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신(神)의 작품, 피너클스 까마득한 오랜 시간이 빼.. 2007-03-23
호주대륙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적, 한 척의 네덜란드 범선이 인도양을 떠돌아 헤매다 호주 서해안을 따라 미끄러지고 있었다. 마스트 위의 선원이 갑자기 망원경을 집어 들고 사막을 보더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노란 사막 위에 수많은 돌기둥들이 박혀 있는 걸 보고 화려했던 고대도시의 유적이라 생각했던 것.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호주의 3대 상징 중 하나, ‘피너클스’ 그건 인간이 만든 유적이 아니라 신(神)이 만든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인 ‘피너클스’(Pinnacles)다. 호주의 상징이라 하면 첫째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캥거루고, 둘째는 아마도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가 차지할 테고, 셋째는 피너클스가 아닐까. 조물주의 걸작을 보러 가는 길은 호주의 진면목 ‘아웃백’(Outback)을 가로지른다. 아웃백이란 세계적 스테이크 외식체인 브랜드로 우리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지만 사실은 거칠고 드넓고 황량한 호주 내륙을 일컫는, 호주에서만 사용되는 보통명사다. 서호주의 주도(州都), 퍼스(Perth)에서 피너클스까지는 240km다. 우리나라 지도를 펴놓고 이 거리를 가늠해보면 동서로는 내륙을 관통해서 양쪽이 바다에 닿고 남북으로는 휴전선에서 남쪽 바다까지 거의 반 길이가 되지만 호주의 한 주인 서호주 지도를 펴놓고 퍼스에서 북쪽으로 240km는 손가락 한마디 길이가 채 안 된다. 이 곳으로 가려면 4WD 자동차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호주의 서해안 1번 고속도로는 인도양의 굴곡진 해안선을 의식하지 않고 아웃백을 일직선으로 가른다. 철 성분이 많아 붉게 물든 땅 위에 북반구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상한 관목들이 드문드문 군락을 이루는 광활한 땅으로 1번 고속도로는 끝없이 뻗어있다. 10분, 20분을 달려봐야 마주 오는 차 한 대 못 보다가도 고속도로 가의 외딴 주유소에 가면 차도 사람도 늘어지게 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00리나 가야 나타나는 주유소는 사막의 오아시스다. 20~30톤이나 되는 거대한 트럭들이 건축자재를 싣고, 식료품을 싣고, 또는 수십 대의 자동차를 싣고 3일씩 걸려 북쪽 킴벌리 지역까지 가는 도중에 주유소에서 목을 축이고 밥을 먹고 잠을 잔다. 피너클스는 남붕(Nambung)국립공원 안에 있다. 나지막한 관목들이 땅을 뒤덮은 공원지역을 흙먼지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4WD 자동차가 달리노라면 야생동물 왈라비와 에뮤들이 관목 위로 목을 길게 빼고 사람들을 구경한다. 샛노란 땅에 솟아오른 작은 바위기둥이 여기저기 보이다가 점점 바위기둥의 밀도는 높아지고 바위기둥의 키도 높아진다. 4~5m의 바위기둥이 우후죽순처럼 빼곡히 솟아오른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수천 수만 개의 피너클스는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힘차게 솟아오른 남근상, 톱니처럼 뾰족한 것, 칼날을 닮은 기둥모양이 있는가 하면 비석을 닮은 피너클스도 있다. 그 옛날 신은 이들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천년 만년 세월이 흐르며 바다 속에서 수많은 조개는 태어나서 수명을 다하고, 조개껍질은 쌓이고 부서지며 조개껍질 모래가 된다. 조개껍질 모래는 파도에 떠밀려 해안으로 밀려오고, 바람은 모래를 내륙으로 날려 보낸다. 조개껍질 모래는 쌓이고 쌓여 석회석층을 형성, 언덕을 만든다. 겨울에 비가 내려 언덕 아래 조개껍질 모래는 서로 엉겨 달라붙어 땅이 되며 그 위에 풀과 나무가 터를 잡는다. 동시에 산성토양층과 식물의 부식질은 하나의 석영지층을 만든다. 오랜 세월이 켜켜이 쌓여 빚어진 신의 작품 이 산성토양층은 빗물에 의해 수없는 여과과정을 거치며 아래쪽 약한 석회석은 녹아서 깎여 나간다. 깎여나간 지하의 석회석 자리는 식물의 뿌리와 모래가 차며 그 아래쪽 약한 석회석층은 점점 더 빗물에 녹아내린다. 식물이 죽고 바람이 모래를 날려버리자, 빗물에 녹지 않은 단단한 석회석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의 피너클스 기둥의 꼭대기는 그 옛날 조개껍질 모래 언덕 땅바닥이었고, 지금의 모래바닥은 그 당시는 지하였다는 얘기다. 지금 서있는 피너클스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빗물에 녹아나고 모래바람에 깎여나가기 때문이다. 피너클스에 가면 사람들은 땅기운, 즉 ‘지기’(地氣)를 받는다고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곳에서 명상에 빠지기도 하고, 어떤 무리들은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한다. 피너클스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퍼스까지 반 이상 왔다고 생각되는 고속도로 지점에서 4WD 자동차는 오른쪽 직각으로 꺾어져 지방 도로를 달린다.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과 올리브밭을 빠져나가며 찻길은 꾸불꾸불 요동을 친다. 얼마나 달렸나. 마침내 넘실대는 인도양이 차창 밖으로 힐끗힐끗 보이기 시작하면 ‘란셀린’(Lancelin)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란셀린은 바닷가에 자리잡은 독특한 소읍이다. 골프코스, 테니스 코트가 있는가 하면 낚시, 수영, 스노클링, 윈드서핑, 파도타기, 패러서핑 등 땅과 물에서 인간이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곤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다. 인도양 파도에 밀려온 곱고 새하얀 조개모래가 그림 같은 비치를 만들고 그 뒤로는 모래언덕, ‘샌드듄’(Sand dunes)을 만들어 놓았다. 샌드듄이라 해서 굴곡이 있는 모래둔덕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이것은 모래산, 아니 바닷가로 끝없이 이어진 모래산맥이다. 이 거대한 샌드듄은 온갖 놀이를 할 수 있어 어른들에게 아련한 어릴 적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스노 보딩과 흡사한 샌드 보딩이 어린이가 된 어른을 싣고 모래산을 미끄러져 내려오고, 산악 모터사이클이 모래먼지 꼬리를 하늘높이 치켜들고 핑핑 날아다닌다. 4WD 자동차가 가파른 모래산을 올라갔다가 꼬꾸라질 듯이 내려가고 대형 4WD 코치도 모래산을 넘나들 땐 승객들이 아우성을 토해낸다.
울창한 숲에 쌓인 에덴의 동쪽 Sintra 2007-03-12
만약 당신에게 포르투갈에서 꼭 하루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디로 가겠는가? 포르투갈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는 사람이면 무척 고민될 것이다. 대부분 수도 리스본을 돌아보려고 할지도 모른다. 나쁜 선택은 아니다. 수도에는 그 나라의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으니 어찌 보면 자연스런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번잡한 것이 싫고, 조용한 전원의 풍경을 원한다면 신트라로 가야 한다. 신트라는 마을 전체가 나무와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는 중세풍 전원마을이다. 금방이라도 고운 옷을 차려 입은 공주가 튀어나올 것 같은 그림 같은 마을로, 유유자적 거닐면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 딱 좋다. 누구나 스트레스 쌓이는 환경에서 벗어나 아무 생각 없이 며칠 푹 쉬고 싶은 적이 있지 않은가. 신트라가 마음 속으로 그리던 그런 장소다. 그렇다고 볼거리가 없는 도시는 절대 아니다. 위화감 들지 않는 소박한 왕궁 신트라는 포르투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밝고 화사한 궁전과 우아한 저택들이 우거진 골짜기 곳곳에 숨겨져 있는 도시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도 신트라의 매력에 푹 빠져 장편 서사시 ‘차일드 해롤드의 편력’(Childe Harold’s Pilgrimage)에서 이곳을 ‘영예로운 에덴’으로 묘사했다. 굳이 바이런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신트라에 도착하는 순간 많은 사람이 이곳에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역에서 나가면 바로 앞에 보이는 파스텔톤 건물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파란 하늘의 채도를 더욱 높여 준다. 부드러운 색조의 건물들은 맑은 날 더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시내로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맑은 공기와 사방에 펼쳐진 공원, 이국적인 식물 등이 긴장감을 풀어 주어 마음이 편안해진다. 역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울창한 숲 사이로 흰색 왕궁이 보인다. 두 개의 원추형 굴뚝이 인상적인 이 왕궁은 신트라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볼거리. 14세기부터 포르투갈의 마지막 왕 마누엘 2세가 20세기 초 혁명으로 쫓겨날 때까지 여름궁전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1755년 리스본과 주변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에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내부는 소박하면서도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데, 특히 ‘백조의 방’ 천장에 그려진 백조 그림이 멋지다. 이 왕궁은 화려하지 않아서 정감 있게 다가온다. 대부분의 궁전이 지나친 화려함으로 보는 이를 압도하지만 신트라의 왕궁은 소박함과 화려함이 조화를 이루어 편안한 마음으로 관람할 수 있다. 무어인의 성터에서 감상하는 멋진 풍경 왕궁 주변에는 돌이 촘촘히 깔린 좁은 골목과 언덕에 자리한 아기자기한 선물가게, 레스토랑 등 볼거리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유명한 포르투갈 타일과 액세서리,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은 주변풍경과 어우러져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선물가게를 기웃거리며 골목을 걷다 보면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골목 안의 바나 레스토랑에 들어가 커피 한 잔 하며 쉬다 보면 저절로 소소한 행복감에 젖어든다. 만약 점심 때라면 왕궁 주변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다음 코스로 이동하자. 왕궁과 함께 신트라의 대표적인 볼거리인 무어인의 성터와 페나성 인근에는 식사를 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두 곳을 돌아보는 데 몇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자칫하면 식사를 거르게 된다. 왕궁 앞에서 버스를 타고 10분 남짓 올라가면 무어인의 성터가 나온다. 8세기에 무어인들이 지었다가 1147년 기독교도의 공격으로 함락되어 폐허로 남았지만 아주 멋진 전망을 제공한다. 성 입구에서 산길을 따라 10분 남짓 올라가면 능선을 따라 이어진, 돌로 된 성터가 나온다. 가파르지 않은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시내와 주변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숲으로 덮인 시가지와 왕궁 그리고 대서양이 아득히 보이는 초현실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멋진 풍경을 조망하고 있으면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다. 신트라 여행의 하이라이트, 페나 궁전 무어인의 성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면 몇 분 안되어 신트라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페나 궁전에 도착한다. 1838년 페르난도 2세는 가파른 산봉우리에 있던 수도원 자리를 보고 첫눈에 반해 왕실의 여름 별궁을 세웠다고 한다. 해발 500m 산꼭대기에 있는 페나 궁전은 노랑과 파랑, 주황색 등 파스텔톤 색조가 인상적이다. 19세기 포르투갈의 낭만주의 건축물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데 무어, 고딕, 마누엘,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되어 매우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이 궁전은 이성보다는 감성을 추구하는 낭만주의적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다양한 스타일의 초소와 전망대, 그리고 스페인과 무어양식의 타일 장식을 깐 불규칙적인 테라스는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페나 궁전만의 독특함을 보여준다. 과거의 건축양식을 따른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모습을 가미해 모빌로 만든 장난감 집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외관 못지않게 내부도 꽤 호화롭게 꾸며져 있다. 내부는 가구나 생활집기가 그대로 남아 있어 왕정이 폐지된 20세기 초반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방마다 값진 가구와 그릇, 호화로운 침실이 진열되어 있고, 샹들리에가 달린 무도회장도 있다. 마을 아래 있는 왕궁이 소박하면서 건실한 분위기라면 페나 궁전은 화려하고 여성스럽다. 여왕이 사용하던 침실과 가구가 진열되어 있는 ‘여왕의 방’, 왕의 집무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인상적인 왕실 예배당, 아랍인의 방 등이 볼거리다. 궁전 뒤편의 테라스에서는 무어인의 성채와 신트라 시가지, 대서양이 한눈에 보인다. 로카곶, 유럽 대륙의 최남단 땅끝마을 신트라까지 왔으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로카곶이다. CF로 우리에게도 낯익은 로카곶은 신트라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땅끝마을을 가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포르투갈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로카곶에 도착하면 끝없이 펼쳐진 대서양과 절벽에 부딪쳐 부서지는 하얀 파도가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절벽 앞에는 ‘이곳에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포르투갈의 국민시인 까몽이스의 시가 적힌 돌탑이 있다. 십자가가 놓인 이 돌탑은 로카곶의 상징과도 같아 여행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곳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다. 로카곶은 절벽과 돌탑 그리고 빨간 등대가 있을 뿐 특별한 볼거리는 없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웅장한 대자연.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산책로를 걷다 보면 땅끝의 기운이 온몸에 퍼지는 듯하다. 지평선 너머로 붉게 떨어지는 일몰과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를 뒤로 하고 다시 버스에 오른다. 이제 내 앞은 유럽의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다. 여행정보 교통 우리나라에서 신트라까지 바로 가는 비행기는 없다. 유럽계 항공사를 이용해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가서 기차를 타고 신트라로 들어간다. 리스본의 Roma-Areeiro역에서 기차가 1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신트라까지 편도요금은 1.65유로(약 2천 원), 40분 정도 소요된다. 시내교통 신트라는 크지 않아 시내를 걸어서 구경할 수 있다. 산중턱에 있는 페나 궁전과 무어인의 성까지는 40분 정도 걸린다. 신트라를 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SCOTT URB사에서 운행하는 434번 버스를 이용하는 것. 신트라 역에서 왕궁-무어인의 성터-페나 궁전을 20분 간격으로 순회한다. 관광안내소 기차역에 간이 안내소가 있고 메인 안내소는 왕궁 근처에 있다. 지도와 호텔예약, 주변 도시로 연결되는 교통정보를 안내받을 수 있다. 신트라에서 로카곶과 카스카이스를 돌아볼 예정이라면 꼭 버스 시간표를 얻어 둔다. 호텔 대부분의 여행자가 리스본에서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기 때문에 신트라에서 머무는 경우는 드물다. 욕실이 깨끗한 1인실이 35유로(약 4만3천 원), 2인실은 50유로(약 6만2천 원) 정도. 관광안내소에 문의하면 원하는 가격대의 호텔을 알려준다. 물가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물가가 가장 싼 나라 중 하나다. 옆 나라인 스페인이나 프랑스를 여행하다 포르투갈로 가면 단번에 물가가 저렴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리스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도시에서 깨끗한 시설을 갖춘 펜션을 25∼35유로(약 3만1천∼4만3천 원, 1인실)에 빌릴 수 있다. 식사는 최고급 레스토랑 아니면 10유로(약 1만2천 원) 정도로 해결할 수 있다.
