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 봉∼ 통일을 기다리게 하는.. 2008-05-13
승용차를 타고 휴전선을 넘어 달리는 경험은 예상대로 긴장되고 짜릿했다. 하지만 주목적지인 금강산에서는 마음대로 차를 타고 돌아다닐 수 없다. 금강산 관광지구에 들어가면 외금강 호텔 앞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 일만이천 봉우리의 금강산을 돌아보기엔 2박 3일 일정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북측은 오전에만 등산을 허용하기 때문에 돌아볼 수 있는 곳은 서너 곳뿐이다. 출입수속을 밟아 호텔에 짐을 풀고, 달러를 환전하고 나면 오후 3시가 넘는 시간이다(승용차 2박 3일 관광 기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교예공연 일정표에는 금강산 관광특구 투어/온천 또는 교예관람으로 첫날 오후 일정이 잡혀 있다. 먼저 교예공연을 보기로 했다. 관람료는 성인 특석 35달러, 일반석 30달러다. 남측에서는 서커스와 마술 등 교예공연이 오페라나 뮤지컬보다 대우를 못받지만 북측에서는 교예공연을 하는 배우들을 ‘인민배우’로 예우하고 있다. 관광지구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교예단은 국제대회에서 상을 받았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다고. 공중곡예비행, 널뛰기, 장대재주 등 1시간 30분에 걸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묘기가 펼쳐진다. 교예공연을 보고 나니 저녁시간. 금강산 관광지구에는 북측식당과 6곳, 남측식당 5곳이 있는데, 북측식당은 오전에 예약을 해야 이용할 수 있다. 이곳까지 와서 남측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지는 않아 고성항(장전항)에 자리한 고성항횟집으로 달려갔다. 금강산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고성읍에 위치한다. 고성항횟집 이름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활어회는 3∼4인 기준으로 90달러 정도. 북측의 인기 맥주라는 대동강맥주도 시켰다. 오성별맥주가 더 맛이 좋지만 금강산 관광지구에는 들어오지 않는다고. 대동강맥주는 제조년월일이 김일성 탄생연도를 원년으로 하는 주체로 표시되어 있어 이채로웠다. 올해는 주체 97년. 맥주는 만든 지 한 달도 안된 제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금강산 호텔 스카이라운지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은 북측 접대원들이 피아노 연주와 노래 공연을 하는 라이브바다. 관광객이 노래를 신청하면 북측 접대원들이 불러준다. 북측노래 외에 ‘계몽기가요’라고 불리는 남측의 1940∼50년대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가격은 주류 5∼10달러, 안주류는 10∼20달러선. 가장 인기 있는 구룡연 코스 둘째날 오전 일정은 등산. 코스는 구룡연으로 잡았다. 금강산 등산은 구룡연, 만물상, 수정봉, 내금강 등 네 코스로 이루어져 있고, 오후에 둘러볼 수 있는 삼일포와 해금강 코스가 있다. 구룡연은 왕복 4∼5시간 코스로 금강산의 4대 사찰 중 하나인 신계사가 있어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다. 금강산에 위치한 대부분의 사찰이 불타 없어졌지만 신계사 대웅보전은 얼마 전 복원을 마치고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등산은 차로 갈 수 있는 데까지 올라가 걷는 식인데, 버스 이동시 북측 관계자의 차가 앞뒤로 따라 붙는다. 외길이지만 남측 관광버스밖에 없어 마주 오는 차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금강산에는 유독 소나무가 많은데 얼마 전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 등의 문화재를 복원할 때 쓰이는 금강송이 많다고 한다. 소나무가 우거진 숲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서인지 한층 싱그러워 보였다. 왕복 4∼5시간 걸리며 구룡폭포와 고룡연, 상팔담, 비룡폭포 등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점심은 옥류관 냉면으로 정했다. 정통 평양냉면의 값은 12달러. 우리가 흔히 먹는 것보다 면발이 부드럽고 맛이 슴슴한 편이다. 냉면만으로는 아쉽다면 종합불고기(1인당 20달러)를 곁들이는 것도 좋다. 오후에는 삼일포 관광에 나섰다. 바닷물이 갇혀 생긴 삼일포는 전체 길이가 8km나 되는 커다란 호수다. 그중 2km 정도를 산책할 수 있다. 삼일포를 내려다볼 수 있는 두 개의 전망대에 오르고 호수를 건너는 다리까지 있다.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만날 수 있는 꼬치구이 노점상은 보너스. 옥수수로 만든 탁주(2달러) 한 잔과 흑돼지고기로 만든 꼬치구이(2달러) 하나면 산책의 피로가 고스란히 풀린다. 운동을 했으니 이젠 온천을 즐길 차례. 금강산 관광지구가 있는 곳은 고성읍 온정리(溫井理)다. 지명에 걸맞게 금강산 온천(12달러)이 있다. 깨끗하고 맑은 금강산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옛날 선비들이 금강산 유람을 위해 계까지 했을 정도로 금강산 여행이 인기였다는 사실이 와 닿는다. 저녁은 호텔 인근의 금강원에서 먹었다. 흑돼지고기 로스와 죽, 감자냉면이 코스로 나오는 흑돼지 코스요리(25달러)를 추천한다. 기암괴석이 들어찬 만물상 코스 마지막 날, 만물상 코스를 돌아보기 위해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층암절벽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산행의 진미를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등산코스다. 가장 높은 곳인 망양대까지 는 왕복 3∼4시간이 걸린다. 3km의 길지 않은 구간이지만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어 다리가 꽤 팍팍하다. 등산에 자신이 없다면 중간의 귀면암까지 가는 것도 좋겠다. 이젠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2박 3일의 일정이 무척이나 짧게 느껴졌다. 돌아가는 날짜를 연장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군사분계선을 넘는 인원수가 남북측에 고지되어 변경할 수 없다고 한다. 더 보고 싶으면 다시 한번 찾아와야 한다는 얘기. 북측 군인의 손 인사를 받으며 출입사무소를 지나 DMZ구간에 들어서자 금강산이 더 아쉬워진다. 무전기를 통해 들리는 가이드의 살명이 아쉬움과 함께 통일에의 염원을 전한다. “언젠가는 이곳을 자유롭게 오가는 날이 올 것입니다. 통일이 되는 그날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합시다. 만나는 날은 통일이 된 그날, 10시입니다.” 여행안내 교통: 승용차 여행을 가는 경우 미리 알려준 시간에 집결지인 화진포 아산휴게소에 도착하면 된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계동 현대사옥과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화진포 아산휴게소까지 갈 수 있다. 버스 이용요금은 왕복 3만 원. 호텔: 금강산 관광지구 안에는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다. 보통 만물상 입구에 자리잡은 금강산 호텔과 북측 최고의 명소인 김정숙 휴양소를 리모델링한 외금강 호텔, 해상 호텔인 호텔해금강을 많이 이용한다. 그 외에도 단체 관광객을 위한 패밀리비치 호텔과 금강산펜션타운, 카라반, 온천빌리지 등이 있다. 통화: 금강산 관광지구 안에서는 달러와 카드가 통용된다. 현지에 농협 금강산 지점이 있어 미리 준비하지 않아도 되지만 환율을 생각하면 미리 환전해 가는 것이 유리하다. 쇼핑: 동관과 서관으로 나뉘어져 있는 온정각 휴게소에서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다. 동관에 위치한 면세점에는 북측의 담배, 술 등이 준비되어 있다. 편의점과 포장마차도 운영되고 있어 불편함이 없다. 경비: 여행 경비는 여행상품(당일, 1박 2일, 2박 3일) 및 시기(성수기, 최성수기, 평수기, 비수기)에 따라 다르고, 숙박시설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5월 11일까지는 최성수기, 31일까지는 성수기다. 성수기 외금강 호텔 스탠다드룸에 2박할 경우 1인당 비용이 39만 원 정도 된다(아침 식사 포함).
