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야생의 시간을 즐기다 - HUNTING WITH LAN.. 2009-01-13
남자의 야성을 그닥 필요로 하지 않는 도시생활에 젖어 살다 보면 가끔 사나이다운 것이 그리울 때가 있다. 무언가 거칠고 고독하며 때로는 위험해서 희미한 동물적 본능을 곤두세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으로 자신을 밀어넣고 싶은 막연한 충동 같은 것 말이다. 팔방미인 디스커버리3 TDV6남자의 야성을 자극하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위험한 것은 무엇일까. 몇날며칠을 생각하던 중 한순간 머릿속에 번쩍 떠오른 것이 있었으니 바로 사냥이다. 사나이의 로망 중 하나인 멋진 총을 들고 든든한 사냥개를 동무 삼아 거친 산속을 누비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레였다. 그래서 튼튼한 SUV를 타고 사냥터로 가기로 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베테랑 수렵인을 섭외해 12월 중순의 토요일 아침 수렵장으로 향했다. 취재팀이 찾아간 곳은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일대로, 수도권에서 두 세 시간 거리에 있는 가장 가까운 수렵장 중 하나다. 사냥터로 취재팀을 실어나른 것은 랜드로버 디스커버리3 TDV6였다. 험난한 사냥터에서 든든한 발이 되어줄 디스커버리3은 V6 2.7ℓ 디젤 터보 엔진에 6단 AT를 물려 최고출력 190마력, 최대토크는 49.9kg.m를 낸다. 널찍한 차체를 바탕으로 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TRS)과 연동되는 풀타임 4WD 시스템은 없는 길도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인 험로 주파능력을 자랑한다. 뿐만 아니라 온로드 주행성능 또한 안락하고 부드러워 다목적 SUV로 손색이 없다.  서울을 출발해 중부와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니 정오쯤 되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산과 들은 황량했다. 아침에 수렵장에 도착했다는 김종원 씨의 SUV에는 포획한 고라니 세 마리가 실려 있었다. 김씨는 수렵 경력 30년이 넘는 베테랑으로, 사냥 친구 네 명과 함께였다. 우리나라는 매년 11월초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합법적인 수렵기간이다. 수도권과 대도시를 제외한 전국 25개 지방자치단체가 수렵구역을 지정하는데, 대부분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이 많이 출몰하는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 사냥을 하려면 우선 수렵 면허증이 있어야 한다. 지자체별로 1년에 2회 시험을 실시해 자격을 부여하는데 공기총과 엽총면허 등이 있다. 수렵 면허증이 있다고 곧바로 총을 들고 사냥에 나설 수는 없다. 사냥철이 되기 전에 자신이 원하는 지역의 수렵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꿩과 고라니, 멧돼지 등의 사냥감을 지정할 수 있고 해당 수렵장에서 지정된 것만 잡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꿩 사냥만 허가받은 사람이 고라니나 멧돼지를 잡으면 불법이다. 현재 유해 야생조수로 분류되어 수렵이 허가된 동물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멧돼지와 고라니, 청설모, 수꿩, 어치, 까치, 멧비둘기, 참새, 흰뺨 검둥오리, 청둥오리, 까마귀 등이다. 4~5연발 반자동 샷건, 수렵용으로 인기솔직히 말하면 현대인이 야생동물을 사냥한다는 건 금붕어가 고양이를 잡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일이다. 문명이라는 안락한 환경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기에, 맨몸으로 야생에 던져진 인간은 사냥은 커녕 살아남기조차 힘들 만큼 나약한 존재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별 문제없이 사냥을 할 수 있는 건 어떤 험한 곳에서도 든든한 발이 되어주는 SUV와 아무리 난폭한 사냥감도 한순간에 제압할 수 있는 총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잘 훈련된 사냥개가 더해지면 사냥을 놀이처럼 즐길 수 있다. 실제로 수렵인들 역시 자신들의 사냥행위를 ‘게임’이라 부른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엽총(shot gun)은 기본적으로 60~70m 이내의 가까운 목표물을 맞추기 위해 개발된 것이기에 사거리가 100m를 넘어가면 명중률과 위력이 크게 떨어진다. 샷건 메이커로는 이태리의 베넬리와 베레타, 벨기에 브라우닝, 미국 레밍턴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샷건은 일반적인 총기류와 달리 탄두가 따로 없고 플라스틱 탄피 속에 여러 개의 쇠구슬이 들어 있는 셸(shell)이라는 탄알을 사용한다. 셸은 사이즈에 따라 구경이 아닌 게이지(gage)로 표기하며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12게이지짜리다. 셸은 크게 버드샷(birdshot)과 벅샷(buckshot), 슬러그(slug) 등 3가지로 분류된다. 오리나 꿩 사냥에 쓰이는 버드샷은 작은 구슬이 수백 개 들어 있고, 사슴사냥용 벅샷은 이보다 큰 구슬이 수십 개 들어 있다. 이 역시 구슬 사이즈와 개수에 따라 세부적으로 나뉜다. 슬러그는 곰이나 멧돼지 등의 큰 동물을 잡기 위한 것으로 크고 무거운 샷 한 개가 끼워져 60~70m 안에서는 크고 억센 짐승도 한 방에 쓰러뜨릴 수 있다. 쇠구슬의 재료는 납과 니켈, 스테인리스 등 다양하지만 환경문제 등으로 납은 점차 사라져가는 추세다. 셸은 25발씩 포장되어 판매되는데 가격은 보통 한 발에 1천~1만 원이다.    사냥용 샷건은 크게 세 가지다. 네발 이상의 셸이 장전되며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한 발씩 발사되는 반자동(semi-auto) 타입과 쏠 때마다 손으로 장전해야 하는 펌프액션(pump action), 일명 ‘훌치기’ 방식이 있다. 그밖에 상하 또는 수평으로 이어붙인 두개의 총열을 꺾어 한 발씩 장전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사냥용으로는 반자동 방식이 가장 많이 쓰인다. 이 같은 반자동 샷건은 장탄수에 따라 4~8연발이 존재하며 4~5연발 모델이 인기가 높다. 반자동 방식보다 신뢰성이 높은 펌프액션 타입의 경우 숙달된 사람은 반자동 수준으로 연사가 가능해 전투부대와 대테러부대의 장애물 돌파 및 근거리 제압용으로 많이 쓰인다. 대표적인 것이 미군이 현재 제식 채용하고 있는 모스버그 500이다. 반자동 방식으로는 베넬리 M4가 미해병대의 근거리 전투용 샷건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수렵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비싼 새 엽총보다 수렵 동호회나 총포사 등에서 200만 원 내외로 구할 수 있는 중고 물건이 경제적이다. 엽총은 대부분 구조가 단순하고 튼튼하기 때문에 잘 관리하면 대를 물려 쓸 수 있다고 한다.  사냥견 데리고 꿩 잡으러 출동~점심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사냥을 위해 음성군 소이면 인근의 수렵장으로 향했다. 