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소박한 매력에 푹 빠지다 윈난성(云南省) 2007-05-14
중국은 넓은 땅덩어리만큼이나 볼거리가 많지만 윈난성만큼 다양한 매력을 지닌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베이징이나 시안(西安)처럼 역사적이 많지는 않지만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신비로운 풍경이 사방에 펼쳐진다. 뿐만 아니라 윈난성은 달덩이처럼 고운 심성을 가진 소수민족의 터전이다.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26개 민족이 윈난성에 살고 있으니 그 다양함을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윈난성은 따리왕국(大理國)이라는 독자적인 나라를 이루고 살았다. 13세기경부터 중국 중앙정부의 지배를 받다가 17세기말 윈난성에 편입되었다. 윈난성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는 따리(大理)와 리지앙(麗江) 그리고 모계사회의 전통이 남아 있는 루구후(瀘沽湖) 등이다. 중국의 스위스, 소수민족의 터전 따리는 저렴한 물가와 편안한 분위기 때문에 여행자들에게는 천국이다. 히말라야의 줄기인 창산(蒼山)과 아름다운 호수가 있어 중국의 스위스로 불리기도 한다. 13세기 중국에 점령당하기 전 따리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지금은 바이(白)족의 자치주다. 따리는 돌로 유명한데, 이곳에서 생산되는 돌은 무늬가 아름다워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벽에 붙이면 벽화가 될 정도다. 현란한 대리석 액자를 파는 기념품점도 적지 않다. 중국인의 허풍을 감안하더라도 대리석이란 이름이 이곳에서 유래된 것만 보아도 그 품질을 짐작할 수 있다. 창산을 뒤로, 바다 같은 호수 얼하이를 앞에 두고 있는 따리는 공기가 맑고 기후가 온화할 뿐 만 아니라 거리가 아늑해 정감이 넘친다. 이 작은 시골에도 개발바람이 불어닥쳤다. 기념품 가게로 채워진 거리는 본래의 고풍스러움을 상실했고 외국인 거리로 불리는 양런지에(洋人街)에는 수많은 카페와 선물가게, 식당이 늘어서 정신이 없을 정도다. 크게 바뀌어 버린 풍경들은 따리의 옛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 줄 것이다. 그러나 따리 고성을 벗어나면 특유의 전원 풍경이 펼쳐진다. 논에서는 전통의상을 입은 농부들이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다. 다모작이 가능한 기후 때문에 벼가 누렇게 익어 추수를 하는 가 하면 옆 논에서는 모를 심는 풍경이 펼쳐진다. 탈곡기를 이용해 낱알을 털고, 삼삼오오 모여서 모를 심는다. 10년 전 처음 찾았을 때의 그 모습 그대로다. 변하지 않은 것이 또 있다. 바다처럼 넓은 얼하이 호수풍경이다. 어부들은 이곳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데, 가마우지를 이용한 전통방식으로 고기를 잡는 모습도 볼 수 있다. 3일이나 5일마다 열리는 시장은 따리의 볼거리 중 하나다. 밭에서 재배한 채소를 비롯해 각종 과일과 고기, 옷, 모자, 생활용품 등을 파는 시끌벅적한 모습은 우리네 옛 시골장터와 다르지 않다. 장이 서는 날은 온통 푸른색의 물결이다. 바이족 처녀들은 흰색 바탕에 분홍색이나 붉은 조끼를 즐겨 입고 나이 든 여인들은 푸른 옷을 입는데, 장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 든 여자들이기 때문이다. 나시족의 터전인 리지앙 따리와 쌍벽을 이루는 인기 있는 여행지가 리지앙(麗江) 고대마을이다. 따리가 바이족의 터전이라면 리지앙은 나시(納西)족의 터전으로 중국 최대의 기와집 마을이 있다. 나시족은 고유문자와 언어가 있으나 점차 잊혀지고 있는 실정이다. 1996년 진도7이 넘는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 수천 명이 사망하고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해 버렸으나 다행히 구시가지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곳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중국정부의 대대적인 개발정책에 따라 지난 몇 년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상해와 함께 가장 빠르게 변화한 곳이 아닐까 싶다. 10년 전의 리지앙을 기억하는 내게는 더욱 그랬다. 신시가지에는 시원스레 포장된 도로와 빌딩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고, 구시가지의 옛 저택들은 모두 개조되어 세련된 상점과 레스토랑, 카페 등으로 탈바꿈하였다. 그야말로 도시전체가 거대한 상가로 변했다. 육신의 휴식과 마음의 평화를 찾는 일부 외국 여행자만이 오가던 거리에는 중국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나시족 특유의 전통적인 삶의 모습도 변하고 있다. 노인들은 전통복장을 입고 옛날 생활풍습을 쥬지하고 있지만 젊은이들은 청바지와 티셔츠, 햄버거 등에 길들여졌다. 한류의 열풍이 중국 전역을 강타하면서 우리나라 드라마를 보는 젊은이들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엄청나게 변해 버린 리지앙에 대한 평가는 보는 이에 따라 극단적으로 다르다. 어떤 이들은 도시를 망쳐 놓았다고 혹평을 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중국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라는 평을 한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리지앙은 여전히 아름답고 아늑하다. 구시가지 전체를 형성하고 있는 기와집 마을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을 이룬다. 바닥에 돌조각이 촘촘히 박힌 골목과 도시를 관통하며 흐르는 위허(玉河)는 낭만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게 한다. 이름처럼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냇가 주변을 따라 카페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도 이색적이다. 이따금 나시족 노인이 당나귀에 물건을 가득 싣고 딸랑거리는 방울소리를 울리며 골목을 지나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밤이 되면 리지앙은 전혀 다른 풍경으로 변신한다. 카페에 내걸린 붉은 등이 영롱한 물빛을 받아 흔들리는 풍경은 감정이 메마른 사람들도 감동시킬 정도로 아름답다. 모계생활 하는 모수족이 사는 루구후 리지앙에서 루구후로 가는 길은 윈난성 최고의 절경을 자랑한다. 산을 깎아 만든 험준한 도로가 꾸불꾸불 이어지고, 아래로는 장강이 협곡을 소용돌이치며 흘러간다. 윈난성과 쓰촨성이 만나는 곳, 해발 2천690m에 위치한 루구후는 평균 수심 45m의 거대한 담수호로 수정같이 맑고 아름다운 곳이다.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아가는 이유는 모수족을 만나기 위해서다. 모계사회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모수족의 터전인 루구후는 ‘신비의 여인국’으로 불리며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있었으나 최근 들어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여행자 숙소와 레스토랑이 생기는가 하면 인터넷 카페까지 생겨났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는데 이들에게만 변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루구후에 도착한 다음날 일본인 여행자를 만났다. 그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일본 젊은이 특유의 요란한 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다며 하루만에 떠나 버렸다. 방송이나 매체를 통해 본 모계사회의 생활풍습을 상상하고 왔다가 실망한 것이다. 그 젊은이도 나처럼 이기적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우리는 온갖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 이들 만큼은 옛 모습을 지켜 줬으면 하는 욕심이다. 우리가 상실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가진 자의 오만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2년만에 다시 찾은 루구후는 많이 변해 있었지만 소박하고 넉넉한 모수족의 심성만큼은 다름없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고 누군가 말했듯이 따뜻한 마음만큼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보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루구후에서 여행은 끝났지만 그곳에서 만난 자연풍광과 순박한 사람들의 모습은 기억 속의 잔상이 되어 남아 있다. 그들이 보여주었던 인정과 순박한 미소, 웅장한 산과 협곡, 물소리가 속삭이듯 다가온다. 여행정보 교통 윈난성의 성도인 쿤밍까지 대한항공과 윈난항공이 주 2∼3회 직항으로 운항한다. 쿤밍에서 따리, 리지앙으로 버스가 수시로 운행한다. 쿤밍에는 버스터미널이 여러 개 있어 처음 도착한 사람들은 헷갈린다. 따리나 리지앙행 버스는 기차역 인근의 베이징루(北京路)에 있는 쿤밍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다. 비자 중국은 비자가 있어야 갈 수 있다. 비자는 서울 종로구 효자동 중국대사관에서 발급하며 주민등록증, 여권, 사진 1매, 신청서가 필요하다. 소정의 수수료를 내고 여행사에 맡겨도 된다. 환전 따리, 리지앙 등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 환전소는 적지 않다. 그러나 루구후에는 환전할 곳이 없으니 따리와 리지앙에서 미리 환전한다. 호텔 따리, 리지앙, 루구후에는 숙소가 많다.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저렴한 숙소는 30∼50元, 중급호텔의 경우 200元 정도 한다. 워낙 마을이 작아 20∼30분 걸어다니면 시내 대부분의 호텔을 찾을 수 있다.
