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도요타 엑스트라 캡 오너 이광균 드림카와 지내온.. 2004-05-21
지난해 쌍용 무쏘 SUT와 닷지 다코타가 나오면서 많이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수입 픽업은 여전히 국내에서 보기 힘든 차다. 이 달에 만난 매니아는 V6 3.0X 엔진을 얹은 93년형 도요타 픽업 엑스트라 캡을 타는 이광균(33) 씨다. 도요타 픽업은 트럭을 의미하는 단어가 그대로 차 이름이 된 경우다. 1964년 스타우트(Stout)를 시작으로 하이럭스(Hilux)를 거쳐 1979∼95년 ‘도요타 픽업’이라는 이름을 써 왔다. 두바퀴굴림과 네바퀴굴림이 있고, 네바퀴굴림은 다시 일반 캡과 엑스트라 캡으로 나뉜다. 2+2 실내구성에 4WD 시스템을 갖춘 엑스트라 캡은 1983년 등장했다. 운전석 뒤쪽의 승객석 때문에 엑스트라 캡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승객석에는 시트가 없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이광균 씨가 엑스트라 캡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94년. 군에서 제대한 직후 미국에 갈 기회가 생겼다. 마침 미국 사는 친척이 이 차를 갖고 있었다. 엑스트라 캡은 고등학교 때부터 꿈꿔 왔던 드림카였기에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차에 대한 그의 열정에 감탄한 친척이 새것이나 다름없는 액스트라 캡을 선뜻 내주어 95년 국내에 갖고 들어올 수 있었다. 당당하고 미끈한 디자인이 최고 매력 이광균 씨는 미끈한 차체를 이 차의 최고 매력으로 꼽았다. 편안한 승차감은 물론이고 가속력 또한 승용차에 버금간다고 평한다. 적재함에 ATV를 싣고 야외로 나갈 수 있는 실용성도 이 차의 가치를 높여 준다. 하지만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타기에는 차체가 너무 길고 미국 버전이라 계기판 단위가 마일로 되어 있다. 편의장비도 부족한 편이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문제는 기름을 많이 먹는다는 점. 연비가 8km/X를 밑돈다. 이 때문에 구조변경을 해 LPG 겸용으로 쓰고 있다. ‘닦고, 조이고, 기름칠’로 10년을 버텨온 탓에 작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다. 오프로드를 다닐 때는 구형 코란도를 이용하고 엑스트라 캡은 시내와 경치를 구경하며 한적하게 달릴 수 있는 곳에서만 탄다. 네 바퀴를 굴려보기 위해 겨울에는 일부러 눈 덮인 도로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꼼꼼한 관리만으로는 번쩍거리는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다. 이광균 씨는 고등학교 때 이미 자동차 정비 자격증을 땄고 차에 문제가 생기면 부품을 구해 직접 해결하는 실력파다. 범퍼 가드와 드라이빙 램프를 만들어 달았고 순정 사이드 미러가 망가지자 갤로퍼의 것으로 바꾸었다. 보디업을 통해 33인치 타이어를 끼웠고 실내 도어트림과 천장 방음작업도 했다. 직업은 사람들의 미각을 즐겁게 해주는 중식당 요리사.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중국 요리의 특징은 시각적 요소를 살린 화려함이다. 하지만 그가 가장 자신 있게 내놓는 음식은 자장면. 쉽게 만들 수 있고 자주 먹는 음식이지만 맛내기는 가장 어렵다고 한다. “미식가들은 식당에서 가장 비싼 음식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기본음식을 맛봅니다. 중식당이라면 자장면에서 그 식당의 음식 맛이 결정되지요.” 얼마 전에는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손짓을 하여 차를 세웠다. 그 사람은 말 없이 차를 만지고 한참을 살피더니 수고하라며 그냥 가더란다. 그만큼 엑스트라 캡은 가는 곳마다 관심을 끈다. 요리사로서 미각을 기쁘게 하는 의무가 있는 만큼 자동차 매니아로서 차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는 또 다른 의무가 주어진 느낌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창하 & 랜드로버 프리랜더 옹.. 2004-05-14
1시간을 기다려 그를 만났다. 여느 때 같았으면 약속을 어긴 상대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가시처럼 날카로운 질타를 던졌을 기자는, 그러나 “죄송합니다. 많이 늦었지요”라는 사과와 함께 등뒤에서 나타난 그의 얼굴을 보곤 모든 섭섭함을 날려버렸다. MBC 예능 프로그램 ‘러브하우스’에서 해리포터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창하(49) 씨. 그의 표정은 참 해맑고 TV로 봐왔던 미소는 실제가 더 상쾌하다. 카메라는 성공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삶과 일에 대한 진지함까지는 채 담아내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가슴으로 그리는 행복한 인테리어 이창하 씨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건축디자인 사무소(이창하 디자인 연구소)에서 ‘김천과학대학 도시디자인계열 교수’라고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 건축디자인과 도시디자인의 경계를 가늠하지 못하던 기자에게 이 씨는 “대학시절에는 순수미술을 전공했다”는 사실까지 밝힌다. “건축을 시작한 것은 서울대 서양학과를 졸업하고도 꽤나 시간이 지난 뒤였어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별 어려움 없이 살다가 아버지가 꾸리던 사업체가 부도나면서 방황 아닌 방황을 했거든요. 미국 뉴브릿지 대학을 졸업하고 현지에서 인테리어 리노베이션을 포함한 건축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인테리어 디자인은 현실이며 이상이다. ‘인테리어의 꽃은 호텔, 그리고 꽃 중의 꽃은 크루즈(호화 유람선)’라고 설명하는 이 씨는 호화유람선의 선실을 디자인하는 것이 직업적인 최종 목표다. 국내의 경우 조선사업만큼은 세계에서 으뜸가는 수준이지만 정작 인테리어 작업이 가능한 회사는 전무한 현실. 이태리,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가의 몇몇 회사가 장악해온 분야지만 대우조선과의 선실 디자인 계약 성사로 착실히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중이다. 지난 2001년부터 해온 ‘러브하우스’ 작업은 성공과 돈에 모든 가치를 걸고 건조한 삶을 살아온 그에게 인생의 가치관까지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큼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 “부모를 일찍이 여읜 아이들, 느닷없이 찾아온 병마나 사고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 등 세상에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많더군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도량형(화폐)에 지나치게 집착해왔다는 후회를 많이 했어요.” 