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랜드로버클럽코리아의 구룡덕봉 나들이 화사한 가을 단.. 2003-11-21
가을이 되면 진초록 나무와 풀들이 서서히 노랗고 붉은 빛을 띠며 아름다운 야생화가 산야를 물들인다. 콘크리트에 갇혀 정신 없이 살아온 도시 사람들에게 가을 단풍은 감성을 되살려 주는 최고의 여행 동반자다. 시간을 쪼개서 떠나는 단풍여행. 운 좋게도 일도 하고 아름다운 가을경치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심상치 않은 가을 산행 9월 27∼28일 강원도 인제에서 가진 랜드로버클럽코리아(www.landroverclubkorea.com) 정기모임에 따라 나섰다. 전국 각지에서 뉴 레인지로버를 비롯해 디스커버리, 프리랜더 등 15대가 모여들었다. 신입회원이 많이 참석해 인사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둠이 깔릴 무렵 회원들이 집에서 가져온 음식으로 파티를 벌였다. 십시일반이라고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바비큐 파티에 군침이 돈다. 직장생활, 가족의 근황 등 이야기꽃이 핀다. 역시 차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온·오프로드를 가리지 않고 뛰어난 실력을 보여 랜드로버 중에서도 레인지로버를 위협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는 폭스바겐 투아렉에 관한 이야기로 첫 테이프를 끊는다. 정태성 고문은 “레인지로버와 투아렉을 모두 타 보았다”고 말하면서 “투아렉도 괜찮지만 아직은 레인지로버가 한 수 위인 것 같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랜드로버코리아를 대표해서 참석한 김호영 차장에게는 차를 타면서 찾아낸 의문점, 랜드로버의 AS체계 등 여러 가지 질문이 던져졌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밤새 이야기가 이어진다. 다음날 아침, 아침가리골을 찾아갈 준비로 바빴다. 아침가리골은 해발 1천436m의 방태산과 구룡덕봉(1천388m), 가칠봉(1천240m) 등으로 둘러싸여 있는 오지마을이다. 453번 지방도로가 뚫려 있지만 승용차로는 갈 수 없는 험한 곳이다. 출발하기 전 실망스런 소식이 들려 왔다. 여름 내내 쏟아진 비로 도로가 유실되어 정상까지 오르기 힘들다는 것이다. 공사를 위해 입구를 막아 놓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직접 가서 보니 ‘공사 중,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크게 붙어 있다. 들어가지도 못하고 퇴각할 상황이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반대쪽을 오르기로 의견을 모았다. “구룡덕봉 쪽은 길이 더 험하지만 경치가 일품”이라는 말에 위로를 삼으며 차를 돌린다. 차에서 바라본 산꼭대기는 이미 단풍이 절정이다. 오솔길도 운치가 그만이다. 향긋한 향기가 코끝에 스민다. 작은 다리가 놓인 개울 앞에서 대열이 멈춘다. 다리 양쪽 길이 떨어져 나갔다. ‘S’자 모양으로 핸들을 돌리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너비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바퀴가 구멍에 빠질 수 있다. 속도를 높이면 길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한 회원이 코드라이버 역할을 맡았다. 11대 모두 무사히 통과. 조마조마한 가운데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중간에 한 무리의 무쏘와 마주쳤다. 얼굴빛이 밝지 않다. 무쏘 운전자가 말한다. “길이 만만치 않아요. 지날 수는 있지만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얼추 보아도 머드 타이어를 끼우고 차체를 높인, 하드코어를 위한 튜닝을 했다. 이런 차들이 포기했다면 보통 힘든 길이 아닐 것이다. 회원들이 모여서 다시 회의를 한다. ‘오랜만에 단풍 구경에, 달콤한 공기를 마신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끝까지 나갈 것인가.’ 오프로드 ‘짱’에게 포기란 없다 대부분 가족을 동반한 터라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오프로드에서 진가를 발휘한다는 랜드로버를 타면서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포기한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 회원들은 제각기 운전석으로 돌아가 핸들을 잡는다. 자갈이 바퀴를 뚫을 듯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다. 경사가 심하고 구불구불한 코너의 연속이다. 긴 휠트래블을 자랑하듯이 레인지로버와 디스커버리가 주축을 이룬 대열은 성큼성큼 잘도 올라간다. 자갈밭을 지났지만 안도의 숨을 내쉴 틈이 없다. 길 가운데가 빗물에 떠내려간 진흙길과 맞닥뜨린다. 두 번째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다. 길 한쪽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지반도 약해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차까지 내려앉을 것 같다. 남아 있는 길마저 ‘S’자 모양에 가장자리가 낮고 가운데가 불룩 튀어나왔다. 무사히 오른다고 해도 마지막 부분이 움푹 패였다. 대각선 스턱에 빠지기 쉬운 코스다. 험로에 들어섰을 때는 차에서 내려 지날 곳을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코스를 확인하고 어떻게 지나갈 것인지 상의한 뒤 코드라이버가 안내하는 대로 핸들을 꺾으면서 나아간다. 추락할 위험이 있어 가족들은 차에서 내렸다. 꼬맹이들은 그저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모양이다. 대오를 이끌었던 디스커버리가 맨 먼저 도전에 나섰다. 되도록 길을 무너뜨리지 않고,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쪽을 밟는다. 조수석 앞바퀴가 공중에 뜨고 말았다. 뜬 바퀴는 바퀴대로, 진흙을 밟은 대각선 뒷바퀴는 뒷바퀴대로 헛돌면서 흰 연기를 낼 뿐 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차를 뒤로 밀어 자세를 잡은 다음 다시 도전한다. 이번에는 빠른 속도로 지나가기로 한다. 지면이 무너질 것에 대비해 회원들이 자갈을 쌓는다. “군대에서 하수구를 만들기 위해 많이 했던 일입니다. 땅 냄새 맡은 기억도 오래되었어요. 재미있네요. 거기들 빨리빨리 나르세요.” 차를 빠르게 몬다. 움푹 패인 곳에서 머플러가 땅을 때린다. ‘어어’ 하는 소리와 함께 회원들은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차는 힘차게 오른다.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온다. 80년 초반에 국내에 들어왔다는 보그(오너는 괴물이라고 부름)의 생김새가 우락부락하지만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힘들이지 않고 통과다. 회의하고 돌 채우고, 이곳을 통과하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아침에 출발했지만 반도 오르지 못했다. 이미 해는 서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다음 코스는 ‘살벌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길이 없다. 너비가 3m 조금 넘지만 양쪽으로 남아 있는 길이 약 70cm. 곡예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 소리마저 시원한 개울이다. 손을 담그고 긴장을 푼다. 구룡덕봉 정상에 오르기는 무리다. 가족동반 여행이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내려가기로 했다. 차를 돌릴 수 있는 곳까지 후진. 산을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더 주의하라는 얘기가 있듯이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부산에서 온 Td5가 후진으로 차를 빼던 중 냇가에서 앞 범퍼를 바닥에 찧은 것이다. ‘두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앞 범퍼가 떨어져 나갔다. 냇가에서 차를 돌리기로 했다.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핸들 돌리기를 수십 번. 겨우 빠져 나왔다. 견인 바도 등장했다. 초입의 구덩이 코스를 무사히 빠져 나왔지만 거의 다 내려왔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렸는지 앞바퀴가 빠져 버렸다. 차가 폭 내려앉아 배가 닿았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 뒤 범퍼에 견인 바를 달아 당긴다. 사이드 발판이 달려 있어 차에 흠집이 생기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기념촬영을 마치고 일정을 마무리한다. 앞 범퍼가 떨어져 속이 상할 법하지만 우스갯소리로 회원들을 즐겁게 한다. “속도만 조금 높여도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 어떻게 부산까지 갑니까.” “범퍼가 없어도 차는 움직이니 떼어내고 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에요.” “범퍼 없이 달리면 부산에서 같이 온 회원이 창피하다며 비행기 타고 간답니다.”
