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알레치 빙하에서 열리는 마녀들의 스키대회 Hexen.. 2008-01-10
빗자루를 들고 하늘을 나는 마녀. 영화나 동화를 통해서 익숙한 풍경이지만 현실에서는 마녀를 볼 수 없다. 실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있다고 해도 심술궂고 무서운 존재여서 보기가 꺼림칙하다. 마녀들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고, 몇 마디 주문으로 온갖 일을 할 수 있는 요술쟁이다. 하지만 나쁜 일만 골라서 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고, 주문 하나로 하고 싶은 일은 모두 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마녀에 대한 이런 나쁜 이미지 때문에 무시무시한 마녀 사냥이 유럽 전역에서 자행되었으리라. 떠들썩한 전야제 Witch’s Night 스위스의 작은 마을 블라텐(Blatten)에 가면 현실 속의 마녀를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 만나는 마녀는 하늘을 나는 못된 마녀가 아니라 빗자루를 들고 설원을 질주하며 유쾌한 웃음을 주는 마녀들이다. 알레치 빙하의 끝자락에 위치한 블라텐은 여름에는 하이킹과 등산, 빙하 관광으로, 겨울에는 스위스의 대표적인 스키 리조트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이 마을에서는 매년 1월 중순에 마녀들의 스키대회인 헥센압파르트(Hexenabfahrt, 마녀 스키대회라는 뜻)가 열린다. 1천300여명의 스키어들이 마녀 분장을 하고 손에는 스키 스틱 대신 긴 빗자루를 들고 활강하는 것이다. 2008년 26회를 맞는 이 행사는 발레 주에서 가장 큰 겨울 이벤트다. 축제의 현장인 블라텐은 알레치 빙하의 끝자락인 벨알프(Belalp) 지역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평소에는 한적하고 조용하기만 한 작은 마을이지만 겨울이면 많은 스키어가 몰린다. 블라텐으로 가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다. 발레 주의 교통 요지인 브릭(Brig)에서 포스트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가면 눈 덮인 산골짜기와 알프스의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경치를 감상하며 20분 남짓 올라가면 알프스 산자락 깊숙이 위치한 마을이 나온다. 마을 입구에 도착하면 먼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녀 동상이 눈에 띈다. 상점마다 마녀와 관련된 인형이나 장식품이 진열되어 있고 목조가옥 곳곳에도 마녀 인형이 내걸려 있다. 이것만 보아도 이 마을이 마녀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마녀들의 축제는 1주일간 열리지만 레이스는 단 하루다. 축제의 전날 밤에는 흥겨운 ‘마녀들의 밤(Witch’s Night)’ 파티가 펼쳐진다. 이때는 평온하던 스키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주민들은 악대를 앞세우고 마을을 돌며 마녀들이 나타났다는 뜻의 현지어인 “댁스 이스흐 로스”(d’Hax isch los!)를 외쳐댄다. 그리고 기괴한 모습의 마녀로 분장한 마을 사람들과 대회 참가자들이 모닥불 주위에 모여 음악에 맞춰 신명나게 마녀 댄스를 춘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마녀댄스는 참가자 모두에게 유쾌한 즐거움을 제공한다. 개성 넘치는 마녀들 해가 떠오르면 마녀 레이스 참가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케이블카를 타고 마을 뒤에 펼쳐져 있는 해발 3천226m의 호슈톡산으로 올라간다. 레이스 참가자들의 복장은 각양각색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다양하다. 빨간색, 보라색, 파란색, 노란색, 검은색 등 다양한 색깔로 얼굴을 칠한 것은 기본이고 나팔, 색소폰, 아코디언, 트럼펫 등 악기를 들거나 지게를 진 사람도 많다. 코에는 마녀의 이미지대로 길고 뾰족한 코를 붙인 사람도 있다.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의 표정은 동심으로 돌아간 듯 너나할 것 없이 밝다. 모두들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설원에서 펼쳐지는 축제를 즐긴다. 왜 이 마을은 사람들이 그토록 싫어했던 마녀 복장을 하고 스키 축제를 벌이는 것일까?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먼 옛날 마녀가 신앙심이 깊은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 마녀는 곧 다른 마법사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마녀는 마법사를 보고 싶을 때마다 남편의 눈을 피하기 위해 까마귀로 변신했다. 하루는 마녀가 알레치 빙하에서 수프를 끓이다가 마늘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녀는 재료를 구하기 위해 마을에 있는 정원으로 내려갔다가 체리를 따던 남편을 발견했다. 까마귀로 변신해 있던 그녀는 남편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날아올랐고, 그 순간 실수로 고개를 돌리던 남편의 눈을 찔렀다. 눈이 먼 남편은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마녀가 남편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재판에 회부해 그녀를 화형시켰다. 수백 년이 지난 후 오해를 받아 죽은 마녀의 명예를 회복하고 이를 기리기 위해 마녀 스키대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마녀들의 신나는 설원 질주 마녀들의 레이스는 호슈툭산 정상을 출발해서 알레치 빙하를 따라 마을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전체 12km에 달하는 대장정이다. 급경사를 비롯해 수직의 표고 차가 1천800m 이상인 코스를 완주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레이스 자체의 즐거움과 알레치 빙하라는 대자연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기 때문에 해마다 참가자들이 늘고 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여러 명이 팀을 이뤄 복장을 통일하고 레이스를 펼친다. 1천300여명에 달하는 스키어와 보더들이 독특한 마녀 분장을 하고 알레치 빙하를 따라 질주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설원을 가로지르며 내려오는 그들의 모습은 구경꾼들을 마법의 세계로 인도한다. 스키 스틱 대신 빗자루를 들었다는 것만 같을 뿐 복장은 모두 다르다. 빗자루에 분홍색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깡통을 매달고 달리는 마녀, 가슴에 색소폰이나 아코디언을 앉고 연주를 하며 여유 있게 내려오는 연주자 마녀, 곰으로 분장하고 내려오는 마녀, 꽃을 잔뜩 실은 바구니를 지고 내려오는 꽃 배달부 마녀, 매부리코에 무서운 악마를 연상케하는 분장을 한 마녀, 간호사 마녀, 군인 복장 마녀 등 개성을 한껏 살린 복장이 인상적이다. 마녀들은 복장은 모두 다르지만 하나같이 술병을 차고 대회에 참가한다. 알레치 빙하를 내려오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거나 음식을 주는 여유를 베풀기도 한다. 고지대의 추운 날씨여서 그런지 하나 같이 독한 양주가 대부분이다. 레이스 도중에 만나는 스키어들 중 상당수는 술에 취해 눈이 반쯤 풀려 있다. 알레치 빙하는 알프스에서 가장 길 뿐만 아니라 경사도 급하다. 자칫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최상급자 수준의 슬로프지만 음주 스키를 여유롭게 즐길 정도로 참가자들의 스키 실력은 수준급이다. 설원을 수놓으며 마녀들이 낭만적인 활강을 즐기는 동안 결승선에서는 악대가 음악을 연주하며 흥을 돋군다. 그들 또한 맥주를 박스로 쌓아 놓은 채 음주 연주를 스스럼없이 즐긴다. 레이스가 끝나면 참가자들은 저마다 아쉬워하며 또 한 해를 기약한다. 올해도 1월이면 스위스의 산골마을 블라텐에는 유쾌한 웃음 보따리를 선사하러 마녀들이 찾아올 것이다. “마녀가 나타났다”고 외치며. 교통 마녀 스키대회가 열리는 블라텐에는 공항이 없기 때문에 취리히까지 간 다음에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브릭으로 가야 한다. 브릭역 앞에서 블라텐까지 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취리히-브릭은 기차로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되고, 브릭-블라텐은 버스로 30분 정도 걸린다. 브릭-블라텐 구간의 버스 시간표는 브릭역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얻을 수 있다. 화폐 스위스의 공식화폐는 스위스 프랑(CHF)이다. 따라서 유로가 아닌 스위스 프랑을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호텔이나 레스토랑, 가게 등에서 유로를 이용할 수 있으나 환율이 좋지 않다. 2008년 1월 현재의 환율은 1CHF=832원 정도다. 호텔 블라텐에도 호텔이 적지 않으나 겨울에는 스키어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가능하면 브릭에서 머물도록 한다. 브릭역 앞에 호텔이 모여 있다. 스키 시즌인 12월 15일부터 2월말까지는 숙박료가 조금 비싸다. 개최 시기 매년 1월 중순에 열리나 정확한 날짜는 정해져 있지 않다. 국내에서는 관련 정보를 찾기 힘드니 정확한 개최 날짜를 알고 싶다면 스위스 현지 사이트(www.belalphexe.ch)를 참고한다. 주의사항 마녀 스키대회가 열리는 곳에서는 레스토랑이 딱 한 곳밖에 없기 때문에 먹을 것을 준비해 가야 한다. 워낙 많은 인파가 많아 레스토랑은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겨울에는 날씨가 꽤 추우니 옷을 두툼하게 입도록.
