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기흥 인터내셔널 이계웅 대표, "아시나요? 탈.. 2015-11-10
최근 국내 수입차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회사가 있다. 바로 애스턴마틴과 맥라렌의 공식 수입원인 기흥 인터내셔널이다. 기흥 인터내셔널은 현재 여느 대형 수입차 회사 못지않게 활발히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올해 봄, 두 브랜드 론칭과 동시에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3,300㎡ 규모의 전시장 및 서비스센터를 오픈해 밴티지, DB9, 뱅퀴시, 라피드 등 애스턴마틴 전 라인업과 맥라렌 650S를 공급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두 브랜드를 트랙에서 즐길 수 있는 화끈한 이벤트까지 기획하고 있다. 대체 이런 원동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기흥 인터내셔널의 이계웅 대표이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자동차 업계에 뛰어든 이유는 간단해요. 우리의 목표는 바로 탈것으로 고객을 행복하게 하는 것. 우리는 우리가 손대기 시작한 브랜드만큼은 제대로 소개할 자신이 있답니다. 브리티시 럭셔리카와 브리티시 스포츠카는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장르죠. 그래서 우리가 시작하기로 했어요. 왜 하필 탈것이냐고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니까 더 열심히, 잘 할 수 있는 분야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지요." 기흥 인터내셔널은 사실 탈것에 능숙한 회사다. 이미 할리 데이비슨을 국내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수입 첫해(1999년) 84대에 불과했던 판매량을 지금은 2,000대 이상까지 끌어올렸다. BMW 모터라드가 뒤를 쫓고 있긴 있지만, 할리 데이비슨은 여전히 650cc 이상 대배기량 바이크 시장 부동의 1위다. 이런 성공의 배경에는 기흥 인터내셔널만의 독특한 전략이 있었다. 그들은 판매에만 집착하지 않았다. 수많은 이벤트를 통해 할리 데이비슨 마니아를 양성했다. 문화를 전파하니 판매량은 자연스레 늘었다. 또한 기흥 인터내셔널은 자전거 분야에서도 폭 넓게 활약하고 있다. 대표적인 브랜드는 스톡(STORCK) 바이시클이다. 아울러 기흥 인터내셔널은 피렐리 타이어의 가장 큰 국내 딜러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핵심은 행복한 경험의 전달이계웅 대표는 자동차 시장에서도 할리 데이비슨과 비슷한 전략을 이어갈 생각이다. "저는 모터바이크 시장과 자동차 시장이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퀴가 4개고 가격이 조금 더 비쌀 뿐이죠. 중요한 건 고객에게 행복한 경험을 전달하는 거예요. 바퀴 달린 것이 주는 기쁨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우리는 제품을 팔기 위해 마케팅에 투자하기보단 우리의 제품을 구입한 고객에게 즐길거리를 선사하는 데 더 많은 돈과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객과의 관계가 구매 시점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지요. 자동차 비즈니스도 이런 식으로 진행해 나갈 겁니다. 트랙 이벤트, 팸 투어 등 재미있는 게 많잖아요? 브랜드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드리고 싶어요."이계웅 대표 역시 이 두 브랜드에 푹 빠져 있다. 왜 맥라렌과 애스턴마틴을 선택했냐는 질문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단숨에 이야기를 쏟아냈다."유러피언 럭셔리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대변되죠. 예술도 마찬가지이고요. 반면 영국은 '피시 앤 칩스'를 대표 음식으로 내세울 정도로 서민적이에요.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애스턴마틴, 롤스로이스, 벤틀리, 재규어 등 가장 럭셔리한 자동차 브랜드들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이는 영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영국은 산업혁명과 식민지 지배를 통해 생겨난 부자들을 오래전부터 인정해왔죠. 왕권이 작위도 줬어요. 하지만 프랑스 등의 부자들은 왕족과는 어울릴 수 없었지요. 자연스레 영국의 부자 문화가 더 발달될 수밖에 없었죠. 이게 바로 애스턴마틴 같은 럭셔리 브랜드의 탄생 배경이에요. 맥라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산업혁명 같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추진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브랜드랄까. 맥라렌은 기존 수퍼카 브랜드들이 만들어 놓은 세그먼트를 흔들고 있어요. 굉장히 혁명적이죠. 생각해보세요. F1 팀 대부분이 왜 기술 개발을 런던에서 할까요? 전 이런 영국이라는 나라를 다른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자동차산업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이런 영국의 럭셔리 문화와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결정체들을 국내에 제대로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국내에서 맥라렌과 애스턴마틴의 전망은 생각보다 밝다. 판매도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특히 맥라렌은 같은 기간 내에 전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이 팔렸다. 하지만 이계웅 대표는 아직 판매에 집착할 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 제가 할 일은 고객이 조금 더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거예요. 3억원짜리 차를 사면, 3억원어치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물론 가장 시급한 건 AS망 구축이죠. 모든 자동차 회사가 그렇듯, 무작정 서비스 센터부터 늘려나갈 수는 없는 만큼 픽업 서비스 운영 등을 통해 고객이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판매 목표요? 지금은 일본의 20% 수준입니다. 마음 같아선 33% 이상으로 잡고 싶지만……. 일본에서 맥라렌의 연간 판매량은 약 90대, 애스턴마틴의 연간 판매량은 180대 정도입니다." 바퀴 달린 모든 것을 사랑하기에이계웅 대표는 인터뷰 동안 '가치 전달'을 여러 번 강조했다. 고객이 브랜드를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만들고, 그로 인해 고객이 행복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는 게 핵심이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그 자신이 탈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전거, 모터바이크, 자동차 등 바퀴 달린 모든 것에 '미친' 사나이다. 자전거의 경우 시합에도 여러 번 참가했다. 24시간 600km 레이스에 출전한 적이 있고, 12시간 레이스에서 380km를 달린 적도 있다. 서울 남산의 자택에서 경기도 용인의 회사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일도 다반사다. 날씨가 좋을 때는 애스턴마틴 뱅퀴시 볼란테를 몰고 드라이브를 나가고, 맥라렌 650S를 타고 서킷도 종종 간다. 할리 데이비슨 같은 모터바이크는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레이싱 카트까지 즐긴다.  물론 이런 취미생활 때문에 병원 신세도 여러 번 졌다. 장기간 입원 때는 모터바이크 업계에 그의 신변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헛소문까지 돌았을 정도다. 손가락이 부러진 건 부상 축에도 끼지 못한다. 쇄골이 두 번이나 부러졌다. 골절된 골반 뼈가 붙자마자 바로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는 이야기에 기자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어려서부터 휘발유 냄새가 좋았어요. 모터바이크를 타던 아버지 덕분에 3~4살 때부터 연료탱크를 안고 모터바이크 위에 올라탔거든요. 제초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분당 회전수를 가늠한 적도 종종 있다니까요." 그는 정말 못 말리는 '환자'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탈것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애스턴마틴, 맥라렌 같이 소중한 브랜드를 책임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기흥 인터내셔널을 바라보는 시선도 사뭇 달라졌다. 그가 앞으로 이끌어나갈 맥라렌과 애스턴마틴이 국내 자동차 시장을 어떤 방식으로 개척해 나갈지가 기대된다.글 류민 기자사진 김종휘
RX 수석 엔지니어 - 카츠다 타카유키 2015-10-27
