 오해받는 일도 종종 있다.  필자가 올해 초부터 중국에서 타고 있는 차는 삼성자동차 시절 제작된 SM520이다. 1998년 삼성이 자동차 생산을 시작하며 내놓은 원년모델로, 2002년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긴 필자의 지인(김용옥 사장)이 칭다오로 가지고 온 차다. 이우에 단 한 대만 있는 삼성 SM520. 오래된 모델이지만 필자가 좋아하는 모델이자 희소성도 있다. 중국인들은 삼성에서 만든 차라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당시에는 외국인이 중국 현지에 투자하면 해외에서 차를 2대 가지고 올 수 있었는데, 업무용으로 삼성 SM520을, 화물용으로 픽업트럭을 가지고 와서 사용했다. SM520은 삼성에서 자동차 사업을 시작하며 야심차게 내놓은 첫 모델이다. 닛산의 세피로(수출명 맥시마)를 기본으로 2,000cc 엔진을 얹었으며, 단순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많은 이의 관심을 받았다.  출고된 이후 성능과 품질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더욱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라던 10여 년 전 광고 문구가 새롭다. 당시 중고차 시장에서 매물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모델이다. 그런데 이 차가 올해 초 우연히 필자에게 넘어오게 됐다. 주차공간이 부족한 탓에 무질서하게 주차한 모습을 흔히 본다  “삼성이 자동차도 만들어요?”김 사장이 10여 년을 칭다오에서 사용했던 이 차는 지난해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중국 내의 한국으로 통하는 칭다오에는 30여 만 명의 한국인들이 상주해 있다. 이곳에는 한국차들이 많기 때문에 부품조달이 어렵지 않지만 SM520은 그 흔한 고장 한번 나지 않아서 10년 넘게 사용하는 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고. 특이한 모양의 삼륜차 그런데 2012년 칭다오가 중국에서 최초로 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면서 운행하는 데 곤란을 겪기 시작했다. 생산된 지 10년이 넘는 차는 상태와 관계없이 도시 환경보호를 위해 출입을 제한하는 지역이 많아진 것이다. 갈 수 없는 곳이 많으니 기동성이 떨어지고, 차는 멀쩡한데 자동차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친 것. 거래처에 가야 하는데 보호구역이라 들어갈 수 없으면 다른 차로 갈아타고 가야 하는 수밖에…. 중국 도로에서는 번호판 없이 돌아다니는 차를 의외로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이 차가 필자에게 넘어왔다. 저장성 이우는 아직까지 환경보호 문제가 그 수준으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아 10년 넘은 차로 전지역을 다니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98년형 SM520이 지금까지 달린 누적 거리는 9만9,000km로, 연식에 비해 운행거리는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다. 그뿐 아니라 차의 전반적인 상태도 양호하다. 주행거리 5,000km마다 엔진오일을 갈아주고 정기적으로 점검을 한 덕분에 현재 별다른 문제가 없다. 현행 SM5보다 두 세대 전의 구모델이지만 필자가 중국으로 건너온 10여 년 전 한국에서 좋은 느낌을 가졌던 차를 지금 중국에서 탈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울 따름이다. 필자가 타는 삼성 SM520. 삼성이 자동차 생산을 시작할 때 내놓은 98년형 모델로, 2002년 중국으로 건너와 지금껏 별 탈 없이 운행되고 있다 엔진은 2,000cc라 주행하는 데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없다. 주로 출•퇴근에 이용하고 가끔 공장을 방문할 때 이외에는 장거리를 뛰지 않으므로 필자가 인수한 후에도 주행거리가 그다지 늘지 않고 있다. 주유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하는데 이곳의 휘발유 가격은 옥탄가 93의 경우 L당 7.42위안(약 1,300원)이다. 연비는 정확히 계산해보지 않았지만 대략 L당 7km여서 만족스러운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주로 시내에서 주행하고 매일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것을 감안하면 그 정도는 넘어갈 만하다.  10여 년 전에 좋은 평을 받았던 승차감이나 주행능력 모두 만족스럽다. 오래된 모델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차 중 하나이고 이우에는 단 하나뿐인 희소가치 때문에 뿌듯함도 느낀다. 그리고 한국인이 대한민국에서 만든 차를 중국에서 타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다(물론 SM520을 완전한 한국차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곳의 운전자들 역시 이우에 나타난 새로운 차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창문을 내리고 “어는 회사에서 만든 차냐”고 묻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지난번에는 교통경찰관이 신기한 차를 봤다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생전 처음 보는 자동차이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삼성에서 만든 차”라고 하면 그들은 대부분 뜻밖이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삼성에서 자동차도 만드느냐?”면서. 물론 지금은 삼성이 자동차를 만들고 있지 않지만 말이다. SM520의 소모성 부품은 주로 한국에서 사온다 ‘삼성’이라는 브랜드는 전자제품 메이커로 중국인들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필자의 차량 번호판은 10여 년 전 등록할 당시의 번호판을 그대로 달고 있다. 즉, 일반 차량과 달리 검정색 바탕에 흰 글씨로 쓰여 있어 더욱 눈에 띈다. 검정색 번호판은 외국인이 차량을 등록할 때 사용한 번호판인데, 지금은 이 제도가 없어져서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검정색 번호판을 단 내 차를 특수기관 차로 오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타국에서 한국차를 타는 뿌듯함필자는 1992년 호주에 처음으로 수출되는 아시아자동차의 록스타를 타고 홍보를 위해 호주를 일주한 적이 있다. 시드니에서 출발해서 브리즈번을 거쳐 내륙으로 들어간 후 그레이트 빅토리아 사막을 지나 퍼스까지 간 다음 다시 시드니로 돌아오는 1만2,000km가 넘는 대장정이었다. 그때 많은 호주인들이 록스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퍼스의 일간지와 자동차 잡지에서 특집으로 다루기로 했다. 필자가 1992년 아시아 록스타를 타고 1만2,000km를 달려 호주를 일주할 때의 모습(자동차생활 1993년 1월호 게재) 한번은 시니드에서 브리즈번으로 갈 때 과속으로 달리다 벌금 티켓을 받은 적이 있다. 호주의 고속도로는 미국과 같은 수준으로 잘 정비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실제 달려보니 기대 이하였다. 지도에 표시된 고속도로에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함께 다니는 데 깜짝 놀랐다. 또한 고속도로가 마을을 통과하게 되어 있어 제한속도가 시속 40km인 곳도 있었다. 중국의 운전면허증. 국제운전면허증이 통하지 않기에 반드시 현지 운전면허증이 있어야 운전할 수 있다 급한 마음에 속도를 늦추지 않고 한 마을을 지나갔는데, 하필이면 마주 오는 차가 경찰차였다. 그런데 그 경찰관이 벌금 티켓은 발급하지 않고 차에 대해 신기하다는 듯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어느 나라에서 만든 차냐, 어느 회사 차냐, 엔진은 몇 cc냐, 출력은 얼마나 나오느냐.” 차에 관심이 많은 그는 처음 보는 차에 호기심이 발동한 것 같았다. 나중에 호주달러로 120불짜리 벌금 티켓을 발급해 주었는데 친절하게도 “당신은 외국인이니까 15일 이내에 출국하면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까지 해주었다. 그래서 “그럴 거면 뭐 하러 티켓을 주느냐”고 했더니 “그건 내 의무”라고 잘라 말했다. 아무튼 당시 호주에서 차를 세우면 모이는 사람마다 이것저것 물어봐서 대답하느라 바쁘기는 했지만 우리 차를 홍보한다는 데 대한 자부심이 무척 컸었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지금 중국에서 SM520을 타는 기분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의 자동차등록증  한국 폐차장에서 어렵게 범퍼 구입SM520은 관리를 잘 해서 차령이 15년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이들이 많다. 차의 품질이 좋은 면도 한 몫 하지만 디자인도 요즘 나오는 신차에 비해 그다지 뒤떨어지지 않는다. 한 마디로 구닥다리라는 느낌이 거의 없다.  다만 차가 특이하기 때문에 필자의 동선을 다른 사람들이 모두 꿰차고 있다는 점은 조금 불편하다. 내 차가 주차해 있는 곳이면 내가 근처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보험회사에서 차가 너무 오래되었다고 자차보험에 가입해 주지 않는 것이다. 만약 내 실수로 차가 망가지면 알아서 고치라는 뜻이다. 등록된 자동차 사진이 들어간다 그나마 상대방 차량에는 무제한 보상이 되는 보험 가입은 가능하다. 이우에는 고급 외제차가 무척 많기 때문에 상대차 보상 보험은 필수다. 가끔 운행을 하다 보면 앞뒤로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 좌측은 포르쉐, 우측은 레인지로버가 서 있는 경우도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이런 차와 사고에 휘말리면 수리비가 엄청 많이 나온다. 