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야생화와 함께 보낸 소백산 1박 2일 거친 자연에서.. 2005-06-22
Prologue : 소백산을 향하다 이번 여행에서 함께 하고 싶었던 3개의 키워드가 있다. 야생화, 산 그리고 텐트. 야생화를 볼 수 있고 야영장이 있는 산을 찾다가 한국야생화연구소 김태정 소장의 권유로 소백산으로 정했다. 단양 쪽에서 오르는 천동계곡 코스에는 관리사무소와 비로봉 중간쯤에 야영장이 있고, 오르는 길에 갖가지 야생화들이 있어 이번 여행의 대상지로 더 없이 좋았다. 지난 5월 11일 소백산으로 향했다. 꽃을 보러…. 5월 12일 오전 : 가슴 졸인 대가로 선물받은 촉촉한 산공기 계획은 이것이 아니었다. 어제 출발했을 때 생각은 일찍 도착해 야영장에서 1박을 하고 새벽같이 산을 올라 하루 종일 꽃을 찾고, 보고, 감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양 접어들어 내리기 시작한 비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굵어졌다. 게다가 바로 옆 남한강의 도담삼봉과 석문에서 써버린 시간이 제법 되었다. 하여 다음날 산행을 먼저하고 내려와 야영하는 것으로 일정을 바꿨다. 뉴스에서는 비가 오후부터 갤 것이라고 했다. 밤새 가슴 졸였으나 아침부터 이슬비는 여전히 추적거리고 있다. 고수교를 지나 천동계곡에 들어서자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제얼굴을 드러내지 않아 미덥지 않다. 차를 대고 텐트와 먹거리 등을 챙겨 산행에 나선 것은 10시가 조금 못된 시간. 야영장까지 1시간 반 거리라 했다. 야영장에서 정상인 비로봉까지 역시 1시간 반 거리이니 그리 빠듯한 시간은 아니다. 배낭 끈을 몸에 맞게 조이고 걷기 시작한다. 칸트는 산책과 사색을 즐겼고, 아인슈타인은 걸으면서 상대성 원리를 생각해냈다지만 기자는 기사 쓸 생각을 한다. 다리가 아파 오면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나’부터 ‘야생화는 식물원에도 많은데…’까지 온갖 잡생각을 한다. 그러나 길가에 보일 듯 말 듯 피어 있는 야생화를 보는 순간 ‘그래, 이거야!’하는 느낌이 올 것을 알기에 발걸음을 계속 옮긴다. 오르는 길의 공기는 차갑고 촉촉하다. 널찍하게 닦인 등산로는 구불구불 S자로 이어지지만 길 양쪽으로 늘어선 침엽수들은 하늘을 향해 곧추 서있다. 그 사이의 공간을 메우고 있는 것은 물안개. 간밤에 내린 비의 여운과 천동계곡의 물이 만든 작품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간밤에 가슴을 졸인 것이 아깝진 않다. 얼마나 올랐을까. 길 왼편에 노란 꽃이 모습을 드러낸다. 야생화를 보고 싶어 왔을 뿐, 아는 것이 없으니 이름은 모른다. 휴대용 야생화 도감을 꺼내 ‘봄에 피는 노란색 꽃’을 뒤져보니 ‘염주괴불주머니’와 닮은꼴이다. 길쭉한 꽃 모양이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에 홀로 피지 않고 떼로 핀 모습까지 영락없다. 헌데 바닷가에 피는 꽃이라 되어 있다. 그렇다면 ‘산괴불주머니’일 것이다. ‘산괴불주머니.’ 이름은 또 뭐람. 야생화 이름은 대개 생김새나 쓰임새에 따라 붙여진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며느리밥풀꽃’은 붉은 꽃에 박힌 두 개의 하얀 점이 쌀 두 톨을 물고 있는 혀 같아 붙은 이름으로, 며느리의 서글픈 이야기가 담겨 있는 꽃이다. 산괴불주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옛날 오색의 비단 헝겊 조각들을 모아 수를 놓은 노리개를 괴불주머니라고 했다고 한다. 게다가 열매가 염주와 같으니 염주괴불주머니가 되었을 것이고, 산에 피는 것을 산괴불주머니라 불렀을 것이다. 꽃이름 하나 제대로 알기도 어렵지만, 그만큼 재미는 쏠쏠하다. 5월 12일 오후 : 찾으라, 보일 것이니 야영장에 도착한 것은 일정(2시간)보다 20분 늦은 12시 20분. 자리를 골라 텐트를 후다닥 치고 점심을 해먹었다. 짐을 정리하고 가볍게 배낭을 꾸려 나선 것은 2시 반. 아침에는 예술영화의 한 장면처럼 온통 시야가 뿌옇게 흐렸지만 이제는 햇살이 간혹 비치기도 한다. 그림자가 지는 것이 이리 반가운 때도 드물다. 등을 짓누르던 짐이 없어지니 몸은 가뿐하다. 비로봉에 오르는 길은 돌계단으로 이어지다가 능선을 만나 산책로 같은 평탄한 흙길로 이어진다. 정상부에는 나무계단이 끝도 없이 연결되어 지친 다리를 더 지치게 한다. 오늘 산행의 목적은 정상이 아니라 야생화임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나무 울타리가 둘러진 돌길. 힘들다고 숨만 ‘꺽꺽’ 내쉬며 가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고생길이지만 길 밖 점점이 피어 있는 꽃을 보고 가면 그리 힘들지 않다. 저만치 꽃이 보이면 돌계단 서너 개쯤은 가볍게 뛰어 올라도 문제없다. 야생화는 화려하지 않다. ‘나 여기 피었네’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불러 모으지 않는다. 그저 바람결에 흐르다가 꽃씨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온힘을 모아 꽃을 피워내면 그 뿐이다. 다만 먼길 마다 않고 찾아온 손님을 맑은 얼굴로 맞이해 찾은 이를 기쁘게 한다. 돌계단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정상 오르는 길에 꽃이 있느냐 물었다. 어떤 이들은 없다 하고 어떤 이들은 형형색색의 꽃을 보았다 말한다. 돌계단길 중간중간에는 길 양옆으로 하얗고 노란 꽃들이 점박이처럼 박혀 있다. 하얀 꽃 중 눈에 띄는 것은 덩굴개별꽃. 5개의 하얀 잎이 별모양으로 펼쳐진 모양새가 영락없는 별이다. ‘개’는 꽃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통 크기가 작을 때 붙이는 접두어다(박스기사 참조). 줄기가 바닥으로 기는 습성이 있어 이 꽃은 덩굴개별꽃이 되었다. 또 하나의 흰꽃은 모데미풀. 꽃잎을 대신한 하얀 꽃받침들이 줄기 아닌 잎 바로 위에 활짝 펴있고 그 위에 노란 수술들이 또 하나의 꽃처럼 올라앉은 모습이 예쁘다. 하얗고 노란 꽃들이 익숙해질 무렵 저만치 보이는 보랏빛의 함초롬한 꽃을 보고야 말았다. 이름은 모르지만 꽃을 감상할 때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감상할 만큼 감상하면 ‘그런데 얘는 무슨 꽃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수순이다. 다시 책을 펼쳐 보니 모양새로 미루어 현호색인 듯하다. 생김새는 아까 보았던 산괴불주머니와 비슷하지만 파란 꽃색 탓인지 창백해 보인다. 돌계단이 끝나면 얕은 둔덕 넘어 능선길이 시작된다. 산책하듯 거닐며 꽃을 감상해도 되니 마음이 편하다. 취재도 취재거니와 어렵게 만난 야생화가 반가워 사진을 찍으려니 꽃 핀 곳이 거의 그늘이다. 이 꽃들이 모두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그저 서쪽으로 넘어가려는 해가 잠시나마 꽃에 비춰지길 바랄 뿐이다.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다. ‘야생화 천지’라고 하긴 뭐하지만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야생화가 눈에 띄기 때문이다. 어렵게 찾은 소백산이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철이 돌아오면 이 꽃들도 다시금 꽃을 피울 것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 다시 오겠다’ 생각하며 비로봉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5월 12일 늦은 오후 - 13일 오전 : 야생화를 신록에 맡기고 돌아서다 다시 돌아온 야영장. 해가 완전히 넘어가진 않아 그저 어둑어둑할 뿐이지만 인적 없는 야영장은 정적 속에 계곡의 물소리만 울리고 있다. 하늘의 구름은 달을 삼킨 지 오래, 등 하나 달리지 않은 야영장이기에 해가 떨어지면 칠흑 같은 어둠에 덮일 것이다. 가스등을 밝히고 소박한 주안상을 차려 고된 몸을 달래 본다. 이튿날 아침. 텐트 색이 화사하게 보이는 것을 보니 바깥에는 해가 뜬 모양이다. 문을 열어 보니 땅에 난 풀마다 짙은 그림자가 져 있다. 간만의 햇살이 반가워 밖에 나와 밤새 굳은 몸은 이리저리 놀려 본다. 시간이 여유롭지 않아 짐을 꾸려 출발하기로 한다. 다시 짐을 꾸려 보니 간밤에 먹은 음식물 만큼 텐트가 이슬을 머금어 무게는 별반 다르지 않다. 내려오는 길, 뭐가 아쉬웠는지 뒤를 돌아보게 된다. 농담(濃淡, 짙고 옅음)진 신록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듯하여 속으로 웃고 내려왔다. Epilogue : 꽃을 친구 삼아 떠나는 여행길 얼음을 뚫고 꽃대를 올려 꽃을 피워내는 복수초부터 시작된 꽃의 향연은 갖가지 색의 꽃을 선보이며 6월로 넘어가고 있다. 전국의 산들이 철쭉제로 몸살을 앓는 동안, 자연은 어디선가 또 다른 생김과 색을 가진 꽃들을 피울 것이다. 저리 예쁜 꽃을 보면 ‘자연은 우리의 어머니’라는 말을 실감난다. 언젠가 길 떠날 마음이 있다면 조그만 야생화 도감 하나 챙겨 작고 예쁜 꽃을 여행길의 친구로 삼기 바란다. 