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Salzburg 모차르트의 선율이 흐르는 도시 2008-03-12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의 모든 추억은 ‘YOHO’라는 중앙역 근처의 유스호스텔에서 시작된다. 배낭족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이 유스호스텔은 잘츠부르크를 거쳐가는 청춘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묵게 되는 숙소다. ‘YOHO 유스호스텔 101호.’ 잘츠부르크 출신인 모차르트의 탄생 주간이나 국제 음악제가 열릴 때면 오스트리아 전역이 들썩거리지만 팔자의 기억 대부분은 그곳 유스호스텔로 향하는 길목에 머물러 있다. 침대 4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101호에 나흘 동안 머물면서 독일 뮌헨을 다녀 왔고, 인근 호수마을 할슈타트를 보고 왔다. 우연히 만난 여인과 장미꽃 가득한 미라벨 정원을 걸은 뒤 오스트리아의 쌉싸름한 맥주를 마시고 다시 잠을 청한 곳도 101호였다. 물론 기억을 감싸는 잘츠부르크에 대한 인상이 오롯이 그 퀴퀴한 건물 하나의 힘 때문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잘츠부르크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도시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이곳에서 촬영됐으며 체코 프라하와 함께 ‘북쪽의 로마’로 불릴 만큼 중세의 건축물들이 많다. 그러기에 굳이 기억하려면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는 호엔잘츠부르크 성이나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는 빛 바랜 게트라이데 거리, 혹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됐던 바로크 양식의 미라벨 정원을 떠올리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짙은 톤으로 채색돼 있는 데 반해 골목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작은 건물들은 자기만의 개성을 간직한 채 고풍스러운 도시에서 고유한 색깔을 드러내며 이방인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미라벨 정원 아담한 잘츠부르크 거리는 반나절이면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규모다. 도시는 시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잘차흐 강을 중심으로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뉜다. 바게트 빵 한 개와 사과 한 개를 들고 미라벨 정원의 벤치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간단한 아침식사를 즐길 수 있고, 산책 삼아 다리를 건너면 고풍스러운 구시가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구시가지 구경의 큰 재밋거리는 좁고 오래된 거리인 게트라이데 거리를 거니는 것이다. 골목의 간판들은 팔리는 물건을 상징하며 걸려 있는데 허리띠, 우산 모양 등의 간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그 거리 중앙 노란색 5층 건물에 흰색과 빨간색의 오스트리아 국기로 장식된 건물이 바로 모차르트 생가다. 잘츠부르크에는 온통 모차르트를 상징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모차르트 광장과 모차르트 동상, 모차르트 박물관을 비롯해 모차르트 초콜릿, 모차르트 향수도 곳곳에서 팔리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죽음이란 더 이상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며 모차르트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사실 잘츠부르크에서 반드시 먹어봐야 할 것이 바로 모차르트 쿠겔른 초콜릿이다. 1890년 제과 요리사에 의해 만들어진 이 초콜릿은 다크 초콜릿에 캐러멜과 아몬드 등을 겹겹이 싼 것으로 잘츠부르크의 명물이 됐다. 겉포장에 모차르트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위대한 음악가의 얼굴이 초콜릿에 인쇄돼 팔리고 있는 것을 보니 지나친 마케팅 전략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게트라이데 거리와 레지던츠, 모차르트 광장을 거닐다 보면 사연 있는 장소들과 조우하게 된다. 모차르트 동상 앞에 자리한 200년 전통의 토마젤리 카페는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즐겨 찾은 곳으로 아이스비엔나 커피가 유명하다. 또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에는 6,000개의 파이프로 만든 파이프오르간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잘츠부르크 거리에서는 여느 도시들처럼 거리의 악사나 미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 예술도시라는 명성답게 이곳에서 연주하는 음악가들은 힘겨운 오디션을 통과한 실력자들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만난 한 오르간 연주자는 거리의 악사의 연주에 매료돼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거리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풍경들은 벽처럼 우뚝 솟은 호엔잘츠부르크 성에서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첫 장면을 장식했던 철옹성 같은 이 성은 아름다운 야경으로도 유명한데, 잘차흐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해질 무렵 게트라이데 거리에서 호엔잘츠부르크 성으로 이어지는 야경을 감상하려는 사람들로 언제나 붐빈다. 잘츠부르크가 더욱 매력적인 것은 이곳을 기점으로 두세 시간이면 신나고 멋진 인근 지역에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독일 뮌헨까지 열차로 2시간. 옥토버페스트 등의 축제가 열릴 때면 20유로(약 2만7,500원)에 4명이 뮌헨까지 왕복할 수 있는 특별 할인티켓이 판매되기도 한다. 특히 잘츠부르크 인근의 호수마을인 할슈타트는 드라마 ‘봄의 왈츠’에도 나왔던 곳으로 최근 한국 배낭족들이 펜션에 머물며 아름다운 풍광을 만끽하는 단골 코스다. 또한 잘츠부르크는 인근에 암염광산이 있어 ‘소금(Salz)의 성(burg)’으로 불리기도 했다. TRAVEL TIP 물가가 비싼 잘츠부르크이지만 노천카페를 겁내지 말 것. 분위기 좋은 노천 바의 500cc 생맥주 한 잔이 1~2유로(약 1,370∼2,750원) 이니, 1만 원 정도면 그윽하게 취할 수 있다. YOHO 유스호스텔은 중앙역에서 15분 거리. 홈페이지(www.yoho.at)에서 시설을 살펴보거나 예약할 수 있다. 실제 이용할 때는 전화로 예약하는 게 훨씬 간편하다. 1박에 15~ 20유로(약 2만600∼2만7,500원). 잘츠부르크는 오스트리아 빈, 독일 뮌헨, 스위스 취리히에서 들어갈 수 있는데, 독일 뮌헨에서 가는 것이 가장 가깝다. 잘츠부르크 관광카드를 구입하면 시내의 모든 교통수단과 관광지를 추가요금 없이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잘츠부르크 시내는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것. 미라벨 정원 앞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를 신청하면 마리아 수녀의 수녀원, 결혼식을 올렸던 교회, 잘츠캄머굿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일본의 옛 모습을 간직한 곳 오감의 천국, 일본 가.. 2008-03-12
멀리 하쿠 산(白山)이 하얀 눈을 덮어쓰고 있다. 겐로쿠엔(兼六園)에도 눈발이 휘날린다. 아름드리 소나무 위에도, 이끼로 뒤덮인 땅바닥에도, 찻집 지붕 위에도, 석등 위에도 눈이 내린다. 허나, 가는 세월과 오는 봄을 막을 장사는 없어 눈은 이내 녹아 땅속으로 스며들어 겨우내 잠자던 생명을 깨운다. 얼레지 꽃대가 땅 위로 고개를 쳐들고 매화의 꽃망울은 처녀 젖가슴처럼 부풀어 올랐다. 어둠살이 스멀스멀 겐로쿠엔의 밤안개처럼 스며든다. 눈발이 그치고 어느새 소나무 가지 위에 초승달이 걸렸다. 찻집에 불이 켜지고 게이샤 집에도 불이 켜진다. 사미센(일본의 현악기) 선율에 맞춰 게이샤의 노랫가락이 애잔하게 흘러나온다. 남풍이 봄을 싣고 오네 / 하늘엔 종달새 울고 / 들판엔 민들레꽃이 / 노랑물을 들였네 / 봄냄새가 코끝에 매달리는데 / 매화꽃은 벌써 / 봄바람에 흩날리네 먹거리 축제, 푸드 피아 게이샤(기생)는 떨어지는 매화꽃잎이 안타까운 마음에 두 손 벌려 받는 시늉으로 춤사위를 만든다. 오감이 호사를 누린다. 소나무에 걸린 초승달, 겐로쿠엔 연못 속에서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불빛, 부채를 든 게이샤의 춤사위가 시각을 호사시킨다. 사미센의 선율, 끊어질 듯 이어지는 봄노래가 청각을 호사시킨다. 코끝에 매달린 봄 냄새가 후각을 호사시킨다. 하쿠산 사케와 칸부리(겨울방어) 뱃살회가 미각을 호사시킨다. 늦은 밤, 온천에 몸을 담그니 촉각이 호사한다. 가나자와는 일본 본 섬 한가운데 동해 쪽에 있는 해안 도시로, 서쪽으로 위도를 따라 평행선을 달리면 우리나라 강릉이다. TV나 영화에서 일본의 시대극을 볼 때, 세트가 아닌 거리풍경이나 동네가 나오면 극중에서는 교토도 되고 오사카도 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이 가나자와다. 가나자와는 이시가와 현의 현도로 인구 45만의 번잡스럽지 않은 깨끗한 소도시다. 어째서 이 도시는 일본의 옛 모습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을까? 에도시대를 거치며 일본 전역이 사무라이의 칼에 피가 튀고 마을은 화염에 휩싸이고 성벽이 무너지는 전란을 겪었지만, 이곳 가나자와는 번주가 바보짓으로 자신을 감추어 일본열도 열강들의 공격을 피했다. 게이샤 동네인 히가시 거리와 사무라이 동네인 나가무치는 그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히가시 거리에 어둠이 내리면 은은한 사미센 선율이 바람을 타고 골목을 떠돈다. 가나자와가 자랑하는 겐로쿠엔에 발을 디디면 먼저 불가사의한 현상에 의아해진다. 일본 3대 정원인 드넓은 겐로쿠엔은 가나자와성 공원 언덕 위에 있는데 어디를 가도 물 천지다. 휘돌아 흐르는 개천과 호수 같은 연못, 떨어지는 폭포 등 모두가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 수정같이 맑은 흐르는 물이다. 어떻게 이 넘치는 물이 이 언덕 꼭대기까지 쉼 없이 올라올 수 있을까? 멀리 하쿠 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석관을 타고 땅속으로 이어져 이곳 언덕 위까지 수압차로 올라오는 것이다. 에도시대에 만들어졌다니 벌린 입을 다물 수 없다. 기묘한 수목들, 형형색색의 기화요초, 아름다운 정자, 기암괴석……. 겐로쿠엔에 들어가면 동화의 나라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가나자와는 지리적으로 독특한 환경을 자랑한다. 산과 바다, 강과 들판이 한데 모인 곳에 도시가 앉았다. 매년 5월 하순까지 하얀 눈을 덮어쓴 높이 2,702m의 하쿠 산이 가나자와를 병풍처럼 두르고, 파도가 춤을 추는 동해가 얼굴을 맞대고 있다. 아담한 이 청정도시는 명산과 바다를 끼고, 그것도 모자라 백산의 눈 녹은 물이 몇 가닥 강이 되어 도시를 이리저리 수놓으며 흐른다. 하지가 가까워오면 은어 떼들이 햇살에 반짝이는 은 조각처럼 강으로 올라오고, 가을이 되면 연어 떼가 시커멓게 올라온다. 하지만 가나자와 시에 산과 바다만 끼어 있는 것은 아니다. 드넓은 벌판엔 하쿠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사시사철 관개되어 가을이 되면 들판이 황금색으로 덮인다. 산 좋고 들판 좋고 물 좋은 곳에 먹거리가 풍성하지 않을 수 없다. 학산 자락엔 온갖 산나물과 청정채소가 쏟아져 나오고 황금 들판엔 찰진 쌀이 바리바리 나온다. 바다에서는 온갖 생선이 만선을 이룬다. 그래서 가나자와 시의 만석꾼은 부자 축에도 못 낀다는 말이 있다. 2월 한 달, 가나자와는 먹거리 천국인 푸드 피아(Food Pia)로 떠들썩하다. 일본에서도 가나자와 음식은 우리나라의 전주 음식만큼이나 이름나 있다. 한 달 내내 기발한 음식 이벤트가 쏟아져 나와 일본 전역에서 몰려든 미식가들을 미치게 한다. 배우, 작가, 가수, 요리 연구가 등 기라성 같은 유명인이 이 식당 저 식당에 포진해 손님들과 함께 식사하며 온갖 얘기꽃을 피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식당과 간장 양조장에서 맛을 보며 요리비법을 들어보는 노점포(老店鋪) 야화, 겐로쿠엔에 있는 전통식당 7군데서 열리는 겐로쿠엔 눈 구경 연회, 중앙공원에서 열리는 왁자지껄한 포장마차 축제는 그야말로 푸드 피아 랜드다. 인간의 2대 본능은 식욕과 색욕이다. 자기보존 본능인 식욕은 종족 보존의 색욕보다 상위개념이다. 먹을 때 가장 행복하다.
