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한 시간의 자유 권경아<문학평론가> 2004-04-07
기다림은 초조함이다. 약속장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때 온 신경은 그 사람에게 향해있다. 그 사람이 올 방향을 바라보며 나타나는 모든 사람들을 살피다보면 신경은 곤두서고 눈은 곧 피로해져 잠시 멍하니 한 곳을 보며 진정해야 할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기다림보다 더 초조하고 불안한 것은 약속시간에 늦는 것이다. 시간에 늦었을 때 허둥대다보면 무엇을 잊고 나가 다시 들어오기도 하고 가는 도중에도 계속 불안한 마음이라 좌불안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늦는 것보다는 기다림의 초조함을 선택한다. 이것은 상대방을 위한 배려라기보다는 오로지 나 자신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약속 장소에 20~30분 정도 미리 도착하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다. 시간 가늠이 가능한 전철로 인해 항상 일정하게 20~30분 정도 일찍 나가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은 것이다. 10분전에 도착해도 되겠지만 그것도 불안한 일이다. 혹 전철이 연착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조금 늦어버리는 것이다. 30분이란 시간은 무엇을 시작하기에 조금 모자란 시간이다. 책을 펴들고 읽다가 이제 좀 집중이 되려하면 약속시간이 가까워져 그 사람이 올 방향을 힐끔거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은 차가 생기면서 조금 바뀌게 되었다. 한 2년 전쯤 동생이 차를 가져와 1년만 맡아달라고 했을 때 나는 면허를 따게 된 지 6개월도 되지 않았고 그 후로 차를 몰지도 않았던 왕초보였다. 그래도 성격이 겁이 좀 없는 편이라 바로 차를 가지고 다니게 되었는데 이것이 문제였다. 시간 가늠이 되지 않아 도무지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약속 시간을 맞춰주는 전철과 달리 도로의 사정은 일정치 않아 막히게 되면 이건 대책이 없다. 또 주차의 문제가 있었다. 일찍 도착하더라도 주차 공간을 찾는 시간도 상당한 것이다. 그래서 차를 가지고 나갈 때는 평소보다 더 일찍 나가게 되었다. 한 시간의 여유는 이렇게 해서 생기게 되었다. 한 시간의 여유는 30분의 여유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자유였다. 길에 서서 언제 나타날지 모를 사람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던 초조함은 차안에서 약속시간 5분전까지 편안하고 느긋하게 책을 보기도 하고 다이어리를 꺼내 당장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조용히 공상을 하기도 하는 여유가 된 것이다. 한 시간의 자유는 달콤한 것이었다. 일단 약속 시간에 늦지 않는다는 안도감이 심리적 안정을 주었고, 그 안정감으로 인해 차안의 조그마한 공간 속에서 여유롭게 이러저러한 공상을 할 수 있었다. 사실 그 시간에는 무엇인가를 한다기보다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머리 속의 생각들을 정리하며 멍하니 있을 때가 많았다. 정신없이 지나가던 하루가 잠시 동안 멈춰버린 것 같은 그 시간은 무엇인가를 하는 시간이라기보다 무엇인가를 잊는 시간이었다. 이러한 자유에 익숙해질 무렵 갑자기 자유가 사라져버렸다. 맡겼던 차를 동생이 다시 찾아가 버린 것이다. 뚜벅이 생활로 돌아온 지금은 다시 예전처럼 분주하게 지나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가끔 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한 시간의 자유가 그리운 것이다.
첫사랑 그녀와의 추억처럼 우인재<DVD 칼럼니.. 2004-03-08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 좋아하는 자동차잡지를 사기 위해 꼬박 하루를 동네 어귀 작은 서점에서 보내던 나였다. 기아 아벨라의 사진에 흥분하던 시절, 현대의 컨셉트카 HCD-Ⅰ의 디자인에 감탄사를 날리던 그때, 난 웬만한 차들의 엔진 배기량과 마력을 줄줄이 꿰며 자랑처럼 읊어댔다. 물론 그 또래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 이목을 끌었던 건 최고시속이었다. ‘튜닝한 현대 스쿠프가 최고시속 220km를 기록했다’라든가, ‘TV 광고에서 현대 엘란트라가 포르쉐를 앞지른 게 진짜였다’ 따위의 소모적인 논쟁들이긴 했지만 그조차도 지금은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지금도 난 여전히 차가 좋다. 게다가 내 회사가 위치한 압구정동에는 전세계에서 몰려온 자동차들이 거리에 즐비하다. 운 좋은 날엔 영화 ‘나쁜 녀석들 2’의 윌 스미스와 마틴 로렌스 듀오가 몰고 다니던 페라리 575M 마라넬로와 허머도 볼 수 있다. 지난 1월 ‘사상 최고의 자동차 추격신’이라는 특집기사를 쓸 때 난 신바람이 나서 원고를 써내려 갔다. DVD 속에서 멋진 자동차 추격 장면을 발굴하려고 수십 개의 DVD 타이틀을 후보에 올려놓고 저울질했다. 덕분에 화면 속에서나마 갖가지 명차들을 다 만나볼 수 있었다. 친구들은 “그렇게 차를 좋아하면서 운전면허는 왜 안 따냐?”고 놀림 반, 핀잔 반을 섞어 한소리씩 했다.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작은 접촉사고만 봐도 놀라는 내 소심한 성격 탓이다. 물론 게으름도 한몫 했다. 시간이 많은 방학 때는 실컷 놀다가 개강하면 그때부터 ‘왜 안 땄을까’ 후회하는 식이었으니까. 결국 지난해 여름 난 늦깎이 면허를 땄다. 대학 때부터 미루어오던 터였으니 남들보다 족히 4~5년은 늦은 셈이다. 운전학원에 수강료를 지불하고 연습용 자동차에 처음 올랐을 때의 그 떨림이란……. 키를 돌리자 경쾌한 스타터 모터 소리와 함께 차가 부르르 떨었다. 처음에는 누구나 그랬겠지만 클러치만으로 차를 움직이는 법을 배워야 했다. 하지만 차를 움직일 수 있었던 건 몇 차례나 시동을 꺼먹은 뒤였다. 처음 며칠은 뻑뻑한 클러치를 밟아대느라 발목이 시큰거렸다. 그러다 곧 혼자 연습을 하기 시작했고 근 두 달을 그렇게 운전연습에 푹 빠져 지냈다. 살면서 그토록 즐거웠던 시간이 얼마나 될까? 네 발 달린 덩치를 내 손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비가 약하게 흩뿌리는 날은 사람이 없어서 더 좋았다. 라디오를 켜고 리듬감 있게 왔다갔다하는 와이퍼 소리를 듣고 있자니 차와 연애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도로주행시험에 합격하던 날 핀잔주던 친구들을 만나 실컷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그깟 운전면허 하나 딴 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때 난 우쭐해 있었다. 대학입시에 합격했을 때보다 기뻤을 정도니까. 난 가끔 아버지가 타시는 10년 넘은 고물차를 몰아본다. 처음 운전대를 잡던 날을 떠올리며……. 지난해 여름, 나는 아마도 연애를 했던 모양이다. 첫사랑 그녀와의 추억처럼 나의 자동차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Z
아이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김별아<소설가>.. 2004-03-08