꽃을 모르고 사는 것은 꽃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꽃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야생화 이름, 어렵지 않아요 꽃이름에 붙어 있는 몇 가지 말의 뜻만 알아도 그 꽃의 특성을 반 정도는 알 수 있다. 한 번만 들으면 누구나 쉽게 기억할 수 있으니 알아두었다가 써먹어 보자. 사는 곳을 뜻하는 말이 있다. ‘갯’은 갯벌이나 계곡에서, ‘골’은 습한 골짜기에서 자란다는 뜻이다(갯개미취, 골사초). ‘구름,’ ‘두메’가 붙으면 높은 산지에서 산다는 의미(구름패랭이, 두메투구꽃). 이밖에 ‘벌(벌판),’ ‘물,’ ‘돌,’ ‘바위,’ ‘산,’ ‘섬’ 등은 말뜻 그대로이다(물봉선, 돌단풍, 바위구절초, 섬백리향). ‘참’은 진짜를 뜻하는데 참나리, 참바위취처럼 보통 크고 눈에 잘 띄는 꽃에 붙는다. 반면 ‘나도,’ ‘너도’는 비슷하지만 다르게 생긴 꽃에 붙고(나도바람꽃, 너도골무꽃), ‘개,’ ‘뱀,’ ‘새’ 등은 품질이 낮거나 작고 모양이 다른 것에 붙는다(개쑥부장이, 뱀딸기). 갈퀴나물이나 끈끈이주걱처럼 식물기관의 모양을 따기도 하고 가는잎구절초나 가시오갈피처럼 특성을 말해주기도 한다. 키가 큰 식물에는 ‘큰,’ ‘왕,’ ‘말,’ ‘수리’ 등이 붙고(말나리, 수리취) 작은 것에는 ‘각시,’ ‘땅,’ ‘애기,’ ‘왜,’ ‘좀,’ ‘병아리’ 등이 들어가기도 한다(애기현호색, 왜솜다리, 좀꿩의다리, 병아리난초). 이밖에 ‘선’은 선가래나 선괭이밥처럼 반듯이 서있는 식물을 뜻하고 ‘눈’은 눈양지꽃, 눈범꼬리처럼 누워 있는 식물을 가리킨다. ‘광대’는 광대의 옷처럼 울긋불긋한 꽃이름에 붙는다. 참고서적 : 허북구, 박석근, 나문심, 박재옥 저 야생화 보러 가자 꽃은 날짜가 아니라 날씨를 보고 핀다. 날씨는 중부와 남부 지방이 다르고 평지와 산지가 다르다. 높이라면 보통 해발 100m마다 1℃씩 낮아지기 때문에 산지가 평지보다 늦게 피고 늦게 진다고 보면 맞다. 또한 늦봄에 피는 야생화들은 대개 5, 6월에 걸쳐 핀다. 야생화를 보러 굳이 목적지를 정할 필요는 없다. 전국 어디를 가나 도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꽃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중에서도 가볼 만한 곳을 꼽으면 소백산과 축령산, 금대산, 선자령 등이다. 축령산은 휴양림안 산책로변에 야생화가 많고 선자령 역시 야생화로 유명한 곳이다. 이 즈음 금대산은 야생화 천지다. 야생화는 자연생태에서 펴야 제맛이지만 식물원을 찾는다면 강원도 평창의 자생식물원을 꼽을 만하다. 1천2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는 우리나라 자생식물의 보고인 셈이다(우리나라 자생식물의 종류는 모두 4천300여 가지라고 알려져 있다). 주의할 것. 식물자원 보호를 위해 삼각대를 이용할 수 없다. 참고사이트 : www.kbotanic.co.kr 야생화 찍기·알기·기르기 찍기 사진의 기본은 빛이다. 빛은 오전이 좋다. 맑은 날 오후의 빛은 너무 강하고 저녁 무렵에는 붉은 빛이 감돈다. 또 밝은 색의 꽃을 찍는다면 노출보정 기능을 통해 +EV 쪽으로 설정한다. 배경이 어둡다면 -EV. 만약에 꽃이 환하고 배경이 어둡다면 측광모드를 ‘spot 측광’으로로 정한다. 뷰파인더의 가운데 지점을 기준으로 노출이 결정되기 때문에 꽃부분은 정상노출, 주변배경은 어둡게 나와 꽃이 살아난다. 이밖에 꽃을 한가운데 놓고 45도 각도에서 찍으면 너무 단조롭다. 가운데를 피하고 각도도 높은 곳 낮은 곳에서 여러 가지로 찍어 본다. 접사모드와 발광금지모드, 아웃포커싱은 기본. 마지막, 접사사진이 예쁘긴 하지만 꽃이름을 알기 위해서는 잎과 줄기의 모양도 있어야 한다. 알기 야생화 도감을 준비하자. 포켓용은 가지고 다니기 편하고 커다란 것은 정보가 많아 좋다. 도감만으로 이름을 알기는 쉽지 않다. 모양이 비슷한 꽃들이 있기 때문. 이럴 때는 인터넷을 이용한다. ‘야생화’로 검색되는 몇몇 사이트에 들어가면 야생화 이름을 묻는 코너가 있다. 꽃이름을 알고난 후 게시물의 제목을 꽃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예의다. 기르기 야생화는 말 그대로 자연에서 자라는 꽃이지만 곁에 두고 보고 싶다면 잘 골라서 심는 것도 방법이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어서 예쁘고 쉽게 기를 수 있는 꽃을 골라야 한다. 원추리, 옥잠화, 인동, 비비추, 금낭화 등은 음양건습을 특별히 가리지 않아 기르기 편하다. 처음 심은 후 7일은 뿌리가 자리를 잡는 기간이기 때문에 매일 아침 물을 준다. 뿌리가 자리를 잡으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주면 되며 거름은 1년에 한 번, 봄에 주면 된다. 특별히 습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물빠짐이 좋은 산모래와 부엽토를 섞는 것이 좋다. 양재동 꽃시장이나 강원도 오대산 근처의 자생식물원 등에서 야생화를 살 수 있다. TIP 소백산 산행 소백산(비로봉 1,439m)은 강원, 충청, 경상도에 걸쳐 있고 온화한 산세와 능선부의 툭 트인 전망이 일품이다. 야생화를 보러 소백산을 찾는다면 기본적인 산행준비를 잘 해야 한다. 한낮에 무덥다 해도 산 속의 밤은 춥다. 야영을 한다면 매트리스와 침낭이 필요하다. 천동계곡 코스 중턱에 있는 천동야영장에는 조명시설이 전혀 없으므로 랜턴이나 가스등을 챙기고 배터리나 연료도 넉넉하게 준비한다. 천동야영장은 조만간 휴식터로 바뀔 예정이라고 하니 미리 문의하는 것이 좋다. 소백산 북부사무소 (043)423-0708 돌계단 길은 쉽게 지치기 때문에 보폭을 좁히고 내려오는 길에는 무릎과 발목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앞꿈치부터 딛는다. 간식거리를 넉넉하게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www.npa.or.kr) 오른쪽 지도에서 ‘소백산’ 선택. 주변 볼거리 남한강물이 땅을 휘돌아 감는 곳, 그 물줄기 한가운데 뾰족한 바위 봉우리 3개가 사이 좋게 솟아 있다. 도담삼봉. 삼봉 정도전이 누각을 짓고 시를 읊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하지만 그 누각은 1972년 수해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다시 지은 것 역시 1990년 수해로 훼손되어 마루와 기왓장을 새로 보수했다. 예전엔 물이 얕아 바짓가랑이를 걷고 물길을 건넜지만 충주댐을 만들면서 물이 깊어졌다. 건너편 마을은 도담리, 현재 열 서너 가구가 살고 있다. 도담삼봉에서 나무계단을 따라 팔각정에 오르면 전망이 좋다. 예서 조금 더 가면 석문이 나온다. 거대한 바위에 갖가지 나무들이 뿌리를 내려 가을이면 가히 ‘바위무지개’라 할 만 하겠다. 잘 곳와 먹을 곳 단양읍내에 대명콘도(www.daemyungcondo.com )가 있다. 800개가 훨씬 넘는 객실에 물놀이 테마파크 아쿠아월드를 갖추고 있어 아이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기타 다른 숙박업소는 단양군청 홈페이지 상단의 ‘문화관광-숙박안내’ 참조. 호텔, 펜션, 민박 등 종류별로 정리되어 있다. 맛난 먹을거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단양은 육쪽마늘이 유명하다. 석회암 토질인 까닭에 아리한 맛이 덜하고 저장성이 좋다. 단양읍내에는 마늘솥밥으로 인정받는 집이 있다. 장다리식당. 마늘솥밥 정식은 1만 원, 특정식은 1만5천 원이다. 보쌈이나 육회 등 맛난 먹거리와 20여 개에 달하는 밑반찬이 상에 오른다. (043)423-6660 글l서승범 기자 사진l최진호(프리랜서 사진작가)
울진 죽변 등대 이상으로의 도피와 현실로 회귀하는 .. 2005-06-20
등대(燈臺)를 굳이 풀이하면 ‘등을 올려 놓는 받침’일 것이다. 영어로도 ‘lighthouse’이니 어설프게 해석해 보자면 ‘불빛을 내는 집’ 정도. 하지만 기자의 기억에 남아 있는 단어는 ‘guiding light’다. 영어 공부한답시고 AFKN를 보던 시절에 시청한 드라마 ‘guiding light’. 드라마 내용과 등대의 상관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것은 언제나 번쩍이는 등대였다. 왠지 ‘인도하는 불빛’을 등대의 제대로 된 정의라고 여기고 싶다. 운치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기대고 싶은 마음이라고나 할까. 인생에 있어서 누구에게나 방황하는 시절은 있게 마련이다. 방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책이 될 수도 있고, 종교나 친구일 수도 있다. 이러한 등대 같은 존재가 하나라도 있다면 복 받은 일. 마음속의 등대를 그리며 망망대해에 던져진 한 조각 배가 되어 현실 속의 등대를 찾아 나섰다. 푸른 바다, 파란 하늘, 대나무, 하얀 등대 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나가 영주에서 36번으로 갈아타고 울진에 도착. 7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가 죽변 이정표를 따라 나가면 죽변면에 도착한다. 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방파제 도달하기 전 좌회전, 언덕배기로 올라가면 죽변 등대가 나온다. 죽변 등대는 높이 약 16m의 팔각형 콘크리트 구조물로 1910년 완공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석유등을 켜다가 나중에 전등으로 바뀌었다. 20초마다 조명이 돌면서 35km 거리까지 빛을 보내고 있다. 