자연이 빚은 위대한 걸작품 The Great Oce.. 2008-03-05
지금도 곧잘 회자되고 있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문구를 기억하는지. 모 카드회사의 광고 카피인 이 문구는 한동안 최고의 유행어였다. 이 카피와 더불어 한 쌍의 연인이 시원스레 뻗은 도로를 차를 몰고 질주하는 장면은 TV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켰다. TV 광고에 등장한 도로가 바로 그레이트 오션 로드로, 호주 멜버른 남서쪽으로 300㎞에 걸쳐 뻗어 있다. 매혹적인 해안 드라이브 코스 이 도로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이유는 아름다운 해변과 단애의 절벽이 끝없이 펼쳐지는 매혹적인 풍경 때문이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는 구불구불할 뿐만 아니라 바다가 말굽처럼 뭍을 파고들어 기묘한 풍경을 연출한다. 또한 양쪽으로 수평선과 지평선이 나란히 펼쳐져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1930년대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닦은 길이다. 대공황 당시 오스트레일리아 인구의 25% 이상이 실업 상태였다. 실업난을 해소하기 위해 멜버른 서쪽의 아름다운 해안에 도로를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도로 건설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가져왔다. 교통이 원활해지면서 인구와 물동량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지금은 멋진 풍광을 감상하기 위해 각국에서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멜버른 남서쪽의 서핑 명소인 토키(Torquay)에서 시작된다. 토키는 매년 국제서핑대회가 열리는 서핑의 메카다. 부활절을 전후해서 열리는 서핑대회 기간에는 세계에서 몰려든 서퍼들로 작은 마을이 북적거린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서핑 캐피탈’로 불리기도 하는 이곳에서는 TV나 영화처럼 거대한 파도를 넘나들며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토키 인근의 벨스 비치는 키아누 리브스와 패트릭 스웨이지 주연의 영화 ‘폭풍 속으로’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FBI 수사관인 키아누 리브스가 오랜 추적 끝에 붙잡은 거물급 악당이자 서퍼인 패트릭 스웨이지를 폭풍 속 바다로 몰아낼 수밖에 없었던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과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밀려오는 파도가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절벽과 조화를 이루는 12사도 바위 토키에서 조금 더 가면 리조트와 부티크, 레스토랑이 즐비한 휴양도시 론이 나온다. 론은 멋진 해변과 울창한 삼림으로 덮인 주립공원이 있어서 멜버른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휴양지다. 론에서 1시간 남짓 가면 아폴로 베이다. 낚시와 휴식을 취하기에 적당한 아폴로 베이에는 아름다운 해변이 길게 뻗어 있는 데다 초원으로 된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어 평화로움이 감돈다. 아폴로 베이의 해변은 파도가 잔잔한 편이고 나무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어 잠시 드라이브를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이 많다. 아폴로 베이를 지나면 곧 오트웨이 국립공원이 펼쳐진다. 이곳은 캥거루, 월러비를 비롯한 야생동물의 보금자리로 유칼립투스 나무가 빽빽이 자라고 있으며 계곡과 폭포도 있다. 캥거루나 월러비가 도로로 뛰어들어 사고를 유발하는 경우가 있으니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또한 캥거루는 야간에 불빛을 보고 뛰어드는 습성이 있어 밤운전을 할 때는 바짝 긴장해야 한다. 오트웨이 국립공원에서 서쪽으로 조금 더 가면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하이라이트인 포트캠벨 국립공원이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소개하는 엽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12사도 바위, 런던 브리지, 로크 아드 계곡 등이 이곳에 몰려 있다. 굽이굽이 병풍처럼 둘러친 황토 빛 절벽을 뒤로 하고 거대한 파도를 맞으며 버티고 있는 12사도 바위(Twelve Apostles)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서 가장 극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예수의 열두 제자를 일컫는 12사도 바위는 바다에서 불쑥 솟아난 듯 무리를 지어 서 있어 웅대한 풍경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인류의 역사보다 더 오래된 12사도 바위도 도도한 시간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지, 밑동부터 서서히 파도에 깎여 나가고 있다. 두 개의 사도상은 오래 전에 사라져 버렸고, 또 다른 상도 붕괴 직전이다. 절벽 위에 세워진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바다는 시시각각 다른 느낌을 전한다. 한낮의 태양과 바람의 힘을 받아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파도가 칠 때는 거친 생명력이 느껴진다. 반면에 석양의 붉은 기운이 번지면 부드럽고 달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 놓은 나무 발코니에 서면 12사도 바위가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아찔한 아름다움 지닌 로크 아드 계곡 12사도 바위에서 4km 정도 가면 로크 아드 계곡이 나온다. 로크 아드는 1878년에 난파한 배의 이름으로, 런던에서 멜버른으로 이민자들을 싣고 오던 중 기상악화로 이곳 해안 절벽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54명이 탔던 배의 생존자는 18살의 수습 승무원인 톰과 가족을 따라 이민선에 오른 18세의 아일랜드 소녀 에바뿐이었다. 파도에 휩쓸린 채 협곡 안의 해안으로 밀려온 두 사람은 해안가 석회암 동굴로 피신해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구조되었다. 언론매체들이 이 사실을 연일 대서특필하면서 로크 아드 계곡은 유명해졌다. 계곡 입구에는 희생자 묘비가 서 있다. 파란색 잉크를 풀어 놓은 듯 짙푸른 남태평양과 해안 절벽,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백사장이 눈을 의심하게 한다. 로크 아드에서는 150여 척의 배가 침몰해 ‘난파해안’이라는 섬뜩한 별명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배가 거센 파도와 짙은 안개, 기관 고장으로 난파했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해안 가까이 접근하다 침몰한 배도 있으리라. 고래를 잡다 침몰한 포경선, 이민선, 탐험선 등 여러 가지 배들이 거친 파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포트켐벨 국립공원에서 빼놓을 없는 명소가 런던 브리지. 그레이트 오션 로드가 만든 경이로운 작품 중 하나인 런던 브리지는 파도에 깎인 두 개의 아치형 사암 덩어리가 런던 브리지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파도가 절벽에 부딪칠 때마다 우레 같은 소리를 내던 런던 브리지는 1990년 파도에 한 쪽이 붕괴되어 옛 모습을 보기 힘들다. 다리가 붕괴될 때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서 TV로 중계되었을 정도로 전국민의 관심사였다고 한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19세기에 개척된 항구 마을인 워남불에서 끝난다. 워남불은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서 가장 큰 도시로, 6∼10월에 산란을 위해 찾아오는 서던 라이트 고래로 유명하다. 이 고래는 현재 2천 마리 정도가 남아 있는 희귀종이다. 워남불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는 플래그스태프 힐 해양마을로 19세기의 워남불을 재현해 놓았다. 당시의 건물과 배, 해양 관련 사진, 각종 도구 등 혼란스러웠던 개척시대의 풍경과 워남불 항구를 밝혀 주었던 등대가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훗날 지금의 풍경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연이 인간에게 준 위대한 선물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풍경이 언젠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의 삶에 잠시 브레이크를 걸고 자연의 울림을 듣고 싶다면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달려 보자. ● 교통 호주 멜버른까지는 대한항공이 일주일에 세 번(월, 수, 금) 직항한다. 그리고 경유편으로는 일본항공, 콴타스항공, 싱가포르항공 등이 있다. 멜버른에서 차를 빌리거나 투어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매력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차를 빌리는 것이 좋다. 투어버스를 이용하면 곳곳에 산재해 있는 멋진 경치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 환율 2008년 3월 현재의 환율은 1호주 달러=870.72원이다. 호주에서는 현금 외에 여행자수표나 신용카드를 쉽게 사용할 수 있다. ● 주요 도시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는 많은 마을과 볼거리가 있다. 그중 론과 아폴로 베이, 포트캠벨 국립공원, 워남불 등이 들를 만하다. ● 호텔 그레이트 오션 로드 곳곳에 저렴한 유스호스텔과 중급호텔, 고급 리조트가 있다. 찾기 쉬운 곳에 있어 숙소 걱정은 안해도 된다. 차를 빌려서 여행할 경우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숙소를 정하면 저렴한 값에 머물 수 있다.
