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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야에너지 유정우 대표 “깨끗한 환경을 원.. 2005-06-15
‘지구의 날’인 지난 4월 22일, 대전에서는 색다른 행사가 열렸다. 대전환경운동연합 부설 시민환경기술센터가 바이오 디젤을 넣은 차를 시범 운행한 것이다. 양옆으로 유채꽃이 활짝 핀 도로를 바이오 디젤을 먹은 자동차가 시원스레 내달렸다. 이날 행사에는 연간 생산량 10만 톤 규모의 세계적인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는 바이오 디젤 생산업체 (주)가야에너지의 유정우 대표도 참석했다. 유 대표는 행사에서 바이오 디젤의 장점을 설명하고 바이오 디젤이 엔진에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바이오 디젤은 콩, 유채 씨, 해바라기 씨 등에서 뽑아낸 기름이나 폐식용유를 알코올과 반응시켜 만든 새로운 형태의 연료다. 디젤과 특성이 같지만 디젤보다 오염물질을 적게 내뿜어 차세대 에너지로 떠오르고 있다. 독일, 프랑스, 미국 등에서는 1990년대부터 상용화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4월 23일 산업자원부가 ‘바이오 디젤을 연료로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석유 및 석유 대체연료 사업법’을 내놓으면서 합법적인 연료로 인정받게 되었다. 바이오 디젤은 현재 전국 75개 주유소에서 판매되고 있다. “바이오 디젤, 자동차에 넣어도 문제없어” 유정우 대표가 바이오 디젤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국립과학원(INPT)에서 교수로 재직중 식물성 기름으로 에너지를 만드는 일을 연구하면서부터다. 유 대표는 바이오 디젤이 한국에서 새로운 대체 에너지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2002년 한국에 돌아와 바이오 디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지난 5월 10일 가야에너지로 이름이 바뀐 당시 신한에너지의 연구소장이 그가 맡은 첫 직책이었다. “당시에는 아무도 바이오 디젤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때 디젤 값이 500원 안팎이었는데 바이오 디젤은 1천 원이 넘었으니 개발을 해 봐야 누가 사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보는 장사였지요. 하지만 전 우리나라에서 바이오 디젤의 성장가능성은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기술을 개발하면 아시아 시장까지 넘볼 수 있으니까요.”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디젤 값이 1천 원을 넘어서고 세계적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바이오 디젤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수십 차례의 테스트 결과 자동차 엔진에 전혀 해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되자 바이오 디젤 보급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는 땅에 유채 심기’다. “저희 회사에서는 폐식용유를 이용해 바이오 디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생산량이 많지 않아 폐식용유를 조달하는 일에 문제가 없지만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100만 톤 규모를 생산하려면 앞으로 원료를 얻는 일이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를 것입니다. 양질의 폐식용유를 얻는 일이 쉽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원료를 직접 재배하자는 것입니다. 노는 땅에 원료가 되는 유채를 심으면 땅을 활용할 수 있어 좋고 농민들도 수입을 얻을 수 있어 좋지요.” 여러 농작물 가운데 유채를 선택한 것은 유채가 콩이나 해바라기처럼 식량작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량작물은 정부에서 지원을 하지 못하도록 WTO가 규제를 하고 있지만 유채는 식량작물이 아니므로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유채는 다른 작물과 이모작을 할 수 있어 효율도 높다. 현재 경북 경산에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유채를 시범적으로 재배하고 있다. 국내에서 바이오 디젤을 생산하는 업체는 많지만 산업자원부의 허가를 받은 업체는 가야에너지와 BDK, 에코에너텍, 우리정유 등 모두 4곳이다. 이 가운데 가야에너지는 어떤 원료로도 바이오 디젤을 만들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그만큼 다양한 원료를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바이오 디젤이 일반 디젤과 다른 점이라면 오염물질을 적게 내놓는다는 것입니다. 바이오 디젤 자체에 산소가 11% 들어 있어 완전연소를 유도하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바이오 디젤은 윤활성이 좋아 엔진을 덜 닳게 합니다. 이 때문에 자동차의 수명도 훨씬 길어지지요. 소음도 적어지고요.” 가야에너지가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바이오 디젤은 바이오 디젤과 디젤을 20: 80의 비율로 섞은 바이오 디젤 혼합유(BD-20)이지만 가야에너지 직원들은 바이오 디젤 100%로 이루어진 BD-100을 차에 넣고 있다. 직접 사용해 보고 좋은 점, 나쁜 점을 가려내자는 취지에서다. 유정우 대표는 “15만km 이상을 달린 차에서도 아무런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며 바이오 디젤의 품질에 대해 확신했다. 대기오염의 가장 큰 원인은 자동차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다. 이것을 10%만 줄여도 우리는 깨끗한 공기를 누릴 수 있다. “우리가 바이오 디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유정우 대표는 힘주어 말한다. Z
현기사 오일압 쇼크 업소버의 장인 2005-06-15
한 분야에서 명성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열정과 실력 그리고 전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마스터피스’(masterpiece), 즉 장인이란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달의 이색튜너로 만난 현기사는 지금껏 쇼크 업소버 하나만 다뤄온 업체로 열정, 실력 그리고 30년이란 전통을 갖춘 서스펜션 분야의 마스터피스다. 현기사는 지난 1975년 부산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당시 현기사의 김규현 사장은 19세 나이로 작업장이나 공장 등에서 서스펜션 및 쇼크 업소버를 만드는 일을 어깨 넘어로 배워왔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순정 쇼크 업소버를 오일압을 이용해 개조하는 것으로 그는 가스식 쇼크 업소버 이상의 성능을 내는 ‘오일압 쇼크 업소버’라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개념의 서스펜션 제품을 만들어냈다. 그의 기술력은 부산 등에서 입소문을 탔고 값이 비싼 수입 가스 쇼크 업소버를 달기 어렵거나 오너의 스타일에 맞는 서스펜션 세팅을 원하는 고객들이 점점 ‘오일압 쇼크 업소버’를 찾기 시작했다. 이후 1990년, 현기사는 서울에서 자사의 기술력을 도전해 보고자 자동차부품 업체가 많은 동대문구 장안동에 새로 문을 열고 15년간 한 자리를 지켜왔다. 모터스포츠와 함께 현기사의 실력 소문나 현기사는 90년대 초 튜닝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 젊은이들에게 소리 없이 이름이 퍼져 나갔다. 그 이유는 어렵게 구한 수입제 쇼크 업소버를 능숙하게 다룰 만큼 작업솜씨가 일품이었고 개인취향에 맞는 쇼크 업소버와 스프링의 세팅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이후 현기사는 국내 모터스포츠 경기가 활성화되면서 선수나 레이싱 팀에서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초기 모터스포츠는 온로드가 아닌 오프로드 위주의 경주가 많다보니 현기사 제품들은 오프로드 동호회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 온로드 경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서스펜션 튜닝의 역할이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 튜닝키트를 수입에 의존했고 특히 쇼크 업소버는 국산 튜닝제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문제는 이것들을 다룰 전문가가 부족했다. 선수들은 현기사에 경주용 차의 서스펜션 세팅을 맡기거나 현기사가 제작한 오일압 쇼크 업소버를 달기도 했다. 90년대 후반, 한적한 도로나 텅 빈 장소 등에서 행해지는 비공식 드래그 레이스 등이 차를 좋아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튜닝의 방향도 차체를 낮추거나 코너링 성능을 높이는 서스펜션 튜닝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수입 제품은 값이 만만치가 않다보니 작게는 40만 원에서부터 많게는 200만 원 이상으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오너들의 경우엔 쉽게 선택할 수 없었다. 그들이 찾은 대안은 바로 현기사의 오일압 쇼크 업소버. 수입제보다 저렴한 값으로 용인 레이스 등에서 입증된 성능이 입소문을 탔다. 또한 오너가 원하는 만큼 감쇠력이나 차체 높낮이를 조절해주니 튜닝용으로 오일압 쇼크 업소버를 찾는 고객들이 하나 둘 늘어났고 현기사도 기존의 오일압 쇼크 업소버의 성능을 높인 제품 등을 개발하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현기사는 현재 김규현 사장과 그의 동생인 김삼현 씨가 오일압 쇼크 업소버 개조 및 제품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하루 평균 작업 대수는 많게는 5대, 적게는 2대 정도로 대형 튜닝숍이나 서스펜션 전문점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렇게 많아 보이진 않는다. 주력 제품은 오일압 쇼크 업소버로 고객들의 차에 알맞게 하드 타입과 소프트 타입을 준비하고 있다. 