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아침고요수목원 설립자 한상경 교수 “중요한 것은 .. 2004-10-19
경기도 가평에 있는 아침고요수목원을 찾는 이는 한해 50만 명이나 된다. 전국에 수목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생겨나는 곳들 대부분이 적자를 보고 있지만, 아침고요만큼은 재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질 정도로 성공한 수목원으로 자리잡았다. 3년간의 준비기간과 불확실한 출발 그리고 성공까지, 설립자인 한상경 명예교수(54, 삼육대학교 원예학과)에게 쉬운 일이 어디 있었을까. 지난해 한 교수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펴낸 수필집 ‘아침고요 산책길’(샘터 간)에는 어려웠던 개장 초기의 회상이 실려있다. 진입로 한가운데 커다란 바위를 갖다놓는 사람, 차들이 다니지 못하게 포크레인으로 도랑을 파놓는 사람, 길옆에 필요하지도 않은 축대를 쌓는 사람, 일부러 경운기나 차를 세워놓아 통행을 방해하는 사람, 진입로를 알리는 이정표를 뽑아서 내팽개치는 사람……. 그에게 자연과의 싸움보다 힘들었던 것은 그악스레 길을 막는 사람들과의 대면, 그 과정에서 입은 상처였을지 모른다. “한국정원의 아름다움, 세계에 알리고 싶다” 하지만 8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침고요에서 만난 한상경 교수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넉넉했다. 달라진 것은 ‘명예교수’로 바뀐 그의 직함과 수목원의 풍경이다. 개장 초기만 해도 황량했던 수목원은 이제 빈곳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풍성하고 세련된 이미지로 시야를 꽉 채운다. 특히 19개의 주제정원 중 하경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하경정원은 그가 제시하고 가꾸고자했던 한국정원의 진수다. “캐나다 빅토리아 섬에 부처드가든이 있습니다. 만들어진 지 1세기가 지난 정원이에요. 특히 그곳의 하경정원은 아름답기로 유명하지요. 항상 부처드가든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이제 어느 정도 이루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특히 아침고요의 하경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정원의 모습은 세계의 어느 정원하고도 겨룰 만합니다.” 아침고요수목원은 올해 관람객들에게 설문지를 돌려서 고객만족도 조사를 했다. 800통쯤 걷힌 설문지를 분석했더니 ‘매우 만족’과 ‘비교적 만족’이 94%에 이르렀다. “나 여기서 죽고 싶어”라고 소리치는 아주머니,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어디 있는 줄 알아? 끝내주는 데 있어”라고 자랑하던 청년……, 관람객들의 행복한 표정은 숱하게 보아왔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그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은 감동을 찾아 끊임없이 방황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방황을 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어느 한 장소를 보고 감동을 받으면 그 기억을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주변에 얘기하고 나누고 싶어하기 마련이지요. 아침고요의 사훈이 ‘가슴속에 감동을’, 행동지침이 ‘아름답게, 깨끗하게, 따뜻하게’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침고요를 사이에 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만남이 소중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한 교수는 이 정도 성과에 만족하는 눈치가 아니다. 얼마 전 27년간 근무한 대학을 떠나 명예교수로 남은 것도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학교에는 ‘자연을 사랑하는 한상경이 결국 자연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떠난다’는 얘기가 돌았지요(웃음). 더 늦기 전에 할 일이 많다는, 일에 대한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어요. 아침고요에 관한 구상을 한 게 미국 교환교수 시절인데, 이번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한국정원을 만들어 교민들이 긍지를 갖고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 정원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문화적인 점령에 나서자는 생각도 있고……. 구체적으로 결정한 것은 없지만 계획은 몇 가지 갖고 있지요.” 최근 그는 ‘아침고요입양복지회’라는 단체도 만들었다. 몇 년 전 우연히 국내 입양 관련 일을 열심히 하는 이들을 보고 감동을 받았고, 본격적으로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지원하고 격려해주는 사람도 필요할 것 같아 시작한 일이다. 일면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수목원과 입양복지회 일의 공통분모는 모든 생명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이다. 한상경 교수가 ‘자연’과 ‘인간 세상’을 바삐 오갈 때 타는 차는 쌍용 렉스턴이다. 82년 면허를 따서 지금까지 현대 포니1, 대우 로얄 XQ, 현대 쏘나타, EF 쏘나타를 타다가 얼마 전에 장만한 차다. 그 가운데 어떤 차가 가장 마음에 들었냐고 물었더니 “탈 때마다 다 좋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자동차에 관한 그의 욕심은 일 욕심에 턱없이 못 미친다.
건축가 황두진 “선하고 소박한 사람이 좋은 건물을.. 2004-09-16