석회암 행성, 괴뢰메 지상에 닿은 요정들의 굴뚝 2008-01-04
Greme 동쪽 하늘에 여명이 트인다. 구름 한 점 없는 검푸른 하늘은 어둠 속의 거울처럼 차갑기만 하다. 조약돌 하나에 부딪혀도 산산이 부서져 와르르 내려앉을 것만 같다. 아직은 별이 반짝이고 서쪽 하늘엔 그믐달이 걸려있는데 동쪽 하늘 끝이 발갛게 물든다. 밝고 맑은 색이 어둡고 검푸른 색을 빠르게 잡아먹으며, 별이 희미해지고 달이 기운다. 동쪽 하늘 끝에서 태양은 아직도 산 아래 숨어 있지만 햇살은 벌써 남쪽 북쪽 서쪽 산봉우리에 꽂힌다. 남쪽 하늘 끝 산봉우리 위로 기아(KIA)가 떠오른다. 찬란한 태양은 동쪽 하늘 끝에서 힘차게 솟아오르고 햇살을 잠뿍 받은 기아는 남쪽 하늘로 두둥실 떠오른다. 터키 괴뢰메(G reme)의 새벽은 하늘을 수놓는 열기구(Balloon)로 열린다. 해도 뜨기 전에 열기구들은 하늘을 덮는다. 남쪽 하늘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거대한 열기구에 기아(KIA)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푸르르 푸르르 새파란 불꽃을 쏘아 올리며 오색 열기구들은 창공을 유영하고, 열기구 바구니에 담긴 사람들은 개미처럼 우글거린다. 태양이 솟아오르며 햇살을 받은 열기구들이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껏 뽐내고, 땅 위에는 요정들의 굴뚝(?)이 땅을 박차고 솟아올라 우후죽순처럼 대지를 덮었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지금 은하계 밖 어느 행성에 있는가, 지구를 밟고 있는가. 세계 최대의 지하도시 ‘데린쿠유’ 지난밤 늦게 먼 길을 달려 이곳 괴뢰메에 왔을 때 피곤함에 절어 차창 밖으로 언뜻언뜻 보이던 어둠 속 모습들은 꿈처럼 뭉개져 버렸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원기 충만한 몸으로 일어난 그곳은 동굴 속. 나는 동굴 호텔에서 괴뢰메의 첫날밤을 보낸 것이다. 동굴 밖으로 나와 한눈에 내려다본 세상은 영화 ‘반지의 제왕’이나 ‘스타워즈’에 나올 법한 그런 모습이다. 크고 작은 수천수만 개의 뾰족 봉우리들. 더구나 뾰족 봉우리에 동굴을 파서 그 속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뾰족 봉우리 동굴집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사람이 오로지 인력으로 석회석 뾰족 봉우리를 천 번, 만 번, 억만 번 쪼고 찍어내어 동굴 주거공간을 만들었다. 땅 위로 솟아오른 요정들의 굴뚝들은 크기나 모양도 갖가지다. 큰 요정 굴뚝엔 2층, 3층 동굴집이 좁은 동굴통로로 연결되어 있고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통로를 봉쇄할 수 있는 커다란 돌이 준비되어 있다. 도대체 어떤 연유로 이런 괴상한 요정들의 굴뚝이 그렇게 많이 솟아올랐고, 왜 사람들은 이곳에 동굴을 파고 살았을까? 괴뢰메는 석회암으로 형성된 지역이다. 천년만년 억겁의 세월이 흐르며 석회암은 빗물에 녹아 흘러내리고 골짜기는 점점 깊어졌다. 석회성분이 덜하고 단단한 곳은 물에 녹아내리지 않고 석회 농도가 짙고 무른 곳은 빨리 녹아내렸다. 지금 뾰족하게 솟아오른 ‘요정들의 굴뚝‘은 전자, 즉 단단한 부분이다. 굴뚝 꼭대기가 태초엔 땅바닥이었던 것이다. 이곳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은 히타이트(Hittites)인들이다. 기원전 1800년에서 1200년까지 그들은 소왕국을 형성해서 이곳에 터전을 잡았다. 그 이후로 페르시아인들이 몰려오고 뒤따라서 로마인들이 들어오며 이곳은 카파도키아(Cappadocia) 왕국이 된다. 지금도 이곳 괴뢰메를 사람들은 카파도키아라 부르기도 한다. 로마와 비잔틴 시대에 이곳은 박해받은 초기 기독교 신도들의 피난처가 되어 그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그들은 이곳 요정들의 굴뚝에 동굴을 파서 살면서 동굴 옆에 정으로 석회암을 파 수많은 비둘기집을 만들었다. 비둘기 집 아래 떨어져 쌓인 마른 비둘기 똥은 그들의 농토에 거름이 되었다. 기독교도들은 이곳에 수많은 동굴교회를 세웠고, 뾰족 봉우리에 동굴을 파고 살았을 뿐만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지하도시도 만들었다. 지금 알려진 지하 동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데린쿠유 지하도시.’ 지하 20층 정도의 엄청난 규모지만 관광객은 지하 55m인 8층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지하 온도는 항상 평균 15도에서 18도로 유지되고, 지하 7층에는 약 1만 명이나 모일 수 있는 교회와 우물, 식량 저장고, 학교, 고해성사실, 가축을 기르는 곳 들이 있다. 인분은 토기에다 해결한 후 밀봉한 다음 농토의 비료로 썼다. 인근에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30여 개의 지하도시가 있고, 수십 개의 지하도시를 연결하는 비밀통로가 있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며 이곳에 몰려든 기독교도들은 평화를 누렸다. 15세기 중엽 동로마제국이 무너지며 아라비아에서 몰려온 이슬람세력, 셀주크와 그 이후 오토만 시대에도 이들은 박해를 받지 않았다. 더는 고난의 은신이 필요치 않자 기독교도들은 이곳을 떠나고 괴뢰메는 잊혀진 곳이 되었다. 20세기로 접어들며 여행이 가득률 높은 산업으로 떠오르자 괴뢰메에는 1,700여 년 전 초기 기독교도들이 몰려오듯이 관광객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독교도들은 성지순례를 하며 이곳에 몰려온다. 동굴을 호텔로 만들고 열기구들이 여행객들을 바구니에 담아 하늘을 덮는다.
눈밭의 하얀 신기루 속을 달리다 Canada Ro.. 2008-01-04
로키(Rocky)의 겨울은 두 얼굴을 지녔다. 애잔하면서도 스펙터클하다. 무릎까지 쌓이는 눈이 내리면 록키에 기대 사는 것들은 모두 몸을 낮춘다. 시큰둥하게 차를 몰고 가더라도 전나무 숲 아래에서 뿔이 멋진 엘크 무리를 만나고, 이른 새벽 스키장으로 향하는 오두막 정문 앞에서 선한 눈의 사슴과 마주친다. 뒷골목에서 만난 캐나다 로키의 겨울 풍경은 눈이 시릴 정도로 쓸쓸한데, 그 겨울 로키의 한 편에서는 흥미진진한 또 하나의 광경이 펼쳐진다. 캐나다 로키는 겨울 호흡이 숨가쁘다. 로키를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밴프 국립공원 일대는 눈이 내리면 설원 위를 질주하려는 젊은이들로 채워진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닌 밴프 국립공원에는 스키리조트만 3곳이 있다. 해발 2,500m가 넘는 정상에서 스키 런을 즐기려면 일주일도 부족하다. 밴프 일대의 대표적인 스키리조트는 단연 레이크 루이스 마운틴 리조트다.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맑은 날, 이곳 눈길 위에 올라선다면 굳이 라이딩을 즐기지 않아도 좋다. 슬로프에 서서 설산 아래 둥지를 튼 레이크 루이스 호수의 절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힌다. 혹 여름이나 가을 레이크 루이스 곤돌라를 타고 정상에서 호수를 바라본 적이 있다면 겨울 풍경은 그 감동의 열 배쯤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BC주 휘슬러가 캐나다의 대표 스키장으로 명성을 굳히며 상업화됐지만 밴프의 스키장에서 느끼는 매력은 색다른 것이다. 규모나 설질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으면서도 로키가 전해 주는 화려한 풍광을 감상하며 한적한 ‘대통령 스키’를 즐길 수 있다. 밴프 스키장의 설질은 습기 없이 보드라운 ‘샴페인 파우더’로 파우더 스노 중에서도 최상의 설질을 자랑한다. 그 눈에 묻히면 넘어지거나 뒹굴어도 통증은 없고 웃음만 쏟아진다. 레이크 루이스 마운틴 리조트의 최고봉은 화이트호른으로 높이가 무려 2,637m나 된다. 그 최고봉을 기준으로 4개의 산봉우리에 113개의 슬로프가 뻗어 있다. 가장 긴 코스는 8km로 중급자가 내려오는데도 수십 분이 걸린다. 상급자 코스인 ‘맨스 다운힐’은 매년 남녀 월드컵 경기가 열릴 정도로 캐나다 최고의 급경사면을 자랑하며, 편안하게 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라치 포마’ 코스 역시 중급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보더들의 천국 선샤인 빌리지 밴프 타운에서 승용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선샤인 빌리지는 보더들의 호기심을 사로잡는다. 일단 메인 리조트까지 곤돌라를 타고 20여 분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흥미진진하다. 베이스의 고도만 2,160m, 정상인 룩아웃 마운틴의 높이가 2,730m. 어디에 보드를 내려 놓든 해발 2,000m 이상에서 날렵할 질주가 가능하다. 룩아웃 마운틴에 오르면 폭이 수백m에 이르는 한쪽 경사면이 모두 슬로프로 채워진 것을 발견한다. 보더가 첫 라이딩을 한 길이 새로운 슬로프가 되고 그 자국 짙은 슬로프 위로 다른 보더들이 뒤따르는 짜릿한 형국이다. 이곳 선샤인 리조트는 이름 그대로 시야를 가로막는 산이 없어 태양 가까이에서 빛난다는 이유로 선샤인 빌리지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꼭대기에서 발원한 눈 녹은 물은 큰 계곡을 형성하며 태평양, 대서양, 북해로 흘러 들어간다. 그 계곡을 따라 초보자들도 1시간 동안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대부분의 보더들은 곤돌라를 타고 올랐던 베이스를 거쳐 주차장까지 이르는 8km 코스를 쉬지 않고 달리며 보딩의 대미를 장식한다. 허벅지가 뻐근할 정도로 계속되는 코스에는 곳곳에 크고 작은 굴곡이 있어 아기자기한 점프도 가능하다. 로키의 스키장 중에서는 유일하게 숙소에서부터 스키를 신고 슬로프로 연결되는 ‘스키-in, 스키-out’이 가능한 점도 선샤인 빌리지의 매력이다. 빌리지 옆에는 연기 펄펄 나는 노천 자쿠지도 있다. 국내 보드 매니아들에게 설원에서 필요한 몇 가지가 선샤인 빌리지에는 없다. 밤늦게까지 운행되는 야간 리프트, 기분을 업시키는 신나는 음악 등. 하지만 평균 적설량 923cm인 룩아웃 마운틴에서 시작되는 광활한 설원과 스피드, 점핑이 오묘하게 조합된 슬로프의 신세계를 경험했다면 이곳의 ‘고요한 룰’이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이밖에도 밴프 노퀘이 리조트는 규모가 다소 작지만 1926년 첫 코스를 개장한 선구자격 스키장으로 밴프 타운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밴프 타운에서 슬로프가 보일 정도다. 이곳은 터레인 파크를 즐기려는 보더들과 가족 스키어들에게 친근한 스키장이다.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밴프에서의 스키는 5월까지 이어진다. 국내에서 스키 시즌이 끝나는 2월 말 오히려 이곳 스키장은 축제의 절정에 접어든다. 밴프의 스키 리조트를 즐길 때 명심할 것은 반드시 슬로프 지도를 지녀야 한다는 점. 눈앞에 보이는 코스가 전부는 아니며 봉우리만 넘어서면 뜻밖의 새로운 코스가 펼쳐져 국내 스키장 서너 개를 한꺼번에 섭렵하는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다. 스키나 보드의 달인이 아니더라도 밴프로 향하는 길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 밴프 타운 일대에는 겨울 놀거리가 많다. 밴프 핫 스프링스 온천은 연중 쉼 없이 문을 연다. 온천 기념품 가게 주인이 한국인이니 밴프의 즐길거리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봐도 좋겠다. 이곳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설퍼산으로 오르는 밴프 곤돌라가 있다. 설퍼산은 반드시 문을 여는 오전 10시쯤 일찍 올라 본다. 전나무 아래로 상고대가 핀 모습과 광활한 로키의 광경을 아무 방해 없이 고요하게 음미할 수 있다. 전망대 라운지에서 커피한 잔 마시면 금상첨화다. 레이크 루이스 인근에서 개나 말이 끌어주는 눈썰매를 타거나 겨울 눈밭 트레킹을 즐겨도 좋다. 세계에서 가장 멋진 산악 경관을 자랑하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만 질주해도 로키의 겨울 감동은 폭설처럼 밀려든다. TRAVEL TIP 한국에서 직항편은 없다. 밴쿠버와 캘거리를 경유해 밴프타운까지 간다. 캘거리에서 밴프타운까지 승용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현지에서는 ‘트라이 에리어 리프트권’(www.skibig3.com)을 사면 리프트와 교통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이 리프트권으로 밴프의 빅3 스키장 리프트를 비롯해 호텔과 스키장, 선샤인 빌리지와 레이크 루이스를 연결하는 셔틀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알버타 관광청 홈페이지(www.trave lalberta.com)의 ‘skiing&winter fun’ 항목에서 각 스키장에 대한 슬로프 정보를 자세하게 얻을 수 있다. 밴프 타운 일대는 세계의 각종 먹거리가 집결한 곳. 쇼핑 외에도 그윽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로 긴 겨울밤을 보낼 수 있다. 발칸 그릭(www.banffbalcan.ca) 레스토랑에서는 전통 그리스 음식을 맛볼 수 있고 메이플 리프 그릴&스프릿(www.banffmapleleaf.com)은 알버타 전통 스테이크로 명성 높다. 레이크 루이스 인근의 레이크 루이스 스테이션(www.lakelouises tation.com)도 옛 로키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다.