막대한 지하자원의 보고, 중국 신장 혜초의 발걸음 .. 2007-05-09
길은 거칠고 산마루는 엄청난 눈으로 덮였는데, 험한 골짜기에는 도적 떼가 들끓는구나 / 새는 날아가다가 깎아지른 산을 보고 놀라고 사람들은 좁은 다리 건너기를 두려워 하는구나 / 평생에 울어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눈물을 천 줄기나 뿌리도다’ ‘왕오천축국전’에서 신라의 고승, 혜초가 읊은 ‘오언시’다. 약관의 나이에 중국 광주에서 배를 타고 인도로 간 혜초는 4년 동안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구도 여행하고, 돌아올 때는 실크로드를 따라 걸어 왔다. 파미르 고원을 지나자 앞을 가로막은 천산 산맥을 바라보며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혜초는 이렇게 눈물을 뿌리며 시 한 수를 지었다. 결국 파미르 고원에서 천산을 넘어 사리콜 계곡을 타고 내려와 마침내 당나라 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카슈가르에 당도했다. 그의 나이 20세 때인 727년 가을이었다. 혜초가 파미르 고원에서 천산을 넘어 카슈가르까지 오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릴 만큼 천산은 높고 사리콜 계곡은 굽이굽이 끝없이 이어졌다. 천산을 넘어가는 이 길은 실크로드 중에서도 가장 험난한 구간이다. 그로부터 1,300여 년이 지난 지금, 혜초를 겁주던 도적떼는 간 곳 없고 건너기가 두려운 좁은 다리도 자취를 감췄다. 신장자치구와 파키스탄을 잇는 도로가 이어져 자동차가 천산을 넘어 다니지만 아직도 길은 험하고 산마루엔 여전히 엄청난 눈이 쌓여 있다. 주유소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중국의 신화통신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공안기관이 지난 1월 5일 신장 서남부 파미르 고원 부근 산악지역에 있던 테러리스트 훈련기지를 급습해 18명을 사살하고 17명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이어서 훈련기지를 수색하고 테러분자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양측 간에 무력충돌이 벌어져 신장공안도 1명이 사망했다. 신장공안은 수류탄 22개와 제조 중인 수류탄 1,500여 개도 노획했다. 공안청 대변인은 이번에 발각된 테러 훈련기지는 ‘동(東)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이 설립한 것이라며 위구르인들의 독립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혜초가 눈물을 뿌리며 사리콜 계곡을 내려온 지 1,300여 년이 지나 위구르 독립투사들이 피를 뿌린 것이다. 7년 전 그곳에서 나는 진땀을 뿌렸다. GM대우 다마스와 비슷한 중국산 ‘장안’(長安)을 빌려 타고 열흘간 타클라마칸 사막을 가운데 두고 천산북로와 천산남로를 돌아 나오는 길에 사리콜 계곡을 오르던 중 기름이 떨어진 것이다. 물어물어 주유소를 찾았는데 산비탈의 조그만 주유소는 문이 잠겨 있었다. 아랫마을 윗마을 다 돌아다니며 주유소 주인을 찾았는데 예상과는 달리 곱상하게 생긴 아줌마였다. 구세주를 만났다 했는데, 이 아줌마 생글생글 웃으며 기름을 다 팔아서 없단다. 이웃과 수다를 떨고 있는 주인아줌마 겨드랑이를 껴안고 주유소로 가자고 일으켜 세웠더니 못이기는 척 일어나는 폼이 주유소 기름이 바닥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자기네가 쓰려고 감추어 둔 것이라며 어디서 스페어캔을 들고 왔다. 공시가격의 거의 세배를 주고 겨우 기름을 샀다. 깎고 깎았는데도 바가지를 썼다. 중국의 기름값은 우리나라 3분의 1수준이니 우리나라 값으로 산 셈이다. “한강물이 사이다라도 곱뿌(컵) 없이는 못 마셔~” 장터거리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목청을 높이던 약장수들의 단골메뉴다. “동해물이 휘발유라도 주유소 없이는 못 넣어~” 휘발유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요즘, 약장수는 이렇게 읊조릴지 모를 일이다. 자동차를 빌려 타고 오지를 여행할 때 겁나는 것 중의 하나가 오일게이지는 바닥의 붉은 선과 붙으려 하는데도 주유소를 발견하지 못할 때다. 더더욱 겁나는 것은 천신만고 끝에 주유소를 발견했지만 주유소 기름이 바닥나 개점휴업을 하고 있는 경우다.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수없이 낭패를 당해봤지만 중국의 서역, 위구르 자치구에서만큼 곤욕을 치른 적은 없다. 내가 이곳을 헤맬 때도 전세계에 석유파동이 몰아쳐 주유소마다 기름이 바닥났던 것이다. 정유회사들이 기름공급을 제대로 안 해준 탓도 있지만 주유소들이 기름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고시가격이 오를 것을 노리고 판매를 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위구르 자치구는 중국 정부가 서역대개발이라고 목소리를 드높이지만 아직도 문명이 손닿지 않는 곳이 많다. 그리고 워낙 넓은 땅덩어리에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은 띄엄띄엄 흩어져 있으니 주유소도 덩달아 몇 십 리나 가야 찾을까 말까다. 위구르 자치구는 땅덩어리가 남한의 17배이지만 인구는 고작 1,700만 명에 불과하다. 위로는 천산 산맥이 둘러싸고 아래는 곤륜 산맥이 둘러싸 가운데는 타림분지가 된다. 타림분지의 대부분은 타클라마칸 사막이다. 독립 가로막는 막대한 지하자원 위구르 말로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이라는 뜻의 이 거대한 사막은 완전한 불모지다. 사람이 사는 곳은 사막의 끝자락과 천산 산맥과 곤륜 산맥의 산자락이 만나는 곳이다. 만년설을 덮어쓴 두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수많은 물줄기는 타클라마칸 사막 모래 속으로 스며들어 자취를 감춰 버린다. 사막으로 스며들기 전, 물줄기 퇴적물은 부챗살 모양으로 쌓여 포플라와 곡식이 자라는 들판을 만든다. 바로 오아시스다. 오아시스의 크기는 전적으로 흘러내리는 물의 양에 의해서 결정된다. 위구르족은 투르크 계열로, 중국의 한족과는 모든 면에서 완전히 딴판이다. 모습도 다르고, 종교도 이슬람이다. 중국정부의 골치를 썩이며 독립을 부르짖는 곳이 바로 티벳과 내몽골 그리고 이곳이다. 그 중에서도 10여 개의 무장단체들이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위구르 자치구의 저항이 가장 심하다. 중국이 불모의 땅, 위구르 자치구에 절대 독립불가를 외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어마어마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 때문이다. 중국 국영석유회사는 3개의 자회사를 갖고 있다. 페트로 차이나(Petrochina), 시노펙(Sinopec) 그리고 씨엔오오씨(CNOOC)사다. 모두가 홍콩증시에 상장되어 급등하는 석유가격에도 불구하고 시노펙의 경우 작년 상반기에만 26억 달러(약 2조4,115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요즘, 중국국영석유회사는 해외 유전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자국 내의 석유매장량도 엄청나지만 중국은 자국유전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지 않는다. 마치 지구상의 석유가 모두 메말랐을 때야 자기나라 석유를 뽑아 올리겠다는 듯이……. 중국은 자국의 석유 매장량이 공식적으로 240억 톤이라 밝히고 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유혈암(油頁巖)과 유사(油砂)의 양도 엄청나지만 그대로 묻어두고 있다.
꽃 향기 가득한 알자스의 작은 마을 Colmar 2007-04-17
독일과 프랑스 국경지대에 위치한 콜마르(Colmar)는 숨겨진 보석 같은 도시다. 알자스에서 옛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도시 중 하나로, 파스텔톤의 반목조 건물과 꽃장식, 아기자기한 운하가 어우러져 동화 속 마을 분위기를 연출한다. 중세 때부터 항구 무역도시로 번영을 누렸던 콜마르는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지대에 자리한 탓에 오랫동안 두 나라간의 분쟁 대상이 되어 왔다. 17세기 프랑스령이 되었다가 1871년 독일에 병합되고, 1차대전 후 다시 프랑스령이 되었다.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콜마르의 전성기였던 16~17세기에는 알자스 전역의 포도밭에서 상인들이 포도를 배에 싣고 운하를 따라 콜마르로 모여들었다. 지금은 나룻배를 타고 수로를 오가는 관광객들만 보일 뿐, 더 이상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16세기풍 도시 자체가 볼거리 오늘날의 콜마르는 무역도시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중세의 풍경이 그대로 남아 알자스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돌조각이 촘촘히 박힌 구시가의 좁은 골목과 분홍색과 붉은색 제라늄 화분이 내걸린 파스텔톤의 반목조 건물, 운하를 따라 늘어선 매력적인 카페, 거리의 악사 등 낭만적인 분위기를 한껏 자아낸다. 골목에는 그림 같은 철제 간판이 걸린 16세기의 집들이 많아서 훌륭한 구경거리가 된다. 파스텔 색조의 건물과 멋스러운 간판, 화사한 꽃이 어우러진 풍경은 저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올 만큼 매혹적이다. 콜마르는 아주 작은 도시여서 천천히 돌아보아도 한나절이면 모두 볼 수 있다. 구시가지에서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곳은 메종 테트로 불리는 석조건물. 구시가 초입에 있는 이 집은 콜마르에서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건물이다. 메종 테트는 콜마르가 포도무역으로 번창하던 1609년 건축된 것으로, 돌출된 발코니와 꽃으로 장식된 창문이 꽤 인상적이다. 황금빛이 감도는 건물 꼭대기에는 상인의 동상이 서 있는데, 자유의 여신상을 만든 바르톨디가 1902년에 제작한 것이다. 지금은 호텔과 레스토랑으로 이용되고 있다. 콜마르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점 간판들을 메종 테트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시가 곳곳에는 기념품 상점이 많은데, 대부분이 독특한 사이드 간판으로 장식해 놓았다. 갖가지 문양으로 장식된 이 사이드 간판들은 콜마르의 거리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제과점은 빵 모양, 정육점은 소 모양으로 업종과 건물의 이미지를 살렸는가 하면, 어떤 가게는 황금색 바탕에 공작을 새긴 문장, 어떤 가게는 방패, 또 다른 가게는 독수리나 사자 등 동물 문양을 걸어 놓기도 했다. 예술작품처럼 보이는 이 문양들을 살피다 보면 시간의 흐름을 잊게 된다. 메종 테트에서 큰길을 따라 3∼4분 걸어가면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이젠하임 미술관이 나온다. 이곳은 원래 13세기에 세워진 도미니카 수도회 건물로, 지역 신앙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이었으나 프랑스 혁명 때 폐허가 되었다. 복원 후 1850년부터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에는 로마시대의 모자이크와 중세교회의 제단화, 조각, 종교용품, 15∼16세기의 회화, 현대미술 등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미술관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끔찍하게 죽어 가는 예수의 모습을 그린 이젠하임 제단화(Isenheimer Altarpiece)다. 독일 화가 마니아스 그뤼네발트가 1513∼15년 제작한 이 작품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가는 예수의 모습을 세상에서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평을 받았다. 널빤지에 유화로 그려진 이젠하임 제단화는 3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장면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채 죽어 가는 모습, 제2장면은 예수의 부활을 그렸다. 왼쪽 문은 수태고지, 중앙은 강탄, 오른쪽 문에는 부활의 환희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제3장면은 양쪽 문에 성 안토니우스의 화상이 있고, 중앙에 조각상이 배치되어 있다. 이 제단화는 워낙 명성이 높아 오로지 이 그림을 보기 위해 콜마르를 찾아오는 사람이 적지 않다. 도미니크 성당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이젠하임 미술관을 본 후 복잡한 골목을 따라 좀더 들어가면 도미니크 성당과 생 마르탱 성당이 나온다.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한 구시가지 중심지인 도미니코 광장에 있는 고딕 양식의 도미니크 성당은 겉은 소박하지만, 중세 때 만들어진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정말 볼만하다. 이 성당의 진정한 매력은 콜마르 출신의 화가 마르탱 숑교에의 작품 ‘장미 덤불 속의 성모 마리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붉은색과 황금색이 어우러져 화사하게 빛나는 이 그림은 이젠하임 제단화와 더불어 콜마르가 자랑하는 보물이다. 도미니크 성당과 인접해 있는 생 마르탱성은 전형적인 알자스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콜마르의 확실한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1235∼1365에 건립된 이 성당은 1572년 화재로 남쪽 탑과 건물의 일부가 소실되었다가다 3년 후 다른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그 후 여러 차례의 개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성당 앞 노천카페는 웅장한 성당의 모습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는 관광객으로 밤낮 없이 북적거린다. 생 마르탱 성당에서 도보로 1분 거리에 있는 메르시에르 거리에는 콜마르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 중 하나인 메종 피스테르가 있다. 1537년에 만들어진 이 집은 르네상스풍의 출입문과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고딕양식의 돌출 창문 등 외부 장식이 매우 뛰어나다. 나무로 만든 발코니에는 제라늄꽃이 걸려 있고, 창문 아래 벽은 매력적인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가냘픈 계단식 작은 탑과 꽃무늬 장식이 붙어 있는 퍼사드는 다른 건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집만의 특징으로, 콜마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로 꼽힌다. 메종 피스테르는 19세기 이 집을 소유했던 주인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구시가의 좁은 골목에 있는 메종 피스테르 주변에는 선물가게와 노천카페, 꽃으로 장식된 반목조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작은 베니스라 불리는 ‘프티 브니즈’는 콜마르에서 가장 로맨틱한 곳으로, 운하를 따라 파스텔톤의 알자스 전통집이 줄지어 있다. 콜마르가 무역도시로 번성했던 16세기 상인들이 배에 포도를 가득 싣고 이곳의 운하를 드나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작은 나룻배 유람선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좁은 운하와 격자형의 나무 창문, 화사한 제라늄이 내걸린 다리, 운하 옆의 레스토랑에서 들려오는 악사들의 연주 소리에 누구라도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운하를 따라 줄지어 있는 알자스 전통의 건물들은 그 자체가 그림엽서의 한 장면이 될 정도. 실제로 프티 브니즈는 알자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로 알자스를 소개하는 엽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콜마르는 파리나 로마, 런던 같은 대도시에 비하면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도시를 찾는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다시 오고 싶어한다. 이 도시 특유의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답고 아늑한 낭만의 도시, 콜마르. 그곳에서 보내는 하루는 잊기 힘든 감동의 날로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여행정보 교통 우리나라에서 콜마르까지 연결되는 직항편은 없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나 스위스 취리히, 바젤 등을 경유해서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콜마르는 스위스, 독일과 접경지대에 있기 때문에 스위스를 경유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 기차는 스위스의 취리히(2시간)와 바젤(50분),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1시간) 등에서 수시로 운행한다.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도 버스와 기차가 수시로 운행한다. 시내교통 콜마르는 작은 도시여서 걸어서 구경할 수 있다. 기차역에서 구시가지까지 도보로 15분 정도 걸린다. 구시가는 좁고 복잡한 골목으로 이루어져 있어 차가 다닐 수 없는 곳이 많다. 차를 이용하고 싶은 사람은 관광안내소 앞에서 출발하는 미니 관광열차를 이용한다. 관광안내소 구시가지의 중심지인 운터린덴 미술관 앞에 있다. 무료지도와 숙박, 투어, 교통안내 등을 받을 수 있다. 영어자료가 풍부하고 직원들도 친절하다. 주소: 4 rue des Unterlinden 전화: 03-8920-6892 www.ot-colmar.fr 호텔 알자스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도시지만 숙박비는 의외로 저렴하다. 또한 구시가 곳곳에 호텔이 있기 때문에 숙소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구시가 한복판에 있는 Hotel Saint-Martin(주소: 38 Grand-Rue, 전화: 03-8924-1151)는 르네상스 스타일의 호텔로 위치와 시설 모두 권할 만하다(2인실 117∼145유로). 프티 브니즈 인근의 운하 옆에 위치한 Hostellerie Le Marechal은 콜마르에서 가장 낭만적인 풍경을 볼 수 있는 곳. 꽃으로 장식된 파스텔톤의 이 호텔은 알자스 전통양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2인실 100∼215유로.
