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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9 GTB 2만 마일 대장정의 절정을 달리다 페.. 2006-12-07
페라리를 몰고 남아메리카를 떠나 안데스 산맥을 타고 중앙아메리카를 거쳐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돌진한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미국 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른 뒤 다시 캐나다로 넘어간다. 최종 목적지는? 다시 남쪽으로 머리를 돌려 대서양 연안의 세계 최대 도시인 뉴욕. 거리는? 자그마치 2만 마일(약 3만2,000km). 도대체 무슨 페라리? 사상 최고로 손꼽히는 최신 페라리 599 GTB 피오라노. 북미 두 대륙을 세로, 가로지르는 대장정의 당당한 주역이다. 우리는 그 가운데 한 토막인 파나마의 콜론에서 코스타리카를 거쳐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과에 입성했다. 이 또한 5일에 걸친 두 아메리카 중심부 탐사의 대장정이었다. 우리 대열은 붉고 푸른 599 GTB 피오라노 2대를 중심으로 짜여졌다. 페라리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11명으로 지원부대를 만들었다. 기술진, 드라이버, 사진기자와 의사 1명이 이베코 트럭 2대(약 790kg의 부속품을 실은), 버스 1대, 피아트 도블로 마이크로 밴 2대와 깜찍한 피아트 이데아 SUV 2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One day :남북미의 중앙 파나마를 떠나 우리는 첫날을 느릿느릿 시작했다. 2대의 페라리는 7대의 지원차를 거느리고 콜롬비아에서 파나마로 화물선에 실려와야 했다. 두 나라 사이를 직결하는 도로가 없기 때문. 그래서 파나마의 항구 콜론에 도착하기까지 자그마치 3일이나 걸렸다! 그러나 페라리를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파나마 시티 시내와 일대를 샅샅이 돌아다니며 즐겼다. 먼저 파나마 운하로 떠났다. 이 운하는 미국 공병대가 1904년부터 1914년까지 10년에 걸쳐 완성했다. 이 대역사의 기슭을 따라 달리는 기분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잠시 연안을 달리면서도 그 위대한 업적에 감탄했다. 운하 갑문도 두 번이나 지났다. 다시 연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라본 파나미 시티의 스카이라인은 숨막히도록 아름다웠다. 다시 파나마 시티를 벗어나 엠베라 인디오 마을을 방문했다. 가게에 들러 모두가 샌들을 샀다. 강물을 건너 템베라 부족이 사는 곳을 찾아가게 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현대생활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원시에 가까운 생활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아이구, 깜짝이야! 그들은 속을 파낸 통나무배에 2기통 40마력 스즈키 아웃보드 모터를 달고 나타났다. 실은 차그레스 강을 우리들이 직접 노를 저어가는 광경을 상상하던 참이었다. 인디오 가이드는 정글을 지나 폭포로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 일행은 모두 정신이 번쩍 드는 찬물 속에 첨벙 뛰어들었다. 인디오 마을로 돌아오자 주민들이 물고기와 바나나로 점심을 마련했다. 그런 다음 민속춤을 보여주었다. 우리도 함께 어울리려고 했지만, 힐 앤 토와 왼발 브레이킹에 중독된 우리로서는 따라 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친 김에 파나마 구(舊) 시가도 둘러보았다. 이글거리는 햇볕이 내려쬐는 후텁지근한 날씨. 우리는 차에 이골이 나고 페라리 장정에 나선 처지라 차를 몰아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다행히 파나마 콜론에서 차를 받아 파나마 시티로 오는 짧은 거리를 달렸다. 비가 내리는 어둡고 늦은 밤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우리는 중앙아메리카에서 페라리를 몰고 달렸다. Two days :파나마 시티에서 다비드로 가는 길 본격적인 장정의 첫날. 파나마 운하로 나가 미라플로레스 갑문을 배경으로 페라리와 함께 사진을 찍기로 했다. 운 좋게도 촬영을 시작했을 때 짐을 잔뜩 실은 화물선이 갑문을 지나는 장면을 잡을 수 있었다. 곧이어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그런 와중에도 마침 운하를 찾아온 단체 관광객들이 운하와 페라리를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많은 운하 관리자들도 몰려왔다. 그 중 일부는 페라리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페라리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게다가 2대의 페라리가 각기 611마력의 V12 엔진을 레드라인까지 올려 위력적인 페라리 사운드를 연주하자 환성이 터졌다. 운하를 떠나 팬아메리칸 고속도로를 따라 다비드로 갈 때에도 계속 폭우가 쏟아졌다. 한 나절을 오고도 비는 그칠 줄 몰랐다. 도로에 수없이 뚫린 구덩이를 피하느라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작은 마을 타타에서 차를 세우고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1500년대 스페인 정복자들이 파나마에서 처음 정착한 곳인 타타는 아주 뜻깊은 역사적 고장이다. 근처에서 놀던 어린이들이 페라리를 보고 달려왔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꼬마들이 페라리와 포즈를 취하며 야단법석을 떤다. 그런데, 이베코 지원 트럭(모두 3대가 따르고 있었다) 한 대가 고장을 일으켰다. 때문에 우리는 빗속에서 좋이 30분 동안 길가에 앉아 있었다. 여기서 페라리팀은 스케줄이 빗나가고 말았다. 그 뒤로 차를 세우고 쉴 시간이 거의 없어 화장실에 가기도 힘들었다. 우리는 하루에 세번이나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그때까지는 6주 동안 단 한 번밖에 없었다는 경찰 검문이었다. 첫 번은 시속 100km 구간에서 112km를 냈다고 모두를 끌어내렸다. 우리 모두가 내야 할 범칙금이 통틀어 2,500달러(약 234만 원)라고 을러댔다. 결국 10달러(약 9,400원)로 낙착되었고, 덤으로 페라리 T셔츠 2벌을 주어야 했다. 다음으로 임시 검문소에 두 번이나 잡혔다. 첫 번째는 단순한 검차였는데, 검차를 하는 동안 경찰관의 친구들이 나와 페라리 사진을 찍었다. 두 번째는 검문소에 과속으로 접근했느냐 아니냐를 놓고 45분이나 실랑이를 벌였다. 게다가 적신호를 무시했다는 위반사항까지 들이댔다. 하지만 우리 일행의 어느 누구도 적신호를 본 적이 없었다. 중앙아메리카의 교통단속이 이럴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도대체 법집행이란 이름이 무색했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페라리 T셔츠 몇 장이 더 날아가고 나서야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이러다간 니카라과에 갈 때까지 T셔츠가 남아날지 걱정이었다. Three days :다비드서 코스타리카 산호세로 다비드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파나마-코스타리카 국경에 도달했다. 페라리팀은 국경 통과시간을 넉넉히 잡았다. 가서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코스타리카의 통관절차는 몇 시간을 질질 끌었다. 세관구역은 무덥고 숨통이 막히고 악취가 났다. 물론 바깥인데도 그랬다. 나는 에어컨이 있는 이베코 버스로 갔다. 한편 페라리팀은 세관원이 모든 차를 안전하게 통과시키는 데 몇 장의 T셔츠가 필요할지 계산하고 있었다. 구경꾼이 빽빽이 둘러싼 가운데 마침내 세관을 통과하여 2차선 도로에 들어섰다. 도로에 파인 어떤 구덩이는 파나마의 작은 양철지붕 오두막만큼 컸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페라리팀 대장 엔리코 골도니에게 차간 적정거리(약 50m)를 유지하자고 제의했다. 바퀴를 망칠 구덩이를 더 잘 보기 위해서였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운전 기회가 돌아왔다. 599를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몰아가야 하는 힘든 일이었다. 코스타리카는 파나마보다 더 아름답고 교통량은 적었다. 적어도 국경에서 수도 산호세로 가는 길가는 그랬다. 다행히 우리가 맞이한 코스타리카 가이드는 산호세로 가는 길을 훤히 꿰고 있었다. 코스타리카 시골은 무성한 열대식물이 짙게 덮여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탁 트인 농지가 나왔고, 각종 곡물이 자라고 있었다. 파인애플 농장도 더러 보였다. 주민들은 자기 고장을 지나가는 2대의 페라리를 보고 뜨거운 관심을 보 였다.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우리가 지나가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좋아했다. 대다수가 길가를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산호세에서는 몇 대의 차가 우리를 따라오며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우리 대열의 연료가 거의 바닥이 났다. 최대 후원업체인 쉘이 자사 주유소에서만 기름을 넣으려고 한 데도 원인이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포장이 잘 된 루트 2에 들어섰다. 그러나 산길로 들어서려는데 앞길이 막혔다. 트럭 몇 대가 앞을 가로막고 비켜주려 하지 않았다. 내리퍼붓는 비, 끈적하게 짙은 안개와 어둠이 앞길을 더욱 힘들게 했다. 고개를 올라가고 내려가는 도중 내내 넘치는 파워를 죽이고 엉금엉금 기어가자니 울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이 대장정은 그걸 모두 참아내기로 한 고행길이 아니던가. Four days :코스타리카 산호세서 푼타레나스로 이날은 볼칸 포아스 국립공원을 출발점을 삼고, 먼저 공원 안에 있는 분화구를 구경했다. 그 곳을 떠나 푼타레나스로 가는 길. 교통경찰에 잡히는 것이 우리 여정의 목적이 되어버린 듯 했다. 몇 번이나 잡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제지당하는 이유가 도무지 분명치 않았다. 다만 7대의 피아트와 이베코가 달고 있는 다른 나라 번호판이 문제의 발단인 듯 했다. 누가 차를 운전하고, 보험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따졌다. 31달러(약 2만9,000원)와 함께 나눈 악수(이번에는 T셔츠를 주지 않았다)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 뒤 바라 브랑카에 있는 카타라타스 데 라 파스(평화의 폭포)로 올라갔다. 코스타리카의 거대한 길가 도랑은 유명하다. 그와 함께 시골을 덮고 있는 커피 밭이 장관이었다. 대체로 도로에는 갓길이 없다. 차선 밖은 낭떠러지와 마찬가지로 그냥 뚝 떨어진다. 풀밭이 아니라 깊이 1∼1.5m가 되는 도랑이나 콘크리트 벽에 나가떨어진다. 한마디로 실수하면 끝장. 비가 많이 내리는 코스타리카에서 도랑은 물 빼기에 알맞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후에 또 다시 폭우가 쏟아졌다. 