이곳이 이토록 근사한 곳일 줄이야 이곳이 이토록 근.. 2007-02-16
2007 말레이시아 방문의 해 올해는 말레이시아에게 특별한 해다. 독립 50주년 기념행사인 메르데카 데이(Merdeka Day), 말레이시아의 문화적 색채를 엿볼 수 있는 ‘컬러 오브 말레이시아’, 세계적인 F1 그랑프리, 젊은 여성들에게 특히 매혹적인 메가 세일 카니발(Mega Sale Carnival), 대표적인 전통 오픈 하우스 축제인 하리 라야 아이딜피트리(Hari Raya Aidilfitri) 등 다양한 축제들이 올 한 해를 수놓을 예정이다. 말레이시아의 축제가 유난히 다양하고 화려한 것은 유교,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족 문화와 종교적 색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민족과 종교에 따라 새해의 시기나 축하 방식이 다르다. 하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맞이하는 마음이야 다르지 않다. 특히 오픈 하우스 축제는 초대를 받지 않더라도 방문을 할 수 있으며, 서로 음식을 나누고 한 해의 복을 빌어준다. ‘컬러 오브 말레이시아’(Colour of Malaysia) 올해로 9번째를 맞이한 ‘컬러 오브 말레이시아’(Colour of Malaysia:* Colour: 20세기 초까지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영향을 받아 영국 철자법을 따른다)축제는 5월 26일에 말레이시아 전역에서 펼쳐진다. 다인종 다민족 국가라는 말레이시아의 전통을 조화롭게 표현하는 환상적인 축제다. ‘치트라와르나 말레이시아’(Citrawarna Malaysia)라고도 부르는 이 축제는 말레이 문화를 중심으로 중국계, 인도계, 사바와 사라왁 주의 원주민을 포함한 다채로운 인종과 문화를 축제로 승화시킨 국가적인 행사다. 이 축제는 수도 콸라룸푸르에서 말레이시아 국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거대한 개막 행사로 막을 올린다. 말레이시아의 14개 주를 대표해 모여든 사람들은 3~4시간에 걸쳐 그들의 문화를 뽐내게 된다. 개막 행사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는 축제를 다채롭게 꾸며주는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왕의 대관 의식과 왕의 결혼식을 다룬 음악 연극인 방사완(Bangsawan), 남녀가 함께 전통 시 ‘판툰’(Pantun)을 읊으며 노래하는 말라카의 돈당 사양(Dondang Sayang) 등이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가정집을 개방하는 ‘오픈 하우스’ 행사 등 일반 관광객들도 참여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이벤트들도 준비되어 있다. 무술 공연, 전통 시 낭독, 전통 악기 공연, 음식과 음악 축제, 전시회 등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색채의 향연인 ‘컬러 오브 말레이시아’는 이미 말레이시아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문화유산의 결정체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어 다른 어느 때보다 말레이시아를 방문하는 모든 외국인들이 하나가 되어 즐길 수 있는 축제다. 그 밖의 볼거리 말라카 전통결혼식 체험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 된 도시 말라카에서는 독특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도시인 말라카는 14세기 이슬람 왕국을 건설한 이래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의 강국들이 쟁탈전을 벌였던 도시로서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럽풍 건축물과 유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유럽과 말레이시아 문화가 섞인 말라카에 머무는 연인들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은 색다른 결혼식을 체험해 보는 것. 연인들은 인도, 중국, 말레이시아 전통의 결혼식 행사를 보고, 또 직접 체험해 볼 수도 있다. 하객들은 신혼부부에게 꽃을 뿌리며 사랑의 결실을 축복해 주고 연주자들이 전통 악기를 연주한다. 또 전통음식을 나눠먹으며 신혼부부의 영원한 사랑에 축복을 기원해 준다. 알아두면 좋을 에티켓 말레이시아의 국교인 이슬람교에서는 술은 물론 담배도 금지한다. 독실한 이슬람 교도들은 이 계율을 충실히 지키며, 이슬람 색채가 강한 말레이 반도의 동해안에 위치한 주에서는 술이나 담배를 팔지 않는 레스토랑이나 호텔도 많다. 반면 중국계 주민이 주류를 이루는 거리나 콸라룸푸르, 코타 키나발루를 포함한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레스토랑, 상점 등에서 술과 담배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왼손을 부정하다고 여긴다. 식사 때는 물론 물건을 건네거나 받을 때 반드시 오른손을 사용한다. 반면 머리는 신성한 부분으로 여기므로 함부로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만지면 안 된다. 또한 사람을 가리킬 때는 오른손을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자료제공: 말레이시아관광청 ☎ (02)779-4422 www.mtpb.co.kr
이벤트의 천국, 서호주 퍼스 먹거리 축제에서 비행기.. 2007-02-16
‘세계 요트 선수권, 현대호프만컵 세계 테니스대회, BMW 퍼스컵 경마… ….’ 서호주(Western Australia)의 이벤트 달력은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신난다. 1월에만 8개의 이벤트가 이렇게 이어졌다. 이벤트라는 게 하루에 끝나는 게 아니니 만큼 서호주에서는 일 년 내내 이벤트가 끊이지 않는 셈이다. 주정부가 주도하는 수준 높은 이벤트들 별의별 이벤트가 다 있다. 먹거리 페스티벌, 음악 콘서트, 포도주 축제, 보름달맞이 축제, 불꽃놀이 축제 등이 있는가 하면 세계적인 스포츠 경기도 끝없이 이어지고 가을이 무르익는 4월부터는 자동차 경주가 시작된다. 얄룹에서 펼쳐지는 클래식카 쇼를 시작으로 5월 중순엔 V8 수퍼카 챔피언십이 시리즈의 하나로 퍼스를 뒤집어 놓는다. 퍼스엔 V8 수퍼카 레이스를 위한 경주로를 만들어 놓았다. 바르바갈로 경주로를 따라 폭발하는 V8 엔진의 파열음은 관중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이어서 호주대륙을 횡단하는 큇 포레스트 랠리(Quit Forest Rally)가 퍼스에서 출발하고 6월로 접어들면 호주와 세계 각국에서 온 일급 라이더들의 한판승부인 만지멉(Mangimup) 1,500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9월이 되면 노탐 모터사이클 페스티벌이, 10월엔 FIA 월드랠리챔피언십(WRC)인 호주 랠리가 퍼스와 그 주위를 자동차 엔진의 굉음으로 덮어버린다. 이런 이벤트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우리나라에서 이런 이벤트는 대개 이벤트 기획사, 스포츠 마케팅 회사 등 영세한 개인 기획사들이 철저한 상업적 손익계산 아래 주관하거나 관련단체, 예를 들어 골프대회면 대한골프협회가 주관하는 게 일반적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갖가지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거니와 이벤트의 종류와 질이 수준 이하가 되기 일쑤다. 하지만 서호주는 다르다. 서호주 정부의 조직으로서 서호주 관광청의 한 부서인 서호주 이벤트국(WA Events Corp)이 있다. 거의 대부분의 이벤트는 바로 이 곳의 손을 거쳐 진행된다. 개인 기획사가 손댈 수 없는 큼직큼직한 이벤트들이 쉽게 이루어지고 주정부가 주관하고 있어 모든 문제나 장소, 진행, 교통 등이 원활하게 해결된다. 서호주가 이벤트를 보는 눈은 우리와 다르다. 메이저 이벤트는 서호주의 큰 사업이자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기회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이벤트는 지역의 상업을 활성화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이벤트를 통한 상품의 브랜드를 각인시켜 주며, 상업적 토대를 정착시키고 확산한다. 이벤트는 한 번의 흥행몰이로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아닌, 서호주 주민들과의 파트너십이라 생각한다. 그 외에도 이벤트국이 내세우는 각종 축제들의 효과는 줄줄이 이어진다. 경제적 효과와 함께 고용을 창출하고, 서호주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과 더불어 관광객 유치에 기여하며, 서호주 주민들의 건강증진과 웰빙에 일조한다. 또한 독특한 서호주의 환경을 자축하고, 공동체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며, 사회간접자본 확충 및 문화적 다양성 개발을 비롯하여 각종 개발과 변화에 이르기까지....... 지난해 11월 하순에 퍼스에서는 메이저 이벤트인 ‘레드불 에어 레이스’(Red Bull Air Race)가 일주일간 개최되었다. 우리나라엔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레드불은 세계적인 음료 브랜드이자 제품명으로, ‘게토레이’와 흡사한 스포츠 에너지 음료다. “이 세상에 자동차 레이스는 수없이 많은데 비행기 레이스는 왜 없을까?” 레드불 에어 레이스는 헝가리 파일럿 피터 베센예이의 의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001년, 이러한 의문을 가진 피터 베센예이는 곧바로 레드불을 찾아가서 그의 아이디어를 전했다. 이에 레드불이 화답, 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마침내 2003년 여름 오스트리아에서 레드불 에어 레이스가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하늘의 F1 레이스, ‘레드불 에어 레이스’ 2년 여의 준비기간 동안 경기 진행방법을 개발하고, 시험도 해봤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모자라는 게 너무 많았다. 그러나 수십만 명의 관중이 모여들어 경비행기 레이스를 지켜봤다는 것에 힘입어 레드불은 박차를 가했다. 그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다시 에어 레이스가 열렸고, 2004년에는 영국 켐블과 헝가리 부다페스트, 미국 리노에서 세 번의 레이스가 열렸다. 그리고 2005년, 레드불 에어 레이스는 월드시리즈로 진용을 갖추게 된다. 일곱 번의 박력 넘치는 레이스로 종합점수를 매겨 미국의 마이크 맹골드가 초대 레드불 에어 레이스 월드시리즈 챔피언의 왕관을 썼다. 2006년에 이르러 레드불 에어 레이스 월드시리즈는 마침내 세계 유수의 자동차 경주 월드시리즈처럼 자리를 잡았다. 특히 2006년에는 9회의 레이스가 열려 그 중 마지막 대회를 서호주 퍼스에서 치르게 되었다. 3월에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를 시작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독일 베를린, 러시아 페테르부르그, 터키 이스탄불, 헝가리 부다페스트, 영국 롱글릿,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거치며 8회의 레이스에서 무려 476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아 레드불 주최측은 입이 귀에 걸렸다. 