서울 통의동에 자리잡은 황두진(42) 씨의 건축사무소에는 그 흔한 간판 하나 찾아볼 수 없다. 황 씨의 일터임을 알리는 흔적은 대문 옆 기둥에 붙여놓은 작은 명함뿐. 지금 건물로 이사온 지 만 2년이 넘었지만 황 씨에게는 여전히 간판 욕심이 없다. “수십 년 동안 통의동을 지켜온 토박이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고싶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통의동을 바라보는 건축가 황두진의 예사롭지 않은 시각은 그가 건물을 설계하는 바탕이 되고 세상을 읽는 바로미터가 된다. “좋은 건물이란 주인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 오가며 보는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해요. 건물주는 과시욕 대신 선하고 소박한 마음을, 건축가는 건물이 일개 조형물이 아니라 도시라는 커다란 틀 속에서 주위의 모든 사물과 소통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사물·환경·문화와 대화하는 건축 통의동은 효자동과 경복궁 사이에 자리한 작고 조용한 동네다. 은행나무 길로 유명한 효자로를 중심으로 길 건너에 경복궁이 보이고 위로는 청와대가, 아래쪽으로는 정부종합청사를 비롯한 주요 행정관청이 밀집해 있는 서울의 중심부. 하지만 통의동은 흑백필름처럼 1950~60년대 모습 그대로이고 이곳을 제대로 아는 이도 거의 없다. “도서출판 열린책들의 사옥을 설계하고 감리를 거치면서 통의동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권력의 통제를 받았던 탓인지 지난 몇 십 년 동안 개발되지 못하고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더군요. 완전히 새로워진 서울 안에서 숨어 있던 역사를 발견했다고 할까요?” 건물 한 채를 세우기 위해서는 길과 공간을 이해해야 한다. 황 씨는 열린책들 사옥을 짓기 위해 통의동의 과거를 연구했고 자연스레 서울의 역사와 한국건축의 미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통의동에 대한 황 씨의 애착은 스스로에 대한 의무감이며 미래전략의 일환인 셈. 그가 생각하는 통의동의 미래는 ‘일하면서 살기에 좋은 동네’다. 주거와 상업의 기능을 접목하되 인사동처럼 상업이 전부가 되어버리는 것은 금물. 황두진 씨는 이에 대한 해답으로 아래층은 사무실로, 위쪽은 거주공간으로 활용하는 ‘저층 주상복합건물 지구’를 구상하고 있다. 건축이 건물과 주변환경간의 어우러짐이고, 엔지니어링과 아트 혹은 디자인의 결합임을 생각할 때 황 씨의 관심사가 비단 통의동이나 건축물에만 매달려 있지 않음은 매우 당연한 일. 특히 자동차의 경우 건축과 비슷한 부분―공간, 편의성, 안전에 대한 고려, 공학설계와 디자인의 조화 등―이 많아 가벼운 관심 이상의 애정을 보인다. “건축물이 움직이지 않는 생활환경이라면, 차는 아주 동적인 생활환경이지요. 건축과 자동차는 실제로 대단한 라이벌이자 동반자적 관계에 놓여 있지만, 국내의 경우 자동차와 건축산업의 깊이 있는 대화가 아직까지 전무합니다. 이제는 폭스바겐의 볼프스부르크나 드레스덴, 아우디 잉골슈타트 같은 ‘자동차 문화단지’가 생겨나야 하고, 또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깔끔하게 꾸며둔 자동차 창고에 불과한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의 자동차 전시장이 그의 마음에 들 리 없다. “롤스로이스 팬텀은 참 못생긴 차이지만 그 속에는 ‘보수와 전통’이라는 롤스로이스만의 명확한 코드가 있어요. 전시장도 마찬가지예요. 자극적이거나 화려하지 않아도 그 브랜드만의 미학이 잘 녹아든 그런 건물이 있었으면 해요. 우리 대중은 더 이상 금발머리에 속지 않아요. 기능주의나 상업주의적인 한계를 벗어나 문화적인 코드, 매니아적인 코드를 찾아야 하고 저도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건축은 지탱해야 할 무게보다 자신의 무게가 더 나가는 모순에 고민하고, 건축가는 건물의 경량화라는 숙제를 짊어지고 산다. 하지만 황두진 씨는 이미 해답을 알고 있었고 그 실마리를 로터스 창업자 콜린 채프먼의 한마디에서 찾을 수 있었다. ‘가장 이상적인 레이싱카는 결승점을 통과했을 때 산산이 부서지는 차다. 왜냐하면 정확히 필요한 만큼의 부재와 강도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배우 권해효 로버 미니 타는 소문난 카 매니아 .. 2004-09-14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내려오는 한 남자. 불꺼진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더니 호흡을 가다듬고는 무대 위에 오른다. 잠시 후 조명이 켜지고 남자는 기계처럼 빠른 속도로 대사를 쏟아낸다. 배우 권해효다. 무대 위에서는 연기자, 무대 밖에서는 사회운동가 얼마 전까지 드라마에서 한 여자를 짝사랑하는 순진한 사내를 연기하던 권해효가 이번엔 무대를 바꿔 대학로 연극판에 섰다. 작품은 세 남자의 질투와 우정을 그린 연극 ‘아트’. 이 연극에서 그는 지방대학의 교수인 규태를 연기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트’는 코미디다. 이 연극에서 권해효는 조희봉, 이대연과 함께 수·금·일요일 3일만 무대에 선다. 월요일을 빼고 나머지 3일은 정보석, 이남희, 유연수가 연기한다. 드라마를 끝내자마자 또 다른 드라마를 시작하고, 그것도 모자라 연극에까지 출연하느라 그의 하루는 요즘 바쁘게 돌아간다. “오늘도 전라도 광주에서 촬영을 끝내고 지금 막 올라오는 길입니다. 인터뷰에 TV 출연에 공연까지, 요즘은 정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바쁜 일상이 싫지만은 않은 눈치다. 역시 그에게는 바쁘게 돌아가는 삶이 잘 어울린다. 쉼 없이 자신을 몰아치는 것이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방식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연기자니 배우니 하는 말 말고도 타이틀이 여럿 붙었다. 그 중에는 호주제 폐지 홍보대사나 탄핵무효 촛불집회 사회자 등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타이틀도 있다. “민가협에서 주최하는 ‘양심수 1일 감옥 체험’ 행사에 참여한 일을 계기로 그해 겨울부터 ‘양심수 석방을 위한 시와 노래의 밤’ 행사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후 여러 행사에 참여하면서 이런저런 타이틀이 붙게되었지요. 특별히 활동을 열심히 해서라기보다 그냥 연예인이니까 그런 이름들을 붙여준 것 같아요.” 짧은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그는 아주 진지했다. 브라운관에서 혹은 연극에서 보아온 장난스럽고 정신없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본지 8월호 표지를 보고 “야, 인피니티네”라고 감탄할 만큼 그는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자동차 매니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입차는 물론 국산차의 제원과 형식을 줄줄이 꿰고 다닐 정도였다니 그 수준을 짐작할 만하다. 지금도 200여 종의 차쯤은 엉덩이만 보고도 모델이 뭔지 알 수 있단다. “차를 무척 좋아합니다. 지금은 랜드로버 디스커버리와 로버 미니를 몰고 있어요. 디스커버리는 1년 전에 샀는데 덩치가 커서 둔하긴 하지만 긴장감을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그 차를 타면 내가 운전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미니는 제 드림카였어요. 우리나라 차들 너무 밋밋하잖아요. 색상도 그렇고……. 그런 점에서 미니는 정말 재미있는 차지요. 사람들이 다들 제 차를 보면 웃어요. 남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릅니다.” 무대 위에서는 연기자로, 무대 밖에서는 사회운동가로 살아가는 권해효는 정말 멋진 남자다. 바쁜 일이 조금 잠잠해지면 그는 또 광화문 네거리에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물론 그럴 일이 아주 없기를 바라지만.