지금의 자리는 신라 진흥왕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성을 쌓고 봉수대 역할을 한 곳. 1904년 러·일전쟁 때는 해상 감시용 망루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지리적 특성은 고스란히 등대로 이어져 동해바다의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지중해의 푸른 바다에나 어울릴 법한 새하얀 구조물은 도화지 같은 새파란 하늘에 선명한 라인을 그리며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등대가 있는 언덕은 빽빽한 대나무로 가득하다. 마을이름에 대나무 ‘竹’(죽)자가 들어간 것이 괜한 것이 아닐 정도로 촘촘하게 우거져 있다. 대나무에 요새처럼 둘러싸여 있는 등대는 보는 위치에 따라 당당하게, 때로는 수줍어하듯 고개를 빠끔히 내민 채 뱃사람들의 무사귀환을 돕고 있다. 등대 아래쪽으로 펼쳐진 대가실 해변은 하얗게 부서지는 푸른 파도와 파란 하늘, 양옆을 감싸고 있는 언덕배기와 소나무숲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하고 있다. 이곳은 얼마 전 드라마의 무대가 되었던 곳으로, 교회와 집으로 이루어진 세트장이 자리 잡고 있다. 드라마 촬영지로 떴다 하면 시끌벅적하기 일쑤지만 이곳은 조용하기 그지없고, 여전히 때 묻지 않은 순박함을 간직하고 있다.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등대 저편으로 보이는 또 다른 언덕에는 드라마 촬영을 위해 지어 놓은 가짜 등대가 서 있다. 세상사를 초월한 듯 초점 없는 눈으로 수평선만을 바라보는 가짜 등대. 본연의 임무를 잊은 채 그저 우두커니 서 있는 가짜 등대를 보는 진짜 등대의 마음도 복잡하리라. 쉴 새 없이 밤새 불을 밝히는 자신의 운명과 비교해 시샘을 느낄까. 자신보다 못한 존재에 대한 우월감으로 한껏 콧대를 세우고 있을까. 아니면 외로움을 달래 주는 벗과 같은 사랑스런 존재로 여기고 있을까. 등대가 있기에 우리는 바다로 나간다 대게를 주로 잡는다는 죽변항은 왠지 모를 한가함이 감돈다. 아직은 대게 철이 끝나지 않았지만 정화 작업기간이라 대게 잡기를 중단한 상태. 항구의 활기참이 잠시 잦아졌어도 기다란 방파제 끝에는 위치를 알리는 붉은색과 흰색 등대가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해는 이미 지고, 흐린 노을마저 어스름에 묻혀 버리는 저녁 한때. 들어오는 배는 거의 없건만 등대는 연신 불빛을 번쩍거리고 있다. 수호신처럼 파도를 잔잔하게 만드는 마력이 등대에 숨어 있는 것일까. 방파제 너머로는 철썩거리며 파도가 넘실대지만 안쪽으로는 고요만이 흐르고 있다. 한 귀로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다른 귀로 느껴지는 고요한 정적은 현실과 이상의 갈림길마냥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그 갈림길에서 등대의 불빛마저 없었다면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밤하늘만 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920번 해안도로 옆의 푸른 바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 있을 것만 같은 이상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마음속에 끓어오른다. 이러한 동경 또한 이상의 세계에서 문득 현실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칠 때, 돌아올 수 있도록 불을 밝혀 주는 등대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글 | 임유신 사진 | 박창완
통영 바다에 부딪친 햇살, 해저터널에 스미다 2005-06-15
통영에서는하늘이 바다를 물들이지 않고 바다가 하늘을 물들인다. 바다가 푸른 날은 하늘도 푸르고, 바다가 흐린 날은 하늘도 흐리다. 통영에서는 바다가 하루의 일기를 결정한다. 그런데 바다는 나서는 법이 없다. 너무 고요하고 잔잔해 호수이거나 강이 아닌지 착각할 정도이다. 시인 정지용은 바다를 표현하는 우리말은 경탄음 ‘아아’가 겹쳐 세계 어느 나라 말보다 크고 넓은 것을 가리키는 맛이 난다고 말했다. 우미(うみ )니 씨(sea) 따위의 말은 바다 전체보다 바다에 뜬 섬이나 배 하나를 가리키는 말쯤밖에 안 들린다는 것이다. 오래 전 한때 이 바다가 피로 물들었다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혈염산하(血染山河). 적의 피로 이 바다를 물들이겠다는 이순신 장군의 칼에 새겨진 그 글귀의 뜻을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 그 차디차고 단호한 결의, 그리고 심연처럼 깊은 고독을 생각한다. 이 잔잔하고 평온한 바다에서 다시금 그를 떠올리게 됨은 아직 그 ‘역사’에서 우리가 자유롭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청마거리 지나 세병관 가는 길, 그리고 충렬사 앞 명정 몇 해 전인가 서울에서 통영을 갔을 때는 정말 아득히 멀다는 느낌이었다. 아마 일곱 시간은 넘게 걸렸던 기억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 2002년 대전-진주간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5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되었다. 통영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린 것은 서울강남터미널을 떠난 지 4시간 30분 만이었다. 통영은 지난 1955년 9월 1일 통영읍이 충무시로 승격되면서 통영군과 분리되었고, 다시 95년 1월 1일 충무시와 통영군을 합쳐 통영시가 되었다. 충무라는 이름은 시호 충무공에서 따왔고, 통영은 통제영의 줄임말이니 어떻든 시의 이름에서부터 이순신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닌 셈이다. 통영 앞바다가 바로 한산대첩의 현장이며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에 잠긴’ 그 한산섬이 바로 이웃해 있음이다. 또한 통영은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을 비롯해, 시인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극작가 유치진, 그리고 토지의 작가 박경리, 화가 전혁림 등 수많은 예술인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골목을 걷다가 문득 만나게 되는 윤이상거리며 청마거리 등이 반갑다. 한 지역에서 이토록 많은 예술가들이 난 것은 역시 바다 때문인가. 통영에서의 첫 발걸음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강구안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면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저편으로 언덕 위 하얀집들이 다닥다닥 이어져 그야말로 이국적인 정취에 빠져들게 된다.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주홍, 파랑 지붕에 하얀색 담장이 있는 집들 사이 골목으로 올라가 본다. 마당에 야자수가 있는 집들이 눈에 많이 띈다. 그런데 가운데쯤 집들이 텅 비어 있다. 이유인즉 소방도로를 내기 위해 모두 철거할 집들이란다. 속은 비어 이미 폐가가 되었는데 예산부족 탓인지 공사가 빨리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동네사람이 말한다. 글쎄, 소방도로는 필요하고 또 어떤 모습이 될지 모르지만 왠지 특유의 풍경이 사라질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강구안에는 또 유명한 충무김밥집들이 늘어서 있고, 남망산조각공원에 올라 주변 경치를 조망하기도 좋다.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곳에 자리한 공원 휴게소 테이블에 앉아 바라보는 전망이 일품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중앙시장 뒤편에서 세병관 가는 길에 만나는 청마거리에서 시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니 바로‘통영중앙우체국’이다. ‘행복’이란 시에 나오는 그 우체국이다. 여느 우체국과 다를 바 없는 외형이지만 그런 사연을 알고 보면 왠지 남달라 보인다. 시에 나오는 연정의 대상은 시조시인으로 유명한 이영도. 그녀는 청마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지만 청마는 20여 년간 5천 통의 연서를 써 보냈으니, 그 사랑, 참 애틋하다. 세병관은 1604년 한산도에 있던 삼도수군통제영(제1대 통제사가 이순신)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통제영성과 관아를 지었으나 모두 스러지고 유일하게 남은 객사 건물이다. 주변 일대는 통제영 복원공사가 진행중이고, 이를 위해 세병관 뒤편에 있는 통영초등학교도 이전키로 했다. 교정에 서 있는 이순신 동상이 세병관 기둥 사이로 보인다. 