이밖에 가스식 쇼크 업소버도 작업을 하는데 보통 주문생산으로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때에 쇼크 업소버 하나만 다룬다면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이런 의문은 김사장의 말을 들어보니 괜한 우려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한 가지만 해도 그 분야에서 일등이 될 수 있다면 여러 우물을 파는 것보다 한 우물을 파는 편이 낫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제품 노하우의 숨은 비결은 ‘꾸준함’ 현기사는 제품 판매 후 애프터서비스가 좋기로 유명하다. 아무래도 서스펜션을 다루다보면 작업 후 차체 높이나 감쇠력 등을 이유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오너들이 다시 찾아오는 일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별말 없이 오너가 원하는 대로 몇 번이건 다시 해준다고 하는데 지나치게 낮거나 하드한 경우는 오너의 안전을 위해 작업 전 미리 당부를 한다고 했다. 혹시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공개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니 김사장은 “떡볶이 집 고추장은 며느리한테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던데”라며 웃음을 짓더니 특별한 노하우는 바로 ‘꾸준함’이라고 한다. 고객에게도 꾸준하게 제품개발도 꾸준하게 하다보면 한 분야에서 이름을 남기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뒤이어 대를 이어갈 생각이냐는 물음에 “선반 작업, 용접 및 고객을 대하는 서비스 정신 등을 모두 갖춰야 하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손에 기름 묻히는 일을 꺼려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대답하지만 내심 자신의 뒤를 이어 현기사를 이끌어 나갈 인재를 기대하는 눈치도 살짝 엿보인다. 현기사는 요즘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 시작으로 인터넷 사이트(www.hsorber.com)를 개설하는 등 온라인 마케팅도 앞으로 점차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이제 장안동에 자리한 업체라는 인식을 버리고 전국 어디에서나 인터넷을 통해 제품 정보와 쇼크 업소버에 대한 자료 등을 쉽게 얻을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렇듯 국내에서도 튜닝이라는 한 분야만 전념하는 튜너들이 아직 건재한 것을 보면 국내 튜닝산업도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새로운 변화가 성공을 거두길 빌며 현기사의 꾸준함 또한 계속 이어지길 바래본다. Z
자동차 광고사진작가 민병선 차와 사진에 매력을 느낀.. 2005-05-20
1. 소속과 직책, 걸어온 길 어린 시절에는 뷰파인더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매력에 빠져 마냥 즐거웠다. 학창시절 열성적인 사진부원으로 카메라를 끼고 살다가 군을 제대한 뒤 본격적으로 사진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 90년 스튜디오 문하생으로 첫발을 내딛고 92년부터 세영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으며 현재 자동차 광고사진 실장을 맡고 있다. 나는 인물보다는 사물을 담아내는데 관심이 많다. 스스로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즐기는 편인데 배경을 바꾸거나 제품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사실이 매력적이다. 평소 ‘민가이버’라 불릴 만큼 손재주가 뛰어나 스튜디오 세트를 직접 만들기도 한다. 세영 스튜디오는 90년대 초 현대차와 대우차, 쌍용차 등 국산차 지면광고 대부분을 도맡았던 업체다. 토요타 등의 광고를 만든 마에다 선생의 도움을 받아 일본 사진기술이 알게 모르게 배어들었던 시절이다. 현재는 우리만의 노하우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2. 참여했던 작품과 기억에 남는 차 기억에 남는 작업으로는 GM대우 마티즈 신문광고와 르노삼성 SM5 카탈로그, 기아 쏘렌토 카탈로그 등이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철저한 준비기간을 거쳐 꼬박 넉 달 동안 매어있었던 쏘렌토 카탈로그 제작이다. 뚜렷한 기억을 남긴 차는 이율곡 기념관 근처 계곡에서 찍었던 기아 스포티지. 눈 속에서 사투를 벌이며 힘들게 진행했지만 자연과 어우러지는 맛이 근사했고 예상외로 뛰어난 오프로드 주파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야외촬영은 대부분 사람이 드물고 빛이 좋은 곳을 찾기 때문에 깨끗한 자연에서 일하게 된다. 매순간 힘든 작업을 끝내고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이유다. 3. 자동차 광고사진을 분야별로 나눈다면? 차를 찍는 사진작업은 다양한 분야가 있을 것이다. 모터스포츠 촬영에 관심이 많다면 현실적으로 사진기자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광고사진에 흥미가 있다면 전문 스튜디오에서 경험을 쌓아야 실력이 는다. 국내 광고시장은 해외처럼 스튜디오와 로케이션으로 나뉘지 않기 때문이다. 로케이션은 야외나 해외로 차를 가져나가 자연광을 써서 찍는 방식. 해가 뜨고 질 때를 제일로 치지만 최근에는 주광을 많이 쓰는 추세다. 팀이 함께 움직이고 차를 끌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사전 계획이 매우 중요하고 빛을 위해 보통 새벽부터 촬영을 준비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실내에서 인공조명을 쓰는 스튜디오 촬영은 빛을 잘 다루어야 한다. 차 표면은 광택이 번지기 때문에 빛의 반사를 써서 찍는다. 조명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고 배경이 평평한지 둥근 돔인지에 따라 작품의 깊이가 결정된다. 최근에는 뱅크 시스템을 갖춘 스튜디오도 늘어나는 추세다. 4. 자동차 광고사진작가에 맞는 성격은? 이 일은 차와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직업이다. 새차를 가장 먼저 만날 수 있고 촬영을 위해 직접 지붕을 자르기도 한다. 디자인 흐름을 읽다보면 차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덤으로 얻는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라면 금상첨화. 유행을 알기 위한 해외 모터쇼 참가를 비롯해 로케이션 촬영 등 출장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특성은 끈기와 집중력. 단순하게 사물의 껍데기만 보면 사진의 입체감이 사라진다. 3차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항상 연구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광고 사진작가의 자질을 갖춘 셈이다. 광고특성에 대한 이해도 빼놓을 수 없다. 예술성에 매달려 납기일을 놓치면 아무리 열심히 일했어도 ‘말짱 도루묵’이다. 자기만족도 중요하지만 전체를 보는 눈을 길러야 하는 이유다. 또한 팀을 꾸려 일하므로 팀원들과의 친화력은 무엇보다 갖춰야 할 기본성격이다. 5. 자동차 광고사진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자동차 사진을 배우려면 차를 찍는 곳에서 일을 시작해야 한다. 팔 걷어 부치고 이것저것 성실하게 배우다보면 기술은 자연스레 몸에 밴다. 선배의 지시에 따라 카메라를 옮기고 조명을 치다보면 전체적인 감각을 익히게 되면서 그 흐름을 이끄는 힘도 몸에 배게 된다. 이런 생생한 현장경험은 학교나 책에서는 얻지 못하는 자신만의 재산이다. 한 예로 맥주병을 사진으로 담으려 해도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거품을 독특한 질감으로 표현하고 병의 곡선을 살리려면 최소 2∼3일 동안 매달려야 한다. 멋진 앵글을 잡았는데 맥주거품이 빠져버리면 잔을 움직이지 않고 빨대로 빨아내는데, 나중에는 냄새만 맡아도 취하게 될 정도다. (웃음) 팀은 팀장과 4∼5년차 사진작가, 2년차 작가와 막내로 구성된다. 전원이 모여 컨셉트 회의를 통해 차의 개성을 짚어내고 작업에 들어간다. 보통 현장경험이 3년 정도 쌓이면 촬영의 흐름을 읽어내고 5년차가 되면 차의 포인트를 짚어낸다. 이른바 느낌을 살리는 앵글을 직접 뽑아내고 차를 잘 표현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6. 자동차 광고사진작가의 일상은 어떤가? 9시에 나와 6시 퇴근하는 것은 여느 직장과 다를 바 없다. 반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출퇴근이 불규칙해진다. 스튜디오나 로케이션 등 촬영방식과 차종에 따라 기간이 달라지지만 일정기간 일에 매여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많다. 새차가 나오면 먼저 기획회의를 통해 차의 특징을 논의한다. 실제 촬영 때는 일의 집중도에 따라 밤낮없이 매달리기도 하므로 미리 체력을 다져놓아야 한다. 한편 촬영 외에 일의 특성상 보안에도 무척 신경을 써야 한다. 새차가 데뷔하기 전에 스파이 샷이 떠돌면 곤란하기 때문. 한때 이를 막으려고 천을 두른 이동차를 만들어 싣고 다녔지만 최근에는 윙 보디를 쓰는 등 여건이 많이 나아졌다. 7. 자동차 광고사진작가가 되려는 이들에게 일의 강도가 높기 때문에 열정 하나로 쉽게 뛰어들 분야는 아니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자동차 사진에서 무언가를 이루려면 장기적인 비전과 목표를 두고 여유를 가져야만 한다. 진행 어시스트로 시작해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팀장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노력과 재능에 따라 다르겠지만 1∼2년의 촬영조수 역할은 필수다. 차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한 컷에 담아내려면 내공이 쌓여야하기 때문이다. 보통 7∼8년은 차와 카메라를 만져야 뚜렷한 감각이 생겨 사진작가로 대접받을 수 있다. 정도는 사진학과에 들어가 기초를 쌓는 동시에 차에 대한 공부도 병행하는 것이다. 물론 학력과 상관없이 현장에 바로 뛰어드는 친구도 있지만 뭐든 기초가 튼튼해야 하는 법이다.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바탕으로 전문분야의 기술을 현장에서 쌓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다. 사람에 따라 일처리 방식이나 사물에 대한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일을 배울 때는 다양한 방식을 배워두는 것이 좋다.