클럽엑트 스스로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 2003-11-12
2003년 10월 8일, 기아 엑스트렉 동호회 ‘클럽엑트’의 홈페이지(www.clubxtrek.net)에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동호회 개설 5개월만에 회원 수 2천 명을 넘으면서 홈페이지 운영에 무리가 온 것이다. 긴급하게 회원 관리에 관한 특단 조치가 제안되었다. 누구라도 제한 없이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지금까지의 방식을 버리고, 회원을 구분하고 홈페이지 사용을 제한하자는 의견이었다. 결국 며칠에 걸쳐 서로의 생각을 나눈 끝에 내려진 결론은 긴급조치 보류. ‘클럽엑트’는 엑스트렉을 아끼는 사람이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는 이유에서였다. 2003년 5월 21일에 출시된 기아 엑스트렉은 기아 카렌스Ⅱ 디젤을 잇는 모델이다. 험로제한장치를 추가해 새롭게 승인을 받았지만 메커니즘은 카렌스Ⅱ 디젤과 거의 같다. 그렇지만 엑스트렉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던 예비 오너들은 차의 정보에 목말라 했고, 홈페이지를 처음 만든 주기현 씨 또한 마찬가지였다. 엑스트렉의 정보 공유 위해 만들어져 같은 차 타는 ‘동지애’ 바탕 친목도모 ‘클럽엑트’가 만들어진 가장 큰 이유는 정보의 공유였다. 엑스트렉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만큼 회원간의 친목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엑스트렉에 대한 정보가 하나둘씩 올라오면서 회원은 급속도로 늘어났다. 회원들이 모이는 둥지가 마련되면서 동호회 스티커 제작, 각 지역별 운영자의 선출 등 점차 자동차 동호회로서 모습을 갖춰갔다. 엑스트렉에 빠져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한 사람들은 클럽엑트에서 또 다른 매력을 찾았다. 바로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재미다. 심지어 클럽엑트에 한번 발을 들여놓았던 다른 차종의 오너가 동호회원들이 좋아 클럽엑트 동호회 스티커를 자기 차에 붙이고 다닐 정도다. 회원들의 유대감을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다. 지난 7월 23일에 현대·기아자동차가 파업을 하면서 엑스트렉 출고에 비상이 걸렸다. 이미 한참 전에 엑스트렉을 계약하고 부푼 기대감으로 하루하루 엑스트렉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파업이 계속되면서 조금씩 지쳐 갔다. 계약을 취소하고 타사의 SUV를 뽑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클럽엑트 회원들은 파업에 대해 의견도 나누고 불평도 털어놓으면서 엑스트렉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차관리법과 시승기를 읽으며 참았다는 회원들이 상당수다. 결국 그들은 차를 건네 받고 뿌듯한 마음까지 나눌 수 있었다. 회원들의 클럽엑트 사랑은 대단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홈페이지 서버 유지와 정모 준비를 위한 후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모금은 지난 8월부터 시작되었고, 지금까지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회원들 스스로 만들어 가는 클럽엑트에는 아직까지 동호회 회장이 없다. 자유로움을 즐길 줄 아는 오너들이라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자칫 분란이 일어날 수 있는 홈페이지 운영을 동호회 회장도 없이 하면서 회원들은 스스로의 권리와 의무를 확실히 챙긴다. 홈페이지 불편사항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고, 설문조사나 공지사항난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댓글이 넘쳐난다. 홈페이지에서 가장 인기가 넘치는 곳은 시승기 게시판이다. 거의 매일 5∼10개의 시승기가 올라오고 시승기에 대한 토론도 뜨겁다. 기아자동차 홈페이지에 동호회 등록신청도 했다. 현재 추천인수 상위를 기록하며 정식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아직은 오프라인 모임이 대대적으로 열리지는 못했다. 차츰 전국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지역정모가 열릴 듯하면 공지가 나기도 전에 스폰서부터 넘쳐나는 동호회가 클럽엑트다. 음료수, 여행용 휴지 등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청하고 나선다. 빠르게 타올랐다가 금새 꺼져버리는 모임이기를 거부하는 ‘클럽엑트’. 가을의 중반에서 서서히 타오르는 이들의 열정은 다가오는 추운 겨울도 거뜬하게 이겨낼 것이다.
금강 유원지에서 쓰레기 줍던 날 참가 동호회 : 무쏘.. 2003-11-05
봄이다. 날씨도 좋다. 일요일이고, 데이트가 기다려지는 날이다. 잠이나 실컷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오늘은 동호회 회원들과 ‘그린 드라이브 캠페인’ 가는 날. 시원한 강바람을 맞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전날 출발해서 회원들과 인사도 하고, 소주로 목운동도 할까 했지만 원고 마감이 코앞이어서 기자는 행사 당일에 합류했다. 오랜만에 새차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오늘 취재진의 애마 ‘렉스턴’은 밟는 대로 쭉쭉 달려 주었다. 속도 좋고, 승차감 좋고, 오늘 드라이브는 최고다. 말 그대로 ‘그린 드라이브 캠페인’이니 ‘그린 캠페인’만 성공하면 끝이다. 강을 따라 펼쳐진 금강 유원지 옅게 낀 안개 사이로 강물이 보였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릴 때마다 ‘참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맑았다. 노랫말처럼 ‘흐르는 강물은 장관’이었다. 금강은 전북 장수군 소백산맥에서 발원해 충청도를 거치고 충남·전북의 경계를 이루면서 군산만으로 흘러든다. 상류에는 대전분지·청주분지, 중류에는 호서평야, 하류에는 전북평야가 있어 쌀 농사의 젖줄 구실을 한다. 1980년에는 신탄진 부근에 대청댐이 건설되었다고 하나 요즘은 봄 가뭄 때문에 모래사장이 눈에 띄게 드러났다. 가뭄이 더 계속되면 한 해 농사가 힘들다고 하니 걱정이다. 물 속에 잠겨 있던 쓰레기도 강둑에 많이 쌓였다. 강을 따라 펼쳐진 유원지에는 여름에 많은 피서객이 모여들어 몸살을 겪는다. 금강휴게소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우회전하니 조그만 톨게이트가 나온다. 너무 초라해 “이거 진짜 톨게이트 맞아요?” 하고 물어 보는 사람이 있을 듯 하다.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약 150m 직진 그리고 좌회전을 하자 제방길이 이어져 강을 따라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둑을 건널 때는 경치 구경에 한눈을 팔다 물 속으로 빠질 것만 같았다. 콘크리트 도로를 달리고 좁은 동네 골목을 지나 10분 정도 가니 비포장도로가 나왔다. ‘울퉁불퉁’. 흙먼지를 뒤로 하고 강을 바라보며 달리는 시원함, 이 맛 때문에 주말을 기다리는 걸까. 강 건너 모래사장에 검은색 무쏘 무리가 보였다. 강변에 22대의 무쏘가 일렬로 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기자와 통화했던 강경진 회원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먼저 도착해 한 번 둘러봤습니다. 쓰레기가 별로 없어요. 깨끗합니다. 장소를 잘못 잡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강변에서 보물찾기라도 해야 하는 건가. 