때문에 해변 도시 푼타레나스로 가는 2차선 도로 85km를 가는 데 2시간 반이나 걸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엉금엉금 기어갔다. 코스타리카의 다차선 도로? 아예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다행히 커브길에서 한 번 멋지게 달려보았다. 여행을 시작한 뒤 처음이었다. 선두를 달리는 피아트가 추월을 해도 따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앞차와 먼 거리를 두기로 했다. 그런 다음 속도를 올려 추격작전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영특한 아이디어였다. 커브에서 선도차와 거리를 멀리 떼었다가 직선도로에서 고속으로 추격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왜 진작 이런 묘수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Five days :푼타레나스서 니카라과 마나과로 오늘 아침 루트 12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대열은 또다시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이번에는 과속이 아니라 제대로 보험증서를 갖고 있는지를 보자고 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그냥 페라리만 둘러보고 말았다. 입장이 바뀌면 우리도 그랬으리라 믿는다. 코스타리카를 지나면서 아름다운 경치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주민들도 무척 순박했다. 길가에는 쓰레기 하나 없었고, 파나마와는 달리 오두막에 살고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자신과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다. 누군가는 중앙아메리카의 스위스라고 했다. 어린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두 페라리를 보고 환성을 올렸다. 국경을 넘어 니카라과에 들어가는 데 3시간 하고도 30분이 걸렸다. 수퍼카의 정상 페라리와 함께 가는 길이라고 해도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끄는 데는 진저리가 났다. 날씨는 무덥고 끈끈했다. 우리가 앉아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데 음식과 갖가지 물건을 팔려고 몰려드는 행상은 끝이 없었다. 누추하고 성가신 사람이 있기는 했어도 인상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멋모르는 관광객들을 덮치는 ‘반디토’(도둑)가 많다는 소문을 들은 바 있어 신경을 곤두세웠다. 다행히 페라리의 원래 의도에 가깝게 599를 잠시 몰 수 있었다. 제법 빨리. 일단 니카라과에 들어가자 선도차 피아트의 대장 엔리코가 부쩍 스피드를 올렸다. 교통 경찰이 별로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듯 했다. 도로는 2차선이지만 아주 느린 승용차와 트럭을 추월할 기회는 많았다. 덕택에 599의 6단 F1 패들 시프트 기어박스와 V12 6.0X 611마력 엔진을 한 번 시험할 만했다. 최고시속 230km까지 올릴 수 있었다. 우리를 기다릴 동료와 여자친구에게 자랑할 속도는 아니지만 일단은 짜릿했다. 고회전대에 올라가자 엔진은 비명을 올렸고, 기어박스는 풀 드로틀 시프트를 자신만만하게 받아들였다. 스티어링 휠 위에 달린 시프트 램프가 춤을 추었다. 미하엘 슈마허의 F1 경주차와 같다고 할까. 온/오프 드로틀 변환이 약간 돌발적이었다. 그리고 컴퓨터 다운 시프트는 일부 수동 패들 시프트만큼 매끄럽지 않았다. 그러나 599는 전체적으로 절대 지존의 스포츠카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달렸는데도 몸을 감싸주는 안락한 시트에 감탄했다. 안팎의 품질은 흠잡을 데 없었다. 게다가 이때까지 페라리는 얼마나 잘 견뎠는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도로 조건(물론 남아메리카의 도로는 이보다 훨씬 나빴다고 한다)이 페라리의 기술적 우수성을 입증했다. 니카라과를 달리고 있으면 마치 옛날로 돌아간 듯 하다. 말, 마차, 자전거와 인력거, 스쿠터, 농기계와 길가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거리에 가득하다. 빨리 차를 몰아 계속해서 앞지르려고 하자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우리는 중앙아메리카에서 식민시대에 세운 가장 오랜 도시와 2개의 화산을 배경으로 한 니카라과 호수를 찾았다. 그러나 밤이 되기 전에 수도 마나과에 입성하기로 했다. 풍문이 나도는 노상강도를 만날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오후 4시 30분, 날마다 찾아오는 폭우가 또 다시 쏟아졌다. 그라나다로 가는 길이었다. 그때까지 만난 구덩이가 제일 많은 길이어서 더욱 힘들었다. 물이 고인 도로에서는 구덩이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엔리코의 피아트가 튕기는 물보라를 보고 가려내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 뒤차는 운이 나빴다. 구덩이에 빠져 휠이 부러지고 타이어가 터졌다. 다행히 페라리팀은 스페어 휠과 타이어 16개를 가져왔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라나다로 달려갔다. 그라나다를 떠나 마나과에 입성하면서 우리 장정은 막을 내렸다. 니카라과 주재 이태리 대사가 크라우네 광장에서 페라리 축하행사에 참가했다. 옥외 수영장의 무대 중앙에 페라리 2대가 올라갔다. 그리고 니카라과에 있는 유일한 페라리 308 GTS 한 대가 그 옆에 나란히 섰다. 이로써 페라리의 지존 599 GTB 피오라노를 몰고 세계에서도 가장 험악한 도로를 지나온 우리들의 황홀한 고행은 끝났다. 우리는 이번 장정과 이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Oslo 북유럽의 문화 중심지 2006-12-06
스칸디나비아 반도 서쪽에 자리한 노르웨이는 국토의 30%가 북극권에 속한다. 거칠고 험한 산과 빙하, 협곡, 피요르드 등 사람이 정착하기 힘든 땅이지만 노르웨이 사람들은 오랫동안 거친 자연환경을 ‘신의 선물’로 받아들이며 살아 왔다. 시대가 바뀌고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노르웨이의 자연은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관광자원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인간이 만들어 낸 어떤 건축물도 노르웨이의 자연처럼 경이롭지는 못하다. 신이 선물한 경이로운 자연환경 오슬로는 북해, 노르웨이해, 북극해 등을 끼고 길게 뻗어 있는 노르웨이 국토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노르웨이의 경제, 경제의 중심지로서 중부유럽의 수도들과 비교하면 매우 조용하고 한적하다. 오슬로에 도착하면 먼저 휴지조각 하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깨끗한 거리와 비싼 물가, 그리고 한산함에 놀라게 된다.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나라이자 유럽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노르웨이의 현주소가 첫인상에서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다. 11세기 중반 조성되어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인 오슬로는 옛 건축물과 모던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훌륭한 박물관과 문화시설이 많아 스칸디나비아 문화 중심지로도 손색이 없다. 대부분 걸어서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하다. 오슬로 여행의 시작은 중앙역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구시가지의 볼거리는 대부분 중앙역 정면에 보이는 카를 요한스 거리를 따라가면 만나게 된다. 이 거리를 따라 대성당과 국회의사당, 오슬로 대학, 국립미술관, 왕궁 등이 모여 있다. 이 주변만 제대로 돌아보면 오슬로의 절반은 본 셈이다. 중앙역에서 오슬로 대학에 이르는 1.3km의 카를 요한스 거리는 오슬로 최고의 번화가로 동쪽 중앙역과 서쪽 왕궁을 연결하고 있다. 이 거리를 따라 카페, 부티크, 호텔, 쇼핑센터들이 즐비해 항상 인파로 북적거린다. 노천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일상의 여유가 느껴진다. 거리의 예술가들이 벌이는 다양한 공연과 퍼포먼스 또한 이 거리의 매력. 꽤 수준 높은 공연이 펼쳐지기도 한다. 카를 요한스 거리의 중간지점에서 항구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오슬로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시청사가 나온다. 오슬로 시청사는 매년 12월 10일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곳이다. 시청사 내부 벽면은 노르웨이의 역사와 문화,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담은 프레스코화로 채워져 있어 갤러리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유럽에서 가장 큰 그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24×12.6m 크기의 대형 유화와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화가인 뭉크의 ‘인생’이라는 작품. 따사로운 햇빛이 창문을 통해 벽화에 비쳐질 때면 빛과 그림이 조화를 이루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시청사는 연중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들어 관공서라기보다 관광지에 더 가깝다. 카를 요한스 거리의 끝자락에는 현재 노르웨이 국왕이 살고 있는 왕궁이 있다.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낮은 언덕에 위치한 왕궁은 1824∼1848년 지어진 것으로, 소박한 분위기다. 왕궁 앞 광장에는 스웨덴 왕으로 노르웨이를 지배했던 카를 요한의 청동 기마상이 있다. 왕궁 앞 넓은 정원은 시민들의 휴식처로, 해가 나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일광욕을 한다. 유럽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겨울철 해가 짧은 오슬로에서 어쩌다 해가 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커다란 즐거움을 제공한다. 매일 오후 1시 30분에는 왕궁의 근위병 교대식이 열린다. 영국이나 덴마크의 근위병 교대식에 비하면 조촐한 규모로, 수수하고 검소한 노르웨이 왕실과 잘 어울린다. 조각과 해운업, 그리고 탐험의 나라 앞에서도 적었듯이 오슬로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많다는 점에서 ‘북유럽 제1의 문화 중심지’로 꼽히고 있다. 수많은 미술관 중 꼭 가봐야 할 곳이 뭉크가 죽음에 임박해 기증한 수천 점의 회화, 데생, 습작 등이 소장되어 있는 뭉크 미술관이다. 노르웨이 출신 표현주의 미술의 대가 뭉크는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고, 그 자신도 병약했다. 