신명나는 밴드와 가면들의 향연 Basel Fasnach.. 2008-02-05
스위스는 여행에 대한 로망을 갖게 하는 나라다. 눈 덮인 알프스와 목초지, 샬레 스타일의 통나무 집, 에메랄드빛 호수 등 신의 선택을 받은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연경관이 빼어나다. 스위스의 많은 도시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운 호수와 알프스의 절경을 배경으로 한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리 잡은 중세풍 도시는 한번쯤 그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때문에 엄청난 물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유럽 여행자라면 스위스를 들르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독일, 프랑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바젤은 일반적인 스위스 도시들과 조금 다르다. 상업과 교통의 요지인 바젤은 독일, 스위스, 프랑스 세 나라의 문화적 특성이 뒤섞인 도시여서 어느 곳보다 활기차고 바쁘게 돌아간다. 사순절과 함께 열리는 스위스 최대의 축제 바젤은 1년 내내 활기차지만 2월에는 유독 생동감이 넘친다. 스위스 최대의 축제 중 하나인 바젤 파스나흐트(Fasnacht)가 열리기 때문이다. 파스나흐트는 카니발의 스위스식 표현. 수백 년 전통을 자랑하는 바젤 카니발은 사순절로 접어드는 2월 중순에서 3월초 월요일, 새벽 4시부터 목요일 새벽 4시까지 72시간 동안 이어진다. 바젤 카니발의 기원은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수백 년 동안 조금씩 달라지고 개선되어 스위스의 대표적인 겨울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카니발 기간의 바젤은 밤낮없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기차역은 카니발을 보기 위해 유럽 전역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새벽부터 북적거린다. 축제 첫날인 월요일에는 새벽 4시부터 수백 개의 팀이 다양한 가면을 쓰고 화려하게 장식된 등불행렬을 벌이며 축제의 서막을 알린다. 드럼과 피리 연주도 뒤따른다. 일부 관광객은 이른 새벽에 시작되는 등불행렬 대신 낮에 열리는 퍼레이드를 보지만 사실 바젤 카니발의 하이라이트는 새벽 퍼레이드다. 추운 날씨 속에 삼삼오오 모여든 관광객들은 어둠을 가르는 피리 소리와 함께 등불행렬이 나타나면 탄성을 지르며 축제 행렬을 맞이한다. 알록달록한 축제의상과 가면, 나지막한 음악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등불이 어두운 골목을 비추는 행렬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등불행렬에서는 지난해에 바젤에서 벌어졌던 각종 사건과 사고를 풍자한 익살스런 참가자들도 볼 수 있다. 깜깜한 새벽, 대형 랜턴 불빛과 끝없이 이어지는 등불행렬은 어둠을 가르는 유일한 이정표가 된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퍼레이드 행렬은 동이 트기 시작하면 하나 둘씩 골목으로 사라진다. 퍼레이드 행렬이 사라지고 구경꾼만 덩그러니 남겨진 거리에 서성이다 보면 몽환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새벽 퍼레이드는 바젤 시민들을 새벽잠을 깨우며 또 한 해의 파스나흐트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대규모 퍼레이드 월요일 새벽의 등불행렬 외에 월요일과 수요일 오후 1시 30분에 대규모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1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이 퍼레이드에는 드럼과 피리 등으로 구성된 악대와 익살스러운 마스크를 쓴 참가자들이 무리를 지어 시내를 행진한다.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소속된 모임이나 단체별로 퍼레이드를 벌이는데 대부분 특별한 패러디와 주제를 가지고 행진한다.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관중에게 오렌지나 초콜릿, 꽃, 인형, 과자, 사탕 등 선물을 나눠준다. 간혹 선물 대신 색종이 가루를 구경꾼에게 퍼붓기도 한다. 옷 속으로 들어간 색종이를 꺼내려면 꽤나 거추장스럽지만 누구 하나 불쾌한 표정 없이 즐거움을 만끽한다. 얼굴에 크고 무서운 가면을 쓴 참가자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꽃을 선물하기도 한다. 일부 그룹은 지역 이슈나 인물을 풍자한 시구가 적힌 색종이 지델(Zeedel)을 나눠주는데, 전부 바젤 방언으로 적혀 있어 같은 스위스 사람도 해독이 쉽지 않다 퍼레이드 행렬은 어둠이 밀려오는 저녁 6시경 하나 둘씩 사라진다. 퍼레이드가 열리는 동안 거리 한편에서는 소시지와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축제에는 먹을거리가 빠지지 않는 법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시지에 맥주를 한 잔을 마시면 추위가 싹 가신다. 축제 둘째 날인 화요일은 어린이를 위한 날이다. 카니발 의상을 멋지게 차려 입은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장난감 악기를 들고 거리를 활보한다. 퍼레이드 때의 시끌벅적함은 없지만 분장한 아이들만으로도 축제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화요일 저녁의 하이라이트는 수요일 아침까지 계속 되는 등불 전시. 수백 개의 등불이 대성당 앞 광장에 장식된다. 화요일 저녁의 또 다른 볼거리는 구게뮤직(Guggemusig)이라 불리는 음악공연이다. 오래된 관현악기로 연주되는 카니발 특유의 시끌벅적한 이 공연은 시내의 주요 광장에서 저녁 때까지 펼쳐진다. 수요일에는 축제의 끝을 알리는 대규모 퍼레이드가 다시 열린다. 퍼레이드는 각양각색의 테마로 진행되는데, 맨 앞의 거대한 램프를 보면 퍼레이드의 테마를 알 수 있다. 어떤 램프는 너무 커서 장정 여럿이 메거나 캐리어로 끌고 가기도 한다. 참가자들의 복장 또한 다양하다. 스키어 복장을 하거나 악마를 연상시키는 마스크를 쓴 사람, 우스워 보이는 커다란 마스크를 쓴 사람 등 각양각색의 인물을 볼 수 있다. 유머와 풍자로 가득한 유쾌한 축제 퍼레이드의 참가자 중 일부는 5~10명의 소그룹 연주단을 만들어 골목을 돌아다니며 신나는 음악을 들려준다. 이들은 월요일과 수요일에 열리는 퍼레이드 전후나 저녁 무렵 구시가지 곳곳에서 피리와 북을 연주하며 축제 분위기를 돋군다. 개슬(Gassle)이라는 이 무리들의 연주는 전통과 현대적인 음악을 아우르며 몇 시간 동안 계속된다. 어디선가 피리와 드럼 소리가 들릴 때 그 소리를 따라가 보면 어김없이 개슬을 만날 수 있다. 개슬과 더불어 바젤 카니발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이들은 슈니첼뱅크(Schnitzelbanke)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익살스러운 유머와 풍자로 주민들을 자지러지게 하는 이들은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풍자적인 시구를 마구 읊어댄다. 관광객들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호통을 치다가 어느새 부드러운 말투로 악수를 청하기도 한다. 월요일과 수요일 저녁에는 수십 개에 달하는 슈니첼뱅크 공연단을 바젤 거리와 바, 레스토랑 등에서 만날 수 있다. 바젤 카니발은 독특한 지역 문화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어 관광객들이 이해하기 힘든 요소가 꽤 많다. 그럼에도 바젤 카니발이 스위스를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 잡은 이유는 엄청난 퍼레이드 규모와 다른 축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창성과 유쾌한 풍자가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익살스러은 가면과 다채로운 카니발 의상, 흥겨운 드럼과 피리 소리 등 흥미진진하고 생동감 넘치는 바젤 카니발은 쉽게 있지 못하는 매혹적인 축제다. 교통 바젤까지 바로 연결되는 비행기는 없다. 바젤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취리히로 간 다음 그곳에서 기차로 갈아타는 것이다. 취리히-바젤은 1시간 간격으로 기차가 운행하며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나 프랑스의 알자스 지방에서도 기차가 수시로 운행한다. 화폐 및 환율 스위스는 유로 대신 스위스 프랑을 사용한다. 대부분의 호텔과 상점 등에서 유로도 받지만 환율을 안 좋게 계산하기 때문에 스위스 프랑으로 바꾸어 가는 것이 좋다. 1스위스 프랑(CHF)=약 854원(1월 18일 현재). 축제 개최일 바젤 카니발은 사순절 시작과 함께 열리기 때문에 해마다 개최일이 달라진다. 2008년은 2월 11일~13일 열린다. 축제 코스나 일정은 바젤 기차역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얻을 수 있다. 홈페이지(www.basel.ch/en/culture/fasnacht)에도 자세한 정보가 나와 있다. 주의할 점 스위스는 치안이 잘 되어 있는 나라여서 특별히 조심할 것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만큼 소매치기도 많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미리 호텔을 예약하고 가는 것이 현명하다.
세계 3대 음식의 나라 ‘터키’ 술탄들의 저녁식사 2008-02-04