이번 그린 드라이브 캠페인은 ‘다음 넷 무쏘 투어 클럽 노블’ 동호회가 참여했다. 초대 시삽이었던 김운현 씨는 “무쏘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가족, 친구와 어울려 자연으로 떠나자는 소박한 바램으로 동호회를 만들었습니다. 현재 550여 명의 회원이 있어요”라고 소개했다. 이날 22대의 무쏘에 타고 온 참가자는 6살배기 꼬마부터 42세의 김운현 씨까지 36명. 실제로 모인 차는 23대로 코란도 한 대가 섞여 있었다. ‘스타킹’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회원은 익살스럽게 그 사연을 소개했다. “저기 빨간색 코란도도 우리 회원 차입니다. 무쏘를 타다가 코란도로 바꿨거든요. 제명시킬까 하다가 그동안 미운 정이 들었고 메이커도 같아 끼워 주고 있어요. 검은색 무쏘에 빨간색 코란도, 완전히 깍두기 아닙니까?” 금강을 그린 드라이브 캠페인 지역으로 잡은 이유는 봄 가뭄으로 수위가 낮아져 물 속에 있던 쓰레기가 많이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전국의 회원이 모이기에는 중간 지점인 금강이 제격이란다. 줄지어 서 있는 차들의 번호판을 살펴보니 정말로 서울, 충북, 대구, 전남 곳곳에서 왔다. 일렬로 늘어서서 모래밭을 살폈지만 쓰레기는 보이지 않았다. 간간이 담배꽁초와 휴지가 눈에 띌 뿐이다. 꼬맹이들은 겨우 휴지 한 장을 주워 “아빠 찾았다”라고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판국이다. 진짜 보물찾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상황이 바뀌었다. 1km쯤 위로 올라가니 쓰레기 보물이 쉬지 않고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일부러 숨긴 것처럼 바위틈, 모래 속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닌가. 옆에서는 대박(?)이 터졌다. 쓰레기를 가져와 기름을 붓고 태운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기름 때문에 쓰레기가 자갈에까지 붙어 있었다. 2시간 동안 긁어모은 쓰레기가 여섯 자루가 넘었다. 게다가 폐타이어, 배터리, 유리가 많아 들고 가기가 어려웠다. 이때 누군가가 무쏘 밴을 몰고 온 회원을 불렀다. “맨날 이럴 때만 부르니?” 차 주인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웃는 얼굴이었다. 오랜만에 동호회 모임에 참석해 자신의 애마가 쓰레기차로 변했고, 그 차를 운전하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도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하얀 모래밭이 한결 깨끗해졌다. “쓰레기를 줍는 척하다가 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대박이 터져 캠페인다운 캠페인을 하고 돌아가게 되었다”며 참가자들은 좋아했다. 2대 시삽인 양기정 씨는 원래 보육원의 어린 친구들을 태우고 오프로드를 달릴 예정이었다고 말한다. “준비가 거의 끝난 상태에서 그쪽 담당자가 외국으로 출장을 가는 바람에 연기됐어요. 어린 친구들이 많이 기다렸는데 너무 아쉽습니다. 다음에 다시 추진할 예정이니 꼭 와 주세요.” 그러면서 “이번 쓰레기 줍기 행사도 좋았어요. 시원한 강바람을 쐬고 청소까지 깨끗이 하고 나니 스트레스가 확 풀립니다. 생활전선에 뛰어들어도 거뜬히 소화해 낼 수 있는 힘도 충전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때 멀리서 동네 아주머니가 소리쳤다. “이봐유! 어디서 왔데유? 청소를 하긴 해야 한다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참 깨끗해졌네유, 근데 무슨 차들이 그렇게 똑같이 생겼데유……!” 협찬·쌍용자동차 /후원· 환경부 자동차공해 연구소
충남 서산시 천수만 철새 도래지를 찾아 참가 동호회 .. 2003-11-05
지도를 바꾼 대역사.’좁은 땅을 넓히기 위해 바다를 막는 간척사업에 붙었던 수식어다. 바다를 메우고 넓은 농토가 생기고……. 그렇지만 ‘안티파’임을 자칭하는 기자에게 간척공사라는 것은 한 정권이 치적을 내세우고 싶어서 벌이는 일회성 행사로만 여겨졌다. 하늘에서 찍은 항공 사진은 평평한 땅만 보여줄 뿐 정말로 지도가 바뀌었는지 알 수 없지 않은가. 이런 삐딱한(?) 생각을 갖고 있는 만큼 랜드로버 클럽에서 “천수만에 철새 모이를 주러 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머리 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끝없는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서산농장 하지만 랜드로버 클럽 코리아 회원들과 함께 찾은 천수만은 장관 그 자체였다. 우리나라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남도의 너른 평야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이곳 서산농장에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사각형을 모아 놓은 듯한 논에는 한아름이 넘는 트랙터 바퀴 자국이 선명하고, 몇 km를 달려도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넓은 땅이 펼쳐진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래서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다. 원래 이곳은 드넓은 갯벌이었지만 현대건설이 서산시 남면과 홍성군 서부면을 잇는 8km 의 둑을 만들어 육지로 바꾸었다. ‘정주영 공법’이라고 알려진 천수만 방조제가 그것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바다를 막기 위해 유조선을 제방에 붙여 침몰시켜 물막이 공사를 마쳤다고 한다. 이렇게 생긴 간척지는 서울 여의도 면적의 48배인 3천122만 평이나 된다. A지구는 벼농사를 짓는 논, B지구는 북한으로 보내졌던 소를 키운 목장이다. 이곳은 1980년 매립을 시작해 96년 공사가 끝났다. 바닷물과 소금기가 빠져 농사를 짓기 시작한 해는 1986년이다. 90년대 들어 드넓은 황무지 같았던 땅에 철새들이 찾아 들었다. 대규모 간척사업의 결과로 천수만 일대는 비행기로 볍씨와 비료를 뿌릴 정도로 광활한 논과 너른 호수, 수많은 갈대밭이 생겨났다. 특히 수심이 얕은 호수에 작은 물고기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겨울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철새 도래지였던 부산 을숙도나 경남 창원의 주남 저수지가 개발로 시끄러워지자 사람이 뜸한 이곳으로 새들이 자리를 옮겨 온 것이다. 이번 그린 드라이브 캠페인은 랜드로버 클럽 코리아가 참여했고, 서산 암디나가 동호회의 이희만 회장이 안내를 맡았다. 그는 서울과 부산, 청주에서 오는 회원들을 위해 잘 곳을 예약하고 철새 모이까지 준비하는 수고를 해주었다. 랜드로버 클럽 코리아 회원들은 안면도 입구 청포대 해수욕장에 있는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일찍 천수만을 향해 길을 나섰다. 겨울나는 철새들에게 모이 나눠 주기 간월도 입구 맞은편 비포장도로로 들어가면 곧바로 서산농장이다. 특별히 관리하는 사람은 없지만 농장을 중심으로 반경 4km 이내는 수렵이 금지되어 있다. 또 길이 10km 이상, 최대 너비 4km를 넘는 A지구 간척지는 길눈이 어두운 사람이 들어가면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나오는 길을 찾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다. 암디나가팀의 이희만 회장이 앞장서고, 디펜더, 레인지로버 등을 몰고 온 랜드로버 클럽 회원이 뒤를 따라 간척지로 들어섰다. 이곳을 찾는 새들은 대부분 시베리아에서 출발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온다. 