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정비사 김영석·한예협 포드 아·태지역 정비 경진대회.. 2004-11-15
우리나라 사람들은 손재주가 좋다. 도자기 기술을 일본에게 전해준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지난 67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해 77년 이후 단 한 차례(93년 대만대회)를 제외하고 항상 종합 1위의 성적을 거두는 것만 보더라도 한국인의 손재주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을 만하다. 지난 9월 아·태지역 포드 딜러들을 대상으로 펼쳐진 자동차 정비기능 경진대회(Auto Skill Challenge)에서 포드의 한국 딜러 가운데 하나인 선인자동차 정비팀(김영석, 한예협)이 우승을 차지한 것 역시 한국 기술자들의 실력을 보여준 또 하나의 쾌거였다. 주최국 체면 살리려 한 달여간 밤낮없이 준비해 포드의 ‘오토스킬 챌린지’가 열린 것은 지난 9월 18일. 이 대회는 포드가 정비사들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99년 이후 매년 열고 있는 정비 기능대회다. 서울 용답동 포드 AS센터에서 펼쳐진 이날 대회에는 지역 예선을 거친 한국 및 괌, 홍콩, 싱가포르 등 4개국 포드 딜러 정비사들이 참가해 국가별 정비 실력을 겨뤘고, 이곳에서 주최국인 한국의 포드 딜러인 선인자동차의 정비팀이 우승을 거두었다. 오토스킬 챌린지가 한국에서 처음 시작된 대회라는 점도 의미가 있다. 즉, 오토스킬 대회는 97년 포드코리아가 한국 딜러들을 대상으로 마련했고, 대회를 통해 정비사들의 기량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포드 본사가 99년부터 이 대회를 국제행사로 키워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포드 본사가 주관해 열리는 국제대회의 시작이 바로 한국의 지역대회였던 셈이다. 올해 대회는 99년 국제대회로 규모가 커진 이후 한국에서 열린 첫 행사였고, 한국인 정비팀 김영석·한예협 조가 우승을 거둬 대회 시작 국가의 체면을 살렸다. 두 사람이 짝을 이룬 한국 대표팀은 국제대회가 열리기 한달 보름 전, 국내 예선을 거쳐 뽑혔다. “사실 1년 내내 오토스킬 경진대회를 위해 기량을 쌓아간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지만, 한국 대표팀으로 선정된 뒤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지요. 긴장이 많이 되더군요. 한 달여간 새벽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가 본 적이 없을 정도예요. 경진대회가 한국에서 열리는데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체면이 안 서잖아요. 근무시간이 끝나면 포드 정비 매뉴얼을 보면서 부족한 부분을 공부하고 실습도 병행했습니다.” 대회 우승을 거둔 한국팀의 선임 정비사 김영석 대리의 말이다. 김 대리는 선인자동차에 입사해 포드와 인연을 맺은 지 8년이 된 베테랑 정비사다. 지금은 베테랑 정비사들의 주임무인 고장 진단 부문을 주로 맡고 있다. 그런 그가 집에도 가지 않고 대회를 준비했다면 부담과 사명감이 어느 정도로 컸을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대회는 이론 40%, 실기 60%로 진행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테스트는 영어로 진행되었지요. 정비 부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기쁘지만 괌, 홍콩 등 영어권 국가의 정비사들과 겨룬 이론 부문에서도 좋은 점수를 낸 것이 개인적으로는 더욱 뿌듯합니다.” 김영석 대리와 조를 이뤄 우승을 일궈낸 한예협 씨의 말이다. 실기 테스트에서는 차의 특정 부위를 미리 고장낸 다음 이를 진단하고 고치는 과정을 평가했다. 이날 동원된 차는 포드 몬데오 3대, 이스케이프 3대 등 모두 6대. 포드 아·태지역 셰인 넬슨 이사와 함께 입국한 아·태지역 매니저들이 공정하게 심사를 했기 때문에 주최국 메리트는 없었다. 심사위원들은 ‘얼마만큼 포드가 제시한 표준 규정을 제대로 지켜 정비했는가’를 개인별 실력 이상으로 중요하게 평가했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 해결하지 못한 차의 이상을 내 힘으로 해결해 오너가 만족스러워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김 대리의 꿈은 “이곳에서 잔뼈가 굵은 후 먼 훗날 서비스 딜러권을 따 AS센터를 차리는 것”이라고 한다. “정비를 끝낸 후 오너들이 고맙다는 말을 할 때 가장 뿌듯하다”는 한혜협 씨의 꿈은 좀더 소박하다. “지금 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나중에 결혼도 해야 하겠지요. 아직은 배울 것이 무척 많아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몰랐던 것을 하나하나 알아 가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행복합니다.”
벤츠 G230 타는 한성자동차 정용상 전무 ③.. 2004-10-27
G클래스는 드림카였습니다. 10여 년 전 G300E를 샀을 때 내 인생에 이보다 큰 행운은 없을 것이라는 행복감에 젖었습니다. 드림카를 손에 넣었을 때의 기분은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거예요.” G클래스에 대한 한성자동차 정용상(55세) 전무의 애정은 각별하고, 단호하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공식딜러인 한성자동차의 중역이니까 G클래스가 좋다고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벤츠는 본디 럭셔리 세단 전문 메이커이고, SUV라면 M클래스도 있다. 정통 오프로더인 G클래스를 타는 데는 그만큼 각별한 애정이 있기 때문. 정통파 중에서도 그는 G클래스 고정팬이다. G클래스만 두 대째 타고 있는 것만 봐도 그의 ‘G클래스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타고 있는 모델은 1998년 구입한 G230. 95년형 숏보디 모델로, 하드톱에 5단 수동기어를 갖췄다. 우리나라에 단 1대 밖에 없는 수동 5단 G클래스다. 평소에는 C클래스 왜건이나 회사차 ML400 CDI를 타고 G230은 오프로드 여행을 다닐 때 애마로 쓴다. G클래스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95년 G300E를 손에 넣으면서부터다. 오랫동안 짝사랑해 왔던 차여서 아끼고 또 아꼈던 차였는데, 사정이 생겨 건축가 차운기 씨에게 넘겼다. 그 후 E클래스를 1년 정도 탔지만 G클래스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다시 G클래스를 손에 넣으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다시 구한 G클래스, ‘내 인생의 마지막 차’ 그러던 중 대구에서 중고 G클래스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하지만 대구에 도착했을 때 차는 이미 팔려 부산으로 가고 있었다. 정 전무는 뒤를 쫓아가 값을 더 쳐주고 결국 G클래스를 손에 넣었다. 차를 돌려 서울로 오는 길, 그때의 설레임을 잊을 수 없다. “너무 좋아서 그 즈음에는 부산 출장을 갈 때도 비행기를 타지 않고 G230을 직접 몰고 갔습니다. 몇 군데서 값을 후하게 쳐줄 테니 팔라는 얘기도 있지만, 이번에는 절대 넘기지 않을 생각이에요. 평생 갖고 있기 위해 부품도 다 구해 놓았습니다. G클래스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정비는 문제가 없습니다.” 1970년대 한때 현대에서 벤츠차를 들여와 팔았던 적이 있다. 주한 외교관이나 외빈이 주고객이었지만 종합상사에도 수입차가 있었다. 