레드불 공중 레이스에 출전하는 11명의 파일럿은 상상을 초월하는 혹독한 훈련을 거친 공중 곡예가들이다. 그들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위험천만한 레이스를 초스피드로 날며 자전과 공전을 자유자재로 해야 한다. 20m 높이의 관문을 시속 400km로 날고 수면 15m 높이에서의 초저공 비행 땐 100분의 1초의 오차로 지옥이 기다린다. 극한의 초스피드로 날면 파일럿은 자기 몸무게 10배의 중력(10G)을 견뎌내야 한다. 레드불 에어 레이스 관계자들은 날아다니는 모터스포츠가 F1을 능가하리라 전망한다. F1보다 더 박진감 넘치는 경기도 경기려니와 F1이 고정된 관중에게 한정된 시야만 제공하는데 반해 에어 레이스는 100만 명이 전 경기를 한자리에 앉아 즐길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레이스는 단순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나 복잡하다. 파일럿들은 14개의 관문을 규정대로 통과하며 6.75km를 활공한다. 각 관문을 통과할 땐 어느 곳은 회전으로 어느 곳은 자전하며 수직으로 오르고 떨어지듯이 급강하해야 한다. 넓이가 14m인 푸른색 관문은 수평으로, 넓이가 10m인 붉은색 관문은 모잽이(Knife Edge)로 날아야 하고 페널티는 엄격하기 그지없다. 관문 위를 통과하거나 관문을 규정된 비행자세로 통과하지 않았거나 회전을 틀리게 하면 3벌점, 관문을 건드리면 10벌점, 수면 위로 너무 낮게 비행하거나 수면을 스치거나 비행 통제선 밖으로 나가거나 구름 속으로 들어가면 실격이다. 1위부터 6위까지 포인트를 얻는데 1위는 6점, 6위는 1점이다. 서호주 퍼스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제9전 마지막 날, 레드불 팀 소속의 미국인 파일럿 커비 챔블리스가 34포인트, 같은 팀 소속인 헝가리 파일럿 피터 베센예이가 29포인트로 선두를 다투고 있었다. 퍼스의 스완 강변에 앉은 40만 관중의 시선은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그러나 순위는 뒤집어지지 않았다. 결승 레이스에서 4포인트를 보탠 커비가 6포인트를 더한 피터를 최종 합계 3포인트 차로 누르고 2006년 새로운 하늘의 챔피언이 되었다. 한강에서 레드불 에어 레이스 월드시리즈가 개최될 날은 언제일까?
일본 온천, 올 겨울엔 꼭 가고 싶다 2007-02-16
이브스키의 모래찜질 온천 ‘모래사장에서 화상을 입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오.’ 해변 곳곳에 세워져 있는 팻말들이 다소 엉뚱하다. 무슨 열대 해변도 아니고 일본, 그것도 한겨울 해변이 아니던가. 일본 규슈 가고시마 최남단 이브스키 해변에서는 한겨울에도 바다를 바라보며 천연 모래온천을 즐기는 이색 찜질족을 만날 수 있다. 유카타 입고 연기가 펄펄 나는 모래에 누우면 삽으로 모래를 덮어 주는데 한증막에 들어간 것처럼 채 10분을 견디기가 힘들다. 얼굴에서 땀이 송송 나오고 속옷 대신 입은 유카타가 흥건히 젖을 정도다. 이브스키의 모래온천은 세계에서 유일한 곳이다. 인근 화산지대 마그마의 영향으로 모래 속 온도가 60~70도씨까지 올라간다. 이 위에 20~30kg 되는 모래가 더해지는데 현지인들은 일부러 무게를 늘려 강한 효능을 즐긴다. 자주 이용하면 검은 피가 붉은 피로 변할 정도로 혈액순환에 좋다. 이곳 해변 모래온천의 역사는 1860년대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앞바다인 긴코만 지역의 화산폭발로 해변의 수심은 깊고 안쪽 바다가 잔잔해져 온천물 숭숭 솟아나는 모래사장에서 편안하게 찜질욕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바닷물은 한겨울에도 미지근해 발을 담가도 아늑한 느낌이다. 공용온천인 쓰나무쇼 회관에서는 1천 엔(약 9천 원)을 내면 일반인들도 모래찜질을 이용할 수 있다. 이곳은 이미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슬슬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한일정상회담이 이브스키 지역에서 열렸고 영부인이 인근 백수관이라는 료칸에서 천연 모래찜질을 하기도 했다. 전통 료칸인 백수관은 노무현 대통령이 니큐관 7층에서 묵었는데 바다를 끼고 있는 정원의 규모나 시설이 예사롭지 않다. 이곳저곳에 노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고 자체 해변모래찜질 시설을 갖춰 폼 나게 하루 묵을 수 있다. 해변온천인 이브스키와 달리 가고시마 기리시마 온천은 산으로 둘러싸인 온천지대다. 가고시마의 대표적인 활화산인 사쿠라지마 같은 활화산이 23개. 그 활화산을 배경 삼아 계곡마다 능선마다 뽀얀 수증기들이 뒤덮는다. 구리가와, 마루오 온천 등이 대표적인 유황온천인데 특히 마루오 온천은 가족 노천탕을 갖춘 여러 료칸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 노천탕들은 우윳빛에 계란 썩는 냄새를 풍기는 유황온천들. 특히 피부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쿠라지마의 일몰을 감상하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미야자키의 해변 온천리조트들 가고시마에서 2시간 떨어진 미야자키는 사뭇 분위기가 색다르다. 세련된 분위기의 미야자키는 온천욕과 함께 전통적인 볼거리들이 많은 곳이다. 일본의 하와이로 불릴 정도로 따뜻한 기후를 자랑해 허니무너들에게 인기가 높으며 대부분의 온천 리조트는 니치난 해안가에 몰려 있다. 쉐라텐 그란데 호텔에서는 흑송림에서 삼림욕을 즐긴 뒤 온천을 할 수 있는데 온천수는 약알카리성 식염수로 드라마 ‘눈꽃’에서 김희애의 온천욕 장면이 촬영되기도 했다. 미야자키 관광호텔은 옥으로 만든 광화석이 담겨 있는 ‘다마유라노유’ 온천탕이 유명하다. 광화석인 물에 닿으면 원적외선을 뿜어내 몸을 따뜻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데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오시마 팜비치호텔 대욕장에서는 태평양이 어우러진 니치난 바다를 조망하며 낭만적인 휴식을 할 수 있다. 미야자키는 온천뿐 아니라 인근 볼거리가 넘쳐난다. 북쪽의 다카치호 지역에서는 농한기인 겨울에 일본 민간신화가 담긴 요카구라 예식을 구경할 수 있다. 시골 민가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데 신과 사람이 예식을 통해 만난다는 점에서 한국의 굿판과 엇비슷하다. 일본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우도 신궁과 이스터섬의 석상 모아이상을 재현한 선메세 난미치도 이곳 미야자키에서 만나게 된다. 시골 온천 시부에서의 온천순례 30여 개 스키장이 모여 있는 나가노현 동북쪽인 야마노우치 지역은 유타나카, 시부 등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산동네 온천’들이 숨어 있다. 온천은 13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시부 온천은 300년 된 온천순례의 전통을 간직한 곳이다. 시가고원 자락에서 흘러나오는 요코유가와 개천을 따라 작은 온천장들이 경사진 골목길로 이어지고, 골목은 유카타를 입고 돌바닥 골목길을 천연덕스럽게 거니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시부의 온천욕장은 9개의 공중탕과 료칸 안의 온천으로 구분된다. 9개의 공중탕을 차례로 돌아보는 온천순례는 관광객들이 일부러 체험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이색 프로그램이 됐는데 공중탕의 각각 다른 효능을 지닌 온천은 귀신을 막고, 건강, 불로장수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숙박객은 순욕을 기원하는 스템프용 손수건을 300엔(3천 원)에 구입하면 열쇠를 받고 대중탕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커다란 열쇠와 붉은 스탬프가 찍힌 손수건을 들고 온천탕을 돈 뒤 마지막에 골목 안 온천 불교사찰에 들러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온천순례는 마무리된다. 이런 전통을 지켜 오는 료칸이 시부에 여덟 개. 료칸들은 대부분 노천탕을 갖추고 있다. 시부 온천 인근에는 온천욕하는 원숭이를 만날 수 있는 지고쿠다니 온천도 자리잡았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숭이가 사람처럼 온천욕을 즐기는 곳으로 40여 년 전 겨울, 새끼 원숭이 한마리가 계곡으로 내려와 온천물에 몸을 담그는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이 전용 노천온천을 만든 게 원숭이 온천의 출발점이 됐다. 지고쿠다니는 험준한 계곡과 곳곳에서 피어 오르는 온천증기가 ‘지옥’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 ‘지옥계곡 야생원숭이공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 200여 마리의 원숭이들은 사계절 가리지 않고 미지근한 물에서 천연덕스럽게 온천욕을 즐기며 입구에는 온천욕 원숭이 왕초들의 계보가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원숭이 온천 밑에 사람들 온천이 있는 것도 재미있는 정경이다. 기타 온천지역 이밖에도 일본 온천의 대명사격인 오이타현에는 유후인, 벳부 등의 온천이 들어서 있다. 유후인은 음악제 등의 문화행사와 수려한 경관까지 지니고 있어 온천과 함께 여가를 즐기려는 젊은층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메이지 시대부터 문을 연 벳부 온천은 원천수 3천800여 개에 영업 중인 온천만도 160여 개나 되는 온천천국이다. 시가현 우레시노 온천은 피부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젊은 여성들이 즐겨 찾고 있으며 그 중 신센카쿠 료칸은 마실 수 있는 온천수와 대정원으로 유명하다. TRAVEL TIP 가고시마 일대의 온천을 즐기려면 인천에서 가고시마까지 주 3차례 운행되는 일본항공을 이용한다. 가고시마시에서 이브스키까지는 해변도로를 따라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규슈 레일패스를 이용하면 규슈 내의 JR를 5일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가고시마에서는 흙돼지의 두툼한 살을 졸여서 내놓는 구로부타가 맛이 독특하다. 이곳에서는 고구마 소주, 고구마 아이스크림도 별미다. 일본 3대 녹차(교토, 시즈오카, 지란) 중 하나인 지란녹차도 반드시 마셔볼 것. 미야자키의 슈센노모리는 20여 종의 소주를 만드는 주조장으로 명성이 높다. 일본인들은 미야자키 여행 때 반드시 이곳에서 소주를 구입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시부온천은 니가타 공항이나 고마쯔 공항을 경유해 일단 나가노시내까지 들어간다. 나가노에서 유다나카까지는 열차로 50분 소요. 유다나카가 속해 있는 야마노우치 지역에는 100여 개의 여관이 있으며 젊은 여행객들을 위해 객실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시설도 마련돼 있다. 일본국제관광진흥기구(02-732-7525, www.jnto.or.kr)에서 자세한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다.
