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롤스로이스 칼 하인츠 칼브펠 회장 “한국 럭셔리카 .. 2004-08-17
롤스로이스 팬텀 발표회에 참석하기 위해 롤스로이스의 칼 하인츠 칼브펠 회장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행사가 끝나고 기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그는 “한국 시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며 말문을 열었다. 롤스로이스보다 한달 먼저 진출한 메르세데스 벤츠의 마이바흐를 의식한 듯 한국 럭셔리카 시장에서 1위를 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1999년까지 BMW의 전략담당 부사장으로 일하던 칼브펠 회장은 1998년 BMW가 롤스로이스의 브랜드사용권을 사들이자 롤스로이스 프로젝트의 담당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BMW 마케팅총괄 수석 부사장과 롤스로이스 비상임 이사를 거쳐 올해 5월부터 롤스로이스 회장직을 맡고 있다. 4년여 동안 팬텀 개발과정 함께 해 칼브펠 회장은 롤스로이스 팬텀이 탄생하기까지 전과정을 함께 했다. 영국 굿우드에 공장을 짓고 디자인을 짜고 부품을 만들고 첨단 기술을 불어넣기까지 4년여 동안 어느 것 하나 그의 손과 머리를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는 아무 것도 없는 ‘제로’ 상태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가져온 것은 단지 ‘롤스로이스’라는 이름뿐이었지요. 저는 그 이름이 지닌 전통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굿우드를 롤스로이스의 공장부지로 선택한 것도 영국의 전통이 그대로 남아있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BMW에서 롤스로이스의 이름을 가져간다고 했을 때 한쪽에선 롤스로이스의 전통이 끊어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BMW와 롤스로이스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칼브펠 회장은 단호히 대답했다. “롤스로이스는 BMW와 독립적으로 움직입니다. 명령은 공유하지만 부품은 공유하지 않습니다. 팬텀 역시 완전히 다른 차입니다. 결과물을 보면 BMW에서 만든 차라기보다 영국차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BMW와는 완전히 독립된 새로운 차를 만들겠다던 그의 의지는 어느 정도 실현된 셈이다. 롤스로이스라는 아버지와 BMW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새 팬텀은 외모가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물론 속은 BMW의 첨단기술로 꽉 차 있지만. “전체적인 디자인은 팬텀Ⅱ에서 가져왔습니다. 롤스로이스의 고급차 이미지를 이어가기 위해 각 분야의 숙련공들이 작업을 함께 했지요. 직접 보면 우리가 부품 하나 하나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수제작 공정의 비율은 예전의 롤스로이스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칼브펠 회장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기대를 모으는 시장으로 중국, 일본에 이어 한국을 꼽았다. 그는 당장의 판매대수만이 아닌 잠재력까지 생각했을 때 “중국, 일본, 한국이 롤스로이스의 아시아 3대 시장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보였다. 새 딜러망을 갖추기 위해 한국의 딜러들과 여러 차례 접촉한 끝에 롤스로이스는 HBC 코오롱을 파트너로 선택했다. 열정이 풍부하고 완벽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강하며 추진력도 뛰어나다는 것이 이유였다. 칼브펠 회장은 “올해로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에 HBC 코오롱이라는 파트너를 맞아 한국에서 롤스로이스 사업을 시작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만족감을 내비쳤다. 새 팬텀의 AS는 롤스로이스의 공식 수입업체인 HBC 코오롱이 전담한다. 이전 모델의 부품은 벤틀리에서 가져와야 하므로 딜러의 결정에 따라 HBC 코오롱에서 제공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마이바흐에 이은 롤스로이스의 진출로 국내 초대형 럭셔리카 시장이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다. 6억 원이 훌쩍 넘는 차를 누가 사느냐에 모두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지만 롤스로이스 측은 구매자 정보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칼브펠 회장은 “다음에 한국을 찾았을 때는 거리에서 팬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인터뷰를 끝맺었다. 칼브펠 회장의 바램은 실현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HBC 코오롱은 “지금까지 80여 명의 고객과 상담을 했는데 그 가운데 8∼10명 정도가 구입의사를 내비쳤다”며 올해 말까지 15대를 팔 계획이라고 밝혔다.
휠 디자이너 타츠야 카타오카 ⑥디자이너 인터뷰.. 2004-08-13
자동차의 외관 디자인에서 휠은 단순히 타이어를 잡아주는 기능 이상으로 전체 스타일을 결정짓는 중요 포인트가 된다. 양산차에 처음 달려나오는 순정 제품보다 애프터마켓용 제품이 더 관심을 끄는 것은 똑같은 보디에서 차별화 된 휠 하나만으로도 남다른 개성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휠 디자인 또한 진화를 거듭해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제품이 많이 선보이고 있다. 그런 한편 휠 디자이너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데, 유명한 휠 디자이너인 타츠야 카타오카(Tatsuya Kataoka)씨가 한국에 왔다는 연락이 본지 편집부로 날아들었다. 록음악 추구하다 우연히 휠 디자이너 입문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히트, 아이디어 많아 타츠야 카타오카 씨는 일본에서 매우 입지전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고등학교 졸업만의 학력으로 세계적인 휠 디자이너가 되었기 때문인데, 최고의 디자인 학부나 톱클래스의 휠 회사 또는 자동차회사를 거치지 않은 그의 성공스토리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큰 용기를 주는 것이었다. 서울 강남의 IBIS 호텔에서 만난 타츠야 카타오카 씨는 큰 키에 패셔너블한 옷차림이 첫눈에 보기에도 디자이너다운 모습인데, 실제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그는 곧 패션쇼가 있다며 식사 때 거의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최근에 디자인한 휠 제품을 한국 시장에 선보이기 위해 왔습니다. 세계적인 휠 디자이너라고 하면 미국의 마크 니퍼(mark nipper)와 마리 니체(marie niche), 그리고 저 이렇게 세 사람입니다. 워낙 유명한 디자인이라서 카피가 많아요. 