가슴속에서 물질적인 풍요에 대한 집착을 버린 뒤부터 세상은 물론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크게 달라졌다는 이 씨.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디자인의 지향점은 ‘건강하고 누가 보더라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런 아름다움’이다. 유럽 스타일의 색조를 무조건 세련되었다고 보는 천편일률적인 시각은 당연히 기피대상 1순위다. “미국에는 미국만의, 독일에는 독일식 스타일이 있듯 우리의 생활 속 인테리어는 우리 문화에 충실해야 합니다. 일단 문화가 지배당하면 그 속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어요. 문화가 사회를 지배해선 안 됩니다. 사회가 문화를 지배해야지요.” 이창하 씨는 김천대 학생들과 ‘러브하우스 봉사단’을 결성해 수해지역에 집을 지어주는 등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그의 복지활동에는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갈 애제자들이 부디 사람 냄새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숨어 있다. “강의실에서든, 수해현장에서든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어요. ‘내 맘에 드는 디자인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집, 설계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는 집을 그려라’ 라고. 전인교육이 안 된 사람에게 기술은 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말에 오랜 시간 귀기울이는 동안 랜드로버 프리랜더는 문 밖에서 촉촉한 봄비를 맞으며 고독을 씹어야 했다. 짧은 만남이지만 프리랜더의 단단하고 야무진 감각에 끌린다는 이 씨. 그러나 굳이 그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옹골찬 영국의 소형 SUV는 속이 꽉꽉 들어찬 해리포터 디자이너와 썩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있어요. ‘내 맘에 드는 디자인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집을 그려라’ 라고. 인성이 부족한 사람에게 기술은 칼이 될 수도 있지요”
배우 김영호 8년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온 2004-05-11
뮤지컬 ‘투 맨’의 공연장 연강홀. 연습이 시작되자 무대 위로 김영호가 등장한다. 낮고 조용한 내레이션, 이어지는 힘있는 목소리……. 극장 안은 침묵에 싸이고 신이 난 김영호만이 무대 위를 휘젓는다. 극장에서 만난 김영호는 아주 편안해 보였다. 처음에는 그것이 반팔 티셔츠에 운동화를 신은 경쾌한 차림 때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소탈한 웃음 하나로도 함께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김영호라는 배우를 잊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뮤지컬 ‘투 맨’에서 가슴 뭉클한 형제애 연기 유쾌한 카멜레온 김영호. 그의 변신은 어디까지 계속될까?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건달 이정재로 거친 이미지를 뿜어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어수룩한 회사원(MBC 드라마 ‘여우와 솜사탕’)으로 옷을 바꿔 입었고, 이제는 포장마차 주인으로 새 삶을 살고 있다. “각각의 배역마다 다 매력이 있어요. 이 달 말부터는 SBS 드라마 ‘장길산’에서 길산의 의형인 박대근으로 출연해요. 다양한 연기를 하면 또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어 좋습니다. 남들은 인생을 한 번 살지만 저는 수십 번, 수백 번도 살 수 있으니까요.” 김영호는 요즈음 뮤지컬 ‘투 맨’의 공연을 준비하느라 하루하루가 바쁘다. 1997년 공연된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마차’를 뮤지컬로 재구성한 ‘투 맨’은 포장마차를 하며 어려운 삶을 힘들게 이어가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이 뮤지컬에서 김영호는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형 역을 맡았다. “사람들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연극을 만들고 싶어하는 형이에요. ‘야인시대’의 이정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제 이런 역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셨다면 아파하고 고뇌하는 이정재의 모습을 조금은 느끼셨을 거예요.” 김영호는 뮤지컬로 연기를 시작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노래를 부르기 위해 뮤지컬에 출연했다가 연기를 하게 되었단다. 김영호의 어릴 적 꿈은 가수였다. 90년에 강변가요제 본선에까지 진출했을 만큼 그의 노래실력은 수준급이다.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이렇게 연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인생이라는 게 참 묘해요. 그래도 전 연기를 하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그것이 뮤지컬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김영호는 몇 달 전 부산에 있는 범어사에 가 108배를 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독실한 불교신자이기도 한 그는 가끔 아내에게 “60살이 넘어 할 일이 없어지면 그 땐 출가하자”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의 아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단다. 그가 하는 일이라면 도둑질이라도 함께 할 만큼 아내는 늘 그의 편이다. “96년에 공연했던 ‘명성황후’를 마지막으로 뮤지컬을 그만두고 브라운관에 섰을 때 아내는 그저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8년만에 뮤지컬을 다시 시작했을 때도 그랬지요. 그런데 이상해요. 그런 모습이 제겐 더 힘이 되거든요.” 김영호는 요즈음 쌍용 렉스턴을 타는 재미에 폭 빠져있다. 소음이 적고 승차감도 좋아 아주 마음에 든단다. 10년 넘게 운전을 했지만 사고 한번 안냈을 만큼 베테랑 드라이버다. 그가 들려준 무사고 비법은 음악을 크게 틀고 여유롭게 운전하는 것. 아무리 급해도 천천히 가는 것이 무사고 노하우란다. “나를 잃어버리고 싶어 연기를 계속한다”는 김영호. 하지만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은 다른 배역들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것이 아닐까? 피곤이 내려앉은 얼굴을 하고도 마냥 행복한 듯 무대 위를 뛰어 다니는 그를 보고 있자니 문득 스치는 생각이다.
