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이상한 교통사고 합의 2003-11-04
97년 1월에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했다. 무면허 대학생이 아버지 차를 끌고 나왔다가 길을 걷고 있는 내 왼쪽 다리를 뒤에서 받아 버린 것이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길 위에 쓰러졌고, 그 대학생은 나보다 더 놀라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는 “아버지한테 연락하지 마세요. 경찰서에 신고하지 마세요. 엉엉… …”하며 애원을 했다. 많이 다친 것 같지 않았기에 나는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험 처리도 되지 않을 테니 정말 큰 일이네. 그러나 자네가 무슨 돈이 있겠나. 돈으로 보상받을 생각은 없네. 다행히 오른쪽 다리는 성하니 내 왼쪽 다리가 다 나을 때까지 내가 운전하고 다닐 수 있는 AT가 달린 차를 1대 마련해 주게(당시 내 차는 MT가 달린 지프형 차였다). 이틀이 멀다하고 전국을 싸돌아다니는 게 내 직업이거든. 차를 훔쳐오든지, 빌려오든지, 돈주고 렌트를 하든지, 새로 사든지, 그것은 자네가 알아서 하게. 그렇게만 해 준다면 경찰서에 신고하지 않는 것은 물론 자네 아버지에게도 연락하지 않겠네.” 불쌍한 그 대학생은 그 다음날 91년형 콩코드를 어디서 끌고 왔다. 그 차를 2주쯤 탔을 때 그 대학생 녀석이 전화를 했다. “저… … 그게 제 친구 차인데요. 친구가 차를 자꾸 돌려달라고 해서요. 다른 차로 타시면 안되겠어요?” “무슨 차?” “엘란트라요. 물론 AT가 달렸어요.” “그건 누구 차인데?” “누나 꺼요.” 엘란트라를 4주쯤 탔을 때, 그 대학생이 또 전화를 했다. “저… … 누나가 또 자꾸 차를 달라고 해서요. 다른 차로 타시면 안되시겠어요?” “이번에는 무슨 차?” “티뷰론이요.` “뭐? 티뷰론? 무슨 색인데?” “검정색이요. 풀 옵션이에요. 아주 좋아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좋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팔자에 없는 ‘스포츠쿠페’ 티뷰론을 한 달쯤이나 타고 다녔다. 그때는 지금처럼 티뷰론이 흔하지 않아서 그 차를 몰고 나가면 사람들이 한번쯤 다시 돌아볼 때였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치료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져 한 달 넘게 깁스를 하고 9개월 동안 목발을 짚고 다녔다. 그 해 추석 연휴 하루 전날에야 비로소 털털거리는 나의 고물 지프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끌고 거리로 나설 수 있었으니. 휴, 그 고생한 기간이 무려 얼마인가. 사고를 당한 뒤 근 10개월 동안 나는 대한민국에서 생산되는 승용차란 승용차는 거의 다 타 보았다. 짧게는 2주, 길게는 2개의 간격으로 차를 바꾸었다.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차를 보는 ‘눈’이 생긴 것 같다. 기아자동차가 미니밴 카니발을 내놓기 전 시승평가단을 대대적으로 모집했는데 선발 조건 중에 ‘내가 카니발을 타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라는 요구가 있었다. 나는 “평양에서 피난 내려오신 증조할아버지는 목포에 뼈를 묻으셨습니다. 이번 설에 저는 목포에 다녀 올 예정입니다”로 시작하는 읍소형 응시서류를 보냈고, 며칠 후 1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시승단에 뽑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보름 동안 ‘카니발’을 신나게 타보고 쓴 구구절절한 당시 내 시승기는 그 무렵 인터넷과 PC통신 게시판에서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 후 기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로 넘어가기까지 기아자동차 홍보실로부터 새차를 개발할 때마다 전화가 왔다. 보험료와 유지비를 회사가 모두 부담하면서 짧게는 열흘, 길게는 한 달 동안 새차를 시승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자동차라는 ‘문명의 이기’에 대한 나의 관심은 그렇게 비롯되었다. 그것이 나의 자동차에 관한 이력의 시작이다. 그 날 이후의 이야기는 소설책 몇 권 분량은 된다.
내가 `바른 운전 사나이`가 된 이유 2003-11-04
친구나 선후배들과 어울려 자동차 혹은 운전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꼭 운전에 자신감을 보이며 자랑을 늘어놓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정말 잘 하는 운전이 뭔지 아느냐고 물어본다. 대부분은 어떤 길을 몇 분만에 주파했다든지 차들이 꽉 들어찬 도로에서 직각으로 꺾으며 끼어들기를 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꼭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옆에 탄 사람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운전, 그거야말로 정말 잘 하는 운전`이라고. 대부분 나이가 몇인데 그런 고리타분한 말을 하느냐며 핀잔을 주지만 내가 이런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제 운전경력 10년을 바라보는 내게는 기억에 남는 사고가 2번 있었다. 왕초보 시절, 주차장에서 후진하다가 옆차를 긁은 것이 그 첫 번째. 97년 일어난 두 번째가 나를 `바른 운전 사나이`로 만들어 놓은 바로 그 사고였다. 첫 번째 사건 이후 거의 3년간 무사였던 나는 경험자들이 가장 위험하다고 이야기하는 `간이 부을 대로 부은` 상태였다. 당시 광릉수목원 근처에 살던 나는 엑센트를 몰고 수목원 내 꼬불꼬불한 길을 타이어 소음을 일으키며 질주하고 다녔다. 보통 사람들이 20분 걸린다는 길을 7~8분만에 주파했으니 얼마나 과속을 일삼았는지 알 수 있다. 사고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밤에 일어났다. 아내를 태우고 포천에서 의정부를 향해 가다가 원래 다니던 수목원 길 대신 가까운 지름길로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기억은 거기까지. 눈을 떴을 때는 하얀 병원 천장과 처제의 얼굴이 보였다. `아! 내가 사고를 당했구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아내 걱정에 갑자기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내는 멀쩡했다. 어느 정도 회복된 후에 사고 현장에 가보니 큰길에서 차로 5~7분 정도 거리에 있는 논이었다. 차의 상태를 보건대 코너에서 도로를 벗어나 논에 거꾸로 처박힌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그 중간과정이 전혀 생각나질 않았다. 의사의 설명으로는 머리에 충격을 심하게 받아 부분적인 기억상실 증상이 올 수 있다고 했다. 잠을 자고 있었던 아내는 뒤집어진 차에서 빠져나와 어느 고마운 운전자의 도움으로 피 흘리는 나를 병원까지 옮길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내가 과속을 했는지, 아니면 갑자기 나타난 트럭을 피하기 위해 도로를 벗어났는지 밝힐 수 없었다. 당시 운전에 한참 재미를 느끼고 자신도 있었던 나였지만 한동안 공포에 시달려 운전대를 잡기가 힘들었다. 그 후로는 여간해서 과속을 하지 않게 되었고 사고도 없었다. 내 몸이 다치는 것도 무섭지만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아내가 혹시 어떻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뒷골이 서늘했던 기억은 정말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그때 사고로 머리가 여러 군데 찢어지고 목과 오른손을 한동안 쓸 수 없어 반년 가까이 쉬어야 했다. 결국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왼손에 통증이 남아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이 통증은 내가 안전운전을 하도록 끊임없이 다그치는 채찍질과도 같다. 불편하지만, 조금은 고맙다는 생각도 해본다.
