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뮤지컬 배우 박건형 ‘토요일 밤의 열기’에서 댄싱 .. 2004-07-13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 공연준비가 한창인 서울 동숭동의 월간 사무실에서 박건형을 만났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아래층에서 막 연습을 끝내고 올라오는 길이라고 했다. 아침 10부터 밤 11시까지 매일매일 이어지는 공연 연습 때문에 피곤했던 탓일까? 그의 입술에 물집이 둘이나 내려앉았다. 나직하게 내뱉는 말소리에서 피로가 조금씩 묻어난다. 매일 10시간씩 연습하며 토니역 소화해 박건형은 뮤지컬 배우다. 2001년 ‘더 플레이’라는 뮤지컬로 무대에 오르면서 그의 이름 앞에는 뮤지컬 배우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하지만 그가 뮤지컬만 연기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달 막을 내린 SBS 드라마 ‘파란만장 미스김 10억 만들기’를 유심히 보았던 독자라면 기억해 낼 것이다. 날렵한 외모와 훤칠한 키를 가진 낯선 총각을……. 그가 바로 박건형이다. 그의 외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CF에도 더러 출연했고 영화도 한 편 찍었다. “뮤지컬 배우로 시작은 했지만 다른 분야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아직은 이거다 싶은 길을 발견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여전히 길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이렇게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짠’하고 제 앞에도 쭉 뻗은 길이 나타나지 않겠어요?” 박건형은 요즘 공연 연습으로 하루하루가 바쁘다고 했다. 드라마를 끝내고 바로 연습을 시작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고. 그는 7월초에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려질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에서 토니를 연기한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 그는 작년에 오디션을 통해 토니라는 역에 당당히 캐스팅됐다. 지명도 있는 배우를 원했던 투자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를 주인공에 앉힌 사람은 바로 연출가 윤석화다. “떨어져도 좋으니까 시험이라도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오디션을 봤어요. 저도 붙게 될 줄은 몰랐는데……. 가능성을 보신 것 같아요. 연기도 잘 하지 못했고 춤은 더더욱 그랬고요. 사실 저 몸치거든요.” 쉬운 동작 하나 한번에 따라하지 못했던 그가 현란한 춤 솜씨로 무대를 휘젓는 춤의 달인 토니가 되기까지 그의 매일 매일은 연습의 연속이었다.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을 빼면 나머지 시간에는 오로지 춤만 추었을 정도란다. “남들처럼 안 되니까 몇 배는 더 열심히 해야지요. 그런데 공연을 한 달 앞두고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공연을 망치는 것은 아닐까? 이쯤에서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을 때 안무가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난 널 믿는다. 내가 널 멋지게 만들어 줄 거다.’ 그래서 용기를 얻고 다시 시작했어요. 그때 포기했다면 전 영영 무대에 설 수 없었을 겁니다.” 연습을 마치면 그는 하바나 스쿠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에게는 아직 차가 없다. 아니, 당분간은 차를 마련할 계획도 없다. 차보다는 오토바이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헬멧을 꼭 쓰고 조심조심 타면 차보다도 더 안전한 것이 오토바이라고 그는 말한다. 오토바이가 위험하다는 편견을 버리라면서. 그는 스물 여섯이라는 나이에 뮤지컬 배우라면 누구라도 탐낼 만한 무대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의 말처럼 가능성이 있어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운이 아주 좋아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스텝조차 제대로 밟지 못했던 그가 지금은 토니라는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게서 가능성을 본 윤석화의 눈은 정확했다.
‘삶의 스승 운동’ 펼치는 임양운 변호사 “누구.. 2004-07-13
인생은 때로 막막하다. 갈 수 있는 길은 수천 수만 갈래이고 어떤 표정과 걸음걸이로 길을 나서야 할지 망설이는 순간은 자주 찾아온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그래서 내딛는 걸음마다 시행착오였던 기억. 세월이 흘러도 ‘막막했던 그때’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주머니에 나침반 하나 있었다면, 내 옆에 든든한 이정표가 서 있었다면……. 임양운(52) 변호사에게 ‘막막했던 그때’는 고등학교 시절이다. “내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지요. 골똘히 생각을 해봐도 알 수 없어서 고통스런 번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학교에서 많은 이론을 배우는 것보다 인생을 먼저 산 이의 지혜가 담긴 말 한 마디가 더 필요했어요. 청소년기는 바다를 항해해 나아가는 배와 같은데, 한번도 가보지 않은 항구를 찾아가려면 나침반과 지도가 있어야 하잖아요. 이제 그런 나침반과 지도를 만들어주자는 생각입니다.” 임 변호사가 요즘 펼치는 일의 하나는 ‘삶의 스승 운동’이다. 사회 각계에서 활동하는 삶의 스승 10명이 20명의 젊은 제자와 만난다. 처음에는 1대 1 만남을 계획했지만 지원자가 많아 제자를 두 배로 늘렸다. 우선 대학생부터 시작하고 차츰 중고등학생으로 대상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이 운동에는 권경현 교보문고 사장, 홍석주 전 조흥은행장, 최낙원 성북성심병원 원장, 유영만 한양대 교수 등이 ‘라이프 마스터’로 참여하고 있다. “갈 길과 할 일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리더” 임 변호사는 현재 사단법인 ‘미래준비’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미래준비에서는 젊은이들에게 나침반을 쥐어주는 일 외에도 미래를 준비하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려준다. 법인 이름만 들으면 조금 막연해 보이지만, 미래준비에는 우리 사회를 해석하는 임 변호사의 철학과 비전과 미션이 응축되어 있다. 벌써 10여 년 전부터 그가 관심을 갖고 추진해온 일이다. “부장검사로 있던 93년부터 95년까지 사법연수원 교수로 파견을 나갔지요. 후배들을 가르치다보니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어요. 인문사회 계열의 우리나라 최고 인재들이 모였는데, 법조인을 양성하는 실무교육만 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지요. 