내 나이 스물 여덟, 여전히 어리고 어리석어 세상의 길을 밝혀 찾는 눈이 어두웠던 청맹과니 시절에 나는 최초로 ‘엄마’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새로운 세상을 배웠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펄펄 끓는 불덩이를 안고 새벽에 응급실로 뛰어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새벽의 종합병원 응급실을 가득 메운 사고 환자들 사이에서 염치없게 의사의 가운을 움켜잡고 제발 눈길을 건네 달라고 애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우리 주변에 그토록 많은 턱과 계단이 존재함을 몰랐을 것이다. 유모차를 밀고 장애물을 헤쳐 가는 일이 얼마나 버거운지, 그런 장애물들 앞에서 언제나 무력했을 장애인과 약한 자들의 분노와 슬픔을 몰랐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빙그레 머금는 웃음에 온 세상이 환해지는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말 한 마디를 처음 내뱉을 때까지 얼마나 긴 기다림과 설렘이 있고, 그 어눌하게 터져 나온 불분명한 발음의 외마디 소리가 얼마나 신비롭게 들리는지 몰랐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뉴 비틀 카브리올레나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같은 요상한 이름의 자동차가 이 세상에 있는지 없는지, 4WD와 RV가 무슨 차이인지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운전도 못하는 녹색살인면허증의 소유자인 내가 자동차잡지를 사고 모터쇼에 가는 일이라곤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토록 다양한 타인의 취향, 타인의 흥미, 내가 낳은 아이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경이로운 또 다른 세상을 이해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무심코 터지는 아이의 투정과 비난에 부모도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나 때문에 가족들이 얼마나 조심하며 발끝으로 걸어야 했는지도 끝내 몰랐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운동회의 100m 달리기에서 2등이라고 손등에 스탬프가 찍힐 때의 환희를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60점짜리 수학 시험지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공부를 하는 일보다 자식을 가르치는 일이 백만 배쯤 힘들다는 것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부모님과 형제, 그리고 햇살과 바람과 바다와 공기…… 나를 키운 그 모든 것들에 감사할 줄 몰랐을 것이다. 모든 생명이 무릇 자연에 귀속되어 있음을, 스스로 살고 누군가를 살리고자 끊임없이 역동하는 순환과 질서의 신비를 몰랐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내 아이에게 맞아 얼굴에 상처를 입은 아이의 엄마 앞에서 손이 발이 되어라 비는 일 따위도 없었을 것이다. 자식 둔 죄인이라는 말, 어미로 살아간다는 것은 낮은 포복으로 기는 일에 다름 아님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더 많은 시간의 여유와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 불편한 양육의 번거로움이 내게 가르쳐주는 숭고한 희생의 진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한 생애에서 가장 영예로운 일은 부와 명예와 지위와 업적을 쌓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한 알의 밀알로 고요히 썩어 묻혀 거름이 되는 것이라는 진리를. 그는 앞으로도 더 많이 나를 가르칠 것이다. 나를 부정하고 내게 반항하여 마침내 나를 뛰어넘는 그 순간까지, 그리하여 한 사람의 성숙한 인간으로 새로이 다시 만날 그때까지 나는 기꺼이 그에게 배울 것이다.
초보운전 아내 구하기 김희재<시나리오 작가, .. 2004-03-08
“괜찮을까요?” “괜찮아.” 난 안 괜찮은데……. 남편이 두 살짜리 딸을 데리고 뒷자리에 앉았다. 어제 면허를 딴 내가 핸들을 잡았다. 출발지는 수서, 목적지는 상일동 시댁. 주일이라 도로가 한가하기는 하지만 만만한 도전은 아니다. 문득 어젯밤의 일이 떠오른다. 면허를 땄다는 말을 듣고는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이 같이 나가자고 했다. 소위 말하는 운전연수를 시켜주겠다는 것. 운전 가르치다 싸운 부부 에피소드가 내가 아는 것만도 500개가 넘는데, 위험한 일이다 싶어 강사에게 연수하겠다고 했지만 남편이 잘 가르쳐 주겠다며 나를 끌고 나갔다. 소양인인 남편의 성격상 한두 번의 다툼은 각오를 해야겠다 싶었다. 침착하게, 침착하게 한다고 했지만 후진기어를 넣은 줄 모르고 액셀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동네 입구의 다리 아래로 처박히기 직전, 그야말로 깻잎 한 장 차이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두 가지 이유로 심장이 뛰었다. 죽다 살아난 느낌과 남편의 호통을 기다리는 조마조마함. 하지만 남편은 심호흡을 하면서 놀란 가슴만 진정시키고는 조용히 일단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더니 남편이 다시 나가자고 했다. 이번엔 골목을 벗어나 빵집까지 갔다 오자는 것. 그렇게 끌고 나가 기어이 후진주차까지 가르친 후에야 집에 돌아왔다. 그러더니 오늘은 교회에서 시댁 가는 길에 나보고 운전을 하라는 것이다. 불안해하는 나를 보더니 남편이 뒤 유리창에 초보라고 쓴 종이를 붙여주며 웃는다. 그걸로 상황이 나아질까 싶기는 했지만 일단 시동을 걸었다. 10년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사건이다. 남편의 전적인 신뢰와 격려로 익힌 운전이기 때문인지 나는 지금까지 무사고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이 ‘초보 아내에게 핸들 맡기기’ 사건은 이후 우리의 삶에 하나의 방향이 되었다. 서로를 믿고 맡길 것, 맡긴 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믿을 것. 직장을 옮기는 일이나 이사를 하는 일, 아이를 키우면서 무수히 맞닥뜨린 선택의 순간……. 그 때마다 우리 부부는 상대의 신뢰를 근거로 용감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신뢰는 그야말로 ‘성질’ 눌러가며 초보 아내에게 운전을 가르친 남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각자 차를 갖고 나간 날, 도로에서 우연히 남편의 차를 발견하고 신호를 보내면 남편이 반갑게 손을 흔든다. 그 편안한 미소를 보면서 생각한다. 두 살 된 딸을 데리고 앉아 덜덜 떠는 아내의 뒤 꼭지를 바라보는 심정이 오죽했을까, 위험천만의 순간에 비명을 참느라 입술 꽤나 깨물었을 텐데, 목적지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릴 때 다리 휘청이던 것을 내가 눈치 채지 못했다고 알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웃음이 난다. 그리고 이 푸근한 웃음은 살면서 큰 힘이 되곤 한다.
