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불영계곡 지나 울진 가는 길 여백 넉넉한 드라이브 .. 2004-12-16
지나온한해처럼 꼬불꼬불하고 높낮이가 심한 산길을 간다. 모퉁이를 돌면 산 그림자가 나서고, 고개 하나 넘으면 다른 산이 가로막는다. 속도를 낮추어도 몸이 휘청거리는 경북 울진 가는 산길에는 하룻밤 숨을 곳과 눈길을 빼앗는 계곡, 2억5천만 년 된 동굴이 있고 마침내 바다가 기다린다. 달리는 내내 곤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지만 그만큼 여백이 넓은 여행도 감사할 일이다. 늦가을 낙엽을 남김없이 떨어내고 빈 몸으로 겨울을 맞는 나무처럼 훌훌 울진으로 간다. 하룻밤 숨어들기 좋은 통고산자연휴양림 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을 빠져 나오면 국도 여행의 시작이다. 5번 국도를 따라 내려가다 영주에서 36번을 붙잡고 놓치지 않으면 울진에 이르게 된다. 백두대간의 밑동을 훑는 경북의 산은 낮지만 가파르다. 이 산 저 산 사이 놓인 국도는 ‘시속 60km 제한’을 알리는 표지를 태연스레 내걸고 있다. 일부 구간은 제한속도가 시속 40km. 말 잘 듣는 어린이처럼 꼬박꼬박 속도를 줄이고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본다. 단풍이 물러간 산 빛은 염색한 지 오래된 노모의 머리칼 같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지나쳤건만 봉화역의 새 역사도 처음 눈에 들어온다. 봉화를 지나 노루재 터널을 통과하면서부터 시야가 트일 기색이 없다. 울진을 55km 남겨두고 오른쪽에 물줄기가 따라나선다. 또다시 한 고개, 회고개재를 넘는데 공기가 멈춰선 듯한 산 속에 ‘소천파출소 분천분소’가 서 있다. 밤이면 산적이 출몰할까? 난데없이 나타난 ‘공권력’이 듬직하다. 답운재를 넘고 얼마 안가 통고산자연휴양림 입구가 보인다. 전국의 휴양림이 대개 그렇듯 통고산자연휴양림도 깨끗한 계곡을 끼고 서 있다. 키 큰 나무를 거느리고 완만하게 이어진 산책길이 아름답고 통나무집 주변도 예쁘게 꾸며 놓았다. 겨울이 가까워서인지 눈 내리는 광경을 그려보면 더욱 근사하다. 이렇게 싸늘한 계절, 휴양림을 찾는 마음은 숨바꼭질과 비슷하다. 아무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나만의 아지트’ 같은 곳에 숨어 심호흡을 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세상을 엿보는 그때, 술래가 사라진 나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다면 기쁠까. 통고산자연휴양림은 하룻밤쯤 꼭꼭 숨어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거나, 아이들에게 자연의 풍부한 표정을 보여주고 싶을 때 찾기 좋은 곳이다. ☎(054)782-9007 들를 만한 곳 울진읍 노음리에 2억5천만 년 세월의 작품, 성류굴이 있다. 천연석회암동굴로서 종유석과 석순, 석주가 화려하고 12개의 광장과 5개의 못이 장관을 이룬다. 성류굴의 원래 이름은 선유굴로, 신선이 노닐 만큼 아름답다고 붙은 이름이다. 연무동석실, 은하천오작교, 용신리선녀교 등으로 이어지는 광장은 하나 같이 신비경이다. 지질학적으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제155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대게로 유명한 죽변항 가까이 TV 드라마 ‘폭풍속으로’ 세트장이 들어서 있다. 언덕 위에 선 흰 등대와 옛스럽고 이국적인 한 채의 집, 배경으로 펼쳐진 바다가 그럴싸하다. 겨울여행에 온천이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라면 덕구온천을 여정에 넣을 것. 덕구온천은 자연용출 약알칼리성 온천으로, 데우거나 식히지 않아도 항상 41.8도를 유지한다. 목욕을 마치고 나면 피부가 매끈매끈해지고 근육통도 한결 덜하다는 이용객들의 입소문이 자자하다. 덕구온천 스파월드는 기포욕, 맛사지 시설, 노천온천, 액션스파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춰 덕구온천지구에서 가장 인기 있다. ☎(054)782-0677 목적지는 울진이지만 36번 국도는 몇 번이나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지난 여름 관광객으로 들끓었을 불영사와 불영계곡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 표지판을 보고 찾아 들어간 불영사는 때마침 내리기 시작한 찬비 속에 수채화처럼 맑게 서 있다.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하고, 보물 1201호인 대웅보전은 안에 있는 탱화의 기록으로 영조 원년(1725년)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법영루 앞에는 제법 커다란 연못이 있는데, 산 위의 부처님 형상을 한 바위가 이 연못에 비쳐 구룡사에서 불영사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대웅보전, 응진전을 비롯해 귀한 문화재가 여럿 남아 있는 명찰이지만, 사실 불영사에서 마음에 담은 것은 낙엽이 곱게 깔린 흙길과 미련처럼 남은 단풍, 하늘 높이 솟은 은행나무, 제멋대로 가지를 뻗은 고목들이다. 늦가을 불영사 들머리의 아름다운 풍경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불영사를 나와 울진까지 낭떠러지에 가까운 협곡이 따라붙는다. 1985년 36번 국도가 놓이기 전에는 교통편이 없어 찾는 이가 드물었다는 불영계곡이다. 길이 15km에 흰빛의 화강암이 계곡 곳곳에 여울을 만들고 광대코바위, 주절이바위, 창옥벽, 명경대, 의상대, 산태극, 수태극 등 이름이 붙은 명소만 30여 군데. 두어 군데 세워진 팔각 전망대에 오르면 불영계곡의 장쾌한 스케일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불영계곡 덕에 36번 국도는 손꼽히는 드라이브 코스의 하나가 되었다. 수산에 이르러 36번 국도와 작별을 하고 불영계곡의 맑은 물이 흘러드는 울진 앞바다 ‘망양해수욕장’으로 간다. 이 산 저 산을 어지럽게 넘어 마주한 망양의 바다는 파란색인지 회색인지 분간할 수 없는 낯빛이다. 무심한 바다를 한동안 무심한 척 바라본다. 36번 국도의 보석들을 줍기 위해 울진을 생각해낸 것이었는지, 겨울바다가 보고 싶어 그 꼬불꼬불한 길을 누빈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심히 대하는 바다도 그저 바다여서 좋을 뿐. 술래에게 발각된 순간 터진 웃음처럼, 정체 모를 기쁨이 비릿한 공기 속에 퍼진다. 취재 협조: 한불모터스(푸조 206cc) ☎(02)545-0606 드라이브 메모 중앙고속도로 풍기나 영주 나들목으로 나와 영주시내에서 36번 국도로 갈아타고 봉화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통고산자연휴양림, 불영사, 불영계곡을 차례로 만나다 울진에 이르게 된다. 36번 국도와 7번 국도가 만나는 지점에서 좌회전해 3km쯤 올라가면 울진읍내이고 계속해서 10km쯤 더 달리면 폭풍속으로 드라마 세트장이 있는 죽변항이 나온다. 죽변항을 지나 7.6km쯤 가면 왼쪽으로 덕구온천으로 이어진 917번 지방도가 갈라진다. 36번과 7번 국도가 만나는 지점에서 우회전하면 수산교를 지나 사거리가 나온다. 좌회전해 2km 가면 망양해수욕장, 우회전해 2.9km 가면 성류굴이다. 영동고속도로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빠지지 않고 강릉까지 가서 7번 국도를 따라 남하해도 울진에 닿는다. 바닷가와 나란히 달리는 기분에 드라이브의 재미는 더 하지만 주말이라면 영동고속도로에서 정체를 만나기 십상이다.
가을 끝자락에서 추억 만들기 쓸쓸하여 더욱 아름.. 2004-11-23
제주도 동부 야트막한 오름에서 억새가 춤춘다 제주도의 일주도로는 12번 국도다. 총연장길이는 176km 정도 된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직선으로 잇는 축이 있다고 가정할 때 이 도로의 동쪽을 동회선일주도로, 서쪽을 서회선일주도로라고 부른다. 동회선일주도로가 지나는 제주도 동북부에는 오름(기생화산)들이 많이 있으며 이곳 오름밀집지대는 쓸쓸한 가을날의 여행지로 알맞다. 오름 사이사이로는 거미줄처럼 도로가 뚫려 있고 그 길섶에는, 오름 오르는 능선과 정상 부근에는 어김없이 억새들이 피어나 짧기만 한 가을날을 눈물 짓게 만든다. 제주도의 360여 개 오름 가운데 일반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오름이 산굼부리이다. 제주시내에서 절물자연휴양림 입구를 지나 좌회전, 교래사거리에서 직진하면 산굼부리에 닿는다. 제주도를 처음 찾는 사람이라면 꼭 들러야 할 곳이지만 여러 차례 제주도를 방문한 여행객은 산굼부리를 제쳐 두고 아부오름으로 향한다. 제주 동북부 오름 기행에서 생략할 수 없는 곳이 아부오름이다. 영화 ‘연풍연가’와 ‘이재수의 난’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다. 오름 정상의 해발고도는 301m이나 비고(도로에서 시작해 실제 등산하는 높이)는 51m에 지나지 않는다. 완만한 비탈을 5∼10분 걸어 아부오름 정상에 올라서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웅장한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발 아래로는 로마시대의 콜로세움 같은 분화구가 78m 깊이로 움푹 꺼져 있고 고개를 들면 한라산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이 광경을 처음 본 사람은 그저 감탄사만 내뱉을 뿐이다. 실제로 제주도의 숱한 여행지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곳으로 아부오름을 꼽는 여행객이 많다. 북제주군 구좌읍 송당리 대천동 사거리에서 비자림로를 타고 송당 방면으로 직진, 송당목장 입구를 지나자마자 만나는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아부오름 표지석이 보이는 도로변이다. 조천읍과 성산읍을 잇는 16번 국도상의 송당초등학교 입구에서 성산 방면으로 4km 정도 가면 종달리로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 길로 접어들어 왼쪽으로 보이는 것이 다랑쉬오름(월랑봉), 오른쪽으로 보이는 것이 용눈이오름이다. 용눈이오름은 해발고도 247m, 비고가 88m로 올라가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봉우리 3개와 분화구 3개, 알오름 2개로 이뤄진 복합형 오름이어서 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천태만상이다. ‘오름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붙은 다랑쉬오름은 해발 382m, 비고가 227m라 등산하기가 쉽지 않다. DATA 홈페이지 : 북제주군청 bukjeju.go.kr 문의 : 북제주군청 관광교통과 741-0510, 북제주군청 관광지관리사무소 783-4818 가는 길 : 제주도는 렌터카 천국이다. 회사마다 렌터카 이용료도 천차만별. 대여료가 비싸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싸다고 비지떡 보듯 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의 업체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고객 서비스를 실천하고 있다. 대장정렌터카(국산차 전문) 711-8288, 아우토반렌터카(수입차 전문) 746-0051 주변 명소 김영갑갤러리 : 성산읍 삼달리의 옛 삼달초등학교에 자리잡은 사진 전문 갤러리. 전시관에는 제주도의 풍경과 인물을 골고루 담은 김영갑 씨의 사진 작품들이 걸려 있다. 갤러리를 만든 김영갑 씨는 충남 부여 태생의 사진가. 제주도에 반해 1985년 제주도에 정착했다. 그는 끼니를 걸러 가면서까지 제주도를 사진에 담아 왔다. 그러나 5년 전부터는 루게릭병이 심해져 지금은 셔터를 누르지 못한다. 그런 아픔 속에서도 폐교를 사진 전문 갤러리로 환생시켜 제주도의 바람, 전설, 신앙, 전통문화 등을 담은 사진들을 외지인에게 보여준다. 라는 수필집과 사진집을 살 수 있다. 784-9906 벌루닝 : 서귀포에 가면 벌루닝이라는 이색적인 탑승기구가 있다. 열기구처럼 생겼지만 공기를 데워서 하늘을 나는 열기구와 달리 벌루닝은 공기보다 가벼운 헬륨가스를 벌룬에 가득 채워서 하늘로 띄운다. 기구는 지상과 강철 케이블로 연결돼 있어서 수직으로 하늘에 올랐다가 바람을 타고 약간 흔들리기만 한다. 지름 22m, 높이 34m에 이르는 이 기구에는 최대 30명까지 탈 수 있는 철제 바구니가 매달려 있다. 사람이 다 타면 서서히 하늘로 올라 지상 150m에서 20분 가량 머문다. 서귀포 시가지는 물론이고 한라산과 산방산, 문섬, 섶섬, 지귀도 등이 시야에 들어와 이색적인 느낌을 제공한다. 732-0300 맛집 성산포항 진입로 변에 자리한 전라도식당(782-8873)은 갈치, 고등어요리 전문점. 특히 매일 성산포항에서 직접 사온 은갈치를 매콤하고 진하게 조려낸 갈치조림이 입맛을 유혹한다. 성읍민속마을에는 괸당네식당(787-1055), 낭밭식당(787-0414) 등이 있다. 숙박 서귀포시 상예동에 재즈마을이라는 펜션이 있다. 4채의 통나무집 건물은 ‘저마다 노래하는 산호,’ ‘시네마천국,’ ‘푸른 지붕,’ ‘더 왈츠’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총25개의 객실은 1층에 주방과 거실, 2층에 침실이 배치된 복층식 펜트하우스형과 주방, 침실, 욕실을 한 곳에 모은 원룸형이 있다. 영화상영 등 이벤트가 자주 열린다. 738-9300 단양 선암계곡 옥류에 비치는 단풍의 붉은 빛 단양을 중심으로 한 갖가지 절경 중에 도담삼봉, 석문, 옥순봉, 구담봉,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 사인암을 ‘단양 제1팔경’이라 한다. 중앙고속도로 단양 나들목을 빠져나가면 곧바로 사인암과 선암계곡 일주 드라이브가 시작된다. 단양8경 중 4가지 비경이 자리하는 사인암과 선암계곡을 한 바퀴 휘도는 도로의 길이는 40여 리로 곳곳이 기암괴석이고 뼈까지 비쳐낼 것 같은 단양천의 맑은 물은 암반 위를 흘러가며 작은 폭포를 수도 없이 이뤄낸다. 이 구간에는 도락산(964.4m)의 암봉들이 사열하듯 늘어서 있어 나들이의 즐거움을 더한다. 사인암의 ‘사인’은 고려시대의 벼슬에서 따온 명칭이다. 가을철이면 높다란 수직의 절벽 외곽을 빼곡이 수놓은 단풍은 보는 이의 가슴을 요동치게 만든다.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소나무 몇 그루의 푸르름은 단풍미를 더욱 돋보이게 도와준다. 바위 밑으로 흘러가는 계곡물 역시 단풍빛을 고스란히 머금어 충주호에 가서 그 빛깔들을 풀어 놓는다. 사인암 옆에는 청련암이란 작은 암자가 있고 사인암 아래, 물가 바위에는 바둑판과 장기판도 새겨져 있다. 