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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을 닮은 그녀들, 2005 서울모터쇼 공식 도우미 .. 2005-05-11
봄소식은 화사하게 피는 봄꽃으로부터 전해오는데, 이번 봄은 여느 때와는 달리 늦장을 부리며 새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애를 태웠다. 그러나 다행이도 기자는 누구보다 먼저 꽃을 맞이했다. 봄꽃의 때늦은 출현에 반기라도 들듯 꽃보다 아름다운 그녀들이 여의도에 나타난 것이다. 이들의 정체는 2005 서울모터쇼의 공식 도우미 3인방. 모터쇼의 주인공은 당연히 화려한 컨셉트카와 새차다. 하지만 주인공이 부각되기 위해서는 감초 역할을 하는 조연들이 필요한 법. 서울모터쇼의 별미, 공식 도우미들을 만났다. 이들은 현재 레이싱걸과 모델로 활동 중이고 2005 서울모터쇼의 공식 도우미로 선발된 데에 대한 자부심이 큰 만큼 모터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조용한 성격에 차분한 말투가 인상적인 김유연 씨는 현재 한국타이어에 소속되어 레이싱걸로 활발하게 활동중이다. 처음 기자와 만났을 때 약간 낯을 가리는 듯 했으나, 카메라 앞에 선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짝 웃으면서 프로다운 면모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서울모터쇼에 임하는 간단한 각오를 들어보았다. “서울모터쇼 공식 도우미는 누구나 다 뽑힐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한다는 데에 대한 굉장한 자부심이 있어요. 서울모터쇼에 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고, 서울모터쇼를 알리는 데 제가 제일 먼저 앞장 설 겁니다.” 적어도 서울모터쇼의 공식 도우미라면 모터쇼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 정도는 필요할 터, 과연 모터쇼에 대해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다. “이젠 모터쇼가 더 이상 차에 관심이 많은 분들과 모델만을 위한 잔치가 아니라고 봅니다. 자동차문화가 많이 보편화되어 모터쇼도 대중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고 앞으로 우리 생활과 더욱 가까워질 것 같아요.” 레이싱걸에 대한 김유미 씨의 생각이 궁금했다. “레이싱걸이 단순히 눈요기를 위해 차 옆에 서 있는 모델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아요. 자동차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레이싱걸이라는 직종을 더욱 전문화시키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지요. 저는 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최고가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 3명의 도우미 중 가장 활발하고 애교가 넘치는 이가 바로 이민경 씨다. 인터뷰 내내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고, 기자로 하여금 편안하게 진행하도록 도와 준 장본인이다. 서울모터쇼를 위해 현재 준비하고 있는 것들을 질문해 보았다. “모터쇼에 대한 교육을 워크샵 등을 통해 계속해서 받고 있습니다. 주요 내용은 이번 모터쇼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어디에 뭐가 있는지, 어떤 부대행사가 있는지 등이고 현재 이러한 정보들을 전시장에 찾아오신 분들에게 어떻게 잘 설명할 것인지 연습 중이에요.” 이민경 씨는 레이싱걸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도우미 경험도 많다. 도우미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되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도우미를 하면서 많은 전시회를 경험하다 보니 다양한 지식을 갖게 되어 좋은 것 같아요. 남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분야를 알게 된다는 장점이 이 일의 매력이에요. 모터쇼도 물론 마찬가지이지요.” 도우미나 모델 일을 하다보면 개인적으로 좋은 일도 많겠지만 애로사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시종일관 밝은 미소로 인터뷰에 응하던 이민경 씨도 힘들었던 일들을 말할 때는 사뭇 진지해졌다. “레이싱걸이나 모델 일이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일이다 보니 표정관리와 좋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요. 지금은 어느 정도 몸에 익숙해 별 어려움이 없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몸이 아플 때는 정말 힘들어요. 저희 일이라는 게 서서 일할 때가 많고 내레이션도 같이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아프지 않기 위해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 해야 하고, 운동도 꾸준히 해야만 해요.” ●● 송정화 씨는 세 명의 도우미 중 가장 이색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다. 원래부터 모델 일을 해 온 것이 아니라 최근에야 이 분야에 몸담게 되었다. 전시 모델 일을 하기 전에는 이벤트 회사의 사무직에 근무했는데 갑자기 외도를 하게 된 것이다. “이벤트 직종에 근무하다 보니 전시 모델 일을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워낙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이 일이 제 적성에 잘 맞는 것 같아요.” 송정화 씨를 표현할 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레몬이다. 귀여운 이미지에서 풍기는 상큼함이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리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가장 가식적이지 않고 솔직하게 답변을 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기자에게는 대외적인 인터뷰용 답변보다는 포장 없이 진솔하게 이야기를 하는 취재원이 반갑다. “솔직히 말해 저는 자동차 분야가 낯설어요. 다른 두 분은 현재 레이싱걸로 일하고 있지만 저는 아직 레이싱걸 경험조차 없는 걸요. 하지만 처음부터 익숙할 순 없지요. 제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일단 서울모터쇼 공식 도우미가 된 만큼 긍지를 가지고 남은 기간이라도 열심히 배우겠어요.” 송정화 씨는 세 도우미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이 남자 친구가 있음을 밝혔다. 남자 친구와 데이트는 주로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았다. “남자 친구와 저는 요즘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에 푹 빠져 살고 있어요. 같이 게임을 할 때가 가장 편하고 행복한 시간이에요. 요즘은 남자 친구가 축구 게임을 주로 하는데 제가 그 게임이 아직 서툴러 걱정이에요. 전 남자친구와 무엇이든 공감할 수 있다는 게 좋거든요.” 공식 도우미들과의 수다 한판 도우미들의 야외 촬영은 2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그날따라 날씨가 갑자기 더워졌고 햇볕도 평소보다 강해 촬영이 끝나갈 즈음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장소를 옮기고 실내에서 인터뷰를 하자 진지하게 질문에 답해주었고, 공식 인터뷰 후 기자와의 본격적인 수다 한 판이 벌어지자 다시 생기를 띄기 시작했다. 기자 인터뷰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요. 다들 너무 경직되어 있고 대외적인 멘트로 가득하군요. 자, 지금부터는 터놓고 신나게 수다 한번 떨어봐요. 송정화 그래요. 너무 불편한 것 같아요. 기자 근데 신체 사이즈와 혈액형이 다들 어떻게 되지요? 이민경 34-24-36이구여, 전형적인 A형이에요. 김유연 저는 34-24-35, 혈액형은 A형입니다. 송정화 다들 A형이군요. 저는 O형이구요. 신체사이즈는 34-24-35입니다. 기자 근데 세분 다 허리 둘레가 똑같군요? 제가 얼핏 보기에는 세분이 약간 차이가 있어 보이는데……. 이민경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왜 저를 보세요?(민망한 듯한 웃음) 설마 저를 의심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 볼 살이 좀 있어서 그런 오해를 많이 받는데 저의 신체 사이즈는 명백한 사실이랍니다. 기자 더욱 의심스럽군요. 좋습니다. 일단 넘어가도록 하죠. 김유연 근데 왜 혈액형이나 신체 사이즈 같은 것들을 물어보지요? 혹시 기자님께서 저희들에게 흑심이 있으신 건 아닌가요? 기자 당황스럽네요. 이것으로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농담이구요. 인터뷰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거든요. 신변잡기적인 내용의 인터뷰를 사람들이 더 좋아하고 이 자동차 전문지라서 남성 독자층이 많아요. 그분들은 여러분의 혈액형까지도 궁금해하지요. 신체 사이즈는 말할 것도 없구요. 이민경 혈액형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기자 님은 혈액형이 어떻게 되요? 기자 저는 사람들이 모두 B형 같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성격 좋다는 O형이랍니다. 여러분들은 남자 친구가 어떤 혈액형이었으면 하나요? 김유연 제 혈액형이 A형인데, A형하고 가장 잘 어울리는 혈액형이 O형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O형이 좋아요. 이민경 저도 O형이 좋아요. 송정화 저는 B형이 좋아요. B형이 왠지 끌리고 매력 있어 보이더라구요. 기자 B형 같은 O형은 어떤가요? 송정화 기자님 저는 남자 친구가 있답니다. 기자 자, 이제 분위기가 좀 자연스럽게 된 것 같군요. 이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도록 하죠. 만약에 주위에서 연예인이 되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김유연 저는 현재 제가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있어요. 제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어요. 이민경 저도 제가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기자 예상 밖의 대답이네요. 요즘 다들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선호하고 레이싱걸 출신들도 연예계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김유연 솔직히 말하자면, 연예계에 진출한다고 하더라도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능력이 되는 지도 의문이구요. 하지만 좋은 기획사에서 확실하게 밀어주신다면 도전해 볼 의향은 있어요.(웃음) 기자 솔직하게 말씀하시니 좋군요. 화제를 돌려서, 평소에 미모관리를 위해서 특별히 하는 것과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패션 스타일은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세요. 이민경 다이어트를 위해서 웬만해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서 계단을 올라가요. 평소에 운동할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많이 걸어다니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미니스커트를 자주 입어요. 남들은 미니스커트가 불편하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편하더라구요. 송정화 저는 보라색이나 핑크색 계열의 색상을 좋아해요. 섹시함이 부족해서 귀여운 스타일을 강조하는 편이지요. 다이어트는 특별히 하고 있지 않아요. 저는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 걱정이에요. 제가 워낙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이라서……. 김유연 저 같은 경우는 피부관리는 별도로 하지 않아요. 피부는 원래부터 좋았거든요.(웃음) 피부에 혹시 안 좋을까봐 화장도 최대한 연하게 하고 다녀요. 몸매관리를 위해서 특별히 하고 있는 것은 없지만,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려고 노력하지요. 많이 먹었다 싶은 날은 30∼40층 정도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요. 기자 유연 씨 정말 대단하시군요. 어떻게 3∼4층도 아니고 30∼40층을 걸어서 올라갈 수 있어요. 완전 인간 엘리베이터이군요. 자, 다른 주제로 넘어가서 좋아하는 차는 어떤 것이고, 운전습관은 어떤가요? 송정화 르노삼성의 SM 시리즈를 좋아해요. 운전습관은 마음은 스피드 광이 되고 싶지만 실제로는 안전운전을 생활화하고 있어요. 김유연 GM대우의 레조를 좋아해요. 디자인이 거부감 없으면서 귀엽고, 승차감도 좋아서 맘에 들어요. 운전습관은 제 자신은 잘 모르겠어요. 근데 주위 사람들이 안정감 있게 잘한다고 하더군요. 이민경 국내차는 쌍용 코란도와 현대 쏘나타를 좋아하고, 수입차는 아우디 TT와 폭스바겐 뉴 비틀 카브리올레가 마음에 쏙 들어요. 기자 민경 씨는 차에 대해서 많이 아시는 것 같군요. 운전 습관도 궁금하네요. 이민경 아쉽게도 아직 무면허입니다. 이날 인터뷰는 처음에는 다소 딱딱한 분위기였지만 점차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바뀌어 어느 때보다 유쾌한 기분으로 끝을 맺었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취재원에 따라 인터뷰를 하고 난 후의 느낌이 각각 다르다. 이번 인터뷰는 어떻게 표현할까? 음……. 마치 꽃놀이를 하고 난 후, 흥에 겨워 절로 노래를 부르고 싶은 기분이다.