마젤란의 위대한 발자취 새로운 세계를 향해 닻을 올.. 2007-12-11
콜럼버스가 황금을 찾아 대서양을 건넜다면 페르디난도 마젤란은 향신료를 찾아 세계일주를 했다. 중세 유럽의 식탁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영주도 귀족도 기껏 버터를 바른 마른 빵에, 소금에 절인 고기를 꾸역꾸역 씹어 먹는 정도였다. 이 무미건조한 음식에 머나먼 동방에서 온 향신료를 한 방울만 넣어도 낯설고 자극적인 향미는 입안 가득 감칠맛을 퍼뜨렸다. 지금은 음식점 테이블마다 굴러다니는 천덕꾸러기 후추가 12세기경엔 하나하나 알갱이를 세어 계산했고 무게당 가격이 은값과 같았다. 당시 인도네시아, 말레이, 인도, 필리핀에서 후추, 정향, 육두구, 계피 등의 향신료는 마당에도, 집 뒤에도, 개울가에도, 뒷산에도 무성하게 자라는 흔해빠진 열매나 꽃, 나무껍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낙타등에 봇짐을 싣고 낭떠러지 설산을 넘다 떨어져 죽고, 불타는 사막을 건너다 길을 잃어 목말라 죽고, 도적떼를 만나 목숨을 잃기도 하고, 길목마다 지키는 술탄과 군주들에게 엄청난 공세를 뜯기며 유럽에 도착한 향신료는 너무도 비쌀 수밖에 없었다. 인류 첫 세계일주, 둥근 지구를 발견하다 1492년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자 바다 끝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라는 등의 공포가 사라지고 대항해 시대가 열린다. 유럽의 열강들이 지중해라는 우물 안에서 아등바등할 때 대서양에 면한 유럽의 변방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대해의 패권을 잡는다. “큰 배로 선단을 만들어 동방에 가서 왕창 향신료를 실어 올 수 없을까?” 포르투갈이 선수를 쳤다. 대서양 아래쪽으로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내려와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사선으로 올라가는 항로를 개척, 향신료 상권을 잡고 있던 술탄들과의 몇 차례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하고, 교황으로부터 항로의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페르디난도 마젤란은 전투에서 한쪽 다릿병신이 되어 포르투갈로 돌아왔지만 조국은 그에게 싸늘하기만 했다. 이내 마젤란은 포르투갈에서 사라지고 만다. 한편 포르투갈에 선수를 빼앗겨 전전긍긍하고 있던 18세의 젊은 스페인 왕 앞에 마젤란이 나타나 비밀계획을 털어놓는다. 마젤란의 비밀계획이란 희망봉을 돌아 동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대서양을 건너 서쪽으로 동방에 닿는 것이 훨씬 빠른 지름길이라는 것. 스페인 왕은 눈이 번쩍 뜨였다. 1519년 9월 20일 화요일 아침이 밝았다. 68문의 대포로 중무장을 하고 264명의 선원을 태운 5척의 범선이 스페인의 세비야 항에서 출항한다. 선단의 총사령관은 마젤란. 스페인 왕은 마젤란에게 총사령관 직을 주는 한편 항해 경험이 풍부한 스페인 귀족들을 동승시켜 마젤란을 감시하도록 했다. 마젤란은 유서를 썼다. 두 번째 아이를 뱃속에 가진 그의 아내는 아들을 안고 흐느꼈다. 마젤란은 아내의 눈물을 보지 않으려고 서둘러 보트에 올라 함대로 떠나갔다. 인류 역사상 가장 용감하고 가장 원대한 탐험이 시작된 것이다. 항해를 시작한 지 77일 만에 마젤란 선단은 리우데자네이루에 입항한다. 남미의 동쪽 해안을 따라 마젤란 선단은 계속 내려간다. 이듬해 1월 10일, 마침내 마젤란 함대는 남미대륙을 가로질러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해협 ‘파소’에 다다랐다. 마젤란은 감격에 겨워 하늘을 보고 성호를 그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인 위대한 착각이었다. 이것은 유럽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큰 강, 라플라타의 하구(지금의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마주 본 하구)였다. 그가 스페인 왕과 신하들 앞에서 그토록 큰소리친 것이 모두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 그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결단을 내렸다. 남쪽으로 항진을 계속하는 것. 잿빛 바다는 미친 듯이 날뛰고, 낮 길이는 토끼 꼬리만큼 짧아지고, 한파는 뼛속까지 스며들고, 몰아치는 눈보라 역풍은 뱃길을 막았다. 멀리 나무 하나 보이지 않는 삭막한 벌판이 눈 속에 묻혀 있다. 승무원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스페인 귀족 함장들은 내심 기뻐하며 때를 기다렸다. 마젤란도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뭔가를 반전시킬 수 있는 폭발이 필요했다. 30명의 선원이 어두운 밤을 틈타 산안토니오 호에 잠입, 마젤란의 심복인 포르투갈인 선장 메스퀴타를 사로잡아 쇠사슬로 묶었다. 선상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아침이 밝았다. 마젤란은 3척이 스페인 귀족 손에 넘어가고 자신의 편은 2척 뿐임을 간파했다. 전력으로 보아 보잘 것 없는 2척의 배를 가진 마젤란으로서는 절대 열세였다. 3척의 배는 마젤란이 협상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페인 귀족들이 장악한 3척의 배 가운데 가장 작은 빅토리아호에 마젤란의 부하 여섯 명이 보트를 타고 가 멘도사 선장에게 마젤란의 서신을 전했다. 멘도사는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맨도사의 목에는 단도가 꽂혀 선혈을 쏟아냈다. 나머지 2척의 스페인 함장도 체포되어 멘도사와 같은 운명이 됐다. 함대는 기강이 잡혔지만 혹한의 겨울은 마젤란 함대를 다섯 달 동안이나 꼼짝도 못하게 꽁꽁 묶어 버렸다. 마침내 봄기운이 찾아왔다(남반구의 봄은 우리의 가을이다). 1520년 10월 21일, 마젤란 선단은 작은 만으로 들어간다. 남미대륙 동쪽의 굴곡진 해안선을 따라 들어갔다가 실망의 한숨을 토하며 나온 것이 몇 번이던가. 또다시 마젤란 선단은 해협이기를 바라며 작은 만으로 들어갔다. 인류역사를 바꾼 해협은 이렇게 발견됐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관통하는 마젤란 해협(The Strait of Magellan). 강철 같은 침묵의 사나이 마젤란은 뻥 뚫린 태평양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악전고투 끝에 태평양을 건너 인류 역사상 첫 세계일주에 성공,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완강히 거부한 교황청의 고집에 재갈을 물린 것이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필리핀 시부에서 원주민과의 사소한 언쟁 끝에 마젤란은 1521년 4월 27일 전사하고 만다. 대항해를 시작한 지 3년에서 12일이 모자란 1522년 9월 6일. 삐걱거리는 빅토리아호가 스페인 남부 세비야 항으로 돌아왔다. 3년 전, 265명과 5척으로 출발한 선단은 1척의 배에 피골이 상접한 18명만이 비틀거리며 내렸고, 그들의 손에는 한 줌의 향신료도 없었다.
알프스의 웅장한 자연과 함께 하는 Christmas.. 2007-12-06
오스트리아만큼 여행자를 유혹하는 나라도 드물다. 소박한 꿈과 낭만, 화려한 예술, 웅장한 자연, 수많은 문화유산 등 여행자를 유혹할 만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 이 나라에서 사람들은 여행에 대한 영원한 로망을 느낀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과 모차르트, 왈츠의 선율, 도나우강 등으로 대변되는 오스트리아의 이미지는 다분히 여성적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서부 알프스 설령(雪嶺)이 에워싸고 있는 티롤의 주도 인스브루크는 남성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고풍스런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8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인스브루크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막시밀리안 황제 때 크게 번성해 지금도 당시의 건축물이 곳곳에 남아 있다. 15세기 무렵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은 광산과 소금 광산이 있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이런 경제적인 풍요를 바탕으로 건축과 음악, 미술 등 다방면에서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 1964년과 1976년에는 동계올림픽이 열려 겨울 스포츠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중앙역에서 10분 남짓 걸어가면 인스브루크의 중심지인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가 나온다. 거리 양옆으로 시의회와 성당, 쇼핑센터, 17~18세기의 고풍스런 집들이 늘어서 있고 거리 중앙에는 1706년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 때 바이에른 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해 세운 성 안나 기둥이 있다. 거리 뒤쪽으로는 구시가지와 저 멀리 인스브루크를 감싸고 있는 노르트케테산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를 가로질러 조금 걸어가면 구시가지가 나온다.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구시가지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화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으로, 고풍스런 골목과 바로크, 로코코 스타일의 건축물이 여행자를 반갑게 맞이한다. 상점의 철제 간판들이 파스텔 톤의 산뜻한 건물과 멋진 조화를 이루는 골목 정면에는 인스브루크의 상징인 ‘황금지붕’이 보인다. 이 황금지붕 앞의 광장과 골목 곳곳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은 인스브루크 특유의 중세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져 낭만이란 두 글자를 여행자의 가슴에 각인시킨다. 오늘날 크리스마스가 세계인의 명절이 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며칠에 불과하다. 그러나 유럽에선 한 달 이상 크리스마스 시즌이 계속된다.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강림절 4주 동안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 때문. 성탄절 용품과 각종 기념품, 생활 필수품을 판매하는 크리스마스 마켓은 독일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마켓 분위기 즐기려면 저녁에 찾아야 인스브루크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시장 뒤로 아름다운 알프스가 병풍처럼 펼쳐져 어느 도시보다도 낭만적이다. 구시가지 광장과 골목에는 통나무로 만든 예쁜 상점들이 들어서고, 추운 겨울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크리스마스 마켓이라고 해서 성탄절과 관련된 용품만 파는 것은 아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품부터 장난감, 의류, 향수, 열쇠고리, 유리제품, 수공예로 만든 나무 인형 등 다양한 물건을 판매한다. 현지인들이 크리스마스 트리와 생필품을 많이 사는 반면, 여행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스모커라고 불리는 나무인형이다. 안에 향을 피우면 입으로 연기가 나오는 스모커는 산타클로스, 우체부, 나무꾼, 야경꾼 등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인스브루크뿐만 아니라 빈이나 옆 나라인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인형은 조금 비싸지만 선물이나 기념품으로 적당하다. 꼭 물건을 사지 않아도 상점마다 조명등과 독특한 조형물을 달아 놓아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것만으로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아침부터 열리지만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려면 저녁 때 찾아가는 것이 좋다. 태양이 인스브루크를 두르고 있는 알프스 너머로 사라지고 크리스마스 조명이 환하게 켜질 때 가장 아름답다. 이때부터 거리는 관광객과 현지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 시작한다. 시장의 분위기는 흥겹다. 유럽인들에게 크리스마스 마켓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이 아니라 축제이자 한 해를 보내는 가장 큰 이벤트이다. 인스브루크의 크리스마스 마켓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며 유쾌한 연말을 보내고 한해를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마켓을 찾는다. 사방이 완전히 어둠에 잠기어 크리스마스 조명이 더욱 빛나면 ‘황금지붕’의 발코니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캐럴이 연주된다. 조명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는 ‘황금지붕’에서 캐럴이 울려 퍼지면 세상이 멈춘 것처럼 사람들의 시선이 고정된다. 연주가 끝나면 크리스마스 마켓은 더욱 활기를 띤다. 연주를 듣게 위해 몰려 있었던 사람들은 상점을 기웃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상인들은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하며 차분한 자세로 손님을 기다릴 뿐, 손님을 유치하기 위한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북적거리는 우리네 시장에 비해 정적이지만 크리스마스 마켓의 분위기를 만끽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따뜻한 글뤼바인으로 몸을 녹이고 사람이 몰리는 곳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먹거리.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도 단연코 먹거리다. 사탕과 과자, 과일 등이 입맛을 돋구는데, 돼지고기 스테이크와 소시지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노점 앞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지갑을 연다. 커다란 원형 불판에 놓인 소시지와 고기가 타면서 솟구치는 하얀 연기에 저절로 침이 넘어간다. 유럽 물가에 비해 고기 값은 비싸지 않아 지갑을 여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 수많은 먹거리 중에서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이 초콜릿을 묻힌 사과. 단 것을 좋아하는 유럽인들이지만 과일까지 초콜릿을 묻혀서 먹는 것이 뜻밖이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가장 인기 있는 먹거리로는 글뤼바인이 있다. 나라와 도시를 불문하고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등장하는 글뤼바인은 설탕과 계피를 넣어 데운 레드 와인으로, 유럽의 추운 날씨를 견디며 크리스마스의 정취를 즐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때문에 글뤼바인을 파는 노점 앞에는 연인과 친구, 가족들이 언제나 북적거린다. 이들에게 한 잔의 글루바인은 크리스마스 마켓의 정취를 배가시켜 주는 묘약이다. 