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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와 고린도 고대 그리스 영광의 도시들 2007-10-17
그리스인들은 펠로폰네소스(Pelop onnesos) 반도를 ‘영웅들의 섬’이라 불렀다. 영웅들이 들끓었던 것은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의 맹주였기 때문이고, 섬이라 불렀던 것은 이 반도가 그리스 본토와 연결된 끈이 워낙 가늘어 섬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본토 남쪽에 있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동서와 남북이 230km로 같고, 면적은 2만1,500km2로 그리스 전체 면적의 5분의 1을 차지한다. 우리나라 전라남도와 북도를 합친 땅보다 크다.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단에는 유로타스 강 하곡의 기름진 평야를 바라보고 산을 병풍 친 천혜의 요새 스파르타(Sparta)가 있다. 그리스 본토 남단에는 아테네가 있다. 과거 두 도시국가는 사사건건 으르렁거렸다. 스파르타는 코린토스와 메가라 등 반도에 있는 도시국가들과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맺어 전열을 가다듬었다. 아테네 내륙에는 2,500km가 넘는 산들이 병풍을 둘렀고 7km 떨어진 곳의 피레우스는 깊은 만 속에 자리잡은 천혜의 항구로 아테네의 출입문 역할을 했다. 아테네는 난공불락의 요새다. 해발 156m의 거대한 바위언덕인 아크로폴리스는 그 꼭대기에 가뭄이 와도 마르지 않는 2개의 샘이 맑은 물을 쏟아내 BC 3,500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아테네의 세력은 점점 커져 본토의 도시국가들을 휘어잡고 델로스 동맹을 맺어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맞섰다. BC 43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됐다. 전쟁과 냉전을 거치며 27년 동안 이어진 전쟁은 BC 404년 아테네가 항복하며 스파르타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상처뿐인 영광인가. 스파르타도 기진맥진, 그리스 쇄망의 길로 들어섰다. 고린도와 아테네를 잊는 ‘고린도 운하’ 고린도는 아테네에서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70km쯤 떨어진 곳에 있다. 오늘날 이곳에 가려면 고린도 운하를 건너가야 한다. 고린도는 그리스 본토로부터 남부지방에 자리한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이어지는, 폭 6km의 지협을 통제하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고린도는 페이레네라는 샘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돼 주변에는 기름진 들판이 펼쳐져 있다. 고린도는 북쪽의 이오니아해와 동쪽의 에게해로 뻗어나가는 두 개의 항구를 운영해 국제적 무역중심지로 성장했다. 고린도 만 북쪽 항구도시 레카이온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고린도 도시에 편입되었으며, 동쪽으로 11km 떨어진 사로니카 만에 위치한 겐그레아 항구는 바울로가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향하기 전 머리를 깎은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6km 길이의 고린도 운하가 건설되어 소규모 배들이 오갈 수 있지만,옛날에는 디올코스(Diolkos)라 불리는 포장도로가 있어서 두 항구를 연결했다. 디올코스가 없었을 때는 레카이온에서 겐그레아까지 나흘이 걸렸다. 겐그레아 항구에 도착한 배들은 짐을 내려놓은 다음 특수 마차를 이용해 배를 통째로 끌고 레카이온 항구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짐을 싣고 이오니아해를 거쳐 이탈리아 반도 지역으로 항해를 계속했다. 수에즈와 파나마에 이어 세계 3대 운하 가운데 하나인 고린도 운하는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그 필요성이 제기돼 로마 네로 황제 는 운하 건설을 시도하기도 했다. 고린도 운하는 1880년 공사를 시작해 13년 뒤인 1893년에 개통,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실제적인 섬이 됐다. 고린도 운하는 폭 70m, 길이 5km로 오늘날 아테네에서 고린도로 가려면 이 운하 위를 다리로 지나게 된다. 고린도 지역에는 BC 500년경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도시국가는 BC 100년경부터 시작됐다. 고린도의 창시는 시시포스와 에피라라고 전해진다. 고린도는 BC 146년 로마에 의해 파괴되면서 그리스 시대의 종말을 고했다. 그 후 100년 정도 황폐했다가 BC 46년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로마식 도시로 재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하드리아누스 등 로마 황제들의 후원으로 고린도는 계속 발전했지만 이민족의 침입과 지진 등의 자연재해로 서기 551년 도시로서의 기능을 마감했다. 지금은 아테네가 그리스의 대표 도시지만 서기 1세기 고린도는 상업의 중심지로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붐비는 국제적인 도시였다. 당시 고린도는 청동제품, 도자기류, 섬유업, 조선업, 건축업 등이 발달했다. 전체 도시 가운데 일부만 발굴된 고린도 유적지에는 BC 6세기에 건설된 것으로 보이는 아폴로 신전을 비롯해, 여러 신전들과 바실리카, 대규모 시장터인 아고라, 극장, 오데이온, 일종의 종합병원인 아프클레페이온, 목욕장 등이 있다. 오늘날, 세월의 풍상 따라 스파르타와 아테네, 고린도는 많이 변했다. 아테네가 유럽문명의 발상지이자 그리스 수도로 몇 백 만의 인구가 들끓는 국제도시가 된 반면, 한때 아테네를 굴복시킨 펠로폰네소스의 맹주 스파르타는 인구 2만의 조용한 농어촌 소읍으로 전락했다. 아테네와 맞먹던 국제도시 고린도는 관광객들의 돈으로 연명하는 신세가 되었다. 펠로폰네소스에 또다시 불길이 치솟았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싸움이 아니라 산불과 그리스의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지중해 연안 지역은 겨울이 우기, 여름이 건기다. 지난 여름, 이상기후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수은주를 40℃ 이상 끌어올렸다. 지글지글 끓는 대지와 바싹 말라 타들어 가던 산천에 누군가의 방화로 추정되는 불길이 동시다발로 치솟았다. 5,000여 명의 이재민과 66명의 사망자를 낸 산불은 3,900억 원 이상의 재산피해를 냈다. 그리스 사상 최악의 산불이었다.
CANADA ALVERTA 대자연, 인간의 모험을 .. 2007-10-17
에서는 짜릿한 모험과 위압적인 대자연이 뒤엉킨다. 강성한 로키를 선홍빛 헬기 위에서 내려다보는 체험은 전율이다. 프로펠러의 굉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출렁거리는 로키 산맥만 눈앞에 도열한다. 헤드폰을 통해 홀러나오는 조종사의 설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설산을 가로지르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 원시의 호수, 푸르게 번쩍이는 바위들……. 헬기는 몸을 비틀며 산봉우리와 스치듯 비행하지만 긴장도, 비명도 멈추는 창공에서의 1시간은 무아지경 속에 흘러간다. 봉우리들의 진한 유혹은 눈과 귀를 흔들며 그렇게 한참 동안 넋을 빼 놓는다. 헬리 투어, 강렬한 로키의 유혹 알버타가 품고 있는 자연은 한 뼘 위에서 바라볼수록 더 고혹적이다. 밴프 곤돌라를 타고 설퍼 산 전망대에 오르거나 레이크 루이스 곤돌라에서 눈 덮인 산과 호수를 감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캘거리에서 밴프로 향하는 길목에는 이곳 인디언 말로 ‘머리 큰 추장’이라는 뜻을 지닌 캔모어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헬기를 타고 설산 위로 붕붕 날아 오르는 짜릿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헬리 하이킹, 헬리 투어라는 다소 생소한 체험인데 붉은색 헬기를 타고 ‘스리 시스터즈’ 산봉우리 위를 선회하거나 2,000m가 넘는 험봉에 착륙한 뒤 능선을 따라 하이킹을 즐기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지만 그 감동은 자연의 경이로움만큼 빽빽하게 채워진다. 이곳 젊은이들은 헬기를 타고 올라간 뒤 능선에서 헬리 웨딩을 치르기도 한다. 이곳에서의 감동은 일대에 흩어져 있는 300여 개의 호수 때문에 더욱 도드라진다. 그 중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빅토리아 빙하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레이크 루이스 호수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딸인 루이스 공주의 방문을 기념해 이름이 붙여졌는데 ‘작은 물고기들의 호수’라는 앙증맞은 이름도 지니고 있다. 이곳에서는 미니 호수에서 즐기는 휴식이 사실 더욱 보드랍고 감미롭다. 호수를 독차지한 채 캠핑카에 머물며 호숫가에서 여유롭게 낚시를 즐기거나 하룻밤 묵는 체험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밴프 인근 카나나스키스에서는 산중에서 카우보이의 낭만을 재현할 수 있다. 목장에서 출발해 키드 산을 바라보며 산허리를 돌아오는 진짜 오프로드 승마가 가능하다. ‘랜치 트레일 라이드’로 불리는 승마 체험은 카나나스키스에서 진짜 ‘존 웨인’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 목가적인 분위기 때문에 보우 강과 카나나스키스 강이 만나는 이곳 일대는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가을의 전설’, ‘용서받지 못할 자’ 등 서부영화의 단골 배경이 되었다. 로키의 본고장인 캐나다 알버타 주를 자동차로 질주하는 것 또한 흥분된다. 캘거리에서 애드먼튼으로 향하는 도로에는 세계에서 가장 멋진 산악 경관을 자랑하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가 뻗어 있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밴프와 재스퍼 국립공원도 이 도로 위에 자리잡고 있다. 알버타에는 독특한 자연경관만큼이나 특이한 자동차 문화가 있다. 알버타의 도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번호판 없는 ‘유령차’들. 대부분의 차들이 번호판 없이 버젓이 도로를 질주한다. 불필요한 비용과 세금을 줄이자는 차원에서 주정부가 번호판을 없애버린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유독 알버타 주만 그렇다. 카우보이의 향연, 스탬피드 축제 이방인이 알버타를 찾는 또 다른 이유는 캘거리 스탬피드 축제 때문이다. 절정의 기량을 갖춘 카우보이들이 날뛰는 말 등에 앉아 엉덩이를 흔들며 리듬을 타는 광경은 말들의 거친 콧바람과 기분 좋게 뒤섞인다. 섬세한 사람이라면 관중의 환호 속에서 발굽과 함께 뛰는 심장 소리를 들을 것이고, 아슬아슬한 카우보이의 몸 동작 사이로 ‘말 근육’이 던져 주는 야릇함에 얼굴이 후끈 달아오를 것이다. 그 황야의 ‘존 웨인’들이 연출하는 8초의 흥분을 생생하게 즐기기 위해 매년 여름이면 100만여 명이 캐나다 알버타 캘거리를 찾는다. 북미 최대 야외축제로 자리매김한 스탬피드 축제의 상금은 175만 달러. 세계 최고의 카우보이들도 부와 명성을 좇아 매년 이곳 스탬피드로 몰려든다. 캘거리 사람들은 스탬피드 얘기만 꺼내면 표정부터 달라진다. 스탬피드 기간 도시 전역은 온통 서부시대로 회귀한 모습이다.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카우보이 모자에 ‘짜∼악’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번쩍번쩍 광나는 롱부츠를 신고 또각거리며 다닌다. 느닷없이 카우보이의 외침인 “Hee Haw(히 하우)”를 주고 받으며 축제의 현장에 함께 있다는 동질감을 확인하기도 한다. 거리의 쇼윈도와 담벽 곳곳에는 역동적인 역마차 그림이 그려지고 호텔 로비도 지푸라기 흩날리는 서부활극 풍으로 인테리어가 바뀐다. 축제기간의 아침은 무료 팬케이크 식사로 배부르게 시작된다. 역마차를 몰던 마부와 카우보이가 팬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축제를 시작하는 인심 좋은 전통이 수십 년째 이어져 나이 지긋한 카우보이들이 직접 베이컨을 듬뿍 얹은 팬케이크를 시내 곳곳에서 나눠준다. 축제기간 동안 캘거리 시내는 때아닌 러시아워와 말똥, 주차난으로 시달린다. 축제의 현장은 도심 한편에 자리한 스탬피드 파크. 카우보이들은 말등에 올라타 8초간 버티는 베어벡(Bareback), 척 웨건(Chuck Wagon)으로 불리는 역마차 경주를 펼친다. 요즘 역마차에는 최신식 내비게이션까지 달려 있다. 말들은 냉방시설 잘되는 마굿간에서, 카우보이들의 한적하게 마련된 트레일러에서 호사스럽게 휴식하며 경기를 준비한다. 캘거리의 청춘들에게도 스탬피드는 하루종일 흥청거릴 수 있는 멋진 기회다. 일일 티켓을 산 뒤 이곳저곳 바를 순회하며 기분 좋게 취하거나 몸을 뒤흔드는 선남선녀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때만큼은 힙합음악이 아닌 컨트리송이 무대를 장악한다. S라인의 미녀들이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기타 선율에 몸을 흔드는 광경은 자유롭고도 에너지 넘친다. 매일 밤 펼쳐지는 그랜드 스탠드 쇼 역시 최정상급 뮤지컬에 버금가는 매머드급 규모다. 캐나다 알버타를 찾으면 사람들은 밤을 잊은 채 말발굽 템포의 두근거리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로키와 스템피드에서 경험한 전율은 가슴 속을 한참이나 뛰어 다니며 진한 추억으로 남는다. tip 가는 길●밴쿠버를 경유해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한항공, 에어캐나다 등이 밴쿠버까지 운행하며 밴쿠버에서 캘거리행 국내선은 1∼2시간 단위로 있다. 인천∼밴쿠버 10시간, 밴쿠버∼캘거리 1시간 소요. 캘거리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25분 걸린다. 캐나다 관광청(02-733-7740), 알버타 주 관광청(02-725-0428)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둘러볼 곳●캘거리 시의 상징인 캘거리 타워에서 시내뿐 아니라 멀리 로키의 정경까지 조망할 수 있다. 캘거리 헤리티지 파크에는 서부 캐나다 초창기 역사와 주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마을이 재현되어 있다. 카나나스키스와 밴프 일대는 천혜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골프 코스가 여럿 있다. 그린피도 100달러 이하로 한국의 절반 수준. 숙소●밴프 스프링스 호텔은 ‘로키에 위치한 캐나다의 성’으로 불리는 호텔로 밴프타운에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에 출연했던 마릴린 먼로가 밴프 일대에서 촬영하며 이 호텔 스위트룸에서 3개월간 투숙했다. 샤또 레이크 루이스 호텔은 창 밖으로 펼쳐진 호수 경관이 일품이다.