자동차를 즐기는 두 가지 방법 2003-11-04
굳이 자동차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사물에는 크게 두 가지 즐기는 방법이 있는 것 같다. 우선 대상을 소유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에 대해서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또 다른 즐거움은 대상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잘 아는 것에서 온다. 즉 소유하지 않고 즐기는 것이다. 일상적인 사물들이라면 이 두 가지의 즐거움이 비교적 쉽게 동시에 충족된다. 예를 들어 대상이 요리라면 식당에 가서 원하는 음식을 주문하거나 요리책을 통해 직접 만들어보는 것의 두 가지를 즐기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대상의 값이 올라가면 갈수록 이 두 가지 즐거움은 점점 양립하기 어려워진다. 자동차, 특히 고급 자동차가 그 대표적인 예다.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해서 원하는 차를 자신의 소유로 하는 즐거움이야 새삼 말해서 무엇하랴. 그래서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두 번째 즐거움, 즉 소유하지 않고 즐기는 것에 대해서이다. 나는 자동차 동호회인 클럽 엘란 회원이다. 검은색 엘란을 소유하고 있으니 거기서 오는 즐거움이 분명히 있으나 사실 더 큰 즐거움은 다른 곳에서 온다는 것을 자주 깨닫는다. 자동차 동호회란 한 마디로 사소한 것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것 같다. 생업도 아닌 일에 회원들은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 더 많이 알고 싶어하고, 더 잘 이해하고 싶어한다. 그것이 차의 역사건, 운동성능이건, 아니면 부품수급에 관한 것이건 여기에는 상당한 정신적인 만족감이 따른다. 엘란 동호회면서 엘란 소유자가 아닌 회원들도 많은 이유가 이것이다. 즉 동호회가 성숙할수록 점 점 소유하지 않고도 즐기는 부분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건축가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탓에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건축은 오히려 자동차보다 더 소유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나 자신을 포함해 자기 일생에서 건축주가 되어 보는 사람들은 정말 많지 않다.(그러니 나는 내게 일을 맡기는 건축주들이 부럽다.) 그런데 정작 건축주가 되어도 건축을 소유하는 것에만 집착한다면 그 즐거움은 형편없이 낮아진다. 건물이 설계되고 지어지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알고 건축을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다. 집이 완공되어 빨리 들어가 살 생각을 하는 것 못지 않게 집을 지어 가는 즐거운 일 하나가 끝나간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역설적이지만 생명에 별 위험이 없는 경우라면 병 치료도 흥미롭게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소유하지 않고 즐기는 데는 돈이 별로 들지 않는다. 우선 책을 좀 읽게 되는데 이것은 정말 얼마 되지 않는 투자다. 또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것도 해외까지 나간다면 모를까 누구나 큰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축적된 지식과 이해는 그 사람에게 상당한 즐거움과 더불어 어떤 권위를 부여하기도 한다. 비싼 차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그 차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사람과 비록 소유는 하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그 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더 차주인 같을까? 결국 후자와 같은 사람이 많을수록 어떤 `산업`을 `문화`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국내 자동차산업이 자동차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그저 많은 사람들이 차를 소유하는 것으로 부족하다. 자동차와 관련된 각종 행사, 동호회, 서적, 레이스 등이 줄기차게 생겨나야 한다. 소유하지 않고 즐기는 방법이 늘어나야 소유의 즐거움이 더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영혼이 담긴 자동차 2003-11-04
`1995년 출생. 성별 여. 이름 세피아. 몇 번 피부 이식수술과 하체 수술을 했음. 그렇다고 완전 성형수술은 아님.` 애인과도 다름없는 내 자동차의 이력이다. 난 차와 자주 대화를 한다. 세상 모든 사물의 영혼성을 믿는 나에게 자동차라고 제외되지 않는다.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차에 다가가면서 `잘 잤니?`부터 시작해 기름 넣을 때는 `밥 먹자` 세차할 때는 `목욕해야지`라고 말한다. 차도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사람의 오장육부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차가 움직인다는 것은 오장육부의 원활한 기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니 내 차와의 대화는 어찌 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 모른다. 고장이 있어 카센터나 공장에 갔다가 나올 때도 `네가 어디가 아팠구나. 이제 괜찮지?` 라고 묻는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차는 아직 나를 배반하지 않고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사실 이렇게 대화를 하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지금부터 한 7년쯤 되었을까. 경기도 수원에 사는 여자친구가 급한 호출을 했다. 혼자서 자취생활을 하는 친구였기에 내 마음 속에는 늘 그 친구가 걱정되곤 했다. 그런 친구가 갑자기 몹시 아프다고 와달라고 전화를 하자 난 앞뒤 가릴 것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차를 타자마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자주 가던 길이었지만 빨리 가야겠다고 생각하니 멀게만 느껴졌다. 차는 나의 급한 마음을 알았는지 쏜살같이 달려주었다. 시간이 밤 12시를 넘어섰는지라 지나는 차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당시 나는 경기도 시흥시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수원으로 가는 길은 수인산업도로를 타고 가는 게 가장 빨랐다. 문제는 수인산업도로가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곳곳에 차선을 넓히는 공사를 하기 위해 도로를 파헤쳐 놓았고 주변에 거의 가로등도 없어 암흑천지였다. 길은 곧게 뻗어 있지 않고 여기저기 곡선으로 이루어져 곡예운전을 해야만 했다. 주위는 고요했고 내 차 소리와 바람소리만 서로를 껴안으며 웅웅거렸다. 속도계는 140㎞를 가리키고 있었다. 난 `더 빨리`를 외쳤다. 자동차가 말하는 것 같았다. `너, 이러다 일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나에게 전해졌지만 무시하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안산을 지나 수원 경계에 도달했을 때 갑자기 길이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도 없었다. 직선으로 뻗어 있어야 할 도로에는 공사중에 사용된 돌들이 수북히 쌓여 있고 길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있었다. 돌이 쌓인 지점까지 거의 다 갔을 때에야 길이 오른쪽 아래로 꺾어져 있음을 알았다. 