음악평론가 이해성 ‘카오디오 음악산책’의 20년지기 2004-09-14
창간 20주년을 맞은 은 20년된 친구들을 많이 갖고 있는 행복한 잡지다. 창간호부터 을 읽으며 자동차에 대한 꿈을 키워온 전국 곳곳의 독자들은 물론이고, 조경철(아폴로박사, 한국우주과학연구소장), 조주청(만화가, 여행가), 이해성(음악평론가), 전영선(자동차연구가) 등 지면을 빛내주고 있는 필자들은 의 20년지기 죽마고우다. 그 가운데 연재를 시작해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음악란을 지켜오고 있는 필자가 음악평론가 이해성(64) 선생이다. 이해성 선생의 첫 칼럼이 에 실린 것은 통권 5호인 85년 1월호. 이번 9월호가 231회째이니 20년 동안, 정확히 19년 9개월 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고 칼럼을 연재해왔다는 얘기다. “장르 불문하고 사랑이 녹아 있는 음악에 관심” “예전 미국에서는 포드 등 자동차 메이커들이 새차를 홍보하기 위해 노래를 만들어 배포하고 그랬어요. 에서 관련 자료를 주면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어달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담당기자가 ‘얘기 나온 김에 음악칼럼 하나 쓰는 건 어떻겠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시작했는데,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네요.” 말이 쉬워 20년이지, 한 회도 빠지지 않고 20년간 연재를 한다는 것은 보통 필자라면 쉽지 않은 일이다. 해외여행을 떠날 때도 있고, 다른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도 있었지만 그의 ‘카오디오 음악산책’ 원고는 꼬박꼬박 제 날짜에 편집부로 도착했다. 20년 동안 지면을 통해 음악이야기를 풀어왔지만, 그의 가슴속 음악창고에는 아직도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쌓여 있다. 특히 그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장르를 불문하고 사랑과 감동이 녹아 있는 음악, 작가정신을 지닌 작곡가나 주관을 갖고 활동하는 뮤지션들에 관한 것이다. 이해성 선생은 1964∼75년 동아방송 PD시절부터 미국 팝은 물론 칸소네, 샹송, 제3세계 음악들에 관심을 가졌다. 79∼87년에는 KBS 제2FM에서 ‘세계의 유행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월드뮤직’을 다룬 첫 프로그램이어서 반응이 무척 좋았다. 요즘이야 PD, 작가, DJ로 역할이 나뉘어 있지만, 그때는 자료조사부터 원고, 진행까지 혼자 도맡던 시절이었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을 소개하려다 보니 자료를 찾는 일이 무척 힘들었지요. 그만큼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고 깊이 알아가면서 세계 곳곳의 음악이 전하는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요즘 한림대에서 ‘라디오제작’을 강의하고 있는데,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곤 합니다. 조금 거창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방송이나 음악이나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말이지요. 사랑이 없으면 커뮤니케이션이 안되잖아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칼럼 ‘카오디오 음악산책’의 애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다. 자동차생활 20년 필자이고 독자이면서도 자동차에 대한 욕심은 별로 키워오지 않은 모양이다. 이해성 선생이 지금 타고 있는 차는 8년 된 현대 마르샤다. 71년에 운전면허를 따고 75년에 중고 피아트 124로 첫 운전을 시작했다. 워낙 고물차여서 몇 개월 못 타고 폐차한 뒤 76년 현대 포니를 샀고, 그 뒤 스텔라, 쏘나타를 거쳐 마르샤까지 현대차만 타왔다. “차에 대해서는 욕심이 별로 없는데, 꿈이 하나 있어요. 웹서핑을 하다보니 유럽 푸조에서 유럽인이 아닌 사람에게 차를 리스해주더군요. 비용도 렌터카를 빌리는 것보다 싸요. 한국에서 신청하면 파리 드골 공항에 내리자마자 푸조의 새차를 받을 수 있는 겁니다. 그 차를 타고 프랑스의 해안선을 따라 자동차여행을 한번 해보자, 친한 친구와 이 멋진 프로그램을 놓고 의기투합 중이에요.” 유럽 자동차여행의 꿈이 실현된다면 이해성 선생은 어떤 CD를 챙겨서 파리로 날아갈까. 어떤 곡이 낙점될지는 알 수 없지만, 선곡의 원칙만큼은 20년 전 그가 지면을 통해 들려주었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나치게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은 피해야 한다. 안전운전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조용한 여운을 살려야 하는 음악도 적당치가 않다. 어느 정도의 적정 볼륨을 유지하는 음악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심포니처럼 장시간을 요하는 음악도 적절하지 않다. 자연 차에서 듣는 음악은 이지 리스닝 계열이 부담을 주지 않는다(본지 85년 1월호 ‘카오디오 팬을 위한 음악 산책’에서).’ 올해 안에 이해성 선생의 ‘카오디오 음악산책’ 원고가 프랑스 어느 곳의 인터넷망을 타고 편집부로 날아들기를 기원한다.
건전한 소비와 건강한 제조산업을 만지다 얼리어답터 .. 2004-08-23
리어답터’(Early Adopter)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2년여 전. 당시 신문이나 TV를 통해 소개되던 그들의 모습은 새로 나온 제품이면 무엇이든 사고 싶어 안달하는 소비지향적인 보보스 정도로만 비쳐졌다. 하루가 멀다하게 새로운 트렌드세터 그룹이 생겨나고 세상 풍속이 빠르게 변해 가는 시대에 살다보니 ‘금방 시들어 없어질 유행’으로 치부된 것도 사실. 하지만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소비가 한껏 움츠러든 지금까지도 얼리어답터는 꿋꿋이 살아 있고 이전보다 더욱 왕성한 활동으로 시장경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최문규(35) 씨는 자칫 소비광(狂)으로 내몰릴 수 있었을 대한민국의 ‘얼리’들을 결집하고 시장경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한 인물. 국내에 얼리어답터의 개념을 처음 소개한 것도, ‘얼리어답터’라는 홈페이지를 열고 회사를 차려 이들의 산업적인 가치를 입증한 것도 그의 몫이었다. 쇼핑광에서 제조산업의 조언자로 “대학교 땐가, 정말 갖고 싶은 카메라가 있는데 아무리 해도 돈이 모이질 않는 거예요. 당시 돈으로 200만 원쯤 하는 최고가 제품이었는데, 때마침 건축과 컴퍼티션 최우수상 상금이 그 정도 되더라고요. 다행히 1등에 뽑혔고 상금으로 꿈에 그리던 모델까지 구입했는데, 사고 나니까 다시 다른 물건에 눈길이 가더군요. 친구들에게 ‘이 제품은 이런 부분이 좋다’며 떠들고 다니긴 했지만 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본 일은 거의 없어요.” “쇼핑이 유일한 취미였다”고 밝히는 최 씨의 소비행각(?)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신상품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구입한 제품은 산산이 분해하고 조립해가며 장단점을 줄줄이 꿰고 다녔지만, 제 용도로 쓰인 물건은 손에 꼽을 정도다. 