오스트리아 비엔나 낭만의 기준 2007-04-11
전 통이 거리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러니 비엔나는 가장 낭만적인 도시임에 틀림없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클래식 대가들의 작품이 모두 이 비엔나에서 태어났으니, 비엔나로 간다는 것은 음악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닐는지. 음악이 흐르는 쉔부른 궁전과 벨레데레 궁 쉔부른 궁전은 이를 보기 위해 비엔나를 찾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궁전이다. 1569년에 착공해 1700년에야 완성되었다 하니 가히 그 정밀함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으로 사용된 이곳은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의 우아함을 엿볼 수 있다. 모차르트가 여섯 살 때 콘서트를 했다는 거울의 방이 유명하고, 궁전 본관에서 비엔나 시내 전경을 보는 것도 묘미다. ‘전망 좋은 방’이라는 뜻의 벨레데레 궁은 사보이 왕가의 왕자였던 오이겐의 여름 별궁으로, 아름다운 정원이 매혹적이다. 상궁과 하궁 두 개의 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궁은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쉴레 등 오스트리아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고 하궁은 바로크 미술관으로 쓰인다. 하궁에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 ‘키스’를 볼 수 있다. 6월엔 쉔부른 궁전에서 비엔나 필하모닉과 유명 게스트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유럽 콘서트 (Concert for Europ, www.europa-konzert.at)의 막이 오름과 동시에 무료공연이 펼쳐진다. 행사 기간 중 오후에 이곳을 찾으면 스파클링 와인과 스낵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특히 해마다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열리는 비엔나 재즈 페스티벌(Vienna Jazz Festival, www.viennajazz.org) 기간에는 비엔나의 모든 장소가 음악가들을 위한 무대가 된다. 쉔부른 궁전의 정원(Schnbrunn Palace Gardens)이나 시민공원인 슈타트파크(Stadtpark)는 조깅하기에도 좋다. 잔디와 숲, 연못으로 꾸며진 600만 ㎡의 유서 깊은 프래터(Prater)나 42㎞에 걸쳐 모래, 자갈, 언덕이 펼쳐진 다뉴브 섬 또한 달리기와 산책 코스로 그만이다. 롤러블레이드를 타기에도 좋은데, 비엔나의 롤러블레이드 팬들은 5월부터 9월까지 매주 금요일 밤에 이곳에 모여 함께 타기도 한다. 회합 장소(www.nightskating.at)는 헬든플래츠(Heldenplatz) 1번가다. 이와 함께 4월 29일에 열리는 비엔나 도심 마라톤 대회 또한 여행자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무료로 펼쳐지는 500여 시간 공연, 다뉴브 섬 페스티벌 매년 300만 명의 여행객들이 찾는, 유럽에서 가장 큰 야외 행사인 다뉴브 섬 페스티벌(www.donauinselfest.at)은 진정한 음악을 느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올해는 6월 22일에서 24일까지 유명 연극, DJ와 재즈, 록과 힙합 등 클래식 음악에서 대중음악, 컨트리 뮤직, 포크 뮤직, 블루스 그리고 위에너라이드(Wienerlied) 등의 라이브 공연에 이르기까지 500여 시간동안 무료 공연이 펼쳐진다. 맛있는 음식과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다뉴브에 발을 담그고 즐기는 음악 축제는, 시원하기 그지없는 환상적인 축억을 선사할 것이다. Theater an der Wien 2007: 모차르트, 바로크와 현대 음악, 올해도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이도메네오’(Idomeneo), ‘가장한 바보’(La finta semplice) 등의 작품이 최신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된다. 바로크 오페라 팬들은 몬테베르디(Monteverdi)의 ‘오르페오’(L’Orfeo), 헨델의 ‘줄리오 케사르’(Giulio Cesare) 그리고 발레곡인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감상할 수 있다. 니콜라우스 하논코트(Nikolaus Harnoncourt)가 하이든의 ‘기사 오를란도’(Orlando paladino)를 지휘한다. 현대 미국 오페라의 대표작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와 ‘데드맨 워킹’(Dead Man Walking)도 공연될 예정이다. 마린스키 극장(Mariinsky Theater)은 ‘갬블러’(The Gambler)와 ‘유진 오네진’(Eugene Onegin)의 초대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특히 5월 5일부터 6월 19일까지 콘체르도(Konzerthaus)에서 열리는 비엔나 국제 음악 페스티벌(Vienna Festival International Music Festival)이 눈에 띈다. 이번 페스티벌은 유명 오케스트라와 세계적 수준의 지휘자 및 솔로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티켓과 공연 정보는 www.musikverein.at에서 얻을 수 있다. 비엔나의 카페 비엔나 카페의 역사는 1683년에 있었던 터키 공격 후 카페를 열면서부터 시작된다. 카페는 페터 알텐베르그(Peter Altenberg), 크라우스 카를(Kraus Karl), 에곤 프리델(Egon Friedell)과 같은 문인들에게 특히 사랑을 받았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전통 카페는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카페‘Hawelka’는 비엔나에서 거의 숭배에 가깝다. 전통 비엔나 커피 만들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Meinl Caf am Graben’에 꼭 들러보자. 전통 커피뿐만 아니라 Kapuziner, Einspnner, Mazagran 등 무려 35가지의 다양한 리스트를 자랑한다. 자료제공 오스트리아관광청 ☎(02)773-6428 www.austria-tourism.co.kr 그밖에 즐길거리 현대 미술 속의 에로스 2007년 3월 3일부터 7월 22일까지 ‘BA-CA Kunstforum’에서 '미술 작품 속의 에로티시즘'이라는 주제로 전시회가 열린다. 19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35명의 화가들의 대표작을 전시하는 이번 전시회는 관능미에 대한 매혹의 세계를 탐험한다. 달리, 드가, 듀캄프, 고갱, 자코메티, 클림트, 마그리트, 피카소, 르느와르, 로댕, 쉴레, 툴루즈 로트렉 등을 만날 수 있다. 봄의 즐거움 가든의 기쁨, 예술이 있는 가든 벨레데레 궁전(The 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에서는 3월 22일부터 6월 24일까지 중세시대에서 바로크, 비더마이어 시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정원을 주제로 한 80여 작품들을 전시할 예정이다. 이 전시에서는 클라우드 모네, 구스타프 클리트, 에밀 놀데 그리고 칼 몰의 정원 사진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2007 라이프 볼 (Life Ball) 의 이국적이고 기이한 의상들 2007년 5월 26일, 유럽에서 가장 이채로운 에이즈 모금 활동인 비엔나 라이프 볼(Vienna Life Ball )행사가 시청 청사에서 펼쳐진다. 이 댄스 파티는 유명 연예인들이 대거 참가한다. 샤론스톤, 까뜨린 드뇌브와 같은 전설적인 영화배우가 등장하고, 나오미 캠벨의 화려한 패션쇼도 볼 수 있다. travel information 호텔 예약 www.wien.info 사이트나 비엔나 관광청(오전 9시~오후 7시)의 호텔 및 안내 서비스에서 전화로 예약이 가능하다. 패키지 상품, 여행 플래너, 다운로드, 이벤트 데이터베이스, 온라인 호텔 예약 등 여행 정보를 14개 언어로 제공하고 있다. 관광 안내 센터 관광 지도, 관광 책자, 호텔 예약, 티켓 판매, 환전 등 관광 안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주립 오페라 하우스 바로 뒤편에 위치한다. 오전 9시부터 19시까지 이용할 수 있으며 알베르티나광장(Albertinaplatz)과 메이세데르가세(Maysedergasse)의 코너, 1 지구에 있다. ☎ +43 (1) 24-555 비엔나 티켓 72시간 동안 지하철, 버스, 트램을 무한정으로 이용할 수 있고, 210여 군데의 가게와 식당에서 할인받을 수 있는 로버 티켓(Rover ticket)이 18.50 유로. 관광 안내 사무소나 호텔, 여행사, 대중교통 매표소 등지에서 살 수 있다.