온기가 감도는 글루바인이 목젖을 타고 부드럽게 넘어가면 온몸에 그 열기가 전해져 순식간에 추위가 사라진다. 글뤼바인은 한 잔에 2~3유로인데, 컵 값으로 2~3유로를 따로 내야 한다. 상점마다 다른 모양의 머그컵에 담아 주며 마신 뒤에 컵을 가져가면 돈을 돌려준다. 보증금을 받지 않고 컵을 가져가도 괜찮다. 운반하는 것이 조금 불편하지만 귀국 후 이 컵에 차를 마시면 크리스마스 마켓의 운치가 저절로 되살아날 것이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늦은 밤까지 열린다. 시장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은 한 손에 글뤼바인을 들고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소망한다. 그들에게 크리스마스 마켓은 시장이 아니라 흥겨운 축제이다. 먼길을 찾아온 이방인에게도 크리스마스 마켓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인스브루크의 12월은 크리스마스 마켓과 더불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삶의 무게에 눌려 힘겹게 일상사를 보내는 우리. 인스브루크 사람들처럼 1년 중 한 달만이라도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에 젖어서 살아 보는 것은 어떨까.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성결한 도시 인스브루크. 그곳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마켓의 추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교통 우리나라에서 바로 가는 비행기가 없기 때문에 빈까지 간 다음에 국내선이나 기차로 갈아타야 한다. 기차를 이용할 경우 루프트한자로 뮌헨까지 간 다음 그곳에서 이동하는 것이 편하다. 뮌헨에서 하루 8∼10회 기차가 운행한다. 빈과 잘츠부르크에서도 수시로 다닌다. 레스토랑 구시가지에 위치한 Goldener Adler 호텔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0512-571-111)은 인스브루크를 방문한 여행자라면 꼭 찾는 명소이다. '황금 독수리'라는 뜻의 이 호텔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인물을 비롯해서 모차르트와 괴테, 하이네 등의 명사가 들렀던 곳이다. 우리나라 음식을 먹고 싶다면 구시가지 황금지붕 인근의 복잡한 골목에 있는 겐지 레스토랑(0512-560-813)을 찾으면 된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주메뉴는 일식이지만 매운탕과 파전 등 한식도 판매한다. 쇼핑 인스브루크는 동계 스포츠로 유명한 도시지만 쇼핑할 곳도 많다. 구시가지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와로브스키 매장을 비롯해서 선물가게와 쇼핑센터가 즐비하다. 물건값이 조금 비싸지만 발품을 팔면 저렴한 값에 좋은 물건을 구할 수도 있다. 호텔 세계적인 관광지답게 다양한 종류의 숙소가 있다. 여행자에게 가장 편리한 숙소는 기차역 앞에 있는 IBIS 호텔로 최근에 새로 문을 열어 깔끔하면서도 괜찮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 2인실이 75유로(약 10만 원) 정도. 기차역에서 나오면 왼쪽에 바로 보인다. 젊은이들을 위한 공식 유스호스텔도 여러 곳 있다. 관광안내소 중앙역 구내와 구시가지 초입에 있다. 지도와 숙소, 교통, 관광지 안내는 물론이고 스키패스도 판매한다. 월∼토요일 8시∼19시, 일요일 9시∼18시에 연다.
강렬한 색채의 도시 Guanajuato 2007-11-13
멕시코를 여행하는 사람치고 과나후아토를 들르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과나후아토는 ‘은광의 도시’라는 낭만적인 이름과 함께 강렬한 색채의 건물, 구불구불한 길과 매력적인 광장, 멕시코 특유의 강렬한 태양이 전해 주는 나른함까지 여행자를 매료시키는 요소가 너무나 많다. 멕시코 중앙 고원에 위치한 과나후아토는 토착민들의 방언으로 ‘개구리가 사는 곳’이라는 의미. 토착민들은 높은 고산지대에 위치한 이 도시에 은이 묻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개구리나 살 수 있는 땅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낭만적인 은광의 도시 볼품없던 과나후아토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큰 은광도시로 발전하면서 뉴 스페인(식민 시절의 멕시코)의 은 생산의 4분의 1을 공급하였다. 당시에 축적한 엄청난 부를 바탕으로 광산주들은 웅장한 교회와 바로크 양식 및 신고전주의 양식의 위풍당당한 건축물, 매혹적인 광장,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을 만들었다. 광맥이 고갈되면서 ‘은광의 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해졌지만 당시에 세워진 건물들은 그대로 남아 과나후아토를 멕시코에서 가장 낭만적인 도시로 만들었다. 과나후아토는 19세기 초 멕시코 독립운동의 주요무대가 되면서 다시 한 번 멕시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1988년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멕시코를 대표하는 관광도시로 탈바꿈하여 새로운 번영을 꾀하고 있다. 과나후아토는 도시 전체가 알록달록한 모자이크처럼 채색되어 있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장난감 블록 같은 느낌이 든다. 흰색과 초록색, 빨간색, 오렌지와 코발트블루 등 화려한 도시가 많은 멕시코에서도 이곳만큼 현란한 색채를 보여주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과나후아토에 도착하면 가뜩이나 덥고 건조한 멕시코의 기온이 도시 뒤쪽에 펼쳐져 있는 황량한 민둥산 때문에 더욱 더 숨이 막힌다. 대부분의 길이 좁고 복잡해서 시내를 돌아보려면 걷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구불구불한 길을 천천히 돌아다니다 보면 콜로니얼 스타일의 멋진 건축물과 광장이 곳곳에 펼쳐져 동화 속의 나라를 걷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시간을 갖고 과거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훑다 보면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재미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된다. 과나후아토에서 맨 먼저 만나는 것이 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이달고 시장(Mercado Hiddalgo)이다. 거대한 쇠로 지어진 옥내시장인 이곳은 과나후아토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은 모두 찾아볼 수 있는 곳으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오렌지와 망고, 복숭아, 수박 등의 과일과 야채,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 많고, 멕시코 전통음식을 저렴한 값에 맛볼 수 있다. 허름한 간이식당에 앉아 신선한 과일을 갈아서 만들어 주는 주스를 마시고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낯선 동양인을 힐긋힐긋 쳐다보는 상인들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지만 가볍게 눈인사라도 하면 수줍은 미소로 화답한다. 연인들의 성지 ‘키스의 골목’ 발길을 시내로 돌려 조금 걷다 보면 과나후아토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차와 사람이 뒤얽힌 복잡한 골목을 따라 시내로 향하면 파스텔톤으로 채색된 콜로니얼 스타일의 위풍당당한 맨션 등이 수시로 나타난다. 우선 가 볼만한 곳이 멕시코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연이 얽혀 있는 키스의 골목(Callejon del Beso)이다. 마주보고 있는 두 건물 사이가 68cm에 불과한 이 골목에 얽힌 안타까운 사연 때문에 수많은 연인들이 찾아든다. 사랑에 빠진 귀족의 딸과 광부의 아들. 집안에 갇힌 그녀를 만나기 위해 청년은 건너편 주택에 세를 들어 두 사람은 밤마다 2층 테라스에서 만나 키스를 하며 사랑을 속삭였다. 하지만 여인의 아버지에게 들켜 둘의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을 맺는다.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에 끌려 이 순간에도 멕시코 전역에서 몰려든 연인들이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줄을 서고 있을 것이다. 키스의 골목에서 멀지 않은 골목에 멕시코가 낳은 천재화가 디에고 리베라가 태어난 집이 있다. 리베라는 멕시코 벽화운동의 대표주자로 민중에 대한 애정이 담긴 벽화를 많이 그렸다. 그는 유럽 회화의 전통을 멕시코 전통에 결합시킨 위대한 화가지만 우리에겐 영화 ‘프리다’를 통해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의 연인으로, 남편으로 애절하면서도 기형적인 사랑을 나눈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옛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생가는 현재 디에고 리베라의 삶과 예술이 담긴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그가 사용하던 가구와 유물 그리고 100여 점에 달하는 벽화가 전시되어 있다. 과나후아토의 화사함과 강렬한 색감은 그의 그림에도 잘 반영되어 그가 남긴 벽화 중에는 밝은 원색을 사용한 그림이 많다. 시내 중심지에는 엷은 노란색으로 채색된 스페인풍의 웅장한 대성당이 있다. 따뜻한 색을 칠한 벽이나 돔 지붕, 그리고 화려한 성모마리아상이 안치된 내부는 스페인의 성당과 너무나 닮아 있다. 중남미 어디서나 스페인의 흔적이 묻어나기 때문에 유럽을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친근감이 드는 한편 라틴아메리카의 슬픈 역사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다. 대성당 주변에는 아름다운 맨션 하우스와 대학, 성당 등 볼만한 건물이 즐비하다. 대성당에서 동쪽으로 발을 돌리면 곧 만남의 광장과 후아레스 극장이 나타난다. 만남의 광장은 1861년에 조성된 작은 월계수 광장으로, 도시의 심장부이자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이다. 광장 주변의 레스토랑에는 멋진 제복을 입은 마리아치들이 관광객 앞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의 멋진 연주를 듣고 있으면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밖에도 광장 주변에서는 다양한 거리 공연이 펼쳐져 항상 여행자들로 북적거린다. 만남의 광장 맞은편에 있는 후아레스 극장은 멕시코 제2의 공연장으로 1년 내내 다양한 공연이 올려진다. 도리스 양식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건물의 정면은 고대 그리스 건물을 모방했고, 금으로 치장한 내부 장식과 벨벳이 걸린 강당 등이 품격을 더해 준다.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여유의 도시 과나후아토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다른 콜로니얼 도시와는 조금 다른 점을 느끼게 된다. 시내 어디에도 신호등과 네온사인이 없다는 점이다. 구 시가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신호등과 네온사인을 없앴기 때문이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바쁜 일상에 익숙해진 우리에겐 느긋한 도시 분위기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하루 정도만 지나면 소박하고 조용한 도시 분위기가 그렇게 편안할 수 없다. 과나후아토의 또 다른 특징은 지하도로. 끝없이 이어진 터널 위에 도시가 얹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지하도로가 마을 전체에 걸쳐 뚫려 있다. 1965년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바닥을 개조해 만든 이 지하도는 시내 중심을 관통하며 몇 군데가 지상에 노출되어 있어 관광명소의 역할도 톡톡히 한다. 지하터널은 모두 일방통행으로 설계된 덕분에 교통체증이 없다. 지하터널이 건설된 후 과나후아토의 모든 도로는 지금까지 일방통행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해질 무렵이면 여행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도시의 전망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피필라(Pipila)의 언덕으로 향한다. 천천히 걷거나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언덕 중앙에는 독립 영웅인 피필라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피필라의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풍경과 석양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초록색, 파란색, 하얀색, 노란색, 분홍색 등 따뜻한 질감의 집들이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태양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부드러운 빛을 발산할 때면 도시 전체가 그대로 캔버스가 되어 한 폭의 유화를 담아낸 듯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태양이 마지막 빛의 향연을 끝내고 민둥산 너머로 사라지면 집집마다 하나둘씩 전등불이 켜지면서 새로운 색의 마술을 표현한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색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다 보면 이 아름다운 도시를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강렬한 색채와 낭만적인 전설 그리고 느긋한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도시 과나후아토.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곳이다. 교통 수도인 멕시코시티의 북부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5시간 정도 걸린다. 버스는 종류가 많지만 치안이 불안정한 편이니 조금 비싸더라도 특급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버스의 시설은 훌륭하지만 멕시코 물가에 비하면 교통비가 꽤 비싼 편이다. 국제학생증이 있으면 버스 요금을 대폭 할인받을 수 있다. 환전 및 환율 미국 달러나 유로화가 광범위하게 통용된다. 시내 곳곳에 은행과 사설 환전소가 있어 환전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멕시코의 화폐단위는 페소, 2007년 11월의 환율은 US$1=10.82페소, 1페소=85.10원이다. 물가 멕시코의 물가는 중남미에서는 비싼 편이나 우리나라보다는 싸다. 장거리 교통비는 비싸지만 식사와 일반 물가는 훨씬 저렴해서 부담 없이 여행할 수 있다. 특히 과나후아토는 멕시코에서도 물가가 저렴한 편이어서 장기 체류하는 사람이 많다. 숙박 멕시코를 대표하는 관광지답게 유스호스텔에서 고급호텔까지 다양한 종류의 숙박시설이 있다. 비용도 저렴하다. 깨끗한 중급호텔의 1인실을 3∼4만 원에 이용할 수 있다. 1만 원 안팎의 호텔도 꽤 된다. 주의 멕시코의 치안상태는 좋은 편이 아니지만 과나후아토는 아무런 걱정 없이 여행해도 될 만큼 치안이 잘 갖춰져 있다. 늦은 밤에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멕시코시티에서는 택시강도 사건이 빈번하니 콜택시를 이용하도록 한다.