아름다운 인연 문성해<시인> 2004-03-08
지난 여름은 참으로 길었다. 골목에 세워둔 아버지의 차는 골목을 나설 때나 들어설 때마다 눈에 들어와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다. 재색의 엘란트라는 아버지가 평생 타시던 차였다. 10년도 더 된 그 차를 아버지는 늘 반짝거리도록 닦으며 아끼셨는데 중환자실에 계시는 주인을 알고 있는 듯 그 차도 골목 귀퉁이에 초라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 차를 타고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다녔던 길들이 그립다. 결혼 전까지 부모님께 신세만 졌던 나였다. 노처녀였던 나는 그때 왜 그렇게나 부모님을 따라 다니려고 기를 썼던지, 아마도 이런 날이 올 것을 예감이라도 했던 것일까. 우리는 그 차를 타고 팔공산과 가창댐, 운문사, 은해사 그리고 기분 좋으면 동생들 사는 포항까지 내처 달렸었다. 중간 중간 경치 좋은 휴게소에서 커피와 어묵을 사먹으며 나는 어리광을 부리기까지 했으니 결혼 후에는 못 누릴 호사를 그때 다 누리고 싶었나 보다. 창가에서 습작을 하다가 듣던 아버지의 차소리, 곧이어 계단을 올라오시는 아버지의 발소리, 그 발소리까지 닮은 나는 아버지의 판박이였다. 유독 맏이인 나를 아끼시던 아버지 때문이었을까, 나는 너무 오래 그 창가를 떠나지 못하고 살았다. 아버지가 쓰러지시던 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아버지의 차였다.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자리가 된 담벼락 밑에 그 차는 아버지가 세워 놓은 그대로 서 있었다. 아버지의 차는 여름 뙤약볕 한가운데에 누워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여름은 우리를 지치도록 집과 병실로 끌고 다녔다. 중환자실에서 회복실로 몇 달이 훌쩍 지나고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셨다. 뇌수술 후 부쩍 기력이 쇠하신 아버지가 서서히 기억을 되찾으시면서 제일 먼저 찾은 것도 아버지의 차였다고 한다. 아직 숟가락도 제대로 못 잡으시는 아버지가 당신 손으로 다시 운전하시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다시는 운전대를 잡지 못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사위와 손주들을 태우고 거뜬히 다니셨던 아버지였다. 그 차는 젊은 날의 아버지의 상징이었다.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노인으로 변해버렸듯이 아버지의 차 역시도 서서히 주인의 손길을 잃어버리고 급속히 늙어갈 것이다. 그런 차가 마음에 짠하셨던지 사위들만 오면 키를 내주시며 운전해보라고 권하시는 아버지,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 차도 세월의 뒤안으로 사라져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훗날 내가 친정을 찾았을 때 그 자리에 항상 서 있었던 아버지의 차가 없다면 많이 섭섭할 것이다. 허름한 집 앞에 그보다 더 허름하게 서 있는 차이지만, 언제나 참 보기 좋았다. 아직도 아버지의 차는 골목 귀퉁이에 세워져 있다. 아침이거나 밤이거나 아버지는 아무도 모르게 골목으로 나가 그 차를 어루만지시며 마음속의 말씀을 하실 것이다. 그러면 그 차도 아버지에게 기계 소리를 윙윙거리며 무슨 말인가로 답할 것이다. 예순 넘으신 나이에 면허를 따서 평생 이 한 차만을 타신 아버지였다. 이 차 역시도 아버지만을 알고 따랐으니 쓸쓸하지만 퍽 아름다운 사람과 기계의 인연이지 않은가. 이제는 내 차로 아버지를 뒷자리에 태우고 남은 여생을 편안히 모시고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옛날 내가 아버지의 뒷자리에서 마냥 호사를 누렸듯이 아버지 역시도 내 차 뒤에서 남은 여생을 아름답게 즐기셨으면 좋겠다.