천혜의 바다와 장인정신이 빚어낸 맛 일본 3대 스시.. 2007-04-11
미야자와 리에’그게 누구더라?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도 ‘산타페!’ 하면 무릎을 칠 것이다. 네덜란드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지난 1991년 엄마의 권유로 뉴 멕시코 산타페에서 18세의 농염한 몸매를 드러냈다. 그녀의 누드 화보집 산타페는 당시 바티칸의 교황까지 보았을 정도로 지구촌 뭇 남성들의 모세혈관을 빵빵하게 팽창시켰다. 그러나 일본씨름 천하장사(요코즈나)였던 나가노 하나와의 파혼이 그녀에게 거식증을 안겼고, 거식증은 그녀를 연예계 은퇴로 몰아갔다. 그리고 세인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몇 년이 흘렀나, 미야자와 리에가 부활했다. 뭇 남성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던 그녀는 이제 인간의 혼을 깨우는 연기파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에 일본열도의 시선이 집중됐다. 지난 봄, 미야자와 리에가 규슈(九州)의 중서부 구마모토(熊本) 공항에 내렸다. 규슈 한복판에 자리 잡은 구마모토는 서쪽이 태평양으로 시원하게 터졌다. 이 태평양 앞바다는 크고 작은 섬들을 쏟아 부은 듯 바다 반, 섬 반의 풍치를 이루고 있다. 120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엮어진 아마쿠사(天草)는 국립공원이다. 섬을 타고, 섬을 넘어, 섬을 돌아, 다섯 개의 다리를 건너며 미야자와 리에는 바다 냄새와 솔향기에 벌써 취한다. 페블비치 해안선을 따라 도는 ‘17 마일스 드라이브’가 미국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이듯이 아마쿠사 고쿄(天草五橋)의 다섯 개 다리를 건너며 해안선을 따라 도는 코스는 일본 최고다. 미야자와 리에도 반한 ‘야쿠스시’ 종착점인 혼도시 변두리. 한적한 거리에 조그만 스시집이 쪼그리고 앉았다. 두 사람이 교행할 수 없는 조그만 입구. 간판 대신 붙여놓은 붉은 천에 ‘奴’자가 예서체로 박혀있는 ‘야쿠스시’(奴すし)로 미야자와 리에는 일행들과 함께 들어갔다. 몇 시간이 흘렀나, 어둠이 먹칠을 한 거리에 야쿠스시 밀창문 입구는 내부의 불빛을 받아 발갛게 물들었다. 문이 열리고 미야자와 리에는 업혀서 나왔다. 술 취한 그녀는 봄바람에 흘러 어둠 속에 잠겨 버렸고 야쿠스시 창의 불빛도 꺼졌다. 미야자와 리에가 먼 길을 마다않고 야쿠스시집을 찾은 까닭은 야쿠스시의 스시 맛에 그리고 야쿠스시의 술맛에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스시’(すし)란 대체 무엇인가? 몇 년 전 도쿄에 외국인을 위한 일본 요리학원이 문을 열었다. 도쿄에 거주하는 주일 외교관 부인들과 상사주재원 부인들 그리고 외국어 학원 강사 등 외국인들이 요리 학원으로 몰려들었다. 그 요리학원은 일본의 대표적 요리인 스시 전문학원으로 외국인들의 성급한 취향에 맞게 2개월 단기 코스를 개설했던 것이다.‘생선을 잘라 밥을 얹어 주는 간단한(?) 요리’를 배우는 데 2개월은 너무 길다며 외국인들이 아우성 칠 때 이 학원은 일본스시요리협회로부터 한 통의 시정명령통지문을 받는다. 스시는 일본의 혼이 담긴 요리인데 불과 2개월 코스로 외국인에게 스시의 모든 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니 최소 6개월로 늘리라는 요지였다. 2개월도 길다는 외국인들에게 6개월은 터무니없는 기나긴 세월(?)이었다. 결국 그 스시 요리학원은 문을 닫았다. 일본인들은 스시를 일본의 혼이 담긴 음식 혹은 그 이상의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맛의 평가로 권위의 칼날을 세운 ‘주간현대’가 일본 3대 스시집의 하나로 야쿠스시를 꼽았다. 야쿠스시집 조그만 입구에 들어서면 외관만큼이나 내부도 앙증맞다. 앉는 탁자가 서너 개 자리한 마루 한 켠은 요리사와 마주보고 대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 다이(台)가 있고 옆으로 조그만 방이 두어 개 보이는 이 단촐한 가게가 일본 3대 스시집의 하나라? 옥호가 묘하다. ‘야쿠’(奴)는 ‘노예, 종’이라는 뜻이다. 이 집 주인이자 스시의 달인 무라카미(村上安一·55세) 씨의 설명을 들어 보자. “가게 이름은 스승한테 물려받은 겁니다. 야쿠는 여러 뜻이 있지요. 손님에게 나는 종이라는 의미도 있고, 손님을 우리 집 스시맛의 노예로 만든다는 뜻도 있습니다.” 가장 먼저 에피타이저로 나오는 것은 세조각의 도미회다. “도미는 잡아서 24시간 숙성시켜야 제 맛이 나지요. 이 소스는 우니(성게알)를 베이스로 여러 가지 맛을 섞은 우리 집의 창작품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맛을 개발한다. 맛의 심판자는 항상 그의 부인 다카코(孝子)다. 무라카미 씨가 완벽한 새로운 맛이라 무릎을 쳐도 다카코가 머리를 흔들면 그 맛은 사장되고 만다. 뭣 하나 소홀히 여기지 않는 ‘장인정신’ 도미회를 먹고 나면 스노모노와 유리네만주, 고마토푸합바. 고타테 자와무시가 차례로 이어지고 나서 본격적으로 스시가 나오기 시작한다. 민어와 농어, 갑오징어, 전어, 참치, 사와라, 새우스시가 이어진다. 참치를 뺀 생선은 모두가 이곳에서 잡은 고기다. 무라카미 씨는 겸손하게도 “야쿠스시가 맛집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나의 솜씨가 아니라 이 지방 바다, 야스시로 가이(海), 시마바라 가이(海) 덕택”이라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 지방 생선이 맛있는 이유는 이곳 바다가 청정해역인 데다 거친 바다와 잔잔한 바다가 있어 어종에 따라 파도에 시달린 고기와 순탄하게 자란 고기가 각각 제 맛을 내기 때문이라고. 이 집의 스시 상엔 젓가락도 없고, 찍어먹는 간장 소스도 없다. 손가락의 체온이 스시에 전해지도록 손으로 집어먹어야, 그리고 소스의 강한 맛이 스시 본연의 맛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무라카미 씨의 철저한 고집이다. 야쿠스시는 대를 이어온 집이 아니다. 17세에 스시집에 취직해 22세에 스승의 옥호를 물려 받아 이 집에서 33년을 해오고 있다. 작지만 당대에 일본 유수의 초밥집으로 우뚝 서기까지는 무라카미 씨의 결벽증에 가까운 맛의 집착이 있었다. 그는 시장에서 생선을 사지 않고 직접 어부한테서 구입한다. 그물로 잡은 것보다는 낚시로 잡은 생선을 그는 좋아한다. 야쿠스시의 술은 ‘야쿠사케’다. 이 지방 유명한 양조장에 의뢰해 특별히 빚은 술이다. 그가 쓰는 칼은 교토에서 사온 ‘야나기 보초’다. 칼이 생선 맛을 크게 좌우한다고 그는 믿는다. 그가 쓰는 쌀은 ‘야마쿠사 고시키리’고 시즈오카산 고추냉이를 상어껍데기 강판에 직접 갈아서 쓴다. 무라카미 씨는 진정한 장인이다. 무라카미 씨가 빚어내는 맛이 궁금하다면 일본여행을 준비하자. 진정한 해외 맛기행이 될 것이다.