서라벌의 달이 노닐고 꽃피어 향기로운 경주 2008-05-08
경주의 봄은 벚꽃으로 화려하다. 하늘은 꽃 지붕에 가리어지고 바람은 눈보다 황홀한 꽃비를 뿌리고, 떨어진 꽃잎은 발끝에서 하얀 파도를 친다. 30여 년이 넘은 수만 그루의 벚나무……. 터지는 꽃향에 취한 마음이 비틀거리고 눈을 감아도 코끝에서 봄이 맴돈다. 불국사는 어느 곳보다 더한 꽃밭이다. 작은 틈도 허락하지 않는 벚나무는 온 힘으로 가지를 벌려 꽃으로 메웠다. 그 정취에 젖어든 상춘객(嘗春客)과 팔베개를 하고 누운 연인들의 웃음에 봄이 사뭇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매달린 꽃잎은 오는 나그네를 마중하고 지는 꽃잎은 돌아서는 그림자를 배웅한다. 신라의 옛 성터를 따라 유채꽃이 만개했다. 반달모양으로 언덕을 깎고 그 위에 흙과 돌로 쌓은 반월성(半月城). 천 년을 넘어선 세월의 흐름이 모든 유적과 흔적을 묻어버리고 신라의 위용은 자취도 없이 애처롭다. 변함이 없는 것은 신라의 흥망과 그 후예들의 삶을 묵묵히 지켜보아 온 하늘뿐. 다만 성벽을 두른 유채꽃이 황금처럼 찬란했던 신라의 옛 모습 만큼 눈부실 뿐이다. 옛 화랑들의 유희(遊戱)가 꽃길 사이로 반짝인다. 토함산은 거친 동해의 바람을 마시고 맑게 거른 뒤 경주에 뿌려놓는다. 그래서 토함산(吐含山)이다. 동해의 일출과 석굴암을 찾는 헤아리지도 못할 발길이 오르고 내려 토함산의 등산로는 쉬운 길이 된 지 오래. 문득 순조로움이 반갑지 않아 그 길을 등지고 발바닥 저리는 좁고 거친 길을 오른다. 잡초와 들꽃이 수놓은 끝없는 초원, 이탈(離脫)의 미학이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토함산의 초원은 젖가슴처럼 햇빛에 풍만하고 바람에 꺾일 듯 망초들의 춤이 아름답다. 궁 안에 연못과 산을 만들고 화초와 나무를 심어 주연(酒宴)을 베풀던 안압지. 서라벌의 하늘에 어스름이 내려앉으면 관광객들은 안압지의 연못으로 모여든다. 빛으로 치장한 누각과 연못……. 천 년 전 신라의 밤이 이보다 더 찬란했을까. 가야금 가락과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릴 법도 한데, 그저 상상으로만 만족해야 한다. 신비에 가까운 연못의 반영은 어느 것이 물빛이고 어느 것이 하늘빛인지 구분이 어렵다. 몇 시간을 헤매어도 떠날 줄 모르는 객들이 신라의 달밤에 흥 것 취했다. 양동 마을……. 땅이 낮은 곳은 초가집이, 언덕에는 기와집과 정자가 섰다. 몇몇 주인 잃은 집은 외로이 늙어가지만 해가지면 연기가피어오르는 수많은 굴뚝 아래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다. 신라의 한 모퉁이에 처마를 곧게 세운 조선의 옛 터가 그렇게 꿋꿋하다. “내가 죽거든 동해에 묻으라, 비록 이 몸이 죽더라도 용이 되어서 내 나라를 지키겠노라.” 신라 문무왕의 의지가 세월의 흐름에도 퇴색하지 않고 바다와 하늘 사이에 바위가 되어 누워 있다. 저만치 들려오는 대왕암의 울음소리에 두 손 모은 여인과 무녀의 기도가 간절하다. 파도가 쉼 없이 밀려드는 백사장에는 저마다 소원을 비는 촛불이 쉼 없이 깜빡인다. 대나무에 메인 오색천이 바람에 춤을 추고 파도에 깎인 대왕릉의 골 사이로 이방인의 기도가 쌓인다. Travel Tip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경주IC로 빠지거나, 영동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해도 된다. 경주의 볼거리는 시내에 거의 모여 있어 관광안내도 하나면 어렵지 않게 일정을 짤 수 있다. 남산도 빼놓지 말고 들러보자. 남산은 신라 불교문화의 집합체. 절터가 130여 곳, 석불이 100여 채, 폐탑이 무려 71기다. 남산 등산 후에는 불국사와 토함산 일대의 불교 유적을 잠시 돌아본 후 문무대왕 수중릉으로 가 바다를 본다. 옛날에는 추령재를 넘어갔지만 새 도로가 뚫려 편해졌다. 감포에서는 기림사, 감은사지, 대왕암 등을 돌아본다. 갈매기가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모습이 장관이다. 31번 국도를 따라 해안 드라이브를 즐겨도 좋다. 천마총 인근에는 30년 전부터 하나 둘 자리 잡은 해장국 거리가 있다. 국물이 기름지지 않고 시원해 입맛이 껄끄러운 아침에 부드럽게 잘 넘어간다. 취재차 BMW Z4 3.0Si 쿠페, 3.0L 315마력 엔진, 7,290만 원, 080-269-2200
몰래 즐기고 싶다 錦山 2008-04-28
비단같이 고운 강이 들을 적시고, 산굽이를 휘돌아 비단 금, 뫼 산 錦山이 되었다. 이렇게 예쁜 이름을 갖고 있는 고을을 인피니티 Q35를 몰고 찾아갔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이맘때는 어딜 가도 볼것이 없으니, 몸에 좋은 인삼 구경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가볍게 집을 나섰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바람까지 쌉싸름한 인삼의 고장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달리다 금산 인터체인지를 벗어나자마자 쌉싸름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른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시끌벅적한 인삼 시장이 나온다. 맨 먼저 기자의 눈길을 끈 것이‘쌍둥이네, 인삼튀김 1,000원’이라는 간판. 쌍둥이 아가씨가 자신의 손만큼이나 길고 통통한 인삼에 묽은 반죽을 입혀 바지런히 튀겨내고 있었다. 기름 가마에서 막 건져낸 따끈한 인삼을 물엿처럼 생긴 홍삼정과에 찍어 한 입 베어 무니 바삭한 튀김옷과 부드러운 인삼이 분리되면서 달콤한 맛이 입속 가득 퍼진다. 인삼 특유의 냄새도, 쓴 맛도 없다. “인삼 맛은 계절에 따라 달라져요. 봄에는 달착지근한 맛이 나지요. 인삼 튀김으로는 남는 게 없지만 수삼센터 앞에서 장사하면서 작은 거 쓸 수는 없잖아요. 대신 다른 메뉴가 있으니깐…….”배시시 웃는 모습이 예쁘다. 인삼 튀김이 워낙 크고 실해서 두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여기에 1천 원짜리 인삼 막걸리 한 잔을 걸치면 한 끼 식사로 부족함이 없을 듯. 차를 몰고 왔다면 인삼 막걸리 한 병(5천 원)을 사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수삼센터 안에서는 상인들이 인삼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수삼은 그때그때 시세가 달라지지만 상품 750g에 6만5천~7만 원선. 수삼센터에서 삼을 골라 근처 가게로 가져가면 대나무 바구니에 이끼를 깔고 보기 좋게 담아 선물세트로 만들어 준다. 포장 비용은 5천 원. 홍삼건빵, 홍삼젤리, 홍삼캔디, 홍삼을 달인 홍삼정, 초콜릿……. 인삼 집산지답게 없는 것이 없다. 2일, 7일마다 장이 서고, 9월에는 인삼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때 맞추어 방문하면 더 재미있겠다. 인터체인지에서 인삼 시장까지는 1.8km.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한 드라이브 인삼 시장에서 인터체인지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오른편에 적벽강 팻말이 보인다. 들판은 온통 인삼밭이다. 멀리 야트막한 동산도 비탈진 밭과 논도 검은색 차광막을 뒤집어 쓰고 있다. 잘 닦인 길에는 차들이 거의 없어 가끔씩 인피니티의 실력을 확인해 보기도 했다. 부리-양곡을 거쳐 예미를 지나면 가파른 절벽을 산을 끼고 강이 길게 펼쳐진다. 강변으로 내려서서 자갈밭을 천천히 걸어 본다. 오래된 다리 아래로 조심조심 차를 몰고 내려갔다. 좁다란 오프로드가 강을 따라 얼마간을 달리다 뚝 끊어진다. 정갈하게 다듬어진 강변에는 ‘대장금이 산책했던 길’이라는 팻말이 서 있다. 금산 시장에서 적벽강까지는 약 12km. 금산 시내에서 13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10km쯤 내려가면 보석사라는 아담한 절이 나온다. 진악산(해발 732m) 등산로 입구에 자리한 이 절은 886년에 창건된 오랜 역사를 말해 주듯이 입구에 1천900살이 다 된 은행나무가 서 있다. 건물은 보잘것 없지만 특유의 향기로움이 감돌고, 주변 계곡이 무척 예쁘다. 절 입구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전라북도 무주땅. 15km 지점에 용담호가 있다. 바다처럼 보이는 드넓은 호수 위로 기다란 다리가 보인다. 다리를 건너면 진안, 마이산이 지척이다. 다리를 넘나들면서 호쾌한 드라이브를 즐기다 보면 스트레스가 싹 가신다. 쌉싸름한 인삼이 씹히는 어죽 금산의 대표 음식은 물고기로 만든 어죽이다. 어죽집은 금강 상류인 천내강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금산 토박이한테서 소개받은 ‘아주 잘하는 어죽집’의 이름은 시탕뿌리. 나무를 하거나 소 꼴을 베어서 오다가 쉬는 곳이어서 시탕, 뿌리는 고향의 의미라고 한다. 바글바글 끓는 뚝배기에 송송 썬 수삼이 얹혀 있다. 후후 불어서 입에 넣으니 구수하면서도 향긋한 맛이 은은하게 퍼진다. 쌉싸름한 수삼도 사각사각 씹힌다. 열심히 먹어도 양이 줄지 않는 건 뜨거운 그릇 속에서 음식이 불은 탓이다. 죽에는 쌀과 함께 가느다란 국수, 수제비가 들어 있다. 못살았던 시절에 이것저것 넣고 끓여 먹었던 향토음식이라고 할까? 맛은 괜찮았다. 새끼손가락만한 물고기를 튀겨 초고추장을 바른 도리뱅뱅이도 담백하고 고소하다. 콧등에 땀이 맺히도록 열심히 먹다가 창밖을 보니 마당 너머로 잔잔한 강물이 보인다. 이 강에서 잡은 붕어, 빠가사리, 메기 등으로 어죽을 만든다. 내장을 걷어낸 물고기를 6~7시간 곤 다음 뼈를 발라내고 쌀, 국수, 밀가루 반죽을 넣어 끓인다. 익을 때쯤 깻잎 대파, 부추, 미나리를 넣어 한소큼 끓이면 구수한 어죽 완성. 가격도 착해서 어죽 5천 원, 인삼어죽 6천 원, 도리뱅뱅이와 빙어튀김, 민물새우 튀김은 1만 원이다. 잡힐 때만 만드는 특별메뉴 모래무지 튀김도 1만 원 받는다.