랜드로버오너스클럽 회원 신영록 오지 마을 무료의료봉.. 2005-05-20
신영록 원장은 처음에 기자로부터 전화로 인터뷰 제의를 받자,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이유는 소문나는 것이 싫어서였다. “제가 한 것이 뭐가 있다고……. 인터뷰를 할 정도로 좋은 일을 한 적도 없고요. 설상 제가 좋은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소문나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꽤 긴 통화 후 신 원장은 편하게 만나자는 기자의 말에 마음의 문을 열었고, 그의 집으로 초대를 했다. 의료봉사는 의사로서 가장 보람 있는 일 현재 랜드로버오너스클럽 회원인 신 씨가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를 몰게 된 것은 랜드로버를 보자마자 차에서 풍기는 카리스마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 저는 차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특히 네바퀴굴림 차는 더더욱 그러했지요. 그런데 우연찮게 랜드로버 전시장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랜드로버를 보고 처음으로 차에게서 카리스마를 느꼈어요.” 자신이 랜드로버에게 처음 반했을 때를 생각하는 신 원장의 얼굴에 미소가 묻어난다. “랜드로버가 좋은 이유는 변화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지요. 요즘 차들을 보면 너무 자주 바뀌는 것 같아요. 알맹이는 똑같은데 겉모습만 바뀌는 차들 정말 싫어요. 제 나이가 지금 40이 넘었는데 이 나이가 되면 차를 하나 선택할 때도 자신의 철학이 들어가게 되더군요. 저는 사람이든 차든 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신 원장이 이번에 찾아가 의료봉사를 한 곳은 강원도 춘천의 물로리라는 곳인데 호수주변에 고즈넉이 자리한 마을이다. 이곳에서 춘천에 나가기 위해서는 굽이치는 산길을 타고 가거나, 배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배가 4시간에 한번씩 다녀 교통이 매우 불편한 곳이다. “제가 처음 이 행사에 참여했을 때인데, 그때도 의료봉사 대상 마을이 물로리였어요. 그때 제 랜드로버에 의료기계인 초음파검사기계를 싣고 갔었죠. 그러고는 얼마 후 그 기계를 폐기 처분했어요. 왜냐하면 물로리 가는 길이 너무 험해 차가 많이 흔들려서 기계가 그만 고장나버렸지 뭡니까?(웃음)” 신 원장은 지금껏 열린 이 행사에 3번 모두 참가했고, 랜드로버와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이미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의료봉사를 실천 중이다. “사실 의료봉사라는 것은 순수한 마음에서 해야 하는 것이거든요. 랜드로버와 연관지어 행사를 하게 되면 자칫‘상업적’이라는 오해를 받을까봐 걱정이 됩니다. 저뿐 아니라 참가하는 분들의 마음은 모두 순수하거든요. 앞으로 개인적이든 단체로 하든 의료봉사를 계속 해나갈 예정입니다.” 신 원장은 의료봉사에 대한 개념을 좀 더 확대해서 재난상황이 발생할 때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긴급구호에 한 몫 하겠다고 밝혔다. “기회가 닫는다면 저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한 아프리카와 같은 최빈국에 가서 의료봉사도 해봤으면 해요. 감상에 빠져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의사로서 정말 보람 있는 일이기에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신 원장이 병원 업무를 마치고 집에 오면 주로 하는 일은 클래식 기타를 치는 것이다. 기자가 한 곡 부탁했더니 멋들어지게 연주를 했다. “저는 골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골프 안친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더군요. 솔직히 말해서 골프는 할 일이 없는 사람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하는 운동 같아서 싫습니다. 저는 산책을 주로 즐겨요. 걸으면서 사색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이번 행사는 랜드로버가 아무리 험하고 먼 오지라도 갈 수 있다는 이미지를 살리기 위한 마케팅 전략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조차도 같은 맥락으로 취급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남을 위해 봉사를 한다는 자체가 무조건적으로 칭찬받아 마땅할 일이기 때문이다.
봄꽃을 닮은 그녀들, 2005 서울모터쇼 공식 도우미 .. 2005-05-11
봄소식은 화사하게 피는 봄꽃으로부터 전해오는데, 이번 봄은 여느 때와는 달리 늦장을 부리며 새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애를 태웠다. 그러나 다행이도 기자는 누구보다 먼저 꽃을 맞이했다. 봄꽃의 때늦은 출현에 반기라도 들듯 꽃보다 아름다운 그녀들이 여의도에 나타난 것이다. 이들의 정체는 2005 서울모터쇼의 공식 도우미 3인방. 모터쇼의 주인공은 당연히 화려한 컨셉트카와 새차다. 하지만 주인공이 부각되기 위해서는 감초 역할을 하는 조연들이 필요한 법. 서울모터쇼의 별미, 공식 도우미들을 만났다. 이들은 현재 레이싱걸과 모델로 활동 중이고 2005 서울모터쇼의 공식 도우미로 선발된 데에 대한 자부심이 큰 만큼 모터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조용한 성격에 차분한 말투가 인상적인 김유연 씨는 현재 한국타이어에 소속되어 레이싱걸로 활발하게 활동중이다. 처음 기자와 만났을 때 약간 낯을 가리는 듯 했으나, 카메라 앞에 선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짝 웃으면서 프로다운 면모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서울모터쇼에 임하는 간단한 각오를 들어보았다. “서울모터쇼 공식 도우미는 누구나 다 뽑힐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한다는 데에 대한 굉장한 자부심이 있어요. 서울모터쇼에 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고, 서울모터쇼를 알리는 데 제가 제일 먼저 앞장 설 겁니다.” 적어도 서울모터쇼의 공식 도우미라면 모터쇼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 정도는 필요할 터, 과연 모터쇼에 대해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다. “이젠 모터쇼가 더 이상 차에 관심이 많은 분들과 모델만을 위한 잔치가 아니라고 봅니다. 자동차문화가 많이 보편화되어 모터쇼도 대중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고 앞으로 우리 생활과 더욱 가까워질 것 같아요.” 레이싱걸에 대한 김유미 씨의 생각이 궁금했다. “레이싱걸이 단순히 눈요기를 위해 차 옆에 서 있는 모델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아요. 자동차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레이싱걸이라는 직종을 더욱 전문화시키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지요. 저는 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최고가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 3명의 도우미 중 가장 활발하고 애교가 넘치는 이가 바로 이민경 씨다. 인터뷰 내내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고, 기자로 하여금 편안하게 진행하도록 도와 준 장본인이다. 서울모터쇼를 위해 현재 준비하고 있는 것들을 질문해 보았다. “모터쇼에 대한 교육을 워크샵 등을 통해 계속해서 받고 있습니다. 주요 내용은 이번 모터쇼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어디에 뭐가 있는지, 어떤 부대행사가 있는지 등이고 현재 이러한 정보들을 전시장에 찾아오신 분들에게 어떻게 잘 설명할 것인지 연습 중이에요.” 이민경 씨는 레이싱걸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도우미 경험도 많다. 도우미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되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도우미를 하면서 많은 전시회를 경험하다 보니 다양한 지식을 갖게 되어 좋은 것 같아요. 남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분야를 알게 된다는 장점이 이 일의 매력이에요. 모터쇼도 물론 마찬가지이지요.” 도우미나 모델 일을 하다보면 개인적으로 좋은 일도 많겠지만 애로사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시종일관 밝은 미소로 인터뷰에 응하던 이민경 씨도 힘들었던 일들을 말할 때는 사뭇 진지해졌다. “레이싱걸이나 모델 일이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일이다 보니 표정관리와 좋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요. 