순간이었다. 스티어링 휠을 오른쪽으로 급히 돌렸지만 140㎞가 넘는 속도로 달리던 자동차는 앞으로만 미끄러져 나갔다. 다행히 스티어링 휠을 오른쪽으로 돌린 것이 약간은 먹혔는지라, 길 양옆으로 산처럼 돌을 쌓아 놓은 곳에 처박혔다. 차체가 45도 이상 기울어져 있었으며 하체는 엉망이었다. 자신의 경고를 듣지 않았다고 심술을 부리는 듯했다. 희한한 것은 연락하지도 않았는데 5분도 안 돼 렉커가 왔다는 점이다. 어쨌든 친구에게도 가지 못하고 렉커에 실려 그곳을 빠져나와 안달하던 생각이 난다. 사실 차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가지기 시작했다. `차에게도 영혼이 있구나.`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자동차가 단순히 기계라는 인식을 버리고 하나의 영혼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모든 사물에 영혼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시인의 자세 아니겠는가. 그래서 난 오늘도 내 차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유명인들과 얽힌 자동차 이야기 부럽고, 놀랍고, 안타까.. 2003-11-04
자동차를 좋아하는 스타들 단순히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단한 애정을 가지고 자동차를 모으는 스타들도 있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 출연해 잘 알려진 니콜라스 케이지는 남다른 자동차 광이다. 그의 차에 대한 열정은 영화 `식스티 세컨즈` 에서 고급차만을 전문적으로 터는 차 도둑 역할을 맡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니콜라스 케이지가 `식스티 세컨즈` 촬영장에서 고급 승용차를 훔치는 역할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1989년형 포르쉐를 도난당했다. 경찰은 크리스마스 때 도난당한 이 차를 오자크의 호수 아래에서 발견했다. 물론 더 이상 쓸 수 없도록 부서진 상태였다. 차대번호를 추적한 결과 경찰은 차 주인이 니콜라스 케이지인 것을 확인했지만, 당시 니콜라스 케이지의 측근들은 `식스티 세컨즈`의 흥행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해 한동안 경찰에게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차를 훔친 아놀드 J. 그램블링은 19세 소년으로 그 차가 니콜라스 케이지의 것인지는 몰랐다고 증언했다. 영화 찍던 중 포르쉐 도둑 맞은 니콜라스 케이지제임스 스페이더는 자동차 칼럼니스트로도 활약 은색 람보르기니 디아블로를 평상시에 몰고 다니며 시간이 날 때마다 나스카 레이싱 경기에 스탭으로 참여하는 니콜라스 케이지는 `식스티 세컨즈`에서 현란한 운전 테크닉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디아블로 외에 67년형 콜벳 스팅레이와 쉘비 등을 소유하고 있고 페라리도 한 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1933년형 포드차를 8만 달러에 사들기도 했다. 영화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에서 오드리 햅번의 상대역으로 등장했던 조지 페퍼드는 자동차 수집광이다. 여러 대의 클래식카를 갖고 있는 그가 가장 아끼는 자동차는 1953년형 메르세데츠 벤츠 220이다. 프랑스의 미국 대사관에서 관용차로 쓰던 이 차를 불하받은 조지 페퍼드는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직렬 6기통 2.2ℓ M180 엔진과 솔텍스 30PAA 기화기, 4단 변속기 등을 원형 그대로 되살렸다고 한다. `마네킹`,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등의 영화에서 주연으로 출연한 제임스 스페이더는 한때 미국의 자동차전문지 에서 칼럼니스트로 활약했을 정도로 자동차에 관해서는 박사로 통한다. 그는 평상시에 `굴러다닐 수 있는 모든 기계를 운전할 수 있고, 현재 굴러다니고 있는 모든 차를 타보았다` 고 호언하며 `차에 관심이 없는 여성이라도 1시간 안에 차에 빠지게 만들 자신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임스 스페이더의 광적인 자동차 사랑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눈에 띄어 광적인 자동차 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크래시`의 주연을 맡게 되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야쿠자 두목으로 단골처럼 등장하는 캐리 히로유키 다카와 역시 자동차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다. 1950년 일본에서 출생한 그는 아버지를 따라 5살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대학 시절 가라데에 뜻을 품고 무술에 열중하다 늦은 나이인 36살에 연극으로 눈을 돌리고 할리우드의 영화배우가 된다. 다카와의 실제 성격은 굉장히 호탕하고 사교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영화에서는 대부분 악역으로 등장했다. 돈 많은 일본인 역할을 맡은 `라이징 선`이라는 영화에서 그가 몰고 등장한 수퍼카 벡터는 실제 자신이 소유한 벡터 WX3이다. 자잘한 자동차 여러 대보다 초유의 수퍼카를 소유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80년대 TV 형사물인 `마이애미 바이스`로 유명세를 떨친 탤런트 겸 영화배우 돈 존슨은 차뿐만 아니라 할리 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을 무척 좋아한다. 미키 루크와 함께 `할리 데이비슨과 말보로맨` 이라는 액션영화에서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다니는 카우보이 역할을 맡기도 했던 그가 좋아하는 자동차는 단연코 콜벳이다. 돈 존슨은 단순히 자동차를 수집하거나 드라이빙을 즐기는 것 이외에 1999년에는 전기자동차에 관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던 중국의 벤처기업을 통째로 사들이기도 했다. 당시 그의 주변인들은 괜히 돈을 날렸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아직도 돈 존슨의 벤처기업에서는 전기로 움직이는 `Z스포츠카`라는 것을 개발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차에 대한 집착에서 빚어진 돈 존슨의 투자는 실패로 막을 내릴 것 같다. 레이서 뺨치는 운전실력을 가졌다 운전을 좋아해 프로 레이서 못지 않은 드라이빙 테크닉을 지니고 있는 유명인들도 있다. 영화 `빠삐용`으로 잘 알려진 액션배우 스티브 맥퀸은 카레이서 출신 영화배우로 스포츠카와 모터사이클에 남다른 애정을 지녔다. 그가 얼마나 운전을 잘 했는지는 그의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영화 `대탈주`에서 그는 트라이엄프 모터사이클로 철책을 뛰어넘는 연기를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르망 24시간 레이스를 다룬 영화 `르망`을 제작하고 주연을 맡기도 했다. 68년에 개봉한 `불릿`에서는 녹색 머스탱 GT390으로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자동차 추격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스티브 맥퀸은 페라리 GT, 재규어 D타입, XK, 랜드로버, 링컨 컨티넨탈, 미니 쿠퍼 S타입, 벨리네타 등의 자동차를 소유했고 트라이엄프, 혼다, 야마하 모터사이클도 여러 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할리 데이비슨에 대해서는 `훌륭한 모터사이클이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다`며 끝까지 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생전에 혼다 엘시노레, 포드 퓨마 등의 자동차 CF에 출연했고 F1 시리즈 후원사인 태그호이어의 광고모델을 하기도 했다. 영화사에 남는 명장면 보여준 스티브 맥퀸폴 뉴먼은 73세에 데이토나 24 경기 출전해 영화 `타워링`에서 스티브 맥퀸과 공연한 폴 뉴먼 역시 자동차광이다. 