땅의 끝에서 시작을 만나다 해남 2008-03-11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아야 한다. 해남을 덮은 하늘은 한순간도 풍성치 않을 때가 없고, 한 치도 같은 모습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땅 끝의 하늘은 한 편의 파노라마를 늘어놓는다. 어느 새 늘어진 어깨와 머리가 자연스레 하늘로 향한다. 선조의 귀양살이를 품고, 마음을 잃은 시인에게 은둔의 자리를 내어주고, 떠도는 나그네의 발이 택한 마지막 요람의 땅. 그래서 해남은 순례자의 땅이자 유배의 땅이라 불렸다. 해남의 하늘을 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더는 나아갈 곳이 없는 이들이 왜 그토록 이곳을 찾았는지……. 관광객들은 하늘에 시선을 두고 아무런 말이 없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찍어 보려 하지만 허사다. 마음으로 보는 하늘이 고작 기계 덩어리에 담길 일이 아니다. 따사로운 햇볕과 훈풍이 불어오는 봄이면, 해남에서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아야 한다. 눈을 열고 바라보니 계절이 분명치 않다. 시린 바람에 움츠러든 몸은 겨울을 말하는데 해남은 봄이 내려앉은 지 오래다. 붉은 황토가 키워낸 초록의 생명은 해남의 초입부터 땅 끝까지 끝없이 이어진다. 여행자는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난 듯 웃음이 난다. 보드랍고 토실하게 살 오른 땅이 계절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겨우내 월동(越冬) 배추를 키우고 비탈길의 어엿한 차밭과 보리를 일궜다. 이렇듯 넉넉하고 풍성한 땅을 사람보다 먼저 알고 찾아오는 철새들.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어 주는 땅 끝을 찾는 것이 사람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울둘목 위로 진도대교가 놓여 있다. 다리 밑의 바다는 흰 갈기의 거친 회오리를 그리며 명량해협을 빠져나간다. 그 사나움에 무엇 하나 쉬이 지나지 못하지만 울둘목을 탓하는 이는 없다. 거칠고 억센 힘으로 그 옛날 지리멸렬했던 땅을 왜군으로부터 지켜내지 않았던가. 해남과 진도 두 땅을 잇는 다리는 그 위상을 기념하듯 남녘에서 가장 밝고 오래도록 불을 밝힌다. 마음을 내릴 그곳을 향해 사람들은 갈두산(葛頭山)을 오르고 오른다. 어디를 바라보고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알아야 한다. 땅 끝을 찾는 이유가 그럴 것이다. 다도해(多島海)와 산자락을 끼고 굽이돌아 오르다 보면 어느덧 정상이다. 더는 달릴 수 없는 곳이기에 이곳의 땅과 바다는 더욱 뜨겁고 아름답다. 어떤 이는 바위에 걸터앉아 금빛 구름을 향해 술잔을 기울인다, 누구는 멀리 신기루 같은 한라산의 끝자락을 말없이 바라본다. 연인들은 뜨거워진 손을 붙잡고 가파른 계단을 헉헉거리며 오른다. 이렇게 바라본 땅 끝의 풍광에 시름을 내려놓지 못할 이가 누가 있을까. 땅 끝에서 시작을 본다. Travel Tip 해남에 가려면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목포 IC를 빠져나와 목포 방향으로 달린다. 영산강 방조제를 건너 2번 국도를 타고 영암을 거쳐 달리면 성전리 삼거리가 나온다. 다시 13번 국도를 타고 달리면 해남읍에 닿는다. 땅 끝 마을까지 가고 싶다면 해남읍에서 77번 국도를 타면 된다. 땅 끝에서의 일출과 일몰을 빼놓을 수 없다. 높이 489m에서 본 달마산의 일출과 일몰은 대둔산의 장엄함과 천관산의 기묘함이 한데 섞여 장관을 이룬다. 전라도의 푸짐한 밥 인심도 맛보자. 해남읍에 있는 천일식당(061-535-1001)은 떡갈비 정식과 한정식으로 잘 알려진 집. 상다리 휘어지는 밥상이 기다리고 있다. 취재차 BMW 528i 3.0L 231마력 엔진, 6,750만 원, 080-269-2200
MOBIS MC7의 추천 여행지 정선 아라리촌 2008-02-04
강원도 정선은 예로부터 ‘아리랑’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정선아리랑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아우라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모비스 MC7이 추천한 ‘아라리촌’이 있다. 아라리촌은 정선의 옛날 주거문화를 한눈에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전통와가와 굴피집, 너와집, 저릅집, 돌집, 귀틀집의 전통가옥 6동과 주막, 토속매점 등이 조성되어 있고, 지금은 보기 드문 물레방아와 연자방아, 서낭당, 농기구공방, 방앗간 등이 재현되어 있다. 정선 지역의 전통가옥들이 한자리에 모여 입구에 들어서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표지판에는 조선시대 실학자이자 소설가인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가난한 양반이 자신의 빚을 갚아주는 대가로 지체 낮은 부자에게 양반의 신분을 팔았다는 이야기로, 양반전에 등장하는 실물 크기의 동상과 설명이 아라리촌 곳곳에 세워져 있다. 구성지게 흘러나오는 ‘정선 아리랑’을 들으며 1만503평 부지에 펼쳐진 정선의 옛 주거문화를 둘러보자. 200년 이상 자란 소나무토막을 쪼갠 널판으로 지붕을 이은 ‘너와집’은 정선지방의 전통민가로서 안방, 건넌방, 사랑방, 도장방, 대청, 부엌, 봉당, 외양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껍질을 벗긴 통나무를 우물정(井)자 모양으로 쌓아올려 벽체를 삼고, 나무 틈새를 진흙으로 메워 지은 ‘귀틀집’은 많은 적설량을 견디고 간편하게 지을 수 있어 산간지대의 화전민들이 오래 전부터 이용하던 가옥 형태다. 아라리촌에서 가장 크고 튼튼해 보이는 ‘전통와가’는 양반가의 전통 가옥으로 안방과 건넌방, 작은방, 대청, 마루방, 고방, 부엌 등의 안채와 손님접대로 쓰였던 사랑채로 나뉘어져 있다. 안채 마당에는 세수할 때 고개를 숙이지 않는 양반의 동상이 재미있게 표현돼 있다. 널뛰기가 있는 원형 산책로를 지나 ‘육모정’에서 잠시 지친 다리를 쉬어 가자. 육모정에서는 정선 읍내 전체를 바라볼 수 있고, 조양강과 계절 따라 변하는 조양산의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2004년 10월, 약 74억 원을 들여 조성한 아라리촌은 입장료 수익금만으로는 유지하기가 어려워 지금은 저릅집, 귀틀집, 굴피집 등을 민박으로 사용하며 관광객을 맞고 있다. 애초 민박형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어서 다소 불편한 점은 있지만 우리의 전통 가옥을 체험할 흔치 않은 기회이니 하룻밤 아라리촌에서 묵고 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터. 현재 입장료는 한시적으로 무료이다. 문의 (033)560-2059 정선 아라리촌 길찾기 모비스 MC7 ‘주소찾기’에 주소(강원 정선군 정선읍 애산리 560번지)를 입력하거나 ‘명칭찾기’에서 ‘아라리촌’을 입력하면 된다. 검색이 완료됐다면 ‘바로안내’를 클릭!