그래서 모든 사고에 최대한 보상이 많이 될 수 있는 보험에 가입했는데, 정작 내 차에 대한 보상보험은 가입되지 않았다. 차에 대한 정보가 자세하게 들어간 중국의 자동차등록증 또한 다른 차는 1년마다 받는 차량검사를 오래된 차는 번거롭게도 6개월에 한 번씩 받아야 한다. 차 상태는 새차나 다름없지만 중국 법이 그러니 따를 수밖에.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운행 과정에서 제일 힘든 부분은 부품 조달이다. 이우에는 없는 모델이다 보니 부품을 파는 곳이 없고, 그래서 모든 부품은 필자가 직접 챙겨야 한다. 그래서 한국에 들를 때마다 부품을 왕창 사가지고 온다. 주로 오일필터, 에어클리너, 브레이크 패드 등 소모성 부품들이다. 차량검사는 1년마다 한번씩이지만 오래된 차는 6개월에 한번씩 받아야 한다 이런 불편한 점이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차를 먼 타국에서 타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한 대가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다만 이런 소모성 부품들을 한국에서 중국으로 운반해 오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범퍼와 같이 덩치가 큰 부품을 가져올 때는 상당한 애로가 따른다. 점검을 받고 있는 SM520. 6개월에 한 번씩 차량검사를 받아야 한다 올해 초 이곳에 큰 눈이 내렸다. 눈이 잘 오는 곳이 아닌데 올 초에는 유별나게 눈이 많이 내렸고, 특히 그날은 정말 많은 눈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범퍼가 왕창 깨져 있는 게 아닌가. 이곳에서는 눈이 내리면 평소보다 10배 이상 교통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곳이라 눈길에서 어떻게 운전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 그래서 눈이 내리면 차를 길에다 버리고 가는 운전자들이 많다. 지난 겨울 큰 눈이 내렸을 때 범퍼가 깨져 곤욕을 치렀다 다행히 가해차 운전자가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보험 처리를 하기로 했는데, 그날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보험회사에 몰려왔는지 길이 막혀 보험회사까지 차를 가져가지 못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한 후 보험회사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또한 중국에서는 SM520의 범퍼를 구할 수 없어 한국의 폐차장을 수소문해 겨우 하나를 구했다. 그런데 이것을 중국으로 가져오는 방법이 쉽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가서 짐으로 반입하려 했는데 항공사에서 크기가 너무 크다며 받아주지 않았다. 항공화물로 보내려니 운송비만 우리 돈으로 100만원이 넘게 나와 포기하고 말았다. 수소문 끝에 중국운송을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를 소개받아 40만원을 주고 맡겼다. 한국 폐차장에서 범퍼를 구했지만 중국까지 갖고 오는 데 40만원이 들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사고가 난 지 3개월 만에 범퍼를 교체할 수 있었는데, 그 동안은 깨진 범퍼를 그대로 달고 다녔다. 보는 사람들마다 신기해 해서 창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생전 처음 보는 차인 데다 흉측하게 깨진 범퍼를 달고 다니니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던 것. 이런 낭패를 겪지 않으려면 앞으로도 가능한 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다니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   양인환 중국통신원 1957년 8월 서울에서 태어나 91년까지 금융권에서 일하다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자동차와 함께 하는 삶에 새롭게 도전했다. 91년 국산 자동차로 미국 48개 주를 일주해 기네스북에 등재된 것을 시작으로, 92년 아시아 록스타로 호주를 일주했다. 93년 호주 웨스턴 랠리스쿨을 이수한 뒤 호주 웨스턴 랠리 침피언십, 홍콩-북경 랠리(94년), 태국 랠리(94년) 등에서 전문 드라이버로 활동했다. 93년부터 96년까지 본지의 객원기자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참가한 랠리를 비롯해 세계의 다양한 자동차 경주와 시승기를 소개했다. 저서로 ‘대머리 돈키호테’, ‘차를 알고 문화를 세우는 여유로운 운전’이 있다.11년째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양인환 통신원은 앞으로 중국을 비롯한 북미, 남미, 아시아, 유럽 등의 재미있는 여행기를 소개할 계획이다. 머지않아 미국과 호주에 이어 중국과 남미대륙을 일주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글·사진 양인환 중국통신원
천하의 모든 것을 판다, 이우시장(义乌市场) 2 2013-10-18
급성장한 중국 자동차, 그러나…이우 시의 번영은 도시 미관과 거리의 차부터 바꿔 놓았다. 높은 빌딩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한창 건설 중인 금융빌딩들이 모두 완공되면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이우의 차량등록대수는 12만 대로 인구 100만 명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많은 숫자이다. 그래서 가뜩이나 좁은 도로에 차들이 넘쳐나 하루 종일 교통체증에 시달리기 일쑤다. 이우시장 한쪽에서 한창 건설 중인 금융빌딩들 주차시설 또한 턱없이 부족해서 아무 곳에나 차를 세워두는 일이 다반사고, 새롭게 도로를 건설하고 기존 도로를 확장하고 있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차들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아파트 단지마다 주차할 공간이 없어 저녁때만 되면 주차전쟁이 벌어지고 바깥 도로에까지 주차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도로 한가운데에서 다른 차들의 진로를 막고 주차된 승용차. 이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차가 늘어나는 만큼 교통문화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차량사고만 늘어날 뿐이다. 이우에서 하루에 일어나는 교통사고는 200건 정도. 사고가 나면 교통경찰이 와서 잘잘못을 따져 확인서를 발급해준다. 이것이 있어야만 보험처리가 가능하다. 항상 차가 막히니 고속으로 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사망자가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접촉사고 수준이다. 오토바이와의 접촉사고가 가장 빈번한데, 하루에 500건이 넘는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다. 이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 중국 전체로 보면 교통사고 역시 세계 최고다. 2012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가 6만2,000명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10년 전인 2002년의 10만9,000명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것이다. 한때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교통사고 사망자를 낸다는 오명을 쓴 적이 있다. 최고조에 달했을 때가 1만3,000명이었는데 이를 감안하면 중국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우리나라가 30여 년 동안 엄청난 노력으로 교통사고 사망자를 절반 이하로 줄인 것에 비추어볼 때 중국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교통문화가 생각만큼 금방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길이 막히면 인도로 달리는 차들이 많다 교통사고 사망자가 많은 것은 그만큼 사고가 많다는 뜻인데, 그것은 중국의 난폭운전에서 기인한다. 한마디로 중국 운전자들의 운전 매너는 빵점이다. 양쪽 차선을 걸치고 운전하는가 하면 끼어들 상황이 아닌데도 거리낌 없이 들어오고 빨리 가라고 수시로 경적을 울려댄다. 중앙선은 있으나마나다. 길이 막히면 중앙선을 넘어서 가거나 인도를 통해 가기도 한다. 밤에는 마주오는 차가 있든 없든 상향등을 켜는 것이 기본이다. 상대방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한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와는 달리 대단히 관용적인 면도 있다. 도로를 거꾸로 역주행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고 비켜 가거나 기다려준다.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참 신기하다. 쇠창살로 막아놓은 중앙분리대. 이렇게 해놓지 않으면 중앙선을 그냥 넘어 달린다 지난해 유명을 달리한 할리우드 여배우가 베이징을 방문해서 택시를 탔다가 혼이 난 장면이 유튜브에 방영이 된 적이 있다. 길이 막히자 택시 기사가 고속도로를 거꾸로 달렸다. 이를 보고 경악한 여배우가 소리를 지르자 이에 신이 난 택시 기사가 차를 더욱 난폭하게 운전하는 모습이었다. 필자도 고속도로를 운전하면서 역주행하는 차와 세 번 정도 마주친 적이 있다. 