상명대학교 정홍택 석좌교수 ‘문화’와 ‘대중’의.. 2004-05-11
기자, 68∼73년 미스코리아대회 사회자, SBS TV ‘생방송 모닝와이드’ 고정 패널, 고정 칼럼니스트, 영상물등급위원,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국제영상자료원연맹 부회장,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MBC FM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주말 진행……. 몇 가지만 뽑아보아도, 상명대학교 정홍택(67) 석좌교수의 경력은 여러 사람의 그것을 합친 것만큼 다채롭다. 그러나 조금만 눈여겨보면 정 교수가 걸어온 길이 ‘문화’와 ‘대중’이라는 가로수 사이로 곧게 난 외길이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좋았는지 물었더니 “다 좋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평생 언론인으로 남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요즘에는 천직이 아닐까 싶을 만큼 학생들 앞에 서는 일에 만족하고 있는 중이다. “대학원에서 예술경영을 가르칩니다. 이 학문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30여 개 대학이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어요. 건축물이나 의상은 물론 음식도 예술인 시대잖아요. 이제 생활이 다 예술이에요. 예술, 문화를 수요자에게 어떻게 옮기느냐, 또 예술가들이 어떻게 하면 신나게 활동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해법을 찾는 학문입니다.” 실생활에 바로 대입할 수 있는 실용학문이어서 학생들의 반응은 특히 뜨겁다. 학생들이 졸업한 뒤 찾아와 감사를 표할 때 그가 느끼는 보람은 말로 표현 못할 만큼 크다. 암벽등반에서 스키, MTB까지… 만능스포츠맨 주중에는 강의와 영상물심의, 주말에는 라디오 방송 진행. 정홍택 교수의 일상은 웬만한 젊은이들보다도 바쁘게 돌아간다. 그래도 피곤한 기색은 찾아보기 힘들다. 비결을 꼽자면, 익스트림 스포츠로 단련한 체력이 우선 큰 자산이다. “암벽등반, 빙벽등반, 윈드서핑, 스쿠버다이빙, 권총사격, MTB, 스키를 즐깁니다. 요즘도 겨울에는 스키장에서 살아요.” 67세의 스포츠맨 앞에서 3층 계단 오르기도 귀찮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대는 게으른 30대인 것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정 교수의 두 번째 자산은 ‘늘 즐겁게 사는 것’이다. “학생들 가르치는 거? 재미있지.” “그 당시에는 운전이 아주 재밌더라구.” “값싸고 맛있는 집 찾아다니는 게 재미지요.” 정 교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재미있다’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재미를 주는 대상은 평범하다 못해 소탈한 것들이 대부분인 만큼, ‘재미있다’는 표현은 삶에 관한 정 교수의 낙관적인 시선이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는 주름도 다 그 때문에 생긴 거라고 여겨질 만큼 시원한 웃음. 그 웃음 뒤에 살아온 세월만큼 잊지 않고 붙잡아둔 따뜻한 우정과 낭만과 추억이 두툼하다. 그래서 정교수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일은 아주 ‘재미있다’. 자동차에 관한 이야기 또한 그렇다. “57년에 서울 신설동 네거리에서 돈암동 삼거리까지 뻗은 도로, 당시에는 제일 넓은 포장도로였던 그곳을 오가며 운전을 배웠지요. 형님이 갖고 있던 윌리스 지프로. 그때는 운전하기 정말 좋았어요. 서울 시청 앞길도 한참만에 차 한 대씩 지나갈 정도로 한가했으니까.” 형님의 운전기사를 ‘꼬셔서’ 운전을 배우고 면허를 따 64년에 59년형 닷지를 첫차로 마련했다. 그 뒤로도 새나라, 도요타 토요펫, 캐딜락, 현대 포니1, 마크V, 대우 로얄살롱, 현대 쏘나타, 뉴 그랜저, 에쿠스 JS350…… 10여 대 넘는 차가 그와 인연을 맺었다. “토요펫은 일본에서 바로 들어온 차라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었지요. 운전석 자리에 사람이 없으니 당시 경찰이든 지나가는 사람이든 다들 깜짝깜짝 놀라던 게 기억나요. 가수 김세환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로 MTB를 사서 차 지붕에 얹고 다니기도 했어요. 자전거를 똑바로 세워서 지붕에 이고 다닌 것도 내가 처음이어서 시선을 어마어마하게 받았습니다(웃음).” 지금 타는 차는 기아 쏘렌토 리미티드다. 겨울 스키장으로 향할 때도 험한 길이든 눈길이든 믿음직스럽게 달려 대만족이다. 앞으로는 바쁜 일상 때문에 잠시 미뤄두었던 여행길도 쏘렌토와 함께 나설 생각이다. “죽을 때까지 재밌게 살 겁니다. 돌아보면 아쉬움도 없어요. 와인을 좋아해 국내에서 와이너리를 하려고 마음먹었다가 기후조건 등이 안 맞아 접은 걸 빼곤(웃음). 최고급 와인을 생산해서 ‘정홍택’이라고 이름 붙일 생각이었는데…….” 정 교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즐거웠지만, ‘정홍택’이라는 이름의 국산와인을 맛볼 수 없게 된 것만큼은 기자도 아쉽다.
4WD 경기장에서 만난 통기타 가수 최지연 ④인.. 2004-04-21
4WD 경기에 도전하는 여성 드라이버를 간간이 만날 수 있다. 전복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거친 무대에 도전하는 사람은 대부분 남성이기에 여성 드라이버는 눈에 띄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최지연(29) 씨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주목을 끌기보다는 당당한 실력으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지난 2월 28일 강원도 주문진에서 열린 타임 트라이얼 경기는 그녀의 데뷔전이었다. 2년 동안 오프로딩을 경험했고, 경기 참가를 결정한 뒤 연습도 많이 했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다. “노래와 오프로드 둘 다 소중해요”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 실전은 너무나도 차이가 컸다. 몇 번을 돌며 코스를 익혔지만 스타트 라인에 서니 머릿속에 코스가 그려지지 않았다. ‘괜히 참가했나’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경기장은 또 왜 그렇게 넓어 보이는지. “3분이 조금 넘었지만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습니다. 어떻게 끝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38명의 선수 중 24위, 첫 출전치고는 나쁜 성적이 아니다. 코스가 어려워 리타이어할 것으로 예상했던 대회 관계자들은 “남자 선수 이상의 실력”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완주는 했지만 끝까지 달린 선수 중에서는 가장 처진 기록이에요.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둘 생각이었지만 욕심도 생기더군요. 요령을 익혔으니 다음 경기에서는 좀더 나은 기록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운전 테크닉은 물론이고, 순간순간 빠르게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기회였다. 자신을 컨트롤하는 능력도 경험에서 쌓여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곳을 지나면 또 다른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어서 운전 기술을 쓸 여유도 없었습니다. 핸들을 돌려 피할 생각밖에 들지 않더군요. 그래서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는 것 같아요.” 체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경기 코스를 반 정도 돌았나 싶었는데 팔 힘이 빠졌고, 경기가 끝난 뒤에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녹초가 되었다. 누비라를 타던 그녀는 2001년 잠깐 타본 갤로퍼에 흠뻑 빠졌다. 높이 앉아서 먼 곳까지 내려다 볼 수 있는 넉넉함이 SUV의 매력이었다. 주저 없이 갤로퍼로 차를 바꾼다. 그리고 갤로퍼 동호회인 G클럽에 가입해 오프로딩의 묘미를 알게 된다. 처음에는 핸들을 잡고 앞으로 갈 줄밖에 몰랐지만 이제는 웬만한 정비도 척척 해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보디업에 33인치 타이어를 끼웠고 돌이 튀는 것에 대비해 라디에이터 그릴은 철망으로 감쌌다. 멋스런 버그 가드도 달았고, 장애물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 핸들도 바꾸었다. “오프로드를 다니면서부터는 1년에 한 번 바꿀 부품을 6개월마다 교체해야 하는 것이 부담이 되기는 해요. 오프로드 운전에서부터 기본정비까지 점점 할 수 있게 되는 스스로의 모습에 놀라기도 합니다.” 그녀의 직업은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통기타 가수다. 노래 부르는 일과 오프로드에 임할 때의 공통점은 ‘열정’이다. 노래에는 직업인으로서의 열정이 담겨 있고, 열정적으로 즐기는 오프로딩은 그녀의 취미이자 삶의 방식이다. “화려한 조명이 비치는 무대지만 혼자 서 있습니다. 관객과 같이할 때만이 진정한 가수지요. 노래에 열정을 담았을 때 관객과 호흡하는 무대가 만들어집니다.” 경기 역시 같은 맥락이다.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 그리고 경기를 즐기는 관람객이 있습니다. 하지만 차안에서는 혼자입니다. 열정을 가지고 오프로딩을 나서고, 힘을 다해 달리면서 맛보는 쾌감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어요.” 카페에 온 손님들은 기타 반주에 더해진 그녀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하루의 피곤함을 푼다. 그녀 역시 1주일의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해 주말이면 커다란 갤로퍼를 몰고 오프로드로 달려간다. 극과 극은 통한다더니 이럴 경우에 쓰는 말인가 보다. 그녀의 콜 사인은 꽃잎. 즐겨 부르 는 노래 제목에서 따온 이름이다. 하지만 그녀는 보기에만 좋은, 가녀린 꽃잎이 아니다. 촬영을 위해 경기장을 달려 달라는 요청에 주저 없이 차에 오르는 모습이 참으로 씩씩했다. 4WD 경기장에서 활약하는 그녀의 모습이 기대된다.