타워링 촬영 때는 스티브 맥퀸과 줄곧 자동차 운전 테크닉에 관해 의견을 교환할 정도였다. 폴 뉴먼은 젊은 시절부터 포켓볼과 자동차 운전에는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었는데,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허슬러`에서는 직접 포켓볼 스턴트를 보여주기도 했다. 폴 뉴먼은 자신의 운전실력을 실제 레이스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각종 자동차경주에 꾸준히 참가해오던 그는 지난 2000년 73세라는 고령에 `데이토나 24` 경기에 포르쉐 GT3R을 몰고 참가해 기네스북에 최고령 참가자로 기록되기도 했다. 지금도 폴 뉴먼은 레이스팀(뉴먼하스) 오너로 활약하고 있다. 국내 팬들에게 폴 뉴먼은 노령의 연기자로만 여겨지지만 그는 포르쉐 스파이더를 몰다가 사고로 죽은 영원한 청춘스타 `제임스 딘`의 1년 후배인 하이틴 스타 출신이다. 자동차 운전에 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사람이 바로 알랭 들롱(alain delon)이다. 미남의 상징이기도 한 알랭 들롱은 1935년 파리 교외의 작은 영화관에서 태어나 반항적인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1956년 트라이엄프 모터사이클에 매료되면서 반항기는 끝났다. 모터사이클의 스피드에 푹 빠져 정열적인 삶을 시작한다. 미남 배우라는 명성에 걸맞게 알랭 들롱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뭇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스코트가 되었다. 그는 1960년에는 빨간색 페라리, 67년에는 할리 데이비슨 모터사이클, 73년에는 파란색 시트로엥, 94년에는 검정색 BMW를 몰고 다니면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냈다. 알랭 들롱은 수준급의 운전실력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자동차 액션신을 모두 스스로 맡았다. 1996년 제64회 르망 24시간 레이스에는 정식으로 출전해 명예로운 개회식 스타터가 되기도 했다. 자동차와 관련된 CF에도 많이 출연했는데, 마쓰다 카펠라의 전속모델로도 활약했다. 영화 탑건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톰 크루즈는 영화에서 보여지는 모습처럼 실제 생활도 대단히 활력적이라고 한다. 스카이다이빙, 스쿠버다이빙, 자동차 레이싱 및 스턴트 비행기인 피츠 스페셜 S-2B를 모는 것이 그의 취미다. 톰 크루즈가 자신의 자동차 드라이빙 테크닉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영화는 `폭풍의 질주`다. 폭풍의 질주는 순전히 톰 크루즈의 자동차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 기획된 영화로, 비록 지금은 이혼했지만 전 부인인 니콜 키드먼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밖의 스타들 중에도 레이서들의 교육기관인 레이싱 스쿨을 다닌 이들이 많다. 미국에서 잘 알려진 JH 레이싱 스쿨에는 데이비드 레터맨, 케빈 스페이시, 스테판 도프, 티모시 달튼, 레이 로마노, 제리 세인필드, 마이클 돈, 리키 래칫맨, 제프 알트만, 조니 위더스푼 등이 다녀갔고, 얼마 전 국내에서도 개봉했던 영화 `분노의 질주`에 주연으로 출연했던 폴 워커와 빈 디젤 역시 감독의 권유로 JH 레이싱 스쿨을 다녔다. 미국 유명인들의 최고 인기차, 허머 허머는 보이는 외모만큼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자동차다. `허머 = 힘`이라는 등식은 `힘 = 재력 = 미국` 이라는 이미지와 교묘하게 맞물려 미국 유명인들 사이에서 부와 개성을 상징하는 자동차로 잘 알려져 있다. 테니스의 수퍼스타인 안드레 아가시는 자신의 애마로 허머를 탄다. 그는 테니스 코트에서 펼쳐지는 자신의 경기만큼 강력한 이미지를 원해 초고속의 스피드가 아닌, 강력한 토크를 자랑하는 힘의 자동차 허머를 선택했다. 프로 권투선수이자 영화배우인 조지 포먼 역시 허머를 애용한다. 과거에 NBA 농구 스타였던 줄리어스 어빙을 포함해 칼 말론, 데니스 로드맨, 랜디 존슨이 모두 허머의 광적인 팬이다. 허머 팬이라면 헤비급 프로 권투선수인 마이크 타이슨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풀 옵션을 단 6대의 허머를 한 번에 사들여 그 중 4대를 즉시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타이슨은 금전관리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던 탓에 많은 돈을 벌었음에도 신용불량자로 관리되고 있는 처지다. 그래서 허머를 살 형편이 아니었지만 프로모터인 돈 킹과 변호사를 설득해 보증을 서게 해 드림카를 소유했다고 한다. 사고뭉치 마이크 타이슨이지만 가끔씩 허머 같은 깜짝선물(?)이 생기는 탓에 그의 주변에는 늘 친구들이 따라다닌다고 한다. 단번에 6대의 허머 사들인 마이크 타이슨허머와 가장 어울리는 영화배우는 아놀드 타이슨을 키우고 전세계 프로 복싱계의 거물로 알려져 있는 돈 킹 역시 허머를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이 언제 마지막으로 운전했는지 기억조차 못할 정도로 차에는 철저히 무관심한 사람이지만 오직 한 가지, 자신의 재력과 힘을 상술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허머를 선택했다고 한다. 많은 신인 프로 복서들은 돈 킹의 허머를 보면서 세계 챔피언의 꿈을 키웠고, 마이크 타이슨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스포츠 선수 못지 않게 허머를 사랑하는 스타들은 다름 아닌 흑인 랩가수들이다. MC해머, 쿨리오, LL 쿨 J 등이 모두 허머를 탄다. 보이즈П 맨의 싱어인 마이클 매카시도 허머를 애마로 이용한다. 그들이 허머를 선택하는 이유는 `개성`이다. 특히 쿨리오는 `비싼 차와 예쁜 여자는 백인만의 특권이 아니다`는 생각으로 허머를 샀다고 한다. 그는 허머를 타고 다니며 많은 돈을 뿌리고, 비싼 스포츠카들은 모두 사 모으는 자동차 편력을 자랑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영화배우와 TV 탤런트도 빠질 수 없다. 80년대 인기 TV 시리즈였던 `기동 순찰대`에서 펀치 역을 맡았던 맥시코계 배우 에릭 에스트라다는 허머의 광적인 팬이다. 그는 허머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실천해보는 모험가이기도 해서 거친 바위로 구성된 진정한 오프로드를 즐긴다. 랜스 핸릭슨 역시 거친 자연을 사랑하기 때문에 허머를 선택한 영화배우다. 영화 `에일리언 2` 에서 인조인간 역할을 맡았던 그는 환갑이 넘은 나이로 허머를 직접 운전한다니, 개성파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허머를 사랑하는 노년의 신사가 또 있다. 굴지의 컴퓨터회사로 잘 알려진 `휴렛 팩커드`사의 창업자 월터 휴렛이 그 주인공이다. 컴퓨터 및 전자장치, 신기술에 관심이 많은 월터 휴렛은 대부분의 사업가들이 선택하는 고급 세단이나 리무진보다는 허머에 더욱 많은 애정을 갖고 있다. 허머가 있는 곳에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영화배우가 바로 아놀드 슈워제네거다. 아놀드는 서로 다른 옵션이 마련된 4대의 허머를 갖고 있는데, 이 중 1대는 자동차 메이커에서 광고효과를 목적으로 특수제작해 선사한 것으로 전 세계에 한 대밖에 없는 허머다. 한때 미국에서는 `허머와 가장 어울릴 만한 영화배우`를 투표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1위 아놀드 슈워제네거, 2위 웨슬리 스나입스가 뽑혔다고 하니 귀중한 허머를 몰 자격은 충분한 셈이다. 아놀드는 허머 이외에도 포르쉐 911 카레라 컨버터블, 벤츠 SL600, 엘도라도 비아리츠 컨버터블, 할리 데이비슨 팻보이, 걸프 스트림 III 개인용 제트기를 가지고 있다. 허머가 남성들만의 차는 아니다. 미국의 여성 코미디언 로잔느 바는 50대에 허머를 탄다. 