네 명은 고라니를 잡기 위해 산으로 올라가고, 김준기 씨 홀로 꿩 사냥을 위해 논밭이 펼쳐진 평지로 향했다. 그의 곁에는 한 살짜리 사냥개 솔이(독일 포인터)가 따라붙었다. 사진기자와 협의 끝에 취재팀은 김준기 씨와 동행하기로 했다. 사방이 툭 터진 평지가 사진촬영에 좋고, 체력적으로도 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5연발 반자동 샷건을 쓰는 일행과 달리 김씨의 엽총은 총열을 꺾어 두 발의 셸만 장전할 수 있는 이른바 ‘상하쌍대’ 방식이어서 오발 가능성이 더 적을 것이라는 막연한 안도감도 이런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이 같은 방식은 셸이 장전된 상태로 총열을 꺾은 채 휴대할 수 있어 오발사고의 위험이 낮다고 한다. 김씨 역시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면 총열을 꺾은 채로 휴대해 안심이 되었다. 꿩사냥은 사냥개를 풀어 사냥감이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찾는 것이 제일 먼저 할 일이다. 사냥개는 숙련도와 자질에 따라 사냥감을 감지하고 찾아내는 실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좋은 사냥개는 엽총의 유효 사거리 안에서 수색하고 비탈과 수풀을 가리지 않으며, 사냥감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 멈춰 꼬리나 앞발을 떨어 주인에게 사냥감의 위치를 알려준다. 이것을 수렵인들은 ‘포인한다’고 하는데, 사냥개의 포인은 주인으로 하여금 가까운 거리에 사냥감이 있으니 사격 준비하라는 사인이다. 사냥개가 포인을 하면 주인은 사냥견이 가리킨 방향으로 엽총을 조준한 후 달려든 사냥개에 놀라 꿩이 하늘로 날아오르면 목표물을 최종 확인한 후 사격한다. 이것이 사냥개를 이용한 기본적인 꿩 사냥법이다.김씨에 따르면 샷건은 사거리가 길수록 탄착군이 넓게 퍼지는 특성이 있는데 가장 이상적인 지름 30cm 정도의 탄착군이 만들어지는 40~60m가 사격하기에 제일 좋다고. 이 같은 탄착군은 총의 세팅과 셸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표적사격 위주의 군용 소총과 달리 샷건은 두 눈을 뜬 채로 목표물의 거리와 속도에 따라 0.5~1m 전방을 향해 사격해야 한다.  킁킁거리며 여기저기를 수색하던 솔이가 냄새를 감지하고 행동이 빨라지면 김씨는 개방했던 약실을 닫고 사격준비에 들어갔고 그럴 때마다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이 엄습했다. 사냥의 묘미 중 하나가 바로 사냥견과 호흡을 맞춰가며 공동의 목표물을 쫓을 때의 스릴이다.김씨는 꿩이 있을 만한 지역에 솔이를 보내 냄새를 맡게 하고 꿩의 흔적을 찾았지만 좀체 사냥감은 눈에 띄지 않았다. 김씨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전국적으로 수렵인구가 급격히 늘어나 선착순으로 발부되는 수렵 허가증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김씨의 이야기를 증명하듯 소이면 수렵장에는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녀간 듯 이곳저곳에 엽총 탄피가 떨어져 있었다.한번은 솔이가 활발히 움직이며 농로 주변의 나즈막한 언덕을 파고들길래 뒤쫓아보니 산토끼가 있었다. 마음속으로 ‘산토끼가 걸려들었구나!’ 하며 총소리를 기다리는데 왠걸, 김씨가 솔이를 불러들이는 게 아닌가. 의아해 하는 기자에게 김씨는 산토끼는 수렵이 금지된 보호종이라고 일러주었다. 우리나라에서 수렵을 허용하는 이유는 과도하게 번식한 야생동물들의 개체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해 농가의 피해를 줄이고 생태계의 균형을 바로잡는 것이기 때문에 멸종 위기의 동물을 보호하는 것 역시 수렵인의 의무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아쉽지만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그렇게 한참을 논과 밭, 야산의 가장자리를 훑으며 다니는데 산쪽에서 세 발의 총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아마도 고라니 사냥을 간 나머지 일행들 같았다. 이후로도 간헐적으로 세 발씩 두어 번의 총성이 더 들려왔고 김씨는 “아주 따발총을 쏘는구만. 고라니떼라도 만났나 보네” 하고 혼잣말을 했다.  잡은 동물은 어떻게 처리하냐고 물었더니, 요리해 먹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고 한다.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돈을 받고 파는 일은 거의 없다고. 고라니의 경우 달여서 약으로 먹기도 하는데, 건강원을 통해 일반인이 구입할 땐 40만 원가량이지만 고라니를 가져가면 15만 원 정도에 달여 준다고.김씨를 따라 얕은 언덕과 밭고랑의 가시덤불을 헤치며 다니다보니 기자의 옷차림이 사냥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나라의 산과 들엔 가시덤불이 많은데 이 같은 곳에서 자유롭게 다니려면 가시가 박히지 않게 보강된 옷을 입어야 한다. 신발 역시 진창과 얕은 개울 등을 건너다닐 수 있도록 방수처리된 등산화나 장화 같은 것이 좋다. 면바지에 가죽 구두를 신은 기자의 복장은 한마디로 넌센스였던 것. 처음 만났을 때 기자를 훑어보며 “그래가지고는 따라다니기 힘들텐데요” 하던 김씨의 말이 떠올랐다. 동시에 군복도 아니고 작업복도 아닌 어딘가 독특한 모양새의 사냥복을 보며 의아했던 궁금증도 풀렸다. 멋진 총과 좋은 사냥개 못지않게 사냥복도 중요하다는 것.땅거미가 깔릴 무렵까지 들판과 언덕을 뒤졌지만 산토끼와 죽은 비둘기를 발견한 것 외엔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수렵철이 시작되면 초반에는 재미를 보는 편이지만 갈수록 사냥감 찾기가 힘들어진다고. 이유는 동물들이 사냥꾼을 피해다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멀리서 자동차 소리만 나도 사냥꾼인줄 알고 꿩들이 멀찌감치서 날아오른다고.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산너머에서 다섯 발의 총성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무엇을 잡았을까 궁금해하고 있는데 한참 후에 일행이 나타났다. 기대와 달리 모두 빈손이었다. 장비를 정리하고 가까운 국도로 나서는데 진창으로 엉망인 좁은 비포장 도로에 못보던 트럭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연락처도 없이 방치된 트럭을 다같이 길가로 힘겹게 밀어내고 도로 가장자리의 둔덕을 넘어 통과하기로 했다. 어두운 밤길에 미끄러운 진창과 울퉁불퉁한 장애물을 통과하려니 막막했다. 디스커버리3 TDV6의 TRS를 진흙길 모드로 세팅하고 천천히 액셀을 밟으니 이내 네 바퀴에 구동력이 실리면서 진창과 장애물을 타고넘기 시작했다. 디스커버리는 너무나 쉽게 험로를 통과해 오프로드의 제왕다운 면모를 확인시켜주었다.어렵게 국도로 나와 일행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사냥팀은 오전에 잡은 고라니 세 마리로 하루를 마감하고 내일을 기약했다. 취재팀은 그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서울를 향해 차를 몰았다. 기대했던 멋진 사냥 장면을 볼 수 없었지만 꿩을 찾아 황량한 들판을 돌아다닌 겨울 한나절은 무척 즐겁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번 수렵 시즌이 끝나기 전에 다시 한번 사냥터를 찾아보고 싶다.