이 인재들을 진짜 인재로 육성하는 법이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창조리더십이라는 개념에 착안했고, 이를 바탕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2년 후에 판검사 되기를 염려하지 말고 40~50대에 우리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연수생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리더십을 길러야 하는데, 갈 길과 할 일을 명확히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리더다.’ 제자들에게 늘 강조했던 말이지요.” 그는 수업뿐 아니라 사법연수원의 제자들과 독서토론을 하고 스포츠를 함께 했다. 그해 연수생들은 가장 뛰어난 성적을 냈고, 이를 계기로 임 변호사의 인생도 방향이 바뀌었다. 인재를 기르고 리더십을 가르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뒤 강릉지청장을 지낸 6년 동안 산 좋고 물 좋은 그곳에서 구상을 구체화하고 2001년 사단법인 미래준비를 세웠다. “미래창조 운동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하는 운동입니다. ‘아름다운 한국의 창조’를 비전으로 미래창조적으로 살자는 것이지요. 이 운동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어요. 누구에게나 지금부터가 미래이고, 그 미래를 아름답게 창조해갈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 1회의 아침 독서토론, 그림감상, 나무심기, 1%기부, 돕기와 봉사…… 미래준비가 ‘수행항목’으로 권장하는 일들이다. 그 맨 앞에 임 변호사가 서 있다. 임 변호사는 스스로를 ‘아침형 인간’이라고 말하지만 기자가 본 그는―표현이 좀 외람되지만― ‘종일형 인간’이다. 하루를 48시간처럼 쪼개고 쪼개어 쓰는데도 표정에는 여유가 넘친다. 요즘은 바빠서 직접 운전할 틈도 없지만 “자동차는 어려서부터 좋아했다”는 임 변호사다. 운전면허는 80년에 땄다. 77년 군대에 가기 전 누군가가 “군 시절에는 영어, 기타 치기, 자동차운전, 이 세 가지를 마스터해야 한다”고 조언했는데 자동차운전 하나만 배워왔다며 웃는다. “선친이 닛산 트럭을 하나 갖고 계셨는데,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차에 친숙했어요. 차 타는 게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83∼84년 프랑스 연수 때는 차로 유럽 여행을 했어요. 파리에서 출발해 이태리 로마, 피렌체, 베니스, 베로나 등을 돌아다녔습니다. 자동차와 함께 했던 시간 중에 가장 아름답게 남은 추억이지요.” 사단법인 미래준비 홈페이지 www.myfuture21.org
하림 &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초현실적인 SUV 위.. 2004-06-14
“음악은 사람들에게 들려졌을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필요 이상으로 어려운 것보다는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쉽게 그림이 그려지는 곡을 만들고 싶어요” 현실과 이상에 치여 스스로를 속박시킨 그는 불현듯 아일랜드로 날아갔고 하늘과 호수, 들판을 달려 보잘것없는 일상의 자유를 되찾았다. 다중인격자의 은밀한 그늘이 여전하지만 그가 읊조리는 멜로디와 메시지에는 이제 미궁 속에서 들려오는 유유자적한 휘파람 소리처럼 밝고 소박한 빛이 예전보다 강하게 담겼다. 하림(본명 최현우)이 최근 내놓은 2집 앨범 ‘휘슬 인 어 메이즈’(Whistle in a maze)는, 그러나 감정의 실마리를 살살 끄집어내 마음을 움직이는 특유의 생명력이 여전해 더욱 반갑다. 이제 막 29살이 되었을 뿐인 이 젊은 뮤지션은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항상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귀에 달고 산다. 아이리시 풍 가미한 두 번째 앨범 2년 전 선보인 하림의 솔로 앨범 ‘多衆人格者’(다중인격자)와 그 속에 담긴 ‘난치병’과 ‘출국’ 등의 곡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의 감성과 멜로디 패턴이 소울 내지는 리듬 앤 블루스를 향해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런 의미에서 휘슬과 윌리언 파이프 등 아일랜드의 토속 악기를 손수 불어대며 담백한 감성을 물씬 살린 이번 앨범은 예의 하림식 흑인음악을 기대했던 이들을 동요시키기에 충분했다. “음악적 감성이 바뀌었다고들 하는데, 꼭 틀린 말은 아니에요. 이제 20대 후반이니 오죽하겠어요. 사회생활을 하는 여느 친구들이 지금과 미래를 견주면서 고민과 결단, 번복을 거듭하듯이 저는 음악에 있어서 끊임없이 새롭고 이로운 것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목표라면 스트레스 없이 음악을 계속하는 방법인데……. 즐기면서 재밌게 잘 살아야 음악도 중심을 잡지 않을까 싶어요.” 그는 이미 새 앨범에서 흑인 감성을 깨끗이 지울 다짐을 했었고 언젠가는 아일랜드 음악을 접목해볼 계산도 서 있었다. 앨범 준비로 달궈진 심신을 식히기 위해 아일랜드 여행길에 오른 하림은 그 곳에서 ‘이때다’ 싶은 확신을 갖게 되었고, 귀국하자마자 곧장 자신이 소속된 신스기획 대표이며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윤종신 씨를 찾아 ‘아일랜드 음악을 하겠다’는 의지를 알렸다. “처음에는 아일랜드 음악이라는 말만 듣고 말리던 종신이 형도 직접 들어보고는 흔쾌히 승낙을 해주었어요. 아이리시 휘슬을 직접 배우고 그 곳 토속음악의 패턴을 빌어 오기는 했지만 정작 아이리시 스타일의 곡은 3개밖에 안 되요. 아일랜드에 ‘필이 꽂힌’ 이유라……. 조나단 스위프트 같은 문학가나 느낌이 좋은 음악가가 많고, 무엇보다 기네스 맥주가 있잖아요.” 호기심이 많은 하림은 끊임없이 탐구하고 실험하며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경험을 자신의 관점으로 풀어낸다. 그의 말처럼 ‘시건방진 건 다 해보는’ 일련의 경험은 곧 음악적 감수성의 스펙트럼을 확장해 가는 과정이며,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대중음악을 만드는 이의 소명에 다름 아니다. “음악은 사람들에게 들려졌을 때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고 생각해요. 대선배인 배철수 씨의 표현대로라면 어려운 음악은 없어요. 익숙한 음악과 익숙하지 않은 음악이 있을 뿐이지요. 그림이 그려지는 음악을 좋아하고 그렇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영화음악 제의도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아요. 우선은 제 음악의 영역을 확인하고, 영화 쪽은 좀더 공부를 많이 한 뒤에 신중하게 도전하고 싶습니다.” 지구상 가장 화려한 SUV로 꼽히는 랜드로버 레인지로버와, 빛 바랜 사진처럼 은은하고 약간은 산만한 ‘인간 하림’은 쉽게 매치하기 어렵다. 하지만 많지 않은 나이에도 듣는 이의 감수성과 향수를 쉽게 끄집어내는 젊은 뮤지션의 내공은 육중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경쾌하게 내달리고 안락하기까지 한 레인지로버의 비현실적인 성격을 꼭 닮았다. 더욱이 두 주인공이 조우한 장소가 검은 구름 아래 짙은 녹음이 진 언덕과 들판, 호수가 펼쳐진 아일랜드 초원이라고 상상한다면 이들의 만남에 더 이상의 어색함은 없다.