간담이 서늘해지면서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고속도로에서 갓길로 달리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가다가 길이 막히면 자연스럽게 갓길로 가는 운전자가 정말 많다. 자전거는 여전히 중국의 인기 있는 교통수단이다 주차 매너는 한마디로 '마이너스’다. 주차시설이 턱없이 부족해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2열 주차는 물론이고 막무가내식 주차도 다반사다. 아예 다른 차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운전자의 연락처를 남기지 않은 차들도 부지기수다. 그러면서도 또 신기한 것은 이런 식으로 주차해놓았다고 해서 한국처럼 강력하게 항의를 하거나 주차된 차에 화풀이를 하는 경우 또한 거의 없다. 한편 중국 운전자들은 카메라가 있는 지역에서는 교통신호를 잘 지키는 편이다. 그러나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거의 지키지 않는다. 중국의 벌점제도는 대단히 엄격하다. 신호위반에 벌점 6점을 부여하는데 벌점이 12점이면 면허취소다. 즉, 운전자가 두 번만 법규를 위반하면 면허가 취소되고 1년 후에 다시 신청을 해야 하니 대단히 강력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우와 중국의 다양한 교통수단들이우가 급격히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운송에 있었다. 이우는 저장성 내륙에 위치하고 있지만 다행히 예전부터 기차가 통과했다(당시의 유일한 교통수단). 만약 철로가 없었다면 이우는 그저 인근 도시의 물량을 소화하는 조그만 시장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나가는 물류를 철도 외에도 트럭을 많이 이용하는데 그 물량이 어마어마하다. 몇 해 전에는 이우에서 이런 물류사업을 쟁취하기 위한 이권다툼으로 살인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하여 공항도 생겼다. 물론 국내선만 운항하지만 홍콩을 연결하는 국제선도 있다. 이곳에서 베이징, 난통, 광저우, 청두, 창사, 정저우로 연결되는 항공편을 매일 이용할 수 있다. 이우의 택시로 쓰이는 현대 쏘나타 버스터미널은 세 곳이 있다. 먼저 빙왕터미널에서는 전국 각지를 연결하는 버스가 매일 출발한다. 이우에서 광시성 난닝까지 가는 데에는 20시간이 걸린다. 운전기사 2명이 교대로 운전을 하는데, 우리에겐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일이지만 이들에게는 항상 해오던 일상이다. 장거리여행은 운전기사뿐만 아니라 승객들에게도 무척 힘든 일이다. 좌석이 이층 구조의 침대여서 하염없이 누워서 가야 하는데, 하루를 누워서 가면 머리가 핑핑 돈다. 게다가 허리까지 아프다.필자도 광저우를 갈 때 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 비자 연기신청 때문에 여권을 공안국에 맡겨 놓았는데 급히 광저우에 출장을 갈 일이 생긴 것. 여권이 없으니 비행기를 탈 수 없어 할 수 없이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우에서 광저우까지 16시간이 걸리는데 처음 장거리 버스를 이용하는 나에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지만 색다른 경험이라 일변 재미있기도 했다.  차에 올라 탈 때에는 신발을 벗고 비닐봉지에 담아 승객이 보관해야 한다. 식사 시간이 될 즈음에 버스가 고속도로를 빠져 나가 허름한 휴게소에 승객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이곳에서 파는 음식은 정말 최악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음식은 그나마 먹을 만했는데 이곳 음식은 입에 대기가 불안할 정도로 불결하고 역겨웠다. 다른 것을 먹을 길이 없으니 억지로 먹어야 했는데 가는 내내 찜찜했다. 도중에 세 번의 검문이 있었다. 장시성에서는 신분증 검사만 했는데 광동성에 진입할 때에는 승객이 모두 버스에서 내려 검색대를 지나야 했다. 새벽 3시경이라 너무 피곤하고 졸렸는데 누구도 불평하는 이가 없었다. 장거리 버스라 차 안에 화장실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정신없이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용변을 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차(火车, 중국에서는 훠처라 부른다)는 전국으로 연결된다. 요즘은 고속기차가 많이 생겨서 상하이나 인근 지역을 다니는 데 상당히 편리해졌다. 고속열차가 생기기 이전에는 상하이까지 4시간 이상 걸렸으나 고속철 개통 이후 2시간 반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게 되었다. 이우에서 쓰촨성의 청두까지 가는 데 무려 40시간이나 걸리는데, 이 먼 길을 입석으로 가는 이도 많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시간 넘게 걸린다고 고속철을 만든 우리로서는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우의 중심 도로 중국은 우리보다 더한 자본주의 국가모순(矛盾)이라는 말은 행동이나 말의 앞과 뒤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춘추전국시대에 무기를 파는 상인이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과 어떤 창도 막을 수 있다는 방패’를 함께 팔면서 유래한 말이다. 이런 '모순’이 지금의 중국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절한 말이 아닐까 싶다.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체제는 이에 반하는 '자본주의’를 택하고 있다. 원래 장사를 잘하고 돈에 대한 애착이 강한 중국인들에게 사실 공산주의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다가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해서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지만 인민들의 바탕에는 배금주의가 깔려 있다. 그러니까 이우는 중국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 것이다. 결국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이 옳은 선택이었고 많은 중국인들이 이를 기회로 부와 명예를 얻었다. 이우시 정부가 운영하는 공설운동장 필자의 생각에 중국은 우리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초자본주의 국가이다. 예를 들어 이우 공설운동장에 '88’이라는 서양식 바가 있다. 소위 잘 나간다는 아가씨들이 있는 술집이다. 밤이 되면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반짝이며 술꾼들을 유혹한다. 체육시설에 술집이 있다는 게 우리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여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체육시설을 유지, 보수하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우 시정부는 이런 공간을 빌려주고 그 임대료를 체육시설을 유지하는 비용으로 충당한다. 만약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면 어떨까? 아마도 연일 언론의 톱 뉴스를 장식할 게 분명하다. 이 공공시설이 밤에는 거대한 유흥음식점으로 변한다. 우리나라의 공공기관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이우의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가 땀과 모험으로 얻은 부를 맘껏 즐기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았고 해외 유학을 다녀왔다. 기성 세대들이 롤스로이스나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를 타는 대신 이들은 페라리나 포르쉐, 람보르기니를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부모 세대가 어떤 고행을 겪었는지 이야기를 통해 들었지만 실감을 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이를 알리기 위해 한 사업가가 아이디어를 냈다. 이우에서 꽤 유명한 식당인 '지모환탕’. 과거 어렵게 살았던 이우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닭털과 사탕을 바꾼다’는 뜻을 지닌 지모환탕(鸡毛换糖)이라는 이름의 이우에서 꽤 유명한 식당이 있다. 과거 어렵게 살았던 이우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오래전에 이우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품팔이를 갔다. 돈을 버는 것은 고사하고 먹여 주고 재워만 주면 어떤 일이든 감지덕지하던 때였다. 그 시기에 부지런한 이우 사람들이 장사에 나섰다. 중국식 사탕을 만들어 광주리에 담아 그것을 어깨에 메고 다른 지방으로 팔러 다녔다.  걸어서 장시성까지 가려면 열흘 이상이 걸렸다. 혼자 다니는 것이 위험해 열 명 정도씩 무리지어 다니고 잠은 길에서 잤다. 다른 지역에 도착한 이들은 그곳에서 사탕을 팔고 닭털을 샀다. 그 닭털로 다시 부채를 만들어 팔러 다녔다. 오늘날의 발전된 이우는 바로 이런 이우 사람들의 땀과 눈물과 뼈를 깎는 노력의 산물이다.   양인환 중국통신원은 1957년 8월 서울에서 태어나 91년까지 금융권에서 일하다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자동차와 함께 하는 인생을 시작했다. 91년 국산 차동차로 미국 48개 주를 일주해 기네스북에 등재된 것을 시작으로, 92년 아시아 록스타로 호주를 일주하기도 했다. 93년 호주 웨스턴 랠리스쿨을 이수한 뒤 94년까지 호주 웨스턴 랠리 침피언십에 참가한 데 이어 홍콩-북경 랠리(94년), 태국 랠리(94년) 등 다양한 랠리에서 전문 드라이버로 활동했다. 그의 랠리 참전기는 <카라이프>에도 연재되었다. 93년부터 96년까지는 본지의 객원기자로 활동하면서 세계의 다양한 자동차 경주를 소개하는 기사와 시승기를 썼다. 저서로는 '대머리 돈키호테’, '차를 알고 문화를 세우는 여유로운 운전’이 있다.지금은 11년 넘게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으며 사업상 중국을 비롯해 미국, 멕시코, 아르헨티나, 영국, 베트남 등 다양한 국가를 오가고 있다. 머지않아 미국과 호주를 일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을 자동차로 일주하는 한편 남미대륙 일주 계획도 갖고 있다. 앞으로 본지 중국통신원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중국 자동차 이야기와 북미, 남미, 아시아, 유럽 등의 재미있는 여행기를 실을 계획이다.  글·사진 양인환 중국통신원