세계 양대 음식 하면 이론의 여지없이 프랑스 음식과 중국 음식이다. 이 둘은 동서양을 대표하는 음식이자 고유의 맛으로도 추종을 불허하는 지구촌 2대 맛으로 단단히 각인되어 있다. 그렇다면 세계 3대 음식은 무엇일까. 일본음식? 인도? 스페인? 아니다. 터키 음식이 명실공히 남은 한자리를 차지했다. 터키 음식은 이슬람 세계의 대표 음식으로 봐야 한다. 아랍 쪽의 전통음식도 터키 음식과 바탕을 같이 한다. 근년에 케밥(Kebab)을 앞세운 터키 음식이 기세 좋게 맛의 세계를 야금야금 점령하기 시작했다. 서울엔 터키 음식점이 여기저기 문을 열고 이슬람의 향미를 선보인다. 터키 음식에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케밥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케밥이란 양고기 슬라이스를 꼬치에 끼워 시루떡처럼 겹겹이 쌓고, 그 꼬치를 축으로 돌리면서 화덕의 열기로 굽는 것. 그리고 긴 칼을 상하로 움직이며 고기를 조금씩 깎아내는 것이라 알고 있다.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케밥의 전부는 아니다. 원래 케밥은 유목민들이 야영지에서 모닥불에 구워 먹던 고기다. 육류를 불에 구워내는 것은 모두가 케밥이고 케밥의 종류는 지방과 굽는 방식 그리고 육류에 따라 수없이 분화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케밥은 그 가운데 하나인 ‘되뇌르’다. 케밥은 터키를 대표하는 음식이 아니다. 터키 음식을 깊이 들여다보면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이 화려하고 향미가 풍부하다. 오늘날, 터키 음식을 세계 3대 음식의 반열에 올린 것은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이다. 1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대제국의 권력을 한 손에 움켜진 오스만 제국에는 영지 구석구석에서 뽑아온 미인들이 우글거렸고, 궁전 주방엔 방방곡곡에서 올라온 진기한 식재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술탄이 좌정하고 있던 이스탄불의 톱카프 궁전엔 10개의 주방에 300여 명의 요리사가 있었다. 수백 명의 요리사는 각자 수프나 필라프, 케밥, 야채, 생선, 빵, 패스트리, 캔디, 헬와, 시럽, 잼, 음료 등을 맡아 하루 1만 명분의 음식을 만들었고, 왕의 총애를 받는 궁전 밖의 인사에게 보낼 요리를 만들기도 했다. 풍성하고 향미로운 음식 재료 음식의 중요성은 술탄의 친위대로 알려진 오스만 제국 정예군의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사령관은 수프맨으로 불렸으며, 다른 고위 장교들의 명칭도 주방장, 설거지꾼, 제빵사, 팬케이크 요리사 등으로 불렸다. 물론 이들은 실제로 그 일과는 상관이 없었다. 필라프를 만드는 커다란 솥은 각 군의 특별한 상징이었으며 각 군의 집결지마다 하나씩 있었다. 주방은 정치의 중심지이기도 해 군인들이 술탄에게 각료나 수상 교체를 요구할 때는 필라프 솥을 뒤집어 놓았다. ‘솥을 뒤집는다’라는 표현은 지금도 신분 반란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술탄의 요리사들은 모든 것을 바쳐 술탄의 입맛을 맞추는 데 목숨을 걸었다. 나중엔 발칸반도와 러시아는 물론, 북아프리카까지 터키 음식이 퍼져 나갔다. 터키 음식에는 이탈리아의 파스타나 프랑스의 소스처럼 두드러진 것이 없다. 가난한 집이건 유명한 레스토랑이건, 혹은 재벌의 저녁 식탁이건 똑같이 풍성하고 다양한 요리가 차려진다. 터키 음식은 진귀한 예술이다. 호기심 많은 어린이라면 나른하고 흐린 겨울날 어머니가 ‘양배추 돌마’를 만드는 것을 보며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누가 볶음밥과 잣과 건포도와 양념과 허브를 반투명의 양배추 잎사귀에 꼭꼭 싸서, 똑같이 1.2cm 두께로 만든 뒤 꼬챙이에 꽂아 레몬으로 장식한 타원형 접시에 담아내는 음식을 생각해 냈을까? 어떻게 이 보잘것없는 야채가 몇 가지 되지도 않는 재료만으로 이처럼 고급스러운 음식으로 변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처럼 맛있는 음식이 몸에도 좋은 것일까?’ 터키 요리는 곡류가 들어 있는 음식과, 구운 고기, 야채, 생선, 디저트, 음료 등으로 분류(카테고리) 할 수 있다. 각 카테고리를 설명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요리의 기본은 곡물류(쌀이나 밀)와 채소류다. 각 카테고리에는 한 개나 두 개의 주성분이 포함돼 있다. 터키인들은 요리의 맛을 단순화해 소스나 양념이 아닌 주성분의 풍미로 평가한다. 즉, 가지는 가지의 맛을 지녀야 하고, 양고기는 양고기의 맛을 지녀야 하고, 호박은 호박의 맛을 지녀야 한다. 모든 재료가 마찬가지다. 서구 음식과 달리 조미료나 향료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박하나 담배풀 향은 주키니(호박)와 같이 쓰이고, 파슬리는 가지와 같이 쓰이고, 마늘은 차가운 야채에만 쓰이고, 쿠민은 붉은 콩에 얹혀지거나 ‘쾨프테’(미트볼)를 만들 때 저민 고기에 버무려진다. 레몬이나 요구르트는 육류와 야채를 보완하거나 올리브기름과 육류의 맛을 맞출 때 쓰인다. 대부분의 디저트와 과일요리에는 향료를 넣지 않는다. 따라서 요리의 맛이 정제돼 있고 주재료의 깊은 맛이 살아 있다. 터키 요리가 뛰어난 이유 중의 하나는 다양하고 풍성한 음식재료 때문이다. 터키를 차로 여행하면 두세 시간마다 주변의 풍광이나 온도, 습도, 고도, 초목, 토양이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풍토와 기후에 따라 곡물, 야채, 가축, 음식재료의 다양성이 뛰어나 여러 음식이 태어났고, 땅이 기름져 곡식과 가축이 풍성해 넘쳐나는 재료로 이렇게도 요리해보고 저렇게도 요리해보다 보니 다양한 요리법이 생겨났다. 터키에서는 음식을 먹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집안에 다른 가족이 있는데도 냉장고를 뒤져서 홀로 식사를 하는 짓은 상상할 수도 없다. 가족들이 교외로 하루 동안의 나들이 준비를 할 때, 누가 쾨프테나 돌마, 샐러드, 필라프를 만들지, 누가 고기나 음료, 과일 등을 준비할지를 미리 정한다. 나들이에 이용할 차 안에는 ‘만갈’은 물론, 구리로 된 숯불구이 버너, 킬림·해먹·베개등의 침구, 사즈·우드·바이올린 같은 악기, 그리고 사모와르(주전자)도 실어 놓는다. 피크닉보다 훨씬 성대한 이 나들이를 터키인들은 ‘운명으로부터 하루를 훔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보헤미안의 거리에 머물다 체코 프라하 2008-02-01
도시는 소리 없이 울고 있는데 MP3 플레이어에서는 빠른 비트의 음악이 흘러 나왔다. 귀에 맞지 않은 이어폰. 그 사이를 스며드는 둔탁한 발자국 소리들. 얼굴에 흐르는 빗물….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문을 걸었지만 어느새 나흘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똑같은 거리를 반복해서 걸었다. 1960년대 피로 얼룩진 ‘프라하의 봄’의 배경이 됐던 바츨라프 광장을 아침마다 가로질렀으며, 우연히 길을 걷다보면 해골인형의 천문시계와 틴 성당으로 대변되는 구시가지 광장을 지나쳐야 했다. 또 해질녘이면 습관적으로 카를교 주변을 서성이며 프라하성의 야경을 감상했다.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로 1,000년 역사를 간직한 고도(古都). 해마다 1억 명의 관광객이 흥청거리는 프라하의 이면에는 슬픈 사연이 서려 있었다. 습관, 아마도 습관 때문이었다. 미로 같은 길을 거닐면서도 그 거리를 쉽사리 떠나지 못했던 것은 익숙한 것에 대한 미련, 혹은 그 미련이 남겨놓은 아련한 습관과도 같았다. 잔뜩 찌푸린 하늘. 제2차 세계대전의 생채기로 검게 그을린 건물들. 깊은 겨울로 접어드는 도시는 한껏 우울함으로 가득한데 이곳을 찾은 이방인들만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도시를 거니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손에 여행안내 책자를 들고 있었으며 음식점보다 많은 듯한 환전소는 밤늦게까지 손님맞이를 위해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거 아세요. 환전할 때는 BUY가 아니라 SELL 요금을 확인해야 한다구요. 환전수수료가 얼마인지도 챙기셔야 하구요. 1유로에 27.5코르나 이상 받으면 환전 잘 하신 거예요.” 나보다 이틀 먼저 프라하에 도착한 한 남자가 고급정보인 듯 환율에 대한 얘기로 마무리 인사를 했다. 그 남자의 손에는 프라하의 명물인 인형극 무대에 나왔던 작은 목각인형과 여동생에게 주려 한다는 스몰 사이즈 티셔츠가 들려 있었다. 잠시 동행했던 한 여인은 전날 만난 독일인 남자친구의 전화를 받더니 쏜살같이 점심약속을 했다. “사귀어 놓으면 좋지 않겠어요? 어제는 새벽녘까지 귀찮게 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더라구요. 영어도 잘하고… …. 대머리에 얼굴이 못생긴 게 흠이지만 뭐 친구들은 잘생긴 것 같으니까.” 눈에 익은 사람들을 만난 것도 구시가지와 카를교를 잇는 어느 잡화점 가게, 혹은 어느 식당 앞이었기에 관심 가득한 눈으로 프라하를 즐기던 그들 역시 이런 반복되는 공간 안에서 또 다른 행복을 찾고 있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하게 됐다. 지친 허리를 쉬게 할 한적한 광장을 찾아내고 오랜 휴식과 호흡을 즐길 무렵, 그곳 역시 구시가지 광장의 틴 성당 바로 뒤편이었다는 사실에 미로 같은 이 도시가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새벽이면, 해질녘이면 깔끔하게 청소되는 도시의 다른 공간과 달리 이곳 광장에는 쌓인 눈 위로 때늦은 낙엽이 뒹굴고 있었다. 광장에서 만난 엽서 노점상 청년의 모습이 도시와 닮아 있어 무작정 엽서 한 장을 샀다. 엽서에는 프라하성의 ‘황금소로’가 담겨 있었다. 하늘색, 분홍색이 어우러진 파스텔톤의 골목. 분명 전날 봤던 그 골목인데 골목을 가득 채운 관광객들과 기념품 가게가 사라진 사진은 더욱 예뻤다. 금을 만드는 연금술사들이 살던 황금소로 골목의 22번지 집은 젊은 시절 프란츠 카프카가 글을 썼던 공간이었다. 그곳에서는 변신, 성, 소송 등 카프카의 저서들을 팔고 있었다. 두세 평 남짓한 우울한 공간에서 수척한 얼굴의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카프카는 딱정벌레처럼 몸을 숨긴 채 글을 써 내려갔다. 유대계 독일인으로 프라하에서 태어나 유대인 집단 거주지 게토에서 자라났던 카프카는 태생과 엄한 아버지 때문에 숨 막히는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극한 생존상태. 몰래 글을 써야 했던 카프카의 뒷모습을 막연하게 떠올렸는데 광장의 엽서장수 청년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9코르나짜리 황금소로가 담긴 엽서를 집어드는데 예상대로 청년의 눈이 깊고 수척했다. 그는 “지에쿠유밤”이라며 고맙다는 짧은 체코인사로 내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밤이면 프라하 성의 야경을 외면한 채 외딴 곳에서 체코 맥주인 필스너 우르켈을 마셨다. 낮이어도 비가 내리면 카페 귀퉁이에 앉아 필스너 우르켈을 마셨다. 빈속에 마시는 맥주는 우울함을 몽롱하고 알싸하게 변질시켰다. 맥주를 마시면 달그락거리는 발자국 소리와 차바퀴 소리가 더욱 또렷하게 들려왔다. 도시의 골목을 가득 메운 돌길들. 발바닥을 차갑게 붙들던 갈퀴 같은 돌길들… …. 나흘 동안 헤매었던 우울한 미로를 가까스로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또 속절없이 도시의 빗물이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TRAVEL TIP 대한항공이 인천-프라하 직항편을 운항한다. 열차를 이용할 경우 독일 뮌헨이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들어가면 가깝다. 인근 중세마을인 체스키 크루믈로브를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 프라하에서 열차와 직행버스가 다닌다. 프라하에는 깔끔한 시설의 한국 민박집들이 20여 곳 성업 중이다. 레스토랑은 구시가 일대에 몰려 있다. 프라하에서는 구시가 인근의 ‘U Kilina’와 메트로A선 스타로메스카역 근처의 ‘U Spirku’ 등에서 체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외딴 바에서 필스너 우르켈을 꼭 마셔볼 것.