가수 김범수 4집 앨범 들고 팬들 앞에 서다 2004-06-08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이런 내가 미워질 만큼. 울고 싶다. 네게 무릎 꿇고 모두 없던 일이 될 수 있다면…….’ 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두 주인공 송주와 정서의 애틋한 러브신이 등장할 때마다 낮게 깔리던 김범수의 노래 ‘보고싶다’. 끊어질 듯 애절한 그의 목소리는 솔로들의 가슴을 쥐어뜯었고 시작하는 연인들에게는 눈물 어린 감동과 진한 사랑을 전했다. 그랬던 김범수가 여덟 달 동안 정성스레 만든 4집 앨범을 들고 팬들 앞에 섰다. 앨범 타이틀을 전면사진으로 장식하고 얼굴 없는 가수가 아닌 얼굴 있는 가수로. 발라드에서 댄스곡까지 다양하게 선보여 데뷔한 지 햇수로 6년, 음반도 벌써 4개나 냈다. 하지만 김범수의 얼굴을 알아보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주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뮤직비디오를 통해 활동했기 때문이다. 훤칠하고 보송보송한 어린 가수들 틈에 서는 것이 그에겐 부담으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어쩌면 소속사의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서 김범수는 확실히 달라졌다. 창법도 훨씬 부드럽고 경쾌해졌다. 댄스곡도 여럿 눈에 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변화라면 그가 당당히 얼굴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이번엔 정말 즐겁게 사진을 찍었어요. 표지사진도 얼굴로 했고요. 다른 뜻은 없어요. 그냥 제 얼굴을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나이가 드니까 조금 뻔뻔해졌다고 할까요?” 자신의 노래를, 그리고 자기의 얼굴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알아봐 주는 것만큼 가수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또 있을까? 김범수 역시 이제는 그런 기쁨들을 한껏 누리고 싶은 모양이다. 4집 앨범도 팬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애절한 발라드에서 비트있는 음악까지 다양한 곡들로 꾸몄다. “이번 앨범은 지금까지의 제 노래와는 조금 달라요. 슬픔보다는 희망과 행복을 소재로 한 가사들이 많지요.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있을까요. 그래도 꼭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아무래도 제가 곡을 쓴 ‘투 미’(To me)겠지요.” 김범수는 요즈음 콘서트 준비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란다. 이번 달 30일 경기도 수원에서 열릴 콘서트에서 그는 4집 앨범의 곡들과 ‘하루’, ‘보고싶다’ 등을 부를 예정이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춤이며 마술 연습도 한창이다. 이날 공연에는 김범수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가수 박효신, 주석 등이 게스트로 나온다. “6월부터는 4집 활동도 열심히 하고 TV나 콘서트를 통해 좀더 많은 모습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올해 바램이 있다면 작년만큼만 제 노래를 사랑해 주셨으면 하는 거예요.” 김범수는 자신의 목소리가 투명한 색이라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꾸밈없는 모습이라고. 하지만 4집 앨범에서 그의 목소리는 다양한 빛깔로 다가온다. 투명한 유리에 비친 오색빛깔 색종이처럼 하늘빛이었다가 분홍빛이었다가 강렬한 빨강이기도 했다가 차분한 회색으로도 변한다. 무대 밖에 있을 때 그는 평범하고 소탈한 25살 청년이다. 걷기를 좋아하고, 그래서 아직 차도 갖고 있지 않은, 가끔은 그것 때문에 불편하기도 하고, 그래서 BMW X5에 눈독을 들이는……. 하지만 무대 위에만 서면 그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낸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느새 그의 목소리는 발 밑을 타고 올라와 머리 끝까지 조금씩 젖어든다. 이것이 바로 김범수가 가진 힘인 듯싶다. 노래에 사람을 온전히 빨려들게 하는.
93년식 쌍용 코란도와 이동한 클래식카의 멋을 .. 2004-05-21
클래식 코란도? 그런 모델이 있었던가’. 고개를 갸우뚱할 필요는 없다. 장담하건대, 이 세상에 ‘클래식 코란도’라는 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혹시 그런 차를 보았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선가 클래식 코란도가 만들어지고 있다면? 쌍용 코란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클래식카 타령을 하게 된 것은 이동한(42) 씨 때문이다. 서울의 한 주차장에 세워진 빨간색 코란도가 굉장히 예쁘고 인상 깊어 오너의 비상연락처를 메모해 와 정식으로 만나 보았다. 이동한 씨의 ‘클래식 코란도’ 이야기는 유년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어릴 적 흙먼지를 폴폴 날리며 신작로를 달리던 ‘짚차’를 늘 그리워했어요. 우렁찬 디젤엔진 소리와 땅을 파헤치듯 구르는 커다란 바퀴에 대한 동경이랄까요. 한순간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3년 전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분야별 최고 실력자 찾아가 완벽하게 작업해 이동한 씨가 코란도의 오너가 된 것은 2001년.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 오다 93년식 코란도를 사들였다. 어릴 때부터 간직했던 그리움을 버리지 못해 최신형 SUV를 마다하고 코란도를 골랐다. 아니, 코란도가 아니었으면 그리움은 아예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취재진에게 펼쳐 보인 손때 묻은 차계부가 그의 심정을 잘 말해 주었다. 한동안은 동경의 대상이었던 ‘짚차’를 타게 되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다 지난해 초 겪은 사고가 계기가 되어 코란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쏟게 되었다. “눈이 잔뜩 내린 서울 남산순환로를 달리다 미끄러져 엔진룸이 ㄱ자 모양으로 꺾일 정도로 큰 사고를 당했어요. 40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고, 정신을 차려 보니 한 군데도 다친 데 없이 멀쩡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엔진이 꺼지지 않고 돌고 있더군요. 그 뒤로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코란도에 새 생명을 선물하기로 했지요.” 이때부터 이동한 씨는 코란도를 말끔히 고쳐 꾸미기 시작했다. DIY 컨셉트는 ‘클래식’. 이 세상에 한 대밖에 없는 코란도를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나름의 기준도 세웠다. 외국의 클래식카 전문 잡지와 인터넷을 참고해 스스로 DIY 아이템을 정하고 필요한 부품도 직접 구입하되, 작업은 최고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다. 어설픈 부품을 서툴게 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첫 번째 작업은 범퍼였다. 미국의 올드카 웹사이트를 모조리 뒤진 끝에 1930년대 포드 모델 A의 범퍼를 주문했고, 뛰어난 솜씨를 인정받는 전문가를 찾아가 코란도에 맞는 브래킷을 만들어 달았다. 백색 테두리를 가진 타이어를 구하기까지 숱한 발품을 팔았다. 제법 크다는 타이어 판매점은 물론이고 타이어 제조회사까지 찾아갔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인터넷을 뒤져 일반 타이어에 백테를 넣어 파는 미국 업체를 발견했다. 하지만 백테 타이어에 어울리는 둥글고 볼록한 휠 커버를 구하지 못해 지금도 아쉽단다. 번호판도 1930년대 포드 모델 A 로드스터의 지지대로 달았고, 보네트 경첩과 에어덕트는 지프 랭글러의 것을 붙여 멋을 냈다. 바닥과 엔진룸 방음은 기본. 바닥 마감재의 박음질이 어찌나 꼼꼼한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계획한 작업의 10%도 못 채웠지만 코란도에 대한 애정 때문에 삶이 풍요로워졌습니다. 100%의 활력을 60%는 일, 나머지 40%를 코란도에 나누는 것이 아니라 120%로 늘었어요. 첫사랑의 가슴 벅찬 설렘, 바로 그 느낌이지요.”