고산준봉에 둘러싸인 로열 네팔 GC - 사람보다 신이 .. 2009-01-12
네팔엔 사람보다 신이 많다는 말이 있다. 그 말대로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 한복판 달발광장에는 구왕궁을 중심으로 사원이 둘러서 있다. 타레주 사원, 자카나트 사원, 시바 사원, 나라얀 사원…….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아름다운 사원은 왕궁 앞에 위치한 쿠마리 사원이다. 쿠마리 사원에는 살아 있는 여신, 쿠마리가 살고 있다. 살아 있는 여신, 쿠마리쿠마리는 힌두교도뿐만 아니라 네팔의 불교도들도 신으로 떠받든다. 쿠마리는 석가모니의 부족인 샤키아족 중에서 선출된다. 쿠마리를 선출하는 기준은 지능이나 학력이 아니라 신기(神氣)다. 먼저 용모의 조건이 맞는 준수한 어린 소녀를 뽑아 캄캄한 방에 두고 피 냄새가 나는 소, 돼지, 양, 닭 등의 머리를 늘어놓는다. 아이가 무서워서 울거나 소리를 지르면 탈락이다. 쿠마리로 뽑힌 소녀는 쿠마리 사원에 들어가 살아 있는 신으로 추앙받으며 사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일을 한다. 9월에 벌어지는 인드라 자트라 축제 때 쿠마리가 성장을 하고 코끼리를 타고 나가면 네팔 왕이 무릎을 꿇고 예를 바친다.한 번 쿠마리는 영원한 쿠마리가 아니다. 소녀가 초경을 하면 쿠마리의 자격을 잃고 사원에서 쫓겨난다. 2001년 7월 라시밀라 샤키아가 사원에서 쫓겨나고 그 뒤를 이어 4살짜리 프리티 샤키아가 새 쿠마리로 추대되었다.인간 세계로 나온 쿠마리 출신의 소녀는 사람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 쿠마리와 함께 신전으로 들어가 호의호식하던 가족들도 그녀를 멀리한다. 쫓겨난 쿠마리와 가까이하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설 때문이다. 시집도 못간다. 쿠마리였던 처녀와 살면 남자가 비명횡사한다는 속설이 그녀를 터부시하게 만든다. 따라서 쿠마리 출신의 처녀는 집을 나와 떠돌다가 유곽으로 빠지는 게 일반적이다. 히말라야 산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네팔은 히말라야 산자락에 붙어 있는 작은 나라로 2천만 인구 중 80%가 인도계 아리안족이다. 이들은 저지대와 도시에 뿌리를 내리고 힌두교를 믿는다. 북방에서 내려온 몽골리언은 10%가 안되는 소수종족으로 주로 산악지대에서 살면서 불교를 믿는다. 그들이 험준한 산중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눈물겹다. 카투만두에서 서북쪽에 위치한 포카라까지는 아슬아슬한 절벽 길을 따라 차로 7시간을 달려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차는 탈 수 없고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포카라에서 담푸스로 가는 히말라야 산길은 코가 닿을 듯 가파르다. 담푸스 마을은 안나푸르나 연봉 해발 2천m 산허리에 붙어 있는 산촌으로 눈에 보이는 것은 사방에서 하늘에 닿을 듯 솟아오른 고봉들이다. 그 많은 봉우리 중에서도 으뜸은 마차푸차레(해발 6천997m)다. 현지어로 ‘물고기 꼬리’라는 뜻의 마차푸차레는 네팔의 성산으로 아무도 올라갈 수 없다. 외국 등반대가 아무리 많은 입산료를 바쳐도 네팔정부는 등산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담푸스 마을에서 보면 많은 안나푸르나 연봉들이 이 마을을 감싸듯이 빙 둘러섰고 그 한복판에 손에 잡힐 듯 마차푸차레가 위용을 자랑하고 서 있다. 집집마다 아침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딸랑딸랑 방울을 울리며 당나귀들은 부지런한 농부의 손에 이끌려 밭으로 가고 개들은 컹컹 짓고 닭들은 모이를 쫀다. 가파르게 비탈진 산자락에도 몇 뼘의 밭들이 계단처럼 차곡차곡 펼쳐진다.다루초가 펄럭이는 돌집으로 들어가 보자. 삼라만상이 불심을 받으라고 다루초 붉은 깃발에 빼곡히 적힌 부처님 말씀이 바람에 실려 훨훨 날아간다. 이 집 어른인 87세의 아스바하디르 노인이 빙긋이 미소를 띠며 마당으로 나와 마차푸차레를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합장을 한다. 16세에 인도군에 입대하여 12년 동안 근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이날 이때껏 이곳에서 밭벼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는 이 노인은 인도정부로부터 얼마간의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연금으로 용돈으로 쓰고 어린 손자들 과자값도 준다며 얼굴에 자랑이 넘친다. 일평생 담배를 입에 댄 적이 없는 대신 술을 좋아해서 지금도 조로 만든 술과 창을 증류한 독주를 한 잔씩 반주로 든다. 귀가 좀 어두울 뿐 아직도 꼿꼿한 이 노인에게 건강비결을 묻자 서슴없이 ‘낙관과 자비’라는 대답이 돌아온다.“하루는 밤과 낮이 있듯이 모든 것은 양면이 있어. 좋은 면과 나쁜 면, 기쁜 면과 슬픈 면,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좋을 땐 나쁠 때를 생각하고 나쁜 땐 좋을 때를 생각 하고, 기쁠 땐 슬픈 때를 생각하고 슬플 땐 기쁜 때를 생각해야 돼.”아스바하디르 노인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비탈 계단식 밭 2천여 평을 갖고 있다. 식구가 부런히 농사지으면 양식 걱정은 없다. 남는 것은 팔아서 일용잡화를 사고, 병든 사람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준다. 몇 살 아래 부인과 건강하게 해로하고 있는 그는 55세 맏아들과 함께 산다. 둘째 아들은 산 너머 이웃 마을에 살면서 한 달에 두 세 차례씩 달걀을 싸들고 노부모를 찾아온다. 세 딸은 포카라로 이웃마을로 시집가서 별 탈 없이 살고 있다. 손자, 손녀가 열여섯이고 증손녀도 둘이나 된다. 손자들의 이름을 깜박할 때가 있어 종잇조각에 이름을 모두 적어 머리맡 불경 책갈피 속에 꽂아두고 불경을 볼 때마다 이름 외는 걸 잊지 않는다. 산중의 9홀 코스, 로열 네팔 GC카트만두엔 9홀 골프코스가 하나 있다. 공항 옆에 자리 잡은 이 골프장은 네팔 왕실에서 지원해주는 로열 네팔 GC다. 로열 네팔 GC는 빼어난 골프코스는 아니다. 그렇다고 흙바닥이 드러나는 아프리카 스타일도 아니어서 골프를 즐기기에는 부족하지 않다. 페어웨이 떡잔디에 잡풀은 섞여 있지만 가지런히 깎아 놓았고 수건을 쓴 여자들이 부지런히 풀을 뽑고 있어 샷이 빗나가도 페어웨이 컨디션이 나쁘다는 핑계는 댈 수 없다.비록 9홀이지만 2개의 파5, 2개의 파3, 다섯 개의 파4홀로 구색을 갖추고 광활한 개활지 내리막 홀이 있는가 하면 정글 속을 뚫고 가는 오르막 홀이 있다. 한 홀에 프론트나인 티잉그라운드와 백나인 티잉그라운드를 따로 만들어놔 9홀을 두 번 돌면 18홀을 라운드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일반적으로 9홀 코스는 구성이 단조롭지만 로열 네팔 GC는 워터 해저드가 도사리고 온갖 장애물도 숨어 있는 전략적 코스다.골프코스가 좋으니 나쁘니 탓할 일이 아니라 히말라야 산자락에 박힌 이 나라에 골프코스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폭스바겐의 문화를 판다 - AUTOSTADT 2009-01-12
세상이 바뀌었다. 물건 하나만 잘 만들면 그걸로 먹고 살 수 있었던 시절은 진작에 끝났다. 지금은 문화를 앞세워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이미지에 기대어 상품을 파는 시대다. 사람들은 상품을 사면서 그 회사의 이미지도 함께 소유한다…고 믿는다. 고가품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소위 명품들이 이미지를 팔아먹고 사는 대표적인 경우다. 문화와 정신을 파는 시대이미지로 먹고 사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자동차 바닥에서는 포르쉐를 빼놓을 수 없다. 포르쉐의 대당 이윤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건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상식. 포르쉐가 높은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것도 포르쉐라는 브랜드 파워가 더해졌기에 가능한 것이다. 