사인암에서 선암계곡 최남단, 문경시 동로면 땅과 가까운 곳에 자리한 방곡도예촌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자동차 통행이 거의 없다. 길도 직선형. 지난 1997년 봄에 준공되었다. 천천히 달리면서 좌우로 시선을 돌리면 도락산과 황정산, 수리봉 줄기가 곱디고운 단풍의 자태를 드러낸다. 마침내 맞닥뜨리는 삼거리, 우측은 월악산국립공원 구역의 상선암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방곡도예촌으로 가는 길이다. 잠시 방곡도예촌에 들렀다가 월악산국립공원 지역으로 들어간다. 매표소도 지나고 궁텃골도 지나면 길은 북쪽으로 휘어진다. 바로 상선암으로 향하는 길. 만 가지 바위들이 층벽을 이루고 계류는 작은 폭포를 이루는 상선암 앞으로는 구름다리가 암벽과 암반 사이에 놓여 있다. 도락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상선암에서 800m 떨어진 곳에서 시작된다. 상선암에서 2.8km를 더 가면 중선암. 중선암은 상선암과 달리 눈에 잘 띄지 않으므로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중선암 아래쪽 천변길을 500m쯤 따라가면 도락산장이 나온다. 산장으로 들어가는 길과 주변 풍경도 빼어나다. 중선암에서 가산교, 홍안교를 지나 하선암교를 건너면 왼쪽 도로변에 하선암이 물 속으로 쏟아질 듯 서 있다. DATA 홈페이지 : 단양군청 www.danyang.chungbuk.kr 문의 : 단양군청 문화관광과 420-3544 가는 길 : 중앙고속도로 단양 나들목으로 나가 대강면소재지에서 927번 지방도를 탄다. 먼저 사인암을 답사한 후 원사천변과 나란히 달리는 방곡도예촌행 도로를 달린다. 이어 월악산국립공원 구역의 선암계곡으로 들어가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을 차례로 만나 본다. 중앙고속도로 북단양 나들목으로 나가면 도담삼봉과 단양읍소재지, 고수동굴 등으로 먼저 들어가게 된다. 주변 명소 고수동굴 : 단양읍내에서 고수대교를 건너 처음 만나는 고수동굴은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유동굴로 알려져 단양 관광 때 필수코스라 할 만한 곳이다. 5억 년의 연륜을 자랑하는 큼직큼직한 공간과 아름드리의 각종 종유석, 석순, 석주가 시원스레 뻗쳐 있어 동굴관광에는 교과서격이다. 입구에서 100여m 들어가면 온갖 비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어떤 종유석은 손가락 같기도 하고, 또 단양8경의 하나인 도담삼봉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닮은 꼴도 있는가 하면 마리아상과 우렁차게 포효하는 사자바위도 있다. 황금주, 사랑바위, 해구암, 황금폭포, 천당성벽 등 80여 군데의 각종 기기묘묘한 자연의 신비에 빠져들면 1시간 정도는 금방 지나간다. 온달관광지 : 단양에서 영춘면으로 가는 길은 내내 남한강을 끼고 달리며, 때로는 강가에 기암절벽이 시선을 압도하기도 하는 대단히 수려한 드라이브 코스이다. 영춘으로 들어서기 직전 3거리에서 구인사 가는 길로 약 300m만 가면 온달관광지 입구. 여기에서 온달산성(둘레 972m)으로 오르면 국내 최고의 하나라고 할 만한 강 전망을 즐길 수 있다. 뱀처럼 굽이치며 흐르는 푸른빛의 남한강과 첩첩이 뻗어나간 산줄기, 영춘면 소재지와 영춘교를 비롯해 주변을 한눈에 조망하는 시원스러움, 산줄기를 따라 곡선으로 휘어진 산성의 튼튼하고 유려한 모습들….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절경이다. 맛집 단양읍내 경주식당(423-0504)은 올갱이국, 장다리식당(423-6660)은 쌈밥과 도토리빈대떡, 대강면 소백산목장식당(422-9270)은 암소한마리, 가곡면 함지박식당(422-3565)은 우렁된장찌개와 쌈밥을 잘 한다. 숙박 가곡면 가대리의 한울펜션(422-4864)은 충북 지역 최초의 펜션. 단양읍내에는 단양관광호텔(423-7070), 단양대명콘도(420-8311), 이화파크텔(422-8200) 등 숙박업소가 많다. 순천만 드넓은 갯벌과 갈대숲의 장관 고흥군의 고흥반도와 여수시의 화양반도로 둘러싸인 물결 잔잔한 바다 순천만. 그곳에는 갈대밭이 있고 갯벌이 살아 숨쉰다. 붉은 빛을 띤 칠면초 군락지마저도 아름답다. 해룡면의 해안도로와 별량면의 해안도로는 가슴이 후련해지는 드라이브에 딱 좋은 길이다. 화포마을에서의 일출과 와온마을에서의 일몰 감상도 매력적. 순천만은 외지에서 찾아온 여행객들에게 그런 속살들을 아낌없이 선사한다. 순천시가지에서 여수시로 이어지는 17번 국도를 타고 내려가다가 해룡면소재지로 우회전, 863번 지방도를 탄다. 해룡면의 중흥리와 해창리를 지날 즈음에는 칠면초가 자라는 갯벌과 수확을 끝낸 논이 수시로 교차되며 시야에 들어온다. 선학리 가장마을을 지나기 직전, 용머리 야산으로 방향을 잡는다. 순천만 남쪽에서 꼬막 채취나 고기잡이를 마치고 갯골을 따라 고깃배들이 대대포구로 돌아오는 서정적인 장면을 감상하기에 좋은 포인트로 가려는 것이다. 전망대 구실을 하는 그곳에 서면 갯벌 사이에 S자로 멋지게 휘어진 갯골과 갯벌 건너편의 대대동, 교량동의 저녁 풍경이 일몰의 햇살을 받아 금빛에서 붉은빛으로, 다시 보랏빛으로 차근차근 옷을 갈아입는다. 그 아랫녘의 와온마을 역시 순천만의 일몰을 감상하기에 좋다. 선학리 아래 농주리를 지나 해룡남초등학교 부근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와온마을 가는 길이 시작된다. 와온마을은 자그마한 포구가 딸린 마을로 서너 개의 음식점이 영업 중이다. 멀리 고흥군의 팔영산도 보이는 와온포구를 모항으로 삼은 고깃배는 선외기와 꼬막 작업선이 각각 20여 척 정도다. 갯벌로 내려가면 주민들이 꼬막이나 바지락을 캐러 다닐 때 뻘에 빠지지 않도록 타고 다니는 널(도시 사람들은 스키처럼 생겼다고 해서 ‘뻘스키’라고 부르기도 한다)도 볼 수 있다. 한 횟집에 들러 주인장과 순천만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와온마을 앞바다, 아니 갯벌 중간에 홀로 선 섬의 이름은 까막섬이라고 했다. 대대동의 갈대밭이 끝나는 지점부터 보성군 여자만과 여수시 율촌면 봉전리를 잇는 바다는 썰물 때면 거대한 갯벌로 변신한다. 주민들은 꼬막이 산란하는 5월 중순 이후 갯벌에 대나무를 이용한 채묘 그물을 설치한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동안 꼬막의 포자들이 이 그물에 달라붙는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꼬막은 겨울에 캔다. DATA 홈페이지 : 순천시청 www.suncheon.go.kr 문의 : 순천시청 문화홍보실 749-3742 가는 길 : 호남고속도로 순천 나들목으로 빠져나가 17번 국도를 타고 여수 방면으로 내려간다. 해룡면소재지 사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꺾어 863번 지방도를 타면 와온마을과 여수시 소라면, 화양반도 등지로 갈 수 있다. 송광사나 낙안읍성민속마을 등지로 가려면 호남고속도로 주암 나들목으로 나가는 것이 좋다. 주변 명소 대대포구 갈대밭 : 순천만은 민물과 바닷물이 합수하는 지역이라서 철에 따라 장어도 잡히고 맛조개, 짱뚱어, 망둥어, 전어 등이 잘 낚이는 황금어장. 주민들은 갈대밭이 물을 정화시켜 주고 산란기를 앞둔 고기들을 불러모은다고 공덕을 갈대밭에 돌린다. 순천청암대학에서 별량면 방면으로 2번 국도를 타고 진행하면 인월동사거리가 나온다. 도로변에 ‘순천만’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그 지시대로 따라가면 대대동 대대포구로 가게 된다. 갈대밭이 형성된 지역은 순천시 교량동과 대대동, 맞은편의 해룡면의 중흥리, 해창리, 선학리 등으로 그 면적이 약 15만 평이다. 순천시내를 관통해서 순천만으로 흘러드는 동천과 상사조정지댐에서 흘러온 이사천의 합수 지점부터 하구에 이르는 3∼4km의 물길 양쪽이 온통 갈대밭으로 국내 최대의 갈대 군락지. 대대포구에 가면 고깃배를 모는 3명의 어부이 여행객을 상대로 배를 태워 주고 갈대밭을 구경시켜 주는데 30여 분이 걸린다. 그들은 “대대포구까지 와서 둑 위에서 슬쩍 머물다 가는 갈대밭 구경은 헛것”이라며 “배를 타 봐야 제대로 된 여행”이라고 말한다. 맛집 낙안면 동내리의 고행보리밥집(754-3419)을 찾으면 보리와 쌀을 5:2 정도로 섞어 지은 보리밥에 상추, 깻잎, 배추잎, 무잎, 풋고추 등 방금 텃밭에서 따온 야채들이 푸짐하게 상에 오른다. 돼지고기는 주문을 받자마자 고추장 양념을 얹어 숯불에 굽는다. 순천역 맞은편에 먹거리명소와 숙박업소가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흥덕식당(744-9208)은 순천시민들이 손꼽는 별미집. 생선매운탕, 구이, 양념한 굴젓 등 말이 백반이지 다른 동네 가면 한정식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 숙박 순천시내에 로얄관광호텔(741-7000), 시티관광호텔(753-4000), 노블레스호텔(722-7730), 동경장호텔(741-6500), 아젤리아호텔(754-7000), 에메랄드모텔(741-7693) 등이 있다.
정선 민둥산 하늘 아래 은빛 융단, 억새풀밭을 거닐.. 2004-11-19
가을에도 억새는 비울 것 다 비운 그런 노년의 표정으로 능선에서 저물어 가는 한 해를 보내며 서 있을까? 어린 치기도, 덧없는 혈기도 다 버리고 통곡도 다 버리고 성성한 백발로 이제 나도 그 옆에 한 줄기 억새로 섰으면 싶다.’ 꽃을 사랑하는 작가 손광성 씨는 는 수필집에서 하얗게 팬 억세풀꽃을 보고 이렇게 읊조렸다. 흔히 가을을 풍성한 수확의 이미지나 화려한 단풍의 색감으로 예찬하는 이가 많지만, 사실 이 계절은 인생으로 보면 스스로 저물 때를 준비해 가는 쓸쓸한 기로다. 젊은 날 끝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과 욕망의 불씨는 그만 덮을 것. 스스로 빈 몸이 되지 않고는 황혼도 아름다이 맞을 수 없다. 가을꽃 구경하며 오르는 깔딱고개길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은 창녕 화왕산, 밀양 사자평 등과 함께 국내에서 첫손 꼽히는 억새 군락지다. 해발 1천119m, 하늘 아래 펼쳐진 산꼭대기 능선에서 마치 눈이 쌓인 듯 은빛으로 출렁이는 평원을 마주하는 일은 이 가을 어떤 풍광보다도 가슴 벅찬 감동을 안긴다. 정상까지 숨이 넘어갈 듯 가파르게 이어진 깔딱고개길은 결코 녹록치 않은 우리네 인생과 닮아 있다. 조금 이른 때라면 주변에서 쉽게 눈에 띌 가을꽃들―자줏빛 길쭉한 꽃이 매달린 산여귀나 샛노란 감국, 흔히 ‘들국화’라 불리는 쑥부쟁이, 보랏빛 꽃술이 솜방망이처럼 엉켜 피는 엉겅퀴, 이름도 향기로운 꽃향유 등을 반기고 쓰다듬으며 쉬엄쉬엄 오르면 그만이다. 이름 그대로 계곡이나 암벽 하나 없이, 흔한 소나무도 한 그루 없이 밋밋하게 솟아 있는 민둥산은 원래 산나물이 많이 자라라고 해마다 불을 놓는 통에 ‘까까머리’ 산이 되었다. 봄여름에는 그늘 한 점 없이 황량한 초지만 펼쳐질 뿐이지만, 해마다 10월이면 하얀 억새풀꽃을 백발처럼 머리 가득히 이고 눈부신 가을 이벤트를 준비한다. 민둥산 억새의 절정기는 보통 ‘억새풀 큰잔치’가 펼쳐지는 10월 중순이지만 올해는 조금 늦어 11월 초까지 늦춰질 전망이라니, 당장에라도 찾아가 볼 만하다. 민둥산 등산로는 흔히 증산초등학교~발구덕~정상 코스를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선까지는 영동고속도로 진부 IC에서 빠져 59번 국도를 따르고, 정선을 지나 태백·사북 방향으로 30km쯤 더 달리면 오른쪽에 증산역이 나타난다. 이 부근에서 좌회전하는 증산초등학교 팻말을 따라 작은 터널 하나를 통과하면 곧장 민둥산 오름길. 여행객이 붐비는 주말이나 휴가철에는 증산초교 앞에 차를 세우고 1시간 반 남짓의 등산로를 걸어 오르는 것이 편하며, 평일에는 해발 840여m 지점의 발구덕마을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 어묵과 메밀전 등을 파는 포장마차가 서 있는 발구덕마을 끄트머리에 차를 세우고 민둥산 정상까지 걸어 오르는 데는 40분이면 충분하다. 능선 따라 20만 평의 은빛 물결 민둥산 억새는 정상을 지나는 가르마 같은 능선길을 따라 20만 평 규모로 펼쳐져 있다. 그러나 정상 부근에서 볼 수 있는 억새는 이 중 10~2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인근 지억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계속 군락을 이룬다. 억새를 가장 멋지게 감상하는 방법은 해질 무렵 해를 마주하고 서서 그 빛을 반사하며 출렁이는 억새의 물결을 따라 걷는 것. 그러나 이곳의 억새는 키가 거의 한 길이 넘고 매우 짙어서 길이 아닌 곳은 헤쳐나가기 어려울 정도이므로 뚜렷이 난 능선 길만을 따라 감상하며 걷도록 한다. 민둥산에 오르다가 억새를 갈대로 착각하는 등산객들을 제법 만났다. “우와~ 갈대밭 엄청 넓다” 하며 감탄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인데 정상을 밟아보니 이게 웬일인가, 정선군청에서 턱하니 박아놓은 안내문에 ‘같대밭으로 유명한 민둥산은 어쩌고’ 하며 당당히도 써 있는 것이다. 꼬챙이처럼 긴 대 끄트머리에 나풀나풀한 이삭 꽃을 피우는 억새와 갈대는 일반인의 눈으로 혼동하기 쉽기는 하다. 그러나 억새는 산이나 비탈길에 주로 자라고, 갈대는 물가에 무리를 이뤄 자라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고, 꽃 모양도 억새는 결 좋은 머리칼처럼 한 가닥씩 나풀대는 반면 갈대는 군데군데 뭉쳐놓은 꼴이라 조금만 신경 쓰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사람들의 실수야 그렇다 치고 안내문의 글귀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하다. 민둥산이 유명한 것은 억새 장관뿐 아니라 돌리네가 발달한 독특한 카르스트 지형 때문이기도 하다. 돌리네는 석회암 지대 땅속의 탄산칼슘이 빗물에 녹아내려 나타나는 침해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실제로 민둥산 주변에는 움푹 팬 분지 모양의 땅이 모두 12곳 이상 펼쳐져 있다. 산 정상의 전망대에 올라 마주 뵈는 산자락이 그렇고, 산 중턱의 발구덕마을도 사실은 8개의 구덩이(돌리네)가 있다는 ‘팔구덕마을’에서 시작된 이름이다. 발구덕마을은 원래 평지였으나 70년대 이후 지반이 서서히 내려앉아 군데군데 마치 화산의 분화구 같은 땅이 생겨났고, 지금도 계속 꺼져 내리는 통에 많은 사람들이 산 밑 마을로 옮겨갔다. 터를 닦고 살기는 어려우나 지형의 특성상 학술적 보존가치가 아주 높아 지금은 할머니 두 분이 터지기를 하며 살고 계시다. 지질학자들은 발구덕마을 아래로 동양 최대 규모의 석회동굴이 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그것이 개발만 되면 세계적으로 내로라 할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는 아랫마을 아주머니의 너스레는, 일어나도 한참 먼 얘기겠다 싶지만 어쩐지 정감이 가 마주 웃게 되었다.