정비사 양성민 “원칙을 무시하는 정비습관은 버려야” 2005-04-15
1. 소속과 직책, 걸어온 길 일본에서 정비사로 일하다가 귀국, 최근 경기도 부천에 ‘프롬 재팬‘이라는 정비소를 열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더 넓은 곳에서 경험을 쌓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결심, 95년 2월 일본으로 건너갔다. 방송국 PD를 목표로 한 유학이었지만 일본어를 전혀 몰라 1년 동안 어학원을 다녔다. 다음해 대학원 시험에서 논문은 합격했지만 면접에서 떨어져 비자 연장을 위해 동경 테크니컬 컬리지에 들어갔다. 단지 대학원 재수를 위한 곳이었지만 엄격한 학업관리로 수업에는 꼬박꼬박 출석해야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2학년이 되자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 차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되고 내 안에 숨어 있는 재능을 찾은 느낌마저 들었다. 일본 자동차자격시험을 대비하며 미친 듯이 차에 빠져들었다. 당시 유학생은 취업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졸업을 앞둔 3월, 기술학교 졸업자는 취업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고 나를 잘 본 취업담당자의 배려로 동경에 있는 야마자키 모터스(닛산 계열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2. 일본에서의 생활은 어떠했나? 30살에 일본에 건너가 33살에 취업했다. 일본은 어딜 가나 도제(徒弟) 시스템이라 처음 들어가면 바닥청소와 허드렛일부터 하게 된다. 거의 모두 이십대 초반인 선배들 밑에서 기술은 배우지도 못했지만 늦게 시작한 만큼 이를 악물고 일했다. 12시부터 1시까지가 점심시간인데 밥을 10분만에 먹어치우고 차를 만질 만큼 노력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공장장이던 메라 씨가 나를 부르더니 “정말로 정비를 배워보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는 정종 잔 8개에 각종 오일을 담더니 맛으로 구별해 보라고 했다. 그렇게 엄격한 통과의례를 거친 뒤에야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 그 뒤 성실함을 인정받아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3년만에 정비주임이 되었고 3년이 지나자 정비사의 작업을 점검하는 검사주임이 되었다. 아무 것도 없이 실력만으로 이룬 성과다. 마지막 단계는 공장장으로, 실력과 경력이 있어야만 오를 수 있는 자리다. 나는 4년 동안 검사주임을 맡다가 귀국했다. 3. 어렵게 일군 자리를 포기하고 귀국한 이유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였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큰애가 일본을 응원하는 게 아닌가. 당시 초등학생인 아이가 일본말로 “나는 일본이 더 좋다”고 하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서둘러 귀국을 결심했다. 당시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있는 스카이라인 동호회에서 활동했던 터라 국내에 일본차가 늘어났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점도 결심을 재촉한 이유였다. 친구, 친지와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던 가족들도 변화가 필요했고 일본차 정비라면 누구보다 자신이 넘치던 때라 8년간의 일본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4. 한국과 일본의 정비시스템은 어떻게 다른가? 일본은 기본적인 규정을 철저하게 지킨다. 정비 매뉴얼은 항상 옆에 두고 있고 손님을 맞이하는 자세가 관광서비스업 못지 않다. 우리나라 정비습관은 원칙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엄연히 규정치가 있는데 전동 렌치로 볼트를 조이는 일 같은 원칙 없는 작업을 너무 쉽게 한다. 우리의 형식적인 정기검사와 달리 일본의 정기검사는 철저하게 이뤄진다. 검사장으로 차가 들어오면 바퀴를 다 떼어내고 하체를 점검한다. 엔진을 스캐너로 진단하고 각종 센서의 이상을 발견하며 제동계통을 철저하게 검사한다. 검사비용도 만만찮지만 안전을 위한 예방조치라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5. 일본 정비소의 하루를 묘사한다면? 8시 30분까지 출근해 조회를 하고 예절 교육을 받는다. 업무는 9시부터 시작되는데 자동차검사 업무를 주로 한다. 일본의 정비는 무조건 예약제로 이뤄지고 담당자가 고객의 집을 찾아 차를 받아온다. 12시부터 1시까지는 점심시간이고 5시 30분에 하루 일과가 끝난다. 오후 3시부터 10분 동안 잠깐 쉬는데, 그밖에는 일이 없더라도 맡은 자리를 비우지 못한다. 잔업 수당은 1시간에 1만2천 원쯤이고 보통 잔업은 저녁 7시까지 한다. 6. 정비사로서 일본차를 평가한다면? 도요타는 환경 문제에 앞장서는 브랜드로 적자가 나더라도 하이브리드카나 친환경 정비체제를 운영하는 결단력이 돋보인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브랜드가 도요타인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닛산은 스포츠 세단에 강점을 보인다. 스카이라인 계보로 수많은 추종자를 만들어냈고 내세울 점이 많은 브랜드다. 미쓰비시는 리콜 파동을 거쳐 이미지가 크게 추락했다. 메이커 고집이 크게 느껴지는 곳은 혼다. 엔진 회전이 다른 메이커와 반대로 돌아가고 전용 공구를 써야하는 등 정비하기가 벅차지만 혼다만의 독특한 기술이 인상적인 메이커다. 기술자 입장에서는 도요타 차가 정비하기 쉽다. 7. 국내에서도 튜닝이 종종 이뤄지는데, 튜닝숍을 열 생각은? 튜닝은 안 한다. 차가 가진 고유한 성능을 최대한 유지하는 정비가 내가 할 수 있는 분야다. 주위에서 흔히 튜닝이라 말하는 방식은 단지 ‘부품 교환’일 뿐이다. 진정한 튜닝은 ECU 매핑(엔진특성 조절)을 통해 그 차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다. 단순히 에어로파츠를 덧대거나 각종 부품을 얹은 방식은 튜닝이 아니다. ECU 매핑은 일본에서도 경력 5년이 넘어야만 다룰 수 있는 분야다. 8. 자동차 정비에 뜻을 둔 이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정비사는 급한 성격이 어울리지 않는다. 빨리, 그리고 편하게 처리하려는 마음은 고객의 생명을 책임지는 정비사로서는 가장 큰 결격사유다. 타이밍벨트 하나를 바꾸더라도 관련 부품을 모두 체크하는 등 효율적인 정비를 해낼 수 있는 꼼꼼한 성격이 가장 어울린다. 수입차 정비를 체계적으로 배우려면 생산지에서 익히는 방법이 가장 좋다고 본다. 특히 일본에서는 다른 나라 정비경력이 인정되지 않고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본어 학교(1년)를 다니고 테크니컬 컬리지(2년)를 거치면 기본은 이룬 셈이다. 그 이후는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보통 3∼5년이 지나면 말 그대로 ‘눈을 뜨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현장에서 몸으로 부대끼며 차와 싸우면 금세 실력이 는다. 선진국일수록 기술이 대접받는다. 나는 기름 때로 얼룩진 내 손이 자랑스럽다. 자동차 정비사가 대접받는 일본에 견주면 우리나라는 아직 불만스러운 점이 많다. 하지만 차가 좋아 인생을 걸어볼 마음이 있다면 도전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웬만하면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이 배우라고 덧붙이고 싶다.
