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강ㆍ호수ㆍ숲에 둘러싸인 전원도시 - 서호주 퍼스 2009-04-10
근래에 일본의 가나자와(金澤)와 서호주의 퍼스(Perth) 두 곳을 다녀왔다. 두 곳을 모두 렌터카로 쏘다니며 너무나 대조적인,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극단적인 면을 보게 되었다. 도로 통행료가 가장 비싼 곳, 그리고 통행료가 가장 싼 아니 전혀 없는 곳. 가나자와만 비싼 것이 아니라 일본 전역의 고속도로 통행료는 살인적이다. 웬 놈의 고속도로는 그렇게 많은지 20~30분을 가도 톨게이트는 아가리를 벌리고 엄청난 통행료를 빼앗아 삼킨다. 더더구나 요즘은 엔화가 하늘을 찔러 톨게이트에 멈춰 설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서울에서 중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거의 세 시간 반 만에 안동에 가도 통행료는 1만2,000원 남짓한데 일본에서는 20분만 달려도 1만2,000원을 훌쩍 넘긴다. 필자의 경험으로 일본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통행료를 내는 나라가 아닌가 싶다. 퍼스의 명물 ‘캣’과 지상 천국 ‘만두라’남한의 33배가 넘는 땅덩어리를 깔고 앉은 서호주의 수도는 인구 150만의 퍼스(Perth)로 유일한 도시다운 도시다. 퍼스에서 헷갈리는 것은 프리웨이(free way)와 하이웨이(high way). ‘프리웨이는 통행료가 없고 하이웨이는 있다’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프리웨이는 출퇴근 시간 도심의 교통혼잡을 피하기 위한 5차선 혹은 4차선의 드넓은 직선 고속도로로, 퍼스 시내에서 해안선과 평행하게 남북으로 뻗어 있다. 프리웨이는 퍼스를 관통하는 단 두 개밖에 없다. 북쪽으로 뻗은 게 미첼 프리웨이, 남쪽으로 내달리는 게 퀴나나 프리웨이로 둘 다 길이는 30km 내외다. 퍼스도 호주의 다른 해안 도시와 마찬가지로 주거지가 해안선을 따라 남북으로 산재해 있기 때문에 두 개의 프리웨이가 주거지를 따라 남북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러시아워가 시작되어도 차가 엉키지 않는다. 하이웨이는 외곽으로 빠져 지방으로 가는 2차선 고속도로로 퍼스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방사형으로 뻗어 있다. 프리웨이든 하이웨이든 100km를 달려도, 1,000km를 달려도 통행료가 없다. 아예 톨게이트 자체가 없는 것이다. 서호주 주 정부는 ‘톨게이트 만들어 놓고 오가는 차 붙잡아 귀찮게 푼돈 받느니’란 투다. 서호주 인구는 호주 전체의 10%밖에 안 되지만 호주 국내 총생산(GDP)의 40%를 차지하는 부자 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드넓은 사막에서 캐내는 온갖 광물자원을 우리나라에서도 수입하고 있다. 부자 주의 교통체계를 들여다보면 부러운 게 한둘이 아니다. 퍼스 시내엔 캣(CAT)이란 버스가 다닌다. ‘도심교통’(Central Area Transit)이란 뜻의 이 버스는 최첨단 컴퓨터로 연계되어 퍼스 시내의 온갖 정보를 제공한다. 버스 정류장에 서면 교통상황에 따라 다음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을 정확히 오디오로 알려 준다. 붉은색 캣은 동서로, 푸른색 캣은 남북으로, 주중엔 5분 간격으로, 주말엔 7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최근에는 동쪽 퍼스에서 도심 사이를 운행하는 노란색 캣이 새로 등장했다. 놀랄 일은 무슨 색이든 캣 버스는 무료다. 퍼스에서 인도양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올드코스트 로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보자. 퍼스를 분기점으로 북쪽과 남쪽이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 북으로 갈수록 메마르고 거친 반면 남으로 갈수록 풍성하고 안온하다. 퍼스에서 75km를 내려가면 서호주 최고, 최대의 휴양지 만두라(Mandurah)에 닿는다. 천당이 있다면 아마 만두라 같을 것이다. ‘만두라’라는 말은 원주민 에보리지니 말로 ‘만남의 장소’라는 뜻이다. 만두라는 마이애미, 산레모, 실버스프링스처럼 호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여생을 달콤하게 보내려는 은퇴자들이 몰려와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골프를 하고 요트를 타고 낚시를 한다. 만두라는 리조트 지역으로 천혜의 입지를 자랑한다. 필인렛이라는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는 커다란 호수는 수로들이 바다와 서로 통해 라군이 되었다. 이 바다호수 속엔 돌고래가 뛰어놀고 온갖 철새가 찾아오고 왕새우와 게가 우글거린다. 바다호숫가 말레이시아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들어가다가 괴상한 클래식(?)카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클래식카도 아니고 키트카(Kit-car)도 아닌, 자작차(自作車)다. ‘쿨쿱’(Kool koop)이란 로고를 붙인 이 검은색 자동차의 주인이 나타났다. 히피 차림을 한 그의 직업은 자동차 정비 수리공으로 이름은 셰인 힐러드. 그는 신나게 자신이 만든 차를 자랑한다. 그는 친구와 둘이서 8년 동안 약 8,000만 원을 들여 이 차를 만들었다. 차체는 캐나다에서 들여왔고 엔진은 302 윈저(winsor), 스트록(strok)/347, 1930년 A모델이라며 노출되어 반짝거리는 엔진을 쓰다듬는다. 스타트할 때의 폭발음에 주위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STRUCTURE - 근대의 재생 2009-04-08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1926년 미완성으로 준공되어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곳. 1991년 증축 기회가 있었으나 기준이 모호하여 또 다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던 중 한 영국 관광객이 자국 도서관에 남아 있던 원 설계도를 찾아내면서 1996년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간혹 인간이 이뤄낸 그 어떠한 것도 자연의 미를 결코 앞설 수 없다는 선입견을 여지없이 날려버릴 때가 있다. 서울주교좌성당이 바로 그러하다. 아마도 기적 같은 이야기가 주는 가슴 뭉클한 감동 때문이 아닐까.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현대식 고층건물이 즐비한 남대문 한복판에 웅장한 르네상스식 석조 건물이 서 있다. 한국은행 한국금융박물관. 많은 건물이 일제의 잔재라는 명분으로 사라졌지만 이곳은 아직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불편한 시선에 맞서 용케도 버티고 있다. 건축에는 인간의 삶과 역사가 투영되어 있고 당대의 기술과 시대적 정신이 깃들어 있다. 비록 잊고 싶은 역사 속 유물이기는 하나 생각해 보면 일제의 감독 아래 작업을 했을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도 서려 있지 않은가. 아픈 역사도 역사란 말이 새삼 떠오른다. 서울시립미술관추적거리는 빗속에도 시립미술관을 찾는 이들은 분주하다. 애써 찾아왔으니 관람객은 건물 구석구석과 그 안에 담긴 예술을 마음껏 탐닉한다. 허나 이곳이 과거 우국지사들의 대량 체포와 구금을 위한 경성재판소였음을, 해방이 되고 불안한 정국을 거치며 다시 상처를 입고 오늘에 이른 역사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몇이나 알고 있을까……. 아픈 과거를 들먹이기에는 우리의 현실은 너무도 화려하기만 하다. 덕수궁 석조전조선왕조가 지은 마지막 궁궐. 1909년 완공된 석조전은 대한제국 때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얼마 전 석조전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활용하겠다는 문화재청과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꾸며야 한다는 학계와 시민단체의 이견으로 진통 아닌 진통을 겪었다. 같은 역사를 지닌 한 민족의 시선도 모두 같을 수 없음을 새삼 느꼈던 그날, 석조전은 어떤 모습을 꿈꾸었을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역사를 바로 본다는 기준 아래 ‘무엇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점이다.방송통신대학 별관서울 대학로의 상징적인 근대 건축물이자 1909년 지은 옛 ‘공업전습소 본관.’ 당시 지어진 목조건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다 하여 사적으로 지정돼 10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수명을 이어왔다. 그렇지만 이도 얼마 전까지 얘기다. 고증 결과 1912년 지은 ‘중앙시험소 청사’인 것으로 밝혀졌고 결국 대한제국 때 지어진 것이 아닌, 일제시대 건물로 확인돼 문화재 지정이 해제될 운명에 놓여 있다. 28년 동안 엉뚱한 내력으로 살아온 곳. 기둥 하나하나, 나무 틈 사이사이 모진 세월을 이겨낸 흔적이 역력하건만 이번만은 쉽지 않은 기로에 놓인 듯싶다. 고려대학교 본관&연세대학교 연희관 미국과 유럽의 거리를 메우고 있는 건물들 가운데는 100년이 넘는 빌딩과 아파트가 즐비하고 그 안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거주하며 전기와 수도 등을 사용한다. 반면 우리의 건물은 20~30년이 지나면 개발과 첨단이라는 미명아래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전통의 흔적을 잿더미로 만들기 일쑤다. 수백 년이 된 건물들을 지금도 당연한 듯이 사용하는 그들에 비해, 우리는 너무도 조급하게 과거의 흔적을 지워버린다. 고층 현대건물 틈새에 끼워져 ‘이질’이라는 명목으로 변형시키고 뒤틀어 놓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우리나라에 아직 남아 있는 근대양식의 건물은 150여 채. 1934년 준공된 좌우대칭형 고딕양식의 고려대 본관과, 1956년 지어진 미국 아이비리그의 대학을 연상시키는 연세대 연희관 역시 그 중 하나이다. 이런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은 아무 때나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수십 년 세월, 이 땅의 변화와 역경을 묵묵히 바라본 결코 짧지 않은 역사의 증인들이 아닌가. 담쟁이넝쿨을 타고 석탑과 지붕 위를 흐르는 따스한 봄볕의 풍경, 이 아름다움이 어느 때고 계속 되기를…….