재두루미, 기러기 등 70여 종의 철새가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 그중 수 십만 마리의 가창오리는 장관을 이룬다. 호수에는 커다란 고니가 무리를 지어 앉아 있고 빈 논에는 가창오리와 텃새들이 모이를 찾아 돌아다닌다. 세계적으로 희귀조인 황새와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도 이곳에서 발견되어 큰 관심을 끌었었다. 6km 정도 들어가 새들이 많은 곳에 차를 세웠다. 하지만 사람 기척이 나자 새들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이라고는 하지만 철새를 가까이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새떼를 보고 신기해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릴 때마다 새들이 날아올라 환상적인 군무를 보여주었다. 회원들은 곡식 포대를 열어 논에 뿌렸다. 옥수수와 벼, 조, 콩이 섞인 잡곡밥(?)을 논바닥에 놓기를 몇 번, 먹이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더 사 오는 건데……” 아쉬운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추수가 끝난 논에 떨어진 나락이 새들의 식사거리다. 현대건설의 소유인 이 땅은 작년부터 일반인을 상대로 매각이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이곳에서 농사지은 쌀은 현대자동차 등 계열사의 식당에 납품되었다. 쌀값이 떨어져 이제 벼농사도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논이 잘 팔릴지 의문이지만 개인 소유가 되면 사람들의 출입이 잦아지고 농약도 더 쓰게 되어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위협받게 될지도 모른다. 천수만 간척지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땅이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철새 도래지로 자리를 잡은 만큼 어떤 식으로든 새들이 마음놓고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랜드로버 클럽 코리아 회원들이 뿌린 모이는 아주 적은 양이었지만 이런 행동이 하나하나 모여 산과 강, 바다가 깨끗해지고 편안한 동식물의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하늘을 붉게 물들인 노을만큼 자연 사랑에 앞장서는 오프로드 동호인들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북 단양군 의풍리 산골학교를 찾아 참여 동호회 : 랜.. 2003-11-05
더위가 한창인 지난 8월 시작한 ‘그린 드라이브 캠페인’. 그동안 두 번이나 계절이 바뀌어 어느덧 새해에 접어들었다. 그린 드라이브 캠페인은 오프로도 동호회가 중심이 되어 ‘산과 강을 깨끗이 하자’는 목적으로 출발했다. 동호회 활동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바꾸어보자는 뜻도 담겨 있었다. ‘랜드로버 클럽 코리아’와 함께 한 단양의 오지 마을 방문은 이런 취지에 딱 맞는 행사였다. 의사인 회장이 진료를 하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는 등 가족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람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랜드로버 12대로 33명이 함께 움직여 랜드로버 클럽 코리아(회장 고창걸)는 2000년 6월에 만들어졌다. 오프로드를 좋아하는 것은 여느 동호회와는 다를 것이 없지만 랜드로버 차를 갖고 있는 사람만 회원이 될 수 있다. 현재 회원 수는 약 20명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정기모임을 갖는다. 다른 오프로드 동호회원을 초청해 함께 달리기도 하고 기회가 닿은 대로 자연보호 활동과 오지 방문 등을 해왔다. 다섯 번째 그린 드라이브 캠페인은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에 다녀왔다. 충북 도청에 전화를 걸어 최고의 오지로 추천 받은 곳이다. 북쪽은 강원도 영월 땅으로 방랑시인 김삿갓이 여생을 보냈다는 유허지가 있고, 남쪽은 소백산국립공원에 의해 경상북도와 나눠진다. 첩첩산중이라고 해도 지도에 없는 작은 마을은 아니다. 의풍1리와 2리를 합쳐 90여 가구가 살고 있고 초등학교 분교도 있다. 서울에서 의풍까지 지도 위에 선을 그으면 약 200km로 그리 멀지 않다. 예전 같으면 영동고속도로 원주IC에서 나가 제천과 단양을 거치는 5번 국도를 타야 하지만 12월 14일 중앙고속도로가 완전 개통되어 영주, 안동까지 한 달음에 갈 수 있다. 서울에서 떠나는 취재팀과 랜드로버 클럽 코리아 회원들은 12월 15일 토요일 오전에 길을 나섰다. 전주, 부산 등에서 오는 회원들을 만나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제천 근처 숙소에 도착해 짐을 정리하는 동안 서울, 전주, 부산 등에서 뒤늦게 출발한 회원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평소에 클럽 홈페이지를 통해 안부를 묻고 정보를 나눈 덕분에 처음 만나도 친근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기자가 타고 간 랜드로버 프리랜더를 비롯해 디스커버리 V8과 Td5, 구형 레인지로버, 국내에 하나밖에 없다는 디펜더 110 등 뉴 레인지로버를 제외한 모든 차종이 모였다. 차는 모두 12대, 33명이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먼 길을 달려온 피곤함을 떨쳐 버리고 일찍이 목적지를 향해 시동을 걸었다. 단양을 거쳐 의풍까지는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충주호를 거쳐 단양까지 가려면 많이 돌아야 하지만 최고의 오프로더임을 자부하는 랜드로버 클럽 회원들은 포크레인이 바위를 옮기는 비포장도로를 넘어 바로 중앙고속도로 매포IC 쪽으로 넘어갔다. 중간에 기름을 넣기 위해 들어간 주유소는 말 그대로 대박을 맞았고, 자판기의 커피가 동이 나기도 했다. 서울에서 출발한 마지막 참가자를 만나기 위해 단양팔경 중의 하나인 도담삼봉 휴게소에서 잠깐 멈춘 것을 빼고는 쉬지 않고 달려 ‘언제쯤 도착할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에야 의풍리로 이어지는 작은 지방도로에 발을 들여놓았다. 매끈한 포장도로가 펼쳐지는가 싶더니 곧바로 해발 640m의 베틀재를 넘는 비포장으로 돌변, 어두컴컴한 산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런 풍경을 보니 의풍리가 오지라는 말이 실감났다. 꼬불거리는 오프로드를 20분쯤 달리니 행사장인 의풍분교가 나왔다. 이곳에서는 교사 두 명이 3∼6학년인 학생 6명을 가르치고 있다. 마을은 제법 크지만 젊은 사람이 없어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지 오래라고 한다. 학생 수가 6명이면 보통은 주변의 큰 학교로 통합되지만 통학시간이 1시간 넘어 분교로 남겨 두었다고 한다. 바깥 나들이를 가려면 하루에 두 번 다니는 버스를 타야 하고 눈이라도 오면 이것마저 며칠씩 끊긴다고 한다. 의풍분교 학생들 진료하고 나무에 크리스마스 장식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학교 마당에 도착하자마자 회원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비인후과 전문의인 고창걸 회장이 학생 및 학교 관계자를 상대로 진료를 했고, 회원 부인들은 학교 식당에서 준비해 온 떡을 내고 부지런히 식사준비를 했다. 나머지 회원들은 학교 마당에 서 있는 나무를 크리스마스 트리로 꾸미기로 했다. 아이들과 어울려 예쁜 장식을 달고, 전기배선을 연결해 수백 개의 꼬마전구를 연결했다. 