최 씨 자신이 얼리어답터 성향의 사람임을 알게 된 것은 미국에서 교수로 있는 매형 덕분이다. 박사 과정에서 얼리어답터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던 매형이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꼭 얼리어답터다”며 애버릿 로저스가 지은 이란 책을 보내온 것. “은 57년에 첫 인쇄물이 나왔지만 그의 이론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95년쯤 2판 인쇄본이 나왔는데, 30년 넘게 수면 아래 있던 책이 다시 등장한 데는 소비 시장에 어떤 변화가 생겼기 때문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 같아요. 반도체 기술의 발달로 생겨난 이전과는 다른 혁신적인 카테고리, 디지털 제품의 등장이지요.” 인터뷰 도중 느닷없이 최문규 씨가 꺼내든 물건은 리브리에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 소니의 e북 리더기였다. 기자 눈에는 PDA나 다름없어 보이는 제품. 하지만 “디스플레이 밑에는 실제 잉크가 담겨 있고, 40미크론 크기의 미세한 잉크 입자가 전기신호를 받아 글자를 만들어낸다”는 최 씨의 설명에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최근의 디지털 기기들은 편리하지만 너무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통에 일반 고객들이 자신의 주관만으로 구입을 결정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얼리어답터의 역할은 이런 데서 시작됩니다. 먼저 사서 충분히 써보고 소비자에게는 과연 살 만한 제품인지, 기업에는 ‘이런 기능들을 개선하고 보완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지요.” 웹 에이전시 회사를 운영하던 중 동호회 개념으로 문을 연 얼리어답터 홉페이지는 쥐 죽은 듯 살던 전국 ‘얼리’들을 끌어 모으면서 순식간에 아이디어 넘치는 최신 상품의 리포트 보고(寶庫)로 돌변했다. 신상품 출시를 앞둔 기업들은 얼리어답터 사이트 안에서의 홍보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제조업 분야의 다양한 회사들에 컨설팅을 해주고 있습니다. LG나 CJ 같은 대기업에는 가까운 미래 출시할 제품의 컨셉트나 마케팅 전략을 제시한다거나 중소업체에게는 품질 보완에 대한 조언과 유통망 소개 등으로 숨통을 틔워주는 거지요.” 최문규 사장 앞으로 하루에 많게는 100여 건의 컨설팅 의뢰가 들어오기도 한다. 중소기업 제품이 워낙 많지만 그 중에는 출시 자체가 무리인 것도 적지 않다고 한다. 지난 2~3년 동안 그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오며 바라본 제조산업의 현실은 그리 밝지 못하다. 대기업은 뻣뻣하고 보수적이라 재미없고 중소기업은 품질이나 아이디어가 떨어져 성공하는 경우가 드물다. “소비자들이 품질 낮은 제품을 별다른 불만 없이 잘 쓰니까 기업도 더 잘 만들어볼 노력을 하지 않아요. 우리나라가 일본을 능가하는 제조왕국이 되려면 제조업체나 소비자 모두 제품 얘기를 정말 많이 해야 되요. 중소기업이 살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건전한 소비를 촉진하는 ‘오피니언 리더’로서 저를 포함한 얼리어답터의 역할은 앞으로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배우 정재영 “터프한 모습은 잊어 주세요” 2004-08-17
정재영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영화 ‘실미도’의 한상필이 떠올랐다. 눈에 독기를 가득 품고 거친 욕설을 쏟아내던 한상필……. 그런 그가 연극 ‘택시드리벌’에서 소심하고 조금은 바보 같은 택시운전사 덕배를 연기한다고 했을 때 ‘과연 어울릴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지레짐작했던 온갖 모습은 배우를 만나고 여지없이 깨졌다. 그곳엔 한상필도 덕배도 아닌, 소탈하고 유쾌한 배우 정재영이 있었다. 연극 ‘택시드리벌’에서 주인공 덕배 연기해 배우 정재영. ‘킬러들의 수다’, ‘실미도’, ‘피도 눈물도 없이’ 등등 굵직굵직한 영화에 주연으로 등장했지만 그가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는 이는 드물다. 많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그것도 설경구, 안성기 같은 대스타들의 틈바구니에서 그의 이름 석자를 세상에 알리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영화 ‘아는 여자’가 개봉하기 전까지는. 정재영은 ‘아는 여자’에서 이나영과 함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 어찌 보면 그에게 있어 완벽한 첫 주연인 셈이다. 그리고 영화가 막을 내릴 무렵 그는 또 한번 주인공을 연기한다. 이번에는 영화가 아닌 연극이다. 그는 영화를 찍기 훨씬 전부터 장 진 감독의 연극 ‘택시드리벌’에서 주인공 덕배를 연기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97년 최민식, 2000년 권해효에 이어 세 번째 덕배로 그가 선택된 것이다. “‘실미도에서 워낙 강한 이미지로 나오다 보니 ‘그 모습을 빨리 씻어내지 않으면 다른 연기는 못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마침 감독님의 제안이 들어왔고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바로 승낙했지요. ‘택시드리벌’은 최민식 선배가 할 때도, 권해효 선배가 할 때도 재미있게 봤던 작품이에요. 제가 거기에 출연한다는 건 영광이지요.” 연극에서 덕배는 택시운전사다. 여자 승객이 뒷자리에 흘리고 간 핸드백 하나를 두고 열어볼까 말까 망설이고, 야식으로 컵라면을 먹을까 봉지라면을 먹을까 고민하는 소시민이다. 언뜻 정재영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정재영이 순박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저 강한 남자 아니거든요? 잘 보세요. 순박한 시골 청년 같지 않나요?” 그러고 보니 이 남자, 꽤나 재미있는 사람이다. 아무렇게나 던지는 말속에 웃음이 배어있다. 때론 진지하고, 때론 유쾌하고, 때론 괴팍하기도 하고, 또 때론 소심한 정재영을 장 감독은 잘 알고 있다. ‘택시드리벌’의 주인공으로 정재영을 일찌감치 점찍어 둔 것도 그런 다양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정재영은 임신 5개월에 접어든 아내와 5살 짜리 아들을 둔 가장이다. 그가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숨은 공로자는 대우 티코였다. 집이 경기도 송탄이던 지금의 아내를 회사가 있는 서울 강남까지 매일 데려다 주면서 조금씩 사랑을 키워갔단다. “아침마다 아내의 집 앞에서 기다렸다가 회사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렇게 두 달을 하니까 조금은 넘어오더라고요. 티코 아니었으면 못 할 일이었지요. 다른 차였다면 그때 제 월급으로 기름값 감당하기도 힘들었을 겁니다.” 7월 16일부터 시작된 공연으로 정재영의 하루는 바쁘기만 하다. 2시간동안 무대에 올라 쉼 없이 연기해야 하는 탓에 덕배 역은 배우 강성진과 번갈아 맡고 있다. 연극이건 영화이건 한 분야만 고집할 생각이 그에겐 없다. 시청자들만 허락(?)한다면 TV 드라마에도 출연할 생각이란다. 욕심 많은 이 남자가 선보이는 2004년 ‘택시드리벌’이 자못 기대된다.