서해 노을을 바라보며 스파를 즐기다 - The Spa .. 2009-03-14
스파(Spa)는 물의 열과 부력을 이용해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호르몬의 분비를 원활하게 하고, 피로를 풀어주며 피부를 건강하게 가꿔 주는 효과가 있다. 이런 스파의 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것이 바로 스파테라피. 스파테라피(Spa Therapy)란 물로 건강을 유지한다는 넓은 의미로 기계가 아닌 손으로 하는 자연 마사지 요법이다. 최근 친구나 연인끼리 소규모 단위로 오롯이 휴양을 원하는 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 프라이빗 스파와 고급 테라피 등을 강화한 리조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충남 보령시에 있는 비체팰리스 리조트의 ‘더 스파 하스타’는 서해 최고의 비경 가운데 하나인 석대도 낙조를 바라보며 스파테라피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국적인 인테리어의 180평 전문 테라피 공간고대 인도어인 ‘하스타’(Hasta)는 스파테라피 때 가장 중요한 도구인 ‘손’을 뜻한다. 더 스파 하스타는 180평의 공간을 전문 테라피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모던한 분위기와 이국적인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바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복도를 지나 테라피 룸으로 들어가면 자연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나는 컬러가 안락함을 준다. 모든 테라피 룸은 커플을 위한 2인실로 되어 있고, 최고급 스파에서만 볼 수 있는 비쉬샤워가 갖추어져 있다. 또한 고객의 동선을 줄이기 위해 개별 샤워실과 파우더 룸을 갖추고 있는데, 특히 에어젯(Air Jet)을 이용해 물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자쿠지(월풀)가 눈에 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커플을 위한 로맨틱 자쿠지로 만들어 놓았다. 스파의 꽃은 단연 테라피다. 더 스파 하스타의 마사지 테라피는 일상에서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말끔히 없앨 수 있는 홀리스틱 테라피(Holistic therapy)로 구성됐다.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 테라피는 이곳에서 추천하는 전신관리 프로그램으로 천연 아로마 테라피 오일을 이용한다. 전문가의 능숙한 전신 마사지와 발 마사지 그리고 최고급 스파 전문 화장품을 이용한 홀리스틱 하스타 페이셜 테라피를 받을 수 있다. 3월에 연인과 함께 이곳을 찾는다면 화이트데이를 기념한 커플 패키지 ‘화이트 데이 인 하스타’(White Day in HASTA)를 추천한다. 3시간 30분 동안 이어지는 이 패키지는 커플 핀란드 사우나&커플 밀크 바스 월풀, 그리고 스윗 슈가럽 전신 각질 제거와 커플 보디 마사지, 스페시픽 페이셜 테라피를 받을 수 있고, 멋진 바다 풍경이 펼쳐지는 비체팰리스의 스파 캐빈(27평)에서 달콤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특히 테라피 룸 안에는 특별 데코레이션과 함께 최고급 와인, 수제 초콜릿이 준비돼 로맨틱한 분위기를 더해 준다. 가족끼리 찾는다면 ‘패밀리 파티 인 하스타’(Family party in HASTA)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찾아가는 길‘더 스파 하스타’는 무창포해수욕장에 있는 리조트 ‘비체팰리스’ 안에 있다. 무창포해수욕장은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무창포IC를 빠져나와 좌회전한 뒤 606번 지방도를 타고 3km 정도 직진하면 나온다. 무창IC에서 무창포해수욕장까지는 5분 거리. 더 스파 하스타 (055)860-0453 충남 보령시 관광명소무창포해수욕장무창포해수욕장에서 석대도에 이르는 1.5km 구간에서는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바닷길이 열린다. 이 신비의 바닷길 현상은 매월 음력 그믐과 보름사리 때 3~4차례 일어나며 일반인이 마음 놓고 들어갈 수 있다. 매년 3월부터 4월 초에는 무창포 주꾸미 축제가 열리는데 어선에서 갓 잡아 올린 초봄의 별미인 주꾸미와 개불, 맛, 조개류 등의 싱싱한 해산물을 마음껏 맛볼 수 있다. 올해 행사기간은 3월 18일부터 4월 9일까지다.  www.muchangpo.or.kr성주산자연휴양림차령산맥의 한 지맥인 만수산과 성주산 기슭에 있으며,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산림과 기암괴석, 맑은 계곡이 절경을 이룬다. 성주면 성주리의 화장골 계곡은 4km에 이르는 울창한 숲과 계곡을 벗 삼아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곳. 특히 가을 단풍과 겨울의 설경이 장관이다. (041)934-7133개화예술공원보령시 성주면에 있는 개화예술공원은 주변을 포함해 5만여 평의 규모로 조성된 보령시 최대의 테마공원이다. 허브비누만들기, 나무목공교실, 꼬마열차타기, 노젓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과 모산미술관, 오석조각공원, 야외음악당, 허브랜드 등의 볼거리가 있다. www.gaewhaart.com머드체험관대천해수욕장에 있는 머드체험관은 머드마사지, 머드사우나, 머드스킨케어, 스파와 아로마탕 등 머드를 이용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머드체험관이다. 1층은 남자전용시설, 2층은 여성전용시설과 전시홍보관으로 구성돼 있다. 입장은 무료이나 머드체험은 유로로 운영된다.www.mudfestival.or.kr석탄박물관1995년 국내 처음으로 건립된 석탄박물관은 석탄의 생산과정, 굴진, 채탄, 운반 이용과정 등을 실물 크기로 재현해 놓은 곳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400m까지 내려가 만나는 길이 160m의 모의 갱도는 이곳의 가장 큰 볼거리. 석탄 생산과정을 보여주는 ‘검은 땅 하얀 꿈’이란 13분짜리 영상물도 준비돼 있다. 관람 소요시간은 30분∼1시간 정도.www.1stcoal.go.kr
호메이니와 혁명 30년 - IRAN 2009-03-14
마오쩌둥을 빼고 중국을 얘기할 수 없듯이 호메이니를 빼고 이란을 말할 수 없다. 마오쩌둥은 문화혁명이라는 광란의 소용돌이에 나라를 빠뜨려 10년을 잃어버리게 한 치명적 오류를 범했지만 중국 인민들은 지금도 천안문에 마오쩌둥의 대형초상화를 걸어두고 그를 우러러보고 있다. 호메이니도 이란-이라크 전으로 수많은 젊은이를 전장으로 내몰아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국고를 바닥내 아직도 그때 진 빚을 갚지 못해 그 많은 산유량에도 나라 살림이 말이 아니다. 하지만 죽은 호메이니의 권위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아 이란 방방곡곡 발길 닿는 곳마다 호메이니 초상화가 도배돼 있다. 1900년 이란 테헤란 남서쪽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호메이니는 소년기에 이라크의 신학교로 유학가 이슬람 율법을 공부했다. 귀국하여 1930년대 후반 친미 정책을 펼치는 팔레비 왕의 종교세력 탄압에 저항, 1941년에 ‘비밀의 폭로’란 책을 저술해 왕정을 부정하고 외국의 침략을 비난했다. 50년대 후반에는 이슬람 시아파 최고 성직인 아야톨라 칭호를 받고 반정부 선봉장에 선다. 팔레비 왕의 서구화와 근대화에 반대하는 데모를 하다가 63년에 체포돼 터키로 추방된 그는 65년 어린 시절 공부했던 제2의 고향이자 이란과 인접한 이라크로 들어갔다. 1971년, 팔레비 왕이 이란의 고도 페르세폴리스에서 이란 건국 2,500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르려 하자 호메이니는 이라크에서 이란의 반정부세력을 원격 조종, 그 행사를 반대하는 사주를 했다.이에 팔레비 왕과 미국은 이라크에 압력을 가해 호메이니는 다시 프랑스로 떠난다. 훗날 이란-이라크전의 앙심이 잉태된 배경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이란혁명을 일으켜 마침내 팔레비 정권을 굴복시켰다. 