공주(公州) 넉넉한 산이 품은 잔잔한 강물처럼 2004-11-16
갑사로 가는 길, 교과서에 실렸던 이상보의 여행수필은 애틋한 남매탑에 대한 전설을 이야기했다. 또 하나 학원지였던가, 현상공모 당선작 ‘갑사 가는 길’은 출가한 동생을 찾아 나선 누이의 여정을 그린 단편소설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사실 기억의 정확성은 없다. 하지만 그 느낌은 오래도록 남아 한번은 가봐야지 하는 미뤄둔 숙제 같은 것이었다. 스무 해는 더 지났을 것이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서야 그 갑사로 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 기억이란 청소년기에 겪었던 인연에 대한 또는 실존에 대한 고민의 한 편린이었으리라. 공산성 성곽 따라 가을햇살을 밟으며 걷다 백제의 옛 왕도였던 공주는 실제 수도로서의 역할을 한 것은 오래되지 않는다. 부여로 천도하기까지 64년 동안이 고작이다. 그러나 이 시기 동성왕과 무령왕대에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다시 세웠으니 그 의미 또한 적은 것은 아닐 것이다. 또 하나 갑오동학농민전쟁의 마지막 격전지로, 유유히 흐르는 금강에 아픈 역사가 스며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금강과 더불어 공주를 빛내는 것은 계룡산이다. 능선이 닭벼슬을 쓴 용을 닮았다고 해서 계룡이라 불리었고, 근대 이후에는 신흥종교의 본산이 되기도 했다. 한때 계룡산에서 수도했다는 말이 유행이 되곤 했는데, 민간 예언서 에서 도읍지로 거론되었듯이 풍수가 뛰어난 것이 원인일 터이다. 공주터미널에 내려 강 건너편 공산성으로 간다. 걷기에는 다리를 건너야하므로 멀고 기본요금 코스라 택시를 탄다. 멀리서 보기에 현수막이 걸리고 천막이 쳐진 것이 무슨 행사를 여는 듯하다. 가까이 가보니 ‘고마나루(곰나루) 전통축제─전국향토연극제’가 열리는 중이다. 공산성은 고구려 장수왕에게 한강 유역을 함락당하고 쫓겨 내려와 공주를 도읍으로 정하고 세운 궁성이다. 바로 웅진성이 이곳이다. 원래 흙으로 만든 토성이었으나 조선조에 석축을 새로 쌓았다고 한다.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성곽을 걷는다. 도시에 남은 옛 성곽으로 수원 화성과 흡사한 분위기다. 다만 시가지로 열려 있는 화성과 달리 주변 숲이 짙어 산속에 들어선 듯한 느낌은 사뭇 다르다. 산책하기 좋은 길을 따라 가을햇살이 흙길 위에 반짝인다. 어디선가 소란한 아이들 소리를 쫓아가 보니 소풍나온 아이들이 쌍수정에 모여있다. 조선조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렀고 평정 소식을 듣고 나무 두 그루에 벼슬을 내렸던 장소이다. 안내판에는 인절미의 고장이라는 유래가 적혀 있다. 바로 인조가 이곳에 머물 때 떡을 진상받았는데 맛이 너무 좋아 절미(絶味)라 칭찬했고, 그후에 임씨가 만들었다 해서 인절미라 불렀다는 내용이다. 한쪽 공터엔 연극무대를 설치하느라 부산하다. 진남루에서 영은사쪽 길로 접어든다. 성곽은 여기서부터 오르막길. 진남루 누각 아래로는 길이 열려 있어 통행이 가능한 성 누각의 특징을 보여준다. 아름드리 고목이 옆에 서 오랜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누각은 뒤에 복원한 것이라 옛 정취는 없지만……. 쌍수교 지나 공산성 연지에 닿는다. 원래 연못은 3개 있었다 전해지는데 이곳과 쌍수정 남쪽의 것만 확인되고 있다. 연못 가장자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돌로 층단을 쌓았고 수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계단시설을 한 것이 이채롭다. 다가서 보니 꽤 깊다. 동성왕 때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연못 중의 하나이다. 연지 옆의 정자는 만하루인데 군사시설과 경승을 전망하는 누각이다. 선선한 강바람을 맞으며 노을지는 금강을 바라보기에 좋겠다. 갑사 너머 남매탑 가는 길은 멀기만 하고 시내 시장통 버스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려 갑사 가는 버스를 탄다. 시내와 시외의 구분은 모호하지만 요즘 보기 드문 정류장 풍경이 정겹다. 따뜻한 햇살 쏟아지는 창가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보니 어느새 갑사에 닿는다. 교과서에 실린 수필 영향일까 초입 아치형 간판에 ‘갑사로 가는 길’이라고 쓰여 있다. 식당가는 다른 지역보다 정돈이 잘 되어있는 느낌이다.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있듯 봄에는 마곡사, 가을에는 갑사의 경치가 아름다운 것으로 알려져있다. 절 이름에 으뜸 갑(甲)자를 쓴 내력도 예사롭지 않은데 백제 때 아도화상이 세웠다고 전해진다. 아무튼 단풍이 들어야 가을의 절경을 볼텐데, 찾았을 10월 초순 무렵에는 아직 푸른잎이 그대로이고 조금씩 갈색을 띠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주황색 색채를 띤 감나무며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들국화 따위가 가을 분위기를 내주었다. 갑사 가는 길은 포장이 잘 되어있고 거리도 가까워 금세 절에 닿는다. 수필에서의 여정은 산너머 동학사에서 거꾸로 갑사를 찾아올 때이다. 따라서 공주시내쪽에서 들어가는 갑사 가는 길은 싱거울 정도이다. 사천왕문을 지나는데 사천왕들이 안 보인다. 어디 출타하러 나가셨는가. 알고보니 불사중이다. 대웅전앞 마당 새로 만든 탑이 생뚱맞다. 고찰이면 그에 맞는 탑이 서 있어야 하는데 새로 만든 탑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절 뒤로 돌아 숲길로 조금 오르면 약사여래입상이 있다. 바위 틈새에 서있는 약사여래는 소박하고 천진한 모습이다. 옆으로 흐르는 계곡 물소리가 서늘하고 물이 무척 깨끗하다. 전통찻집 옆으로 공우탑을 지나 대적전 앞 부도 옆으로 대숲 터널이 보기 좋다. 공우탑은 절에서 짐을 져 주면 혼자서 암자로 짐을 나르던 영리한 소가 있었는데, 그 소가 늙어 죽으니 승려들이 은공을 기려 세운 것이라 한다. 대웅전 앞의 신식 탑보다 이 탑을 옮겨다놓으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날 절 아래 민박집에서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새벽예불을 보러간다. 시간대중을 잘못해 가자마자 예불이 끝난다. 예불을 마친 스님들은 제각각의 방에 들어가 참선하는 모양이다. 사위는 칠흑같이 어둡고 불켜진 스님들의 선방에서 ‘탁탁’ 어둠을 깨는 죽비소리가 흐트러진 정신을 깨운다. 이리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정진하는 모습에서 도시에서의 일상을 돌아보고 반성이 없을 수 없다. 새벽 별 쏟아진다. 북극성, 반달이 빛난다. 어린 시절 외웠던 별자리는 까마득히 잊어버려 생각나지 않는다. 동틀 무렵이 되면서 더 추워지는 느낌이다. 절에서 아침공양을 하고 산을 오르기로 한다. 아무래도 남매탑을 봐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에서다. 그런데 아침공양으로 깨죽이 나왔다. 맛은 일품인데 이른 새벽 죽 먹고 산행이라니……. 그야말로 팍팍한 허벅다리 두드리며 오르고 또 오른다. 용문폭포 지나 천진보탑 가는 길, 남매탑은 정상 너머에 있다. 멀다. 과연 갈 수 있을까. 신흥암 0.3km → 표지가 나오기까지 가파른 돌계단의 연속이다. 돌아보니 갑사에서 온 길은 고작 1.1km. 산에서의 1km는 정말이지 멀다. 안내문에는 어렵지 않은 등산코스라고 쓰여 있었는데, 평소 운동부족 탓이다. 해발 375m 표지를 지나자 신흥암이 나온다. 비로전 공사로 주변이 어수선하다. 산신각을 에둘러 천진보탑을 보러간다. 약숫터를 받치고 있는 나무등걸과 지붕이 오래되었고 산신각 건물이 고풍스럽다. 천진보탑은 자연 석탑인데, 아도화상이 여기서 부처님의 사리를 발견하고 갑사를 창건한 배경이 된다. 여기서 돌아갈까 생각하니 아쉽다. 굴참나무 숲길을 지나 다시 오르막. 길은 더 가파르다. 어디 한번 가보자 하는 오기가 발동한다. 금잔디 고개 0.5km → 표지를 보니 얼마 남지 않았다는 희망이 생긴다. 드디어 정상. 눈부신 햇살이 어지럽다. 남매탑 0.7km, 동학사 2.4km 남았다는 표지가 보인다. 내처 동학사까지 가면 오히려 나으려만 너무 일찍 나서서 짐을 두고 온 탓에 갑사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게 실수였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오랜 기억에서부터 나를 이끌어준 남매탑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가슴에 간직한다. 갑사와 계룡산에서의 가을은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진동계곡과 점봉산 곰배령 백두대간 품속에서 만나는 .. 2004-11-16
가을 산행,단풍과 억새밭 구경, 산골 마을에서 보내는 하룻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는 그리 많은 시간과 힘을 들이지 않아도 때묻지 않은 자연에 푹 파묻힐 수 있는 곳이다. 2∼3년 전 나온 지도에는 아예 길이 그려져 있지 않을 만큼 오지 중의 오지지만, 지금은 아스팔트길이 놓여 승용차로도 오갈 수 있게 되었다. 현리에서 진동리까지 이어진 진동계곡과 점봉산 곰배령 가는 등산로, 차로 오를 수 있는 조침령, 쇠나드리의 억새밭은 산 속에서 맞이하는 가을이 얼마나 넉넉하고 아름다운지 나지막하게 속살거린다. 가까이 있는 방태산자연휴양림과 방동약수도 1박2일 여정을 풍성하게 채워주는 명소다. 산행 출발지 설피밭과 억새 우거진 쇠나드리 오죽 눈이 많이 오면 ‘설피밭’일까. 해발 700m 고지대인 진동리는 겨울이면 설피(눈이 깊은 곳을 다닐 때 신의 바닥에 대는, 칡이나 노 따위로 넓적하게 만든 물건)없이 다닐 수 없을 정도라고 하여 설피밭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새 길이 놓이긴 했지만 장을 보려면 30분쯤 차를 타고 현리로 나가야 할 만큼 산 속이다. 도로 위로는 다람쥐며 청솔모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속도를 줄여 조심하지 않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 일쑤다. 사방 높은 산 아래, 10월에도 냉랭한 바람이 마중 나오는 설피밭 한뫼마루 펜션에 짐을 풀고 먼저 조침령으로 향한다. 조침령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와 양양군 서면 서림리 사이의 고개. 오프로더들이 즐겨 찾는 비포장길이 10여km에 걸쳐 이어져 있다. 정상에 서면 울퉁불퉁한 백두대간의 산세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너무나 손쉽게 얻은 눈맛에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조금만 더 가면 동해바다까지 손에 잡히지만 승용차로 올랐다면 욕심을 접고 정상에서 차를 돌려야 한다. 양양까지 이어진 내리막길은 오르막길보다 훨씬 험하고 가팔라 4WD가 아니면 차 바닥이 다 상한다. 이 길은 내년 완공을 목표로 확포장공사중이다. 동해로 가는 또 하나의 포장도로가 탄생하는 것이다. 길이 편해지면 자연은 그만큼 잘려나간다. 백두대간을 넋 놓고 바라보고 서서 아쉬움인지 기대인지 마음이 복잡해진다. 조침령에서 차를 돌려 내려와 현리쪽으로 향하면 바로 쇠나드리다. ‘쇠나드리’는 황소를 날려버릴 만큼 거센 바람이 분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바람부리’라고도 부른다. 3만 평 규모의 이 분지에는 10∼11월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도로 양옆으로 드넓게 펼쳐진 억새밭은 해를 마주보고 서서 바라볼 때 가장 눈부시다. 억새의 군무는 부드러우면서 힘있고, 어딘가 스산하지만 우아하다. 어른 키 높이만큼 자란 억새는 세찬 바람에 휘둘리면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다. 산중에 뿌리를 내리고 폭설과 바람을 견디며 살아온 이곳 사람들처럼.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점봉산 곰배령 등산로로 접어든다. 해발 1천424m의 점봉산은 한계령을 사이에 두고 설악산 대청봉과 마주보고 있는 남설악의 중심 산이다. 곰배령은 점봉산의 8부 능선으로 드넓은 초원지대를 품고 있다. 봄과 여름철에는 수많은 자생식물이 꽃을 피워 희귀 야생화의 보고로도 이름나있다. 왕복 8km의 곰배령 등산은 경사가 완만해 가벼운 트레킹에 가깝고, 가을에도 숲이 하늘을 가릴 만큼 깊다. 계곡을 두어 번 건너며 좁게 난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단풍이 화사하다 못해 투명하다. 물밑이 훤히 보이는 계곡에는 누군가 휙 보석을 뿌려 놓았다. 세례 혹은 성은 같은 가을볕의 힘. 때로 느려지는 발걸음에는 서늘한 공기가 보약이다. 내내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가 곰배령을 300여m 앞두고 길이 가팔라진다. 숨이 턱까지 차 오르고 수년간 게으르게 살아온 근육이 백기를 준비할 무렵, 하늘을 가린 나무가 일순간 걷히고 드넓은 초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풍성한 가을볕과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 안는 시간. 야생화의 자취도 제대로 옷을 갈아입은 단풍도 눈에 띄지 않지만 하늘을 이고 선 산중 초원은 탁 트인 시야 하나만으로도 짜릿한 기쁨과 보람을 안긴다. 11월이면 온통 노랗게 변한 초원에 서서 점봉산의 화려한 단풍축제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취재 협조: 한불모터스(푸조 307SW) ☎(02)545-0606 한뫼마루 펜션과 송어양식장 오지마을에서도 따뜻하고 안락하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지난 8월에 문을 연 한뫼마루 펜션이 그곳. 김상구(45) 대표가 ‘가장 조용하고 깨끗하며 아름다운 터’를 찾아 헤맨 끝에 이곳을 발견하고 지난 8월 완공해 문을 열었다. 길이 20km에 이르는 진동계곡의 청정수가 펜션 바로 앞을 흐르고, 전교생 11명의 기린초등학교 진동분교가 바로 옆에 있어 산책이나 놀이를 하기에도 좋다. 곰배령 등산로 입구도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가깝다. 객실은 10평짜리 일반실 5개, 12평짜리 특실 2개가 마련되어 있다. TV, 냉장고, 주방, 샤워실, 침대, 바비큐 그릴 등 부족함 없는 시설을 갖추었고 이용료는 일반실 비수기 6만 원, 성수기 7만 원이다(5인 이상이면 1인당 1만 원 추가). ☎(033)463-1110, 018-396-0177. 홈페이지 www.hanmemaru.com 주변에 가게가 없으므로 바비큐용 고기나 음식재료는 현리에서 미리 사가야 한다. 진동계곡 가는 길 두무대 산속에 자리잡은 두무대 송어양식장에 들러 송어회와 매운탕 거리를 준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점봉산에서 흘러나오는 맑고 차가운 물로 양식한 송어는 육질이 단단하고 쫄깃해 회든 매운탕이든 성찬거리로 손색없다. 값은 1kg에 2만 원(3∼4인분)이고 매운탕거리와 채소의 값은 따로 받지 않는다. 11년째 같은 자리에서 양식장을 운영하고 있고, 주변은 물론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집이다. ☎(033)463-1020 드라이브 메모 서울에서 출발했다면 양평을 지나 44번 국도로 갈아타고 홍천으로 간다. 홍천읍내에서 19km쯤 가면 철정리다. 철정 사거리에서 우회전해 451번 지방도를 따라 30km쯤 달리면 31번 국도와 만난다. 31번 국도로 접어들어 14km쯤 가면 기린면 현리에 이른다. 현리 읍내로 들어서기 전 방대교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삼거리에서 방태산자연휴양림 푯말을 따라 우회전, 418번 지방도를 타고 7∼8km 달리면 오른쪽으로 방태산 자연휴양림 가는 길이 갈라진다. 계속해서 11km 직진하면 억새밭이 펼쳐지는 쇠나드리이고 쇠나드리교를 지나 1.5km 가면 점봉산과 조침령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점봉산 쪽으로 3.5km 들어가면 점봉산과 상부댐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오고, 조금 더 직진하면 오른쪽에 기린초등학교 진동분교, 한뫼마루 펜션이 차례로 보이는 설피마을이다.