“본질은 계승하되 디자인은 과감해졌다” Q. 지난 세대의 RX보다 변화의 폭이 크다. 그 배경은?A. 1~3세대까지 RX는 일관성 있는 디자인 테마를 유지하며 진화해왔다. 그러나 이번 4세대는 디자인 팀에게 더 큰 자유를 허락했다. 보다 과감한 변화를 위해서였다. 물론 디자인에 좀 더 힘을 줬을 뿐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RX의 본질은 고스란히 계승했다.  Q. 3열 시트를 더한 7인승 RX를 출시할 계획은?A. 이번 RX는 이미 3세대보다 휠베이스를 늘였다. 추가로 3열을 얹을 계획은 아직 없다.  Q. SUV인데 너무 도심 주행에 치중한 건 아닌가?A. 사실 렉서스 RX 고객 대부분이 도심에서 탄다. 때문에 매끈하게 포장된 도로 주행에 집중해 개발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눈길이나 진흙 등 험로 주행성능 또한 이전보다 높였다.  Q. 450h의 경우 ES처럼 2.5L 엔진을 얹으면 연비가 더 좋지 않았을까?A. 우리가 해당 차종에 맞는 엔진을 결정할 땐 차의 무게와 성능, 균형 등을 모두 고려한다. RX의 경우 V6 3.5L가 가장 잘 맞는다고 판단했다.  Q. NX는 시장에 따라 두 가지 범퍼를 달았다. RX는?A. 북미 시장에서는 SUV로 분류되려면 어느 수준 이상의 접근각을 만족시켜야 한다. 이 때문에 북미용 NX는 아래턱을 좀 더 가파르게 깎았다. 반면 RX는 최저지상고가 상대적으로 넉넉해 북미용을 따로 디자인할 필요가 없었다. 전세계에서 같은 모습으로 판다.​
카라이프 포커스 - 조동필 박사 2013-11-30
“자동차 덕분에 안성에서 살지요”    경제학계에서 큰 봉우리를 이루는 훌륭한 학자이면서 ‘그무엇’을 남기는 명강의로도 너무나 유명한 조동필 박사.그는 8년전 고향인 경기도 안성에 안주함으로써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모든 도회인의 꿈을 실천했다.그리고 바로 자동차가 이 전원생활과 도심권을 이어주는 멋진 고리임을 증명했다,“17년 전인가 조박사는 코티나 자동차를 한대 구입해 그 시절로서는 아주 드물게 대학교수로 자가용을 탈 수 잇구나 라는 세인의 반항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조 교수의 검정 고무신 겨울인데도 남촌(南村) 조동필 박사의 거처인 안성 야시원 뜰에는 안온한 햇빛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그 햇빛은 뜰 한쪽에 세워져 있는 하얀색 레코드 로얄 위에도, 노교수가 신고있는 검정 고무신 위에도 똑같이 투명하게 부어지고 있었다.하얀색 레코드 로얄은 조동필 교수가 안성에서부터 출퇴근을 할 때 그를 실어다 주는 바쁜 달구지 (그의 표현이다)라면, 검정 고무신은 한편으로 유유자적 전원생활을 즐기는 그의 삶의 한 상징처럼 보였다.지난 8월, 3-년 훨씬 넘게 몸담아 온 고려대학교를 정년 퇴직했으니 그는 확실히 노년에 접어든 셈이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젊었고 열정적이었다. 한 달 내내 빽빽한 스케줄만 보더라도 그가 아직도 얼마나 젊고 정열적으로 활동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1주일에 하루는 고려대학교에 강의가 있고 또 이틀은 이리 원광대학에 출강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텐데 그 밖에도 특별한 강연 스케줄이 밀려들어 도무지 쉴 틈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도 가끔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휴식을 취하기에 더없이 멋진 9천평의 농원을 가지고 있고, 1만여 권이 넘는 장서가 아래 위층에 꽉 들어찬 근사한 서재도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 그를 마치 할아버지 처럼 따르는 갑돌이, 귀염이 등의 이름을 가진 개들과 유유자적한 세월을 보내고 서재에 파묻혀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라라는 희망은, 아직은 희망 사항으로 끝나곤 한다.몇 년은 더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으니 조금 더 세월이 흐른 뒤에나 희망사항을 실천하기로 그는 작정하고 있다.바쁜 스케줄 덕분에 그의 자동차는 역시 휴식을 취할 틈이 별로 없다.  1시간30분의 통근거리17년 전인가 조동필 박사는 코티나 자동차를 한 대 구입해 그 시절로서는 아주 드믈게 교수가 자가용을 타고 다닌다는 약간의 반항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남보다 일찍 자동차가 필수품임을 절감한 데서 비롯된 일이지 무슨 사치나 허영을 위해서는 결코 아니었다. 그의 호방하고도 서민적인 인품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조박사가 고향인 안성에 집을 마련한 것도 일찍 자동차의 필요성을 절감해, 그것을 십분 이용해 온 사람만이 가능한 용기였을 것이다.그가 안성에 야시원을 마련한 것은 8년전, 그떄만 해도 누구도 서울에서 그렇게 먼 곳에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무렵이다, 조박사에게는 수많은 제자들이 있다. 그의 가장 큰 보람이자 사랑이다. 안성에서 서울 까지는 꼬박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그것도 교통체증이 심하지 않을 떄가 그 정도이다. 지금도 이 정도의 통근 거리는 약간의 모험을 필요로 하는데 조박사는 이미 8년 전에 그 일을 단행한 것이다.자동차 인구가 점점 늘어나면서 조만간 그 정도의 거리는 일반적인 통근 거리가 되리라는 전문가의 견해이고 보면 조박사는 시대를 앞질러 살고 있다고 할까.“자동차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지. 그런 점에서 나는 내 차에 정말 애정을 가져요. 잘난 사람 많고 북적대기만 하는 서울이 무에 좋겠소? 이곳에 있으면 그저 조용하지.” 조박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야시원 뜰은 겨울날 오후의 햇빛 아래서 조는듯 조용하기만 했다.경제학계에서 큰 봉우리를 이루는 훌륭한 학자이면서 불을 뿜는 듯한 명강의로 수많은 제자들 사이에서는 가장 존경받는 스승이기도 한 조동필 박사. 그러나 야시원 뜰에서의 그는 오히려 평범한 촌로의 편안함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그리고 실제로 그런생활 자체를 그는 사랑하고 있었다. 그는 틈이 나는대로 고향의 촌로들과 어울려 막걸리 잔을 주고받고 환담을 나누며 시간보내기를 좋아한다. 야시원의 집 뒤를 둘러싸고 있는 수림(樹林)과 잘 가꾸어진 정원의 어느 한끝에도 조박사의 손길이 스치지 않은 것이 없다. 이곳에서 조박사 내외는 마치 어린아이들 처럼 투명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게 시골에서 사는 즐거움의 하나지. 그리고 시골에는 성급함이 없거든. 그게 좋아요. 난 차로 하루에 1백km이상 달릴 떄도 있을 만큼 여기저기 바쁘게 다니지만 도로에서 마주치는 다른 차들을 보면 가끔 안타까울 때가 많아.” 바로 성급함 때문이라는 것이 조박사의 말이다. “사람들이 왜 모두 그렇게 바쁘고 조급하게 서둘러 대는지 모를 일이에요. 앞차가 가다가 뻔히 신호대기에 걸려 서 있는걸 알면서도 위에서 클랙슨을 울려대거든, 외국에서는 절대로 그러는 법을 내가 못 봤어요. 거기다 지독한 끼어들기, 차선 무시하기, 어디 가슴 서늘한 일이 한둘이라야지. 이게 다 우리나라의 조급한 국민성 떄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면 자괴감마저 느껴질 지경이야.” 주거지는 도심권 밖이어야조박사는 특히 요즘의 젊은 오너 드라이버들은 성급함을 버려야 한다고 당부한다.“세상에 성급하게 서둘러 될 일은 하나도 없지만 특히 자동차 운전은 1~2분 빨리 가겠다고 서둘러서는 안돼요. 그게 목숨과 직결되는 일인데 그렇게 함부로 할 수 있겠소?”그래서 그는 서둘지 않고 천천히를 자동차의 운전의 제1과 라고 자주 말한다.운전 뿐 아니라 모든일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조박사는 생활에서도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조박사가 맨 처음 야시원에 거처를 정했을 때 그곳은 드넓은 황무지에 불과했다. 그는 서둘지 않고 천천히 황무지를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기 시작했다.입구에서부터 저절로 탄성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지금의 야시원은 그렇게 그의 손길이 안 간 곳이 없을 만큼 정성을 들여 탄생시킨 것이다.집 뒤를 둘러싸고 있는 빽빽한 수림(樹林)과 잘 가꾸어진 정원의 나무 한 그루, 돌 하나에도 그의 손끝이 스쳐가지 않은 것이 없다. 슬하의 6남매는 모두 장성해 각기 독립해 살고 있어서 이곳에서는 조박사 내외만이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천진하고 투명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전원생활은 모든 도회인의 꿈이고 실제로 오너 드라이버들이 늘어나면서 도심권 박으로 주거지를 정하는 것이 요즘의 추세이다.그러고 보면 조동필 박사의 야시원 생활과 그의 카라이프는 앞으로 오랫동안 모든 전원생활을 꿈꾸는 도회인들에게 하나의 상징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게재 1984년 12월호]
인기인의 카라이프 - 이주일 2013-11-30
​가족 만큼 소중한 그의 동반자 '도요다 크라운' 이주일 그의 결코 미남이 아닌 외모와 잘생긴 82년형 도요다 크라운 자동차는,그러나 멋지게 어울리며 서로 화합한다.  늘 바쁜 스케줄에 쫓기는 그에게 자동차는 거의 유일한 휴식처이기 때문이다.​  ​82년형의 잘생긴 검은색 도요다 크라운에서 백색의 슬랙스와 점퍼스타일 자켓을 멋지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내린다. 그는 그 흑과 백의 강렬한 조화 덕분에 순간적으로 아주 멋져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곧 알게 된다. 그는 결코 멋지고 잘생길 수 없는 남자임을. 왜냐하면 그는 바로 다름 아닌 이주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못 생겼다는 것이 전매특허처럼 되어 있는 사람이다. 아마도 그가 가령 신성일이나 알랑 드롱쯤으로 생겼더라면 오늘의 수퍼 스타 이주일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중은 자기들의 수퍼스타가 미남도 아니며 번듯하지도 않다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를 느끼며 더 열광하는 기묘한 집단이기도 하므로.​  ​​소속 프로덕션에서 보너스로 그 근사한 도요다 크라운 자동차를 선물했을 때,그는 “이건 타고 다닐 사람보다 자동차가 훨씬 잘생겼군” 이라고 중얼거렸다던가. 하지만 마음 놓아도 좋을 것이 그 멋진 자동차와 이주일 자신은 서로 너무 걸맞는다. 그는 확실히 미남은 아니나 누구보다 대중을 사로잡는 마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그는 대단히 지적이며,첨예한 감성의 소유자이다. 