알레치 빙하에서 열리는 마녀들의 스키대회 Hexen.. 2008-01-10
빗자루를 들고 하늘을 나는 마녀. 영화나 동화를 통해서 익숙한 풍경이지만 현실에서는 마녀를 볼 수 없다. 실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있다고 해도 심술궂고 무서운 존재여서 보기가 꺼림칙하다. 마녀들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고, 몇 마디 주문으로 온갖 일을 할 수 있는 요술쟁이다. 하지만 나쁜 일만 골라서 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고, 주문 하나로 하고 싶은 일은 모두 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마녀에 대한 이런 나쁜 이미지 때문에 무시무시한 마녀 사냥이 유럽 전역에서 자행되었으리라. 떠들썩한 전야제 Witch’s Night 스위스의 작은 마을 블라텐(Blatten)에 가면 현실 속의 마녀를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 만나는 마녀는 하늘을 나는 못된 마녀가 아니라 빗자루를 들고 설원을 질주하며 유쾌한 웃음을 주는 마녀들이다. 알레치 빙하의 끝자락에 위치한 블라텐은 여름에는 하이킹과 등산, 빙하 관광으로, 겨울에는 스위스의 대표적인 스키 리조트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이 마을에서는 매년 1월 중순에 마녀들의 스키대회인 헥센압파르트(Hexenabfahrt, 마녀 스키대회라는 뜻)가 열린다. 1천300여명의 스키어들이 마녀 분장을 하고 손에는 스키 스틱 대신 긴 빗자루를 들고 활강하는 것이다. 2008년 26회를 맞는 이 행사는 발레 주에서 가장 큰 겨울 이벤트다. 축제의 현장인 블라텐은 알레치 빙하의 끝자락인 벨알프(Belalp) 지역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평소에는 한적하고 조용하기만 한 작은 마을이지만 겨울이면 많은 스키어가 몰린다. 블라텐으로 가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다. 발레 주의 교통 요지인 브릭(Brig)에서 포스트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가면 눈 덮인 산골짜기와 알프스의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경치를 감상하며 20분 남짓 올라가면 알프스 산자락 깊숙이 위치한 마을이 나온다. 마을 입구에 도착하면 먼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녀 동상이 눈에 띈다. 상점마다 마녀와 관련된 인형이나 장식품이 진열되어 있고 목조가옥 곳곳에도 마녀 인형이 내걸려 있다. 이것만 보아도 이 마을이 마녀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마녀들의 축제는 1주일간 열리지만 레이스는 단 하루다. 축제의 전날 밤에는 흥겨운 ‘마녀들의 밤(Witch’s Night)’ 파티가 펼쳐진다. 이때는 평온하던 스키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주민들은 악대를 앞세우고 마을을 돌며 마녀들이 나타났다는 뜻의 현지어인 “댁스 이스흐 로스”(d’Hax isch los!)를 외쳐댄다. 그리고 기괴한 모습의 마녀로 분장한 마을 사람들과 대회 참가자들이 모닥불 주위에 모여 음악에 맞춰 신명나게 마녀 댄스를 춘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마녀댄스는 참가자 모두에게 유쾌한 즐거움을 제공한다. 개성 넘치는 마녀들 해가 떠오르면 마녀 레이스 참가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케이블카를 타고 마을 뒤에 펼쳐져 있는 해발 3천226m의 호슈톡산으로 올라간다. 레이스 참가자들의 복장은 각양각색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다양하다. 빨간색, 보라색, 파란색, 노란색, 검은색 등 다양한 색깔로 얼굴을 칠한 것은 기본이고 나팔, 색소폰, 아코디언, 트럼펫 등 악기를 들거나 지게를 진 사람도 많다. 코에는 마녀의 이미지대로 길고 뾰족한 코를 붙인 사람도 있다.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의 표정은 동심으로 돌아간 듯 너나할 것 없이 밝다. 모두들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설원에서 펼쳐지는 축제를 즐긴다. 왜 이 마을은 사람들이 그토록 싫어했던 마녀 복장을 하고 스키 축제를 벌이는 것일까?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먼 옛날 마녀가 신앙심이 깊은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 마녀는 곧 다른 마법사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마녀는 마법사를 보고 싶을 때마다 남편의 눈을 피하기 위해 까마귀로 변신했다. 하루는 마녀가 알레치 빙하에서 수프를 끓이다가 마늘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녀는 재료를 구하기 위해 마을에 있는 정원으로 내려갔다가 체리를 따던 남편을 발견했다. 까마귀로 변신해 있던 그녀는 남편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날아올랐고, 그 순간 실수로 고개를 돌리던 남편의 눈을 찔렀다. 눈이 먼 남편은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마녀가 남편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재판에 회부해 그녀를 화형시켰다. 수백 년이 지난 후 오해를 받아 죽은 마녀의 명예를 회복하고 이를 기리기 위해 마녀 스키대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마녀들의 신나는 설원 질주 마녀들의 레이스는 호슈툭산 정상을 출발해서 알레치 빙하를 따라 마을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전체 12km에 달하는 대장정이다. 급경사를 비롯해 수직의 표고 차가 1천800m 이상인 코스를 완주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레이스 자체의 즐거움과 알레치 빙하라는 대자연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기 때문에 해마다 참가자들이 늘고 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여러 명이 팀을 이뤄 복장을 통일하고 레이스를 펼친다. 1천300여명에 달하는 스키어와 보더들이 독특한 마녀 분장을 하고 알레치 빙하를 따라 질주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설원을 가로지르며 내려오는 그들의 모습은 구경꾼들을 마법의 세계로 인도한다. 스키 스틱 대신 빗자루를 들었다는 것만 같을 뿐 복장은 모두 다르다. 빗자루에 분홍색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깡통을 매달고 달리는 마녀, 가슴에 색소폰이나 아코디언을 앉고 연주를 하며 여유 있게 내려오는 연주자 마녀, 곰으로 분장하고 내려오는 마녀, 꽃을 잔뜩 실은 바구니를 지고 내려오는 꽃 배달부 마녀, 매부리코에 무서운 악마를 연상케하는 분장을 한 마녀, 간호사 마녀, 군인 복장 마녀 등 개성을 한껏 살린 복장이 인상적이다. 마녀들은 복장은 모두 다르지만 하나같이 술병을 차고 대회에 참가한다. 알레치 빙하를 내려오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거나 음식을 주는 여유를 베풀기도 한다. 고지대의 추운 날씨여서 그런지 하나 같이 독한 양주가 대부분이다. 레이스 도중에 만나는 스키어들 중 상당수는 술에 취해 눈이 반쯤 풀려 있다. 알레치 빙하는 알프스에서 가장 길 뿐만 아니라 경사도 급하다. 자칫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최상급자 수준의 슬로프지만 음주 스키를 여유롭게 즐길 정도로 참가자들의 스키 실력은 수준급이다. 설원을 수놓으며 마녀들이 낭만적인 활강을 즐기는 동안 결승선에서는 악대가 음악을 연주하며 흥을 돋군다. 그들 또한 맥주를 박스로 쌓아 놓은 채 음주 연주를 스스럼없이 즐긴다. 레이스가 끝나면 참가자들은 저마다 아쉬워하며 또 한 해를 기약한다. 올해도 1월이면 스위스의 산골마을 블라텐에는 유쾌한 웃음 보따리를 선사하러 마녀들이 찾아올 것이다. “마녀가 나타났다”고 외치며. 교통 마녀 스키대회가 열리는 블라텐에는 공항이 없기 때문에 취리히까지 간 다음에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브릭으로 가야 한다. 브릭역 앞에서 블라텐까지 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취리히-브릭은 기차로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되고, 브릭-블라텐은 버스로 30분 정도 걸린다. 브릭-블라텐 구간의 버스 시간표는 브릭역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얻을 수 있다. 화폐 스위스의 공식화폐는 스위스 프랑(CHF)이다. 따라서 유로가 아닌 스위스 프랑을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호텔이나 레스토랑, 가게 등에서 유로를 이용할 수 있으나 환율이 좋지 않다. 2008년 1월 현재의 환율은 1CHF=832원 정도다. 호텔 블라텐에도 호텔이 적지 않으나 겨울에는 스키어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가능하면 브릭에서 머물도록 한다. 브릭역 앞에 호텔이 모여 있다. 스키 시즌인 12월 15일부터 2월말까지는 숙박료가 조금 비싸다. 개최 시기 매년 1월 중순에 열리나 정확한 날짜는 정해져 있지 않다. 국내에서는 관련 정보를 찾기 힘드니 정확한 개최 날짜를 알고 싶다면 스위스 현지 사이트(www.belalphexe.ch)를 참고한다. 주의사항 마녀 스키대회가 열리는 곳에서는 레스토랑이 딱 한 곳밖에 없기 때문에 먹을 것을 준비해 가야 한다. 워낙 많은 인파가 많아 레스토랑은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겨울에는 날씨가 꽤 추우니 옷을 두툼하게 입도록.
석회암 행성, 괴뢰메 지상에 닿은 요정들의 굴뚝 2008-01-04
Greme 동쪽 하늘에 여명이 트인다. 구름 한 점 없는 검푸른 하늘은 어둠 속의 거울처럼 차갑기만 하다. 조약돌 하나에 부딪혀도 산산이 부서져 와르르 내려앉을 것만 같다. 아직은 별이 반짝이고 서쪽 하늘엔 그믐달이 걸려있는데 동쪽 하늘 끝이 발갛게 물든다. 밝고 맑은 색이 어둡고 검푸른 색을 빠르게 잡아먹으며, 별이 희미해지고 달이 기운다. 동쪽 하늘 끝에서 태양은 아직도 산 아래 숨어 있지만 햇살은 벌써 남쪽 북쪽 서쪽 산봉우리에 꽂힌다. 남쪽 하늘 끝 산봉우리 위로 기아(KIA)가 떠오른다. 찬란한 태양은 동쪽 하늘 끝에서 힘차게 솟아오르고 햇살을 잠뿍 받은 기아는 남쪽 하늘로 두둥실 떠오른다. 터키 괴뢰메(G reme)의 새벽은 하늘을 수놓는 열기구(Balloon)로 열린다. 해도 뜨기 전에 열기구들은 하늘을 덮는다. 남쪽 하늘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거대한 열기구에 기아(KIA)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푸르르 푸르르 새파란 불꽃을 쏘아 올리며 오색 열기구들은 창공을 유영하고, 열기구 바구니에 담긴 사람들은 개미처럼 우글거린다. 태양이 솟아오르며 햇살을 받은 열기구들이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껏 뽐내고, 땅 위에는 요정들의 굴뚝(?)이 땅을 박차고 솟아올라 우후죽순처럼 대지를 덮었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지금 은하계 밖 어느 행성에 있는가, 지구를 밟고 있는가. 세계 최대의 지하도시 ‘데린쿠유’ 지난밤 늦게 먼 길을 달려 이곳 괴뢰메에 왔을 때 피곤함에 절어 차창 밖으로 언뜻언뜻 보이던 어둠 속 모습들은 꿈처럼 뭉개져 버렸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원기 충만한 몸으로 일어난 그곳은 동굴 속. 나는 동굴 호텔에서 괴뢰메의 첫날밤을 보낸 것이다. 동굴 밖으로 나와 한눈에 내려다본 세상은 영화 ‘반지의 제왕’이나 ‘스타워즈’에 나올 법한 그런 모습이다. 크고 작은 수천수만 개의 뾰족 봉우리들. 더구나 뾰족 봉우리에 동굴을 파서 그 속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뾰족 봉우리 동굴집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사람이 오로지 인력으로 석회석 뾰족 봉우리를 천 번, 만 번, 억만 번 쪼고 찍어내어 동굴 주거공간을 만들었다. 땅 위로 솟아오른 요정들의 굴뚝들은 크기나 모양도 갖가지다. 큰 요정 굴뚝엔 2층, 3층 동굴집이 좁은 동굴통로로 연결되어 있고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통로를 봉쇄할 수 있는 커다란 돌이 준비되어 있다. 도대체 어떤 연유로 이런 괴상한 요정들의 굴뚝이 그렇게 많이 솟아올랐고, 왜 사람들은 이곳에 동굴을 파고 살았을까? 괴뢰메는 석회암으로 형성된 지역이다. 천년만년 억겁의 세월이 흐르며 석회암은 빗물에 녹아 흘러내리고 골짜기는 점점 깊어졌다. 석회성분이 덜하고 단단한 곳은 물에 녹아내리지 않고 석회 농도가 짙고 무른 곳은 빨리 녹아내렸다. 지금 뾰족하게 솟아오른 ‘요정들의 굴뚝‘은 전자, 즉 단단한 부분이다. 굴뚝 꼭대기가 태초엔 땅바닥이었던 것이다. 이곳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은 히타이트(Hittites)인들이다. 기원전 1800년에서 1200년까지 그들은 소왕국을 형성해서 이곳에 터전을 잡았다. 그 이후로 페르시아인들이 몰려오고 뒤따라서 로마인들이 들어오며 이곳은 카파도키아(Cappadocia) 왕국이 된다. 지금도 이곳 괴뢰메를 사람들은 카파도키아라 부르기도 한다. 로마와 비잔틴 시대에 이곳은 박해받은 초기 기독교 신도들의 피난처가 되어 그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그들은 이곳 요정들의 굴뚝에 동굴을 파서 살면서 동굴 옆에 정으로 석회암을 파 수많은 비둘기집을 만들었다. 비둘기 집 아래 떨어져 쌓인 마른 비둘기 똥은 그들의 농토에 거름이 되었다. 기독교도들은 이곳에 수많은 동굴교회를 세웠고, 뾰족 봉우리에 동굴을 파고 살았을 뿐만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지하도시도 만들었다. 지금 알려진 지하 동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데린쿠유 지하도시.’ 지하 20층 정도의 엄청난 규모지만 관광객은 지하 55m인 8층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지하 온도는 항상 평균 15도에서 18도로 유지되고, 지하 7층에는 약 1만 명이나 모일 수 있는 교회와 우물, 식량 저장고, 학교, 고해성사실, 가축을 기르는 곳 들이 있다. 인분은 토기에다 해결한 후 밀봉한 다음 농토의 비료로 썼다. 인근에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30여 개의 지하도시가 있고, 수십 개의 지하도시를 연결하는 비밀통로가 있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며 이곳에 몰려든 기독교도들은 평화를 누렸다. 15세기 중엽 동로마제국이 무너지며 아라비아에서 몰려온 이슬람세력, 셀주크와 그 이후 오토만 시대에도 이들은 박해를 받지 않았다. 더는 고난의 은신이 필요치 않자 기독교도들은 이곳을 떠나고 괴뢰메는 잊혀진 곳이 되었다. 20세기로 접어들며 여행이 가득률 높은 산업으로 떠오르자 괴뢰메에는 1,700여 년 전 초기 기독교도들이 몰려오듯이 관광객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독교도들은 성지순례를 하며 이곳에 몰려온다. 동굴을 호텔로 만들고 열기구들이 여행객들을 바구니에 담아 하늘을 덮는다.