강남 제일의 물의 도시 주장 周庄 2007-10-12
강남의 수향(水鄕)은 천하제일이요, 주장의 수향은 강남 제일이라.’ 주장은 마을 전체가 물로 둘러싸여 있어 베니스에 못지않은 낭만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아름다운 운하와 다리, 호수, 누각과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연출하는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운하를 따라 줄지어 있는 명·청 시대의 고택과 골목 곳곳에 배어 있는 고풍스런 분위기는 시간을 거슬러 우리를 과거로 데려다준다. 강남 최고의 물의 도시, 주장 중국의 강남지방은 예부터 강과 호수, 운하가 많기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도시가 항주와 소주다. 마르코 폴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 극찬했던 항주와 미인이 많다는 소주는 수백년간 강남지방을 대표하는 도시였다. 옛날 사람이 많지 않고 공해가 없던 시절의 두 도시는 정말 살기 좋은 도시였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대대적인 개발로 두 도시는 과거의 낭만적인 분위기 대신에 복잡하고 멋없는 곳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제 두 도시를 강남을 대표하는 물의 도시라고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에 반해 상해에서 버스로 1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주장은 강남의 이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운하의 도시다. 주장은 강과 냇가를 따라 집이 늘어서 있는 전형적인 강남 운하마을이다. 주민들 또한 전통적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상해가 중국의 현대화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면 주장은 오랜 역사를 면면히 이어온 그들의 문화적 유산과 자연환경, 그리고 고유의 전통을 지키고 있는, 중국에서 몇 안 되는 도시다. 주장은 물위에 떠 있는 연꽃처럼 아름다운 도시다. 운하를 따라 고풍스런 집들이 즐비하고 집 사이사이로 돌 조각이 촘촘히 박힌 정겨운 골목이 펼쳐진다. 그리고 운하 위에는 아름다운 돌다리가 곳곳에 놓여 있다. 주장의 운하는 이런 돌다리와 가옥의 안뜰 아래로 유유히 흐른다. 운하의 돌계단 앉아 빨래를 하는 아낙네의 모습은 주변풍경과 어우러져 잘 그린 한 폭의 수묵화가 된다. 주장의 건물들은 90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수로의 발달은 주장을 상업도시로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여러 왕조를 거치는 동안 전쟁의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명·청대의 건축물들이 아직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주장에 남아 있는 집의 60% 이상이 명·청대인 1368∼1911년에 만들어진 것이라 하니 마을 전체가 살아 있는 건축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장의 전통가옥과 정원, 상점 대부분이 관광객에게 개방되나 주장을 돌아보려면 먼저 수많은 인파가 엮어내는 혼돈에 적응해야 한다. 미로처럼 좁고 복잡한 골목을 사람에 채이며 걷다 보면 짜증 섞인 얼굴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잠시뿐, 고색창연한 점포가 즐비한 골목풍경에 적응하고 나면 주장의 진면목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운하의 도시 대나무 세공과 도예 제조소, 공예품 가게, 떡 가게, 기념품 가게 등이 즐비한 골목에서 한발자국만 벗어나면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아름다운 운하가 펼쳐진다. 十자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주장의 운하는 배 두세 척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아 주변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장은 복잡한 골목과 운하로 이루어져 있지만 길을 잃을 걱정이 없다. 주장을 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다. 복잡한 골목을 따라 이리저리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천하제일의 수향(水鄕)이라는 주장의 진풍경과 조우하게 된다. 옛 중국인들의 풍요로운 주거형태를 엿보려면 먼저 심청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 심청은 오늘날의 주장이 있게 한 심만삼(沈万三)과 주장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이다. 심만삼은 원래 외지인이었으나 원나라 중엽, 강남의 부호였던 아버지가 교역을 위해 주장으로 이주하면서 이곳에 터전을 잡게 되었다. 심만삼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주장의 수로를 이용한 무역으로 주장을 작물과 비단, 수공업의 집산지로 발전시켰다. 이런 공로로 그는 주장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심청은 1742년 그의 후손이 건축한 청대의 저택으로 2천㎡의 면적에 7채의 건물과 크고 작은 100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청의 차방과 메인홀은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공간으로, 고풍스러우면서도 우아한 가구로 가득 차 있다. 심청은 전통적인 가구와 부엌, 다양한 전시물로 인해 중국인들에게 더 인기가 높다. 주장에는 심청 외에도 장청, 미루, 등허사원 등 볼거리가 많다. 미루는 많은 학자와 문인들이 모여 술을 마시며 주장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장소로 유명하다. 그들은 술에 취하고, 강물 위로 한가로이 떠다니는 나룻배와 돌다리, 옛 저택, 가로수 등이 어울린 멋진 경치에 흠뻑 취해 시를 읊곤 했다. 주장의 풍경을 말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운하 위에 놓인 아름다운 다리들이다. 주장은 강남 제일의 수향답게 일찍부터 배가 주요 운송수단이었다. 그래서 마을 곳곳에 사람들이 불편 없이 강을 건너면서 배의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아치형의 돌다리를 만들었다. 원, 명, 청대에 만들어진 14개에 달하는 이 다리들은 아직도 각 왕조의 건축적 특징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마을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다리는 쌍교와 부안교, 정풍교이다. 마을 북동쪽에 있는 쌍교는 돌로 만든 반원형의 세덕교와 대들보형의 영안교를 일컫는 것으로, 주장의 상징과도 같다. 주장은 1984년 중국계 미국인 화가인 진일비가 그린 38점의 유화가 뉴욕에 전시되면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고향의 추억’이란 이름으로 출품된 쌍교는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져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그림을 계기로 주장이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명나라 때 만들어진 쌍교는 은자강과 남북시강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어 더욱 우아하다. 쌍교에서 남쪽으로 150m 정도 걸어가면 부안교가 나온다. 1355년에 만들어진 부안교의 네 귀퉁이에는 교루(橋樓)가 있는데, 절로 감탄이 날 만큼 매혹적이다. 부안교는 다리와 누각이 같이 있는 강남 유일의 건축물로, 다리에 붙어 있는 교루는 오랫동안 찻집과 레스토랑, 상점으로 이용되며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교루에 앉아 주장의 초록 운하를 바라보면 누구라도 음유시인이 될 것 같다. 소박함과 평화로움이 매력적인 곳 주장을 돌아보는 두 번째 방법은 배를 이용하는 것이다. 유람선을 타면 운하 사이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감춰져 있어 걸어 다니면서 볼 수 없었던 명소들이 서서히 드러나 주장의 낭만적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주장의 뱃사공들은 베니스의 곤돌라 리오네처럼 세련된 복장을 갖춰 입지 않고 소박하다. 그리고 남자보다 여자가 많다. 능숙한 솜씨로 좁은 운하를 헤쳐 나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건강한 삶의 향기가 느껴진다. 약간의 팁을 주면 즐거운 마음으로 주장의 전통민요를 들려주기도 한다. 최근 늘어나는 관광객으로 인해 운하 또한 골목의 인파만큼이나 많은 배들이 얽히고 설키지만 뱃사공들은 능숙한 솜씨로 부딪침 없이 배를 저어 나간다. 배를 타고 호수와 운하 곳곳을 돌다보면 어느새 주장의 풍경이 하나하나 마음속에 쌓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운하 옆에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 앉아 할머니 차(茶)를 마시는 것도 운치가 있다. 대부분의 중국 사람들처럼 주장 사람들 역시 차를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방법은 다른 고장과 조금 차이가 난다. 그들은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차 세트와 운치 있는 방법으로 차를 마신다. 먼저 대나무나 나뭇가지를 이용해 도기나 흙으로 만든 차 그릇에 물을 끓인 후, 그 물로 차를 씻는다. 그리고 몇 분 후 끓인 물에 차를 풀어 넣는다. 이런 방법을 통해 차의 아름다운 색과 향기, 맛을 유지하게 된다. 할머니 차란 이름은 과거 노인들이 함께 모여 차를 즐기던 모습을 보고 차 이름을 할머니 차라고 붙인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차를 마시는 방법도 서서히 변하고 있지만 할머니 차는 아직도 주장의 명물로 꼽힌다. 사실 주장이 역사적인 볼거리와 자연적인 아름다움만 있는 도시라면 그리 특별한 매력을 못 느낄지도 모른다. 이보다는 따뜻한 할머니 차 한 잔과 소박한 사람들, 수백 년을 이어 온 전통과 문화가 주장을 잊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이다. 해질 무렵, 관광객이 모두 되돌아간 주장의 거리는 적막감이 감돈다. 이 시간에 다리 위에 서서 주변을 살펴보면 고요한 초록빛 물과 청명한 하늘이 그려내는 평화로움에 흠뻑 젖어든다. 주장에서의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그곳의 매혹적인 풍경과 인정 많은 사람들, 풍부한 역사와 문화적 유산은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게 될 것이다. 교통 우리나라에서 주장까지 가는 비행기가 없어 상해로 간 다음에 그곳에서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상해에서 지하철 상해체육관(上海體育館)역 인근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주장까지 투어버스가 하루 5회 운행하며 1시간 정도 소요된다. 호텔 주장에는 호텔이 많지 않기 때문에 상해에서 하루치기로 다녀가는 것이 좋다. 주장에 머물고 싶은 사람들은 주장빈관(周庄賓館 (0571) 5721-6666)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중국 전통 스타일로 꾸며진 호텔은 스포츠센터와 사우나, 바, 쇼핑 아케이드 등을 갖추고 있다. 시내 중심가에 있어 교통도 편리하다. 2인실 50달러 정도. 식사 주장의 대표적인 요리는 만삼 돼지족발. 신선한 야채와 엄선된 돼지 다리를 주재료로 다양한 향신료를 넣어 삶은 것으로, 육질이 부드럽고 맛이 좋다. 주장의 특산품으로 마을 어디서나 쉽게 맛볼 수 있다. 주의할 것 상해에서 당일치기로 주장을 돌아보려는 사람들은 상해로 돌아가는 마지막 버스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버스가 일찍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소매치기도 생겨났으니 복잡한 골목에서는 조심하도록.