황금과 모스크의 나라, 브루나이 2007-02-15
동남아시아 보르네오 섬 북서부 해안에 자리한 브루나이는 인구 35만여 명의 아주 작은 왕국이다. 브루나이의 정식 명칭은 ‘네가라 브루나이 다루살람’(Negara Brunei Darussalam)으로 ‘평화가 깃드는 살기 좋은 나라’라는 뜻이다. 그러나 브루나이는 ‘황금의 나라’로 더 알려져 있다. 제주도의 불과 3배 정도 면적의 작은 나라이지만,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국으로 전 국민이 풍요를 누리기 때문. 실제로 주요 건물에는 순금 장식이 되어 있고, ‘술탄’(Sultan; 이슬람 왕국의 정치적 지배자)으로 불리는 국왕은 세계 최고의 부호 중 한 명이다. 황금사원과 세계 최대의 수상마을 평화롭고 살기 좋은 나라 브루나이는 이슬람국가로 문화적 색채가 강하다. 특히 수도 ‘반다르 세리 베가완’에서도 손꼽히는 명소는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Omar Ali Saifuddin Mosque). 황금의 나라라는 명칭에 걸맞은 황금 모자이크, 이태리 대리석, 영국 스테인드글라스 등 최고급 자재를 사용해 1958년 건축된 전통 이슬람 사원으로, 인공호수로 둘러싸인 웅장한 건물과 황금 돔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특히 밤에 보는 모스크의 야경은 놓치지 말아야 할 정경. 수도의 어떤 건물도 이 모스크보다 높게 지을 수 없다. 브루나이의 전통문화를 보고 싶다면 세계 최대의 수상마을 캄퐁 아예르(Kampong Ayer)로 간다. 16세기 마젤란 원정대가 ‘동방의 베네치아’로 일컬을 만큼 고요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1906년 도심이 형성되기 이전까지 브루나이를 대표하는 거주 지역이었다. 지금도 전체 인구의 10%인 3만여 명이 초창기의 전통 수상가옥과 현대식 시설을 갖춘 신식 수상가옥 안에서 과거와 현재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생활방식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수상가옥의 외관은 화려하지 않지만 병원, 경찰서, 학교 등 편의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천혜의 자연과 풍부한 즐길거리 브루나이는 천혜의 자연을 지닌 생태관광의 보고이다. 그 중에서도 ‘아시아의 허파’로 알려진 울루 템부롱 자연공원(Ulu Temburong National Park)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열대우림을 만날 수 있는 곳. 보트와 네바퀴굴림차를 이용해 정글 사파리를 할 수 있는데, ‘테무아이’라고 불리는 전통양식의 모터보트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양쪽으로 원숭이와 거대한 도마뱀들이 수시로 출현한다. 약 1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정글 트레킹의 진수는 나무로 만들어진 1천226개의 계단과 70m 높이의 철탑. 5개의 철탑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다리를 걸어갈 땐 숲 위를 거니는 듯한 장관을 만나게 된다. 브루나이의 제루동 파크(Jerudong Park)는 로열 브루나이 골프클럽, 폴로클럽, 승마장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공원이다. 특히 디즈니랜드 스타일의 제루동파크 놀이공원은 다양한 종류의 놀이기구와 산책로, 그리고 밤에는 환상적인 분수쇼가 펼쳐져 왕족 여행의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또 폴로클럽(Polo Club)은 왕족을 위해 지은 연회용 건물인데 각 방의 장식은 왕족의 품위에 걸맞게 화려함의 극치로 장식되어 있다. 브루나이는 골프와 허니문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 특히 브루나이의 골프장은 수려한 풍광과 잘 정돈된 잔디로 유명하고, 7성급 호텔인 엠파이어호텔에서는 야간 골프도 가능하다. 그간 국왕 개인의 골프장으로 사용돼 오다가 일반인에게 개방된 로열 브루나이 골프클럽은 세계 100대 골프장에 꼽힐 만큼 훌륭한 시설을 자랑한다. 수상마을과 순박한 미소를 지닌 주민들, 왕실의 전통과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명소들… …. 이 모든 것이 모여 있는 브루나이는 휴양과 더불어 여유롭고 화려한 문화까지 즐길 수 있는 아시아의 숨겨진 보석이다. TRAVEL TIP 모스크는 목, 금요일의 기도 및 준비시간만 제외하면 들어갈 수 있다. 단, 모스크에 입장할 때는 신발을 벗어야 하고, 여자는 얼굴과 팔, 다리 등을 전부 가려야 한다. 관광객의 경우 여자는 검정색 이슬람 가운을 입어야 하고, 남자도 반바지일 때는 검정색 가운을 입어야 한다. 브루나이에서는 사람, 물건을 가리킬 때 절대 검지로 가리키면 안된다. 문의│로얄 홀리데이 02-3455-7140, www.tourga.com
유목민의 흔적이 서린 검붉은 대지, 울란바토르 2007-02-15
해발 1천400m에 위치한 울란바토르는 유목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서려 있는 몽골 제1의 도시다. 톨강 유역을 따라 20여 차례 이동하며 도시의 기초가 닦였고 그 이름도 수없이 변경됐다. 몽골혁명의 주인공을 기념하기 위해 ‘붉은 영웅’이라는 의미인 울란바토르로 이름이 정착됐지만 도시인의 삶 속에는 강렬함보다 부드러운 정서가 흐르고 있다. 도시의 관문인 ‘사강하다가’(흰 대문)를 지나면 울란바토르는 몽골스러운 자태로 속살을 드러낸다. 야르마크 지역 등 변두리에서 도심으로 진입하는 길목마다 전통가옥 ‘게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양가죽으로 만든 둥근 이동가옥은 오래된 구식난로처럼 생겼다. 유목민족의 생활형태를 반영한 천막형 가옥인 게르는 나무와 양털로 짜여져 있으며 울란바토르 시민 40% 이상이 아직도 게르에서 거주하고 있다. 게르 앞에 자가용들이 주차돼 있는 게 이색적이다. 10월초만 되면 울란바토르에는 성급하게 첫눈이 내린다. 한겨울 기온은 영하 30도씨까지 곤두박질친다. 밤새 불어닥친 눈보라는 도시를 감싼 4개의 검은 봉우리를 신령스럽게 뒤바꿔 놓고는 한다. 울란바토르의 전체 면적은 서울의 두 배 정도. 하지만 울란바토르의 도심은 그리 넓지 않아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규모다. 도심 북서쪽에 자리잡은 간당 사원을 시작으로 울란바토르 겨울여행의 첫발을 내딛는다. 간당사원은 몽골에서 가장 큰 사원으로 공산정권 하에서도 유일하게 종교활동을 보장받던 곳이다. 사원 내부에서 만나는 귀여운 동자승들과는 대조적으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불상인 미그지드 장라이시그 불상이 서 있다. 무려 20톤 규모이며 사원의 벽 전체는 수백 개의 좌불들로 채워졌다. 간당사원에서 동쪽으로 두 블록 이동하면 국립 백화점을 중심으로 울란바토르의 상권이 조성돼 있다. 소떼가 다니던 변두리길과 달리 세련된 몽골 멋쟁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리다. 몽골여인들은 기마민족의 피를 이어받아 하체가 상당히 길고 매끈한 몸매를 지녔다. ‘델’(몽골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 사이로 고급 외제차와 한국의 중고 버스, 승용차가 거리를 달리는 풍경이 이채롭다. 백화점을 중심으로 수평으로 늘어선 도로는 평화의 거리와 서울의 거리로 불린다. 울란바토르와 서울이 자매도시가 된 뒤 붙여진 이름들이다. 백화점 뒤쪽으로는 컨테이너 시장이 마련됐는데 좌판이 늘어선 노천시장에서는 온갖 잡화를 구경할 수 있다. 시장 너머에 자리잡은 레닌 기념관은 다소 생뚱맞다. 몽골혁명을 도와준 러시아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레닌 기념관 건물 안은 웅장한 레닌 동상 밑이 포켓볼 당구장으로 변했으며 건물 지하와 2층은 게임방이 됐다. 한때 러시아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던 몽골의 교육제도는 이미 바뀐 지 오래 전이다. 몽골은 15년 전 소련식 사회주의와 결별했다. ‘무지개의 나라’ 한국을 흠모하는 도시 이곳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어 학원들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고 젊은층 사이에서는 영어 대신 한국어가 오히려 통한다. 몽골 사람들은 한국을 ‘무지개의 나라’라는 의미로 ‘솔롱거스’라고 부르는데, 그 기원이 예전 몽골에 왔던 한국 여인들의 색동저고리에서 비롯됐다는 막연한 추측을 할 뿐이다.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통가라는 매니저 아가씨는 김통가라는 한국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울란바토르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왕궁에서 근무한 뒤 한국으로 건너가 봉제공장에서 일했다. 그녀가 한국에서 받은 월급은 100만 원(100만 투르그). 몽골 평균 월급의 5배가 넘는 금액으로 아직도 한국에 가면 그들은 무지개를 잡을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산다. 가만히 보면 그들이 즐겨 입는 의상이 우리네 두루마기와도 많이 닮았다. ‘델’이라고 불리는 전통의상은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겉옷에 옷고름 대신 단추를 달아 놓은 형상이며 소매는 손이 감춰질 정도로 길다. 여인네들은 우리 옛 어머니들처럼 거리에서 수건을 쓰고 다니기도 하며 전통모자인 ‘말라가이’와 긴 장화모양의 신발인 ‘구탈’을 신은 주민들의 구수한 패션을 쉽게 볼 수 있다. 울란바토르의 심장은 스흐바타르 광장이다. 1921년 울란바토르의 중심지인 이곳에서 혁명의 영웅인 담디니 스흐바타르가 중국으로부터 몽골의 독립을 선언했다. 광장 중앙에는 말을 타고 달리는 스흐바타르 동상이 서 있는데 혁명의 상징인 이곳에서 최근에는 각종 문화행사와 록 콘서트가 열린다. 광장 인근에는 몽골의 주요 건물들이 자리잡았다. 국회의사당, 문화궁전, 국립오페라 극장, 자연사 역사 박물관 등이 광장을 둘러싸고 동서남북을 채우고 있다. 광장의 웅장함과는 반대로 도심 맨홀에는 ‘맨홀족’이라는 빈민층들이 산다. 따뜻한 맨홀을 삶의 본거지로 삼는 사람들로 한국 선교사들이 ‘맨홀학교’를 지어 불쌍한 어린이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연기 자욱한 도심을 벗어나 남쪽 톨강을 건너면 복드한의 겨울궁전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몽골의 제8대 생불이자 마지막 황제인 자브장 담바 후트그트 8세가 20년 동안 살던 곳이다. 톨강 강둑에 있던 여름궁전이 완전히 파괴된 것과 달리 겨울궁전은 예전 그대로 남아 박물관이 됐다. 겨울궁전을 지나면 울란바토르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자이승 기념관. 서울 남산에 해당하는 오브뜨산 위에 기념관이 우뚝 솟아 있는데 러시아의 무명용사를 기념하기 위해 언덕 위에 세운 대형 기념비로 울란바토르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탑 위 신단에 돌을 올려놓고 소원을 빈다. 자이승 기념비탑에서 4개의 봉우리 바이즈르흐, 성균헤르타, 보크트, 칭기스테 사이에 보자기처럼 싸인 울란바토르를 내려다보면 고원도시의 고즈넉함이 느껴진다. 설원과 사막이 어우러진 대지 ‘테레지’ 눈 덮인 고원에 대한 욕망을 채우지 못해 들판 속을 내달리면 대륙의 광활한 전경과 조우한다. 울란바토르에서 승용차로 1시간 30분 거리. 북동쪽 80km에 자리한 국립공원 테레지는 때묻지 않은 몽골의 모습을 선사한다. 봄이면 고원을 덮은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는 테레지는 겨울이면 눈 덮인 들판과 희귀한 바위산이 끝없이 펼쳐지며 위용을 자랑한다. 초원지대의 게르 가옥과 양, 말을 타고 다니는 유목민들도 차창을 스쳐 지난다. 풍장을 끝낸 무덤들도 모래산 중턱을 지키고 있다. 테레지에서 말을 타고 고원을 질주하거나 봄, 가을에는 하깅하르 노르 호수를 끼고 있는 헨티 산맥까지 트레킹을 하는 것은 색다른 체험이다. 말은 이곳 게르 캠프에서 빌릴 수 있다. 몽골의 붉은 흙이 놓여 있는 어느 곳에서나 칭키즈칸의 말발굽 소리가 환청으로 들린다. 도시를 벗어나면 아득하게 펼쳐지는 중앙아시아의 대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정은 말발굽 소리와 함께 가슴 속으로 밀려든다. TRAVEL TIP 가는 길 몽골 울란바토르까지는 대한항공과 몽골항공이 운항한다. 3시간 소요. 10월부터 4월까지는 눈, 바람이 많아 결항률이 높다. 몽골입국 때는 비자가 필요하다. 울란바토르 시내는 택시를 이용할 수 있으나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이동할 때는 전차를 이용하는 것도 재미있다. 이곳 승용차는 70%가 한국에서 수입된 것이다. 환전·전화 화폐단위는 투르그. 호텔에서 환전이 가능하나 환전골목인 나이머사르에서 제값을 받을 수 있다. 규모가 큰 상점에서는 달러가 통용된다. 울란바토르에는 공중전화가 턱없이 부족하다. 대신 길거리에서 사설전화기를 이용할 수 있다. 국제전화를 거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국제전화를 걸 수 있는 장소는 일부 한인식당과 국립백화점뿐이다. 이곳의 한국담배값은 서울보다 싼 것이 특징이다.