길을 잃어도 좋을 그곳 정선 2008-02-01
빛 태백선 철도로 사람보다 석탄을 바삐 나르던 정선에는 이제 석탄도, 석탄 캐는 이도 없다. ‘석탄산업 자유화 조치’는 탄광촌 노동자들을 끝없는 어둠 속으로 내던지고, 그들의 옹색한 살림을 달래주듯 카지노가 들어섰다. 사북오거리를 지나는 반듯한 길에는 모텔과 호텔이, 그 사이사이는 돈 잃은 외지인의 급전을 위한 전당포가 채우고 있다. 그 옛날 탄광촌 노동자들이 사용하던 남루한 사택만이 이곳이 과거 검은 황금의 땅이었음을 애처롭게 말해준다. 해가 지면 탄가루와 시름을 씻어내기 위해 밤늦도록 판자촌의 빛을 밝히던 노동자들의 땅은 이제 도시인들의 잔치를 위해 반짝이고 있다. 하늘 해발 800m. 주름 깊은 고갯길을 따라 오른 한치 마을은 땅으로부터 도망치듯 그렇게 깊숙이 묻혀 있다. 아궁이에 타들어 가는 장작과 연기가 첩첩 구릉을 오른 나그네들의 마음을 고향처럼 품는다. 고랭지를 일구며 비비적거리던 마을 사람들은 바깥세상이 궁금해 하나둘씩 떠나고, 남은 것은 700년을 뿌리내린 보호수와 단 몇 가구만을 지키는 화전민의 늙은 후예들. 땅보다 하늘이 가까운 이곳에 호기심 많은 객(客)이 종종 잊지 않고 찾아오고 있다. 길 만항재는 구불구불 하늘을 향해 끝없이 길을 내어놓는다. 이대로 가면 길을 잃을 듯한데 그래도 좋다. 보이는 곳은 어디에나 화암(畵岩) 절벽이고, 애써 찾지 않아도 자연이 가까이 있다. 고갯마루에 올라 산천(山川)을 내려다 본다. 칼바람에 맞서 날카로이 깎인 암벽과 유난히 외롭고 쓸쓸한 낙엽송들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길이 단지 달려야 하는 곳이라면 긴장을 풀지 못하고 굽이치는 이 길이 얄궂기도 하지만, 마음을 비워가는 여행이라면 만항재는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아도 좋을 쉼의 길이 되어준다. 소리 구절리에서 흐르는 송천과 임계면 골지천이 만나 넉넉히 흐르던 아우라지 물길은 곳곳에 강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물이 낮아지고 살얼음이 차 마을과 마을을 오가던 뱃사공의 노랫가락도 아이들의 물장구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작은 두 물줄기가 한숨 돌릴 때쯤이면, 사람들은 강바닥에 통나무를 세우고 솔가지를 얹어 섶다리를 만든다. 나룻배가 아니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오가며 시름을 나눈다. 섶다리 삐걱이는 소리와 첩첩한 산자락의 바람 소리가 저만치 들려오는 정선 아리랑에 장단을 맞춘다. 강 겨울이 내린 강을 한눈에 담으려 굽은 길을 오르고 오르며 애를 써본다. 기력이 빠지고 욕심을 버리고 나니 그때야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 정선 백리 길을 휘감은 조양강은 욕심 많은 나그네를 그렇게 천천히 쉬어가게 한다. 물도 푸름도 소리도 모두 집어삼킨 겨울이 조금은 야속해질 때쯤, 미처 바라보지 못한 하늘을 비추며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달빛 머금은 정선의 강이다. 바람 석재와 사람들을 토해내던 정선 간이역은 탄전이 숨을 죽이자 너덜너덜한 간판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추억을 찾아 떠도는 이를 붙드는 것은 병풍을 두른 산과 녹이슨 철길. 차마 닫지 못한 문틈으로 바람만 쉬어 가는 대합실에 사람들의 빛바랜 흔적이 남아 있다. 이제 무인역(無人驛)이 되어버린 선평역은 떠나고 오지 않는 것은 기차가 아닌 시간임을 말해준다. Travel Information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신갈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한다. 원주를 지나 진부나들목에서 59번 국도를 따라가면 정선읍으로 연결된다. 59번 국도는 정선 땅에 닿자마자 장전계곡, 단임골, 숙암계곡을 차례로 지나니 짬이 나는 대로 들러보자. 영동고속도로에서 새말나들목으로 빠져나와 42번 국도를 이용해도 정선으로 이어진다. 취재차 BMW X3 3.0d, 3.0L 디젤 터보 218마력 엔진, 7,180만 원, 080-269-2200
그곳에 가면 시(詩)가 있다 서정 빛에 물든 도시 .. 2008-01-04
GREEN 하늘을 향해 쭉 뻗은 몸통과 청량한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빛 가지는 마치 하늘을 그리는 춤사위 같다. 충남 서천의 바닷가 어디에도 해송(海松)의 초록은 흔하고 흔하다. 그래서일까, 여행길이 새롭고도 친숙한 이유는……. 초록의 숲에 올라가 본다. 소나무의 잎보다 억세어 곰솔이라 하고, 껍질의 색이 짙어 흑송(黑松)이라 불리는 해송. 염풍에 깎여 짝짝 갈라진 몸뚱이 사이에는 비릿한 바다내음이 풍기고, 해송이 내어준 길 사이사이는 초록의 싱그러움이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바다의 초록이 산보다 기품 있고 짙은 것은 이런 연유다. GRAY 낯선 마량포구의 하늘은 회색빛 구름이 삼켜버렸다. 하늘뿐이 아니다. 푸른 바다와 벗 삼은 포구의 곳곳에는 고즈넉한 회색이 숨어 있다. 저 멀리 방파제와 찌그러진 양철통을 솟아오르는 매캐한 연기,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정박해 있는 늙은 고깃배들……. 포구의 회색은 일상을 벗어난 우리들의 일탈마저 삼켜버릴 듯 스산하다. 하지만 도심보다 포구의 회색빛이 더 아름다운 것은 신기루 같은 몽환(夢幻) 때문일 터. 선명하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마치 꿈속을 걷는 듯한 바닷길. 이곳이 현실세계임을 알려주는 것은 고깃배를 따르는 갈매기의 울음과 철썩이는 파도소리뿐이다. RED 서천의 마량포……. 이곳의 일출이 더욱 붉게 다가오는 것은 고작해야 일 년에 두 달 남짓 얼굴을 내밀기 때문이다. 시린 바닷바람을 버티고 바라본 하늘 위 붉은 휘장은 기다림을 아는 이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 서해라는 소박함에 묻힌 해돋이이지만 눈보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평생에 잊지 못할 황홀경이다. YELLOW 금강 위로 부서지는 햇살과 6만 평 대지를 덮은 신성리의 노란 갈대숲에 눈이 시리다. 판에게 도망쳐 갈대로 변한 시링크스, 그녀를 쫓던 판은 그 갈대를 꺾어 시링크스를 그리워했다는 한 그리스 신화처럼 갈대는 지나간 사랑과 잊혀진 시간을 되묻게 한다. 어릴 적 아버지의 키만큼 높기만 한 갈대숲……. 그보다 더 높이 나는 철새무리 아래로 나그네는 묻히고 추억은 떠오른다. 바람과 속삭이는 갈대의 서걱거림은 자연이 가장 위대한 음악가임을 일깨워 준다. 미로 같은 갈대숲을 하나씩 돌아설 때마다 목판에 새겨진 유명 시인들의 시와 나그네의 낙서가 신성리 갈대밭을 추억의 무덤으로 만들었다. 이 황금빛 무덤은 추억이란 노랗게 물든 갈대의 빛이란 것을 새삼 떠오르게 한다. BLUE 억겁의 세월을 보내며 바다가 만든 땅 갯벌, 갯벌은 자연이 인간이 아닌 바다에 주는 선물이다. 서천의 갯벌은 굴과 조개, 고등, 미역 등 바다생물의 보금자리이자 상처받은 생물이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고, 겨울을 가르는 지친 철새들의 몸을 쉬게 하는 쉼터다. 갈대숲 또한 푹신하게 말라버린 갯벌이 키운 것이다. 그래서 갯벌은 넓고 풍요로운 파란 바다와 닮았다. 인간은 이 자연의 보금자리를 잠시 빌릴 뿐이지만, 서천의 갯벌은 인간에게 그보다 조금 더 시간을 허락한다. 2km의 긴 조수간만의 차로 사람이 다니는 길을 열어 바다와 하늘을 동무 삼게 한다. 그렇게 가까이 바라본 갯벌. 그때서야 비로소 안다. 갯벌은 숨죽인 잿빛이 아닌 생명이 살아 꿈틀거리는 푸름임을……. Travel Information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서천 IC까지는 약 2시간 30분. 서천 IC에서 빠져 동쪽으로 달리다 보면 햇볕에 여울지는 금강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신성리 갈대밭이 먼저 나온다. 서해안 해변 길을 따라 북쪽으로 다시 올라가다 보면 다사항, 마량포, 홍원항 등 한적한 어촌 포구에 썰물로 물이 빠진 갯벌이 모습을 보인다. 서천 8경 중 하나인 마량리 동백숲과 해돋이를 보고 싶다면 21번 국도를 따라 보령 방면으로 약 10km 가다 사거리에서 우회전한다. 곧 동백숲으로 가는 길목으로 이어진다. 취재차: BMW X5 3.0d, 3.0L 디젤 터보 235마력 엔진, 8,890만 원, 080-269-2200
항구와 호수의 도시고성 활기찬 동해를 만날 수 있는.. 2007-12-11