지금은 어느 정도 몸에 익숙해 별 어려움이 없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몸이 아플 때는 정말 힘들어요. 저희 일이라는 게 서서 일할 때가 많고 내레이션도 같이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아프지 않기 위해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 해야 하고, 운동도 꾸준히 해야만 해요.” ●● 송정화 씨는 세 명의 도우미 중 가장 이색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다. 원래부터 모델 일을 해 온 것이 아니라 최근에야 이 분야에 몸담게 되었다. 전시 모델 일을 하기 전에는 이벤트 회사의 사무직에 근무했는데 갑자기 외도를 하게 된 것이다. “이벤트 직종에 근무하다 보니 전시 모델 일을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워낙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이 일이 제 적성에 잘 맞는 것 같아요.” 송정화 씨를 표현할 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레몬이다. 귀여운 이미지에서 풍기는 상큼함이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리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가장 가식적이지 않고 솔직하게 답변을 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기자에게는 대외적인 인터뷰용 답변보다는 포장 없이 진솔하게 이야기를 하는 취재원이 반갑다. “솔직히 말해 저는 자동차 분야가 낯설어요. 다른 두 분은 현재 레이싱걸로 일하고 있지만 저는 아직 레이싱걸 경험조차 없는 걸요. 하지만 처음부터 익숙할 순 없지요. 제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일단 서울모터쇼 공식 도우미가 된 만큼 긍지를 가지고 남은 기간이라도 열심히 배우겠어요.” 송정화 씨는 세 도우미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이 남자 친구가 있음을 밝혔다. 남자 친구와 데이트는 주로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았다. “남자 친구와 저는 요즘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에 푹 빠져 살고 있어요. 같이 게임을 할 때가 가장 편하고 행복한 시간이에요. 요즘은 남자 친구가 축구 게임을 주로 하는데 제가 그 게임이 아직 서툴러 걱정이에요. 전 남자친구와 무엇이든 공감할 수 있다는 게 좋거든요.” 공식 도우미들과의 수다 한판 도우미들의 야외 촬영은 2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그날따라 날씨가 갑자기 더워졌고 햇볕도 평소보다 강해 촬영이 끝나갈 즈음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장소를 옮기고 실내에서 인터뷰를 하자 진지하게 질문에 답해주었고, 공식 인터뷰 후 기자와의 본격적인 수다 한 판이 벌어지자 다시 생기를 띄기 시작했다. 기자 인터뷰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요. 다들 너무 경직되어 있고 대외적인 멘트로 가득하군요. 자, 지금부터는 터놓고 신나게 수다 한번 떨어봐요. 송정화 그래요. 너무 불편한 것 같아요. 기자 근데 신체 사이즈와 혈액형이 다들 어떻게 되지요? 이민경 34-24-36이구여, 전형적인 A형이에요. 김유연 저는 34-24-35, 혈액형은 A형입니다. 송정화 다들 A형이군요. 저는 O형이구요. 신체사이즈는 34-24-35입니다. 기자 근데 세분 다 허리 둘레가 똑같군요? 제가 얼핏 보기에는 세분이 약간 차이가 있어 보이는데……. 이민경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왜 저를 보세요?(민망한 듯한 웃음) 설마 저를 의심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 볼 살이 좀 있어서 그런 오해를 많이 받는데 저의 신체 사이즈는 명백한 사실이랍니다. 기자 더욱 의심스럽군요. 좋습니다. 일단 넘어가도록 하죠. 김유연 근데 왜 혈액형이나 신체 사이즈 같은 것들을 물어보지요? 혹시 기자님께서 저희들에게 흑심이 있으신 건 아닌가요? 기자 당황스럽네요. 이것으로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농담이구요. 인터뷰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거든요. 신변잡기적인 내용의 인터뷰를 사람들이 더 좋아하고 이 자동차 전문지라서 남성 독자층이 많아요. 그분들은 여러분의 혈액형까지도 궁금해하지요. 신체 사이즈는 말할 것도 없구요. 이민경 혈액형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기자 님은 혈액형이 어떻게 되요? 기자 저는 사람들이 모두 B형 같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성격 좋다는 O형이랍니다. 여러분들은 남자 친구가 어떤 혈액형이었으면 하나요? 김유연 제 혈액형이 A형인데, A형하고 가장 잘 어울리는 혈액형이 O형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O형이 좋아요. 이민경 저도 O형이 좋아요. 송정화 저는 B형이 좋아요. B형이 왠지 끌리고 매력 있어 보이더라구요. 기자 B형 같은 O형은 어떤가요? 송정화 기자님 저는 남자 친구가 있답니다. 기자 자, 이제 분위기가 좀 자연스럽게 된 것 같군요. 이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도록 하죠. 만약에 주위에서 연예인이 되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김유연 저는 현재 제가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있어요. 제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어요. 이민경 저도 제가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기자 예상 밖의 대답이네요. 요즘 다들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선호하고 레이싱걸 출신들도 연예계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김유연 솔직히 말하자면, 연예계에 진출한다고 하더라도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능력이 되는 지도 의문이구요. 하지만 좋은 기획사에서 확실하게 밀어주신다면 도전해 볼 의향은 있어요.(웃음) 기자 솔직하게 말씀하시니 좋군요. 화제를 돌려서, 평소에 미모관리를 위해서 특별히 하는 것과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패션 스타일은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세요. 이민경 다이어트를 위해서 웬만해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서 계단을 올라가요. 평소에 운동할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많이 걸어다니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미니스커트를 자주 입어요. 남들은 미니스커트가 불편하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편하더라구요. 송정화 저는 보라색이나 핑크색 계열의 색상을 좋아해요. 섹시함이 부족해서 귀여운 스타일을 강조하는 편이지요. 다이어트는 특별히 하고 있지 않아요. 저는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 걱정이에요. 제가 워낙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이라서……. 김유연 저 같은 경우는 피부관리는 별도로 하지 않아요. 피부는 원래부터 좋았거든요.(웃음) 피부에 혹시 안 좋을까봐 화장도 최대한 연하게 하고 다녀요. 몸매관리를 위해서 특별히 하고 있는 것은 없지만,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려고 노력하지요. 많이 먹었다 싶은 날은 30∼40층 정도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요. 기자 유연 씨 정말 대단하시군요. 어떻게 3∼4층도 아니고 30∼40층을 걸어서 올라갈 수 있어요. 완전 인간 엘리베이터이군요. 자, 다른 주제로 넘어가서 좋아하는 차는 어떤 것이고, 운전습관은 어떤가요? 송정화 르노삼성의 SM 시리즈를 좋아해요. 운전습관은 마음은 스피드 광이 되고 싶지만 실제로는 안전운전을 생활화하고 있어요. 김유연 GM대우의 레조를 좋아해요. 디자인이 거부감 없으면서 귀엽고, 승차감도 좋아서 맘에 들어요. 운전습관은 제 자신은 잘 모르겠어요. 근데 주위 사람들이 안정감 있게 잘한다고 하더군요. 이민경 국내차는 쌍용 코란도와 현대 쏘나타를 좋아하고, 수입차는 아우디 TT와 폭스바겐 뉴 비틀 카브리올레가 마음에 쏙 들어요. 기자 민경 씨는 차에 대해서 많이 아시는 것 같군요. 운전 습관도 궁금하네요. 이민경 아쉽게도 아직 무면허입니다. 이날 인터뷰는 처음에는 다소 딱딱한 분위기였지만 점차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바뀌어 어느 때보다 유쾌한 기분으로 끝을 맺었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취재원에 따라 인터뷰를 하고 난 후의 느낌이 각각 다르다. 이번 인터뷰는 어떻게 표현할까? 음……. 마치 꽃놀이를 하고 난 후, 흥에 겨워 절로 노래를 부르고 싶은 기분이다.