매표소에서 만난 이에 따르면 세병관이 일제 때 일본인 자녀들을 위한 초등학교 건물로 쓰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나마 온전한 모습을 보관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세병관 입구 은목서 앞에 서 있는 두 그루의 산호수(아왜나무)는 그때 일본인들이 자기들 표식으로 심었다고 한다. 세병관을 나와 오르막 차도를 따라 조금 걸으면 이순신의 사당이 있는 충렬사가 나온다. 충렬사가 자리한 사거리 길 건너편에는 충렬사 제향에 쓸 목적으로 판 우물 명정샘이 있다. 명정샘 앞에 동판으로 만든 원고지 한 장이 눈에 띄는데,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1962년)에서 이곳 명정샘을 묘사한 대목이다. 그 어떤 문학비보다 문학적인 비석이다. 그 풍경이 밟힐 듯 눈에 선해 여기 옮긴다. ‘충렬사에 이르는 길 양켠에는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줄을 지어 서 있고 아지랑이가 감도는 봄날 핏빛같은 꽃을 피운다. 그 길 연변에 명정골 우물이 부부처럼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음력 이월 풍신제를 올릴 무렵이면 고을안의 젊은 각시, 처녀들이 정화수를 길어내느라고 밤이 지새도록 지분내음을 풍기며 득실거린다.’ 국내 하나뿐인 해저터널, 소매물도 등대섬을 보다 통영에서만 볼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바로 해저터널일 것이다. 물론 지금은 더 이상 큰 관심거리가 아니지만 1927년 개통 당시에는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로서 매우 경이로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차들의 통행이 금지되고, 사람들만 왕래하는 모습인데 그래도 바다 속을 걸어간다 생각하면 신기한 느낌이다. 소문만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실망을 하든 이곳에서는 그냥 일상의 풍경에 다름 아니다. 통영반도와 미륵도를 연결하는 해저터널은 1967년 충무교가 완공되기 전까지 주요한 교통로 구실을 했다. 해저터널을 지나 밖으로 나와서 다시 돌아올 때 충무교 위를 걸어서오면 해저터널의 위치를 정확히 가늠할 수 있다. 충무교에서 내려다보는 바다가 바로 ‘판데목’이라 불린 곳으로 한산대첩 때 쫓기던 왜선들이 물길인줄 알고 잘못 들어왔다가 무수히 주검으로 사라진 곳이다. 일제가 이곳에 해저터널을 뚫은 이유도 왜군들이 많이 죽은 지점 위로 걸어다니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다. 충무교 건너편으로 보이는 신식다리가 바로 통영대교이고, 이쪽 물길 일대가 통영운하이다. 길이 1천420m, 너비 55m, 수심 3m에 이르는 통영운하는 부산에서 여수간 남해 내항로(內航路)의 요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통영대교는 특히 밤에 보는 야경이 운하의 정취와 어울려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 통영이나 남해 부근에 와서 한려수도를 가까이 볼 수 있다면 커다란 덤일 것이다. 사실 섬에 간다는 것은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엄두를 내기 어렵다. 그래서 편도 15분 거리의 한산섬에 가 볼 요량으로 도남동 유람선터미널로 향했다. 사람이 모여야만 가는 부정기선이라 한산섬 가는 배는 영 떠날 줄을 모른다. 그런데 매물도 가는 배편은 사람이 제법 많다. 매물도를 돌아 한산섬에 1시간 머무르는 코스로 도합 3시간 10분 코스다. 일정이 조금 지체되지만 그 배를 타기로 한다. 일기예보에서 흔히 말하는 앞바다를 넘어 먼바다로 나간다. 비진도를 비롯해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지나는 동안에도 먼바다는 평온했다. 배의 선장은 이런 날씨도 드물다고 말하고 운이 좋은 승객들이라고 했다. 간간이 돌고래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50분 남짓 걸려 매물도에 도착했다. 배는 익숙한 솜씨로 기암절벽이 잘 보이도록 주변을 천천히 돌았다. 등대섬 소매물도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송림 우거진 아늑한 섬 한산도는 ‘수루’가 있는 제승당을 돌아보는 것이 전부다. 누군가 ‘세 번쯤은 올 만한 곳’이라 했는데 맞는 말 같다. 겨울보다는 신록 우거진 이맘때가 좋겠다. 그래도 에메랄드빛보다 더 짙은 바다는 실컷 눈에 담았다. 통영의 바다는 평온하면서도 깊고 넓다. 바다를 덮은 하늘까지 그 잔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Z
정선선 간이역, 쓸쓸한 이별의 노래 별어곡에서 구절.. 2005-05-16
이역 하면 왠지 정겨운 느낌이 밀려온다. 간이역은 역장이 없는 역을 말한다. 역무원이 있으면 배치 간이역, 역무원이 없으면 무배치 간이역이라 부른다. 시속 300km를 넘나드는 고속철도가 다니는 경부선에도 곳곳에 간이역은 있다. 대부분이 간이역으로 이루어진 가은선, 북평선, 옥구선, 정선선 등은 가보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이름조차 낯설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비둘기호 열차가 다녔다는 정선선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끌렸다. 태백선 증산역에서 갈라지는 정선선은 이제 흔적만 남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역할이 미미하기 이를 데 없다. 광산이 붐을 이루던 1960년대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생긴 정선선. 별어곡역에서 구절리역에 이르는 6개의 역은 언제 그런 일이 있어냐는 듯 황량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철길도 폐광과 함께 스러져 가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진부에서 빠져 59번 국도를 타고 계속 내려가면 강변 따라 길 따라 나란히 놓여 있는 철길과 마주치게 된다. 그 철길이 바로 정선선이다. 강원도 정선. 한 때 탄광촌으로 활기 가득했던 이 일대는 폐광이 되어 한풀 꺾이다 못해 축 가라앉아 보인다. 손에 쥐어든 정선 관광지도를 보면 구경할 곳이 많은데 제철이 아닌 탓인지 가는 곳마다 한가롭다. 증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처음으로 들르는 곳은 이름도 독특한 별어곡(鱉魚谷)역. 한자표기는 분명 아닌데 이별노래를 떠오르게 한다. 역무원 아저씨라도 만나 볼 요량으로 역을 찾았지만 이미 폐쇄되어 사람의 온기를 찾을 수 없다. 3월 무배치 간이역으로 바뀌었다는 안내문만이 덩그러니 붙어 있다. 정선선은 하루 세 차례 객차 1량짜리 꼬마열차(정식명칭은 정선아리랑 유람열차라고 써 있다)가 다니고 있다. 차표 회수함에 차표 한두 장이 뒹군 것으로 봐서 사람들이 타기는 하나 보다. 텅 빈 역사는 붙잡는 사람이 없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 역무원이 없어도 관리는 하는지 방치되어 있지는 않다. 베이지색의 건물과 기와지붕이 부조화스럽지만 정겨움이 배어 있다. 뒤에는 높다란 산이 가로막고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마저 돈다. 아주머니 한 분이 해질녘 막차를 기다리는 듯 플랫폼에 서 있다. 기차가 도착하니 기관사 에게 물건을 맡기더니 종종걸음으로 사라져 버린다. 선평역은 둔덕에 자리 잡고 있어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다. 선평역 또한 별어곡역과 함께 무배치역으로 바뀌었다. 선평(仙坪)은 맑은 샘물이 마을 가운데서 솟아나고 경치가 좋아 신선들이 모여 놀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저 멀리 높은 산과 그 밑으로 말려 들어가듯 휘어지는 철길을 넘어가면 신선이 사는 곳이 나올 것만 같다. 텅 빈 역사에는 여객 운임표와 배차 시간표만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일하게 역무원이 있는 정선역을 지나면 역시 아무도 없는 나전역이 나온다. 어느 여자대학 미술과 학생들이 그렸다는 도깨비 그림은 화암동굴의 캐릭터란다. 역사 입구 양옆에 달려 있는 자율방범대와 청년회 현판은 기차역으로의 역할을 다했다는 뜻으로 들린다. 알록달록한 도깨비 그림과 나무 현판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다. 유람열차의 종점인 아우라지역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우라지는 오대산에서 발원해 흐르는 성천과 임계 중봉산에서 발원하는 골지천이 합류해 어우러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아우라지역부터 정선선의 종점인 구절리역까지는 관광지화 작업을 거쳐 기차 대신 레일바이크가 다닐 예정이다. 역 공사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젠 들을 수 없는 구절리역의 기적 소리 아우라지에서 415번 도로로 갈아타고 쪽 올라가면 정선선의 마지막 역인 구절리역이 나온다. 