덕분에 연간 10만 대 남짓 팔면서도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만만찮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대가 해외 시장에서 고급차 이미지를 얻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도 품질경쟁만으로 수익을 얻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제2의 토요타 나아가 렉서스를 꿈꾸는 현대지만 한번쯤 진지하게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아줬으면 하는 브랜드가 바로 폭스바겐이다. 독일의 국민차(Volkswagen)로 출발한 폭스바겐은 높은 품질과 실용성을 바탕으로 연간 600만 대 이상 생산해 유럽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로 군림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포드를 제치고 토요타와 GM에 이어 업계 3위로 뛰어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 가까스로 2위를 지키고는 있는 GM의 암울한 상황을 감안하면, 가까운 미래에 폭스바겐이 토요타와 함께 양대 자동차 메이커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들도 많다.폭스바겐의 이 같은 탄탄한 성장 뒤에는 독일차로 대변되는 높은 품질과 고효율 파워트레인을 앞세운 안정된 성능, 대량생산에 의한 합리적인 가격정책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 선진 자동차문화를 리드하는 자신감도 빼놓을 수 없다. 자동차문화를 이끌어가는 폭스바겐의 자신감은 그들의 본거지인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꾸민 아우토슈타트(Autostadt)를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아우토슈타트는 폭스바겐이 2000년 6월 1일 개장한 세계 최대규모의 자동차 테마파크다. 이곳을 통해 폭스바겐은 차만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문화, 나아가 기업철학과 비전을 주제로 고객과 소통하고 있다. 25만m2 넓이의 아우토슈타트에 들어서면 맨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이 콘체른 포룸(Konzern Forum)이다. 그 안에 자리잡은 아우토 랩(Auto Lab)에서는 자동차의 개발과 생산과정을 느낄 수 있다. 관람객이 직접 씨를 뿌리고 재배해 추출한 연료를 작은 유리 캡슐에 담아주는 바이오 연료 체험시설은 환경의 중요성과 에너지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한다. 다양한 메이커의 차들을 관람할 수 있는 자이트 하우스(Zeit Haus)와 주요 건물인 쿤덴 센터(Kunden Center) 등 다양한 전시시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자이트 하우스에는 BMW도 갖지 못한 초창기 영국제 미니 등 희귀모델이 그득하고, 쿤덴 센터 유리 바닥 아래에서 빛나는 수많은 지구본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다양한 통계를 한눈에 보여준다. 이를테면 교통사고율이 높은 나라에 빨간 십자가 표시를 해놓고, 세계 이곳저곳에 자리잡은 폭스바겐 공장을 보여주는 지구본, 국가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표시해놓은 것도 있다.또한 아우토슈타트에는 폭스바겐 그룹이 보유한 아우디와 벤틀리, 람보르기니, 세아트, 스코다 등 각 브랜드의 개성을 한껏 살린 브랜드 전시관과 폭스바겐 상용차 전시관도 둘러볼 수 있다. 어린이들도 연령에 맞춰 좋은 체험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새 가족을 맞는 자동차 출고식아우토슈타트의 가장 큰 특징은 자동차 출고와 테마파크가 연계되어 있는 점이다. 차를 주문한 사람이 아우토슈타트 출고장에서 직접 차를 받을 경우 폭스바겐은 아우토슈타트 내의 리츠칼튼 호텔 숙박을 포함한 테마파크 관람기회를 제공한다. 차를 받으러 가는 것이 가족 나들이이자 축제가 되는 셈이다. 잘 꾸며진 쇼윈도 안에서 조심스레 선물을 꺼내주듯 48m 높이의 유리 타워인 글라스 튀르메(Glasturme) 안에 보관되어 있던 차는 정성스럽게 구매자에게 전달된다. 가족과 함께 아우토슈타트를 찾은 구매자는 가지고 간 번호판을 차에 달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한다. 차를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글라스 튀르메는 현재 2개지만 찾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어 2개를 더 증축할 예정이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아우토슈타트를 찾은 소비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차와 함께 폭스바겐의 기업철학과 문화까지 마음에 담아가고 있다. 직접 출고하는 고객을 포함해 각국에서 매년 300만 명 이상이 아우토슈타트에서 폭스바겐의 열렬한 팬으로 거듭나는 이유다. 아우토슈타트 관광정보위치 : 독일 니더작센주 볼프스부르크 기차역 부근개장시간 : 매일 9시~18시. 쿤덴 센터 등에서의 출고업무는 8시부터. 12월 24일과 31일을 제외하고 연중무휴. 입장료 : 어른 15유로, 대학생 9유로, 어린이 및 청소년(6~17세) 6유로, 가족(어른 2명 + 6~17세 어린이) 38유로, 단체(20인 이상) 어른 14유로, 대학생 8유로, 어린이 및 청소년(6~17세) 5유로.투어 가이드 : 11유로(2시간 코스), 5유로(45분 코스). 신청자에 한해 영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등 13개 언어로 제공되며 한국어 서비스는 아직 없음. 웹사이트 : www.autostadt.de전화 : +49(0)5361-400 [이 게시물은 CARLiFE님에 의해 2009-01-12 09:54:22 정보마당에서 이동 됨]
Macaroni Market 2009-01-09
상큼한 옐로 컬러의 간판이 예사롭지 않은 ‘마카로니 마켓’(Macaroni Market)은 얼마 전 문을 연 서양 음식점이다. 실내 역시 노란빛이 감도는 목재를 바닥에 깔고 테이블과 의자도 같은 소재를 사용해 분위기를 통일했다. 채광이 유난히 좋은 테라스는 한겨울에도 봄꽃이 필 것처럼 밝고 따스한 느낌. 정돈된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은 손님의 표정까지 읽어가며 서비스에 충실하다. 그리고 음식의 맛을 더하고 기분을 안정시키는 가벼운 톤의 음악. 여기까지는 여타 고급 음식점과 다를 게 없다. 그런데 몇 가지 생소한 것들이 눈에 띈다. 카페 혹은 레스토랑, 그리고 클럽마카로니 마켓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구분되어 있다. 메인 홀 격인 카페는 이동로를 따라 테이블이 놓여 있고 창이 넓은 테라스를 끼고 있어 개방적이고 밝은 느낌이다. 오픈 키친과 카페 사이에 있는 통로는 레스토랑 입구. 카페가 화사하고 캐주얼한 느낌이라면 레스토랑은 인테리어리어를 비롯한 전체적인 마감재, 그리고 테이블 세팅 등이 격식 있고 우아하다. 레스토랑의 메뉴는 메인 디시를 비롯해 10여 가지의 스타터(Starter)와 디저트, 치즈와 음료 등이 있다. 독특한 것은 메인 디시 종류가 겨우 4가지뿐이라는 것. 가짓수가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묻자 요리에 대한 자부심과 음식의 질을 최고로 유지하기 위함이란다. 4개월마다 90% 이상의 메뉴를 바꾸는 시즌 메뉴를 선보이려는 것도 바로 그 때문. 가벼운 마음으로 찾은 사람은 격식을 갖춰야 할 것 같은 이곳 분위기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숍 어시스턴트가 요리와 와인 등의 특징을 설명해 주고 입맛과 분위기에 맞는 메뉴를 추천해 주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더욱이 마카로니 마켓의 음식값은 인심이 후한 편이다. 음식에 사용되는 재료는 대부분 직접 만들고, 일부 메뉴를 제외하고는 그날 오전에 공수한 신선한 재료만을 사용한다. 마카로니 마켓의 또 다른 특징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마켓’이 운영된다는 것. 이곳에서는 와인과 직접 만든 쿠키, 와인에 어울리는 치즈와 햄 등을 판매하는데, 햄과 치즈는 본인이 필요한 양만큼 무게를 달아 살 수 있다. 카페와 레스토랑에 각각 설치된 와인 셀러에는 생산지와 제조별, 가격대별로 다양한 와인이 준비돼 있다. 아직은 판매하는 제품이 몇 안 되지만 차츰 품목을 늘려 손님이 음식을 먹고 문화를 즐기고, 원하는 식품을 다양하게 살 수 있는 복합적인 ‘마켓’으로 그 의미를 넓혀갈 계획이다. 마카로니 마켓의 진정한 보석은 바로 클럽(Club). ‘F’라 이름 붙여진 이곳은 들어서는 순간 그 누구라도 압도당할 분위기다. 형형색색의 조명과 리큐어로 장식된 바, 신비한 소품과 고급스런 소파, 당장에라도 라운지 뮤직이 흘러나올 것 같은 뮤직박스 등은 하루의 일탈을 꿈꾸게 한다. 국내 최고 DJ들의 믹싱 실력을 감상할 수 있는 ‘F’는 오후 6시부터 개방되고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파티 형식으로 진행된다. 찾아가는 길6호선 이태원역 2번 출구에서 한남동(이태원 호텔) 방향으로 직진. GS주유소를 지나 50m 정도 가면 노란색 간판의 마카로니 마켓(2층)이 나온다. 레스토랑 소르띠노 맞은 편. 마카로니 마켓 (02)749-9181