풀로엮은집 홍세화 이사장 “소통과 연대의 문화공동체.. 2004-08-17
6월말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서울역사박물관 뒤편에 특별한 문화교육공간, 사단법인 ‘풀로엮은집’이 문을 열었다. ‘당신은 하나의 여린 풀이다. ‘풀로엮은집(이하 풀집)’은 수많은 풀이 한데 엮여 만들어 가는 소통과 연대의 공간이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소개 글의 일부다. 7월초 풀집은 교사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강좌를 열었다. 여름특강 ‘한여름낮의 꿈’ ‘헤이리 음악소풍’ ‘숲해설가와 함께 하는 풍경산책’을 비롯해 문학, 인문, 사회, 음악 등을 망라한 단계별 교과과정, ‘체질학습법’ ‘사진교실’ 풀빛문화교실’ 같은 교양강좌, ‘세계환경생태기행’ ‘유럽축구문화기행’이라는 테마투어도 있다. 강의는 조한혜정(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정윤수(축구평론가), 유영초(숲해설가), 이명원(문학평론가, 주간) 등 30여 명의 전문가들이 맡는다. 풀집이 여느 문화센터들과 다른 부분은 낯선 강좌 이름이나 진보적인 성향의 강사진들만이 아니다. 수동적이고 일방적인 교육이 아닌, 나누며 소통하고 배우며 연대하는 쌍방향 강좌, 문화교육 공동체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사회의 고통이나 불평등을 줄여나가는 일에 동참하겠다” 풀집 이사장은 홍세화(58) 씨다. 95년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한 권의 책으로 관용을 모르는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프랑스 망명객. 99년 두 번째 책 ‘쎄느 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로 한국의 젊은 벗들에게 토론을 청하고, 지금은 그리던 조국에서 언론인으로, 진보적인 논객으로 바삐 살아가고 있는 사람. “우리의 공교육이 소화할 수 없는 강좌들입니다. 공교육을 통해서는 공동체, 연대의식, 인권의식 이런 것이 생겨날 수가 없어요. 교육과정 자체가 치열한 경쟁과 억압의 과정이지요. 기능적인 지식은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올바른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성이나 가치관, 의식들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는 구조라고 봅니다. 여기에 물신주의가 겹치면서 소외현상도 가중되어 왔고……. 풀집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출발합니다.” 20여 년만에 돌아온 조국에서 홍 이사장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는 광고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어느새 한국은 물신주의가 완벽하게 지배하는 사회로 변해 있었다. “대한민국 1퍼센트 운운하는 쌍용 렉스턴 광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의미는 1대 99의 사회도 괜찮다는 논리예요. 그런 광고를 일상적으로 접하는 아이들이 어떤 가치관을 갖게 될 것인가,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이 교육자나 종교인인데 아쉽게도 고민이 보이지 않습니다. 인문학적 기초, 사회문화적 소양, 인간성의 항체가 실종된 현장을 매일 보고 있어요.” 홍세화 씨는 풀집 이사장 제의를 받았을 때 작은 힘이라도 보태자는 마음으로, 그의 표현대로라면 “어울리지 않는” 감투를 썼다. 풀집이 특히 교사들의 참여를 염두에 두고 출발했다는 점에도 공감했다.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려면 먼저 교사들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파리의 택시운전사’였던 홍 이사장이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는 계속 ‘뚜벅이’로 지내고 있다. 지난해 말 가족들이 입국하면서 그동안 다녀보지 못한 우리나라 곳곳을 둘러보고 싶어해 7개월 전에 산 차(르노삼성 SM3)는 거의 집에 세워두고 있다. 그의 자가용 이용원칙은 ‘대중교통수단으로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안 탄다, 혼자는 안 탄다’이다. 이용원칙이 아니라 불용원칙이다. “한국에서 운전을 한다는 것은 인권침해의 과정이지요. 자동차들이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길가로 내몹니다. 어떤 길은 아예 인도조차 없더군요. 저는 운전자들을 ‘자동차로 무장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자동차로 무장하고 도로에서 싸움을 벌이는, 그런 모습을 봅니다. 게다가 한국만큼 덩치 큰 차의 비율이 높은 나라도 없어요.” 관용의 나라 프랑스를 떠나 문제투성이 조국에서 살아가는 일은 홍 이사장에게 행복일까. 채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물론이지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지겨운 천국과 즐거운 지옥, 그런 말 있지요? 한국은 즐거운 지옥이에요. 그래도 제 사회니까, 제가 속한 사회니까, 그게 살맛이 더 있는 거지요. 계속 즐거울 수 있도록 사회의 고통이나 불평등을 줄여나가는 일에 동참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싶은 거지요.” 풀로엮은집 ☎(02)734-5953, www.puljib.org
뮤지컬 배우 박건형 ‘토요일 밤의 열기’에서 댄싱 .. 2004-07-13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 공연준비가 한창인 서울 동숭동의 월간 사무실에서 박건형을 만났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아래층에서 막 연습을 끝내고 올라오는 길이라고 했다. 아침 10부터 밤 11시까지 매일매일 이어지는 공연 연습 때문에 피곤했던 탓일까? 그의 입술에 물집이 둘이나 내려앉았다. 나직하게 내뱉는 말소리에서 피로가 조금씩 묻어난다. 매일 10시간씩 연습하며 토니역 소화해 박건형은 뮤지컬 배우다. 2001년 ‘더 플레이’라는 뮤지컬로 무대에 오르면서 그의 이름 앞에는 뮤지컬 배우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하지만 그가 뮤지컬만 연기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달 막을 내린 SBS 드라마 ‘파란만장 미스김 10억 만들기’를 유심히 보았던 독자라면 기억해 낼 것이다. 날렵한 외모와 훤칠한 키를 가진 낯선 총각을……. 그가 바로 박건형이다. 