그래서 이들 제품은 의장등록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찾은 이유와 대표적인 휠 디자이너를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최근 국내 휠 업체는 중국의 저가제품 공세에 고심하고 있는데, 뛰어난 품질 바탕 위에 디자인으로 승부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카타오카 씨에게 제품 디자인을 의뢰한 것이다. 카타오카 씨는 20대에 MHT사의 ‘카오틱’(Kaotik) 브랜드를 맡아 현재 ‘스포르자’(Sporza)의 메인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고 전세계 20여 개 휠 메이커의 의뢰를 받아 디자인 작업을 해오고 있다.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 휠 디자인 분야의 최고가 될 수 있었을까? “정말 우연입니다. 전 디자인을 공부한 적도 없고 디자이너가 되려는 생각도 없었어요. 휠이라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동차에도 흥미가 없었지요. 방황하던 스무살 무렵, 당시 제 형이 미국에서 휠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었어요. 형을 따라 MHT(미국에서 가장 큰 휠 회사)의 공장에 갔다가 신제품으로 나온 휠을 보게 되었지요. 그런데 저는 그 휠의 디자인이 별로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라면 이런 식으로 디자인할텐데’하고 스케치를 해보았지요. 그런데 우연히 그 스케치를 본 MHT사의 사장이 관심을 보였어요. 그게 계기가 된 것이지요.” MHT사는 그 스케치를 가지고 휠을 만들고, 그해(1996년)에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쇼인 SEMA쇼에 출품하게 된다. 림까지 함께 디자인되어 당시로는 획기적이었던 이 휠(‘Skater’라는 이름)은 업계의 화제를 모으며 대히트를 하게 된다. 원래 그는 뮤지션이었다. 록음악을 추구했는데 레코드사에서 댄스음악을 하라고 해서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그룹에서 나와 신주쿠 등지를 히피처럼 떠돌아다니다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형을 만나러 미국에 간 것이다. 그런 이력 때문일까, 그에게 디자인은 어떤 철학이나 예술세계와는 관계없는 자유로운 영감일 뿐이라고 한다. “디자인을 할 때 이렇게 그려야지 하고 생각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냥 음악을 듣거나 술을 마시면서 자유롭게 떠오르는 대로 그립니다. 하나의 작품을 디자인하는 데 단 5분이 걸릴 때도 있고 3일이 걸릴 때도 있습니다. 1년에 500∼600개 정도의 디자인을 하는데 그중 상품이 되는 것은 50∼60개 정도입니다.” 디자인은 의뢰를 받을 때도 있고 먼저 디자인을 해서 회사에 선보일 때도 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휠에 대한 새로운 시각 그리고 휠 디자인 분야의 무한한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 “저는 자동차는 잘 모릅니다. 그냥 디자인을 할 뿐입니다. 차를 좋아하면 디자인을 할 수 없습니다. 차를 빼고 그냥 휠만을 디자인합니다. 유명 배우가 제가 디자인한 휠을 달고 다닌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너무 기뻤습니다. TV 드라마에서 제가 디자인한 휠이 장식품으로 나오는 때도 있어요. 그럴 땐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일본에서는 술집이나 집에 휠을 장식품으로 놓는 경우도 많습니다.”
명주사 고판화 박물관장 최선학 “물건을 모을 생.. 2004-07-26
중앙고속도로 신림IC에서 빠져나가 주천, 영월로 이어지는 88번 지방도로는 고향의 이미지로 채워진, 푸근한 드라이브 코스다. 도중에 치악산, 감악산 등산로가 시작되고, 쌀 찐빵과 면발이 툭툭 끊기는 시원한 막국수로 유명한 황둔리가 있다. 주천강과 동강도 한달음이다. 최근 이곳에 명소 하나가 더해졌다. 신림터널을 지나 6km 지점, 깊은 산 속에 들어선 ‘명주사 고판화 박물관’이 그곳으로 6월 20일 개관식을 가졌다. 박물관을 만든 주인공 최선학(48) 씨는 명주사 주지를 겸하고 있다. 그가 일러준 대로 신림터널을 지나서 ‘치악산 명주사’ 푯말을 보고 왼쪽 산길로 접어들었다. 하얀 감자꽃이 만발한 밭과 계곡 사이로 대충 닦아 놓은 길을 따라 얼마쯤 올라가니 갑자기 앞이 시원스럽게 열리면서 멋스런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명주사와 박물관이다. 군더더기 없는 60여 평의 건축물 안에는 거무튀튀한 나무판들과 그것으로 찍어낸 책, 그림 등이 정갈하게 전시되어 있다. 그가 소장한 작품은 판화 원판 1천800여 점, 판화로 찍어낸 서적 200여 권, 판화 작품 300여 점, 판화 관련자료 200여 점 등 2천500점이 넘는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티벳, 몽골, 인도, 일본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이퇴계의 ‘성학십도’, 조선조 임금의 음식메뉴를 적은 ‘진찬의계’ 등 목판으로 찍은 서적들 외에 중국의 ‘오대산성경전도’가 눈길을 끈다. 마을과 계곡, 도로, 300명이 넘는 사람이 나오는 오대산 그림은 가는 붓으로 그린 것처럼 세밀해서 일부러 알려주지 않으면 목판화라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다. 명주사를 명성센터로 만들고 싶어 최선학 관장이 컬렉션을 시작한 것은 7년 전 서울 용산에 있는 국방부 법당 신자들과 중국에 성지순례를 갔다가 항주 야시장에서 작은 도자 불상을 산 것이 계기가 되었다(그는 15년간 국방부 법당주지 등을 지내고 98년 전역했다). “꼭 필요한 것이어서 3만 원 가량 주고 사 왔는데, 인사동에서 똑같은 것이 기백만 원에 팔리더군요. 많이 놀랐지요. 이를 계기로 골동품의 매력에 눈을 떴습니다.” 처음에는 귀해 보이는 것을 무조건 사들였으나 불교 승려인 자신의 생활과 관계 있는 유물로 범위를 좁혔고, 다시 목판화 분야로 압축되었다. “제가 동국대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했어요.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고미술에 대한 열정이 뒤늦게 되살아난 것이겠지요.” 컬렉션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가족들의 비협조와 넉넉지 않은 자금. 대부분의 컬렉터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고 전한다. “불교에서는 가진 것을 다 버리라고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자꾸만 모으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괴로운 적도 있었어요. 목판화 수집은 저의 업이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젠 그것을 많은 사람과 나누기로 했습니다.” 박물관 개관과 맞추어 판화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근처 산골짜기를 명상센터 및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며 나갈 계획이다. 최선학 관장의 수집 편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굉장히 힘이 드는데다 끝이 보이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물건을 모을 생각하지 말고 그저 감상하고 즐기도록 하세요. 그것이 진짜 행복입니다.” 올 여름 명주사 고미술 박물관으로 피서를 가도 좋을 듯하다. 귀한 유물을 둘러본 뒤 시원한 계곡에 발 담그고, 하늘을 가린 숲길에서 산책을 하고, 감자부침과 시원한 막국수 한 그릇을 먹는 것이 진정한 웰빙 라이프가 아닐까 싶다. 명주사 진입로는 비포장인데다 구불거리고 경사져서 4WD차를 몰고 가면 제격이다.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 박물관 (033)761-7885