커플 나들이 명소 단풍보다 멋진 억새 구경 가자 2004-10-27
정선 단풍도 단풍이지만 억새를 감상하고 싶다면 정선의 민둥산을 찾아가 본다. 대부분 억새는 11월이 감상 적기로 알고 있지만 실은 단풍이 시작되는 때를 맞춰 찾아가는 것이 현명하다. 기차로 여행길에 오른다면 청량리역에서 태백선을 타고 증산역에서 내린다. 증산역까지는 3시간 50분∼4시간 10분 걸린다. 청량리를 떠난 기차는 제천, 영월을 거친다. 정선군 남면의 민둥산(1,119m)은 이름 그대로 산 위에 나무가 한 그루도 없으며 ‘억새산’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곳곳에 억새풀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행기점인 해발 800m의 발구덕마을에서 정상에 이르는 동안 억새무리가 없는 곳이 없는데, 특히 정상 못 미처 넓고 넓은 억새밭의 장관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을 심어 준다. 억새풀밭 면적은 20만 평 규모로 창녕 화왕산 등과 더불어 전국 5대 억새풀 군락지 가운데 하나이다. 산세가 둥글둥글 원만하고 등산로도 평탄한 편이어서 초보자도 쉽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발구덕마을 위쪽 임도의 휴게소에서 정상까지는 40분 정도 걸린다. 그러나 증산역 인근, 38번 국도와 421번 지방도가 만나는 증산초등학교 쪽에서 올라가려면 1시간을 더 잡아야 한다. 이곳 억새는 대부분 사람 키를 넘는데다 색깔이 매우 짙으며 조밀해서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 정상에서 바라보면 북쪽 지억산(1,116.7m)으로 이어지는 긴 능선이 황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 억새군락으로 덮여 있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제주도 억새가 평지와 오름을 아름답게 수놓아 장관을 이루지만 민둥산 억새는 종 모양으로 봉긋 솟은 산등성이를 황금빛으로 장식하고 있는데다 등산의 수고를 더해야 하기 때문에 민둥산을 찾은 여행객들은 더 깊은 성취감을 느낀다. 가족단위 산행객의 경우 두세 살짜리 아이들까지도 걸음마를 시키고 배낭에 태우고 하면서 민둥산 억새밭을 찾는다. 숙소를 정선읍내로 잡았다면 발구덕마을 입구인 능전마을에서 몰운대-정선 소금강-화암약수-화암동굴 코스로 여행길을 계획한다. 화암8경이라는 경승지대가 여행자들을 사로잡는다. 굽이굽이 돌기는 해도 포장이 완벽하게 되어 있어 차로 편안히 단풍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매력 포인트이다. 도로 양편 모두 산세가 좋고 기암절벽이 발달, 빨갛고 노란 단풍미가 한껏 살아난다. DATA 홈페이지 : 정선군청 www.jeongseon.go.kr 문의 : 정선군청 문화관광과 560-2361 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 새말 나들목을 빠져나간다. 42번 국도를 타고 횡성군 안흥면소재지, 평창군 방림면, 평창읍소재지, 평창군 미탄면을 차례로 거쳐 정선읍내로 들어간다. 진부나들목을 이용, 59번 국도를 타고 정선군 북평면 나전리를 거쳐도 정선읍내로 이어진다. 주변 명소 정암사 : 정선읍내에서 남면 별어곡역-증산역-사북읍-고한읍으로 코스를 잡아 달리면 정암사라는 사찰에 닿는다. 고한읍에서 만항재 방면으로 난 414번 지방도를 따라 2.8km 가면 정암사라는 유서 깊은 사찰을 만난다. 정암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숲과 골짜기는 해를 가리고 멀리 세속의 티끌이 끊어져 정결하기 짝이 없다’고 해서 ‘정암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오대산 상원사, 양산 통도사, 영월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과 함께 석가모니의 정골사리를 모시고 있는 5대 적멸보궁의 하나. 그래서 정암사에는 대웅전이 없고 대신 적멸보궁이 있다. 함백산 : 정암사에서 마음을 정갈하게 닦고 계속 남행하면 정선, 영월, 태백의 경계를 이루는 만항재에 이른다. 이 고개는 해발이 1천340m로 국내 포장도로 중 가장 높은 고도를 자랑한다. 만항재 정상에 오르면 두 개의 비포장 드라이브 코스가 기다린다. 하나는 함백산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고 또 하나는 혜선사를 지나 상동읍 소재지로 이어진다. 전자는 승용차로 달릴 수 있지만 후자는 4WD차라야 안심할 수 있다. 함백산(1천573m) 정상까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닦인 까닭은 그곳에 국가대표선수들의 훈련장과 각 방송국 송신소, 이동통신회사 기지국 등이 있어서다. 맛집 정선역에서 가까운 동광식당(563-3100)을 추천한다. 황기를 넣어 만든 왕족발과 메밀콧등치기국수를 잘 하기로 소문나 있다. 족발을 야채나 배추 속잎에 싸먹는데 기름지지 않고, 황기라는 한약재 향이 은은히 배어 있다. 메밀콧등치기국수란 국수발이 후루룩 입 속으로 올라갈 때 콧등을 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선5일장 가까운 곳의 정선황기보쌈(563-8114)도 음식 잘 하기로 정평이 있다. 숙박 정선읍에 동호호텔(562-9000), 대왕장(563-0171), 그림장(563-0521), 아름장(562-8221), 정선장(563-0066), 동면에 그림바위호텔(562-6676), 화암파크(563-7731) 등. 만항재 넘어서 영월군 상동읍에 장산콘도(378-5550)가 있다. 홍성 정선의 민둥산이 억새로 유명하듯이 충남 홍성군의 오서산 역시 억새 감상지로 알아주는 산이다. 홍성군과 보령시 경계에 오서산이 솟아 있다. 해발 790.7m로 낮은 산이지만 충남권에서는 고봉에 속하는 높이다. 그래서 오서산은 홍성의 용봉산, 청양의 칠갑산과 더불어 충남 서부를 대표하는 산으로 대접받는다. 또 오서산은 가을이면 억새를 감상하기에 좋은 산이다. 등산로가 그리 험하지 않아 남녀노소 구분 없이 즐겁게 산행에 나설 수가 있다. 오서산 동쪽으로는 보령시 땅에 명대계곡, 오서산자연휴양림이 들어서 있으며 북쪽의 홍성군 권역에는 정암사, 내원사 같은 사찰이 자리잡고 있다. 일단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 광천 나들목으로 나가거나 장항선을 타고 광천역에서 내린다. 광천읍내를 거쳐 담산리 하담마을→상담마을→정암사 코스를 이용, 오서산 정상에 오른다. 정암사 일주문에서 정상까지는 약 2.4km 거리. SUV를 타는 여행객이라면 정암사 일주문과 100m 못 미친 지점의 좌측 임도로 들어선다. 도로정비가 잘되어 있어 운전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오서산의 단풍과 광천읍내, 장곡면의 너른 들판을 감상하면서 고도가 차츰 높아진다. 내원사로 내려가는 고개 정상에 작은 주차 공간이 있다. 이곳에 차를 세워 두고 등산을 시작한다. 등산길 거리는 약 2km. 억새축제 중에는 정상 부근까지 차가 오를 수 있으나 그 외의 기간에는 안전을 염려해서 고갯마루 임도에 커다란 돌을 세워 자동차 통행을 막는다. 광천읍사무소 직원은 “오서산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산세와 굽이치는 능선이 명산의 요건을 고루 갖추었다. 가을이면 억새가 능선 가득 피어나는데 영남 알프스의 억새밭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들려준다. 산 정상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천수만 바다와 안면도 그리고 자잘한 섬들이 시야에 가득 찬다. 이래서 오서산은 ‘서해의 등대산’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다. 천수만을 통행하는 어선들은 오서산을 바라보면서 방향을 잡는다니 딱 맞는 표현이다. 오서산 등산의 일반적인 코스는 광천읍 상담마을에서 출발, 보령시 청소면 성연리로 하산하는 것이고(3시간 30분 소요) 명대계곡으로 하산하기도 한다(4시간 소요). 산 정상에서는 식수를 구할 수 없으므로 미리 준비해 간다. 굳이 등산이 싫은 여행객들은 정암사를 뒤로해서 임도만 드라이브해 본다. 강원도 비포장길 못지않은 재미가 그 길에 숨어 있다. DATA 홈페이지 : 홍성군청 www.hongseong.chungnam.kr 문의 : 홍성군청 문화공보실 630-1225 가는 길 : 서해안고속도로 광천IC로 나가면 3분 거리에 광천읍내가 있다. 광천IC에서 보령시 천북면 소재지를 거쳐 홍성방조제도 넘어가면 홍성군 서부면의 남당리포구로 이어진다. 주변 명소 토굴새우젓 : 오서산의 억새를 감상하고 필히 들를 곳이 광천읍내의 토굴새우젓시장이다. 새우젓 가게는 광천읍내 시장통에 많지만 주차가 어렵다는 것이 흠이다.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옹암리에는 새우젓을 숙성시키고 보관하는 토굴과 젓갈판매점이 많다. 1960년대 초 이곳 옹암리 독배마을에 윤병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옹암리의 폐광굴과 방공호 등에 새우젓 장독들을 갖다 놓고 숙성을 시켜 봤다. 몇 달이 지나 맛을 보니 참으로 놀라웠던 것. 윤 씨 할아버지는 그 맛을 혼자 보기 아까워 동네사람들에게 알렸고 그때부터 광천새우젓 맛이 달라졌다. 젓갈 판매점에서는 가장 비싼 육젓에서부터 오젓, 추젓에 낙지젓, 창란젓, 갈치속젓, 어리굴젓, 조개젓, 황석어젓, 아가미젓 등 30여 종류의 젓갈류를 판매하고 있다. 광천특산물상인조합이 말하는 좋은 젓갈 선택 요령을 알아보면 ‘새우젓은 약간 붉은 색을 띠어야 하며, 껍질이 얇고 속살이 있어야 한다. 멸치액젓은 붉은 포도주 빛깔과 투명성, 구수한 향을 두루 갖추어야 최상품이고 황석어젓은 색깔이 노랗고, 알이 들어 있는 것이 좋다. 조개젓은 멀건 국물이 적어야 한다’ 등이다. 한용운 생가 : 결성면 성공리에 자리했다. 싸릿대 울타리가 둘린 만해의 생가는 초가지붕을 얹었고 방 2칸, 부엌 1칸으로 구성된 일자형 구조. ‘한용운’이란 문패가 걸려 있어 생전의 만해가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듯한 감상에 빠져든다. 마당에는 작은 연못과 정자가 들어서 있다. 오석에 새겨진 만해의 시 ‘나룻배와 행인’은 방문자들의 발걸음을 잠시 그 자리에 묶어 둔다. 맛집 광천읍 우회도로 사거리 남쪽의 석이네토굴새우젓백화점(641-4127)은 3대째 운영하는 집으로 곁에 휴게소와 식당(642-3224)도 거느리고 있어 젓갈 쇼핑 후 젓갈백반으로 한 끼를 해결하기에 좋다. 