유람열차도 아우라지역이 종점이어서 아우라지-구절리 구간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교차로의 차단기는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다시금 차단기가 내려올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임무에서 해방된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인지 그저 부는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구절리역은 폐역이 된 지 오래다. 구절리역도 아우라지역과 마찬가지로 관광지화 공사가 한창이다. 무궁화 열차 두 칸은 카페로 만들려는 듯 개조작업이 진행 중이다. 역에 다다르면 철길은 세 갈래로 갈라진다. 외롭게 서 있는 선로 변경기는 세 갈래 인생길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듯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역사를 지나면 철길은 다시금 합쳐진다. 마치 인생을 어떻게 살든 막판에는 한 길밖에 없다는 인생무상의 외침 같다. 합쳐진 후 종착점까지 쓸쓸한 풍경이 계속된다. 누군가 종착점에 올려놓은 돌탑만이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하다. 아직도 저 멀리 갈 곳은 남아 있는 것만 같은데……. 글 | 임유신 사진 | 이명재
상주(尙州) 바람 앞의 자전거 도시 2005-05-16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 보인다…….(중략) 길가에 서 있는 자전거를 보면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는 황동규의 시가 떠오른다. 이 시구에는 어떤 중독성이 있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4개의 바퀴를 발진시키는 자동차보다 두 발로 저어 2개의 바퀴를 굴리는 자전거가 좀더 땀 냄새가 나는 것이 사실이다. 때로 자동차를 두고 자전거를 타고 싶어지는 이유다. 두 발로 바퀴를 굴리는 일은 짐짓 노동의 행위가 연상되기도 한다. 본질은 그럴지 몰라도 자전거의 가장 큰 덕목은 바로 낭만일 것이다. 학창시절,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하이킹’이란 용어가 그렇듯 또는 최인호의 소설 ‘겨울나그네’에서 자전거에 부딪치는 것으로 시작되는 치명적인 사랑처럼……. 그러고 보면 얼마나 많은 소설, 영화,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인가. 시원스레 뚫린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길. 고속버스에 앉아 떠오르는 자전거에 대한 단상이 자연스럽다. 바로 자전거의 도시, 상주에 가는 길이므로. 박물관에서 자전거를 타고 남장사에 오르다 전주와 나주의 앞 글자를 따서 전라도가 되었듯이 경상도 또한 경주와 상주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그만큼 상주라는 지역이 유서 깊고 비중 있는 곳이었다는 얘기다. 예로부터 상주는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알려져 왔다. 세 가지 흰 것이란 바로 쌀, 목화, 누에고치를 일컬었는데 해방 후부터는 목화 자리를 곶감이 대신 차지하기 시작했다. 상주는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데다 서쪽과 북쪽이 높고 동쪽과 남쪽이 낮은 지형 덕분에 농사철에 볕이 잘 들어 곡식이 풍성했다. 기름진 땅에서 나는 쌀은 진상품이었고 아직도 그 명성을 잇고 있다. 이런 지형적인 조건에다 옛날에는 금과 무쇠도 난 모양이어서 삼국이 자주 싸움을 벌였다. 속리산 가까이 있는 견훤산성 등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누에치기의 전통 또한 무척 오래 되었다고 전해온다. 고령가야 터였다는 함창읍 증촌리는 신라 시대부터 명주 산지로 이름난 곳이라 한다. 그러나 값싼 화학섬유가 쏟아져 나옴에 따라 힘들게 무명실을 뽑는 모습은 더 이상 보기 어려워졌다. 누에를 치기는 하지만 대부분 번데기 단계에서 팔려나간다. 요즘은 동충하초나 누에가루로 생산되어 많이 팔린다. 최근에는 이 삼백에 하나를 더해 사백의 고장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하나 더 흰 것이란 자전거의 하얀 바큇살을 이름이다. 조금 억지스런 느낌도 있으나 그만큼 자전거는 최근의 상주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확실히 자리 잡은 셈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전거박물관을 세운 것도 그렇거니와 온 동네에 곶감이 내 걸리는 10월쯤 열리는 자전거축제가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전국에 자전거도시라는 이름을 알린 것이다. 자전거축제가 열릴 시기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자전거를 타고 나와 진풍경을 이룬다하니 그야말로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상주 땅에 들어서 먼저 자전거박물관을 찾았다. 두 개의 바퀴를 형상화한 박물관 건물은 왜소해 보였으나 안으로 들어서면 자전거 역사 초창기를 수놓았던 진귀한 자전거를 만날 수 있다. 최초의 페달식 자전거라는 K. 맥밀런 자전거나 드라이지네 등은 마치 나무 조각 같은 느낌으로 자전거시대의 향수를 맛보게 해준다. 그밖에 진기한 자전거를 많이 갖춘 수고로움은 알겠으나 좀더 규모 있는 시설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가까이 있는 남장사에 가기로 한다. 박물관에서는 보통 1시간을 기준으로 무상으로 빌려주는데 사람이 많지 않은 평일에는 조금 더 오래 타도 괜찮다. 보이는 길은 평지에 가깝지만 은근한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가는 도중 음료수를 사먹으러 들어간 구멍가게의 주인이 “남장사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려면 걸어서 가는 것보다 두 배는 힘들 것”이라고 귀띔한다. 대수롭게 본 것이 화근인 셈이었는데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은 밀면서 또 타면서 간다. 힘은 들지만 모처럼 하이킹하는 기분을 즐긴다. 무엇보다 차들의 통행이 거의 없어 좋다. 가는 길에 남장동이란 마을을 지나는데 맛 좋은 ‘상주 곶감’의 주요 산지가 바로 이곳이다. 이윽고 나타난 남장사는 아담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절이었다. 작지만 무게감이 있고 별로 꾸밈이 없는 경내가 마음에 든다. 신라시대에 세워진 고찰로 남장동을 사하촌으로 두었을 만큼 예전에는 절 경역이 넓었다고 한다. 입구에 새로 지은 건물도 단청을 칠하지 않고 나뭇결 그대로 두어 오래된 건물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극락보전 뒤에 한 그루 서 있는 목련이 활짝 피었다. 그런데 왜 목련을 보면 슬픈 생각이 드는 걸까. 목련은 여러 그루가 함께 있는 것을 별로 본 적이 없다. 여기 저기 외따로 혼자 서 있는 까닭에 외로워 보이는 것일까. 화사한 꽃잎이 동백꽃보다 더 처연하게 빨리 지고 만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내려가는 길은 자전거 페달을 거의 밟지 않아도 될 만큼 쉽고 상쾌했다. 오를 때 멀게만 느껴졌던 길은 너무 아쉬울 정도로 짧았다. 자전거 붐은 자동차에 밀려 사라지는 것일까 상주 함창 공갈못에 /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 줄밥 내 따줄게 / 이내 품에 잠자주소 잠자기는 어렵잖소 / 연밥 따기 늦어가오……. 옛날부터 입으로 전해져 오는 구전가요 가운데 가장 유명한 노래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상주 함창 공갈못 노래’일 것이다. 어떤 노래는 입에 한번 흥얼거리면 하루 온종일 따라붙는 마법에 걸리는데 이 노래 또한 상주 땅을 다니는 내내 달라붙었다. 그 노래를 기억하는 까닭에 시외버스를 타고 공갈못에 가보기로 한다. 양정리에 내려보니 절경이었다는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공갈못 옛터’ 비와 조그맣게 남은 저수지엔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연대만 무성하다. 한쪽에는 공갈못 복원계획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곳 마을사람의 말에 따르면 예산부족을 핑계로 계속 미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시골과 함께 있는 도시의 동선은 대개 시외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행선지를 바꿀 때는 다시 터미널로 나와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동 용포 선산 방면이라 쓰인 버스를 타고 오래된 가옥 양진당이며 오작당이 있는 낙동면 방면으로 나가본다. 