그는 늘 대중을 웃기는 코미디언이지만, 그것은 밖에서 보았을 때의 그일 뿐이다. 그는 오히려 잘 정돈돼, 깊이 있는 내면을 간직한 인물이다. 그는 20년 이상 수석에 심취해 오고 있는데 이미 상당한 경지를 넘어섰음을 아는 사람은 안다.​     그가 이처럼 수석이나 분재에 깊은 경지를 나타내는 것은 그의 침잠된 내면세계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그의 기발한 우스개와 해학 역시 바로 그러한 내면의 세계에서부터 출발하므로 우리에게 늘 웃음 이상의 뭔가를 던지는지도 모른다.​연예인 중에서 가장 세금을 많이 내는 인물로 뽑힌 그는, 세금을 많이 내서 바쁜 건지 바빠서 세금을 많이 내는 건지 그 자신 알쏭달쏭할 만큼 진짜 바쁘다. MBC 라디오의 ‘세월따라 노래따라’와 MBC TV의 '텔레비안 나이트’ 등의 고정 프로 외에도 그는 빈번한 방송출연 횟수를 기록하고 있고 각종 메스컴의 인터뷰 요청은 언제나 밀려있다. 그 외에 몇 곳의 밤무대와 잦은 지방공연 등 정말 얼핏얼핏 꿈속에서나마 무명의 시절이 그리울 만큼 바쁜 나날의 연속이다. ​덕분에 그에게 자동차 안은 거의 유일한 휴식처인 셈이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움직이는 동안 차 안에서야 그는 비로소 숨을 크게 쉬고 편안히 쉰다고 할까. 생각도 그는 이때 차 안에서 한다. 가장 차분해질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이래저래 그의 자동차는 애지중지 아낌을 받는, 가족 다음으로 소중한 그의 동반자인 셈이다.[게제 1984년 12월호]​​
인기인의 카라이프 - 조용필 2013-11-30
벤츠와 함께 뛰며 노래하는..  인기가수 조용필이 두 달 전 새로 바꾼 차, 벤츠 280SE. 그의 피로를 포근히 감싸주고, 그의 바쁜 스케줄을 따라 어디든지 달려준다. 그래서 그는 오로지 노래에만 열중한다.  포장마차와 그 앞에 선 벤츠자정이 넘은 시간, 영동 골목의 한 포장마차 앞에 벤츠가 서있다. 연기 피어오르는, 엔진도 없는 포장마차와 매끈한 벤츠 280SE (80년 형)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차 주인은 잠깐 어디 간 모양이다. “누군지 차암 좋겠다!” 차를 힐끔 쳐다보며 지나던 행인이 한마디 내뱉는다.이토록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차를 버려둔 채, 차 주인은 벌써부터 또 다른 차 안에 태연히 들어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턱을 괴고 안방에서, 지직 거리는 버스의 스피커에서, 거리의 한 모퉁이 레코드 가게에서, 텔레비전 특집 쇼에서, 요란스런 일본의 공연무대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는 남자. 조그만 입으로, 그 작은 몸집 어디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열정을 토해내며 절규하듯 노래하는 남자, 오로지 노래만을 위해 살아가는 서른 다섯 먹은 남자. 후리후리하지도, 잘 생기지도 않은 흔히 길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그런 형의 남자. 그러나 14살,15살, 고만고만한 여학생들의 눈에는 마냥 귀엽게만 보이는 예쁜 남자. 그는 화려하게 말할 줄도 모르고 크게 웃을 줄도 모른다. 슈퍼스타에게 쏟아지는 갈채와 환호에도 생긋, 그것도 잠시만 웃다가는 그만, 오로지 노래로만 말하고, 웃고, 운다.그가 넓은 무대에서 노래할 때, 청중석은 소리없이 흐느끼다가는 착 가라앉고, 그러다가는 순식간에 활화산처럼 타오른다. 그 순간 그는 현란한 조명 아래로 떠오르는 별 하나가 된다. 그러나 그것조차 모르는 그는 그저 노래에만 작은 몸을 바칠 뿐 이다. 카바이트 불빛이 총총하게 새어나오는 포장마차 속에서 그는 코미디언 이주일과 소주를 건네고 있다. 무대에서, 텔레비전 에서 보던 얼굴과는 달리, 피로와 허기에 지쳐 있어 어딘가 낯설어 보인다. 무대에서 노래에 온 정열을 다 쏟아 부은 뒤의 허탈감을 달래려는 듯, 거침없이 독주를 들이키다가 반갑게 기자를 맞는다.“벤츠요? 그저 차일 뿐이죠.” 찬 이슬을 흠뻑 뒤집어 쓴 채, 주인이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벤츠 가 들어도 그만이라는 듯, 덤덤한 목소리다. 사실, 그에게는 겨우 두 달 전부터 사귀어온 벤츠 보다는 9년전, 면허를 따고 처음 탄 포니가 더욱 정답다. 그 후 피아트 124를 거쳐 레코드 2대, 일제 도요타 ‘셀리카’, 피아트 132, 그리고 얼마 전까지는 그라나다를 탔다. 그 모든 차에 소중한 추억이 아로 새겨져 있다. 그의 절망과 희망, 그리고 영광을 싣고 함께 달려준 기특한 녀석들 이므로,       새벽공기를 함께 마시는 차 그의 술 실력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특히 요즈음은 곯아떨어질 만큼 마셔대도 정신이 말짱하니 탈이다. 그렇다고 새벽 2시라는 이 시간에 더 마실수도 없다. 서부개척시대의 차와 이별을 한다.벤츠가 그를 반긴다. “어서 저를 데리고 가세요.” 그러나 정신은 말짱해도 술을 마신 건 사실. 의자를 뒤로 제끼고 눈을 감는다. 술 기운이 떨어질 때까지 그와 차는 새벽 공기를 마신다.카폰의 벨이 새벽 공기를 가르고 울린다. 받기 싫다. 오늘의 약속을 확인하는 전화일 테니까. 지금은 그냥 일을 잊고 새벽공기를 마시고 싶을 뿐이다.[게재 1984년 11월호]
카라이프 포커스 - 엄정행 2013-11-30
“나 (車)도 당신의 노래입니다.”  그는 노래를 위해선 무대를 가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의 노래는 두메산골 낡은 마을회관 에서도 들을 수 있다.힘겹게 사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83년형 그의 스텔라 는 그가 가는 곳이면 언제나 ‘가고파’다   ‘오 ~ 내 사랑 목련화야’아무리 ‘ 빌리진’ 만 나왔다 하면 먹는것도 귀찮아 하는 요즘 애들일지라도,또 젓가락 장단 맞추는 아저씨일지라도 ‘오 내 사랑 목련화야’ 이 한 귀절에는 걸음을 멈춘다. 더우기 ‘ 목련화’ 를 수려하고 열정적으로 부르는 목소리기는 숨까지 멈춰지는 것을 느끼며 이내 그가 바로 ‘엄정행’ 이라는것 을 알아맞춘다. 성악가 엄정행(41세)씨의 하루는 등교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모교이자 일터인 경희대학교로 출발하기 위해 차문을여는 순간, 그는 아내의 심부름 하나가 떠올랐다.‘우리 윤아(국민학교 6년생)가 오늘아침 도시락을 두고 갔다고 그랬지?’ 엄정행교수는 하마터면 자신도 깜빡할 뻔 했던 끔찍한 막내 딸의 도시락이 생각나자 다시 아파트 엘리베이터의 벨을 누른다. 오늘 아침엔 유난스레 더딘 엘리베이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문이 열리면서 아내가 윤아의 도시락을 들고 허겁지겁 뛰어나온다.뜻밖에 아내와 아침 드라이브를 나서게 됐다. 오늘 따라 시동이 더 잘 걸리는 것만 같고 아침안개마저 반갑다.결국 도시락을 팽개치고 오래간만에 아내와 데이트하는 기분이 든다. 윤아네 학교까지 먼 거리는 아니지만 차 속에서 아내의 격려를 받고 보니 오늘은 모든 일이 다잘 풀릴 것 같은 예감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그런데 오른쪽 백미러에 비친 아내의 얼굴에 벌써 잔주름이 생긴 것이다. 그러고 보니 퇴근 때마다 곱게 화장을 하고 반겨준 아내의 얼굴에만 익숙해졌지 온갖 풍상을 함께 겪은 아내의 화장기 없는 얼굴이 낯설다. 서울대 음대에 다니던 아내와 만난 것 은 전국대학연합 합창단의 같은 단원으로 활동 하던 때이다.세 상이 온통 사랑으로만 가득 차 있던 3년의 열애기간을 거쳐 대학원을 졸업하던 1968년에 결혼,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내는 엄정행교수 몫의 인생에만 충실해 주었다.계속 노래를 했다면 어쩜 그보다도 더욱 촉망받는 소프라노가 됐을 텐데 아내는 결혼과 함께 음악공부를 포기하고 엄정행 교수의 노래에만 산다. 젊고 가난했던 신혼시절, 팔자에 없는 장사(다행하게 악기 장사였지만)틀 시작했을 때도 아내는 엄정행 교수의 노래를 위해 온갖 고생을 억척스레 이겨냈다. 결국 오늘의 엄청행 교수는 결혼을 통해 진정한 음악과 만날 수 있었고,아내의 희생과 함께 성악가로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지금도 그래서 그는 아내의 고운 음성만 들으면 가슴이 아파온다. 하지만 아내 이미혜 자(40세)씨는 남편 엄정행교수의 노래에 실려 더욱 아름답고 성스러운 허밍으로 조화의 기쁨속에 살고 있다.  “그이의 탁 트인 목소리처럼 마음씨 넓은 스텔라'’어느덧 윤아네 학교 앞에 다다랐다. 아내를 내려주고 방향을 돌려 경희대로 향한다.‘ 아빠가 학교 앞까지 왔다가 그냥 간 것을 알면 윤아가 섭섭해 하겠지?’말 수가 적고 새침한 편인 윤아는 피아노를 잘치고 노래도 잘 부르지만 남 앞에서 노래부르는 것을 싫어하는 까다로운 성격이다. 하지만 틈만나면,“ 아빠! 노래 불러줘” 하며 애교를 부리는 것으로 봐 아빠가 자랑스러운 눈치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엄정행교수는 왈칵 딸이 보고 싶어,딸이 공부하는 모습만 이라도 교실 유리창을 통해 보고 싶지만 갈 길이 너무 바쁘다. 그 대신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올 것을 결심한다. 손을 뻗어 FM을 튼다. 그는 이제부터 KBS 제 1FM을 모니터하기 시작한다. 현재 MBC FM에서 ‘안녕하십니까? 엄정행입니다.’ 를 6년째 진행해 오고 있는 그는 그래서 틈만 나면 FM 에 귀를 기울인다. 틈이나야 운전할때 차속에서 뿐이지만. 그는 6년 동안 방송프로를 진행해 오면서 한번도 펑크를 내지 않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새벽6시 부터 나가는 ‘안녕하십니까? 엄정행 입니다.’는 녹음프로지만 부득이한 경우에도 그는 모두가 퇴근한 방송국에 홀로 남아 반드시 그 이튿날 치를 녹음하고 가는 지나치게 책임감 강한 사람이다. 어느 새 차는 청량리로터리에 접어들었다. 윤아네 학교를 들러오는 바람에 다른 때 보다 조금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차가 이리 저리 밀려 있다. 마음 같아서는 벌써 교수실 까지 ‘획’ 달리고 싶지만 6년 전 부산에서 당했던 교통사고 생각이 나자 오히려 속력을 줄였다. 그 때는 처음 운전면허를 따고 엉금엉금 거리던 초보운전시절이었다. 