나무가 워낙 많아 준비해 간 방울과 장식품이 모자랐지만 그런대로 풍성한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진료를 맡았던 고 회장은 아이들이 워낙 튼튼해 특별히 해줄 것이 없다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회원과 가족, 학생들이 어울려 즐겁게 식사를 하고 드디어 선물을 나누어 줄 차례가 되었다. 아이들은 PAG 코리아에서 준비한 학용품과 랜드로버 클럽이 마련한 구급약품 상자, 과자 등을 한아름씩 받았다. 아이들은 살얼음이 낀 냇가로 달려가거나 공놀이를 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오후 3시쯤 마을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비포장도로가 짧은 경상북도 남대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30분쯤 지나 앞이 막혀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결국 소백산 국립공원으로 뚫린 760m의 고치령을 넘어 10km가 넘는 오프로드를 달려야 했다. 회원들은 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1박 2일의 공식일정을 마치고 헤어졌다. 취재팀이 서울에 닿은 시간은 밤 9시, 뒤에 들으니 고속도로 정체에 걸려 고생한 회원도 있었다고 한다. 깊은 산골을 찾아가 선물을 전하고 봉사활동을 편 랜드로버 클럽 코리아 회원과 PAG 코리아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 후원 : 건설교통부 자동차공해연구소 협찬 : 쌍용자동차, PAG 코리아
한강변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라 참여 동호회 : 뉴픽(N.. 2003-11-05
막바지 단풍을 기대 했던 지난 캠페인 때와는 달리, 이른 아침의 쌀쌀한 기운은 이미 겨울로 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린 드라이브 캠페인을 통해 느꼈던 뿌듯함과 지나가는 가을에 대한 미련이 가슴 한편에 진하게 남는 11월 18일, 우리는 서울을 벗어나 신선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을 돌본다는 기쁨에 서둘렀던 탓인지 도로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경기도 당정동에 10여 명 모여 우리가 찾은 곳은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이다. ‘미사리 조정경기장’을 지나 팔당대교를 가기 전에 왼쪽으로 펼처진 둔치에서 회원들을 만나기로 했다. 강변 옆으로는 잘 닦여진 자전거 도로가 길게 나있고, 넓게 펼쳐진 갈대 바다가 바람에 흔들린다. 이왕이면 특별히 청소가 필요한 곳에 찾아가고 싶었던 터에 마침 하남시청에서는 마대자루와 쓰레기 봉투 스무 개를 지원해준다면서 이곳을 추천했다. 그 동안 쓰레기 처리가 힘들었다며, 그린 드라이브 캠페인을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땅이 워낙 넓어 일일이 걸어다니며 청소하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니 하남시의 고민을 이해 할만 하다. 게다가 강변으로 들어가는 길목 군데군데에는 돌무더기가 도사리고 있어 네바퀴굴림 차가 아니라면 제대로 갈 수조차 없다. SUV 동호회의 힘이 필요한 셈이다. 미사동의 둔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나란히 주차된 흰색 뉴 코란도 일곱 대가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할 때 쓰는 닉네임(nickname)이 각자의 코란도 뒷유리에 스티커로 붙어 있었는데, 눈에 익은 이름 때문인지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는데도 친근했다. 8시 30분, 이른 시간부터 10여 명의 회원들이 이미 나와있었다. 이번 캠페인에 참여하게 될 동호회는 ‘뉴픽’이다. 지난 호 ‘동호회 마당’에 소개되었던 뉴픽(Newpic)의 기사를 기억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10월 강원도 정선의 연포 마을을 방문했던 것처럼, 뉴픽은 일반 차로 가기 어려운 오지를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오프로드 드라이빙도 즐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동호회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대표시삽 김형욱 씨는 매달 떠나는 봉사활동 외에도 목요일마다 열리는 정기모임 출석률이 50%를 넘는다고 자랑이다. 오늘은 하남시로부터 쓰레기를 분리수거 해달라는 부탁까지 받았다. 뒤늦게 몇명이 더 도착했고 마대자루와 목장갑을 나눠가졌다. 빨간색 목장갑은 맞춤이라도 한 듯 뉴픽 회원들의 팀복과 너무 잘 어울렸다. 걸어다니며 쓰레기를 수거하기보다는 2인 1조로 나뉘어 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지만,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온 사람들 때문에 한참을 걸어가 강변으로 나갔다. 그만큼 우리가 청소해야할 범위는 방대하다. 게다가 마치 밀림을 연상케 하는 갈대와 진흙길은 “새 신을 신고 왔다”는 한 회원의 얼굴을 울상 짓게 했다. 기자 역시 어울리지 않는 신발 때문에 고생을 해야했다. 10년 동안 아침 굶어 본 적이 없다는 한 사람은 배고픔을 호소하면서도 쓰레기 수거를 위해서는 이리저리 몸을 아끼지 않았는데, 사진 기자를 의식해서라는 속내(?)가 밝혀져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레이디퍼스트라며 커피를 먼저 권하는 기사도까지 보여주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캠페인은 계속되었다. “애마가 쓰레기차가 됐다!” 넓은 땅이 갈대로 채워져 언뜻 보기에는 쓰레기가 없을 것 같았지만 경험 없는 기자의 괜한 걱정이었다. 쓰레기를 찾았다는 “심봤다!” 함성이 한번 터진 뒤로는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쓰레기가 발견되었고, 모두들 엄청나게 많은 양을 어디서 잘도 찾아냈다. 회원 한 명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타이어 하나를 들고 자랑스럽게 나타났다. 순간 ‘보물찾기’를 하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쓰레기를 보고 오늘처럼 반가웠던 적이 있었던가. 저마다 각자의 봉투와 자루에 쓰레기를 채우며 뿌듯해했다. 추운 날씨에 손발도 시리고 갈대와 진흙 때문에 이동하기도 불편할 텐데 어찌나 열심히 청소하는지 보기만 해도 신이 난다. 봉투에 들어가지 않는 것들도 많았는데, 부러움(?)을 샀던 타이어도 나중엔 여러 개나 되었다. 급기야 자루와 봉투가 모자란 상태에 이르렀고, 자루 크기가 너무 작아서 제대로 못했다며 여유까지 부리는 데에 한바탕 크게 웃었다. 꽉 채운 마대자루와 쓰레기 봉투를 나르기 위해 뉴 코란도에 나눠 실었다. 타이어를 비롯해 크기가 큰 것들도 “이대로 나두고 갈 수는 없다”며 강한 의지(?)를 보이니 어느새 뒤 트렁크가 가득 찼다. “나의 애마가 쓰레기차가 됐다!”는 농담에 모두는 다시 한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시간이 넘게 모은 쓰레기를 보니 모두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하다. 네바퀴굴림 차를 타면서 느꼈던 기쁨과도 어느 정도 통한다. 아마도 뿌듯함이 가장 크리라. “일요일 아침 늦잠 자는 것보다 이렇게 나와 캠페인에 참여하니 좋다”는 김형욱 씨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자연과 함께 우리 모두의 마음도 건강해진 게 틀림없다. 캠페인을 마치고 뉴픽 회원들은 족구경기를 한다고 했다. 아침 일찍 나와 쓰레기를 줍느라 많이 피곤할 텐데 점심내기를 한다니, 그들의 건강한 모습이 보기 좋다. 오후에는 한 회원의 결혼식도 있다는데 이렇게 캠페인에 열심히 참여해준 뉴픽 회원들에게 고마웠다. 조금이나마 깨끗해진 자연을 등지고 돌아가는 우리 모두의 마음은 정말 상쾌했다.