MC 정은아와 지프 그랜드 체로키 ③인터뷰 - .. 2004-04-21
오래 기다리셨어요?”SBS 일산 탄현제작소 F스튜디오 앞 주차SBS 일산 탄현제작소 F스튜디오 앞 주차장. 녹화를 마치고 성큼성큼 걸어 나오던 정은아(40) 씨가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말투가 전혀 낯설지 않다. 그녀를 직접 만나는 것이 처음이지만 바로 어제 본 사람처럼 자연스럽다.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잡거나 기자의 질문에 논리 정연하게 대답을 할 때도 일부러 자세를 가다듬지는 않는다. 국내 최고의 MC라는 평가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차안에서 음악 감상·독서로 여유 찾기도 정은아 씨의 트레이드마크는 특유의 살가운 미소다. 브라운관을 통해 보아 온 그녀의 미소를 직접 마주하는 것은 매우 유쾌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정은아 씨로부터 인터뷰 약속을 받아내기는 그리 간단치 않았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스케줄에 가로막혀 한두 시간도 비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전화를 통해 짧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옆에 있는 누군가와 급하게 말을 주고받을 정도로 그녀의 일상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 방송되는 SBS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을 비롯해 ‘결정 맛대맛’, KBS2 ‘비타민’, MBC ‘휴먼다큐 희로애락’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각종 CF, 서울시의 홍보대사까지 맡고 있다. 그런데도 스케줄을 관리해 주는 매니저도 없고, 운전까지 직접 한다. 정은아 씨는 진취적이고 바쁘게 움직이는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 그리고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99년 지프 그랜드 체로키를 샀다. 현대 엘란트라, 쏘나타, 뉴 그랜저에 이은 네 번째 차다. “어느 영화에서 검정색 체로키를 본 순간 한눈에 반했어요. 첫 느낌이 참 좋았어요. 캐주얼한 감각에 힘도 넉넉하고, 등산과 스키, 여행을 즐기는 저에게는 꼭 맞는 차입니다. 지금도 트렁크에 항상 골프가방과 등산화를 싣고 다녀요.” 그랜드 체로키로 바꾸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무척 의아해 했다고 한다. SUV가 ‘점잖지 않은 차’로 인식될 때의 얘기다. 하지만 정은아 씨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차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랜드 체로키를 통해 자연과 더욱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선택은 신중하게 해야 하지만 그 뒤에는 충분히 즐겨야 한다는 신념대로 그랜드 체로키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 승용차보다 편의성이 떨어지지만 ‘투박한 멋이 매력인 SUV는 그 자체로 SUV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직업상 여기저기 다녀야 하므로 차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요. SUV는 실내가 넓고 안락해 차안에서 틈틈이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기 좋아요. 갑자기 비나 눈이 내릴 때는 그랜드 체로키 덕을 톡톡히 보지요.” 정은아 씨는 1990년 KBS 아나운서 17기로 입사한 뒤 운전을 시작했고, 지금은 스스로 베스트 드라이버라 자신한다. 그녀가 시아버지로부터 들은 첫 번째 칭찬도 “운전을 참 잘한다”는 것이었다. 남편과 함께 차를 타더라도 절대 운전대를 양보하는 법이 없다. 특히 아침방송을 위해 새벽녘 집을 나설 때는 오감을 모두 동원해야 하는 운전을 통해 몸과 마음을 깨우고 있다. 정은아 씨는 “여성이 남성보다 운전을 못한다”는 견해에 대해서 한마디로 “말도 안 된다”고 잘라 말한다. 오히려 “아직도 그런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냐”며 조금은 높은 톤으로 되물었다. “운전이 서툴던 초보시절에는 오히려 제가 다른 차에 위협을 주었지요. 물론 남성들의 험악한 운전에 당황했던 때도 있고요. 하지만 지금은 운전하면서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못 느끼고 있어요. 성별이 아니라, 개인의 차이가 아닐까요.” 인터뷰가 끝나고 다음 일정을 위해 바삐 떠난 그녀가 전화를 걸어왔다. “제가 SUV를 좋아하는 이유를 정확히 말씀드렸던가요? SUV는 가벼움이 아닌 묵직함, 날렵함이 아닌 투박함을 담고 있지요. 그래서 저는 SUV가 좋아요.”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안광훈·서범석 & BMW Z.. 2004-04-16
“이태리의 피닌파리나처럼 모든 차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을 수 있는 디자이너.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는 모든 사람의 꿈 아닐까요?” '2015년 안에 자국에서 양산 가능한 자동차’라는 주제 아래 지난 2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2004 세계 자동차 디자인 경연대회’(2004 World Automotive Design Competition). 캐나다 국제오토쇼가 주최하고 미국 알라이스사가 후원한 태평양 너머의 디자인 축제는 지난해 3번째 대회에서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의 김성중 군이 대상을 받았던 낯익은 행사. 세계 13개국 20개 학교가 참가한 올해 최우수상은 영국 코벤트리 아트&디자인 스쿨에 돌아갔지만 한국 디자인의 저력은 여전했다. 홍익대 산업디자인과 4학년 안광훈(27), 서범석(26) 씨의 작품이 신설된 ‘베스트 프레젠테이션’ 부문에서 당당히 대상을 받은 것. 이들의 출품작은 1960년대 기아자동차가 내놓았던 삼륜 화물차 T600을 소재로 3면이 바다인 한반도의 특성을 고려해 디자인한 수륙양용 RV 컨셉트 S&R(Swim & Run)이다. 피닌파리나 동경하는 미래의 자동차 디자이너 안광훈 씨와 서범석 씨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같은 이부자리에서 살을 비비며 살아온 자취 동기다. 지난해 디자인전 주최측의 시드 배정이 끝나고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이근 교수의 지도 아래 이들을 포함한 9개 팀이 출품작 준비에 들어갔다. 