당시에는 수출 실적이 어느 정도 이상이면 바이어용 수입차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현대에서 벤츠 수입차 AS까지 맡았는데, 정용상 전무는 당시 서비스공장의 총 책임자였다. 그러니 G클래스의 구조를 꿰뚫을 수밖에. 그러다가 한성자동차가 생겼고, 수입자율화가 이루어지면서 자리를 옮겼다. 정용상 전무의 첫차는 현대 포니. 77년에 마련한 첫차의 차 번호도 외우고 있을 정도로 차를 좋아했던 정 전무는 얼마 후 코란도를 장만했다. ‘거화 코란도’ 시절이었다. 코란도로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돌아다녔다. 그때 ‘우리나라에 이렇게 좋은 데가 있구나’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대표적인 곳이 동강. 70∼80년대는 어디인지도 모르고 다니면서 그저 감탄할 뿐이었는데, 알고 보니 동강이더라는 것이다. G클래스로도 참 많이 돌아다녔다. 언젠가 양평의 한 비포장길에서 마주 오는 미군차와 마주쳤다. G클래스와 허머, 독일과 미국의 군용차가 만난 것이다. 왠지 모를 긴장감. 미군이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리더니 “한번 바꿔 타보자”고 했다. 정 전무는 빙긋이 웃고 자리를 떠났다. 험상궂은 인상의 허머보다는 겉으로는 수수하지만 속으로 옹골진 G클래스를 그는 더 좋아한 때문이다. 오프로드 성능에 대한 두터운 믿음으로 튜닝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정용상 전무의 G230은 앞쪽의 안개등 한 쌍을 빼면 순정 그대로다. 그는 G클래스에 대해 “타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이 좋은 차”라고 평가한다. 좋은 차의 기준이 뭐냐고 물었더니 “고장이 났을 때 고치면 완벽해져야 좋은 차”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차를 고치면 단지 문제의 증상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차가 처음 나왔을 때의 성능으로 회복될 수 있는 차. 나온 지 1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부품을 갈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차. 이것이 차를 평가하는 정 전무의 절대적인 기준이다. 아울러 “G클래스는 그 기준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차”라고 덧붙인다. 지금까지 어떤 험로도 G클래스와 함께 하면 두렵지 않았다는 정용상 전무. 그가 갖고 있는 마지막 꿈은 한적한 산골에 창고를 짓고 스스로 차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한 줄 문장으로 가슴을 적시고 세상을 움직이다 .. 2004-10-25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습니다.’ 그의 인생을 움직인 것은 이 한 줄의 문장이었다. 10여 년 전의 식품공학도 김욱현은 우연히 찾은 대형서점에서 우연찮게 한 권의 책을 집어들고 필연적으로 이 글을 만나 광고 카피라이터라는 새로운 세계를 찾았다. 지금은 세계적인 광고대행사 덴츠(일본)의 한국 합작법인인 덴츠이노백의 크리에이티브 디비전 부장. 만약 그때 그의 가슴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혹은 이런 일조차 없었다면? “지금쯤 식품회사 연구실에서 비커를 흔들고 있겠지요.” 광고 카피에 마음 빼앗겨 카피라이터로 연(然)이란 단어에는 ‘그러하다’는 두루뭉실한 뜻이 담겨 있지만 그 위력은 참 대단하다. 사람, 환경, 시기 등의 조건이 얽힌 무한수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연은 결국 사람과 환경, 세계를 움직인다. 김 씨는 세종대학교 식품공학과 4학년 때 예의 문장을 발견했고 이내 카피라이터로의 연을 느꼈다. “가슴으로 총알이 뚫고 지나가는 느낌이었어요. ‘아, 이 짧은 글이 사람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구나’ 하면서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 날 이후 광고제작 학원을 다니면서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지요.” 김 씨는 일본 상지대학원에서 저널리즘 광고 커뮤니케이션 석사과정을 마치고 세계적인 광고대행사로 꼽히는 일본 덴츠에서 카피라이터로의 첫 발을 내디뎠다. 95년 일본의 유력 광고 공모전인 SCA에서 외국인으로는 처음 카피라이터상을 수상하고 이듬해에는 덴츠가 수여한 광고논문상도 거머쥐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지난 97년. 멕켄에릭슨코리아와 제일기획, TWBA, 웰콤 등 국내에 손꼽히는 메이저 광고대행사와 함께 하는 동안에도 뉴욕 페스티벌, 클리오, 크레스타, 크리에이티비티 등의 해외 광고전에서 24번이나 수상하며 ‘카피라이터 김욱현’의 이름을 알려갔다. “카피라이터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찾는 작업이에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면 장소는 어디든 좋습니다. 옆 사람의 모니터를 보면서도, 책을 읽거나 거리를 걷는 도중에도 불쑥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거든요. 프로젝트를 맡은 그 날부터는 머리맡에 수첩을 펼쳐두고 눕습니다. 잠자리에 들라치면 머릿속에서 오만 공상이 다 떠오르면서 ‘번쩍’ 하고 좋은 문장이 스치는 순간이 있어요. 이때 메모해두지 않으면……. 영영 기억해내지 못하지요.” ‘난, 나야!’(리바이스), ‘넘고 싶은 것은 163cm의 높이가 아니라 장애를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입니다’(SK), ‘서류뭉치 속의 똑같은 한 장이 되고 싶지는 않다’(OB맥주)……. 김욱현 부장의 포트폴리오를 들추다보면 참 따뜻한 기운과 희망이 느껴진다. 하지만 다양한 기업, 수많은 제품을 상대하는 카피라이터에게 그만의 스타일이 느껴진다는 것이 딴은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맞아요. 카피라이터는 많이 알아도 깊게는 알지 않는 잡학다식의 표본이지요. 하지만 나름대로 내면의 열정과 꿈, 도전이 담긴 힘있는 카피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감동을 주고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그래서 결국에는 어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따뜻한 광고지요. 제가 만드는 광고와 짤막한 한 줄의 글이 좀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작은 소품이라도 될 수 있으면 만족하겠어요.” 인간미가 물씬한 목소리에 세뇌가 된 것일까. 그의 해맑은 웃음이 참 아름답다. 맹렬히 달리다가 거칠게 스핀 턴을 한 뒤 도어가 열리고 늘씬한 미녀가 내리기 일쑤인 국내의 자동차광고에 내심 불만이 쌓인 기자는 그에게 “구태의연하지 않고 쌈박한 자동차 광고를 만들어달라”고 떼를 썼다. “하하! 광고의 성격은 광고주의 마인드가 큰 비중을 차지해요. 은유적이고 유머러스한 광고도 좋지만 우리 정서에 어울리는지도 고려해야 되고요. 얼마 전부터 렉서스 광고를 맡게 돼서 다른 메이커의 매장까지 골고루 돌아봤는데, 자동차에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습니다.” “자동차에도 사랑을 느꼈는데, 결혼은 안 하세요?” “그게, 결혼이란 것이 하늘의 의지가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거참. 저 분이 이제 움직이실 때도 됐는데…….” 직업적인 특성상 많은 사람을 만나고 감동하는, 그리고 한 줄의 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카피라이터 김욱현. 하지만 하늘과 가까운 35층의 사무실에서도 하늘의 의지는 움직일 수 없었나보다.