고대도시 ‘에페수스’ 1400년 만의 화려한 외출 2007-11-09
아테네 왕, 코드러스의 아들 안드로클러스가 예언자에게 이오니아 땅 어느 곳에 도읍을 정할지 물었다. 예언자는 “물고기와 멧돼지가 함께 있는 곳”이라는 아리송한 대답을 했다. 이곳저곳 도읍을 찾아 헤매던 안드로클러스는 어느 날 피온 산 아래, 골짜기로 흘러내린 캐이스터 강이 에게해로 빠져나가는 어구에서 어부들과 어울려 물고기를 구워먹고 있었다. 고기 한 마리가 갑자기 튀어 오르며 숯불이 흩트려졌다. 튀어나간 불은 마른 풀숲에 번졌다. 그때 풀숲에 숨어있던 멧돼지 한 마리가 불을 피해 어부들 쪽으로 나왔다. 어부들은 작살로 그 멧돼지를 잡았고, 도읍을 찾아 떠돌던 안드로클러스의 발길은 그곳에서 멈췄다. 기원전 600년경, 이곳에 융성한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에페수스(Ephesus), 성경에 나오는 바로 그 ‘에베소’다. 직사각 형태로 누워있는 터키는 동쪽 끝이 에게해에 접해 있다. 에페수스는 에게 해안 중간쯤 쿠샤다시만에 있는 천혜의 항구로, 소아시아로 향하는 교통로다. 앞바다에는 사모스, 이카리아, 밧모섬 등 여러 섬이 포진하고 있고 무역이 들끓는 상업중심지였다. 에페수스의 전성기는 로마시대, 특히 아우구스투스 황제 집권기였다. 당시 에페수스는 알렉산드리아와 예루살렘, 안디옥과 함께 로마가 지배한 4대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에페수스는 로마가 통치하던 소아시아 500여 도시의 수도로 그 지위가 격상되며 인구가 약 20만에 달했다. 당시 에페수스에는 수많은 페스티벌이 열리고 올림픽에 버금가는 경기가 열렸다. 외지인들이 몰려오고 장사꾼들은 난전을 벌였다. 천막의 수요가 불티났다. 에페수스 최고의 천막 장인은 텁수룩한 수염에 큰 손으로 낮이면 부지런히 천막을 만들고 밤이 되면 어디론가 사라졌다. 남루한 옷차림의 천막 장인은 어느 유대인 집 지하 창고에 희미한 등불을 밝히고 몇몇의 유대인들에게 열심히 호소했다. “갈리리에 메시아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보낸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천막장인은 바로 바오로(바울)였다. 켈수스 도서관의 지하통로 세상만사 흥함이 있으면 쇠함이 오기 마련이다. 에페수스의 터전이 되었던 케이스터 강이 토사를 바다로 쏟아 내리며 해안선은 점점 밀려나고 항구는 에페수스에서 멀어져갔다. 네로 황제의 특명으로 이곳 로마 총독은 준설작업을 끊임없이 해보았지만 자연의 힘에 맞선 인간의 힘은 역부족, 항구가 쇠퇴하며 에페수스도 기울기 시작했다. 6세기 이후 에페수스는 폐허로 변했다. 수천수만 년 흘러내린 케이스터 강이 그 짧은 기간 토사를 쏟아낸 것은 인간들이 무분별하게 남벌을 하고 숲을 불태우고, 땅을 깎아 집을 짓고 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다. 사계절이 쉼 없이 돌고 돌며 에페수스는 토사와 흙바람에 묻혀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1863년, 영국의 철도기술자 ‘J. T. 우드’는 인근의 철도 신설공사를 하며 사라진 역사에 흥미를 가졌다. 그는 고대세계의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아르테미스 신전을 찾으려다가 흙에 묻힌 에페수스 일부를 찾았다. 1895년부터는 오스트리아 고고학 발굴단이 본격적으로 에페수스를 탐사 발굴, 1400여 년 만에 땅 속에서 잠자던 화려했던 고대도시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에페수스의 하이라이트는 켈수스(Celsus) 도서관이다. 로마시대 대표 도서관 건축물로 꼽히는 아름다운 이 건물은 120년경 아킬라가 소아시아의 총독인 자신의 아버지 켈수스를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 폭 21m, 높이 16m에 달하는 2층 구조의 도서관 전면은 코린토스식 양식의 대리석 기둥으로 장식됐다. 도서관에는 약 1만5,000권의 책이 소장되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켈수스 도서관 건너편에는 기이하게도 창녀촌이 마주보고 있다. 4세기에 지어진 이 사창가는 오늘날의 사창가보다 훨씬 위생적인 환경을 자랑했다. 집집마다 창녀들의 신상명세가 석판에 새겨져 있었고 손님이 창녀 집에 들어가기 전에 손과 발과 그곳을 씻는 간이욕실을 만들어 필히 그곳을 거쳐 나오게 했다. 재미있는 것은 도서관과 창녀촌을 연결하는 비밀 지하통로가 있었다는 것. 남의 이목이 두려웠던 남자들은 떳떳이 도서관으로 들어가 지하통로를 지나 창녀의 품에 안겼다. 에페수스에는 우리의 눈을 휘둥그렇게 하는 유적들이 줄줄이 있다. 헤라클레스의 근육이 꿈틀거리는 헤라클레스 문, 휴식 살롱과 체력 단련장이 있는 바리우스 목욕탕, 시장터, 4만여 명을 수용하는 대극장, 연극학교, 부자촌 도미시안 신전 등이다. 그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공중화장실. 칸막이가 없는 이 공중화장실은 토론장이자 잡담 장소이고 책 재료의 산실이었다. 떨어진 대소변은 흐르는 물을 따라 정화조로 모여진다. 정화조에서 완전 발효된 분뇨의 맑은 암모니아수는 통에 채워진다. 로마 속주시대 때 알렉산드리아와 에페수스는 여러 면에서 라이벌이었다. 학문에서도 팽팽한 대립관계였던 알렉산드리아는 비열(?)하게도 파피루스 종이를 에페수스에 수출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에페수스는 궁리 끝에 양피를 종이 대신 썼다. 바로 양피를 무두질하기 위해 암모니아수가 필요했던 것이다.
펠로폰네소스와 고린도 고대 그리스 영광의 도시들 2007-10-17
그리스인들은 펠로폰네소스(Pelop onnesos) 반도를 ‘영웅들의 섬’이라 불렀다. 영웅들이 들끓었던 것은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의 맹주였기 때문이고, 섬이라 불렀던 것은 이 반도가 그리스 본토와 연결된 끈이 워낙 가늘어 섬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본토 남쪽에 있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동서와 남북이 230km로 같고, 면적은 2만1,500km2로 그리스 전체 면적의 5분의 1을 차지한다. 우리나라 전라남도와 북도를 합친 땅보다 크다.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단에는 유로타스 강 하곡의 기름진 평야를 바라보고 산을 병풍 친 천혜의 요새 스파르타(Sparta)가 있다. 그리스 본토 남단에는 아테네가 있다. 과거 두 도시국가는 사사건건 으르렁거렸다. 스파르타는 코린토스와 메가라 등 반도에 있는 도시국가들과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맺어 전열을 가다듬었다. 아테네 내륙에는 2,500km가 넘는 산들이 병풍을 둘렀고 7km 떨어진 곳의 피레우스는 깊은 만 속에 자리잡은 천혜의 항구로 아테네의 출입문 역할을 했다. 아테네는 난공불락의 요새다. 해발 156m의 거대한 바위언덕인 아크로폴리스는 그 꼭대기에 가뭄이 와도 마르지 않는 2개의 샘이 맑은 물을 쏟아내 BC 3,500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아테네의 세력은 점점 커져 본토의 도시국가들을 휘어잡고 델로스 동맹을 맺어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맞섰다. BC 43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됐다. 전쟁과 냉전을 거치며 27년 동안 이어진 전쟁은 BC 404년 아테네가 항복하며 스파르타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상처뿐인 영광인가. 스파르타도 기진맥진, 그리스 쇄망의 길로 들어섰다. 고린도와 아테네를 잊는 ‘고린도 운하’ 고린도는 아테네에서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70km쯤 떨어진 곳에 있다. 오늘날 이곳에 가려면 고린도 운하를 건너가야 한다. 고린도는 그리스 본토로부터 남부지방에 자리한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이어지는, 폭 6km의 지협을 통제하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고린도는 페이레네라는 샘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돼 주변에는 기름진 들판이 펼쳐져 있다. 고린도는 북쪽의 이오니아해와 동쪽의 에게해로 뻗어나가는 두 개의 항구를 운영해 국제적 무역중심지로 성장했다. 고린도 만 북쪽 항구도시 레카이온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고린도 도시에 편입되었으며, 동쪽으로 11km 떨어진 사로니카 만에 위치한 겐그레아 항구는 바울로가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향하기 전 머리를 깎은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6km 길이의 고린도 운하가 건설되어 소규모 배들이 오갈 수 있지만,옛날에는 디올코스(Diolkos)라 불리는 포장도로가 있어서 두 항구를 연결했다. 디올코스가 없었을 때는 레카이온에서 겐그레아까지 나흘이 걸렸다. 겐그레아 항구에 도착한 배들은 짐을 내려놓은 다음 특수 마차를 이용해 배를 통째로 끌고 레카이온 항구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짐을 싣고 이오니아해를 거쳐 이탈리아 반도 지역으로 항해를 계속했다. 수에즈와 파나마에 이어 세계 3대 운하 가운데 하나인 고린도 운하는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그 필요성이 제기돼 로마 네로 황제 는 운하 건설을 시도하기도 했다. 고린도 운하는 1880년 공사를 시작해 13년 뒤인 1893년에 개통,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실제적인 섬이 됐다. 고린도 운하는 폭 70m, 길이 5km로 오늘날 아테네에서 고린도로 가려면 이 운하 위를 다리로 지나게 된다. 고린도 지역에는 BC 500년경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도시국가는 BC 100년경부터 시작됐다. 고린도의 창시는 시시포스와 에피라라고 전해진다. 고린도는 BC 146년 로마에 의해 파괴되면서 그리스 시대의 종말을 고했다. 그 후 100년 정도 황폐했다가 BC 46년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로마식 도시로 재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하드리아누스 등 로마 황제들의 후원으로 고린도는 계속 발전했지만 이민족의 침입과 지진 등의 자연재해로 서기 551년 도시로서의 기능을 마감했다. 지금은 아테네가 그리스의 대표 도시지만 서기 1세기 고린도는 상업의 중심지로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붐비는 국제적인 도시였다. 당시 고린도는 청동제품, 도자기류, 섬유업, 조선업, 건축업 등이 발달했다. 전체 도시 가운데 일부만 발굴된 고린도 유적지에는 BC 6세기에 건설된 것으로 보이는 아폴로 신전을 비롯해, 여러 신전들과 바실리카, 대규모 시장터인 아고라, 극장, 오데이온, 일종의 종합병원인 아프클레페이온, 목욕장 등이 있다. 오늘날, 세월의 풍상 따라 스파르타와 아테네, 고린도는 많이 변했다. 아테네가 유럽문명의 발상지이자 그리스 수도로 몇 백 만의 인구가 들끓는 국제도시가 된 반면, 한때 아테네를 굴복시킨 펠로폰네소스의 맹주 스파르타는 인구 2만의 조용한 농어촌 소읍으로 전락했다. 아테네와 맞먹던 국제도시 고린도는 관광객들의 돈으로 연명하는 신세가 되었다. 펠로폰네소스에 또다시 불길이 치솟았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싸움이 아니라 산불과 그리스의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지중해 연안 지역은 겨울이 우기, 여름이 건기다. 지난 여름, 이상기후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수은주를 40℃ 이상 끌어올렸다. 지글지글 끓는 대지와 바싹 말라 타들어 가던 산천에 누군가의 방화로 추정되는 불길이 동시다발로 치솟았다. 5,000여 명의 이재민과 66명의 사망자를 낸 산불은 3,900억 원 이상의 재산피해를 냈다. 그리스 사상 최악의 산불이었다.