류재현의 ‘외유내강’ 뉴 코란도 소프트톱 오프로.. 2004-07-26
류재현 씨의 뉴 코란도 소프트톱을 만나면서 처음 머릿속에 떠오른 느낌은 ‘여성스럽다’는 점이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욕(?)이 될는지 모르지만, 험한 길을 누비는 차답지 않게 아기자기하게 잘 정돈된 모습 때문이다. 그는 “제가 감히 어떻게 매니아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지 어리둥절하다”면서도 “이럴 줄 알았으면 세차라도 하고 올 걸 그랬다”며 웃었다. 자동차 튜닝이 아직도 밝은 곳으로 선뜻 나서지 못하는 현실은 그에게도 그늘을 드리운 적이 있었다. 어머니와 여자친구를 태우고 지방에 갔다가 그만 불심 검문에 걸리고 만 것이다. 그나마 운이 좋아서 ‘불법 부착물 부착’쯤으로 무사히 넘어갔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런가 하면 이미 잊고 지내던 악연이 발목을 잡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기도 했다. “전에 타던 승용차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튜닝 핸들로 바꾼 채 차를 그냥 팔았는데, 지금 타는 주인이 자동차검사를 받다 덜컥 걸려 버렸습니다. 그것을 단 사람을 역추적해서 결국은 저한테 화살이 날아오더군요. 난생 처음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고 나니 참 기가 막혔습니다.” 장애물들을 극복해 나가는 데에 매력 느껴 오프로드 튜닝으로만 치자면 그는 스스로 평범하다고 평가한다. 차 높이를 심하게 올린 것도 아니고, 괴물 같은 타이어를 달지도 않았으며, 탱크나 장갑차처럼 중무장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렇지만 꼭 필요한 만큼씩 튜닝해 놓은 그의 뉴 코란도는 오프로드에서 뛰어난 성능을 여러 차례 입증했다. 그러나 그는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는 튜닝 파츠보다 결국 소프트웨어격인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오프로드를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여러 가지 성향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튜닝 그 자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튜닝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에 그쳐야 하고, 험한 길을 헤쳐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는 여느 동호인들처럼 작업을 할 때는 늘 공구를 쥐고 손수 해야 직성이 풀린다. 얼마 전에는 바위를 타넘다가 망가진 머플러를 손수 세팅해서 다시 달아 놓았다. 하지만 그다지 여유가 없는 건설회사 현장 근무를 하느라 늘 시간이 모자란다. 거친 오프로드를 헤쳐 가면서도 그다지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그에게 어쩌면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바쁜 일상인 듯하다. 오프로드 출정을 위해 어렵사리 짬을 내야 하는 터라 가끔 무리한 일정을 잡을 때도 있었다. 차 꽁무니에 붙여 놓은 영문 이니셜을 보니 두 사람 몫이어서 슬쩍 묻자 내년 봄쯤에 결혼할 여자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오프로드를 다닐 때도 늘 함께 한다는 여자친구 덕분인지, 그의 차는 여느 오프로드 튜닝카처럼 거칠어 보이지 않았다. 온갖 수리용품이나 구난장비 같은 것들은 뒷좌석 뒤에 따로 만들어 놓은 박스에 잘 갈무리해 놓았다. 그런 탓인지, 그의 차에서는 기름 냄새도 나지 않고, 진흙 자국도 거의 없다. 언뜻 거칠게 보이기 십상인 오프로드 매니아에게 여자친구의 존재는 ‘절제와 조화’를 위해 소중해 보였다.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얻어 온 장식품이 글러브 박스를 장식하게 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는 결코 티 내지 않으면서 알차게 내실을 다지는 참된 매니아라는 생각이다.
홍종호 & 아우디 RS4 ‘산적’ 감독, 음악과 영.. 2004-07-22
홍종호 감독과의 인터뷰는 섭외과정부터 마무리까지 그의 업(業)인 뮤직비디오처럼 리드미컬하고 쿨하게 진행되었다. 단 한번의 전화통화로 인터뷰 OK. 1시간 30분의 시한부 대담을 제시한 홍 감독은 약속했던 12시 30분에 꼭 맞춰 도착해 1시간 10분 동안 속내를 털어놓고, 자신의 애마인 아우디 RS4를 몰고 남은 20분을 화끈하게 마무리했다. 참고로 홍종호 감독이 뮤직비디오 연출을 시작한 지는 올해로 만 10년째. 한정된 시간 동안 원하는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은, 그에게 이제 일도 아니다. 리듬과 독창성 살아있는 음악편지 지난 95년 R.E.F의 데뷔곡인 ‘고요 속의 외침’을 시작으로 이제껏 홍종호 감독의 손을 거쳐 완성된 뮤직비디오는 200여 편 이상. 90년대 중반의 국내 음반 시장은, 노래와 영상을 조합했을 뿐인 조잡한 음악편지가 한편의 훌륭한 영상예술로 발전하면서 중흥기를 맞는다. 그 시기를 관통하며 손꼽히는 거물로 성장한 홍 감독의 영상에는 항상 분명한 리듬과 눈길을 사로잡는 감각적인 색감 등 이른바 ‘홍종호 스타일’이 존재했다. “뮤직비디오는 음악과 함께 움직일 때 생명력을 얻는다고 생각해요. 노래에 담긴 메시지를 따라 적절한 아이템과 특수효과를 찾고, 그림의 길이도 그 곡의 비트에 맞춰 조절합니다. 최근 철저한 각색으로 드라마틱한 느낌을 살린 뮤직비디오가 각광을 받고 있지만 썩 좋은 현상은 아니라고 봐요. 화려하고 보는 재미도 필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뮤직비디오를 보는 시청자가 음악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거든요. 그림이 음악을 끌고 가서는 안되요. ‘홍종호 스타일’이라면 음악과 어울리는 그림, 리듬이 살아 있는 스토리를 얘기하는 걸 거예요.” 90년대 대중음악과 한국 문화의 대표 아이콘으로 꼽히는 서태지와의 조우는 연출가 홍종호에게 행운이었는지 모른다. 아이들 시절 ‘교실이데아’ ‘영원’ ‘컴백홈’ 등을 영상으로 그려내며 홍 감독은 ‘뮤직비디오 잘 찍는 감독’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얻었고, 2000년 서태지의 두 번째 솔로 앨범 중 ‘울트라맨이야’와 ‘인터넷 전쟁’을 연출하며 그의 입지는 더욱 탄탄해졌다. 음치가수 이재수 측의 컴백홈 패러디 뮤직비디오 의뢰가 들어온 것은 서태지가 2집 활동을 마치고 한국을 떠난 지 얼마 뒤의 일이었다. 홍 감독은 쉽게 수락했고 작품도 완성되었지만 그 생명은 오래 가지 못했다. 