사발통 여행기 - 풍부한 문화유산의 왕국 Morabia 2009-01-09
성직자가 교회 뒤뜰에 완두콩을 심었다. 완두콩을 식탁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돋보기로 완두콩을 보며 우성 열성을 가려내고 두툼한 수첩에 깨알 같은 글씨로 무언가를 기록했다. 7년 동안이나 완두콩에 매달린 성직자는 마침내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멘델의 법칙’을 발표했다. 염색체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던 1865년, 성직자 멘델은 정확한 관찰, 실험, 분석으로 유전학의 토대를 구축했다. 멘델은 원래 오스트리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가 공부하고 성직생활을 하고 멘델의 법칙이라는 대 업적을 남긴 곳은 브르노(Brno)다. 동구의 파리라 불리는 브르노는 체코 동남쪽에 있는 체코 제2의 작은 도시다. 1차대전 막바지에 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었다가 승전국은 되었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게르만에 혼쭐이 난 미국은 한 가지 묘안을 짜냈다. 게르만과 국경을 맞댄 체코와 슬로바크 두 나라를 통합해 좀 더 강한 하나의 나라로 만들어 게르만이 쉽게 넘볼 수 없게 하자는 것. 우드로 윌슨 전 미국대통령의 종용에 두 나라는 결국 1918년 프라하를 수도로 하나의 국기 아래 체코슬로바키아가 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동서 냉전시대에 소련의 위성국으로 신음하다가 소연방이 와해되고 동구권 나라들이 소련의 사슬에서 풀리면서 1993년 다시 체코 공화국(Czech Republics)과 슬로바크 공화국으로 갈라졌다. 체코슬로바키아가 소련의 위성국에서 해방될 때, 그리고 다시 두 나라로 갈라설 때 이들은 총성 한 방 울리지 않았고,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프라하에 이은 체코 제2도시 브르노체코 사람들과 슬로바크 사람들은 기질부터가 판이하다. 열흘 동안 체코 가족과 슬로바크 가족이 같은 비용을 가지고 크로아티아 해변에 휴가를 간다고 치자. 체코 가족은 자동차 트렁크에 빵이다, 치즈다, 야채다 장을 봐서 넣고 온 가족이 차를 타고 가서 민박집에 짐을 풀고 직접 요리해서 식사를 하며 열흘 만에 돌아오지만 슬로바크 가족은 비행기를 타고가 호텔에 묵으며 맛있는 음식을 사먹다가 돈이 떨어져 사흘 만에 돌아오는 기질이다. 체코 민족은 슬라브인과 독일인의 혼혈로 근면하고 실용적이며 교육수준이 높다. 이와 달리 슬로바크 민족은 슬라브인과 마자르(헝가리)인의 혼혈로 쾌활하며 독립심이 강하다. 근세로 접어들며 체코인들은 공업에, 슬로바크인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했다. 소득격차가 벌어지자 체코인들은 자신들이 땀 흘려 슬로바크를 먹여 살린다는 인식을 가졌다. 그러자 슬로바크인들은 ‘그래? 그럼 갈라서면 될 것 아냐!’ 라고 생각했으니, 서로 결별한 것이 두 나라 장래에 모두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슬로바키아와 갈라선 지금의 체코 공화국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또다시 둘로 나누어진다. 서쪽의 보헤미아(Bohemia)와 동쪽의 모라비아(Morabia)가 그것으로, 북동~남서로 뻗은 표고 600~800m의 모라비아 고지(高地)가 완만하게 두 지방을 가른다. 체코공화국은 남한의 면적보다 작은데, 이 중 모라비아 지방은 체코 땅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고, 체코 인구 1,000만 명의 20%에 이르는 200만 명이 이곳에 살고 있다. 하지만 9세기 한때는 모라비아 왕국으로 군림하며  보헤미아와 현재의 헝가리 일부까지 통치했다. 체코의 주류인 보헤미안은 보헤미안과 모라비안 모두를 체코인이라 말하지만 모라비아 사람들은 자기들은 모라비안이고 서쪽 사람들은 보헤미안이라고 완강하게 편을 가른다. 같은 슬라브계지만 민족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체코공화국에서 두 민족이 한 나라를 구성하고 있다며 모라비안은 자신들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지금부터 천 년 전인 11세기, 모라비아 제국이 현재의 브르노 교외 스트라트카 강 옆에 자리잡아 기름진 땅을 딛고 부강해져 갔다. 14세기 말엔 브르노가 모라비아 제국의 수도가 되어 예술이 꽃피고 통상이 활발해졌다. 브르노에 산재한 수많은 수도원들은 이때 지어진 것이다. 브르노는 허사이트 전쟁에서 시지스 문드 왕의 편을 들었지만 두 번이나 패전의 쓴맛을 보고 결국 15세기 중엽, 앙숙인 체코 편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 16세기 말 가톨릭 도시 브르노는 프로테스탄트로 개종을 하고 체코와 함께 반 합스부르크 대열에 서게 되었다. 잇따라 일어난 30년 전쟁에서 브르노는 스웨덴 침략군을 효과적으로 방어, 도시를 지켜냈다. 20세기 초, 슬라브 민족운동의 영향으로 모라비아는 보헤미아와 합쳐 체코가 되었다. 거슬러 오르면 두 지방은 슬라브라는 같은 피를 가졌지만 언어까지 달랐던 적대국이었다. 모라비아는 보헤미아에 비해 지대가 낮고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지를 지녀 오곡백과가 풍성하다. 모라비아는 서쪽의 보헤미아, 동쪽의 슬로바크 사이에 끼어 있어 옛부터 완충역할을 했다. 보헤미아의 중심이 프라하라면 모라비아의 중심은 브르노다. 브르노는 체코에서 프라하 다음으로 큰 제2도시로 인구가 40만 명도 안 되지만 장엄한 도로와 드넓은 공원으로 사람들은 동구의 파리라 일컫는다. 길가의 노천카페에서 재잘거리고, 바에서 포도주 잔을 부딪치는 사람들의 모습도 어딘가 프랑스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근세에 들어와 브르노가 비약적으로 커진 것은 1839년 브르노~비엔나 간 철도가 완성되고 나서부터다. 대학이 서고 빌딩들이 솟아오르고 무역박람회가 열리고 도시 주위에 산업공단이 들어서면서 브르노는 유럽 유수의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브르노에서 즐거움의 하나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포도주다. 체코에서 맥주는 보헤미아, 포도주는 모라비아다. 좋은 기후와 기름진 땅, 특히 질 좋은 포도주를 만드는 포도 생산에 절대적인 석회질 땅이라 모라비아 포도주는 유럽에서도 그 품질을 인정받은 지 오래다. 남모라비아에만 가족단위 포도 농장과 포도주 양조장이 무려 1만8,000개나 있다. 모라비아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목축으로 이곳 쇠고기의 육질은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자연과 음악, 그리고 자동차 - 꽃과 어린왕자 2008-12-22