CANADA ALVERTA 대자연, 인간의 모험을 .. 2007-10-17
에서는 짜릿한 모험과 위압적인 대자연이 뒤엉킨다. 강성한 로키를 선홍빛 헬기 위에서 내려다보는 체험은 전율이다. 프로펠러의 굉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출렁거리는 로키 산맥만 눈앞에 도열한다. 헤드폰을 통해 홀러나오는 조종사의 설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설산을 가로지르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 원시의 호수, 푸르게 번쩍이는 바위들……. 헬기는 몸을 비틀며 산봉우리와 스치듯 비행하지만 긴장도, 비명도 멈추는 창공에서의 1시간은 무아지경 속에 흘러간다. 봉우리들의 진한 유혹은 눈과 귀를 흔들며 그렇게 한참 동안 넋을 빼 놓는다. 헬리 투어, 강렬한 로키의 유혹 알버타가 품고 있는 자연은 한 뼘 위에서 바라볼수록 더 고혹적이다. 밴프 곤돌라를 타고 설퍼 산 전망대에 오르거나 레이크 루이스 곤돌라에서 눈 덮인 산과 호수를 감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캘거리에서 밴프로 향하는 길목에는 이곳 인디언 말로 ‘머리 큰 추장’이라는 뜻을 지닌 캔모어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헬기를 타고 설산 위로 붕붕 날아 오르는 짜릿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헬리 하이킹, 헬리 투어라는 다소 생소한 체험인데 붉은색 헬기를 타고 ‘스리 시스터즈’ 산봉우리 위를 선회하거나 2,000m가 넘는 험봉에 착륙한 뒤 능선을 따라 하이킹을 즐기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지만 그 감동은 자연의 경이로움만큼 빽빽하게 채워진다. 이곳 젊은이들은 헬기를 타고 올라간 뒤 능선에서 헬리 웨딩을 치르기도 한다. 이곳에서의 감동은 일대에 흩어져 있는 300여 개의 호수 때문에 더욱 도드라진다. 그 중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빅토리아 빙하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레이크 루이스 호수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딸인 루이스 공주의 방문을 기념해 이름이 붙여졌는데 ‘작은 물고기들의 호수’라는 앙증맞은 이름도 지니고 있다. 이곳에서는 미니 호수에서 즐기는 휴식이 사실 더욱 보드랍고 감미롭다. 호수를 독차지한 채 캠핑카에 머물며 호숫가에서 여유롭게 낚시를 즐기거나 하룻밤 묵는 체험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밴프 인근 카나나스키스에서는 산중에서 카우보이의 낭만을 재현할 수 있다. 목장에서 출발해 키드 산을 바라보며 산허리를 돌아오는 진짜 오프로드 승마가 가능하다. ‘랜치 트레일 라이드’로 불리는 승마 체험은 카나나스키스에서 진짜 ‘존 웨인’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 목가적인 분위기 때문에 보우 강과 카나나스키스 강이 만나는 이곳 일대는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가을의 전설’, ‘용서받지 못할 자’ 등 서부영화의 단골 배경이 되었다. 로키의 본고장인 캐나다 알버타 주를 자동차로 질주하는 것 또한 흥분된다. 캘거리에서 애드먼튼으로 향하는 도로에는 세계에서 가장 멋진 산악 경관을 자랑하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가 뻗어 있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밴프와 재스퍼 국립공원도 이 도로 위에 자리잡고 있다. 알버타에는 독특한 자연경관만큼이나 특이한 자동차 문화가 있다. 알버타의 도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번호판 없는 ‘유령차’들. 대부분의 차들이 번호판 없이 버젓이 도로를 질주한다. 불필요한 비용과 세금을 줄이자는 차원에서 주정부가 번호판을 없애버린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유독 알버타 주만 그렇다. 카우보이의 향연, 스탬피드 축제 이방인이 알버타를 찾는 또 다른 이유는 캘거리 스탬피드 축제 때문이다. 절정의 기량을 갖춘 카우보이들이 날뛰는 말 등에 앉아 엉덩이를 흔들며 리듬을 타는 광경은 말들의 거친 콧바람과 기분 좋게 뒤섞인다. 섬세한 사람이라면 관중의 환호 속에서 발굽과 함께 뛰는 심장 소리를 들을 것이고, 아슬아슬한 카우보이의 몸 동작 사이로 ‘말 근육’이 던져 주는 야릇함에 얼굴이 후끈 달아오를 것이다. 그 황야의 ‘존 웨인’들이 연출하는 8초의 흥분을 생생하게 즐기기 위해 매년 여름이면 100만여 명이 캐나다 알버타 캘거리를 찾는다. 북미 최대 야외축제로 자리매김한 스탬피드 축제의 상금은 175만 달러. 세계 최고의 카우보이들도 부와 명성을 좇아 매년 이곳 스탬피드로 몰려든다. 캘거리 사람들은 스탬피드 얘기만 꺼내면 표정부터 달라진다. 스탬피드 기간 도시 전역은 온통 서부시대로 회귀한 모습이다.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카우보이 모자에 ‘짜∼악’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번쩍번쩍 광나는 롱부츠를 신고 또각거리며 다닌다. 느닷없이 카우보이의 외침인 “Hee Haw(히 하우)”를 주고 받으며 축제의 현장에 함께 있다는 동질감을 확인하기도 한다. 거리의 쇼윈도와 담벽 곳곳에는 역동적인 역마차 그림이 그려지고 호텔 로비도 지푸라기 흩날리는 서부활극 풍으로 인테리어가 바뀐다. 축제기간의 아침은 무료 팬케이크 식사로 배부르게 시작된다. 역마차를 몰던 마부와 카우보이가 팬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축제를 시작하는 인심 좋은 전통이 수십 년째 이어져 나이 지긋한 카우보이들이 직접 베이컨을 듬뿍 얹은 팬케이크를 시내 곳곳에서 나눠준다. 축제기간 동안 캘거리 시내는 때아닌 러시아워와 말똥, 주차난으로 시달린다. 축제의 현장은 도심 한편에 자리한 스탬피드 파크. 카우보이들은 말등에 올라타 8초간 버티는 베어벡(Bareback), 척 웨건(Chuck Wagon)으로 불리는 역마차 경주를 펼친다. 요즘 역마차에는 최신식 내비게이션까지 달려 있다. 말들은 냉방시설 잘되는 마굿간에서, 카우보이들의 한적하게 마련된 트레일러에서 호사스럽게 휴식하며 경기를 준비한다. 캘거리의 청춘들에게도 스탬피드는 하루종일 흥청거릴 수 있는 멋진 기회다. 일일 티켓을 산 뒤 이곳저곳 바를 순회하며 기분 좋게 취하거나 몸을 뒤흔드는 선남선녀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때만큼은 힙합음악이 아닌 컨트리송이 무대를 장악한다. S라인의 미녀들이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기타 선율에 몸을 흔드는 광경은 자유롭고도 에너지 넘친다. 매일 밤 펼쳐지는 그랜드 스탠드 쇼 역시 최정상급 뮤지컬에 버금가는 매머드급 규모다. 캐나다 알버타를 찾으면 사람들은 밤을 잊은 채 말발굽 템포의 두근거리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로키와 스템피드에서 경험한 전율은 가슴 속을 한참이나 뛰어 다니며 진한 추억으로 남는다. tip 가는 길●밴쿠버를 경유해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한항공, 에어캐나다 등이 밴쿠버까지 운행하며 밴쿠버에서 캘거리행 국내선은 1∼2시간 단위로 있다. 인천∼밴쿠버 10시간, 밴쿠버∼캘거리 1시간 소요. 캘거리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25분 걸린다. 캐나다 관광청(02-733-7740), 알버타 주 관광청(02-725-0428)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둘러볼 곳●캘거리 시의 상징인 캘거리 타워에서 시내뿐 아니라 멀리 로키의 정경까지 조망할 수 있다. 캘거리 헤리티지 파크에는 서부 캐나다 초창기 역사와 주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마을이 재현되어 있다. 카나나스키스와 밴프 일대는 천혜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골프 코스가 여럿 있다. 그린피도 100달러 이하로 한국의 절반 수준. 숙소●밴프 스프링스 호텔은 ‘로키에 위치한 캐나다의 성’으로 불리는 호텔로 밴프타운에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에 출연했던 마릴린 먼로가 밴프 일대에서 촬영하며 이 호텔 스위트룸에서 3개월간 투숙했다. 샤또 레이크 루이스 호텔은 창 밖으로 펼쳐진 호수 경관이 일품이다.