이번 여행지의 주는 ‘항구’다. 사실 운치 있고 낭만이 넘치는 겨울 바다를 온전히 보여줄까 생각도 했지만, 뜨듯한 아랫목에 거북목을 한 채 무기력해 있을 독자들을 생각해 활기찬 항구의 모습이 더 좋겠다 싶었다. 그래도 못내 아쉬울 독자들을 위해 고성의 최대 볼거리로 알려진 화진포도 찾았다. 동해의 수많은 항구 도시 가운데 기자에게 선택받은 곳은 남녘의 최북단 항구가 있는 ‘고성.’ 서울에서 출발하는지라 설악산의 진부령을 먼저 밟았다. 남쪽의 대관령과 북쪽의 추가령을 포함에 3대 영(嶺)으로 불리는 진부령은 약 60km 고갯길을 품고 있다. 2차선으로 잘 닦여져 있어 목숨이 간들간들한 차도 날씨만 곱다면 도전해볼 만하다. 옴니버스처럼 펼쳐지는 숲과 고갯길 굽이굽이로 보이는 동해를 보노라면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인다. 강과 바다가 만난 곳, 화진포호 BMW 335i의 스티어링 휠을 부지런히 돌려 약 3시간 만에 도착한 곳은 고성의 명소 ‘화진포호.’ 아마 ‘겨울 바다’를 찾는 사람은 많아도 ‘겨울 호수’를 굳이 찾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기자 역시 겨울 호수(정확히는 초겨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일까. 지역 주민 몇몇을 제외하고는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다. 사실 늦은 점심을 찾아 몇 바퀴를 뱅뱅 돌고 나서야 그곳이 화진포호인지 알았다(호수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넓었으므로). 제때 먹을 것을 넣어주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죽을 것처럼 빌빌거리는 기자가 끼니를 미루고 넋을 놓았을 만큼 화진포호의 경관은 빼어났다. 고성은 유명세를 떨치는 거대한(?) 여행지나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다. 남한땅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관광지인 속초시 옆에 옹색하게 붙어 있고, 그나마도 미시령 터널이 뚫려 서울에서 곧바로 속초로 가는 당일 여행객들이 늘어나 고성을 찾는 이가 더욱 줄었다. 하지만 고성이 아직 고성임을 당당히 말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 화진포호가 제대로 한몫하고 있기 때문. 여행정보지를 뒤져보니 화진포는 ‘겨울이면 넓은 갈대밭 위에 수천 마리의 철새와 고니가 날아든다’고 나온다. 하지만 아직 시기가 이른 탓인가? ‘갈대’는 널렸지만 ‘철새’는 정체 모를(?) 새 몇 마리만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강 하구와 바다가 만난 화진포호의 둘레는 무려 16km. 온통 갈대밭과 솔밭이다. 뭔가 대단한 비경이 숨겨져 있을 것 같아 조금 더 시간을 쏟았지만 사실 어디에 이르나 풍경은 비슷하다. 하지만 고성을 찾을 계획이라면 이 ‘비슷비슷함’을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사진 좀 찍는다고 우쭐대는 친구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만큼 카메라 셔터를 대충 눌러도 작품이 된다. 특히 해질녘의 화진포호는 잔잔한 호수의 석양과 적당히 물든 갈대숲으로, 아름다운 로맨스가 저절로 그리워진다. 이러고 있다간 독수공방 신세 한탄이라도 털어놓을 것 같아 335i의 기념사진 한방 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시곗바늘이 3시에 가까웠다. 여행이고 뭐고 배곯아 죽겠다 싶어 식당을 찾는데, 사진기자가 청천 날벼락 같은 소리를 던진다. “박 기자, ‘김일성 별장’ 들렀다 가자.” “저……, 밥집부터 먼저 들르면 안 될까요?” “다시 올 시간 없어. 몇 안 되는 관광진데, 빼놓을 순 없잖아.” 울며 겨자 먹기로 들른 김일성 별장(화진포 성)에는 관광버스에서 내린 외지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원래 이곳은 한국전쟁 이전 김일성과 그 가족들이 하계휴양지로 사용했던 곳이다. 당시에는 지하 2층, 지하 1층 건물이었으나 전쟁 중 훼손돼 1964년 현재의 건물로 재건축되었고, 1999년 7월부터는 ‘안보전시관’으로 개수해 관광객을 받고 있다. 별장을 오르는 계단에는 이곳에서 찍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어릴 적 사진이 게시되어 있는데, 누군가의 심술이 얼굴 부분을 뜯어 놓았다. 별장 안은 재현된 ‘김일성 집무실’, ‘침실’, ‘응접실’ 외에 특이한 것은 없다. 하지만 뜻밖의 횡재가 기다리고 있다. 2층 창을 열어보니 눈앞에 펼쳐지는 화진포해수욕장의 전망이 그야말로 일품. 호숫가 이승만 별장이나 송림 가운데 자리한 이기붕 별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풍경이다. 화진포해수욕장은 남한의 마지막 해변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가을동화’, ‘파이란’ 등의 작품에 죽음을 상징하는 장면들이 촬영되기도 했다. 영화 ‘태양은 없다’에서 주인공들이 마지막 숨 쉴 곳을 찾아 떠났던 곳도 바로 이곳. 좁고 길게 이어진 해변을 연인과 거닌다면 순수한 백사장과 파도, 낭만적인 등대가 한몫 거들지 싶다. 철장 안의 작고 아늑한 항 ‘초도항’ 가까스로 배를 채우고 해안 길을 따라 올라간 곳은 ‘초도항.’ 항구라고 하면 정박해 있는 배 사이나 항구 구석에 둥둥 떠다니는 쓰레기를 보기 십상인데 이곳은 얕은 물밑 정도는 훤히 보일 만큼 깨끗하다. 게다가 벅적하고 활기찬 여느 큰 포구에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소박함과 아늑함이 있다. 해지는 풍경이 절경이라는 말에 큰 기대를 하고 찾았지만 일진이 꼬이려는지 하늘이 우중충하다. 그러고 보니 부둣가에 민가는 물론 그 흔한 횟집 하나 없고, 불빛도 찾아보기 어렵다. 시원찮은 하늘빛을 삼아서라도 풍경을 담아보려 카메라를 움직이는데 저만치서 두 군인이 걸어온다.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다시 한 번 보는데 ‘역시나’다. 생각해보니 고성 항구 대부분은 군부대와 철책으로 둘러싸인 최전방 지대. 오는 내내 가시철조망이었다. “이곳은 군사보호구역으로 사진을 찍으면 안 됩니다.” ‘어떻게 찍은 사진인데 뺏길쏘냐?’ 싶어 경계태세에 들어가니 직접 사진검사까지 한다. 다행히 이런저런 요령으로 무사히 넘어갔지만 그 사이 해는 완전히 저물어 버렸다. 분통하고 억울해 먹은 밥이 체하려고 할 때쯤, 335i를 힐끗 본 군인이 잡지명을 묻는다. 이라는 대답에 명함 한 장 받아들고 그대로 빠지는 것이 아닌가(본지 기자생활 이래 최고로 뿌듯한 순간이었다). 어쨌든 차비는 건졌지만 버스는 떠났으니 우리도 항을 떠나야 했다. 초도항은 철조망에 포위된 채 군부대의 통제를 받고 있고, 밤 8시부터 새벽 3시 30분까지는 모든 출입이 금지된다. 그래서였다. 이 작고 예쁜 항에 사람이 귀했던 것은. 8시 이후로 개미 한 마리 얼씬 못하는 곳에 상점이나 민가가 들어설 리가 없었다. 경계병이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던 곳은 초도항과 멀지 않은 ‘금구도’다. 거북을 닮아 일명 ‘거북섬’으로 불리는 금구도는 고구려 장수왕의 시신을 안장했다는 출처불명의 설이 전해지고 있다. 역시 바닷바람의 위력은 치맛바람에 대적할 만큼 매서웠다. 초도항에 잠시 머문 동안 온몸은 꽁꽁 얼어붙어, 조금만 더 늦게 찾았다면 해풍에 말린 ‘양미리’ 신세가 될 뻔했으니 말이다. 히터를 틀자 금세 차 안이 따듯해진다. 몸을 녹이며 ‘대진항’과 ‘거진항’을 마저 돌았다. 사실 대진항과 거진항은 다음날 아침 어민들의 풋풋한 삶의 현장을 엿볼 계획이었지만 등대를 비롯해 밤이 아니면 담을 수 없는 것들이 있어 욕심을 낸 것이다. 여기서 잠깐. 초도항의 소박함(?)에 실망했을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정보 하나를 알려주겠다. 화진포해수욕장 뒤쪽부터 초도항을 통과하는 해안도로는 숨은 드라이브 코스. 물안개와 도로까지 날아오르는 파도가 노르웨이의 ‘아틀란틱 로드’ 못지않은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화진포에서 거진항 방파제 뒤로 이어지는 해안도로 역시 ‘낭만’의 절정이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바다와 도로를 가르는 철조망이다. 기자 역시 335i와 함께 해안도로를 마음껏 달렸다. 파란색 335i가 거친 파도를 배경으로 달리는 모습은 이곳 사람들에게 흔치않은 구경거리가 됐다. 어민들의 풋풋한 삶의 현장, 대진항~거진항 인근 펜션에서 잠을 청하고 새벽같이 눈을 떴다. 전날 노을이 시원찮았으니 해돋이라도 제대로 감상해야 했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전날 좀 찍어둔 대진항 방파제에 도착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5시 30분 정도면 볼 수 있다는 일출이 깜깜 무소식이다(초도항의 그 군인들이 분명히 그렇게 알려줬다). 지나가는 노인에게 물어보니 아침 7시나 돼야 해가 뜬단다. 정말이지 당장 군부대로 쳐들어가고 싶었다. 전날의 아픈(?) 기억까지 겹쳐 슬슬 약이 오르려는데 항구 쪽에 종소리가 울린다. 그러고 보니 그새 고깃배들이 늘었다. 밤 사이 낚은 고기를 싣고 새벽녘에 도착한 배들이다.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 바로 항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종소리는 경매인들이 낸 것이다. 어부가 포구에 닻줄을 내리자 중간상인들이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며 흥정을 시작한다. 가끔 TV에서나 본 것을 실제로 보니 별것이(?) 다 신기하다. 사진 찍을 틈도 없이 낙찰이 끝났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생선 팔아먹은 격. 알다시피 고깃배의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은 등대다. 대진항에는 왼쪽 항구를 알려주는 붉은 등대와 오른쪽 항을 알려주는 흰색 등대가 마주하고 있다. 기자처럼 바지런(?)을 떨면 6시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등대지기 노인도 볼 수 있다. 아침부터 너무 부산스러웠는지 몸살 기운에 머리가 멍멍하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인 거진항은 고깃배가 드나드는 규모로는 동해 최대인 곳이다. 