어린 시절의 안 좋았던 경험을 작품에 그대로 쏟아내 인간의 삶과 죽음, 공포와 우수를 강렬한 색채로 표현했는데 대표작 ‘절규’에서도 이런 특성이 드러난다. 뭉크는 “2명의 친구와 길을 걷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변하면서 탈진상태를 느꼈고, 검푸른 피요르드와 하늘 위로 혀와 같은 불꽃이 있었다”고 작품의 배경을 밝힌 바 있다. 아쉽게도 뭉크 미술관에 전시되었던 ‘절규’와 ‘마돈나’는 몇 해 전의 도난사건으로 지금은 전시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범인이 잡히면서 그림은 회수됐지만 훼손된 부분이 있어 복원 중이라고 한다. ‘절규’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면 국립미술관으로 간다. 그곳에 뭉크가 그린 또 다른 ‘절규’가 전시되어 있다. 뭉크는 생전에 네 점의 ‘절규’를 그렸는데, 그 하나가 국립미술관에 있다. 오슬로 시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서쪽 끝에 있는 프롱네르 공원. 이곳은 아름다운 호수와 분수, 조각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공원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조각가 비겔란이 만들어 놓은 193점의 작품 때문. 비겔란은 프랑스에 유학할 때 로댕의 영향을 받아 상징적 자연주의 조각가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이 조각공원은 오슬로시의 지원을 받아 1915년부터 만든 것으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나타낸 청동과 화강암 조각들로 꾸며져 있다. 공원 중앙에 위치한 높이 17m의 화강암 탑인 모노리텐(Monolitten)은 공원의 하이라이트. 121명의 남녀 군상이 인간의 온갖 형태를 한 채 뒤엉켜 있는 나선형의 돌기둥이다. 오슬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비겔란이 석고 모델을 만들고, 세 명의 석공이 14년에 걸쳐 제작했다고 한다. 노르웨이인들은 척박한 기후와 자연환경에 맞서 싸우며 강인한 인내심과 모험심으로 표현되는 기질을 길러냈다. 일찍이 바이킹이 되어 유럽을 주름 잡았으며 세계적인 탐험가 아문센과 난센도 노르웨이 출신이다. 이 때문에 노르웨이 사람들은 아직도 해운업과 탐험분야에 강한 긍지를 갖고 있으며, 오슬로 시내에는 배와 관련된 박물관도 많다. 이들 박물관들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뷔그되이 지역에 밀집해 있다. 먼저 바이킹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해적선을 전시한 곳으로 오슬로 피요르드에서 난파한 세 척의 배를 복원해 놓았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세 척의 배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오세베르크호’가 보인다. 바이킹 특유의 곡선미를 지닌이 배는 9세기 초 건립된 20m 크기의 배로, 오사 여왕이 사용하다가 여왕 사망 후 유해와 함께 수장되었다. 배 전체가 여왕의 관으로 사용된 것이다. 역시 9세기에 만들어진 고크스타호(Gokstad)는 전형적인 바이킹 선으로 32명이 탑승할 수 있었다. 북유럽 제1의 문화 중심지 바이킹 박물관에서 1.5km 정도 떨어진 바닷가에는 콘티키 박물관과 프람호 박물관, 그리고 해양박물관이 마주보고 있다. 콘티키 박물관은 노르웨이의 인류학자이자 탐험가인 토르 헤위에르달이 잉카식으로 만든 뗏목 콘티키호를 전시해 놓은 곳이다. 프람 박물관에는 난센의 북극 탐험과 아문센의 남극탐험에 사용되었던 프람호가 있다. 1892년 건조된 프람호는 노르웨이어로 전진이라는 뜻. 당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성능을 갖춘 배 중 하나였다. 이 배는 남극 탐험 당시 얼음에 갇혀 북극해를 표류하기도 했으나 해양과 기상 관련 관측업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뛰어난 자연경관은 물론이고 다양한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문화공간이 많은 오슬로는 북유럽의 문화 1번지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공원을 산책하고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박물관을 돌아보는 일들은 누구나 꿈꾸는 일상의 작은 행복일 것이다. 여행정보 ● 교통 한국에서 오슬로까지 바로 연결되는 비행기는 없다. 유럽의 대도시를 경유하거나 일본과 북경을 경유해서 오슬로까지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로 코펜하겐이나 암스테르담, 스톡홀름을 경유해서 가는 여행자가 많다.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할 때는 에어포트 익스프레스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저렴하면서도 편리하다(20분 소요). 기차는 스웨덴의 예테보리를 경유해서 스톡홀름까지 연결되며 시내 중심지에 위치한 중앙역으로 도착한다. ● 환전 노르웨이의 화폐단위는 노르웨이 크로네(Norsk Krone; Nok)이며 2006년 12월 현재 유로는 사용할 수 없다. 노르웨이는 환전할 때 수수료를 많이 부과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우리나라에서 미리 해가는 것이 좋다. 오슬로에서는 중앙역 지하와 1층에 있는 Forex가 환율이 가장 좋은 편이다. 역 주변의 사설 환전소에서는 여행자수표와 현금에 모두 높은 수수료를 부과한다. ● 관광안내소 중앙역 광장에 있다. 역에서 나와 약간 왼쪽을 보면 유리로 된 타워가 하나 보인다. 그 타워 1층에 있다. 무료 지도와 관광, 쇼핑, 숙소, 공연 안내 등을 받을 수 있다. 직원들이 꽤 친절하다. 업무시간 여름 매일 09:00∼19:00, 겨울 월∼금요일 09:00∼16:00 www.visitoslo.com ● 호텔 오슬로는 유럽에서 숙박비가 가장 비싼 도시 중 한 곳이다. 저렴한 숙소들은 기차역 주변에 많이 몰려 있으나 중부 유럽에 비하면 꽤 비싼 편이다. 역에서 5분 거리인 Dronningensgate 21에 있는 톤 호텔(Thon Hotel)은 북유럽 전역에 체인점을 갖고 있는 중급호텔로 위치와 시설이 모두 괜찮은 곳이다. 1인실이 70유로 정도 한다. ● 주의사항 오슬로는 유럽에서 치안이 가장 잘 된 도시지만 제3국인에 의한 소매치기가 자주 발생하는 편이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중앙역과 호텔 로비, 레스토랑, 백화점 등에서 소매치기를 당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는 것이 좋다.
앙코르와트 앙코르의 미소 2006-11-16
앙코르와트, 왕가위 감독‘화양연화’의 배경지 불가사의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래서 신비하기 그지없는 이곳을 진정으로 사랑한 남자가 있다. 바로 홍콩의 대표 감독 왕가위. 세계인의 가슴에 아픈 사랑을 새긴 ‘화양연화’는 지금도 여전히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영화의 본질을 드러내는 배경지는 바로 앙코르와트였다. 주인공 양조위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주인공 차우는 오래 된 돌벽 구멍에 마음을 고백한 후 꽃으로 봉한다. 바로 그 유명한 ‘화양연화’의 마지막 장면. 모르긴 몰라도 앙코르와트의 구멍에 무언가를 속삭이기 위해 길을 나선 사람이 숱할 것이다. 주인공 차우가 묻어둔 비밀은 무엇일까. 평범한 인물의 비밀도 이토록 안타까운데, 앙코르 왕조의 비밀을 고스란히 간직한 찬란한 흔적은 비교할 바 아니리라. 앙코르의 도시, 씨엠립은 영원과 순간을 담기에 가장 적절한 도시다. 씨엠립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약 330km 떨어져 있다. 베트남, 타이, 라오스를 지배했던 앙코르 왕조의 거대한 유적이 자리한 덕분에 캄보디아에서는 부유한 도시에 속한다. 앙코르와트 앞에는 곧잘‘신들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인도차이나 중앙평야, 거대한 밀림에 서 있어 세계의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세계 최대의 석조유물이라는 표현도 본질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앙코르와트를 중심으로 100여 개가 넘는 사원들이 저마다의 전설과 양식을 뽐내고 있어, 한 달 내내 보아도 부족할 지경이다. 앙코르(Angor)는 크메르어로 도시 및 수도를, 와트(wat)는 사원을 뜻한다. 거대한 인공저수지인 해자 위에 뜬 섬으로 총 면적이 210헥타르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다. 건축 전문가들이 수학적 계산과 미술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내리는 이 건물은 배치, 대칭, 구조, 조화 등 모든 면에서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1,000여 년 전 크메르의 왕 자야바르만 2세는 스스로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이라 칭하고 앙코르 왕조의 개막을 선언한다. 전설 속 신들의 땅을 위해 히말라야 산맥을 상징하는 성벽과 바다를 뜻하는 인공호수를 만들어 지금의 모습을 창조했다. 신전에 새겨진 부조는 힌두설화와 자야바르만 2세의 업적을 정교하게 새겨 넣었다. 예전에는 승려나 왕만이 출입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동양에서 온 조그만 여자도 오를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앙코르와트에서 지는 노을은 이제껏 보던 노을과 분명 다른 것이었다. 주황색 사리를 입은 순한 스님이 잠시 뒤를 돌아봐 준다. 부끄러움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그는 나를 보고 있지 않은 듯, 순한 미소를 선물한다. 앙코르의 미소다. 힌두사원 속 불교문화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 사원도 앙코르와트이다. 앙코르톰 안에서 독특하게 불교중심으로 이루어졌으니 눈여겨볼 것. 당시 왕이 불교도인 까닭이다. 인간계와 천계를 가르는 해자 해자 너머로 앙코르와트를 보자. 인간계와 천계를 가르는 게 해자다. 나가와 사자로 장식된 아름다운 테라스가 신전으로 이어지는데 이 참배도로에서는 반드시 수면에 비친 앙코르와트의 모습을 봐야 한다. 한 번쯤 사진으로 보았을 그 모습은 신비하기 이를 데 없다. 앙코르와트는 분명 신의 도시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의 도시다. 유적 안에서 만난 비구니, 관리인과 어린 딸, 반대편 어디쯤에서 온 청년, 그리고 동양의 조그만 한국에서 날아온 기자까지. 유적 안 어디선가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1,000년 전 이곳에서도 이렇게 사람들이 걷고 사색하고 노을을 봤겠지 상상하게 된다. 앙코르의 미소를 모나리자의 미소라 여기지는 말기를. 앙코르의 미소는 실상 씨엠립 사람들의 미소이기 때문이다. 씨엠립 사람들은 어떻게 이토록 순한 미소를 담고 있을까. 앙코르와트 때문일까? TRAVEL MEMO 앙코르 패스 씨엠립에서 유적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매표소에서 앙코르 패스를 산다. 1일권, 2∼3일권, 4∼7일권이 있는데 1일권 외에는 패스에 증명사진을 붙여야 한다. 씨엠립 시내에서는 앙코르와트까지 30분내 항공 아시아나항공에서 인천-씨엠립 직항노선을 주 4회 (월·목·금·일요일) 운항한다. 약 5시간 30분 소요.