도요타 엑스트라 캡 오너 이광균 드림카와 지내온.. 2004-05-21
지난해 쌍용 무쏘 SUT와 닷지 다코타가 나오면서 많이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수입 픽업은 여전히 국내에서 보기 힘든 차다. 이 달에 만난 매니아는 V6 3.0X 엔진을 얹은 93년형 도요타 픽업 엑스트라 캡을 타는 이광균(33) 씨다. 도요타 픽업은 트럭을 의미하는 단어가 그대로 차 이름이 된 경우다. 1964년 스타우트(Stout)를 시작으로 하이럭스(Hilux)를 거쳐 1979∼95년 ‘도요타 픽업’이라는 이름을 써 왔다. 두바퀴굴림과 네바퀴굴림이 있고, 네바퀴굴림은 다시 일반 캡과 엑스트라 캡으로 나뉜다. 2+2 실내구성에 4WD 시스템을 갖춘 엑스트라 캡은 1983년 등장했다. 운전석 뒤쪽의 승객석 때문에 엑스트라 캡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승객석에는 시트가 없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이광균 씨가 엑스트라 캡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94년. 군에서 제대한 직후 미국에 갈 기회가 생겼다. 마침 미국 사는 친척이 이 차를 갖고 있었다. 엑스트라 캡은 고등학교 때부터 꿈꿔 왔던 드림카였기에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차에 대한 그의 열정에 감탄한 친척이 새것이나 다름없는 액스트라 캡을 선뜻 내주어 95년 국내에 갖고 들어올 수 있었다. 당당하고 미끈한 디자인이 최고 매력 이광균 씨는 미끈한 차체를 이 차의 최고 매력으로 꼽았다. 편안한 승차감은 물론이고 가속력 또한 승용차에 버금간다고 평한다. 적재함에 ATV를 싣고 야외로 나갈 수 있는 실용성도 이 차의 가치를 높여 준다. 하지만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타기에는 차체가 너무 길고 미국 버전이라 계기판 단위가 마일로 되어 있다. 편의장비도 부족한 편이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문제는 기름을 많이 먹는다는 점. 연비가 8km/X를 밑돈다. 이 때문에 구조변경을 해 LPG 겸용으로 쓰고 있다. ‘닦고, 조이고, 기름칠’로 10년을 버텨온 탓에 작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다. 오프로드를 다닐 때는 구형 코란도를 이용하고 엑스트라 캡은 시내와 경치를 구경하며 한적하게 달릴 수 있는 곳에서만 탄다. 네 바퀴를 굴려보기 위해 겨울에는 일부러 눈 덮인 도로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꼼꼼한 관리만으로는 번쩍거리는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다. 이광균 씨는 고등학교 때 이미 자동차 정비 자격증을 땄고 차에 문제가 생기면 부품을 구해 직접 해결하는 실력파다. 범퍼 가드와 드라이빙 램프를 만들어 달았고 순정 사이드 미러가 망가지자 갤로퍼의 것으로 바꾸었다. 보디업을 통해 33인치 타이어를 끼웠고 실내 도어트림과 천장 방음작업도 했다. 직업은 사람들의 미각을 즐겁게 해주는 중식당 요리사.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중국 요리의 특징은 시각적 요소를 살린 화려함이다. 하지만 그가 가장 자신 있게 내놓는 음식은 자장면. 쉽게 만들 수 있고 자주 먹는 음식이지만 맛내기는 가장 어렵다고 한다. “미식가들은 식당에서 가장 비싼 음식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기본음식을 맛봅니다. 중식당이라면 자장면에서 그 식당의 음식 맛이 결정되지요.” 얼마 전에는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손짓을 하여 차를 세웠다. 그 사람은 말 없이 차를 만지고 한참을 살피더니 수고하라며 그냥 가더란다. 그만큼 엑스트라 캡은 가는 곳마다 관심을 끈다. 요리사로서 미각을 기쁘게 하는 의무가 있는 만큼 자동차 매니아로서 차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는 또 다른 의무가 주어진 느낌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창하 & 랜드로버 프리랜더 옹.. 2004-05-14
1시간을 기다려 그를 만났다. 여느 때 같았으면 약속을 어긴 상대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가시처럼 날카로운 질타를 던졌을 기자는, 그러나 “죄송합니다. 많이 늦었지요”라는 사과와 함께 등뒤에서 나타난 그의 얼굴을 보곤 모든 섭섭함을 날려버렸다. MBC 예능 프로그램 ‘러브하우스’에서 해리포터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창하(49) 씨. 그의 표정은 참 해맑고 TV로 봐왔던 미소는 실제가 더 상쾌하다. 카메라는 성공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삶과 일에 대한 진지함까지는 채 담아내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가슴으로 그리는 행복한 인테리어 이창하 씨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건축디자인 사무소(이창하 디자인 연구소)에서 ‘김천과학대학 도시디자인계열 교수’라고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 건축디자인과 도시디자인의 경계를 가늠하지 못하던 기자에게 이 씨는 “대학시절에는 순수미술을 전공했다”는 사실까지 밝힌다. “건축을 시작한 것은 서울대 서양학과를 졸업하고도 꽤나 시간이 지난 뒤였어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별 어려움 없이 살다가 아버지가 꾸리던 사업체가 부도나면서 방황 아닌 방황을 했거든요. 미국 뉴브릿지 대학을 졸업하고 현지에서 인테리어 리노베이션을 포함한 건축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인테리어 디자인은 현실이며 이상이다. ‘인테리어의 꽃은 호텔, 그리고 꽃 중의 꽃은 크루즈(호화 유람선)’라고 설명하는 이 씨는 호화유람선의 선실을 디자인하는 것이 직업적인 최종 목표다. 국내의 경우 조선사업만큼은 세계에서 으뜸가는 수준이지만 정작 인테리어 작업이 가능한 회사는 전무한 현실. 이태리,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가의 몇몇 회사가 장악해온 분야지만 대우조선과의 선실 디자인 계약 성사로 착실히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중이다. 지난 2001년부터 해온 ‘러브하우스’ 작업은 성공과 돈에 모든 가치를 걸고 건조한 삶을 살아온 그에게 인생의 가치관까지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큼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 “부모를 일찍이 여읜 아이들, 느닷없이 찾아온 병마나 사고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 등 세상에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많더군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도량형(화폐)에 지나치게 집착해왔다는 후회를 많이 했어요.” 