아버님 생신을 맞아 고향에(그의 고향은 통도사로 유명한 경남 양산) 내려갔다가 부산에 살고있는 누나네 집으로 가던 도중,밤길에 낯선 곳에서 속력을 내다가 충돌한 사고였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그 때의 기분은 잊을래야 잊 을수 없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그와 그의 아내는 입솔 끝에 똑같이 상처가 남아 있다. 하마터면 우리는 가지런하고 고른 치아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맑고 운치있는 목소리를 영영 듣지 못할뻔했다.   미성(美聲)에서 특음〈得音)의 경지로그의 스텔라는 끼어들려는 다른 차를 훌훌 먼저 보내고 천천히 달리기 시작한다.정말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이름다운 경희대 캠퍼스에 도착하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크라운 관으로 장식한 음대 주변에도 가을은 저물고 있다. 차바퀴에 밟힌 낙엽의 잎사귀를 집어든다. 그러고 보니 그도 올 해가 지나면 마흔두살이 된다. 그는 이제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엄정행’ 의 미성에서 언제나 스스로 찾고 있는 득음(得音)의 경지를 소유하고 싶어진다.  부산 동래고등학교 시절,그는 노래 잘하는 엄정행이가 아니라 운동 잘하는 다부진 소년이었다. 배구선수로 전국대회에 출전할 정도의 실력파였다. 하지만 졸업을 한달 앞두고 그는 한걸음만 내딛으면 닿을 수 있는 운동선수의 길을 버리고 아득하고 험난한 성악과로 진학한다. 이미 그에게는 양산중학교시절,영남예술제에 참가해 성악부 특상을 받았던 충분한 자질이 있었기에 한달만에 경희대 음대로 진학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23년. 그는 33회의 독창회와 300여회 의 발표회를 가졌다. 그는 32세에 독집 음반을 내놓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는가 하면,75년부터 알기 시작한 가곡 붐을 타고 클래식을 대중에게 가장 가깝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모두가 유학을 가야 성공한다는 성악분야에서 유일하게 이 땅에 남아 외롭게 공부한 그가 오늘날,가장 찬연한 성 악가 가 되었다. 수업시간만큼 그는 참으로 사람 좋아뵈는 그 얼굴에 웃음 한조각 띄우지 않고 학생들의 레슨을 봐준다. 그래서 그는 학생들한테 어울리지 않게 제일 엄격한 교수님으로 통한다. 하지만 누가 군대에 간다거나 수학여행을 떠날 때 같이 가고 싶은 선생님도 바로 그다. 아마 음악가 특유의 날카롭고 예민한 속성은 내재한 채 사식에서는 연신 웃는 낯으로 대동}는 그의 인간미가, 악착같이 보강을 하는 지독한 그를 가장 인기높은 교수로 만들었을 것이다.  실감나는 남자,실감나는 車열여섯명의 제자를 골고루 보}주고 그는 녹음을 위해 정동 MBC 로 차를 향한다. 음대에서 교문 앞까지 5분이 걸린다.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오는 학생들에게 그는 꼭 차를 세우고,진한 경상도사투리로 “한번 놀러 오냐! ’‘를 연신 외치기 때문. 급기야는 하숙집 A로 간다는 그의 애 제자를 차에 태우고 집 앞에 데려다 주고는 속력을 낸다. 방송녹음이 끝나면 방송국 사람들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술좌석에도 그가 끼어야 흥이 돋고 무엇보다 그의 넓은 스텔라가 언제나 술에 취한 사람들에게는 자가용같이 느껴지므로. 그는 오늘 술좌석에서도 간곡하게 제발 한 곡만 부탁하는 사람들에게 흘러간 노래 ‘38 선의 봄’ 을 불러주어 의외의 박수와 환호를 한 몸에 받았다.  그는 분위기를 알고 가끔씩은 ‘파격’ 의 멋을 아는 참으로 인간적인 남자다. 술에 취한 사람들을 한명씩 한명씩 바래다 주고는 그는 다시 원효로 산호아파트 집으로 돌아온다. 늘 그렇듯이 일찍 들어오겠다던 결심은 무너졌지만 그래도 마음은 뿌듯하다. 어느 새 아파트 단지내 불빛은 모눈종이 그래프처럼 점점이 불이 켜져 있지만 유난히 그를 기다리고 있는 그의 집은훤하다. 몸은 물 먹은 솜처럼 피로하지만 갑작스레 온 옴에는 기쁨의 에너지가 충천되고 그는 행복에 겨워 오밤중에 ‘ 빵빵’ 클랙슨 누르는 실수를 저지른다. 하지만 눈깜짝 할 사이에 이 실수를 철회하고 아파트를 올라서는 순간,온 식구들이 달려 나온다. 결코 작지않은 그 보다도 훨씬 키가큰 장남 윤상(중3)이가 엄마와 팔짱을 끼고 다정스레 그를 맞는다. 노래를 못한다는 것 빼고는 기계 만지는 것 을 좋아하고 곱슬머리인 것까지 그와 똑 닮은 윤상이. 그는 믿음직스런 윤상이와 어깨동무를 한다. 그의 팔이 아들의 팔보다 올라가 있다.  “아버지 이번 주말에 지방에 가셔야죠. 제가 차 봐드릴께요."카뷰레터 손질 정도는 할 수 있는 엄정행교수와 라디에이터를 살피는 것이 취미인 윤상이 와는 죽이 잘 맞는 친구같다. 그는 6년 동안 3대의 차를 바꿨다. 왜냐하면 그의 차는 1년만 넘어도 고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얼마나 그가 바쁜지를 말해주는 물증이기도 하다. 그의 노래가 듣고 싶다는 연락이 오면 그는 기동경찰대원처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차를 몰아 출동한다. 한번은 강원도 태백의 두메산골,낡은 마을회관 무대에서 그는 쉬임없이 노래부른 적도 있다. 그는 자신이 스스럼 없이 말하는 ‘시골촌놈’ 이기 때문에 시골의 흙을 잊지 못하며 성악가라고 고상한 것보다는 조금 시간이 나면 마음맞는 친구들과 실컷 술을 먹고 길거리에서 잠을 자보는 것을 소원으로 갖고 있는 기분 좋은 중년 남자다. 만일 앞으로 그런 날이 오면 그제서야 그동안 혹사당한 그의 차도 거리에서 쉬고 있겠지.엄정행교수. 그는 자신의 노래 만큼이나 참으로 실감나는 남자다. 언뜻 언뜻 비치는 그의 흰 머리카락처럼 1년만에 연륜을 느끼게 하는 그의 차역시.[게재 1984년 11월호]
윤보선 전 대통령의 카라이프 2013-11-30
“내가 처음 몰았던 피아트, 내가 사랑했던 폴크스바겐”  3.1 운동이 나기 전해 상해로망명,이어 영국 에딘버러대학으로 유학하면서 시작된 윤보선 전 대통령의 카라이프 . “나는 빠른 것도, 느린 것도 싫고 보통으로 달리는 것이 좋아.”안국동 8 번지 고풍 한옥의 잔디밭 정원에서 윤보선 전 대통령은 87년 동안의 카라이프를 회고한다. 영국 유학시절의 모습 10살 전 영국제 자동차를 타다안국동 8번지에 자리한 해위(海葦) 윤보선(尹潽善) 전 대통령의 고풍 한옥을 찾은 것은 10월 중순의 오후 4시였다. 중문을 들어서니 잘 손질된 파란 잔디가 시원스레 펼쳐진 넓다란 정원. 노신사 윤대통령은 그 속을 거닐고 있었다. 마당의 디딤돌, 사랑채의 기단(基壇)과 문살, 그리고 ‘국태민안(國泰民安)’ 이라 새겨진 현판, 이런 정물(靜物)들이 늦가을의 따스한 햇살과 어울려 그 분을 감싸고 있었다. “열살 전 백부님이 영국제 자동차를 샀지. 운전사가 없어 상해에서 중국인 운전사를 데려왔어.제복을 입고 집안 어른들을 태웠는데 어른들 몰래 태워달랬지. 집안을 도는 정도였지만…”윤대통령의 차와의 인연은 이렇게 어린 시절, 그러니까 구한말에 시작된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차가 들어온 때가 문헌상 1903년, 윤대통령이 1897년 생이니까 아마도 처음으로 차를 탄 것은 1905년 전후가 될 것 같다. 단정하게 진곤색 바바리를 입고 갈색스틱을 짚은 채 시종 정원을 거닐면서 60여년 전 중국 상해로 건너간 일, 이어 영국 에딘버러대학으로 유학간 시절의 카라이프를 들려 주었다. 체크무늬 상의에 빨간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회색 하의, 갈색 구두로 정장한 대통령은 87세의 고령으로는 보기 어렵게 정정했다. “당숙이 미국에서 자전거 를 처음 사갖고 와서 그결 즐겨 탄 것이 아마도 내가 바퀴를 탄 처음 일이 될거야. 어른 자전거여서 한쪽 발을 보디 사이로 넣고 페달을 돌리며 탔지.” 사람들은 신기한 자전거 를 보고 “윤씨네는 축지법을 쓴다”고 수군댔단다. 윤치호씨는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에 모두 능한 분으로 당대의 선각자였다. 윤치호씨는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에 모두 능한 분으로 당대의 선각자였다. 육당 최남선(崔南善)이, “개화(開化)란 낱말도 고전에서 나왔겠지만 그 분이 처음 썼다”고 말했을 정도로 시대를 앞어 간 가문이었다. 지난 날의 카라이프를 회고하는 안국동 8번지 자택 정원에서의 해위 마르세이유 거쳐 영국으로 선각자를 낸 명문에서 태어난 해위는 일본 동경(東京)에 건너가 윤일선(尹日善)씨와 집을 얻어 자취생활을 하며 공부를 하다가 귀국한다. 그리고는 3.1 운동 전 해에 중국 상해로 떠날 것을 결심한다. 19세 때의 일이다.그 무렵 국제도시 상해에는 손문(孫文)의 혁명으로 이룩된 중국 임시정부가 있었다. 밤낮 그곳 생각이 머리에 차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선친은, “목사가 되는 공부를 하라”고 하면서 중국이나 만주로 가는 것은 원치 않았다. 마침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선생이 상해로 갈 것이라는 얘기를 전해 듣고는 몽양을 찾아가 함께 가 달라고 부탁, 쾌히 승락을 받았다. 일행은 일단 일본의 큐슈로 건너가 나가사끼에서 배를 타고 상해로 건너갔다. 해위는 그곳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만나 ‘진단’ 이란 잡지 발행을 돕기도 했다.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해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들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이때 어른들은 아직 젊다 못해 어린 축에 드는 해위에게 “자네는 외국에 나가 공부한 다음 독립운동을 하라”고 권했다. 그는 여기서 영국으로 떠날 결심을 한다. 중국 여권을 얻어 중국 옷차림으로 일본 경찰의 거듭되는 검색을 피해 가까스로 42일만에 프랑스의 마르세이유를 거쳐 영국으로 건너갔다. 해위의 나이 22세 때의 일이다. 상해공원에서 20살 때의 모습 이태리제 ‘피아트컨버터블’ 몰다 영국 에딘버러 대학에 입학한지 2년뒤 그는 이태리제 검은색 ‘피아트 컨버터블’ 을 샀다. “스포츠형 승용차로 앞좌석 둘에 , 짐을 싣도록 좁게 마련된 뒷 자리에도 임시로 좌석 하나가 생기는 차였어.”값은 꽤나비싸 400파운드였다고 한다. 8,000명이나 되는 에딘버러 대학생 중 유일한 오너 드라이버였다.값도 값이려니와 유일한 오너라는 점에서 차 주인의 인기가 어떠했는지는 짐작이 간다. 모두들 부러워했다.이 차를 몰고 에딘버러 근교를 비롯하여 근방을 즐겨 드라이브 했다. 셀 모터가 없어 쇠막대를 손으로 돌려 시동을 걸어줘야 하는 3단 기어의 차였다. ‘네시’ 라는 이상한 수중동물이 산다는 네시호 에도 갔엇다. 