1979년 2월 호메이니는 이란으로 날아와 100만 인파가 열광하는 공항에 도착, 테헤란에 입성했다. 혁명정부를 수립하고 수상을 임명한 그는 새 헌법을 제정, 이란이 이슬람 공화국으로 새로 태어났음을 만방에 선포했다. 그는 이슬람 시아파의 교주로 추대되어 종교적 정치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란의 두 번째 성지 ‘콤’호메이니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려면 콤(Qom)으로 가야 한다.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버스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이건 정상적인 교통 흐름일 때이고, 금요일이나 이슬람 경조 일에는 다섯 시간도 좋고 여섯 시간도 좋다. 콤은 이란에서 마샤드에 이어 두 번째 성스러운 곳이다. 이슬람은 크게 두 파로 갈라져 있다. 사우디를 위시한 아랍권은 다수 주류인 수니파이고 이란(아랍이 아니다)은 시아파다. 수니파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하마드의 가르침과 행적을 따라간다면 시아파는 무하마드의 혈통을 이어간다. 이란 동북쪽에 있는 마샤드는 시아파 8대 교주이자 무하마드의 직계 후손인 이맘레자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이란 최고의 성지이고, 콤은 이맘레자의 누이이자 역시 무하마드의 피를 이어받은 파테메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1990년대로 접어들며 마샤드와 콤의 위상은 크게 엇갈린다. 마샤드는 성지로서 참배객들이 몰려든 데다 이란-이라크 전 때는 이라크에서 가장 먼 곳이라는 지리적 이점으로 전쟁을 피하려는 이란인들이 몰려와 갑자기 도시가 커졌다. 반면 인구 26만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 콤은 정치적인 힘이 실려 수도 테헤란을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혁명의 진원지가 되었다. 호메이니가 터키로 추방되기 전까지 그가 똬리를 틀고 있던 곳이 바로 이곳이며, 호메이니 사후 현재까지 이란의 최고 실력자인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집도 호메이니의 집 인근에 있다. 1963년, 호메이니가 팔레비 정권에 체포되어 터키로 추방당하기 전 그의 권위와 위상은 하늘을 찌를 듯했는데 당시 그가 살던 집은 상상 외로 초라하다. 개발이 미치지 않은 우리나라 소도시 골목길의 30~40여 평 되는 단층집, 마당 우물가엔 접시꽃이 피고 나무마루는 삐걱거리며 손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 그런 집이다. 근년에 이곳은 성지가 되어 정부에서 대대적인 손질을 했지만 호메이니의 이름에 비해서는 여전히 초라한 모습이다. 호메이니는 추방당하기 전 이곳에서 보통사람처럼 결혼해서 부인을 두고 자식들과 함께 살았다. 그의 부인은 호메이니가 죽을 때까지 머리를 오렌지색으로 염색했다고 한다. 그는 또한 이란의 여자 결혼연령을 9세로 낮추었다. 아랍에서조차 여자 결혼연령을 15세로 올리는데 그는 초등학교 3학년이면 시집을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또한 이란-이라크 전에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터에 몰아넣어 ‘천당의 지름길=순교자’라는 미명으로 죽음을 택하게 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서구인들은 그를 무서운 눈길로 보지만 이란인들은 아직도 그를 성자로 우러러 본다. 이후 천하의 팔레비 왕이 권력의 칼을 버리고 망명길에 오른 반면 팔레비에 의해 추방되었던 호메이니는 터번을 쓰고 망토를 펄럭이며 테헤란 공항에 도착, 100만 인파 앞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팔레비가 놓고 간 권력의 칼을 움켜쥐었다. 호메이니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호메이니의 일생은 아마도 외부인에게는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다.
시간을 달리다 2009-03-13
녹사평역‘푸른 풀이 무성한 들판’이란 뜻의 녹사평역. 눈부신 자연 채광이 유리 돔을 통해 쏟아져 내릴 때면 이 깊은 지하 공간은 순식간에 유리 궁전이 된다. 인간이 만든 이 아름다운 건축물은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가 되고, 누군가의 결혼식장이 되기도 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층 한 층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볼 것이 많아 기다림이 외롭거나 지루하지 않고, 약속한 이의 서두름이 멀리서도 훤히 보이기에 조금 늦었다고 나무랄 마음도 들지 않는다. 녹사평역은 아름답고 너그러운 들판이다. 충무로역죽어서나 들어갔던 땅 속을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한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을 문명의 혜택이다. 그 문명의 혜택은 또 다른 일상을 낳았다. 지친 하루를 접고 잠시 의자에 앉아 단꿈을 꾸고, 낯선 눈빛과 침묵의 대화를 주고받기도 하며, 정보의 조각들을 탐독하기도 한다. 역은 출발과 멈춤 사이에 존재하는 일상의 흔적이자 정보의 교환이요 사람과의 소통이다. 강남역역 번호 222번, 1일 이용객 평균 20만 명. 대한민국의 철도역 가운데 이용객이 가장 많은 곳 강남역……. 그래서 이곳은 인적이 끊긴 고요한 역 풍경을 쉽사리 볼 수 없다.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는 스침과 기억 못할 인연들이 도시의 삭막함을 되새기게 하지만 달리 보면 이 또한 아름다운 풍경이다. 땅으로 난 문을 따라 사람들은 파도치듯 일렁이고, 젊고 힘찬 발걸음들은 음악이 되어 거리를 채운다. 출렁이는 빛을 타고 시간을 달리는 사람들……. 역(驛)의 일상이다. 종로3가역그리스 신화 속 테세우스 왕자는 지하 미궁에 사는 괴물과 싸운 뒤 입구에 묶어놓은 실을 따라 땅 속을 빠져나왔다. 현대인에게 테세우스의 실은 ‘디지털’이다. 수많은 철로와 길이 얽힌 미로 같은 터널을 사람들은 정보를 주고받으며 유유히 빠져나온다. 이 긴 지하 터널에는 엇갈림은 있으나 유실은 없다. 구서울역돈 벌어 오겠다며 고향을 떠나온 시골촌뜨기의 서울 상경 관문이 되었던 곳. 명절이면 밤을 새워 차표를 구하고, 사람이 많아 늘 지저분하고 부랑자의 쉼터가 되기도 했던 옛 서울역. 하지만 이별의 아쉬움과 만남의 설렘이 교차했던 낭만의 공간이자 개통 후 100년 넘게 우리 민족의 역사적 무대가 되어 왔다. 폐쇄된 이후 간간이 문화공간으로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주로 ‘우범 지대’와 ‘노숙자 사건’ 등으로 신문에 오르내릴 뿐이다. 어느덧 우리의 기억에서 조금씩 잊혀져 가고 있는 그곳. 벗겨지고 갈리진 벽과 깨어진 창문들, 곰팡이 슨 낡은 목재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때 서울 입성의 관문이자 동양 제2의 건물이었다는 칭호가 무색하게 느껴진다. 신서울역세상이 변하니 역도 변한다. 사람들은 좀 더 빠르고 넓은 곳을 원했고 한곳에서 많은 것을 해결하기 바랬다. 그렇게 탄생한 지상 3층, 철골과 유리로 둘러싸인 서울역 신역사에는 지하철과 KTX, 새마을호와 무궁화호가 시종착하고 백화점과 서점, 음식점이 들어섰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울역 광장에는 앞으로 어떤 떠남과 도착, 만남이 쌓여갈까……. 임진강역민통선 300m 전방, 민간인 신분으로 아무런 제재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서북쪽 한계선인 임진강역. 민족의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그리움의 상징이다. 대합실 알림판에는 수천 개의 메모가 붙어 있다. 평양에 살아계실 부모형제에게 안부를 전하는 편지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의 기도들이다.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뻗어 있는 이 기찻길은 언제쯤 살아날까. 다음 역 ‘평양 209km’라는 문구에 왠지 가슴 한쪽이 아려온다.  