쿠즈플러스 이동훈 이사 이탈리안 레드의 한국 수입차.. 2004-10-25
루카 디 몬테제몰로 피아트 그룹 회장과 F1 챔피언 미하엘 슈마허가 한국 땅을 밟게 될지 누가 압니까?” 이게 무슨 소리람. 유럽 자동차 업계, 아니 세계 자동차 업계의 두 수퍼스타가 정말로 우리나라를 찾는다면 그보다 더한 뉴스거리도 없을 일. “아,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성사 가능성은 아직 반반입니다. 오는 10월 중순 쿠즈플러스의 새 전시장 오픈 행사 때, 몬테제몰로 회장과 슈마허를 초청하려고 본사와 접촉중입니다. 마침 10월 10일에 F1 일본 그랑프리가 열리니까 그 때와 시기를 맞추려 하고 있지요.” 페라리·마세라티 국내 공식수입업체인 쿠즈 플러스의 이동훈(38) 총괄이사는 수입차 업계에 소문난 열성파 일벌레. 이태리를 수도 없이 오가며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으로 바라보던 페라리, 마세라티의 국내 정식 수입을 이끌어낸 장본인이자,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쿠즈플러스의 영업 및 마케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인물이다. 유럽 자동차 업계와 모터 스포츠계 최고의 거물들이 한국을 방문할 수도 있다는 말이 괜히 해본 소리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이태리 차의 매력 올해 8월까지 쿠즈플러스를 통해 고객의 손에 넘어간 페라리는 모두 여섯 대. 360 모데나와 스파이더가 두 대씩 팔렸고 차값만 3억9천500만 원인 수퍼카 575M 마라넬로도 두 대나 팔렸다. 올 가을부터는 럭셔리 세단인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도 주문 고객들의 손에 하나씩 넘어갈 예정이다. “페라리, 마세라티 마케팅은 다른 수입차와 그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경제력이 충분함에도 벤츠나 BMW를 선뜻 사는 사람들이 흔치는 않은데요, 벤츠나 BMW를 타는 사람들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이탈리안 레드에 눈길을 주지요. 그렇게 관심을 보이는 극소수 중에서 또 극히 적은 일부의 고객들이 페라리나 마세라티를 선택합니다.” 그저 호화장비로 가득 채워낸 값비싼 차가 아니라, 메커니즘적인 측면에서부터 미적인 감각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기술자들이 빚어낸 페라리와 마세라티 차들은 이태리 장인정신을 집약한 작품이라는 말. 이동훈 이사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LG전자에 입사해 만 6년간 해외무역을 담당하고 다시 수입차 업계로 진출한 이력을 갖고 있다. 계속된 변신의 성공비결은 손댔다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 전자제품 해외영업을 하다 수입차 업계로 진로를 바꿀 무렵, 그는 헌책방에 들러 2년치 국내외 자동차 잡지를 사들인 뒤 며칠 동안 밤잠도 자지 않고 모조리 읽었다. 수입차 업계 진출 이후에도 주말에 회사의 업무용 차를 개인적으로 쓸 때조차 그 차에 어울릴 만한 브랜드의 옷을 일일이 챙겨 입고서야 운전석에 앉을 정도. “일본 수입차 시장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부분도 많고, 국내 상황과 견주어 참고할 만한 내용도 많거든요. 장기적으로는 일본의 페라리 브런치와 같은 성격의 행사도 해보려고 합니다.” 이 이사가 파악한 국내 페라리 오너는 줄잡아 80~100여 명. 하지만 이태리 본사 드라이버들을 초청해 페라리, 마세라티 오너 드라이빙 행사를 기획했을 때 참가의사를 밝힌 사람은 2명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페라리 오너’임을 밝히고 페라리의 매력을 공개적으로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꿈꾸지만 아직 갈 길은 멀기만 하다. “10월에 오픈할 새 본사 사옥과 전시장은 전 세계 페라리 쇼룸 중 최고가 될 겁니다. 5층 건물 전체를 거의 강화유리로만 꾸몄어요. 무척 복잡한 공정이지만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윗층에 전시된 페라리, 마세라티 차의 하체를 아래층에서 고스란히 올려다 볼 수 있을 정도지요. 전시장 자체가 화려한 문화공간이 되도록 할 겁니다. 오너들에게 최상의 1:1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이 이사가 가장 좋아하는 페라리는 360 모데나. 이태리 출장 길에 지중해 연안의 도로변에서 만난 모데나는 환상 그 자체였다. 이태리의 고풍스런 건물, 강렬한 태양과 어울린 모데나를 보면서 ‘왜 이탈리안 레드인지’를 저절로 알 수 있었단다. “독일차를 수리해보면 모든 부품이 맞춤복처럼 딱딱 들어맞습니다. 바로 독일차의 매력이지요. 반면 페라리나 마세라티 같은 이태리 차 부품들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도 않고, 나사를 조이거나 풀기도 독일차보다 힘들어요. 기계적인 느낌보다 감성적인 맛이 큰 게 바로 이태리 차의 매력 아닐까요? 한번 빠지면 벗어나기 힘들 겁니다.” 페라리나 마세라티 차를 계약한 고객들의 얼굴에서는 갖고 싶어 안달하던 장난감을 드디어 손에 넣은 어린아이들의 한껏 들뜬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이 이사에게 자동차는 현대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화 줄기로 존재한다. 페라리와 마세라티가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브랜드로 자리잡는 날, 한국의 페라리 문화도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우송공업대학 자동차 사무관리과 이용환 교수 국내 첫.. 2004-10-19
자동차 관련 학과는 웬만한 공대에 한두 개쯤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동차 관련 학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동차(공학)과는 기계(공학)과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에 자동차 제조 혹은 정비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이와는 다르게 자동차 세일즈맨을 길러내는 학과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대전에 자리한 우송공업대학을 찾았다. 우송공업대학에 신설된 ‘자동차 사무관리과’는 자동차 판매와 할부금융, 보험, 중고차 거래, 폐차 등 자동차와 관련된 사무를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국내 첫 학과로, 올해 신입생 원서를 접수받아 내년부터 본격적인 교육에 들어간다. 대화기법과 매너 갖춘 판매 전문가 양성 “자동차 사무관리과는 국내 대학에 처음으로 개설된 자동차 판매 전문가 양성학과이지만, 자동차생산 320만 대, 판매 130만 대를 자랑하는 국내 현실을 감안하면 늦은 감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도 영업을 ‘별다르게 할 것이 없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직업’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요. 이 때문에 국내 영업사원은 직업의식이 약하고 전문화 정도가 낮은 편입니다. 그러나 외국으로 눈길을 돌리면 세일즈맨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많지요. 우리나라도 IMF를 겪으면서 차츰 영업이 매력적인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동차 사무관리과 학과장 이용환 교수는 최근 학과의 고정적인 업무 외에도 새 학과를 홍보하고 학생들의 상담을 받는 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우송공업대학이 수시모집 기간이어서 학교 어디를 가든 원서를 접수하러 온 고등학생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자동차 세일즈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본인의 성실과 정직은 물론 고객관리 방법과 자동차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필요하지요. 대화기법과 매너, 서비스 정신도 무척 중요합니다. 새 학과에서는 미래의 자동차 세일즈맨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자동차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컴퓨터, 마케팅, 고객관리 등을 교육할 예정입니다. 자동차 판매는 물론 자동차와 관련된 다양한 사무 분야를 다룰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교수의 말대로 자동차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판매와 관련된 업무는 물론 다양한 할부금융과 보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고객들의 중고차를 처분하기 위해서는 중고차 판매는 물론 폐차 업무까지 두루 알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 과정은 자동차는 물론 컴퓨터와 일반사무 등을 다양하게 배울 수 있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강사진도 자동차 판매왕으로 기네스북에 10년 동안 올랐던 한국 자동차 판매(주) 김연중 대표 등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동차 판매는 무척 매력적인 일로, 우리 과는 이론과 실무를 통해 자동차 판매 전문가를 길러낼 계획입니다. 그러나 자동차 세일즈 전문가라 하더라도 50세가 넘어서까지 영업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때는 당연히 개인사업자로서 자동차 영업소의 소장이 되어야 하겠지요.” 국내에서 처음으로 학과를 개설하다보니 위험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용환 교수는 “국내 자동차산업의 발전과 선진화를 위해서는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교수는 또 “학과를 처음 개설했을 때 영업직과 사무직의 지원 비율을 50대 50으로 예측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터뷰 당시 수시모집에 지원한 사람들은 사무직보다 영업직을 더 선호하고 있었다. 대전·충남뿐만 아니라 서울, 인천, 울산, 광주, 나주 등 전국 각지에서 지원자가 찾아왔고, 이들 중에는 보험 및 중고차 판매 등 자동차 현장에서 10∼20년 동안 몸담아온 40∼50대의 중년층도 있었다. 이 교수는 “대학은 보수교육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을 위주로 교육과정을 짰지만, 자동차 현장에서 수십 년간 일한 사람들도 정원의 10%쯤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요즘 대학들은 정원에 비해 학생 수가 적은 편이라 고등학교에 홍보를 나갈 때가 많습니다. 저 역시 자동차 사무관리과를 홍보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찾곤 하는데, 그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진실로 원하는 사람만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학생들의 지원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확실한 의지를 가진 학생들이 소신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세일즈를 꿈꾸고,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분명 국내 자동차문화가 예전보다 한층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영업, 특히 자동차 판매 전문가의 꿈을 이제 학문적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은 두고두고 반갑다.