천하의 모든 것을 판다, 이우시장(义乌市场) 1 2013-10-16
상하이에서 차로 4시간 거리인 저장성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이우(义乌)는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인구 100만 명 내외의 작은 도시이지만 1978년 중국이 개혁과 개방으로 죽의 장막을 걷어낸 후 1983년 공산주의 아래에서 시장이 들어섰고, 이 시장은 10년 만에 중국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현재의 이우시장은 중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최대 규모의 도매시장으로 통한다.  천지개벽. 바로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말이 아닐까 싶다. 필자가 어렸을 때에는 중국을 중공(中共)이라고 불렀다. 소비에트연방공화국(蘇聯, 구 러시아)은 철(鐵)의 장막, 중국은 죽(竹)의 장막에 둘러싸인 음울한 분위기의 나라였다. 중국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홍콩 언론을 통해서 간간히 들을 수 있었을 뿐 중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당시 '중국'하면 떠오르는 것이 색 바랜 인민복에 짚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두 개의 광주리를 엮어 어깨에 멘 중국인의 모습이었다. 그러했던 중국이 지난 30여 년 동안 기록적인 경제성장으로 이제는 독일과 일본을 물리치고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으니 그야말로 천지개벽과 같은 일이다. 상하이와 선전에는 서울의 강남을 능가하는 높은 건물들이 하늘을 찌를 듯 빼곡히 들어차 있고 지저분했던 인민복은 세계 유행을 따르는 화려한 패션으로 탈바꿈했다. 초췌하고 꾀죄죄했던 중국민들 또한 자신감에 넘치고 활기찬 모습으로 변모했다. 중국 저장성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이우의 중심 도로. 인구 100만 명의 작은 도시이지만 급격한 발전으로 늘 심각한 교통체증을 겪고 있다 내가 중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94년 홍콩에서 북경까지 랠리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선전은 도시 전체가 건설 중이었다. 선전-광저우 고속도로가 막 완성되어 개통을 앞둔 시점이었다. 처음 본 중국의 인상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잿빛이 드리운 듯한 칙칙함, 고요함,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암울함. 다른 도시들은 크기는 컸지만 건물들이 조화롭지 않아 조잡한 블록 같은 인상이었다. 지저분한 인민복을 입은 중국인들은 핏기 없는 얼굴에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듯한 불안한 모습이었다. 삶에 대한 열망도 부대끼며 살아가는 치열함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약 10년이 지난 2002년 중국을 다시 방문했을 때 역동적으로 변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10여 년 사이에 변해도 너무 변했다는 생각에 나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그냥 빈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10여 년이 지난 2013년. 강산이 또 한번 변했다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찬사를 보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룡처럼 커지는 중국이 두려워지기도 한다. 7만여 개의 상점이 들어선 이우시장의 내부. 하루 유동인구가 21만 명에 이른다  오토바이 타던 이들이 지금은 벤츠 오너정확히 11년 전인 2002년 저장성 이우에 사무실을 열었을 때만 해는 자동차가 그다지 많지 않았고 따라서 도로도 한산했었다. 당시 공장 사장들에게 주문장을 준다고 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받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공장 사장들이 지금은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나 BMW 7시리즈, 아우디 A8 등을 타고 다닌다. 또 미리 약속하지 않으면 만나기 어려운 거물급이 되어 버렸다. 나는 예전 모습 그대로인데 그들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10년 전 자전거와 인력거, 오토바이가 한가롭게 다녔던 도로를 지금은 고급 수입차가 꽉 메우고 있다. 중국에서 흔한 오토바이. 10년 전 오토바이를 타던 공장 사장들이 지금은 벤츠를 탄다. 사진 속의 청년도 나중에는 벤츠를 탈까? 10년 전에는 이곳에 고속도로가 없어 빨리 간다는 개념이 없었지만 이제 세 곳으로 통하는 고속도로가 생겨났고 고속철이 하루에도 10번 이상 지나다니는 교통혁명이 일어났다. 이우에서 닝보까지 가려면 4시간 이상 걸리던 길도 이젠 2시간 반이면 닿을 수 있는 곳으로 변했으니 감회가 새롭다. 섭씨 40도가 넘는 한여름에 에어컨도 없는 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가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차가웠던 생수는 금방 뜨뜻한 물로 변하고 연신 땀이 흘러내려 온몸을 적셨다. 마주치는 자동차라도 있을라치면 뽀얗게 얼굴에 내려앉는 흙먼지에 위장을 한 군인처럼 변하곤 하던 시절이었다. 한겨울에 히터도 들어오지 않는 버스에서 틈새로 들어오는 찬바람을 피하느라 이리 저리 옮겨 앉으며 몇 시간을 가야 했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이우의 어디에서도 이러한 광경을 볼 수 없다. 이우 사람들은 과시를 좋아해 자국차보다는 벤틀리나 벤츠 같은 고급차를 선호한다 현재 세계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이 중국에 들어와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 아우디는 물론 다양한 유럽 업체들과 미국의 GM, 포드, 일본의 토요타와 혼다, 그리고 한국의 현대와 기아도 일찌감치 중국에 진출해 치열한 각축전을 펼치고 있다.  2012년 중국의 자동차 생산대수는 1,927만 대, 판매는 1,930만 대로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자동차는 중국에서 떼어놓으려야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카메라에 잡힌 8대 중 4대가 벤츠다 중국인들에게 자동차는 운송수단 이외에 부를 과시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남보다 좋은 차를 가지려고 한다. 이런 심리 때문에 중국에서는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차들이 인기가 높다. 그런데 이우에서는 이런 고급차를 이용해서 물건을 배달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한국에서보다 더 비싼 메르세데스 벤츠 S500(2억원이 넘는다)의 트렁크에 박스를 싣고 끈으로 묶어서 배달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의 생각이 참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액세서리 공장 사장도, 열쇠고리 사장도, 우리 사무실로 물건을 가지고 올 때 메르세데스 벤츠 S350을 배달차로 사용한다. BMW X5를 타는 거래처 천사장. 그 역시 과시를 좋아하는 이우 사람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이우의 공장 사장들은 모두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를 가지고 있다. 어쩌다 다른 차를 갖고 있더라도 아우디나 포르쉐의 카이엔, 레인지로버 같은 차다. 간혹 거래하고 있는 공장 사장을 만날 때면 자연스레 그의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게 된다. 외국 바이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은근히 자랑하기 위해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으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대부분 같은 차종이나 동급에 해당하는 차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명이 BMW 6시리즈를 갖고 있으면 그의 친구들도 똑같은 6시리즈를 타거나 메르세데스 벤츠 S350 혹은 레인지로버를 타고 다닌다. 누군가 고급차를 사면 그의 친구들도 그에 상응하는 차를 타고 다닌다. 벤츠 S350을 사면 주위 친구들도 그에 상응하는 차를 가져야 체면이 서는 게 이들의 생활방식이다.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이젠 S클래스나 7시리즈는 흔하디 흔한 차가 되어버렸다 이우에는 내로라하는 세계의 최고급 차들이 다 모여 있다. 