산으로, 바다로 떠나자! 올 여름엔 오토캠핑이다 2008-07-11
드디어 기다리던 여름휴가 시즌이 돌아왔다. 해마다 맞이하는 휴가철이지만 매번 색다른 여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올 여름엔 어디로 갈까? 해외로 나가거나 리조트에서 편히 쉬는 것도 좋지만 숨어 있는 우리나라 여행지를 찾아가 보는 것이 어떨까. 최근 KBS의 ‘1박 2일’프로그램의 인기에 힘입어 캠핑장비를 갖춰 오토캠핑을 떠나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쓱쓱 텐트를 치고 바비큐를 굽는 듬직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현장학습도 되어 1석 2조다. 오토캠핑에 필요한 것들 오토캠핑은 차를 활용해 캠핑을 즐기는 것이다. 자동차에 짐을 싣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떠나면 된다. 차는 캠핑장비를 옮기는 이동수단인 동시에 짐을 넣어두는 창고, 그늘막과 바람막이 등으로 사용된다. 오토캠핑에 어울리는 차는 SUV와 미니밴, 왜건 등이다. 특히 SUV는 짐칸이 넉넉하고 험로도 잘 달려 편리하다. 오토캠핑용품은 텐트, 리빙셀·타프, 키친, 파이어 시스템 등 크게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캠핑장비는 유사시를 대비해 인원수보다 넉넉하게 준비하는 것이 좋다. 캠핑을 하는 인원수에 맞춰 적당한 크기를 고른다. 5~6인용 텐트면 4인 가족이 이용하는데 불편이 없다. 침낭이나 야전침대가 있으면 편한 잠자리를 만들 수 있다. 리빙셀과 타프는 집안의 거실 같은 곳. 리빙셀은 바람까지 막아 주지만 타프는 그늘막이라고 보면 된다. 키친용품에는 버너와 조리기구, 테이블, 식기 등이 포함된다. 버너는 화구가 둘 이상인 것이 조리할 때 편리하고 식기류는 가볍고 단단한 것을 구입해야 오랫동안 쓸 수 있다. 집에서 쓰던 것을 가져가도 상관없다. 파이어 시스템에는 화로와 삼각대, 더치오븐, 바비큐 그릴 등이 있다. 화로에서 조리도 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차를 타고 달리다 마음에 드는 곳에 텐트를 치면 그곳이 곧 캠핑장이 되겠지만 샤워장과 화장실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편안한 오토캠핑을 위해서는 전국에 마련된 오토캠프장을 이용한다. 전국에 100여 곳의 오토캠프장이 조성되어 있고, 샤워장과 화장실, 취사장 등을 갖춘 곳은 30곳 정도다. 캠프장을 꾸밀 때는 지형을 고려해 텐트와 식탁 조리대의 위치를 머릿속으로 그린다. 이때 기준이 되는 것이 텐트와 자동차. 텐트는 바람에 약하므로 바람을 막아줄 나무 근처에 치고, 차는 바람막이가 되면서 그늘을 만들 수 있도록 텐트 옆에 세운다. 차 앞머리가 테이블 쪽을 향하게 해야 배터리가 필요할 때 전기를 끌어 쓰기 편하다. 텐트는 잠자리인 만큼 어디다 칠 것인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한여름의 바닷가나 계곡, 산 속의 날씨는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므로 비바람이 몰아쳐도 위험하지 않을 곳을 골라야 위험하지 않다. 비탈진 언덕 아래는 흙이 무너지면 텐트가 묻힐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강가에서는 물이 넘어오는 자리인지 아닌지 확인한 다음 텐트를 친다. 강물이 갈라지는 삼각주나 강이 휘어져 돌아가는 곳의 반대편 기슭은 홍수가 났을 때 가장 먼저 물이 찬다. 계곡은 갑자기 비가 많이 내리면 생각했던 것보다 침수지역이 넓어지므로 물가에서 충분히 떨어지는 것이 좋다. 종종 바닷가 백사장이나 방파제 근처에 텐트를 치는 사람이 있는데 갑자기 높은 파도가 치면 매우 위험하다. 오토캠프장에도 피해야 할 자리가 있다. 바로 가로등 밑과 편의시설 근처. 가로등 밑은 낮에는 잘 모르지만 밤에는 벌레들이 모여들어 좋지 않고, 화장실과 취사장 등 편의시설은 급할 때는 편하지만 사람의 통행이 많아 여유 있는 휴식을 취하기 어렵다. 캠핑카로 편리하게 떠난다 일반차로 오토캠핑 여행을 떠나기가 부담스러운 사람에게는 캠핑카를 권한다. 캠핑카의 매력은 펜션 못지않은 안락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는 점. 굳이 화장실이나 샤워장이 있는 곳을 가지 않아도 된다. 캠핑카에는 침대와 침구류, 화장실, 샤워시설, 냉난방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냉장고, 전자레인지도 구비되어 있어 전혀 불편하지 않다. 벤텍코리아에서 만든 네오 620S(사진)는 5인용 캠핑카로, 어른 4명과 아이 1명이 잘 수 있는 크기다. 기본장비 외에 스카이라이프 TV와 내비게이션, DVD 플레이어 등도 갖춰져 휴가지에서 TV와 영화를 볼 수도 있다. 140ℓ의 대용량 물탱크를 써 한번 채우면 1박2일 정도의 취사와 샤워도 거뜬하다. 정화조에는 약품이 들어 있어 냄새를 없애줘 오물처리도 간편하다. 전력이용 방식은 캠핑카마다 다르지만 보통 발전기를 이용하거나 태양열 저장, 220V 전기코드를 꽂아 쓰는 방식 등이 이용된다. 네오 620S는 운전을 통한 배터리 충전 방식과 태양열 충전 방식, 전기 코드를 꽂는 방식 세 가지를 모두 사용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활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국산 캠핑카는 보통 현대 스타렉스와 리베로, 기아 봉고, 프런티어 같은 소형 승합차나 트럭을 베이스로 꾸민다. 값이 고급승용차 못지않게 비싸므로 구입하기 보다는 필요할 때 빌려 쓰는 것이 좋다. 캠핑카를 빌릴 때는 믿을 만한 대형업체를 이용하도록 한다. 촬영을 위해 빌린 네오 620S는 우리투어몰(wooritourmall. co.kr)에서 빌릴 수 있고 그 외에도 애니캠핑카(www.anycampingcar. com)와 현대카드 프리비어 캠핑카 홈페이지(leisure.hyundaicard.com)를 이용하면 캠핑카를 빌릴 수 있다. 캠핑카는 만 26세 이상, 운전경력 1년 이상, 2종 보통면허 소지자면 누구나 빌릴 수 있다. 다만 출발 전 캠핑카 이용에 대한 안내를 받아야 한다. 요금은 캠핑카의 종류와 이용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보통 1박 2일에 20만∼45만 원선이다. 여름 휴가철과 주말에는 성수기 요금이 적용되어 4∼5만 원 비싸진다. 바비큐 및 테이블 세트 등의 캠핑장비도 빌려준다. 벤텍코리아 네오 620S 벤텍코리아에서 만든 네오 620S는 현대 그랜드 스타렉스를 베이스로 만든 캠핑카. 140ℓ의 대용량 물탱크와 고정 베드(2인용), 침대 변환형 시트와 테이블, 샤워실, 화장실, ㄱ자 구조의 싱크대와 조리대를 갖췄다. 2구 가스레인지와 150L 냉장고, 전자레인지, 스카이라이프 TV, DVD 플레이어 등 편의장비도 풍부하다. 천장에 열고 닫을 수 있는 선루프를 달고 창문을 모두 들어 올려 고정시킬 수 있어 환기도 편리하다. 설비가 대부분 수입품이라 차값은 웬만한 고급 수입차 못지않은 7천만 원대. 우리투어몰(wooritourmall.co.kr)을 통해 빌려 타는 방법도 있다. 요금은 1박2일(36시간 기준)에 32만4천 원. 주말(금~일)과 성수기(7/15~8/30, 12/21~1/30)에는 43만2천 원이다.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으로 가입하면 5~10% 할인 받을 수 있다. 가볼 만한 오토캠프장 오토캠핑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캠프장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취사장과 식수대,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을 찾아야 불편함이 적다. 독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전국의 괜찮은 오토캠핑장을 추려 보았다. 치악산 금대리 야영장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에 있다. 바닥이 고르고 잔디조성이 잘 되어 있다. 구획이 나뉘어 있어 장치 설치가 편하고 취사장, 급수시설,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 문의 : (033) 763-5232 지리산 달궁 아영장 2001년 개장한 달궁 야영장은 250여동의 텐트를 설치할 수 있다. 취사장과 화장실은 물론이고 매점, 공연장 등 시설이 뛰어나다. 문의 : (063) 625-8911 팔봉 밤벌유원지 오토캠프장 강원 홍천군 밤벌유원지 근처에 있다. 물가에 인접해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것이 장점. 성수기에는 이동식 파출소도 세워져 안전하다. 취사장과 샤워장, 화장실이 갖춰져 있다. 문의 : (033) 434-8971 법흥계곡 정든 오토캠프장 영월 법흥계곡을 끼고 있다. 계곡이 깨끗하고 편의시설이 이용하기 쉽게 배치되어 있어 캠퍼들 사이에 인기가 좋다. 한여름에도 모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깨끗한 환경도 자랑이다. 문의 : (033) 372-1388 안면도 마검포 오토캠프장 충남 태안에 위치한 마검포 오토캠프장은 동양최대의 해변길이(총13km)를 자랑하는 마검포 해수욕장에 인접해 있다. 국립공원에서 해제된지 얼마 되지 않아 북적대지 않는 서해안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화장실 샤워장 취사장 등의 시설을 갖췄다. 문의 : (041) 670-2544 촬영협조 | 랜드로버 080-337- 9696·밤벌유원지 오토캠프장 (033) 434-8971·호상사 (02) 749-0480·벤텍코리아 1644-3365·우리투어몰 1588-4541