그 무렵에도 네시는 수수께끼의 동물이었다.워즈워드의 수선화 시로도 유명한 호수지방, 하이랜드의 자연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워즈워드 보다는 로버트 번즈의 시가 더 인기 있었고, 그 보다도 아이반호의 작가 월터스코트의 작품이 가장 인기있었다. “지각없이 그랬지 않았나 생각해요. 오히려 면학에 열중해야 했었는데..” 해위는 젊은 시절을 이렇게 겸손하게 회고했다. 1920년대의 대 영제국은 유니온 책에 해질 날이 없었던 전성기였다. 그래서 영국인은 프랑스나 이태리 등 대륙 나라를 얼마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었다. 방학때 대륙으로 여행을 가면 어른들까지 영국 대학생이란 신분을 부러워하면서 아이들을 그곳에 유학 보냈으면 한다는 이야기들을 했다.“지금 생각하면 비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고생모르고 지낸 것이 지각없던 시절의 낭비지.” 어쩌면 나라 없는 유학생이 남들로부터 업수히 여김 받기 싫은 나머지 부린 호기였는지도 모른다. 영국 에딘버러대학 친구들과의 한 때. (맨앞이 해위)  중국에서 21살 때의 모습 에딘버러대학 때는 테니스도 즐겼다. (맨 왼쪽이 해위) 관대한 영국의 교통경찰“그때 영국에서는 자동차 판매회사에서 운전사겸 기술자가 나와 직접 1개월쯤 가르쳐 주었지요. 그리고 시험을 보는데 면허 내 주는 것 이 아주 관대해요. ‘제 목숨 제가 알아서 할텐데’ 하고 내주는 식이지" 그것이 영국식 이었다. “한번은 시골로 여행을 가는데 기분도 좋고 해서 스피드를 조금 냈더니 갑자기 앞에서 8~9 세 된 아이가 뛰어 드는 거예요. 급 브레이크를 밟았지 "아슬 아슬하게 비켜나 위기일발을 넘겼다. “또 한번은 서둘러 시내를 빠져 나가다가 신호를 위반했어요. 교통경찰에게 잡혔지" 그 교통경찰 은 무서운 표정 을 지으며,“신호등을 못 보셨습니까” 하고,말하자면 지금의 스티커 같은걸 뗄 참이었다.“서툴러서 그러니 양해해 주세요” 하고 사정을 했더니 다음에는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봐주었다.“영국의 교통경찰은 봐 달라면 봐주지요. 관대하다고 할까" 그것이 크게 위법이거나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 대부분 훈방하는 것이 통례였다. “내 일생에 두번의 자동차 교통법규와 얽힌 에피소드인 셈이지" 해위는 그 때의 일들이 고운 추억으로 자꾸 되살아나는 듯했다.“ 좋은 길,전망이 좋은 곳에서는 빨리 몰고 싶었지. 그러나 실제로 나는 과속은 별로 안했어. 빨라도,늦어도 안되고 보통 속도가 안전하고 좋지." 청와대 시절인 60년 8월부터 62년 3월까지 대통령 전용차를 탔다. “차 가지면 24시간 보다 더 많이 사는 것 같아.”“지금 차를 몰고 싶으시진 않으세요.”“지금은 차를 못 몰 것 같아.” 노령 탓도 있겠지만 교통질서나 교통체증 무관치는 않은 것 같다.“우리나라가 교통사고율 제 1위란 통곈,참말 부끄러워요. 택시 운전기사들도 과속해선 안돼요. 승용차 운전자들도 빨리 달리려고만 하지말고 양보해 가며 달려야 하는데…, 질서를 무시하면 결국 귀중한 사람의 목숨이 다치게 되는 일이 따르게 되지요.” 영국에서는 2층 버스가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다니는 데도 사고 나는 일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도 2층 버스가 있으면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고, 전철을 더 많이 놓아서 교통인구를 그리로 흡수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차를 가지면 24시간보다 더 많이 사는 것 같아요.” 차는 이제 생활필수품이 되어 가는데, 우리나라의 길은 너무 좁고 운전자나 보행자들이 교통질서를 제대로 안지키고 있어, 이런 일들이 하루빨리 바로잡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폴크스바겐 딱정벌레 차를 제일 좋아했지…”에딘버러 대학생 시절, 몇해 동안 ‘피아트’를 탄 것으로 윤대통령의 오너 드라이버 생활은 끝을 맺는다. 전공이 선사(先史) 시대 고고학이어서 스페인과 프랑스의 유적을 찾는 일이 많았다.그 시절은 철도의 전성시대여서 기차여행을 많이 했다.귀국후, 해방될 때까지는 집안에 인력거 2대가 있어 그걸 이용했다. 해방 후에는 ‘오스틴’을 타다가 서울시장, 상공부 장관, 국회의원을 지낼 때는 3,500cc지프차를 탔다. 오스틴 무렵이 해위의 마지막 손수 운전시절이 될 것 같다. 관직생활은 그런 여유를 주지 않았다.“그 시절에는 장관이나 국회의원이나 모두 지프를 타고 다녔는데 모양보다는 실용성이 아주 좋았지.”6.25때 부산에 내려가 그는 적십자사 총재로 일했는데 그때는 지프차를 닮은 ‘랜드로버’를 탔다.5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서 만든 ‘시발’이 있기는 했지만 주로 택시로 사용되고 있었다.신한당 총재 시절에는 ‘크라이슬러’ 8기통짜리를 탔는데 기름을 너무 먹어 얼마 안가 폴크스 바겐을 애용했다. “딱정벌레 폴크스 바겐은 참 좋지. 내가 제일 좋아한 차였지.” 대통령후보 때는 국산차인 67년형 ‘포드 20M’을 타고 다녔다.“그 후는 아들이 국산차인 ‘레코드 로얄’을 사줘서 타고 다녔지.” 대통령으로 있던 60년 8월부터 62년 3월 사이에는 물론, 대통령의 전용차를 탔다. 81년 부터는 정부에서 내준 ‘푸조’를 탔다. 금년 10월 초까지 줄곧 그걸 이용하다가 푸조가 낡아 정부에 반납하고 84년형 도요타 ‘크라운 로얄 살롱’ 2800cc 6기통 짜리로 바꾸었다.현재 안국동 저택에는 해위 내외가 타는 ‘크라운’과 큰아들 내외가 타는 회색 ‘스텔라’가 있다. 해위가 신한당 총재시절에 탔던 ‘크라이슬러 차’ 큰 아들 내외와 즐기는 카라이프 “내가 차를 타고 먼 나들이를 하는 것은 한달에 한 두번, 아산군 음봉면이 있는 선영에 성묘갈 때가 고작이지. 봄철에는 선영을 1주일에 한번씩은 꼭 가지만 지금은 날씨도 쌀쌀하고 해서…”8순이 훨씬 넘은 노신사 해위는 선영에 갈 때는 반드시 부인 공덕귀 여사와 동승한다고 측근들이 말해 준다. 공여사는 현재 개신교 100주년 기념사업협의회 여성분과를 책임맡고 전국을 누비며 전도사업에 열중하고 있다. “이 집도 내가 힘들여서 산 집이 아니고, 부조(父祖) 의 덕으로 이 집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셈이지. 나는 부모님의 사랑만 받고 남들처럼 효도를 못 한 것이 늘 한이 되고있어. 성묘 갈 때마다 후회막급이야. 돌아가신 뒤 산소의 잡초를 뜯는 것은 자기를 위로하는 것이지. 어디 부모임을 위로하는 것인가. 부디 살아계실 떄 효도를 다 해야지…” 피로할 것 같아 의자에 앉을 것을 권했다. 잔디 너머 가장자리로는 빨간 장미가 몇 송이 오후의 약한 햇살 아래 담쟁이 덩굴과 어울려 이름난 이 저택의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이야기가 아들 내외로 옮겨졌다. “저희들 (큰아들씨 내외를 말함)은 어디를 가나 우리 내외와 함께 가려고 그러지. 올 봄에는 문경 새재를 둘러보고 수안보 온천에서 하루를 지냈어요. 저희들은 ‘스델라’를 타고,난 ‘푸조’였어. 아스팔트가 잘 되어 있어 아무 불편이 없더군. 가족이 단체로 1박을 한 셈이지."  색 다른 에피소드도 들려주었다. “아 글쎄,3년 전 큰 아들이 장가를 가게 됐는데 자기들 신혼여행에,우리 내외와 같이 가야 된다는 구먼. 젊은 사람 신혼여행에 왜 우리 내외가 가느냐고 한사코 거절했는데… 막상 신혼여행을 떠 날 시간이 다가와도 같이 가야 한다는 거였어. 난처해서 ‘마음대로 하라. 나는 안 갈 테니까’ 했더니만 막무가내야. 날은저물고,충무까지는 보내야 되는데…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할 수 없이 우리 내외가 따라 갔다 왔어요. 남이 들어도 멋 척은 일이라서 ... "해위는 누구나 익히 아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아들 내외가 그렇게 모신다고 했다. “지난 여름에도 저희들 내외가 앞장서서 대구,포항을 거쳐 동해안을 둘러보고 백암온천에서 이틀 묵고 대관령 으로 해서 돌아왔는데 동해안은 언제 보아도 경치가 수려해" 큰 이들 상구씨는 아주 운전을 차분하게 잘 한다고 한다. 안국동 8번지의 다음주인이 될 윤상구(尹商求 . 35세 ) 씨는 미 국 시라큐스 대학건축과를 졸업하고 현재 ‘대양식품판매(주)’ 사장으로 있다. 둘째 이들 윤동구 (尹同求 . 30)씨는 미국 윌스턴미술대 를 마치고 현재 뉴욕에서 재미화가로 활동 중인데 형과는 달리 운전솜씨가 거친 편인 모양이다. “재작년 LA에서 작은 애 (윤동구씨를말함) 차를 탔더니 ‘ 와일드’ 하게 몰더 군 .모퉁이를 돌 때는 몸이 쓰러지기도 했어. 야단을 쳤지만 운전버릇이 쉽게 고쳐지나. 나는 빠르거나 난폭하게 모는 것은 좋아안하지" 에딘버러대학 방문 때(두 분 내외와 맏아들 내외) 60년 만에 에딘버러 대학을 방문해위는 2년전, 아들 내외의 ‘효도관광’ 주선으로 60년 만에 모교인 에딘버러대학 방문을 비롯한 6개국 나들이를 40일 동안 하고 돌아왔다. “70년에 미국을 잠시 다녀온 다음 12년 만의 해외여행인 데다 가는 곳이 모교 에딘버러대학이어서 떠나기 전부터 가슴이 설렜었지.”아들 내외가 마련한 ‘선물’이어서 더 흐뭇했을 것이다.“나는 젊은 시절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어.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고 다양하면서도 질서가 유지되는 그런 산 교육을 배웠지. 젊음을 앞세워 분수없이 큰 뜻을 품고 이세상이 내 것인양 생각했는데 오늘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아흔을 바라 보니 허무한 생각이 들어…”해위가 모교를 방문하니 야단이었다. 큰 환영행사를 한다고 하면서 “사사로운 여행이니 그럴 것 없다”고 말렸다.정다운 교사, 우뚝 솟아있는 에딘버러성 등 변치 않은 옛 모습…, 8천명이던 학생일 2만명으로 늘어난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여기서 해위는 그 옛날의 동창들을 만났다. 스무살 안팎의 멋장이 아가씨로, 피아트에 태워주었던 여학생은 80안팎의 할머니가 되어있었다.“그때는 못만난 우드콰트 (80세 역사학자)가 작년 5월 나를 찾아왔을 때는 정말로 반가웠지.” 60여년 동안 못만났던 동창생은 시인인 남편과 함께 한국을 찾아 며칠동안 안국동에 머물다 돌아갔다.60년 만의 모교 방문을 마치고 윤대통령 가족(공덕귀여사. 큰 아들 내외 동행)은 네덜란드, 프랑스, 이태리, 스위스를 거쳐 미국 LA로 가 둘쨰 아들 동구씨와 합규, 팜스프링 온천지대에서 20일간 머물다 귀국했다. 손주 재롱이 ‘즐거움’윤보선 전 대통령은 8시에 기상, 1시간의 기구운동으로 아침 컨디션을 조절한다. 아침식사는 토스트 한쪽에 야채 한 접시를 우유한잔과 곁들어 가볍게 마치고 점심은 간단한 면류를 즐긴다. 저녁은 잡곡밥 한공기에 가끔 육류나 생선을 곁들여 든다. 짜고 매운 것은 피하는 편이고, 술과 담배는 50세 때 선친의 유언에 따라 끊었다고 한다.해위의 ‘1시간 걷기 운동’ 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4계절을 두고 하루도 쉬지않고 정원에서 한다.기자가 방문했을 때, “방금도 ‘걷기운동’ 을 겸해서 손자와 노셨다”고 비서가 일러주었다.“나의 요즈음 즐거움은 3살난 손자의 재롱을 보는 거지요.” 둘째 손주도 금년 12월에는 보게 된다며 기뻐한다.취미는 독서와 화초 가꾸기. 정원의 나무며 꽃, 잔디는 그의 손길이 안 닿은 것이 없다.그래서 그런지 윤대통령은 아흔을 바라보는 노령에 오랜시간 인터뷰를 하면서 피로해 하지 않았다.감사한 마음으로 작별 인사를 드리고 중문을 나서면서 소문난 아흔아홉간 집이 과연 얼마나 넓은 것인가를 헤어려 보고 싶었다. 한 때는 227간이었으나 지금은 170간 정도가 남아 있다는 것이 비서들의 말이다. 그러나 집의 크기 보다는 많은 현관과 주련, 그중에서 추사(秋史)와 고종(高宗)의 어필이 오히려 ‘안국동 8번지’의 가풍과 품위를 자연스레 보여주고 있었다.[게재 1984년 12월호]