나의 작은 아지트 2004-01-12
내가 어렸을 때에는 형제가 없는 아이들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나만 해도 4남매가 복작대며 잠시도 조용하지 않게 컸으니 말이다. 잘 산다는 집도 아이들에게 각자의 방을 배당해 주기는 힘들던 시대였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들(나를 포함해 우리 오빠, 그리고 나의 친구들)은 구석이나 작은 공간을 찾아 자신의 아지트로 삼아 그곳에 숨어 있기를 즐겨했다. 이불로 성을 쌓고 그 안에 들어가 놀던 기억이 난다. 우리 오빠는 장 속에 숨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오빠가 없어졌을 땐 늘 장롱 이불 속에서 자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른이 된 후로는 몸을 숨길 만한 아늑한 ‘나만의 공간’이 사라져 버렸다. 이불 속의 그 포근함도, 보자기로 문을 만들어 놓았던 작은 공간의 아늑함도 모두 추억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난 운 좋게도 나만의 작은 공간을 우연히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남들에 비해 비교적 일찍 내차를 마련해 운전을 시작했던 나는 어느 비 오는 여름날 해가 질 무렵, 차 안 작은 공간에서 차창에 떨어지는 장맛비 소리를 들으며 왠지 모를 서글픔(어렸을 적 엄마에게 혼나고 나면 나의 아지트에 숨어서, 분명 나는 주워 왔을 거라는 확신에 더욱 서글프고 서러웠던 것과 비슷한 감정)에, 또 나만의 아지트가 주는 그 안락함에 괜히 한참을 울었다. 그러고 나니까 얼마나 시원하고 후련했던지. 엉엉 울면서 운전하고 있는 나를 옆 차에서 바라본 운전자는 참으로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했겠지만, 남이 뭐라고 생각하든 어떤가. 어른이 된 후로 감정의 절제만을 강요당하고 살다가 정말로 오랜만에 내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낀 날이었다(역시 우울하고 슬플 때는 더욱 슬픈 생각을 하고 슬픈 노래를 들으라는 말은 옳다). 만약 이 모든 일들이 내 작은 차 안이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 그 후로 난 가끔 내차 안의 ‘나만의 공간’을 즐기게 되었다. 복잡한 일이 있다거나, 감정적으로 평온하지 않을 때 한적한 곳을 찾아 너무너무 슬픈 노래를 틀어놓고 한참을 그냥 그렇게 앉아 있곤 한다. 요새는 독신자들이 많으니 집이란 공간을 혼자 사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디 보통의 가족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가진다는 것이 쉬운가. 자신만의 방이 있다하더라도 방과 작은 자동차 안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있다. 첫째, 자동차 안은 내가 감싸 안을 수 있는 크기의 공간이다(사람은 자신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너무 넓은 공간에 혼자 있으면 불안해지는 것처럼). 둘째, 아무리 오래되고 성능이 떨어지는 카오디오의 음악이라도 그 작은 공간에 울려 퍼지면 가슴이 떨린다(그 음악이 나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셋째. 운이 좋아 비라도 내리면 차체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소나기라면 더욱 좋겠다)는 어느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합주도 따라 올 수 없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나는 나의 작은 아지트를 즐긴다. 요즘같이 복잡하고 골치 아플 때 나만의 아지트를 즐겨 보는 건 어떨까! 지금은 이름도 가물거리는 어렸을 적 친구를 생각하며 말이다.
자동차가 주는 인생의 의미 2004-01-12
나는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보낸 덕분에 일본 TV에서 방영하는 애니메이션과 CF를 즐겨 볼 수 있었다. 초등학교 3~4학년 즈음 본 자동차 CF는 아직도 기억난다. 브랜드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유럽의 고풍스러운 거리에서 자그마한 자동차 옆에 선 당시 유명했던 젊은 남자 탤런트가 하늘을 향해 양팔을 넓게 벌린 채 눈을 지긋이 감았고, 나지막이 그의 목소리가 깔렸다. “내 인생의 첫차.” ‘내 인생의 첫차’는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어렵사리 아르바이트로 장만한 현대 스쿠프였다. 세계에서 가장 느린 스포츠카로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비아냥거림도 있었지만, 나는 마냥 좋았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생애 최초의 차를 장만하다니! 마치 내가 70년대 초반 보았던 이름 모를 일본 CF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첫차가 주는 기쁨을 극한으로 만끽했다. 그러던 순수함은 당시 주변 친구 또는 선배들의 몇 단계 업그레이드된 자동차를 타 볼 기회가 잦아지면서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했다. 좀더 안락하고 편리한 자동차의 편의장치가 부러웠던 것 외에, 아마도 또래문화 안에서 속된 외래어로 ‘가오’(面)를 잡는 것에 눈뜨기 시작했던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내 인생의 단기 목표는 빨리 저축을 많이 하거나, 생활비를 비참할 정도로 아껴서라도 몇 년마다 자동차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그리고 그 단기 목표들을 나는 한 단계 한 단계 무리 없이 달성해가고 있다. 지난 ‘할리우드 모터쇼’에 출품할 자동차를 수배하기 위해 세계 곳곳을 누벼봤고, 참으로 많은 자동차를 구경하고 시승도 했다.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짜릿한 흥분을 안겨준 차는 미국 할리우드 거리를 누비고 다녔던 50년대의 이름 모를 ‘고철덩어리’ 자동차였다. 얼마나 심각한 상태였으면 할리우드 하일랜드 거리의 모든 관광객들이 나와 미국인 친구를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을까. 조수석에서는 누군가가 밖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내릴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한 자동차였으나 엔진룸 하나만큼은 정말 깔끔하게 정돈된, 그야말로 실속과 재미를 함께 주는 고철 커스텀 자동차였다. 미국이 자동차 선진국이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좀더 자유스러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물론 세상을 살다보면 자동차를 통해 ‘격’을 갖춰야 할 때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란 존재가 결코 신분과시의 수단으로만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동차는 우리의 생활과 삶 속에서 함께 묻어나는 향기와 같은 존재여야 하고, 문화적 산물로서 향유되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권위적 국산 세단이나 수입브랜드 자동차를 몰아야 할 이유가 과연 있을까? 자신의 개성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 눈치만 의식하다 보면 우리의 인생은 너무 무의미하지 않을까? 인생과 자동차, 그리고 사람들……. 영원히 풀리지 않을 함수관계 같다.