정비사 양성민 “원칙을 무시하는 정비습관은 버려야” 2005-04-15
1. 소속과 직책, 걸어온 길 일본에서 정비사로 일하다가 귀국, 최근 경기도 부천에 ‘프롬 재팬‘이라는 정비소를 열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더 넓은 곳에서 경험을 쌓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결심, 95년 2월 일본으로 건너갔다. 방송국 PD를 목표로 한 유학이었지만 일본어를 전혀 몰라 1년 동안 어학원을 다녔다. 다음해 대학원 시험에서 논문은 합격했지만 면접에서 떨어져 비자 연장을 위해 동경 테크니컬 컬리지에 들어갔다. 단지 대학원 재수를 위한 곳이었지만 엄격한 학업관리로 수업에는 꼬박꼬박 출석해야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2학년이 되자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 차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되고 내 안에 숨어 있는 재능을 찾은 느낌마저 들었다. 일본 자동차자격시험을 대비하며 미친 듯이 차에 빠져들었다. 당시 유학생은 취업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졸업을 앞둔 3월, 기술학교 졸업자는 취업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고 나를 잘 본 취업담당자의 배려로 동경에 있는 야마자키 모터스(닛산 계열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2. 일본에서의 생활은 어떠했나? 30살에 일본에 건너가 33살에 취업했다. 일본은 어딜 가나 도제(徒弟) 시스템이라 처음 들어가면 바닥청소와 허드렛일부터 하게 된다. 거의 모두 이십대 초반인 선배들 밑에서 기술은 배우지도 못했지만 늦게 시작한 만큼 이를 악물고 일했다. 12시부터 1시까지가 점심시간인데 밥을 10분만에 먹어치우고 차를 만질 만큼 노력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공장장이던 메라 씨가 나를 부르더니 “정말로 정비를 배워보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는 정종 잔 8개에 각종 오일을 담더니 맛으로 구별해 보라고 했다. 그렇게 엄격한 통과의례를 거친 뒤에야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 그 뒤 성실함을 인정받아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3년만에 정비주임이 되었고 3년이 지나자 정비사의 작업을 점검하는 검사주임이 되었다. 아무 것도 없이 실력만으로 이룬 성과다. 마지막 단계는 공장장으로, 실력과 경력이 있어야만 오를 수 있는 자리다. 나는 4년 동안 검사주임을 맡다가 귀국했다. 3. 어렵게 일군 자리를 포기하고 귀국한 이유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였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큰애가 일본을 응원하는 게 아닌가. 당시 초등학생인 아이가 일본말로 “나는 일본이 더 좋다”고 하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서둘러 귀국을 결심했다. 당시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있는 스카이라인 동호회에서 활동했던 터라 국내에 일본차가 늘어났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점도 결심을 재촉한 이유였다. 친구, 친지와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던 가족들도 변화가 필요했고 일본차 정비라면 누구보다 자신이 넘치던 때라 8년간의 일본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4. 한국과 일본의 정비시스템은 어떻게 다른가? 일본은 기본적인 규정을 철저하게 지킨다. 정비 매뉴얼은 항상 옆에 두고 있고 손님을 맞이하는 자세가 관광서비스업 못지 않다. 우리나라 정비습관은 원칙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엄연히 규정치가 있는데 전동 렌치로 볼트를 조이는 일 같은 원칙 없는 작업을 너무 쉽게 한다. 우리의 형식적인 정기검사와 달리 일본의 정기검사는 철저하게 이뤄진다. 검사장으로 차가 들어오면 바퀴를 다 떼어내고 하체를 점검한다. 엔진을 스캐너로 진단하고 각종 센서의 이상을 발견하며 제동계통을 철저하게 검사한다. 검사비용도 만만찮지만 안전을 위한 예방조치라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5. 일본 정비소의 하루를 묘사한다면? 8시 30분까지 출근해 조회를 하고 예절 교육을 받는다. 업무는 9시부터 시작되는데 자동차검사 업무를 주로 한다. 일본의 정비는 무조건 예약제로 이뤄지고 담당자가 고객의 집을 찾아 차를 받아온다. 12시부터 1시까지는 점심시간이고 5시 30분에 하루 일과가 끝난다. 오후 3시부터 10분 동안 잠깐 쉬는데, 그밖에는 일이 없더라도 맡은 자리를 비우지 못한다. 잔업 수당은 1시간에 1만2천 원쯤이고 보통 잔업은 저녁 7시까지 한다. 6. 정비사로서 일본차를 평가한다면? 도요타는 환경 문제에 앞장서는 브랜드로 적자가 나더라도 하이브리드카나 친환경 정비체제를 운영하는 결단력이 돋보인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브랜드가 도요타인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닛산은 스포츠 세단에 강점을 보인다. 스카이라인 계보로 수많은 추종자를 만들어냈고 내세울 점이 많은 브랜드다. 미쓰비시는 리콜 파동을 거쳐 이미지가 크게 추락했다. 메이커 고집이 크게 느껴지는 곳은 혼다. 엔진 회전이 다른 메이커와 반대로 돌아가고 전용 공구를 써야하는 등 정비하기가 벅차지만 혼다만의 독특한 기술이 인상적인 메이커다. 기술자 입장에서는 도요타 차가 정비하기 쉽다. 7. 국내에서도 튜닝이 종종 이뤄지는데, 튜닝숍을 열 생각은? 튜닝은 안 한다. 차가 가진 고유한 성능을 최대한 유지하는 정비가 내가 할 수 있는 분야다. 주위에서 흔히 튜닝이라 말하는 방식은 단지 ‘부품 교환’일 뿐이다. 진정한 튜닝은 ECU 매핑(엔진특성 조절)을 통해 그 차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다. 단순히 에어로파츠를 덧대거나 각종 부품을 얹은 방식은 튜닝이 아니다. ECU 매핑은 일본에서도 경력 5년이 넘어야만 다룰 수 있는 분야다. 8. 자동차 정비에 뜻을 둔 이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정비사는 급한 성격이 어울리지 않는다. 빨리, 그리고 편하게 처리하려는 마음은 고객의 생명을 책임지는 정비사로서는 가장 큰 결격사유다. 타이밍벨트 하나를 바꾸더라도 관련 부품을 모두 체크하는 등 효율적인 정비를 해낼 수 있는 꼼꼼한 성격이 가장 어울린다. 수입차 정비를 체계적으로 배우려면 생산지에서 익히는 방법이 가장 좋다고 본다. 특히 일본에서는 다른 나라 정비경력이 인정되지 않고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본어 학교(1년)를 다니고 테크니컬 컬리지(2년)를 거치면 기본은 이룬 셈이다. 그 이후는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보통 3∼5년이 지나면 말 그대로 ‘눈을 뜨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현장에서 몸으로 부대끼며 차와 싸우면 금세 실력이 는다. 선진국일수록 기술이 대접받는다. 나는 기름 때로 얼룩진 내 손이 자랑스럽다. 자동차 정비사가 대접받는 일본에 견주면 우리나라는 아직 불만스러운 점이 많다. 하지만 차가 좋아 인생을 걸어볼 마음이 있다면 도전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웬만하면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이 배우라고 덧붙이고 싶다.
김한준 대표이사 한국 시장 ‘공격경영’ 나선 만(M.. 2005-04-15
세계 상용차시장의 1위 자리를 두고 벤츠와 경합을 벌이고 있는 독일 만(MAN) 트럭버스의 ‘한국호’ 선장 김한준(41) 대표가 만 트럭버스 코리아 살리기에 두 팔을 걷고 나섰다. 김 대표는 예전 직장이던 효성(1995∼1999년)에서 독일 주재원으로 일했다. 그 무렵 주재원으로서는 처음으로 영어가 아닌 독일어로 운전면허시험을 통과했을 만큼 뛰어난 독일어 실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독일 현지 사정에 밝아 현재 국내에서 독일 전문가로도 통하고 있다. 2001년 만 트럭버스 코리아 설립 때부터 근무한 김 대표는 2003년 관리담당이사를 거쳐 2004년에 대표이사의 자리에 올라 올해 제2의 창업을 선언, 국내 트럭시장 선두권 대열에 진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만 트럭버스는 한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만 트럭은 1995년 삼성을 통해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삼성은 만을 통해 기술을 얻으려는 의도가 강했는데 이런 생각이 만 본사와 제대로 조율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본사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자 브랜드 홍보 면에서도 다른 업체보다 소홀해졌고, 그 결과로 지금껏 만 트럭을 모르는 분들이 많은 걸로 압니다. 하지만 더 이상 시행착오는 없습니다. 만 트럭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현지화 성공 뒤 아·태 전진기지화 이룰 터 상용차 메이커로서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를 지닌 만이 국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은 조금 놀라운 일이다.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게 원인이라지만, 정작 큰 이유는 따로 있다. 그동안 부품공급이 원활하지 못했고,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 네트워크가 부족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독일을 근거지로 둔 만 트럭버스는 세계 상용차시장과 유럽 트럭시장에서 톱 메이커로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루돌프 엔진을 만들어 세계에서 처음으로 디젤 엔진을 상용화 시켰을 만큼 전통과 기술력에서 앞서고 있는 회사이지요. 한국에서 다른 경쟁업체보다 인지도가 낮았던 것은 기술력의 차이보다는 성장할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했던 탓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인프라 확대를 위해서 현재 국내 주요 9개 도시를 거점으로 정비소를 운영해 원활하게 부품을 공급하고 있고, 서비스망을 예전보다 더 강화해 고객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만 트럭버스 코리아는 이미 정상을 위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만 트럭버스 그룹 본사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김 대표의 뛰어난 관리 능력을 더했기 때문이다. 만 트럭버스 코리아 관계자들은 “회사 창립 맴버인 김 대표가 누구보다 회사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다”며 “대안과 발전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만 트럭버스 코리아의 국내 트럭시장 점유율은 2002년 2.4%, 2003년과 2004년에는 각각 3.2%와 6.4%를 기록해 꾸준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올해 목표는 10%로 잡아 수입 트럭업계 선두 진입을 꿈꾸고 있다. “만 트럭버스 코리아의 국내 인프라가 확대되면 당연히 현지화에 성공할 것이고 목표로 하고 있는 점유율을 반드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또한 저는 만 트럭버스 코리아를 만 트럭버스 그룹의 아시아 태평양 전진기지의 본부로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현지화 성공 이후 만 본사의 전폭적인 투자를 받아 조립공장이 들어섰고 주변 지역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입 트럭업계 한국 법인 CEO중 가장 젊은 김 대표는 어떠한 경영 마인드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면 내가 가장 어려서 선배들의 ‘내공’에 기가 죽는다”고 겸손해하면서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직원들의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솔직히 직원들에게 사장은 불편한 존재잖아요. 사장이 할 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직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게끔 시스템을 만들어 주고 복리후생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일입니다.” 김 대표는 평소에 직원뿐 아니라 고객들과도 스스럼없이 만 트럭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이야기한다. 칭찬 받을 것은 받고 혼날 일은 따끔하게 혼나야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 “저는 정직만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해요. 거짓말을 하거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하면 결국엔 그것이 발목을 잡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김 대표는 회식을 할 때마다 직원들에게 혼이 난다고 한다. 그의 애창곡은 바로 트로트인데, 직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노래 장르라고. 그는 “내가 노래하면 직원들에게 어김없이 외면을 당한다”면서 “그래도 나는 트로트가 가장 가슴에 와 닿고 부를 만하다”며 껄껄 웃는다. 수입 상용차시장의 젊은 피 김한준. 그가 이끄는 만 트럭버스의 변화가 앞으로 어떤 성과로 이어질지 기대를 걸어본다.