스스로를 ‘환상의 팀’이라고 말할 만큼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두 친구는 자취방을 작업실 삼아 3주일여 동안 단 한번의 의견충돌 없이 착착 작품을 완성해갔다. 그리고 지난 2월의 어느 토요일. 여느 때처럼 오후 1시쯤 일어나 밥 먹을 궁리에 빠져 있던 두 동거인에게 학과 사무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너희들, 이번에 상 받았어!” 곧이어 주최측의 축하 메시지가 이메일로 전해졌고, 이들이 세계 대회에서 입상했다는 사실을 머리로 받아들인 것은 그러고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너무 좋아서 서로 껴안고 소리지르다가 밖으로 나왔어요. 발표 날이 때마침 발렌타인데이여서 거리에는 하나같이 초콜릿 바구니를 끌어안은 연인들로 넘쳐나더군요. 둘 다 여자친구가 없어 평소 같았으면 ‘저것들, 콱 때릴까?’ 라며 심통이라도 부렸을 텐데, 이 날만큼은 조금도 부럽지 않았어요. 곧장 플레이스테이션 게임방 가서 ‘위닝 일레븐’(축구게임)으로 뒤풀이를 했습니다.“ 수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각종 언론에서의 인터뷰 요청이 빗발치듯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벙벙한 기운에 휩싸인 채 학기초는 쏜살같이 흘러갔고 두 디자인학도의 머릿속에는 전과 다른 무게의 고민도 생겨났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멋대로 행동할 수가 없어요. 책임감이라기보다는 자기 최면이랄까……. 예전 같았으면 여건 맞는 곳에 적당히 취직하려고 했겠지만, 이제는 조금 더 큰 무대에서 경험을 쌓고 싶어요.” 안광훈 씨의 목표가 BMW, 푸조 등 유럽 자동차 메이커의 디자인 스튜디오 입성이라면 서범석 씨는 좀더 풍부한 디자인 경향을 맛보고 싶어한다. 자동차 디자인은 그의 마지막 꿈이다. “가능하면 북유럽 쪽으로 디자인 유학을 가고 싶습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미니멀한 디자인에 푹 빠져 있거든요. 디자인 세계에 경계를 두고 싶진 않아요. 자동차 디자인이라……. 기왕이면 이태리 피닌파리나처럼 모든 차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을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어야지요. 저뿐 아니라 디자인을 공부하는 모든 사람의 꿈 아닐까요?” 캠퍼스에 나타난 BMW Z4를 마주하자 두 청년은 “와~!”하는 탄성과 함께 휘둥그레진 눈을 감추지 못한다. 파격적인 디자인에 대한 보통의 거부반응과 달리, 이들에게 크리스 뱅글의 BMW는 균형감과 입체감이 완벽한 예술작품에 다름 아니다. 뒤 펜더의 역동적인 라인을 손으로 쓰다듬고 소프트톱을 열어보는 등 구석구석을 들추던 두 청년은, 그러나 어쩐 일인지 ‘운전해보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디자이너는 역시 기능성보다 기능미가 먼저인가?’ 기자의 예상은 그들의 수줍은 대답과 함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났음이 밝혀졌다. “저희, 아직 운전면허가 없어요…….”
중남미문화원 이복형 원장 “30년 사랑, 세심하게 .. 2004-04-12
54~55년 미국에서 살 때 150달러인지 주고 올즈모빌 중고차를 사서 운전을 처음 시작했어요. 67년 멕시코 영사 시절 폭스바겐 패스트백, 포드 머스탱 컨버터블을 타봤고, 70년에서 72년까지는 중고 폭스바겐 비틀, 이후에는 벤츠, BMW, 볼보……. 79년 마이애미 총영사 시절에는 뷰익, 81년부터 83년까지 도미니카공화국 대사할 때는 캐딜락 드빌을 탔지요. ‘자동차의 핸들링’이라는 걸 30년 전에 이미 알게 해준 BMW, 85년 아르헨티나 대사 시절의 벤츠 500, 한국에 나왔을 때 타본 신진 퍼블리카, 부임지에서 탔던 현대 쏘나타, 89~93년 멕시코 대사로 있을 때 인연을 맺은 링컨 타운카도 생각나고…….” 첫 인사를 나눈 지 3분도 안 되어 줄줄이 들려오는 낯익은 단어들. 자동차잡지 기자를 만나는 이 순간을 위해 열심히 암기해온 사람처럼, 중남미문화원 이복형(73) 원장이 그동안 만나본 자동차의 이름을 수북하게 쏟아낸다. 브랜드로만 남은 차도 있지만, 자동차를 연도별로 수납해 놓은 이 원장의 튼튼한 기억창고가 우선 경이롭다. 공유하려고 만든 공간… 작은 보람만으로 만족 중남미문화원이 경기도 고양시 고양동에 들어선 지 올해로 10년이다. 나이 들면 아름다운 풍경처럼 살고 싶어서, 이복형 원장과 부인 홍갑표(71) 이사장은 34년 전 땅을 사고 나무를 심었다. 막연한 꿈 안에 중남미에서 보낸 세월이 구체화되고, 사랑스럽고 아쉬워 모으고 붙잡아둔 이역의 문화가 두터운 나이테로 쌓였다. 30여 년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컨테이너에 실어 가져온 중남미의 풍물들은 94년 고양시 작은 동산에 근사한 만찬으로 차려졌다. 처음에는 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97년에는 미술관도 들어섰다. 2001년에는 중남미 12개국에서 감사의 뜻으로 보내준 현지 미술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야외 조각공원을 꾸몄다. 중남미와, 그들을 세심하게 추억하는 한국의 노신사 사이에 오간 교감은 돈독하고 풍성했다. “좋은 외교관이 되려면 그 나라를 사랑해야 합니다. 언어, 역사, 문화, 예술, 자연, 음악……. 많이 알면 알수록 할 수 있는 일도 늘어나니까요. 중남미문화는 인디오문명과 스페인문화, 현대문화가 뒤섞여 다른 어느 지역보다 콘트라스트가 강합니다. 열심히 공부해가다가 반해버렸지요.” 중남미에는 4억이 넘는 인구와 45개 나라가 산다. 인구 1억6천만의 브라질에서부터 5만의 세인트 크리스토퍼 네버스까지 땅덩어리의 크기도 힘도 삶의 질도 다양하다. 좋은 외교관이고 싶었던 이복형 원장 부부는 부임하는 나라의 여러 모습들을 하나하나 관찰해나가다가 일요일마다 그 지역의 벼룩시장을 찾아 헤매는 진짜 팬이 되었다. “내가 사랑한 나라들의 낯선 문화와 독특한 향취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중남미문화원의 계획이나 설계, 배치는 모두 안사람이 했어요. 아내는 ‘30년 동안 외교관의 아내로서 최선을 다해 내조했으니 이제부터는 나를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10년째 즐겁게 외조 중입니다(웃음).” 전정가위를 직접 들고 문화원의 나무들을 손질해온 이 원장의 손이 일꾼의 그것처럼 거칠다. 옆에서 홍이사장이 말을 잇는다. “이거 하느라 빚도 많이 졌지만 행복합니다. 일찌감치 법인화해 사회에 내놓았어요. 소유보다는 공유하기 위해 만들었으니까요. 누군 죽을 때 물건 하나라도 가져갈 수 있답디까. 문화원을 찾은 유치원 아이들을 보면 이렇게 얘기해요. ‘집에 가서 문화원 만든 할머니 봤다고 얘기해줄래?’ 작은 보람, 그거면 된 거예요.” 편안하고 한갓진 노후는 아니다. 대사 시절보다 더 바쁠 때도 있다. 문화원을 운영하는 틈틈이 이 원장은 중남미문화, 홍 이사장은 중남미 음식문화를 강의한다. 문화원에서 열 공연이나 전시회를 계획하고, 여건이 될 때마다 쿠바며 페루로 날아가 새로운 자료를 모으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원장이 직접 파일로 만들어 챙겨둔 중남미 관련 자료가 책장 하나에 가득하다. 그러고 보니 10년을 추억할 만한 일이 또 있다. 다시 자동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 원장은 귀국한 뒤 첫차로 현대 뉴 그랜저를 사서 지금까지 타왔다. 뉴 그랜저와 문화원은 동갑이다. 오랫동안 외국에 살면서 많은 차들을 접해왔지만 한국에서는 다른 차를 만날 기회가 통 없었다. “문화원에 드는 비용만도 엄청나서 여력이 없다”며 이복형 원장이 껄껄 웃는다. Z