마음아 이별하고 건강하게 살자 마음 에너지 100%.. 2007-03-23
당신이 삶의 단계에 대해 고민 중이라면 ‘인생을 한곳에 묶어두고 거기 친숙해진 순간 무력감이 우리를 덮쳐온다. 언제나 떠나고 방랑할 준비가 된 사람만이 습관이라는 마비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를 향한 생의 부름은 결코 그침이 없으리라. 그렇다면 마음아 이별하고 건강하게 살자.’(헤르만 헤세의 ‘삶의 단계’ 중에서) 미야자키에 꼭 가보고 싶었다. 파라디 파란 바다를 보면서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소문만으로도 떠날 이유가 충분했다. 이유를 하나 더 붙이자면 습관이라는 마비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고, 막연히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의 단계로 진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으리라. 결과는 100% 에너지 충전! 미야자키 하면 바다를 보며 골프를 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골프여행으로 이름조차 ‘전설의 온천’인 아오시마 온천 덕분에 온천여행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도시 구석구석 버스를 타고 다니며 소일하거나 나치난 해안을 버스를 타고 달려보는 재미를 알려준 정보는 없었던 것 같다. 미야자키는 축복받은 기후와 풍부한 자연을 선물 받은 땅이다. 휴가탄에서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여유로운 기분에 휩싸인다. 도깨비 빨래판에서 호리키리 언덕으로 미야자키 시에서 버스로 20여 분 달려가면 아오시마의 명물을 만날 수 있다. 도깨비의 빨래판이라 불리는 기암. 빨래판처럼 생긴 이유를 골똘히 생각해보면 해류일 것이라 짐작할 수 있지만 이름처럼 도깨비가 어느날 갑자기 방망이를 두드려 만들었다고 믿는 편이 더 재미있을 것. 태평양 특유의 파랑색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야마사치히코와 우미사치히코의 전설이 전해지는 주위 1.5km의 작은 섬 주위를 ‘도깨비 빨래판’이라 불리는 기암이 주위를 감싸고 있다. 이곳은 200여 종의 아열대 식물이 자라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식물원 안쪽에 자리잡은 신사 안을 산책하다가 되돌아오면 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조금 더 내려가면 웅장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나치난 최고의 전망대 호리키리 언덕이 나온다. 이 곳 사람들이 가장 가보아야 할 곳으로 꼽는 명물 중의 명물이다. 피닉스 가로수와 문주란 등 계절마다 풍부한 꽃 언덕에서 해안선을 조망하는 맛은 견줄 수 없을 것. 일명 전설의 온천인 아오시마 온천은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최적의 입지조건을 자랑한다. 이외에도 일본의 전통양식을 이용한 건축법으로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쇼센쿠 온천, 피부미용에 좋다는 오요도 강변온천인 타마유라노유 온천 중 어디를 골라도 무방할 것. 노천탕에서 누우면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이는데 잠시 현실이 아닌 듯한 착각에 빠진다. 나치난 시의 오비성곽 마을 오비성곽 마을은 제2의 교토라는 별명을 가진 도시다. 교토에 한번쯤 가 본 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여행지다. 300여 년 전의 도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니 놀랍기 그지없는데 골목길에 난 수로에 비단붕어들이 산다. 대체로 회갈색 분위기의 건축물인 탓에 노랗고 빨강 색이 주는 대비는 강렬하다. 오래된 석단과 흔적, 하얀색 벽의 거주지 등이 남아 있어 운치를 더한다. 이토 씨가 280년에 걸쳐 거주한 오비성에서는 지금도 다이헤이 춤이라는 전통 공연이 열린다. 오비성하에서 에도겐로쿠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예능, 사무라이와 하인이 추는 춤으로 무사의 기품과 우아함, 전통을 드러내는 춤이다. 오비성 앞에 서 마주친 소녀가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네 온다. 성곽은 옛모습이고 아이들의 웃음은 늘 새로운 오비는 퍽 매력적인 곳이다. 클럽메드, 동남아빌리지 15% 할인 점프(JUMP) 이벤트 클럽메드코리아는 3, 4월 동남아시아 빌리지 고객에게 15%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점프(Jump) 이벤트를 마련했다. 매주 금요일 발리와 체러팅빌리지로 떠나는 고객과 수요일과 금요일 푸켓과 빈탄으로 출발하는 고객에게 해당되는데 4박 5일 성인 1인 기준으로 체러팅 빌리지 1,079,000원, 발리빌리지 1,147,000원, 푸켓빌리지 1,157,000원이며, 빈탄빌리지는 4박 5일일정이 977,000원, 5박 6일은 1,281,000원이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인 키즈빌리지를 새롭게 개장한 태국 푸켓빌리지와, 2세 미만의 아기부터 10대 청소년까지 자녀들을 위한 특별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는 말레이시아 체러팅빌리지는 부모와 자녀 모두 즐길 수 있다. 골프를 좋아하는 고객이라면 게리플레이어와 잭니콜라우스가 설계한 최상의 골프코스를 즐길 수 있는 빈탄빌리지를 추천한다. 휴식을 위해서라면 발리 빌리지가 제격. 문의: 클럽메드(www.clubmed.co.kr) 서울본사: 02)3452-0123 부산지점: 051)636-0123 travel tip 미야자키 축제 미야자키 플라워훼스타 3월 하순에서 5월 중순까지 열리는 봄축제. 꽃의 대제전인만큼 다양한 종류의 꽃을 만날 수 있다. 적 청의 두 동채가 맞부딪히며 상대편을 밀어붙이는 싸움인 시도와라 동채싸움 놀이도 이색적이다. 먹거리 고구마, 쌀, 보리, 메밀 등 다양한 원료를 사용한 미야자키의 소주가 유명하다. 좋은 물 때문인지 그 명성이 자자하다. 찹쌀떡처럼 부드러운 전통과자인 가카오카 나가만주도 별미다. 웰컴버스카드 미야자키 공항에 도착해 여권과 체류일정을 말하면 미야자키시 관광협회에서 배부하는 웰컴버스카드를 준다. 자유여행객이라면 꼭 챙겨두자. 자료제공: 일본 미야자키시 관광협회 ☎0985-20-8658 www.miyazaki-city.tourism.or.jp
신(神)의 작품, 피너클스 까마득한 오랜 시간이 빼.. 2007-03-23
호주대륙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적, 한 척의 네덜란드 범선이 인도양을 떠돌아 헤매다 호주 서해안을 따라 미끄러지고 있었다. 마스트 위의 선원이 갑자기 망원경을 집어 들고 사막을 보더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노란 사막 위에 수많은 돌기둥들이 박혀 있는 걸 보고 화려했던 고대도시의 유적이라 생각했던 것.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호주의 3대 상징 중 하나, ‘피너클스’ 그건 인간이 만든 유적이 아니라 신(神)이 만든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인 ‘피너클스’(Pinnacles)다. 호주의 상징이라 하면 첫째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캥거루고, 둘째는 아마도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가 차지할 테고, 셋째는 피너클스가 아닐까. 조물주의 걸작을 보러 가는 길은 호주의 진면목 ‘아웃백’(Outback)을 가로지른다. 아웃백이란 세계적 스테이크 외식체인 브랜드로 우리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지만 사실은 거칠고 드넓고 황량한 호주 내륙을 일컫는, 호주에서만 사용되는 보통명사다. 서호주의 주도(州都), 퍼스(Perth)에서 피너클스까지는 240km다. 우리나라 지도를 펴놓고 이 거리를 가늠해보면 동서로는 내륙을 관통해서 양쪽이 바다에 닿고 남북으로는 휴전선에서 남쪽 바다까지 거의 반 길이가 되지만 호주의 한 주인 서호주 지도를 펴놓고 퍼스에서 북쪽으로 240km는 손가락 한마디 길이가 채 안 된다. 이 곳으로 가려면 4WD 자동차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호주의 서해안 1번 고속도로는 인도양의 굴곡진 해안선을 의식하지 않고 아웃백을 일직선으로 가른다. 철 성분이 많아 붉게 물든 땅 위에 북반구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상한 관목들이 드문드문 군락을 이루는 광활한 땅으로 1번 고속도로는 끝없이 뻗어있다. 10분, 20분을 달려봐야 마주 오는 차 한 대 못 보다가도 고속도로 가의 외딴 주유소에 가면 차도 사람도 늘어지게 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00리나 가야 나타나는 주유소는 사막의 오아시스다. 20~30톤이나 되는 거대한 트럭들이 건축자재를 싣고, 식료품을 싣고, 또는 수십 대의 자동차를 싣고 3일씩 걸려 북쪽 킴벌리 지역까지 가는 도중에 주유소에서 목을 축이고 밥을 먹고 잠을 잔다. 피너클스는 남붕(Nambung)국립공원 안에 있다. 나지막한 관목들이 땅을 뒤덮은 공원지역을 흙먼지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4WD 자동차가 달리노라면 야생동물 왈라비와 에뮤들이 관목 위로 목을 길게 빼고 사람들을 구경한다. 샛노란 땅에 솟아오른 작은 바위기둥이 여기저기 보이다가 점점 바위기둥의 밀도는 높아지고 바위기둥의 키도 높아진다. 4~5m의 바위기둥이 우후죽순처럼 빼곡히 솟아오른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수천 수만 개의 피너클스는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힘차게 솟아오른 남근상, 톱니처럼 뾰족한 것, 칼날을 닮은 기둥모양이 있는가 하면 비석을 닮은 피너클스도 있다. 그 옛날 신은 이들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천년 만년 세월이 흐르며 바다 속에서 수많은 조개는 태어나서 수명을 다하고, 조개껍질은 쌓이고 부서지며 조개껍질 모래가 된다. 조개껍질 모래는 파도에 떠밀려 해안으로 밀려오고, 바람은 모래를 내륙으로 날려 보낸다. 조개껍질 모래는 쌓이고 쌓여 석회석층을 형성, 언덕을 만든다. 겨울에 비가 내려 언덕 아래 조개껍질 모래는 서로 엉겨 달라붙어 땅이 되며 그 위에 풀과 나무가 터를 잡는다. 동시에 산성토양층과 식물의 부식질은 하나의 석영지층을 만든다. 오랜 세월이 켜켜이 쌓여 빚어진 신의 작품 이 산성토양층은 빗물에 의해 수없는 여과과정을 거치며 아래쪽 약한 석회석은 녹아서 깎여 나간다. 깎여나간 지하의 석회석 자리는 식물의 뿌리와 모래가 차며 그 아래쪽 약한 석회석층은 점점 더 빗물에 녹아내린다. 식물이 죽고 바람이 모래를 날려버리자, 빗물에 녹지 않은 단단한 석회석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의 피너클스 기둥의 꼭대기는 그 옛날 조개껍질 모래 언덕 땅바닥이었고, 지금의 모래바닥은 그 당시는 지하였다는 얘기다. 지금 서있는 피너클스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빗물에 녹아나고 모래바람에 깎여나가기 때문이다. 피너클스에 가면 사람들은 땅기운, 즉 ‘지기’(地氣)를 받는다고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곳에서 명상에 빠지기도 하고, 어떤 무리들은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한다. 피너클스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퍼스까지 반 이상 왔다고 생각되는 고속도로 지점에서 4WD 자동차는 오른쪽 직각으로 꺾어져 지방 도로를 달린다.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과 올리브밭을 빠져나가며 찻길은 꾸불꾸불 요동을 친다. 얼마나 달렸나. 마침내 넘실대는 인도양이 차창 밖으로 힐끗힐끗 보이기 시작하면 ‘란셀린’(Lancelin)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란셀린은 바닷가에 자리잡은 독특한 소읍이다. 골프코스, 테니스 코트가 있는가 하면 낚시, 수영, 스노클링, 윈드서핑, 파도타기, 패러서핑 등 땅과 물에서 인간이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곤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다. 인도양 파도에 밀려온 곱고 새하얀 조개모래가 그림 같은 비치를 만들고 그 뒤로는 모래언덕, ‘샌드듄’(Sand dunes)을 만들어 놓았다. 샌드듄이라 해서 굴곡이 있는 모래둔덕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이것은 모래산, 아니 바닷가로 끝없이 이어진 모래산맥이다. 이 거대한 샌드듄은 온갖 놀이를 할 수 있어 어른들에게 아련한 어릴 적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스노 보딩과 흡사한 샌드 보딩이 어린이가 된 어른을 싣고 모래산을 미끄러져 내려오고, 산악 모터사이클이 모래먼지 꼬리를 하늘높이 치켜들고 핑핑 날아다닌다. 4WD 자동차가 가파른 모래산을 올라갔다가 꼬꾸라질 듯이 내려가고 대형 4WD 코치도 모래산을 넘나들 땐 승객들이 아우성을 토해낸다.