아드레날린을 높여 주는 최고의 익스트림 레포츠 .. 2004-09-17
집채만 한 바윗덩어리와 싸우고 있다. 언제 뒤집힐지 아슬아슬하다. 저돌적으로 공격을 해대지만 전진하지 못한다. 결국 리타이어, 하지만 기죽지 않는다. 극적으로 결승점을 통과했을 때는 환호성이 터진다. 오프로딩 중에서도 극한의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록크롤링. 1999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국내에는 2001년 소개되어 하드코어에 심취해 있던 이들에게 선풍을 일으켰다. 록크롤링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이벤트 구상 국내 록크롤링 문화를 이끌고 있으며 ‘만타’라는 콜사인으로 유명한 한국록크롤링협회 정재식(44) 회장. 꽉 막힌 도시 생활이 답답해 자주 야외를 찾는다는 정 회장은 원래 낚시 매니아였다. 입질 좋은 장소를 찾아다니기 위해 처음 네바퀴굴림차를 접했고, 그 과정에서 4WD의 능력에 반해 버렸다. 1999년 미국에서 록크롤링이라는 새로운 오프로드 장르가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짜릿함이 치솟았다. 당시 국내 4WD 튜닝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록버기의 제작기술을 익히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앙상한 뼈대만 있어 간단해 보이지만 록버기를 만드는 일은 녹록치 않다. 제작기간은 한 달 정도. 실험을 거듭해 록크롤링 전용 튜닝용품을 개발하고, 드로잉 작업도 컴퓨터를 이용하는 등 버기 제작기술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 극한의 환경에서 경기를 치르는 만큼 기능성에 치중하기 때문에 운전자를 위한 배려가 부족해지기 쉽다. 드라이버의 능력과 버기의 비중은 3:1 정도. 드라이버가 최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 회장은 직접 록버기의 드로잉을 하고, 부품을 떼고 붙이기를 반복하면서 버기를 제작했으며 직접 경기에도 나서는 실력파다. 그는 2002년 네 바퀴 조향 시스템인 4WS(4 Wheel Steering)를 갖추고, 차축 양끝에 ‘드롭 액슬’로 불리는 감속기어 장치를 더해 차축보다 아래에 타이어를 단 버기로 록크롤링 경기에 출전했다. 디퍼렌셜 케이스가 높아져 최저지상고에서 큰 이점을 얻는 등 당시로선 신기술을 많이 썼지만 겨우 1코스를 통과하고 액슬에 문제가 생겨 중도에 탈락했다. 정 회장이 생각하는 록크롤링의 매력은 무엇일까. “록크롤링은 공포감 속에 짜릿한 희열감을 체험하는 레포츠입니다.” 그러나 록크롤링을 즐기기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록버기를 만들려면 준중형차를 마련하는 비용 이상의 돈이 든다. 록버기를 대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반인이 맛보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우선 오프로딩의 대중화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록버기나 하드코어로 튜닝된 4WD 전시회를 열고, 일상에서 타는 SUV로 참가할 수 있는 짐카나 대회와 투어링 행사를 자주 마련해 오프로딩의 이해를 높여야 한다. 일반인이 오프로딩을 친숙하게 느끼는 분위기가 확산되면 하드코어 매니아가 늘어날 것이고 록크롤링도 대중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해외팀 초청경기와 올해 10월 일본에서 열리는 대회에도 선수를 보낼 예정이다. 록크롤링 대회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선수가 드물고, 같은 코스에서 실격되는 경우가 많아 관람객들이 지루해 하기도 한다. 나은 테크닉을 선보이고 박진감을 높이기 위해 프로화도 추진 중에 있다. 초창기에는 록크롤링의 선진국인 미국과 우리나라의 기술격차가 크지 않았다. 2002년 대회에 참가했던 록버기를 미국 사이트에 올리자 그쪽 사람들이 록버기의 완성도에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격차가 많이 벌어졌다. 자주 대회를 여는 미국과 공식대회를 3번밖에 치르지 못한 국내 현실을 비교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대회를 자주 여는 등 정보교류의 장이 마련되어야 하고, 장소 확보도 시급하다. 록크롤링이 알려지고 매니아층이 생기면서 전문업체가 생기기도 했지만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고 말았다. 2002년 11월 ‘한국록크롤링협회’가 발족했으나 역시 장소를 확보하지 못해 경기가 계속 연기되었고 참다 못해 한 동호회에서 자체 경기를 열기도 했다. 다행히도 협회에서는 최근 경기도 화성에 경기장을 임대했다. 당분간 이곳에서 경기를 치를 계획이지만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정 회장은 “록크롤링 경기가 TV 중계를 통해서 알려지면서 지방자치단체와 방송사에서 대회 개최를 물어 오고 있다”면서 “곧 전국적으로 3∼4곳의 대회장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는 아드레날린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록크롤링을 알게 된 것은 행운이고 정신적 육체적 레포츠로서 ‘건강한 자극제’가 된다고 설명한다. “록버기는 극한의 도전을 요구하는 최고의 익스트림 레포츠이지만 절대로 안전해요.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일 때 록크롤링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다져질 수 있습니다.”