힌두의 향기 발리 휴양과 쇼핑과 축제의 섬 2007-09-14
발리에서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길가에 ‘박소 바비’(Bakso Babi)라는 사인을 자주 보게 된다. 도로 교통 표지판? 아니면 발리당의 정치적 구호? 아니다. 이것은 발리의 전통음식인 돼지고기로 만든 미트볼을 뜻한다. ‘박소 바비’는 작은 수레에 담아 끌고 가기도 하고 상자에 담아 어깨에 메고 가기도 한다. 이것은 발리인들에게 간식이나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 박소 바비를 사먹는 사람들은 은근히 이런 뉘앙스를 풍긴다. “나는 인도네시아 사람이 아니라 발리인이야. 너희들은 이걸 먹지 못해.” 인도네시아의 유일한 힌두나라 거대한 섬나라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국가다. 단, 발리만 빼고.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사우디나 이란처럼 그렇게 엄격하지는 않지만 돼지고기는 입에도 안 댈 뿐 아니라 돼지고기를 요리한 냄비는 백 번을 씻어 내더라도, 그 냄비에 요리한 다른 음식조차 알고는 먹지 않는다. 하지만 발리 사람들은 은근히 돼지고기를 먹음으로써 인도네시아 무슬림(회교도)에게 반감을 나타낸다. 발리의 관광산업은 발리의 목줄을 쥐고 있다. 2002년과 2005년 발리의 폭발참사로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죽고 나서 발리의 관광산업은 급격히 가라앉았었다. 발리인들은 폭발참사의 범인을 무슬림이라 생각한다. 발리의 인도네시아 무슬림에 대한 반감은 은연중에 쌓이고 쌓여있다. 2억2,000만 인구의 인도네시아에서 인구라야 300만 밖에 안 되는 섬 발리만 어떻게 힌두교일 수 있을까? 이 문제에 관한한 발리는 떳떳하다. 원래 인도네시아는 무슬림이 아닌 힌두교가 깊숙이 스며든 땅이었지만 13~14세기에 걸쳐 이슬람이 몰려오면서 인도네시아는 모두 이슬람화 됐다. 여기서 용하게 살아남은 곳이 바로 발리다. 발리는 한사코 이슬람의 물결을 물리치고 인도네시아 전통종교이자 그들 조상 대대로 내려온 힌두교의 믿음을 지켜냈다. 발리를 제외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너무 쉽게 그들의 믿음을 바꿔버린 것이다. 발리에 있는 4,600여 개의 힌두사원에서부터 개인적인 통과의례나 사회적 결합의례까지 힌두교를 떼어내고 발리인들의 생활상을 말할 수 없다. 발리 관광의 주요 대상인 음악, 노래, 춤 그리고 페스티벌 모두가 힌두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여행자의 눈에 비친 발리의 매력에서 힌두교와 연관지어지지 않는 것은 쇼핑과 나이트클럽뿐이다. 흔히 발리를 지상의 천국으로 묘사하지만 그것은 여행자들을 위한 브로셔에서 하는 말이고 발리 사람들의 생활은 고달프다. 발리의 수도 덴파사르에 머무는 외국 관광객이 하루에 쓰는 돈은 100달러 정도인데 덴파사르 시민의 하루 생활비는 겨우 1.4달러다. 발리 국민 총생산 가운데 덴파사르 관광수입이 59%를 차지한다. 덴파사르 시민이 그럴 진데 농촌 주민들의 생활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발리 사람들의 얼굴엔 고달픈 기색 없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언제나 친절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의 힘은 윤회와 업, 해탈의 길을 믿는 힌두사상에 있다. 발리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야 말로 발리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다. 발리 최고의 쇼핑거리 ‘쿠타 스퀘어’ 발리는 어떻게 관광천국이 되었는가? 솔직히 말해서 발리의 자연풍광이 다른 동남아 국가보다 빼어나다고 할 수 없다. 1920년대 초, 그 당시 인도네시아는 독일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여행 산업이 앞으로 크게 번창할 것이라는 것을 독일정부는 눈치 챘다. 그렇다면 유럽의 부호들이 흥미를 쏟을 곳은 어디일까? 독일정부는 발리를 지목했다. 이유는 유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발리 여자들의 ‘톱리스’ 차림 때문이다. 이런 현상도 힌두와 이슬람의 차이다. 힌두는 성(性)에 관한 한 관대하다(힌두사원엔 노골적인 성 묘사 조각이 수두룩하다). 폭탄테러로 주춤하던 발리의 경기는 현재 완전히 회복했다. 인천국제공항과 발리 덴파사를 잇는 노선은 한국의 신혼여행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다. 발리의 또 다른 매력은 쇼핑이다. 매년 12월 중순쯤이면 모스크바 페테르스 부르크에서 전세기가 날아와 발리공항에 꾸역꾸역 러시안들을 토해낸다. 북풍한설 몰아치는 동토의 나라에서 야자수 춤을 추는 발리로 러시안들이 몰려오지만 발리에는 이들을 가이드 해줄 사람이 없다. 그나마 자카르타에서 걸음마 수준의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몸값을 잔뜩 올려 이곳에서 길 안내를 해주고 있다. 러시안들은 쇼핑하러 갈 때 픽업트럭을 렌트해서 명품점을 싹쓸이 해버린다. 그들은 시시하게(?) 카드를 쓰지 않는다. 007 가방을 열면 빳빳한 100달러짜리 지폐다발이 차곡차곡 가득 들어있다. 그들이 가이드에게 주는 팁도 쩨쩨한 미국인이나 호주인이 주는 것과는 단위가 다르다. 때문에 지금 발리엔 러시아어 학원 문이 미어터진다. 발리는 쇼핑의 천국이다. 발리 관광객들은 발리에서 쇼핑만 잘하면 발리 여행경비를 충당하고도 남는다고들 말한다. 물론 그들은 보따리장수가 아니다. 자기네 나라에서 사고 싶던 물건을 발리에서 샀을 때의 차액이 비행기 티켓과 호텔 값을 뭉개 버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발리 최고의 쇼핑거리는 ‘쿠타 스퀘어’다. ‘발리’ 하면 우리는 야자수 춤을 추는 비치를 떠올린다. 발리에서 가장 길고 잘 알려진 비치는 쿠타 비치다. 이 쿠타 비치 뒷길에 위치한 쿠타 스퀘어는 쇼핑 천국으로 베르사체, 폴로, 돌체 & 가바나, 펜디, 페레가모, 프라다 등 우리 귀에 익은 명품 브랜드 간판으로 도배를 해놓았다. ‘발리의 이태원?’ 천만의 말씀이다. 이곳에 가짜는 없다. 그러나 상품 값은 가짜 수준이다. 폴로 여자 가디건이 2만7,000원이다. 진품 명품이 어떻게 이렇게 쌀 수 있을까? 우리는 모를 일이지만 하여튼 장사는 요지경이다. 발리는 제주도의 3배쯤 되는 섬이다. 깔때기 모양 아래로 좁아진 곳이 수도 덴파사르고 그 아래 절 처마 끝의 풍경처럼 매달린 조그만 반도가 부킷(Bukit)이다. 부킷 반도의 동쪽 끝이 누사두아(Nusa Dua)다. 최근 새로운 휴양지로 개발되어 자연이 훼손되지 않은 이곳에 ‘아코르 프리미어 베케이션 클럽’(APVC)이 있다. 널찍한 거실과 식당, 고급스런 주방과 베란다 등으로 꾸며진 이곳은 회원들이 이용할 땐 호화 개인 별장이 되고 비회원이 이용할 땐 노보텔 호텔이 된다. 카트를 타고 3분이면 APVC 전용 비치가 있다. 이곳은 조용해서 누드는 좀 곤란해도 토플리스는 자연스럽다. APVC에서 걸어서 5분이면 발리 G.C 클럽하우스에 닿는다.