그녀가 허머를 사랑하는 이유는 매우 재미있다. 1988년부터 97년까지 방영되었던 CBS의 코미디 프로 `로잔느`가 대히트를 치면서 그녀는 부와 명예를 얻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성공을 알릴 만한 자동차를 사려고 했지만 몸에 맞는 차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로잔느의 체중은 100kg이 훨씬 넘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그녀가 발견한 자동차가 바로 허머.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그녀는 허머를 애마로 선택했다. 출세가도를 달리면서 로잔느는 꾸준한 다이어트를 해서 지금은 포르쉐 같은 조그만 스포츠카도 탈 수 있게 되었지만, 과거의 추억(?) 때문인지 아직도 허머를 고집한다고 한다. 자동차사고로 절명한 유명인들 아무리 좋은 자동차를 가지고 다닌다 해도 안전에 주의하지 않으면 큰 사고를 당할 수 있다. 유명인들이 자동차와 관련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건도 꽤 많이 알려져 있다. 26세인 1956년 모나코의 레이니에 공과 결혼한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는 할리우드에서 굉장히 성공한 배우로 유명세를 떨쳤다. 모나코 왕국의 안주인이 된 그녀는 1982년 로버 3500으로 급한 고갯길이 이어진 곳을 시속 110km로 달리다 부주의로 중심을 잃고 절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사고 직후 함께 타고 있던 딸 스테파니는 곧바로 구출되었으나, 그레이스 켈리는 그 다음날 사망하고 말았다. 그레이스처럼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도 평범한 가정 출신으로 왕가와 결혼한 인물이다. 다이애나와 찰스 황태자는 1982년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이 순탄하지 않았고, 그들의 사생활은 특종을 노린 파파라치들에게 감시당하는 상황까지 되었다. 결국 1996년 이혼한 다이애나는 아랍계 백만장자인 페이드와 파리에서 데이트를 하다 파파라치에게 추격당하게 된다. 다이애나와 페이드를 태운 벤츠 S280은 파파라치를 피해 과속을 하게 되고, 시속 200km에 가까운 속도로 지하터널에 들어서다가 사고를 낸다. 운전기사가 살아남고 일행은 모두 사망했다. 과속방지용 홍보 CF 촬영 뒤 숨진 제임스 딘톰 믹스는 급정지 뒤 가방에 머리 맞아 절명 20세기 최고의 댄서로 알려져 있는 이사도라 던컨은 시대를 초월하는 의상을 즐겨 입는 것으로도 잘 알려졌다. 1927년 가을 던컨은 새로 유행하게 될 긴 스카프를 목에 걸치고 새로 장만한 부가티 스포츠카를 몰고 나왔다. 지켜보던 친구들에게 던컨은 손을 흔들면서 `친구들 안녕! 난 이제 영광을 얻게 될 꺼야`라고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남기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하지만 그녀의 긴 머플러가 자동차의 뒷바퀴에 감겼고 목이 졸린 그녀는 그 자리에서 숨지게 된다. 의 작가인 마가렛 미첼도 교통사고 희생자다. 애틀랜타에서 생활하던 마가렛은 1949년 8월 11일 극장에 가기 위해 길을 건너다가 과속으로 달리던 택시에 충돌했고 5일 뒤에 목숨을 잃었다. 영원한 청춘스타인 제임스 딘의 자동차사고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제임스 딘은 촬영이 없을 때면 자동차경기에 출전했을 만큼 레이스를 좋아했다. 1955년에는 팜 스프링스 레이스에 참가해 아마추어 부분에서 우승, 프로를 포함해 3위를 기록했고, 연이어 5회 레이스에 출장해 모두 클래스 우승을 차지해 프로 레이서들 사이에서도 존경을 받았다. 그가 워낙 스피드를 즐기다 보니 영화사에서 촬영중 자동차경기 참가를 금지하는 조항을 계약서에 첨부하기도 했다. 제임스 딘은 청춘스타로 청소년들에게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라 `과속을 하지 말라!` 는 주제로 청소년 홍보용 CF를 찍기도 했다. 하지만 이 홍보용 CF를 찍고 불과 며칠 뒤인 1955년 9월 30일, 그는 새로 산 자신의 포르쉐 스파이더를 몰고 과속으로 캘리포니아로 가던 중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포드 세단과 정면충돌했고 목뼈가 부러지며 24세의 나이로 현장에서 즉사했다. 1975년 24세의 나이로 사망한 육상선수 스티브 프리폰테인은 정확한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반 도로에서 불법으로 질주하는 스트리트 레이스 파티에 참석한 직후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사고 현장에는 이미 불법 경주에 참가했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스티브만 부서진 차 안에서 숨진 채 남아 있었는데, 부검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6%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가 사고를 낸 직접적인 원인이 레이스인지 음주운전인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안전을 무시하고 과속한 상황이었음은 분명하다.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인 톰 믹스는 엽기적인 죽음을 당했다. 스포츠 드라이빙의 귀재로도 통했고 고성능차를 여러 대 사 모으기도 했던 그는 1940년 8월 12일, 자신의 로드스터를 타고 애리조나로 여행을 가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톰은 자동차가 낼 수 있는 최고속력으로 달렸다. 그러던 중 공사중인 다리와 마주치게 된다.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달은 그는 능숙한 솜씨로 속도를 줄여 다리 직전에서 멋지게 차를 세우지만, 뒷시트에서 퉁겨져 나온 무거운 옷가방에 머리를 맞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기괴한 자동차사고를 당한 사람이 또 있다. `투나잇 쇼`로 잘 알려진 코미디언 스티브 앨런은 2000년 8월 30일, 자택에서 잠자던 도중 심장마비로 숨졌다. 그는 평소 심장과 관련된 질환을 앓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은 그의 시체를 부검했는데, 결과는 의외로 죽던 날 아침에 있었던 교통사고로 밝혀졌다. 그 날 아침 방송국으로 향하던 스티브는 신호에 걸려 정지하고 있었다. 이때 뒤따르던 차가 살짝 그의 차를 들이받아 뒷 범퍼가 부서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겉으로 보기에 부상자가 없는 단순한 접촉사고였지만 스티브는 이때 받은 충격으로 심장의 일부가 경미하게 손상되었다. 이를 알 수 없었던 스티브 앨런은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눈을 붙였고, 결국 그 날 밤 파손된 심장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와 심장마비를 일으켜 숨을 거두었다. 코미디언 어린 코박스는 1962년 LA에서 자신의 자동차인 시보레 콜베어를 몰다 전봇대를 들이받고 사망했다. 그의 불운은 잘못 만들어진 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시보레 콜베어는 터보 엔진과 RR 구동계로 앞선 메커니즘을 자랑했지만 1965년 자동차 전문가인 랄프 네이더에 의해 `어떠한 속도에서도 불안정한 자동차`로 꼽혔을 만큼 운전하기 힘든 차였다. 청춘스타였던 메튜 브로데릭 역시 자동차사고 때문에 고통을 겪는 스타다. 메튜는 1988년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아일랜드를 달리던 중 운전 부주의로 중앙선을 넘었고, 그 결과로 2명의 시민이 사망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법적인 처벌을 받아야만 했다. 자동차사고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던 소설가 J.G. 발라드는 교통사고 내용을 다룬 소설 `크래시`를 1988년에 선보였다. 이 소설은 엽기적인 자동차사고만을 추종하는 광적이고 변태적인 팬들에게 꽤나 인기를 끌었고, 1996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다. 주연을 맡은 인물은 앞서 소개한 제임스 스페이더. 영화에서 제임스 스페이더가 그랬듯이 크래시의 원작자 J.G. 발라드 역시 스스로 자동차사고를 일으켜 사망했다.