모과를 차에 싣다 유종인<시인> 2004-02-09
소위 공기산업이라는 게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환경오염이 드디어 우리가 편안하게 숨쉬던 공기마저 새롭게 걸러 정화해서 팔아야 할 상품쯤으로 전락시키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공기정화기가 달린 에어컨이 지난 여름 본격적으로 냉방용품시장에 출시되기 시작했다. 소량의 산소가 든 일회용 제품 등도 여러 형태로 시장에 나와 있다. 이런 대기오염의 현실에 발맞춰서 대형건물이나 공공장소에서는 흡연이 금지되는 시행령이 발효되었다. 건강과 상관없이 애연가들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저만의 공간을 찾아야 하는 궁색함을 면치 못하게 됐다. 차도 밀폐된 이동공간임에 틀림없다. 시골길이나 한적한 교외의 도로를 지날 때면 자연스럽게 차창을 내리게 된다. 맑은 공기를 우리 몸이 본능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환기가 된 차 안은 일시적으로 쾌적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실내 공기는 마치 눅진 과자나 빵처럼 본래의 맛을 잃어가게 마련이다. 본래 닫힌 공간의 공기는 물로 따지면 고인 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동차의 환기시스템이 크게 고려되지 않은 상황에서 차내 공기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향기’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자연스런 향기는 공기라는 음식에 치는 조미료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요즘엔 향기를 적극적으로 의학치료에 적용하는 예가 있고 그보다 미약하지만 기분전환이나 정서적 자극에 도움을 주는 아로마 테라피요법이 상품화되고 있다. 자연식물인 허브나 꽃 같은 것들에서 추출한 재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연 성분을 가공해 만든 다양한 방향제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차내에 각종 액세서리를 치장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인공방향제인데 그 향기의 강렬함이나 독특함으로 차내의 잡스런 냄새를 제거하는 데 일조를 하는 게 사실이다. 담배 냄새를 비롯한 갖가지 냄새들이 공기 중에서 결합해 만든 정체불명의 냄새들이 차 안 구석구석에 진드기처럼 붙어있다. 갖가지 모양의 방향제는 그런 차 안의 냄새를 희석시키고 중화하는 역할을 해준다. 그런데 이런 방향제들은 오래 사용하다 보면 또 다른 잡냄새로 전락하곤 한다. 기존의 잡냄새를 어느 정도 희석시키고 정화하다가 어느 기간이 지나면 그 자신의 냄새가 스스로 다른 냄새에 찌들어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공기의 순환이 적절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방향제만으로는 역부족인 경우다. 사람이 만든 인공의 향기가 가진 한계가 아닌가 싶은 순간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길거리를 지나다가 바닥에 뭔가를 놓고 파는 한 할머니를 만났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건 크고 노랗게 잘 익은 모과였다. 겉만 봐서는 얼른 한 입 베어먹고 싶은 열매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주인의 허락도 없이 얼른 모과 하날 주워들고 향기를 맡았다. 잠시지만 모과의 향기는 은은하고 상쾌했다. 차 안에 매복해 있는 끈질긴 잡냄새와의 전쟁에서 부드러움과 자연스러움으로 끝내 자연향(自然香)의 승리를 가져다 줄 복병인양 모과는 득의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모과야, 타라! 깊이가 있는 향기는 공기의 맛을 부러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그 공기의 전체적인 맛을 신선하게 조리해낸다 여겨졌다. 길거리의 토종 모과는 향기의 동행을 이끌 편안한 안내자로 보였다. Z
미국 연수 시절의 운전면허시험 이상건<교수, .. 2004-02-09
2년전 미국 연수 시절에 나와 우리 가족은 메릴랜드주에 머물렀다. 한국에서 병원에 근무하는 동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부족해 아쉬웠던 나로서는 이 1년의 미국 연수 기간이 매우 행복했다. 우리 가족들도 나와 같이 행복해 했던 기억이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자동차 운전은 필수다. 한국에서 딴 운전면허가 있었지만, 미국에서 운전을 하기 위해 시험을 치러야 했다. 여행객은 국제운전면허증만 있으면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있고 면허증에는 1년간 유효하다고 적혀 있지만, 주에 따라 유효기간과 인정기준이 다르다고 한다. 특히 내가 있던 메릴랜드주는 한 달만 국제운전면허를 인정해 주었고, 또한 보험조건 등을 고려할 때 그 지역의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 좋다고 하여 시험을 보게 되었다. 한국에서 오래 전에 면허시험을 보았고,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운전을 해왔던 터라 크게 부담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내심 걱정이 되었다. 한국에서만큼은 어렵지 않다는 지인들의 말이 오히려 부담되었다. 여권 등을 지참하여 필기시험을 치르러 가니 듣던 대로 한국말로 되어 있는 시험지를 내준다. 메릴랜드주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미국 나름대로의 시험방식을 익히기 위해 몇 번의 연습을 하고, 드디어 실기시험 당일 평소 연습을 도와주던 교민 분이 동승해 자동차를 몰고 시험장으로 갔다. 시험관인 미국인 경찰관이 차에 올라탔다.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인사를 하고 안전벨트를 맸다. 순간적으로 한국에서 하던 버릇대로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출발하려고 하다가 아차 하는 느낌이 들었고, 바로 양손으로 핸들을 꼭 붙잡았다. 다행히 경찰관은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다. 메릴랜드주는 도로주행 없이 시험장내 코스만으로 시험을 보는데, ㄷ자형 탈출 등을 비롯해 한국과 다른 생소한 코스여서 시험을 치르면서 식은땀을 계속 흘렸다. 무사히 코스 주행을 마치고, 드디어 미국의 운전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시험 합격의 기쁨이었다.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따고, 처음 운전할 때의 느낌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미국에서 운전면허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많은 상념에 잠기기도 했다. 평소 한국에서 무시하고 지나쳐 버렸던 많은 교통법규, 신호등, 표지판들의 중요함을 새삼 느꼈고, 한국에서의 운전행태를 반성했다. 물론 나 혼자만 그런 것은 아니라는 변명을 해보긴 했지만, 다시 한번 운전습관을 돌이켜 보고 재점검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어렵게(?) 딴 운전면허증으로 주말에는 가족과 즐거운 드라이브를 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중고 도요타 캠리를 사서 사용했는데 성능이 괜찮았다고 생각된다. 한국에 온 지금은 르노삼성 SM5를 타고 있다. 집사람이 주로 운전을 하고 나는 어쩌다가 고속도로에서 운전대를 잡는다. 이럴 때면 미국에서 운전면허시험 보던 시절을 잊고 앞지르기를 자주 하여, 차에서 내릴 때 둘째인 딸에게 늘 한마디를 듣는다. “아빠는 레이서야, 레이서.”