카페 ‘꽃과 어린왕자’에 가면 자동차가 전시돼 있다? 전원 카페에 웬 자동차인가 싶은데, 흔히 볼 수 있는 차들도 아니다. 1966년형 캐딜락 폰티액, 람보르기니 카운타크(레플리카),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링컨 타운카 리무진, F3000 머신, 기네스북에 오른 길이 21m의 리무진까지……. 이 중 F3000 머신은 65억 원에 달하는 귀하신 몸으로 단독 부스에 고이 모셔져 있다. 카페는 금세 자동차 박물관이 되고 사람들은 뜻하지 않은 볼거리에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다.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테마공간1997년 ‘꽃과 어린왕자’가 지어질 당시 이곳은 ‘땅’이랄 곳도 아니었다. 황무지나 다름없던 터에 덤프트럭 7,000대분의 흙을 덮어 기반을 다듬은 뒤, 나무와 꽃을 심고 산책로와 연못을 만들었다. 이렇게 출발한 곳이 자동차 박물관(?)이 된 것은 카페 주인 이종철 씨의 유별난 자동차 사랑 때문이다. 평소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모으는 자동차마다 카페에 전시했고, 자동차와 관련된 각종 전시회와 이벤트도 수차례 열었다. 그간 이 카페를 거쳐 간 차를 일일이 나열하기가 힘들 정도. 그렇게 1991년부터 모으기 시작한 차가 지금은 수퍼카를 비롯해 10여 대나 된다. 엄청난 돈이 들었을 것 같지만 기증받은 차도 있고 중고차 시장을 이용하기도 해 생각만큼 많이 들지는 않았다. 전시 중인 빨간색 람보르기니 카운타크는 이 씨가 3년 동안 부품을 조립해 만든 레플리카다. 전시장을 지나 산책로를 따라가면 말과 토끼, 원숭이를 볼 수 있는 미니 동물원과 텃밭이 있다.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많은 점을 고려해 조그만 규모지만 알차게 꾸며 놓아 동심을 자극한다. 흙과 나무로 지어진 카페는 소박한 모습이다. 어찌 보면 수퍼카의 화려함에 눌려 초라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의자, 조명, 테이블, 칸막이, 메뉴판까지 11년 동안 이 씨의 손길을 거쳐서인지 왠지 모를 정겨움과 운치가 있다. 모형 비행기, 우산, 타이어 휠, 자동차 사진 등 곳곳에 걸린 소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꽃과 어린왕자의 창 옆은 유난히 채광이 좋아 인기가 좋은 자리지만 또 한 곳 추천한다면 바로 2층이다. 고작 테이블 4개 놓인 이곳은 암실을 방불케 할 만큼 어둡고 구석져 남의 시선을 피하기에 제격. 비교적 손님이 적은 평일 낮 시간에 찾는다면 연인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어도 좋겠다. ‘꽃과 어린왕자’의 또 다른 명소는 바로 100여 석 규모의 라이브 공연장. 자동차만큼이나 음악을 좋아하는 가수 출신의 이 씨가 손님과 함께 음악을 나누고자 만든 곳이다. 1970~1980년대 추억의 가요와 올드 팝 등을 주로 연주하는 이곳은 무대는 좁지만 음향과 조명, 악기 등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공연은 매일 밤 9시와 9시 45분, 10시 30분 3회에 걸쳐 열린다. 찾아가는 길태릉선수촌에서 일동 방향으로 직진한다. 삼육대학교를 지나 첫 번째 삼거리에서 청학리 방향으로 좌회전, 청학주유소를 지나 다리를 건너면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용암리 방면으로 우회전해 직진하면 오른쪽에 카페 ‘꽃과 어린왕자’가 나온다. 지하철은 1호선 석계역에서 내려 1155번 버스를 탄 뒤 청학리에서 내린다. 택시를 탈 경우 용암리 방향으로 2km 직진하면 된다. 석계역에서 도보로 20분 거리.꽃과 어린왕자 (031)841-1139 www.prince197.com
신비로운 자연과 온천의 천국 - 일본 호쿠리쿠 2008-12-22
금융대란이 지구촌을 강타하더니 후폭풍으로 실물경제의 조락이 저물어 가는 한해를 한숨으로 뒤덮는다. 가장 앞장서서 쪼그라드는 것이 자동차업계다. 미국 자동차 3사는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섰다. 그 잘나가던 토요타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력구조조정에 감산체제로 들어갔다. 허나, 이 불황의 늪 속에서 튀는 차도 있다. 토요타 비츠(VITZ). 하역장에 자동차가 가을 들판의 볏단처럼 늘어서 있는 판에 비츠는 주문하고 서너 달을 기다려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불황이 이 차를 불티나게 만들었다. 배기량 1.3L와 1.5L의 비츠는 소형차 범주에 들어가지만 내부 공간이 중형차 못지않게 넓고 주행성능이 뛰어나다. 또한 세련된 디자인에 공식 연비 15km/L의 뛰어난 경제성을 자랑한다. 비츠를 타고 일본 만추의 호쿠리쿠(北陸) 지역을 돌아다닐 기회를 잡았다. 일본 혼슈(本州)의 가운데 북쪽, 우리 동해에 면한 후쿠이, 이시카와, 토야마 이렇게 세 현을 호쿠리쿠 지방이라 한다. 오사카와 동경이 삼각형의 밑변이라면 호쿠리쿠(北陸)는 꼭짓점이 된다. 호쿠리쿠는 혼슈의 가운데, 오사카와 동경에서도 가까운데 일본에서는 조용히 숨어 있는 은둔의 고장으로 여긴다. 드높은 햐쿠산(白山) 줄기가 이 지역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다. 호쿠리쿠 지방이 질 좋은 쌀로 유명해진 것도 아무리 가뭄이 와도 햐쿠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논을 마르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햐쿠산은 우리의 백두산에 불과 42m 낮은 일본의 국립공원으로 일본의 3대 명산 중 하나다. 6월까지 정수리에 흰 눈을 덮어쓰고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어 호쿠리쿠 지방 사람들은 햐쿠산을 성산(聖山)으로 여긴다.33km의 장엄한 길 ‘스파린도’ 햐쿠산 드라이브의 백미는 북사면을 타고 ‘햐쿠산 스파린도’(白山 SPA林道)를 넘는 것이다. 10월 하순, 평지에서는 겨우 단풍이 들 기미가 보일락 말락 하는데 한 줄기 아스팔트가 꼬불꼬불 이어진 햐쿠산 스파린도는 불꽃같은 단풍 속을 뚫고 간다. ‘린도’ 앞에 ‘스파’를 붙인 이유는 이 도로 양쪽 모두가 온천지역이기 때문이다. 1967년에 착공해 완공까지 10년이 걸린 총 길이 33.3km의 이 도로는 서쪽 이시카와(石川) 현에서 동쪽 효고(兵庫) 현까지 2차선으로 이어졌다. 33.3km의 도로를 닦는 데 장장 10년이란 세월이 소요되었다는 것은 도로건설 입지가 얼마나 험한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계곡의 허공을 건너는 다리, 천 길 낭떠러지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이어진 도로, 바위를 관통하는 터널……. 햐쿠산 스파린도를 타고 오르면 오금이 저려온다. 스파린도는 매년 6월 5일에 통행을 개시하고 11월 10일이면 도로를 폐쇄한다. 일 년에 다섯 달 밖에 통행할 수 없는 셈이다. 통행요금표를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일반 승용차는 편도 4만5,000원, 버스는 편도 요금이 무려 30만 원이다. 10월 하순의 휴일, 햐쿠산의 불타는 단풍을 보려는 자동차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서고 가기를 반복한다. 올라갈수록 활엽수보다는 침엽수가 많아진다. 해발 1,500m를 넘어서면 ‘살아 천년 죽어 만년’ 이라는 나무의 왕, 주목(朱木)이 수려한 자태를 뽐내며 바위 위에 고고히 앉아 있다. 스파린도의 최고 지점은 이시카와 현 경계를 넘자마자 효고 현이 되는 1,736m의 삼방암악(三方岩岳) 전망대다. 기온이 떨어져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버너의 불꽃을 올리고 맥주를 마시며 아득히 펼쳐진 햐쿠산의 스카이라인을 내려다본다. 효고 현 조그만 마을 백천향(白川鄕)까지 내려왔을 땐 오후 3시가 가까워 뱃가죽이 등에 붙어버렸다. 일본 친구 미노야 상이 앞장서 들어간, 상이 네 개뿐인 조그만 식당 아라이에서 주문한 곤들매기 소금구이는 입맛에 적중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뼈 하나 발라내지 않고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해치우자 미노야 상이 점심이 늦어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린다. 햐쿠산 서쪽은 후쿠이 현이 된다. 후쿠이 현에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곳은 천년고찰 에이헤이지(永平寺)다. 심산유곡에 파묻힌 조동종 대본산(曹洞宗大本山), 에이헤이지 경내에 발을 들여놓으면 먼저 수령 600년이 넘는 아름드리 삼나무가 쭉쭉 뻗어 올라 하늘을 가려, 바닥엔 흙이고 바위고 연초록 벨벳을 덮어놓은 듯 이끼로 덮여 있다. 750년 전 도겐선사에 의해 개창된 출가참선 도장인 에이헤이지 절간 속으로 따라 들어가면 가도 가도 끝없는 엄청난 규모에 놀라고 법당, 불전, 승당, 산문, 고원 등 발길 닿는 곳마다 펼쳐지는 아름다움에 또다시 놀란다. 에이헤이지에서 나와 364번 지방도로를 타고 산 따라 물 따라 내려가면 이치조다니(一乘谷朝倉氏) 유적이 나온다. 해발 473m의 일승성산 정상부근, 배산임수(背山臨水)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명당자리에 후쿠이의 호족, 이치조다니 일가가 성(城)을 지키며 큰 세력을 떨치다 1573년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에게 패한 영화의 성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덩그러니 문만 남아 있고 성터엔 주춧돌만 뒹군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