김한준 대표이사 한국 시장 ‘공격경영’ 나선 만(M.. 2005-04-15
세계 상용차시장의 1위 자리를 두고 벤츠와 경합을 벌이고 있는 독일 만(MAN) 트럭버스의 ‘한국호’ 선장 김한준(41) 대표가 만 트럭버스 코리아 살리기에 두 팔을 걷고 나섰다. 김 대표는 예전 직장이던 효성(1995∼1999년)에서 독일 주재원으로 일했다. 그 무렵 주재원으로서는 처음으로 영어가 아닌 독일어로 운전면허시험을 통과했을 만큼 뛰어난 독일어 실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독일 현지 사정에 밝아 현재 국내에서 독일 전문가로도 통하고 있다. 2001년 만 트럭버스 코리아 설립 때부터 근무한 김 대표는 2003년 관리담당이사를 거쳐 2004년에 대표이사의 자리에 올라 올해 제2의 창업을 선언, 국내 트럭시장 선두권 대열에 진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만 트럭버스는 한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만 트럭은 1995년 삼성을 통해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삼성은 만을 통해 기술을 얻으려는 의도가 강했는데 이런 생각이 만 본사와 제대로 조율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본사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자 브랜드 홍보 면에서도 다른 업체보다 소홀해졌고, 그 결과로 지금껏 만 트럭을 모르는 분들이 많은 걸로 압니다. 하지만 더 이상 시행착오는 없습니다. 만 트럭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현지화 성공 뒤 아·태 전진기지화 이룰 터 상용차 메이커로서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를 지닌 만이 국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은 조금 놀라운 일이다.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게 원인이라지만, 정작 큰 이유는 따로 있다. 그동안 부품공급이 원활하지 못했고,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 네트워크가 부족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독일을 근거지로 둔 만 트럭버스는 세계 상용차시장과 유럽 트럭시장에서 톱 메이커로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루돌프 엔진을 만들어 세계에서 처음으로 디젤 엔진을 상용화 시켰을 만큼 전통과 기술력에서 앞서고 있는 회사이지요. 한국에서 다른 경쟁업체보다 인지도가 낮았던 것은 기술력의 차이보다는 성장할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했던 탓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인프라 확대를 위해서 현재 국내 주요 9개 도시를 거점으로 정비소를 운영해 원활하게 부품을 공급하고 있고, 서비스망을 예전보다 더 강화해 고객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만 트럭버스 코리아는 이미 정상을 위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만 트럭버스 그룹 본사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김 대표의 뛰어난 관리 능력을 더했기 때문이다. 만 트럭버스 코리아 관계자들은 “회사 창립 맴버인 김 대표가 누구보다 회사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다”며 “대안과 발전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만 트럭버스 코리아의 국내 트럭시장 점유율은 2002년 2.4%, 2003년과 2004년에는 각각 3.2%와 6.4%를 기록해 꾸준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올해 목표는 10%로 잡아 수입 트럭업계 선두 진입을 꿈꾸고 있다. “만 트럭버스 코리아의 국내 인프라가 확대되면 당연히 현지화에 성공할 것이고 목표로 하고 있는 점유율을 반드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또한 저는 만 트럭버스 코리아를 만 트럭버스 그룹의 아시아 태평양 전진기지의 본부로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현지화 성공 이후 만 본사의 전폭적인 투자를 받아 조립공장이 들어섰고 주변 지역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입 트럭업계 한국 법인 CEO중 가장 젊은 김 대표는 어떠한 경영 마인드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면 내가 가장 어려서 선배들의 ‘내공’에 기가 죽는다”고 겸손해하면서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직원들의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솔직히 직원들에게 사장은 불편한 존재잖아요. 사장이 할 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직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게끔 시스템을 만들어 주고 복리후생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일입니다.” 김 대표는 평소에 직원뿐 아니라 고객들과도 스스럼없이 만 트럭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이야기한다. 칭찬 받을 것은 받고 혼날 일은 따끔하게 혼나야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 “저는 정직만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해요. 거짓말을 하거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하면 결국엔 그것이 발목을 잡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김 대표는 회식을 할 때마다 직원들에게 혼이 난다고 한다. 그의 애창곡은 바로 트로트인데, 직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노래 장르라고. 그는 “내가 노래하면 직원들에게 어김없이 외면을 당한다”면서 “그래도 나는 트로트가 가장 가슴에 와 닿고 부를 만하다”며 껄껄 웃는다. 수입 상용차시장의 젊은 피 김한준. 그가 이끄는 만 트럭버스의 변화가 앞으로 어떤 성과로 이어질지 기대를 걸어본다.
다임러크라이슬러코리아 사장 웨인 첨리 주한미국상공회.. 2005-03-24
임러크라이슬러코리아가 2월 16일 지프 체로키 디젤과 그랜드 보이저 디젤 등 2대의 디젤차를 국내에 론칭했다. 디젤 승용차의 판매가 허용된 이후 국내외 업체 중 제일 먼저 새 디젤 모델을 출시한 것. 벤츠 SLK를 베이스로 한 크로스파이어, E클래스를 기본으로 만든 300C 등 개성 강한 차를 잇따라 소개해 온 크라이슬러가 이번에는 벤츠의 디젤 기술을 채용해 디젤차를 재빨리 선보였다. 1999년 벤츠에 합병된 이후 이제야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일에 열정적인 다임러크라이슬러코리아의 웨인 첨리 사장은 올해부터 한국에 있는 미국 기업을 대표하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까지 맡아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부대찌개에서 경영철학을 끄집어내는 남자 “한국 수입차 시장에 처음으로 디젤차를 선보이게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한국정부가 경유값을 2007년까지 휘발유의 85% 선으로 올릴 계획이지만 그래도 디젤차는 장점이 많아요. 2007년이 되더라도 휘발유보다 15% 싸고, 무엇보다 디젤 엔진은 힘이 좋고 연비가 뛰어납니다. 정숙성도 몰라볼 정도로 향상되었고요.” 미국 텍사스 출신인 첨리 사장은 디젤차의 불모지인 미국 출신인데도 디젤차의 전령사를 자처한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크라이슬러는 디젤 엔진에 힘을 싣고 있기 때문. 일본 메이커나 포드 등은 환경오염과 자원 고갈의 염려가 없는 미래형 자동차로 가는 중간단계로 하이브리드카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반면 유럽 메이커들은 환경친화적인 디젤 엔진을 휘발유 엔진의 1차적인 대안으로 보고 있다. 벤츠의 영향을 받는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디젤을 내세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따라서 크라이슬러는 GM과 포드보다 디젤 분야만큼은 유리한 위치에 올라 있다. 미국에서는 인기를 끌지 못하는 디젤차가 한국에서는 얼마만큼 선전하고 있을까. 지난해 2월 국내 판매를 시작한 지프 그랜드 체로키 디젤은 500여 대가 팔려 국내 수입 디젤차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SUV라는 특수성이 밑받침되었지만 아메리칸 아이콘의 하나로 여겨지는 지프를 찾으면서도 국내 소비자들은 디젤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텍사스 출신으로 풍요로운 생활(휘발유 값이 싸다는 측면에서)에 익숙한 첨리 사장은 디젤의 우수성을 힘주어 강조하지만 사실은 대배기량 휘발유 엔진에 대한 애착심이 남다르다. 미국 어딜 가도 픽업은 승용차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많고 텍사스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그는 닷지 브랜드를 좋아하고 픽업 트럭에 대한 사랑도 유별나다. 이 때문에 픽업 트럭 닷지 다코타가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닷지는 가장 애착심을 갖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닷지는 크라이슬러의 볼륨 리더이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닷지 브랜드의 핵심은 '개척정신'이고 모든 제품이 ‘창조성’에 기초를 두고 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차 역시 닷지 바이퍼입니다. 지난해 바이퍼 GTS 쿠페가 수입되어 시승차가 나왔을 때, 맨 먼저 몰고 영종도로 이어지는 쭉 뻗은 고속도로를 찾았습니다. 바이퍼는 디자인과 성능은 물론이고 감성적인 부분까지도 매우 매력적인 차예요.” 인터뷰하는 동안 첨리 사장의 열정과 끼를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첨리 사장의 카라이프는 미국적인 감성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렇다고 미국적인 것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99년 다임러와의 합병 이후 힘을 싣고 있는 디젤 엔진에 대한 애착심도 남달랐다. 다른 것을 잘 받아들이는 개방성 때문일까? 그는 한국의 김치찌개, 만두전골, 소주를 유난히 좋아하고 특히 부대찌개를 최고의 음식으로 꼽는다. “부대찌개는 처음으로 한국의 ‘얼큰한 맛’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음식입니다. 특히 부대찌개 국물에 밥을 비벼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한국 사람들도 이렇게는 잘 먹지 않더군요. 부대찌개는 미국 식재료와 한국의 조리법이 잘 결합한 사례이지요. 이것이야말로 ‘세계화’와 ‘현지화’의 조화를 추구하는 다국적기업의 경영철학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대찌개의 얼큰한 맛에서 기업의 경영철학을 끄집어내는 첨리 사장. 1996년 크라이슬러코리아세일즈 사장으로 처음 한국땅을 밟았던 그는 올해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회장직을 맡았다. 모든 일에 적극적인 관심과 열정을 보이는 첨리 사장이 미국 기업의 대표자로서 어떤 활동을 펼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글 | 박지훈 사진 | 임근재