눈밭의 하얀 신기루 속을 달리다 Canada Ro.. 2008-01-04
로키(Rocky)의 겨울은 두 얼굴을 지녔다. 애잔하면서도 스펙터클하다. 무릎까지 쌓이는 눈이 내리면 록키에 기대 사는 것들은 모두 몸을 낮춘다. 시큰둥하게 차를 몰고 가더라도 전나무 숲 아래에서 뿔이 멋진 엘크 무리를 만나고, 이른 새벽 스키장으로 향하는 오두막 정문 앞에서 선한 눈의 사슴과 마주친다. 뒷골목에서 만난 캐나다 로키의 겨울 풍경은 눈이 시릴 정도로 쓸쓸한데, 그 겨울 로키의 한 편에서는 흥미진진한 또 하나의 광경이 펼쳐진다. 캐나다 로키는 겨울 호흡이 숨가쁘다. 로키를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밴프 국립공원 일대는 눈이 내리면 설원 위를 질주하려는 젊은이들로 채워진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닌 밴프 국립공원에는 스키리조트만 3곳이 있다. 해발 2,500m가 넘는 정상에서 스키 런을 즐기려면 일주일도 부족하다. 밴프 일대의 대표적인 스키리조트는 단연 레이크 루이스 마운틴 리조트다.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맑은 날, 이곳 눈길 위에 올라선다면 굳이 라이딩을 즐기지 않아도 좋다. 슬로프에 서서 설산 아래 둥지를 튼 레이크 루이스 호수의 절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힌다. 혹 여름이나 가을 레이크 루이스 곤돌라를 타고 정상에서 호수를 바라본 적이 있다면 겨울 풍경은 그 감동의 열 배쯤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BC주 휘슬러가 캐나다의 대표 스키장으로 명성을 굳히며 상업화됐지만 밴프의 스키장에서 느끼는 매력은 색다른 것이다. 규모나 설질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으면서도 로키가 전해 주는 화려한 풍광을 감상하며 한적한 ‘대통령 스키’를 즐길 수 있다. 밴프 스키장의 설질은 습기 없이 보드라운 ‘샴페인 파우더’로 파우더 스노 중에서도 최상의 설질을 자랑한다. 그 눈에 묻히면 넘어지거나 뒹굴어도 통증은 없고 웃음만 쏟아진다. 레이크 루이스 마운틴 리조트의 최고봉은 화이트호른으로 높이가 무려 2,637m나 된다. 그 최고봉을 기준으로 4개의 산봉우리에 113개의 슬로프가 뻗어 있다. 가장 긴 코스는 8km로 중급자가 내려오는데도 수십 분이 걸린다. 상급자 코스인 ‘맨스 다운힐’은 매년 남녀 월드컵 경기가 열릴 정도로 캐나다 최고의 급경사면을 자랑하며, 편안하게 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라치 포마’ 코스 역시 중급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보더들의 천국 선샤인 빌리지 밴프 타운에서 승용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선샤인 빌리지는 보더들의 호기심을 사로잡는다. 일단 메인 리조트까지 곤돌라를 타고 20여 분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흥미진진하다. 베이스의 고도만 2,160m, 정상인 룩아웃 마운틴의 높이가 2,730m. 어디에 보드를 내려 놓든 해발 2,000m 이상에서 날렵할 질주가 가능하다. 룩아웃 마운틴에 오르면 폭이 수백m에 이르는 한쪽 경사면이 모두 슬로프로 채워진 것을 발견한다. 보더가 첫 라이딩을 한 길이 새로운 슬로프가 되고 그 자국 짙은 슬로프 위로 다른 보더들이 뒤따르는 짜릿한 형국이다. 이곳 선샤인 리조트는 이름 그대로 시야를 가로막는 산이 없어 태양 가까이에서 빛난다는 이유로 선샤인 빌리지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꼭대기에서 발원한 눈 녹은 물은 큰 계곡을 형성하며 태평양, 대서양, 북해로 흘러 들어간다. 그 계곡을 따라 초보자들도 1시간 동안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대부분의 보더들은 곤돌라를 타고 올랐던 베이스를 거쳐 주차장까지 이르는 8km 코스를 쉬지 않고 달리며 보딩의 대미를 장식한다. 허벅지가 뻐근할 정도로 계속되는 코스에는 곳곳에 크고 작은 굴곡이 있어 아기자기한 점프도 가능하다. 로키의 스키장 중에서는 유일하게 숙소에서부터 스키를 신고 슬로프로 연결되는 ‘스키-in, 스키-out’이 가능한 점도 선샤인 빌리지의 매력이다. 빌리지 옆에는 연기 펄펄 나는 노천 자쿠지도 있다. 국내 보드 매니아들에게 설원에서 필요한 몇 가지가 선샤인 빌리지에는 없다. 밤늦게까지 운행되는 야간 리프트, 기분을 업시키는 신나는 음악 등. 하지만 평균 적설량 923cm인 룩아웃 마운틴에서 시작되는 광활한 설원과 스피드, 점핑이 오묘하게 조합된 슬로프의 신세계를 경험했다면 이곳의 ‘고요한 룰’이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이밖에도 밴프 노퀘이 리조트는 규모가 다소 작지만 1926년 첫 코스를 개장한 선구자격 스키장으로 밴프 타운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밴프 타운에서 슬로프가 보일 정도다. 이곳은 터레인 파크를 즐기려는 보더들과 가족 스키어들에게 친근한 스키장이다.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밴프에서의 스키는 5월까지 이어진다. 국내에서 스키 시즌이 끝나는 2월 말 오히려 이곳 스키장은 축제의 절정에 접어든다. 밴프의 스키 리조트를 즐길 때 명심할 것은 반드시 슬로프 지도를 지녀야 한다는 점. 눈앞에 보이는 코스가 전부는 아니며 봉우리만 넘어서면 뜻밖의 새로운 코스가 펼쳐져 국내 스키장 서너 개를 한꺼번에 섭렵하는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다. 스키나 보드의 달인이 아니더라도 밴프로 향하는 길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 밴프 타운 일대에는 겨울 놀거리가 많다. 밴프 핫 스프링스 온천은 연중 쉼 없이 문을 연다. 온천 기념품 가게 주인이 한국인이니 밴프의 즐길거리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봐도 좋겠다. 이곳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설퍼산으로 오르는 밴프 곤돌라가 있다. 설퍼산은 반드시 문을 여는 오전 10시쯤 일찍 올라 본다. 전나무 아래로 상고대가 핀 모습과 광활한 로키의 광경을 아무 방해 없이 고요하게 음미할 수 있다. 전망대 라운지에서 커피한 잔 마시면 금상첨화다. 레이크 루이스 인근에서 개나 말이 끌어주는 눈썰매를 타거나 겨울 눈밭 트레킹을 즐겨도 좋다. 세계에서 가장 멋진 산악 경관을 자랑하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만 질주해도 로키의 겨울 감동은 폭설처럼 밀려든다. TRAVEL TIP 한국에서 직항편은 없다. 밴쿠버와 캘거리를 경유해 밴프타운까지 간다. 캘거리에서 밴프타운까지 승용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현지에서는 ‘트라이 에리어 리프트권’(www.skibig3.com)을 사면 리프트와 교통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이 리프트권으로 밴프의 빅3 스키장 리프트를 비롯해 호텔과 스키장, 선샤인 빌리지와 레이크 루이스를 연결하는 셔틀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알버타 관광청 홈페이지(www.trave lalberta.com)의 ‘skiing&winter fun’ 항목에서 각 스키장에 대한 슬로프 정보를 자세하게 얻을 수 있다. 밴프 타운 일대는 세계의 각종 먹거리가 집결한 곳. 쇼핑 외에도 그윽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로 긴 겨울밤을 보낼 수 있다. 발칸 그릭(www.banffbalcan.ca) 레스토랑에서는 전통 그리스 음식을 맛볼 수 있고 메이플 리프 그릴&스프릿(www.banffmapleleaf.com)은 알버타 전통 스테이크로 명성 높다. 레이크 루이스 인근의 레이크 루이스 스테이션(www.lakelouises tation.com)도 옛 로키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다.