읍내 맛집은 대왕식당(641-3505), 홍능숯불갈비(641-3369) 등. 남당리에는 천안수산횟집(632-6818), 신토불이횟집(632-8000), 신만횟집(634-6457) 등. 숙박 그린파크장(641-5415), 뉴월드모텔(641-6766), 대우장(642-0304), 신촌파크(641-6611), 프린스여관(642-0703), 홍성온천파크(633-7777) 등을 추천할 만하다. 시도·모도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은 신도, 시도, 모도 그리고 장봉도 등의 섬으로 이뤄진 고장이다.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북단의 삼목선착장에서 이들 섬을 왕래하는 카페리를 탈 수 있다. 신도, 시도, 모도는 방조제도로와 연육교로 이어져 있어서 한 군데 섬만 건너가면 나머지 두 개의 섬도 차로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특히 시도에는 드라마 ‘풀하우스’의 세트장이 있어서 젊은 여행객들의 발길이 잦다. 모도의 배미꾸미해변에는 놀랍게도 멋진 조각공원이 들어서 있다. 조각가 이일호의 작업장 구실을 하는 2층집 마당이 조각공원이다. ‘모도와 이일호’라고 새겨진 커다란 화강암이 기념탑처럼 수직으로 세워져 있고 그 주변에 사랑, 고통, 윤회 등을 형상화한 조각품들이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다. 이 조각공원이 없었더라면 모도는 그저 하나의 쓸쓸한 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조각공원의 상공은 인천국제공항을 드나드는 비행기의 이착륙 항로 가운데 하나다. 모도에서 연육교를 건너 시도로 나온다. 신도보다 면적이 작지만 북도면사무소가 이 섬에 있다. 면사무소 앞을 관통하는 큰 길에서 ‘풀하우스’라는 안내판을 따라 북쪽의 수기해수욕장 해변으로 향한다. 중간에 염전 옆을 지나게 되는데 천일염을 팔고 있으며, 오후에 소금을 거둬들이는 장면도 구경할 수 있다. 시도에서 유일한 해수욕장 구실을 하는 수기해변은 최근 들어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방문객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KBS 드라마 ‘풀하우스’의 야외세트장이 이 해변에 자리잡고 있다. 면사무소 앞 동네에서 세트장까지 걸어가려면 1.5km 정도는 걸려 동네 어귀에 자전거 대여점까지 생겨났다. 북쪽으로 강화도 동막해수욕장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수기해변의 서쪽 끄트머리는 풀하우스 세트장이 있는 곳이다. 동쪽 끝은 갯바위지대로 망둥어 낚시터 구실을 한다. 망둥어는 간단한 채비로도 쉽게 손맛을 볼 수 있는 어종이라서 아이들까지 망둥어 낚시에 나선다. 뼈를 바르고 회를 뜨면 4점밖에 나오지 않는 망둥어는 잡자마자 배를 가른 다음 햇볕에 살짝 말렸다가 구워 먹어도 맛이 기막히다. DATA 홈페이지 : 옹진군청 gun.ongjin.incheon.kr 문의 : 옹진군청 북도면사무소 752-4019 가는 길 : 올림픽대로와 방화대교가 만나는 지점에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탄다. 영종대교를 건너 화물터미널 나들목으로 나가면 영종도 삼목선착장에 닿는다. 삼목선착장에서 세종해운(884-4155) 소속의 카페리가 오전 7시 10분부터 오후 6시 10분까지 1시간 간격으로 출항한다. 신도매표소 752-3619, 장봉매표소 751-0193 주변 명소 장봉도 : 삼목선착장을 출발해 신도선착장에 들른 배는 장봉도로 향한다. 부메랑처럼 생긴 장봉도에는 진촌해수욕장, 한돌해수욕장, 옹암해수욕장이 있다. 철 지난 바닷가의 쓸쓸함에 젖어 보고 싶은 여행객이나 개펄에 들어가 조개라도 캐어 보려는 여행객들이 가끔 눈에 띈다. 면적은 신도보다 약간 크지만 개펄을 제외하면 도시인의 입맛에 딱 맞는 여행 명소는 드물다고 해야겠다. 장봉도선착장 주차장에는 고기가 많이 잡히도록 도움을 준 인어를 위한 동상이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용유도 : 섬 여행을 마치고 다시 영종도로 나와서 시간 여유가 있다면 용유도의 왕산해변과 을왕리해변을 찾아가 본다. 삼목선착장에서 공항북로를 따라가면 용유도 왕산해변을 거쳐 을왕리해변으로 쉽게 갈 수 있다. 을왕리해변은 낙조 감상지로 유명하며 바닷가에 활어회와 해물칼국수 등을 파는 식당이 밀집해 있다. 영종대교기념관 : 영종대교와 서해를 조망할 수 있는 영종대교 입구에 자리했다. 국내 첫 교량과학관이다.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의 핵심구조물인 영종대교 건설에 쓰인 영상, 모형, 실물자재를 전시하고 교량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보관하고 있다. 1, 2층 내부 전시실을 관람하고 기념관 옥상으로 나가면 영종대교와 주변 섬들의 멋진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맛집 신도의 섬마을식당(751-0260)은 갈치조림을 잘하는 집. 을왕리 해변의 원조강릉식당(746-2229)은 해물칼국수가 유명하다. 숙박 시도에 시도민션카페(752-5427)가 있다. 지난 여름 문을 열었고 객실은 4개. 차가 없는 투숙객들을 위해 주인 내외가 신도선착장까지 마중 나간다. 오아산해변 뒤편에는 드래곤시티관광호텔(747-1010), 위너스관광호텔(751-5322) 등 깔끔한 숙박시설이 여럿 있다.
김제 만경평야와 심포항 끝간 데 없이 펼쳐진 가을 .. 2004-10-25
끝이 하늘과 맞닿아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소설가 조정래가 에 묘사하고 있는 그 들녘. 국내 최대의 곡창지대로 호남평야의 중심을 이루는 김제 만경벌이 무르익었다. 아직 푸르름이 남아 있는 9월의 벼밭은, 10월 초순 ‘지평선축제’가 열릴 무렵이면 온통 노란 물결로 출렁일 것이다. 서해안고속도로를 곧잘 타고 다니면서도 여행의 종착지로는 쉽게 떠올려보지 못한 전북 김제. ‘순 논바닥만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달려도 달려도 그대로인 벌판이 증명해주는 듯했지만, 마침내 그 끝에 다다랐을 때 그리 참한 바다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이 가을, 북적이는 단풍여행지를 피해 한가롭게 서성일 곳이 그립다면 여기로 가보자. 허리춤까지 자란 곡식들 사이를 풍요로운 마음으로 거닐다가 바다가 보이는 작은 절 돌마루에 해질 녘까지 앉아 있어 보노라면, 어느새 우울한 상념은 걷히고 세상이 다 내 것만 같아진다. 대하소설 의 무대 서해안고속도로 서김제 IC에서 빠져 진봉면, 광활면 방향으로 차 머리를 돌리면 확 트인 들녘이 시작된다. 논과 논을 이어 들판을 만들고, 점차 거대해지는 평야를 에두르고 가로지르기도 하면서 이어지는 29번 국도, 702번과 711번 지방도에는 키 작은 코스모스가 흐드러져 여행객을 반긴다. 김제시가 지평선축제를 위해 조성한 이 꽃길은 장장 36km에 이르는데, 요즘은 계절도 없이 피어나는 코스모스지만 그 하늘거리는 줄기며 연한 꽃잎은 여전히 바람 좋은 가을날에 봐야 제멋이 난다. 김제는 외곽의 몇몇 산지를 빼고는 시 전체가 높이 50m 미만의 구릉지와 동진강, 만경강 주변의 광대한 충적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답게 수평으로 펼쳐진 들녘이 어찌나 시원하고 드넓은지, 멀리서 보면 중간 중간에 서 있는 전봇대들이 마치 노란 시루떡판에 마구잡이로 꽂아놓은 이쑤시개들 같다. 만경(萬頃)평야. 김제시에 있어 흔히 ‘김제평야’라고도 부르는 이 평야는 ‘일만 이랑’이라는 뜻. 모두 7천만 평의 논에서 한 해 170여 가마가 나와 국내 쌀 생산량의 2.5%를 책임진다. ‘전국에 수해가 나도 이 곳만은 비켜간다’고 할 정도로 안전하고 비옥한 천혜의 토지. 역사적으로 돌아보면 김제는 우리나라에서 벼농사를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이었다. 삼한시대의 농경용 저수지로 첫손 꼽히는 벽골제가 그 증거. 지금은 부량면 원평천 하류에 두 개의 수문과 3km 남짓한 제방만 남아 있을 뿐이지만 축조 당시에는 둑이 3.3km, 둘레가 44km에 이르러 이 저수지가 마르면 나라에 흉년이 든다고 했다. 한반도의 거대한 식량창고인 만경벌은 또한, 일제 식민시대에는 참혹한 착취의 땅이었다. 1904~1945년, 일본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조정래의 대하소설 에 김제가 주무대로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 벽골제 건너편에 세워진 ‘아리랑문학관’에 가면 취재부터 무려 10년 8개월에 걸친 작가의 집필기를 세심한 자료로 돌아봄과 함께, 김제에 대한 역사적 고찰까지 겸할 수 있다. 모두 12권 분량의 집필에 쓰인 세라믹펜 심 586개, 소설 속 무대들을 펜 그림으로 정확하게 묘사해놓은 스케치북 등 작가의 전시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특별하다. 눈앞에 있어도 그리운 바다 김제는 지평선의 고장인 동시에, 아름다운 수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702번 지방도를 따라 서쪽 끝까지 빠져들 듯 들어가면 예쁜 서해바다를 마주한 심포항이 나온다. 멀리 고군산반도가 가물거리고, 사막의 모래언덕처럼 군데군데 부드러운 능선을 그리며 검은 맨살을 드러낸 갯벌이 농염하다. 만경강과 동진강이 밀고 내려온 토사로 이루어진 이 옥토에선 1년 내내 맛좋은 백합이 나오는데, 작지만 정겨운 바닷가 식당에서 까먹는 백합구이와 다양한 해산물 반찬들은 ‘지평선 쌀’만큼이나 입에 착 달라붙는다. 심포바다의 낙조를 좀더 고즈넉이 즐기고 싶다면 항구 뒤편의 전봉산 절벽에 자리잡은 망해사로 가보자. 백제 의자왕 때(642년) 부설거사가 처음 사찰을 지어 수도했던 이 곳은 오랜 역사에 걸맞지 않게 규모가 무척 초라하다. 초기의 절터는 무너져 바다에 잠기고 지금 있는 낙서전과 보광전, 칠성각은 조선시대 이후에 다시 세운 것. 바다를 향해, 그리 높지도 않은 곳에 차분히 내려앉은 이 절 마당에는 눈앞의 바다를 한 폭 그림으로 담아내는 전망 좋은 돌의자가 있다. 바다를 제 품에 꽉 껴안고도 이름이 망해사(望海寺)라니…….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던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바다는 그렇게 아스라이 멀어질 듯 눈앞에 펼쳐져 있다.