포에버 ‘비틀 사랑’ - 비틀 르레상스를 꿈꾸는 이들 2008-12-19
“비틀요?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고, 오늘은 심지어 배고프기까지 하네요. 그런데 왜 타느냐고요? 그냥 비틀이 좋아서요.” 여우비가 내리던 10월의 끝자락, 다음 카페 ‘비틀 사랑’ 동호회의 거제도 1박 2일 여행길에 동행했다. 방송국 기자, 병원 원장, 택시 기사, 대학 교수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로 구성된 비틀 사랑은 ‘비틀을 직접 배우고 느끼며 사랑하기 위해’ 2001년 만들어진 자동차 동호회다. 국경을 초월한 비틀 사랑주말의 극심한 교통체증으로부터 서울을 벗어나기란 녹록치 않았다. 그렇지만 차안은 초특급 비틀 매니아의 훈훈하고 흥미진진한 모험담으로 가득 찼다. 비틀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들을 수 있는 기회. 기자는 ‘럭셔리 비틀’이라고 부르는 김광수 씨의 빨간색 비틀 컨버터블에 올랐다. KBS 보도국 기자인 김 씨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비틀만을 바꿔 탄 비틀 골수 매니아다. “타면 탈수록 비틀만의 매력이 느껴집니다. 20년 넘게 비틀을 타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비틀을 탈 생각이에요.” 삼삼오오 모인 비틀은 어느새 대열을 갖춰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위를 달린다. 처음 3대가 출발했지만 거제도로 향하는 도중 특이한 모습 때문인지 따로 약속장소를 정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나둘씩 모여 들었다. 이들이 내는 배기음은 시공(時空)을 초월한 외침이었다. 마주보는 두 쌍의 피스톤이 만들어 낸 ‘엇박자’ 소리는 훌륭한 협주곡이 되어 밤하늘의 대기로 울려 퍼졌다. 10시가 넘어 도착한 거제도 숙소 앞에는 이미 10여 대의 비틀이 모여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다음날. 비틀 사랑 멤버들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동호회원들과 인근에 있는 허름한 정비소를 찾았다. 그곳에는 3개월 전 대우조선에 파견 온 세르비아 출신 라토미르 다비치(Ratomir Dabic) 씨가 기름때 잔득 묻은 빨간색 정비복을 입고 우리를 반겼다. 동토의 땅에서 온 젊은 이방인이 과연 무엇을 할지 궁금했다. 다비치 씨는 17살 때 비틀을 사서 손수 정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평소 차 한 대 갖고 싶었는데 학교를 오가는 길에 서 있던 1960년형 비틀이 눈에 들어왔단다. 다비치 씨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망신창이가 된 비틀을 손에 넣었다. 1960년형으로 무려 34살이나 먹은 녀석이었다. 17살에 만난 첫차를 3년 동안 손수 정비해 지금까지도 잘 타고 있다고. “비틀은 연도별로 조금씩 모습이 달라요. 수많은 모델 중1957년 이전에 나온 스플릿(갈라진) 비틀과 오벌(달걀 모양) 비틀을 좋아해요. 비틀은 오래될수록 좋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문득 오래되어 좋은 것들이 스쳐 지나간다. 지금까지는 친구와 술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비틀도 그 중 하나에 포함시켜야겠다.다비치 씨는 어제 하루 종일 달려온 비틀들을 리프트에 올려 일일이 점검했다. 단골 정비소에 갔을 때 차의 이상유무를 꼼꼼히 살펴주는 친근한 정비소 아저씨의 모습 그대로다. 간단한 고무호스 같은 건 즉석에서 잘라 바꿔주기도 했다. 이곳에서 거제도의 ‘비틀 부자’ 권영휘 씨도 만났다. 그는 비틀을 7대나 갖고 있는 ‘비틀 사랑’의 핵심 멤버다. 거제도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인 그는 낮에는 환자를 돌보고 밤에는 비틀을 돌본다. “지금은 그야말로 비틀 르네상스라 할 만합니다. 우리나라에 지금처럼 비틀이 활성화된 적이 없거든요. 비틀은 오너의 상상력을 그대로 실현해 주는 매력이 있습니다.” 비틀은 그냥 차가 아니다. 어릴 때 꿈을 이루게 해 주었고, 엔진을 닦고 조이면서 모르는 것을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움을 주는 차. ‘비틀 사랑’ 카페 회원에게 비틀은 꿈과 사랑을 실현시켜 준 그런 존재다. 취재를 마치고 비틀 사랑 회원들과 헤어져 KTX를 타고 올라오는 길은 편하고 빨랐다. 하지만 고속열차 안에는, 비록 털털거리고 한기가 느껴지는 속에서도 포근함과 결속력으로 가득 찼던 비틀이 지닌 그런 훈훈함은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움을 발견하는 고전소설과도 같은 차. 비틀은 하나의 문화 또는 다른 여러 문화를 이끌고 있는 매개체다. 많은 비평과 담론을 끊임없이 이끌어 낼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차가 바로 비틀이다.
잠들지 않는 성채(星彩) - 서울 2008-12-19
밤이 내리고 빛이 쌓인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빛은 제 모습을 극명히 드러내고, 그렇게 펼쳐진 서울의 야경은 삶이 충분히 아름답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취하지도 않았건만 사람들은 어둠에 기대어 고백을 내뱉는다. 부정 못할 사랑을, 묻어 두었던 마음을, 지키고픈 약속을……. 칠흑 같은 밤이 낮보다 진실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터. 아스팔트, 회색 건물, 희뿌연 하늘……. 무채색 도시는 어느덧 어둠에 갇히고 화려한 빛 치장이다. 처음부터 그랬단 듯, 아니 마치 밤이 오기를 기다렸단 듯 야단스럽다. 멈춤도 침묵도 없는 서울의 밤은 잠들지 않는 성채(星彩)이어라…….  고가, 골동품, 쓰레기, 남루한 골목……. 어둠이 짙어지면 손수레를 끌고 쉼을 향해 걸어가던 상인의 모습, 모두 떠나간 청계천의 옛 모습이다. 그래 그때 청계천은 외로운 서울의 하천에 불과했다. 허나 지금은 물이 흐르고 음악이 날리고 조명은 터질 듯 반짝인다. 밤이면 빛과 사람이 꽃처럼 피어나 이제는 지상의 은하수가 되어 버린 청계천. 그곳은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서울의 밤 풍경은 검은 벨벳 상자에 놓인 보석들처럼 맑았고, 한강의 다리들로 오가는 차들의 불빛조차 유리꽃처럼 반짝였다.멀리서 보니까 그랬던 것이다. 멀리서 보면 대개 모든 사물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는 걸까? -공지영 소설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중-지금, 당신과 내가 무엇보다 기억해야 할 것은 다시 못 올 시간과 되돌리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같은 밤에 취해 있다는 사실…….임을 기다리는 한 남자와 뜨겁게 팔장낀 연인들, 소녀의 수줍은 웃음소리와 가난한 시인의 노래……. 덕수궁 돌담길에 무던히도 많은 이야기가 쌓여간다. 차가운 밤바람에 분주하던 발걸음은 잠시 여유를 찾고, 떠난 이는 사무치고, 내 곁의 당신은 더욱 그리워지는 순간이다.명동의 밤. 조명은 눈부시게 뒤엉키고 발길들은 허우적거린다. 시간은 허공에 떠돌고 지친 하루는 바람에 쓸려간다. 고작 술 한 잔에 일상의 갈증을 채워야 하는 남루한 밤이거늘 잠시 휘청댄들 어떠하리.   Travel Tip서울 야경을 가장 편하게 감상하려면 ‘서울 시티투어 야경 버스’를 타자. 한강을 끼고 남산을 거쳐 다시 출발점인 광화문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서울 시티투어 야경버스의 탑승은 오후 7시 50분과 8시 두 차례. 승차권은 버스 탑승 후 가이드에게 구매할 수 있고 요금은 성인 5,000원, 고교생 이하 3,000원이다. 좀 더 색다른 야경 투어를 하고 싶다면 ‘서울 야경순환 열차’를 이용해 보자. 서울 야경순환 열차는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20분 서울역을 출발해 신촌-일영-의정부-청량리를 거쳐 서울역으로 돌아온다. 열차의 하이라이트는 9시 17분부터 약 20분 동안의 전체 객차 소등. 이 시간에는 한강의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서울 최고의 야경 포인트는 역시 남산. 특히 서울타워는 매일 밤 7시부터 12시까지 ‘서울의 꽃’이라는 주제로 6개의 서치라이트가 다양한 각도로 하늘에 발사되어 꽃이 활짝 핀 모양을 연출한다.   모터사이클 BMW F800 GS, 수랭식 병렬 2기통 DOHC 4밸브 8.0L 85마력 엔진, 1,650만 원, 080-269-2200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자동차 테마공원 - AUTOSTAD.. 2008-12-19