강남 제일의 물의 도시 주장 周庄 2007-10-12
강남의 수향(水鄕)은 천하제일이요, 주장의 수향은 강남 제일이라.’ 주장은 마을 전체가 물로 둘러싸여 있어 베니스에 못지않은 낭만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아름다운 운하와 다리, 호수, 누각과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연출하는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운하를 따라 줄지어 있는 명·청 시대의 고택과 골목 곳곳에 배어 있는 고풍스런 분위기는 시간을 거슬러 우리를 과거로 데려다준다. 강남 최고의 물의 도시, 주장 중국의 강남지방은 예부터 강과 호수, 운하가 많기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도시가 항주와 소주다. 마르코 폴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 극찬했던 항주와 미인이 많다는 소주는 수백년간 강남지방을 대표하는 도시였다. 옛날 사람이 많지 않고 공해가 없던 시절의 두 도시는 정말 살기 좋은 도시였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대대적인 개발로 두 도시는 과거의 낭만적인 분위기 대신에 복잡하고 멋없는 곳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제 두 도시를 강남을 대표하는 물의 도시라고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에 반해 상해에서 버스로 1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주장은 강남의 이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운하의 도시다. 주장은 강과 냇가를 따라 집이 늘어서 있는 전형적인 강남 운하마을이다. 주민들 또한 전통적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상해가 중국의 현대화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면 주장은 오랜 역사를 면면히 이어온 그들의 문화적 유산과 자연환경, 그리고 고유의 전통을 지키고 있는, 중국에서 몇 안 되는 도시다. 주장은 물위에 떠 있는 연꽃처럼 아름다운 도시다. 운하를 따라 고풍스런 집들이 즐비하고 집 사이사이로 돌 조각이 촘촘히 박힌 정겨운 골목이 펼쳐진다. 그리고 운하 위에는 아름다운 돌다리가 곳곳에 놓여 있다. 주장의 운하는 이런 돌다리와 가옥의 안뜰 아래로 유유히 흐른다. 운하의 돌계단 앉아 빨래를 하는 아낙네의 모습은 주변풍경과 어우러져 잘 그린 한 폭의 수묵화가 된다. 주장의 건물들은 90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수로의 발달은 주장을 상업도시로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여러 왕조를 거치는 동안 전쟁의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명·청대의 건축물들이 아직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주장에 남아 있는 집의 60% 이상이 명·청대인 1368∼1911년에 만들어진 것이라 하니 마을 전체가 살아 있는 건축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장의 전통가옥과 정원, 상점 대부분이 관광객에게 개방되나 주장을 돌아보려면 먼저 수많은 인파가 엮어내는 혼돈에 적응해야 한다. 미로처럼 좁고 복잡한 골목을 사람에 채이며 걷다 보면 짜증 섞인 얼굴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잠시뿐, 고색창연한 점포가 즐비한 골목풍경에 적응하고 나면 주장의 진면목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운하의 도시 대나무 세공과 도예 제조소, 공예품 가게, 떡 가게, 기념품 가게 등이 즐비한 골목에서 한발자국만 벗어나면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아름다운 운하가 펼쳐진다. 十자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주장의 운하는 배 두세 척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아 주변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장은 복잡한 골목과 운하로 이루어져 있지만 길을 잃을 걱정이 없다. 주장을 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다. 복잡한 골목을 따라 이리저리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천하제일의 수향(水鄕)이라는 주장의 진풍경과 조우하게 된다. 옛 중국인들의 풍요로운 주거형태를 엿보려면 먼저 심청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 심청은 오늘날의 주장이 있게 한 심만삼(沈万三)과 주장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이다. 심만삼은 원래 외지인이었으나 원나라 중엽, 강남의 부호였던 아버지가 교역을 위해 주장으로 이주하면서 이곳에 터전을 잡게 되었다. 심만삼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주장의 수로를 이용한 무역으로 주장을 작물과 비단, 수공업의 집산지로 발전시켰다. 이런 공로로 그는 주장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심청은 1742년 그의 후손이 건축한 청대의 저택으로 2천㎡의 면적에 7채의 건물과 크고 작은 100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청의 차방과 메인홀은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공간으로, 고풍스러우면서도 우아한 가구로 가득 차 있다. 심청은 전통적인 가구와 부엌, 다양한 전시물로 인해 중국인들에게 더 인기가 높다. 주장에는 심청 외에도 장청, 미루, 등허사원 등 볼거리가 많다. 미루는 많은 학자와 문인들이 모여 술을 마시며 주장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장소로 유명하다. 그들은 술에 취하고, 강물 위로 한가로이 떠다니는 나룻배와 돌다리, 옛 저택, 가로수 등이 어울린 멋진 경치에 흠뻑 취해 시를 읊곤 했다. 주장의 풍경을 말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운하 위에 놓인 아름다운 다리들이다. 주장은 강남 제일의 수향답게 일찍부터 배가 주요 운송수단이었다. 그래서 마을 곳곳에 사람들이 불편 없이 강을 건너면서 배의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아치형의 돌다리를 만들었다. 원, 명, 청대에 만들어진 14개에 달하는 이 다리들은 아직도 각 왕조의 건축적 특징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마을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다리는 쌍교와 부안교, 정풍교이다. 마을 북동쪽에 있는 쌍교는 돌로 만든 반원형의 세덕교와 대들보형의 영안교를 일컫는 것으로, 주장의 상징과도 같다. 주장은 1984년 중국계 미국인 화가인 진일비가 그린 38점의 유화가 뉴욕에 전시되면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고향의 추억’이란 이름으로 출품된 쌍교는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져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그림을 계기로 주장이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명나라 때 만들어진 쌍교는 은자강과 남북시강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어 더욱 우아하다. 쌍교에서 남쪽으로 150m 정도 걸어가면 부안교가 나온다. 1355년에 만들어진 부안교의 네 귀퉁이에는 교루(橋樓)가 있는데, 절로 감탄이 날 만큼 매혹적이다. 부안교는 다리와 누각이 같이 있는 강남 유일의 건축물로, 다리에 붙어 있는 교루는 오랫동안 찻집과 레스토랑, 상점으로 이용되며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교루에 앉아 주장의 초록 운하를 바라보면 누구라도 음유시인이 될 것 같다. 소박함과 평화로움이 매력적인 곳 주장을 돌아보는 두 번째 방법은 배를 이용하는 것이다. 유람선을 타면 운하 사이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감춰져 있어 걸어 다니면서 볼 수 없었던 명소들이 서서히 드러나 주장의 낭만적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주장의 뱃사공들은 베니스의 곤돌라 리오네처럼 세련된 복장을 갖춰 입지 않고 소박하다. 그리고 남자보다 여자가 많다. 능숙한 솜씨로 좁은 운하를 헤쳐 나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건강한 삶의 향기가 느껴진다. 약간의 팁을 주면 즐거운 마음으로 주장의 전통민요를 들려주기도 한다. 최근 늘어나는 관광객으로 인해 운하 또한 골목의 인파만큼이나 많은 배들이 얽히고 설키지만 뱃사공들은 능숙한 솜씨로 부딪침 없이 배를 저어 나간다. 배를 타고 호수와 운하 곳곳을 돌다보면 어느새 주장의 풍경이 하나하나 마음속에 쌓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운하 옆에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 앉아 할머니 차(茶)를 마시는 것도 운치가 있다. 대부분의 중국 사람들처럼 주장 사람들 역시 차를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방법은 다른 고장과 조금 차이가 난다. 그들은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차 세트와 운치 있는 방법으로 차를 마신다. 먼저 대나무나 나뭇가지를 이용해 도기나 흙으로 만든 차 그릇에 물을 끓인 후, 그 물로 차를 씻는다. 그리고 몇 분 후 끓인 물에 차를 풀어 넣는다. 이런 방법을 통해 차의 아름다운 색과 향기, 맛을 유지하게 된다. 할머니 차란 이름은 과거 노인들이 함께 모여 차를 즐기던 모습을 보고 차 이름을 할머니 차라고 붙인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차를 마시는 방법도 서서히 변하고 있지만 할머니 차는 아직도 주장의 명물로 꼽힌다. 사실 주장이 역사적인 볼거리와 자연적인 아름다움만 있는 도시라면 그리 특별한 매력을 못 느낄지도 모른다. 이보다는 따뜻한 할머니 차 한 잔과 소박한 사람들, 수백 년을 이어 온 전통과 문화가 주장을 잊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이다. 해질 무렵, 관광객이 모두 되돌아간 주장의 거리는 적막감이 감돈다. 이 시간에 다리 위에 서서 주변을 살펴보면 고요한 초록빛 물과 청명한 하늘이 그려내는 평화로움에 흠뻑 젖어든다. 주장에서의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그곳의 매혹적인 풍경과 인정 많은 사람들, 풍부한 역사와 문화적 유산은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게 될 것이다. 교통 우리나라에서 주장까지 가는 비행기가 없어 상해로 간 다음에 그곳에서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상해에서 지하철 상해체육관(上海體育館)역 인근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주장까지 투어버스가 하루 5회 운행하며 1시간 정도 소요된다. 호텔 주장에는 호텔이 많지 않기 때문에 상해에서 하루치기로 다녀가는 것이 좋다. 주장에 머물고 싶은 사람들은 주장빈관(周庄賓館 (0571) 5721-6666)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중국 전통 스타일로 꾸며진 호텔은 스포츠센터와 사우나, 바, 쇼핑 아케이드 등을 갖추고 있다. 시내 중심가에 있어 교통도 편리하다. 2인실 50달러 정도. 식사 주장의 대표적인 요리는 만삼 돼지족발. 신선한 야채와 엄선된 돼지 다리를 주재료로 다양한 향신료를 넣어 삶은 것으로, 육질이 부드럽고 맛이 좋다. 주장의 특산품으로 마을 어디서나 쉽게 맛볼 수 있다. 주의할 것 상해에서 당일치기로 주장을 돌아보려는 사람들은 상해로 돌아가는 마지막 버스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버스가 일찍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소매치기도 생겨났으니 복잡한 골목에서는 조심하도록.