연기자 박정철 다임러 크라이슬러 홍보대사 된 2004-04-07
한동안 박정철을 브라운관에서 볼 수 없었다. 그의 소식을 마지막으로 접한 것이 작년 여름에 개봉한 영화 ‘오! 해피데이’였으니 그로부터 벌써 7달이나 지난 셈이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하던 차에 다임러 크라이슬러 행사장에서 그를 만났다. 씩 웃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편안하다. 악수를 건네는 손길에 따뜻함이 배어있다. 4월엔 망가진 저의 모습 기대하세요 박정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운 좋은 연기자쯤으로 생각한다. 그만큼 그의 등장은 갑작스러웠고 그의 인기는 빠른 속도로 높아졌다. 하지만 박정철의 연기생활도 올해로 벌써 7년째. 회사로 치자면 대리를 넘어 과장으로 달려가고 있을 시기다. 그는 1997년 ‘KBS 수퍼탤런트 선발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아버지를 속이면서까지 연기를 고집해 얻은 결과였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는데 졸업할 때까지 아버지께는 신문방송학과라고 거짓말을 했어요. 수퍼탤런트 대회 본선에 진출해서야 아버지께 사실을 말씀드렸지요. 그때는 반대도 참 많이 하셨는데 지금은 제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빼놓지 않고 보실 정도로 제 팬이 되셨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씩 웃는 모양이 어린 아이처럼 귀엽다. ‘언제 이런 모습을 봤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은 잘 빠진 수트를 입은 강한 눈매의 박정철이다. 그가 지금까지 해온 연기가 쭉 그랬다. 양복입고 무게 잡는 그런 연기.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이런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도시적인, 냉철한, 반항적인, 터프한 등등. “처음엔 그런 모습들이 좋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안엔 참 많은 모습들이 있는데 사람들은 오로지 한 모습의 박정철만을 기억하더라고요. 차가운 눈을 가진 박정철……. 실제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에요. 그래서 저도 이젠 가슴이 따뜻한 그런 역할을 하려고 해요.” 박정철은 그에게 따라붙던 수식어들과 작별을 고하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오! 해피데이’에 출연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 영화에서 박정철은 제대로 망가졌다. 그가 보여준 코믹연기는 너무나 뜻밖이었다.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에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모습이 자신에게 더 잘 어울린단다. 이제는 양복을 벗고 털털한 모습으로 서고 싶다고. 한동안 브라운관에서 볼 수 없었던 이유가 이전의 모습을 털어버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은 아닐까. 긴 휴식을 마친 박정철은 요즘 다임러 크라이슬러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출연했던 SBS 드라마 ‘스크린’에서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차를 탄 것이 인연이 되었다. “차요? 물론 좋아하지요. 요즈음은 크라이슬러 300M을 탑니다. 전에는 그랜드 체로키를 탔고요. 둘 다 정말 마음에 드는 차예요. 특히 300M은 디자인이 예술이지요.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때 ‘붕’ 하고 재빨리 달려나가는 느낌도 좋고요. 다음엔 어떤 차를 타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되는 걸요.” 천진한 소년의 모습이다. 그가 양복을 벗긴 벗었나보다. 4월에는 편안한 모습으로 브라운관에 다시 설 것이라니 그의 ‘망가진 모습’이 자못 기대된다. 아무리 망가져도 귀엽기만 하겠지만. Z
패션 디자이너 이은우 & 푸조 206CC 색다른 .. 2004-03-12
“한결같이 정장만 찾는 우리 커리어우먼들의 경직된 옷차림에 적잖이 혼란스러웠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맘껏 자연스러우면서 독특한 느낌이 묻어나는 옷, 편안하고 자유로운 개성을 그려갈 거예요” 명품 브랜드의 쇼룸이나 디자이너 부티크를 본능적으로 ‘금남’(禁男)과 ‘금기’(禁忌)의 구역으로 여겨온 기자가, 지금 각광받는 신예 디자이너의 스튜디오 출입문을 열고 있다. 고풍스런 앤틱 가구와 아늑한 소파 사이로 카펫이 깔려 있고 채광 좋은 창의 커튼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향 좋은 차를 음미하며 고즈넉한 단잠에 빠져도 좋을 것 같이 포근한 이은우(36) 씨의 부티크에서 패션 디자이너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다. 자연스럽고 이국적인 여성 웨어로 각광 “제 쇼룸이 조금 생소하지요? 예쁘장하게 꾸민 인테리어에 형형색색의 옷을 걸치고 있는 표정 없는 마네킹……. 완성된 그림만 보여주는 여느 부티크에 비한다면 분명 그렇겠지만, 저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디자인과 재단, 전시를 한자리에서 해결하는 이 곳이 공장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이태리나 프랑스 등의 패션 본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그의 거실 같은 쇼룸에는 그 흔한 마네킹이나 은근한 조명, 크리스털 장식으로 풍성한 숱을 이룬 대형 샹들리에도 보이지 않는다. 한 구석에는 예스러운 분위기의 재봉틀이 놓여 있고 재단실로 향하는 문은 활짝 열려 거리낌없이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패션 디자인을 하기 위해 서울예고를 졸업할 때까지 미술을 전공했어요. 