카라이프 포커스 - 최인호 2013-11-30
문학적 감성과 가장 뛰어난 작가적 재능을 지닌 작가  면허시험에 떨어질까봐 몇번이나 주저했던 보통 남자 최인호. 1 년 전 단번에 면허를 따고 4 개월 전부터는 손수 차를 몬다. 작은 덩치로 큰 덩치의 물건,자동차를 움직인다는 게 그는 대견스럽다.  참 많이 바쁜 작가 작가의 하루는 조금은 특별한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글쓰는 사람 최인호’의 일상이다. 보통의 샐러리맨과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시간 맞추어 출근해야 하는 직장이 없다는 것뿐이다. 그는 밤새워 밀린 원고를 썼다든가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개 아침 일찍 일어난다. 그 이유 중에는 그가 끔찍이도 사랑하는 딸 다혜와 아들 도단이가 등교하기 전에 얼굴이라도 봐두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 간단한 아침식사를 끝내고 그는 일단 하루의 스케줄을 점검해 본다. 오늘은 만나야 할 사람이 꽤 많다. 거의 하루종일 약속의 연속이다. 그는 참 많이 바쁜 사람이다. 2개의 일간지에 연재소설이 나가고 있고 시나리오 부탁도 여러 곳에서 받아 놓고 있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원고 청탁도 몇개 밀려 있다. 각종 매스컴, 잡지사에서 그의 원고를 받으려고 숱하게 전화와 원고청탁서를 보내 오지만 그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 외에는 그것을 모두 거절해야만 한다. 마음이 약한 그는 매번 괜히 죄지은 기분이지만 결국 최인호는 한 사람뿐이므로 어쩌는 수가 없다. 그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특별히 즐기지는 않지만, 그날 만날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내면에 열정이랄까하는 에너지를 충전해 두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그를 만나는 사람은 누구도 지루하다거나 재미없음을 느낄 겨를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천부적 매력이라기보다 상대를 위한 그의 마음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배우 안성기와 함께 경력 4개월의 오너 드라이버10시 40분, 그는 집을 나선다. 4개월전부터 그는 손수 운전을 시작했는데 이젠 꽤 노련한 솜씨를 자랑한다. 최근에는 자신이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 난 게 아닌가 생각중이다. 하지만 그런 얘기를 입 밖에 내지는 않는다. 그의 자동차는 오토매틱이므로. 오토매틱이 됐든 아니든 그 자신 직접 운전이란 걸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는 매우 만족스럽다. 왜냐하면 그 덩치 큰 자동차란 물건을 직접 움직일 만한 용기가 없어 그동안은 주욱 운전기사에게 맡겨왔기 때문이다. 그는 자주 자신이 얼마나 영악한지에 관해 주위에 얘기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은 면허시험에 떨어질까봐 시험보기를 몇번 주저했다는 일면도 지니고 있다. 다행히 1년 전에 면허에 단번에 붙는 행운(?)을 잡은데다 오토매틱이란 차가 있어 주어서 그는 5년쯤 타던 자주색 레코드 로얄을 하얀색 로얄 살롱으로 바꾸고 오너 드라이버가 되었다. 11시 30분, KBS에서 방영돼 크게 호평을 받은, 그가 일본에 건너가 직접 취재하고 나레이터까지 겸했던 ‘백제 루트’의 연출가인 전정업 PD와 만난 그는 상대를 간지럼 태우는 것으로 반가움을 대신 표현한다. 그 자리에서 그는 이번 프로의 비디오 테이프를 선물받았다. 그러나 이 테이프는 VHS 방식에 묶여서 그가 갖고 있는 베타 방식에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실망한다. “유명한 작가 선생님이니까 이번 기회에 아예 비디오 하나 새로 들여놓으시지...” 어쩌구 하는 빈정거림을 들으며 그는 야무지게 아예 정말 비디오를 바꾸어 버릴 결심을 한다. 사실 그의 집 비디오는 워낙 오래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시, 배창호 감독, 영화배우 안성기(두 사람 다 그가 무지 아끼는 후배들이다)와 만난 그는 곧 그가 시나리오를 끝내는대로 시작할 영화 ‘깊고 푸른 밤’에 관해 몇 가지 의견을 교환했다. 이 자리는 참으로 화기애애해서 그는 줄곧 웃고 떠들고 장난도 쳐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술 마실 때 형이 없으면 정말 재미 없어요. 김빠진 맥주 꼴이라니까.” 안성기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는 어느곳에서나 좌중을 휘어잡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아들 도단이와 골프장에서. 폼만은 수준급(?)이다. 3시, 그는 차를 몰아 서초동에 있는 골프장으로 향했다. 골프를 시작한 지는 얼마 안됐으나 상당한 매력을 느껴 1주일에 두서너 번은 1시간이라도 할애해 이곳을 찾는다. 일요일이면 아들 도단이도 함게 동행하지만 오늘은 혼자이다. 1시간 정도 운동을 한 그는 이번에는 하얏트 호텔로 차를 몰았다. 5시에 이곳 커피숍에서 영화감독 김호선과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대학별곡’의 신진작가 김신과 만나 서로의 문학세계에 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것으로 오늘 하루의 약속은 끝이다. 그는 약간의 피로를 느낀다. 아침에 집을 나섰을 때 충전해 둔 에너지가 이제는 거의 바닥이 드러남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는 대개 밤중에 원고를 쓰는 버릇이 있어서 낮에 너무 많은 약속을 하면 자신이 곧 지쳐 버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무래도 오늘밤에는 원고를 쓰기가 힘들 것 같다. 그는 일을 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가 두 아이보다도 쬐금 더 끔직이 사랑하는 아내와 모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밤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얼핏 살펴본 그의 일상의 세계는 상당히 자유분방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내면에 가장 많은 절제의 힘을 지닌 작가이다. 그는 많은 작가들 중에서 좀 유별나게 유명한 쪽이다. 이는 아마도 그가 보여주는 자유분방함에서 연유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문학적으로 거두는 성공의 이면에는 놀라울 정도의 절제된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도 안되리라.  배창호 감독과 만나 오랜만에 즐거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시대에서 가장 번뜩이는 문학적 감성과 가장 뛰어난 작가적 재능을 지닌 사람을 얘기할 때 늘 먼저 그 이름이 회자되는 작가인 최인호. 그러나 그는 운전 도중 교통법규 위반으로 딱지를 뗄 형편에 놓이면 온갖 말재간을 동원해 그 자리를 모면할 줄도 아는 그저 보통의 쬐그만 남자이기도 하다.[게재 1984년 10월호]
인기인의 카라이프 - 이혜숙 2013-11-30
연기도,운전도,흐르는 시냇물처럼  외유내강(外柔內剛) • 이혜숙, 그녀는 첫눈에 겉은 더없이 부드럽고 순한 듯하지만 속으로는 꿋꿋하고 곧은 그런 여자다. 그녀는 마치 계곡을 흐르는 물이 바위를 만나도 부딪쳐 대항하지 않고 부드럽게 어울려 감싸 나가듯세상사를 순리대로 꾸려 나가려는 온유한 연기자이다.  그녀의 충실한 벗, 초록빛 로얄 살롱도 역시 그녀를 닮아 좀체 잔고장이나 거슬림 없이 스무드하게 달려 준다. 만 5년째 접어드는 운전술도 보통 솜씨가 아니지만, 차분한 마음가짐과 겸손한 태도, 여유 있는 자세는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로얄 살롱과 함께 오늘도 그녀는 바쁘게 달려간다. 후회 없는 젊은 날의 초상을 만들기 위해.   임진왜란’에서 새로운 면모 보여 흐르는 시냇물과 같은 여자그녀는 밤마다 꿈을 꾼다. 꿈속에서 그녀는 한줄기 물길이 되어 심청이 갔다던 용궁에도 다녀오고, 제주도 어딘가에 있다는 이어도에도 다녀온다. 꿈속에서 그녀는 빨강, 노랑, 파랑, 온갖 휘황찬란한 물고기들과 얘기도 나누며 자유롭게 끝없는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다. 이혜숙(李惠淑, 24세). 요즘 안방극장에서 한창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임진왜란’ 에 풍신수길의 애첩으로 분, 새로운 이미지로 평가받고 있는 그녀는 물과 같은 여자다. 물도 그냥 고여있는 물이 아니라 쉬지 않고 맴돌아 흘러가는, 겨울계곡의 얼음장 밑을 돌돌 흘러 봄의 기운을 대지에 촉촉히 적시는 시내 같은 물, 바로 그런 여자다. 