한국 4WD 랠리의 부흥을 꿈꾼다 ⑤사람편 - 코리.. 2004-09-17
오른 손에 꼭 쥐어진 무전기가 더위에 녹아 내릴 듯 쉴 새 없이 빽빽거리고 있었다. 씨름선수처럼 떡 벌어진 어깨에는 앙증맞은 크로스백이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대롱거린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덥수룩한 수염, 긴장감이 감도는 매서운 눈초리가 우락부락한 랠리 머신과 닮았다는 생각이 스쳐 지난다. 순간, 무전기 스피커가 거칠게 요동친다. “엔트리 넘버 16번! 두 번째 언덕에서 전복!” 무전기를 감싸 쥔 손가락이 하얗게 변하는가 싶더니 김도형(35) KMC 부장이 사고현장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그에게 인터뷰를 하자고 덤비던 기자도 함께 달린다. 천만다행이다. 옆으로 누운 머신에서 빠져 나오는 드라이버의 얼굴에 멋쩍은 미소가 흘렀다. 굳어졌던 그의 얼굴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 국내 유일의 4WD 랠리 축제인 ‘2004 KRF 3전’은 그렇게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경기장을 휘젓고 다니는 ‘KRF 매니저’ 김도형 부장의 검게 탄 얼굴이 또 한 겹 그을리고 있었다. KMC 홈페이지 만들다 모터스포츠에 눈떠 경기장에 있는 사람은 누구랄 것 없이 그를 ‘김 부장’이라고 불렀다. 성은 김이요, 이름은 ‘부장’이라는 투다. 몇 사람을 붙들고 물어도 그의 공식직함이 ‘코리아모터스포츠센터(Korea Motorsports Center) 기획실 부장’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KMC라면 올해 초, F1 그랑프리와 함께 세계 모터스포츠의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챔피언십 오토 레이싱 팀즈(CART) 월드 시리즈’를 유치해 유명세를 타고 있는 전문 프로모터다. 오는 10월 서울에서 소프라노톤의 인디카 엔진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고마워 할 일이다. 그런데 온로드 레이싱을 준비해야 할 KMC 기획부장이 왜 4WD 랠리 머신의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일까. “그게 궁금하셨군요. 지난 99년이었어요. 해병대 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뒤 경실련에서 PC 프로그램 제작을 맡아 했습니다. 당시 KMC측에서 홈페이지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어요. 홈페이지를 만들려면 해당 분야의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잖아요. 모터스포츠 자료를 뒤지고, 현장을 드나들다 보니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자연스럽게 모터스포츠에 뛰어들자는 결심이 뒤따랐지요.” 대구광역시가 대구월드컵경기장 활성화 방안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터스포츠 이벤트를 제안했다. 결과는 단번에 OK. 김도형 부장은 드레그 레이스와 슬라럼, 카트, RC카는 물론 4WD 경기를 아우른 복합적인 경기를 계획했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한국자동차경주협회(KARA)가 공인하는 정규 4WD 랠리가 탄생한 것이다. 그때가 2002년 4월이었다. “그렇게 코리아 레이싱 페스티벌(Korea Racing Festival) 제1전이 대구월드컵경기장 주 진입로에서 치러졌어요. 대단했지요. 관람객만 3만 명이 몰렸으니까요. 여러 장르의 레이스가 한 자리에서 열린 것도 처음이지만 볼거리가 많아 관중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KRF 개막전의 성공에 취해 있을 즈음, 당시 대구시장이었던 문희갑 씨가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되고 말았다. 김도형 부장으로서는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경기일정과 내용, 장소를 모두 수정했습니다. 드래그 레이스의 경우 선수들이 부담해야 하는 튜닝비용도 문제가 되었지요. 결국 2002년 6월 열린 2전까지만 대구에서 치렀고, 3전부터는 강원도 인제군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경기방식도 4WD 전문 랠리로 탈바꿈했고요.” 위기가 기회로 바뀌어 2002년 7월 인제군 4WD 전용 경기장에서 열린 제3전은 참가자가 60여 명에 달했다. 이후 KRF는 올해까지 매년 50명 이상의 선수가 뛰는 국내 최대의 4WD 랠리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경기가 끝난 뒤 표창대에 올라 샴페인을 터뜨리는 선두들의 환호성이 늘 새롭게 들린다는 김도형 부장. 매년 경기 시작 전에는 랠리 동호회의 의견을 듣기 위해 전국 안 가본 데가 없다. 경기 운영방식에 불만을 제기하는 선수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든든한 스폰서 하나 없는 현실이 힘겹지만 포기할 수 없다고 이를 악물 때 떠오르는 것도 선수들의 얼굴이다. “올해 1, 2전에서 우승한 팀이 8월 초 열린 아시아 크로스컨트리 랠리에 참가한 것이 가장 큰 성과예요. 해마다 단축되는 기록을 보면 뿌듯한 보람을 느껴요. 하지만 시작일 뿐입니다.” 서른다섯의 적지 않은 나이에 아직 미혼이지만 “제대로 된 4WD 랠리 경기장을 만들기 전에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하는 그의 얼굴에 4WD 랠리 머신의 다부진 모습이 스쳐 지났다.
열정·모험 그리고 끝없는 도전 ④사람편 - 국내 최.. 2004-09-17
정글을 헤치다가 갑작스런 폭우로 물이 불어난 강을 건너고,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희뿌연 먼지 속을 질주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 펼쳐지지만 그들의 앞길을 막지는 못한다. 최근 ‘레인포레스트’와 ‘아시아 크로스컨트리 랠리’ 같은 해외 경기에 관심을 갖는 4WD 매니아가 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랠리 드라이버는 곽용기(36) 씨. 2000년 말레이시아 정글을 무대로 열리는 레인포레스트 참가를 시작으로, 2002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시아 크로스컨트리 랠리에 출전했다. 같은 해 12월 다시 레인포레스트에 참가, 디젤 부문 2위에 올랐다. 지난해 아시아 크로스컨트리 랠리에서는 대회 홍보를 위해 탤런트 박세준 씨의 코드라이버로 나서기도 했다. 2002년 레인포레스트 디젤 부문 2위 재미 삼아 ‘99년 대우파워어드벤처’ 경기에 참가한 것이 시작이었다. 준결승에서 떨어졌지만 결선에 오른 차가 적어 패자부활전이 열렸고, 운 좋게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그 뒤 ‘해피평창 700랠리’, ‘금강산 랠리’를 뛰며 경험을 쌓는다. 그 전에 이미 TV를 통해 오프로드 경기의 박진감에 흠뻑 빠져 있던 상태였다. “아시아 크로스컨트리 랠리 위원인 서규원 씨의 98년 레인포레스트 경기 모습에 매료되었습니다. 국산차를 몰고 경기에 참가, 1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솟더군요.” 쌍용 무쏘로 첫 출전한 2000년 레인포레스트를 잊을 수가 없다. 예비 부품을 준비했지만 트랜스퍼 케이스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부품을 구하기 위해 600km나 떨어진 콸라룸프로 가야 했다. 코스로 돌아올 때까지 뜬눈으로 보낸 ‘무박 3일’의 기억이 생생하다. 정글에서 텐트를 치고 불을 피우면 멀지 않은 곳에서 야생동물이 눈을 번득이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텐트 주위에 호랑이 발자국이 널려 있는 것을 보고 소름이 돋기도 했다. 랠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드리이빙 테크닉은 기본, 경기 특성을 파악하고 여기에 맞게 차를 세팅해야 한다. “레인포레스트는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와 쏟아지는 장대비, 이로 인해 갑자기 생기는 늪과 눈 깜짝 할 사이에 차오르는 강물 등 상상을 초월하는 장애물이 놓여 있습니다. 