OKTOBER FEST 맥주에 취하는 축제의 나날 2007-09-13
베를린 함부르크와 함께 독일 3대 도시인 뮌헨은 세계적인 명차 BMW의 고장이고 독일 하이테크 산업의 중심지다. 또한 분데스리가 최고의 명문구단인 바이에른 뮌헨의 홈이자 독일 맥주산업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뮌헨은 12세기 이후 바이에른 왕국의 비테르스바흐 가문이 800년간 지배하며 남부독일 궁정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시내 곳곳에는 당시에 만든 호화로운 궁전을 비롯해 박물관과 미술관이 흩어져 있어 문화 애호가들을 즐겁게 한다. 2차대전 때 연합군의 집중폭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지만 전후 복구되어 중세와 현대적인 이미지가 조화를 이루는 활기찬 도시로 성장했다. 뮌헨은 1년 중 언제 가도 매혹적이지만 맥주의 도시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기간은 두 말할 것 없이 옥토버페스트 시즌이다. 세계 최대의 맥주축제 매년 9월 셋째 주에서 10월 초까지 16일간 열리는 축제기간에는 6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들어 축제의 열정을 만끽한다. 처음에는 10월 첫째 주말에 개최되었기 때문에 ‘10월의 축제’라는 뜻의 옥토버페스트로 불렸으나 날씨가 좋고 야외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9월 말~10월 초에 열리게 되었다. 옥토버페스트 기간에는 도시 전체가 흥청대는 술판으로 변해 사방에서 맥주 냄새가 진동한다. 이 기간에 관광객들이 소비하는 맥주는 1천만ℓ가 넘는다고 하니 그 양을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오늘날 뮌헨이 맥주의 도시로 명성을 얻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옥토버페스트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 행사는 바이에른 왕국 루트비히 1세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1810년 10월 12일 첫 축제를 연 데서 유래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5일 동안 경마와 성대한 파티를 열었는데, 매년 같은 시기에 기념행사를 개최한 것이 옥토버페스트로 자리를 잡았다. 옥토버페스트는 보불(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발발한 1870년, 콜레라가 창궐했던 1873년, 그리고 1, 2차대전 기간을 제외하고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열렸다. 그 결과 지금은 2월의 쾰른 카니발과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맥주축제의 주무대는 뮌헨 중앙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인 테레지엔비제(Theresienweise) 광장이다. 이곳에는 한 번에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비어텐트와 각종 놀이기구가 설치되어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수천 명의 인파로 북적대는 비어텐트 비어텐트는 뢰벤브로이, 호프브로이, 슈파텐브로이, 아우구스티너 켈러 등 뮌헨에 거점을 두고 있는 메이저 맥주회사에서 설치하는데, 매년 12~15동이 들어선다. 텐트는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3층까지 있다. 그런데도 이곳에 들어가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전 10시에 문을 여는데, 점심 무렵이면 사람들이 꽉 차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기 일쑤다. 남녀노소, 인종, 국적에 상관없이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비어텐트는 항상 만원이다. 가장 인기 좋은 곳이 호프브로이와 뢰벤브로이 하우스 텐트. 유독 두 곳이 인기를 끄는 것은 중세 때부터 왕실에 공급하는 맥주를 만들어 온 전통과 더불어 축제의 묘미를 가장 잘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비어텐트는 맥주를 마시는 장소라기보다는 문화공간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중앙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민속의상을 입은 악단들이 신나게 연주를 하고, 나무 테이블에 마주 앉은 사람들은 서로 잔을 부딪치며 프로스트(건배)를 외치고, 합창을 하기도 한다. 테이블에 올라가 퍼포먼스를 펼치는 사람도 많다. 멈추는 것을 잊어 버린 듯한 밴드가 연주를 하면 1천cc짜리 맥주잔을 치켜든 수천 명의 주당은 일제히 일어나 몸을 흔들며 온몸으로 축제를 즐긴다. 이곳에서만큼은 누구와도 쉽게 어울릴 수 있다. 오로지 먹고! 마시며 즐길뿐이다. 지구촌 최대의 맥주축제답게 맥주의 종류도 다양하다. 독일을 대표하는 브랜드는 기본이고 흑맥주와 생맥주, 이름조차 낯선, 독특한 맛과 비법을 자랑하는 맥주들이 끊임없이 주당들을 유혹한다. 축제의 또 다른 주역은 어린이 축제의 또 다른 주역은 어린이들이다. 테레지엔비제 광장에는 비어텐트와 동시에 롤러코스터, 범퍼카, 회전목마 등 다양한 놀이시설이 설치되어 가족단위 여행자를 불러들인다. 곳곳에 깨진 맥주병이 발끝에 차여도 개의치 않고 놀이시설을 타는데 열중한다. 놀이시설들은 야간에도 운영되기 때문에 비어텐트가 아니라면 거대한 야외 놀이공원에 온 듯하다. 비어텐트 안에서 어른들이 맥주축제를 즐기는 동안 텐트 밖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놀이마당이 펼쳐진다. 축제의 주무대는 테레지엔비제 광장이지만 뮌헨 전지역에서 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집이란 술집은 빈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꽉꽉 들어찬다. 노천 술집마저도 자리가 없다. 비어텐트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술집이라도 들어가 축제에 동참하는 것이다. 워낙 많은 사람이 아침부터 술을 마셔대기 때문에 점심 때가 지나면 앰뷸런스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지만 술에 취해 병원에 실려 가거나 사소한 시비 외에는 별다른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 축제기간에는 거리 퍼레이드와 전통악기 공연도 벌어진다. 직능단체별로 왕과 왕비, 귀족, 농부, 광대, 거지 등으로 분장하고 맥주통을 산처럼 쌓아올린 마차를 따르며 시내 곳곳을 행진한다. 퍼레이드를 관람하고 나서 사람들은 전통 레스토랑이나 비어홀에 들어가 온갖 종류의 맥주와 음식을 맛보며 축제 분위기에 젖어든다. 그런가 하면 테레지엔비제에서는 수백 명이 모여 나무로 만든 거대한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퍼레이드와 전통악기 연주는 정해진 날짜에만 하기 때문에 보고 싶다면 옥토버페스트의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 미리 날짜를 확인한다. 맥주를 매개로 일상의 억압을 풀어 버리는 옥토버페스트. 모든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어 버리는 마력이 있다. 옥토버페스트야말로 본질에 충실한 진정한 축제라 할 만하다. 여행정보 교통 우리나라에서 뮌헨까지 직항하는 비행기는 없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해서 프랑크푸르트로 간 다음 기차를 탄다. 루프트한자, KLM 등 유럽계 항공사를 이용해도 된다. 레스토랑 뮌헨에는 바이에른 지방의 전통요리를 내는 곳이 많다. 신시청사 지하에 있는 Ratskeller는 독일 요리 전문점으로, 직접 만들어 파는 소시지가 일품이다. 돌로 만든 넓은 공간에 두터운 나무 테이블이 놓여 운치가 넘친다. 수제 소시지에 맥주 한 잔을 곁들여 먹으면 끝내 준다. 호텔 뮌헨은 숙박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만 축제기간에는 방을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예약이 필수다. 숙박비 또한 두 배로 오른다. 중앙역 인근에 있는 Hotel Helvetia(☎089-590-6850)는 비교적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호텔로, 시설과 위치가 무난한 편이다. 옥토버페스트 홈페이지 축제 기간에 열리는 행사를 미리 알고 가면 큰 도움이 된다. www.oktoberfest.de 주의사항 뮌헨은 치안이 잘된 도시지만 축제 때는 조심해야 한다. 수백만 명의 인파를 따라 소매치기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간혹 술에 취한 젊은이들이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는데, 상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사막과 조로아스터교의 나라 야즈, 그 천년의 바람 .. 2007-08-17
남한의 18배나 되는 이란은 이 나라 꼭대기, 국토의 10%도 안 되는 카스피해 연안을 제외하고는 온 나라가 사막이다. 그 한복판에 자리 잡은 야즈(Yazd)는 지금쯤 펄펄 끊는다. 40℃를 훌쩍 넘기는 수은주는 밤이 되어도 내려갈 줄 모른다. 가마솥 야즈에 첫발을 디디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모습은 집집마다 우뚝 솟아올라 구멍이 뚫어진 4각 탑이다. 휴전선에서 북한이 대남방송을 하던 초대형 스피커를 연상시키는 4각 탑의 정체는 바로 야즈의 전통적인 에어컨디셔너다. 더위를 쫓는 유일한 장치 ‘바드기르스’ 야즈의 집들은 거의 모두가 흙집이다. 사막에서 유일한 건축자재인 흙으로 집을 지을 수밖에 없었지만 흙집은 이곳에서 가장 탁월한,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단 하나의 주거구조다. 흙집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현대과학은 이런 흙집이 내부의 습도를 자동 조절하는 기능이 있다고 밝혀냈지만, 야즈 사람들은 천년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흙집 위로 솟아오른 ‘바드기르스’라 부르는 에어컨디셔너도 역시 흙으로 만들어졌다. 바드기르스는 페르시아말로 ‘바람 탑’이란 뜻이다. 바람 탑은 걸프 연안지역에서 천수백년 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에어컨디셔너로 걸프만 남쪽, 두바이에서도 사용되었다. 요즘 두바이는 부자나라가 되어 어느 집이든 현대식 에어컨을 사용해 지금은 바람 탑을 사용하는 집이 단 한 곳도 없다. 그러나 지붕 위에 우뚝 솟아오른 바람 탑은 두바이에서도 전통건축양식으로 남아 건축미적 관점으로 겉모습만은 계속 세워지고 있다. 이란은 석유생산국이지만 부자나라가 아니다. 아직도 이란쪾이라크전 때 짊어진 막대한 부채를 갚느라 허덕인다. 이란 내륙, 그 중에서도 야즈엔 바드기리스가 아직도 집집마다 더위 쫓는 유일한 장치로 맹활약 중이다. 바람 탑의 모양새를 보면 첫눈에 그 집의 형편을 알 수 있다. 가난한 집은 바람 탑이 작고 볼품이 없지만 부잣집은 크고 높다. 또한 바람 잡는 구멍도 많고 화려한 장식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기능적 형태도 여러 가지다. 두 방향의 바람만 잡는 것이 있는가 하면 여섯 방향의 바람까지 잡는 것도 있다. 이 바람 탑의 구조는 네 부분으로 구성됐는데, 첫째가 몸통으로 바람통로를 만든다. 두 번째는 바람선반이 더운 바람이 바람통로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 준다. 유체역학의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세 번째는 보조날개로 수평으로 들어온 바람방향을 수직으로 바꾸는 것이다. 네 번째는 열을 차단하는 지붕이다. 이것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제 역할을 다하는지 알아보자. 바람이 불어와 바람 탑 속으로 들어가면 선반이 더운 바람을 막고 보조 날개가 시원한 바람을 90℃방향을 틀어 아래로 밀어 보낸다. 바람은 통로를 타고 집 안으로 내려가 물이 고여 있는 곳 위에서 기화열을 빼앗겨 시원해진다. 그리고 수평으로 분배된 통로를 따라 거실로 방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가는 것이다. 야즈의 흙집에 들어가면 뻥 뚫린 바람구멍이 환기구처럼 보인다. 환기구는 벽이나 창 위쪽에 있지만 바람 탑 바람을 받는 바람구멍은 바닥 가까이 있다. 바람구멍 앞에 앉으면 현대의 에어컨보다야 덜 차지만 건강하고 시원한 바람이, 전기모터도 돌리지 않고 끊임없이 나온다. 조로아스터교를 지켜온 야즈 야즈는 이란 고원, 해발 1,200m에 있는 인구 40만의 고도(古都)다. 야즈는 3세기 초 사산조 때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이 마을은 커져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642년 반달칼을 휘두르며 질풍처럼 달려 온 사라센에 정복당한다. 그 후 이곳은 중앙아시아와 인도를 잇는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지가 된다. 13세기 마르크 폴로가 이곳을 지나며 이곳을 살기 좋고 풍성한 상업도시라 기록했지만 곧이어 징기스칸의 말발굽이 이 도시를 초토화시킨다. 이후 14∼15세기에 걸쳐 야즈는 다시 부흥했다가 해양시대가 열리며 내륙 실크로드의 인적이 끊기자 황량한 사막도시로 주저앉았다. 페르시아 당시 이란은 원래가 불(火)을 섬기는 조로아스터교가 국교였다. 7세기 사라센 제국에 정복당하며 페르시아는 이슬람화 한다. 야즈는 칼에는 정복당했지만 이슬람에 완강히 저항하며 조로아스터를 굳게 지켰다. 불이 만물의 근원이자 절대자라는 조로아스터교는 면면히 이어져와 지금도 야즈에 3만 명 정도 남아 있다. 완고한 이슬람 국가 이란에서 여자들이 차도르도 입지 않고 남녀가 어울려 춤을 추는 조로아스터 교도들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조로아스터 교도들은 박해를 받았다. 특히 재산상으로 여간 불리한 것이 아니다. 이란의 법은 집안의 조로아스터 교인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집 안의 전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개종하지 않은 다른 식구들은 한 푼도 상속받을 수 없다. 그 후 1979년, 팔레비 왕을 몰아내고 호메이니가 정권을 잡자 조로아스터 교인들은 핍박이 더욱 가혹해질 것이라 불안에 떨었는데 의외로 반대현상이 벌어졌다. 이슬람과의 차별이 많이 완화된 것이다. 7세기, 이슬람의 사라센 군대가 이란을 정복했을 때 끝까지 저항하여 그 당시 이란의 국교였던 조로아스터교를 지킨 지조를 높이 산 것일까? 이제 야즈의 조로아스터 교도들은 마음놓고 공개적으로 그들의 종교의식을 거행한다.