이제까지 브라운관에서 ‘청순가련형’의 이미지로 익히 알려진 그녀를 막상 대하고 보니 전혀 그렇지 가 않았다. 우선 초록색 로얄 살롱(오토매틱. 83년형)을 능숙하게 모는 운전 솜씨부터가 단번에 보통내기가 아님을 입증했다. 그녀의 드라이버 경력은 나이에 비해 화려하다. 지난 81년 3월 어렵지 않게 단 한번에 운전면허를 땄고, 곧바로 포니I 을 1년쯤 몰다가 피아트 132를 거쳐 83년 로얄 살롱을 구입, 지금까지 몰고 있으니 올해로 만 5년째 접어드는 능숙한 여성 오너 드라이버인 셈이다. 운전하는 그녀를 보니 오히려 대담하고 활달한 성격을 지닌 듯했다. “운전 말인가요? 저에겐 연기와 하나 다를게 없죠. 연기가 내 삶 자체이듯 운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제 생활의 한부분이니까요." 운전에 임하는 그녀의 신중한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연기자로서 또 여성 오너로서 특별한 어려움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옹골차게 되받는다. “운전에 무슨 여자, 남자의 구별이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운전대에 앉으면 그저 다 같은 기사일 뿐인데, 아직도 우리 사회 한편엔 자가용을 몰고 다니면, 더우기 여자가 차를 몰면 이상야릇하게 생각하는 편견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차를 모는 건 내 생활 수준이 유달리 높아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며 여러모로 이것저것 따져보아 보다 합리적이고 경제적이기 때문이죠. 특히 연기자로서 스케줄을 맞춰 기동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거의 필수적인 것 같아요."  여의도 전경련회관 옆 터널을 지나며 그녀는 오너 드라이버로서의 장점을 조리 있게 얘기했다.   연기 생활 8년 못지 않게 오너 경력 5년의 능숙한 솜씨그녀의 연기생활은 지난 79년 열일곱 앳된 나이에 MBC 10기생 탤런트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8년째에 접어든다. 그녀는 그 동안 미스 해태를 거쳐 CF 모델 등 주로 연기외적인 일들에 몰두하느라 같은 또래의 연기자들에 비해 일찍부터 연기생활을 했으면서도 뚜렷한 대표작 없이 그저 이름만 유명해진 것 같아 부끄럽다고 겸손해한다.    사실 그녀는 지난 여름 6·25 특집극 ‘영웅시대’에서 주인공 동영의 처 정인역을 맡은 것을 빼놓고는 얼마 전까지 이렇다 할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하니 결혼에 뒤얽혔던 그 춥고도 길었던 방황의 시간들은 그녀를 내적으로 살찌우는 값진 순간들이었던 것 같단다.  병인년,올해는 범띠인 그녀에게 있어 무척 중요한 한해가 될 것 같단다. 지난 몇해 소문에 휩쓸렸던 우울했던 기억들을 떨쳐버리고 여자 나이 스물넷, 연기생활 8년에 걸맞는 성숙한 연기자로서 팬들 앞에 서야 한다는 집념을 불태울 한해이기 때문이다. 뚜렷한 대표작도 없이 이름만 유명하진 것 같아 부끄럽다며, 그러나 이제부턴 달라질 거라고 상큼하게 웃는 그녀 그녀가 성숙한 연기자로서 다시 팬들앞에 서기 위해 맞부딪친 작품이 바로 영화 ‘태’ 이다. 하명중 감독이 흥행성보다는 작품성을 높이 살려 베를린 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만든 이 영화에 주연 여배우로 열연했다. 그녀는 40여일에 걸친 위도라는 외딴 섬에서의 야외 로케이션을 계기로 비로소 ‘진짜 연기’라는 것에 매력을 느꼈고 나도 잘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한다.“연기란 하면 할수록 어려워요, 그렇지만 젊은 날의 내 청춘을 불태울 가치있는 창조적 일이라는 것을 이제사 조금씩 깨닫고 있어요.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면 내가 너무 어설프게 세상을 살았구나 하는 자각을 해요. 지금부터라도 내 온 정열을 기울여 연기를 하면 먼 훗날 오늘처럼 후회하지는 않을 거예요.”   곧 나올 영화 ‘태’에서 열연 음악 들으며 스피디하게 달려외화 ‘아마데우스’의 뒤를 이어 곧 명보극장에서 개봉될 영화 ‘태’에서 팬들과 진정 새롭게 만날 수 있으리라 자신하는 그녀는 운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처음 차를 몰 때는 그저 호기심에 겁도 없이 마구잡이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운전 경력 5년이 된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자연스레 차들의 흐름에 젖어들어 차선 변경이나 추월, 클렉슨 없이도 부드럽게 달려 나간다. 그동안 사고도 몇번 있었다. 그녀 차가 앞서 가는 차를 받은 적도, 뒤 차가 갑자기 들이받은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한번은 촬영 기사가 그녀 차를 뒤에서 받았다. 서로 잘 아는 처지에 수리 비용을 물어 달랠 수도 없어 그저 울며 겨자 먹기로 참아야만 했다고. 그녀의 차는 무척 수수하다. 인기인의 로얄 살롱 답지않게 내부엔 장식이 거의 없다. 다만 한가지, 바구니에 카세트 테이프가 수북하게 담겨있다. 음악을 더없이 좋아해 차를 몰 때는 언제나 음악을 듣는다. 팝송은 물론 클래식, 가곡 가요 등 음악이라면 모두 좋아한다.  “음악은 왠지 저를 평화롭고 자유스럽게 해 줘요. 부질없는 잡념에서 벗어나 멜로디에 따라 차를 몰고 나가는 거예요.” 3년 동안 고운정 미운정 들여가며 곱게 길들인 그녀의 차는 어느덧 국회의사당을 지나 순복음교회 앞에 다다랐다. 그녀는 우울하거나 좌절되거나 혹은 자기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때 문득 하나님을 찾곤한다. 그녀는 평창동에 있는 연예인교회를 열심히 나가면서 인간과 신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다. “신앙과 신념을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요. 지난 여름 영웅시대를 촬영하면서 이데올로기(이념)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극 중에서 제 남편 동영이 가는 길이 신념이라는 것은 이해되지만, 이데올로기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은 어쨌든 불행한 일인 것 같았어요.” 차를 몰 때도 연기를 하듯 신중한 자세로 임한다. 물의 흐름처럼 그저 자연스럽게. 외모로 보기에는 조금 약할 것 같은 그녀지만 천만의 말씀. 그녀는 운동이라면 모두 좋아해 수영, 스키, 스케이팅은 틈만 나면 즐기는 편이고, 축구, 야구, 농구 등의 관람도 빼놓지 않는다.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차를 몰기 때문에 따로 드라이브를 즐기지는 않지만, 한적한 길에선 스피드를 즐기는 편이란다. 음악에 맞춰 스피디하게 달리다 보면 쌓인 스트레스도 풀리고 온갖 상념도 잿빛 포도 위에 휩쓸려 버린다는 것이다. 그녀의 차는 어느덧 MBC에 와 닿았다. 임진왜란 촬영을 위해 서둘러 차를 세우고 간단히 목례한 후 종종 걸음으로 내닫는 그녀의 뒷모습이 왠지 상큼하게 느껴진다.[게재 1986년 02월호]
인기인의 카라이프 - 이성미 2013-11-30
나는 하늘을 안고 달립니다 깊은 산,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여자 이성미(27세), 끊임없는 아이디어로 우리에게 건강한 웃음을 선사하는 그녀에게 있어 자동차는 달리는 아이디어 뱅크이다.   선루프(Sun Roof)로 밝아진 차내몇해전 어떤 소설가는 인물 만평에서 이성미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재능 있는 개그 우먼으로 칭찬했다. 천부적인 탤런트와 열의, 그리고 외모, 음성까지 들춰내며 보기 드문 재원이라 일컬었다. 아울러 그녀를 한국판 ‘루시’라 칭하며 크게 성장할 것을 예견했다. 과연 그 예견은 적중했다.  그녀는 1980년 6월 5일 TBC 제 2회 개그콘서트에서 대상을 차지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연예계에 데뷔한다. 1959년생이니 올해로 27살이다. 연예인 생활이 어언 5년이 흘렀다.명성여중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사업 떄문에 부산에 내려가 동래여고를 졸업한다. 그리고 다시 서울에 올라와 서울 예술전문대학 방송과에 입학한다. 중학교 때 어머니를 여의고 줄곧 아버지와 단둘이 살앗다. 무남독녀로서 어리광만 부리기엔 집안이 너무 고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후 그 정적이 완전히 몸에 배어 마이크와 조명등이 없을 때는 의외로 정적인 여자가 된다.   그녀가 핸들을 잡은 지는 정확히 3년, 개그 우먼으로 바쁘게 뛰어야 하는 그녀의 스케줄 탓도 있었겠지만 아이디어, 좀 더 참신한 개그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는 때로는 한적한 시골길도 달려보고 왁자지껄한 시골장도 기웃거려야 했다. 기동력과 생활의 변화를 위해서 차가 꼭 필요했던 것이다.운전 학원에 며칠 나가다가 친지의 도움으로 여의도에서 운전을 익혔다.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었다. 덕분에 시작한 지 스무날만에 운전 면허를 따냈다.   운전 첫 날 지갑 대신 카세트를 들고나가 그녀는 첫 운전으로 시내에 나갔던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픽픽 웃음이 나온다. 빨간색 포니 2를 장만해 익숙해질 때까지 기사의 코치를 받고자 했다. 그러나 친구와 약속을 해놓았는데 마침 기사가 그날따라 나오질 못한다는 것이 아닌다. 그냥 택시를 타고 갈까 하다가 언제건 해야 할 데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쳐갔다. 형제처럼, 친구처럼 다정한 강아지 깐돌이와 맞는 즐거운 휴일, 동네 꼬마들도 합세했다 이윽고 여의도에서 서울대교를 건너 마포, 만리동 고개를 넘어 남대문로를 거치고 시청앞에서 우회전을 해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긴장과 초조의 35분이었다. 그래도 무사히 목적지에 온 자신이 너무 기특해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차를 무사히 주차시키고 지갑을 들고 나온다는 것이… 아뿔사 카세트를 지갑마냥 달랑달랑 들고 찻집으로 들어갔다. 