롤스로이스, 람보르기니, 페라리, 벤틀리,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 포르쉐 등등. 또한 이들 차의 숫자도 만만치 않다. 페라리, 벤틀리, 메르세데스 벤츠, BMW 동호회가 매달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다. 아마도 조그만 도시에 이렇게 많은 고급차들이 모여 있는 곳도 이우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가끔 아침 일찍 도로를 나섰을 때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 20여 대가 무리를 지어 카 퍼레이드를 펼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신랑과 친구들이 결혼식 전에 신부집으로 인사를 가는 이 모습이 장관이다 못해 경이롭다는 생각마저 든다. 참고로 이우의 자동차 등록현황을 살펴보면, 마이바흐 4대, 롤스로이스 8대, 벤틀리 13대, 람보르기니 11대, 페라리 56대, 메르세데스 벤츠 1,300대, BMW 2,800대, 아우디 3,700대 등 다양한 고급 수입차가 등록되어 있다. 토요타와 혼다 등 일본차들도 많으며 현대차와 기아차도 최근 들어 판매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롤스로이스조차 삼륜차 뒤에 아무렇게나 주차하는 게 이우의 현실이다 물론 이우에 중국차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시를 좋아하는 이우 사람들에게만큼은 외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에도 홍치,체리, 쌍환, BYD 등 유명한 자동차회사가 있지만 이우 시내를 꽉 메우고 있는 것은 외제차 일색이다. 중국 화물차와 빵차(面包车, 한국의 다마스와 비슷한 소형 승합차인데, 빵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렇게 부른다)가 없다면 중국이 아닌 외국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중국에서 흔한 소형 승합차. 빵처럼 생겼다고 해서 빵차(面包车)라고 부른다  중국을 넘어 세계적인 도매시장으로 성장필자가 생활하고 있는 이우는 저장성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데 상하이에서 차로 4시간 거리다. 인구는 100만명 내외로 중국에서는 작은 규모의 도시에 속한다.이우(义乌)는 우리말로 '의로운 까마귀’라는 뜻으로, 옛날 어느 집에 초상이 났는데 겨울이라 땅이 얼어서 시신을 묻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더니 어디서 날아왔는지 까마귀들이 부리로 쪼아서 언 땅을 파 장사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우시장 한쪽에서 한창 건설 중인 금융빌딩들. 완공되면 이우 시는 다시 한번 성장할 것이다 요즘 이우에는 돈이 넘쳐흐른다. 바로 이곳에 세계 최대의 도매시장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규모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하루에 수출되는 컨테이너가 평균 1,200개가 넘고 중국 내수로 거래되는 물량도 어마어마하다. 쉽게 말해 하루 물류량이 20톤 트럭으로 2,000대가 넘는 규모다. 웬만한 작은 나라에서 움직일 만한 물량을 중국의 한 도시에서 매일 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우시장에서는 매일 1,200개의 컨테이너를 수출하는 등 하루 물류량이 20톤 트럭으로 2,000대가 넘는다 이우에 시장이 생긴 것은 30년 전인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척박한 환경에서 먹고 살기 어려워 장사라도 해서 먹고 살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생각해낸 것이 시장이었다. 여름이면 섭씨 40도까지 올라가는 고온 다습한 기후 탓에 농사가 잘 안 되니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다른 지방으로 품팔이를 다녔다. 그러다가 1983년에 이곳의 현장(县长, 당시에는 이우가 시가 아니라 그보다 작은 현이었다)이 다른 지방으로 품팔이를 다니지 말고 이우에 시장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돌이켜 보면 당시의 위험한 결정이 지금의 이우를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시장이 오늘날 세계 최대의 도매시장이 된 것이다. 당시에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러한 결정을 했겠지만 사실 잘못 되면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도박이었다. 철저한 공산주의 사회인 중국에서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장사’라는 것은 공산주의 이념과는 상반되는 개념이었기 때문. 만약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이 실패한다면 모두 죽음을 면키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우의 인력시장 모습. 시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이우 사람들이 다른 지방으로 품팔이를 다녔지만 지금은 전국에서 사람들이 이우로 몰려든다 마오쩌둥 시대가 저물고 덩샤오핑이 정권을 장악한 것이 1977년의 일이다. 덩샤오핑은 중국 공산당 1세대로 공산주의 혁명의 영광과 폐해를 모두 경험한 인물이다.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하는 데 최일선에 섰지만 문화혁명의 와중에 공장의 말단 노동자로 전락하기도 했다. 영욕의 세월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의 최고 자리를 차지한 그는 1978년 개혁과 개방을 기치로 그동안 굳게 닫혀 있던 죽의 장막을 걷어 제쳤다. 이우시장은 개방정책이 시작된 지 몇 년 후인 1983년에 개장했다. 당시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이 성공하리라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그의 개방정책이 실패했다면 오늘날의 이우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많은 중국인들이 부와 영광을 얻었다. 옛날에 '화약장수가 많이 남는다’고 했는데 이우시장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우시장의 제품들은 중국은 물론 전세계로 수출된다 이우가 처음부터 중국 최대의 시장이 된 것은 아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에는 200여 개의 좌판을 길에 깔고 실과 바늘, 단추 따위를 파는, 시장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우에 가면 값싼 상품이 많다’는 소문이 나면서 1993년 중국 최대 시장으로 거듭났으며 외국인들이 몰려오면서 국제화된 도시가 되었다. 현재 이우에는 전세계 33개국에서 온 외국인들이 상주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도매시장으로 성장한 이우시장의 전경. 470만 평방미터에 7만여 개의 상점이 들어서 있다 최근 이우 시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우 도매시장의 면적은 470만 평방미터, 점포수는 7만여 개이며 상품 종류는 170만 개, 하루 유동인구는 21만 명이라고 한다. 시장을 돌아보는 데 한 점포당 3분, 하루 8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1년 6개월이 소요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조차 어렵다.  (2부에 계속)   양인환 중국통신원은 1957년 8월 서울에서 태어나 91년까지 금융권에서 일하다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자동차와 함께 하는 인생을 시작했다. 91년 국산 차동차로 미국 48개 주를 일주해 기네스북에 등재된 것을 시작으로, 92년 아시아 록스타로 호주를 일주하기도 했다. 93년 호주 웨스턴 랠리스쿨을 이수한 뒤 94년까지 호주 웨스턴 랠리 침피언십에 참가한 데 이어 홍콩-북경 랠리(94년), 태국 랠리(94년) 등 다양한 랠리에서 전문 드라이버로 활동했다. 그의 랠리 참전기는 <카라이프>에도 연재되었다. 93년부터 96년까지는 본지의 객원기자로 활동하면서 세계의 다양한 자동차 경주를 소개하는 기사와 시승기를 썼다. 저서로는 '대머리 돈키호테’, '차를 알고 문화를 세우는 여유로운 운전’이 있다.지금은 11년 넘게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으며 사업상 중국을 비롯해 미국, 멕시코, 아르헨티나, 영국, 베트남 등 다양한 국가를 오가고 있다. 머지않아 미국과 호주를 일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을 자동차로 일주하는 한편 남미대륙 일주 계획도 갖고 있다. 앞으로 본지 중국통신원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중국 자동차 이야기와 북미, 남미, 아시아, 유럽 등의 재미있는 여행기를 실을 계획이다.  글·사진 양인환 중국통신원
짝퉁의 나라, 중국 2 2014-12-04