쓴 경험, 단 열매 전상귀<변호사> 2004-02-09
글쓴이는 얼마 전 동료들과 설악산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차를 몰고 시원스레 뚫린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상쾌했다. 더하여 동료들로부터 조심스럽게 운전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도 받았다. 나의 조심운전에는 사연이 있다. 9년 전 나는 어느 자동차 제조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지금은 입만 열면 자동차 이야기를 하지만 그때는 별 관심이 없어 운전을 배우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눈이 많이 내리던 날, 한 살배기 아들이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려 했으나 한 시간이 넘도록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비탈길 응달에서 아이를 안고 발을 동동거리며 택시를 기다리는 아내를 보고 결심했다. ‘그래, 운전면허를 따자. 운전을 하는 거야. 나도 책임 있는 아빠가 아닌가.’ 덜렁 그 날로 운전면허원서를 내고 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하필이면 그때 회사일이 너무나 바빴다. 운전면허학원에 가기는커녕 말도 붙일 분위기가 아니었다. 필기시험일은 다가오고 야근은 많고……. 필기시험장 가는 길에 요약부분만 겨우 읽고 시험을 보았는데 덜렁 붙어 버렸다. 필기시험은 합격했으나 더 큰 문제는 시동밖에 걸 줄 모르는 실기시험. 겨우 상사에게 이야기를 하고 시험장까지는 갔으나 시동만 세 번 켜보고 바삐 회사로 돌아가야 했다. 회사에 와서 선배들에게 귀동냥을 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 다음 무모하게 연습 한 번 없이 또 코스시험을 보러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어찌 어찌 합격을 해버린 것이다. 이어서 바로 주행시험을 보았는데 역시 시동만 켜보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이 정도가 어디냐고 동료들에게 생맥주를 한 잔씩 돌렸다. 그러면서 주행시험요령에 관해 귀동냥으로 설명을 듣고 이리저리 궁리를 했다. 어느덧 주행시험일은 다가오고 연습할 시간은 없고…….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인지, 다시 본 주행시험에서 덜렁 합격을 해버린 것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문제는 커졌다. 변속도 제대로 못하면서 면허를 따고 말았으니. 더구나 신기하게 생각한(?) 선배로부터 수동변속기가 달린 중고차까지 얻어 버렸으니. 잠이 오지 않았다. 이 일을 어떻게 하나. 우리 아기의 첫 걸음마도 이렇게 두렵지는 않았으리라. 궁리 끝에 야밤에 다니기로 했다. 새벽 5시 반에 출발하고 저녁 10시 반에 퇴근하기로 마음먹고 차를 끌고 집을 나섰다. 비상깜박이와 실내등을 켠 채 목동에서 여의도까지 1단으로 달리는 흰색 프라이드. 차들은 알아서 비켜갔다. 무슨 사고가 난 차겠거니 하듯이. 어찌어찌 회사까지는 왔으나 저녁때 퇴근할 일이 꿈만 같았다. 그 날 저녁 남의 일까지 도와주면서 10시 반이 되기를 기다렸다.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좌절했다. 비상깜박이를 끄지 않아 방전이 된 것이다. 지금처럼 보험사의 서비스가 좋지 못하던 시절, 퇴근한 선배들에게 구원을 요청해 배터리를 충전한 다음 다시금 모험이 시작되었다. 학원에서 해야 하는 일을 실제 도로에서 하고 있었던 셈이다. 집에 어떻게 왔는지 신통하기만 했다. 땀이 범벅이 된 나는 주차에 30분 이상 허비하고 만 다음에야 지친 채 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잠이 들면 차가 마음대로 조작되지 않는 꿈을 꾸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면서 오르막에서 미끄러지지 않는 요령도, 엔진 브레이크도 하나씩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아무런 사고 없이 주행한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나는 과속을 하지 않는다. 몰고 다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니까. 남들은 그것도 모르고 나를 ‘오소독스’라고 부른다. 요즈음은 운전면허제도가 엄격해졌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자동차만큼 위험한 물건이 몇이나 있을까. 우리나라는 자동차로 숨지는 사람의 수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거의 매일 교통사고 뉴스를 접하면서 고행하던 나의 초보시절을 떠올린다. 쓴 경험은 단 열매를 주기 마련이다.
몸과 마음으로 달리는 자동차 백현순<대구무용단.. 2004-02-09
상큼한 공기가 느껴지고, 햇살은 한지를 통해 아침을 알린다. 매일 접하는 사람도 거리도 어제의 것이 아니다. 오늘은 또 오늘의 의미를 부여받는다. 여느 때처럼 나는 변화의 의미를 되새긴다. 날이 바뀌고 시간이 바뀌면 태양광의 차이만큼 우리의 생각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춤꾼에게는 계절이 바뀌면 그 변화하는 의미들을 찾아내고자 하는 감정들이 자연히 생기게 마련이다. 이런 마음들이 비발디의 ‘사계’와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만들게 했나 보다. 아직 겨울의 긴 꼬리는 내게 실루엣처럼 사색의 울타리를 만든다. 봄이 되면 탄생의 의미와 우주의 오묘한 섭리를 다시금 깨우치게 되고, 여름이면 성장의 고통과 진통을 생각하게 되고, 가을이면 결실과 축제의 의식들을 떠올리며, 겨울이 되면 휴식의 소중함과 재충전의 의미를 되새긴다. 이런 생각들은 나를 지탱해주는 작은 힘이 된다. 그리고 또 있다. 이러한 계절과 함께 달리고 느끼며 어느덧 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자동차, 언제부턴가 나는 자동차가 없으면 꼼짝할 수가 없다. 뭔가 깊이 생각해야 할 때는 깊은 마음으로 달리고 가볍고 경쾌하며 기분이 좋을 때는 산뜻한 기분으로 또다시 달리고 간혹 불면의 밤이 있을 때는 불면을 이기려고 기어이 밤을 달린다. 그리하여 밤새 달린 차 안의 내 자신은 춤이 되고 사랑이 되어 다시금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 나의 예술작품 중 가장 차와 밀접한, 아니 차가 없었으면 도저히 완성되지 못했을 작품이 있다. ‘비디오&댄스’로 산이나 계곡 혹은 들판 같은 자연 속에서 추는 춤을 영상으로 담아낸 것인데, 하루에도 몇 번씩 옮겨다녀야 하는 작업이었다. 우린 옮겨다니는 차 속에서 밥을 먹고 옷도 갈아입고 분장하고 휴식도 했다. 그때만큼 차가 모든 용도로 쓰일 수 있는 요술방망이처럼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올해 다시금 차와 함께 다니는 근사한 예술작품을 꿈꾸고 있다. 무용수와 스태프 그리고 촬영장비나 소품 등을 가득 실은 차가 시동을 걸면 우린 붕붕거리며 삶과 예술, 그리고 사랑과 회한을 찾아 어딘가로 떠날 것이다. 영화촬영처럼 대식구가 이동하는 이 진풍경은 몇 년을 이어온 작업이다. 오늘밤도 나는 나의 새로운 작품 ‘회룡포 연가’의 진홍의 화첩을 펼치고 있다. 날씬하고 부드러운 무용수들이 거친 이야기를 소화해내며 우리의 역사와 인물들을 자세하게 보여줄 때에 비로소 난 잠을 청할 수 있을 것이다. 만춘(晩春)의 묘미를 느낄 그날을 생각하면 벌써 가슴이 뛴다. 아름다운 장면 속에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광경은 추억으로 내리고, 향수가 되고, 창밖의 눈이 된다. 내 기억 속의 춤은 시가 되었고, 내 기억 속의 동심은 춤이 되었다. 한여름 나동(裸童)들로 순수했던 나도 이제 세월을 감지하게된 것이다. 차를 타고 수없이 스쳐가던 풍광들의 변화가 남의 것이 아니고 나의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굳이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의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아도 이 순간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다. 이 시점이 지나면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 순간들을 기억하며 또한 나의 사랑하는 차 백색의 카렌스를 생각하며…….