동남아를 무대로 열리는 아시아 크로스컨트리 랠리는 FIA 공인대회로 정해진 구간을 한 번이라도 포기하면 끝입니다. 해마다 코스가 바뀌어요.” 경기에 출전하기 전 곽 선수가 확보한 자료는 경기 모습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 하나. 여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비디오 테이프에 나온 화면을 통해 기후 특성을 체크하고 모래와 진흙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고민했다. 경주차 세팅도 힘겨웠다. 이곳저곳 찾아가 비디오 테이프를 보여주며 같은 모습으로 꾸며 달라고 주문했다. 국내에는 대회 규정에 맞는 헬멧이 없어 일본에 주문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경험이 쌓여 주먹구구식 준비는 벗어났다. 세팅 기술이나 드라이빙 테크닉도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 승패는 곳곳에 숨겨진 페널티, 즉 위기에 얼마만큼 빠르게 대처하는가에 달려 있다. 뜨거운 열기와 높은 습도를 이겨내는 체력도 중요하다. 스폰서를 못 구해 자비로 출전하는 현실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해외에서 열리는 자동차 경기를 보면 국산차인데도 외국인 선수가 타고 있습니다. 기량이 뛰어나기 때문이겠지요. 국내 선수들의 실력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도 듭니다.” 곽 선수도 올 8월 아시아 크로스컨트리 랠리 출전을 위해 전력을 쏟았지만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출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국내 선수들의 수준이 많이 높아졌어요. 미국 포드는 석 대의 출전차 외에 경기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지원했습니다. 스폰서의 요구는 ‘한 대만이라도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라’는 것이었다고 하더군요.” 랠리스트와 기업체 모두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기브 앤드 테이크’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선수들은 국산차를 타고 경기에 나선다는 자랑스러움을, 스폰서는 그들이 지원한 제품으로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내년 경기를 목표로 다시 고삐를 죄고 있는 곽 선수는 예비 랠리스트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 또 다른 파트너인 네바퀴굴림차가 삼위일체가 되었을 때 좋은 결과는 자연히 따라옵니다. 경쟁자는 다른 나라 선수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국내 네바퀴굴림차 문화의 산 증인 ③사람편 - 한국.. 2004-09-17
그에게는 한국 4WD의 역사, 국내 4WD 동호회 창시자, 4WD의 달인 등 4WD와 관련된 많은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한국4WD연맹’ 김안남(65) 회장.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를 만나 국내 4WD 문화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김 회장이 자동차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55년, 16세 때였다. 국내에 주둔한 미군 지프가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없었다. 기회를 엿보던 중 목표물이 정해졌다. 미군이 잠시 세워 둔 지프가 눈에 들어온 것. 훔친 차를 타고 정릉과 미아리 일대를 돌아다녔다. 세상을 얻은 기분이었다. 지프는 인생의 시작이고 마지막 그때 타 본 지프의 감동은 소년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결국 지프와 생활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된다. 당시 종로3가는 지프에 소프트톱을 씌우는 가게가 많았고 이곳에서 일을 배운다. 관심이 있으면 일이 재미있고, 실력도 빠르게 느는 법. 몸은 고됐지만 밤샘작업을 해도 피곤한 줄 몰랐다. 19세가 되자 가게를 열 정도로 실력이 쌓였다. 그의 이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네바퀴굴림차에 관심이 있는, 10년 이상 된 오너들에게 김안남이라는 이름 석자는 ‘4WD 동호회’로 통한다. 최근 기자가 만난 50대 후반의 여성도 김안남 회장을 알고 있었다. 15년 전 코란도 훼미리를 타고 다닐 때 김 회장에게서 동호회 가입을 권유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1989년, 김 회장은 국내 처음으로 단골 고객 7명과 ‘코리안스 클럽’이라는 오프로드 동호회를 만든다. 당시만 해도 오프로딩은 낯선 분야여서 사람들이 가입을 꺼렸다. “좋은 길 두고 왜 산 속을 헤매는지,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했어요.” 산길을 다니다 여러 차례 사고도 겪었다. 폭우로 유실된 오프로드를 달리다가 차와 함께 구른 적도 있다. 바깥 세상과 단절된 오지마을을 접하면서 여행은 봉사활동으로 바뀌게 된다. 농번기에는 정비사 자격증이 있는 회원이 경운기를 고쳐 주고, 일터로 나간 부모를 대신해 아이들과 놀아 주며 의사 회원은 진료를 해주었다. 소문이 퍼지자 회원들이 점차 늘어나고 여기저기서 4WD 동호회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모든 동호회가 좋은 소리를 들은 것은 아니었다. 자신들만의 영역을 만들어 배타적인 활동을 했던 것. 김안남 회장은 동호회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1999년 한국체육진흥회에 사단법인으로 등록된 ‘한국4WD연맹’을 만들었다. 활동영역이 점차 넓어졌고, 4WD 경기도 이때 시작된다. 첫 대회는 용인 오프로딩 경기. 메이커가 주관하기로 했으나 경험 부족으로 매끄러운 진행이 힘들게 되자 김 회장이 팔을 걷고 나섰다. 1999년 몽산포에서 ‘4WD 장애물 경기’를 개최하면서 붐을 일으킨다. 당시 기아자동차에서는 레토나 한 대를 우승 상금으로 내놓았다. “4WD와 관련해서 그렇게 큰 대회가 열리기는 처음이었어요. 특히 부대행사로 마련된 4WD 운전요령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미숙한 점도 많았지만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자부합니다.” 그 뒤 오프로드 문화가 앞선 일본과 말레이시아 등을 방문하고 해외 경기도 참관하는 등 제대로 된 오프로드 문화를 만들기 위해 정열적으로 뛰어다닌다. 최근 김 회장은 수륙양용차를 만들어 한강을 건너는 이벤트를 열었다. 케네디 지프에 방수장치를 직접 달고, 많은 사람을 태우기 위해 부력장치를 키우고 유압장비를 더했다.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이 시도에는 김 회장의 봉사에 대한 열정이 담겨 있다. 수해지역 구호차를 염두에 둔 것. 도로와 집이 물에 잠겼는데도 차를 몰고 갈 수도, 배를 띄우지도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김 회장은 ‘4×4는 점잖은 사람들의, 순수한 문화’라고 설명하면서 일본을 예로 들었다. “일본 몬스터카 동호회는 봉사정신에서 기인합니다.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 몬스터카는 구조활동용으로 최고의 능력을 보였어요.” 40년간 외길 인생을 걸어오면서 신진지프를 시작으로 거화 코란도, 아시아 록스타, 그리고 쌍용 코란도와 무쏘까지 경험하지 않은 4WD가 없다. 김 회장은 오프로드용으로 구형 코란도를, 온로드를 달릴 때는 뉴 코란도, 부인과 데이트를 즐길 때는 무쏘 그리고 케네디 지프까지 넉 대의 SUV를 갖고 있다. 코란도 오픈카에 음악을 크게 틀어 도로를 질주하는 김안남 회장. 음악 소리에 고개를 돌린 한 젊은이가 ‘할아버지 짱’이라며 엄지를 세우기도 한다. 지금도 손수 도면을 그리고, 가위를 들고 작업을 하는, 오랜 연륜만큼이나 거칠어진 손이 국내 4×4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다.