여행 칼럼니스트 김선겸 가슴속에 사람을 품고 두 발.. 2005-03-23
가장 좋은 대화법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기자도 여행에 관심이 많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 할 말도 많고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러나 김선겸(41) 씨 앞에서는 ‘가장 좋은 대화법’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눈을 빛내며 “이번에 독일 카니발을 갔다 왔는데요. 그 친구들 아침 7∼8시부터 맥주를 궤짝으로 마시는데……”라는 말로 시작해 쉴 새 없이 얘기를 풀어 나가는 김선겸 씨. 그의 생생한 경험담에 어설프게 끼어들어 이야기의 맥을 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본지 ‘world travel’을 연재하고 있는 필자이기도 하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 여행가의 길로 김선겸 씨가 여행을 시작한 지는 올해로 14년째. 본격적으로 칼럼니스트 일을 한 것은 5∼6년이 지났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 기나긴 여정에 발 담그게 했을까. “아프리카 여행에 나선 만화 주인공이 너무 부러워 똑같이 해보고 싶었습니다. 언젠가는 아프리카에 꼭 가보고 말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대학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다 1년만에 그만두고 아프리카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8개월 정도 여행하고 돌아오니 일자리가 문제였어요.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을 주체할 수도 없었고.” 여행가의 길에 접어든 그는 외국을 제집 드나들 듯하며 1년에 5∼6개월은 해외에서 보내기 시작했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과 마주친다는 설렘. 이것이 낯선 곳을 오랫동안 돌아다닐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낯선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참 즐거웠습니다. 방에 커다란 세계지도를 붙여 놓고 항상 어디를 갈지 생각했지요. 알음알음 들어오는 원고청탁으로 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바로 배낭을 꾸리는 생활이었습니다.” 많은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초창기의 설렘이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여행 칼럼니스트가 된 뒤에 새롭게 눈뜬 사진이 초창기의 열정적인 모습으로 되돌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가 세운 여행의 원칙 가운데 하나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지 말자는 것. 따라서 여행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보따리에는 체코의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허름한 노부부가 고물 폭스바겐으로 오스트리아 국경까지 태워 준 이야기, 팔레스타인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걱정 등 사람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처음에는 문화재에 관심이 가고 좋은 풍경에 취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사람을 만날 때는 정말 여행하는 보람을 느끼지요. 문화재나 풍경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지만 사람들에 관한 일은 언제고 새록새록 기억 속에 떠오릅니다.” 왠지 배낭 매고 걸어서 다니는 것을 정석으로 여길 것 같은 그지만 차로 떠나는 여행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차가 있으면 여행이 편해져요. 걸어서는 갈 수 없는 먼곳도 갈 수 있기 때문에 시야가 더욱 넓어지고요. 티베트에 갔을 때인데, 걸어서 1년 걸려야 볼 수 있는 곳을 차를 빌려서 며칠만에 다 둘러보았다니까요. 여행 중 타 본 차 중에서 도요타 랜드크루저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늪지에서도 거침없이 빠져 나오는 모습이 믿음직하더군요.” 아무리 좋아서 하는 여행이라지만 힘든 점이 한둘이 아니다. 인도에서는 돈이 떨어져 3∼4일 굶기도 하고 팔레스타인에서는 총격전에 휘말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해 여행가를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리고 두 달간 한국말을 한 번도 못했을 때, 타국어로라도 대화할 상대가 없을 때는 무척 견디기 힘들었다고. 14년 동안 발이 부르트도록 전세계를 돌아다녔지만 아직 못 간 곳이 있다. 아니 일부러 가지 않은 곳이다. “중앙아프리카는 가지 않고 있습니다. 여행에 대한 꿈을 심어 주었던 그곳에 갔다 오면 여행가를 시작할 때 가졌던 열정이 식을까 봐 이래저래 미루고 있어요.” 그러나 1∼2년 뒤 그는 중앙아프리카를 찾을 계획이다. 더는 늦출 수 없기에. 그럼 그 후에는? “체력이 닿는 한, 길이 있는 한 계속 여행을 해야지요.” 글 | 임유신 사진 | 박창완
테스트 드라이버 고성훈 차의 특성을 속속들이 짚어내.. 2005-03-18
1. 소속과 직책, 걸어온 길 현재 르노삼성 실차 테스트팀 선임연구원으로 파워트레인 부문 구동계 테스트를 맡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무작정 자동차가 좋았던 기억이 난다. 1985년 자동차과를 졸업하고 기아자동차 검사·품질팀에 들어갔다. 당시 국내 기술은 외국과 기술제휴를 맺어 조립생산을 하는 수준. 수입차를 마음껏 타볼 수 있고 유럽과 북미 등지에서 살다시피 하는 연구·실험팀으로 옮기고 싶어 무던히 애썼다. 다행히 직원이 건의사항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제도를 통해 적성과 재능을 인정받아 실험 파트로 옮겨 테스트 드라이버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차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겪어보고 싶어 십여 년 동안 몸담았던 기아를 그만두고 삼성화재 손해사정인으로 2년 동안 일했다. 폭넓은 경험을 했던 시기였지만 미련을 떨칠 수 없었다. 마침 삼성자동차가 출범하면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연구소 테스트 드라이버로 다시 뛰어들었다. 당시 후발주자였던 삼성이 현직 메이커의 인력을 빼내올 수 없었던 제약을 갖고 있어서 찾아온 기회다. 한 분야만 열심히 파고드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업무를 겪어보는 일도 나쁘지 않다. 잠시 외도기간이 있었지만 테스트 드라이버는 내 천직이라고 느낀다. 2. 참여했던 개발차종과 기억에 남는 차 예전 기아차는 거의 내 손을 거쳤다. 대우 티코가 나오기 전, 기아에서도 경차 개발이 진행된 적이 있다. 시장성이 없어 중간에 접었지만 아쉬운 프로젝트였다. 프라이드와 캐피탈, 콩코드와 포텐샤, 스포티지 등 수많은 차종 개발을 진행했고 5톤 트럭 개발에도 참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차는 기아 프라이드와 르노삼성 SM5다. 내구성과 순발력, 연비 등 뭐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는 당찬 프라이드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다. 내구성과 디자인, 경제성에서 뛰어난 가치를 보이는 SM5도 마찬가지. 특히 한국적 특성이 배어 원작보다 더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는 SM5는 가장 좋아하는 차다. 3. 자동차메이커 실차 테스트 부서는 어떤 곳인가 차 한 대가 나오는 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땀이 배어 있다. 실차 테스트 팀도 예외는 아니어서 성능이나 상품성, 내구성을 평가하는 부서로 각각 나뉜다. 핵심은 파워트레인 담당 부서로 엔진과 변속기, 드라이브 샤프트와 서스펜션의 작동과 소음, 진동 등을 테스트하고 있다. 실차 테스트는 다양한 온도와 고도, 지형과 기후에서 이루어진다. 혹한지와 혹서지 테스트를 위해 한두 달 해외에 머무르는 건 예사다. SM5를 처음 내놓던 때는 평가 인원이 많지 않았던 데다 국산화에 따른 부품 테스트도 진행해야 했다. 1년의 2/3를 일본과 유럽, 국내 출장으로 보냈던 시절이다. 테스트 드라이버는 차와 뗄 수 없는 관계다. 테스트 도중 잠깐 쉬거나 식사하는 시간을 빼고는 평균 4∼5시간을 차에서 보낸다. 노동 강도가 생각보다 세다고 볼 수 있다. 새차 특성상 디자인 보안을 지키는 일도 어렵다. 부산 공장을 짓고 있던 시절에는 회사 부지에 있는 공장도로에서 테스트를 자주 했는데, 보안 때문에 밤에 주로 했다. 해 떨어지기를 기다려 진행하고 동이 틀 무렵 들어오는 올빼미 생활을 3주 동안 했다. 테스트 드라이버는 파일럿 카를 만들면서 투입된다. 각 항목별로 미리 정해진 목표 성능을 만족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끝없는 테스트로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수정하면 차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끝난다. 이 과정에서 테스트 팀의 입김은 다른 어느 부서보다 강할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카를 비교 차종으로 삼을 때가 많다. 냉철한 평가자의 입장에서 테스트하고 실측 데이터를 첨부해 보고서를 꾸민다. 개발 컨셉트에 맞게 만들어졌는지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다. 4. 테스트 드라이버에 맞는 성격은? 테스트 드라이버란 한마디로 차와 하나가 되는 사람을 말한다. 차를 평가할 때 테스트 드라이버가 힘들면 나중에 고객도 어김없이 힘들기 마련이다. 