힌두의 향기 발리 휴양과 쇼핑과 축제의 섬 2007-09-14
발리에서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길가에 ‘박소 바비’(Bakso Babi)라는 사인을 자주 보게 된다. 도로 교통 표지판? 아니면 발리당의 정치적 구호? 아니다. 이것은 발리의 전통음식인 돼지고기로 만든 미트볼을 뜻한다. ‘박소 바비’는 작은 수레에 담아 끌고 가기도 하고 상자에 담아 어깨에 메고 가기도 한다. 이것은 발리인들에게 간식이나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 박소 바비를 사먹는 사람들은 은근히 이런 뉘앙스를 풍긴다. “나는 인도네시아 사람이 아니라 발리인이야. 너희들은 이걸 먹지 못해.” 인도네시아의 유일한 힌두나라 거대한 섬나라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국가다. 단, 발리만 빼고.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사우디나 이란처럼 그렇게 엄격하지는 않지만 돼지고기는 입에도 안 댈 뿐 아니라 돼지고기를 요리한 냄비는 백 번을 씻어 내더라도, 그 냄비에 요리한 다른 음식조차 알고는 먹지 않는다. 하지만 발리 사람들은 은근히 돼지고기를 먹음으로써 인도네시아 무슬림(회교도)에게 반감을 나타낸다. 발리의 관광산업은 발리의 목줄을 쥐고 있다. 2002년과 2005년 발리의 폭발참사로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죽고 나서 발리의 관광산업은 급격히 가라앉았었다. 발리인들은 폭발참사의 범인을 무슬림이라 생각한다. 발리의 인도네시아 무슬림에 대한 반감은 은연중에 쌓이고 쌓여있다. 2억2,000만 인구의 인도네시아에서 인구라야 300만 밖에 안 되는 섬 발리만 어떻게 힌두교일 수 있을까? 이 문제에 관한한 발리는 떳떳하다. 원래 인도네시아는 무슬림이 아닌 힌두교가 깊숙이 스며든 땅이었지만 13~14세기에 걸쳐 이슬람이 몰려오면서 인도네시아는 모두 이슬람화 됐다. 여기서 용하게 살아남은 곳이 바로 발리다. 발리는 한사코 이슬람의 물결을 물리치고 인도네시아 전통종교이자 그들 조상 대대로 내려온 힌두교의 믿음을 지켜냈다. 발리를 제외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너무 쉽게 그들의 믿음을 바꿔버린 것이다. 발리에 있는 4,600여 개의 힌두사원에서부터 개인적인 통과의례나 사회적 결합의례까지 힌두교를 떼어내고 발리인들의 생활상을 말할 수 없다. 발리 관광의 주요 대상인 음악, 노래, 춤 그리고 페스티벌 모두가 힌두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여행자의 눈에 비친 발리의 매력에서 힌두교와 연관지어지지 않는 것은 쇼핑과 나이트클럽뿐이다. 흔히 발리를 지상의 천국으로 묘사하지만 그것은 여행자들을 위한 브로셔에서 하는 말이고 발리 사람들의 생활은 고달프다. 발리의 수도 덴파사르에 머무는 외국 관광객이 하루에 쓰는 돈은 100달러 정도인데 덴파사르 시민의 하루 생활비는 겨우 1.4달러다. 발리 국민 총생산 가운데 덴파사르 관광수입이 59%를 차지한다. 덴파사르 시민이 그럴 진데 농촌 주민들의 생활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발리 사람들의 얼굴엔 고달픈 기색 없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언제나 친절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의 힘은 윤회와 업, 해탈의 길을 믿는 힌두사상에 있다. 발리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야 말로 발리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다. 발리 최고의 쇼핑거리 ‘쿠타 스퀘어’ 발리는 어떻게 관광천국이 되었는가? 솔직히 말해서 발리의 자연풍광이 다른 동남아 국가보다 빼어나다고 할 수 없다. 1920년대 초, 그 당시 인도네시아는 독일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여행 산업이 앞으로 크게 번창할 것이라는 것을 독일정부는 눈치 챘다. 그렇다면 유럽의 부호들이 흥미를 쏟을 곳은 어디일까? 독일정부는 발리를 지목했다. 이유는 유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발리 여자들의 ‘톱리스’ 차림 때문이다. 이런 현상도 힌두와 이슬람의 차이다. 힌두는 성(性)에 관한 한 관대하다(힌두사원엔 노골적인 성 묘사 조각이 수두룩하다). 폭탄테러로 주춤하던 발리의 경기는 현재 완전히 회복했다. 인천국제공항과 발리 덴파사를 잇는 노선은 한국의 신혼여행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다. 발리의 또 다른 매력은 쇼핑이다. 매년 12월 중순쯤이면 모스크바 페테르스 부르크에서 전세기가 날아와 발리공항에 꾸역꾸역 러시안들을 토해낸다. 북풍한설 몰아치는 동토의 나라에서 야자수 춤을 추는 발리로 러시안들이 몰려오지만 발리에는 이들을 가이드 해줄 사람이 없다. 그나마 자카르타에서 걸음마 수준의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몸값을 잔뜩 올려 이곳에서 길 안내를 해주고 있다. 러시안들은 쇼핑하러 갈 때 픽업트럭을 렌트해서 명품점을 싹쓸이 해버린다. 그들은 시시하게(?) 카드를 쓰지 않는다. 007 가방을 열면 빳빳한 100달러짜리 지폐다발이 차곡차곡 가득 들어있다. 그들이 가이드에게 주는 팁도 쩨쩨한 미국인이나 호주인이 주는 것과는 단위가 다르다. 때문에 지금 발리엔 러시아어 학원 문이 미어터진다. 발리는 쇼핑의 천국이다. 발리 관광객들은 발리에서 쇼핑만 잘하면 발리 여행경비를 충당하고도 남는다고들 말한다. 물론 그들은 보따리장수가 아니다. 자기네 나라에서 사고 싶던 물건을 발리에서 샀을 때의 차액이 비행기 티켓과 호텔 값을 뭉개 버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발리 최고의 쇼핑거리는 ‘쿠타 스퀘어’다. ‘발리’ 하면 우리는 야자수 춤을 추는 비치를 떠올린다. 발리에서 가장 길고 잘 알려진 비치는 쿠타 비치다. 이 쿠타 비치 뒷길에 위치한 쿠타 스퀘어는 쇼핑 천국으로 베르사체, 폴로, 돌체 & 가바나, 펜디, 페레가모, 프라다 등 우리 귀에 익은 명품 브랜드 간판으로 도배를 해놓았다. ‘발리의 이태원?’ 천만의 말씀이다. 이곳에 가짜는 없다. 그러나 상품 값은 가짜 수준이다. 폴로 여자 가디건이 2만7,000원이다. 진품 명품이 어떻게 이렇게 쌀 수 있을까? 우리는 모를 일이지만 하여튼 장사는 요지경이다. 발리는 제주도의 3배쯤 되는 섬이다. 깔때기 모양 아래로 좁아진 곳이 수도 덴파사르고 그 아래 절 처마 끝의 풍경처럼 매달린 조그만 반도가 부킷(Bukit)이다. 부킷 반도의 동쪽 끝이 누사두아(Nusa Dua)다. 최근 새로운 휴양지로 개발되어 자연이 훼손되지 않은 이곳에 ‘아코르 프리미어 베케이션 클럽’(APVC)이 있다. 널찍한 거실과 식당, 고급스런 주방과 베란다 등으로 꾸며진 이곳은 회원들이 이용할 땐 호화 개인 별장이 되고 비회원이 이용할 땐 노보텔 호텔이 된다. 카트를 타고 3분이면 APVC 전용 비치가 있다. 이곳은 조용해서 누드는 좀 곤란해도 토플리스는 자연스럽다. APVC에서 걸어서 5분이면 발리 G.C 클럽하우스에 닿는다.
OKTOBER FEST 맥주에 취하는 축제의 나날 2007-09-13
베를린 함부르크와 함께 독일 3대 도시인 뮌헨은 세계적인 명차 BMW의 고장이고 독일 하이테크 산업의 중심지다. 또한 분데스리가 최고의 명문구단인 바이에른 뮌헨의 홈이자 독일 맥주산업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뮌헨은 12세기 이후 바이에른 왕국의 비테르스바흐 가문이 800년간 지배하며 남부독일 궁정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시내 곳곳에는 당시에 만든 호화로운 궁전을 비롯해 박물관과 미술관이 흩어져 있어 문화 애호가들을 즐겁게 한다. 2차대전 때 연합군의 집중폭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지만 전후 복구되어 중세와 현대적인 이미지가 조화를 이루는 활기찬 도시로 성장했다. 뮌헨은 1년 중 언제 가도 매혹적이지만 맥주의 도시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기간은 두 말할 것 없이 옥토버페스트 시즌이다. 세계 최대의 맥주축제 매년 9월 셋째 주에서 10월 초까지 16일간 열리는 축제기간에는 6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들어 축제의 열정을 만끽한다. 처음에는 10월 첫째 주말에 개최되었기 때문에 ‘10월의 축제’라는 뜻의 옥토버페스트로 불렸으나 날씨가 좋고 야외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9월 말~10월 초에 열리게 되었다. 옥토버페스트 기간에는 도시 전체가 흥청대는 술판으로 변해 사방에서 맥주 냄새가 진동한다. 이 기간에 관광객들이 소비하는 맥주는 1천만ℓ가 넘는다고 하니 그 양을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오늘날 뮌헨이 맥주의 도시로 명성을 얻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옥토버페스트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 행사는 바이에른 왕국 루트비히 1세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1810년 10월 12일 첫 축제를 연 데서 유래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5일 동안 경마와 성대한 파티를 열었는데, 매년 같은 시기에 기념행사를 개최한 것이 옥토버페스트로 자리를 잡았다. 옥토버페스트는 보불(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발발한 1870년, 콜레라가 창궐했던 1873년, 그리고 1, 2차대전 기간을 제외하고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열렸다. 그 결과 지금은 2월의 쾰른 카니발과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맥주축제의 주무대는 뮌헨 중앙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인 테레지엔비제(Theresienweise) 광장이다. 이곳에는 한 번에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비어텐트와 각종 놀이기구가 설치되어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수천 명의 인파로 북적대는 비어텐트 비어텐트는 뢰벤브로이, 호프브로이, 슈파텐브로이, 아우구스티너 켈러 등 뮌헨에 거점을 두고 있는 메이저 맥주회사에서 설치하는데, 매년 12~15동이 들어선다. 텐트는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3층까지 있다. 그런데도 이곳에 들어가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전 10시에 문을 여는데, 점심 무렵이면 사람들이 꽉 차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기 일쑤다. 남녀노소, 인종, 국적에 상관없이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비어텐트는 항상 만원이다. 가장 인기 좋은 곳이 호프브로이와 뢰벤브로이 하우스 텐트. 유독 두 곳이 인기를 끄는 것은 중세 때부터 왕실에 공급하는 맥주를 만들어 온 전통과 더불어 축제의 묘미를 가장 잘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비어텐트는 맥주를 마시는 장소라기보다는 문화공간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중앙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민속의상을 입은 악단들이 신나게 연주를 하고, 나무 테이블에 마주 앉은 사람들은 서로 잔을 부딪치며 프로스트(건배)를 외치고, 합창을 하기도 한다. 테이블에 올라가 퍼포먼스를 펼치는 사람도 많다. 멈추는 것을 잊어 버린 듯한 밴드가 연주를 하면 1천cc짜리 맥주잔을 치켜든 수천 명의 주당은 일제히 일어나 몸을 흔들며 온몸으로 축제를 즐긴다. 이곳에서만큼은 누구와도 쉽게 어울릴 수 있다. 오로지 먹고! 마시며 즐길뿐이다. 지구촌 최대의 맥주축제답게 맥주의 종류도 다양하다. 독일을 대표하는 브랜드는 기본이고 흑맥주와 생맥주, 이름조차 낯선, 독특한 맛과 비법을 자랑하는 맥주들이 끊임없이 주당들을 유혹한다. 축제의 또 다른 주역은 어린이 축제의 또 다른 주역은 어린이들이다. 테레지엔비제 광장에는 비어텐트와 동시에 롤러코스터, 범퍼카, 회전목마 등 다양한 놀이시설이 설치되어 가족단위 여행자를 불러들인다. 곳곳에 깨진 맥주병이 발끝에 차여도 개의치 않고 놀이시설을 타는데 열중한다. 놀이시설들은 야간에도 운영되기 때문에 비어텐트가 아니라면 거대한 야외 놀이공원에 온 듯하다. 비어텐트 안에서 어른들이 맥주축제를 즐기는 동안 텐트 밖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놀이마당이 펼쳐진다. 축제의 주무대는 테레지엔비제 광장이지만 뮌헨 전지역에서 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집이란 술집은 빈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꽉꽉 들어찬다. 노천 술집마저도 자리가 없다. 비어텐트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술집이라도 들어가 축제에 동참하는 것이다. 워낙 많은 사람이 아침부터 술을 마셔대기 때문에 점심 때가 지나면 앰뷸런스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지만 술에 취해 병원에 실려 가거나 사소한 시비 외에는 별다른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 축제기간에는 거리 퍼레이드와 전통악기 공연도 벌어진다. 직능단체별로 왕과 왕비, 귀족, 농부, 광대, 거지 등으로 분장하고 맥주통을 산처럼 쌓아올린 마차를 따르며 시내 곳곳을 행진한다. 퍼레이드를 관람하고 나서 사람들은 전통 레스토랑이나 비어홀에 들어가 온갖 종류의 맥주와 음식을 맛보며 축제 분위기에 젖어든다. 그런가 하면 테레지엔비제에서는 수백 명이 모여 나무로 만든 거대한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퍼레이드와 전통악기 연주는 정해진 날짜에만 하기 때문에 보고 싶다면 옥토버페스트의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 미리 날짜를 확인한다. 맥주를 매개로 일상의 억압을 풀어 버리는 옥토버페스트. 모든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어 버리는 마력이 있다. 옥토버페스트야말로 본질에 충실한 진정한 축제라 할 만하다. 여행정보 교통 우리나라에서 뮌헨까지 직항하는 비행기는 없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해서 프랑크푸르트로 간 다음 기차를 탄다. 루프트한자, KLM 등 유럽계 항공사를 이용해도 된다. 레스토랑 뮌헨에는 바이에른 지방의 전통요리를 내는 곳이 많다. 신시청사 지하에 있는 Ratskeller는 독일 요리 전문점으로, 직접 만들어 파는 소시지가 일품이다. 돌로 만든 넓은 공간에 두터운 나무 테이블이 놓여 운치가 넘친다. 수제 소시지에 맥주 한 잔을 곁들여 먹으면 끝내 준다. 호텔 뮌헨은 숙박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만 축제기간에는 방을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예약이 필수다. 숙박비 또한 두 배로 오른다. 중앙역 인근에 있는 Hotel Helvetia(☎089-590-6850)는 비교적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호텔로, 시설과 위치가 무난한 편이다. 옥토버페스트 홈페이지 축제 기간에 열리는 행사를 미리 알고 가면 큰 도움이 된다. www.oktoberfest.de 주의사항 뮌헨은 치안이 잘된 도시지만 축제 때는 조심해야 한다. 수백만 명의 인파를 따라 소매치기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간혹 술에 취한 젊은이들이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는데, 상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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