너른 들판을 지나는 길 철길 앞에서 버스가 신호대기에 걸려 멈춰 서고 부산행 무궁화열차가 지나간다. 양진당은 복원공사 중인 모습인데 거의 끝났다고 대문 앞에 선 작업자가 말했다. 임진왜란 때 상주 땅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던 조정(1555~1636년) 선생의 살림집 안채이다. 좁은 툇마루가 복도처럼 이어진 안채에 들어서자 마치 요새 같은 방들의 구조가 독특하다. 길 건너편에 있는 오작당은 원래 양진당에 속했던 건물이나 이쪽으로 옮겨왔다. 지금은 11대손이 살고 있는 여염집이다. 인적 드문 조용한 마을에 트럭이 하나 나타나더니 두 사람이 내려 거대한 전봇대를 하나 쓱 뽑아 싣고는 이내 사라진다. 평화로움을 깨는 조용한 사건은 너무 빨리 끝나버렸다. 하늘은 건조하다. 먼지는 쉽게 가라앉지 못하고 지상을 떠돈다. 다시 시내로 나와 시민공원이 있는 제방으로 나간다. 북천을 따라 자전거전용도로가 이어진 길이다.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벚꽃나무 사이로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모습이 보인다. 상주는 확실히 다른 어느 지역보다 자전거가 많으며 생활 깊숙이 자리해 있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분명 과도기로 보인다. 자칫하면 자전거 도시라는 명성이 퇴색하지 않을까 싶다. 등하교길에 장관을 이룬다는 학생들의 자전거 행렬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다만 드문드문 지나갈 뿐이었다. 택시기사는 이처럼 자전거가 눈에 띄게 줄어든 이유가 외곽순환도로가 뚫리고 자동차가 많아지면서부터라고 말했다. 실제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학생들이 시내로 진입할 때는 위태로워 보였다. 시내 한복판의 어떤 자전거도로는 대부분 노점상이 차지하고 있었다. 결국 자동차에 밀려 자전거가 줄어드는가 생각하면 씁쓸한 기분이다. 자전거 도시로 상징되는 건강한 생명력의 도시 이미지는 저절로 지켜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도시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도시에 다가서지 못하고 언저리를 돌며 도시미학을 찾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해남·완도 남도 들녘에서 들려오는 봄 오는 소리 2005-04-21
몸과 맘이 따로 놀 듯 입춘이란 날은 봄이 오기 한참 전에 잡혀 있는 것일까. 입춘이 한 달여나 지나도 매서운 추위가 가실 줄 모르니 봄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올 겨울은 따뜻할 것이라는 전망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던 겨울의 초입, 서둘러 찾아올 봄에 대한 기대를 키운 따뜻한 겨울의 배신이 그리움을 더욱 키웠는지도 모른다. 추운 겨울의 잔상이 가시지 않았지만 햇살에 조금씩 따사로워지던 3월초, 봄이 가장 먼저 찾아온다는 말만 듣고 무작정 남쪽으로 향했다. 추위가 봄을 시샘하는 것인지 봄이 사람들의 기대에 콧대를 세우는 것인지 남도에도 봄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곳곳에 움트는 따사로운 기운은 존재를 확인한 안도감이 되어 가슴속에 남았다. 이국적인 풍경, 신성리 들녘 푸른 보리밭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목포까지 내려간 후 2번 국도를 따라 강진 방면으로 가다 보면 해남으로 이어지는 13번 국도를 만난다. 국도 주변으로는 막바지에 다다른 배추 수확이 한창이고, 씨 뿌리기를 기다리는 붉은 황토밭이 곳곳에 펼쳐진다. 아지랑이와 함께 피어나는 흙냄새를 기대했건만 언 땅이 녹으려면 아직 멀었는지 어렴풋한 냄새만 기억 속에서 피어오른다. 13번 국도를 타고 해남 쪽으로 쭉 내려가다 보면 좌우로 너른 들녘이 펼쳐진다. 지금까지 타고 왔던 길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특히 계곡면 신성리 일대를 가득 메운 푸른 보리밭은 신선하다 못해 이국적이기까지 하다. 커다란 산을 뒤로 한 채 넓디 넓은 푸르른 보리밭이 펼쳐져 있고 그 옆에는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시골풍경은 ‘전형적인’이란 말보다는 ‘소박한’이란 단어를 붙여주고 싶다. 새벽녘에 찾아간 신성리의 보리밭에는 ‘평온함’이란 단어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을 찾기 힘들 정도로 고즈넉한 기운이 감돈다. 새벽녘 볼을 얼얼하게 할 정도로 바람은 찬데도 보리 잎새는 푸르름을 간직한 채 수그릴 줄을 모른다. 성질이 급한 것일까 아니면 고통을 겪어야 성숙한다는 것을 미리 깨달은 것일까. 화사함을 자랑하는 꽃보다 더 어여쁘게 보이는 이유는 황량함에 지쳐 버린 마음속에 푸른 감성을 먼저 심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 13번 국도를 타고 위로 올라가다 보면 월출산국립공원에 다다르게 된다. 병풍 같은 월출산의 수려한 풍광 밑으로 차밭이 펼쳐진다. 바로 월출산 강진다원으로, 녹차 만드는 회사에서 경작하는 곳. 가지런하게 정렬된 차나무는 올이 굵은 실로 짠 스웨터처럼 산자락을 덮고 있다. 손이라도 댔다가는 금방 흐트러질 것만 같은 모습. 인공적이긴 하지만 대자연과 어우러진 풍광이 색다른 느낌을 준다. 아직 새순이 돋지 않은 차나무는 겨우내 풍파 속에 푸르름은 사라졌지만 잎의 모양새만큼은 봄날의 영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차밭에서 내려오는 길, 무위사 앞 논밭둑에서 쥐불 놓기가 한창이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둑에 불을 놓고 논밭으로 번지기 전에 재빨리 끈다. 시뻘건 불길이 사방에 넘쳐나고 들녘이 매캐한 연기로 가득하다. 누렇던 논둑은 어느새 새까만 얼룩을 남기며 흉한 몰골을 드러낸다. 봄을 맞이하기 위한 통과의례치고는 너무 혹독한 의식이다. 이러한 혹독함은 흉한 상처를 아물게 할 봄의 따뜻한 마음을 좀더 빨리 불러내고자 하는 바람이기에 너그러이 용서될 수 있을 것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한 아저씨가 작업하는 분들에게 캔 커피를 돌리다 사진 찍고 있는 사진기자에게도 하나 건넨다. “전 아닌데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슨 상관있냐는 듯 씩 웃으며 “그냥 받아요”라며 건네는 손길이 정겹기만 하다. 갔던 길을 되돌아 13번 국도를 타고 완도로 내려갔다. 완도교를 지나 우회전한 다음 쭉 내려가다 수목원 표지를 보고 좌회전해서 들어가면 완도수목원에 다다른다. 완도수목원은 난대림을 대표하는 수종인 동백나무, 붉가시나무, 후박나무, 황칠나무 등 상록활엽 자생수림이 2천여ha에 분포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천연난대식물의 자생지인 지역특색을 살린 난대수목원이다. 동백 군락지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건만 동백꽃 구경이 쉽지가 않다. 수목원의 근사한 정취는 동백에 대한 미련을 금세 잊게 해주었다. 수목원 중턱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는 동안 계속되는 푸르름은 남도에 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육지와 섬, 바다 그리고 수목원을 가득 메운 나무들. 녹음이 짙은 봄날의 그것에는 미칠 수는 없겠지만 그에 못지않은 멋이 서려 있다. 봄을 찾아 내려간 남도기행은 기대감만 잔뜩 키운 채 끝났다. 햇살은 따사로웠지만 대지는 아직 봄을 맞이할 채비를 끝내지 않았다. 좀 있으면 화사하게 꽃 피우고 푸른 새순이 돋아나는 본격적인 봄이 시작될 것이다. 한두 달 뒤에 다시 들르고 싶다는 바람이 강하게 솟구쳐 올랐다. 이런 바람도 태동하는 봄의 기운을 미리 느꼈기에 가질 수 있는 것이리라. 글 | 임유신 사진 | 임근재
김제(金堤) 들녘의 불길, 그리고 지평선을 보다 2005-04-18