다임러크라이슬러코리아 사장 웨인 첨리 주한미국상공회.. 2005-03-24
임러크라이슬러코리아가 2월 16일 지프 체로키 디젤과 그랜드 보이저 디젤 등 2대의 디젤차를 국내에 론칭했다. 디젤 승용차의 판매가 허용된 이후 국내외 업체 중 제일 먼저 새 디젤 모델을 출시한 것. 벤츠 SLK를 베이스로 한 크로스파이어, E클래스를 기본으로 만든 300C 등 개성 강한 차를 잇따라 소개해 온 크라이슬러가 이번에는 벤츠의 디젤 기술을 채용해 디젤차를 재빨리 선보였다. 1999년 벤츠에 합병된 이후 이제야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일에 열정적인 다임러크라이슬러코리아의 웨인 첨리 사장은 올해부터 한국에 있는 미국 기업을 대표하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까지 맡아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부대찌개에서 경영철학을 끄집어내는 남자 “한국 수입차 시장에 처음으로 디젤차를 선보이게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한국정부가 경유값을 2007년까지 휘발유의 85% 선으로 올릴 계획이지만 그래도 디젤차는 장점이 많아요. 2007년이 되더라도 휘발유보다 15% 싸고, 무엇보다 디젤 엔진은 힘이 좋고 연비가 뛰어납니다. 정숙성도 몰라볼 정도로 향상되었고요.” 미국 텍사스 출신인 첨리 사장은 디젤차의 불모지인 미국 출신인데도 디젤차의 전령사를 자처한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크라이슬러는 디젤 엔진에 힘을 싣고 있기 때문. 일본 메이커나 포드 등은 환경오염과 자원 고갈의 염려가 없는 미래형 자동차로 가는 중간단계로 하이브리드카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반면 유럽 메이커들은 환경친화적인 디젤 엔진을 휘발유 엔진의 1차적인 대안으로 보고 있다. 벤츠의 영향을 받는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디젤을 내세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따라서 크라이슬러는 GM과 포드보다 디젤 분야만큼은 유리한 위치에 올라 있다. 미국에서는 인기를 끌지 못하는 디젤차가 한국에서는 얼마만큼 선전하고 있을까. 지난해 2월 국내 판매를 시작한 지프 그랜드 체로키 디젤은 500여 대가 팔려 국내 수입 디젤차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SUV라는 특수성이 밑받침되었지만 아메리칸 아이콘의 하나로 여겨지는 지프를 찾으면서도 국내 소비자들은 디젤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텍사스 출신으로 풍요로운 생활(휘발유 값이 싸다는 측면에서)에 익숙한 첨리 사장은 디젤의 우수성을 힘주어 강조하지만 사실은 대배기량 휘발유 엔진에 대한 애착심이 남다르다. 미국 어딜 가도 픽업은 승용차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많고 텍사스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그는 닷지 브랜드를 좋아하고 픽업 트럭에 대한 사랑도 유별나다. 이 때문에 픽업 트럭 닷지 다코타가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닷지는 가장 애착심을 갖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닷지는 크라이슬러의 볼륨 리더이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닷지 브랜드의 핵심은 '개척정신'이고 모든 제품이 ‘창조성’에 기초를 두고 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차 역시 닷지 바이퍼입니다. 지난해 바이퍼 GTS 쿠페가 수입되어 시승차가 나왔을 때, 맨 먼저 몰고 영종도로 이어지는 쭉 뻗은 고속도로를 찾았습니다. 바이퍼는 디자인과 성능은 물론이고 감성적인 부분까지도 매우 매력적인 차예요.” 인터뷰하는 동안 첨리 사장의 열정과 끼를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첨리 사장의 카라이프는 미국적인 감성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렇다고 미국적인 것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99년 다임러와의 합병 이후 힘을 싣고 있는 디젤 엔진에 대한 애착심도 남달랐다. 다른 것을 잘 받아들이는 개방성 때문일까? 그는 한국의 김치찌개, 만두전골, 소주를 유난히 좋아하고 특히 부대찌개를 최고의 음식으로 꼽는다. “부대찌개는 처음으로 한국의 ‘얼큰한 맛’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음식입니다. 특히 부대찌개 국물에 밥을 비벼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한국 사람들도 이렇게는 잘 먹지 않더군요. 부대찌개는 미국 식재료와 한국의 조리법이 잘 결합한 사례이지요. 이것이야말로 ‘세계화’와 ‘현지화’의 조화를 추구하는 다국적기업의 경영철학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대찌개의 얼큰한 맛에서 기업의 경영철학을 끄집어내는 첨리 사장. 1996년 크라이슬러코리아세일즈 사장으로 처음 한국땅을 밟았던 그는 올해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회장직을 맡았다. 모든 일에 적극적인 관심과 열정을 보이는 첨리 사장이 미국 기업의 대표자로서 어떤 활동을 펼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글 | 박지훈 사진 | 임근재
여행 칼럼니스트 김선겸 가슴속에 사람을 품고 두 발.. 2005-03-23
가장 좋은 대화법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기자도 여행에 관심이 많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 할 말도 많고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러나 김선겸(41) 씨 앞에서는 ‘가장 좋은 대화법’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눈을 빛내며 “이번에 독일 카니발을 갔다 왔는데요. 그 친구들 아침 7∼8시부터 맥주를 궤짝으로 마시는데……”라는 말로 시작해 쉴 새 없이 얘기를 풀어 나가는 김선겸 씨. 그의 생생한 경험담에 어설프게 끼어들어 이야기의 맥을 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본지 ‘world travel’을 연재하고 있는 필자이기도 하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 여행가의 길로 김선겸 씨가 여행을 시작한 지는 올해로 14년째. 본격적으로 칼럼니스트 일을 한 것은 5∼6년이 지났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 기나긴 여정에 발 담그게 했을까. “아프리카 여행에 나선 만화 주인공이 너무 부러워 똑같이 해보고 싶었습니다. 언젠가는 아프리카에 꼭 가보고 말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대학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다 1년만에 그만두고 아프리카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8개월 정도 여행하고 돌아오니 일자리가 문제였어요.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을 주체할 수도 없었고.” 여행가의 길에 접어든 그는 외국을 제집 드나들 듯하며 1년에 5∼6개월은 해외에서 보내기 시작했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과 마주친다는 설렘. 이것이 낯선 곳을 오랫동안 돌아다닐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낯선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참 즐거웠습니다. 방에 커다란 세계지도를 붙여 놓고 항상 어디를 갈지 생각했지요. 알음알음 들어오는 원고청탁으로 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바로 배낭을 꾸리는 생활이었습니다.” 많은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초창기의 설렘이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여행 칼럼니스트가 된 뒤에 새롭게 눈뜬 사진이 초창기의 열정적인 모습으로 되돌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가 세운 여행의 원칙 가운데 하나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지 말자는 것. 따라서 여행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보따리에는 체코의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허름한 노부부가 고물 폭스바겐으로 오스트리아 국경까지 태워 준 이야기, 팔레스타인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걱정 등 사람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처음에는 문화재에 관심이 가고 좋은 풍경에 취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사람을 만날 때는 정말 여행하는 보람을 느끼지요. 문화재나 풍경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지만 사람들에 관한 일은 언제고 새록새록 기억 속에 떠오릅니다.” 왠지 배낭 매고 걸어서 다니는 것을 정석으로 여길 것 같은 그지만 차로 떠나는 여행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차가 있으면 여행이 편해져요. 걸어서는 갈 수 없는 먼곳도 갈 수 있기 때문에 시야가 더욱 넓어지고요. 티베트에 갔을 때인데, 걸어서 1년 걸려야 볼 수 있는 곳을 차를 빌려서 며칠만에 다 둘러보았다니까요. 여행 중 타 본 차 중에서 도요타 랜드크루저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늪지에서도 거침없이 빠져 나오는 모습이 믿음직하더군요.” 아무리 좋아서 하는 여행이라지만 힘든 점이 한둘이 아니다. 인도에서는 돈이 떨어져 3∼4일 굶기도 하고 팔레스타인에서는 총격전에 휘말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해 여행가를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리고 두 달간 한국말을 한 번도 못했을 때, 타국어로라도 대화할 상대가 없을 때는 무척 견디기 힘들었다고. 14년 동안 발이 부르트도록 전세계를 돌아다녔지만 아직 못 간 곳이 있다. 아니 일부러 가지 않은 곳이다. “중앙아프리카는 가지 않고 있습니다. 여행에 대한 꿈을 심어 주었던 그곳에 갔다 오면 여행가를 시작할 때 가졌던 열정이 식을까 봐 이래저래 미루고 있어요.” 그러나 1∼2년 뒤 그는 중앙아프리카를 찾을 계획이다. 더는 늦출 수 없기에. 그럼 그 후에는? “체력이 닿는 한, 길이 있는 한 계속 여행을 해야지요.” 글 | 임유신 사진 | 박창완