그의 외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CF에도 더러 출연했고 영화도 한 편 찍었다. “뮤지컬 배우로 시작은 했지만 다른 분야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아직은 이거다 싶은 길을 발견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여전히 길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이렇게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짠’하고 제 앞에도 쭉 뻗은 길이 나타나지 않겠어요?” 박건형은 요즘 공연 연습으로 하루하루가 바쁘다고 했다. 드라마를 끝내고 바로 연습을 시작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고. 그는 7월초에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려질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에서 토니를 연기한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 그는 작년에 오디션을 통해 토니라는 역에 당당히 캐스팅됐다. 지명도 있는 배우를 원했던 투자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를 주인공에 앉힌 사람은 바로 연출가 윤석화다. “떨어져도 좋으니까 시험이라도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오디션을 봤어요. 저도 붙게 될 줄은 몰랐는데……. 가능성을 보신 것 같아요. 연기도 잘 하지 못했고 춤은 더더욱 그랬고요. 사실 저 몸치거든요.” 쉬운 동작 하나 한번에 따라하지 못했던 그가 현란한 춤 솜씨로 무대를 휘젓는 춤의 달인 토니가 되기까지 그의 매일 매일은 연습의 연속이었다.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을 빼면 나머지 시간에는 오로지 춤만 추었을 정도란다. “남들처럼 안 되니까 몇 배는 더 열심히 해야지요. 그런데 공연을 한 달 앞두고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공연을 망치는 것은 아닐까? 이쯤에서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을 때 안무가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난 널 믿는다. 내가 널 멋지게 만들어 줄 거다.’ 그래서 용기를 얻고 다시 시작했어요. 그때 포기했다면 전 영영 무대에 설 수 없었을 겁니다.” 연습을 마치면 그는 하바나 스쿠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에게는 아직 차가 없다. 아니, 당분간은 차를 마련할 계획도 없다. 차보다는 오토바이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헬멧을 꼭 쓰고 조심조심 타면 차보다도 더 안전한 것이 오토바이라고 그는 말한다. 오토바이가 위험하다는 편견을 버리라면서. 그는 스물 여섯이라는 나이에 뮤지컬 배우라면 누구라도 탐낼 만한 무대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의 말처럼 가능성이 있어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운이 아주 좋아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스텝조차 제대로 밟지 못했던 그가 지금은 토니라는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게서 가능성을 본 윤석화의 눈은 정확했다.
‘삶의 스승 운동’ 펼치는 임양운 변호사 “누구.. 2004-07-13
인생은 때로 막막하다. 갈 수 있는 길은 수천 수만 갈래이고 어떤 표정과 걸음걸이로 길을 나서야 할지 망설이는 순간은 자주 찾아온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그래서 내딛는 걸음마다 시행착오였던 기억. 세월이 흘러도 ‘막막했던 그때’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주머니에 나침반 하나 있었다면, 내 옆에 든든한 이정표가 서 있었다면……. 임양운(52) 변호사에게 ‘막막했던 그때’는 고등학교 시절이다. “내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지요. 골똘히 생각을 해봐도 알 수 없어서 고통스런 번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학교에서 많은 이론을 배우는 것보다 인생을 먼저 산 이의 지혜가 담긴 말 한 마디가 더 필요했어요. 청소년기는 바다를 항해해 나아가는 배와 같은데, 한번도 가보지 않은 항구를 찾아가려면 나침반과 지도가 있어야 하잖아요. 이제 그런 나침반과 지도를 만들어주자는 생각입니다.” 임 변호사가 요즘 펼치는 일의 하나는 ‘삶의 스승 운동’이다. 사회 각계에서 활동하는 삶의 스승 10명이 20명의 젊은 제자와 만난다. 처음에는 1대 1 만남을 계획했지만 지원자가 많아 제자를 두 배로 늘렸다. 우선 대학생부터 시작하고 차츰 중고등학생으로 대상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이 운동에는 권경현 교보문고 사장, 홍석주 전 조흥은행장, 최낙원 성북성심병원 원장, 유영만 한양대 교수 등이 ‘라이프 마스터’로 참여하고 있다. “갈 길과 할 일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리더” 임 변호사는 현재 사단법인 ‘미래준비’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미래준비에서는 젊은이들에게 나침반을 쥐어주는 일 외에도 미래를 준비하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려준다. 법인 이름만 들으면 조금 막연해 보이지만, 미래준비에는 우리 사회를 해석하는 임 변호사의 철학과 비전과 미션이 응축되어 있다. 벌써 10여 년 전부터 그가 관심을 갖고 추진해온 일이다. “부장검사로 있던 93년부터 95년까지 사법연수원 교수로 파견을 나갔지요. 후배들을 가르치다보니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어요. 인문사회 계열의 우리나라 최고 인재들이 모였는데, 법조인을 양성하는 실무교육만 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지요. 이 인재들을 진짜 인재로 육성하는 법이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창조리더십이라는 개념에 착안했고, 이를 바탕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2년 후에 판검사 되기를 염려하지 말고 40~50대에 우리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연수생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리더십을 길러야 하는데, 갈 길과 할 일을 명확히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리더다.’ 