울창한 숲에 쌓인 에덴의 동쪽 Sintra 2007-03-12
만약 당신에게 포르투갈에서 꼭 하루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디로 가겠는가? 포르투갈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는 사람이면 무척 고민될 것이다. 대부분 수도 리스본을 돌아보려고 할지도 모른다. 나쁜 선택은 아니다. 수도에는 그 나라의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으니 어찌 보면 자연스런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번잡한 것이 싫고, 조용한 전원의 풍경을 원한다면 신트라로 가야 한다. 신트라는 마을 전체가 나무와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는 중세풍 전원마을이다. 금방이라도 고운 옷을 차려 입은 공주가 튀어나올 것 같은 그림 같은 마을로, 유유자적 거닐면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 딱 좋다. 누구나 스트레스 쌓이는 환경에서 벗어나 아무 생각 없이 며칠 푹 쉬고 싶은 적이 있지 않은가. 신트라가 마음 속으로 그리던 그런 장소다. 그렇다고 볼거리가 없는 도시는 절대 아니다. 위화감 들지 않는 소박한 왕궁 신트라는 포르투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밝고 화사한 궁전과 우아한 저택들이 우거진 골짜기 곳곳에 숨겨져 있는 도시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도 신트라의 매력에 푹 빠져 장편 서사시 ‘차일드 해롤드의 편력’(Childe Harold’s Pilgrimage)에서 이곳을 ‘영예로운 에덴’으로 묘사했다. 굳이 바이런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신트라에 도착하는 순간 많은 사람이 이곳에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역에서 나가면 바로 앞에 보이는 파스텔톤 건물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파란 하늘의 채도를 더욱 높여 준다. 부드러운 색조의 건물들은 맑은 날 더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시내로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맑은 공기와 사방에 펼쳐진 공원, 이국적인 식물 등이 긴장감을 풀어 주어 마음이 편안해진다. 역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울창한 숲 사이로 흰색 왕궁이 보인다. 두 개의 원추형 굴뚝이 인상적인 이 왕궁은 신트라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볼거리. 14세기부터 포르투갈의 마지막 왕 마누엘 2세가 20세기 초 혁명으로 쫓겨날 때까지 여름궁전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1755년 리스본과 주변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에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내부는 소박하면서도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데, 특히 ‘백조의 방’ 천장에 그려진 백조 그림이 멋지다. 이 왕궁은 화려하지 않아서 정감 있게 다가온다. 대부분의 궁전이 지나친 화려함으로 보는 이를 압도하지만 신트라의 왕궁은 소박함과 화려함이 조화를 이루어 편안한 마음으로 관람할 수 있다. 무어인의 성터에서 감상하는 멋진 풍경 왕궁 주변에는 돌이 촘촘히 깔린 좁은 골목과 언덕에 자리한 아기자기한 선물가게, 레스토랑 등 볼거리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유명한 포르투갈 타일과 액세서리,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은 주변풍경과 어우러져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선물가게를 기웃거리며 골목을 걷다 보면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골목 안의 바나 레스토랑에 들어가 커피 한 잔 하며 쉬다 보면 저절로 소소한 행복감에 젖어든다. 만약 점심 때라면 왕궁 주변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다음 코스로 이동하자. 왕궁과 함께 신트라의 대표적인 볼거리인 무어인의 성터와 페나성 인근에는 식사를 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두 곳을 돌아보는 데 몇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자칫하면 식사를 거르게 된다. 왕궁 앞에서 버스를 타고 10분 남짓 올라가면 무어인의 성터가 나온다. 8세기에 무어인들이 지었다가 1147년 기독교도의 공격으로 함락되어 폐허로 남았지만 아주 멋진 전망을 제공한다. 성 입구에서 산길을 따라 10분 남짓 올라가면 능선을 따라 이어진, 돌로 된 성터가 나온다. 가파르지 않은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시내와 주변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숲으로 덮인 시가지와 왕궁 그리고 대서양이 아득히 보이는 초현실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멋진 풍경을 조망하고 있으면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다. 신트라 여행의 하이라이트, 페나 궁전 무어인의 성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면 몇 분 안되어 신트라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페나 궁전에 도착한다. 1838년 페르난도 2세는 가파른 산봉우리에 있던 수도원 자리를 보고 첫눈에 반해 왕실의 여름 별궁을 세웠다고 한다. 해발 500m 산꼭대기에 있는 페나 궁전은 노랑과 파랑, 주황색 등 파스텔톤 색조가 인상적이다. 19세기 포르투갈의 낭만주의 건축물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데 무어, 고딕, 마누엘,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되어 매우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이 궁전은 이성보다는 감성을 추구하는 낭만주의적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다양한 스타일의 초소와 전망대, 그리고 스페인과 무어양식의 타일 장식을 깐 불규칙적인 테라스는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페나 궁전만의 독특함을 보여준다. 과거의 건축양식을 따른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모습을 가미해 모빌로 만든 장난감 집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외관 못지않게 내부도 꽤 호화롭게 꾸며져 있다. 내부는 가구나 생활집기가 그대로 남아 있어 왕정이 폐지된 20세기 초반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방마다 값진 가구와 그릇, 호화로운 침실이 진열되어 있고, 샹들리에가 달린 무도회장도 있다. 마을 아래 있는 왕궁이 소박하면서 건실한 분위기라면 페나 궁전은 화려하고 여성스럽다. 여왕이 사용하던 침실과 가구가 진열되어 있는 ‘여왕의 방’, 왕의 집무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인상적인 왕실 예배당, 아랍인의 방 등이 볼거리다. 궁전 뒤편의 테라스에서는 무어인의 성채와 신트라 시가지, 대서양이 한눈에 보인다. 로카곶, 유럽 대륙의 최남단 땅끝마을 신트라까지 왔으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로카곶이다. CF로 우리에게도 낯익은 로카곶은 신트라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땅끝마을을 가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포르투갈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로카곶에 도착하면 끝없이 펼쳐진 대서양과 절벽에 부딪쳐 부서지는 하얀 파도가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절벽 앞에는 ‘이곳에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포르투갈의 국민시인 까몽이스의 시가 적힌 돌탑이 있다. 십자가가 놓인 이 돌탑은 로카곶의 상징과도 같아 여행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곳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다. 로카곶은 절벽과 돌탑 그리고 빨간 등대가 있을 뿐 특별한 볼거리는 없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웅장한 대자연.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산책로를 걷다 보면 땅끝의 기운이 온몸에 퍼지는 듯하다. 지평선 너머로 붉게 떨어지는 일몰과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를 뒤로 하고 다시 버스에 오른다. 이제 내 앞은 유럽의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다. 여행정보 교통 우리나라에서 신트라까지 바로 가는 비행기는 없다. 유럽계 항공사를 이용해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가서 기차를 타고 신트라로 들어간다. 리스본의 Roma-Areeiro역에서 기차가 1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신트라까지 편도요금은 1.65유로(약 2천 원), 40분 정도 소요된다. 시내교통 신트라는 크지 않아 시내를 걸어서 구경할 수 있다. 산중턱에 있는 페나 궁전과 무어인의 성까지는 40분 정도 걸린다. 신트라를 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SCOTT URB사에서 운행하는 434번 버스를 이용하는 것. 신트라 역에서 왕궁-무어인의 성터-페나 궁전을 20분 간격으로 순회한다. 관광안내소 기차역에 간이 안내소가 있고 메인 안내소는 왕궁 근처에 있다. 지도와 호텔예약, 주변 도시로 연결되는 교통정보를 안내받을 수 있다. 신트라에서 로카곶과 카스카이스를 돌아볼 예정이라면 꼭 버스 시간표를 얻어 둔다. 호텔 대부분의 여행자가 리스본에서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기 때문에 신트라에서 머무는 경우는 드물다. 욕실이 깨끗한 1인실이 35유로(약 4만3천 원), 2인실은 50유로(약 6만2천 원) 정도. 관광안내소에 문의하면 원하는 가격대의 호텔을 알려준다. 물가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물가가 가장 싼 나라 중 하나다. 옆 나라인 스페인이나 프랑스를 여행하다 포르투갈로 가면 단번에 물가가 저렴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리스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도시에서 깨끗한 시설을 갖춘 펜션을 25∼35유로(약 3만1천∼4만3천 원, 1인실)에 빌릴 수 있다. 식사는 최고급 레스토랑 아니면 10유로(약 1만2천 원) 정도로 해결할 수 있다.
이곳이 이토록 근사한 곳일 줄이야 이곳이 이토록 근.. 2007-02-16