이른 봄의들녘은 무한정 쓸쓸했다. 아직 푸른 싹을 피어내지 못한 땅은 황량하기만 했고 존재는 이유를 드러내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길은 어디선가로 와서 또 어딘 가로 이어지는데, 문득 어디로 가야하나 흔한 산도 하나 보이지 않는 이곳은……. 고개를 돌리면 어느 방향에서나 산이 보이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 바로 김제에 온 것이다. 이곳 김제에 온 날, 전국은 먹구름에 휩싸였다. 라디오에서는 서울의 낮이 칠흑처럼 어둡다고 했다. 그런 날의 분위기는 몇 번 경험한 적이 있다. 대낮이지만 자동차들이 일제히 헤드라이트를 켜는, 왠지 술 한잔 하고싶어지는 그런 분위기에 대해 DJ는 자꾸만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먼 나라에서 고국의 방송을 듣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만 들렸다. 군산까지 올 때만 해도 어두웠던 하늘은 김제에 닿자 푸른 하늘로 변했다. 마치 차트를 넘기듯 하늘의 색과 풍경은 다른 장면으로 넘어갔다. 다행한 일이지만 왠지 이상한 예감이 드는 것은 왜였을까. 징게맹게 외배미들 지나 금산사 가는 길 인구 11만 명을 조금 웃도는 김제는 도시보다는 농촌의 이미지가 더 많다. 89년 김제군의 일부가 시로 승격되었고, 95년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되어 지금에 이른다. 도시의 골격을 갖춘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익산, 군산, 옥구, 전주와 이웃한 김제는 이쪽 전북지방이 대개 그렇듯 백제의 유적과 미륵신앙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서쪽으로 바다와 면해 있는 한편으로 드넓은 평야가 펼쳐지는가 하면 동쪽으로 노령산맥의 줄기인 높이 794m의 모악산(母岳山)이 솟아 있어 금산사, 귀신사 등 여러 절을 거느리고 있다. 말하자면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을 만경강과 동진강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들 하천연안에 김제평야, 만경평야 등의 넓은 평야가 발달해 호남평야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둘을 합쳐 김만평야라고 부르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징게맹게 외배미들’이란 바로 김제, 만경평야의 너른 들을 뜻한다. 들에는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뭉게구름으로 피어나는 하얀 연기와 더불어 춤을 추는 불꽃이 이제 긴 겨울을 보내고 들에 봄을 재촉하고 있었다. 해마다 풍요를 기원하는 이 너른 들은 한때 수탈의 대상지였다. 1899년 군산항이 개항한 것도 벚꽃터널로 유명한 전군가도가 열린 것도 모두 김제들녘의 곡식을 수탈해가기 위해 일제가 만든 것이었다. 금산사는 호남고속도로 김제IC 아래 금산사 IC가 따로 있을 만큼 이름난 절이다. 금산사는 스스로 미륵을 자처했던 후백제의 왕 견훤이 말년에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아들들에게 유폐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 유명한 절집이 대개 그렇듯 금산사 초입에는 식당가가 꽤 큰 규모로 자리하고 눈썰매장까지 들어서 어지럽기만 하다. 그래도 절에 오르면 보이지 않겠지 하고 내처 올라간다. 관리소에서 입장료를 내고 몇 발자국 오르자 떨어져 나간 석성의 일부가 나타난다. 다른 흔적은 모두 없어졌으나 홍예문의 형태는 온전히 남아 있는데, 견훤이 쌓았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까닭에 견훤석성이라 불린다. 이어서 나타나는 거대한 아름드리 나무의 일주문은 요사이 새로 만든 듯하다. 어디서 저렇게 큰 나무를 구해왔을까.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 앞에 보이는 건물이 보제루인데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다. 내용인즉 KBS 등 방송국 중개소의 모악산 정상 불법점유를 규탄한다는 것으로 빨리 철거하라는 것이다. 약간 고개를 숙이는 자세로 보제루 아래로 난 계단을 오르면 탁 트인 마당이 나타나며 오른쪽으로 금산사의 상징인 3층 미륵전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낯익은 풍경인데 만수산 무량사와 비슷한 모양의 가람 때문이다. 백제계 건물의 공통점과 주변 분위기도 비슷한데 차이라면 무량사는 2층이라는 점. 아무튼 겉에서 보면 3층이지만 안에는 하나로 탁 트여 있고 미륵삼존입불이 모셔져 있다. 경내에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보리수나무 옆으로 육각다층석탑이 보인다. 화강암이 아닌 점판암으로 만들어 특이하고, 언뜻 보기에 기와를 쌓아놓은 듯 질박한 모습이지만 몸돌마다 새긴 불상 등 장식적인 요소가 많다. 미륵전 옆으로 높은 대가 있는데 이 일대를 방등계단이라 부른다. 부처의 사리를 모신 부도와 오층석탑, 사천왕상을 비롯한 돌로 만든 인물상들이 늘어서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여기서 보는 미륵전이며 전체적인 분위기가 가장 좋다. 다시 마당 왼쪽 대장전 쪽으로 천천히 걷다가 그 뒤로 대숲 가까이 다가서니 바람에 서걱대는 대숲소리가 풍경소리와 어울려 파도처럼 몰려온다. 귀신사는 그 이름이 주는 어감이 별로 좋지 않지만 돌아올 귀(歸), 믿을 신(信) 자를 쓴다. 금산사에서 3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가볍게 둘러볼 수 있다. 청도 마을회관 옆 골목으로 따라 여러 채의 집들을 지나가면 귀신사를 알리는 나무표지가 나타난다. 그런데 거대한 컨테이너 박스만 보일 뿐 절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대적광전의 보수공사가 그 컨테이너 안에서 진행중인데 쓸만한 것만 남기고 완전히 새로 해체, 복원하는 대공사다. 새로 만들고 나면 옛 모습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괜한 걸음을 했나 돌아서다 아쉬움에 다시 발길을 돌려 돌층계를 오른다. 삼층석탑과 석수가 보인다. 풍경은 적막했다. 오래된 거리, 부용역에 나가 지평선을 보라 너른 평야를 가진 만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가 이곳 김제에 있다는 것 또한 우연한 일이 아니다. 김제 시내에는 많은 저수지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부량면 월승리(月昇里)에는 330년 처음 축조된 벽골제가 있다.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의 배경이 김제인 까닭에 벽골제 기념관의 휑한 주차장 한쪽에 아리랑 문학비가 서 있고 한쪽에는 문학관도 들어서 있다. 옛 수문을 제외하면 스산하기만 한데, 지평선축제가 열리는 가을이면 발 디딜 틈 없이 인파가 모여든다고 한다. 지평선을 조망하는 포인트가 되는 지점인데 황금들녘이 펼쳐지는 가을에 오면 모를까 영 감흥이 없다. 지평선을 보기에는 전봇대가 너무 많고 멀리 낮은 구릉이며 집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망해사에서 일몰을 보려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런데 빗방울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사방은 안개에 포섭되어버렸다. 안개 속에서 가로등은 더 위력적이었다. 안개는 때로 지저분한 풍경을 근사하게 바꿔놓기도 한다. 말 그대로 바다를 볼 수 있는 망해사에 닿았을 때 바다는커녕 요사채도 희미하게 잘 보이지 않았다. 인적도 고양이도 한 마리 없는 분위기가 기묘하게 다가왔다. 안개는 발가락 깊숙이 스며들었다. 만경강은 완주군에서 시작되어 이리시 남쪽을 지나 김제와 익산, 군산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서해로 들어간다. 만경강 물줄기가 바다와 만나는 곳에 심포항이 있는데 바로 망해사 부근이다. 망해사를 나와 심포항에 간다. 안개에 휩싸인 포구는 횟집들의 불빛만이 반짝거렸다. 여기서 바다는 좀 더 잘 보였다. 이런 날씨에도 배를 띄우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밝은 날이면 이곳에서 수평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갯벌도 그 속살을 드러낼 것이다. 진봉반도 끄트머리께 이곳 거전마을의 거전갯벌은 군산에서 김제, 부안에 걸친 새만금 갯벌의 일부이다. 다음날 아침 안개는 개었다. 김제는 시가지나 마을 풍경이 그리 변화가 없는 편이다. 그래서 골목 어귀는 정감 있는 표정을 보여준다. 호남선이 지나는 부용역도 그런 곳 중의 하나이다. 1914년 호남선 개통 당시부터 문을 열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부용역 일대에선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주택이나 김만평야의 쌀이 부려졌던 도정공장이며 창고 등이 많이 남아있다. 벽골제보다 이곳에서 보는 평야며 지평선이 한층 아스라하게 다가온다. 만경강 유역으로 나가본다. 지난 세월 전북 지역 주민들의 삶의 원천이자 생활 공간이었던 만경강은 오늘도 변함없이 물길을 따라 흐르며 평야지대의 젖줄이 되어주고 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두 개의 다리. 1933년에 지어진 만경대교는 노후화로 인한 붕괴위험 때문에 1988년 바로 옆에 새로 건설한 신 만경대교에게 그 역할을 넘겨주었다. 옛 만경대교 위에 드리워진 난간의 그림자 너머로 강에 내려 비치는 빛살과 배들이 보인다. 그리고 갈대숲, 구름 사이로 융단처럼 쏟아지는 햇살이 마치 성화 속의 어떤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만경강 가의 저물 무렵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은 시간 탓으로 돌려야 한다. 어제 저녁에서 밤사이 지독한 안개에 홀렸기 때문일까. 푸른 낮의 기억보다 머릿속에는 자꾸만 안개가 가물거렸다. 무언가 실체가 없는 허상을 본 느낌은 김제에 대한 아스라한 기억을 남기고 꼭 다시 와야한다는 어떤 의무감으로 남았다. 누군가 던져 발 앞에 풀어진 넥타이처럼 길은 그렇게 발 앞으로 다가왔다.