마젤란의 위대한 발자취 새로운 세계를 향해 닻을 올.. 2007-12-11
콜럼버스가 황금을 찾아 대서양을 건넜다면 페르디난도 마젤란은 향신료를 찾아 세계일주를 했다. 중세 유럽의 식탁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영주도 귀족도 기껏 버터를 바른 마른 빵에, 소금에 절인 고기를 꾸역꾸역 씹어 먹는 정도였다. 이 무미건조한 음식에 머나먼 동방에서 온 향신료를 한 방울만 넣어도 낯설고 자극적인 향미는 입안 가득 감칠맛을 퍼뜨렸다. 지금은 음식점 테이블마다 굴러다니는 천덕꾸러기 후추가 12세기경엔 하나하나 알갱이를 세어 계산했고 무게당 가격이 은값과 같았다. 당시 인도네시아, 말레이, 인도, 필리핀에서 후추, 정향, 육두구, 계피 등의 향신료는 마당에도, 집 뒤에도, 개울가에도, 뒷산에도 무성하게 자라는 흔해빠진 열매나 꽃, 나무껍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낙타등에 봇짐을 싣고 낭떠러지 설산을 넘다 떨어져 죽고, 불타는 사막을 건너다 길을 잃어 목말라 죽고, 도적떼를 만나 목숨을 잃기도 하고, 길목마다 지키는 술탄과 군주들에게 엄청난 공세를 뜯기며 유럽에 도착한 향신료는 너무도 비쌀 수밖에 없었다. 인류 첫 세계일주, 둥근 지구를 발견하다 1492년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자 바다 끝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라는 등의 공포가 사라지고 대항해 시대가 열린다. 유럽의 열강들이 지중해라는 우물 안에서 아등바등할 때 대서양에 면한 유럽의 변방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대해의 패권을 잡는다. “큰 배로 선단을 만들어 동방에 가서 왕창 향신료를 실어 올 수 없을까?” 포르투갈이 선수를 쳤다. 대서양 아래쪽으로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내려와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사선으로 올라가는 항로를 개척, 향신료 상권을 잡고 있던 술탄들과의 몇 차례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하고, 교황으로부터 항로의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페르디난도 마젤란은 전투에서 한쪽 다릿병신이 되어 포르투갈로 돌아왔지만 조국은 그에게 싸늘하기만 했다. 이내 마젤란은 포르투갈에서 사라지고 만다. 한편 포르투갈에 선수를 빼앗겨 전전긍긍하고 있던 18세의 젊은 스페인 왕 앞에 마젤란이 나타나 비밀계획을 털어놓는다. 마젤란의 비밀계획이란 희망봉을 돌아 동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대서양을 건너 서쪽으로 동방에 닿는 것이 훨씬 빠른 지름길이라는 것. 스페인 왕은 눈이 번쩍 뜨였다. 1519년 9월 20일 화요일 아침이 밝았다. 68문의 대포로 중무장을 하고 264명의 선원을 태운 5척의 범선이 스페인의 세비야 항에서 출항한다. 선단의 총사령관은 마젤란. 스페인 왕은 마젤란에게 총사령관 직을 주는 한편 항해 경험이 풍부한 스페인 귀족들을 동승시켜 마젤란을 감시하도록 했다. 마젤란은 유서를 썼다. 두 번째 아이를 뱃속에 가진 그의 아내는 아들을 안고 흐느꼈다. 마젤란은 아내의 눈물을 보지 않으려고 서둘러 보트에 올라 함대로 떠나갔다. 인류 역사상 가장 용감하고 가장 원대한 탐험이 시작된 것이다. 항해를 시작한 지 77일 만에 마젤란 선단은 리우데자네이루에 입항한다. 남미의 동쪽 해안을 따라 마젤란 선단은 계속 내려간다. 이듬해 1월 10일, 마침내 마젤란 함대는 남미대륙을 가로질러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해협 ‘파소’에 다다랐다. 마젤란은 감격에 겨워 하늘을 보고 성호를 그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인 위대한 착각이었다. 이것은 유럽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큰 강, 라플라타의 하구(지금의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마주 본 하구)였다. 그가 스페인 왕과 신하들 앞에서 그토록 큰소리친 것이 모두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 그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결단을 내렸다. 남쪽으로 항진을 계속하는 것. 잿빛 바다는 미친 듯이 날뛰고, 낮 길이는 토끼 꼬리만큼 짧아지고, 한파는 뼛속까지 스며들고, 몰아치는 눈보라 역풍은 뱃길을 막았다. 멀리 나무 하나 보이지 않는 삭막한 벌판이 눈 속에 묻혀 있다. 승무원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스페인 귀족 함장들은 내심 기뻐하며 때를 기다렸다. 마젤란도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뭔가를 반전시킬 수 있는 폭발이 필요했다. 30명의 선원이 어두운 밤을 틈타 산안토니오 호에 잠입, 마젤란의 심복인 포르투갈인 선장 메스퀴타를 사로잡아 쇠사슬로 묶었다. 선상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아침이 밝았다. 마젤란은 3척이 스페인 귀족 손에 넘어가고 자신의 편은 2척 뿐임을 간파했다. 전력으로 보아 보잘 것 없는 2척의 배를 가진 마젤란으로서는 절대 열세였다. 3척의 배는 마젤란이 협상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페인 귀족들이 장악한 3척의 배 가운데 가장 작은 빅토리아호에 마젤란의 부하 여섯 명이 보트를 타고 가 멘도사 선장에게 마젤란의 서신을 전했다. 멘도사는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맨도사의 목에는 단도가 꽂혀 선혈을 쏟아냈다. 나머지 2척의 스페인 함장도 체포되어 멘도사와 같은 운명이 됐다. 함대는 기강이 잡혔지만 혹한의 겨울은 마젤란 함대를 다섯 달 동안이나 꼼짝도 못하게 꽁꽁 묶어 버렸다. 마침내 봄기운이 찾아왔다(남반구의 봄은 우리의 가을이다). 1520년 10월 21일, 마젤란 선단은 작은 만으로 들어간다. 남미대륙 동쪽의 굴곡진 해안선을 따라 들어갔다가 실망의 한숨을 토하며 나온 것이 몇 번이던가. 또다시 마젤란 선단은 해협이기를 바라며 작은 만으로 들어갔다. 인류역사를 바꾼 해협은 이렇게 발견됐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관통하는 마젤란 해협(The Strait of Magellan). 강철 같은 침묵의 사나이 마젤란은 뻥 뚫린 태평양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악전고투 끝에 태평양을 건너 인류 역사상 첫 세계일주에 성공,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완강히 거부한 교황청의 고집에 재갈을 물린 것이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필리핀 시부에서 원주민과의 사소한 언쟁 끝에 마젤란은 1521년 4월 27일 전사하고 만다. 대항해를 시작한 지 3년에서 12일이 모자란 1522년 9월 6일. 삐걱거리는 빅토리아호가 스페인 남부 세비야 항으로 돌아왔다. 3년 전, 265명과 5척으로 출발한 선단은 1척의 배에 피골이 상접한 18명만이 비틀거리며 내렸고, 그들의 손에는 한 줌의 향신료도 없었다.
알프스의 웅장한 자연과 함께 하는 Christmas.. 2007-12-06
오스트리아만큼 여행자를 유혹하는 나라도 드물다. 소박한 꿈과 낭만, 화려한 예술, 웅장한 자연, 수많은 문화유산 등 여행자를 유혹할 만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 이 나라에서 사람들은 여행에 대한 영원한 로망을 느낀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과 모차르트, 왈츠의 선율, 도나우강 등으로 대변되는 오스트리아의 이미지는 다분히 여성적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서부 알프스 설령(雪嶺)이 에워싸고 있는 티롤의 주도 인스브루크는 남성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고풍스런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8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인스브루크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막시밀리안 황제 때 크게 번성해 지금도 당시의 건축물이 곳곳에 남아 있다. 15세기 무렵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은 광산과 소금 광산이 있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이런 경제적인 풍요를 바탕으로 건축과 음악, 미술 등 다방면에서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 1964년과 1976년에는 동계올림픽이 열려 겨울 스포츠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중앙역에서 10분 남짓 걸어가면 인스브루크의 중심지인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가 나온다. 거리 양옆으로 시의회와 성당, 쇼핑센터, 17~18세기의 고풍스런 집들이 늘어서 있고 거리 중앙에는 1706년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 때 바이에른 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해 세운 성 안나 기둥이 있다. 거리 뒤쪽으로는 구시가지와 저 멀리 인스브루크를 감싸고 있는 노르트케테산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를 가로질러 조금 걸어가면 구시가지가 나온다.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구시가지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화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으로, 고풍스런 골목과 바로크, 로코코 스타일의 건축물이 여행자를 반갑게 맞이한다. 상점의 철제 간판들이 파스텔 톤의 산뜻한 건물과 멋진 조화를 이루는 골목 정면에는 인스브루크의 상징인 ‘황금지붕’이 보인다. 이 황금지붕 앞의 광장과 골목 곳곳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은 인스브루크 특유의 중세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져 낭만이란 두 글자를 여행자의 가슴에 각인시킨다. 오늘날 크리스마스가 세계인의 명절이 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며칠에 불과하다. 그러나 유럽에선 한 달 이상 크리스마스 시즌이 계속된다.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강림절 4주 동안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 때문. 성탄절 용품과 각종 기념품, 생활 필수품을 판매하는 크리스마스 마켓은 독일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마켓 분위기 즐기려면 저녁에 찾아야 인스브루크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시장 뒤로 아름다운 알프스가 병풍처럼 펼쳐져 어느 도시보다도 낭만적이다. 구시가지 광장과 골목에는 통나무로 만든 예쁜 상점들이 들어서고, 추운 겨울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크리스마스 마켓이라고 해서 성탄절과 관련된 용품만 파는 것은 아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품부터 장난감, 의류, 향수, 열쇠고리, 유리제품, 수공예로 만든 나무 인형 등 다양한 물건을 판매한다. 현지인들이 크리스마스 트리와 생필품을 많이 사는 반면, 여행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스모커라고 불리는 나무인형이다. 안에 향을 피우면 입으로 연기가 나오는 스모커는 산타클로스, 우체부, 나무꾼, 야경꾼 등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인스브루크뿐만 아니라 빈이나 옆 나라인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인형은 조금 비싸지만 선물이나 기념품으로 적당하다. 꼭 물건을 사지 않아도 상점마다 조명등과 독특한 조형물을 달아 놓아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것만으로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아침부터 열리지만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려면 저녁 때 찾아가는 것이 좋다. 태양이 인스브루크를 두르고 있는 알프스 너머로 사라지고 크리스마스 조명이 환하게 켜질 때 가장 아름답다. 이때부터 거리는 관광객과 현지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 시작한다. 시장의 분위기는 흥겹다. 유럽인들에게 크리스마스 마켓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이 아니라 축제이자 한 해를 보내는 가장 큰 이벤트이다. 인스브루크의 크리스마스 마켓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며 유쾌한 연말을 보내고 한해를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마켓을 찾는다. 사방이 완전히 어둠에 잠기어 크리스마스 조명이 더욱 빛나면 ‘황금지붕’의 발코니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캐럴이 연주된다. 조명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는 ‘황금지붕’에서 캐럴이 울려 퍼지면 세상이 멈춘 것처럼 사람들의 시선이 고정된다. 연주가 끝나면 크리스마스 마켓은 더욱 활기를 띤다. 연주를 듣게 위해 몰려 있었던 사람들은 상점을 기웃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상인들은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하며 차분한 자세로 손님을 기다릴 뿐, 손님을 유치하기 위한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북적거리는 우리네 시장에 비해 정적이지만 크리스마스 마켓의 분위기를 만끽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따뜻한 글뤼바인으로 몸을 녹이고 사람이 몰리는 곳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먹거리.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도 단연코 먹거리다. 사탕과 과자, 과일 등이 입맛을 돋구는데, 돼지고기 스테이크와 소시지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노점 앞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지갑을 연다. 커다란 원형 불판에 놓인 소시지와 고기가 타면서 솟구치는 하얀 연기에 저절로 침이 넘어간다. 유럽 물가에 비해 고기 값은 비싸지 않아 지갑을 여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 수많은 먹거리 중에서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이 초콜릿을 묻힌 사과. 단 것을 좋아하는 유럽인들이지만 과일까지 초콜릿을 묻혀서 먹는 것이 뜻밖이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가장 인기 있는 먹거리로는 글뤼바인이 있다. 나라와 도시를 불문하고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등장하는 글뤼바인은 설탕과 계피를 넣어 데운 레드 와인으로, 유럽의 추운 날씨를 견디며 크리스마스의 정취를 즐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때문에 글뤼바인을 파는 노점 앞에는 연인과 친구, 가족들이 언제나 북적거린다. 이들에게 한 잔의 글루바인은 크리스마스 마켓의 정취를 배가시켜 주는 묘약이다. 온기가 감도는 글루바인이 목젖을 타고 부드럽게 넘어가면 온몸에 그 열기가 전해져 순식간에 추위가 사라진다. 글뤼바인은 한 잔에 2~3유로인데, 컵 값으로 2~3유로를 따로 내야 한다. 상점마다 다른 모양의 머그컵에 담아 주며 마신 뒤에 컵을 가져가면 돈을 돌려준다. 보증금을 받지 않고 컵을 가져가도 괜찮다. 운반하는 것이 조금 불편하지만 귀국 후 이 컵에 차를 마시면 크리스마스 마켓의 운치가 저절로 되살아날 것이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늦은 밤까지 열린다. 시장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은 한 손에 글뤼바인을 들고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소망한다. 그들에게 크리스마스 마켓은 시장이 아니라 흥겨운 축제이다. 먼길을 찾아온 이방인에게도 크리스마스 마켓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인스브루크의 12월은 크리스마스 마켓과 더불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삶의 무게에 눌려 힘겹게 일상사를 보내는 우리. 인스브루크 사람들처럼 1년 중 한 달만이라도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에 젖어서 살아 보는 것은 어떨까.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성결한 도시 인스브루크. 그곳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마켓의 추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교통 우리나라에서 바로 가는 비행기가 없기 때문에 빈까지 간 다음에 국내선이나 기차로 갈아타야 한다. 기차를 이용할 경우 루프트한자로 뮌헨까지 간 다음 그곳에서 이동하는 것이 편하다. 뮌헨에서 하루 8∼10회 기차가 운행한다. 빈과 잘츠부르크에서도 수시로 다닌다. 레스토랑 구시가지에 위치한 Goldener Adler 호텔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0512-571-111)은 인스브루크를 방문한 여행자라면 꼭 찾는 명소이다. '황금 독수리'라는 뜻의 이 호텔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인물을 비롯해서 모차르트와 괴테, 하이네 등의 명사가 들렀던 곳이다. 우리나라 음식을 먹고 싶다면 구시가지 황금지붕 인근의 복잡한 골목에 있는 겐지 레스토랑(0512-560-813)을 찾으면 된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주메뉴는 일식이지만 매운탕과 파전 등 한식도 판매한다. 쇼핑 인스브루크는 동계 스포츠로 유명한 도시지만 쇼핑할 곳도 많다. 구시가지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와로브스키 매장을 비롯해서 선물가게와 쇼핑센터가 즐비하다. 물건값이 조금 비싸지만 발품을 팔면 저렴한 값에 좋은 물건을 구할 수도 있다. 호텔 세계적인 관광지답게 다양한 종류의 숙소가 있다. 여행자에게 가장 편리한 숙소는 기차역 앞에 있는 IBIS 호텔로 최근에 새로 문을 열어 깔끔하면서도 괜찮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 2인실이 75유로(약 10만 원) 정도. 기차역에서 나오면 왼쪽에 바로 보인다. 젊은이들을 위한 공식 유스호스텔도 여러 곳 있다. 관광안내소 중앙역 구내와 구시가지 초입에 있다. 지도와 숙소, 교통, 관광지 안내는 물론이고 스키패스도 판매한다. 월∼토요일 8시∼19시, 일요일 9시∼18시에 연다.