가슴속에서 물질적인 풍요에 대한 집착을 버린 뒤부터 세상은 물론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크게 달라졌다는 이 씨.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디자인의 지향점은 ‘건강하고 누가 보더라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런 아름다움’이다. 유럽 스타일의 색조를 무조건 세련되었다고 보는 천편일률적인 시각은 당연히 기피대상 1순위다. “미국에는 미국만의, 독일에는 독일식 스타일이 있듯 우리의 생활 속 인테리어는 우리 문화에 충실해야 합니다. 일단 문화가 지배당하면 그 속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어요. 문화가 사회를 지배해선 안 됩니다. 사회가 문화를 지배해야지요.” 이창하 씨는 김천대 학생들과 ‘러브하우스 봉사단’을 결성해 수해지역에 집을 지어주는 등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그의 복지활동에는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갈 애제자들이 부디 사람 냄새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숨어 있다. “강의실에서든, 수해현장에서든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어요. ‘내 맘에 드는 디자인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집, 설계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는 집을 그려라’ 라고. 전인교육이 안 된 사람에게 기술은 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말에 오랜 시간 귀기울이는 동안 랜드로버 프리랜더는 문 밖에서 촉촉한 봄비를 맞으며 고독을 씹어야 했다. 짧은 만남이지만 프리랜더의 단단하고 야무진 감각에 끌린다는 이 씨. 그러나 굳이 그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옹골찬 영국의 소형 SUV는 속이 꽉꽉 들어찬 해리포터 디자이너와 썩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있어요. ‘내 맘에 드는 디자인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집을 그려라’ 라고. 인성이 부족한 사람에게 기술은 칼이 될 수도 있지요”
배우 김영호 8년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온 2004-05-11
뮤지컬 ‘투 맨’의 공연장 연강홀. 연습이 시작되자 무대 위로 김영호가 등장한다. 낮고 조용한 내레이션, 이어지는 힘있는 목소리……. 극장 안은 침묵에 싸이고 신이 난 김영호만이 무대 위를 휘젓는다. 극장에서 만난 김영호는 아주 편안해 보였다. 처음에는 그것이 반팔 티셔츠에 운동화를 신은 경쾌한 차림 때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소탈한 웃음 하나로도 함께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김영호라는 배우를 잊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뮤지컬 ‘투 맨’에서 가슴 뭉클한 형제애 연기 유쾌한 카멜레온 김영호. 그의 변신은 어디까지 계속될까?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건달 이정재로 거친 이미지를 뿜어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어수룩한 회사원(MBC 드라마 ‘여우와 솜사탕’)으로 옷을 바꿔 입었고, 이제는 포장마차 주인으로 새 삶을 살고 있다. “각각의 배역마다 다 매력이 있어요. 이 달 말부터는 SBS 드라마 ‘장길산’에서 길산의 의형인 박대근으로 출연해요. 다양한 연기를 하면 또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어 좋습니다. 남들은 인생을 한 번 살지만 저는 수십 번, 수백 번도 살 수 있으니까요.” 김영호는 요즈음 뮤지컬 ‘투 맨’의 공연을 준비하느라 하루하루가 바쁘다. 1997년 공연된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마차’를 뮤지컬로 재구성한 ‘투 맨’은 포장마차를 하며 어려운 삶을 힘들게 이어가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이 뮤지컬에서 김영호는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형 역을 맡았다. “사람들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연극을 만들고 싶어하는 형이에요. ‘야인시대’의 이정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제 이런 역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셨다면 아파하고 고뇌하는 이정재의 모습을 조금은 느끼셨을 거예요.” 김영호는 뮤지컬로 연기를 시작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노래를 부르기 위해 뮤지컬에 출연했다가 연기를 하게 되었단다. 김영호의 어릴 적 꿈은 가수였다. 90년에 강변가요제 본선에까지 진출했을 만큼 그의 노래실력은 수준급이다.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이렇게 연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인생이라는 게 참 묘해요. 그래도 전 연기를 하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그것이 뮤지컬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김영호는 몇 달 전 부산에 있는 범어사에 가 108배를 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독실한 불교신자이기도 한 그는 가끔 아내에게 “60살이 넘어 할 일이 없어지면 그 땐 출가하자”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의 아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단다. 그가 하는 일이라면 도둑질이라도 함께 할 만큼 아내는 늘 그의 편이다. “96년에 공연했던 ‘명성황후’를 마지막으로 뮤지컬을 그만두고 브라운관에 섰을 때 아내는 그저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8년만에 뮤지컬을 다시 시작했을 때도 그랬지요. 그런데 이상해요. 그런 모습이 제겐 더 힘이 되거든요.” 김영호는 요즈음 쌍용 렉스턴을 타는 재미에 폭 빠져있다. 소음이 적고 승차감도 좋아 아주 마음에 든단다. 10년 넘게 운전을 했지만 사고 한번 안냈을 만큼 베테랑 드라이버다. 그가 들려준 무사고 비법은 음악을 크게 틀고 여유롭게 운전하는 것. 아무리 급해도 천천히 가는 것이 무사고 노하우란다. “나를 잃어버리고 싶어 연기를 계속한다”는 김영호. 하지만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은 다른 배역들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것이 아닐까? 피곤이 내려앉은 얼굴을 하고도 마냥 행복한 듯 무대 위를 뛰어 다니는 그를 보고 있자니 문득 스치는 생각이다.