포하이산 420 2009-02-06
외식업체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먹을거리가 유행을 탔다 사라지곤 하는데 그 가운데 몇 년째 인기를 이어가는 베트남 쌀국수는 제법 자리를 잡은 듯하다. 시원한 국물과 쌀로 만든 면발이 한국 사람의 입맛에 맞아떨어졌기 때문. 특히 추운 겨울이면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넣고 숙주나물과 저민 고추, 레몬 즙을 뿌린 깔끔한 베트남 쌀국수 생각이 절로 난다.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을 찾기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먹을수록 담백하고 향이 자극적이지 않은, 특히 뒷맛이 개운한 쌀국수를 맛보기란 쉽지 않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 ‘포하이산420’은 그런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픈 곳이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로 5시간 우려낸 육수 사용베트남 국기에서 따온 붉은색이 주를 이루는 포하이산420 도곡점. 베트남 국화인 연꽃 그림이 천장을 붉게 물들이고, 베트남에서 직접 공수해온 소품들이 아늑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낸다. 규모는 작지만 편안한 분위기에서 한 끼 정도 해결하기에는 적당한 곳. 요즘 외식업체들이 인테리어에 목숨을 걸고 있지만 가장 날카롭게 평가해야 할 부분은 역시 음식이다. 포하이산420 도곡점은 10여 가지 쌀국수와 사이드디시, 볶음류와 밥류, 그리고 전골과 쌈 요리 등을 판매하고 있다. 쇠고기와 해물, 약재 등을 넣고 국물을 우려낸 쌀국수도 압권이지만 닭고기를 넣고 우려낸 담백한 닭가슴살 쌀국수도 입맛을 당긴다. 한 가지 더 칭찬하자면 육수에 사용되는 재료와 우려내는 시간, 즉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화학조미료나 분말가루 등으로 국물을 급하게 우려낸 일부 베트남 쌀국수집과는 달리 신선하고 좋은 재료들로 5시간을 우려내 육수를 만든다. 이곳 쌀국수의 향이 강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중 하나. 또 하나 믿음직스러운 부분은 남은 음식은 절대 재활용하지 않는다는 것. 쌀국수에 얹어 먹는 양파나 숙주나물에 손님 젓가락이 전혀 가지 않았더라도 다음 손님을 위해 무조건 버리는 것이 이곳 철칙이다.아삭아삭한 탕추러우쌈과 호주식 월남쌈 역시 쌀국수 못지않은 인기메뉴다. 라이스페이퍼를 뜨거운 물에 살짝 담갔다가 야들야들해지면 새싹과 채소, 해조류, 소면, 당근, 파프리카, 숙주, 크래미, 파인애플, 키위, 방울토마토, 새우, 볶은 고기 등을 얹어 싸먹는다. 개인의 입맛에 따라 재료를 선택해 직접 쌈을 싸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1월부터 추가된 양지스페셜전골과 매운 닭가슴살스페셜전골 등의 전골 메뉴도 일품이다. 쌀국수와 만두, 완자, 버섯, 두부 등이 육수와 더해져 담백하고 개운한 맛을 낸다. 라면사리는 무한정 리필. 모든 요리는 단품으로 판매되지만, 다양한 요리를 맛보고 싶다면 ‘황제쌈’에 도전해 보자. 애피타이저를 시작으로 월남쌈과 전골 등을 모두 맛볼 수 있는 코스요리로 값이 다소 부담스럽지만 한상 가득 차려지니 돈이 아깝지 않다. 모든 메뉴에는 재료의 원산지가 표시돼 있고, 매운 정도를 그림으로 표시해 놓아 입맛에 맞게 골라 먹을 수 있다. 영업시간은 평일 11시부터 9시 30분(주문시간)까지이고, 3시 30분부터 5시까지는 브레이크타임(주말은 브레이크타임 없음)이다.    찾아가는 길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있다. 지하철 3호선 도곡역 4번 출구에서 매봉역 방향으로 직진하면 군인공제회관과 우리증권이 보인다. 그곳에서 좌회전하면 ‘우성캐릭터 199’ 1층에 포하이산420 도곡점이 있다. 삼성타워팰리스 3차 맞은편.포하이산420 도곡점 (02)3463-0420
프랑스 최적의 떼루아 - Bordeaux 2009-02-06
프랑스 보르도 시내에도 맥도날드 햄버거 집들이 있다. 이곳에서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메뉴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와인이다. 햄버거를 먹으며 와인 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게 하지만 쳐다보는 사람은 없다. 호텔 조식뷔페에서도 최소한 적백 두 병의 포도주가 준비되어 있고 투숙객들은 아침부터 와인을 마신다. 보르도 시내엔 와인 학교가 있다. 하루 코스, 이틀 코스, 사흘 코스, 일주일 코스……. 장기(?) 코스 학생들은 실습시간에 와이너리를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필자는 최단기 코스인 한나절 코스 와인학교에 입학해서 4시간 만에 졸업했다. 강의는 ‘보르도가 왜 와인의 메카가 되었는가’로 시작해 와인의 종류로 들어가면 와인병이 돌아간다. 학생들의 테이블 위엔 두 개의 글라스와 작은 수도꼭지, 그리고 물과 포도주를 버리는 구멍이 있다. 아침부터 와인 테이스팅으로 샤도네를 마시고 물로 입을 헹궈 뱉어버리고, 리슬링을 마시고 헹구고, 다시 까베르네 소비뇽을 마시고……. 와인스쿨을 졸업할 때쯤이면 취객이 되어 비틀거리게 된다. 와인스쿨에서 예상치 못한 일은 강사가 영국인이라는 것. 강의가 끝난 뒤 “영국인이면서 어떻게 보르도에서 와인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가?” 하고 물었더니 비즈니스로 보르도에 왔다가 와인에 반해서 이곳에 눌러 앉았다고 대답한다. 보르도 세인트 에밀리온 인근 와이너리에서 또 한 사람의 영국인을 만났다. 그는 아내의 고향이 이곳이라서 보르도에 산다며 많은 영국인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고 했다. 100년 전쟁의 원인이 된 보르도영국과 보르도는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보르도는 프랑스 남서부, 여러 강이 합쳐 대서양으로 빠져 나가는 하구 지역에 있다. 보르도(Bordeaux)라는 말은 불어로 ‘물 가장자리’라는 뜻이다. 프랑스는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포도나무에 물을 주는 걸 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강가에 자리잡은 땅은 포도가 자라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다. 또한 물이 감싸고 있는 땅은 밤과 낮의 일교차가 적고 계절의 온도 변화도 크지 않아 포도 산지로 제격이다. 게다가 보르도 지역은 일년 내내 쏟아져 내리는 햇살에 계절의 변화를 보이면서도 혹한과 혹서가 없는 온화한 기후로 로마시대부터 포도주 산지로 이름을 떨쳤다. 영국은 포도주를 생산할 수 없는 나라지만 포도주에 대한 애착이 강한 나라다. 중세부터 그들이 눈독을 들인 곳도 보르도다. 보르도 지방은 아끼뗀 공작의 영지였는데 1137년 상속자인 기욤 공작이 갑작스레 죽어 겨우 열다섯 살의 아끼뗀의 딸이 상속받았다. 이 딸은 훗날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될 왕녀 엘레 오노르였다. 로빈후드와 아이반호에 등장하는 사자왕 리처드와 폭정을 휘두르다 대헌장을 승인하게 된 존 왕이 그녀의 아들들이다. 엘레 오노르는 프랑스의 왕 루이 7세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후 영국 왕실의 헨리 플랜태저넷과 재혼했다. 이후 헨리 플랜태저넷이 영국의 왕 헨리 2세로 즉위하면서 엘레 오노르는 영국의 왕비가 되었다. 프랑스 왕실이 소유한 영지보다 더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던 그녀는 루이 7세와 결혼하면서도 땅에 대한 소유권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헨리 2세와 결혼하면서 중세 영국법에 따라 보르도는 영국 왕실 소유가 됐다. 엘레 오노르와 결혼한 헨리 2세는 신부의 결혼 지참금으로 보르도라는 엄청난 보화를 얻은 셈이다.보르도에서 생산된 질 좋은 포도주가 영국으로 바리바리 실려 가는 걸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프랑스로서는 왕비가 이혼 후 영국 왕비가 된 데 대한 원한이 사무치는 터에 땅까지 가져가자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보르도 와인이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이때부터다. 부글부글 속을 끓이던 프랑스가 마침내 1337년 보르도를 몰수한다는 칙령을 발표한것. 하지만 영국이 순순히 물러날 턱이 없다. 보르도 땅을 둘러싼 영국과 프랑스 간의 기나긴 전쟁이 시작됐다. 이것이 바로 인류역사에 한 획을 그은 ‘100년 전쟁’의 전말이다. 피와 포도주가 보르도를 붉게 물들이며 백년 전쟁이 무르익어갈 때 프랑스의 시골 처녀가 이끄는 군대가 영국군을 연파하기 시작한다. 그녀 이름은 바로 잔 다르크. 잔 다르크의 등장으로 전세는 급격하게 프랑스의 우세로 반전되어 보르도는 다시 프랑스 영토가 되었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의 과도한 징세에 질려버린 보르도 농민, 귀족, 상인들이 영국이 지배하던 시절이 더 좋았다며 영국에 밀사를 보냈다. 이에 딸보(Talbot) 와인의 기원이 되는 영국의 딸보 장군이 영국군을 이끌고 보르도에 상륙, 잔 다르크와 한판승부를 벌였다. 그러나 한껏 기세가 오른 잔 다르크를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딸보 장군은 보르도에서 목숨을 잃고 전투에서 패한 영국은 이후 보르도에서 영향력을 상실하고 만다. 300년 동안이나 영국 영토였던 땅, 보르도는 마침내 프랑스 품으로 돌아갔지만 수백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영국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영국이 수입하는 포도주는 보르도산이 대부분이다. 보르도는 인구 20만의 부띠끄 도시로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도시 가운데 하나다.