소비는 VIP, 매너는 블랙리스트요즘 세계적인 불황으로   대부분의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명품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많은 명품 브랜드가 부도위기에 처해 회사를 팔려고 내놓는 요즘, 명품 브랜드를 먹여 살리고 있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중국인들이다. 만약 중국인들의 구매 열기가 없었다면 문을 닫은 업체가 하나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홍차오 기차역.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공항처럼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들은 프랑스와 이태리의 명품상가를 떼지어 다니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물건을 사재기한다. 한국에서도 중국인 관광객들은 물건 값을 따지지 않는 것은 물론 들고 가지 못할 정도로 많은 물건을 산다.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비행기 안에서 이우의 상점 주인이나 공장 사장들과 마주치곤 하는데 이들은 한국에서 샘플조사와 더불어 쇼핑을 하는 게 일이자 취미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국에서는 기차를 타려면 검색대를 지나야 한다 필자의 영국 바이어인 올리의 이태리 출신 여자친구는 상하이에서 여행 컨설팅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로 쇼핑을 가려는 중국인을 모집해서 패키지 관광을 연결하는 일인데 고객이 워낙 많아서 쉴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쁘단다. 중국인들이 적지 않은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현지로 쇼핑을 가는 것은 적어도 짝퉁을 사지 않으리란 믿음 때문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중국에서 사는 명품은 혹시 가짜가 아닐까 의심하는 것이 중국인의 심리다. 중국의 중요한 운송수단인 삼륜차(三綸車) 이들은 또한 해외여행을 통해 자신들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며 만족감을 느낀다. 아무나 할 수 없는 명품 쇼핑과 해외여행을 통해 행복감에 도취되는 것이다. 요즘 한국 비행기를 타면 한국 사람들보다 중국인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된다. 작년 9월에 영국 런던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당시 이용한 한국 항공사의 비행기 탑승객의 반 이상이 중국인이었다. 지난해 해외여행을 간 중국인이 5,000만 명이라고 하니, 우리나라 인구만큼 해외에 나갔다는 이야기다. 나아가 2015년에는 1억 명이 넘을 것으로 예측돼 위엔화의 힘이 세계 곳곳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머지않아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 안의 1/2은 중국인들로 들어차게 될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150cc의 삼륜차 하지만 해외여행을 다니는 중국인들의 추태도 함께 늘어 중국정부가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데 팔을 걷고 나섰다. 만약 해외에서 중국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경우에는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도 90년대 초반 해외여행 바람이 불면서 이런 경험을 한 바 있는데 중국인들의 해외여행 추태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포커를 하는가 하면 가래침을 아무데나 뱉거나 줄을 서지 않고 새치기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에서 담배를 피워 현지인들의 원성을 사기도 한다. 한 독일 호텔에서는 이런 중국인들 때문에 다른 고객들과 분리시킨 별도의 장소를 마련하기까지 했을 정도다. 그래도 이런 중국인들을 서로 끌어모아야 하는 처지니 그 힘의 원천은 바로 돈(!)이다. 2009년 상하이오토쇼에 나온 질리 GE. 당시 이 차를 본 롤스로이스의 직원은 “수치를 모르는 자들이 저지른 범죄행위”라고 평했다 모방을 넘어 첨단기술로몇 해 전 세계적인 자동차 모터쇼에 중국 업체가 롤스로이스를 카피한 자동차를 전시해 모터쇼를 발칵 뒤집어 놓은 적이 있다. 또한 체리 자동차에서 GM대우의 마티즈를 모방한 QQ를 내놓아 법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 QQ는 외양뿐만 아니라 부품까지도 똑같이 만들어서 GM 관계자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신차 개발에는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이 든다. 그렇지만 이렇게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그대로 가져다 복사하면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후발업자들은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외양뿐만 아니라 부품까지 마티즈를 그대로 모방한 체리자동차 QQ 그렇지만 최근의 발전 속도를 보면 머지않아 중국도 멋진 디자인과 기술의 자동차를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자동차 메이커들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지금은 현대나 기아차의 디자인이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는 실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발택시가 우리나라 자동차의 태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드럼통을 펴서 당시 유행하던 미군 지프를 본떠 만든 것이었고, 최초의 고유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포니’ 또한 잘 알다시피 이탈 디자인의 조르제토 쥬지아로가 디자인한 것이다. 어디를 가도 인산인해다 하지만 아직도 중국차의 품질이 많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엔진이나 안전성에서 문제가 많다. 몇 해 전 중국 자동차를 수출하기 위해 유럽이 실시한 안전 테스트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기도 했다. 충돌 테스트에서 앞좌석의 운전자뿐만 아니라 뒷좌석의 동승자까지 모두 사망하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장거리를 위한 침대 버스. 중국에만 있는 특이한 버스로 안전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중국이 모방으로 시작했지만 원조를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은 풍부한 노동력과 아울러 큰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13억 명이 넘는 인구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큰 구매력을 가진 시장이다. 우리나라 업체들은 내수 시장이 제한적이어서 개발비 부담이 큰 관계로 선뜻 제품 개발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인구가 1억 이상이 돼야 내수 시장이 제대로 형성된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중국에서 노란 신호는 천천히 가라는 뜻이니 헷갈리지 말자 중국은 이처럼 큰 구매력을 가진 시장을 무기로 선진 메이커들에게 기술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즉 가장 큰 시장을 줄 테니 기술을 넘겨 달라는 것이다. 이에 많은 기업들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오랫동안 연구개발한 기술을 중국에 넘기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시장을 버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중국정부에서는 첨단기술이 아닌 업체의 중국 진출을 제한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노동집약적인 산업도 반가워했으나 이제는 기술집약적 산업에만 중국 투자를 허가한다. 시간이 표시되는 신호등 일제는 쓰지만 일본은 싫어해필자가 어렸을 때에는 일본군에 대항하는 독립군에 대한 영화가 많이 상영됐다. 극한 상황에서 이리 쫓기고 저리 내몰리며 목숨을 걸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투사들의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독립군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거의 볼 수 없다. 작년에 ‘각시탈’이라는 드라마가 반짝 인기를 끌었을 뿐이다. 이것이 진정한 경차다. SUV 절반 크기의 1인용 미니카 반면 중국 텔레비전에서는 아직도 70~80년 전 일본과 싸우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여러 방송국에서 일본과의 전쟁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경쟁적으로 다루고 있는 데서 중국이 얼마나 일본을 미워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과의 영토분쟁이 터져 나오기라도 하면 대대적인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난다. 작년에 칭다오에 있는 일본 슈퍼마켓 JUSCO가 중국인들에게 약탈을 당한 일이 있었는데, 마켓 측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음에도 중국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까봐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인들이 해외여행을 나갈 때 하나씩 들고 나가는 카메라와 캠코더는 100% 일본제다.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도 일본차다. 토요타 캠리와 혼다 어코드는 미국에서도 인기가 좋지만 중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차들이다. 