시리도록 아름다운 지상의 낙원 Jeju 2008-07-04
걷다가 쉬고, 쉬었다 걷기를 반복해도 제주의 길은 지겹지 않다. 한 시인의 말처럼 어떤 길은 그대로 하늘에 닿고, 어떤 길은 그대로 바다가 되고, 또 어떤 길은 그대로 초록의 터널이 된다. 우연히 만난 삼나무 군락은 하늘과 도로가 맞닿아 끝이 없는 착각을 일으킨다. 숲길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또 다른 세상. 한가롭게 뛰노는 말들과 무리진 소 떼가 평화롭고 초원은 온통 녹색의 향연이다. 옮기는 걸음걸음 파노라마 같은 제주의 길은 추억이 되어 마음속 갈피에 묻힌다. 느끼지 않으면 삽시간에 놓치고 말 환상……. 어느새 달팽이 걸음이다. 제주의 풍경은 마음을 다독이는 재주가 있다. 어디 그뿐일까. 푸른 하늘과 옥빛 바다, 하얀 모래와 포근한 바람은 인생을 낭만의 낙원으로 각인시키는 마법을 부리기도 한다. 하기에 주름 깊은 가슴으로 누군가 제주로 향한다면 굳이 그곳이어야 하는지 물을 이유는 없다. 시간의 흐름을 잊고 한참을 서성이다 뒤돌아설 때쯤 이 지독한 아름다움이 마음을 동여매고 못내 놓질 않는다. 생각지 못한 설렘에 등을 돌려야 하는 아쉬움이란 이런 것일까. 이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것만은 아닌가보다. 그렇게 또 하나의 이별을 배운다. 기생화산(寄生火山) 제주는 오름의 천국이다. 어떤 것은 장엄과 위용이 있고 어떤 것은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낮고 푸근하다. 사람들은 그 오름을 밟고 오름의 길을 걷는다. 문명의 편리함을 버리고 뻐근한 다리를 재촉해 정상에 서니 땅으로부터 짊어지고 온 삶의 무게가 잠시나마 내려앉는다. 거친 숨에 취해 정신이 아득해질 때쯤 억새와 들꽃의 서걱거림, 바다의 쪽빛 노래가 바람에 실려 가슴에 살랑인다. 바위에 걸터앉은 나그네의 얼굴에 그제야 웃음이 머금어진다. 태풍의 길목에 서서 거친 비바람을 벗어나지 못한 제주의 바다는 고기잡이를 떠난 남정네들을 집어삼키기 일쑤였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아낙들의 몫은 가족의 생명줄을 등에 지고 뭍(陸)과 바다를 오가야 했던 생업 전선. 검푸른 바다가 갈기를 세워 바위에 부딪히면 비로소 제주 바다의 속살이 드러나고, 생존을 위해 열 길 물속을 마다 않던 잠녀들의 질긴 노동의 흔적도 함께 출렁인다. 오늘도 한 몫 잡이에 나선 해녀들의 두렁박이 파도에 둥실거리고 물 위를 가르는 숨비소리는 그녀들의 고달픈 인생만큼이나 날카롭다. 흐리고 맑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제주의 하늘은 변덕쟁이 누이의 마음 같다. 시커먼 바위만큼이나 어두운 하늘이더니 기다려 보라는 토박이의 말에 거짓말처럼 먹구름이 걷히고 쨍한 볕이 돈다. 놀랍다 못해 아찔하기까지 해, 태고(太古)의 하늘을 본 듯 눈망울이 크고 또렷해진다. 빌딩 숲에서는 볼 수 없는 황홀경이다. Travel Tip 제주도의 모든 드라이브 코스의 중심은 1132번 도로다. 일주도로를 따라 곳곳에 해안도로의 시작점과 끝점이 연결돼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를 연출한다. 1132번 도로에서 한림읍을 지나면 300만 평 규모의 선인장 자생지(천연기념물 제429호)인 월령리 마을이 나온다. 월령리 마을은 돌담집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어 ‘가장 제주다운 마을’로 꼽히는 곳이다. 봉개동과 북제주군 구좌읍 평대리까지의 비자림로(1112번 도로)는 도루 주변이 울창한 삼나무 숲길이 이어지는 곳으로 건설교통부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한 바 있다. 제주의 오름은 모두 368개. 그 가운데 ‘오름의 여왕’으로 불리는 ‘다랑쉬오름’과 가장 선이 아름다운 오름으로 꼽히는 ‘용눈이오름’을 추천한다. 제주에서는 싱싱한 회를 먹고 봐야 순서겠지만, 색다른 맛을 맛보고 싶다면 흙돼지 요리를 먹어보자. 한림읍에 있는 이가네흙도야지가든(064-796-4705)은 자체 운영하는 흙돼지 농장과 채소농장에서 가져온 재료를 사용해 제대로 된 흙돼지 요리를 선보인다. 취재차 BMW 650i 컨버터블, 4.8L 367마력 엔진, 1억7,120만 원, 080-269-2200
호반(湖畔)과 초록의 예찬 安城 안성 2008-06-03
12만 평의 드넓은 안성 목장은 호밀이 풍년이다. 청보리보다 키가 크고 푸름이 짙어 바람이 불면 순식간에 거친 바다를 흉내 낸다. 허리춤까지 자라 잔바람에도 일렁이더니 어느 새 사라져 그 이국적인 아름다움은 놓치기 쉬운 환상으로 남는다. 능선이 서로 교차하며 젖무덤 같은 골을 만들고 그 길은 목장을 차례로 가른다. 짙푸른 언덕 너머로 이미 제 것을 내어준 붉은 황톳길이 아스라하게 사라진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키 큰 미루나무의 몫이다. 새가 지천이지만 사람이 굳이 쫓지 않는다. 자연이 선물한 것이니, 그 정도야 당연한 인심이다. 비옥한 땅만큼 살이 오른 미루나무 그늘 아랜 이름 모를 꽃들과 냉이가 푸른 융단을 깔고, 사람들은 그저 평화로워 내내 떠날 줄 모른다. 바람 부는 해질녘, 미루나무 밑에 누워 눈을 감는다. 긴 잎자루의 서걱거림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그 소리가 또 하나의 풍경이 된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금광호 위로 바람과 구름이 걷는다. 시간에 인색하지 말자 다짐하고 차분히 그러나 부지런히 호수 길을 걸어본다. 빛에 물든 나무들이 물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하늘로 치솟지 못하고 잠긴 솔가지들은 물 밑으로 찰랑인다. 강태공의 고물 라디오는 무엇인지 모를 노랫가락을 지글거리며 세월을 낚는 낚시꾼들의 지루함을 달랜다. 쉬이 지났다면 보지 못할 5월의 한 때가 달고 싱그러우니 오늘 나그네의 여유는 참으로 잘한 일이다. 때마침 내린 비 때문인가 칠장사(七長寺)는 붉은 속살을 드러낸 소나무와 초여름의 짙은 녹음에 주체할 수 없이 취해 있다. 신라 현안왕의 서자인 궁예가 유년기를 보냈다고 해 제법 찾은 이가 많기는 하나, 여느 절처럼 소란스럽지는 않다. 말을 잊게 하는 쓸쓸함과 한적함이 오히려 아름답다. 가사장삼을 곱게 차려입은 스님이 대웅전에 홀로 서 ‘나무아미타불’을 되뇌고, 관음전을 나서는 두 여인의 합장(合掌)이 진지하다. 소슬바람에 놀란 풍경 소리가 염불과 참배 위로 울린다. Travel Tip 경부고속도로에서 안성IC로 빠진다. 안성IC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표지판을 따라가면 안성 시내가 나온다. 이국적인 풍경으로 잘 알려진 안성목장은 공도읍 서태삼거리에서 ‘축산연구원ㆍ안성교육원’ 팻말 보고 우회전해 1.7km 들어가면 있다. 축산연구소 본관 앞에서 우회전해 400m쯤 가면 배나무 밭을 지나 널찍한 초원지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우덕이의 고장인 안성의 남사당놀이도 지나치지 말자. 보개면에 있는 남사당전수관에서는 4~10월, 매주 토요일마다 줄타기, 풍물놀이, 무동놀이, 살판, 덜미, 버나놀이 등의 공연을 펼친다. 서일농원에서는 잘 익은 된장 맛을 볼 수 있다. 1983년 조성된 개인 농원으로 된장에 관한 한 국내 최고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장독이 농원 한쪽을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이 장관. 청국장과 된장찌개, 10여 가지가 넘는 각종 무공해 반찬이 일품이다. 취재차 BMW 750Li, 4.8L 367마력 엔진, 1억8,240만~2억1,900만 원, 080-269-2200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 봉∼ 통일을 기다리게 하는.. 2008-05-13