SEOUL BRIDGE - 낭만교량 2009-02-06
방화대교반포대교에서 색색의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며 몇십 m를 날아 강으로 떨어진 그것은 한 시청 직원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분수 폭포다. 며칠 후 바람이 불면 물이 차에 튀어 위험하고, 자전거 타기가 곤란하다는 등의 불편이 호소됐다. 반면 어떤 이들은 그래도 보기 좋다며 카메라를 들이밀며 환호했다. 교통 대란이나 붕괴가 아니면 존재감조차 없던 삭막한 다리가 이토록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던가. 어쨌든 반포대교 입장에서는 때아닌 시선에 수시로 물에 잠기는 설움을 조금이나마 달래고 있을지 모른다.반포대교(잠수교)잠실대교굳게 닫혀 있던 잠실대교의 수중보가 열리면 제법 세찬 물보라가 일고, 그 덕에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물 속 생물들이 시멘트 둑을 타고 오른다. 막힌 교각으로 이동하지 못하는 물고기들은 인간이 따로 내어준 길로 이동하며 수시로 제 모습을 보인다. 다리는 지역과 지역을 잇는 ‘소통’에 곧잘 비유되지만, 한강의 다리는 그보다 인간과 자연을 이어주는 고리로서의 의미가 더 깊은 곳이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를 서로 연결하는 것. 서울의 산업화가 본격화될 당시 한강의 다리는 단지 그 정도 의미였다. 그러다 기능을 넘어 도시의 미적 상징이 되는 외국의 다리들에 감탄했고, 그 영향을 받아 만든 첫 작품이 바로 성산대교다. 어찌 보면 지금 우리가 한강 다리의 아름다움과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것도 성산대교의 탄생이 있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성산대교우리나라 첫 인도교(人道橋)인 한강대교는 6ㆍ25전쟁 때 적의 진군을 막으려고 고의로 파손했던 아픈 역사가 있는 다리다. 그 때문인지 강박하고 칙칙한 이미지가 강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아치형 구조물이 강물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혹시 아는가. 수많은 발길과 역사의 무게를 버텨낸 그 어깨가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사랑을 이어준 매디슨카운티의 다리처럼 누군가의 운명의 끈이 되어 줄지. 한강대교
야생의 시간을 즐기다 - HUNTING WITH LAN.. 2009-01-13
남자의 야성을 그닥 필요로 하지 않는 도시생활에 젖어 살다 보면 가끔 사나이다운 것이 그리울 때가 있다. 무언가 거칠고 고독하며 때로는 위험해서 희미한 동물적 본능을 곤두세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으로 자신을 밀어넣고 싶은 막연한 충동 같은 것 말이다. 팔방미인 디스커버리3 TDV6남자의 야성을 자극하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위험한 것은 무엇일까. 몇날며칠을 생각하던 중 한순간 머릿속에 번쩍 떠오른 것이 있었으니 바로 사냥이다. 사나이의 로망 중 하나인 멋진 총을 들고 든든한 사냥개를 동무 삼아 거친 산속을 누비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레였다. 그래서 튼튼한 SUV를 타고 사냥터로 가기로 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베테랑 수렵인을 섭외해 12월 중순의 토요일 아침 수렵장으로 향했다. 취재팀이 찾아간 곳은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일대로, 수도권에서 두 세 시간 거리에 있는 가장 가까운 수렵장 중 하나다. 사냥터로 취재팀을 실어나른 것은 랜드로버 디스커버리3 TDV6였다. 험난한 사냥터에서 든든한 발이 되어줄 디스커버리3은 V6 2.7ℓ 디젤 터보 엔진에 6단 AT를 물려 최고출력 190마력, 최대토크는 49.9kg.m를 낸다. 널찍한 차체를 바탕으로 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TRS)과 연동되는 풀타임 4WD 시스템은 없는 길도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인 험로 주파능력을 자랑한다. 뿐만 아니라 온로드 주행성능 또한 안락하고 부드러워 다목적 SUV로 손색이 없다.  서울을 출발해 중부와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니 정오쯤 되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산과 들은 황량했다. 아침에 수렵장에 도착했다는 김종원 씨의 SUV에는 포획한 고라니 세 마리가 실려 있었다. 김씨는 수렵 경력 30년이 넘는 베테랑으로, 사냥 친구 네 명과 함께였다. 우리나라는 매년 11월초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합법적인 수렵기간이다. 수도권과 대도시를 제외한 전국 25개 지방자치단체가 수렵구역을 지정하는데, 대부분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이 많이 출몰하는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 사냥을 하려면 우선 수렵 면허증이 있어야 한다. 지자체별로 1년에 2회 시험을 실시해 자격을 부여하는데 공기총과 엽총면허 등이 있다. 수렵 면허증이 있다고 곧바로 총을 들고 사냥에 나설 수는 없다. 사냥철이 되기 전에 자신이 원하는 지역의 수렵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꿩과 고라니, 멧돼지 등의 사냥감을 지정할 수 있고 해당 수렵장에서 지정된 것만 잡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꿩 사냥만 허가받은 사람이 고라니나 멧돼지를 잡으면 불법이다. 현재 유해 야생조수로 분류되어 수렵이 허가된 동물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멧돼지와 고라니, 청설모, 수꿩, 어치, 까치, 멧비둘기, 참새, 흰뺨 검둥오리, 청둥오리, 까마귀 등이다. 4~5연발 반자동 샷건, 수렵용으로 인기솔직히 말하면 현대인이 야생동물을 사냥한다는 건 금붕어가 고양이를 잡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일이다. 문명이라는 안락한 환경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기에, 맨몸으로 야생에 던져진 인간은 사냥은 커녕 살아남기조차 힘들 만큼 나약한 존재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별 문제없이 사냥을 할 수 있는 건 어떤 험한 곳에서도 든든한 발이 되어주는 SUV와 아무리 난폭한 사냥감도 한순간에 제압할 수 있는 총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잘 훈련된 사냥개가 더해지면 사냥을 놀이처럼 즐길 수 있다. 실제로 수렵인들 역시 자신들의 사냥행위를 ‘게임’이라 부른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엽총(shot gun)은 기본적으로 60~70m 이내의 가까운 목표물을 맞추기 위해 개발된 것이기에 사거리가 100m를 넘어가면 명중률과 위력이 크게 떨어진다. 샷건 메이커로는 이태리의 베넬리와 베레타, 벨기에 브라우닝, 미국 레밍턴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샷건은 일반적인 총기류와 달리 탄두가 따로 없고 플라스틱 탄피 속에 여러 개의 쇠구슬이 들어 있는 셸(shell)이라는 탄알을 사용한다. 셸은 사이즈에 따라 구경이 아닌 게이지(gage)로 표기하며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12게이지짜리다. 셸은 크게 버드샷(birdshot)과 벅샷(buckshot), 슬러그(slug) 등 3가지로 분류된다. 오리나 꿩 사냥에 쓰이는 버드샷은 작은 구슬이 수백 개 들어 있고, 사슴사냥용 벅샷은 이보다 큰 구슬이 수십 개 들어 있다. 이 역시 구슬 사이즈와 개수에 따라 세부적으로 나뉜다. 슬러그는 곰이나 멧돼지 등의 큰 동물을 잡기 위한 것으로 크고 무거운 샷 한 개가 끼워져 60~70m 안에서는 크고 억센 짐승도 한 방에 쓰러뜨릴 수 있다. 쇠구슬의 재료는 납과 니켈, 스테인리스 등 다양하지만 환경문제 등으로 납은 점차 사라져가는 추세다. 셸은 25발씩 포장되어 판매되는데 가격은 보통 한 발에 1천~1만 원이다.    사냥용 샷건은 크게 세 가지다. 네발 이상의 셸이 장전되며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한 발씩 발사되는 반자동(semi-auto) 타입과 쏠 때마다 손으로 장전해야 하는 펌프액션(pump action), 일명 ‘훌치기’ 방식이 있다. 