아찔했던 지난 여름 이야기 2003-11-04
지난 여름 나와 동료들은 당시 기획중이던 도박을 소재로 한 새로운 작품을 위해 여행을 계획했다. 정선 카지노에서 생생한 현장을 경험하고 자료도 수집하기로 한 것. 사실은 이 기회를 빌어 여름휴가를 즐겨보다는 약간의 꿍꿍이도 없지 않았다. 함께 떠나기로 한 3명 중 아쉽게도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고 휴가를 즐긴다는 설레임에 호기롭게 카니발의 운전대를 잡았다. 앞으로 2박 3일 동안 어떤 사건이 일어날 지 예상하지 못한 채. 대개의 만화가들은 2~3일 철야작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물론 나 역시 그랬기에 여행을 위해 미리 잠을 자두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경기도 일산에서 밤 12시에 출발, 인천과 구리 교문리에 들러 일행을 태우고 정선을 향해 출발한 것이 아침 6시. 영동고속도로에서 첫 번째 위험이 다가왔다. 지독한 `길치(癡)`인 나를 위해 열심히 지도책을 보아주던 2명의 동료는 어느새 잠이 들었고 나 역시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만 것이다. 눈을 떴을 때는 차가 중앙분리대와 충돌하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상황. 화들짝 놀라 차를 바로잡으니 잠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한숨을 돌린 우리는 정선이 가까워오자 즉석에서 해수욕장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오대산을 끼고 도는 길은 코너와 경사가 꽤 있었다. 내리막길에 접어들었을 때 문득 `경사길에서는 차가 저절로 내려갈텐데 굳이 시동을 켜고 달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사건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엔진 소리도 없어 조용하고 좋았지만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딱딱` 소리가 나며 차가 멈추지를 않았다. 앞차와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속도는 오히려 빨라지자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시프트 레버를 P 위치로 옮겨 추돌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시동을 끈 상태에서는 스티어링 휠과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때 처음 알았다. 즐거운 해수욕 후 정선 카지노로 가 밤을 꼬박 새운 우리 일행은 다음날 오후 2시쯤 춘천을 향해 고단한 몸을 차에 실었다. 아무리 철야작업으로 단련된 몸이라지만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좁은 국도를 따라 달리던 우리에게 이번 여행의 마지막이자 가장 위험한 순간이 찾아왔다. 잠시 동안의 졸음운전 후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정면에는 가드레일처럼 보이는 장애물이, 그리고 맞은편에는 달려오는 차 한 대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순간 장애물이 중앙분리대라고 생각한 나는 오른쪽으로 스티어링 휠을 꺾었지만 아뿔사! 그곳은 좁은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였고, 중앙분리대라고 생각한 것은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기 위한 가드레일이었다. 차는 좁은 인도 위를 지그재그 형태로 아슬아슬하게 움직여 겨우 멈춰섰다. 단잠에서 깬 동료들이 `뭐, 뭐야. 무슨 일이야`하며 호들갑을 떠는 사이 한숨을 돌리며 오른쪽을 보니 바깥쪽으로 난간도 없는 다리 위. 운전대를 조금만 더 꺾었다면 여지없는 추락사고였다. 2박 3일 동안 수면시간이 고작 4시간이었으니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죽을 고비를 아슬아슬하게 넘기고도 나의 생활패턴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한참 예쁘게 자라는 아이를 위해 노력도 해보았지만 만화가 생활 15년간 몸에 배어버린 올빼미 근성은 도저히 고칠 수가 없었다. 다만 지난 여름 이후 졸음운전만은 피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것이 나 자신과 가족, 그리고 함께 도로를 달리는 많은 운전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라고 생각했기에.
트럼펫 소리 2003-11-04
나는 운전하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다. 워낙 산만한 성격이라 운전처럼 주의를 요하는 일들은 별로 좋아하지도, 할 엄두도 내지 않는다. 아내의 강압으로 운전면허를 갖고 있긴 하지만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운전은 언제나 아내의 몫이다. 그런 나도 가끔은 피치 못하게 차를 가지고 나설 때가 있다. 일이 밀려 새벽 귀가가 예상될 때는 어쩔 수 없다. 그러면 나는 딱 두 가지 원칙만 갖고 운전대를 잡는다. 첫째, 웬만해선 차선을 바꾸지 않는다. 둘째, 빨리 가기 위해 차를 가지고 다니는 건 아니다. 나는 완벽하게, 더군다나 언제나, 이 두 가지 원칙을 지키며 운전을 했다. 특히 두 번째 원칙은 나에게는 거의 신조와 같다. 어쩌다 길이 잘 뚫려 일찍 목적지에 닿으면 그냥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니 참, 운전이란 나 같은 인간에게 있어 얼마나 심심한 일이겠는가? 재미있다거나 화가 난다거나 하는 단어들과 반대편에 있는 지루함이 아니라 아무 느낌이 없는 것이다. 심심하다. 특히 신호등에 걸려서 차가 진행이 안될 때 나는 십중팔구는 딴 짓을 하다가 뒤차의 클랙슨 세례를 받기가 일쑤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지루해서 딴 짓을 하는 것은 아니다. 멍하니 있다가, 혹은 바깥 풍경을 구경하다가, 아니면 앞차의 유리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심지어는 신호등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도 그런 주의를 받곤 한다. 어쩌면 나는 운전하는 동안의 대부분 시간에 내가 운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몸과 마음이, 시지각과 인식의 활동이 따로 노는 것이다. 상상하는 나는 운전하는 나와 별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하긴 나의 이런 운전습관이 다른 운전자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그 날도 사거리에서 직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가 아예 기어를 주차에 놓고 핸드 브레이크를 올려버렸다. 따뜻한 겨울 햇빛을 즐기고 있는데 전에 보지 못하던 문양이 눈에 띄었다. 스티어링 휠 가운데에 트럼펫 모양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 걸 발견했던 것이다. 물론 전부터 있었던 것인데, 주의깊게 보지 못하다가 이제야 눈에 띈 것이 신기해서 나는 손가락으로 꼭 눌러 보았다. 그리고 손가락 끝을 뒤집어 보니 거기에 트럼펫이 볼록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걸 몇 차례 반복했다. 그러다가 나는 좀 수상한 시선을 느끼기 시작했다. 혹시 하고 힐끗 신호등을 보았는데 아직 신호는 바뀌지 않았다. 다시 나는 트럼펫을 찍어서 손가락 끝에 매다는 장난을 시작했고, 급기야는 앞차의 운전자가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나를 바라보는 무시무시한 시선과 마주쳤다.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니 옆차의 운전자도 나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혹시 내 뒤차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하고 뒤를 보니 그 사람도 역시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는 황급히 스티어링 휠의 트럼펫 문양에서 손을 뗐다. 클랙슨 소리가 운전자들의 심기를 얼마나 날카롭게 하는지는 나도 알고 있는 바였다.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신호를 기다리다 심심해서 스티어링 휠에 자기의 머리를 집어 넣어보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어떤 운전자의 얘기가 생각났다. 나는 재빨리 상상하는 나를 불러 들여서 때마침 바뀐 신호에 맞춰 도망쳤다. 핸드 브레이크도 내리지 않고서.