2007 말레이시아 방문의 해 올해는 말레이시아에게 특별한 해다. 독립 50주년 기념행사인 메르데카 데이(Merdeka Day), 말레이시아의 문화적 색채를 엿볼 수 있는 ‘컬러 오브 말레이시아’, 세계적인 F1 그랑프리, 젊은 여성들에게 특히 매혹적인 메가 세일 카니발(Mega Sale Carnival), 대표적인 전통 오픈 하우스 축제인 하리 라야 아이딜피트리(Hari Raya Aidilfitri) 등 다양한 축제들이 올 한 해를 수놓을 예정이다. 말레이시아의 축제가 유난히 다양하고 화려한 것은 유교,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족 문화와 종교적 색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민족과 종교에 따라 새해의 시기나 축하 방식이 다르다. 하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맞이하는 마음이야 다르지 않다. 특히 오픈 하우스 축제는 초대를 받지 않더라도 방문을 할 수 있으며, 서로 음식을 나누고 한 해의 복을 빌어준다. ‘컬러 오브 말레이시아’(Colour of Malaysia) 올해로 9번째를 맞이한 ‘컬러 오브 말레이시아’(Colour of Malaysia:* Colour: 20세기 초까지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영향을 받아 영국 철자법을 따른다)축제는 5월 26일에 말레이시아 전역에서 펼쳐진다. 다인종 다민족 국가라는 말레이시아의 전통을 조화롭게 표현하는 환상적인 축제다. ‘치트라와르나 말레이시아’(Citrawarna Malaysia)라고도 부르는 이 축제는 말레이 문화를 중심으로 중국계, 인도계, 사바와 사라왁 주의 원주민을 포함한 다채로운 인종과 문화를 축제로 승화시킨 국가적인 행사다. 이 축제는 수도 콸라룸푸르에서 말레이시아 국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거대한 개막 행사로 막을 올린다. 말레이시아의 14개 주를 대표해 모여든 사람들은 3~4시간에 걸쳐 그들의 문화를 뽐내게 된다. 개막 행사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는 축제를 다채롭게 꾸며주는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왕의 대관 의식과 왕의 결혼식을 다룬 음악 연극인 방사완(Bangsawan), 남녀가 함께 전통 시 ‘판툰’(Pantun)을 읊으며 노래하는 말라카의 돈당 사양(Dondang Sayang) 등이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가정집을 개방하는 ‘오픈 하우스’ 행사 등 일반 관광객들도 참여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이벤트들도 준비되어 있다. 무술 공연, 전통 시 낭독, 전통 악기 공연, 음식과 음악 축제, 전시회 등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색채의 향연인 ‘컬러 오브 말레이시아’는 이미 말레이시아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문화유산의 결정체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어 다른 어느 때보다 말레이시아를 방문하는 모든 외국인들이 하나가 되어 즐길 수 있는 축제다. 그 밖의 볼거리 말라카 전통결혼식 체험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 된 도시 말라카에서는 독특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도시인 말라카는 14세기 이슬람 왕국을 건설한 이래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의 강국들이 쟁탈전을 벌였던 도시로서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럽풍 건축물과 유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유럽과 말레이시아 문화가 섞인 말라카에 머무는 연인들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은 색다른 결혼식을 체험해 보는 것. 연인들은 인도, 중국, 말레이시아 전통의 결혼식 행사를 보고, 또 직접 체험해 볼 수도 있다. 하객들은 신혼부부에게 꽃을 뿌리며 사랑의 결실을 축복해 주고 연주자들이 전통 악기를 연주한다. 또 전통음식을 나눠먹으며 신혼부부의 영원한 사랑에 축복을 기원해 준다. 알아두면 좋을 에티켓 말레이시아의 국교인 이슬람교에서는 술은 물론 담배도 금지한다. 독실한 이슬람 교도들은 이 계율을 충실히 지키며, 이슬람 색채가 강한 말레이 반도의 동해안에 위치한 주에서는 술이나 담배를 팔지 않는 레스토랑이나 호텔도 많다. 반면 중국계 주민이 주류를 이루는 거리나 콸라룸푸르, 코타 키나발루를 포함한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레스토랑, 상점 등에서 술과 담배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왼손을 부정하다고 여긴다. 식사 때는 물론 물건을 건네거나 받을 때 반드시 오른손을 사용한다. 반면 머리는 신성한 부분으로 여기므로 함부로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만지면 안 된다. 또한 사람을 가리킬 때는 오른손을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자료제공: 말레이시아관광청 ☎ (02)779-4422 www.mtpb.co.kr
이벤트의 천국, 서호주 퍼스 먹거리 축제에서 비행기.. 2007-02-16
‘세계 요트 선수권, 현대호프만컵 세계 테니스대회, BMW 퍼스컵 경마… ….’ 서호주(Western Australia)의 이벤트 달력은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신난다. 1월에만 8개의 이벤트가 이렇게 이어졌다. 이벤트라는 게 하루에 끝나는 게 아니니 만큼 서호주에서는 일 년 내내 이벤트가 끊이지 않는 셈이다. 주정부가 주도하는 수준 높은 이벤트들 별의별 이벤트가 다 있다. 먹거리 페스티벌, 음악 콘서트, 포도주 축제, 보름달맞이 축제, 불꽃놀이 축제 등이 있는가 하면 세계적인 스포츠 경기도 끝없이 이어지고 가을이 무르익는 4월부터는 자동차 경주가 시작된다. 얄룹에서 펼쳐지는 클래식카 쇼를 시작으로 5월 중순엔 V8 수퍼카 챔피언십이 시리즈의 하나로 퍼스를 뒤집어 놓는다. 퍼스엔 V8 수퍼카 레이스를 위한 경주로를 만들어 놓았다. 바르바갈로 경주로를 따라 폭발하는 V8 엔진의 파열음은 관중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이어서 호주대륙을 횡단하는 큇 포레스트 랠리(Quit Forest Rally)가 퍼스에서 출발하고 6월로 접어들면 호주와 세계 각국에서 온 일급 라이더들의 한판승부인 만지멉(Mangimup) 1,500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9월이 되면 노탐 모터사이클 페스티벌이, 10월엔 FIA 월드랠리챔피언십(WRC)인 호주 랠리가 퍼스와 그 주위를 자동차 엔진의 굉음으로 덮어버린다. 이런 이벤트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우리나라에서 이런 이벤트는 대개 이벤트 기획사, 스포츠 마케팅 회사 등 영세한 개인 기획사들이 철저한 상업적 손익계산 아래 주관하거나 관련단체, 예를 들어 골프대회면 대한골프협회가 주관하는 게 일반적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갖가지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거니와 이벤트의 종류와 질이 수준 이하가 되기 일쑤다. 하지만 서호주는 다르다. 서호주 정부의 조직으로서 서호주 관광청의 한 부서인 서호주 이벤트국(WA Events Corp)이 있다. 거의 대부분의 이벤트는 바로 이 곳의 손을 거쳐 진행된다. 개인 기획사가 손댈 수 없는 큼직큼직한 이벤트들이 쉽게 이루어지고 주정부가 주관하고 있어 모든 문제나 장소, 진행, 교통 등이 원활하게 해결된다. 서호주가 이벤트를 보는 눈은 우리와 다르다. 메이저 이벤트는 서호주의 큰 사업이자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기회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이벤트는 지역의 상업을 활성화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이벤트를 통한 상품의 브랜드를 각인시켜 주며, 상업적 토대를 정착시키고 확산한다. 이벤트는 한 번의 흥행몰이로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아닌, 서호주 주민들과의 파트너십이라 생각한다. 그 외에도 이벤트국이 내세우는 각종 축제들의 효과는 줄줄이 이어진다. 경제적 효과와 함께 고용을 창출하고, 서호주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과 더불어 관광객 유치에 기여하며, 서호주 주민들의 건강증진과 웰빙에 일조한다. 또한 독특한 서호주의 환경을 자축하고, 공동체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며, 사회간접자본 확충 및 문화적 다양성 개발을 비롯하여 각종 개발과 변화에 이르기까지....... 지난해 11월 하순에 퍼스에서는 메이저 이벤트인 ‘레드불 에어 레이스’(Red Bull Air Race)가 일주일간 개최되었다. 우리나라엔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레드불은 세계적인 음료 브랜드이자 제품명으로, ‘게토레이’와 흡사한 스포츠 에너지 음료다. “이 세상에 자동차 레이스는 수없이 많은데 비행기 레이스는 왜 없을까?” 레드불 에어 레이스는 헝가리 파일럿 피터 베센예이의 의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001년, 이러한 의문을 가진 피터 베센예이는 곧바로 레드불을 찾아가서 그의 아이디어를 전했다. 이에 레드불이 화답, 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마침내 2003년 여름 오스트리아에서 레드불 에어 레이스가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하늘의 F1 레이스, ‘레드불 에어 레이스’ 2년 여의 준비기간 동안 경기 진행방법을 개발하고, 시험도 해봤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모자라는 게 너무 많았다. 그러나 수십만 명의 관중이 모여들어 경비행기 레이스를 지켜봤다는 것에 힘입어 레드불은 박차를 가했다. 그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다시 에어 레이스가 열렸고, 2004년에는 영국 켐블과 헝가리 부다페스트, 미국 리노에서 세 번의 레이스가 열렸다. 그리고 2005년, 레드불 에어 레이스는 월드시리즈로 진용을 갖추게 된다. 일곱 번의 박력 넘치는 레이스로 종합점수를 매겨 미국의 마이크 맹골드가 초대 레드불 에어 레이스 월드시리즈 챔피언의 왕관을 썼다. 2006년에 이르러 레드불 에어 레이스 월드시리즈는 마침내 세계 유수의 자동차 경주 월드시리즈처럼 자리를 잡았다. 특히 2006년에는 9회의 레이스가 열려 그 중 마지막 대회를 서호주 퍼스에서 치르게 되었다. 3월에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를 시작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독일 베를린, 러시아 페테르부르그, 터키 이스탄불, 헝가리 부다페스트, 영국 롱글릿,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거치며 8회의 레이스에서 무려 476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아 레드불 주최측은 입이 귀에 걸렸다. 레드불 공중 레이스에 출전하는 11명의 파일럿은 상상을 초월하는 혹독한 훈련을 거친 공중 곡예가들이다. 그들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위험천만한 레이스를 초스피드로 날며 자전과 공전을 자유자재로 해야 한다. 20m 높이의 관문을 시속 400km로 날고 수면 15m 높이에서의 초저공 비행 땐 100분의 1초의 오차로 지옥이 기다린다. 극한의 초스피드로 날면 파일럿은 자기 몸무게 10배의 중력(10G)을 견뎌내야 한다. 레드불 에어 레이스 관계자들은 날아다니는 모터스포츠가 F1을 능가하리라 전망한다. F1보다 더 박진감 넘치는 경기도 경기려니와 F1이 고정된 관중에게 한정된 시야만 제공하는데 반해 에어 레이스는 100만 명이 전 경기를 한자리에 앉아 즐길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레이스는 단순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나 복잡하다. 파일럿들은 14개의 관문을 규정대로 통과하며 6.75km를 활공한다. 각 관문을 통과할 땐 어느 곳은 회전으로 어느 곳은 자전하며 수직으로 오르고 떨어지듯이 급강하해야 한다. 넓이가 14m인 푸른색 관문은 수평으로, 넓이가 10m인 붉은색 관문은 모잽이(Knife Edge)로 날아야 하고 페널티는 엄격하기 그지없다. 관문 위를 통과하거나 관문을 규정된 비행자세로 통과하지 않았거나 회전을 틀리게 하면 3벌점, 관문을 건드리면 10벌점, 수면 위로 너무 낮게 비행하거나 수면을 스치거나 비행 통제선 밖으로 나가거나 구름 속으로 들어가면 실격이다. 1위부터 6위까지 포인트를 얻는데 1위는 6점, 6위는 1점이다. 서호주 퍼스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제9전 마지막 날, 레드불 팀 소속의 미국인 파일럿 커비 챔블리스가 34포인트, 같은 팀 소속인 헝가리 파일럿 피터 베센예이가 29포인트로 선두를 다투고 있었다. 퍼스의 스완 강변에 앉은 40만 관중의 시선은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그러나 순위는 뒤집어지지 않았다. 결승 레이스에서 4포인트를 보탠 커비가 6포인트를 더한 피터를 최종 합계 3포인트 차로 누르고 2006년 새로운 하늘의 챔피언이 되었다. 한강에서 레드불 에어 레이스 월드시리즈가 개최될 날은 언제일까?