그밖에 상하 또는 수평으로 이어붙인 두개의 총열을 꺾어 한 발씩 장전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사냥용으로는 반자동 방식이 가장 많이 쓰인다. 이 같은 반자동 샷건은 장탄수에 따라 4~8연발이 존재하며 4~5연발 모델이 인기가 높다. 반자동 방식보다 신뢰성이 높은 펌프액션 타입의 경우 숙달된 사람은 반자동 수준으로 연사가 가능해 전투부대와 대테러부대의 장애물 돌파 및 근거리 제압용으로 많이 쓰인다. 대표적인 것이 미군이 현재 제식 채용하고 있는 모스버그 500이다. 반자동 방식으로는 베넬리 M4가 미해병대의 근거리 전투용 샷건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수렵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비싼 새 엽총보다 수렵 동호회나 총포사 등에서 200만 원 내외로 구할 수 있는 중고 물건이 경제적이다. 엽총은 대부분 구조가 단순하고 튼튼하기 때문에 잘 관리하면 대를 물려 쓸 수 있다고 한다.  사냥견 데리고 꿩 잡으러 출동~점심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사냥을 위해 음성군 소이면 인근의 수렵장으로 향했다. 네 명은 고라니를 잡기 위해 산으로 올라가고, 김준기 씨 홀로 꿩 사냥을 위해 논밭이 펼쳐진 평지로 향했다. 그의 곁에는 한 살짜리 사냥개 솔이(독일 포인터)가 따라붙었다. 사진기자와 협의 끝에 취재팀은 김준기 씨와 동행하기로 했다. 사방이 툭 터진 평지가 사진촬영에 좋고, 체력적으로도 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5연발 반자동 샷건을 쓰는 일행과 달리 김씨의 엽총은 총열을 꺾어 두 발의 셸만 장전할 수 있는 이른바 ‘상하쌍대’ 방식이어서 오발 가능성이 더 적을 것이라는 막연한 안도감도 이런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이 같은 방식은 셸이 장전된 상태로 총열을 꺾은 채 휴대할 수 있어 오발사고의 위험이 낮다고 한다. 김씨 역시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면 총열을 꺾은 채로 휴대해 안심이 되었다. 꿩사냥은 사냥개를 풀어 사냥감이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찾는 것이 제일 먼저 할 일이다. 사냥개는 숙련도와 자질에 따라 사냥감을 감지하고 찾아내는 실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좋은 사냥개는 엽총의 유효 사거리 안에서 수색하고 비탈과 수풀을 가리지 않으며, 사냥감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 멈춰 꼬리나 앞발을 떨어 주인에게 사냥감의 위치를 알려준다. 이것을 수렵인들은 ‘포인한다’고 하는데, 사냥개의 포인은 주인으로 하여금 가까운 거리에 사냥감이 있으니 사격 준비하라는 사인이다. 사냥개가 포인을 하면 주인은 사냥견이 가리킨 방향으로 엽총을 조준한 후 달려든 사냥개에 놀라 꿩이 하늘로 날아오르면 목표물을 최종 확인한 후 사격한다. 이것이 사냥개를 이용한 기본적인 꿩 사냥법이다.김씨에 따르면 샷건은 사거리가 길수록 탄착군이 넓게 퍼지는 특성이 있는데 가장 이상적인 지름 30cm 정도의 탄착군이 만들어지는 40~60m가 사격하기에 제일 좋다고. 이 같은 탄착군은 총의 세팅과 셸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표적사격 위주의 군용 소총과 달리 샷건은 두 눈을 뜬 채로 목표물의 거리와 속도에 따라 0.5~1m 전방을 향해 사격해야 한다.  킁킁거리며 여기저기를 수색하던 솔이가 냄새를 감지하고 행동이 빨라지면 김씨는 개방했던 약실을 닫고 사격준비에 들어갔고 그럴 때마다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이 엄습했다. 사냥의 묘미 중 하나가 바로 사냥견과 호흡을 맞춰가며 공동의 목표물을 쫓을 때의 스릴이다.김씨는 꿩이 있을 만한 지역에 솔이를 보내 냄새를 맡게 하고 꿩의 흔적을 찾았지만 좀체 사냥감은 눈에 띄지 않았다. 김씨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전국적으로 수렵인구가 급격히 늘어나 선착순으로 발부되는 수렵 허가증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김씨의 이야기를 증명하듯 소이면 수렵장에는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녀간 듯 이곳저곳에 엽총 탄피가 떨어져 있었다.한번은 솔이가 활발히 움직이며 농로 주변의 나즈막한 언덕을 파고들길래 뒤쫓아보니 산토끼가 있었다. 마음속으로 ‘산토끼가 걸려들었구나!’ 하며 총소리를 기다리는데 왠걸, 김씨가 솔이를 불러들이는 게 아닌가. 의아해 하는 기자에게 김씨는 산토끼는 수렵이 금지된 보호종이라고 일러주었다. 우리나라에서 수렵을 허용하는 이유는 과도하게 번식한 야생동물들의 개체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해 농가의 피해를 줄이고 생태계의 균형을 바로잡는 것이기 때문에 멸종 위기의 동물을 보호하는 것 역시 수렵인의 의무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아쉽지만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그렇게 한참을 논과 밭, 야산의 가장자리를 훑으며 다니는데 산쪽에서 세 발의 총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아마도 고라니 사냥을 간 나머지 일행들 같았다. 이후로도 간헐적으로 세 발씩 두어 번의 총성이 더 들려왔고 김씨는 “아주 따발총을 쏘는구만. 고라니떼라도 만났나 보네” 하고 혼잣말을 했다.  잡은 동물은 어떻게 처리하냐고 물었더니, 요리해 먹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고 한다.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돈을 받고 파는 일은 거의 없다고. 고라니의 경우 달여서 약으로 먹기도 하는데, 건강원을 통해 일반인이 구입할 땐 40만 원가량이지만 고라니를 가져가면 15만 원 정도에 달여 준다고.김씨를 따라 얕은 언덕과 밭고랑의 가시덤불을 헤치며 다니다보니 기자의 옷차림이 사냥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나라의 산과 들엔 가시덤불이 많은데 이 같은 곳에서 자유롭게 다니려면 가시가 박히지 않게 보강된 옷을 입어야 한다. 신발 역시 진창과 얕은 개울 등을 건너다닐 수 있도록 방수처리된 등산화나 장화 같은 것이 좋다. 면바지에 가죽 구두를 신은 기자의 복장은 한마디로 넌센스였던 것. 처음 만났을 때 기자를 훑어보며 “그래가지고는 따라다니기 힘들텐데요” 하던 김씨의 말이 떠올랐다. 동시에 군복도 아니고 작업복도 아닌 어딘가 독특한 모양새의 사냥복을 보며 의아했던 궁금증도 풀렸다. 멋진 총과 좋은 사냥개 못지않게 사냥복도 중요하다는 것.땅거미가 깔릴 무렵까지 들판과 언덕을 뒤졌지만 산토끼와 죽은 비둘기를 발견한 것 외엔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수렵철이 시작되면 초반에는 재미를 보는 편이지만 갈수록 사냥감 찾기가 힘들어진다고. 이유는 동물들이 사냥꾼을 피해다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멀리서 자동차 소리만 나도 사냥꾼인줄 알고 꿩들이 멀찌감치서 날아오른다고.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산너머에서 다섯 발의 총성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무엇을 잡았을까 궁금해하고 있는데 한참 후에 일행이 나타났다. 기대와 달리 모두 빈손이었다. 장비를 정리하고 가까운 국도로 나서는데 진창으로 엉망인 좁은 비포장 도로에 못보던 트럭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연락처도 없이 방치된 트럭을 다같이 길가로 힘겹게 밀어내고 도로 가장자리의 둔덕을 넘어 통과하기로 했다. 어두운 밤길에 미끄러운 진창과 울퉁불퉁한 장애물을 통과하려니 막막했다. 디스커버리3 TDV6의 TRS를 진흙길 모드로 세팅하고 천천히 액셀을 밟으니 이내 네 바퀴에 구동력이 실리면서 진창과 장애물을 타고넘기 시작했다. 디스커버리는 너무나 쉽게 험로를 통과해 오프로드의 제왕다운 면모를 확인시켜주었다.어렵게 국도로 나와 일행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사냥팀은 오전에 잡은 고라니 세 마리로 하루를 마감하고 내일을 기약했다. 취재팀은 그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서울를 향해 차를 몰았다. 기대했던 멋진 사냥 장면을 볼 수 없었지만 꿩을 찾아 황량한 들판을 돌아다닌 겨울 한나절은 무척 즐겁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번 수렵 시즌이 끝나기 전에 다시 한번 사냥터를 찾아보고 싶다.