콜럼부스의 달걀이 떠올랐다. 과연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일까. 새차 구입자가 가족과 함께 기대에 들떠 먼 곳에서부터 직접 출고센터를 찾게 만들고, 차를 인도받기 전에 아이의 손을 잡고 자동차 박물관을 둘러보며, 태양광 모형차를 만들고, 고급 리츠칼튼호텔에 묵으며 자동차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다니! 특히나 시멘트벽으로 둘러싼 음침한 물류보관센터를 명품 전시장처럼 빛나는 유리타워로 만들 생각을 했다니! 단지 위대한 결과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이런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최초로 고안한 이에게 찬사를 보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서부터 ‘아우토슈타트’ 여행은 시작되었다. 공장·출고센터·자동차문화를 하나로 엮다맥주축제도 좋고 축구경기 관람도 좋다. 독일에 가면 꼭 경험해 봐야 할 목록에 아우토슈타트가 없다면 죽기 전에 한번은 후회하고 만다. 독일을 대표하는 세 가지가 맥주, 축구, 자동차 아닌가. 독일에서 렌트카를 타고 아우토반을 달리고, 박물관에 가면 독일의 자동차문화를 경험했다고 할 수 있을까? 독일 자동차문화의 깊숙한 내면을 느끼고 싶다면 꼭 가족과 함께 아우토슈타트에 들러보라고 권한다. 아우토슈타트(Autostadt)는 폭스바겐이 자신들의 본거지인 독일 북부 볼프스부르크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 만든 세계 최대의 자동차 테마공원이다. 독일어 뜻 그대로 ‘자동차도시’를 연상시키는 공원은 25만㎡의 거대한 면적도 대단하거니와 생산공장과 출고장, 자동차문화를 하나로 엮은 독특한 발상이 돋보인다. 아우토슈타트를 통해 볼프스부르크는 단순한 공업도시가 아닌, 유럽을 대표하는 자동차문화를 파는 폭스바겐의 도시로 거듭났다. 전세계 400여 명의 건축가가 참여해 2000년 5월 완공했으며, 평일 약 5,500명, 주말 1만5,000명의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 이 중 60% 정도가 100km 밖에 거주하고 있으며 해외 관광객도 7% 정도 되어 16개국의 언어로 가이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아우토슈타트에 들어서면 이곳의 상징인 2개의 원형 유리타워가 제일 먼저 눈길을 끈다. ‘아우토튀르메’(Auto Turme)라는 20층 높이의 카타워로, 각각 400여 대의 새차가 대기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 옆에 동그랗게 카타워 터를 2군데 더 잡아놓은 것을 보면 앞으로 이런 어마어마한 유리타워가 2개는 더 지어질 모양이다. 상상해 보라. 유리벽으로 된 빌딩 전체를 자동차가 채우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그곳은 박물관이 아니라 단지 새차 보관장소일 뿐이라는 사실을. 세상에서 가장 멋진 타워를 겉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인데, 최근 그 내부도 관광이 가능해졌다. 카타워 안에 들어서면 영화 ‘매트릭스’의 심장부에 들어선 느낌이다. 거대한 로봇 팔이 새차를 착착 옮겨놓는데, 관광차도 새차라 인식하고 주어진 장소에 이동시켜 제대로 실감난다. 이 카타워는 자동 컨베이어 터널을 통해 지하로 연결된 새차 출고센터(쿤덴센터)와 연결되어 있다. 카타워에 있던 자동차 중 내가 고른 차가 자동으로 인도장소로 와 주인을 맞이하는 것이다. 새차 구매자들은 자신들의 번호가 전광판에 뜨면 직접 번호판을 달고 기념촬영을 하면서 마치 가족을 맞이하듯 새차와의 첫 만남을 소중히 여긴다. 자동차 번호판은 가족의 기억에 남는 글자와 숫자를 이용해 만들 수 있어 구매자들에게 더욱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독일 내 폭스바겐 고객의 30%에 달하는 10만여 명이 이곳을 직접 방문해 차를 인도받는다. 당연히 이들은 탁송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인데, 이보다는 관광차 아우토슈타트를 찾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차를 산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이곳에서 새차를 기다리며 문화생활을 즐긴다. 차를 구입하지 않아도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즐길 만한 것들이 넘쳐난다. 다양한 교육·놀이 프로그램에 박물관·브랜드관까지아우토슈타트를 둘러보며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 및 놀이시설, 볼거리들이었다. 특히 자동차의 구조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놀이시설은 이제껏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시소를 타면서 서스펜션 내부의 움직임을 볼 수 있게 만든 시설물이 있고, 또 어떤 아이들은 거울로 빛을 조절해 태양광 모형자동차를 움직여 트랙을 통과하는 놀이를 즐기며 태양열 동력원을 이해한다. 태양광 모형자동차는 워크숍 프로그램을 통해 누구나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다. 기자도 30여 분을 들여 손수 만들어 보았는데, 내가 만든 차가 태양 아래서 움직이는 것을 보니 여간 기분이 좋은 게 아니었다. 아이들은 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동차를 디자인해 볼 수 있고, 5~11세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 면허증 취득 프로그램도 있다. 아이들이 비틀 미니카를 타고 실제도로를 축소해 놓은 도로연습장에서 교통표지판을 보면서 안전하게 주행을 마치면 모조 운전면허증을 발급해 주는데, 놀라운 사실은 장애인을 위한 비틀 미니카도 있다는 점이었다. 어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경제운전법과 안전운전법, 오프로드 운전법 트레이닝 코스를 운영하고, 세계 최대 규모의 자동차 생산공장인 폭스바겐 본사 공장을 셔틀버스를 타고 둘러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아우토슈타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세계 자동차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동차 박물관과 폭스바겐 그룹 내에 있는 7개 브랜드관(폭스바겐, 폭스바겐 상용차, 아우디, 벤틀리, 람보르기니, 세아트, 스코다)이다. ‘자이트하우스’(Zeithaus)라는 박물관에서는 세계 최초의 휘발유자동차로 영원히 남을 벤츠 파텐트 모토르바겐에서부터 자동차 역사에서 중요한 모델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미니의 초기 모델은 BMW도 보유하지 못한 아우토슈타트의 대표적인 희귀 전시물. 각 브랜드의 특징을 살려 전시관을 따로 둔 점도 의미 있지만, 폭스바겐 모델만이 아니라 다른 메이커의 클래식카까지 모아놓은 박물관이 있다는 점에서 자동차 테마공원으로서 가치가 높다. 공원 내에는 세계 최고의 건축가가 설계한 호수공원, 다리 등이 계절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저녁이 되면 공장을 개조해 만든 공연장에서 각종 공연이 펼쳐진다. 별빛과 함께 마음이 충만해질 즈음 리츠칼튼호텔의 편안한 객실로 발길을 돌리면 된다. 아우토슈타트는 고객과 회사 간의 소통을 위한 공간이자 독일의 자동차문화가 얼마나 고객 친화적으로 발전하고 있는가를 보여 주었다. 방문객들이 느낀 동질감, 미래의 고객이 될 아이들이 갖게 된 꿈은 결국 폭스바겐 제품에 대한 좋은 이미지로 이어질 것이다. 고객과의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을 실현하는 방법,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아우토슈타트 http://www.autostadt.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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