상명대학교 정홍택 석좌교수 ‘문화’와 ‘대중’의.. 2004-05-11
기자, 68∼73년 미스코리아대회 사회자, SBS TV ‘생방송 모닝와이드’ 고정 패널, 고정 칼럼니스트, 영상물등급위원,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국제영상자료원연맹 부회장,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MBC FM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주말 진행……. 몇 가지만 뽑아보아도, 상명대학교 정홍택(67) 석좌교수의 경력은 여러 사람의 그것을 합친 것만큼 다채롭다. 그러나 조금만 눈여겨보면 정 교수가 걸어온 길이 ‘문화’와 ‘대중’이라는 가로수 사이로 곧게 난 외길이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좋았는지 물었더니 “다 좋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평생 언론인으로 남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요즘에는 천직이 아닐까 싶을 만큼 학생들 앞에 서는 일에 만족하고 있는 중이다. “대학원에서 예술경영을 가르칩니다. 이 학문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30여 개 대학이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어요. 건축물이나 의상은 물론 음식도 예술인 시대잖아요. 이제 생활이 다 예술이에요. 예술, 문화를 수요자에게 어떻게 옮기느냐, 또 예술가들이 어떻게 하면 신나게 활동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해법을 찾는 학문입니다.” 실생활에 바로 대입할 수 있는 실용학문이어서 학생들의 반응은 특히 뜨겁다. 학생들이 졸업한 뒤 찾아와 감사를 표할 때 그가 느끼는 보람은 말로 표현 못할 만큼 크다. 암벽등반에서 스키, MTB까지… 만능스포츠맨 주중에는 강의와 영상물심의, 주말에는 라디오 방송 진행. 정홍택 교수의 일상은 웬만한 젊은이들보다도 바쁘게 돌아간다. 그래도 피곤한 기색은 찾아보기 힘들다. 비결을 꼽자면, 익스트림 스포츠로 단련한 체력이 우선 큰 자산이다. “암벽등반, 빙벽등반, 윈드서핑, 스쿠버다이빙, 권총사격, MTB, 스키를 즐깁니다. 요즘도 겨울에는 스키장에서 살아요.” 67세의 스포츠맨 앞에서 3층 계단 오르기도 귀찮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대는 게으른 30대인 것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정 교수의 두 번째 자산은 ‘늘 즐겁게 사는 것’이다. “학생들 가르치는 거? 재미있지.” “그 당시에는 운전이 아주 재밌더라구.” “값싸고 맛있는 집 찾아다니는 게 재미지요.” 정 교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재미있다’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재미를 주는 대상은 평범하다 못해 소탈한 것들이 대부분인 만큼, ‘재미있다’는 표현은 삶에 관한 정 교수의 낙관적인 시선이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는 주름도 다 그 때문에 생긴 거라고 여겨질 만큼 시원한 웃음. 그 웃음 뒤에 살아온 세월만큼 잊지 않고 붙잡아둔 따뜻한 우정과 낭만과 추억이 두툼하다. 그래서 정교수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일은 아주 ‘재미있다’. 자동차에 관한 이야기 또한 그렇다. “57년에 서울 신설동 네거리에서 돈암동 삼거리까지 뻗은 도로, 당시에는 제일 넓은 포장도로였던 그곳을 오가며 운전을 배웠지요. 형님이 갖고 있던 윌리스 지프로. 그때는 운전하기 정말 좋았어요. 서울 시청 앞길도 한참만에 차 한 대씩 지나갈 정도로 한가했으니까.” 형님의 운전기사를 ‘꼬셔서’ 운전을 배우고 면허를 따 64년에 59년형 닷지를 첫차로 마련했다. 그 뒤로도 새나라, 도요타 토요펫, 캐딜락, 현대 포니1, 마크V, 대우 로얄살롱, 현대 쏘나타, 뉴 그랜저, 에쿠스 JS350…… 10여 대 넘는 차가 그와 인연을 맺었다. “토요펫은 일본에서 바로 들어온 차라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었지요. 운전석 자리에 사람이 없으니 당시 경찰이든 지나가는 사람이든 다들 깜짝깜짝 놀라던 게 기억나요. 가수 김세환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로 MTB를 사서 차 지붕에 얹고 다니기도 했어요. 자전거를 똑바로 세워서 지붕에 이고 다닌 것도 내가 처음이어서 시선을 어마어마하게 받았습니다(웃음).” 지금 타는 차는 기아 쏘렌토 리미티드다. 겨울 스키장으로 향할 때도 험한 길이든 눈길이든 믿음직스럽게 달려 대만족이다. 앞으로는 바쁜 일상 때문에 잠시 미뤄두었던 여행길도 쏘렌토와 함께 나설 생각이다. “죽을 때까지 재밌게 살 겁니다. 돌아보면 아쉬움도 없어요. 와인을 좋아해 국내에서 와이너리를 하려고 마음먹었다가 기후조건 등이 안 맞아 접은 걸 빼곤(웃음). 최고급 와인을 생산해서 ‘정홍택’이라고 이름 붙일 생각이었는데…….” 정 교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즐거웠지만, ‘정홍택’이라는 이름의 국산와인을 맛볼 수 없게 된 것만큼은 기자도 아쉽다.