Mercedes-Benz E-Class Experien.. 2007-02-14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중앙아시아 에카테린부르크까지의 2,700km. 현대의 수도 모스크바를 거치는 이 코스는 러시아의 심장부를 가로지른다. 메르세데스 벤츠 E320 CDI 군단은 화려한 현대도시와 광막한 대평원, 초라한 농촌풍경과 열악한 도로와 맞섰다. 옛 러시아 수도를 떠나 새 수도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구 소련 시절에는 레닌그라드라 불렸다. 볼셰비키 혁명의 아버지 블라디미르 레닌의 이름을 딴 혁명의 발상지. 물론 그 뒤 수도는 모스크바로 옮겨 앉았다. 페테르부르크 시내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에르미타즈 미술관과 에카테리나 궁전을 비롯하여 문화유산이 많다. 잘 정리된 운하의 도시로 북구의 베네치아라고도 한다. 푸틴 대통령의 정치근거지이기도 해서, 도시 일대가 외국 메이커를 비롯한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2레그 참가자들은 호텔에서 1레그를 달려온 참가자들을 만나 E320 CDI 인수인계를 마치고 함께 축하행사에 참석했다. 하룻밤을 보낸 이튿날 아침 7시 30분.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아직 어둠에 싸였고, 매서운 칼바람이 광장을 휘몰아치고 있었다. 각국의 국기 색으로 장식한 32대의 E320이 20여 대의 지원차와 함께 줄지어 서 있었다. 첫날의 목적지는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 거리는 700km를 넘었다. 당장 출발하지 않으면 밤중에야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서둘러 루트 확인방법을 배웠다. 이 나라에서는 일반적인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장정 참가자들은 소형 GPS와 정밀지도를 비교하면서 달려야 했다. GPS에는 지나가야 하는 체크포인트가 표시되어 있다. 그보다 더 세밀한 지도에는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갈 때의 거리와 방향이 그림과 숫자로 나와 있다. 아울러 그 지점에서 회전이냐 직진이냐, 또는 주의사항이 무엇인지를 적어놓았다. GPS 모니터에도 지도가 있기는 하지만 아주 엉성했다. 거의 아무 표시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한 번 길을 잃으면 궁지에 몰린다. 따라서 내비게이터의 역할이 아주 중요했다. 그런데 지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체크포인트는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출발지점인 페테르부르크 광장을 떠난 뒤 두세 번 좌우로 회전하고 나면 어디를 가나 직진. 처음으로 조작해야 하는 지점은 200km나 떨어진 Y자 갈림길이었다. 끝없이 반복되는 직진, 직진, 직진에 우리는 어리둥절했다. 레그별로 교대하는 각국 저널리스트들과는 달리 벤츠 관계자들은 전 구간을 달려야 한다. 그중 전속 카메라맨이 1레그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폴란드 이후 도로는 거의 이처럼 직선의 연장이라고 무선을 통해 알려주었다.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이 점점이 박혀있는 광대무변한 대평원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나라마다 국토가 상대적으로 좁아 국경을 넘는 변화가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러시아에 들어온 뒤로는 중앙아시아의 목적지까지 오로지 한 나라.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저 아득했다. 좁은 땅에서 살아온 우리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첫날의 목적지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수도. 출발지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모스크바에 이은 제2의 도시다. 제정 러시아의 수도로 문화의 향기 높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정치 중심 모스크바를 잇는 지역은 러시아의 심장부인 셈. 멋진 고속도로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했다. 도시 부근에는 분명히 6차선은 됨직한 도로가 있었다. 그러나 1시간을 달리기도 전에 중앙분리대도 없이 좁은 한 줄기 도로가 막막한 광야를 꿰뚫고 있었다. 그럼에도 고물딱지 라다마저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렸다. 이쯤 되면 마주 달리는 차들은 시속 200km가 넘는 스피드로 서로를 향해 달려든다. 과연 제한속도가 얼마인지 알고 싶어 도로표지를 살폈다. 모두가 알 수 없는 러시아의 키릴 문자로 쓰여 있을 뿐이었다. 노면에도 제한속도 표시는 없었다. 게다가 대도시를 벗어나면 도로는 어째서 그렇게도 나쁜지 강대국 러시아의 현실에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틈이 갈라지고, 구덩이가 곳곳에 나 있었다. 바퀴자국인지 도로가의 배수로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서방 국가의 도로에 비해 너무 뒤떨어진 노면에 입이 딱 벌어졌다.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보았던지 재포장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우리가 달린 구간을 재포장하는 데도 오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보수해야 할 도로가 너무나 많았다. 게다가 공사현장에서는 일을 다그치는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차와 카이엔이 뒤섞인 도로 러시아에서는 새로운 현재와 낡은 과거가 뒤섞인 장면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도시든 교외든 어디나 마찬가지다. 대도시에는 고급 브랜드 전문점이 즐비하고, 초호화 호텔이 거대한 성처럼 우뚝 솟아 있다. 하지만 그런 대도시에서 1시간만 달려 나가면 초라한 오두막이 여기저기 박혀있다. 상수도마저 없을 듯 퇴락한 집들이 을씨년스러웠다. 1989년 소비에트 체제의 몰락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에 맞선 세계 제2의 초강대국 소련의 자취는 참담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사이에 끝없이 펼쳐지는 빈곤지대는 새 러시아가 맞서야 할 중대한 도전이었다. 도로를 달리는 차도 사정은 비슷했다. 낡아빠진 구시대의 유물과 서방에서 흘러들어온 고성능차가 뒤섞여 있었다. 마차와 포르쉐 카이엔 터보가 같은 길을 달렸다. 러시아인들의 운전 자세는 너무나 공격적이어서 간담이 써늘했다. 밀어붙이다 안 되면 들이받을 자세였다. 맹수가 득실거리는 정글을 연상시키는 아수라장. 결국 압도적인 파워를 믿고 우리도 밀어붙이기로 했다. 둘쨋날. 모스크바를 떠나기 전, 대열은 모두 크렘린 앞 붉은 광장에 모였다. 최근에는 라이브 록 공연 등으로 광장이 개방되었다. 그러나 지난날에는 사회주의 종주국의 군사 퍼레이드로 이름난 무력 시위장이었다. 게다가 자본주의 선진국의 첨단 브랜드 벤츠, 그것도 최신 E320 CDI 32대에 지원차를 합쳐 50여 대가 포진했다. 제2일의 목표는 볼가 강변에 자리잡은 니즈니 노브고로드. 상공업도시로 옛날에는 고리키라 불렀다. 군사요충지이기도 해 16년 전까지 외국인은 고사하고 소련 민간인도 들어가기 어려웠던 곳이다. 점점 소련 사회주의 연방의 색채가 희미해지는 지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모스크바에서의 거리는 424km. 비교적 짧은 거리였지만 노면은 한층 거칠었다.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피로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참가자들은 밤늦게야 시내에 들어왔다. 자작나무로 유명한 러시아 숲 속 임도로 빠져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영혼마저 빼앗는 그 무한 자연의 품속은 황홀했지만, 마침 하늘은 흐렸고 해가 지자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에 묻혔다. 헤드램프가 100m쯤 앞을 비췄지만 그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데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 난데없이 불쑥불쑥 사람이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등골이 오싹했다. 사방 어디를 보나 줄잡아 50km 이내에는 도시도 마을도 없었던 듯했다.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지……. 그날 저녁 호텔에서 식사를 하며 러시아 도로표지판, 특히 제한속도 표시에 대한 비밀을 알아냈다. 마침 러시아 지식인이 자리를 같이하여 우리에게 교통규칙을 알려 주었다. 러시아의 도로 속도는 천편일률적. 편도 2차선 이상의 도로는 시속 110km, 편도 1차선은 시속 90km, 그리고 시내에서는 시속 60km. 너무나 명쾌하여 굳이 장소에 따라 제한속도를 표시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시내 입구는 흰 바탕에 검은 키릴 문자로 적어놓은 표지판이 알려준다. 똑같은 표지판에 붉은 사선이 그어져 있으면 시내를 벗어난다는 표시. 카잔에서 페르미까지 폭설 뚫고 달려 이 때까지는 대장정을 잘 견뎌냈다. 그러나 3일째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말았다. 타타르 공화국 수도 카잔을 향해 달리는 길이었다. 참가차 중 한 대가 크레바스처럼 쩍 벌어진 구멍을 피하지 못하고 오른 타이어 사이드월이 펑 뚫렸다. 스페어타이어로 바꾸는 것만으로 일은 끝났다. 그러나 러시아 도로사정은 정말 심각했다. 그런 가운데 4일째 아침을 맞았다. 페르미까지 690km를 달려야 했다. 차 안에서는 대화마저 끊어지고, 싸늘한 샌드위치를 씹어야 했다. 참가자들은 화장실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호텔에 가면 맑은 물이 나올까 하는, 실로 하찮은 걱정거리에 정신을 빼앗겼다. 즐거운 대화를 찾아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출발 이후의 경험에 비추어 690km를 어둡기 전에 주파하기란 불가능했다. 도중에 본격적으로 눈이 오기 시작하면서 참가자들은 달리기에 온 힘을 기울였다. 대열의 E클래스는 미쉐린의 겨울 타이어 파일럿 알핀을 신고 있었다. 현지 차들은 정체불명의 여름 타이어를 그대로 신고 달리는 장면이 자주 눈에 띄었다. 여기저기서 사고가 나는 것은 당연했다. 심지어 바퀴가 잠긴 채 비탈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트레일러마저 있었다. 교통량이 많은 도로를 계속 달리자니 겁이 나 사타쿠니가 시큰거렸다. 그때 마침 옆길로 우회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향을 틀었다. 그것도 잠시. 하늘을 찌르는 시커먼 숲속에 뚫린 좁은 길로 들어섰다. 영락없이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나직이 덮이고 눈이 펑펑 쏟아졌다. GPS가 약간 빗나갔는지 앞길이 불안하기만 했다.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고가 나서 숲 속에서 위기에 몰려도 누가 찾아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절로 등골이 오싹했다. 그나마 신뢰성과 안전성이 높은 벤츠여서 천만다행이었다. 잔뜩 겁에 질려있을 때 마침 ‘페르미’라고 알아볼 수 있는 도로표지판이 나왔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시무시했던 숲도 이튿날 해가 떠오른 뒤 바라보니 아름다운 침엽수림이었다. 5일째가 되자 참가자들은 노하우가 쌓여 자신이 붙었다. 러시아의 길이 익숙해져 한결 마음이 놓였다. 며칠에 불과했지만, 사람들은 실로 오랜만에 느긋하게 목적지를 향했다. 필요한 사진 촬영에도 시간을 많이 내며 한껏 장정을 즐길 수 있었다. 2레그의 최종목적지 에카테린부르크까지는 비교적 순조롭게 달렸다. 에카테린부르크는 우랄산맥 너머에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대척추 우랄을 넘었기 때문에 사실상 아시아의 서쪽 끝이다. 동양에서 서양으로 전달된 문화의 경계임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2레그 마지막 날 컴퓨터 기록에 따르면 전체 주행거리는 2,779km, 평균시속은 62km, 연비는 11.6km/ℓ 였다. 3레그에 참가할 팀의 도착날짜가 하루 남아 있는 탓에 멋진 인수인계식이 없어 허전했다. 자동차를 무사히 넘기고 난 뒤 참가자들은 보드카로 축배를 들었다. E320 CDI의 모든 성능을 발휘하여 지형과 기후를 극복하고 러시아 대륙을 횡단한 뜻깊은 대장정의 한 토막은 이로써 막을 내렸다.