서태지 쪽이 저작권 침해로 민사소송을 걸었고 결국 이재수의 앨범과 홍 감독의 뮤직비디오는 판매 및 방송금지 판결을 받고 사장되었다. “촬영 전부터 양쪽 기획사 사이에서 중재하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소송이 벌어졌을 때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태였고, 저는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만든 작품에 대한 패러디, 언젠가는 해보고 싶었던 작업이에요. 컴백홈 뮤비가 제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던 작품이라 패러디에 대한 욕심은 더욱 컸지요. 실제로 ‘컴배콤’ 촬영은 원작과 같은 장소에서 진행되었고 영상 구성과 컷 수도 컴백홈과 똑같았습니다. 음악으로서 패러디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요.” 홍종호 감독은 어느새 뮤직비디오 계에서 후배들을 리드하고 올바른 방향까지 제시해야 할 위치에 올라서 버렸다. 책임감 못지않게 지금의 제작 풍토에 안타까움이 많은 것도 당연하다. “재능 있고 뛰어난 감각을 지닌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반가운 일이지만 오래 전부터 만연했던 ‘표절’을 이제는 만성적인 수준을 넘어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최근 외국 유명 여가수의 뮤직비디오를 토대로 색감과 구성, 조명과 앵글까지 거의 그대로 옮겨 담은, 작정하고 베껴 만든 작품을 내놔봤어요. 표절에 대한 심각성을 수면 위로 올려 화두를 던진 셈이었는데, ‘홍종호가 표절했다’는 말이 잠깐 들리고는 이내 잠잠해지더군요. 참 허탈한 일이었습니다.” 뮤직비디오 연출가와 380마력의 괴력을 토해내는 아우디 RS4는 쉽게 매치하기 어려운 조합. 더구나 4년 전만 해도 ‘차가 무서워 운전하지 않겠다’며 운전석에 앉기를 꺼리던 홍종호 감독이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2000년 1월 운전면허를 따고 아우디 S8을 두 번째 애마로 맞이하면서 그의 인생은 180° 달라졌다. 무척이나 빠르고 안정적인 S8의 운전석에서 ‘속도감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 지상 최고의 승용 4WD로 평가받는 콰트로 시스템에 매료된 순간, 그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스피드 매니아로 부상했다. 도로에서 산적처럼 생긴 운전자가 모는 검은색 아우디 왜건을 만난다면 섣불리 덤벼들지 말 것! 순식간에 달라붙어 등뒤에서 시퍼런 눈빛을 부라리는 RS4를 떨쳐낼 자신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글 | 김형준 사진 | 박창완
Fabrizio Giugiaro 카로 체리아의 21.. 2004-07-22
올해 서른 아홉 살인 이탈디자인의 후계자와 마주앉기까지는 갖은 우여곡절을 거쳐야 했다. 지난 5월 말 사업차 한국을 찾은 파브리치오 쥬지아로 부사장은 인천공항을 나서자마자 그 날 오후에만 서로 다른 두 업체를 찾아 각각의 비즈니스를 처리했다. 진작부터 인터뷰 요청을 해둔 터였으나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재촉할 틈을 못 찾을 정도. 워낙 바쁜 일상에 익숙하게 살아온 듯 보이는 이 글로벌 비즈니스맨은 잠시 숨돌릴 새도 없는 스케줄을 놀라운 에너지로 소화해내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첫날 일정은 밤늦도록 이어졌다. 귀국 이틀째. 아침 9시 반부터 시작될 업무를 마치자마자 일본으로 떠난다는 그의 ‘전쟁 같은’ 스케줄에 마음은 더욱 급해졌다. 창간 13주년 기념호를 위해 벼르고 벼른 인터뷰이(interviewee)를 자칫 눈 벌겋게 뜨고 날려보낼 지도 모를 일. 다행히 약속시간이 잡혔다. 평소 같으면 아직 집에서 나서지도 않았을 이른 아침에 숙소인 서울 신라호텔에서 젊은 쥬지아로를 만났다. 이탈디자인의 역할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 “늘 이렇게 정신 없이 바쁩니까?” “저는 디자이너예요. 디자이너에게는 스튜디오에서 스케치를 하고 있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지요. 그 시간을 벌기 위해 해외 업무는 몇 가지 스케줄을 모아 한꺼번에 해결하는 편입니다. 외국에서는 늘 바쁠 수밖에 없어요.” 일본에서도 도쿄와 나고야 등 세 도시를 사흘 동안 누벼야 한단다. 그 바쁜 스케줄 틈새를 비집고 그와 마주앉은 것만으로도 다행인 일. 올 봄 제네바 오토살롱에서 화제를 모은 컨셉트카 도요타 알레산드로 볼타와 알파로메오 비스콘티로 얘기를 시작했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엔진 파워를 끌어낼 수 있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엔진과 기어박스 등 고전적인 메커니즘에서 볼 수 있는 출력 손실이 거의 없고 에너지와 무게 배분도 탁월하지요.” 쥬지아로 씨는 하이브리드가 가장 중요한 미래 메커니즘 중 하나이므로, 단순 양산 모델뿐 아니라 이를 이용한 스포츠카 개발 등 좀더 다양한 연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태리 토리노 모터쇼에 대해서는 냉정한 진단을 내렸다. 제네바 오토살롱 등 탁월한 모터쇼가 득실대는 유럽에서 빠른 국제화에 대응하지 못했으니 낙오는 당연하다는 말. 시대의 흐름을 차분히 짚어내는 냉철함과 변화에 대한 유연성이 전해온다. “대부분의 주요 자동차 메이커들이 독자적인 디자인 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량생산 및 이를 통한 원가절감, 또 이 모두를 가능케 하기 위한 규격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지요. 이탈디자인의 자동차 관련 비즈니스의 95%도 완성차 메이커와의 공동작업으로 진행됩니다. 예전부터 양산 메이커들과의 관계는 좋은 편이어서 달라진 환경이 크게 낯설지는 않아요.” 이태리 토리노 공대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고 토리노 비즈니스 스쿨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디자인 능력과 경영 실무를 고루 갖춘 인물. 컨셉트카 마치모토(86년)와 아즈텍(88년) 프로젝트 참여를 시작으로 90년대 이후 본격화된 이탈디자인에서의 활동은 알파로메오 시게라와 폭스바겐 W12(이상 97년), 부가티 EB 시리즈, 애스턴마틴 트웬티 트웬티(2000년), 시보레 코베트 모레이(2003년)와 같은 컨셉트카들을 빚어냈다. 그가 디자인한 양산차는 대우 마티즈와 다이하쓰 무브(이상 98년), 마세라티 스파이더(2001년), 피아트 이데아와 알파로메오 156(이상 2003년),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등. “기성복 시대일지라도 맞춤복을 찾는 고객들이 꾸준하듯 개성적인 맞춤 자동차에 대한 시장의 수요도 계속 존재할 겁니다. 디자인 팀은 공동작업을 통해 안정적인 제품을 만들어낼 확률이 높지만, 단 한 명의 디자이너에게서 ‘상상초월 아이디어’가 나올 가능성도 큽니다. 묻혀질 수도 있는 작은 아이디어를 현실로 이어가는 끈이 바로 카로체리아의 몫이지요.” 이탈디자인의 힘은 세 가지. 세계 곳곳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과 빠른 업무 속도, 시간낭비 제로의 효율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 가지는 아무리 잘 짜여진 대규모 메이커라도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 자신한다. 