4WD 경기장에서 만난 통기타 가수 최지연 ④인.. 2004-04-21
4WD 경기에 도전하는 여성 드라이버를 간간이 만날 수 있다. 전복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거친 무대에 도전하는 사람은 대부분 남성이기에 여성 드라이버는 눈에 띄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최지연(29) 씨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주목을 끌기보다는 당당한 실력으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지난 2월 28일 강원도 주문진에서 열린 타임 트라이얼 경기는 그녀의 데뷔전이었다. 2년 동안 오프로딩을 경험했고, 경기 참가를 결정한 뒤 연습도 많이 했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다. “노래와 오프로드 둘 다 소중해요”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 실전은 너무나도 차이가 컸다. 몇 번을 돌며 코스를 익혔지만 스타트 라인에 서니 머릿속에 코스가 그려지지 않았다. ‘괜히 참가했나’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경기장은 또 왜 그렇게 넓어 보이는지. “3분이 조금 넘었지만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습니다. 어떻게 끝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38명의 선수 중 24위, 첫 출전치고는 나쁜 성적이 아니다. 코스가 어려워 리타이어할 것으로 예상했던 대회 관계자들은 “남자 선수 이상의 실력”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완주는 했지만 끝까지 달린 선수 중에서는 가장 처진 기록이에요.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둘 생각이었지만 욕심도 생기더군요. 요령을 익혔으니 다음 경기에서는 좀더 나은 기록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운전 테크닉은 물론이고, 순간순간 빠르게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기회였다. 자신을 컨트롤하는 능력도 경험에서 쌓여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곳을 지나면 또 다른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어서 운전 기술을 쓸 여유도 없었습니다. 핸들을 돌려 피할 생각밖에 들지 않더군요. 그래서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는 것 같아요.” 체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경기 코스를 반 정도 돌았나 싶었는데 팔 힘이 빠졌고, 경기가 끝난 뒤에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녹초가 되었다. 누비라를 타던 그녀는 2001년 잠깐 타본 갤로퍼에 흠뻑 빠졌다. 높이 앉아서 먼 곳까지 내려다 볼 수 있는 넉넉함이 SUV의 매력이었다. 주저 없이 갤로퍼로 차를 바꾼다. 그리고 갤로퍼 동호회인 G클럽에 가입해 오프로딩의 묘미를 알게 된다. 처음에는 핸들을 잡고 앞으로 갈 줄밖에 몰랐지만 이제는 웬만한 정비도 척척 해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보디업에 33인치 타이어를 끼웠고 돌이 튀는 것에 대비해 라디에이터 그릴은 철망으로 감쌌다. 멋스런 버그 가드도 달았고, 장애물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 핸들도 바꾸었다. “오프로드를 다니면서부터는 1년에 한 번 바꿀 부품을 6개월마다 교체해야 하는 것이 부담이 되기는 해요. 오프로드 운전에서부터 기본정비까지 점점 할 수 있게 되는 스스로의 모습에 놀라기도 합니다.” 그녀의 직업은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통기타 가수다. 노래 부르는 일과 오프로드에 임할 때의 공통점은 ‘열정’이다. 노래에는 직업인으로서의 열정이 담겨 있고, 열정적으로 즐기는 오프로딩은 그녀의 취미이자 삶의 방식이다. “화려한 조명이 비치는 무대지만 혼자 서 있습니다. 관객과 같이할 때만이 진정한 가수지요. 노래에 열정을 담았을 때 관객과 호흡하는 무대가 만들어집니다.” 경기 역시 같은 맥락이다.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 그리고 경기를 즐기는 관람객이 있습니다. 하지만 차안에서는 혼자입니다. 열정을 가지고 오프로딩을 나서고, 힘을 다해 달리면서 맛보는 쾌감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어요.” 카페에 온 손님들은 기타 반주에 더해진 그녀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하루의 피곤함을 푼다. 그녀 역시 1주일의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해 주말이면 커다란 갤로퍼를 몰고 오프로드로 달려간다. 극과 극은 통한다더니 이럴 경우에 쓰는 말인가 보다. 그녀의 콜 사인은 꽃잎. 즐겨 부르 는 노래 제목에서 따온 이름이다. 하지만 그녀는 보기에만 좋은, 가녀린 꽃잎이 아니다. 촬영을 위해 경기장을 달려 달라는 요청에 주저 없이 차에 오르는 모습이 참으로 씩씩했다. 4WD 경기장에서 활약하는 그녀의 모습이 기대된다.
MC 정은아와 지프 그랜드 체로키 ③인터뷰 - .. 2004-04-21
오래 기다리셨어요?”SBS 일산 탄현제작소 F스튜디오 앞 주차SBS 일산 탄현제작소 F스튜디오 앞 주차장. 녹화를 마치고 성큼성큼 걸어 나오던 정은아(40) 씨가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말투가 전혀 낯설지 않다. 그녀를 직접 만나는 것이 처음이지만 바로 어제 본 사람처럼 자연스럽다.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잡거나 기자의 질문에 논리 정연하게 대답을 할 때도 일부러 자세를 가다듬지는 않는다. 국내 최고의 MC라는 평가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차안에서 음악 감상·독서로 여유 찾기도 정은아 씨의 트레이드마크는 특유의 살가운 미소다. 브라운관을 통해 보아 온 그녀의 미소를 직접 마주하는 것은 매우 유쾌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정은아 씨로부터 인터뷰 약속을 받아내기는 그리 간단치 않았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스케줄에 가로막혀 한두 시간도 비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전화를 통해 짧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옆에 있는 누군가와 급하게 말을 주고받을 정도로 그녀의 일상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 방송되는 SBS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을 비롯해 ‘결정 맛대맛’, KBS2 ‘비타민’, MBC ‘휴먼다큐 희로애락’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각종 CF, 서울시의 홍보대사까지 맡고 있다. 그런데도 스케줄을 관리해 주는 매니저도 없고, 운전까지 직접 한다. 정은아 씨는 진취적이고 바쁘게 움직이는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 그리고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99년 지프 그랜드 체로키를 샀다. 현대 엘란트라, 쏘나타, 뉴 그랜저에 이은 네 번째 차다. “어느 영화에서 검정색 체로키를 본 순간 한눈에 반했어요. 첫 느낌이 참 좋았어요. 