여행지에서의 인연은 추억의 그림자 2004-01-12
아주 오랜만(2003년 12월 중순)에 전남 화순의 운주사를 찾았다.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와 지금의 세월을 세어보니 수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버린 것 같다. 못 본 곳들을 좀더 세밀하게 들러보다가 문득 처음 찾은 날이 희미하게 추억이 되어 떠오른다. 봄바람이 모질게도 휘몰아치던 날이었다. 광주에 사는 한 살 많은 이모와 함께 절집을 들러보는데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칼바람이 불어댔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는데 관광객인 듯한 차 한 대가 더 늘어나 있었다. 그 차에는 익숙한 신문사 팻말이 붙어 있었다. 남자 혼자였는데 행여나 해서 다가가 말을 붙여보았더니 부서는 달랐지만 당시 같은 곳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모처럼 중고차를 사서 휴가차 내려왔단다. 그렇게 눈인사로 마감하고 헤어지려는데 그가 차 안에서 싱싱한 딸기 한 박스를 내어 준다. 봄이 시작될 무렵이니 딸기는 귀한 철이었다. 그 생각이 떠오르면서 과연 여행지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하는 기억을 더듬게 된다. 여행작가 생활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저 늘 반복되는 일상이라서 이제는 시작할 때의 감흥도 조금씩 옅어져 가고 있다. 애써 감흥을 느껴야 한다는, 에피소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지 않지만 그게 어찌 노력으로 되는 일인가. 여행작가를 하면서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지인을 만난 적이 있다. 여름철 바캉스 부록을 준비하면서 취재 일정을 빡빡하게 잡고 여행을 떠났다. 이른 아침부터 마음은 바쁘기만 했다. 곧추 미황사를 가려다가 풍성한 여름사진도 필요할 것 같아서 대둔사를 잠시 들러보기로 했다. 부산하게 대충 사진 몇 컷에 만족하고 자리를 옮기려고 내려오는데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다. 강원도 치악산 자락에서 자그마한 찻집을 경영하는 주인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그와는 몇 번의 만남이 있었던 터다. 그가 전화를 한 것이다. 그는 대뜸 대둔사 쪽에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자기도 지금 ‘장군의 아들’이라는 영화를 찍었던 유선회관 쪽에 있다는 이야기다. 반가운 마음으로 그를 만났다. 여행을 왔다가 전날 미황사에서 유하려던 것을 접고 이곳으로 내려왔단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자판기 커피를 뽑으려는데 순간적으로 내 차가 지나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집에 연락을 해서 전화번호를 알아냈다는 것.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와는 예정대로 만날 수밖에 없었다. 미황사에 들렀더라도 만나게 되었을 것이고 대둔사 일정은 스케줄에 없었음에도 들르게 되었으니 이것은 필시 만날 수밖에 없는 일종의 암시가 아니겠는가. 이런 일이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낯선 곳에서 지인을 만난 것에 기분이 좋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의 대화는 그리 길지 못했다. 해가 있는 낮에는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업인과 여행인과는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에게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양해를 구했다. 하여튼 해가 져서야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만난 곳이 보성의 율포해수욕장이었다. 자그마한 식당에서 새콤달콤한 바지락회를 안주 삼아 가볍게 술 한잔을 마셨다. 칠흑같이 어두운 바닷가 앞에 앉아 파도소리를 음악 삼아 그의 인생관을 들었다. 그는 낯선 곳에서 시를 끄적거린단다. 그림을 그리는 줄은 알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다. 아마도 낯선 곳이라서 자기의 속내를 얘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여튼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 같이 여행 올 정도로 관계가 친숙한 사람이 아니니 우연한 인연이 아니고서는 절대 가능하지 않은 일 아니던가. 그렇게 헤어졌고 이내 다음 스케줄을 위해서 고흥으로 길을 떠나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인연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내 마음의 추억을 더듬거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지금보다 젊었고 희망이라는 것이 있었기에……. 이제는 여행지를 찾아다니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다. 그런 추억이 스멀스멀 새겨져 있는 곳이 그리울 따름이다. 어쩌면 여행이라는 것은 낯선 곳에서 우연히 생길 수 있는 인연을 기대하면서 떠나는 것이 아닐는지. 지금 갑자기 그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전화라도 한 통 해서 안부를 물어봐야 할 것 같다.
가을이의 사랑 2004-01-12
‘가을이’는 얼마 전 내가 새로 산 승용차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 새차가 나에게 오던 날은 10월의 어느 맑은 가을날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을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이쁘지요. 별 싱거운 사람이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애완동물도 아닌데 자동차에 이름까지 지어주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지난번에 타고 다니던 작은 차에도 이름이 있었습니다. 꼬박 10년을 타면서 21만km를 주행했으니 말 그대로 동고동락을 한 셈이지요. 그러면서 단 한번의 사고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몇 년은 더 타야지’라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이제 그만 차를 바꾸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부추기는 것입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워낙 간사하고 변덕스러워서 그런 말을 몇 번 듣다보니 슬슬 타던 차에 불만이 쌓이게 되었지요. 힘도 달리는 것 같고 소리도 요란해진 것 같고 주유구가 열리지 않아 일일이 열쇠로 열어주는 것도 창피하고……. 그러면서 세차는커녕 앞 유리에 눈구멍만 보일 정도로 대충 닦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에 탄 사람이 제 차에서 퀴퀴한 냄새가 난다고 하더군요. 전 버럭 소리를 질렀지요. “이놈의 똥차 이제 갖다버려야지.” 차를 사고 처음 해본 소리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기 위해 차를 타려는데 아뿔싸 누군가가 뒷문짝을 사정없이 찌그러트려 놓고 사라진 것입니다. 수소문해봐야 그 사람이 나타날 리 없고 차 앞에서 헤드램프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차가 딱해 보이는 것입니다. 어제 공연한 얘기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문득 중고차가 필요하다고 했던 사촌동생이 생각났습니다. 전화를 했지요. 아직도 씽씽거리고 잘 달리는 녀석이니 조금 손봐서 타고 다니라고 하였습니다. 대전에서 서울로 차를 갖다주는 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아무 사고 없이 잘 다녀 주어서 고맙다고. 사촌동생에게 자동차 열쇠를 건네주고 사라져 가는 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가슴 한 구석이 시큰해지더군요. 그런 걸 보면 그 녀석에게도 정이 꽤나 붙었던 모양입니다. 또 한 해를 지웁니다. 우리는 또 다시 소망을 빌고 약속을 합니다. 그런 소망들이 거의 대부분은 나를 위하거나 아니면 내 가족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를 위해 기원하는 것보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원해 주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한 일이라고 말입니다. 새해에는 그런 기원들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가을이’에게도 올 한해 조심해서 잘 다니라고 보네트라도 쓰다듬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찌 알아듣기야 하겠습니까 마는, 그래도 그렇게 하면 ‘가을이’가 나를 잘 보살펴 줄 것이라고 믿게되니, 그게 결코 부질없는 짓은 아니겠지요.