남들에 앞서 차를 평가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해내는 책임감도 투철해야 한다. 운동 선수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실함이 뒷받침되어야 하겠다. 세월이 흘러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원래 성격이 급한 편이다. 경험상 이 직업에 꼭 맞는 특별한 성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물을 판단하는 감각이 뛰어나야 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무난한 성격이 좋다. 예민한 감각은 테스트 드라이버가 꼭 갖춰야 할 자질이고 전체적 느낌을 조율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어쩌면 느긋한 성격보다는 약간 급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더 어울린다. 차의 개발과정에는 마스터플랜부터 연간계획, 월간계획과 주간계획 등 끊임없이 업무가 있다. 평소 일상생활을 계획적으로 꾸려 가는 꼼꼼함도 갖춘다면 금상첨화다. 5. 드라이버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삼성차 시절에는 영국 로터스팀을 비롯한 외부 업체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현재는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어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부산공장과 기흥연구소 프루빙 그라운드에서 테스트를 한다. 가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일원으로 일본 닛산에서 테스트를 할 때도 있다. 드라이버 교육은 테스트 프로그램을 위한 기술과 공통 운전 기술로 나누어 실시된다. 각각의 테스트에 따라 운전 방법이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갖춰야 할 기술도 있기 때문이다. 선임연구원의 책임 아래 서스펜션 평가팀은 스티어링 휠의 감각적인 조작법과 차체 움직임을 몸으로 느끼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가속성능과 정속주행, 최고속 테스트를 주로 진행하는 파워트레인 평가팀은 발끝의 감각과 계측장비 다루는 방법 등을 주로 익히게 된다. 안전운전을 위한 매너교육도 수시로 실시된다. 서킷이나 프루빙 그라운드를 벗어나면 위험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반 도로에서는 철저하게 안전 위주로 운영된다. 6. 테스트 드라이버의 하루 집에서 나오자마자 연구원의 하루가 시작된다. 한겨울에는 밤새도록 세워놓은 차의 시동 능력을 평가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퇴근 후에도 마찬가지다. 퇴근길 일반 도로 주행은 상품성 측정에 무척 중요한 평가항목이다. 일하는 시간은 오전 8시 출근과 오후6시 퇴근이 원칙이다. 내근 업무를 맡을 때도 있지만 테스트나 출장으로 회사를 떠날 때가 많기 때문에 변동이 잦은 편이다. 부품 테스트를 하게 되면 밤을 새더라도 끝내야 한다. 따라서 테스트 업무를 무리 없이 해내려면 강인한 체력은 필수 조건이다. 체력 관리를 위해 식사는 꼬박 챙겨먹고 연구소 안에서 농구나 축구, 수영 등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있다. 보수는 위험한 업무라고 특별히 더 받는 것은 아니다. 남들만큼 받는다. 하지만 원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데에 뿌듯함을 느낀다. 사실 테스트 드라이버 직종은 보험회사에서 가입을 꺼릴 만큼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물론 시험차는 완성차보다 정밀도가 떨어지지만 사전점검과 훈련으로 충분히 위험 요소를 없앨 수 있다. 7. 테스트 드라이버가 되려는 이들에게 테스트 드라이버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급하게 해내려는 욕심이 앞서면 뒷심이 모자라 흐지부지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폭주를 즐기기보다 먼저 차를 꼼꼼히 공부해서 지식을 넓혀야 한다. 해외 드라이빙 스쿨은 테스트 드라이버 자격을 얻는 관문이 아니다. 스포츠 드라이빙 라이선스는 받을 수 있지만 테스트 드라이버 자격은 어디에도 없다. 현실적으로 프로 레이서를 꿈꾸지 않는다면 메이커에 입사해 개발업무를 맡아 실력을 키우는 것이 테스트 드라이버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이다. 나는 지치고 힘들어도 차만 타면 피곤이 풀린다.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번다는 사실이 즐겁고 고마울 따름이다. 공부를 할 때는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자만하거나 독선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결코 발전이 없다. 열린 마음은 팀으로 운영되는 테스트 드라이버의 세계에서 환영받는 덕목이다.
성부경 대표이사 전국 자동차매매 사업조합 연합 회장 2005-03-17
“저는 혁명이라는 말을 잘 씁니다. 국내 자동차업계를 보면, 생산은 세계 6위로 훌쩍 앞서 달려가고 있는데 중고차 유통시장은 거기에 한참 못 미치는 것 같아요. 지금껏 투명하지 못했던 중고차 거래를 소비자들이 외면한 것도 큰 이유이겠지만 자동차 매매시장 자체의 시스템과 제도가 뒤떨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해요. 지금 시점에서 중고차 유통시장을 살리기 위해선 변화와 개혁으로는 모자라기 때문에 혁명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봅니다.” 성 회장이 자동차업계에 뛰어든 것은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이다. 화학을 전공했음에도 중고차 유통시장에 발을 담그게 된 것은 우선 서비스 업종이 적성에 잘 맞았고 차를 통해 사람을 만난다는 게 그에게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제가 처음 이 일을 할 때는 솔직히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국내 자동차는 13만 대에 불과했고 중고차 매매시장의 규모가 지금과 비교할 수도 없었지요. 하지만 요즘은 어떻습니까?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가 이미 1천500만 대를 넘었고, 2015년에는 2천500만 대가 넘을 거라고 하더군요. 덩달아 중고차 매매시장도 함께 커질 테니,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웃음)” 인터넷 포털과 DMB 시스템 적극 활용 요즘에는 중고차 매매도 ‘온라인 시대’다. 예전과 달리 인터넷으로 직접 사고 파는 일이 많아 중고차 매매상, 즉 ‘오프라인’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 2001년에 5천300곳이던 매매상이 지금은 4천 곳 정도이고 그나마 30%는 휴업중이다. 그 또한 이런 위기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유통시장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물론 중고차 매매시장에도 예외는 아니지요. 예전에는 대부분 중고차 딜러와 소비자가 일대일로 만나 차를 사고 팔았는데 요즘엔 세금부담이 적은 인터넷 직거래를 많이 이용합니다. 실제로 인터넷 중고차 쇼핑몰의 등장으로 오프라인에만 의존하던 중고차 매매상들이 울상이에요.” 이에 성 회장은 늪에 빠진 중고차시장을 살리겠다며 두 팔을 걷어 부쳤고,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앞세웠다. 곧 연합회를 중심으로 전국 4천300여 개의 회원사와 5만 여명의 회원을 하나로 묶어 운영하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출범할 예정이다. 그런가 하면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시스템을 활용해 더욱 편리한 자동차 거래환경을 갖춰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들까지 모니터 앞으로 끌어 모을 생각이다. 성 회장은 “회원사들의 참여 의지가 강하고 기술적인 검토도 이미 끝난 상태”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DMB 시스템을 통해 리모콘 하나로 중고차 매매시장의 정보를 얻고 거래도 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아직 우리 주변에는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도 TV 보면서 쉽게 중고차시장을 검색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앞으로 선보이게 될 자동차매매 사업조합 포털 사이트에서도 이 DMB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입니다.” 성 회장의 계획은 해외 시장도 당차게 겨냥하고 있다. 여러 갈래로 나뉜 중고차 해외수출 창구를 일원화해 효율성을 한껏 높이기로 했다. 단일창구가 될 자동차 매매사업 조합은 중고차 수출의 전진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또한 중고차를 매개로 해서 북한과 교류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북한에 중고차를 제공하고, 시멘트와 석탄 같은 원자재로 결제를 받는 물물교환 방식이 될 전망이다. “북한과의 경제교류는 실리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해요. 자동차 매매사업조합이 대북 교류에 기여하게 된다면 조합의 위상이 한껏 높아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8년 전부터 성 회장은 매년 12월 31일이 되면 설악산을 밟는다. 저녁에 출발해서 8시간 정도 산행을 하면 대청봉에 오르게 되는데 그곳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고 한다. 그는 “자신과 싸워서 이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서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싸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얼마 전 오랫동안 그의 친구였던 담배를 끊어버렸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자신과 싸워서 이겼음을 뜻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담배를 끊었으니 이젠 술도 끊을까 해요. 일을 하다보면 술자리가 많아 힘들긴 하지만 이젠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슬그머니 술을 버리는 방법도 아는 걸요.(웃음)”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새롭게 출발하는 그의 의지와 포부가 주목할 만하다. 그가 이루려는 중고차 유통시장의 혁명이 실제로 일어나는 그 날이 기다려진다.