Koln Karneval 부어라 마셔라, 쾰른의 다.. 2007-02-12
쾰른은 남부독일의 중심지로 로마시대 때부터 번영을 누린 곳이다. 로마는 사방으로 영토를 넓혀 라인강을 북쪽 국경으로 삼았는데, 북쪽 변방의 중심지가 쾰른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식민지라는 뜻의 Colonia에서 유래한다. 쾰른은 795년 카를 대제가 대주교구를 이곳에 설치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중세에는 한자동맹의 일원으로 상업과 교역 중심지 역할을 했다. 2차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복원작업을 거쳐 산뜻한 느낌을 주는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했다. 세상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있을 뿐이지만 쾰른에는 제5의 계절이 있다. 바로 도시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드는 쾰른 카니발 기간.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비슷한 시기에 축제를 벌이지만 쾰른 카니발에만 제5의 계절이란 별칭이 붙은 것은 축제에 대한 쾰른 시민들의 애정이 그만큼 대단하기 때문이다. 1823년 시작된 유럽 최대의 카니발 1823년 시작된 쾰른 카니발은 세계에서 가장 큰 축제 중 하나로 자리잡아 브라질의 리우, 이탈리아의 베니스 카니발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카니발은 원래 사순절(부활절까지 40일의 금욕기간)이 오기 전에 먹고 마시며 놀던 전통에서 비롯된다. 쾰른 카니발도 종교적 제의에서 시작되었으나 이제는 오락과 유희적인 성격만이 남았다. 유럽 최대의 축제답게 쾰른 카니발 기간 중에는 각국에서 관광객이 모여들어 광란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2005년에는 150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쾰른을 찾아 카니발의 열정을 마음껏 즐겼다. 카니발 기간에는 상점은 물론이고 쾰른의 상징인 대성당도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축제를 만끽한다. 축제기간 중 거리와 술집에서 만나는 독일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따뜻하고 쾌활하다. 쾰른 카니발은 매년 11월 11일 오전 11시 11분 쾰른 시내 구시가지 광장에서 수만 명의 인파가 모인 가운데 흥겨운 공연과 함께 시작되어 3개월간 이어진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하거나 춤을 추며 자축하고, 술을 나눠 마시기도 한다. 각양각색의 복장과 페이스페인팅을 한 사람들이 하루 종일 춤추고 마시고 노래 부르며 흥을 돋군다. 이날이 지나면 축제기간이라는 걸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한적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되는 2월이 되면 도시 전체가 열광의 도가니탕으로 돌변한다. 쾰른 카니발은 사순절 전의 6일간 절정에 달하는데, ‘여인들의 목요일’로 알려진 목요일에 시작되어 다음주 화요일까지 계속된다. 여인들의 목요일에는 이른 아침 전통의상을 입거나 독특한 분장을 한 여인들이 구시가지 광장에 모이기 시작해 11시 11분 공식적인 축제의 개막을 알린다. 여인들의 목요일은 글자 그대로 여자들의 날이다. 여자들이 떼지어 다니며 보이는 대로 남자들의 넥타이를 잘라 버린다. 길거리는 물론이고 학교와 회사에서도 넥타이를 잘라 버리기 때문에 이날만큼은 넥타이를 매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 여인들의 목요일부터 도시는 흥청대는 축제 분위기 속으로 빠져든다. 시민들은 일손을 놓고 카니발을 마음껏 즐긴다. 쾰른 카니발이 열리는 기간에 라인강 유역 도시들도 카니발을 펼치지만 많은 사람들이 쾰른 카니발을 즐기기 위해 모여든다. 이른 아침부터 쾰른역은 독일 전역에서 모여드는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들에게는 공동점이 있는데, 각양각색의 복장과 분장을 하고, 손에는 술병을 들었다는 점이다. 술 취하고, 싸우며 즐기는 축제 축제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지만 쾰른 카니발은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니발의 참가자들은 대부분 아침부터 밤 늦도록 술을 마신다. 시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도 술병을 들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축제기간 중에 소비되는 술만 수백억 원어치에 달한다고.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은 쾰른 근처의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맥주 쾰슈(Kolsch)로 맥주로 유명한 독일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맛이 일품이다. 평소에는 조용한 이곳이 축제 기간만큼은 시내 곳곳에서 경찰차와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끊이지를 않는다. 카니발 기간에는 곳곳에서 과음으로 쓰러진 사람, 사소한 시비로 뒤엉키는 사람 등 평소 독일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일탈행동이 자주 목격된다. 쾰른 카니발은 일탈행위조차 관대하게 수용한다. 적당한 일탈과 파격은 카니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쾰른 카니발은 ‘장미의 월요일’로 불리는 로젠몬탁(Rosenmontag)에 절정에 달한다. 이날은 모든 상가가 문을 닫고 백만 명이 넘는 사람이 뒤엉킨 가운데 11시 11분부터 화려한 도심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퍼레이드의 앞에서 수십 팀의 악대가 길을 트면 무개차, 기마대, 광대 등 다양한 행렬이 뒤를 따른다. 가장행렬이 지날 때면 거리에 늘어선 구경꾼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초콜릿을 달라며 “카멜레” 하고 외친다. 그러면 무개차에 탄 사람들이 과자와 사탕, 초콜릿, 꽃다발 등을 마구 뿌린다. 카니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행사로 꼬마들은 맨 앞에 서서 봉지를 들고 무언의 압력을 넣기도 한다. 시민들은 보안관, 신부, 수녀, 광대, 카우보이, 경찰, 중세기사, 인디언, 꿀벌 등 다양한 복장을 갖춰 입고 퍼레이드 뒤를 따른다. 카니발 기간에 참가자들이 써대는 카니발 의상과 소품비가 3억 유로가 넘는다니 그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일상의 억눌림 훌훌 털어 버리는 자리 6∼7시간에 걸쳐 벌어진 흥겹고 떠들썩한 퍼레이드가 끝나면 사람들은 바나 펍, 댄스홀, 레스토랑 등에 모여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카니발 노래를 부른다. 이처럼 흥겨운 축제 분위기는 화요일까지 이어지다 ‘재의 수요일’이 되면 서서히 막을 내린다. ‘재의 수요일’에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축제 기간 동안 벌인 방탕한 생활에 대한 속죄의 표시로 누벨(Nubbel) 인형을 태우는 행위가 벌어진다. 카니발이 종교적인 색채에서 놀고 즐기는 유희와 공동체를 단결시키는 기능으로 변했듯이 누벨 태우기 또한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축제기간의 방탕한 생활과 일탈에서 벗어나 일상생활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축제가 끝나면 부활절까지 40일 동안 고기를 먹지 않는 금욕기간이 시작된다. 한마디로 카니발은 금욕기간 전에 실컷 먹고 마시면서 일상에서 억눌렸던 삶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다. 쾰른 카니발은 ‘축제의 본질은 인간의 의식을 지상에서 가장 즐거운 상태로 끌어올리는 데 있다’는 프랑스 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참가자 모두에게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쾰른 카니발에서는 구경꾼은 찾아보기 힘들다.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축제의 열정과 흥겨움을 만끽한다. 질서와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독일 사람들도 축제기간만큼은 일상생활을 지배하던 이성을 접어두고 광란의 세계로 돌아가 억제된 감정을 한껏 발산한다. 박제된 일상의 공간과 생활에서 무뎌진 가슴에 다시금 삶의 열정을 불어넣어 주는 쾰른 카니발은 새로운 1년을 버텨 나갈 힘의 원천이요 희망인 것이다. 여행정보 교통 우리나라에서 쾰른까지 바로 가는 비행기는 없다. 아시아나항공이나 독일항공을 이용해서 프랑크푸르트로 간 다음에 비행기를 갈아타거나 기차로 쾰른으로 들어간다. 쾰른은 라인강 유역의 교통 중심지로 프랑크푸르트(1시간 30분), 뮌헨(4시간 30분), 하이델베르크(2시간), 베를린(4시간 30분) 등 독일 주요도시는 물론이고 암스테르담, 브뤼셀, 파리 등으로 매일 국제선 열차가 연결된다. 관광안내소 쾰른 중앙역 옆 대성당 맞은편에 있다. 쾰른 카니발의 일정과 퍼레이드 코스가 그려진 지도를 얻을 수 있다. 호텔 정보와 간단한 기념품도 판다. www.koeln.de 여행 팁 쾰른은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다. 게다가 카니발 기간에는 모든 상점과 박물관이 문을 닫는다. 쾰른의 대표적인 볼거리는 기차역 옆에 있는 대성당이니 도착하면 대성당을 돌아본 후, 카니발 퍼레이드를 즐기도록 한다. 라인강이 대성당 뒤로 흐른다. 호텔 카니발 기간 중에는 예약 없이 호텔을 구하기가 힘드니 가능하면 예약을 하고 간다. 예약을 못했다면 관광안내소에서 약간의 수수료를 받고 예약을 대행하니 고생하며 직접 찾아다니지 말고 관광안내소를 이용하자.