차와 디자인,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남자 “이탈디자인 최고의 차는 무엇인가요?” “피아트 판다.” 단 1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피아트 판다는 GM대우 마티즈Ⅱ보다도 작은 꼬마 해치백 아닌가. 너무나 뜻밖이고, 놀랍고, 그래서 신선하기까지 한 대답이었다. “판다는 완전히 제로인 상태에서 출발해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낸 ‘제로 베이스’ 차입니다. 그 과정이 너무 소중해요. 또 상업적으로도 가장 성공한 제품 중 하나이며 회사 재정에 큰 도움을 준 차입니다. 디자인 측면에서 탁월하지는 않지만 상업적인 면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골프? 물론 빼놓으면 안 되지요.” 그의 차가 궁금했다. 별 생각 없이 던진 이 질문은, 뜻밖에도 한 시간 동안의 인터뷰를 통틀어 쥬지아로 부사장이 가장 어렵게 대답한 ‘고난이도 문제’가 되어버렸다.“너무 많아서……. 새로 개발하거나 디자인한 차는 모조리 타다보니 나도 헷갈릴 때가 있을 정도인데요, 평소 출퇴근할 때는 마세라티 쿠페를 주로 탑니다. 아! 쌍용 렉스턴도 종종 타고 다니지요.” 이탈디자인은 렉스턴 디자인 마무리 작업을 맡았다. 쥬지아로 부사장은 젊은 시절부터 이름을 날려온 스피드 광이다. 오죽하면 그의 부친이 “파브리치오가 운전하는 차 옆자리에는 타지 않는다”고 선언을 했을까. “요즘도 운전습관은 여전한가요?”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박장대소가 터져 나온다. 운전이라는 말만 들어도 즐거운가보다. 웃음 속에 차와 운전에 대한 사랑이 철철 끓어 넘친다. “아, 여전히 미친 듯 달리고 있습니다.(웃음) 그래도 프랑스 남부지역에 있는 F1 스쿨의 정식 교육과정을 모두 이수하는 등 스피드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준비는 충실히 갖췄어요. 막무가내 속도광은 절대 아닙니다. 몬자와 이몰라 서키트에서 F1 머신도 몰아봤지요. 지금껏 20년 운전하면서 큰 사고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변명이 필요했을까, 유난히 자신의 운전 성향에 대한 많은 말들을 쏟아낸다. “빠르지만 안전하게 운전합니다(Fast but safe).” 내내 이 말을 되풀이했다. 그는 빼어난 디자인 실력 못지않게 탁월한, 자타 공인의 드라이버. 그의 초고속 드라이빙이 안전하리라는 점, 믿어 의심치 않는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을 숱하게 찾았어요. 서울 도로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클래식’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온통 세단뿐이에요. 쿠페나 해치백은 정말 찾아보기 힘듭니다. 다행히 제가 좋아하는 마티즈를 많이 볼 수 있어 즐거웠어요.”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차를 고르거나, 아니면 정말로 차를 너무 좋아해서 타기보다는 사회 통념상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타입의 차, 즉 시각적 무난함으로 차를 고르는 듯하다는 게 한국적 차 고르기 성향에 대한 그의 조심스런 진단이다. 쥬지아로 집안은 조부가 교회 화가였고 부친이 20세기 최고의 카 디자이너인, 예술가적 기질을 이어온 가문. 하지만 그는 가풍이나 혈통보다는 일찍 찾아낸 재질과 이를 키우기 위한 교육이 더 중요했다고 말한다. “이제 한 살 된 딸은 벌써부터 차만 타면 계기판 스위치에서 손을 뗄 줄 모릅니다. 아마 머지않아 F1 최초의 여성 레이서가 쥬지아로 집안에서 나올지도 모르니 기대하세요.” 말과는 달리, 그는 딸의 장래를 오로지 딸의 선택에 맡길 작정이다. 혹시 좋은 아빠임을 강조하기 위한 ‘홍보성 멘트’는 아닐까. 그의 인생 철학을 물어보았다. “가족과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자!” 아무리 바빠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줄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그의 말. 그는 뛰어난 디자이너이기에 앞서 호방한 사나이였고 유머 넘치는 재담꾼이었으며, 감동적인 아빠이자 남편이기까지 했다. 글 | 김우성 사진 | 박창완
닛산 수석 부사장 토시유키 시가 “인피니티는 개.. 2004-07-13
닛산이 지난 6월 1일부터 18일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전세계 30개국 기자와 애널리스트 500명을 순차적으로 초청해 닛산의 현재와 미래를 소개하는 ‘닛산 360’이란 이벤트를 펼쳤다. 6월 15∼17일 3일 동안 이 행사에 참가한 기자는 닛산의 해외지사를 운영하는 토시유키 시가 부사장을 만날 수 있었다. 시가 부사장은 닛산의 수석 부사장이며 해외지사 운영에 관한 모든 책임을 맡고 있다. 지난 5월 13일 닛산이 한국 시장 진출을 공식화한 기자간담회에도 참석했던 그는 현재 한국닛산의 CEO인 케네스 엔버그의 보스(직속상관)이기도 하다. 한국을 시작으로 인피니티 세계화할 계획 “닛산은 내년 4월부터 ‘닛산 밸류업’(Nissan value-up)이라는 3개년 계획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 기간 중 닛산은 인피니티를 포함해 모두 28개의 새로운 모델을 세계 시장에 선보이고, 그동안 북미 시장에서만 판매했던 인피니티를 세계 전역에 공급할 계획입니다. 닛산이 르노와 제휴한 후 추진한 ‘닛산 리바이벌 플랜’(NRP)이나 ‘닛산 180’과는 달리 닛산 밸류업은 채산성 있는 글로벌 메이커로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의 이름인 ‘닛산 360’은 이제 닛산이 자동차 메이커로서 완전히 한 바퀴를 돌아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닛산은 밸류업의 하나로 인피니티를 북미 이외 지역에서 선보이는 첫 시장으로 한국을 택했다. 이를 시작으로 닛산은 일본에 인피니티 모델을 역수입하고 중국과 러시아, 서유럽 등에도 인피니티를 선보일 계획이다. 시가 부사장은 “한국처럼 닛산이 상륙하기에 앞서 인피니티가 먼저 선보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한국에서는 이미 현대, 기아, GM대우 등이 대중차시장을 확고히 잡고 있기 때문에 현대 등과 부딪힐 수 있는 닛산의 대중차보다는 고급 브랜드인 인피니티를 먼저 소개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닛산은 인피니티를 포함해 매우 많은 차종을 갖고 있지만 우선 고급차시장이 큰 한국에 인피니티의 대표모델을 선보인 후 차근차근 어떤 차종이 한국 시장에 적합할지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5월 한국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많은 기자들이 인피니티와 렉서스를 비교하는 것 같았습니다. 닛산은 한때 도요타를 따라가는데 집중하다가 1999년 실패를 맛보았어요(1999년 닛산은 르노와 제휴하고 경영권을 르노에게 넘겼다). 그러나 이제 닛산은 경쟁사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오직 ‘고객들에게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닛산의 관심은 렉서스가 아니라 한국 고객들입니다.” 