나주(羅州) 아주 오래된 길, 풍경이 말을 건네다 2004-10-20
저물 무렵가까운 강변으로 나가 해지는 풍경, 노을을 보거나 흐린 날 들녘에 나가 바람에 스러지는 풀잎 사이를 거닐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도 도시에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가슴 먹먹할 때 그것을 위안해 줄 무언가가 이 도시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나주의 넉넉한 들녘과 영산강 일대를 둘러보며 왠지 그런 생각이 사무치게 들었다. 이제 가을인 것이다. 금성관에서 금성교 가는 길, 옛 시절의 흔적들 전라도(全羅道)라는 지명이 전주(全州)와 나주(羅州)를 합친 이름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번 나주행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주는 꽤 크고 유서 깊은 도시라는 얘기인데 그런 내력은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실제 나주는 고려 성종 2년(983)에 전국 12목 가운데 하나인 나주목이 되었다가 조선 고종 33년(1896년)에 전라남도 관찰부가 광주로 옮겨가기까지 900여년 동안 전라남도 지역에서 가장 큰 고을이었다. 나주평야로 널리 알려져 있듯 땅이 넓고 논농사, 밭농사, 과일농사가 두루 잘 되었기에 물산이 풍성했던 곳이다. 신라 때 금성이라 불린 나주는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근거지. 견훤이 세력을 키워 북쪽 전주로 진출할 무렵 궁예의 부하였던 왕건은 수군을 이끌고 영산강을 거슬러올라 이 지방을 점령하고 이름을 나주로 고쳤다. 왕건은 나주 지방의 토호였던 오다련의 딸(장화왕후)과 정략결혼을 하는데 그 아들이 바로 왕건의 뒤를 이은 고려 2대 임금 혜종이다. 결국 이러한 인연으로 나주목의 지위에 오르고, ‘천년 목사 고을’ 나주의 배경이 된다. 그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는데 나주목 객사와 부속건물인 금성관, 내아, 정수루, 망화루며 나주읍성의 남문이었던 남고문 등이다. 나주목 객사인 금성관은 옛 군청건물이자 지금은 시의회당으로 쓰이는 하얀색 건물 뒤에 완전하게 가려져 있다. 일부러 찾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곳에 옛 객사가 있을 것이라 짐작하기 어렵겠다. 말하자면 일제의 수법이다. 객사건물로는 전국에서도 가장 큰 규모였던 금성관은 지금은 본채만 남아있고 주변 땅은 발굴을 하는 양 어지러이 파헤쳐져 있다. 오랜 풍파에 퇴색한 모습이지만 당당한 풍모는 잃지 않고 있다. 커다란 팽나무 두 그루 서 있는 쪽으로는 나주목사를 지낸 이들의 공적비 등이 세워져 있다. 금성관에서 나주곰탕 하얀집, 고조현외과를 지나 골목을 걸어나오면 나주신협 옆의 조그만 다리 ‘금성교’에 이르는데, 이 길을 일등도로라 부른 모양이다. 다리 아래 흐르는 개울은 나주시내를 흐르는 나주천. 시내의 하천치고는 물이 맑고 시골같은 정경을 보여준다. 하천가에 핀 꽃은 어디서 많이 본듯한데 잎이 무척 넓게 퍼져있다. 지나는 할머니 한 분이 일본무궁화라고 일러준다. 동네는 아담하고 깔끔한 분위기가 정갈하다. 곳곳에 일본식 건물 잔재가 남아있는데 어두운 분위기가 아니라 밝다. 비단잉어가 노니는 하천은 마치 정원의 연못 같다. 붉은 담벼락, 무너진 지붕이 아주 오래된 공장인 듯 시선을 사로잡는다. 함석지붕이며 무너진 철골을 그대로 놔두고 있는데 흉물스럽지는 않고 근대시기의 한 기억을 드러내고 있다. 정문쪽으로 다가가 보니 ‘나주잠사주식회사’라는 상호가 낡은 시멘트기둥에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관사로 쓰였을 법한 적산가옥이 비교적 깨끗하게 남아있다. 빛 바랜 담벼락에 낡은 페인트칠, 죽은 나무에 매달려있는 초록 잎사귀 등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긴다. 하천을 따라 발걸음을 조금만 옮기면 ‘박경중 고가’가 나타난다. 문 앞에서 인기척을 내자 집주인인 박경중(58) 씨가 반가이 맞아준다. 나주문화원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대를 이어 이곳에 직접 거처하며 옛것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옛날부터 박자흥댁이라 불러요. 저희 4대조가 1910년을 전후해 3년 정도 걸려 이 집을 지었지요. 아마 이처럼 옛날 그대로 사는 집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 옆의 초가집은 1884년 6대조가 여기에 터를 잡았을 때 지은 것으로 원형이 잘 남아있어요.” 자흥은 장흥을 일컫는데 전라도 사람들은 대부분 자흥이라 발음한단다. 집을 지은 4대조가 당시 장흥군수를 했고, 머물던 관아를 생각해 그 동헌과 비슷하게 건물을 지어 이렇게 정면 일곱 칸에 이르는 규모가 큰집을 지었다는 설명이다. 당시 집을 지을 때 일반 잡기 즉 못이라거나 끌, 먹줄 등 도구를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윤이 나게 반들반들한 대청마루 위로 쌀이 열가마 반이 들어가는 큰 뒤주며 시렁 위 가지런히 놓여있는 소반 등에서 전통적인 삶의 반듯한 자세, 생활박물관으로서의 친근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등대가 있는 내륙 포구, 영산포 지나 반남고분군으로 지금은 폐쇄된 옛 나주역사를 지나 영산포로 간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발단이 된 기억만 남기고 이제 기능은 잃어버린 역사 앞 광장에는 할머니 한 분이 밭에서 난 나락을 펼쳐놓고 쭉정이를 고르고 있을 뿐이었다. 가까운 시기 나주의 역사를 말할 때면 대개 시로 합쳐지기 이전의 나주읍과 영산포읍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군청 소재지이기도 했던 나주읍이 행정의 중심지였다면 영산강을 중심으로 커온 영산포읍은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영산강은 담양군 추월산에서 발원해 목포 앞바다로 빠져나가기까지 300리에 걸쳐 흐른다. 1914년 대전과 목포를 잇는 호남선이 놓이고 영산포에 역이 생기면서 교통뿐 아니라 온갖 물산의 집산지로서 기능이 커지게 된다. 영산포 선창은 추자도의 멸치젓, 흑산도의 홍어, 영광의 굴비 등 갖가지 생선과 젓갈들이 모여드는 곳으로도 이름이 났다. 이윽고 영산포 삼거리. 정약용, 정약전 형제가 제각기 강진으로 흑산도로 귀양살이를 떠날 때 이별했던 장소이다. 영산구교라는 다리를 건너 영산강을 건넌다. 바로 영산포다. 다리 끝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등대가 보인다. 1915년 설치된 영산포구 등대는 우리나라 내륙 하천가에 남아있는 것으로는 유일한데, 지금은 배가 다니지 않으므로 수위를 재는 역할만 한다. 등대의 역할은 끝났지만 무수한 배들이 왕래하던 그 시절을 잊지 못하는 양 밤이면 등불을 켠다. 세월 흐름과 함께 하구언이 생기면서 옛날 번창했던 장터의 모습은 사라졌다. 물론 옛 정취도 사라졌지만 골목길은 아직 분위기가 남아있어 영화촬영지로 애용되는 모양이다. 다리 난간 끝에는 ‘영산포선창 홍어의 거리’라는 입간판이 걸려있는데 주변에 도매점은 물론 식당 등 홍어전문집들이 즐비하다. 예전 번성했을 무렵의 품목 중 오늘날까지 명성을 이어 특화된 것이 바로 홍어인 셈이다. 달라진 것이라면 흑산도에서 홍어가 많이 잡히지 않아 요즘은 대부분 칠레산을 들여온다는 점이다. 다음날 반남고분군으로 향한다. 경주지역에서만 연상되는 대형 고분군이 이곳 나주에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신라보다 더 오래된 5~6세기 삼한시대의 것이다. 영산강 유역의 고대사회 세력권이 대단했음을 짐작케 한다. 반남 간다는 운전기사의 말을 듣고 버스에 올랐는데 영암군으로 들어간다. 버스는 영암과 나주의 경계를 넘나들다가 찾는 곳 근처라며 어느 정류장에 내려준다. 커다란 안내판을 보니 반남고분군이라 적혀 있는데 반남면 자미산성 주변의 대안리, 신촌리, 덕산리 일대에 매우 넓게 펼쳐져 있다. 나주방면 이정표를 방향으로 잡고 신촌리 반남초등학교를 지나 조금 걸으니 마침내 황금들녘위로 거대한 봉분이 눈에 들어온다. 길을 가운데 놓고 왼쪽으로 큰 봉분 2기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신촌리 고분군 표지판이 있다. 백제에 멸망한 마한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데 왕이나 지배계급을 상징하는 금동관, 봉황무늬 칼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하늘은 온통 먹구름. 전국이 태풍 영향권에 들고, 전남지역은 강풍주의보가 발동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데 먹구름 속 푸른 하늘이 고개를 내민다. 바람에 스러지는 풀잎들, 서걱대는 대숲이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고대의 신비로운 분위기에 휩싸인다.
메밀꽃 필 무렵, 봉평 초가을에 듣는 옛이야기 2004-10-20
마침봉평 장날(2일, 7일 등 5일장)이었다. 좁다란 골목 양옆으로 나란히 좌판이 늘어섰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풍경은 한껏 가라앉아 있다. 입구에서 한 할머니가 조그만 목욕의자를 깔고 앉아 참기름, 들기름을 판다. 1병에 1만 원. 뚜껑을 여니 고소한 냄새가 진군한다. 참기름 용기는 참이슬 소주병에 비타500 뚜껑이지만 아찔한 냄새 한 방에 묵묵히 지갑을 연다. “할머니, 서비스 없어요?” “서비스는 비닐봉투여.” 봉평 사람들뿐 아니라 전국을 돌아다니는 장꾼들이 모여서인지, 봉평 장터에서 오가는 우스개는 소음처럼 기침소리처럼 자연스럽고 거침이 없다. 봉평도 강원도인데, 찐 옥수수를 파는 아주머니에게 “이거 진짜 찰옥수수예요?”하고 물었던 것은 실수였다. “메옥수수는 약에 쓸라고 해도 없어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다. 봉평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메밀이다. 메밀은 가루로도 팔고 음식으로도 판다. 솥뚜껑에 기름을 바르고 메밀반죽을 얼굴 팩만큼 얇게 편 다음 김치 등속을 얹고 돌돌 말아 썰어 내놓는 메밀 전병이며 메밀전, 감자전이 단돈 1천 원. 봉평장에 가면 누구나 조자룡 헌 칼 쓰듯 지폐를 뽑아드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다양한 메밀음식 맛볼 수 있는 봉평 5일장 메밀꽃이 피는 이맘때,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은 외지인들로 북적댄다. 단편소설 의 무대이며 작가 가산 이효석이 나고 자란 곳이 바로 봉평이다. 장터를 벗어나 조금만 걸으면 메밀밭이 지천으로 펼쳐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꽃밭 속으로 스며들어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린다. 메밀은 7∼8년 전만 해도 찾는 이가 적어 농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았지만 고혈압, 다이어트에 좋은 건강식품으로 알려지고 봉평면이 이효석과 메밀꽃밭의 가치에 뒤늦게 주목하면서 봉평의 최고 관광상품으로 떠올랐다. 메밀꽃이 피는 시기는 8월말부터 9월초지만 이곳의 메밀은 시차를 두고 파종해서 10월초까지 꽃을 볼 수 있다. 해마다 9월에는 효석문화제도 열리는데, 올해는 9월 10∼19일 축제를 치렀다. 메밀꽃이 활짝 피는 늦여름, 초가을이 아니더라도 봉평에는 이효석문학관과 생가 터, 평창무이예술관, 흥정계곡, 허브나라농원 등 가볼 만한 곳이 많다. 이효석문학관은 가산의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문학전시실과 문학교실, 메밀자료 전시실 등으로 꾸며져 있다. 1907년 봉평에서 태어난 이효석은 1928년 단편 으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한국 단편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이 나온 해는 1936년이고 1942년 그는 36세의 젊은 나이에 뇌막염으로 생을 마친다.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앉아 있는 사진 속의 이효석은 당시 지식인의 증표 같은 동그란 뿔테 안경에 양복차림이다. 문학관에서 자료들을 둘러보다 보면 경제적으로는 부족하지 않았고 가정적으로는 불우했으며 이상은 높았던 이효석의 여러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문학관 주변은 문학정원, 메밀꽃길, 오솔길 등으로 오붓하게 꾸며놓았다. ☎(033)330-2700 문학관을 나와 조금만 더 큰길을 따라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이효석 생가 터가 나온다. 옛집이 하나 서 있지만 이효석이 살던 집은 아니다. 원래 있던 집을 헐고 다시 지어 옛 모습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도 찾는 사람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이효석 생가인 줄 알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메밀꽃밭 속에서 유영하듯 시간을 보내다 차 머리를 돌리면 보광피닉스파크 가는 길에 평창무이예술관이, 흥정계곡쪽으로 허브나라농원이 이어진다. 숲 사이 반짝 떨어진 햇빛처럼,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볼 차례. 2001년 세워진 평창무이예술관은 폐교를 활용한 창작 스튜디오다. 작가 4명의 작업실과 전시실, 체험공간이 있고 폐교 바로 옆은 어김없이 넓은 메밀밭이다. 야외조각공원은 조각가 오상욱의 작품 150점으로 꾸며져 있고 실내로 들어가면 30여 년간 메밀꽃을 그려온 정연서 화백, 서예가 이천섭, 도예가 권순범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미리 연락하고 가면 도예, 서예, 판화 체험도 가능하다. 2층에 오르면 음료수를 마실 수 있고 베란다에서 조각공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033)335-6700 허브나라농원은 숲 그늘 깊고 물 맑은 흥정계곡에 자리하고 있어 두 곳만 들르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도 많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문을 연 허브농원으로 전국적인 인기를 굳혔다. 아기자기한 테마 공원에 들어서면 눈과 코가 즐겁고, 허브로 만든 차와 요리를 맛보거나 다양한 허브 상품을 살 수 있는 식당, 가게 등이 옆으로 이어진다. 농원 안에 펜션과 자작나무집 등 숙박시설도 갖추었다. 허브나라를 다녀간 이들의 평은 ‘너무 좋다’와 ‘상업적이어서 싫다’로 극명하게 엇갈리지만 허브에 관한 모든 것을 둘러 볼 수 있는, 제대로 가꾸어 놓은 테마공원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033)335-2902 취재 협조: 한불모터스(푸조 206CC) ☎(02)545-0606 전망 좋은 프랑스풍 테마펜션 봉평프로방스 펜션 봉평프로방스는 문을 연 지 얼마 안되어 시설이 깨끗하다. 대표 이기노 씨가 직접 설계하고 2년여에 걸쳐 꼼꼼하게 지었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서 예술 혼을 불살랐던 화가들(고흐, 르누아르, 세잔느, 마네, 피카소, 마티스, 밀레)의 소개와 작품 사진, 설명이 객실마다 걸려 있고 외부에는 항상 음악이 잔잔하게 흐른다. 커플에서부터 대가족까지 묵을 수 있는 여러 동의 숙박시설을 갖추었고 하루 이용료는 7만∼18만 원선. 여느 펜션과 달리 숯불구이 시설을 무료로 준비해준다. 봉평프로방스는 깔끔한 외관과 시설도 인상적이지만 우거진 숲을 등지고 산 언덕 위에 서 있어 전망이 좋다. 발 아래로 봉평의 산과 들판, 메밀밭, 덕거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기노 씨는 “해질 무렵에는 밀레의 만종을 보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평온하며 어딘지 모르게 경건한 들녘의 해넘이가 하루 여행의 마무리 시간으로 썩 잘 어울린다. 봉평프로방스는 봉평면소재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음식재료나 먹을거리를 사러 나가기에도 편하다. 메밀꽃밭이나 장터, 주변 여행지도 가깝다. 홈페이지 www.pensionprovence.com 문의 ☎(033)335-1778 드라이브 메모 영동고속도로 장평IC를 빠져 나와 봉평 방향 6번 국도를 따라 6km쯤 가면 봉평면소재지다. 왼쪽 농협과 축협 사잇길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바로 봉평 옛장터 골목이 보이고, 다리를 건너 직진하면 이효석문학관, 생가 터까지 둘러볼 수 있다. 가는 길 어디서나 메밀꽃을 볼 수 있지만 다리를 건너 바로 우회전해야 가장 넓은 메밀꽃밭 사잇길로 들어설 수 있다. 장터나 꽃밭을 구경할 때는 다리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돌아다니는 것이 사실 더 편하다. 봉평면소재지로 돌아나와 조금만 올라가면 오일뱅크 주유소를 지나 덕거리 입구 간판이 나온다. 이곳에서 우회전, 100m쯤 가서 펜션 간판들이 늘어선 길로 좌회전, 봉평모텔 앞을 지나면 오른쪽 야산 위에 펜션 봉평프로방스가 있다. 덕거리 입구 간판 앞에서 계속 직진해 보광 피닉스파크쪽으로 달리면 오른쪽으로 흥정계곡, 허브나라 들어가는 길이 갈라지고, 삼거리에서 조금 더 직진하면 왼쪽에 평창무이예술관이 보인다.