여행자들의 천국 LAKE ATITLAN 2007-08-13
과테말라는 고대문명 중 가장 매력적이라는 마야문명의 흔적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 중남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로 꼽힌다. 치안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해마다 많은 여행자들이 찾아드는 이상한 나라 과테말라. 그곳에는 마야문명 외에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수많은 여행지가 있다. 대표적인 곳이 과테말라시티 서쪽 150km 지점 고원지대에 위치한 아티틀란 호수다. 중남미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이 호수는 저렴한 물가와 환상적인 경치, 순박한 인디오들, 편안한 분위기 등 여행자를 매혹시킬 만한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 ‘멋진 신세계’의 작가 A. 헉슬리는 일찍이 이곳을 방문한 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고 극찬하였다. 또한 위대한 혁명가의 삶을 살았던 체 게바라도 아티틀란을 방문하고 나서 그 아름다움에 반해 혁명가의 꿈을 접으려 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아티틀란 호수는 그 누구라도 순식간에 매료시켜 버리는 곳이다. 하지만 아티틀란으로 가는 길은 쉽지가 않다. 과테말라시티에서 낡은 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펼쳐지는 고갯길을 넘어야 한다. 150km밖에 안되는 거리지만 지형이 험한데다 공사 중인 곳도 있어서 거의 4시간이 걸린다. 특히 그림 같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마지막 구간은 아찔할 정도로 경사가 급하다. 버스가 언덕길을 내려갈 때 아름다운 호수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화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여행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호수를 감상하기 바쁘다. 긴 버스 여행은 아티틀란 호수를 돌아보는 관문 파나하첼 마을에서 끝난다. 아티틀란 주변에는 크고 작은 인디오 마을이 있는데, 그 중 파나하첼은 호텔과 레스토랑, 여행사, 환전소 등 여행자를 위한 시설이 밀집되어 있는 거점 도시다. 거의 모든 여행자가 파나하첼에서 아티틀란 여행을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나하첼은 아티틀란 호수에 접해 있는 작은 마을이다. 관광객을 위한 마을이라 거리 곳곳에서 여행자가 보이고, 이들을 따라다니는 인디오 상인들을 볼 수 있다. 파나하첼에서는 쇼핑과 휴식 외에는 특별히 할 것이 없다. 그저 기념품 상점을 기웃거리거나 호수 주변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낼 뿐이다. 거리를 활보하다 보면 전통의상을 입은 인디오 여인들이 손으로 짠 직물을 어깨에 둘러메고 다가온다. 그들의 밝은 미소와 순박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파나하첼에서의 생활이 무료해지면 배를 타고 호수를 유람하거나 인근 인디오 마을을 방문한다. 아티틀란 호수 여행은 주로 배로 이동하며, 호숫가로 이어진 산길을 따라 가벼운 산행을 할 수도 있다. 화산 붕괴로 형성된 거대한 칼데라 호수 아티틀란은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 중 하나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해발 1천562m에 위치한 이 거대한 호수는 면적 127.7㎢, 둘레가 120km에 달해 바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화산이 붕괴되어 형성된 칼데라 호수로 주변에는 아티틀란 화산, 산페드로 화산, 톨리만 화산 등 3천m가 넘는 웅장한 화산군이 둘러싸고 있다. 아티틀란의 아침은 어부들과 빨래를 하는 여자들이 연다. 높이 솟아 있는 화산의 분화구 위로 태양이 솟아오를 때면 작은 나무배를 탄 어부들은 그물을 걷으러 호수로 나간다. 한두 명이 타면 꽉 차는 작은 배에 몸을 싣고 붉게 물든 호수를 노저어 가는 모습은 그림 속 한 장면이다. 어부들과 더불어 호수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이들이 인디오 여자들이다. 아티틀란 호숫가의 빨래터는 물이 허리까지 오게 만들어져 있어 옷을 적시며 빨래를 해야 한다. 옷가지며 이불 호청이며 하루 종일 빨아도 쉽사리 끝나지 않을 정도로 빨랫거리가 많다. 아티틀란 호수 산자락에는 12개의 인디오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호수를 두르고 있는 산들은 하나 같이 원추형으로 곧게 솟아 있다. 마을들은 가파르게 경사진 산비탈에 형성되어 있다. 호수 주변에 사는 키페 마야족들은 산비탈 밭에 옥수수, 파 등을 재배하거나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로 생계를 유지한다. 온전히 사람 힘으로 농사일을 하기 때문에 고단할텐데 밭에서 만나는 그들은 맑은 웃음을 보여준다. 히피들이 영혼의 안식처로 택한 그 곳 이곳 주민들의 또다른 소득원은 직접짠 직물, 조각품, 각종 민속 공예품이다. 인디오 마을을 방문하려면 파나하첼 선착장에서 목적지까지 배를 타면 된다. 가까운 마을은 호수를 가로질러 1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먼 곳은 몇 시간이 걸린다. 마야 여인들은 인디오 전통의상인 티피코를 걸친다. 해발 1천500m가 넘는 아티틀란 호수는 사계절 내내 쾌적하다. 겨울철 우기에 잠시 비가 내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연중 덥지 않고 맑은 날씨가 이어진다. 쾌적한 날씨와 저렴한 물가, 아름다운 풍경, 순박한 사람들, 치안 등 여행자를 위한 조건이 잘 갖춰져 있어서 아티틀란은 장기체류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때문에 여행자들 사이에 ‘지상의 파라다이스’라는 평을 듣고 있기도 하다. 이런 편안하고 느긋한 분위기 때문에 아티틀란은 한때 히피들의 본거지로 불리기도 했다. 히피문화가 세계를 휩쓸던 1960년대 말 각국의 히피들이 아티틀란을 도피처로 삼아 몰려왔다. 지금은 순수한 여행자들이 주를 이루지만 간혹 파나하첼의 레스토랑에서는 마리화나나 해시시 연기를 내뿜고 있는 초로의 히피들을 마주치게 된다. 위대한 혁명가와 소설가, 현대문명에서 도망쳐 나온 히피들이 영혼의 안식처로 택한 아티틀란. 그곳에는 바쁜 일상의 삶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매일매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꿈처럼 아련히 떠오른다. 여행정보 교통 2007년 8월 현재 우리나라에서 과테말라까지의 직항편은 없다. 때문에 로스앤젤레스에서 미국 항공사를 이용해 과테말라시티로 간다. 과테말라시티에서 아티틀란까지는 버스로 3시간 30분에서 4시간 정도 소요된다. 멕시코에서 육로를 따라 아티틀란 호수에 갈 수도 있다. 과테말라시티에서 가든 멕시코 쪽에서 가든 아티틀란 호수로 이어지는 도로사정은 좋지 않다. 비자 우리나라와 과테말라 사이에는 무비자 협정에 체결되어 있어서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환율 및 환전 과테말라의 화페는 케찰(Quetzal, GTQ)이다. 2007년 8월 현재의 환율은 1US$= 7.81GTQ. 과테말라에서는 미국 달러나 유로화가 통용되며, 환전은 은행이나 사설 환전소, 여행사 등에서 쉽게 할 수 있다. 숙소 아티틀란 호수는 과테말라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여서 숙소가 많다. 숙박비가 싸면서도 시설이 훌륭해 장기 체류자가 꽤 많다. 여행자들은 대부분 아티틀란 호수 초입 마을인 파나하첼에 머문다. 마을이 아주 작아 숙소는 금방 찾을 수 있다. 여행정보 과테말라에서는 관광안내소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과테말라 관련 정보는 과테말라에 거주하는 교민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인 과테코리아(www.guatekorea.com)에서 얻을 수 있다. 주의사항 과테말라는 중남미에서 치안이 가장 안 좋은 국가 중 하나다. 특히 수도 과테말라시티는 살인, 강도 등 강력사건이 수시로 일어난다.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안티구아와 아티틀란은 치안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가능하면 밤에는 돌아다니지 말고, 현금이나 귀중품은 많이 휴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시보레 서버번 타고 오리건 중부 내륙으로 서부개척 .. 2007-07-10
SUV의 원조이자 오늘날 SUV 물결을 이루게 한 파문의 진원지. 아직도 SUV의 왕 중 왕인 ‘서버번’(Suburban)이란 이름의 역사는 멀리 16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uburbane’이란 이름이 세상에 처음으로 쓰인 것은 극작가 ‘존 플렛처’의 연극에서였다. 그리고 시인 ‘존 밀턴’의 1671년도 작품 ‘다시 얻은 파라다이스’에서는 지금 쓰고 있는 차명 그대로 ‘Suburbane’의 마지막 ‘e’가 빠진 ‘Suburban’으로 쓰여 졌다. 그 당시 ‘서버번’이란 단어는 매너가 형편없는 사람을 수식하는 형용사였다. 1800년대 말에서야 이 단어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마차 생산제품의 이름이 됐다. 이 마차는 두 바퀴 마차에서 네 바퀴 마차로, 캐노피를 씌운 마차에서 다시 동력자동차로, 그리고 현대적인 자동차에서 SUV로 탈바꿈을 거듭했지만 ‘서버번’이란 이름은 변함없이 따라와 오늘날 GM 시보레의 대표 모델이 됐다. 서부개척자들의 광야 그리고 절망의 벽 서버번은 젊은이들이 타는 값싼 SUV가 아니라 부자들의 아웃도어용이다. 휘발유를 많이 잡아먹는 단점이 있지만 부자들에게 연료값쯤이야 안전성, 기동성, 승차감, 편리성에 비하면 조족지혈. 서버번은 8인승의 넓은 실내와 8기통 엔진의 파워로 보트나 캠핑카를 끌고도 오프로드를 거침없이 달린다. 서버번을 타고 일주일간 미국 오리건 중부 내륙을 도는 행운을 잡았다. 오리건 중부 내륙은 서버번의 우월성을 입증할 수 있는 최적의 땅이다. 서부개척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북미대륙을 가로 질러 노란 흙먼지를 뒤집어 쓴 역마차 행렬은 서쪽으로 서쪽으로 더듬어 갔다. 불타는 사막을 뚫고 북풍한설 몰아치는 엄동설한을 넘기며 끝없는 대평원을 가로질러 서부로 향했다. 인디언의 기습에 쓰러진 가족을 광야에 파묻어 엉성한 십자가 하나 꽂아두고 눈물도 마르기 전에 떠나야 했던 개척자들은 또다시 절망의 벽에 마주친다. 하늘을 덮은 울창한 숲이, 바위를 굴러 내리는 분노의 계곡물이, 흰눈을 덮어 쓴 산들이 두 팔을 벌려 그들을 가로 막은 것이다. 2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서부개척자들이 털썩 주저앉아 통곡을 하던 절망의 벽은 여전히 흰눈을 덮어쓴 채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러나 흰눈을 덮어쓴 산봉우리만 의구(依舊)하지 산허리 아래는 천지개벽하듯이 달라졌다. 길이 사통팔달 뚫어지자 자동차들이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너 너무나 쉽게 너무나 빨리 인간들과 화물을 이동시켜 인디언들이 매복했던 공포의 숲을 파라다이스로 만들고 절망의 눈 덮은 산들이 천국의 조망을 극상으로 끌어올렸다. 서버번의 출발점은 오리곤 최대도시 포틀랜드(Portland). 미국에서 숲이 가장 많은 도시이자 미국인들이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은 곳 포틀랜드를 떠난 서버번은 97번 하이웨이를 타고 남쪽으로 향한다. 