게다가 인피니티에는 크로스오버 SUV인 FX45나 스포츠 쿠페인 G35 등 고급스러울 뿐만 아니라 다른 메이커의 차와 뚜렷하게 차별화되는 개성 만점 럭셔리카가 많아 한국 고객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시가 사장의 판단이다. 그는 또 닛산과 르노, 르노삼성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많은 사람들이 ‘닛산의 한국 진출이 르노삼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내게 물었습니다. 르노가 삼성을 인수해 탄생한 르노삼성은 닛산의 전략이 아니라 르노의 전략이지요. 르노가 닛산의 경영권을 갖고 있긴 하지만 실제 비즈니스에서 르노와 닛산은 많은 부분 분리되어 있으므로, 르노와 닛산을 전략까지 같은 하나의 회사로 보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인터뷰를 끝낼 즈음 자연스럽게 최근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TV 드라마 ‘겨울연가’의 주인공 배용준 이야기가 나왔다. 시가 사장은 “아내가 저녁 7시 30분만 되면 욘사마(일본인들이 부르는 배용준의 이름)를 보기 위해 ‘겨울연가’를 시청하는 배용준 팬”이라며 “아내와 함께 ‘겨울연가’를 몇 번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겨울연가의 인기로 모 수입차가 덩달아 잘 팔리기도 했는데, 나중에 닛산의 모델로 배용준을 쓸 생각은 없는가”하고 묻자 시가 부사장이 이렇게 대답한다. “물론 좋지요. 그러나 출연료가 매우 비싸지 않을까요?(웃음)”
SMS 코리아 정석태 사장 모터스포츠 마케팅 분야.. 2004-06-25
프라가 없습니다. 깊이와 넓이가 모두 부족한 거지요.” 스포츠 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SMS 코리아 정석태(47) 사장은 우리나라 모터스포츠의 현주소를 이렇게 진단했다. 서키트와 관련 업체의 지원은 말할 것도 없고, 튜닝을 불법으로 간주하는 법규와 전문가 부족 등, 한 마디로 총체적인 난국이라는 설명이다. 모터스포츠 마케팅 처음 들여와 정 사장이 스포츠 마케팅에 눈을 뜬 시기는 1996년. 쌍용자동차 기술연구소에 근무하면서 다카르 랠리 준비를 맡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어요. 잘 모르니까 랠리를 봐도 재미없더라구요.” 하지만 외국의 모터스포츠 관계자들을 만나고, 대회를 치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자동차경주가 열리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이를 통해 마케팅이 이루어졌다. ‘이거다. 정말 엄청난 분야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스포츠 마케팅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정 사장은 독립을 결심했다.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3년 정도 있다가 돌아온 것이 2001년. 그 해 3월 SMS(Sports Marketing Survey) 코리아를 만들었다. SMS 코리아는 영국의 스포츠 마케팅 전문회사 SMS의 한국지사다. 모터스포츠 선진국 영국은 이 분야와 관련된 정규직만 4∼5만 명, 한 해 매출이 60억 달러를 헤아린다. 자그마치 7조2천억 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완전 딴판이었다. ‘깊이도 넓이도 모두 부족한’ 상황에 부딪힌 것이다. 마케팅은 상품과 서비스를 더욱 효과적으로 소비자에게 유통시키고, 그 과정에서 이익을 만들어낸다. 모터스포츠의 경우 관련업체의 후원과 ‘대중노출도’를 연결시켜야 한다. 이벤트와 미디어가 연결고리 구실을 해야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정 사장은 이를 ‘닭과 달걀의 문제’라고 표현했다. 말하자면 악순환이다. 사람들은 모터스포츠를 몰랐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 지난해 5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나타난 모터스포츠 인지도는 발표하기 민망할 정도다. 그래도 상황이 조금은 나아졌다. 월드컵을 치르면서 스포츠 마케팅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그 주역이 모터스포츠여야 한다는 것. 정부나 관련업체의 지원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몇몇 이벤트가 진행중이다.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열리는 GT 챔피언십을 찾는 사람도 점차 많아지고 있고, 올 가을(10월)에는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챔프카 월드 시리즈가 열린다. 코리아 F3 개최도 5년 연장되었고, F1 유치도 논의되고 있다. 볼거리들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 지원과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스포츠 마케팅의 역할, 정 사장이 할 일이다. 수도권에 F1 레이스를 치를 수 있는 서키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정 사장의 지론이다. 이 때문에 그는 경주장 설립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우선 2월 말 처음 개최했던 모터스포츠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열고,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할 계획이다. 이렇듯 그의 머릿속에는 모터스포츠 생각이 가득하다. “지금도 힘들어요. 그래도 후회는 안합니다. 재미있잖아요. 꿈도 있고…….” 언제가 가장 힘들었느냐는 질문에 정 사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월드컵, 올림픽과 더불어 지구촌 3대 스포츠 축제로 꼽히는 F1을 우리나라에서 치르는 것이 스포츠 마케터로서, 그리고 모터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가 바라는 것이다. 성숙한 모터스포츠 축제의 장을펼치기 위해 정석태 사장은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한국닛산주식회사 케네스 L. 엔버그 사장 “인피니.. 2004-06-14
“닛산의 기술력을 모두 담아낸 인피니티의 가치는 무한대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기대하고 있는 것 이상의 인피니티를 한국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도요타와 혼다에 이어 닛산이 한국 수입차 시장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닛산은 지난 5월 13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한국닛산의 출범을 발표했다. 한국닛산의 활동 예정 시기는 내년 여름. 시판에 들어가기까지 13개월이나 남은 시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는 적극성은, 한국 수입차 시장에 대한 닛산의 꼼꼼한 준비와 판매전략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닛산이 한국 시장에 들여올 브랜드는 인피니티. 