승용차를 타고 휴전선을 넘어 달리는 경험은 예상대로 긴장되고 짜릿했다. 하지만 주목적지인 금강산에서는 마음대로 차를 타고 돌아다닐 수 없다. 금강산 관광지구에 들어가면 외금강 호텔 앞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 일만이천 봉우리의 금강산을 돌아보기엔 2박 3일 일정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북측은 오전에만 등산을 허용하기 때문에 돌아볼 수 있는 곳은 서너 곳뿐이다. 출입수속을 밟아 호텔에 짐을 풀고, 달러를 환전하고 나면 오후 3시가 넘는 시간이다(승용차 2박 3일 관광 기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교예공연 일정표에는 금강산 관광특구 투어/온천 또는 교예관람으로 첫날 오후 일정이 잡혀 있다. 먼저 교예공연을 보기로 했다. 관람료는 성인 특석 35달러, 일반석 30달러다. 남측에서는 서커스와 마술 등 교예공연이 오페라나 뮤지컬보다 대우를 못받지만 북측에서는 교예공연을 하는 배우들을 ‘인민배우’로 예우하고 있다. 관광지구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교예단은 국제대회에서 상을 받았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다고. 공중곡예비행, 널뛰기, 장대재주 등 1시간 30분에 걸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묘기가 펼쳐진다. 교예공연을 보고 나니 저녁시간. 금강산 관광지구에는 북측식당과 6곳, 남측식당 5곳이 있는데, 북측식당은 오전에 예약을 해야 이용할 수 있다. 이곳까지 와서 남측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지는 않아 고성항(장전항)에 자리한 고성항횟집으로 달려갔다. 금강산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고성읍에 위치한다. 고성항횟집 이름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활어회는 3∼4인 기준으로 90달러 정도. 북측의 인기 맥주라는 대동강맥주도 시켰다. 오성별맥주가 더 맛이 좋지만 금강산 관광지구에는 들어오지 않는다고. 대동강맥주는 제조년월일이 김일성 탄생연도를 원년으로 하는 주체로 표시되어 있어 이채로웠다. 올해는 주체 97년. 맥주는 만든 지 한 달도 안된 제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금강산 호텔 스카이라운지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은 북측 접대원들이 피아노 연주와 노래 공연을 하는 라이브바다. 관광객이 노래를 신청하면 북측 접대원들이 불러준다. 북측노래 외에 ‘계몽기가요’라고 불리는 남측의 1940∼50년대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가격은 주류 5∼10달러, 안주류는 10∼20달러선. 가장 인기 있는 구룡연 코스 둘째날 오전 일정은 등산. 코스는 구룡연으로 잡았다. 금강산 등산은 구룡연, 만물상, 수정봉, 내금강 등 네 코스로 이루어져 있고, 오후에 둘러볼 수 있는 삼일포와 해금강 코스가 있다. 구룡연은 왕복 4∼5시간 코스로 금강산의 4대 사찰 중 하나인 신계사가 있어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다. 금강산에 위치한 대부분의 사찰이 불타 없어졌지만 신계사 대웅보전은 얼마 전 복원을 마치고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등산은 차로 갈 수 있는 데까지 올라가 걷는 식인데, 버스 이동시 북측 관계자의 차가 앞뒤로 따라 붙는다. 외길이지만 남측 관광버스밖에 없어 마주 오는 차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금강산에는 유독 소나무가 많은데 얼마 전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 등의 문화재를 복원할 때 쓰이는 금강송이 많다고 한다. 소나무가 우거진 숲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서인지 한층 싱그러워 보였다. 왕복 4∼5시간 걸리며 구룡폭포와 고룡연, 상팔담, 비룡폭포 등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점심은 옥류관 냉면으로 정했다. 정통 평양냉면의 값은 12달러. 우리가 흔히 먹는 것보다 면발이 부드럽고 맛이 슴슴한 편이다. 냉면만으로는 아쉽다면 종합불고기(1인당 20달러)를 곁들이는 것도 좋다. 오후에는 삼일포 관광에 나섰다. 바닷물이 갇혀 생긴 삼일포는 전체 길이가 8km나 되는 커다란 호수다. 그중 2km 정도를 산책할 수 있다. 삼일포를 내려다볼 수 있는 두 개의 전망대에 오르고 호수를 건너는 다리까지 있다.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만날 수 있는 꼬치구이 노점상은 보너스. 옥수수로 만든 탁주(2달러) 한 잔과 흑돼지고기로 만든 꼬치구이(2달러) 하나면 산책의 피로가 고스란히 풀린다. 운동을 했으니 이젠 온천을 즐길 차례. 금강산 관광지구가 있는 곳은 고성읍 온정리(溫井理)다. 지명에 걸맞게 금강산 온천(12달러)이 있다. 깨끗하고 맑은 금강산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옛날 선비들이 금강산 유람을 위해 계까지 했을 정도로 금강산 여행이 인기였다는 사실이 와 닿는다. 저녁은 호텔 인근의 금강원에서 먹었다. 흑돼지고기 로스와 죽, 감자냉면이 코스로 나오는 흑돼지 코스요리(25달러)를 추천한다. 기암괴석이 들어찬 만물상 코스 마지막 날, 만물상 코스를 돌아보기 위해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층암절벽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산행의 진미를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등산코스다. 가장 높은 곳인 망양대까지 는 왕복 3∼4시간이 걸린다. 3km의 길지 않은 구간이지만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어 다리가 꽤 팍팍하다. 등산에 자신이 없다면 중간의 귀면암까지 가는 것도 좋겠다. 이젠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2박 3일의 일정이 무척이나 짧게 느껴졌다. 돌아가는 날짜를 연장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군사분계선을 넘는 인원수가 남북측에 고지되어 변경할 수 없다고 한다. 더 보고 싶으면 다시 한번 찾아와야 한다는 얘기. 북측 군인의 손 인사를 받으며 출입사무소를 지나 DMZ구간에 들어서자 금강산이 더 아쉬워진다. 무전기를 통해 들리는 가이드의 살명이 아쉬움과 함께 통일에의 염원을 전한다. “언젠가는 이곳을 자유롭게 오가는 날이 올 것입니다. 통일이 되는 그날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합시다. 만나는 날은 통일이 된 그날, 10시입니다.” 여행안내 교통: 승용차 여행을 가는 경우 미리 알려준 시간에 집결지인 화진포 아산휴게소에 도착하면 된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계동 현대사옥과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화진포 아산휴게소까지 갈 수 있다. 버스 이용요금은 왕복 3만 원. 호텔: 금강산 관광지구 안에는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다. 보통 만물상 입구에 자리잡은 금강산 호텔과 북측 최고의 명소인 김정숙 휴양소를 리모델링한 외금강 호텔, 해상 호텔인 호텔해금강을 많이 이용한다. 그 외에도 단체 관광객을 위한 패밀리비치 호텔과 금강산펜션타운, 카라반, 온천빌리지 등이 있다. 통화: 금강산 관광지구 안에서는 달러와 카드가 통용된다. 현지에 농협 금강산 지점이 있어 미리 준비하지 않아도 되지만 환율을 생각하면 미리 환전해 가는 것이 유리하다. 쇼핑: 동관과 서관으로 나뉘어져 있는 온정각 휴게소에서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다. 동관에 위치한 면세점에는 북측의 담배, 술 등이 준비되어 있다. 편의점과 포장마차도 운영되고 있어 불편함이 없다. 경비: 여행 경비는 여행상품(당일, 1박 2일, 2박 3일) 및 시기(성수기, 최성수기, 평수기, 비수기)에 따라 다르고, 숙박시설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5월 11일까지는 최성수기, 31일까지는 성수기다. 성수기 외금강 호텔 스탠다드룸에 2박할 경우 1인당 비용이 39만 원 정도 된다(아침 식사 포함).
서라벌의 달이 노닐고 꽃피어 향기로운 경주 2008-05-08