그러다 불매운동이 일어나면 일본차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죄인 취급을 당한다. 개나 일본인은 가까이 오지 말라는 스티커. 일본에 대한 강한 적대심을 느낄 수 있다 지난번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 이름은 센카쿠 열도) 분쟁이 생겼을 때는 일본차를 때려 부수고 운전자를 폭행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사태의 심각성을 안 일본차 운전자들은 급히 스티커를 만들어서 붙였다. “일본차를 타지만 다오위다오는 중국 땅이다. 나는 중국을 사랑한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났지만 아직도 이 스티커를 달고 다니는 운전자들이 간혹 눈에 띈다. 중국도 강남 스타일의 이름을 건 음식점까지 등장했다 우리나라를 여행한 중국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인들은 단결심이 강하고 애국심이 높다’고 말한다. 그들은 한국 도로에 보이는 차들이 대부분 ‘한국산’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중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일본차의 시장 점유율이 높지 않은데 그들의 눈에는 한국인들의 애국심이 높아서 일본차를 사지 않는 것으로 보이나보다. 내가 한국차의 품질이 외제차에 손색없고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믿지 않는 눈치다.        양인환 중국통신원1957년 8월 서울에서 태어나 91년까지 금융권에서 일하다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자동차와 함께 하는 삶에 새롭게 도전했다. 91년 국산 자동차로 미국 48개 주를 일주해 기네스북에 등재된 것을 시작으로, 92년 아시아 록스타로 호주를 일주했다. 93년 호주 웨스턴 랠리스쿨을 이수한 뒤 호주 웨스턴 랠리 침피언십, 홍콩-북경 랠리(94년), 태국 랠리(94년) 등에서 전문 드라이버로 활동했다. 93년부터 96년까지 본지의 객원기자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참가한 랠리를 비롯해 세계의 다양한 자동차 경주와 시승기를 소개했다. 저서로 ‘대머리 돈키호테’, ‘차를 알고 문화를 세우는 여유로운 운전’이 있다.11년째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양인환 통신원은 앞으로 중국을 비롯한 북미, 남미, 아시아, 유럽 등의 재미있는 여행기를 소개할 계획이다. 머지않아 미국과 호주에 이어 중국과 남미대륙을 일주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글·사진 양인환 중국통신원
짝퉁의 나라, 중국 1 2013-11-04
황하문명의 발상지인 중국은 18세기 산업혁명의 맥을 이어받지 못한 탓에 강대국이지만 아직 개발도상국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제조업만큼은 세계의 중심에 서 있다고 할 수 있고, 특히 그들만의 짝퉁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담배, 고급술은 물론 핸드폰과 자동차, 심지어 위조지폐까지 만들어내는 중국의 기상천외한 짝퉁문화를 들여다본다.  세계 제조업의 중심, 중국중국은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황하문명의 발상지이자 세계 4대 발명품인 나침반, 화약, 종이, 인쇄술을 모두 만들어낸 나라다. 18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맥을 이어받지 못하고 아직 개발도상국에 머물러 있지만 18세기 초까지는 세계 교역량의 31%를 차지할 정도로 부강하고 앞선 문화를 가졌었다. 산업화가 늦어진 탓에 후진국이 밟았던 전철을 따르고 있지만 최근 들어 급속하게 세계의 공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삭막해 보이는 중국의 한 아파트 특히 중국은 전세계에서 소비되는 제품의 대부분을 만드는 세계 제조업의 중심이다. 광동성의 동관(东莞)에 며칠 동안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다면 몇 달 동안 판매할 컴퓨터 부품이 없어 세계가 혼란 속에 빠져들 정도다. 이처럼 중국은 간단한 소비재부터 컴퓨터, 반도체 등 첨단제품까지 고루 생산하며 세계 제조업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넘치는 차로 아파트 주차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기상천외한 짝퉁의 천국중국은 지금까지 자체적인 기술보다는 남의 것을 사거나 베껴서 만드는 것으로 일관해왔다. ‘모방’은 ‘창조’의 한 방법이란 말처럼 처음에는 남의 것을 베끼면서 기술을 축적해 자기 것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의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 들어 남의 기술을 모방했다고 엄청난 특허권을 요구하는데 그렇다면 세계의 모든 나라가 중국에 특허료를 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중국의 4대 발명품을 특허료 없이 수백 년을 사용해 오고 있지 않는가?’ 짝퉁 시장. 짝퉁 명품 핸드백을 저렴한 값에 팔고 있다 중국은 짝퉁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휴대폰, 핸드백, 자동차, 운동화, 티셔츠 등 품목도 다양하고 소비되는 수량도 어마어마하다. 광저우에 가면 짝퉁 시장이 있는데 우리 돈으로 수백만원 하는 유명한 핸드백을 6~7만원 남짓이면 살 수 있다. 손목시계는 3만원, 선글라스는 7,000원 선이다. 예전에는 대놓고 매장에 진열해 팔았지만 요즘은 대부분 감춰두었다가 손님이 오면 내놓는다. 중국에만 있는 BMW X5. 물론 짝퉁이다 그런데 짝퉁이라고 해서 다 같은 짝퉁이 아니다. 원제품과 똑같은 디자인으로 파는 것도 있지만 소비자를 혼돈스럽게 만드는 일명 ‘사이비 짝퉁’도 있다. 삼성 휴대폰은 중국인들이 가장 갖고 싶은 제품 중 하나로 꼽히는 만큼 짝퉁도 무척이나 많다. 시장에 가면 휴대폰을 들고 싸게 팔겠다고 흥정하는 상인들과 수시로 마주치게 되는데, 글꼴은 같지만 자세히 보면 ‘SANSUNG, SAMSEONG, SAMSENG, SANXING’ 등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제품들이 대부분이다. 이우에 있는 아이폰 전문매장 또한 모두 애플 지정점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짝퉁 매장이다. 실제 아이폰은 중국에 베이징과 상하이에 각각 한 곳씩만 전문매장을 두고 있다. 토요타 코롤라. 마찬가지로 짝퉁 한때 우리나라도 올림픽을 전후해 짝퉁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남의 브랜드를 훔친다는 죄책감보다는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니 만들어서 판다는 시각이 팽배하던 때였다. 특히 이태원에 가면 질 좋고 값싼 복제품들이 많았는데 전문가들도 진품과 짝퉁을 구별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했다. 당시 평소 알고 지내던 어느 호주인은 한국에 올 때마다 이태원에 들러 쇼핑을 했다. 하루는 청바지를 사러 갔는데 주인이 어떤 브랜드를 달아 줄까 물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리바이스’(Leivs)와 ‘리’(Lee)가 인기였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 친구는 기왕이면 두 개 다 달아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우습게도 오른쪽 주머니에는 ‘리바이스’를, 왼쪽에는 ‘리’를 달고서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다. 번호판 없이 다니는 차. 흔히 보인다 고급술과 담배에 돈까지 짝퉁?대부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고 가능하면 그걸 고집한다. 내 친구 중에 ‘말보로’만 피우는 사장이 있다. 그가 상하이에 갔다가 백화점에 들러 담배를 사게 되었는데, 매장 직원에게 ‘이거 혹시 가짜 아니냐?’고 물었더니 ‘여기도 중국입니다’라고 애매하게 대답하더란다. 그 백화점은 중국에서도 유명한 고급 백화점이었다. 그 여직원도 자신이 팔고 있지만 그게 진짜라는 것을 100%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중국 공장 사장들은 중화(中華)라는 담배를 피운다. 하드 팩은 한 갑에 45위엔(약 4,400원), 소프트 팩은 65위엔(약 1만1,400원)이나 하는 대단히 비싼 담배다. 중국인들은 자신의 위치를 과시하기 위해서 이렇게 비싼 담배를 피운다. 그러다보니 가짜도 많다.  참고로 내가 중국에서 경험한 비싼 담배는 쑹모우(熊猫: 팬더)로 한 갑에 250위엔(약 4만3,800원)이다. 그 담배는 은행 지점장과 만나서 상담을 할 때 그가 피우던 것이다. 그보다 더 비싼 황허로우(黄鹤楼)도 있는데 한정판매를 하기 때문에 실제로 보진 못했다. 한 갑에 850위엔(약 14만8,800원)이라 아무나 피우지는 못할 것 같다. 한 개비에 우리 돈으로 7,000원이 넘으니 한 번 들이마셨다가 뱉으면 몇 백원이 공중으로 날아가는 셈이다. 나무줄기를 엮어 만든 독특한 헬멧 요즘은 많이 없어졌지만 10여 년 전에는 가짜 고급술 때문에 중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때 고급술이 빠질 수 없던 터라 가짜로 만든 고급술을 먹고 죽거나 눈이 먼 일이 허다했다. 지금도 중국의 노래방에서 나오는 양주는 대부분 가짜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필자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술맛은 어느 정도 아는 편이다. 한번은 중국 노래방에 가서 양주를 시킨 적이 있는데 그건 양주 맛이 아니었다. 가짜를 만들려면 좀 비슷하라게도 만들 일이지, 완전히 구별되는 가짜를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그러고도 노래방 사장은 ‘우린 절대 가짜는 안 판다’며 목에 힘줄을 세워가며 항변을 했다. 