92년 이화여대 도예과를 졸업한 뒤 바로 미국 유학에 나섰어요.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과 캘리포니아 FIDM에서 패션 디자인 전문가 과정을 수료하면서 슬슬 제 길을 찾아갔지요.” 디자이너 지망생의 어렴풋한 꿈은 지난 2000년 FIDM의 어드밴스드 프로그램(대학원 석사과정에 해당)에 전액 장학생으로 꼽히면서부터 현실에 가까운 ‘비전’으로 여물어갔다. 동문 7명과 함께 베벌리힐즈의 힐튼호텔에서 ‘LA 패션 갤러 데뷔 패션쇼’라는 디자이너 입문 컬렉션 무대를 갖게 된 것. 이 행사에 오른 10벌의 이브닝 드레스는 단박에 란제리 메이커 CEO의 눈을 사로잡았고, 이 씨는 이듬해 스카웃 제의를 받아들이고 뉴욕 NAP사에 둥지를 틀게 된다. 자유롭고 스타일리시한 뉴요커의 생활에 흠뻑 빠져 있던 이은우 씨는 지난해 말 일생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네 커리어우먼들의 천편일률적인 패션과 경직된 사고방식에 적잖은 혼란을 겪어야 했다. “검은 생머리에 짙은 화장, 한결같은 정장 차림……. 대량생산된 인형을 보는 듯했어요. 어떤 이는 제 옷을 보고 ‘이렇게 튀는 옷을 어떻게 입느냐?’며 정색을 하더군요. 그런데 재미없는 옷은 정말 못 만들겠어요. 머리가 시키고 손끝이 가는 대로 작업하다보니 그 때부터 제 스타일이 드러났어요.” 자연스런 느낌과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그녀에게 패션의 메카 프랑스에서 태어난 푸조 206CC는 천생배필처럼 다가왔다. 스타일리시한 쿠페-카브리올레를 구입한 뒤부터 이 씨는 모든 일이 술술 풀려나가는 느낌이다. 한불모터스는 이은우 씨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단번에 푸조와 함께 하는 패션쇼를 제의했고, 지난해 12월 23일 푸조 강남 전시장에서 열린 ‘스페셜 하모니 이은우 & 푸조 컬렉션’은 새내기 디자이너는 물론 그녀의 첫 패션 브랜드인 ‘E by eun woo Lee’까지 널리 알리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첫 무대를 준비하는 한 달 동안 42벌을 만들었어요. 팔 하나 더 달고, 목까지만 처리하고……. 이러면서 밤을 새고, 영감을 얻고 다시 새 작업에 몰두하다보니 테이블에 옷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더군요.” 책상 위에는 푸조 측에 보여주었다던 예의 포트폴리오가 놓여 있다. 포토그래퍼 없이 디지털 카메라로 손수 찍었다는 작품들. 숱한 사진 속에 등장하는 단 한 명의 모델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생기발랄한 10대 소녀가 되었다가 섹슈얼한 요부로 둔갑하기도 한다. 사람의 인상을 180° 바꿔놓는 그녀의 손재주에는 생에 대한 정열이 묻어 있다.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장 강병근 교수 세상의 장애.. 2004-03-08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장 강병근(52) 교수의 연구실은 작은 화원 같다. 언뜻 봐도 십수 개가 넘는 나무며 화초들이 초록빛을 내뿜고 있다. “이렇게 멋진 교수 연구실은 처음 봤다”고 하자 강병근 교수가 웃음 띤 얼굴로 한마디한다. “사람과 자연이 표 안 나게 어울려 사는 걸 좋아합니다.” 그가 남해의 아름다운 섬 외도해상농원의 근사한 전망대며 집, 대문들을 설계한 건축가라는 사실에 새삼 생각이 미친다. 외도 이야기에서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강병근 교수는 국내 제1의 장애인 건축·편의시설 전문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표 안 나게 어울려 살 수 있도록’ 지난 18년간 발벗고 뛰어왔다. 건축물 설계와 개선은 물론 법 제정까지, 생활 전반의 장애를 없애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나선다. 강 교수는 스스로를 ‘장애의 정글에 고속도로를 놓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장애의 정글’은 바로 이 세상이다. 세상에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살아가는 데 불편을 주는 장애들이 수없이 많다. 강병근 교수는 ‘세상의 장애’가 비장애인에게는 단순한 불편이지만, 장애인에게는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 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97년 장애인 편의촉진법 제정 이끈 것이 큰 보람” “설계부터 100% 장애인이 이용할 것이라는 전제로 만든 시설이 쇼핑센터나 호텔, 공항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건물에는 쇼핑한 물건이나 가방을 든 사람도 문을 열 수 있도록 자동문과 엘리베이터가 있지요. 이같은 편의시설이 없다면 비장애인은 물건을 내려놓고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거나 계단을 이용할 겁니다. 즉 불편하지만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알고 있어요. 그러나 장애인에게는 장벽이고 불가능일 뿐입니다. 신체적인 장애 때문에 이동의 권리, 접근의 권리, 이용의 권리를 빼앗긴다는 것은 너무나 부당한 일이에요.” 강 교수는 그와 같은 건축가들이 수많은 장애물을 만들어내는 데 한몫하고 있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예를 들어 휠체어를 탄 사람은 계단이나 회전문을 이용할 수 없다. 회전문은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의 방향감각도 빼앗는다. 장애인의 이동을 돕는다고 계단 옆에 별도로 만들어둔 완만한 경사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편가르기’하는 역할도 한다. “장애인이 별도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보다는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이 중요해요. 계단의 대안은 승강기지요. 경사로는 승강기를 놓을 수 없을 때의 보조수단일 뿐입니다. 누구나 같은 편의시설을 따라 움직이고 들어가고 이용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그 순간 휠체어를 타든 두 발로 걷든, 움직이는 모습의 차이는 장애와 비장애가 아닌 ‘개성’이 되는 겁니다.” 강 교수는 ‘장애인을 보지말고 장애물을 보라’고 강조한다. 