경주의 봄은 벚꽃으로 화려하다. 하늘은 꽃 지붕에 가리어지고 바람은 눈보다 황홀한 꽃비를 뿌리고, 떨어진 꽃잎은 발끝에서 하얀 파도를 친다. 30여 년이 넘은 수만 그루의 벚나무……. 터지는 꽃향에 취한 마음이 비틀거리고 눈을 감아도 코끝에서 봄이 맴돈다. 불국사는 어느 곳보다 더한 꽃밭이다. 작은 틈도 허락하지 않는 벚나무는 온 힘으로 가지를 벌려 꽃으로 메웠다. 그 정취에 젖어든 상춘객(嘗春客)과 팔베개를 하고 누운 연인들의 웃음에 봄이 사뭇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매달린 꽃잎은 오는 나그네를 마중하고 지는 꽃잎은 돌아서는 그림자를 배웅한다. 신라의 옛 성터를 따라 유채꽃이 만개했다. 반달모양으로 언덕을 깎고 그 위에 흙과 돌로 쌓은 반월성(半月城). 천 년을 넘어선 세월의 흐름이 모든 유적과 흔적을 묻어버리고 신라의 위용은 자취도 없이 애처롭다. 변함이 없는 것은 신라의 흥망과 그 후예들의 삶을 묵묵히 지켜보아 온 하늘뿐. 다만 성벽을 두른 유채꽃이 황금처럼 찬란했던 신라의 옛 모습 만큼 눈부실 뿐이다. 옛 화랑들의 유희(遊戱)가 꽃길 사이로 반짝인다. 토함산은 거친 동해의 바람을 마시고 맑게 거른 뒤 경주에 뿌려놓는다. 그래서 토함산(吐含山)이다. 동해의 일출과 석굴암을 찾는 헤아리지도 못할 발길이 오르고 내려 토함산의 등산로는 쉬운 길이 된 지 오래. 문득 순조로움이 반갑지 않아 그 길을 등지고 발바닥 저리는 좁고 거친 길을 오른다. 잡초와 들꽃이 수놓은 끝없는 초원, 이탈(離脫)의 미학이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토함산의 초원은 젖가슴처럼 햇빛에 풍만하고 바람에 꺾일 듯 망초들의 춤이 아름답다. 궁 안에 연못과 산을 만들고 화초와 나무를 심어 주연(酒宴)을 베풀던 안압지. 서라벌의 하늘에 어스름이 내려앉으면 관광객들은 안압지의 연못으로 모여든다. 빛으로 치장한 누각과 연못……. 천 년 전 신라의 밤이 이보다 더 찬란했을까. 가야금 가락과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릴 법도 한데, 그저 상상으로만 만족해야 한다. 신비에 가까운 연못의 반영은 어느 것이 물빛이고 어느 것이 하늘빛인지 구분이 어렵다. 몇 시간을 헤매어도 떠날 줄 모르는 객들이 신라의 달밤에 흥 것 취했다. 양동 마을……. 땅이 낮은 곳은 초가집이, 언덕에는 기와집과 정자가 섰다. 몇몇 주인 잃은 집은 외로이 늙어가지만 해가지면 연기가피어오르는 수많은 굴뚝 아래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다. 신라의 한 모퉁이에 처마를 곧게 세운 조선의 옛 터가 그렇게 꿋꿋하다. “내가 죽거든 동해에 묻으라, 비록 이 몸이 죽더라도 용이 되어서 내 나라를 지키겠노라.” 신라 문무왕의 의지가 세월의 흐름에도 퇴색하지 않고 바다와 하늘 사이에 바위가 되어 누워 있다. 저만치 들려오는 대왕암의 울음소리에 두 손 모은 여인과 무녀의 기도가 간절하다. 파도가 쉼 없이 밀려드는 백사장에는 저마다 소원을 비는 촛불이 쉼 없이 깜빡인다. 대나무에 메인 오색천이 바람에 춤을 추고 파도에 깎인 대왕릉의 골 사이로 이방인의 기도가 쌓인다. Travel Tip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경주IC로 빠지거나, 영동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해도 된다. 경주의 볼거리는 시내에 거의 모여 있어 관광안내도 하나면 어렵지 않게 일정을 짤 수 있다. 남산도 빼놓지 말고 들러보자. 남산은 신라 불교문화의 집합체. 절터가 130여 곳, 석불이 100여 채, 폐탑이 무려 71기다. 남산 등산 후에는 불국사와 토함산 일대의 불교 유적을 잠시 돌아본 후 문무대왕 수중릉으로 가 바다를 본다. 옛날에는 추령재를 넘어갔지만 새 도로가 뚫려 편해졌다. 감포에서는 기림사, 감은사지, 대왕암 등을 돌아본다. 갈매기가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모습이 장관이다. 31번 국도를 따라 해안 드라이브를 즐겨도 좋다. 천마총 인근에는 30년 전부터 하나 둘 자리 잡은 해장국 거리가 있다. 국물이 기름지지 않고 시원해 입맛이 껄끄러운 아침에 부드럽게 잘 넘어간다. 취재차 BMW Z4 3.0Si 쿠페, 3.0L 315마력 엔진, 7,290만 원, 080-269-2200
몰래 즐기고 싶다 錦山 2008-04-28
비단같이 고운 강이 들을 적시고, 산굽이를 휘돌아 비단 금, 뫼 산 錦山이 되었다. 이렇게 예쁜 이름을 갖고 있는 고을을 인피니티 Q35를 몰고 찾아갔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이맘때는 어딜 가도 볼것이 없으니, 몸에 좋은 인삼 구경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가볍게 집을 나섰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바람까지 쌉싸름한 인삼의 고장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달리다 금산 인터체인지를 벗어나자마자 쌉싸름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른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시끌벅적한 인삼 시장이 나온다. 맨 먼저 기자의 눈길을 끈 것이‘쌍둥이네, 인삼튀김 1,000원’이라는 간판. 쌍둥이 아가씨가 자신의 손만큼이나 길고 통통한 인삼에 묽은 반죽을 입혀 바지런히 튀겨내고 있었다. 기름 가마에서 막 건져낸 따끈한 인삼을 물엿처럼 생긴 홍삼정과에 찍어 한 입 베어 무니 바삭한 튀김옷과 부드러운 인삼이 분리되면서 달콤한 맛이 입속 가득 퍼진다. 인삼 특유의 냄새도, 쓴 맛도 없다. “인삼 맛은 계절에 따라 달라져요. 봄에는 달착지근한 맛이 나지요. 인삼 튀김으로는 남는 게 없지만 수삼센터 앞에서 장사하면서 작은 거 쓸 수는 없잖아요. 대신 다른 메뉴가 있으니깐…….”배시시 웃는 모습이 예쁘다. 인삼 튀김이 워낙 크고 실해서 두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여기에 1천 원짜리 인삼 막걸리 한 잔을 걸치면 한 끼 식사로 부족함이 없을 듯. 차를 몰고 왔다면 인삼 막걸리 한 병(5천 원)을 사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수삼센터 안에서는 상인들이 인삼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수삼은 그때그때 시세가 달라지지만 상품 750g에 6만5천~7만 원선. 수삼센터에서 삼을 골라 근처 가게로 가져가면 대나무 바구니에 이끼를 깔고 보기 좋게 담아 선물세트로 만들어 준다. 포장 비용은 5천 원. 홍삼건빵, 홍삼젤리, 홍삼캔디, 홍삼을 달인 홍삼정, 초콜릿……. 인삼 집산지답게 없는 것이 없다. 2일, 7일마다 장이 서고, 9월에는 인삼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때 맞추어 방문하면 더 재미있겠다. 인터체인지에서 인삼 시장까지는 1.8km.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한 드라이브 인삼 시장에서 인터체인지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오른편에 적벽강 팻말이 보인다. 들판은 온통 인삼밭이다. 멀리 야트막한 동산도 비탈진 밭과 논도 검은색 차광막을 뒤집어 쓰고 있다. 잘 닦인 길에는 차들이 거의 없어 가끔씩 인피니티의 실력을 확인해 보기도 했다. 부리-양곡을 거쳐 예미를 지나면 가파른 절벽을 산을 끼고 강이 길게 펼쳐진다. 강변으로 내려서서 자갈밭을 천천히 걸어 본다. 오래된 다리 아래로 조심조심 차를 몰고 내려갔다. 좁다란 오프로드가 강을 따라 얼마간을 달리다 뚝 끊어진다. 정갈하게 다듬어진 강변에는 ‘대장금이 산책했던 길’이라는 팻말이 서 있다. 금산 시장에서 적벽강까지는 약 12km. 금산 시내에서 13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10km쯤 내려가면 보석사라는 아담한 절이 나온다. 진악산(해발 732m) 등산로 입구에 자리한 이 절은 886년에 창건된 오랜 역사를 말해 주듯이 입구에 1천900살이 다 된 은행나무가 서 있다. 건물은 보잘것 없지만 특유의 향기로움이 감돌고, 주변 계곡이 무척 예쁘다. 절 입구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전라북도 무주땅. 15km 지점에 용담호가 있다. 바다처럼 보이는 드넓은 호수 위로 기다란 다리가 보인다. 다리를 건너면 진안, 마이산이 지척이다. 다리를 넘나들면서 호쾌한 드라이브를 즐기다 보면 스트레스가 싹 가신다. 쌉싸름한 인삼이 씹히는 어죽 금산의 대표 음식은 물고기로 만든 어죽이다. 어죽집은 금강 상류인 천내강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금산 토박이한테서 소개받은 ‘아주 잘하는 어죽집’의 이름은 시탕뿌리. 나무를 하거나 소 꼴을 베어서 오다가 쉬는 곳이어서 시탕, 뿌리는 고향의 의미라고 한다. 바글바글 끓는 뚝배기에 송송 썬 수삼이 얹혀 있다. 후후 불어서 입에 넣으니 구수하면서도 향긋한 맛이 은은하게 퍼진다. 쌉싸름한 수삼도 사각사각 씹힌다. 열심히 먹어도 양이 줄지 않는 건 뜨거운 그릇 속에서 음식이 불은 탓이다. 죽에는 쌀과 함께 가느다란 국수, 수제비가 들어 있다. 못살았던 시절에 이것저것 넣고 끓여 먹었던 향토음식이라고 할까? 맛은 괜찮았다. 새끼손가락만한 물고기를 튀겨 초고추장을 바른 도리뱅뱅이도 담백하고 고소하다. 콧등에 땀이 맺히도록 열심히 먹다가 창밖을 보니 마당 너머로 잔잔한 강물이 보인다. 이 강에서 잡은 붕어, 빠가사리, 메기 등으로 어죽을 만든다. 내장을 걷어낸 물고기를 6~7시간 곤 다음 뼈를 발라내고 쌀, 국수, 밀가루 반죽을 넣어 끓인다. 익을 때쯤 깻잎 대파, 부추, 미나리를 넣어 한소큼 끓이면 구수한 어죽 완성. 가격도 착해서 어죽 5천 원, 인삼어죽 6천 원, 도리뱅뱅이와 빙어튀김, 민물새우 튀김은 1만 원이다. 잡힐 때만 만드는 특별메뉴 모래무지 튀김도 1만 원 받는다.