카이런 개발팀 이끈, 최형탁 상무 “튼튼하고 오래.. 2005-07-11
카이런은 중국 상하이자동차그룹(SAIC)에 인수된 이후 처음으로 나온 쌍용차이고 오랫동안 한국인의 사랑을 받아왔던 무쏘 후속모델이라는 점 때문에 데뷔 전부터 높은 관심을 모았다. 2002년 9월에 제품개발 컨셉트가 정해진 카이런은 2002년 12월에는 스타일링이 확정되었고, 2003년 12월부터 양산개발에 들어갔다. 카이런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많은 관계자들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그 선두에는 개발의 전 과정을 이끌고 감독한 최형탁 상무(종합기술연구소 부소장)가 있었다.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을 풍기는 그는 엔지니어 출신답지 않게 유창한 말솜씨를 지녔고, 답변 하나 하나에 쌍용차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철학이 배어 있었다. 오프로드보다 도심 주행에 초점 맞춰 개발해 최근 들어 쌍용이 중국 자동차회사에 넘어갔으니 혹시 자동차 부품도 질이 떨어지는 중국산을 쓸 수도 있다는 말이 간혹 들린다. 이러한 루머에 대해 최형탁 상무에게 진의를 직접 물어보았다.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악성루머입니다. 카이런은 상하이자동차그룹에 인수되기 전부터 이미 개발에 들어간 차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이 워낙 중국산을 믿지 못해서 그런 말까지 나온 것 같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 쌍용차의 정책은‘높은 성능과 높은 가격’입니다. 중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요.” 쌍용차는 카이런 개발과정에서 2004년 4월부터 총 125대의 개발용 차를 제작하여 영상 50°C의 혹서지역인 스페인과 호주, 그리고 영하 40°C의 혹한지역인 스웨덴과 중국 등지에서 테스트를 거쳐 개발되었다. 또한 차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ESP(전자식주행안전프로그램) 개발시험을 북반구에서는 일본 훗카이도, 남반구에서는 뉴질랜드에서 가졌고, 중국 실크로드에서 크로스 컨트리(Cross-Contury) 주행시험을 마쳤다. 이외에도 실차 50회, 단품 200회의 충돌테스트 결과, 한국 NCAP(신차안전도평가) 기준으로 운전석은 별 4개, 동반석과 측면은 별 5개를 획득했다. 카이런에 얹은 XDi 엔진은 렉스턴에서 가져온 것이다. 렉스턴과 카이런의 차이점에 대한 그의 말을 들어보았다. “카이런은 기본적으로 디젤차의 아킬레스건인 정숙성에 가장 높은 비중을 두고 개발했습니다. 스포티한 주행으로 달리는 재미가 있고 고급 세단의 승차감을 느낄 수 있지요. 렉스턴과는 달리 오프로드보다는 도심 운행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 개발한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렉스턴과 같은 파워트레인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판매간섭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크기와 디자인이 서로 다르고, 렉스턴은 앞으로 카이런보다 강해진 파워로 다시 선보이게 될 것입니다.” 카이런의 개발과정에서 쌍용차가 벤치마킹한 것은 어떤 모델인가를 물었다. “이번에 벤치마킹이 된 모델은 BMW X5, 렉서스 RX330입니다. BMW X5의 다이내믹한 달리기, 렉서스 RX330의 부드러운 드라이빙 등이 벤치마킹의 대상이었지요.” 카이런의 방패모양 테일램프를 두고 네티즌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다. 테일램프 디자인에 대한 사전 조사는 없었는지 물었다. “저도 카이런 방패모양 테일램프에 대한 네티즌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보았습니다. 실제로 저희는 크레이(cray)모델 단계에서부터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시장조사를 했어요. 해외 딜러 60명을 통해 3차례의 품평회를 열었는데 반응은 오히려 좋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100%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봅니다. 쌍용차는 국내 다른 자동차회사처럼 대량생산을 하는 회사도 아니고, 다른 메이커의 차보다 비싼 편입니다. 이런 쌍용차가 지금껏 국내외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저희만의 차별화 전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패형 테일램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디자인, 성능 등 모든 면에서 쌍용은 시장을 선도하려고 합니다.” 최형탁 상무의 답변에는 장인으로서 자존심과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는 디자인 논란과 관련해 무쏘가 처음 시장에 나왔을 때도 사람들이 디자인에 대해 좋지 않게 평가했었지만 결국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쌍용차는 2010년까지 전 차종에 걸쳐 30만 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른 메이커보다 생산력도 낮고 가격경쟁력 면에서도 떨어지는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기술과 트랜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쌍용차가 소비자들에게 확실히 약속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튼튼하고 오래 탈 수 있는 차’입니다.” Z
크리스뱅글의 디자인 철학을 엿보다 자동차의 새로운 .. 2005-06-20