지난 1989년 북미 럭셔리 시장을 겨냥해 등장한 인피니티는 올해 4월 기준 90만 대 이상의 누적판매대수를 기록한 브랜드다. 90년대까지는 이미지나 판매 면에서 렉서스에 밀리는 분위기였으나, 카를로스 곤 사장의 ‘닛산 리바이벌 플랜’에 힘입어 최근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잇달아 등장한 새차들의 스타일링은 성공적이라 평가받는다. 21세기 초 세계 자동차 시장의 가장 큰 뉴스는 단연 닛산의 완벽한 부활. 닛산과 인피니티의 성공 스토리를, 그리고 그 과정을 이끌어온 인피니티 차들을 한국 땅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세련미와 고성능으로 수입차 시장 공략 한국닛산자동차의 초대 사장으로 취임한 케네스 L. 엔버그(43) 대표이사는 닛산 USA에서 잔뼈가 굵은 ‘낫산맨’. 미국 애리조나 대학에서 경제학과 영어학을 전공한 뒤 지난 1985년 닛산 USA에 입사해 18년 동안 영업과 마케팅, 애프터서비스, 인사관리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섭렵해왔다. 북미에서 가장 규모가 큰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험도 엔버그 사장의 큰 무기. 한국 근무는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 찾은 곳이라 낯설기도 하지만 기대감도 큽니다. 물론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겠지만 멋지고 대단한 도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에요. 가장 치열한 북미 시장에서 오랜 세월 갈고 닦은 경쟁력을 한국에 이어올 작정입니다.” 인피니티가 북미 시장이 아닌 다른 지역에 자체 판매망을 갖추고 정식 진출하기는 한국이 처음. 바로 그런 한국법인의 첫 사장으로 취임했으니 부담감이 꽤 클 법도 하다. “인피니티의 세계화는 닛산 전체 성공의 핵심요소입니다. 새로운 시장에 도전할 때가 되었지요. 한국은 유럽이나 중국, 일본 등 다른 지역 진출을 위한 파일럿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급팽창하는 한국 시장에서의 경험은 인피니티 세계화의 바로미터가 되리라 확신해요.” 엔버그 사장이 꼽은 인피니티의 강점은 스타일링과 테크놀로지, 퍼포먼스 등 세 가지. 사실상 자동차가 갖춰야 할 주요 덕목 모두를 인피니티의 강점으로 꼽은 것이니, ‘인피니티는 모든 것을 갖춘 차’라는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으로 여겨진다. 내년 여름 한국 시장에 선보일 라인업은 스포티한 G35 세단 및 쿠페, 기함 Q45, 올해 뉴욕 모터쇼를 통해 데뷔한 어퍼미들 세단 M35와 45, 크로스오버 SUV인 FX35와 45 등 모두 일곱 가지. 컴팩트 세단 I35와 최근 선보인 대형 SUV QX56을 뺀 전 모델이 출동하는 셈이다. 스카이라인의 후계자 G35는 미국 자동차 전문지 선정 ‘2003년 최고의 차’에 뽑혔던 모델. 세련된 이미지와 고성능은 인피니티의 전략 포인트다. “한국 수입차 시장은 앞으로 5년 안에 연간 6만 대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봅니다. 재무건전성이 좋은 딜러들을 중심으로 고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면 2~3년 안에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 렉서스에 버금갈 성과를 거둘 것으로 확신합니다.” 서울 지역 2, 3개로 시작해 3년 안에 7개까지 늘일 인피니티 딜러는 판매와 애프터서비스, 부품 공급을 두루 책임지는 원스톱 서비스를 지향한다. 인피니티의 특징은 독특한 느낌의 세련미. 엔버그 사장은 이를 ‘매버릭 럭셔리’(Maverick Luxury)라고 표현했다. 우아한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분위기, 활력 넘치는 기술이 ‘인피니티만의 멋’을 만들어낸다는 뜻. “인피니티가 한국에 진출하는 2005년은 닛산 3개년 사업전략인 ‘닛산 밸류 업’(Nissan Value-up)의 원년이고, 한국닛산은 이 계획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인피니티를 꼭 한번 느껴보세요.” 한국닛산의 활동은 2004년 5월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송승철 회장 “수입차도 국내 .. 2004-06-08
지난 4월 1일 송승철 한불모터스 대표이사가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이하 수입차협회) 제5대 회장에 선임되었다. 지난 95년에 설립된 수입차협회는 국내 수입차업체의 사장이 회장을 맡아온 그간의 관행대로 3∼4대 회장을 지낸 손을래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 부사장에 이어 송승철 대표를 선임했다. 이제 수입차업계를 대변하는 수입차협회의 회장에 오른 송승철 대표가 수입차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86년의 일로, 코오롱상사가 수입차사업을 시작하며 설립한 BMW사업부를 통해 수입차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어 93년 사브를 수입하던 신한자동차의 영업마케팅본부장을 거친 후 지난해 1월부터는 푸조의 국내 공식 파트너인 한불모터스를 이끌고 있다. 푸조가 국내에 다시 진출하는데 그의 맨 파워가 크게 작용했을 정도로 송 회장은 업계 전문가로 통한다. “무역불균형 해소는 국산차 수출에도 도움” “최근 혼다코리아가 합류하면서 수입차협회의 회원사는 14개로 늘어났습니다. 이제 미국과 유럽, 일본의 웬만한 브랜드가 모두 국내에 상륙한 셈이지요. 직판을 준비하고 있는 아우디와 닛산도 곧 회원사가 될 예정입니다. 늘어난 회원사의 수와 수입차시장의 규모에 맞게 수입차협회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송 회장은 우선 “내수시장의 2%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수입차시장의 규모를 3∼5년 내에 5%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수입차는 1만9천여 대이고, 올해 초 수입차협회는 2004년 국내 수입차 판매대수를 2만5천여 대로 전망했다. 그러나 국내 경기가 여전히 좋지 않고 자동차 내수시장 전망 또한 그다지 밝지 않아 협회가 연초에 밝힌 예상치 만큼 수입차가 판매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송 대표는 “올 하반기 각 메이커별로 새 모델 발표가 잇따를 예정이고, 혼다와 닛산 등 새로운 수입차업체가 의욕적으로 국내 수입차시장에 뛰어들고 있다”면서 올해 목표를 무난히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국내 수입차업체에 오랫동안 몸담아온 송 회장은 수입차시장 초창기와 지금의 변화된 상황, 그리고 앞으로 수입차업계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 그에게서 듣는 예전과 지금의 수입차시장은 분명히 다르고,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풀어가야 할 숙제도 남아있다. “10여 년 전 국내 수입차시장의 상황과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수입차가 손꼽을 수 있는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었고, 수입차를 사는 사람들도 대부분 대기업의 총수나 부유층에 머물렀어요. 고객 연령층도 50대 이상으로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계층이 수입차를 타고 있고 연령층도 20∼60대로 크게 넓어졌습니다. 