그래서인지 바다의 짠내가 유독 강하게 코를 찌른다. 갑판 청소를 끝낸 몇몇 어부들이 배까지 끌어 올린 비닐 바지를 툭툭 털며 인근 선술집으로 들어간다. 아녀자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그물을 손질하거나 생선을 그물에서 부지런히 걷어내고 있다. 그 생선 더미가 눈에 띈다. “도루묵! 말짱 도루묵 할 때 그 도루묵. 한 바가지에 만 원.” 동행한 사진기자의 눈빛이 번쩍인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 이런 넉넉함을 만날쏘냐. 당장에라도 한 바가지 사서 소금 팍팍 뿌려 구워, 술 한 잔 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1박 2일.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아쉬운 대로 거진항 최고의 볼거리로 향했다. 바로 등대를 향해 걷는 방파제 길. 거진항에는 대진항과 마찬가지로 2개의 등대가 있다. 흰색 등대가 있는 방파제는 오른쪽은 백사장이고 왼쪽은 항구다. 빨간 등대를 세운 방파제 길은 길이가 약 500m로, 멋모르고 걸었다간 다리가 아파 후회하기 십상이다(초입 부분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으므로 길이를 가늠할 수 없다). 차를 타고 들어오려면 곳곳에 보이지 않는 턱을 조심해야 한다. 거진항 수협 건물로 올라가면 항 전체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색다른 항구의 모습에 ‘와~!’ 소리를 냈다가도 예측 못한 갈매기 배설물 공격에 ‘윽~!’ 소리가 난다. 혹 가려거든 비닐을 쓰거나 레자 소재의 옷을 입길 권한다. 언제나 위기에서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산 중턱 마을(거진항 뒤쪽에 있다)에 오르면 거진항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명당이 천지에 널렸다. 물론 갈매기의 공격(?)도 없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왠지 모르게 아쉬움만 남는다. 1박 2일의 여행이 주는 부족함이다. 시간이 되면 미항(美港)으로 소문난 ‘가진항’도 들르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그토록 보고 싶었던 일출은 날씨 탓에 구경도 못했다. ‘물회’ 맛도 못 봤다. 자고로 여행의 즐거움은 ‘눈으로 반, 입으로 반’인 것을……. 진부령을 넘는 길에 잠시 주유소에 들렀다. 생각해보니 1박 2일 동안 335i도 고생이 많았다. 욕심 많고 줏대(?) 없는 기자들을 태우고 꾸불텅한 길을, 그것도 험한 바닷길을 그야말로 쉬지 않고 달려주었으니 말이다. 다시 시동을 걸자 이놈은 끄떡없다는 듯 으르렁거린다. 찾아가는 길 서울을 기점으로 설악산으로 향하는 44번 국도를 따라 양평, 홍천, 인제, 원통을 지나면 한계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좌회전, 46번 국도를 따라 달리면 백담사 입구를 지나 용대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다시 좌회전해 진부령을 넘는다. 진부령을 넘으면 7번 국도와 만나는 간성에 이르고, 간성을 지나면 화진포 이정표가 가장 먼저 나온다. 우리식당 황태구이의 값은 지방 인심치고는 다소 비쌌지만(8,000원)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맛있다. 주문을 하면 그때야 양념하고 구이에 들어가기 때문에 요리가 나올 때까지 최소 10~15분은 기다려야 한다. 맛도 맛이지만 양도 많아서 먹다가 모자라는 일은 없다. 함께 나오는 황태 해장국 역시 진미. 뽀얀 국물맛은 오히려 사골국물보다 한 수 위다. 사실 황태구이보다 황태 해장국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화진포해수욕장 입구에 있다. 문의: 우리식당 (055)682-0042 BMW 335i 누군가 BMW 335i에 대해 묻는다면, “땅을 훑는 듯이 달리고, 도로를 찢는 듯 튀어나간다”고 말하겠다. 335i의 운동성은 고속에서도 흐트러짐이 없고, 달리기는 7번 국도의 어떤 차보다 빨랐다. 335i는 한때 혁신적인 디자인이라고 평가받았던 5세대 330i를 베이스로 트윈 터보를 단 엔진과 M스포츠 패키지를 둘렀다. 330i와 디테일을 비교했을 때는 큰 차이가 없지만, BMW 대표 엔진이라고 할 수 있는 직렬 6기통 실키식스 엔진을 바탕으로 트윈터보를 얹어 24년 만에 터보차저 엔진의 부활을 알린 기념비적인 차다. 운전석 시트 포지션이 일반 세단보다 깊고, 서스펜션 세팅도 단단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차의 초점이 안락하고 편한 주행보다는 빠른 달리기 성능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335i를 타고 여행을 떠나면 원하는 목적지까지 빨리 갈 수 있다. 또한 음질 좋은 오디오 시스템과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갖춘 i드라이브가 있어 차에 있는 동안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제주 마라도·가파도 국토 최남단의 아늑한 두 형제섬 2007-11-09
변형 전기차와 자전거 대여점, 운치 있는 벤치가 가파도에는 없다. 마라도행 뱃길에 흘러나오는 흥겨운 노랫자락도 투박한 가파도행 여객선에는 없다. 올 봄부터 마라도행 대형 쾌속선이 매시간 출발하지만 가파도행 배는 여전히 하루 두 차례 단출하게 오갈 뿐이다. 마라도에는 손님들이 배에서 ‘우루루’ 쏟아져 내리면 횟집, 자장면집 아줌마의 유혹이 시작되고, TV 전파를 탄 마라도 분교를 외지인들이 담 너머로 기웃대는 것이 흔한 모습이 됐다. CF에 나온 뒤 유명해진 자장면집만 마라도에 세 곳. 그러나 가파도에는 달랑 하나 허름한 식당이 남아 있을 뿐이다. 마라도에서 맞는 하룻밤 마라도는 두 얼굴을 지닌 섬이다. 겉과 속이, 또 낮과 밤이 다르다. 자전거 빌리고, 자장면 부리나케 먹고, 포즈 몇 번 잡아본 뒤 떠나기에는 숨은 사연이 많은 곳이다. “이곳에서 일몰이나 일출을 본 적이 있나요?” 창가에 기대 선 민박집 주인은 지는 해를 한 시간째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마지막 배가 마라도를 떠나고 다음 날 첫배가 오기 전까지 온전히 마라도는 고요한 세상이다. 절벽 아래 해식동굴을 만들어낸 바람이 잦아질 즈음, 국토 최남단의 섬에서 맞는 일몰과 일출은 울컥거리는 감동이다. 영화 ‘연풍연가’에서 태희(장동건)와 관광가이드인 영서(고소영)는 그 마라도 해변의 태양을 맞으며 입을 맞추었다. 바람 많고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마라도에서 해돋이, 해넘이를 보는 것은 우연한 사랑만큼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노을이 서쪽 하늘에서 스러지면 동화 속 풍경 같았던 등대는 먼 바다로 불을 뿜어낸다. 그 불빛에 마을 윤곽이 간간히 드러나고 섬 안에는 개 짖는 소리와 술잔 부딪히는 소리만 들린다. 마라도에서 맞는 하룻밤은 그렇듯 거룩함이 깃들어 있다. 마라도는 조그마한 섬에 선착장만 4개다. 계절에 따라, 해풍에 따라 선착장도 바뀐다. 집들은 바람을 이기려고 땅바닥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섬사람들은 빗물을 받아 식수로 먹고, 태양열을 이용해 불을 밝히며 살아가고 있다. 섬의 남쪽으로 향하면 최남단비가 외롭게 서 있다. 국토의 끝이자 시작이다. 비석 옆에 우뚝 솟은 장군바위는 태평양의 망망대해를 바라 본다. 장군바위에는 하늘에 사는 ‘하르방’이 땅에 사는 ‘할망’을 만나러 내려왔다는 전설이 있다. 마라도 사람들은 장군바위를 수호신으로 여겨왔으며 이 바위에 오르면 바다가 노한다고 믿고 있다. 최남단비에서 마라도 등대로 가는 길은 호젓하다. 들판이 끝없이 펼쳐진다. 바위틈에는 거센 바닷바람을 맞고 선인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곳의 자생 선인장은 백 년에 한 번 꽃이 핀다고 해 ‘백년초‘라 불린다. 마라도 등대를 거쳐 북쪽으로 향하면 해녀들이 액막이 제사를 지내는 할망당 옆으로 낮은 바다가 펼쳐진다. 날이 좋으면 송악산 너머 멀리 한라산까지 겹겹이 눈에 들어온다. 섬의 끝과 끝을 밟아 보고 교회당과 돌담벽이 들어선 골목골목을 낮은 눈으로 지나쳐야 마라도의 참모습을 알 수 있다. 가파도, 섬사람들의 따뜻한 흔적 제주도와 마라도 사이를 오가다 눈에 밟히는 섬이 바로 가파도다. 면적은 마라도의 두 배지만 찾는 이가 드물어 섬사람들의 흔적이 가지런하게 남아 있다. 하동포구 초입 비문에는 가파도의 옛 이름이 적혀 있다. 가파도는 게도, 게파도, 가을파지도, 더우섬으로 불렸으며 하멜표류기에 ‘켈파트’라는 지명으로 소개돼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서양에 알려진 계기가 된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동 포구에 내리면 하루 수 차례씩 해녀들이 소라, 해삼을 잡아다가 포구에 쏟아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망사리를 털어내며 “오늘은 횡재했수깡” 하는 그녀들의 농담도 들을 수 있다. 할머니들의 아지트인 하동포구 구멍가게에 들어서면 절반은 알아듣기 힘든 가파도 할머니들의 사투리에 신명이 난다. “그거 알고 있수꽝. 섬을 한번 돌자면 말자봄목, 나무리코지, 자장코지, 큰뒤서, 작은뒤서, 두리여, 크나크여 등을 거쳐야 한다마시.” 