땅의 끝에서 시작을 만나다 해남 2008-03-11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아야 한다. 해남을 덮은 하늘은 한순간도 풍성치 않을 때가 없고, 한 치도 같은 모습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땅 끝의 하늘은 한 편의 파노라마를 늘어놓는다. 어느 새 늘어진 어깨와 머리가 자연스레 하늘로 향한다. 선조의 귀양살이를 품고, 마음을 잃은 시인에게 은둔의 자리를 내어주고, 떠도는 나그네의 발이 택한 마지막 요람의 땅. 그래서 해남은 순례자의 땅이자 유배의 땅이라 불렸다. 해남의 하늘을 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더는 나아갈 곳이 없는 이들이 왜 그토록 이곳을 찾았는지……. 관광객들은 하늘에 시선을 두고 아무런 말이 없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찍어 보려 하지만 허사다. 마음으로 보는 하늘이 고작 기계 덩어리에 담길 일이 아니다. 따사로운 햇볕과 훈풍이 불어오는 봄이면, 해남에서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아야 한다. 눈을 열고 바라보니 계절이 분명치 않다. 시린 바람에 움츠러든 몸은 겨울을 말하는데 해남은 봄이 내려앉은 지 오래다. 붉은 황토가 키워낸 초록의 생명은 해남의 초입부터 땅 끝까지 끝없이 이어진다. 여행자는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난 듯 웃음이 난다. 보드랍고 토실하게 살 오른 땅이 계절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겨우내 월동(越冬) 배추를 키우고 비탈길의 어엿한 차밭과 보리를 일궜다. 이렇듯 넉넉하고 풍성한 땅을 사람보다 먼저 알고 찾아오는 철새들.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어 주는 땅 끝을 찾는 것이 사람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울둘목 위로 진도대교가 놓여 있다. 다리 밑의 바다는 흰 갈기의 거친 회오리를 그리며 명량해협을 빠져나간다. 그 사나움에 무엇 하나 쉬이 지나지 못하지만 울둘목을 탓하는 이는 없다. 거칠고 억센 힘으로 그 옛날 지리멸렬했던 땅을 왜군으로부터 지켜내지 않았던가. 해남과 진도 두 땅을 잇는 다리는 그 위상을 기념하듯 남녘에서 가장 밝고 오래도록 불을 밝힌다. 마음을 내릴 그곳을 향해 사람들은 갈두산(葛頭山)을 오르고 오른다. 어디를 바라보고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알아야 한다. 땅 끝을 찾는 이유가 그럴 것이다. 다도해(多島海)와 산자락을 끼고 굽이돌아 오르다 보면 어느덧 정상이다. 더는 달릴 수 없는 곳이기에 이곳의 땅과 바다는 더욱 뜨겁고 아름답다. 어떤 이는 바위에 걸터앉아 금빛 구름을 향해 술잔을 기울인다, 누구는 멀리 신기루 같은 한라산의 끝자락을 말없이 바라본다. 연인들은 뜨거워진 손을 붙잡고 가파른 계단을 헉헉거리며 오른다. 이렇게 바라본 땅 끝의 풍광에 시름을 내려놓지 못할 이가 누가 있을까. 땅 끝에서 시작을 본다. Travel Tip 해남에 가려면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목포 IC를 빠져나와 목포 방향으로 달린다. 영산강 방조제를 건너 2번 국도를 타고 영암을 거쳐 달리면 성전리 삼거리가 나온다. 다시 13번 국도를 타고 달리면 해남읍에 닿는다. 땅 끝 마을까지 가고 싶다면 해남읍에서 77번 국도를 타면 된다. 땅 끝에서의 일출과 일몰을 빼놓을 수 없다. 높이 489m에서 본 달마산의 일출과 일몰은 대둔산의 장엄함과 천관산의 기묘함이 한데 섞여 장관을 이룬다. 전라도의 푸짐한 밥 인심도 맛보자. 해남읍에 있는 천일식당(061-535-1001)은 떡갈비 정식과 한정식으로 잘 알려진 집. 상다리 휘어지는 밥상이 기다리고 있다. 취재차 BMW 528i 3.0L 231마력 엔진, 6,750만 원, 080-269-2200
MOBIS MC7의 추천 여행지 정선 아라리촌 2008-02-04
강원도 정선은 예로부터 ‘아리랑’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정선아리랑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아우라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모비스 MC7이 추천한 ‘아라리촌’이 있다. 아라리촌은 정선의 옛날 주거문화를 한눈에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전통와가와 굴피집, 너와집, 저릅집, 돌집, 귀틀집의 전통가옥 6동과 주막, 토속매점 등이 조성되어 있고, 지금은 보기 드문 물레방아와 연자방아, 서낭당, 농기구공방, 방앗간 등이 재현되어 있다. 정선 지역의 전통가옥들이 한자리에 모여 입구에 들어서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표지판에는 조선시대 실학자이자 소설가인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가난한 양반이 자신의 빚을 갚아주는 대가로 지체 낮은 부자에게 양반의 신분을 팔았다는 이야기로, 양반전에 등장하는 실물 크기의 동상과 설명이 아라리촌 곳곳에 세워져 있다. 구성지게 흘러나오는 ‘정선 아리랑’을 들으며 1만503평 부지에 펼쳐진 정선의 옛 주거문화를 둘러보자. 200년 이상 자란 소나무토막을 쪼갠 널판으로 지붕을 이은 ‘너와집’은 정선지방의 전통민가로서 안방, 건넌방, 사랑방, 도장방, 대청, 부엌, 봉당, 외양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껍질을 벗긴 통나무를 우물정(井)자 모양으로 쌓아올려 벽체를 삼고, 나무 틈새를 진흙으로 메워 지은 ‘귀틀집’은 많은 적설량을 견디고 간편하게 지을 수 있어 산간지대의 화전민들이 오래 전부터 이용하던 가옥 형태다. 아라리촌에서 가장 크고 튼튼해 보이는 ‘전통와가’는 양반가의 전통 가옥으로 안방과 건넌방, 작은방, 대청, 마루방, 고방, 부엌 등의 안채와 손님접대로 쓰였던 사랑채로 나뉘어져 있다. 안채 마당에는 세수할 때 고개를 숙이지 않는 양반의 동상이 재미있게 표현돼 있다. 널뛰기가 있는 원형 산책로를 지나 ‘육모정’에서 잠시 지친 다리를 쉬어 가자. 육모정에서는 정선 읍내 전체를 바라볼 수 있고, 조양강과 계절 따라 변하는 조양산의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2004년 10월, 약 74억 원을 들여 조성한 아라리촌은 입장료 수익금만으로는 유지하기가 어려워 지금은 저릅집, 귀틀집, 굴피집 등을 민박으로 사용하며 관광객을 맞고 있다. 애초 민박형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어서 다소 불편한 점은 있지만 우리의 전통 가옥을 체험할 흔치 않은 기회이니 하룻밤 아라리촌에서 묵고 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터. 현재 입장료는 한시적으로 무료이다. 문의 (033)560-2059 정선 아라리촌 길찾기 모비스 MC7 ‘주소찾기’에 주소(강원 정선군 정선읍 애산리 560번지)를 입력하거나 ‘명칭찾기’에서 ‘아라리촌’을 입력하면 된다. 검색이 완료됐다면 ‘바로안내’를 클릭!
길을 잃어도 좋을 그곳 정선 2008-02-01
빛 태백선 철도로 사람보다 석탄을 바삐 나르던 정선에는 이제 석탄도, 석탄 캐는 이도 없다. ‘석탄산업 자유화 조치’는 탄광촌 노동자들을 끝없는 어둠 속으로 내던지고, 그들의 옹색한 살림을 달래주듯 카지노가 들어섰다. 사북오거리를 지나는 반듯한 길에는 모텔과 호텔이, 그 사이사이는 돈 잃은 외지인의 급전을 위한 전당포가 채우고 있다. 그 옛날 탄광촌 노동자들이 사용하던 남루한 사택만이 이곳이 과거 검은 황금의 땅이었음을 애처롭게 말해준다. 해가 지면 탄가루와 시름을 씻어내기 위해 밤늦도록 판자촌의 빛을 밝히던 노동자들의 땅은 이제 도시인들의 잔치를 위해 반짝이고 있다. 하늘 해발 800m. 주름 깊은 고갯길을 따라 오른 한치 마을은 땅으로부터 도망치듯 그렇게 깊숙이 묻혀 있다. 아궁이에 타들어 가는 장작과 연기가 첩첩 구릉을 오른 나그네들의 마음을 고향처럼 품는다. 고랭지를 일구며 비비적거리던 마을 사람들은 바깥세상이 궁금해 하나둘씩 떠나고, 남은 것은 700년을 뿌리내린 보호수와 단 몇 가구만을 지키는 화전민의 늙은 후예들. 땅보다 하늘이 가까운 이곳에 호기심 많은 객(客)이 종종 잊지 않고 찾아오고 있다. 길 만항재는 구불구불 하늘을 향해 끝없이 길을 내어놓는다. 이대로 가면 길을 잃을 듯한데 그래도 좋다. 보이는 곳은 어디에나 화암(畵岩) 절벽이고, 애써 찾지 않아도 자연이 가까이 있다. 고갯마루에 올라 산천(山川)을 내려다 본다. 칼바람에 맞서 날카로이 깎인 암벽과 유난히 외롭고 쓸쓸한 낙엽송들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길이 단지 달려야 하는 곳이라면 긴장을 풀지 못하고 굽이치는 이 길이 얄궂기도 하지만, 마음을 비워가는 여행이라면 만항재는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아도 좋을 쉼의 길이 되어준다. 소리 구절리에서 흐르는 송천과 임계면 골지천이 만나 넉넉히 흐르던 아우라지 물길은 곳곳에 강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물이 낮아지고 살얼음이 차 마을과 마을을 오가던 뱃사공의 노랫가락도 아이들의 물장구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작은 두 물줄기가 한숨 돌릴 때쯤이면, 사람들은 강바닥에 통나무를 세우고 솔가지를 얹어 섶다리를 만든다. 나룻배가 아니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오가며 시름을 나눈다. 섶다리 삐걱이는 소리와 첩첩한 산자락의 바람 소리가 저만치 들려오는 정선 아리랑에 장단을 맞춘다. 강 겨울이 내린 강을 한눈에 담으려 굽은 길을 오르고 오르며 애를 써본다. 기력이 빠지고 욕심을 버리고 나니 그때야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 정선 백리 길을 휘감은 조양강은 욕심 많은 나그네를 그렇게 천천히 쉬어가게 한다. 물도 푸름도 소리도 모두 집어삼킨 겨울이 조금은 야속해질 때쯤, 미처 바라보지 못한 하늘을 비추며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달빛 머금은 정선의 강이다. 바람 석재와 사람들을 토해내던 정선 간이역은 탄전이 숨을 죽이자 너덜너덜한 간판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추억을 찾아 떠도는 이를 붙드는 것은 병풍을 두른 산과 녹이슨 철길. 차마 닫지 못한 문틈으로 바람만 쉬어 가는 대합실에 사람들의 빛바랜 흔적이 남아 있다. 이제 무인역(無人驛)이 되어버린 선평역은 떠나고 오지 않는 것은 기차가 아닌 시간임을 말해준다. Travel Information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신갈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한다. 원주를 지나 진부나들목에서 59번 국도를 따라가면 정선읍으로 연결된다. 59번 국도는 정선 땅에 닿자마자 장전계곡, 단임골, 숙암계곡을 차례로 지나니 짬이 나는 대로 들러보자. 영동고속도로에서 새말나들목으로 빠져나와 42번 국도를 이용해도 정선으로 이어진다. 취재차 BMW X3 3.0d, 3.0L 디젤 터보 218마력 엔진, 7,180만 원, 080-26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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