BVLGARI RESORT 2007-01-16
에메랄드빛 바다와 이국적인 풍경, 다채로운 민속축제까지 발리에서의 즐거움은 끝이 없다. 바로 이곳에 로맨틱한 즐거움을 더할 공간이 하나 더 생겼다. 신들의 놀이터라고 불러도 부족함 없을 불가리 리조트. 최고 브랜드에서 만든 리조트답게 불가리와 메리어트호텔 럭셔리그룹이 공동운영한다. 인테리어는 이탈리아의 유명 건축 디자이너 안토니오 치테리오가 맡았다. 오션 뷰를 자랑하는 최고급 풀 빌라 2006년 9월 문 연 불가리 리조트는 발리 섬 남단, 짐바란 반도 남쪽 끝 울루와뚜 사원 근처에 있다. 해안가에 수직으로 150m나 치솟은, 깎아내린 듯한 높은 절벽 위에 자리해 인도양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매력이다. 덴파사르 공항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린다. 불가리 리조트는 기본형인 침실 1개짜리 오션 뷰 빌라와 오션 클리프 빌라, 침실 2개짜리 투 베드룸 빌라 3채와, 최고급 불가리 빌라 한 채를 포함해 총 59채의 풀 빌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독립된 형태인 빌라는 두개의 메인 침실, 침실과 똑같은 크기의 욕실, 바가 있는 안락하고 커다란 거실, 넓은 테라스를 갖추고 있다. 모든 객실은 수영장이 딸린 ‘풀 빌라’로 완벽한 프라이버시와 고품격 휴식을 추구한다. 독특한 구도로 지어진 빌라에는 발리인들의 고전적인 예술의 조각들이 가득하다. 이 조각들은 현대적인 느낌과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환상적인 것은 전망이다. 모든 객실에서 인도양의 멋진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오션 뷰가 자랑. 수영장의 끄트머리를 지워 버릴 정도로 물이 가득한 개인 풀장 끝으로는 바다가 이어지는 듯하다. 머나먼 바다로 둥실 떠내려갈 것 같은 환상을 품에 안을 수 있는 특별한 추억은 불가리 리조트 에서만 가능하다. 휴식도 명품, 불가리 스타일을 만나다 불가리의 모든 객실에는 대리석 욕조, 스테레오 시스템, 각종 편의용품을 비롯해 금고, 무선 인터넷 커넥티비티 등이 준비되어 있다. 빌라 침실에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 침구와 발리 공예인들이 짠 침대보가, 또 발리 골동품과 ‘뱅앤올룹슨’ TV가 ‘믹스 앤 매치’되어 있다. 리조트 안의 이 모든 물건에는 ‘불가리’라는 브랜드가 쓰여 있다. 브랜드의 힘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불가리 리조트는 선탠하고 스파에 들렀다 앤틱 쇼핑을 즐기는 정도로, 휴식다운 휴식을 찾는 여행자들을 위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리조트 부대시설은 스파, 레스토랑 2곳, 야외 바, 수영장, 헬스장 정도뿐인데, 하나씩 따져 보면 그 멋과 품위가 다르다. 특히 불가리 리조트의 스타일은 ‘발리의 전통과 이탈리아 미감의 만남’으로, 전체적 인테리어는 발리 가옥의 전통을 살리면서 이탈리아적 감각으로 마무리해 이국적인 멋을 더한다. 불가리가 자랑하는 스파 하우스는 자바 섬에서 통째로 옮겨온 200년 넘은 목조건물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곳 불가리 리조트에 짝퉁은 없다. 미니바의 티스푼 세트부터 마치 갤러리처럼 보이는 매장에서 판매하는 골동품, 기프트 숍에서 판매하는 명품 불가리 상품까지 모두 오리지널이다. 독특한 멋과 함께 즐기는 레스토랑 밀라노의 불가리 호텔에서 이름을 딴 ‘the bar’는 깔끔한 이탈리아 스타일에 발리 장인의 기술이 만나 독특한 멋을 자아낸다. 바닷가 절벽의 가장자리에 있어 하루 종일 상쾌한 바람을 느낄 수 있으며, 웅장한 일몰을 바라보기에도 명당이다. 열대 아일랜드의 신선한 칵테일과 풍부한 맛의 이탈리아 커피를 즐기는 것도 특별하다. 인도네시안 새장의 이름을 딴 ‘산카르’(SANGKAR)는 전통적인 수탉의 새장에서 영감을 받아 테마로 했으며, 아시안 요리와 전통 발리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심플하면서 고급스러운 테이블과 발리의 장인이 디자인한 SANGKAR의 테이블보는 발리와 이탈리안 스타일을 모두 담고 있다. 70석의 좌석은 나무와 돌을 패널기법을 이용해 디자인되었고, 실외공간은 인도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태양이 하루 종일 들어오도록 설계되었다. 발리 최상의 레스토랑 ‘일 리스토란테’(IL RISTORANTE)도 불가리 리조트와 함께 오픈했다. 큰 유리잔, 이탈리안 린넨, 최상의 유기농 재료 그리고 빈티지 와인을 나무랄 데 없는 서비스와 함께 만날 수 있다.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이곳은 발리문화와 이탈리안 스타일을 완벽하게 조화시켰다. 특히 태국 왕실의 플라워 디자이너 사쿨 인타쿨(Sakul Intakul)이 디자인한 꽃장식과 캔들 라이트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한층 더 자아낸다. 로맨틱 패키지도 불가리! 불가리만의 특별한 로맨틱 패키지도 지나칠 수 없다. 신혼부부라면 헬리콥터 투어 코스 ‘불가리스 시그네쳐 익스피리언스’(Bulgari’s Signature Experience)를 놓치지 말라. 헬리콥터 안에서 매혹적인 울루와뜨 사원의 전망과 그림 같은 짐바란 해변을 관망한 후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비치에 착륙하여 둘만의 로맨틱한 순간을 보낼 수 있으며, 최고급 요리로 준비된 피크닉 런치를 즐길 수 있다. 타바난(Tabanan)의 서쪽 블라유(Blayu) 마을의 로얄 패밀리를 방문해 세기에 걸친 그들의 문화와 부유함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엣 홈 인 발리’(At Home In Bali)와 성스러운 바뚜르(batur) 산에 올라 해맞이를 볼 수 있는 ‘선라이즈’(Sunrise)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또한 그룹과 함께 산악자전거를 타고 조용한 페카투(Pecatu) 마을을 도는 코스와 짐바란 해변의 피시마켓투어를 하며 발리 어부들의 애환을 나누어 보는 코스도 마련되어 있다. 문의l제이슨여행사 02-515-6897, www.jasontravel.co.kr
빙하가 흐르는 알프스의 땅을 걷다 2007-01-16
유럽 여행자들에게 스위스와 알프스는 동경의 장소다. 하지만 스위스 인터라겐에서 출발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인 융프라우요흐(3천454m)를 단 하루 만에 둘러보는 여행만으로는 2% 부족하다. 봉우리 밑에 둥지 튼 산악마을에 머물며 알프스의 ‘흙’을 밟고 ‘향기’를 맡아야 유럽인들이 그토록 칭송하는 융프라우의 진정한 멋을 느낄 수 있다. 융프라우와 그곳에서 뻗어나온 알레치 빙하가 알프스 최초로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이곳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늘고 있다. 산악열차를 타고 아이거 북벽을 거쳐 융프라우요흐에 오르는 설렘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빙하 위에 자리잡은 산악마을 그린델발트는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기점일 뿐 아니라 다양한 체험의 숨은 아지트다. 이곳의 빙하는 아직도 움직이고 있고,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 등 세 개의 봉우리는 신나는 체험을 숨겨놓은 채 나란히 그린델발트를 에워싸고 있다. 그린델발트에서의 체험은 융프라우요흐에 오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봄, 가을이 되면 그린델발트는 호흡이 빨라진다. 하이킹, 바이킹, 트레킹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한겨울, 해질 무렵 문을 닫던 거리의 상가들은 이때만 되면 밤 10시까지 문을 연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배낭족들과 어울리며 고요한 마을이 흥청거린다. 배낭족들은 마르마르부루흐 계곡에서 번지점프를 하거나 자전거를 빌려 인터라겐까지 질주하기도 한다. 빙하가 녹은 뤼취넨계곡으로 래프팅 매니아들도 몰려든다. 수천m 설산 속을 가르는 패러글라이딩은 인터라겐 공원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패러글라이딩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듯 그린델발트는 작은 산악마을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트레킹과 각종 액티비티의 보물창고라는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거리의 상점들 역시 일상적인 관광상품이 아닌 트레킹, 액티비티 매니아들을 위한 용품들로 채워진다. 각종 장비를 배낭에 잔뜩 실은 채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거나 곤돌라에 오르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융프라우 지역에만 76개, 총 200km 트레킹 코스가 있고, 능선과 능선을 잇는 트레킹 코스는 꼬박 한나절이 걸린다. 바흐알프 호수가 만들어낸 데칼코마니 융프라우 일대 트레킹의 최고봉은 피르스트에서 체험할 수 있다. 해발 2천168m의 피르스트 마을에서 바흐알프 호수까지 이르는 트레킹 코스는 평이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어 이곳을 찾는 트레킹족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린델발트역에서 걸어서 10분. 피르스트로 향하는 곤돌라에 오르면서 가슴 설레는 트레킹은 시작된다. 곤돌라 아래로 펼쳐지는 정경 자체가 농익은 계절의 흐름과 짙은 알프스의 향기를 담고 있다. 세모지붕 샬레풍의 집들이 옹기종기 늘어선 가운데 양곱창처럼 지그재그로 늘어선 오솔길이 스쳐 지난다. 푸른 풀밭은 짙은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단풍숲과 어우러지고 그 시선은 하얀 설산으로 이어진다. 정상으로 향하는 산악열차들이 마을을 강처럼 에워싸며 고즈넉하게 오르는 모습도 보인다. 봉우리마다 흰눈이 덮였지만, 산마루로 내려오면서 집집마다 푸른 정원에 야생화를 피어낸다. 간이정거장인 보르트와 쉬렉펠트를 지나면 곤돌라의 종착점인 피르스트다. 이곳 피르스트에는 ‘마운틴 로지’라는 산장이 이방인들을 먼저 반긴다. 하루 묵을 수도 있고, 등산화도 빌릴 수 있으며 설산을 바라보며 그윽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곳이다. 로지 앞에는 설산이 내려다보이는 교회당이 자리잡았는데 이 고요한 산자락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한다. 열 평 남짓한 교회당이지만 창밖에 펼쳐지는 풍경만으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고 웅장한 결혼식이 될 것이라는 상상에 빠지게 만든다. 교회 밑은 이 일대 최고의 패러글라이딩 출발 포인트가 자리잡았다. 2천m 넘는 곳에서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를 바라보며 하늘을 나는 체험은 피르스트 트레킹의 또 다른 흥분촉진제다. 피르스트에서 시작되는 산행길은 키 작은 풀과 야생화로 가득 채워진다. 이곳은 낮은 평균 기온 탓에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단풍과 낙엽으로 채색된 산 아래 공간은 관목지대를 벗어나면서 푸른 풀밭으로 이어진다. 그 지리한 풀밭은 알프스의 젖소들에게는 귀한 터전이 됐다. ‘딸랑’거리며 귓전을 간지럽게 하는 소 방울소리는 산등성이를 가득 메우더니 산자락을 갈색 톤으로 뒤덮는다. 부드러운 풀에 매혹돼 쉴새없이 되새김질을 하던 이곳 소들은 가을을 넘어서면 보금자리로 돌아가는데 이 시기가 되면 소들의 행렬이 그린델발트 도로를 빼곡히 메우는 이색 광경을 볼 수 있다. 산행길에는 소들이 함부로 지나다닐 수 없도록 지그재그형 나무문을 만들어 놓았다. 나무가 자라지는 않지만 바흐알프 호수로 향하는 트레킹 코스에는 족히 4m는 됨직한 나무기둥들이 듬성듬성 꽂혀 있다. 이곳 산악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눈이 쌓였을 때를 대비해 길을 표시하려고 꼽아놓은 것이라는데 그 높이를 보면 이곳에 얼마나 눈이 많은 오는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산행길에는 융프라우에서 내려오는 거친 빙하수와 달리 산길을 따라 냇물이 졸졸 흐르는 정겨운 장면이 연출된다. ‘끼익끼익’ 새소리를 내며 알프스 바위에서만 서식하는 두더쥐과의 마벗도 발견할 수 있다. 1시간 30분 남짓 여유롭게 계속된 산행은 그 높은 산자락에서 그림 같은 호수를 만나는 것으로 큰 숨을 돌린다. 