강렬한 색채의 도시 Guanajuato 2007-11-13
멕시코를 여행하는 사람치고 과나후아토를 들르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과나후아토는 ‘은광의 도시’라는 낭만적인 이름과 함께 강렬한 색채의 건물, 구불구불한 길과 매력적인 광장, 멕시코 특유의 강렬한 태양이 전해 주는 나른함까지 여행자를 매료시키는 요소가 너무나 많다. 멕시코 중앙 고원에 위치한 과나후아토는 토착민들의 방언으로 ‘개구리가 사는 곳’이라는 의미. 토착민들은 높은 고산지대에 위치한 이 도시에 은이 묻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개구리나 살 수 있는 땅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낭만적인 은광의 도시 볼품없던 과나후아토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큰 은광도시로 발전하면서 뉴 스페인(식민 시절의 멕시코)의 은 생산의 4분의 1을 공급하였다. 당시에 축적한 엄청난 부를 바탕으로 광산주들은 웅장한 교회와 바로크 양식 및 신고전주의 양식의 위풍당당한 건축물, 매혹적인 광장,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을 만들었다. 광맥이 고갈되면서 ‘은광의 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해졌지만 당시에 세워진 건물들은 그대로 남아 과나후아토를 멕시코에서 가장 낭만적인 도시로 만들었다. 과나후아토는 19세기 초 멕시코 독립운동의 주요무대가 되면서 다시 한 번 멕시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1988년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멕시코를 대표하는 관광도시로 탈바꿈하여 새로운 번영을 꾀하고 있다. 과나후아토는 도시 전체가 알록달록한 모자이크처럼 채색되어 있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장난감 블록 같은 느낌이 든다. 흰색과 초록색, 빨간색, 오렌지와 코발트블루 등 화려한 도시가 많은 멕시코에서도 이곳만큼 현란한 색채를 보여주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과나후아토에 도착하면 가뜩이나 덥고 건조한 멕시코의 기온이 도시 뒤쪽에 펼쳐져 있는 황량한 민둥산 때문에 더욱 더 숨이 막힌다. 대부분의 길이 좁고 복잡해서 시내를 돌아보려면 걷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구불구불한 길을 천천히 돌아다니다 보면 콜로니얼 스타일의 멋진 건축물과 광장이 곳곳에 펼쳐져 동화 속의 나라를 걷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시간을 갖고 과거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훑다 보면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재미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된다. 과나후아토에서 맨 먼저 만나는 것이 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이달고 시장(Mercado Hiddalgo)이다. 거대한 쇠로 지어진 옥내시장인 이곳은 과나후아토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은 모두 찾아볼 수 있는 곳으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오렌지와 망고, 복숭아, 수박 등의 과일과 야채,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 많고, 멕시코 전통음식을 저렴한 값에 맛볼 수 있다. 허름한 간이식당에 앉아 신선한 과일을 갈아서 만들어 주는 주스를 마시고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낯선 동양인을 힐긋힐긋 쳐다보는 상인들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지만 가볍게 눈인사라도 하면 수줍은 미소로 화답한다. 연인들의 성지 ‘키스의 골목’ 발길을 시내로 돌려 조금 걷다 보면 과나후아토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차와 사람이 뒤얽힌 복잡한 골목을 따라 시내로 향하면 파스텔톤으로 채색된 콜로니얼 스타일의 위풍당당한 맨션 등이 수시로 나타난다. 우선 가 볼만한 곳이 멕시코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연이 얽혀 있는 키스의 골목(Callejon del Beso)이다. 마주보고 있는 두 건물 사이가 68cm에 불과한 이 골목에 얽힌 안타까운 사연 때문에 수많은 연인들이 찾아든다. 사랑에 빠진 귀족의 딸과 광부의 아들. 집안에 갇힌 그녀를 만나기 위해 청년은 건너편 주택에 세를 들어 두 사람은 밤마다 2층 테라스에서 만나 키스를 하며 사랑을 속삭였다. 하지만 여인의 아버지에게 들켜 둘의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을 맺는다.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에 끌려 이 순간에도 멕시코 전역에서 몰려든 연인들이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줄을 서고 있을 것이다. 키스의 골목에서 멀지 않은 골목에 멕시코가 낳은 천재화가 디에고 리베라가 태어난 집이 있다. 리베라는 멕시코 벽화운동의 대표주자로 민중에 대한 애정이 담긴 벽화를 많이 그렸다. 그는 유럽 회화의 전통을 멕시코 전통에 결합시킨 위대한 화가지만 우리에겐 영화 ‘프리다’를 통해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의 연인으로, 남편으로 애절하면서도 기형적인 사랑을 나눈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옛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생가는 현재 디에고 리베라의 삶과 예술이 담긴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그가 사용하던 가구와 유물 그리고 100여 점에 달하는 벽화가 전시되어 있다. 과나후아토의 화사함과 강렬한 색감은 그의 그림에도 잘 반영되어 그가 남긴 벽화 중에는 밝은 원색을 사용한 그림이 많다. 시내 중심지에는 엷은 노란색으로 채색된 스페인풍의 웅장한 대성당이 있다. 따뜻한 색을 칠한 벽이나 돔 지붕, 그리고 화려한 성모마리아상이 안치된 내부는 스페인의 성당과 너무나 닮아 있다. 중남미 어디서나 스페인의 흔적이 묻어나기 때문에 유럽을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친근감이 드는 한편 라틴아메리카의 슬픈 역사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다. 대성당 주변에는 아름다운 맨션 하우스와 대학, 성당 등 볼만한 건물이 즐비하다. 대성당에서 동쪽으로 발을 돌리면 곧 만남의 광장과 후아레스 극장이 나타난다. 만남의 광장은 1861년에 조성된 작은 월계수 광장으로, 도시의 심장부이자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이다. 광장 주변의 레스토랑에는 멋진 제복을 입은 마리아치들이 관광객 앞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의 멋진 연주를 듣고 있으면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밖에도 광장 주변에서는 다양한 거리 공연이 펼쳐져 항상 여행자들로 북적거린다. 만남의 광장 맞은편에 있는 후아레스 극장은 멕시코 제2의 공연장으로 1년 내내 다양한 공연이 올려진다. 도리스 양식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건물의 정면은 고대 그리스 건물을 모방했고, 금으로 치장한 내부 장식과 벨벳이 걸린 강당 등이 품격을 더해 준다.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여유의 도시 과나후아토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다른 콜로니얼 도시와는 조금 다른 점을 느끼게 된다. 시내 어디에도 신호등과 네온사인이 없다는 점이다. 구 시가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신호등과 네온사인을 없앴기 때문이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바쁜 일상에 익숙해진 우리에겐 느긋한 도시 분위기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하루 정도만 지나면 소박하고 조용한 도시 분위기가 그렇게 편안할 수 없다. 과나후아토의 또 다른 특징은 지하도로. 끝없이 이어진 터널 위에 도시가 얹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지하도로가 마을 전체에 걸쳐 뚫려 있다. 1965년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바닥을 개조해 만든 이 지하도는 시내 중심을 관통하며 몇 군데가 지상에 노출되어 있어 관광명소의 역할도 톡톡히 한다. 지하터널은 모두 일방통행으로 설계된 덕분에 교통체증이 없다. 지하터널이 건설된 후 과나후아토의 모든 도로는 지금까지 일방통행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해질 무렵이면 여행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도시의 전망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피필라(Pipila)의 언덕으로 향한다. 천천히 걷거나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언덕 중앙에는 독립 영웅인 피필라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피필라의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풍경과 석양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초록색, 파란색, 하얀색, 노란색, 분홍색 등 따뜻한 질감의 집들이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태양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부드러운 빛을 발산할 때면 도시 전체가 그대로 캔버스가 되어 한 폭의 유화를 담아낸 듯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태양이 마지막 빛의 향연을 끝내고 민둥산 너머로 사라지면 집집마다 하나둘씩 전등불이 켜지면서 새로운 색의 마술을 표현한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색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다 보면 이 아름다운 도시를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강렬한 색채와 낭만적인 전설 그리고 느긋한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도시 과나후아토.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곳이다. 교통 수도인 멕시코시티의 북부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5시간 정도 걸린다. 버스는 종류가 많지만 치안이 불안정한 편이니 조금 비싸더라도 특급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버스의 시설은 훌륭하지만 멕시코 물가에 비하면 교통비가 꽤 비싼 편이다. 국제학생증이 있으면 버스 요금을 대폭 할인받을 수 있다. 환전 및 환율 미국 달러나 유로화가 광범위하게 통용된다. 시내 곳곳에 은행과 사설 환전소가 있어 환전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멕시코의 화폐단위는 페소, 2007년 11월의 환율은 US$1=10.82페소, 1페소=85.10원이다. 물가 멕시코의 물가는 중남미에서는 비싼 편이나 우리나라보다는 싸다. 장거리 교통비는 비싸지만 식사와 일반 물가는 훨씬 저렴해서 부담 없이 여행할 수 있다. 특히 과나후아토는 멕시코에서도 물가가 저렴한 편이어서 장기 체류하는 사람이 많다. 숙박 멕시코를 대표하는 관광지답게 유스호스텔에서 고급호텔까지 다양한 종류의 숙박시설이 있다. 비용도 저렴하다. 깨끗한 중급호텔의 1인실을 3∼4만 원에 이용할 수 있다. 1만 원 안팎의 호텔도 꽤 된다. 주의 멕시코의 치안상태는 좋은 편이 아니지만 과나후아토는 아무런 걱정 없이 여행해도 될 만큼 치안이 잘 갖춰져 있다. 늦은 밤에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멕시코시티에서는 택시강도 사건이 빈번하니 콜택시를 이용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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