자동차 10년 타기는 희망사항? 2003-11-04
24만km! 무쏘를 타고 있는 나에게는 늘 생각하는 목표가 있다. 우리나라 운전자들의 1년 평균 주행거리가 2만km 정도라고 하니 10년을 타면 20만km를 달린 것이고, 계기판에 `200,000`이라는 숫자가 나타날 때 기꺼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하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랑할 사이도 없이 어느새 24만km가 넘게 달려왔다. 10년도 안되었는데. 1993년 12월부터 몰고 다니기 시작했으니 이제 겨우 8년이 넘었을 뿐인데 벌써 24만km니. 그 사이 1천800만 원 하던 처음의 차값이 나날이 떨어져 지금은 보험회사에서 정하는 가격이 300만 원을 간신히 넘어서고 있다. 차값만 1년에 200만원씩 깎였다는 이야기인데, 차를 산 첫 해만 빼고는 `납부기한` 어김없이 세금을 1년에 120만 원씩 꼬박꼬박 나라에 바쳤다. 물론 환경 개선 부담금도 잊지 않았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니 열이 뻗치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아니, 1천만 원도 안 되는 차에다 세금을 그렇게나 물려? 좋아 한판 붙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훨씬 부지런한 분들이 열심히 개척을 해주셔서 이제는 세금을 조금만 낼 수 있게 되었다. 3년차부터 5%씩 깎아 12년차가 되면 50%만 내면 된다고 한다. 내가 타고 있는 무쏘는 이제 35%를 할인받게 되어 기분이 좋아졌다. 진작 이렇게 되었어야 했는데 이제서야 제대로 된 것에 기분이 좋다니 정말로 웃기는 일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무쏘는 엔진의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세금을 더 내야 했다. 내 무쏘의 현재 값어치는 생각하지도 않고 덩치가 크다고 세금을 더 내라고 하고 있다. 세상에 덩치 큰 모든 분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들의 세금이 더 비싸질지 모르니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2년 더 타면 내 무쏘의 값은 얼마나 내려갈지 궁금하다. 자동차세금이 얼마나 더 현실적으로 바뀌게 될 지는 더욱 궁금하다. 이 모든 억울함을 참아내고 있는 이유는, 내 무쏘를 10년은 타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한 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년을 타겠다는 내 욕심만 채우려다 보니 이제는 무쏘도 힘든지 자꾸 골골거린다. 그래도 남들보다는 정비를 열심히 하는 편인데 충분하지 않은지 요즘 들어 병원에 들락거리는 횟수가 늘었다. 의사 말로는 내 무쏘가 쇠약해져 나타나는 현상이라는데 그 녀석의 심장, 엔진만은 아직도 멀쩡하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엔진이 아니라면 다른 부분이야 고치고 바꾸어 달아 그런 대로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문제는 싱싱한 부품이 안 나온다는 데 있다. 움직일 수 없는 퇴물들의 집합장소인 폐차장에 가서 부품을 찾아야 할 때가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10년을 타려면 아직 2년이나 더 남아 있는데 2년을 더 채워 10년 타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내 차를 아는 사람들은 늘 궁금해한다. 어떻게 매연이 하나도 안 나와요? 앞으로 얼마나 더 탈 건가요? 정말로 93년식 무쏘 맞아요? 나는 말한다. `1993년 12월에 구청에 등록된 차입니다. 10년 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50만km를 달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저는 절대로 급가속, 급발진, 급제동 안 하려고 노력합니다. 때 되면 오일 갈고 하다보니 매연 구경하기도 힘드네요. 정말로 자랑스러운 차 아닙니까? 이 무쏘를 10년 넘게 타고 50만km를 넘게 달릴 때까지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10년 타기가 희망사항이 아니라 실천 가능한목표가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 땅에서 자동차 없이 살기 2003-11-04
마흔 다섯 살, 많이 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리지도 않은 나이다. 나이 마흔 몇을 헤아리게 되면서 생겨난 변화는 이제껏 살아온 방식으로 앞으로도 살게 될 거라는 체념과 고집이 늘어난 것이다. 씩씩한 인생 설계자들은 언제 어느 때라도 새로운 시작,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번거로운 일이다. 이제 와서 뭘 새로 시작해서 무슨 영광 보겠다고... 돌이켜 보니 내 삶은 안 하고, 못 하고, 없이 사는 것, 그저 그냥 사는 것이 대세였다. 대부분의 사내들이 일하고 남는 시간에 흔히들 하는 놀이 중에 무엇 하나 해본 것이 없다. 당구장에 가본 일도, 노름을 해본 일도, 등산, 낚시, 스키, 골프, 어느 것 하나 해 본 일이 없다. 물론 주식, 부동산, 저축 같은 심오한 일에 관여한 적도 없다. 적극적으로 기피하는 것도 많다. 가령 노래란 흥이 날 때 어쩌다 부르는 것이련만 오로지 노래를 부르기 위한 목적으로 컴컴한 방에 빼곡하게 모여 목청을 높이는 일은 정말 질색이다. 모임 후에 노래방엘 가게 되면 말 없이 슬쩍 내뺀다. 헬스클럽, 교회나 절, 각종 공부모임이나 시민운동단체 등등 적극적으로 기피하는 일이 참 많다. 지난 여러 해 동안은 TV와 신문도 거의 끊고 살고 있다. 인터넷 하나로도 정보가 넘쳐나는 판에 그것들은 쓸데없는 것을 너무도 많이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안 하고 못 하고 사는 가운데 늘 의식해야 하는 것이 자동차다. 프리랜서인 탓에 여의도와 우면동에 있는 방송사들을 매일 오가야 하고, 원고 일로 각종 신문, 잡지사를 찾아갈 일이 많은데 승용차 없이 살기란 고통이다. 요즘같이 추운 겨울에 산더미 같은 자료를 떠매고 어딘가를 가야 할 때는 정말 처량하기 이를 데 없다. 주위에서 쓰던 차를 거저 주겠다는 제의도 여러 번 받았다. 하지만 나는 운전을 배워본 일이 없다. 면허가 없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무슨 괴상한 인생철학을 지녔는가 하면 천만 아니다. 무슨 철학, 무슨 관을 `지니는` 것도 또한 될수록 기피하고자 하는 일 중에 하나니까. 실제 이유는 싱겁도록 간단하다. 음반을 모으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토록 음반을 모으고 음악을 들어왔다. 그 일에는 시간과 돈과 에너지가 든다. 다른 일에는 전혀 여력을 낼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젠가 친구들이 일제히 운전을 배우러 다니고, 상계동에 이어 일산 쪽으로 주택청약인가를 들 때도 나는 오로지 음반을 구해 듣느라 돌아가는 사정을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내 나이 마흔 몇. 하지만 되묻는다. 이렇게 살아서 뭐 잘못된 것이 있는가. 남들과 똑같이 살아야 한다는 국민교육헌장이 있는가. `내게는 한 사람도 너무 많다`고 니체가 말했다. 내게는 음악 한 가지도 너무 많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살게 되겠지? 불편이야 견디면 되는 일이고.
휘발유 엔진, 디젤 엔진, 그리고 SUV 이형수<.. 2003-11-04
자동차를 고르는 기준은 사람들마다 서로 다를 것이다. 보통은 자신이 추구하는 생활방식이나 멋, 자동차의 성능 등에 따라 자신만의 기준을 정하고 맘에 드는 차를 사기 마련이다. 다른 오너가 자신의 생활에 꼭 맞는 차를 골랐고 만족한다면 그 기준이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차종이야 어떻건 자신의 차를 정말로 아끼고 만족스러워하는 오너야말로 진정한 멋쟁이가 아닐까? 하지만 가끔 자동차의 특성 자체를 잘못 알고 있는 상태에서 영업사원이 강조하는 차의 특징만을 믿고 차종을 결정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있다. 주로 처음으로 자신의 차를 사는 친구들이 많이 저지르는 실수다. 개인적으로 자동차를 고를 때는 어떤 방식의 엔진을 선택할 것이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동차의 특성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휘발유 엔진은 연료를 많이 먹지만 조용하고, 디젤 엔진은 연료비가 싸지만 시끄럽다고 쉽게 평가한다. 물론 이것은 각 엔진의 특징 중 하나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중요한 특징일 수 있다. 특히 고유가 정책에 따라 기름값이 비싼 국내 사정에서는 오너들에게 엔진의 규격이나 특징보다는 연료비가 중요한 차종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각 엔진의 절대적인 선택 기준은 아니다. 휘발유 엔진은 단가를 싸게 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엔진의 무게가 가벼운 편이고, 동급 배기량의 디젤 엔진에 비해 높은 마력을 뽑아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구조가 단순해 자가정비가 쉽고 튜닝도 자유롭다. 그러나 휘발유 엔진은 연료를 점화시키기 위해서는 전기가 필요하다는 구조상의 문제 때문에 극심한 먼지와 습기, 비바람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디젤 엔진 어떨까? 디젤 엔진은 휘발유 엔진에 비해 부피가 크며 무겁고 같은 배기량에서는 휘발유 엔진보다 출력이 떨어지므로 구조상 소형 엔진에 불리하다. 엔진의 내구성이 강해 잔고장이 없지만 개조나 튜닝은 거의 불가능하다. 디젤 엔진 튜닝카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디젤 엔진은 피스톤의 긴 스트로크 운동을 이용하기 때문에 낮은 엔진회전수에서 큰 힘을 얻을 수 있고 열효율이 높아 일반적으로 휘발유 엔진보다 연료를 적게 먹는다. 또 전자장치가 적은 탓에 비바람이나 습기에 강하고, 극심한 먼지도 연료계통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디젤 엔진은 무거운 짐을 옮기거나 다른 차를 견인하는 등 큰 힘이 필요한 차와 험난한 오지를 탐험하는 SUV에 제격이다. 지난해 국내에서는 SUV가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과연 대다수 SUV 오너들이 악천후의 기상조건에 유리한 디젤 엔진의 특성을 제대로 알고 있을지 의문이다. 그보다는 일반 승용차처럼 잘 포장된 온로드만 다니는 오너들이 값싼 연료비를 고려해 SUV를 선택했을 것이다. SUV가 거칠고 도전적이며 자유로운 활동성 대신 그저 싼 디젤을 연료로 이용하는 운송수단으로만 받아들여지는 우리 현실이 안타깝다.