바흐알프는 이곳 스위스 홍보책자에 단골로 등장하는 호수로 설산과 베르니즈 알프스의 봉우리가 데깔코마니로 찍어낸 듯 대칭을 이루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대부분의 산행객들이 갈 길을 멈추고 호수의 정경에 한동안 넋을 잃거나 아예 바닥에 주저 앉아 간식을 먹기도 한다. 빙하가 녹아 형성된 이곳 호수는 물이 너무 차가워 고기도 살지 못하고 수영을 할 수도 없다. 피르스트 산행의 재밋거리는 하산길에도 숨어 있다. 곤돌라를 타고 보르트에 내리면 짜릿한 그린델발트까지 신나는 액티비티를 체험할 수 있다. 이곳에서 대여해주는 스쿠터 바이크를 타고 꼬불꼬불 오솔길을 따라 알프스마을의 구석구석을 더듬으며 질주하면 페달도 없는 자전거가 웬만한 스피드 바이킹을 능가하는 재미를 선사하다. 그린델발트의 곤돌라 출발점까지 스릴 넘치는 코스가 이어지며 산행의 땀방울이 알프스의 산바람과 함께 저절로 식혀지는 묘미가 있다. 120m 빙하계곡에서 스릴 넘치는 점프를 산행을 마친 뒤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이색체험을 즐기고 싶다면 그린델발트 인근의 마르마르브루후 협곡으로 향한다. 깎아지른 절벽이 양쪽에 내리꽂힌 협곡 사이에 덩그러니 점프대가 놓여 있는데 국내 번지점프대의 높이가 50m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무려 70m나 더 높은 곳에서 극한체험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점프대 양쪽에는 빙벽들이 날카롭게 솟아 스치기만 해도 몸이 박살날 것 같은 공포감을 불러 일으킨다. 협곡 사이에서 뛰어내리는 점프는 이곳 사람들에게 ‘캐니언 점프’(canyon jump)로 불리며 아래로 급강하한 뒤 매달린 줄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협곡 사이를 가로지르게 된다. 위아래에 보호장비가 완벽하게 착용되면 서명부터 받는데 대충 훑어보면 ‘이대로 죽어도 괜찮다’는 내용으로 서약서의 마지막 내용마저 가슴을 섬뜩하게 만든다. ‘어머니는 내가 이곳에 온 것을 모른다.’ 몸무게를 잰 뒤 손에 써준 몸무게 숫자가 천당행 번호표 같다는 몽롱함을 뒤로하고 뛰어내리면 멀리 발 아래로 그린델발트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고개를 쳐들면 알프스의 준봉들이 우뚝 솟아 있다. 1초. 2초. 공중 부양된 몸이 가속도를 받아 아래로 꽂힐 때의 아득함. ‘샤악 샤악 ‘ 귓전을 가르는 제트기 소리들. 뚱딴지 같은 생각 속에 단 2초 동안 느끼는 쾌감이지만 알프스, 그것도 융프라우에서 번지점핑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뿌듯하게 만든다. 심장 뛰는 감동의 체험은 융프라우 일대 곳곳에서 가능하다. 100년 넘은 오래된 톱니바퀴 열차를 타고 쉬니케 플라테에 오른 뒤 정상 산장에 묵으면 융프라우의 3형제 봉우리들이 태양의 방향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얼굴을 바꾸는 장면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야외콘서트가 펼쳐지기도 하며 알파인 야외식물원을 감상한 뒤 야생화를 보며 트레킹을 하는 코스도 마련되어 있다. 인터라겐의 숨겨진 명소인 하더쿨룸 역시 로프 기차를 타고 올라 이 일대 봉우리를 여유롭게 조망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노곤한 산행 후, 땅거미가 내리면 그린델발트 마을 노천 바에 앉아 이곳 전통맥주인 뢰겐브로이 한 잔을 마신다. 한낮에 눈을 지치게 했던 화려한 경관은 알코올에 희석돼 몽롱하고 아득하게 뇌리를 스치고 지난다. 아이거 북벽과 융프라우를 바라보며, 빙하가 녹아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알프스 정상으로 별이 쏟아지는 정경만 바라봐도 융푸라우와 그린델발트는 지우지 못할 진한 추억이 된다. 교통 스위스의 관문인 취리히나 베른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인터라겐으로 간다. 인터라겐 서역(west)에 도착한 뒤 동역(ost)으로 이동해 산악열차를 타고 그린델발트로 향한다. 산악열차는 그린델발트행과 라우터브루넨행이 구분되니 주의할 것. 단체의 경우 좌석 예약 확정서를 제출하고 반드시 지정된 좌석에 앉아야 한다. 열차 밖 창가에 예약석이 표시돼 있다. 왕복구간에서 검표원이 항상 표를 검사하니 반드시 기차표를 소지할 것. 융프라우 구석구석을 즐기고 싶은 트레킹족이라면 3일 동안 융프라우 철도 노선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융프라우 VIP 패스를 이용하는 게 편하다. 융프라우 철도 한국지점인 동신항운(www.jungfrau.co.kr, 02-756-7560)에서 이곳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숙소 그린델발트는 호텔 위치에 따라 아이거, 융푸라우의 조망이 달라진다. 이곳의 캠핑장 시설은 호텔급이며, 클라이네 샤이덱을 지나 자리한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아이거그렛처에 숙소를 잡은 뒤 아이거 북벽 인근 하이킹을 즐길 수도 있다. 그린델발트역 앞의 레지나 호텔은 채시라 부부가 허니문을 즐긴 곳으로 스파시설도 갖추고 있다. 환율 1스위스 프랑=750원. 콘센트는 구멍이 세 개. 대부분 특급호텔에는 220, 110V용 어댑터가 마련되어 있다. 음식 인터라겐 지역의 전통 맥주인 뢰겐브로이를 마시는 기회를 놓치지 말 것. 또한 스위스에서 반드시 먹어야 할 것이 치즈 퐁듀와 와인이다. 퐁듀는 알프스 고지대 사냥꾼들이 모닥불 옆에서 굳은 치즈를 녹인 뒤 빵을 찍어 먹은 것에서 유래한다. 2, 3종류의 치즈에 와인을 넣고 끓인 치즈 퐁듀가 대표적이다. 기다란 포크에 찍어 먹는데,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는 게 좋다. 스위스의 화이트 와인은 대부분 내수용으로 하우스 와인이 주종이다.
매혹적인 남인도 순례여행 인도 남부 타밀나두(Tam.. 2007-01-16
타밀나두의 따스한 기운 퐁갈 축제가 열리는 타밀나두 주는 탄자부르, 티루치라팔리, 마두라이의 사원촌에 있는, 화려하게 조각된 사원탑과 고프람이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운 곳이다. 이런 고대 문화유산과 함께 프랑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폰디체리(연방정부 직할구), 코다이카날(Kodaikanal)의 아름다운 구릉지, 땅끝 마을 카니야쿠마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룬 도시다. 타밀나두의 주도이며 문화 중심지인 첸나이로 순례여행을 떠나보자. 35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첸나이(Chennai)는 고대 유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 주는 남부지방의 관문이다. 사원과 성지에서 성채와 궁전까지, 풍부한 사적과 과거의 영광이 현재와 어우러져 생생하게 살아 있다. 특히 촐라 청동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미술관은 꼭 들러보아야 할 곳이다. 건축물 중에 가장 눈을 휘어잡는 것은 카파레스와라루 사원. 복잡하게 조각된 거대한 고푸람(관문)이 하늘 높이 솟아 있어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8세기에 지어진 아름다운 건물로, 크리슈나 신에게 봉헌되었다는 파르타사라티 사원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사무국과 입법 회의소로 사용되고 있는 세인트 조지 성은 첸나이 역사에서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성 안에 있는 세인트메리 교회는 서기 1680년에 헌당되었으며, 동양에서 가장 오래 된 영국 성공회 교회다. 이 외에도 아름다운 교회인 산톰 사원이 있는데, 이 곳은 서기 52년 인도에 기독교를 전도한 세인트 토마스라는 전도사가 마지막 안식을 구한 장소다. 건축순례가 끝났다면 마리나와 아름다운 엘리어트 해변으로 가 보자. 구인디의 사슴 공원과 뱀 공원도 빼놓을 수 없다. 고대의 전통과 문화가 현대적인 문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곳, 공존의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임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부 인도인들의 퐁갈 축제 타밀나두가 따뜻한 이유는 퐁갈(Pongal) 축제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퐁갈은 남부 인도인들이 풍성한 추수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4일 동안 여는 축제로 우리나라의 추석과 비슷하다. 타밀나두에서는 퐁갈(Pongal), 인도 중부지역에서는 산크란티(Sankranti), 아쌈(Assam)에서는 부갈리 비후(Bhugali Bihu) 등으로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4일 간의 축제는 첫날인 보기(Bhogi Festival), 둘쨋날인 수르야 퐁갈(Surya Pongal), 셋째날인 마투 퐁갈(Maatu Pongal), 그리고 마지막날인 카눔 퐁갈(Kaanum Pongal)로 진행되고, 올해에는 1월 14일부터 17일까지 축제가 열린다. 첫날 보기에는 오래 되고 낡은 옷가지며 물건들을 내다 버리고 불태우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한 해를 맞이하는 의식을 행한다. 다음날에는 축제의 이름과 같은 퐁갈을 준비하는데, 퐁갈은 아침에 신선한 우유를 데우는 것을 말한다. 이때, 우유가 끓어 넘치도록 그냥 놓아둔다는데, 바로 한 해 동안의 번영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이 날은 햅쌀로 밥을 지어 이웃, 친지들과 음식을 나누며 한해 인사를 나눈다. 셋째 날은 1년 농사를 함께 한 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날로, 지역에 따라 소 경주가 열리기도 하고 쇠뿔에 지폐를 달아놓고 젊은 남성들이 이를 잡아채는 놀이가 진행되기도 한다. 마지막날에는 친지들을 찾아 집안 어른에게 인사를 한다. 인사를 받은 어른들이 답례로 아랫사람들에게 작은 돈을 건네주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네 설날과 비슷한 풍습이다. 그 밖의 볼거리 탄자부르(Thanjavur) 카르나티크 음악, 악기, 춤, 전통 수공예품의 본고장 탄자부르는 브라하디스와라르 사원으로도 유명하다. 미술관과 사라스와티 마할 도서관 역시 흥미로운 장소로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티루바이야루, 티루칸디유르, 쿰바코남, 티루후바남, 다라수람 모두 40km 반경에 있어 일주가 가능하다. 티루치라빨리(Tiruchirappalli) 티루치라빨리는 높이가 83m가 넘는 석축 요새와 사원으로 유명하다. 티루바나이카발에 있는 스리 랑가나타스와미 사원(스리랑감)과 시바 사원 그리고 사마야뿌람 마리암만 사원도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마두라이(Madurai) 타밀나두 제2의 도시로서 뾰족한 고플람과 희귀한 조각이 있는 미낙시 사원으로 유명하다. 놓쳐서는 안될 볼거리로는 티루마라이 나이케르 궁전에서 열리는 빛과 소리 공연, 마리암만 호, 쿠달 아쟈가르 사원, 간디 박물관 등이 있다. 카나쿠마리(Kanyakumari) 해변 인도의 땅끝. 카냐쿠마리 혹은 코모린곶이라 불리는 이 곳은 벵골만, 인도양 그리고 아라비아해의 3대양이 둘러싸고 있는 독특한 장소로, 3대양이 합류하는 지점을 ‘트리베니 상가맘’이라고 부른다. 아름다운 해돋이와 낙조를 볼 수 있으며, 다양한 색깔의 모래가 특징이다. 코다이카날(Kodaikanal) 마두라이에서 약 120km 거리에 있는 코다이카날은 해발 2,133m에 위치해 있으며 녹음에 둘러싸인 별 모양의 호수가 유명하다. 코다이시에서 21km 떨어진 곳에 골프장, 쿠린지 안다바르 코일 사원, 녹색 계곡, 셴바가누르 박물관, 돌고래 코, 베리잠 봉 등이 있다 자료제공: 인도관광청 ☎ (02)2265-2235 www.incrediblein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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