제자들에게 늘 강조했던 말이지요.” 그는 수업뿐 아니라 사법연수원의 제자들과 독서토론을 하고 스포츠를 함께 했다. 그해 연수생들은 가장 뛰어난 성적을 냈고, 이를 계기로 임 변호사의 인생도 방향이 바뀌었다. 인재를 기르고 리더십을 가르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뒤 강릉지청장을 지낸 6년 동안 산 좋고 물 좋은 그곳에서 구상을 구체화하고 2001년 사단법인 미래준비를 세웠다. “미래창조 운동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하는 운동입니다. ‘아름다운 한국의 창조’를 비전으로 미래창조적으로 살자는 것이지요. 이 운동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어요. 누구에게나 지금부터가 미래이고, 그 미래를 아름답게 창조해갈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 1회의 아침 독서토론, 그림감상, 나무심기, 1%기부, 돕기와 봉사…… 미래준비가 ‘수행항목’으로 권장하는 일들이다. 그 맨 앞에 임 변호사가 서 있다. 임 변호사는 스스로를 ‘아침형 인간’이라고 말하지만 기자가 본 그는―표현이 좀 외람되지만― ‘종일형 인간’이다. 하루를 48시간처럼 쪼개고 쪼개어 쓰는데도 표정에는 여유가 넘친다. 요즘은 바빠서 직접 운전할 틈도 없지만 “자동차는 어려서부터 좋아했다”는 임 변호사다. 운전면허는 80년에 땄다. 77년 군대에 가기 전 누군가가 “군 시절에는 영어, 기타 치기, 자동차운전, 이 세 가지를 마스터해야 한다”고 조언했는데 자동차운전 하나만 배워왔다며 웃는다. “선친이 닛산 트럭을 하나 갖고 계셨는데,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차에 친숙했어요. 차 타는 게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83∼84년 프랑스 연수 때는 차로 유럽 여행을 했어요. 파리에서 출발해 이태리 로마, 피렌체, 베니스, 베로나 등을 돌아다녔습니다. 자동차와 함께 했던 시간 중에 가장 아름답게 남은 추억이지요.” 사단법인 미래준비 홈페이지 www.myfuture21.org
하림 &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초현실적인 SUV 위.. 2004-06-14
“음악은 사람들에게 들려졌을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필요 이상으로 어려운 것보다는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쉽게 그림이 그려지는 곡을 만들고 싶어요” 현실과 이상에 치여 스스로를 속박시킨 그는 불현듯 아일랜드로 날아갔고 하늘과 호수, 들판을 달려 보잘것없는 일상의 자유를 되찾았다. 다중인격자의 은밀한 그늘이 여전하지만 그가 읊조리는 멜로디와 메시지에는 이제 미궁 속에서 들려오는 유유자적한 휘파람 소리처럼 밝고 소박한 빛이 예전보다 강하게 담겼다. 하림(본명 최현우)이 최근 내놓은 2집 앨범 ‘휘슬 인 어 메이즈’(Whistle in a maze)는, 그러나 감정의 실마리를 살살 끄집어내 마음을 움직이는 특유의 생명력이 여전해 더욱 반갑다. 이제 막 29살이 되었을 뿐인 이 젊은 뮤지션은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항상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귀에 달고 산다. 아이리시 풍 가미한 두 번째 앨범 2년 전 선보인 하림의 솔로 앨범 ‘多衆人格者’(다중인격자)와 그 속에 담긴 ‘난치병’과 ‘출국’ 등의 곡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의 감성과 멜로디 패턴이 소울 내지는 리듬 앤 블루스를 향해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런 의미에서 휘슬과 윌리언 파이프 등 아일랜드의 토속 악기를 손수 불어대며 담백한 감성을 물씬 살린 이번 앨범은 예의 하림식 흑인음악을 기대했던 이들을 동요시키기에 충분했다. “음악적 감성이 바뀌었다고들 하는데, 꼭 틀린 말은 아니에요. 이제 20대 후반이니 오죽하겠어요. 사회생활을 하는 여느 친구들이 지금과 미래를 견주면서 고민과 결단, 번복을 거듭하듯이 저는 음악에 있어서 끊임없이 새롭고 이로운 것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목표라면 스트레스 없이 음악을 계속하는 방법인데……. 즐기면서 재밌게 잘 살아야 음악도 중심을 잡지 않을까 싶어요.” 그는 이미 새 앨범에서 흑인 감성을 깨끗이 지울 다짐을 했었고 언젠가는 아일랜드 음악을 접목해볼 계산도 서 있었다. 앨범 준비로 달궈진 심신을 식히기 위해 아일랜드 여행길에 오른 하림은 그 곳에서 ‘이때다’ 싶은 확신을 갖게 되었고, 귀국하자마자 곧장 자신이 소속된 신스기획 대표이며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윤종신 씨를 찾아 ‘아일랜드 음악을 하겠다’는 의지를 알렸다. “처음에는 아일랜드 음악이라는 말만 듣고 말리던 종신이 형도 직접 들어보고는 흔쾌히 승낙을 해주었어요. 아이리시 휘슬을 직접 배우고 그 곳 토속음악의 패턴을 빌어 오기는 했지만 정작 아이리시 스타일의 곡은 3개밖에 안 되요. 아일랜드에 ‘필이 꽂힌’ 이유라……. 조나단 스위프트 같은 문학가나 느낌이 좋은 음악가가 많고, 무엇보다 기네스 맥주가 있잖아요.” 호기심이 많은 하림은 끊임없이 탐구하고 실험하며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경험을 자신의 관점으로 풀어낸다. 그의 말처럼 ‘시건방진 건 다 해보는’ 일련의 경험은 곧 음악적 감수성의 스펙트럼을 확장해 가는 과정이며,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대중음악을 만드는 이의 소명에 다름 아니다. “음악은 사람들에게 들려졌을 때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고 생각해요. 대선배인 배철수 씨의 표현대로라면 어려운 음악은 없어요. 익숙한 음악과 익숙하지 않은 음악이 있을 뿐이지요. 그림이 그려지는 음악을 좋아하고 그렇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영화음악 제의도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아요. 우선은 제 음악의 영역을 확인하고, 영화 쪽은 좀더 공부를 많이 한 뒤에 신중하게 도전하고 싶습니다.” 지구상 가장 화려한 SUV로 꼽히는 랜드로버 레인지로버와, 빛 바랜 사진처럼 은은하고 약간은 산만한 ‘인간 하림’은 쉽게 매치하기 어렵다. 하지만 많지 않은 나이에도 듣는 이의 감수성과 향수를 쉽게 끄집어내는 젊은 뮤지션의 내공은 육중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경쾌하게 내달리고 안락하기까지 한 레인지로버의 비현실적인 성격을 꼭 닮았다. 더욱이 두 주인공이 조우한 장소가 검은 구름 아래 짙은 녹음이 진 언덕과 들판, 호수가 펼쳐진 아일랜드 초원이라고 상상한다면 이들의 만남에 더 이상의 어색함은 없다.