디젤 SUV와 미니밴 적극 들여오겠다 ②사람편 - .. 2004-09-17
지난 6월은 수입 자동차 메이커에 큰 전환점이 된 달이었다. 우리나라에서의 시장점유율이 사상 최고 2.95%를 기록, 마의 3%대 진입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이 같은 약진은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등록된 13개 메이커가 엮은 공동작이다. 그 가운데 꾸준히 선두권에 포진한 다임러크라이슬러코리아는 특히 SUV 매니아들 사이에서 남다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브랜드. 무더위가 한풀 꺾인 8월 중순, 다임러크라이슬러코리아 웨인 첨리 사장을 만나 부임 8년사와 앞으로의 전망을 들어보았다. 소주와 갈비·박찬호 좋아하는 한국통 CEO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데 크라이슬러가 한국에 진출한 지 벌써 12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숱한 변화의 파고를 넘은 우리는 이제 진일보할 수 있는 터전 위에서 더 큰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986년 크라이슬러에 입사한 지 10년 뒤인 1996년 9월 한국 땅을 밟은 웨인 첨리 사장은 벤츠와의 합병 이후 다임러크라이슬러코리아의 지난 5년을 ‘성공적’이라고 평했다. 격변의 시기를 보냈지만, 고객의 신뢰를 바탕에 둔 마케팅 전략으로 IMF가 던진 시련을 극복하고 수입차 업계 4위 자리를 지켜낸 데 따른 것이다. 이를 반영한 크라이슬러의 2004년 상반기 기상도는 맑음. 1∼7월 961대를 판매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41%의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웨인 첨리 사장은 다임러크라이슬러코리아의 미래도 매우 밝게 내다봤다. 지난 7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주5일 근무제가 SUV 비중이 높은 크라이슬러의 판매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여가시간이 늘어나면 RV가 자연스럽게 주목받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다양한 주말행사와 프로모션을 통해 그동안 쌓은 인지도를 더욱 다져 나갈 계획이에요.” 이 같은 계획의 일환으로 첫발을 내딛은 것이 올해 7월 개최한 ‘용평 지프 캠프.’ SUV 매니아들과 함께 한 이 행사는 지프 오너들 사이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가족 단위의 나들이 기회를 제공해 참가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속적인 새 모델 발표와 품격 높은 애프터서비스도 크라이슬러가 강조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우선 올해를 기점으로 미국의 크라이슬러 그룹은 독일 벤츠와의 합병 이후 개발한 25가지 새차를 앞으로 3년 동안 쏟아낼 예정이다. 크라이슬러코리아는 이들 가운데 경제성이 높은 디젤 모델의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2004년 하반기에 들여올 차는 지프 그랜드 체로키 디젤 외에 다목적 크로스오버카 퍼시피카와 크로스파이어(2인승 쿠페와 컨버터블), 고급 뒷바퀴굴림 세단 300C 등 네 가지. 내년 봄에는 지프 체로키 디젤과 그랜드 보이저 디젤을 들여온다. 딜러평가제, 사고차를 위한 보상 프로그램 등을 가동해 질 높은 애프터서비스도 강화하고 있다. 부임 8년이 지난 현재 대표적인 한국통 CEO로 평가받는 웨인 첨리 사장은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에 대해 개선점이 많다고 진단했다. 이전에 근무한 일본, 호주, 중국, 대만 등과 비교해 국민 4인당 1대를 보유한 자동차 강국답지 않다는 설명이다. 자동차를 ‘운송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국제적 수준의 자동차 박물관이나 모터쇼가 없는 것도 한국 자동차문화의 뒤떨어진 현실을 대변한다. “미국, 일본, 유럽 등은 튜닝이나 세계적인 모터스포츠를 통해 다양한 주변산업이 발전해 왔습니다. 한국의 경우 정부차원에서 튜닝을 규제하는 것은 문제점이에요. SUV가 레저활동보다 경제적인 면이 더 부각되는 점도 아쉽습니다. 산이 발달한 한국에는 멋진 풍경을 낀 오프로드 코스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SUV 오너들이 이런 지형적 이점을 살려 차를 보다 즐겼으면 합니다.” 한양대와 이화여대 등의 대학강단에 서서 회사 홍보 최전방에 뛰어들고 인기 탤런트 박은혜를 홍보대사로 맞아들여 여심잡기에도 힘쓰는 웨인 첨리 사장은 미국 텍사스 A&M 대학 출신.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활동하는 박찬호에 대해 묻자 “만나게 되면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반갑게 인사할 것 같다”며 친근감을 표했다. “박찬호는 한국 야구의 자존심이고 현재 선두에서 밀려나 있는 텍사스 레인저스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투수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필드는 다르지만 박찬호를 보며 자신의 모습을 찾곤 합니다.” 박찬호는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자신은 미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서로 성공하길 바란다는 웨인 첨리 사장. 그는 갈비와 소주도 좋아하는 그야말로 한국통 CEO였다.
RV를 아는 것이 힘이다 ①사람편 - 쌍용자동차 국.. 2004-09-17
요즘 팔리는 새차 10대 가운데 4대는 RV다. 10여 년 전만 해도 ‘시끄럽고 불편하다’며 별종들이나 타는 차로 여겨지던 RV, 그 중에서도 네바퀴굴림차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서 종교적인 광신에 가까운 열광을 이끌어내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의 자동차 역사 중 네바퀴굴림차에 관한 이정표를 되짚어 보면 반드시 길목마다 나타나는 이름이 있다. 바로 쌍용자동차. 한국에서 가장 먼저 네바퀴굴림차를 만든 메이커, 전체 판매 가운데 SUV가 차지하는 비중이 90%가 넘는 회사, 심지어 4×4 광신도들로부터 절대적인 숭배를 받는 메이커라는 공치사를 붙여 보아도 어색하지 않은 이름이 ‘쌍용’이다. 쌍용자동차 국내영업본부장 문성근 상무이사는 그러나 최근의 SUV 붐을 비교적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프레임 구조의 정통 SUV 지속적으로 개발할 터 “모든 메이커에서 SUV 비중이 커진 것이 사실이지요. 그러나 자동차 시장 전체로 보면 상당한 침체기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SUV를 찾는 많은 고객이 현재 승용차를 타는 분들이어서 소비심리가 계속 위축된다면 대체수요를 끌어내기 힘들 것입니다.” 문 이사는 같은 이유에서 내년부터 허용되는 디젤 승용차나 다인승차 세금혜택 축소 등의 법규적 환경변화를 오히려 SUV의 진정한 가치를 재조명할 기회로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SUV는 디젤차라는 것 외에도 스타일, 안전성, 다용도성 등에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시장에서 휘발유 SUV가 많이 팔리는 것이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어요. 특히 주5일 근무제의 확산과 레저, 여행, 삶의 질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자리 잡아가면서 세제 인상에도 SUV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원조 SUV 메이커 쌍용은 이 같은 새로운 흐름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인가. 쌍용은 국내 SUV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하지만 그들이 만든 차가 달려온 오프로드처럼 굴곡진 고난을 겪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어 지금의 쌍용자동차가 된 이후로도 한때 대우자동차에 인수되었다가 이제는 해외자본과의 매각협상을 진행 중이다. 