포틀랜드는 개척자들을 가로 막았던 캐스케이드 산맥 넘어 있고 97번 하이웨이는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비스듬히 동쪽으로 틀며 산맥을 넘는다. 흰눈을 덮어쓴 후드(Hood)산 허리를 돌아 황량한 대평원으로 접어든다. 지평선 너머로 후드산은 점점 멀어져 두어 시간 달리자 사막 도시 마드라스(Madras)가 나타난다. 이번 여행의 선봉장이자 서버번 운전대를 잡은 포틀랜드 교민 김용호 씨가 불쑥 한마디 던진다. “마드라스 시장을 한번 만나보고 갑시다.” 마드라스와 97번 도로의 작은 마을 인구 7,000여 명의 사막도시 마드라스는 한낮의 열기 속에 나른하게 앉아있고 사람들도 차들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갑자기 김용호 씨가 차를 멈추고 차창을 열더니 “제이슨!”하고 고함친다. 저만치서 허름한 티셔츠에 햄버거 봉투를 든 젊은이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데 그 얼굴이 낯익다. 제이슨 해일(Jason Hale), 그가 막힘없이 우리말 하는 것을 보고 낯익은 그의 얼굴에 우리의 피가 섞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한국사람이고 미국인 아버지는 전직 서강대 강사였다. 그들은 경기도 과천에서 살았다. 지금 제이슨은 주유소 옆에 별로 크지 않은 편의점을 운영하고, 동시에 마드라스의 시장(市長)이다. 작년에 치러졌던 시장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온 제이슨은 70%에 육박하는 절대적인 지지로 당선됐다. 마드라스의 시장은 넥타이를 매고 으리으리한 시청 시장실에서 상근하는 모습이 아니다. 더욱이 시장월급만으로는 집안을 꾸려갈 수도 없다. 수년 전 미국 몬터레이 반도 페블비치 인근의 카멜시 시장으로 봉직했던 영화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같은 경우다. 하여튼 미국은 괴상한 나라다. 누가 아는가, 앞으로 제이슨이 오리곤 주지사가 될지……. 계속 97번 하이웨이를 타고 내려오다 크룩키드강을 따라 왼쪽으로 꺾어지면 스미스 록(Smith Rock) 주립공원이 앞을 가로 막는다. 수천수백 개의 수직절벽이 하늘을 찌른다. 멀리 알라스카에서 자가운전으로 7일 만에 이곳에 도착한 젊은 클라이머들은 장비를 점검하며 싱글벙글이다. 이곳에선 금색 독수리, 매, 사슴, 비버들이 흔하게 눈에 띈다. 97번 도로를 타고 다시 내려오면 레드먼드라는 조그만 마을을 만나고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126번 동서횡단도로를 타면 30분 만에 시스터스(sisters)라는 작은 마을에 닿는다. 서부개척 시대의 거리를 빼 닮은 이곳엔 골동품 가게, 멕시칸 식당, 홈메이드 식료품 가게 등이 띄엄띄엄 졸고 있다. 이곳은 해발 1,200m로 숲 너머 시스터스 세 봉우리가 하얀 눈을 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포틀랜드로 가는 비행편은 노스웨스트(Northwest)뿐이다. 노스웨스트는 동경 나리타를 경유해서 간다. 직항편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두 시간을 비행하고 내려서 한숨 쉬었다 떠나면 포틀랜드까지 8시간, 비행의 지루함을 줄일 수 있다. 더구나 노스웨스트는 매일 출발한다.
목동들의 노랫소리 들릴 듯한 Cotsworld 2007-06-21
코츠월드는 런던에서 서쪽으로 120km 정도 떨어진 구릉지대로, 전형적인 영국 시골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 굽이굽이 구릉지대를 따라 목초지와 밀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그 위에서 양떼와 젖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파란 넝쿨이 감싸고 있는 황금빛 석조가옥과 꽃바구니가 늘어진 오두막집, 아기자기한 돌담과 들판이 어울린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양모산업이 번성했던 중세 때 만든 석조가옥들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코츠월드만의 매력. 경사진 지붕과 여러 개의 창문, 벌꿀색이 감도는 돌로 만든 튜더 스타일의 집들은 코츠월드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전원풍경 보러 관광객들 몰려들어 코츠월드는 잉글랜드 남서부 글로스터와 옥스포드, 스트래포드 어폰 에이번 사이에 옹기종기 펼쳐진 마을들을 일컫는 것이다. 코츠월드의 중심도시는 스토 온 더 월드(Stow on the world), 브로드웨이(Broadway), 치핑 캠프던(Chipping Campden), 버턴 온 더 워터(Bourton on the water), 어퍼 슬로터와 로어 슬로터 등이다. 코츠월드에서는 유명한 유적지나 웅장한 건축물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영국은 물론이고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찾아드는 이유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전원풍경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코츠월드는 석회암 언덕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곳의 석회암은 런던의 세인트폴 성당이나 옥스포드 대학 건물들을 짓는데 사용되었을 정도. 석회암 지대의 특성상 이곳 토지는 경작지로 적합하지 않고, 풀이 잘 자라 양을 기르기에는 좋다. 이런 지형적 요소를 바탕으로 중세에 양모산업이 발달해 부를 축적했다. 또한 풍부한 석회석을 이용해 아름다운 교회와 저택, 농가를 지었다. 이 건물들은 지금도 온전히 남아 있어 부드럽고 따뜻함이 감도는 튜더 스타일의 석조가옥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차를 빌리거나 투어에 참가해서 둘러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스토 온 더 월드는 코츠월드에서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가기 쉬운 곳이다. 코츠월드에서 가장 높은 해발 270m의 구릉지대에 자리한 이 마을은 중세 때 양모 거래로 활발했고, 지금은 골동품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코츠월드에서 가장 상업성이 짙은 마을이다. 예쁜 집과 카페, 바, 교회, 골동품 상점이 어우러진 거리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느낌을 준다. 마을을 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는 것이다. 작은 마을이라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이라는 로열 리스트 호텔, 세인트 에드워드 교회 등이 남아 있는 거리를 걷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난 듯하다. 주변에는 산책을 하듯 다녀올 수 있어 여행자들은 이곳을 코츠월드를 돌아보는 거점으로 삼기도 한다. 스토 온 더 월드에서 남쪽으로 4마일 떨어진 곳에 자리한 버턴 온 더 워터는 마을 한가운데 윈드러시 강이 흐르고, 그 위에 아담한 아치형 돌다리 6개가 놓여 있어 ‘코츠월드의 작은 베니스’라고 불린다. 이곳은 특히 아이들과 노인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아이들은 얕은 강가를 맨발로 오가며 즐거워하고 노인들은 풀밭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강을 사이에 두고 예쁜 카페와 박물관, 숍들이 아기자기하게 늘어선 풍경은 보석처럼 아름답다. 이곳은 또 독특한 박물관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마을 끝자락에 있는 자동차 박물관은 클래식카를 모아 놓은 곳으로 로버, MG, 재규어 등 왕년의 명차 수십 대가 진열되어 있다. 버턴 온 더 워터를 9분의 1로 축소해 놓은 장소도 있다. 건물은 코츠월드의 석회석을 이용해 만들었으며 쇼윈도 등 디테일도 실물과 흡사하다. 언덕 위에 우뚝 선 브로드웨이 탑 모든 길이 아름답지만 스토 온 더 월드에서 북서쪽에 위치한 브로드웨이로 가는 길은 코츠월드의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전원풍경이 펼쳐진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 옆으로 펼쳐지는 목초지와 양떼들, 언덕을 넘을 때마다 초원 위에 작은 점이 되어 나타나는 오두막집은 뭉게구름이 가득한 하늘과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든다. 스토 온 더 월드에서 A44-도로를 따라 브로드웨이로 향하면 브로드웨이 타워가 눈에 들어온다. 18세기에 세워진 이 탑은 초록빛 언덕 위에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19세기 영국의 시인 윌리엄 모리스는 주변풍경에 매료되어 이 타워에서 휴가를 보냈다고 한다. 브로드웨이 타워에서 10분 정도 더 가면 거리 양옆에 튜더 스타일의 석조건물이 늘어선 브로드웨이에 닿는다. 브로드웨이는 넓은 가도라는 뜻. 일찍이 런던과 웨스터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 구실을 했다. 이름처럼 브로드웨이의 길은 마차들이 불편 없이 다닐 수 있게끔 넓게 닦아져 지금도 코츠월드에서 가장 넓다. 옛날 마차들이 오가던 거리에는 세련된 상점과 선물가게가 늘어서 있고, 각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양모업자를 대신하고 있다. 마을에는 찰스 1세와 크롬웰이 묶었던 리곤 암스(The Lygon Arms) 호텔을 비롯해 유서 깊은 호텔이 여러 개 있다. 호텔들은 중세의 인테리어와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시간을 내어 호텔 레스토랑에 앉아 영국식 식사를 하거나 홍차를 한 잔 마셔 보자.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 것이다. 코츠월드의 모든 마을이 그렇지만 브로드웨이에서는 바쁘게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쇼핑센터의 쇼윈도를 기웃거리거나 예쁘게 정돈된 정원을 여유롭게 감상하는 것이 브로드웨이를 가장 잘 보는 방법이다. 카페와 레스토랑, 기념품점이 즐비한 마을을 벗어나면 또 다시 그림 같은 초원과 구릉, 너무도 예쁜 오두막집이 나타난다. 평화로운 전원과 아름다운 건물,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은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휴식이 된다. 여행정보 교통 코츠월드는 차를 렌트하거나 투어를 이용해서 돌아보는 것이 좋다. 투어는 런던이나 옥스포드에서 모두 가능한데, 옥스포드가 조금 더 가깝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코츠월드의 중심도시인 첼튼엄까지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간다. 코츠월드 내의 마을을 돌아볼 때는 시내버스를 이용하거나 걷는다. 시차 우리나라보다 9시간 느리다. 통화 영국은 유로를 사용하지 않는다. 영국 파운드의 환율은 2007년 6월 현재 £1=1천882원. 신용카드는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고, ATM 기계를 통해서 현금을 인출할 수도 있다. 호텔 코츠월드 마을마다 저렴한 B&B가 있어서 숙소를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 마을이 아주 작아 호텔을 찾기도 쉽다. 만약 숙소를 잡지 못했을 때는 관광안내소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레스토랑 코츠월드은 마을마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들이 많다. 코츠월드에서 꼭 해볼 것이 분위기 좋은 맨션하우스에서 영국식으로 차 한 잔 마시는 일이다. 옛 저택에서 차를 마시면서 낭만적인 분위기에 젖어 보자.