사람이 올라서면 큰 파도가 인다는 하동포구 가마기돌에 얽힌 사연도 들을 수 있다. 4·3사건 때 모슬포에서 공비들이 넘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마을 아낙네들이 일부러 가마기돌에 올라서 큰 파도가 열흘간 끊이지 않았다는 얘기며, 외지인의 출입을 막으려고 이중 돌담벽을 세웠다는 얘기에도 귀가 솔깃해진다. 섬을 가로질러 가파 초등학교를 넘다 보면 보리밭 옆 교회당 인근의 고인돌 군락과 상동포구의 끊어진 길 서쪽 해변에 방목되는 염소들도 만날 수 있다. 선사시대 고인돌 중에는 7m가 넘는 것들도 있다. 마라도와 가파도는 그 모습도 색깔도 서로 어색하고 다른 듯하다. 하지만 들뜬 뭍사람들만 떠나고 나면 마라도와 가파도는 섬사람의 살내음을 간직한 형제의 모습으로 몸을 바꾼다. TIP ●가는 길: 제주도 서남쪽 모슬포에서 가파도, 마라도행 배가 출발한다. 올해 초부터 마라도행 모슬포호가 운항을 시작해 넉넉하게 섬을 둘러보고 나올 수 있다. 가파도행 배는 삼영호가 오전 8시 30분, 오후 2시 두 차례 출발한다. 삼영해운 (064)794-3500. 송악산 아래에서 수시로 출발하는 마라도행 유람선은 번호표를 받은 뒤 1시간 30분∼2시간 만에 섬을 빠져 나와야 한다. 마라도 안에서 골프 카트용 전기차나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묵을 곳: 마라도에는 깔끔한 민박집이 여럿 있다. 마라도 펜션(064-792-7272)에서는 객실에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1박 5만∼10만 원. 가파도에서는 가파리사무소(064-794-7130)와 가파리어촌계(064-794-7108)를 통해 민박집을 구할 수 있다. 제주넷(064-757-6288, www.jejunet.com)에서 제주도 체험과 마라도에서의 1박이 포함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쏘렌토, 민통선 넘어 달리다 자연습지 탐사 드라이빙 2007-10-11
9월 14일과 15일, 기아자동차가 2008년형 쏘렌토 출시를 기념해 환경체험행사를 열었다. 사단법인 환경실천연합회와 함께 진행한 이번 행사는 쏘렌토 동호회원들과 언론매체, 환경단체 회원 등 40여 명이 참가해 강원도 철원군 민통선 안에 있는 샘통습지를 둘러보았다. 환경실천연합회가 기획한 이번 행사에 기아차는 2008년형 쏘렌토 11대와 진행비를 지원했다. 참가자들은 기아차 압구정동 사옥에서 뉴 쏘렌토에 나눠 타고 의정부, 동두천, 철원, 백마고지 기념관을 거쳐 민통선으로 달려가 샘통습지를 둘러보았다. 두루미떼가 찾아드는 천연기념물 민통선 내에 있는 샘통습지는 철원평야 샘통 인근의 반경 2km에 걸쳐 펼쳐져 있고, 두루미(천연기념물 202호)떼가 많이 찾아 1973년 천연기념물 245호로 지정되었다. 샘통습지는 옛날 농사를 위해 만든 인공습지로 군사시설보호구역 안에 있고, 천연기념물 245호로 지정, 특별관리되고 있어 오염이 적은 편. 습지에는 미생물로 이루어진 이탄층이 잘 보존되어 자체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습지 주변에는 부들, 줄풀, 달여귀, 갈대 등 수상식물이 풍부하고 한겨울 혹한에도 따뜻한 물이 솟아 새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은 먹을 것이 풍부해 겨울철 두루미와 재두루미(203호)가 많이 찾아든다. 샘통습지 보호로 농사짓기가 불편해진 탓에 ‘철새도래지 지정 해제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습지 발원지에 농업용수용 펌프가 설치되어 있는 등 습지가 점점 훼손되고 있다. 곳곳에 농약병이나 비료 포대가 버려져 있고, 습지의 일부를 논이나 밭으로 개간한 곳도 많다. 경작지 주변에 드문드문 자라고 있는 수상식물을 통해 습지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험한 길을 함께 달린 2008년형 쏘렌토 샘통습지 탐사를 마친 후 저녁에는 숙소인 산정호수 부근 우둠지 팬션에서 쏘렌토에 대한 소개, 디젤 엔진의 환경친화 및 경제성, 습지보호의 중요성에 대한 간담회가 이어졌다. 시승회에 참가한 동호회원들은 “USB 단자로 편하게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았지만 힘이 좋아 험한 길에서도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 습지 관찰도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2008년형 기아 쏘렌토 이번 탐사길을 함께 달린 2008년형 쏘렌토는 8월 27일에 출시된 새 모델이다. 2008년형 쏘렌토는 직렬 4기통 2.5ℓ 디젤 직분사 터보 178마력(AT 기준) 엔진을 얹고 있다. VGT(Variable Geometry Turbocharger, 전자식 가변용량제어 터보)를 적용해 저회전에서 고회전까지 고른 출력을 내고, 연비 향상과 배기가스 저감 효과가 크다. 2008년형 쏘렌토는 업계 최초로 추진하는 ‘기아 트로닉스’의 일환으로 멀티미디어기기를 즐길 수 있는 AUX와 USB 단자를 기본으로 갖추고, 날씬한 새 번호판을 달 수 있도록 프론트 범퍼와 테일게이트를 손질했다. 스마트키, 지상파 DMB, 위험 알림 내비게이션 등 편의장비도 강화되었다. 2002년에 데뷔한 기아 쏘렌토는 올해 8월까지 77만3천713대가 팔린 기아의 대표차다. 5인승과 7인승 두 가지가 나오고, 값은 5인승 2천413만∼3천34만 원, 7인승이 2천473만∼3천308만 원이다.
깊은 골에도 두루 미치는 햇살 함양(咸陽) 2007-09-07
장마가 끝났다는기상청의 발표 뒤 비는 더욱 변죽을 부렸다. 기상청에서는 우리나라의 여름철 비를 장마가 아닌 우기(雨期)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왠지 궁색해 보인다. 아무리 환경 탓으로 기후변화가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해도 장마라는 단어가 주는 여름철의 낭만, 또는 장마가 끝난 뒤의 기대 같은 것을 우기라는 아열대성 기후의 단어로 바꿔치기 하겠다는 발상은 잘못된 예고로부터 오는 비난을 피해보겠다는 얕은 심사에 지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떠나는 날 또 비가 내린다. 이번 행선지는 지리산 자락의 유서 깊은 고장 함양이다. 여기서 함(咸)자는 다 함, 또는 널리 미치다란 뜻인데, 밀양(密陽)이 은밀한 햇살이라면 함양(咸陽)은 그와 대비되는 뜻을 지닌 듯 하다. 최치원의 자취, 학사루와 상림에서 경남의 서북쪽에 자리한 함양은 아래로는 하동, 위로는 거창, 왼옆으로는 남원, 오른쪽으로는 산청과 이웃해 있다. 남원과 산청이 그렇듯 함양 역시 지리산을 끼고 있는 산천 수려한 곳. 예로부터 ‘좌 안동, 우 함양’이라 했을 만큼 조선조 유교문화권과 밀접한 선비의 고장이기도 하다. 어쩐지 깊은 곳에 위치한 느낌으로 멀게 여겨지지만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진주 못 미쳐 함양IC에서 빠지면 되므로 서울에서도 그리 멀지는 않다. 대전을 지나 무주를 지날 때까지만 해도 빗방울은 계속 굵어지기만 했다. 하지만 내심 볕 양(揚)자가 들어간 함양에 가면 쨍쨍한 햇볕이 내리쬘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 그런 기대였을 것이다. 그런데 장수를 지나면서부터 멀리 남쪽 하늘에 푸른빛이 감도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가 먹구름이 끼었다 하는 모습을 반복했는데 애가 탔다. 함양 땅에 들어선 순간 거짓말처럼 하늘은 푸르렀다. 언제 그렇게 큰비가 왔던가 싶을 만큼. 그런데 알고 보니 함양에는 이날 종일토록 비가 오지 않았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 때문에 당연히 비가 오는 것으로 생각했던 터였다. 함양IC로 나오자마자 금세 읍내에 들어서는데 얼마 안가 함양군청이 나온다. 그 맞은편에 커다란 누각이 하나 서 있는데 학사루다. 그냥 지나치지 말고 들러봐야 하는 이유는 바로 신라의 명 문장가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이곳에 자주 올라 시를 읊었다는 내력 때문이다. 원래 옛 동헌 자리였던 함양초등학교 뒤뜰에 있던 것을 1979년 이곳으로 옮겼다. 이 학사루는 또한 조선 연산군 때 일어난 무오사화의 불씨가 된 장소이기도 한데 사연인즉 이렇다. 영남 사림파의 거두인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부임하여 학사루에 올랐다. 그런데 남원 출신 유자광이 써서 걸어놓은 현판을 발견하고 이를 떼어 불태워버린 것. 유자광은 성종 때 일어난 이 일을 잊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가 김종직이 이미 죽은 뒤임에도 철저하게 보복한 것이다. 이때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 등 많은 사림파가 목숨을 잃고 정여창 등은 귀향을 갔는데, 지곡면 한옥마을에 정여창 고택이 아직 남아 있어 옛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함양을 상징하는 것 중의 하나가 상림. 흔히 함양 상림이라 부르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 이곳 역시 함양태수로 있던 최치원이 만들었다 하는데 홍수를 막기 위해 위천 주변에 둑을 쌓고 심은 나무들이 퍼져서 지금의 상림이 되었다고 한다. 숲의 한쪽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제법 너른 터에 옛날식 그네가 설치되어 있고, 아이들이 그네를 타며 놀고 있었다. 