장애인이라는 말 자체가 일상생활에서는 맞지 않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우리 환경 속에 극복 가능한 장애물만 있다면 신체적으로 어떠한 장애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살아가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18년 노력은 거대한 장벽 같았던 우리 사회에도 숨쉴 틈을 만들었다. 강병근 교수가 건교부에서 연구용역을 받아 초안을 만든 노인·임산부·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촉진에 관한 법률은 97년 제정, 공포되어 98년 4월 1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하철 곳곳에 환승 엘리베이터가 생기고 서울시내에 저상버스가 도입되는 등 사회 곳곳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인식 개선이에요. 같은 생각을 공유하면 세상이 바뀐다는 믿음을 갖습니다. 25년 전 학위 논문을 쓸 때만 해도 회의적이었는데, 지금은 커다란 행복과 보람을 느낍니다.” 정신지체인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완벽한 시설로 유명한 경남 거제도의 ‘애광원’도 강병근 교수의 작품이다. 애광원은 1985년 세워졌지만 지금까지도 계속 보수가 이뤄지고 있다. 강 교수는 애광원을 오갈 때나 출퇴근 때 11년 된 쌍용 무쏘를 이용한다. 이전에는 현대 프레스토를 13년간 탔다. 독일 유학시절에 타던 BMW의 나이는 현재 30살. 앞으로 20년은 더 타기 위해 독일 지인의 집에 맡겨두었다. 그러고 보면 운전경력 35년 동안 그를 거쳐간 차 가운데 10년지기 아니었던 차가 드물 정도다. “지금 타는 무쏘는 20만km를 넘었어요, 30만km를 넘든지 20년을 넘기든지, 둘 중 하나가 될 때까지는 탈 생각입니다.” 오랫동안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강 교수다운 ‘카 라이프’다. Z
아나운서 신영일 씩씩한 목소리로 일요일 아침을 여는 2004-03-03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나온 그는 얼굴 가득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경쾌한 옷차림에 선한 눈망울이 편안한 인상이다. 일요일 아침 10시면 어김없이 우리 곁을 찾아오는 KBS 1TV ‘퀴즈! 대한민국’의 진행자 신영일 아나운서. 씩씩하고 밝은 그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을 기운나게 하는 힘을 지녔다. 퀴즈 프로그램에서 노련한 진행 솜씨 뽐내 신영일은 1997년 아나운서 공채로 KBS에 입사했다.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그가 어떻게 아나운서가 되었을까? 그 해답은 한 권의 책에 있었다. “대학교 4학년 때 우연히 이계진 씨가 쓴 ‘아나운서 되기’란 책을 읽었습니다. 한창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때인데 그 책을 보고 나서 ‘나도 이렇게만 하면 아나운서가 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한 자신감이었지요.” 그 책을 읽고 난 후 그는 아나운서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1년만에 책 제목처럼 정말 아나운서가 되었다. 그의 말을 빌자면 운이 아주 좋아서였단다. 뽑는 인원이 많아 자신도 합격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아나운서 시험이라는 것이 어디 운만 좋아서 될 일이던가. 겸손한 얘기다. 신영일은 지금 KBS 1TV에서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퀴즈! 대한민국’ 등 퀴즈 프로그램을 두 개나 맡고 있다. 차분하고 편안해 보이는 인상에 재치 있는 말솜씨까지 갖추었으니 퀴즈 프로그램 진행자로 ‘딱’이라는 주위의 반응이다. 그 역시 퀴즈프로그램 진행 자리가 꽤 마음에 드는 눈치다. 정해진 대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 좋단다. 가끔 출연자들이 엉뚱한 대답을 해 진땀을 뺄 때도 있지만. “조금 더 노하우가 쌓이면 MBC에서 하는 ‘브레인 서바이버’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고 싶습니다. 그것말고도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요. 다 하려면 100년쯤은 더 살아야 되지 않을까요?” 욕심이 많아서일까? 언제나 의욕이 넘쳐 일하는 모습을 보면 지금도 신입 때 그대로다. 미리 대본을 보고 그 날 나올 출연자들이 어떤지 살펴보는 것은 물론 머리 속으로 자신이 진행하는 모습을 상상해보기까지 한단다. 그렇게 하면 녹화를 쉽게 진행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두 개 프로그램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일일이 체크하는 것이 귀찮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답이 단호하다. “프로라면 그 정도는 해야지요. 몇 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아나운서로서 제몫을 하지 않으면 밀려나게 되는 것이 이 일이니까요.” 역시 프로다운 대답이다.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 지금의 생활이 만족스럽긴 하지만 방송을 통해 얼굴이 알려져 겪는 어려움도 크다. KBS 1TV ‘체험 삶의 현장’에서 FD 체험을 하기 위해 지난 1월 충북 영동에 간 그는 그를 보려고 모여든 아주머니들이 엉덩이를 두드리고 얼굴을 쓰다듬는 통에 녹화를 진행할 수 없었다. 평소 넉살좋기로 소문난 그였지만 아주머니들의 갑작스런 행동에는 당황한 모양이다.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도 조금은 불만이란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 늘 조심스럽다는 그다. 그에게 어떤 차를 타는지 물어보았다. 대답은 대우 레간자. 그리고는 바로 이렇게 덧붙였다. “아나운서 월급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그는 차를 바꾸게 된다면 SUV를 사고 싶단다. 시야가 확 트여 운전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다는 대답이다. 요즘에는 쌍용 렉스턴이 탐이 난단다. 손으로 꼽아보니 방송을 한 지도 햇수로 8년이다. 이제 출연자의 실수도 능숙하게 대처할 만큼 노련해졌지만 그래도 그는 언제나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의 방송을 보고 즐거워할 때 보람을 느낀다는 신영일 아나운서. 방송 일은 그런 그에게 천직이 아닐 수 없다. 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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