중국 상하이 서양이 동양을 탐할 때, 동양이 서양.. 2007-06-14
세계 건축 박물관, 와이탄 거리 상하이의 별명인 ‘동방의 파리’는 상하이에 거주하는 탐험가, 작가, 혁명가들의 본거지였던 프랑스 조계에서 비롯되었지만 와이탄 거리를 걸으면 썩 들어맞는 별명임을 알게 된다. 황푸 강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1900년대에 지은 유럽풍 건축물이, 오른쪽에는 동방밍주를 비롯한 21세기 초호화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한쪽은 서구 열강들이 낸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또 한쪽은 세계 강국으로 되살아나는 중국의 미래를 상징하고 있다. 세계 건축 박물관이라 불리는 상하이는 화려한 조명으로 세계 어느 곳보다 밤이 아름다운 도시로 꼽히는데, 특히 와이탄 거리는 걸어야 제맛이다. 쑤저우허를 지나 와이바이두챠오를 건너 중산둥이루의 동쪽을 따라 내려가면서 건축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동양에서 가장 호화롭기로 유명한 허핑호텔은 아르데코 양식의 명작으로 꼽힌다. 빅터 사쑨이 자신의 집을 호텔로 바꾸고 캐세이라 이름지은 곳으로 찰리 채플린, 조지 버나드 쇼, 노엘 카워드 등이 머물렀다. 이밖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방문하면서 다시 복원되었다는 세관 건물과 ‘수에즈 운하 동쪽의 가장 훌륭한 건물’이라 일컬어지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 건물인 홍콩 상하이 은행(HSBC) 등 와이탄은 건축물마다 갖가지 칭송과 일화를 갖고 있다. 서양이 동양을 탐한 흔적은 오히려 중국의 문화유산이 되었다. 1937년에 ‘세계에서 가장 흥미 있는 거리 톱 7’에 선정된 난징루도 걸어 보자. 상하이모터쇼, 2009년을 계획하세요 와이탄 거리가 중국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상하이모터쇼는 중국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올해는 지난 4월 22일부터 28일까지 중국 상해시 푸동지구에 위치한 상해신국제박람중심에서 ‘테크놀로지 엔드 네이처 인 하모니’(Technology and Nature in Harmony)라는 주제로 태양에너지, 공기오염이 없는 차, 컨셉트카 등 다양한 차를 선보였다. 폭스바겐,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 된 자동차 회사 가운데 하나인 슈코다, 중국의 장화이, 폴란드의 스파이커, 푸조, 벤틀리 등 세계 각국의 자동차 메이커가 참가해 홍보에 열을 올렸다. 특히 이번 모터쇼에 몰린 관람객들을 보고 한 언론에서는 ‘사람’만 보이는 모터쇼라고 했을 만큼 중국인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이번 모터쇼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중국문화를 반영한 인테리어’였다. 벤츠는 대나무를 모티브로 해 마치 대나무 숲에서 차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도록 했고, 중국고전회화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중국에 대한 간절한 동경을 담았다. BMW는 중국 센양공장에서 중국시장만을 위해 생산된 5시리즈 롱 휠베이스 모델을 비롯한 하이드로겐7, 뉴 X5, 뉴 3시리즈 컨버터블 등을 소개했고, 폭스바겐은 ‘친환경’을 화두로 내세웠다. 처음으로 중국에 진출한 닛산은 인피니티 G35 세단과 SUV FX45 등을 선보였다. 이곳에서도 인기를 독차지한 부스는 단연 페라리. 중국에서만 연간 150대 이상을 판매하고 있다니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큰 시장이라 하겠다. 한편으론 중국인들의 자국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상하이국제모터쇼는 2년에 한 번씩 서울국제모터쇼와 같은 해에 열린다. 명나라 시대의 전통정원 ‘위위엔’과 상하이박물관 아시아는 서구 열강의 침입을 받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 생채기가 많다. 도자기, 향신료, 금, 은, 지금은 아랍지역의 석유까지……. 중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 탐이 났겠지…….’ 상하이박물관에서 ‘원더풀’을 외치는 서구인을 보노라니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자기, 서화, 청동, 가구, 전각, 옥조각 등 주제별로 전시된 박물관은 하루를 온전히 돌아보아야 할 정도다. 특히 도자기관에서 만난 한 점의 고려청자는 그것이 고려의 비색으로 유명한 이유를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더불어 고려청자를 보면서 중국이라는 나라는 우리 문화에 자양분이 되었음을 인정해야함을 느낀다. 명나라 시대 전통정원인 ‘위위엔’은 구시가 근처에 위치해 있다. 1559년 명나라 관리가 18년 동안 만들어 어머니에게 바친 정원이라 한다. 호수에 비친 지붕과 나무를 보고 있으면 평화롭기 이를 데 없다. 다리를 건너 다른 건물로 이동할 때면 이 세상이 아닌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점심시간에는 정원 마당에서 중국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종에서 울리는 특별한 울림에 귀 기울여 보자. 장엄한 울림이 묘한 감동을 준다. 위위엔 밖의 쇼핑 아케이트인 위위엔 쒸앙 촹에서는 전통물품을 구입할 수 있다. 문화의 힘이 깊다는 건 무엇일까, 생각해볼 수 있는 구시가지는 그저 뚜벅뚜벅 걸어볼 일이다. tIP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연해주, 러시아를 거쳐 중국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가 1926년에 마당로에 자리잡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는 한때 일시 폐쇄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정부라고 해서 기대를 했다가는 실망하기 십상이다. 그저 집 한 채 정도 규모이다. 김구 선생이 거처한 방에 서면 괜스레 가슴이 울린다. 이런 고생을 하면서 나라를 되찾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그때 그 시절의 책과 활동상황을 기록한 책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꼭 가봐야 할 곳이 아닐까.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진지하게 들여다볼 기회이기 때문이다.
맛초맥주 클래식 런의 창시자 마틴 페리슨 존스, 이.. 2007-06-14
새빨간 흙길을 자동차 한 대가 달린다. 연막탄처럼 피어올라 꼬리처럼 자동차 꽁무니를 물고 가던 노란 흙먼지가 서서히 가라앉자 차의 윤곽이 드러난다. 컨버터블, 그것도 클래식카다. 1950년형 다이믈러 DB18 드롭헤드 쿠페. 감색 차체에 먼지가 쌓였지만 드라이버는 개의치 않는다. 은색 머리칼을 바람에 휘날리며 초로의 드라이버는 빙긋이 미소를 흘린다. 그의 이름은 마틴 페리슨 존스(Martin Perison Jones). 그 옆자리에는 도리스 데이를 빼닮은 미인이 스카프를 휘날리며 드라이버의 팔을 잡고 있다. 마틴의 부인이다. 마틴, 그의 삶은 세상 모든 남자에게 이렇게 외친다. ‘한 번뿐인 인생, 이렇게 살아라!’ 먼저 그가 살고 있는 ‘브룸’(Broome)이란 어떤 곳인지 살펴보자. 작열하는 태양과 끝없이 펼쳐진 새빨간 땅, 맹그로브 숲이 띠를 친 굴곡진 해안선, 인적 없는 비치, 우윳빛 인도양, 마음대로 빚어진 바위절벽, 뱀처럼 기어가는 누런 강, 우글거리는 악어떼, 지글지글 끊는 사막, 도마뱀, 왈라비 그리고 원주민 에보리지니. 브룸, 호주의 원형질 간직한 킴벌리의 관문 호주의 서쪽은 호주의 여섯 개 주(州) 가운데 하나인 서호주(Western Australia)가 자리잡고 있고, 이곳의 북단지역을 ‘킴벌리’(Kimberley)라 부른다. 킴벌리의 땅덩어리는 자그마치 우리 남한의 다섯 배에 달하지만 이 드넓은 땅에 모여 사는 인구는 서울의 동네 하나, 미아동보다 적은 3만 명에 불과하다. 킴벌리는 호주 땅이지만 거리상으로는 시드니, 멜버른보다 인도네시아가 훨씬 더 가깝다. 호주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곳 또한 킴벌리다. 거칠고 황량한 호주의 원형질을 그대로 간직한 곳에는 진화되지 않은 생명체들이 고생대 모습 그대로 꿈틀거리며 살아간다. 킴벌리는 지구상에 있는 유일종, 사라져가는 종들의 마지막 남은 생태계의 보고이다. 이처럼 드넓고 황량한 땅 킴벌리의 관문이 바로 마틴이 살고 있는 브룸이다. 킴벌리 전체 인구의 반이 넘는 1만6,000명이 살고 있는 소읍, 브룸에 발을 들여놓으면 이곳도 호주인가 의아해진다. 포장도 안 된 새빨간 흙길로 SUV가 달리고, 아프리카 사막 언저리에만 서식하는 줄 알았던 바오밥(이곳에서는 ‘보압’(Boab)이라 부른다) 나무가 여기저기 서있다. 슬레이트 지붕의 식민지 풍 집들이 나른하게 앉아 있는 풍경 속에는 원주민 에보리지니들이 끼리끼리 모여 있다. 시내 중심이라야 1, 2층 슬레이트 건물이 늘어선, 10분이면 걸어서 다 돌아볼 수 있는 곳이지만 차이나타운도 있다. 감방, 야외극장, 술집 등 한때 왁자지껄했던 흔적은 남아 있지만 중국인들은 다 떠나고 지금은 두 가구만이 살고 있다. 한낮 기온이 툭하면 40 ℃가 넘어 새빨간 대지가 바삭바삭 타들어가는 이 거친 땅에 왜 사람들은 터전을 잡고 살아갈까 의아해 할 필요는 없다. 킴벌리 사람들은 모두가 모험가, 탐험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니까. 브룸의 존경받는 자선사업가 마틴 작열하는 태양, 펄펄 끊는 대지, 열악한 환경에서 꿈틀거리는 생명들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일확천금을 꿈꾸는 몽상가들도 어슬렁거린다. 킴벌리엔 세상에서 제일 값진 핑크색 다이아몬드들이 어딘가에서 잠을 자고, 금맥이 땅 밑에 깔려 있고, 최고급의 노란 진주가 바다 밑에 널려 있다. 이처럼 킴벌리의 관문이자 가장 큰 타운인 브룸은 모험을 즐기는 여행객까지 몰려와 활기가 넘친다. 그 중에서도 컨버터블 클래식카를 타고 브룸을 헤집고 다니는 마틴을 모르면 브룸 사람이 아니다. 미리 말해 두자면, 마틴은 엄청난 부자다. 그는 네 개의 호텔을 소유하고 있다. 하늘을 찌르는 맘모스 호텔이 아니라 방이 100개 미만인 부티크 호텔이다. 그 중의 두 개는 홀리데이 아파트먼트라 해서 우리나라 콘도 개념의 모텔이다. 세 개는 브룸에 있고 하나는 동북쪽 멀리 쿠누누라에 있다. 마틴은 맥주 양조장도 가지고 있다. 이름하여 ‘맛초(Matso)의 브룸 양조장.’ 맥주공장이라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다. 바와 레스토랑이 있는 식민지 풍 단층건물 안에 함께 자리 잡고 있다. 맛초는 원래 일본사람이 일본식당으로 오픈해서 운영하다 넘어가고 넘어가서 지금은 마틴의 손에 들어와 바와 레스토랑을 겸한 미니 맥주 양조장까지 갖춘 브룸 최고의 명소가 되었다. 맛초의 맥주 양조장은 조그마하지만 맥주의 질은 최고다. 맥주 맛을 내는 보리와 호프, 이스트를 최고 품질로 마틴이 직접 골라 보리를 볶고 숙성시키는 데 일일이 관여한다. 맛초의 바 벽엔 익살스러운 표정의 주교님 일러스트가 걸려 있다. 일러스트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킴벌리 카톨릭 총괄 주교인 크리스토퍼 손더스. 그는 마틴의 친구다. 골초에 술고래라 사람들은 그를 ‘스모키 주교’라 부른다. 스모키 주교는 마틴이 빚은 맥주가 통 속에서 나올 때 성수를 뿌리며 축복을 보낸다. 맛초에서 생산된 4가지 맥주는 멀리 퍼스까지 내려가 일류 호텔에 공급된다. 마틴은 4개의 호텔에서 그리고 맛초에서 그의 계좌로 들어가는 수익금으로 클래식카를 타고 맥주를 마시는 졸부가 아니다. 그가 브룸에서, 킴벌리에서 아니 서호주에서 존경받는 것은 대단한 자선사업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은행계좌에서 돈을 꺼내 곧바로 자선단체에 기부하지 않고 멋진 행사를 주관하여 다른 사람들도 그 행사에 참가해 자선기부금을 내도록 한다. 자선사업을 축제의 장으로 승화시키다 그 자선행사가 바로 브룸의 자랑거리인 ‘맛초맥주 클래식 런’(Matso’s Broome Brewery Classic Run)이다. 이 행사는 우리 남한의 다섯 배에 달하는 거대한 땅, 킴벌리의 서쪽 끝 브룸에서 출발해 동쪽 끝 쿠누누라(Kununurra)까지 1,100km를 6일 동안 달리는 랠리다. 머나먼 이 길은 포장로와 비포장로가 교차해 우기철이면 도로가 폐쇄되는 거친 험로다. 올해도 5월 26일부터 6월 1일까지 맛초맥주 클래식런은 개최된다. 네바퀴굴림의 힘 좋은 SUV라면 아무리 험로라 한들 하루 만에 갈 수 있지만 여기 참가하는 차들은 모두가 클래식카다. MG, 머큐리, 머스탱, 벤틀리. 원래 마틴과 함께 이 이벤트를 기획한 사람은 퍼스의 그렉 로스(Greg Ross)다. 이 신나는 이벤트를 통해 킴벌리 지역을 알리고 자선금을 모으자는 취지로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것이다. 클래식카들이 흙먼지를 날리며 1,100km를 달려 쿠누누라에 도착하면 흙먼지를 뒤집어 쓴 드라이버와 내비게이터(주로 부인, 때때로 아닐 수도 있다)들은 벅찬 감격에 얼싸 안는다. 6월 2일 밤, 보름달이 떠오르면 이 멋쟁이들은 정장차림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월하(月下)의 연주회’(Full Moon Concert)에 나타난다. 피터 브릭스(Peter Briggs)와 퍼스에 있는 자동차 박물관에서는 이 행사를 찾는 취재기자들을 위해 다섯 대의 클래식카를 제공한다. 1936년형 벤틀리 프래너이 로드스터와 1958년형 캐딜락 엘도라도 컨버터블, 1980년형 모건 플러스 8 경량 로드스터, 1982년형 애스턴 마틴 볼란테 로드스터 그리고 1984년형 포르쉐 911 카레라 카브리올레가 그것이다. 많은 기업들과 단체, 갤러리들이 보낸 자선기금을 어느 곳에 보낼지는 마틴이 결정한다. 지난 2005년엔 오지에서 응급환자가 생겼을 때 헬기나 경비행기로 의사가 달려가는 항공 의료서비스 센터에, 2006년에는 노인요양원에 자선기금을 보냈다.