바람 불어 좋은 곳 시원한 가을을 느끼자 2004-09-20
울릉도 동해 수평선 밖의 외로운 국토 울릉도. 온종일 사방에서 부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육지의 여행객들을 기다린다. 외로워 신음하는 국토의 막내를 달래기 위해 포항에서 배에 몸을 싣는다. 포항여객선터미널을 떠난 배는 약 3시간 만에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한다. 이곳은 울릉도 여행의 출발점이며 종착점. 어떤 방법으로 울릉도를 둘러볼 것인가를 결정한다. 현대 테라칸, 쌍용 렉스턴 등 4WD 영업용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 삼지렌터카(054-791-2240)에서 차를 빌리는 방법, 그리고 버스를 타는 방법이 있다. 울릉도에서 바람 맞기 좋은 곳으로는 북면 태하리의 대풍감 절벽이 첫손에 꼽힌다. 태하리에서는 성하신당과 황토구미라는 명소를 들러보고 대풍감 절벽과 태하등대 트레킹에 나선다. 황토구미로 가는 도중 간이화장실 바로 옆에 트레킹 출발지가 있다.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바라보면 대풍감으로 올라가기 위한 시멘트 등산로가 절벽을 따라 나 있다. 솔잎이 두텁게 깔린 곳을 지날 때면 카펫을 걷는 기분에다 솔향이 머리를 맑게 한다. 바닷가에서 태하 등대까지 낡은 케이블카가 있는 정상에서는 활처럼 곱게 휜 태하리 바닷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잠시 땀을 식히고 숲길을 지나면 바람만 거세게 몰아치는 대풍감 절벽 모서리에 닿는다. 울릉도를 오각형으로 봤을 때 대풍감은 북쪽의 가로변과 서쪽의 세로변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대풍감 정상에서는 태하등대가 울릉도 트레킹에 나선 여행객을 맞이한다. 헬기착륙장으로 이용되는 초원을 지나고 향나무 서식지에 다가가서 동북 방향으로 시선을 두면 대풍감 트레킹의 백미인 북면의 해안절벽 절경을 만난다. 바다 위의 코끼리바위(공암)가 외롭게만 보인다. 절벽에 불어닥치는 바람은 이승의 바람이 아닌 듯 거세기만 하다. 전설에 따르면 옛 사람들은 대풍감 절벽에 구멍을 뚫어 배를 맸다. 돛단배이니 바람이 불어야만 항해가 가능한 법. 뱃사람들은 대풍감에 올라 바람을 기다렸다. 바람을 기다린다 해서 ‘대풍감’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노을이 붉게 타는 시간대, 해벽들도 햇빛을 닮아 붉게 물들어 간다. 그 절경 앞에서 여행객들은 탄성을 내뱉는 것도 잊고 벅차 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기에 바쁘다. 이 땅에 살면서, 어디에서 이토록 장엄하고도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던가. DATA 홈페이지 : 울릉군청 www.ulleung.go.kr 울릉도닷컴 www.ullungdo.com 문의 : 울릉군청 문화관광과 790-6393 가는 길 : 포항여객선터미널(242-5111)에서 대아고속해운의 썬플라워호가 매일 오전 10시에 출항한다. 울릉도 도동항(791-0802)에서는 매일 오후 4시에 포항으로 배가 떠난다. 선편 예약은 서울의 대아여행사(02-514-6766)에서도 한다. 주변 명소 저동과 봉래폭포 : 우리나라 가장 동쪽에 자리한 항구 저동항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각종 동영상을 통해 수없이 접해 본 풍경. 밤이면 오징어잡이 배들이 환하게 불을 밝혀 불야성을 이룬다. 저동에서 가까운 봉래폭포 또한 꼭 다녀와야 할 곳. 이 폭포수는 울릉도 주민의 식수원이다. 물맛 좋기로 치자면 제주도보다도 낫다고 울릉도 주민들은 자랑한다. 독도전망대와 유람선 : 숙박시설이 몰려 있는 도동항 주변에서 하룻밤을 묵는다면 망향봉 전망대에 올라 본다. 도동항과 수많은 오징어잡이 어선들의 집어등 불빛으로 대낮처럼 환한 밤바다의 풍경을 볼 수 있다. 문의 791-7160. 바로 옆에는 독도박물관과 울릉도향토사료관, 약수공원 등이 몰려 있으므로 함께 둘러보면 좋다. 울릉도유람선은 오전 9시와 오후 4시 두 차례에 걸쳐 운항된다. 도동을 출발, 사동-통구미-남양-구암-태하-현포-공암(코끼리바위)-추산-천부-삼선암-관음도-죽도-저동-도동 코스를 돈다. 문의 : 유람선협회(791-4468) 맛집 홍합밥, 따개비밥, 따개비칼국수, 약소불고기, 홍합불고기, 오징어불고기, 오삼불고기 등은 울릉도의 별미. 도동의 99식당(791-2287)은 약초해장국, 우성회센터(791-0092)는 오징어회와 활어회, 홍합밥, 천부항의 동은식당(791-6200)은 따개비칼국수, 나리분지의 산마을식당민박(791-4643)은 산채전과 닭백숙을 잘한다. 숙박 도동과 저동에 여관이 많으나 조금 다른 숙소를 원한다면 울릉읍 사동리의 울릉마리나관광호텔(791-0020)을 추천한다. 객실은 30실. 주인 내외가 무척 친절하다. 또 울릉도리조트대아호텔(791-8800)이 2004년 6월 오픈했다. 객실은 120여 실. 김제 심포 산악지형이 많은 우리 땅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전북 김제와 만경 들판이다. 널찍한 지평선과 시원한 수평선, 그리고 썰물 때면 드러나는 갯벌평선 등 3평선이 어울린 이곳에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풍년의 바람, 풍요의 바람이 분다. 서해안고속도로 서김제나들목을 빠져나가 만경읍소재지에 이른 다음 서쪽으로 달리면 진봉반도의 풍년바람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북쪽의 만경강과 남쪽의 동진강 사이에 있으면서 서해로 삐쭉 뻗어 나간 땅이 바로 진봉반도. 위쪽에는 진봉면, 아래쪽에는 광활면이 자리잡고 있다. 10월 7∼10일에는 김제지평선축제가 열린다. 진봉반도 서쪽 끝머리에 심포라는 작은 포구가 숨어 있다. 심포에는 선착장이 두 곳. 주차장 쪽 선착장 부근에는 실뱀장어잡이 배를 비롯한 어선과 해태채취선인 넙외기, 그리고 선외기들이 기항하며 또 다른 선착장에는 백합을 비롯해 죽합, 바지락, 피조개 등 각종 조개를 잡으러 나갔던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 찾아 든다. 본디 심포는 백합조개의 주산지였으나 주변의 드넓은 뻘이 새만금 보상 이후 주인 없는 무주공산이 되어 버려 남획되고 말았다. 하지만 백합 종패는 자리를 옮겨다니며 제 몸의 크기를 키우고 있어 멸종단계를 논하기는 아직 이르다. 심포어민들이 잡아온 백합은 선착장에 내려지자마자 흥정이 붙는다. 선착장 현장에서 1kg에 1만 원하던 백합조개가 부근 횟집으로 옮겨져 여행객에게 팔릴 때는 두 배로 뛴다. 자연산 백합은 바다에서 나는 최고의 고단백질 식품으로 강과 바다가 만나며 개펄이 발달한 곳에 주로 산다. 백합은 뻘이 좋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이사가 버리고 한 번 점프를 하면 자기 몸의 수십 배 높이까지 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힘이 좋은 조개라고 알려져 있다. 심포는 일몰을 감상하기에도 좋다. 가을 들판을 따스하게 달궜던 해는 새만금간척지 공사로 육지와 연결될 운명의 고군산열도 뒤로 넘어간다. DATA 홈페이지 : 김제시청 www.egimje.net 문의 : 김제시청 문화관광 담당 540-3224 가는 길 : ①서해안고속도로 서김제나들목→29번 국도→진봉면 가실리→진봉면소재지→702번 지방도→심포→광활면소재지 ②호남고속도로 서전주나들목→716번 지방도→김제시내→29번 국도→진봉면소재지 주변 명소 망해사 : 심포 옆 바닷가에는 망해사가 자리한다. 절 마당 아래가 바로 바다이기 때문에 절 이름도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절’이다. 만경에서 심포로 이어지는 702번 지방도를 달리면 오른쪽으로 빠지는 길이 나온다. 망해사로 들어가는 길이다. 망해사 입구에 작은 주차장이 있다. 곧장 휴게소 옆으로 난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오고 주차장 아래로 내려가면 망해사다. 우선 진봉산(72.2m) 낙조대라는 전망대에 오르면 아스라이 고군산열도가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를 뒤로하고 휴게소 아래의 내리막길로 들어서서 4기의 부도를 지나면 망해사. 망해사는 본디 백제 의자왕 2년(642)에 부설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벽골제 : 부량면 신용리에 가면 선조들의 농경생활을 엿볼 수 있는 벽골제가 있다. 벽골제는 제천의 의림지,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의 저수지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저수지다. 조성시기는 백제 11대 비류왕이 재위하고 있던 330년쯤으로 추정된다. 벽골이란 김제의 백제 때 지명인 볏골을 한자로 옮겨 적은 것. 1998년 벽골제 앞에는 수리민속유물전시관(540-3225)이 문을 열었다. 4개의 전시실에 농업관련 유물 90종 232점이 전시되어 있다. 연못, 정자 등을 갖춘 정원은 훌륭한 쉼터. 맛집 심포항 주변에 김제횟집(543-6535), 바다횟집(543-5629), 심포횟집(543-3800) 등 20여 개가 영업 중이다. 대부분 백합조개를 이용한 생합탕 외에 활어회 등을 내놓는다. 숙박 심포항 주변에 심포장모텔(545-1662), 사보이장(544-6790) 등이, 김제시내 요촌동에는 귀빈장(544-2234), 덕수장(544-0149), 만경파크장(543-2280) 등이 있다. 강화도 제주, 거제, 진도, 남해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 강화도는 늘 역사의 바람이 불어대는 섬이었다. 고인돌을 비롯해 모든 시대의 역사가 남아 있기에 살아 있는 국토박물관, 또는 숨쉬는 역사교과서라고도 불린다. 북부에는 신강화대교, 남부에는 강화초지대교가 놓여 있어 수도권 주민들의 당일 나들이 코스로 사랑 받는다. 강화도에 입도하면 강화역사관에 들른다. 강화도의 과거와 현재를 확실하게 이해시켜 주는 곳이다. 신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처음 만나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강화역사관과 갑곶돈대에 닿는다. 석기시대∼청동기시대 생활상, 고려시대∼조선시대 문화유물, 근세 역사 등을 4개의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역사관 뜰은 갑곶돈대로 이어진다. 이 돈대는 고려가 강화로 도읍을 옮긴 뒤 몽고와 줄기차게 싸울 때의 외성으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였다. 문의 : 강화역사관 관리사무소(933-2178) 강화역사관 앞 매점에서 자전거를 대여해 주므로 이것을 빌려 타고 강화도 동부 해안길을 달려도 좋다. 역사관에서 광성보에 이르기까지 차로 옆으로 자전거전용도로가 잘 닦여져 있다. 역사관에서 초지진에 이르는 강화도 동부 해안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한쪽으로는 김포땅을 마주 보며 염하가 흐르고 다른 한쪽은 황금 들판이 펼쳐진다. 절집 답사에 나서려면 강화섬 남쪽 마니산 주변의 전등사와 정수사, 강화읍 서쪽의 고려산 언저리에 자리한 백련사와 적석사 등을 찾는다. 전등사는 강화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절로 대웅전, 약사전, 범종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마니산 동쪽에 소박한 모습으로 들어선 정수사는 신라 선덕여왕 8년(639)에 창건된 고찰. 마당에서 시원스런 서해를 조망할 수 있다. 백련사는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창건되었다. 경내의 ‘차향따라’라는 찻집에 들르면 다양한 전통차를 맛볼 수 있다. 적석사 역시 백련사와 연대를 같이 하며, 인근 낙조봉에 오르면 서해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를 감상하게 된다. 내가면의 내가저수지(또는 고려저수지)와 양도면의 길정저수지는 가족낚시터로 소문난 곳. 강화읍에서 국화저수지-적석사 입구 길을 달리면 내가저수지에 닿는다. 만수면적이 29만여 평으로 강화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붕어, 잉어, 메기 등이 잘 잡힌다. DATA 홈페이지 : 인천광역시청 www.incheon.go.kr 한국해운조합 island.haewoon.co.kr 문의 : 강화군청 문화관광과 930-3221 가는 길 : ①대중교통/서울 신촌정류장(02-324-0611)에서 강화읍행 시외버스 10분 간격 운행. 강화시외버스터미널(933-2533)에서 전등사 및 외포리행 버스 15∼20분 간격 운행. ②승용차/88올림픽도로→78번 한강제방도로→김포시 양촌면 누산리→48번 국도→신강화대교 또는 누산리→양촌면 소재지→대곶면 소재지→강화초지대교 주변 명소 석모도 : 석모도행 배를 탈 수 있는 곳은 내가면 외포리와 화도면 내리 등 두 군데. 외포리는 본디부터 석모도행 배가 출항하던 곳이라 주말이면 차가 많이 몰린다. 내리는 아직 덜 알려져 외포리보다는 붐비지 않는 편이다. 외포선착장에서 타면 석모도 석포선착장, 선수선착장에서 타면 보문선착장에 닿는다. 석모도에 도착해서 먼저 가볼 곳은 보문사. 전등사, 정수사와 함께 강화의 3대 고찰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금강산에서 내려온 회정대사가 창건했다.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전 왼쪽으로 ‘경기도 석굴암’이라는 석굴법당이 있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21분의 나한상을 모신 석굴사원이다. 대웅전 오른쪽의 420여 개 계단을 힘들게 올라가면 낙가산 중턱의 깎아지른 바위에 있는 마애석불좌상이 반겨 준다. 문의 : 종무소(933-8271) 맛집 우리옥(932-2427)은 강화읍 신문리 중앙시장통 안에 자리한 백반전문집. 겉모습은 초라하지만 가정식백반 하나로 50년 넘는 세월을 유지해 오고 있다. 토가(937-4482)는 강화도 남부, 화도면 흥왕리에 자리한 두부요리 전문점. 성공회 성당으로 쓰이던 건물을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어 안팎이 깔끔하고 주차장도 널찍하다. 순두부찌개를 주문하면 시큼한 열무김치를 썰어 넣고 끓인 되비지가 곁들여 나온다. 매일 아침 국산 콩으로 두부를 만든다. 두부새우젓찌개, 두부김치 등도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숙박 화도면 여차리에 일마레 펜션(937-6242)이 유명하다. ‘일 마레’란 이탈리아어로 ‘바다’라는 뜻. 이름 그대로 일 마레 펜션 마당과 객실 유리창에서 서해가 들어온다. 강화도 유일의 해수욕장 동막해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흥왕리를 지나고 여차리로 넘어가 미루교회를 지나자마자 도로 오른쪽에 펜션 입구가 있다. 석모도 숙박시설로는 보문장여관(932-3800)을 이용할 만하다.