2001년 공개된 4세대 BMW 7시리즈(E65)는 이전의 BMW와 디자인이 크게 달랐다. 사실 1999년 선보인 Z9 그랑투리스모 컨셉트에서 변화가 감지되었지만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 자동차 평론가 및 BMW 고객들은 파격적인 변신에 호된 질타를 보내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혁신적인 디자인이라고 추켜세웠다. 찬반논란과는 상관없이 BMW는 7시리즈를 시작으로 Z4, 5, 6시리즈, 그리고 신형 3시리즈 등 연이어 독특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 새로운 변화의 중심에는 ‘크리스 뱅글’이 있었다. 미국 출신인 그는 위스콘신 대학을 졸업하고 패사디나의 디자인 전문학교 ‘아트센터’를 나온 후 피아트 그룹 디자인 책임자까지 지냈다. 1992년 BMW로 옮긴 후 BMW 치프 디자이너를 거쳐 지난해 2월부터는 BMW뿐만 아니라 미니, 롤스로이스, 모터사이클 등 BMW 그룹의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패러다임은 한 시대의 ‘공통된 특징’ 크리스 뱅글이 2005 서울모터쇼를 참관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기자는 서울모터쇼 프레스데이인 4월 28일 BMW 부스에서 북적거리는 사람들 어깨너머로 크리스 뱅글을 처음 보았다. 지면을 통해 자주 보아서 그런지 매우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4월 27~30일 나흘간 머물면서 서울모터쇼 관람을 비롯해 강연, 독일대사관 방문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냈다. 4월 28일 오후 크리스 뱅글은 서울 동숭동에 자리한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제로원 디자인센터에서 ‘21세기 자동차 디자인 경향’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 자리에는 디자인학과 학생 및 관계자 100여 명이 모여 그의 디자인 철학을 경청했다. 1시간 동안 진행된 강연에서 그가 가장 많이 쓴 단어는 ‘패러다임’ (paradigm). 패러다임은 한 시대 및 분야의 ‘공통된 특징’이라는 뜻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동차 디자인 역시 시대에 따라 공통적인 특징이 주기별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양산되기 시작한 1900년대초에는 차들의 모양이 비슷했다. 자전거 바큇살 같은 얇은 바퀴 위에 엔진을 얻고 마차식 승차공간을 가진 구조다. 1950년대 미국 캐딜락 등에서 볼 수 있었던 화려한 테일핀은 그 시대 자동차 디자인의 한 패러다임이었다. 이런 자동차 디자인의 패러다임은 놀람(amaze), 평이(routine), 지루함(boring), 패러다임(paradigm) 형태로 이동하는데, 이것을 바꾸는 것이 소비자의 몫이다. 즉 새로운 디자인이 나오면 처음에는 놀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눈에 익숙해진다. 그런 다음 지루하게 느끼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원하는 단계로 옮겨 간다. 모든 것에서 디자인 영감 얻는다 카디자이너는 엔진, 자동차 크기, 컨셉트 등이 정해진 후 그 테두리에서 디자인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런 이유로 혁신적인 디자인을 만들어 내기란 쉽지 않다. 자동차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요인으로는 신기술, 쓰임새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리스 뱅글은 ‘소비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관여한 디자인으로 애플사의 아이팟(iPOD)을 들었다. 이전에는 산업(industrial) 생산적인 측면에 비중을 두고 차를 디자인했다면 이제는 산업과 사람(humanism)의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 카디자이너는 고객과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정적인 강의가 끝난 후 가진 질의응답 시간에 “BMW가 새로운 자동차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주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크리스 뱅글은 "BMW 디자인은 현재의 패러다임이 끝나는 경계를 지나 새 패러다임으로 가고 있는 단계"라고 답했다. “디자인을 할 때 어디서 영감을 얻고, 보수적인 BMW 관계자들을 어떻게 설득시켰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으며, 엔지니어링 측면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 그리고 다른 분야의 요소들의 타협점을 찾아 설득한다”고 대답했다. 크리스 뱅글은 열정적인 강의와 유창한 말솜씨 그리고 중간중간 재치 있는 농담으로 강연을 이끌었다. 디자인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다 보니 차에 대한 내용보다는 전문적이거나 추상적인 개념을 많이 다루었다. 직접 펜을 잡고 스케치를 그리기도 하고, 여러 가지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질문자의 답변에 근접해 가는 노련함도 엿보였다. 그러나 답변이 너무 길어 여러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가지 못해 아쉬움도 남겼다. 며칠 뒤, 크리스 뱅글이 피아트의 디자인 책임자로 있을 때 참여한 피아트 쿠페를 우연히 길에서 보았다. 펜더에 깊게 파놓은 두 개의 옆 라인과 독특한 앞뒤 모습이 지금 봐도 굉장히 독창적이다. 그의 열정적인 강연 덕에 기자는 크리스 뱅글의 디자인 언어는 물론이고 BMW 디자인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글 | 조현우 사진 | 이명재
수입차 딜러 구승회 감성적 영업 마인드로 고객의.. 2005-06-15
소속과 직책, 걸어온 길 현재 코오롱 모터스 강남지점 BMW 1팀 주임을 맡고 있다. 큰아버지가 운수업체를 경영하셨고 차를 좋아하는 외삼촌이 있어 어린 시절부터 포니와 스텔라, 그라나다 등의 이름을 입에 달고 다녔다. 첫차는 21살이 되었을 때 손에 넣은 대우 프린스. 당시 대학생 신분으로는 과분했지만 워낙 차를 좋아했던 터라 유지비에 쪼들리면서도 즐겁기만 했다. 차에 대한 애정은 직장으로 이어져 96년 말 대우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자동차분야에 첫발을 내디뎠다. 3년 동안 대우자동차를 다녔고 이후 인터넷 관련 마케팅을 2년 정도 하다가 2002년 BMW 영업사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잠시 다른 분야에 있었는데 그 이유는? 3년 동안 몸담은 직장을 떠난 이유는 실적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재충전이 필요했고 아내에게 너무 소홀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휴식을 위해 무작정 떠나자고 맘을 먹고 미국에 두 달가량 머물렀다. 