소박한 매력에 푹 빠지다 윈난성(云南省) 2007-05-14
중국은 넓은 땅덩어리만큼이나 볼거리가 많지만 윈난성만큼 다양한 매력을 지닌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베이징이나 시안(西安)처럼 역사적이 많지는 않지만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신비로운 풍경이 사방에 펼쳐진다. 뿐만 아니라 윈난성은 달덩이처럼 고운 심성을 가진 소수민족의 터전이다.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26개 민족이 윈난성에 살고 있으니 그 다양함을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윈난성은 따리왕국(大理國)이라는 독자적인 나라를 이루고 살았다. 13세기경부터 중국 중앙정부의 지배를 받다가 17세기말 윈난성에 편입되었다. 윈난성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는 따리(大理)와 리지앙(麗江) 그리고 모계사회의 전통이 남아 있는 루구후(瀘沽湖) 등이다. 중국의 스위스, 소수민족의 터전 따리는 저렴한 물가와 편안한 분위기 때문에 여행자들에게는 천국이다. 히말라야의 줄기인 창산(蒼山)과 아름다운 호수가 있어 중국의 스위스로 불리기도 한다. 13세기 중국에 점령당하기 전 따리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지금은 바이(白)족의 자치주다. 따리는 돌로 유명한데, 이곳에서 생산되는 돌은 무늬가 아름다워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벽에 붙이면 벽화가 될 정도다. 현란한 대리석 액자를 파는 기념품점도 적지 않다. 중국인의 허풍을 감안하더라도 대리석이란 이름이 이곳에서 유래된 것만 보아도 그 품질을 짐작할 수 있다. 창산을 뒤로, 바다 같은 호수 얼하이를 앞에 두고 있는 따리는 공기가 맑고 기후가 온화할 뿐 만 아니라 거리가 아늑해 정감이 넘친다. 이 작은 시골에도 개발바람이 불어닥쳤다. 기념품 가게로 채워진 거리는 본래의 고풍스러움을 상실했고 외국인 거리로 불리는 양런지에(洋人街)에는 수많은 카페와 선물가게, 식당이 늘어서 정신이 없을 정도다. 크게 바뀌어 버린 풍경들은 따리의 옛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 줄 것이다. 그러나 따리 고성을 벗어나면 특유의 전원 풍경이 펼쳐진다. 논에서는 전통의상을 입은 농부들이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다. 다모작이 가능한 기후 때문에 벼가 누렇게 익어 추수를 하는 가 하면 옆 논에서는 모를 심는 풍경이 펼쳐진다. 탈곡기를 이용해 낱알을 털고, 삼삼오오 모여서 모를 심는다. 10년 전 처음 찾았을 때의 그 모습 그대로다. 변하지 않은 것이 또 있다. 바다처럼 넓은 얼하이 호수풍경이다. 어부들은 이곳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데, 가마우지를 이용한 전통방식으로 고기를 잡는 모습도 볼 수 있다. 3일이나 5일마다 열리는 시장은 따리의 볼거리 중 하나다. 밭에서 재배한 채소를 비롯해 각종 과일과 고기, 옷, 모자, 생활용품 등을 파는 시끌벅적한 모습은 우리네 옛 시골장터와 다르지 않다. 장이 서는 날은 온통 푸른색의 물결이다. 바이족 처녀들은 흰색 바탕에 분홍색이나 붉은 조끼를 즐겨 입고 나이 든 여인들은 푸른 옷을 입는데, 장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 든 여자들이기 때문이다. 나시족의 터전인 리지앙 따리와 쌍벽을 이루는 인기 있는 여행지가 리지앙(麗江) 고대마을이다. 따리가 바이족의 터전이라면 리지앙은 나시(納西)족의 터전으로 중국 최대의 기와집 마을이 있다. 나시족은 고유문자와 언어가 있으나 점차 잊혀지고 있는 실정이다. 1996년 진도7이 넘는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 수천 명이 사망하고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해 버렸으나 다행히 구시가지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곳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중국정부의 대대적인 개발정책에 따라 지난 몇 년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상해와 함께 가장 빠르게 변화한 곳이 아닐까 싶다. 10년 전의 리지앙을 기억하는 내게는 더욱 그랬다. 신시가지에는 시원스레 포장된 도로와 빌딩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고, 구시가지의 옛 저택들은 모두 개조되어 세련된 상점과 레스토랑, 카페 등으로 탈바꿈하였다. 그야말로 도시전체가 거대한 상가로 변했다. 육신의 휴식과 마음의 평화를 찾는 일부 외국 여행자만이 오가던 거리에는 중국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나시족 특유의 전통적인 삶의 모습도 변하고 있다. 노인들은 전통복장을 입고 옛날 생활풍습을 쥬지하고 있지만 젊은이들은 청바지와 티셔츠, 햄버거 등에 길들여졌다. 한류의 열풍이 중국 전역을 강타하면서 우리나라 드라마를 보는 젊은이들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엄청나게 변해 버린 리지앙에 대한 평가는 보는 이에 따라 극단적으로 다르다. 어떤 이들은 도시를 망쳐 놓았다고 혹평을 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중국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라는 평을 한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리지앙은 여전히 아름답고 아늑하다. 구시가지 전체를 형성하고 있는 기와집 마을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을 이룬다. 바닥에 돌조각이 촘촘히 박힌 골목과 도시를 관통하며 흐르는 위허(玉河)는 낭만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게 한다. 이름처럼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냇가 주변을 따라 카페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도 이색적이다. 이따금 나시족 노인이 당나귀에 물건을 가득 싣고 딸랑거리는 방울소리를 울리며 골목을 지나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밤이 되면 리지앙은 전혀 다른 풍경으로 변신한다. 카페에 내걸린 붉은 등이 영롱한 물빛을 받아 흔들리는 풍경은 감정이 메마른 사람들도 감동시킬 정도로 아름답다. 모계생활 하는 모수족이 사는 루구후 리지앙에서 루구후로 가는 길은 윈난성 최고의 절경을 자랑한다. 산을 깎아 만든 험준한 도로가 꾸불꾸불 이어지고, 아래로는 장강이 협곡을 소용돌이치며 흘러간다. 윈난성과 쓰촨성이 만나는 곳, 해발 2천690m에 위치한 루구후는 평균 수심 45m의 거대한 담수호로 수정같이 맑고 아름다운 곳이다.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아가는 이유는 모수족을 만나기 위해서다. 모계사회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모수족의 터전인 루구후는 ‘신비의 여인국’으로 불리며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있었으나 최근 들어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여행자 숙소와 레스토랑이 생기는가 하면 인터넷 카페까지 생겨났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는데 이들에게만 변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루구후에 도착한 다음날 일본인 여행자를 만났다. 그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일본 젊은이 특유의 요란한 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다며 하루만에 떠나 버렸다. 방송이나 매체를 통해 본 모계사회의 생활풍습을 상상하고 왔다가 실망한 것이다. 그 젊은이도 나처럼 이기적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우리는 온갖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 이들 만큼은 옛 모습을 지켜 줬으면 하는 욕심이다. 우리가 상실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가진 자의 오만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2년만에 다시 찾은 루구후는 많이 변해 있었지만 소박하고 넉넉한 모수족의 심성만큼은 다름없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고 누군가 말했듯이 따뜻한 마음만큼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보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루구후에서 여행은 끝났지만 그곳에서 만난 자연풍광과 순박한 사람들의 모습은 기억 속의 잔상이 되어 남아 있다. 그들이 보여주었던 인정과 순박한 미소, 웅장한 산과 협곡, 물소리가 속삭이듯 다가온다. 여행정보 교통 윈난성의 성도인 쿤밍까지 대한항공과 윈난항공이 주 2∼3회 직항으로 운항한다. 쿤밍에서 따리, 리지앙으로 버스가 수시로 운행한다. 쿤밍에는 버스터미널이 여러 개 있어 처음 도착한 사람들은 헷갈린다. 따리나 리지앙행 버스는 기차역 인근의 베이징루(北京路)에 있는 쿤밍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다. 비자 중국은 비자가 있어야 갈 수 있다. 비자는 서울 종로구 효자동 중국대사관에서 발급하며 주민등록증, 여권, 사진 1매, 신청서가 필요하다. 소정의 수수료를 내고 여행사에 맡겨도 된다. 환전 따리, 리지앙 등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 환전소는 적지 않다. 그러나 루구후에는 환전할 곳이 없으니 따리와 리지앙에서 미리 환전한다. 호텔 따리, 리지앙, 루구후에는 숙소가 많다.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저렴한 숙소는 30∼50元, 중급호텔의 경우 200元 정도 한다. 워낙 마을이 작아 20∼30분 걸어다니면 시내 대부분의 호텔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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