벤치가 있는 나무 그늘은 어찌나 깊고 넉넉한 것인지. 상림 안에서는 모두가 한여름의 무더위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원한 녹음을 즐기는 모습이다. 이런 숲을 가진 것은 크나큰 축복일 텐데, 오랜 세월 전 한 위정자의 역할이 후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돌아보게 한다. 함양 석조여래좌상은 함양중학교 교정 안에 있었다. 본래 청룡사라는 절이 이 터에 있었기 때문인데, 중학교 건물 옆에 있는 돌부처가 생소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함양이라는 지역의 특성 때문인지 모른다. 어느새 저녁햇살이 구름에 가려져 가고 방과 후 텅 빈 운동장은 동네 조무래기들 몇몇이 차지했다. 어디선가 아이 이름을 부르며 밥 먹으러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멀리 산허리에 가득 찬 구름이 밥 짓는 연기처럼 아련하게 피어오른다. 혹여 안의갈비라고 들어보았는지. 들어보았다 해도 그 안의가 바로 이곳 함양의 면소재지인 줄은 잘 모르지 않을까. 더욱 더 몰랐던 것은 '열하일기'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이 안의현감으로 있을 때(1792~1797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물레방아를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함양안내책자에 왜 물레방아 고을이라 적혀 있는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그런 연유에 안의면에 연암물레방아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옛 현청이 있던 안의초등학교 교정에는 박지원 사적비가 있고, 근처에 허삼둘 가옥이 있다. 허삼둘 가옥은 퇴락해 볼 만한 것이 없지만 조선후기 신분제도가 무너질 때의 사회상을 반영한 집이라는 의미가 있다. 허삼둘은 특이하게도 안주인 이름. 금천가에 있는 2층 누각(학사루와 비슷한 모양이다) 광풍루 옆으로 원조 안의갈비집이 있는데, 갈비탕 맛은 볼 만하다. 오도재 구비 넘어 지리산 가는 길 안의마을로 올라왔던 발길을 되돌려 남쪽 끝 마천면으로 방향을 잡는다. 지리산으로 가는 길이다. 지리산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오도재를 넘어간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 한 번은 꼭 찍고 싶은 포인트. 굽이굽이 코너가 멋진 도형처럼 연이어져 위의 조망대에서 보는 풍경이 이색적인 곳이다. 마치 꽈리를 튼 뱀과 같다고 할까. 지난해 방영된 한국타이어 CF에서 전도연이 차를 몰고 가던 곳으로 인상을 남긴 곳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하며 놀라는 표정이다. 변강쇠와 옹녀가 지리산으로 들어갈 때 이곳 오도재를 통해 들어갔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고개를 넘어가는 길에 변강쇠와 옹녀의 무덤이라는 표지판도 나온다. 오래 전 이대근이 주연한 영화 '변강쇠' 중 천지가 진동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이곳이라는 얘기다. 고개 정상쯤에 이르면 지리산 조망휴게소가 나온다. 마치 통일전망대처럼 망원경을 구비해두어 지리산을 가까이 볼 수 있게 했다. 왼쪽에서부터 천왕봉, 제석봉, 촛대봉, 칠선봉 등의 봉우리가 이어지는데 구름이 자욱해 능선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멀리서나마 지리산을 한눈에 안으니 가슴이 시원해진다. 마천으로 내려가 칠선계곡으로 가는 길에서 서암정사와 벽송사 가는 길을 만난다. 길은 두 갈래. 벽송사 대신 서암을 선택한다. 초입에서부터 절벽에 새겨진 사천왕상을 만나는 분위기가 낯설다. 여기서는 모든 게 돌에 새겨진 불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웅전도 굴 속에 새겨진 부처상이 대신하는데 안양문이 그것. 더 높은 곳으로 오르면 한쪽 절벽에 비로자나부처와 문수보살, 보현보살, 선재동자가 함께 조각되어 있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것은 아니고 근래에 조각된 것이지만 그 솜씨나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먼 훗날 이것은 또한 역사가 될 것이다. 물려받은 것만 유산이 아니라 물려줄 것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유산이기에. 이번 여정은 지리산 언저리를 돌다 말았지만 그래도 소중한 발견들을 했다. 다음에는 지리산 깊숙이 들어가 보아야겠다.
BMW DYNAMIC DRIVING DAY 남도를 .. 2007-08-20
자동차 브랜드 중에서 ‘다이내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BMW다. 지난 수십 년간 BMW가 강조해 온 스포츠 세단의 이미지는 오늘날의 BMW를 있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 같은 BMW의 다이내믹함을 경험할 수 있는 행사가 지난 7월 5∼6일 전남 신안군 증도에서 열렸다. 행사이름도 브랜드 이미지를 그대로 살린 ‘BMW 다이내믹 드라이빙 데이.’ 올해 상반기 출시된 뉴 X5, 3시리즈 세단과 컨버터블, 뉴 5시리즈를 비롯해 BMW 대표차종을 두루 시승할 수 있는 행사였다. ‘안전하고 품위 있는’ 다이내믹 ‘BMW 차들을 번갈아 몰며 서울에서 전남 증도까지 달린다’는 것은 흥미롭고도 호사스런 일이었다. 서너 대만 타본다고 해도 차값을 합치면 수억 원어치의 자동차를 주무르고 놀 수 있는 셈이니 말이다. BMW코리아는 이번 행사를 위해 컨버터블에서 쿠페, 세단, SUV까지 현재 시판 중인 20여 대의 차를 준비했다. 단순히 차만 타보는 것이 아니라 행사에 참가한 기자들이 조를 이뤄 구간별 미션을 수행해 가며 목적지까지 달린다. 시승의 재미를 더하는, 이 역시 다이내믹한 행사진행 방식이었다. 기자에게 맨 먼저 배정된 차는 Z4 3.0si 로드스터. 카리스마 넘치는 측면의 Z라인을 감상하는 사이 출발신호가 떨어졌다. 오전 8시 서울 강남전시장에서 시동을 건 참가자들은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구불구불한 국도와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갈아타며 차의 성능을 만끽했다. 직렬 6기통 3.0L 265마력 엔진을 얹은 Z4 로드스터는 페달을 밟는 순간부터 스릴 있는 엔진 사운드와 함께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내며 활력 있는 달리기를 보였다. 새롭게 얹힌 6단 스텝트로닉은 스티어링 휠 뒤에 달린 시프트 패들을 이용할 때 더 큰 운전재미를 안겨 주었다. 게다가 지붕까지 벗기고 자연을 벗삼아 달리는 드라이브는 한여름의 더위를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여정의 중반을 넘기면서 바꿔 탄 차종은 뉴 550i. 5시리즈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아직 타보지 못했던 터라 아침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모델이었다. 차에 타며 문을 살짝만 닫았는데도 자동으로 문이 닫히는 것이 7시리즈라도 탄 기분이다. V8 4.8L 367마력 엔진을 얹은 뉴 550i는 0→시속 100km를 5.3초 만에 주파하는 제원상 성능에 수긍이 갈 만큼 쏜살같은 가속력을 자랑했다. 스포츠 오토매틱 시프트 패들의 다이내믹한 변속도 인상적이었지만, 속도에 따라 스티어링 휠과 타이어의 각도를 자동 변환시켜 주는 액티브 스티어링은 지금껏 체험하지 못했던 고속 운전의 편리함을 안겨 주었다. 이번에는 새롭게 달린 차선이탈 경고장치를 시험해 보기 위해 시속 70km 이상에서 차선을 벗어나자 스티어링 휠에 진동이 전해진다. 요즘 같은 휴가철 장거리 여행길에 자칫 졸음운전을 하게 될 때 제몫을 톡톡히 할 안전장비라는 생각이다. 운전삼매경에 빠져 있는 사이 차는 어느새 전남 신안군 사옥도에 다다랐다. 이곳 선착장에서 배에 차를 싣고 10분 정도 가자 천혜의 개펄을 품은 증도가 성큼 다가왔다. 숙소에서 잠시 여장을 푼 뒤 드라이빙은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BMW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는 7시리즈가 기자 앞에 섰다. 그것도 750Li 인디비주얼 버전. 역동적이면서도 품격 있는 달리기 성능도 매력이었지만, 나스카 천연 가죽시트와 하이파이 프로페셔널 로직7 오디오 시스템, 뒷좌석 전용 쿨박스 및 TV와 DVD 등 최고급 장비로 단장한 실내의 품격이 압도적이었다. 너른 바다 위에 점점이 박힌 섬들과 아름다운 일몰을 바라보며 즐기는 최고급 세단의 드라이브는 드라마와도 같았다. 자동차가 줄 수 있는 다이내믹함과 안전함, 편안함과 품격의 최고 경지를 이번 행사를 통해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다음날 335i 컨버터블을 타고 서울행 열차를 타기 위해 광주역까지 가면서도 이 같은 기분은 죽 이어졌다. 이번 행사는 무엇을 보여 주려고 한 것일까? 다이내믹한 브랜드 이미지? 여기에 수식어를 하나 더 붙여야 할 것 같다. ‘안전하고 품격 있는’ 다이내믹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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