브라부스 해외수출 총책임자 Detlef Schedel .. 2005-02-23
차를 타다 보면 평범한 차와는 다른, 나의 취향에 꼭 맞는 차를 타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처럼 개인의 욕구에 맞게 차를 개조해 주는 튜너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완성차 수준의 뛰어난 품질과 명성을 자랑하는 업체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 가운데 브라부스는 3년 10만km의 품질보증을 내세울 만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튜너다. 1977년 독일에서 문을 연 브라부스는 현재 벤츠를 비롯해 스마트, 크라이슬러 차를 전문으로 튜닝하고 있다. 특히 벤츠 튜너로 양대산맥을 이루던 AMG가 벤츠에 흡수된 이후 브라부스는 제일 가는 벤츠 튜너로 군림하고 있다. 벤츠를 타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국내에서, 브라부스 로고가 달린 벤츠를 본다면 한번쯤 오너에게 눈길을 보내 주는 것이 어떨까? 성능을 높이는데 주력하는 브라부스를 선택한 이는 분명 외유내강형의 멋진 사람일 테니까……. 가장 좋아하는 차는 610마력짜리 G V12 지난 1월 14일, 부라브스 해외수출 총책임자인 데틀레프 쉐델 씨를 국내 제휴업체인 ‘스터디’의 서울 강남 매장에서 만났다. 새해를 맞이해 아시아 수출지역 순방에 오른 그는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했고, 이후 일본과 홍콩을 거쳐 독일로 돌아갈 예정이다. 국내에 3일 동안 머물면서 스터디와 올해 사업계획을 논의하고, 고객들의 불편사항을 체크했다. 데틀레프 쉐델 씨는 “한국 시장은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아직은 브라부스의 이미지를 바르게 정착시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라이벌이던 AMG가 벤츠에 흡수된 이후 브라부스는 벤츠 혹은 AMG가 채워 주지 못하는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성능을 높이는 작업 외에 모바일 오피스나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주문하는 사람이 많아요. 이미 유럽에서는 DVD와 멀티미디어 시스템이 널리 보급되어 있습니다. 브라부스는 이 분야에 상당한 기술을 축적했고,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벤츠를 튜닝하는 업체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바라본 벤츠는 어떨까? 그는 올해 국내에서 판매를 시작하는 첫 4도어 쿠페 CLS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새로운 형태의 차가 평가를 받으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는 CLS를 최고 디자인의 벤츠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현재 데틀레프 쉐델 씨가 타는 차는 메르세데스 벤츠 C270 CDi. 고성능 차를 만드는 브라부스의 이미지와 그의 큰 체구를 생각하면 평범한 느낌도 든다. 그러나 그의 C클래스 디젤은 브라부스 튜닝을 통해 최고출력 238마력, 최대토크 50kg·m의 성능을 지닌 만만치 않은 실력을 자랑한다. “한 마디로 양가죽을 쓴 늑대지요. 한번은 아우토반을 달리는데 한 스포츠카가 100km 넘는 거리를 따라왔습니다. 휴게소에 나란히 들어갔을 때 스포츠카 오너가 다가오더니 기겁을 하더군요. 아우토반에서 시속 250km가 넘는 속도로 자신을 앞지른 차가 벤츠 세단 가운데서도 막내인 C클래스이고, 게다가 디젤이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브라부스 로고를 보고는 이해할 수 있다는 눈빛을 보내더군요.” 눈치 챘겠지만 데틀레프 쉐델 씨는 스피드와 운전을 즐기는 대단한 카매니아다. 또한 그는 브라부스의 수출을 총괄하는 임원이기 전에 브라부스의 열렬한 팬이다. 이처럼 좋아하는 취미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의 일상은 어떨까? 매일매일이 즐거울 수도 있지만 좋은 취미를 잃어 버릴 수도 있다. 데틀레프 쉐델 씨는 전자에 속한다. “개인적으로 브라부스 가운데 G V12를 가장 좋아합니다. 제 덩치를 보면 왜 벤츠 G바겐을 좋아하는지 아실 겁니다. G V12는 벤츠 S600의 심장을 튜닝한 V12 6.3X 트윈 터보 엔진을 얹고 최고출력 610마력/5천300rpm, 최대토크 102.6kg·m/1천750rpm의 놀라운 힘을 내지요. 덕분에 무게가 2.8톤에 달하는 G바겐이 0→시속 100km 가속 4.7초, 최고시속 240km(속도제한)의 날렵한 성능을 냅니다. 엄청난 엔진 힘에 맞추어 섀시와 브레이크 등도 아주 스포티하게 튜닝되어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투박하고 덩치 큰 SUV가 페라리와 맞먹는 날쌘 몸놀림을 보인단 말입니다. 전혀 아닐 것 같은 차가 의외로 잘 달리는 것, 그것 참 매력적인 일이지요.” 차가 좋고 일이 즐거운 남자, 데틀레프 쉐델. 그는 커다란 덩치로 놀라울 정도로 스피드를 내고, 느릴 것 같은 차로 스포티하게 달리기를 좋아하는, 그런 ‘의외성’을 즐기는 멋진 남자였다. 글 | 박지훈 사진 | 박창완
신영복 교수 인간성의 회복을 동양고전의 관계론에서 .. 2005-02-18
“동양고전을 ‘관계론’으로 본 책이 바로 입니다. 내가 20여 년 동안 감옥에 있었는데, 독방에서 4~5년을 지냈어요. 주로 명상을 많이 했는데, 말하자면 면벽이지요. 주요한 내용이 뭐냐하면 어렸을 적부터의 기억을 찾아내는 거예요. 신기하게도 네 살 때의 기억이 나더군요. 그 이후 만났던 모든 사람들을 추 체험하는 내용으로 명상을 하는 거지요. 이상한 것은 오래 같이 지냈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잠깐 스쳐 지났지만 심층에 오래 기억되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여기서 ‘나는 무엇인가’를 묻게 되고, 관계론이라는 화두가 생겨난 것이지요.” 오랜 수형 기간 동안 휴지조각과 엽서에 적은 편지글들을 모은 책 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영복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만인 88년에서야 석방되기에 이른다. 김지하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이곳이 아닌 그곳에서의 오랜 단절은 사유의 깊이를 더하는 계기가 되는 모양이다. 그 오랜 사유의 결과로써 생명이라는 또는 고전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것에 대한 성찰을 주문하는 것일 게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애정이 가장 큰 가치 89년부터 현재까지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중인 신영복 교수는 그동안 , , 등의 저서를 펴냈는데, 이번에 내놓은 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금, 여기서 왜 다시 고전인가? “내가 59학번인데 그 세대의 정신적 영역은 매우 불행한 것이었어요.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우리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부심마저 허락되지 않는 불행한 문화였지요. 분단과 군사독재에 저항하면서 열정을 쏟았던 학생운동의 연장선상에서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식민지 의식을 비롯한 근대성에 대한 반성과 시간관념에 대한 반성으로 고전을 읽기 시작하게 되었어요. 동양고전은 과거의 사상이면서 미래의 사상이기 때문이었지요.” 에서는 시경, 서경, 주역을 비롯해 공자(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 등의 사상가를 다루고 있다. 물론 ‘관계론’이라는 관점에서다. 중요한 것은 고전의 근본주의가 아니라 주체로서 나의 관점일텐데, 우리 시대의 실천적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지(知), 앎이란 무엇일까요. 참된 지는 사람에 대해 아는 것입니다. 오늘날 정보화사회에서 진정한 앎이란 무엇일까요. 인간에 대한 이해가 가장 근본적이지요. 우리 사회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관계론을 조금 쉽게 설명하면, 내가 전공이 감옥이므로(웃음), 감옥에 있을 때는 춥고 배고픈 게 힘든 게 아니라 나 때문에 아파할 가족 때문에 괴로운 겁니다. 기쁘고 슬프다는 게 모두 다른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발생하는 거지요.” 따라서 신영복 교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절망적인 것이 인간관계의 황폐화라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가 바로의 사회의 본질인데, 지속성이 없는 만남에서는 사회적 가치를 세우기 어렵다. 익명성을 이용한 인터넷상의 폭력도 그 때문이다. “만남이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일 때 부끄러움이라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지요. 단속에 걸린 사람이 교통경찰에게 다른 사람들도 다 위반하는데 왜 나만 잡느냐고 항의했어요. 그러자 교통경찰은 ‘어부가 바다 고기를 다 잡을 수 있냐’고 대꾸했다지요. 문제는 법규를 위반해서 걸린 사람의 의식구조지요. 우리 사회의 문제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실 가르침은 큰 데 있지 않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는 훨씬 좋아질 것이다. 나아가 한 나라가 부끄러움을 안다면 다른 나라에게 결코 해를 끼치지는 못할 것이다. 관계망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면 물질과 익명성의 시대에, 이러한 성찰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시대의 문제는 속도와 효율, 물질가치가 인간적 가치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감각적인 문화토양에서 근본적인 것을 모색해나가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비디오문화에서 오디오문화로 다시 독서문화로 되돌아가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애정이 가장 큰 가치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의 미래에 희망을 걸었으면 합니다.”