일본 온천, 올 겨울엔 꼭 가고 싶다 2007-02-16
이브스키의 모래찜질 온천 ‘모래사장에서 화상을 입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오.’ 해변 곳곳에 세워져 있는 팻말들이 다소 엉뚱하다. 무슨 열대 해변도 아니고 일본, 그것도 한겨울 해변이 아니던가. 일본 규슈 가고시마 최남단 이브스키 해변에서는 한겨울에도 바다를 바라보며 천연 모래온천을 즐기는 이색 찜질족을 만날 수 있다. 유카타 입고 연기가 펄펄 나는 모래에 누우면 삽으로 모래를 덮어 주는데 한증막에 들어간 것처럼 채 10분을 견디기가 힘들다. 얼굴에서 땀이 송송 나오고 속옷 대신 입은 유카타가 흥건히 젖을 정도다. 이브스키의 모래온천은 세계에서 유일한 곳이다. 인근 화산지대 마그마의 영향으로 모래 속 온도가 60~70도씨까지 올라간다. 이 위에 20~30kg 되는 모래가 더해지는데 현지인들은 일부러 무게를 늘려 강한 효능을 즐긴다. 자주 이용하면 검은 피가 붉은 피로 변할 정도로 혈액순환에 좋다. 이곳 해변 모래온천의 역사는 1860년대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앞바다인 긴코만 지역의 화산폭발로 해변의 수심은 깊고 안쪽 바다가 잔잔해져 온천물 숭숭 솟아나는 모래사장에서 편안하게 찜질욕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바닷물은 한겨울에도 미지근해 발을 담가도 아늑한 느낌이다. 공용온천인 쓰나무쇼 회관에서는 1천 엔(약 9천 원)을 내면 일반인들도 모래찜질을 이용할 수 있다. 이곳은 이미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슬슬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한일정상회담이 이브스키 지역에서 열렸고 영부인이 인근 백수관이라는 료칸에서 천연 모래찜질을 하기도 했다. 전통 료칸인 백수관은 노무현 대통령이 니큐관 7층에서 묵었는데 바다를 끼고 있는 정원의 규모나 시설이 예사롭지 않다. 이곳저곳에 노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고 자체 해변모래찜질 시설을 갖춰 폼 나게 하루 묵을 수 있다. 해변온천인 이브스키와 달리 가고시마 기리시마 온천은 산으로 둘러싸인 온천지대다. 가고시마의 대표적인 활화산인 사쿠라지마 같은 활화산이 23개. 그 활화산을 배경 삼아 계곡마다 능선마다 뽀얀 수증기들이 뒤덮는다. 구리가와, 마루오 온천 등이 대표적인 유황온천인데 특히 마루오 온천은 가족 노천탕을 갖춘 여러 료칸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 노천탕들은 우윳빛에 계란 썩는 냄새를 풍기는 유황온천들. 특히 피부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쿠라지마의 일몰을 감상하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미야자키의 해변 온천리조트들 가고시마에서 2시간 떨어진 미야자키는 사뭇 분위기가 색다르다. 세련된 분위기의 미야자키는 온천욕과 함께 전통적인 볼거리들이 많은 곳이다. 일본의 하와이로 불릴 정도로 따뜻한 기후를 자랑해 허니무너들에게 인기가 높으며 대부분의 온천 리조트는 니치난 해안가에 몰려 있다. 쉐라텐 그란데 호텔에서는 흑송림에서 삼림욕을 즐긴 뒤 온천을 할 수 있는데 온천수는 약알카리성 식염수로 드라마 ‘눈꽃’에서 김희애의 온천욕 장면이 촬영되기도 했다. 미야자키 관광호텔은 옥으로 만든 광화석이 담겨 있는 ‘다마유라노유’ 온천탕이 유명하다. 광화석인 물에 닿으면 원적외선을 뿜어내 몸을 따뜻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데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오시마 팜비치호텔 대욕장에서는 태평양이 어우러진 니치난 바다를 조망하며 낭만적인 휴식을 할 수 있다. 미야자키는 온천뿐 아니라 인근 볼거리가 넘쳐난다. 북쪽의 다카치호 지역에서는 농한기인 겨울에 일본 민간신화가 담긴 요카구라 예식을 구경할 수 있다. 시골 민가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데 신과 사람이 예식을 통해 만난다는 점에서 한국의 굿판과 엇비슷하다. 일본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우도 신궁과 이스터섬의 석상 모아이상을 재현한 선메세 난미치도 이곳 미야자키에서 만나게 된다. 시골 온천 시부에서의 온천순례 30여 개 스키장이 모여 있는 나가노현 동북쪽인 야마노우치 지역은 유타나카, 시부 등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산동네 온천’들이 숨어 있다. 온천은 13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시부 온천은 300년 된 온천순례의 전통을 간직한 곳이다. 시가고원 자락에서 흘러나오는 요코유가와 개천을 따라 작은 온천장들이 경사진 골목길로 이어지고, 골목은 유카타를 입고 돌바닥 골목길을 천연덕스럽게 거니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시부의 온천욕장은 9개의 공중탕과 료칸 안의 온천으로 구분된다. 9개의 공중탕을 차례로 돌아보는 온천순례는 관광객들이 일부러 체험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이색 프로그램이 됐는데 공중탕의 각각 다른 효능을 지닌 온천은 귀신을 막고, 건강, 불로장수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숙박객은 순욕을 기원하는 스템프용 손수건을 300엔(3천 원)에 구입하면 열쇠를 받고 대중탕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커다란 열쇠와 붉은 스탬프가 찍힌 손수건을 들고 온천탕을 돈 뒤 마지막에 골목 안 온천 불교사찰에 들러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온천순례는 마무리된다. 이런 전통을 지켜 오는 료칸이 시부에 여덟 개. 료칸들은 대부분 노천탕을 갖추고 있다. 시부 온천 인근에는 온천욕하는 원숭이를 만날 수 있는 지고쿠다니 온천도 자리잡았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숭이가 사람처럼 온천욕을 즐기는 곳으로 40여 년 전 겨울, 새끼 원숭이 한마리가 계곡으로 내려와 온천물에 몸을 담그는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이 전용 노천온천을 만든 게 원숭이 온천의 출발점이 됐다. 지고쿠다니는 험준한 계곡과 곳곳에서 피어 오르는 온천증기가 ‘지옥’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 ‘지옥계곡 야생원숭이공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 200여 마리의 원숭이들은 사계절 가리지 않고 미지근한 물에서 천연덕스럽게 온천욕을 즐기며 입구에는 온천욕 원숭이 왕초들의 계보가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원숭이 온천 밑에 사람들 온천이 있는 것도 재미있는 정경이다. 기타 온천지역 이밖에도 일본 온천의 대명사격인 오이타현에는 유후인, 벳부 등의 온천이 들어서 있다. 유후인은 음악제 등의 문화행사와 수려한 경관까지 지니고 있어 온천과 함께 여가를 즐기려는 젊은층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메이지 시대부터 문을 연 벳부 온천은 원천수 3천800여 개에 영업 중인 온천만도 160여 개나 되는 온천천국이다. 시가현 우레시노 온천은 피부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젊은 여성들이 즐겨 찾고 있으며 그 중 신센카쿠 료칸은 마실 수 있는 온천수와 대정원으로 유명하다. TRAVEL TIP 가고시마 일대의 온천을 즐기려면 인천에서 가고시마까지 주 3차례 운행되는 일본항공을 이용한다. 가고시마시에서 이브스키까지는 해변도로를 따라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규슈 레일패스를 이용하면 규슈 내의 JR를 5일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가고시마에서는 흙돼지의 두툼한 살을 졸여서 내놓는 구로부타가 맛이 독특하다. 이곳에서는 고구마 소주, 고구마 아이스크림도 별미다. 일본 3대 녹차(교토, 시즈오카, 지란) 중 하나인 지란녹차도 반드시 마셔볼 것. 미야자키의 슈센노모리는 20여 종의 소주를 만드는 주조장으로 명성이 높다. 일본인들은 미야자키 여행 때 반드시 이곳에서 소주를 구입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시부온천은 니가타 공항이나 고마쯔 공항을 경유해 일단 나가노시내까지 들어간다. 나가노에서 유다나카까지는 열차로 50분 소요. 유다나카가 속해 있는 야마노우치 지역에는 100여 개의 여관이 있으며 젊은 여행객들을 위해 객실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시설도 마련돼 있다. 일본국제관광진흥기구(02-732-7525, www.jnto.or.kr)에서 자세한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다.
황금과 모스크의 나라, 브루나이 2007-02-15
동남아시아 보르네오 섬 북서부 해안에 자리한 브루나이는 인구 35만여 명의 아주 작은 왕국이다. 브루나이의 정식 명칭은 ‘네가라 브루나이 다루살람’(Negara Brunei Darussalam)으로 ‘평화가 깃드는 살기 좋은 나라’라는 뜻이다. 그러나 브루나이는 ‘황금의 나라’로 더 알려져 있다. 제주도의 불과 3배 정도 면적의 작은 나라이지만,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국으로 전 국민이 풍요를 누리기 때문. 실제로 주요 건물에는 순금 장식이 되어 있고, ‘술탄’(Sultan; 이슬람 왕국의 정치적 지배자)으로 불리는 국왕은 세계 최고의 부호 중 한 명이다. 황금사원과 세계 최대의 수상마을 평화롭고 살기 좋은 나라 브루나이는 이슬람국가로 문화적 색채가 강하다. 특히 수도 ‘반다르 세리 베가완’에서도 손꼽히는 명소는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Omar Ali Saifuddin Mosque). 황금의 나라라는 명칭에 걸맞은 황금 모자이크, 이태리 대리석, 영국 스테인드글라스 등 최고급 자재를 사용해 1958년 건축된 전통 이슬람 사원으로, 인공호수로 둘러싸인 웅장한 건물과 황금 돔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특히 밤에 보는 모스크의 야경은 놓치지 말아야 할 정경. 수도의 어떤 건물도 이 모스크보다 높게 지을 수 없다. 브루나이의 전통문화를 보고 싶다면 세계 최대의 수상마을 캄퐁 아예르(Kampong Ayer)로 간다. 16세기 마젤란 원정대가 ‘동방의 베네치아’로 일컬을 만큼 고요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1906년 도심이 형성되기 이전까지 브루나이를 대표하는 거주 지역이었다. 지금도 전체 인구의 10%인 3만여 명이 초창기의 전통 수상가옥과 현대식 시설을 갖춘 신식 수상가옥 안에서 과거와 현재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생활방식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수상가옥의 외관은 화려하지 않지만 병원, 경찰서, 학교 등 편의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천혜의 자연과 풍부한 즐길거리 브루나이는 천혜의 자연을 지닌 생태관광의 보고이다. 그 중에서도 ‘아시아의 허파’로 알려진 울루 템부롱 자연공원(Ulu Temburong National Park)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열대우림을 만날 수 있는 곳. 보트와 네바퀴굴림차를 이용해 정글 사파리를 할 수 있는데, ‘테무아이’라고 불리는 전통양식의 모터보트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양쪽으로 원숭이와 거대한 도마뱀들이 수시로 출현한다. 약 1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정글 트레킹의 진수는 나무로 만들어진 1천226개의 계단과 70m 높이의 철탑. 5개의 철탑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다리를 걸어갈 땐 숲 위를 거니는 듯한 장관을 만나게 된다. 브루나이의 제루동 파크(Jerudong Park)는 로열 브루나이 골프클럽, 폴로클럽, 승마장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공원이다. 특히 디즈니랜드 스타일의 제루동파크 놀이공원은 다양한 종류의 놀이기구와 산책로, 그리고 밤에는 환상적인 분수쇼가 펼쳐져 왕족 여행의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또 폴로클럽(Polo Club)은 왕족을 위해 지은 연회용 건물인데 각 방의 장식은 왕족의 품위에 걸맞게 화려함의 극치로 장식되어 있다. 브루나이는 골프와 허니문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 특히 브루나이의 골프장은 수려한 풍광과 잘 정돈된 잔디로 유명하고, 7성급 호텔인 엠파이어호텔에서는 야간 골프도 가능하다. 그간 국왕 개인의 골프장으로 사용돼 오다가 일반인에게 개방된 로열 브루나이 골프클럽은 세계 100대 골프장에 꼽힐 만큼 훌륭한 시설을 자랑한다. 수상마을과 순박한 미소를 지닌 주민들, 왕실의 전통과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명소들… …. 이 모든 것이 모여 있는 브루나이는 휴양과 더불어 여유롭고 화려한 문화까지 즐길 수 있는 아시아의 숨겨진 보석이다. TRAVEL TIP 모스크는 목, 금요일의 기도 및 준비시간만 제외하면 들어갈 수 있다. 단, 모스크에 입장할 때는 신발을 벗어야 하고, 여자는 얼굴과 팔, 다리 등을 전부 가려야 한다. 관광객의 경우 여자는 검정색 이슬람 가운을 입어야 하고, 남자도 반바지일 때는 검정색 가운을 입어야 한다. 브루나이에서는 사람, 물건을 가리킬 때 절대 검지로 가리키면 안된다. 문의│로얄 홀리데이 02-3455-7140, www.tour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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