귀국한 뒤에 아는 선배가 운영하는, 디지털 사진을 다루는 인터넷 사업부에 입사해 새로운 일을 배웠다.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 생각의 폭을 넓혔고 경영 마인드를 기를 수 있었던 시기였다. 다시 자동차 분야로 돌아온 이유는? LA와 애틀랜타에 두달 가량 머무르며 차에 푹 빠져 지냈다. 특히 픽업을 승용차로 쓰는 그들만의 문화는 즐거움을 넘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었다. 차에 대한 미련을 계속 떨쳐버릴 수 없어 미국 마이애미 사진쇼에 출장 가면서도 독특한 차를 빌려 타보려고 애썼다. 주위 아는 분들이 차를 살 때 함께 다니면서 볼보, BMW, 벤츠 등 고급차를 많이 타보았고 점점 차에 대한 욕심이 커졌으며, ‘내 인생은 차와는 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많은 수입차 메이커 가운데 BMW를 고른 이유는? BMW와의 인연은 처형이 318i를 사면서부터. 가족과 여행을 떠나면서 서울에서 강릉까지 운전을 맡았는데 스포티한 달리기 성능에 매우 끌리게 되었다. 그 이후 BMW의 여러 모델을 타보면서 뛰어난 달리기 성능에 확 끌렸다. 이런 차라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고 이미 BMW 딜러인 코오롱 모터스에 몸담고 있는 아는 분을 통해 입사하게 되었다. BMW는 운전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차다. 나는 7시리즈 고객이라 할지라도 일단 차를 몰아보도록 만든다. 뒷좌석만을 고집했던 분들이 ‘운전이 재미있다’며 가끔 손수 핸들을 잡는 모습을 볼 때 내가 파는 차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다면? 자동차 딜러라면 아무래도 첫 고객이 가장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을까? 청계천에 자리한 빌딩 오너였던 분이라 경제사정이 넉넉했지만 아는 딜러가 있어 차를 팔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무뚝뚝한 고객에 비해 사모님의 인상이 너무 좋아 꽃과 편지를 드렸고 이에 감동한 사모님이 남편을 설득, 기회를 주신 것. 지금도 첫 고객과는 연락하며 찾아뵙는 사이다. 영업을 잘 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지금은 감성적 영업 마인드가 중요하다. 고객과 공감대를 나눌 수 있는 부분, 즉 예술, 운동, 세무상식, 의료지식 등에 이르기까지 막힘없이 술술 풀어낼 수 있는 팔방미인이 되어야 한다. 공통 화제를 놓고 대화를 끌어가려면 평소 공부를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객을 그냥 차를 사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하면 접근하기 어렵다. 친척이나 친구 대하듯 정을 듬뿍 담으면 자연스레 그들이 진심을 알아준다. 고객의 아기 돌잔치를 가더라도 흔히 보는 축의금 대신 BMW 유모차를 선물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고소득 직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실은 어떤가? 남들보다 열심히 일하면 고소득이 주어진다. 그렇지만 돈을 보고 쉽게 뛰어들 분야는 아니다. 입사한 지 올해로 3년이 되었지만 마음 편하게 쉬었던 날은 1주일이 채 되지 않는다. 그만큼 업무에 따른 스트레스도 많고 실적에 대한 부담도 크게 다가온다.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2002년 3대에서 시작해 2003년 38대를 팔았고 지난해 판매대수는 64대를 기록했다. 흔히들 말하는 억 대 연봉을 받는 셈이지만 고객에 대한 재투자로 많이 쓰기 때문에 실질적인 돈은 크게 줄어든다. 사람에 대한 믿음 없이 돈만 보고 일하기는 어려운 직업이다. 자동차 딜러의 일상은 어떤가? 아침 여덟 시에 출근해 오전에는 기존 고객을 관리한다. 오후에는 새로운 고객을 찾거나 관계자를 만난다. 퇴근시간은 6시 30분이지만 오히려 일과가 끝나고 고객과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 딜러는 어찌 보면 개인사업에 가깝기 때문에 스케줄 조절은 자유로운 편이다. 주말에 여가를 즐기는 일은 꿈도 꾸기 어렵다. 일의 특성상 고객들을 만나는 황금시간이기 때문이다. 국산차와 수입차의 영업방식에 다른 점이 있다면? 국산차는 명함을 돌리거나 빌딩을 타는 등 신규 영업 위주로 진행해야 한다. 판매의 대부분이 소개로 이루어지는 수입차는 입소문이 매우 중요하다. 기존 고객의 신뢰를 얻거나 지속적인 관리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또한 국산차와 비교할 때 비교적 차 값이 비싸기 때문에 딜러 재량에 따라 서비스를 줄 수 있는 폭이 넓다. 고객을 만날 때도 단순히 차를 마시는 게 아니라 볼링이나 골프를 함께 치는 방법도 있다. 자동차 딜러의 직업적 장단점은? 이 일의 가장 멋진 점은 노력한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어 일에 대한 성취감이 높다는 것이다. 목표한 바를 이뤘을 때의 금전적인 보상을 떠나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인적 자산이 많아진다는 사실은 큰 장점이다. 반면 잃는 부분도 많다. 먼저 가족과 함께 지낼 시간이 없어진다. 돈을 버는 목표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인데 일과 고객에 모든 것을 쏟아 붓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진다. 난 다행히 내 상황을 이해하고 힘을 주는 아내가 있기에 나은 편이다. 자동차 딜러에게 맞는 성격은?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몸이 건강해야 한다. 사람을 만나는 활동적인 일이 대부분이라 몸이 지치면 업무를 제대로 해낼 수 없다. 깊게 생각하고 다양한 주제를 많이 아는 박학다식한 사람에게 잘 어울린다. 내가 만나본 판매왕 대부분은 세상물정에 밝고 다방면에 해박한 분들이었다. 무엇보다 강한 승부욕을 지녔다면 금상첨화다. 목표를 정하고 일을 추진하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공은 크게 관련이 없다. Z 이 달의 전문가 BMW 코오롱 모터스 강남지점 구승회 주임은 국산차 딜러와 마케팅 업무를 거쳐 수입차 딜러로 거듭났다. 2002년 입사한 뒤 지난해까지 105대를 팔아 BMW 판매왕에 오른 수입차 판매 전문가다. 그는 딜러에 대해 사람에 대한 믿음 없이 돈만 보고 일하기는 어려운 직업이라고 말한다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