이준희와 기아 카니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극단적인.. 2005-01-26
이 준희(36) 씨는 평범함 자체를 혐오(?)하는 독특한 개성의 소유자다. 그의 개성 가운데 가장 이해하기 쉬운 부분은 자동차에 대한 열정과 집념. 외국인 회사에서 5년여 근무하면서 1년간 외국 생활을 했는데,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1년 동안 타본 차만 100여 대가 넘습니다. 눈에 띄는 차가 나타나면 어떻게 해서라도 시승을 해야만 직성이 풀렸어요. 비슷한 차라도 제각기 다른 성격이 있어요. 그것을 느끼는 순간의 짜릿한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한 가지 더. 이준희 씨는 속도를 즐기는 스피드 매니아이기도 하다. 1994년 처음 마련한 현대 아반떼를 타면서 튜닝에 눈을 뜬 것도 스피드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본지 자매지 을 매달 사 보면서, 튜닝숍과 용품 광고가 나오면 그 면을 찢어서 직접 찾아다니기도 했다. 테일램프 여섯 개나 갈아치워 이준희 씨는 튜닝을 하면서 본능적으로 DIY를 시작했다. 튜닝은 속도에 대한 욕망을 채워 주면서 동시에 자신의 개성이 드러나는 차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DIY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튜닝은 만들어진 부품을 사다 끼우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DIY는 부품을 다른 용도로 쓸 수도 있고,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 수도 있지요. DIY는 획일적인 자동차와 그런 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어요.” 이준희 씨가 처음 손댄 DIY는 아반떼의 센터페시아 패널을 떼어 색을 입히는 것이었다. 간단한 작업이었지만 굉장히 뿌듯하고 보람이 있었다. 이후 DIY에 빠져드는 속도가 빨라졌고, 튜닝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손에 잡히는 물건이 있으면 먼저 DIY에 쓸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본격적인 DIY는 1999년형 카니발로 바꾸면서 시작되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지금은 없어진 서울 청계천 주변을 돌아다니며 DIY 재료를 모았고, 잘 꾸며진 카니발이 있으면 눈여겨 보았다. 그는 카니발을 사자마자 아반떼를 통해 쌓은 실력을 마음껏 쏟아붓기 시작했다. 특별한 관심을 쏟고 있는 테일램프는 여섯 번이나 갈아 치웠다. 작업내용을 사진과 함께 카니발 동호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좋은 반응을 얻었고, 2002년 초에는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마련한 ‘DIY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준희 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DIY 쪽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2002년 초였어요. DIY를 하면서 만든 자료를 바탕으로 DIY 쇼핑몰 ‘다이월드’(www.diyworld.co.kr)를 만들었습니다. DIY에 필요한 재료를 팔기도 했지만 회원들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어요. 지금은 회원이 1천200여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벌이는 시원치 않아요. 불황인데다 요즘은 ‘헝그리 DIY’를 하는 분들이 부쩍 늘었거든요.” 산만한 느낌이 들 정도로 치장된 카니발을 살펴보면서 ‘이것은 왜 붙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의 대답은 한결 같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제가 볼 때는 예쁘고 특별하거든요. DIY를 하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는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일단 해봐야 한다는 것이 제 철학이에요. DIY도 마찬가지입니다. 억눌림 없이 내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 DIY의 매력 아닐까요.” 자신만의 개성을 고집하는 이준희 씨. 다른 사람이 똑같은 DIY를 하고 있으면 미련 없이 뜯어내고 새로이 꾸민다. “남들과 똑같은 DIY는 DIY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좋아하는 일 찾아 끝까지 밀어붙여라 자동차 관련 직.. 2005-01-26
렉서스 월간 최고판매 기록 보유자, D & T 모터스 신동경 부장 2004년 신동경 부장(46)의 손을 거쳐 고객에게 인도된 렉서스는 100여 대. 2003년에 이어 2년 연속 한국토요타자동차 판매왕에 올랐다. 놀라운 사실 하나 더. 2003년 10월과 12월의 월 18대 판매실적은 전세계 렉서스 사원 중 최고기록이라고 한다. 그는 1987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자동차 인생을 시작한다. 영업직은 스스로 원했던 일. 영업은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를 거짓 없이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1996년 포드자동차 강남영업소장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좀이 쑤신다. 10년 동안 몸으로 부닥쳤던 직업병(?)이 도진 것. 2000년 렉서스가 국내에 진출하자 영업직으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개인마다 영업방식이 다르지만 신 부장은 너무나도 차분하고 조용한 스타일이다. 고객을 만나고, 설득하며 결과를 이끌어내야 하는 직업을 생각했을 때 의외다. 그러나 이 점이 현재의 그를 있게 만든, 신 부장만의 영업비결이다. “수입차 고객은 40∼50대의 중년층입니다. 차를 팔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들의 편한 대화 상대가 되려고 합니다.” 장황한 설명과 함께 차 자랑을 늘어놓기보다는 먼저 고객들의 불편사항, 요구사항을 듣고 해결해 주려고 노력한다. 신 부장은 “최선을 다하지만 선택은 고객이 한다”면서 어느 누구를 만나든, 절대로 편견을 갖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집중력과 끈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한 고객은 2년여의 노력 끝에 단골로 만들 수 있었다. “당신의 친절에, 당신의 끈기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라는 고객의 말이 기억에 남아 있다. 신 부장이 확보한 고객 명단은 4천여 명. 이름과 얼굴을 조합할 수 있는 고객만 2천여 명이다. 현대자동차에서 일할 때 인연을 맺은 고객이 이제는 렉서스 고객이자 또 다른 영업동지라는 말도 덧붙인다. 한 달 18대라는 세계기록은 한눈 팔지 않고, 한 우물만 팠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가 후배들에게 전하는 한 마디.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어려운 시기라고들 합니다. 반대로 자신을 단련시킬 수 있는 좋은 때입니다. 시간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조바심 갖지 말고 끝까지 밀어붙이세요.” 2002∼2004년 보험왕 3연패, 삼성화재 조근옥 팀장 하나, 사무실 습격사건. 초대받지 않은 인물이지만 ‘굿모닝’이라는 싱그러운 아침인사와 함께 사무실에 들어간다. 하루, 이틀, 사흘….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사무실에, 그것도 자기 집 안방처럼 드나드니 다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하지만 굴하지 않는다. 갑자기 일이 생겨 며칠 못 나가게 되자 이게 웬일? 그녀가 나타나지 않자 그 사람들이 오히려 걱정을 한다. 다시 출근 도장을 찍던 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며 더 관심을 갖더란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람을 끌어 모으는 힘, 그녀가 강조하는 첫 번째 팁은 ‘고정관념’을 깨자. 둘, 조근옥(46) 팀장이 고객에게 가장 먼저 하는 말은 “사고가 났을 때 보험회사보다 자신에게 먼저 전화를 해달라”는 것. 사고가 나면 당황하게 되고, 제대로 진술을 못해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명함에는 집, 사무실, 휴대폰 등 자신과 관계되는 모든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그것도 모자라 고객에게 펜을 건네주며 몇 개 더 적어 놓으라고 권한다. 또 그녀는 언제, 어느 장소에서도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꼭 챙기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비닐 주머니다. 목욕탕에도 휴대폰을 갖고 들어가기 위해서다. 셋,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반드시 자존심은 지킨다. 그녀는 빼어난 노래솜씨를 자랑한다. 고객의 경조사를 잊지 않고, 특히 경사가 있을 때면 노랫가락으로 흥을 돋구는 것도 조 팀장의 몫이었다. 하지만 절대 자존심은 버리지 않는다. 고객에게 보험을 권할 때 쓰는 말은 딱 하나. ‘보험 좀 들어 주세요’가 아니라 ‘보험에 가입하십시오’다. “다른 말입니다. 부탁이 아니라 권유예요. 보험은 고객을 위한 상품이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보험을 권할 때 고객에게 가장 필요한 상품만 추천하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했고, 자신이 가해자·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넷. “목표를 세우십시오. 작게는 한 시간, 하루 목표부터 10년 뒤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종이에 적어 보세요. 그리고 종이에 적었던 목표에 대한 책임을 지십시오.” 앞으로 십 년 뒤, 멋진 펜션을 지어 고객을 위해, 갈 곳 없는 노인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조근옥 팀장. 