고산준봉에 둘러싸인 로열 네팔 GC - 사람보다 신이 .. 2009-01-12
네팔엔 사람보다 신이 많다는 말이 있다. 그 말대로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 한복판 달발광장에는 구왕궁을 중심으로 사원이 둘러서 있다. 타레주 사원, 자카나트 사원, 시바 사원, 나라얀 사원…….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아름다운 사원은 왕궁 앞에 위치한 쿠마리 사원이다. 쿠마리 사원에는 살아 있는 여신, 쿠마리가 살고 있다. 살아 있는 여신, 쿠마리쿠마리는 힌두교도뿐만 아니라 네팔의 불교도들도 신으로 떠받든다. 쿠마리는 석가모니의 부족인 샤키아족 중에서 선출된다. 쿠마리를 선출하는 기준은 지능이나 학력이 아니라 신기(神氣)다. 먼저 용모의 조건이 맞는 준수한 어린 소녀를 뽑아 캄캄한 방에 두고 피 냄새가 나는 소, 돼지, 양, 닭 등의 머리를 늘어놓는다. 아이가 무서워서 울거나 소리를 지르면 탈락이다. 쿠마리로 뽑힌 소녀는 쿠마리 사원에 들어가 살아 있는 신으로 추앙받으며 사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일을 한다. 9월에 벌어지는 인드라 자트라 축제 때 쿠마리가 성장을 하고 코끼리를 타고 나가면 네팔 왕이 무릎을 꿇고 예를 바친다.한 번 쿠마리는 영원한 쿠마리가 아니다. 소녀가 초경을 하면 쿠마리의 자격을 잃고 사원에서 쫓겨난다. 2001년 7월 라시밀라 샤키아가 사원에서 쫓겨나고 그 뒤를 이어 4살짜리 프리티 샤키아가 새 쿠마리로 추대되었다.인간 세계로 나온 쿠마리 출신의 소녀는 사람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 쿠마리와 함께 신전으로 들어가 호의호식하던 가족들도 그녀를 멀리한다. 쫓겨난 쿠마리와 가까이하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설 때문이다. 시집도 못간다. 쿠마리였던 처녀와 살면 남자가 비명횡사한다는 속설이 그녀를 터부시하게 만든다. 따라서 쿠마리 출신의 처녀는 집을 나와 떠돌다가 유곽으로 빠지는 게 일반적이다. 히말라야 산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네팔은 히말라야 산자락에 붙어 있는 작은 나라로 2천만 인구 중 80%가 인도계 아리안족이다. 이들은 저지대와 도시에 뿌리를 내리고 힌두교를 믿는다. 북방에서 내려온 몽골리언은 10%가 안되는 소수종족으로 주로 산악지대에서 살면서 불교를 믿는다. 그들이 험준한 산중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눈물겹다. 카투만두에서 서북쪽에 위치한 포카라까지는 아슬아슬한 절벽 길을 따라 차로 7시간을 달려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차는 탈 수 없고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포카라에서 담푸스로 가는 히말라야 산길은 코가 닿을 듯 가파르다. 담푸스 마을은 안나푸르나 연봉 해발 2천m 산허리에 붙어 있는 산촌으로 눈에 보이는 것은 사방에서 하늘에 닿을 듯 솟아오른 고봉들이다. 그 많은 봉우리 중에서도 으뜸은 마차푸차레(해발 6천997m)다. 현지어로 ‘물고기 꼬리’라는 뜻의 마차푸차레는 네팔의 성산으로 아무도 올라갈 수 없다. 외국 등반대가 아무리 많은 입산료를 바쳐도 네팔정부는 등산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담푸스 마을에서 보면 많은 안나푸르나 연봉들이 이 마을을 감싸듯이 빙 둘러섰고 그 한복판에 손에 잡힐 듯 마차푸차레가 위용을 자랑하고 서 있다. 집집마다 아침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딸랑딸랑 방울을 울리며 당나귀들은 부지런한 농부의 손에 이끌려 밭으로 가고 개들은 컹컹 짓고 닭들은 모이를 쫀다. 가파르게 비탈진 산자락에도 몇 뼘의 밭들이 계단처럼 차곡차곡 펼쳐진다.다루초가 펄럭이는 돌집으로 들어가 보자. 삼라만상이 불심을 받으라고 다루초 붉은 깃발에 빼곡히 적힌 부처님 말씀이 바람에 실려 훨훨 날아간다. 이 집 어른인 87세의 아스바하디르 노인이 빙긋이 미소를 띠며 마당으로 나와 마차푸차레를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합장을 한다. 16세에 인도군에 입대하여 12년 동안 근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이날 이때껏 이곳에서 밭벼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는 이 노인은 인도정부로부터 얼마간의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연금으로 용돈으로 쓰고 어린 손자들 과자값도 준다며 얼굴에 자랑이 넘친다. 일평생 담배를 입에 댄 적이 없는 대신 술을 좋아해서 지금도 조로 만든 술과 창을 증류한 독주를 한 잔씩 반주로 든다. 귀가 좀 어두울 뿐 아직도 꼿꼿한 이 노인에게 건강비결을 묻자 서슴없이 ‘낙관과 자비’라는 대답이 돌아온다.“하루는 밤과 낮이 있듯이 모든 것은 양면이 있어. 좋은 면과 나쁜 면, 기쁜 면과 슬픈 면,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좋을 땐 나쁠 때를 생각하고 나쁜 땐 좋을 때를 생각 하고, 기쁠 땐 슬픈 때를 생각하고 슬플 땐 기쁜 때를 생각해야 돼.”아스바하디르 노인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비탈 계단식 밭 2천여 평을 갖고 있다. 식구가 부런히 농사지으면 양식 걱정은 없다. 남는 것은 팔아서 일용잡화를 사고, 병든 사람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준다. 몇 살 아래 부인과 건강하게 해로하고 있는 그는 55세 맏아들과 함께 산다. 둘째 아들은 산 너머 이웃 마을에 살면서 한 달에 두 세 차례씩 달걀을 싸들고 노부모를 찾아온다. 세 딸은 포카라로 이웃마을로 시집가서 별 탈 없이 살고 있다. 손자, 손녀가 열여섯이고 증손녀도 둘이나 된다. 손자들의 이름을 깜박할 때가 있어 종잇조각에 이름을 모두 적어 머리맡 불경 책갈피 속에 꽂아두고 불경을 볼 때마다 이름 외는 걸 잊지 않는다. 산중의 9홀 코스, 로열 네팔 GC카트만두엔 9홀 골프코스가 하나 있다. 공항 옆에 자리 잡은 이 골프장은 네팔 왕실에서 지원해주는 로열 네팔 GC다. 로열 네팔 GC는 빼어난 골프코스는 아니다. 그렇다고 흙바닥이 드러나는 아프리카 스타일도 아니어서 골프를 즐기기에는 부족하지 않다. 페어웨이 떡잔디에 잡풀은 섞여 있지만 가지런히 깎아 놓았고 수건을 쓴 여자들이 부지런히 풀을 뽑고 있어 샷이 빗나가도 페어웨이 컨디션이 나쁘다는 핑계는 댈 수 없다.비록 9홀이지만 2개의 파5, 2개의 파3, 다섯 개의 파4홀로 구색을 갖추고 광활한 개활지 내리막 홀이 있는가 하면 정글 속을 뚫고 가는 오르막 홀이 있다. 한 홀에 프론트나인 티잉그라운드와 백나인 티잉그라운드를 따로 만들어놔 9홀을 두 번 돌면 18홀을 라운드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일반적으로 9홀 코스는 구성이 단조롭지만 로열 네팔 GC는 워터 해저드가 도사리고 온갖 장애물도 숨어 있는 전략적 코스다.골프코스가 좋으니 나쁘니 탓할 일이 아니라 히말라야 산자락에 박힌 이 나라에 골프코스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폭스바겐의 문화를 판다 - AUTOSTADT 2009-01-12
세상이 바뀌었다. 물건 하나만 잘 만들면 그걸로 먹고 살 수 있었던 시절은 진작에 끝났다. 지금은 문화를 앞세워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이미지에 기대어 상품을 파는 시대다. 사람들은 상품을 사면서 그 회사의 이미지도 함께 소유한다…고 믿는다. 고가품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소위 명품들이 이미지를 팔아먹고 사는 대표적인 경우다. 문화와 정신을 파는 시대이미지로 먹고 사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자동차 바닥에서는 포르쉐를 빼놓을 수 없다. 포르쉐의 대당 이윤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건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상식. 포르쉐가 높은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것도 포르쉐라는 브랜드 파워가 더해졌기에 가능한 것이다. 덕분에 연간 10만 대 남짓 팔면서도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만만찮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대가 해외 시장에서 고급차 이미지를 얻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도 품질경쟁만으로 수익을 얻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제2의 토요타 나아가 렉서스를 꿈꾸는 현대지만 한번쯤 진지하게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아줬으면 하는 브랜드가 바로 폭스바겐이다. 