테스트 드라이버 고성훈 차의 특성을 속속들이 짚어내.. 2005-03-18
1. 소속과 직책, 걸어온 길 현재 르노삼성 실차 테스트팀 선임연구원으로 파워트레인 부문 구동계 테스트를 맡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무작정 자동차가 좋았던 기억이 난다. 1985년 자동차과를 졸업하고 기아자동차 검사·품질팀에 들어갔다. 당시 국내 기술은 외국과 기술제휴를 맺어 조립생산을 하는 수준. 수입차를 마음껏 타볼 수 있고 유럽과 북미 등지에서 살다시피 하는 연구·실험팀으로 옮기고 싶어 무던히 애썼다. 다행히 직원이 건의사항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제도를 통해 적성과 재능을 인정받아 실험 파트로 옮겨 테스트 드라이버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차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겪어보고 싶어 십여 년 동안 몸담았던 기아를 그만두고 삼성화재 손해사정인으로 2년 동안 일했다. 폭넓은 경험을 했던 시기였지만 미련을 떨칠 수 없었다. 마침 삼성자동차가 출범하면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연구소 테스트 드라이버로 다시 뛰어들었다. 당시 후발주자였던 삼성이 현직 메이커의 인력을 빼내올 수 없었던 제약을 갖고 있어서 찾아온 기회다. 한 분야만 열심히 파고드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업무를 겪어보는 일도 나쁘지 않다. 잠시 외도기간이 있었지만 테스트 드라이버는 내 천직이라고 느낀다. 2. 참여했던 개발차종과 기억에 남는 차 예전 기아차는 거의 내 손을 거쳤다. 대우 티코가 나오기 전, 기아에서도 경차 개발이 진행된 적이 있다. 시장성이 없어 중간에 접었지만 아쉬운 프로젝트였다. 프라이드와 캐피탈, 콩코드와 포텐샤, 스포티지 등 수많은 차종 개발을 진행했고 5톤 트럭 개발에도 참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차는 기아 프라이드와 르노삼성 SM5다. 내구성과 순발력, 연비 등 뭐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는 당찬 프라이드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다. 내구성과 디자인, 경제성에서 뛰어난 가치를 보이는 SM5도 마찬가지. 특히 한국적 특성이 배어 원작보다 더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는 SM5는 가장 좋아하는 차다. 3. 자동차메이커 실차 테스트 부서는 어떤 곳인가 차 한 대가 나오는 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땀이 배어 있다. 실차 테스트 팀도 예외는 아니어서 성능이나 상품성, 내구성을 평가하는 부서로 각각 나뉜다. 핵심은 파워트레인 담당 부서로 엔진과 변속기, 드라이브 샤프트와 서스펜션의 작동과 소음, 진동 등을 테스트하고 있다. 실차 테스트는 다양한 온도와 고도, 지형과 기후에서 이루어진다. 혹한지와 혹서지 테스트를 위해 한두 달 해외에 머무르는 건 예사다. SM5를 처음 내놓던 때는 평가 인원이 많지 않았던 데다 국산화에 따른 부품 테스트도 진행해야 했다. 1년의 2/3를 일본과 유럽, 국내 출장으로 보냈던 시절이다. 테스트 드라이버는 차와 뗄 수 없는 관계다. 테스트 도중 잠깐 쉬거나 식사하는 시간을 빼고는 평균 4∼5시간을 차에서 보낸다. 노동 강도가 생각보다 세다고 볼 수 있다. 새차 특성상 디자인 보안을 지키는 일도 어렵다. 부산 공장을 짓고 있던 시절에는 회사 부지에 있는 공장도로에서 테스트를 자주 했는데, 보안 때문에 밤에 주로 했다. 해 떨어지기를 기다려 진행하고 동이 틀 무렵 들어오는 올빼미 생활을 3주 동안 했다. 테스트 드라이버는 파일럿 카를 만들면서 투입된다. 각 항목별로 미리 정해진 목표 성능을 만족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끝없는 테스트로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수정하면 차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끝난다. 이 과정에서 테스트 팀의 입김은 다른 어느 부서보다 강할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카를 비교 차종으로 삼을 때가 많다. 냉철한 평가자의 입장에서 테스트하고 실측 데이터를 첨부해 보고서를 꾸민다. 개발 컨셉트에 맞게 만들어졌는지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다. 4. 테스트 드라이버에 맞는 성격은? 테스트 드라이버란 한마디로 차와 하나가 되는 사람을 말한다. 차를 평가할 때 테스트 드라이버가 힘들면 나중에 고객도 어김없이 힘들기 마련이다. 남들에 앞서 차를 평가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해내는 책임감도 투철해야 한다. 운동 선수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실함이 뒷받침되어야 하겠다. 세월이 흘러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원래 성격이 급한 편이다. 경험상 이 직업에 꼭 맞는 특별한 성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물을 판단하는 감각이 뛰어나야 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무난한 성격이 좋다. 예민한 감각은 테스트 드라이버가 꼭 갖춰야 할 자질이고 전체적 느낌을 조율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어쩌면 느긋한 성격보다는 약간 급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더 어울린다. 차의 개발과정에는 마스터플랜부터 연간계획, 월간계획과 주간계획 등 끊임없이 업무가 있다. 평소 일상생활을 계획적으로 꾸려 가는 꼼꼼함도 갖춘다면 금상첨화다. 5. 드라이버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삼성차 시절에는 영국 로터스팀을 비롯한 외부 업체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현재는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어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부산공장과 기흥연구소 프루빙 그라운드에서 테스트를 한다. 가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일원으로 일본 닛산에서 테스트를 할 때도 있다. 드라이버 교육은 테스트 프로그램을 위한 기술과 공통 운전 기술로 나누어 실시된다. 각각의 테스트에 따라 운전 방법이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갖춰야 할 기술도 있기 때문이다. 선임연구원의 책임 아래 서스펜션 평가팀은 스티어링 휠의 감각적인 조작법과 차체 움직임을 몸으로 느끼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가속성능과 정속주행, 최고속 테스트를 주로 진행하는 파워트레인 평가팀은 발끝의 감각과 계측장비 다루는 방법 등을 주로 익히게 된다. 안전운전을 위한 매너교육도 수시로 실시된다. 서킷이나 프루빙 그라운드를 벗어나면 위험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반 도로에서는 철저하게 안전 위주로 운영된다. 6. 테스트 드라이버의 하루 집에서 나오자마자 연구원의 하루가 시작된다. 한겨울에는 밤새도록 세워놓은 차의 시동 능력을 평가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퇴근 후에도 마찬가지다. 퇴근길 일반 도로 주행은 상품성 측정에 무척 중요한 평가항목이다. 일하는 시간은 오전 8시 출근과 오후6시 퇴근이 원칙이다. 내근 업무를 맡을 때도 있지만 테스트나 출장으로 회사를 떠날 때가 많기 때문에 변동이 잦은 편이다. 부품 테스트를 하게 되면 밤을 새더라도 끝내야 한다. 따라서 테스트 업무를 무리 없이 해내려면 강인한 체력은 필수 조건이다. 체력 관리를 위해 식사는 꼬박 챙겨먹고 연구소 안에서 농구나 축구, 수영 등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있다. 보수는 위험한 업무라고 특별히 더 받는 것은 아니다. 남들만큼 받는다. 하지만 원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데에 뿌듯함을 느낀다. 사실 테스트 드라이버 직종은 보험회사에서 가입을 꺼릴 만큼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물론 시험차는 완성차보다 정밀도가 떨어지지만 사전점검과 훈련으로 충분히 위험 요소를 없앨 수 있다. 7. 테스트 드라이버가 되려는 이들에게 테스트 드라이버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급하게 해내려는 욕심이 앞서면 뒷심이 모자라 흐지부지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폭주를 즐기기보다 먼저 차를 꼼꼼히 공부해서 지식을 넓혀야 한다. 해외 드라이빙 스쿨은 테스트 드라이버 자격을 얻는 관문이 아니다. 스포츠 드라이빙 라이선스는 받을 수 있지만 테스트 드라이버 자격은 어디에도 없다. 현실적으로 프로 레이서를 꿈꾸지 않는다면 메이커에 입사해 개발업무를 맡아 실력을 키우는 것이 테스트 드라이버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이다. 나는 지치고 힘들어도 차만 타면 피곤이 풀린다.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번다는 사실이 즐겁고 고마울 따름이다. 공부를 할 때는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자만하거나 독선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결코 발전이 없다. 열린 마음은 팀으로 운영되는 테스트 드라이버의 세계에서 환영받는 덕목이다.