그 목표를 꼭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명장’이 전하는 따뜻한 마음, 현대자동차 서부사업소 김수길 반장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처음부터 너무 높고, 좋은 자리에서 시작하면 재미없잖아요. 눈을 조금만 낮추세요. 단계를 밟으면서 업그레이드시켜 나가면 됩니다.”  현대자동차 서부사업소 김수길(47) 반장의 말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취업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고, 첫 직장이 자동차 정비업소였다. 군 입대·제대를 거치며 제대로 된 정비사가 될 것을 다짐한다. 차근차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차를 일부러 고장낸 뒤 분해·조립하기를 수십 번. 저녁에는 자격증 시험에 매달렸다. 폐차 직전 차가 자신의 손을 거쳐 제대로 굴러가는 것을 볼 때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1988년 실력을 인정받아 현대자동차에 입사하고 1992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자동차검사 2급 자격증을 딴다. 이때부터 후배들과 정비기술을 나누고 싶어진다. “정비를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알고 싶은데 선배들이 가르쳐 주지 않을 때, 차를 고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못 고칠 때였습니다.” 지금도 계속되는 교육은 후배들을 가르치기보다는 토의하면서 서로 배워 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1998년 자동차 정비 기능장을 획득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999년에는 마흔을 넘긴 나이로 서울산업대 자동차공학과에 입학하는 정열을 보여준다. 기능장이라는 최고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걸 몸소 실천한 셈이다. 그리고 2003년 대한민국 자동차정비 ‘명장’으로 선정된다. 지금은 대학원 2학기 과정을 다니면서 서울정수기능대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그의 기름밥 27년이 곧 대한민국 자동차 정비의 역사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김 반장은 고객이 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었다고 말한다. 고객이 맡긴 차의 문제점을 찾지 못해 힘들 때도 있지만 “고생합니다”라는 따뜻한 한마디와 “좀더 찾아보겠습니다”라는 짧지만 긴 여운을 주는 대화가 있기에 꿋꿋하게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직원이든 손님이든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일이 정비 아닙니까. 차를 고치는 것만큼이나 고객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중요합니다.”  대한민국 자동차 정비부분 명장, 김수길 반장이 마지막으로 전한 말이다. 국내 모터스포츠 미캐닉계의 맏형, 현대레이싱 & 커뮤니케이션 백성기 기술팀장 자동차경주에서 우승해 표창대에 오르는 주인공은 드라이버다. 화려한 주연 뒤에는 묵묵히 땀 흘리는 조연이 있기 마련. 드라이버 역시 조연이 있기에 우승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조연은 경주차의 세팅과 유지, 관리를 책임지는 미캐닉이다. 국내 최고의 미캐닉으로, 미캐닉계의 맏형으로 통하는 현대레이싱 & 커뮤니케이션의 백성기(37) 기술팀장을 만났다. 겨울에는 모터스포츠가 열리지 않아 맘 편히 지낼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시즌 때보다도 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프로야구 선수의 1년 성적이 스토브리그 때 얼마나 체력을 단련하고 기술을 쌓았는지에 좌우되는 것처럼 모터스포츠 역시 겨울 준비가 중요하다. 더욱이 최고 자리를 지키던 팀이 2년째 우승컵을 다른 팀에 내주어야 했기에 더 열심히 뛸 수밖에 없다. 친구 손에 끌려 레이싱팀을 찾아간 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초보 미캐닉에게는 주어지는 일은 잡일밖에 없었지만, 경주차는 한없이 흥미롭고 새로운 세계였다. 1995년 오일뱅크 소속이 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팀 재정이 넉넉해 선진국에 기술연수도 갔다 올 수 있었다. 국내 최고의 미캐닉으로 꼽히지만 국내 모터스포츠가 아직 활성화되지 못했기에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외로움’도 있다. 초창기에는 미캐닉이 되기 위해 팀을 찾아오는 예비 미캐닉이 많았지만 요즘은 수가 줄어들어 안타깝다. 그가 매캐닉 일에 몰두하는 것은 재미있기 때문. “미캐닉의 일은 끝이 없습니다. 우승을 하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졌을 때는 우승컵을 되찾기 위해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요.” 빼앗기고 되찾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고 설명한다. 2004년 렉서스가 모터스포츠에 뛰어들었고, 여기에 자극을 받은 국내 메이커도 모터스포츠 참가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되면 할 일이 더 많아지고, 작업분야도 한층 세분화될 것이다. 백 팀장은 미캐닉이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긴 안목에서 엔지니어의 길도 고려해 보라고 권한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일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세요. 그래야 일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고, 의욕도 생기니까요.”
한불모터스 송승철 대표 멋과 실용성 겸비한 왜건으로.. 2005-01-25
한국을 떠난 지 5년 만인 2003년 8월 국내 판매를 재개한 푸조. ‘차분하게’ 지난 1년을 뒤돌아보고 새해 설계를 하는 연말연시지만 푸조의 공식수입업체 한불모터스에는 이런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말 그대로 정신없이 바쁘다. 남들은 경기침체로 최대한 몸을 낮춘다고 하지만 반대로 공격적인 마켓팅을 펼치고 있는 것. 한불모터스는 최근 몇 달 사이에 잇따라 새 모델을 발표했다. 푸조의 활약을 총지휘하는 한불모터스 송승철(48) 대표를 만나 보았다. 송승철 대표가 수입차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6년, 코오롱상사 BMW 사업부에 몸 담으면서다. 그 후 사브 등을 거쳐 2003년 한불모터스 사령탑이 되었다. 수입차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만큼 영업·마케팅 쪽에서 역량을 인정받았고, 결국 푸조의 국내 수입권을 따냈다. 디젤 모델 더해 경쟁력 강화 송 대표는 먼저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의 푸조 위상을 들려주었다. ‘푸조는 현재 자동차 생산 세계 6위, 유럽 2위를 달리고 있으며, 2006년 연간 400만 대 판매를 목표로 한다. 그는 미국 빅3에 합병되지 않고 이런 결과를 낸 것만으로도 푸조의 역사와 품질이 입증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맥을 못춘다. 수입차 고객들이 독일과 일본 브랜드를 선호하기 때문. 2003년 들여온 206CC와 307SW로 인기몰이에 성공했으나 아직 국내는 프랑스차에 대한 인식이 떨어진다. 그러나 한불모터스는 최근 세단 407에 이어 407SW와 206SW까지 들여와 SW 라인을 완성시켰다. 이런 적극적인 판매정책을 놓고 ‘무리가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도 들린다. SW와 같은 왜건은 국내에서 잘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왜건의 대표격인 볼보까지 두 손을 들었을 정도로 국내 시장은 세단과 SUV로 양분화되어 있다. 하지만 송 대표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이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SW 삼총사는 보수적인 왜건이 아니라 파격적인 스타일링을 갖춘 패션카로서 틈새시장을 노려볼 만하다는 것. “석 대의 SW 모두 독특한 색깔을 갖추고 있는, 개성 넘치는 차들입니다. 206SW가 앙증맞다면 307SW는 시원스럽고 407SW는 중후한 맛이 풍기지요. 모두 실용성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습니다.” 2004년 100여 대의 307SW가 주인을 찾았다며, 307SW 매니아층이 생겼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독특한 개성에 더해진 깊이 있는 맛도 푸조만의 개성이다. 송 대표는 프랑스의 예술을 예로 들었다. “예술이라는 것이 처음 접했을 때는 재미없고 따분하지만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중독성이 강합니다. 푸조차도 마찬가지예요. 음미하는 맛이 일품입니다.” 다른 수입차에 비해 값이 저렴한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206SW는 국산 SUV나 중형 세단과 비슷한 2천800만 원, 407SW가 4천290만 원이니 조금만 긴축재정을 하면 프랑스차의 아름다운 선율을 느껴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푸조의 또 다른 장점은 유럽 최고 수준의 디젤 승용차 기술. 2005년 상반기 SW 디젤을 들여오면 푸조의 인기는 더욱 올라갈 전망이다. 송 대표는 디젤 승용차의 인기몰이를 확신하고 있다. “디젤 모델을 들여오면 블라인드 테스트를 계획하고 있어요. ‘털털거린다’고 생각하는 디젤 엔진이 절대 아닙니다. 휘발유 엔진인지 디젤 엔진을 얹었는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 한불모터스는 2005년 원스톱 서비스 시설을 갖춘 전시장을 16개로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푸조가 멋진 왜건을 앞세워 세단과 SUV로 굳어진 국내 자동차 시장에 다양화의 바람을 몰고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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