문 이사는 이 같은 우려를 상당한 자신감으로 가라앉혔다. RV를 아는 힘, 4×4 매니아를 이해하는 힘이 쌍용에 있다는 주장이다. “과거를 잠시 되돌아볼까요. 쌍용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내놓은 코란도 훼미리는 국내 SUV 시장에 레저형 패밀리 왜건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출했습니다. 무쏘 역시 고급 승용차를 고집하던 운전자들을 SUV 시장으로 끌어들인 모델이지요. 최근 선보인 로디우스만 해도 미니밴 고객의 기대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자부합니다. 고객의 바람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면 가능하지 못했던 일이지요.” 실제로 쌍용은 위기 때마다 구세주 같은 모델을 내놓아 회사를 살렸던 경험이 있다. 한 예로 외환위기 직후 경제가 휘청거리던 상황에서 내놓은 렉스턴은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었을 뿐만 아니라 쌍용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 주었다. 영업현장의 핵심 멤버가 RV 시장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라는 점도 중요하다고 문 이사는 덧붙였다. 이들은 RV 고객이 원하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노력은 소비자에게도 제대로 전달되었다. 가 2002년 독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가장 선호하는 국내 브랜드로 응답자의 51%가 쌍용자동차를 꼽았다. 문 이사는 중국매각 추진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국내 시장에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채권단의 매각작업에 의해 쌍용자동차가 국내외 어느 곳으로 인수된다고 하더라도 현재 진행 중인 신제품 개발과 투자는 계속된다는 뜻이다. 오히려 신제품 개발에 필요한 충분한 자본력을 확보함으로써 더욱 뛰어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쌍용도 지금처럼 SUV 전문 메이커로서의 위상을 지키게 될 것인가. 문 이사의 답은 이렇다. “최근 선보이는 SUV들이 모노코크 방식을 써 오프로드 주행성, 내구성, 단단함 등으로 상징되는 SUV 본연의 정체성을 잃어 가는 추세입니다. 쌍용자동차는 강철 프레임 SUV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정통 SUV와 미래지향적 스타일이 접목된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국내 오프로드 매니아에게 유일한 희망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Mark T. Hogan 부활의 서곡 알리는 GM .. 2004-09-16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 GM의 행보가 심상찮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유럽과 일본차의 거센 도전에 밀려 ‘화려했던 과거’만을 그리워하는 신세로 전락하는 듯하던 GM은, 21세기로 접어들면서 거인의 위용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 출발점은 99년 북미국제오토쇼에 등장한 컨셉트카 이보크(Evoq). 크고 기름진 차체에서 벗어난 날선 에지 라인은 영욕이 엇갈린 20세기를 향한 GM의 굿바이키스였다. 지난 7월 27일 전 세계 70여 명의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GM 파워트레인 퍼포먼스 빌드 센터에서 열린 ‘2005 GM 풀 라인업 프리뷰’ 행사는 이 거대 메이커의 저력을 한껏 드러낸 자리였다. 이를 조용히 지켜보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GM의 21세기 밑그림을 담당한 마크 T. 호건 선행기술개발 담당 부사장이다. 전통과 진보 사이에서 찾아낸 제2의 르네상스 “캐딜락의 영광은 머지않아 재현됩니다.” 호건 부사장의 첫마디는 자신만만했다. 미국 경기의 성장세와 럭셔리카 시장의 활기, 1천700만 대에 이를 것이라는 미국 자동차 시장 전망은 이 같은 자신감을 뒷받침해준 근거들. “몇 년째 공을 들이고 있는 바이 와이어 시스템은 ‘미래를 향한 GM의 도전문화’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이미 전자 스티어링이나 드로틀 바이 와이어 등 몇 개의 분야에서 실용화되고 있어요. 물론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계속해서 개발해 나갈 겁니다.” GM은 컨셉트 연료전지차 하이와이어와 새로 선보인 시보레 코베트 C6(드로틀 바이 와이어) 등을 통해 조심스럽게 바이 와이어 기술을 접목시켜가고 있으나, 호건 부사장은 아직 개척 단계임을 강조했다. 동력원 분야에서는 도요타와 혼다에 이어 포드까지 하이브리드 시장에 뛰어든 가운데 GM은 연료전지에 좀더 집중하는 분위기. “연료전지 개발에 주력하는 한편, 양산 하이브리드카에도 힘을 기울일 것입니다. 지금은 연료 소비가 큰 시보레 실버라도 등 풀사이즈 픽업에만 이 기술을 쓰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소형 승용에서 대형 트럭까지 고루 확대할 계획이에요. 약 15%의 연료절감 효과를 확인한 만큼 절대 소홀히 할 수 없지요.” GM이 연비 절감에 모든 기술력을 모으다니! 이것만으로도 GM의 변화를 알기에 충분할 듯하다. GM은 오는 2010년, 저공해 차를 200만 대 이상 팔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연료전지 분야는 메이커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관련산업 전체와 정부, 학계, 제반 인프라 등이 모여 이뤄낼 일이기에 실현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도 있으나 호건 부사장은 미국 정부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과거 캐딜락은 큰 차체와 엄청난 출력, 부드러운 서스펜션으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에 익숙했던 전통적인 캐딜락 고객들도 고급스러움에 모던 스타일, 크게 개선된 성능과 안전성을 갖춘 최근의 변신에 만족하는 분위기예요. 옛 영광과 르네상스의 부활을 자신합니다.” 캐딜락 SRX는 유럽 럭셔리 SUV 시장에서 선두에 올라섰고, 캐딜락 브랜드의 중국 점유율도 1년 사이 2배나 늘었다. 9-2X와 9-7X를 연이어 내놓으며 세그먼트 확대를 꾀하고 있는 사브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키워나갈 방침. 그 또한 GM 부활의 중요한 부분이다. “온스타는 GM이 자랑하는 미래형 하이테크 중 하나입니다. 운영체계도 그렇고 메커니즘과 작동방법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갖추었지요.” 호건 부사장의 업무 영역은 인테리어와 스타일링에서부터 하이브리드나 연료전지 등 동력원, 바이 와이어 등 구동 메커니즘을 거쳐 통신망에 이르기까지 모든 미래기술 분야를 커버한다. 온스타의 성공 비결은 ‘간결함’. “아무리 뛰어난 하이테크라도 운영체계가 복잡하면 소비자들로부터 환영받을 수 없지요. 온스타는 단 세 개의 버튼으로 모든 조작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음성인식 시스템까지 갖춰 편의성을 높였습니다. 정부 허가와 운영체계 시스템만 갖춘다면 한국에서의 서비스도 가능하겠지요. 글로벌 상용화에 대한 준비는 마친 상태입니다. 코베트에 쓰인 헤드업 디스플레이나 드빌의 나이트비전도 운전자의 혼란을 최소화해주는 장비들이지요.” 호건 부사장은 소비자들이 복잡한 메커니즘의 혜택을 간단히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엔지니어들의 가장 큰 임무라고 말했다. “GM은 지금 격변의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시보레나 뷰익 같은 브랜드는 전통을 계속 지켜나갈 겁니다. 동시에, 미래에 요구되는 고연비와 하이 퍼포먼스, 쉬운 운전 등 첨단기술 개발에도 계속 투자를 해야 합니다.” GM의 21세기 마스터플랜에 대한 해답은 결국 전통(Heritage)과 진보(Progress) 사이, 그 절묘한 교차점에서 찾을 수 있을 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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