한국차의 미래가 밝은 이유 서현석<한국예술종합학교.. 2003-11-04
내가 유학생이던 70년대 후반만 해도 우리나라는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였기에 유학길에 오른다는 것이 여러 모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독일 쾰른에 있는 아헨국립음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빨리 학교를 졸업해 한국으로 돌아가는 데 온 힘을 쏟았기 때문에 아침이면 기차나 전철을 타고 학교로 향하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참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반복했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고독한 타향살이의 어려움을 이겨내던 시기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주말이면 차를 빌려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가는 여유 있는 학생이 가끔 있었다. 나는 독일 친구를 따라 벤츠나 BMW의 조수석에 앉아 본 경험이 있었는데, 자동차 자체가 귀했던 시기에 접해본 독일차들은 품질과 성능이 분명 뛰어나 보였다. 요즘 주위를 보면 참 많은 학생들이 유학길에 오르고 있다. 음악뿐 아니라 갖가지 학문을 배우기 위해 다양한 나라를 향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유학생활의 고달픔과 외로움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테지만 중고차 하나쯤 구입해 굴리는 일은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하니, 나의 유학시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풍족하고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요즘 학생들의 커진 씀씀이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현재 몰고, 접하고 있는 차들은 대부분 한국차가 아닐 것이다. 요즘 유학을 다녀온 학생들은 이전 세대들보다 훨씬 다양한 차를 타고 경험함으로써 수입차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고 자동차 선진국의 차와 국산차의 차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자동차에 대한 지식도 우리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가지고 있다. 소비자들의 눈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들이 선택하는 차의 수준도 그만큼 성장했음을 반증한다. 지금까지 내 손을 거쳐간 차들은 모두 대우차였다. 맵시나를 시작으로 에스페로 그리고 지금은 레간자를 타고 있다. 물론 맵시나 시절에는 차의 성능이나 품질이 `세계`를 논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세 모델의 발자취를 보면 국산차가 짧은 순간에 얼마나 놀랄 만한 성장을 이루었는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높아진 소비자의 눈을 만족시키고 나아가 세계 메이커들과 경쟁하려는 노력이 지금의 한국차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요즘 미국이나 유럽에서 한국차를 심심지 않게 볼 수 있음은 한국차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벤츠가 1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지만, 한국차는 그들보다 훨씬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만큼의 성장을 이루어냈으니 더 놀랄 만한 일이 아닐까. 내가 한국차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발전의 속도를 늦추지만 않는다면 우리가 만들어낸 차들이 일본이나 독일차를 누르고 세계시장에 우뚝 설 날을 꿈꿔보는 것도 결코 헛된 망상이 아닐 것이다.
내겐 수호천사가 있다 최원일<미국 공인회계사, .. 2003-11-04
한국에서는 30대 치매가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치매에 버금가는 증상이 내겐 20대부터 있었다. 시애틀에서의 일이다. 유학생이라기보다는 고학생이었던 나는 동포 언론사에서 취재기자로 일하며 학비를 벌고 있었다. 하루는 한인이 연루된 중요한 재판이 있어 급히 법원으로 가던 중이었다. 마침 사진기자가 다른 일로 자리를 비워 내가 사진까지 찍을 요량으로 카메라를 챙겼다. 신문사 앞에 주차해 놓은 차를 뺀 뒤 서너 블록을 갔을까? 멈춤 신호에서 멈춰섰을 때다. 갑자기 어깨 너머로 인기척이 느껴진다. 아까부터 룸미러에서 나의 시선을 성가시게 하던 뒤차의 운전자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꾸 차창 밖으로 팔을 뻗어 마치 욕을 하듯 손가락을 펼쳐 보이던 그다. 그러나 별놈이 다 있는 미국 땅에서 그런 것에 일일이 대꾸하다가는 내 볼일 못 본다는 것쯤은 알고 있던 터라 무시하고 오던 길이다. `If you don`t need this, can I take it?(이거 필요 없으시면 제가 가질까요?)` 내 차의 지붕에서 카메라를 집어내려 내게 주며 그가 건넨 농이었다. 아차! 자동차 문을 열면서 지붕 위에 올려놓은 그것을 깜빡 잊고 서너 블록을 달려온 것이다. 다운타운인지라 속력을 낼 수 없는 탓에 거의 기어오듯 오지 않았더라면, 또 정지신호에서 천천히 멈추지 않았더라면 내 몇 달치 봉급을 고스란히 토해내야 할 상황이 벌어졌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것도 모르고 손가락으로 내 차 지붕을 가리키며 그 아슬아슬한 상황을 알리려 하던 그를 아무 이유 없이 손가락 욕이나 해대는 불한당 취급을 하고 있었으니…. 그가 떠나면서 그랬다. `How was your road test?(로드 테스트 어땠나요?)` 텍사스로 학교를 옮긴 다음 봄방학을 맞아 난생 처음 캘리포니아 여행을 하고 있을 때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지나는 고속도로변 주유소에서 나의 건망증은 또다시 일을 만들었다. 기름을 넣고 커피를 한 잔 마신 뒤 자동차 문을 열려는데 열쇠가 없다. 어디에 있을까? 한참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다. 주머니를 뒤져보고 주유소 화장실을 가보고 계산대를 찾아보고, 내 차 밑, 남의 차 밑을 샅샅이 뒤지고 애꿎은 주유소 마당을 뚫어져라 훑었지만 별 무소용. 두 시간을 찾아 헤맸으나 보이는 것은 속절없이 내 옆을 오고 가는 다른 차들뿐이었다. 고산지대라 해는 이미 기울기 시작하는데 그 날 밤 안으로 LA에 도착해야 할 사정이 꼭 있는 나로서는 정말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벤치에 걸터앉아 있는 내게 이윽고 수호천사가 나타났다. 주유소에서 일하는 허름한 차림의 멕시칸 청소부. 사람 좋게 웃으며 낯익은 키를 내게 건넨다. 쓰레기 소각장에서 찾아온 것이라며…. 주유소 계산대 현관의 쓰레기통을 안 뒤져 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동차 키는 훨씬 정교한(?) 방식으로 쓰레기장에 버려져 있었다 한다. 다 피운 담뱃갑 안에 들어 있었다니. 그러고 보니 주머니에 있던 빈 담뱃갑을 쓰레기통에 버렸던 생각이 난다. 주머니 안에 넣는다는 키를 주머니 속 빈 담뱃갑에 넣었던 것이고, 그 담뱃갑이 들어간 쓰레기통은 두어 시간 후 소각장으로 옮겨졌으니 내 자동차 열쇠는 `화형` 일보 직전에 살아 나온 셈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흑인이나 히스패닉계 인종에 부정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들 한다. 그 `일반적`이라는 말이 주는 우악스러운 획일화를 나는 원래부터 좀 싫어한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호감을 가지고 보려 하는 이유는 훨씬 구체적이다. 그들이 내게 먼저 호의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내가 여전히 그 고마운 이들을 기억하는 것으로 아직 치매에 걸리지 않았음을 확신하며 안도할 수 있으니 그들은 지금도 내게 있어 수호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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