지붕을 단 전기 모터사이클. 중국다운 기발함이 엿보인다 그런데 이런 술을 마시면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속았다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몸에 해로운 원료를 사용했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중국에서는 비싼 술보다는 대중들이 즐겨먹는 것을 마시는 것이 안전하다. 고급술에 가짜가 많은 이유는 비쌀수록 이윤이 많이 남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가장 고급술에 속하는 우량예(五粮液)는 1,200위엔(약 21만원)에서 2만위엔(약 350만원)까지 하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오타이(茅台)도 비슷한 수준이다. 90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0009란 술은 88만위엔(약 1억5,407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식당과 호텔에서 보관 중인 위조지폐. 워낙 가짜 돈이 많다보니 항상 확인을 한다 돈도 가짜가 많다. 예전에 광저우에서 택시비로 100위엔을 냈는데 운전기사가 다른 돈으로 달라며 되돌려준 적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다른 한 장을 꺼내 지불했는데 그 돈 역시 받기를 꺼려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내가 지불한 돈이 가짜란다. 내가 외국인이어서 정중하게 받기를 거절했지만 만약 내국인이었다면 한바탕 말싸움을 했을 거라고 분개했다. 기가 막힌 것은 그 돈이 은행에서 받아왔는데도 위조지폐라는 사실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인쇄술이 하도 정교해서 알아차리기 어려웠지만, 이런 경우를 많이 당하다보니 이제는 위조지폐를 가려내는 데 일가견이 생겼다. 현찰 거래가 많은 중국은 업소나 회사마다 지폐 계수기를 가지고 있다. 계수기는 위조지폐 감별을 위한 기능도 갖추고 있다 중국은 아직까지 신용카드를 거의 쓰지 않고 있어서 현찰 거래가 많다. 그래서 업소나 회사마다 지폐 계수기를 가지고 있는데 워낙 가짜 돈이 많다보니 위폐 감별 기능까지 갖추고 있단다. 특히 밤에 택시를 탈 때는 더 조심해야 한다. 요금으로 100위엔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을 때 50위엔짜리에 가짜가 딸려 나오는 경우가 많고 어두운 불빛에서는 위폐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밖에 졸업장, 각종 증명서, 호구(우리로 말하면 호적)도 돈만 주면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 중국이다(2부에 계속.....). 양인환 중국통신원  1957년 8월 서울에서 태어나 91년까지 금융권에서 일하다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자동차와 함께 하는 삶에 새롭게 도전했다. 91년 국산 자동차로 미국 48개 주를 일주해 기네스북에 등재된 것을 시작으로, 92년 아시아 록스타로 호주를 일주했다. 93년 호주 웨스턴 랠리스쿨을 이수한 뒤 호주 웨스턴 랠리 침피언십, 홍콩-북경 랠리(94년), 태국 랠리(94년) 등에서 전문 드라이버로 활동했다. 93년부터 96년까지 본지의 객원기자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참가한 랠리를 비롯해 세계의 다양한 자동차 경주와 시승기를 소개했다. 저서로 ‘대머리 돈키호테’, ‘차를 알고 문화를 세우는 여유로운 운전’이 있다.11년째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양인환 통신원은 앞으로 중국을 비롯한 북미, 남미, 아시아, 유럽 등의 재미있는 여행기를 소개할 계획이다. 머지않아 미국과 호주에 이어 중국과 남미대륙을 일주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글·사진 양인환 중국통신원  
여름철 필수 보양식, 한방 요리 2013-08-01
여름철 필수 보양식으로 손꼽히는 오리. 야외에서 오리 한 마리로 맛있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없을까? 각양각색의 약초로 육수를 우려내는 한방 오리백숙,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가슴살과 함께 볶아 먹을 수 있는 오리 리조또(볶음밥)를 추천한다.  한방 오리백숙 오리 리조또 냄비와 솥 사이에 신문지를 깔아 얹어준다. 그 위에 무거운 돌을 올린 뒤 100~150분 정도 충분히 끓여준다. 돌을 얹는 이유는 압력밥솥 원리를 이용해 밥맛을 더욱 좋게 하기 위해서다 팬을 달군 뒤 가슴고기 쪽을 아래로 오도록 놓고 익힌다. 갈색빛이 돌면 뒤집어서 다시 익혀준다 가슴고기가 적당하게 익었다 싶으면 육질의 부드러움을 살려주는 소량의 맥주를 부어서 잘 조려준다 오범석 새로운 식단 개발을 위해 지속적인 아이디어 창출과 연구 개발을 하고 있는 요리 연구가.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그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요리를 선보이는 한편 식문화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방 오리백숙메인 재료 오리 1마리, 양파 1개, 대파 2개, 마늘 10쪽, 소량의 생강약초 재료 오미자 10g, 감초 20g, 구기자 10g, 헛개나무 어린가지 30g, 계피 10g, 대추 30g,하수오 20g, 수삼 25g인원 오리 1마리 기준으로 재료 측정 조리 시간 120분  난이도 ★★☆☆☆  한방 오리백숙, 이렇게 만드세요 [1]오리는 너무 작은 것(어린 오리가 살이 연하고 부드럽지만 먹을 게 별로 없다)보다 중간 정도 크기의 신선한 오리를 골라 준비한다. 뼈가 굵고 큼직한 오리는 오랜 시간 꾸준하게 익혀도 육질이 부드럽다.[2] 오리를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씻은 뒤 꽁지 위로 칼집을 조금 낸 다음 내장을 빼낸다. 그리고 흐르는 물에 핏기를 없애면서 깨끗이 씻어낸다. 오리의 꽁무니 안쪽에 있는 노란 기름 덩어리를 잘라내고, 뼈에 붙어 있는 찌꺼기들 역시 깨끗이 씻어내야 누린내가 나지 않는다. [3] 오리백숙은 좋은 재료도 중요하지만, 신선한 약수가 맛과 영양을 좌우한다. 신선한 약수를 사용하면 오리 육질을 부드럽게 하거니와 맛도 고소하고 담백하다. 야외활동지에서 주위의 약수를 길어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4] 각종 한방 재료를 준비한다. 각각의 한약을 삼베 주머니에 골고루 넣은 뒤 오리뱃속에 집어넣는다. [5] 한방 재료가 담긴 오리와 양파, 마늘, 대파, 소량의 생강을 큰 쇠솥에 넣는다. 솥에 넣을 물은 오리의 가슴 부위까지 잠길 정도로 붓는다. 단 가슴고기 쪽을 아래로 향하도록 주의할 것. 이유는 가슴고기 쪽의 살이 더 두꺼워 익히기에도 좋거니와 뒤집어서 익히면 뱃속 한 곳에 물이 고이기 때문이다. [6] 냄비와 솥 사이에 신문지를 깔아 얹어준다. 그 위에 무거운 돌을 올린 뒤 100~150분 정도 충분히 끓여준다. 센 불에서 1시간, 중간 불에서 40~50분 끓이면 된다. 돌을 얹는 것은 가정에서 흔히 사용되는 압력밥솥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밥솥 내의 압력을 높이면 물의 끓는점이 높아지고 쌀이 완전하게 익혀져 밥맛이 훨씬 좋아진다. 따라서 중간에 뚜껑을 여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7] 시간이 되면 뚜껑을 열고 오리를 꺼내 접시에 담아두면 오리백숙 완성! 삼베 주머니에 담긴 약초를 꺼내어 쇠솥 안에 다시 넣는다. 육수는 약한 불에 10~20분 정도 더 끓여서 먹고, 오리밥에서 만들어 둔 소스를 준비해 오리백숙과 함께 먹는 것도 괜찮다. 오리 리조또메인 재료 한방 오리백숙의 육수, 오리 가슴살, 쌀 160~200g, 다진 양파 1/2개, 다진 마늘 1/2숟가락, 소금,후추, 파마산치즈, 오리알 1개, 소량의 다진 청양고추 3개샐러드 재료 파, 양파, 부추소스 재료  간장 2숟가락, 3배식초 2.5숟가락, 설탕 1숟가락,물 10숟가락, 정종 1/2숟가락인원 3명 기준 조리 시간 30분 난이도 ★★★☆☆ 오리 리조또, 이렇게 만드세요[1] 파, 양파, 부추를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서 먹기 좋게 썰어준다. 양파는 매운맛 제거와 갈변 방지를 위해 반드시 흐르는 물에 헹군 다음 물기를 꼭 짜서 찬물에 넣어둔다. 양파를 최대한 가늘게 채 썰어 찬물에 1분간 담가두는 것도 매운맛 제거에 도움이 된다.  [2] 간장, 3배식초, 설탕, 물, 정종을 각각의 정량에 맞게 고루 섞어준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와사비 혹은 겨자를 더해도 좋다. [3] 쌀을 2~3번 씻어서 찬물에 불린 다음 소쿠리(체)로 건져 내어 물기를 뺀다. 오리알의 노른자를 소량의 물과 골고루 잘 섞어 준비한다. [4] 팬을 달군 후 다진 양파, 다진 마늘, 소량의 소금을 넣고 센 불에 고루 볶아준다.  [5] 기름을 두른 후 쌀을 넣은 다음 양파가 투명해질 때까지 볶는다. 센 불에서 어느 정도 볶다가 쌀이 익으면 한방 오리백숙의 육수를 조금씩 넣어주면서 천천히 볶는다. 그리고 육수가 졸 때쯤 다시 육수를 넣는 단계를 여러 번 거치다 보면 밥이 먹기 좋게 익는데 이때 파마산치즈와 소금으로 간을 한다. 그리고 오리알의 노른자를 넣은 뒤 다시 한번 고루 섞어준 다음 다진 청양고추와 후추를 뿌리면 오리 리조또(볶음밥) 완성.[6] 오리 가슴살의 물기를 제거한 후 소금과 후추를 골고루 뿌린다.[7] 팬을 달군 뒤 가슴살이 아래를 향하도록 놓고 익혀준다. 갈색 빛이 돌면 뒤집어서 다시 익혀준다. 적당하게 익었다 싶으면 육질의 부드러움을 살려주는 소량의 맥주를 부어서 잘 조려준다. 고기 안이 잘 안 익었을 경우에는 오리백숙 육수를 넣고 구워주면 타지 않을 뿐 아니라 더욱 깊은 향이 묻어난다. [8] 앞서 준비해 둔 채소와 소스를 골고루 버무려준 뒤 리조또와 가슴살을 곁들이면 오리 리조또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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