가수 김범수 4집 앨범 들고 팬들 앞에 서다 2004-06-08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이런 내가 미워질 만큼. 울고 싶다. 네게 무릎 꿇고 모두 없던 일이 될 수 있다면…….’ 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두 주인공 송주와 정서의 애틋한 러브신이 등장할 때마다 낮게 깔리던 김범수의 노래 ‘보고싶다’. 끊어질 듯 애절한 그의 목소리는 솔로들의 가슴을 쥐어뜯었고 시작하는 연인들에게는 눈물 어린 감동과 진한 사랑을 전했다. 그랬던 김범수가 여덟 달 동안 정성스레 만든 4집 앨범을 들고 팬들 앞에 섰다. 앨범 타이틀을 전면사진으로 장식하고 얼굴 없는 가수가 아닌 얼굴 있는 가수로. 발라드에서 댄스곡까지 다양하게 선보여 데뷔한 지 햇수로 6년, 음반도 벌써 4개나 냈다. 하지만 김범수의 얼굴을 알아보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주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뮤직비디오를 통해 활동했기 때문이다. 훤칠하고 보송보송한 어린 가수들 틈에 서는 것이 그에겐 부담으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어쩌면 소속사의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서 김범수는 확실히 달라졌다. 창법도 훨씬 부드럽고 경쾌해졌다. 댄스곡도 여럿 눈에 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변화라면 그가 당당히 얼굴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이번엔 정말 즐겁게 사진을 찍었어요. 표지사진도 얼굴로 했고요. 다른 뜻은 없어요. 그냥 제 얼굴을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나이가 드니까 조금 뻔뻔해졌다고 할까요?” 자신의 노래를, 그리고 자기의 얼굴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알아봐 주는 것만큼 가수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또 있을까? 김범수 역시 이제는 그런 기쁨들을 한껏 누리고 싶은 모양이다. 4집 앨범도 팬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애절한 발라드에서 비트있는 음악까지 다양한 곡들로 꾸몄다. “이번 앨범은 지금까지의 제 노래와는 조금 달라요. 슬픔보다는 희망과 행복을 소재로 한 가사들이 많지요.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있을까요. 그래도 꼭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아무래도 제가 곡을 쓴 ‘투 미’(To me)겠지요.” 김범수는 요즈음 콘서트 준비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란다. 이번 달 30일 경기도 수원에서 열릴 콘서트에서 그는 4집 앨범의 곡들과 ‘하루’, ‘보고싶다’ 등을 부를 예정이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춤이며 마술 연습도 한창이다. 이날 공연에는 김범수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가수 박효신, 주석 등이 게스트로 나온다. “6월부터는 4집 활동도 열심히 하고 TV나 콘서트를 통해 좀더 많은 모습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올해 바램이 있다면 작년만큼만 제 노래를 사랑해 주셨으면 하는 거예요.” 김범수는 자신의 목소리가 투명한 색이라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꾸밈없는 모습이라고. 하지만 4집 앨범에서 그의 목소리는 다양한 빛깔로 다가온다. 투명한 유리에 비친 오색빛깔 색종이처럼 하늘빛이었다가 분홍빛이었다가 강렬한 빨강이기도 했다가 차분한 회색으로도 변한다. 무대 밖에 있을 때 그는 평범하고 소탈한 25살 청년이다. 걷기를 좋아하고, 그래서 아직 차도 갖고 있지 않은, 가끔은 그것 때문에 불편하기도 하고, 그래서 BMW X5에 눈독을 들이는……. 하지만 무대 위에만 서면 그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낸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느새 그의 목소리는 발 밑을 타고 올라와 머리 끝까지 조금씩 젖어든다. 이것이 바로 김범수가 가진 힘인 듯싶다. 노래에 사람을 온전히 빨려들게 하는.
93년식 쌍용 코란도와 이동한 클래식카의 멋을 .. 2004-05-21
클래식 코란도? 그런 모델이 있었던가’. 고개를 갸우뚱할 필요는 없다. 장담하건대, 이 세상에 ‘클래식 코란도’라는 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혹시 그런 차를 보았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선가 클래식 코란도가 만들어지고 있다면? 쌍용 코란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클래식카 타령을 하게 된 것은 이동한(42) 씨 때문이다. 서울의 한 주차장에 세워진 빨간색 코란도가 굉장히 예쁘고 인상 깊어 오너의 비상연락처를 메모해 와 정식으로 만나 보았다. 이동한 씨의 ‘클래식 코란도’ 이야기는 유년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어릴 적 흙먼지를 폴폴 날리며 신작로를 달리던 ‘짚차’를 늘 그리워했어요. 우렁찬 디젤엔진 소리와 땅을 파헤치듯 구르는 커다란 바퀴에 대한 동경이랄까요. 한순간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3년 전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분야별 최고 실력자 찾아가 완벽하게 작업해 이동한 씨가 코란도의 오너가 된 것은 2001년.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 오다 93년식 코란도를 사들였다. 어릴 때부터 간직했던 그리움을 버리지 못해 최신형 SUV를 마다하고 코란도를 골랐다. 아니, 코란도가 아니었으면 그리움은 아예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취재진에게 펼쳐 보인 손때 묻은 차계부가 그의 심정을 잘 말해 주었다. 한동안은 동경의 대상이었던 ‘짚차’를 타게 되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다 지난해 초 겪은 사고가 계기가 되어 코란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쏟게 되었다. “눈이 잔뜩 내린 서울 남산순환로를 달리다 미끄러져 엔진룸이 ㄱ자 모양으로 꺾일 정도로 큰 사고를 당했어요. 40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고, 정신을 차려 보니 한 군데도 다친 데 없이 멀쩡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엔진이 꺼지지 않고 돌고 있더군요. 그 뒤로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코란도에 새 생명을 선물하기로 했지요.” 이때부터 이동한 씨는 코란도를 말끔히 고쳐 꾸미기 시작했다. DIY 컨셉트는 ‘클래식’. 이 세상에 한 대밖에 없는 코란도를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나름의 기준도 세웠다. 외국의 클래식카 전문 잡지와 인터넷을 참고해 스스로 DIY 아이템을 정하고 필요한 부품도 직접 구입하되, 작업은 최고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다. 어설픈 부품을 서툴게 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첫 번째 작업은 범퍼였다. 미국의 올드카 웹사이트를 모조리 뒤진 끝에 1930년대 포드 모델 A의 범퍼를 주문했고, 뛰어난 솜씨를 인정받는 전문가를 찾아가 코란도에 맞는 브래킷을 만들어 달았다. 백색 테두리를 가진 타이어를 구하기까지 숱한 발품을 팔았다. 제법 크다는 타이어 판매점은 물론이고 타이어 제조회사까지 찾아갔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인터넷을 뒤져 일반 타이어에 백테를 넣어 파는 미국 업체를 발견했다. 하지만 백테 타이어에 어울리는 둥글고 볼록한 휠 커버를 구하지 못해 지금도 아쉽단다. 번호판도 1930년대 포드 모델 A 로드스터의 지지대로 달았고, 보네트 경첩과 에어덕트는 지프 랭글러의 것을 붙여 멋을 냈다. 바닥과 엔진룸 방음은 기본. 바닥 마감재의 박음질이 어찌나 꼼꼼한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계획한 작업의 10%도 못 채웠지만 코란도에 대한 애정 때문에 삶이 풍요로워졌습니다. 100%의 활력을 60%는 일, 나머지 40%를 코란도에 나누는 것이 아니라 120%로 늘었어요. 첫사랑의 가슴 벅찬 설렘, 바로 그 느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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