독일의 국민차(Volkswagen)로 출발한 폭스바겐은 높은 품질과 실용성을 바탕으로 연간 600만 대 이상 생산해 유럽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로 군림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포드를 제치고 토요타와 GM에 이어 업계 3위로 뛰어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 가까스로 2위를 지키고는 있는 GM의 암울한 상황을 감안하면, 가까운 미래에 폭스바겐이 토요타와 함께 양대 자동차 메이커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들도 많다.폭스바겐의 이 같은 탄탄한 성장 뒤에는 독일차로 대변되는 높은 품질과 고효율 파워트레인을 앞세운 안정된 성능, 대량생산에 의한 합리적인 가격정책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 선진 자동차문화를 리드하는 자신감도 빼놓을 수 없다. 자동차문화를 이끌어가는 폭스바겐의 자신감은 그들의 본거지인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꾸민 아우토슈타트(Autostadt)를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아우토슈타트는 폭스바겐이 2000년 6월 1일 개장한 세계 최대규모의 자동차 테마파크다. 이곳을 통해 폭스바겐은 차만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문화, 나아가 기업철학과 비전을 주제로 고객과 소통하고 있다. 25만m2 넓이의 아우토슈타트에 들어서면 맨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이 콘체른 포룸(Konzern Forum)이다. 그 안에 자리잡은 아우토 랩(Auto Lab)에서는 자동차의 개발과 생산과정을 느낄 수 있다. 관람객이 직접 씨를 뿌리고 재배해 추출한 연료를 작은 유리 캡슐에 담아주는 바이오 연료 체험시설은 환경의 중요성과 에너지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한다. 다양한 메이커의 차들을 관람할 수 있는 자이트 하우스(Zeit Haus)와 주요 건물인 쿤덴 센터(Kunden Center) 등 다양한 전시시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자이트 하우스에는 BMW도 갖지 못한 초창기 영국제 미니 등 희귀모델이 그득하고, 쿤덴 센터 유리 바닥 아래에서 빛나는 수많은 지구본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다양한 통계를 한눈에 보여준다. 이를테면 교통사고율이 높은 나라에 빨간 십자가 표시를 해놓고, 세계 이곳저곳에 자리잡은 폭스바겐 공장을 보여주는 지구본, 국가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표시해놓은 것도 있다.또한 아우토슈타트에는 폭스바겐 그룹이 보유한 아우디와 벤틀리, 람보르기니, 세아트, 스코다 등 각 브랜드의 개성을 한껏 살린 브랜드 전시관과 폭스바겐 상용차 전시관도 둘러볼 수 있다. 어린이들도 연령에 맞춰 좋은 체험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새 가족을 맞는 자동차 출고식아우토슈타트의 가장 큰 특징은 자동차 출고와 테마파크가 연계되어 있는 점이다. 차를 주문한 사람이 아우토슈타트 출고장에서 직접 차를 받을 경우 폭스바겐은 아우토슈타트 내의 리츠칼튼 호텔 숙박을 포함한 테마파크 관람기회를 제공한다. 차를 받으러 가는 것이 가족 나들이이자 축제가 되는 셈이다. 잘 꾸며진 쇼윈도 안에서 조심스레 선물을 꺼내주듯 48m 높이의 유리 타워인 글라스 튀르메(Glasturme) 안에 보관되어 있던 차는 정성스럽게 구매자에게 전달된다. 가족과 함께 아우토슈타트를 찾은 구매자는 가지고 간 번호판을 차에 달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한다. 차를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글라스 튀르메는 현재 2개지만 찾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어 2개를 더 증축할 예정이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아우토슈타트를 찾은 소비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차와 함께 폭스바겐의 기업철학과 문화까지 마음에 담아가고 있다. 직접 출고하는 고객을 포함해 각국에서 매년 300만 명 이상이 아우토슈타트에서 폭스바겐의 열렬한 팬으로 거듭나는 이유다. 아우토슈타트 관광정보위치 : 독일 니더작센주 볼프스부르크 기차역 부근개장시간 : 매일 9시~18시. 쿤덴 센터 등에서의 출고업무는 8시부터. 12월 24일과 31일을 제외하고 연중무휴. 입장료 : 어른 15유로, 대학생 9유로, 어린이 및 청소년(6~17세) 6유로, 가족(어른 2명 + 6~17세 어린이) 38유로, 단체(20인 이상) 어른 14유로, 대학생 8유로, 어린이 및 청소년(6~17세) 5유로.투어 가이드 : 11유로(2시간 코스), 5유로(45분 코스). 신청자에 한해 영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등 13개 언어로 제공되며 한국어 서비스는 아직 없음. 웹사이트 : www.autostadt.de전화 : +49(0)5361-400 [이 게시물은 CARLiFE님에 의해 2009-01-12 09:54:22 정보마당에서 이동 됨]
Macaroni Market 2009-01-09
상큼한 옐로 컬러의 간판이 예사롭지 않은 ‘마카로니 마켓’(Macaroni Market)은 얼마 전 문을 연 서양 음식점이다. 실내 역시 노란빛이 감도는 목재를 바닥에 깔고 테이블과 의자도 같은 소재를 사용해 분위기를 통일했다. 채광이 유난히 좋은 테라스는 한겨울에도 봄꽃이 필 것처럼 밝고 따스한 느낌. 정돈된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은 손님의 표정까지 읽어가며 서비스에 충실하다. 그리고 음식의 맛을 더하고 기분을 안정시키는 가벼운 톤의 음악. 여기까지는 여타 고급 음식점과 다를 게 없다. 그런데 몇 가지 생소한 것들이 눈에 띈다. 카페 혹은 레스토랑, 그리고 클럽마카로니 마켓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구분되어 있다. 메인 홀 격인 카페는 이동로를 따라 테이블이 놓여 있고 창이 넓은 테라스를 끼고 있어 개방적이고 밝은 느낌이다. 오픈 키친과 카페 사이에 있는 통로는 레스토랑 입구. 카페가 화사하고 캐주얼한 느낌이라면 레스토랑은 인테리어리어를 비롯한 전체적인 마감재, 그리고 테이블 세팅 등이 격식 있고 우아하다. 레스토랑의 메뉴는 메인 디시를 비롯해 10여 가지의 스타터(Starter)와 디저트, 치즈와 음료 등이 있다. 독특한 것은 메인 디시 종류가 겨우 4가지뿐이라는 것. 가짓수가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묻자 요리에 대한 자부심과 음식의 질을 최고로 유지하기 위함이란다. 4개월마다 90% 이상의 메뉴를 바꾸는 시즌 메뉴를 선보이려는 것도 바로 그 때문. 가벼운 마음으로 찾은 사람은 격식을 갖춰야 할 것 같은 이곳 분위기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숍 어시스턴트가 요리와 와인 등의 특징을 설명해 주고 입맛과 분위기에 맞는 메뉴를 추천해 주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더욱이 마카로니 마켓의 음식값은 인심이 후한 편이다. 음식에 사용되는 재료는 대부분 직접 만들고, 일부 메뉴를 제외하고는 그날 오전에 공수한 신선한 재료만을 사용한다. 마카로니 마켓의 또 다른 특징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마켓’이 운영된다는 것. 이곳에서는 와인과 직접 만든 쿠키, 와인에 어울리는 치즈와 햄 등을 판매하는데, 햄과 치즈는 본인이 필요한 양만큼 무게를 달아 살 수 있다. 카페와 레스토랑에 각각 설치된 와인 셀러에는 생산지와 제조별, 가격대별로 다양한 와인이 준비돼 있다. 아직은 판매하는 제품이 몇 안 되지만 차츰 품목을 늘려 손님이 음식을 먹고 문화를 즐기고, 원하는 식품을 다양하게 살 수 있는 복합적인 ‘마켓’으로 그 의미를 넓혀갈 계획이다. 마카로니 마켓의 진정한 보석은 바로 클럽(Club). ‘F’라 이름 붙여진 이곳은 들어서는 순간 그 누구라도 압도당할 분위기다. 형형색색의 조명과 리큐어로 장식된 바, 신비한 소품과 고급스런 소파, 당장에라도 라운지 뮤직이 흘러나올 것 같은 뮤직박스 등은 하루의 일탈을 꿈꾸게 한다. 국내 최고 DJ들의 믹싱 실력을 감상할 수 있는 ‘F’는 오후 6시부터 개방되고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파티 형식으로 진행된다. 찾아가는 길6호선 이태원역 2번 출구에서 한남동(이태원 호텔) 방향으로 직진. GS주유소를 지나 50m 정도 가면 노란색 간판의 마카로니 마켓(2층)이 나온다. 레스토랑 소르띠노 맞은 편. 마카로니 마켓 (02)749-9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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