양 볼은 발그레 붉어졌고 손끝은 달달 떨리고 그후 그녀의 운전 경력은 점점 다채로와졌다. 차츰 운전 테크닉도 유연해지고 핸들 잡는 것에도 진지함을 보였다. 2년 반 정도 열심히 익혀 이제 웬만한 곳은 무리 없이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    알루미늄 휠도 달고산뜻한 선루프 (Sun Roof)가 설치된 지금의 스텔라 CXL과 만난 것은 지난 8월이다. 안전도를 생각해 중형차로 바꾸려고 마음 먹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다가 지난 8월에야 스텔라 CXL을 장만했다. 그녀가 차에 기울이는 정성은 지극하다. 알루미늄 휠로 바꿔 끼우고 베이지색 스트라이프 테이프로 단장한 하얀 스텔라에 선루프도 설치했다.“환기도 잘 되고 햇빛이 잘 비추어 차 내부가 무척 밝아요! 지금 차에 만족해요. 앞으로 계속 탈 작정이예요.”개그맨 장두석, 주병진 씨와 옴니버스로 낸 디스크 반응이 좋아 제 2집을 계획하고 있으며 올 크리스마스 때는 그녀의 낭낭한 음성이 담긴 캐롤집이 나올 예정이다. 우리에게 건강한 웃음을 주기 위해 그녀는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다양하게 활동하고 싶어요! 제 능력이 닿는 한 열심히 노력할 겁니다. 캐리어가 늘수록 자꾸 제가 하는 일에 진지함을 느껴요. 운전도 마찬가지예요. 3년 정도 하니까 무작정 속력을 내는 일은 자제하게 되요!”그녀의 작은 몸집에 비해 차체가 다소 우람해 보이지만 일단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은 모습은 그럴싸하다. 부드럽게 빠져 나가는 차의 뒷모습은 더욱 그럴싸하다.[게재 1985년 12월호]
인기인의 카라이프 - 차화연 2013-11-30
로얄 프린스에 가득 찬 들꽃 같은 연기열 그토록 여릿여릿 가냘픈 몸매로 어떻게 운전은 스피디하며 시원스럽게 잘할 수 있을까.흰색 로얄 프린스는 군살 없이 매끈한 몸매로 초원을 질주하는 기린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가 핸들을 잡은지는 정확히 5년 5개월이 되었다.어렵지 않게 딸 수 있던 운전면허처럼 어떤 두려움 없이 핸들도 잡을 수가 있었다. 어려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 우리나라 교통법규를 아주 완벽하게 익히는 것이 시급했다. 결코 법규에 어긋나는 운전은 애초에 금기로 머리속에 간직했다. 그런 다음 길을 익혔다. 20년을 서울서 나 줄곧 서울서 성장했던 그녀조차도 서울시의 길을 익히는 데 꽤 여러날을 소비했다, 게다가 길과 아울러 교통 회전의 여부까지 익히니 헷갈리는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열심히 했다. 야무진 그녀의 심성을 총동원하여 외우고 또 외웠다.  운전을 시작하기 전, 그녀의 완벽한 워밍업은 거의 석달이나 계속 됐다. 차근차근 서두르지 않고 열중한 덕분인지 차츰 변화가 일어났고, 핸들을 잡기 전에 벌써 어떤 도로인지 좌우회전의 여부를 훤히 알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포니2를 구입하여 운전을 했따. 겹치는 녹화와 리허설, 잡지 촬영등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녀는 역시 좀더 나은 운전 테크닉을 익히려고 애를 썼다. 선배들의 조언을 충실히 들으며 안전하고 스피디한 운전 기술을 열심히 익혔다. 매사에 깔끔하고 야무진 그녀의 심성대로 차를 꾸미는 것에서 시작하여 핸들을 조작하는 것, 신호에 정지하는 것, 깜박이 켜는 것에까지 확실하다. 무엇에든지 어영부영이라는 것이 통하질 않는다.  서울 예고에서 한국 무용을 전공해서 그런지 얼굴이나 몸 매무새가 정갈하고 단아하다. 계속 무용을 전공하려다 운연한 기회로 연기인의 길에 발을 디뎠다. 보기만 해도 들국화처럼 화사한 외모와 깔끔한 연기력으로 ‘차화연’이란 이름은 금방 사람들의 귀에 친숙해졌다. 걱정을 모르고 자란 부잣집 외동딸에서부터 청순한 타이피스트, 철 모르는 새댁, 비련의 호스테스, 산전수전을 겪은 시골 선술집 여인네, 장돌뱅이 따라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는 떠돌이 까지 완벽한 변신을 꾀했다. 고정된 역할에서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던 것이다.   포니2를 몰다가 약 4개월 전 바꾼 차가 지금 타고 있는 로얄 프린스이다. 그녀의 외모 만큼이나 화사한 흰색 자동차다. 스스로 모는 차인만큼 안전이 최고라 부담은 좀 되지만 중형차로 바꿨던 것이다.운전 경력이 5년이나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녀의 훌륭한 운전 솜씨는 순전히 핸들 잡기 전에 익혔던 워밍업 덕택이다. 즉 완벽한 교통 법규의 이해, 철저한 길의 파악에 있다. 또 그녀의 깔끔한 심성도 큰 몫을 하고있다.그녀가 몰고있는 로얄 프린스를 한번 타본 사람은 거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그저 멋으로 운전배워 짤막한 운전 솜씨를 가지고 잇겠지 하고 상상했던 사람은 깜짝 놀라기 마련이다. 포니 2를 계속 몰다가 로얄 프린스를 바꾼지 몇 달 되지는 않지만 벌써 차에 새록새록 정이 들었단다. 직접 핸들을 잡고 차의 정비 상태까지 체크하는 손수운전자이기에 그 정이 더 새로운지도 모른다. 운전 조작이 거의 정확하다는 점과 상당히 스피디 하다는점, 그리고 철저하게 교통 법규를 지키며 길을 거의 귀신같이 잘 안다는 것에 혀를 내두르며 그녀의 테크닉을 칭찬하는 것이다.현재 그녀는 KBS 목금 드라마 ‘빛과 그림자’ 에서 이기적이며 꼿꼿한 부잣집 외동딸 역할을 맡고 있다. 야심에 불타 사귀던 애인을 버리고 자신에게 구혼을 한 의사를 남편으로 둔 여인 역할이다. “극중 역할이 많은 사람들의 질시를 받기에 충분합니다. 처음에는 너무하지 않나 싶었지만 드라마에서는 그래야지 이야이가 풀려 나가더군요 또 제가 맡은역할이니 우선 충실해야 하고요! 아무튼 열심히 그 역할에 몰입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녀의 역시 깔끔한 말, 목소리도 얼굴도 또 운전 테크닉도 다 그렇다. 뒷 여운이 없는 담백한 분위기다. 이런 그녀만의 독특함은 얼마 전 ‘호암 아트홀’ 에서 성황리에 마친 연극 ‘만선’ 에서도 발휘 되었다.“열심히 해서 더 나아지는 연기자가 될 겁니다. 답보 상태가 아닌 전진하는 연기자요. 운전도 마찬가지예요. 하나씩 둘씩 부지런히 익혀 드라이빙 명수가 될 겁니다. 호호호!”가을비 내리는 궃은 날, 그녀와의 만남은 확실히 라임향 주스처럼 상큼했다.[게재 1985년 10월호]
인기인의 카라이프 - 김진아 2013-11-30
볼보,아우디,포르쉐,캐딜락,벤츠로 이어지는 카편력  “봄을 타나봐요”뜨거운고양이 같은 그녀의 눈매에는 언제나 도발적인 열기가 폭폭 새어나고 있다.  목련이 입을 벌려 웃고 벚꽃은 솜이 되어 하얗게 거리를 덮던 날,그녀의 은색 맵시에는 4월의 햇살이 번지고 있었다, ‘창 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대본,대본,스프레이,반쯤 남은 비스킷 봉지 .. ... .언제나 그녀의 차를 차지 하고 있는 재산목록들이다. 김진아,그녀 역시 언제나처럼 흘러나오는 재즈에 발장단 을 맞추며 부지런하게 핸들을 움직인다. “전 차 안에서 대본도 읽구요. 화장도하지요.음 ... 또 옷도 갈아입는걸요. 하여튼 차 안에서 목욕 빼고는 뭐든지 다해요" 묻는 말에 낭랑한 목소리로 똑 떨어지게 말도 참 잘하는 그녀다. 하기는 언젠가 우리나라 쇼의 대명사처럼 되어있는 텔레비전 쇼에서 MC로서의 자질도 유감없이 보여 주었던 김진아 였으니까. 또한 대화도중 간간이 느낄 수 있는 타고난 화술의 재치와 순발력에 이르러서는 그녀의 영리해 보이는 인상과 더불어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운전면허는 우리나라 식으로 하자면 고3 때인 1981 년 미국에서 처음 였다. 그리고는 흰색 볼보 를 몰고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누렸다. “그때 제 차는 볼보 였지만 오빠가 타던 리무진도 타보고요. 또 형부 차인 아우디 도 몰아봤고, 또 클라스 메이트 들의 포르쉐, 캐딜락과 벤츠 도 타 봤는 걸요. 그 중에서 어떤 차가 제일 맘에 드냐구요 ? 음 .. . 제일 매력있는 차는 빨간색 스포츠가 포르쉐 였구요. 돈 벌어서 한번 갖고 싶은 차는 흰색 리무진이었어요” 그녀 보다 훨씬 햇병아리 후배들이 근사한 중형차 로 촬영장을 누비고 다닐 때보기 드물게 구형 맴시로 타달타달 거리며 다니는 김진아 가 더 당당하고 더 멋져 보인 이유는 바로 이러한 미국에서의 화려했던 카 편력 탓이 리라.더우기 로얄 XQ 정도로 차를 바꾸고 싶은마음이 없는 것 은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아직은 ‘돈이 없고’ ,‘분수에 맞지않아’ 결심이 서지 않는다는 검진아이고보면 그녀의 솔직 담백한 마음까지 짐작 할수 있다.아빠 ( 영화배우 검진규) 를 사랑해서 아빠의 피아트 132 까지 사랑한다는 그녀에게는 어릴적 아빠,엄마 (영화배우 김보애) 와함께 즐기던 차에 대한 추억이 유독 많다.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김진규 씨에게는 당시, 지프와 크라운,왜건 등 3 대의 차가 한꺼번에 있었다. 매주 일요일이면 깜직한 진아는 아빠가 운전하는 왜건 차에 실려 영화사 아저싸들 가족과 피크닉 가던 일이 제일 즐거웠다. 영화 ‘창 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중의 한 장면 조무라기 꼬마들이 모두왜건의 뒤에서 노래자랑을 벌일 때,항상 노래 잘하고 얼굴까지 예쁜 진아는 박수갈채를 한몸에 받았었지 ..... .훗날,미국의 메트로폴리탄칼리지에서 성악을 전공했던 것 은 어쩜 이렇게 어린시절 자동차에서 키운실력 때문이 아닐까?요즘 그녀는 ‘창 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촬영에 흠빽 빠져 있다. 그녀는 이 영화 속에서 유부남과 사랑하는 젊은 애인사이 에서 방황하는 비련의 여주인공 을맡았다. “슬퍼요. 슬픈 영화예요… 전 이 영화속 에서는 피아트를 몰고 다녀요" 누구는 그녀를 보고 불량기가 많아 뵈는 당돌한 인상의 아가씨 라고 말한다.  또 누구는 그녀를 보고 베드 신에서 선배 상대 배우를 당황하게 할만큼 대담한 여배우 라고한다. 하지만 맹시 속에서 만난 김진아는 다정다감하고 경우 바른, 참으로 사랑스러운 여자였다.자신이 토끼띠라서 제일 타고싶은차 역시 폴크스바겐 에서 나온 하얀 오픈차 래비트라고 말하는, 적당하게 철없는 꿈까지 지닌 ......[게재 1985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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