프라이드 베타를 끌고 나온 남편 2003-12-12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난 그의 선한 눈매와 똑똑 떨어지는 논리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그 ‘약발’은 정말 오래 가지 않았다. 세 번 네 번 만나다 보니 금세 공통화제는 바닥났고, 어쩐지 처음보다 말이 없어진 그가 무척 따분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갈등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재미없지만 특별히 나무랄 데 없는 남자를 견디며 더 만나보느냐, 아니면 소모적일지 모르는 관계를 이쯤에서 그만 접느냐.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기아 프라이드 베타다. 당시 회사에 다니던 나에게 어느 날 아주 속상한 일이 생겼다. 마침 그의 전화를 받고는 탈출구 없던 푸념을 시시콜콜 털어놓게 되었다. 한참 내 하소연을 듣던 그가 대뜸 회사 앞으로 오겠으니, 퇴근 후에 보잔다. 그는 들어 주고, 나 혼자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풀어질 것 같아 그러라고 했다. 근데 그는 혼자 나오지 않았다. 떡 하니 차를 끌고 나왔던 것이다. 푸르스름한 잿빛 프라이드 베타. 비록 멋진 스포츠카는 아니었지만 차가 있어 서울을 벗어나 한강을 끼고 달릴 수 있었고, 양평의 유명하다는 순두부집에서 맛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으며 그만이 아는 옛길을 안내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뚜벅이인 그가 우울한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하여 후배한테 부탁해 차를 빌려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니, 그 정성과 배려가 눈물겹게 고마웠다. 회사 일로 울분이 쌓여 극도로 예민해지고 온 신경의 끄트머리들이 팽팽히 조여진 상태의 나에게 그것은 백 마디 재치 있는 말과 유머를 능가하는 초강력 안정제였다. 그냥 한번 차를 빌려 갖고 나온 그가 그리 감동을 줄줄은 어찌 알았으랴. 지금 생각해보면 소가 뒷걸음질치다가 개구리 잡은 격이긴 하지만. 어쨌든 우린 식당이나 극장, 지하철이나 버스에서와는 달리 둘만의 공간에 오붓하게 갇힐 수 있었고 결국 첫 키스로 내몰릴(?) 수 있었던 것이다. 프라이드가 우리를 다시금 엮어준 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수원으로 이사를 갔다. 나는 서울하고도 동북의 끝에 있고 그의 집과 직장은 수원. 상당한 거리였다.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커플에게는 좀 과장하자면 형벌과도 같은 시기였다. 이런 시련이 남들에게는 더 뜨거운 사랑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는 달라 보였다. 성격상 그냥 포기하거나, 불같은 사랑은 애초에 꿈도 안 꾸거나. 어느 쪽도 상대방을 만나기 위해 두 시간 넘게 대중교통에 몸을 맡기진 않을 듯 싶었다. 게다가 차 끊어지는 시간도 정해져 있어, 평일 늦게까지 일하는 그는 서울로 오고 싶어도 주말에만 시간이 났다. 나에게도 수원은 너무 먼 ‘미지의 세계’였다. 그러니 주말이 되면 서로 상대방이 자기 쪽으로 와주길 바라다가, 다시금 갈등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때 프라이드가 두 번째로 우리를 찾아왔다. 차를 한 대 더 갖게 된 후배가 그 ‘푸르스름한 잿빛 프라이드 베타’를 내 남자친구에게 아예 줘버린 것이다. 덕분에 남자친구는 평일 늦은 밤에도 내가 보고싶을 때 지체 없이 달려왔고, 우리는 다시 ‘꾸준히’ 데이트를 할 수 있었다. 결국 우린 결혼해서 부부가 되었다. 프라이드 베타 요놈도 아직 함께 있다, 비록 머플러가 나갔는데도 주인들이 손볼 생각을 안 해 탱크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그러고 보니 요놈이 자꾸 사람의 얼굴을 닮아 가는 것 같다. 바로 남편의 모습 말이다.
아침희망과 함께 떠났던 추억 2003-12-12
경마로 유명한 독일 국경도시 아헨, 역에 내리면 마상(馬像)의 역동적 질주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헨은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와 경계하고 중부도시 프랑크프루트에서 45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브레멘에서 유학하던 나는 주말이면 아헨에서 정보공학을 공부하던 막내와 만나곤 했다. 배관 시스템을 건물 밖으로 둘러친 모습이 이색적이던 아헨병원의 화려한 치장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조카 한이가 태어나고 국경도시의 매력을 안겨다 준 아헨은 그래서 더 친근한데, 벼룩시장도 진풍경이었다. 동생의 아파트 바로 밑 공터는 한국인 상당수가 부러워하는 차종들이 가득한 중고차 전시장이었다. 메르세데스 벤츠, 폭스바겐을 비롯한 전세계 유명차들이 중고답지 않게 나를 유혹했다(이 흔한 차들을 한국에서 마음껏 타볼 수 없는 현실은 나를 슬프게 한다). 여름 캠핑이 계획되고 봉고쯤 되는 12인승 차를 빌려 나와 막내, 주변인들이 벌이는 여름 나들이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느 날 새벽 브레멘에 도착한 우리일행은 오랜만에 육개장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독일에서 금지된 고사리 채취로 육개장을 맛있게 끓여주던 한이 엄마의 모습과 집안에서 금연을 강조했던 대목은 퍽 인상적 담론으로 여겨진다. 아헨을 벗어나면 곧장 아우토반으로 벨기에, 프랑스로 연결된다. 프랑스 도심 한복판에서 여장을 풀었다. 색다른 체험, 캠핑 플라츠(유럽 전역 도심에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도록 만든 곳)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캠핑족들이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야외에 있는 호텔의 자유 공간 정도 되는 이곳은 구속의 분위기를 싫어하는 젊은 자유인들이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오스트엔데에서 벤츠를 밤배에 실은 일행은 엄청난 냉방의 위력을 실감한 채 밤을 보내고 아침 런던에 도착했다. 여권에 런던 도착이라는 스탬프가 하나 더 찍혔다. 한국에서도 이제 흔히 눈에 띄는 간이 식탁에서 호사스럽게 한국음식들을 포식하고 대영 박물관을 비롯한 이곳 저곳을 살펴본 뒤 하이드파크 캠핑 플라츠에서 야영생활을 만끽했다. 뜨거운 여름날, 에어컨으로 우리를 감싸며,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영국을 묵묵히 동행해준 벤츠 승합차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제 겨울로 진입하면 그 벤츠 승합차로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아니면 이태리 같은 따뜻한 남쪽나라로 떠나보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세월이 가면 아름다운 추억은 새로워지고, 계절이 깊어지면 사람들이 더욱 그립다. 내 차들이 하나씩 이름을 바꾸어 나갈 때, 나는 떠나가는 그들에게 우리가 같이 보냈던 아름다운 시절, 함께 했던 비밀, 비경을 같이 볼 때 느꼈던 동감을 떠올린다. 동물들이 가족으로 자리잡듯, 이제 우리의 차들도 가족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때론 불협화음 속에 속을 썩히기도 하지만 적어도 차는 사랑을 베푼 만큼 사랑을 줄줄 아는 멋쟁이다. 우리의 차가 동성임을 아는 것도 재미있다. 남성에게는 여성의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여성에게는 약간의 터프함과 스피드감을 일깨우는 여유와 지혜를 가지고 있다. 항상 아침의 신선함을 일깨우며 동녘의 붉은 해를 희망의 징표로 내세우는 우리의 차들로, 우리의 생활이 더욱 즐거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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