성부경 대표이사 전국 자동차매매 사업조합 연합 회장 2005-03-17
“저는 혁명이라는 말을 잘 씁니다. 국내 자동차업계를 보면, 생산은 세계 6위로 훌쩍 앞서 달려가고 있는데 중고차 유통시장은 거기에 한참 못 미치는 것 같아요. 지금껏 투명하지 못했던 중고차 거래를 소비자들이 외면한 것도 큰 이유이겠지만 자동차 매매시장 자체의 시스템과 제도가 뒤떨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해요. 지금 시점에서 중고차 유통시장을 살리기 위해선 변화와 개혁으로는 모자라기 때문에 혁명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봅니다.” 성 회장이 자동차업계에 뛰어든 것은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이다. 화학을 전공했음에도 중고차 유통시장에 발을 담그게 된 것은 우선 서비스 업종이 적성에 잘 맞았고 차를 통해 사람을 만난다는 게 그에게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제가 처음 이 일을 할 때는 솔직히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국내 자동차는 13만 대에 불과했고 중고차 매매시장의 규모가 지금과 비교할 수도 없었지요. 하지만 요즘은 어떻습니까?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가 이미 1천500만 대를 넘었고, 2015년에는 2천500만 대가 넘을 거라고 하더군요. 덩달아 중고차 매매시장도 함께 커질 테니,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웃음)” 인터넷 포털과 DMB 시스템 적극 활용 요즘에는 중고차 매매도 ‘온라인 시대’다. 예전과 달리 인터넷으로 직접 사고 파는 일이 많아 중고차 매매상, 즉 ‘오프라인’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 2001년에 5천300곳이던 매매상이 지금은 4천 곳 정도이고 그나마 30%는 휴업중이다. 그 또한 이런 위기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유통시장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물론 중고차 매매시장에도 예외는 아니지요. 예전에는 대부분 중고차 딜러와 소비자가 일대일로 만나 차를 사고 팔았는데 요즘엔 세금부담이 적은 인터넷 직거래를 많이 이용합니다. 실제로 인터넷 중고차 쇼핑몰의 등장으로 오프라인에만 의존하던 중고차 매매상들이 울상이에요.” 이에 성 회장은 늪에 빠진 중고차시장을 살리겠다며 두 팔을 걷어 부쳤고,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앞세웠다. 곧 연합회를 중심으로 전국 4천300여 개의 회원사와 5만 여명의 회원을 하나로 묶어 운영하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출범할 예정이다. 그런가 하면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시스템을 활용해 더욱 편리한 자동차 거래환경을 갖춰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들까지 모니터 앞으로 끌어 모을 생각이다. 성 회장은 “회원사들의 참여 의지가 강하고 기술적인 검토도 이미 끝난 상태”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DMB 시스템을 통해 리모콘 하나로 중고차 매매시장의 정보를 얻고 거래도 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아직 우리 주변에는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도 TV 보면서 쉽게 중고차시장을 검색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앞으로 선보이게 될 자동차매매 사업조합 포털 사이트에서도 이 DMB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입니다.” 성 회장의 계획은 해외 시장도 당차게 겨냥하고 있다. 여러 갈래로 나뉜 중고차 해외수출 창구를 일원화해 효율성을 한껏 높이기로 했다. 단일창구가 될 자동차 매매사업 조합은 중고차 수출의 전진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또한 중고차를 매개로 해서 북한과 교류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북한에 중고차를 제공하고, 시멘트와 석탄 같은 원자재로 결제를 받는 물물교환 방식이 될 전망이다. “북한과의 경제교류는 실리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해요. 자동차 매매사업조합이 대북 교류에 기여하게 된다면 조합의 위상이 한껏 높아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8년 전부터 성 회장은 매년 12월 31일이 되면 설악산을 밟는다. 저녁에 출발해서 8시간 정도 산행을 하면 대청봉에 오르게 되는데 그곳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고 한다. 그는 “자신과 싸워서 이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서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싸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얼마 전 오랫동안 그의 친구였던 담배를 끊어버렸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자신과 싸워서 이겼음을 뜻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담배를 끊었으니 이젠 술도 끊을까 해요. 일을 하다보면 술자리가 많아 힘들긴 하지만 이젠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슬그머니 술을 버리는 방법도 아는 걸요.(웃음)”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새롭게 출발하는 그의 의지와 포부가 주목할 만하다. 그가 이루려는 중고차 유통시장의 혁명이 실제로 일어나는 그 날이 기다려진다.
브라부스 해외수출 총책임자 Detlef Schedel .. 2005-02-23
차를 타다 보면 평범한 차와는 다른, 나의 취향에 꼭 맞는 차를 타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처럼 개인의 욕구에 맞게 차를 개조해 주는 튜너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완성차 수준의 뛰어난 품질과 명성을 자랑하는 업체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 가운데 브라부스는 3년 10만km의 품질보증을 내세울 만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튜너다. 1977년 독일에서 문을 연 브라부스는 현재 벤츠를 비롯해 스마트, 크라이슬러 차를 전문으로 튜닝하고 있다. 특히 벤츠 튜너로 양대산맥을 이루던 AMG가 벤츠에 흡수된 이후 브라부스는 제일 가는 벤츠 튜너로 군림하고 있다. 벤츠를 타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국내에서, 브라부스 로고가 달린 벤츠를 본다면 한번쯤 오너에게 눈길을 보내 주는 것이 어떨까? 성능을 높이는데 주력하는 브라부스를 선택한 이는 분명 외유내강형의 멋진 사람일 테니까……. 가장 좋아하는 차는 610마력짜리 G V12 지난 1월 14일, 부라브스 해외수출 총책임자인 데틀레프 쉐델 씨를 국내 제휴업체인 ‘스터디’의 서울 강남 매장에서 만났다. 새해를 맞이해 아시아 수출지역 순방에 오른 그는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했고, 이후 일본과 홍콩을 거쳐 독일로 돌아갈 예정이다. 국내에 3일 동안 머물면서 스터디와 올해 사업계획을 논의하고, 고객들의 불편사항을 체크했다. 데틀레프 쉐델 씨는 “한국 시장은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아직은 브라부스의 이미지를 바르게 정착시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라이벌이던 AMG가 벤츠에 흡수된 이후 브라부스는 벤츠 혹은 AMG가 채워 주지 못하는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성능을 높이는 작업 외에 모바일 오피스나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주문하는 사람이 많아요. 이미 유럽에서는 DVD와 멀티미디어 시스템이 널리 보급되어 있습니다. 브라부스는 이 분야에 상당한 기술을 축적했고,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벤츠를 튜닝하는 업체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바라본 벤츠는 어떨까? 그는 올해 국내에서 판매를 시작하는 첫 4도어 쿠페 CLS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새로운 형태의 차가 평가를 받으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는 CLS를 최고 디자인의 벤츠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현재 데틀레프 쉐델 씨가 타는 차는 메르세데스 벤츠 C270 CDi. 고성능 차를 만드는 브라부스의 이미지와 그의 큰 체구를 생각하면 평범한 느낌도 든다. 그러나 그의 C클래스 디젤은 브라부스 튜닝을 통해 최고출력 238마력, 최대토크 50kg·m의 성능을 지닌 만만치 않은 실력을 자랑한다. “한 마디로 양가죽을 쓴 늑대지요. 한번은 아우토반을 달리는데 한 스포츠카가 100km 넘는 거리를 따라왔습니다. 휴게소에 나란히 들어갔을 때 스포츠카 오너가 다가오더니 기겁을 하더군요. 아우토반에서 시속 250km가 넘는 속도로 자신을 앞지른 차가 벤츠 세단 가운데서도 막내인 C클래스이고, 게다가 디젤이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브라부스 로고를 보고는 이해할 수 있다는 눈빛을 보내더군요.” 눈치 챘겠지만 데틀레프 쉐델 씨는 스피드와 운전을 즐기는 대단한 카매니아다. 또한 그는 브라부스의 수출을 총괄하는 임원이기 전에 브라부스의 열렬한 팬이다. 이처럼 좋아하는 취미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의 일상은 어떨까? 매일매일이 즐거울 수도 있지만 좋은 취미를 잃어 버릴 수도 있다. 데틀레프 쉐델 씨는 전자에 속한다. “개인적으로 브라부스 가운데 G V12를 가장 좋아합니다. 제 덩치를 보면 왜 벤츠 G바겐을 좋아하는지 아실 겁니다. G V12는 벤츠 S600의 심장을 튜닝한 V12 6.3X 트윈 터보 엔진을 얹고 최고출력 610마력/5천300rpm, 최대토크 102.6kg·m/1천750rpm의 놀라운 힘을 내지요. 덕분에 무게가 2.8톤에 달하는 G바겐이 0→시속 100km 가속 4.7초, 최고시속 240km(속도제한)의 날렵한 성능을 냅니다. 엄청난 엔진 힘에 맞추어 섀시와 브레이크 등도 아주 스포티하게 튜닝되어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투박하고 덩치 큰 SUV가 페라리와 맞먹는 날쌘 몸놀림을 보인단 말입니다. 전혀 아닐 것 같은 차가 의외로 잘 달리는 것, 그것 참 매력적인 일이지요.” 차가 좋고 일이 즐거운 남자, 데틀레프 쉐델. 그는 커다란 덩치로 놀라울 정도로 스피드를 내고, 느릴 것 같은 차로 스포티하게 달리기를 좋아하는, 그런 ‘의외성’을 즐기는 멋진 남자였다. 글 | 박지훈 사진 | 박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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