캐주얼한 감각에 힘도 넉넉하고, 등산과 스키, 여행을 즐기는 저에게는 꼭 맞는 차입니다. 지금도 트렁크에 항상 골프가방과 등산화를 싣고 다녀요.” 그랜드 체로키로 바꾸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무척 의아해 했다고 한다. SUV가 ‘점잖지 않은 차’로 인식될 때의 얘기다. 하지만 정은아 씨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차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랜드 체로키를 통해 자연과 더욱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선택은 신중하게 해야 하지만 그 뒤에는 충분히 즐겨야 한다는 신념대로 그랜드 체로키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 승용차보다 편의성이 떨어지지만 ‘투박한 멋이 매력인 SUV는 그 자체로 SUV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직업상 여기저기 다녀야 하므로 차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요. SUV는 실내가 넓고 안락해 차안에서 틈틈이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기 좋아요. 갑자기 비나 눈이 내릴 때는 그랜드 체로키 덕을 톡톡히 보지요.” 정은아 씨는 1990년 KBS 아나운서 17기로 입사한 뒤 운전을 시작했고, 지금은 스스로 베스트 드라이버라 자신한다. 그녀가 시아버지로부터 들은 첫 번째 칭찬도 “운전을 참 잘한다”는 것이었다. 남편과 함께 차를 타더라도 절대 운전대를 양보하는 법이 없다. 특히 아침방송을 위해 새벽녘 집을 나설 때는 오감을 모두 동원해야 하는 운전을 통해 몸과 마음을 깨우고 있다. 정은아 씨는 “여성이 남성보다 운전을 못한다”는 견해에 대해서 한마디로 “말도 안 된다”고 잘라 말한다. 오히려 “아직도 그런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냐”며 조금은 높은 톤으로 되물었다. “운전이 서툴던 초보시절에는 오히려 제가 다른 차에 위협을 주었지요. 물론 남성들의 험악한 운전에 당황했던 때도 있고요. 하지만 지금은 운전하면서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못 느끼고 있어요. 성별이 아니라, 개인의 차이가 아닐까요.” 인터뷰가 끝나고 다음 일정을 위해 바삐 떠난 그녀가 전화를 걸어왔다. “제가 SUV를 좋아하는 이유를 정확히 말씀드렸던가요? SUV는 가벼움이 아닌 묵직함, 날렵함이 아닌 투박함을 담고 있지요. 그래서 저는 SUV가 좋아요.”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안광훈·서범석 & BMW Z.. 2004-04-16
“이태리의 피닌파리나처럼 모든 차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을 수 있는 디자이너.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는 모든 사람의 꿈 아닐까요?” '2015년 안에 자국에서 양산 가능한 자동차’라는 주제 아래 지난 2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2004 세계 자동차 디자인 경연대회’(2004 World Automotive Design Competition). 캐나다 국제오토쇼가 주최하고 미국 알라이스사가 후원한 태평양 너머의 디자인 축제는 지난해 3번째 대회에서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의 김성중 군이 대상을 받았던 낯익은 행사. 세계 13개국 20개 학교가 참가한 올해 최우수상은 영국 코벤트리 아트&디자인 스쿨에 돌아갔지만 한국 디자인의 저력은 여전했다. 홍익대 산업디자인과 4학년 안광훈(27), 서범석(26) 씨의 작품이 신설된 ‘베스트 프레젠테이션’ 부문에서 당당히 대상을 받은 것. 이들의 출품작은 1960년대 기아자동차가 내놓았던 삼륜 화물차 T600을 소재로 3면이 바다인 한반도의 특성을 고려해 디자인한 수륙양용 RV 컨셉트 S&R(Swim & Run)이다. 피닌파리나 동경하는 미래의 자동차 디자이너 안광훈 씨와 서범석 씨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같은 이부자리에서 살을 비비며 살아온 자취 동기다. 지난해 디자인전 주최측의 시드 배정이 끝나고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이근 교수의 지도 아래 이들을 포함한 9개 팀이 출품작 준비에 들어갔다. 스스로를 ‘환상의 팀’이라고 말할 만큼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두 친구는 자취방을 작업실 삼아 3주일여 동안 단 한번의 의견충돌 없이 착착 작품을 완성해갔다. 그리고 지난 2월의 어느 토요일. 여느 때처럼 오후 1시쯤 일어나 밥 먹을 궁리에 빠져 있던 두 동거인에게 학과 사무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너희들, 이번에 상 받았어!” 곧이어 주최측의 축하 메시지가 이메일로 전해졌고, 이들이 세계 대회에서 입상했다는 사실을 머리로 받아들인 것은 그러고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너무 좋아서 서로 껴안고 소리지르다가 밖으로 나왔어요. 발표 날이 때마침 발렌타인데이여서 거리에는 하나같이 초콜릿 바구니를 끌어안은 연인들로 넘쳐나더군요. 둘 다 여자친구가 없어 평소 같았으면 ‘저것들, 콱 때릴까?’ 라며 심통이라도 부렸을 텐데, 이 날만큼은 조금도 부럽지 않았어요. 곧장 플레이스테이션 게임방 가서 ‘위닝 일레븐’(축구게임)으로 뒤풀이를 했습니다.“ 수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각종 언론에서의 인터뷰 요청이 빗발치듯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벙벙한 기운에 휩싸인 채 학기초는 쏜살같이 흘러갔고 두 디자인학도의 머릿속에는 전과 다른 무게의 고민도 생겨났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멋대로 행동할 수가 없어요. 책임감이라기보다는 자기 최면이랄까……. 예전 같았으면 여건 맞는 곳에 적당히 취직하려고 했겠지만, 이제는 조금 더 큰 무대에서 경험을 쌓고 싶어요.” 안광훈 씨의 목표가 BMW, 푸조 등 유럽 자동차 메이커의 디자인 스튜디오 입성이라면 서범석 씨는 좀더 풍부한 디자인 경향을 맛보고 싶어한다. 자동차 디자인은 그의 마지막 꿈이다. “가능하면 북유럽 쪽으로 디자인 유학을 가고 싶습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미니멀한 디자인에 푹 빠져 있거든요. 디자인 세계에 경계를 두고 싶진 않아요. 자동차 디자인이라……. 기왕이면 이태리 피닌파리나처럼 모든 차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을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어야지요. 저뿐 아니라 디자인을 공부하는 모든 사람의 꿈 아닐까요?” 캠퍼스에 나타난 BMW Z4를 마주하자 두 청년은 “와~!”하는 탄성과 함께 휘둥그레진 눈을 감추지 못한다. 파격적인 디자인에 대한 보통의 거부반응과 달리, 이들에게 크리스 뱅글의 BMW는 균형감과 입체감이 완벽한 예술작품에 다름 아니다. 뒤 펜더의 역동적인 라인을 손으로 쓰다듬고 소프트톱을 열어보는 등 구석구석을 들추던 두 청년은, 그러나 어쩐 일인지 ‘운전해보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디자이너는 역시 기능성보다 기능미가 먼저인가?’ 기자의 예상은 그들의 수줍은 대답과 함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났음이 밝혀졌다. “저희, 아직 운전면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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