또한 예전에 수입차를 선택할 때는 가장이 모델을 고르고 운전기사가 조언을 하는 데 그쳤지만, 지금은 부인과 자녀들의 구매영향력이 무척 커졌습니다. 전문지와 인터넷 등을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가족들이 의사결정에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이지요. 이밖에 차종도 대형 세단 위주에서 SUV나 컨버터블 등으로 다양해졌습니다. 최근 2천∼5천만 원대의 수입차들이 많아진 것도 변화의 하나입니다.” 이처럼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송 회장은 수입차 저변 확대의 여전한 걸림돌로 국내 자동차시장의 폐쇄된 분위기를 꼽았다. 직장 상사나 주변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현실 때문에 원하는 수입차를 소신껏 탈 수 없는 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송 회장은 또 과소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수입차를 첫 희생양으로 삼는 언론이나, 명확하지 않은 잣대로 자동차 수입을 억제하는 정부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자동차 수출대수는 200만 대가 넘었습니다. 내수보다 수출의 비중이 더 커진 것이지요. 그러나 한해 200만 대 이상의 차를 수출하는 상황에서도 국내에서는 수출량의 2%도 되지 않는 수입차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이 주무대인 국내 메이커들의 수출입지를 넓혀주기 위해서라도 국내 수입차시장이 커져서 무역불균형이 해소되어야 합니다. 협회는 단지 수입차의 판매대수를 늘리는 것이 아닌 국산차와 수입차가 국내에서 함께 성장하는 올바른 시장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나갈 것입니다.” “수입차도 이제 어엿한 국내 자동차산업의 일부분”이라고 강조하는 송 회장의 말이다.
갤러리 코리아 관장·의학박사 최낙원 “마음까지 정화.. 2004-06-08
물밑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냇가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들, 리어카 위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실뜨기를 하는 모녀, 꽃을 꺾고 있는 소녀들……. 물감에 빛이라도 풀었을까. 자연광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화폭에는 따스하고 눈부신 유년의 풍경이 가득하다. 중국 동포작가이며 이 시대 마지막 서정화가로 불리는 허문(55)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코리아(서울 중구 태평로1가 파이낸스 빌딩 지하 3층). 그림을 바라보는 최낙원(53) 관장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어린 시절 그대로지요. 지금은 우리나라에 없는 풍경이에요. 허 문 선생님을 뵙고 그림을 보면서 가슴이 벅찼습니다. 욕심과 편견, 마초적인 쾌감만 있는 현실에서 일순간 동심으로 돌아간 느낌이었지요. 보는 이의 마음까지 깨끗하게 정화해주는 진짜 그림들입니다.” 최 관장이 허문의 작품전을 열게 된 이유다. 회색 일색의 빌딩 숲, 현대화라는 이름 아래 사라지는 정취, 벽돌과 시멘트뿐인 메마른 도시를 떠나 순수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는 89년 처음 백두산과 연길을 찾았다. 민족의 원류를 찾아 성지순례에 나서는 마음이었다. 그곳에서 최 관장이 만난 것은 그렇게 그리워했던 우리의 옛 모습이었다. 그와 사회주의권 작가들의 작품은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 “그동안 중국이나 러시아의 작품을 많이 모았습니다. 첫째는 기본적 구상력, 데생이나 크로키가 정확합니다. 어려서부터 아카데믹한 교육을 받기 때문에 탄탄한 구도 등 기본기가 뛰어나요. 둘째로는 황금만능주의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소위 말해 돈 냄새가 안 나는 그림들이지요. 팔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린 기교적인 작품과는 질이 달라요. 그런 그림 옆에는 아예 가지도 않습니다.” 의학박사로, 성북성심병원 원장으로, 그림과는 인연이 없는 길을 걸어왔지만 최 관장이 늘 갈망했던 것은 그림이었다. 어린 시절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꿈을 접었고, 어느 정도 여유를 갖게 되면서부터는 미친 듯이 좋은 그림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갤러리 코리아’의 문을 열고 ‘그사모(그림을 사모하는 모임)’라는 동호회까지 만들었다. 갤러리 코리아라는 이름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화랑으로서 한국의 작품을 세계에 알리고, 세계의 작품을 한국에 소개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사모에는 국내외 숨은 작가들의 작품을 발굴해 전시회를 열고, 함께 모여 감상의 시간을 갖고 작품을 고르기도 하는 미술 매니아들이 모였다. 국내외 작가 지원하고 작품 알리는 데 힘써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들 하지요. 그 말이 진리입니다. 한국의 정서가 물씬한 작품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찬사를 받습니다. 좋은 작가들을 발굴해 세계 곳곳에 소개하는 일들을 계속해나갈 겁니다. 개인으로 뛰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니까요. 내가 그림을 좋아하고 갤러리를 운영하는 것을 호사가의 취미 정도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분명히 잘못된 시선입니다. 저는 제 일생에서 꼭 하고 싶었던 일을 지금 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러나 화가의 길을 걷지 못한 아쉬움은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 지금은 너무 바빠서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언젠가 현업에서 물러나면 직접 붓을 들 참이다. “차라리 의사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합니다. 훌륭한 작가들의 작품을 계속 보다 보니 내가 화가라면 화가 중에서도 돌팔이가 되었겠다 싶어요(웃음). 지금은 이 정도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간간이 진료차트에 환자들 손이나 발 같은 신체 부위를 잘 그리는 것으로 뿌듯해 하면서(웃음).” 바쁘게만 돌아가는 세상에 브레이크를 걸고, 좋은 그림을 보는 여유를 가지라고 말하는 이 사람. 자동차에 관해서도 쓴 소리를 한 마디 한다. “요즘 차들에서는 옛날 차들의 기계적인 정직성이나 순수성을 찾기 어려워요. 모든 기능이 전자식으로 바뀌어서 문제가 생겨도 고치기가 쉽지 않고…….” 최 관장은 20여 년 전 운전을 시작하며 처음 선택한 중고 마크Ⅳ를 “속을 많이 썩이며 미운 정 고운 정을 쌓아 가장 기억에 남는 차”로 꼽는다. 그 뒤 5∼6대의 차를 거쳤고 지금은 BMW 745Li를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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