공주 계룡산도자예술촌 아름다운 공동체 2004-09-16
깊은산 속에 집 한 채 짓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의 욕망. 직장이며 사람들 관계며 어렵게 장만한 도시의 아파트며, 한때 최선을 다해 일궈온 환경을 온전하게 버리고서야 이룰 수 있는 꿈을 위해 제 인생을 ‘올인’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시때때로 떠날 뿐인지도 모른다. 여름휴가로, 단풍 여행으로, 눈 덮인 겨울 산사를 찾아서……. 사계절 멋진 경치를 뽐내는 충남지역의 명산, 계룡산 동쪽 자락에 자리한 계룡산도자예술촌은 도심의 빌딩 숲에 갇혀 소통의 부재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에게 영혼의 해갈과 대안적 공동체의 삶을 보여주는, 썩 괜찮은 여행지다. 단풍이 멋지기로 소문난 ‘가을 갑사’와 엮어 한번쯤 다녀오면 좋을 코스. 우리 독창의 도자기 산실에 집을 짓다 21세기 한국의 새 행정도시 예정지로 떠오른 백제의 고도(古都) 공주, 그 중심에 버티고 선 계룡산이 우리 도자문화의 한 축을 담당했던 터라는 것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강진의 청자, 이천의 백자와 더불어 한국 도자기 역사를 지탱해온 공주 분청사기는 15세기 후반~16세기 초 계룡산 기슭에서 많이 만들어졌다. 주로 동학사 입구의 반포면 학봉리에 밀집했던 가마터는 깨진 유물들만 남긴 채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 뿌리를 찾은 젊은 도예인들이 가까운 상신리에 촌락을 이루고 살면서 전통의 기법을 되살리고 있다. 계룡산 분청사기는 다른 지역의 분청들과 다르게 철화(鐵畵) 기법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분청사기는 청자토에다 걸쭉한 백자흙물을 바르고 그 위에 문양을 넣는 방식인데, 7가지의 채색방법 중 계룡산 밑에서만 유독 자연 철을 곱게 갈아 그림을 그리는 ‘철화분청사기’가 싹텄다. 다 구웠을 때 회색 바탕에 검은 무늬가 명쾌한 대비를 이루는 철화분청사기는 호방하고 질박한 무늬로 특유의 지방색을 뽐내며 자유분방하고 장난기 넘치는 분청의 매력을 한껏 펼쳐 보였다.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과정에 생겨난 분청사기가 그 맥을 올곧게 이어오지 못한 데는 임진왜란의 탓이 컸다. 우리나라에 대한 일제의 문화침탈은 익히 알려진 사실. 도자기 기술이 미천해 그 때까지도 자기를 생산하지 못하고 도기를 구워 쓰는 수준이던 일본은 전쟁중 전국의 수많은 가마를 파괴하고 뛰어난 도공들을 일본으로 끌고 갔다. 이 때 계룡산 지역에서 잡혀간 이삼평(李參平) 옹은 아직도 그가 활동했던 규슈 현 아리파 지역에서 자기의 시조로 추앙받고 있다. “분청사기는 청자 백자와 다르게 서민들이 즐겨 쓰던 용기입니다. 전란에 전성기를 채 누리지도 못하고 발전의 기회까지 빼앗겼지요. 임진왜란을 ‘도자기전쟁’이라고 부를 만큼 그 피해가 컸습니다. 학봉리와 온천리 일대에서 깨진 철화분청 조각이 많이 나와 나중에야 이곳에서 독창적인 철화분청 문화가 싹텄음이 알려졌는데, 지금이라도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정통성을 되찾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11년째 계룡산도자예술촌을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 김용운 촌장의 말이다. 작품 이상의 것을 가르치는 열린 작업실 계룡산도자예술촌이 자리한 곳은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대전에서 20분 거리에 있어 공주 갈 때 흔히 타는 천안-논산고속도로보다 호남고속도로 유성 IC를 통하는 것이 빠르다. 유성에서 32번 국도를 타고 동학사 앞 삼거리(박정자삼거리)를 지나 2.6km 가서 상하신리 방향으로 좌회전. 정겨운 시골길을 4km 달리면 오른쪽에 ‘계룡산도예촌’ 표지가 나온다. 계속되는 표지를 따라 좁은 마을길을 휘젓다 보면 문득 나타나는 공터, 그 왼편으로 ‘00공방’이라는 간판을 저마다 걸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12채 규모의 도예촌이 있다. 부부작가들을 포함해 모두 18인의 도예인이 모여 이룬 작은 공동체. 마을은 꼭 옛날 씨족들이 부락을 이루고 살던 ‘집성촌’처럼 유대가 두텁고, 서로에게 열려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993년 같은 뜻을 품고 허허벌판에 마을을 일궈 입촌한 이후 두 집 주인이 바뀌었을 뿐, 더 이상의 이웃을 들이지 않고 11년을 한 가족처럼 살아왔다. 담 대신 마당에 나무 빗장 하나만 걸쳐놓은 집이 있는가 하면, 각자 개성을 지니되 고만고만하게 높고 넓은 집 구조와 크기를 다투지 않는 간판들의 어울림에서 ‘더불어 사는 것’의 참의미가 나눔과 믿음에 있음을 느끼게 한다. 김용운 촌장은 이곳의 사람들이 처음 마을을 세울 때 ‘개성의 충돌’을 적잖이 염려했으나 서로에 대한 배려로 많은 갈등들을 극복해왔다고 털어놓는다. 예술가들의 고집이 드세다고는 하나 흙 만지는 사람들은 특별히 남 배려가 많은 편이라는 설명과 함께. 예술촌이라고 해봐야 보통은 대형 전시장 등 공동의 상권만 눈에 띄는 다른 지역과 달리, 계룡산도자예술촌은 그 자체로 예술인 가족들이 모여 사는 생생한 생활터전이라는 점에서 관광객들이 갖게 되는 감회가 남다르다. 애초에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 아니어서 전시장 귀퉁이의 작은 카페 외에는 잠시 다리 쉴 곳도 마땅치 않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 그러나 불현듯 문턱을 넘어 들어오는 낯선 이방인에게도 흙먼지 쌓인 작업장이며 세간을 부끄럼 없이 보여주고 더러는 말벗까지 되어주는 도예인들이 있어, 원한다면 작품 이상의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담아올 수 있다. 12채의 공방이 대부분 넓은 작업장을 갖추고 있어 미리 예약하고 가면 언제든 1일 도예체험을 할 수 있고, 계룡산 철화분청사기에 대한 강의도 들을 수 있다. 디카 매니아들은 여러 작업실을 노크해 생생한 기록사진도 많이 담아올 수 있을 듯. 단, 매주 월요일은 공동 전시장이 문 닫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도예인들이 휴일로 삼고 있으므로 피하도록 한다.
안동(安東) 배롱나무 꽃 필 무렵 2004-09-15
배롱나무 꽃필 무렵 가야지 했던 안동행이다. 여름 꽃나무 배롱나무는 100일 동안 붉어 백일홍이라 불리기도 하고 중국에서 건너온 까닭에 자미화(紫微花)라는 이름도 있다. ‘홀로 앉아있는 해질 무렵, 누가 곁에 있는가/ 자미화가 자미랑(紫薇郞)을 마주하는구나’라고 노래했던 당나라 시인 백거이, ‘지난 저녁 꽃 한송이 지고, 오늘 아침 꽃 한 송이 피어/ 서로 일백일을 바라보니, 너를 대하여 좋이 한 잔 하리라’고 한 조선조의 성삼문 등 수많은 선비들이 사랑했던 꽃나무. 그래서인지 소쇄원 등 정자가 많은 담양 일대와 진도 운림산방 등 이름난 정자나 서원 주변에는 어김없이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다. 그 중에서도 병산서원 배롱나무를 본 이후 상사병처럼 마음을 빼앗겼다. 어쩌면 병산서원 만대루 마루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이며 강, 산을 바라보고 싶었던 때문인지 모른다. 그 푸른 풍경에 붉은 색채라니……. 부용대에 올라 물돌이동을 보고, 병산에 가다 요사이 다녀보면 전국 곳곳으로 정말 새 길이 많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서 안동 가는 길도 원주에서 새로 도로가 나 훨씬 편리해졌다. 예전에 4시간이 넘던 거리가 3시간 정도로 한 시간 이상 단축되었다. 한참 돌아가던 길이었는데 도로도 곧고 넓어졌다. 중앙선 기차로 가면 여전히 4시간이 넘기에 고속버스를 타는 게 더 편리하고 빠르다. 터미널 건너편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려 먼저 하회마을로 간다. 하루에 편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시간대를 잘 맞추어야 한다. 하회는 시 외곽에 있어 꽤 거리가 있는데 50분 가량 나가야 한다. 하회마을 초입부터 차들이 줄지어 섰다. 여기도 방학, 휴가 시즌에는 몸살을 앓는 모양이다. 입장료(어른 1천500원)를 내고 들어서는 길 입구에는 안동간고등어, 안동찜닭 등의 먹거리나 민박 등의 간판을 내건 옛집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번잡하다. 예전에 왔을 때와는 너무 많이 달라진 모습.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골목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두 사라진다. 어느 대문 처마 밑에 들어가 잠시 비를 피하는데 텅 빈 골목을 보자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고개를 돌려 대문을 보니 서애 유성룡 선생의 후손이 여기에 살고 있다는 안내문이 써 있다. 안동 하회마을이 다른 민속촌과 다른 것은 바로 이렇듯 명문가의 후손이나 일반사람들이 살고 있는 여염집이란 점이다. 강가로 나와 둑길을 걸어 나루터로 향한다. 나루터에 빈배만 있고 사공이 없다. 강 건너 높다란 언덕 같은 것이 부용대인데, 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 한참을 기다려 사공이 왔는데 이번에는 손님이 더 와야 배를 띄운다고 한다. 잠시후 구세주처럼 한 가족이 온다. 강 건너까지 거리는 멀지 않지만 물살이 제법 세고, 노 하나로 바닥을 밀며 배를 조타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한번 배를 띄울 때 좀더 많은 사람을 태워야 하는 이유다. 나룻배는 15인승. 말하자면 옛 별장일 것이다. 유성용이 세웠다는 옥연정사를 지나 64m 높이의 부용대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가파른 길을 올라가는데 숨이 턱까지 찬다. 하지만 금새 정상에 오른 기쁨을 맛본다. 발아래 하회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강이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것이 보여 왜 물돌이동, 하회(河回)라고 하는지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때로는 멀리서 보는 것이 더 아름다운 법이다. 사람들은 하회에 와서 대부분 마을만 휘 둘러보고 가는 모양이다. 부디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부용대에 오르기를, 그래서 화회마을을 본다면 남다른 기억을 안고 갈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시간대가 맞아 병산서원 가는 버스를 타고 간다. 오후 3시 30분 무렵인데 막차이므로 돌아나올 때는 차편이 없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아무튼 좁은 비포장길을 터덜터덜 달려 병산서원에 들어간다. 옛친구를 만나듯 병산서원은 그렇게 늘 그 자리에서 반겨준다. 여름에만 와서 그런가 붉은 꽃밭을 이루는 배롱나무들도 늘 그렇게 꽃을 피우고 있는 것만 같다. 우선 만대루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마치 꼭 그래야 할 것처럼 병풍처럼 펼쳐진 앞 병산과 그 아래 흐르는 강을 바라본다. 서원은 아담한 규모다. 입교당 뒤로 돌아가 보면 수백 년은 됨직한 오래되고 커다란 배롱나무가 잎을 떨구고 있는데 바닥에 붉게 물든 꽃잎들이 너무 선연해 가슴이 아릴 정도다. 담장 기와 위에 떨어진 꽃잎들은 아무도 그려내지 못할 그림을 만든다. 무더운 여름의 한복판에서 마치 늦가을 애수를 맛보는 순간이다. …내 생전에, 아마 한 生을 다 지불해도 입교당 뒤편 키 큰 배롱나무가 될 수 없겠지만 나는 마냥 가슴이 저리고 한번은, 단 한순간만은 세상도 버리고 싶어졌다 황규관 시 - ‘병산서원 배롱나무’ 중에서 만휴정, 어느 숲속 헤매다 선경에 들어선 듯 만나다 돌아나오는 길, 큰길까지 2km 남짓 되는 거리를 택시를 부를까 하다 그냥 걷기로 한다. 얼마쯤 걸었을까 지나는 승용차 한 대가 태워주겠다 한다. 운이 좋았는지 차주인은 문화유산해설가다. 안동시내로 가는 길에 봉정사까지 안내해주겠다 한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봉정사를 보러 올라간다. 천등산에 자리한 봉정사는 종이 봉황이 떨어진 곳에 절을 세웠다 해서 머무를 정자를 따 봉정이라 이름 붙였다. 봉정사는 원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심포 양식의 목조건물인 극락전으로 이름나 있는데 보수공사를 해 다소 밋밋한 모습이다. 그 아쉬움은 고풍스런 대웅전 단청을 보고 충분히 달랠 만 하다. 법당 안에는 커다란 종이 봉황이 걸려 있다. 바쁜 마음에 호젓한 숲길을 뛰다시피 걷고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촬영했다는 부속암자 영산암까지 가보지는 못했지만 또 다시 오라는 여운으로 알고 발걸음을 뒤로한다. 젊은 스님의 청아한 저녁예불소리가 아득히 멀어져간다. 다음 날 지인을 만나 만휴정이란 곳을 찾아간다. 어떤 곳이냐고 묻자 그냥 알려 하지 말고 가서 보란다. 영천 가는 35번 국도를 타고 길안을 지나 만휴정 가는 길, 산과 들의 평화로운 풍경 위로 그림 같은 구름이 흘러간다. 안동땅이 꽤 넓다는 느낌인데, 인구 18만 명에 면적은 자그마치 서울의 2.5배에 달한다고 한다. 안동지역의 90% 정도가 산이며 들, 강 따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지만 한 사람이 차지하는 자연의 면적도 그만큼 넓다는 얘기. 국도를 따라 흐르는 길안천에서 텐트를 치고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 어른들의 모습이 마치 70~80년대의 풍경 같다. 특히 그늘이 지는 다리 아래는 자리경쟁이 치열하다. 그만큼 길안천 물이 맑고 깨끗해 여름철 인기 있는 피서지로 주변 일대에서 이름나 있다. 묵계리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만휴정, 왼쪽으로 묵계서원을 알리는 작은 푯말이 보인다. 근래에 포장된 조그만 숲길을 따라 얼마간 걸어 오르자 오른쪽 숲속에서 낙숫물 소리가 들려온다. 나뭇가지를 헤집고 보니 시원한 폭포가 보이고 그 정자 하나가 걸려 있으니 바로 만휴정이다. 어느 숲속을 헤매다 선경에 들어선 기분이 이럴까. 돌 위에 흙담을 덮은 담쟁이 넝쿨이 무성하다. 길다란 다리는 근래에 놓은 듯한데 통나무를 이용해 그리 나쁘지 않다. 다리 아래쪽 위로 조그만 소가 있고 물뱀 하나가 첨벙 스며든다. 그만큼 사람 발길이 드문 곳이다. 사실 정자 자체의 건물보다 어떻게 이런 곳에 정자를 세웠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공간배치가 절묘하다. 길 건너편 묵계서원은 만휴정을 세운 보백당 김계행(金係行, 1431∼1517) 선생을 봉향하는 서원으로 역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덕분에 한적하고 뒤편 소나무 숲과 어울려 정취가 좋다. 다시 길을 거슬러 올라 안동시내로 향한다. 안동댐 안쪽의 민속촌이며 임청각과 신세동 7층석탑 등지를 스치듯 지나 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 1박 2일의 짧은 여정을 접어야 할 시간. 안동을 제대로 보려면 최소 일주일은 잡아야 한다고 말한 지인의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알려진 곳보다 알려지지 않은 곳이 더 많은 땅이 동쪽(東)의 편안(安)한 고장 안동이라는 것을 재발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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