목포(木浦) 목포는 유달산이다 2005-03-31
목포는항구다라는 영화가 있다. 조재현, 차인표라는 배우가 나오는, 그러나 영화의 주무대가 목포라는 것을 빼놓고는 어떤 멋진 풍경이나 감흥을 보여주지 못했다. 괜찮은 배우를 데려다놓고 왜 영화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반면 이난영의 ‘목포는 항구다’라는 노래는 지금 들어도 가슴이 울린다. 그녀의 대표곡인 ‘목포의 눈물’과 함께 1940년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그 노래는 이렇다.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삼학도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똑딱선 운다/ 유달산 잔디 위에 놀던 옛날도/ 동백꽃 쓸어안고 울던 옛날도/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추억의 고향…….’ 어두운 그늘 벗은 항구도시. 더 이상 눈물은 없다 아무튼 ‘목포의 눈물’이 상징하는 것처럼 목포는 오랫동안 어두운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80년대의 시인 문병란이 ‘목포’라는 시에서 ‘더 갈 데 없는 사람들이 와서/동백꽃처럼 타오르다/슬프게 시들어 버리는 곳/항상 술을 마시고 싶은 곳이다/……(중략)/끝끝내 바다로 뛰어들지 못한/목포는 자살보다/술맛이 더 어울리는 곳/술이 취해서 봐도/술이 깨어서 봐도/유달산만 으렁으렁 이빨을 가는구나’라고 했듯이 애잔함을 넘어 어둡고 절망적인 분위기가 배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목포는 이미 오래 전에 삼학도가 육지가 되어버렸듯이 많은 것이 변했다. 변증법적인 변화야 필요한 것이지만 항구의 정취마저 사라진 것은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서해안 고속도로의 종점이자 KTX 호남선 종점으로 목포의 분위기는 이전보다 많이 밝아졌다. 그러나 인구가 좀체 늘지 않고 오히려 조금씩 빠지고 있다는 데 목포사람들의 고민이 있다. 목포역에 내리면 바로 번화한 시가지다. 건널목을 건너 상가가 밀집한 골목길을 헤집어 오르막길을 따라 오르면 큰 봉우리 같은 게 나타나는데 바로 노적봉이다. 유달산 산행의 시작 지점이다. 노적봉은 이순신 장군이 적은 군세로 적을 이기기 위해 봉우리 위에 짚을 쌓아 군량미처럼 보이게 했다는 유래를 안고 있다. 말하자면 군사전략상의 허장성세(虛張聲勢)다. ‘목포의 눈물’ 노랫말에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일제 때 이게 빌미가 되어 금지곡이 되고, 발음이 비슷한‘삼백연(三柏淵) 원안풍(願安風)’으로 바꿔 나오게 되었다는 웃지 못할 얘기. 일본의 이순신 콤플렉스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시민동종’이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쓴 편액이 걸린 종각에 서면 앞으로 바다가 뒤로는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종각 뒤 바위 언덕에 오르면 가려져 있던 풍경이 드러난다. 초원관광호텔이 보이는 뒤로 이제 뭍이 되어버린 삼학도가 보이고, 그 앞의 물길이 운하처럼 시내로 들어오는 끝에 배들이 정박해 있다. 인근 섬으로 다니는 여객선 터미널이 이곳에 있다. 영산강이 흘러드는 이곳 앞바다에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108일 동안이나 진을 쳤다는 길다란 섬 고하도와 영암 삼호, 대아산, 달리도, 외달도, 장화도 같은 섬들이 들어차 있어 파도나 바람을 억누르는 역할을 해준다. 그래서 바다가 잔잔하다. 목포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것이 고하도의 용두귀범(석양에 만선을 이룬 60~70척의 배가 서로 끊기지 않고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 풍경)이라는 것인데, 요즘은 예전처럼 고기잡이가 되지 않는다. 얼마 있으면 이곳으로 다리가 연결될 예정이란다. 유달산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입장료를 내라 한다. 이순신 동상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파수병인 양 작은 대포가 하나 있는데 오포대라 쓰여 있다. 구한말과 일제 때 이 포를 쏘아 정오를 알렸다. 오포대 앞에서 만난 문화유산해설가 한 분이 유달산의 내력을 들려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유교가 도달한 곳이라는 의미에서 유달산이라는 것. 중국 항주와 가장 가까운 거리가 바로 이곳이란다. 마한 이전에 이곳으로 진나라 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중국 어선들이 태풍을 피해 주변 섬으로 피신하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자연 교류가 많았다는 설명이다. 목포사람들의 반은 신안과 관련되어 있고, 이중 반은 무안, 또 반은 영암 하는 식으로 진도, 해남까지 주변 지역과 목포의 관계가 깊다. 영암 땅에 있는 아산을 두고 이르는 아산춘우(봄 아산에 아지랑이가 올라오고 봄비가 내리는 풍경)가 목포팔경의 하나에 드는 이유다. 여수, 순천을 별도로 하고 서남부지역의 중심지로서 목포의 역할이 큰 것은 비단 도시규모만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밀접하기 때문. 그래서 인근 지역과 도시통합을 희망하는 분위기가 있다. 유달산이 지금의 모습으로 갖춰진 것은 20여 년에 불과하다. 그 이전에는 오막살이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러던 것을 바위와 바위 사이 틈에 굴착을 하고 나무를 심었다. 목포 인구가 24만 명인데 당시 2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한다. 그러자 새가 날아오기 시작했고, 이제 물도 생길 조짐이다. 유달산이 목포의 자랑인 이유는 가난한 도시의 시민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이루어 냈다는 자긍심 때문이다. 유달산 정상인 일등바위까지는 제법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한다. 그래봐야 30분이면 오르지만. 가는 길에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시가지를 바라보며 서 있다. 노래비 주변에는 그녀의 노래가 끊이지 않고 나온다. 지나는 등산객 아주머니가 “이난영이가 콘서트를 하네”라며 노래를 따라 흥얼거린다. 아직도 이난영을 친숙하게 여기고 있다는 표시다. 사실 목포사람들의 자랑은 유달산만이 아니다. 이난영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애정은 오래고 깊다. 1969년 전국 처음으로 노래비가 세워졌다는 것과 그녀를 추모하는 이난영 가요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는 데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유달산 정상에 서서 다도해를 바라보다 노령산맥에서 뻗어 나온 마지막 봉우리인 높이 228m의 유달산 정상에 오르면 다도해가 펼쳐진다. 서해 끄트머리에 가깝긴 하지만 마치 남해 같은 풍경이다. 섬들이 아른거리며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른 때문이다. 아직 차가운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의 기운은 이렇게 꿈틀거리며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내려오는 길은 등산로를 따라 샛길로 빠졌다. 언덕 위의 오래된 집들은 목포항 개항 초기부터 조성되어온 목포1번지로 불리는 동네. 목포항은 인천항, 부산항, 원산항에 이어 1897년에 개항되었고, 일제가 강점한 이후 식민지 거점 도시의 하나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때 광주시보다 경제사정이 앞서기도 했으나 해방 이후 항구로서의 기능이 바뀜에 따라 약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지리적인 이점을 살려 중국과의 교역에 새로운 기대를 안고 있다. 이훈동정원을 지나 아랫길로 내려오면 동양척식회사 건물이 있는 골목 주변으로 일본식 가옥들이 몇 집 남아있는 것이 보인다. 목포문화원이 있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일제 때 준르네상스양식으로 지었다는 장방형의 2층 건물은 시립도서관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박화성 문학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삐걱거리는 나무층계를 올라 문을 열면 이태리 대리석으로 만든 벽난로와 그때 쓰던 거울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고 보니 목포가 낳은 예술가들이 적지 않은데 한국현대문학사 최초의 여성작가인 박화성 씨를 비롯해 극작가 차범석, 김지하 시인 그리고 동양화가 남농 허건 씨 등이 이곳 출신이다. 목포문화원 축대를 따라 돌계단을 오르면 다시 노적봉이 나오고 유달산이다. 목포는 물론 항구다. 그러나 이제 목포는 유달산이라 해야 옳을 듯하다. 서울 어느 곳에서 보아도 남산이 보이듯 목포는 어느 방향에서나 유달산이 보인다. 그리고 남산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고 쉽게 다가설 수 있으며 또 넉넉하게 받아준다. 언제든 올라 발아래 탁 펼쳐지는 다도해를 볼 수 있으니 시름은 쉬이 바람에 날려버릴 수 있겠다. 그래서 목포는 유달산이다. Z
남쪽 바닷가로 꽃구경 가자 붉은 동백과 아련한 매화.. 2005-03-28
거제시 지심도 동백 하늘에서 바라보면 마음 심(心)자처럼 생겼다는 곳, 지심도. 두세 시간이면 동백숲에서 동박새처럼 날아다니며 일상사 잊고 지낼 수 있는 꿈 같은 섬이다. 섬이라고는 하나 의외로 가깝다. 거제도 동부의 장승포항에서 도선을 탄다. 직선거리로 6km 정도, 선착장을 출발한 배는 20분 만에 지심도에 닿는다. 동백의 절정기는 3월 초∼중반 지심도는 난대림 수목원이라 할 수 있다. 지심도를 뒤덮고 있는 수목은 후박나무, 대나무, 소나무, 동백나무 등 37종에 이르며 특히 숲 전체면적의 60∼70%가 동백나무다. 이런 연유로 지심도는 동백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동백숲은 동박새만 불러모으는 것이 아니다. 동백꽃은 매년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번갈아 피고지면서 외지의 연인들을 유혹한다. 3월 초순에서 중순까지가 절정기이다. 많은 여행객의 시선이 한려해상국립공원 유람선과 외도해상농원에 쏠릴 때도 지심도는 아무 말 없이 동백을 피워내고 연인들의 방문을 받아 준다. 지심도의 동백꽃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선착장-민박집 사잇길-폐교 앞-활주로-유자밭-폐교로 이어지는 길을 일주해 본다. 인정미가 뚝뚝 묻어나는 민박집들도 지나고 동백꽃잎들만 운동장을 지키는 폐교도 하나 스쳐가고 정상부의 방위건물에 닿는다. 일제 때 일본인들이 설치한 포대 같은 진지는 정상부의 동녘 아래에 있다. 날씨가 좋으면 대마도도 보인다는 곳이다. 바닷가 갯바위를 자세히 살펴보면 감성돔을 노리는 꾼들의 낚싯줄이 바닷바람 속에 언뜻언뜻 보인다. 동백숲길은 활주로로 이어진다. 동서 길이 500m, 남북 길이 1.5km, 가장 높은 지점의 해발이 97m에 불과한 이 작은 섬에 활주로가 있다는 것이 기이하다. 아마도 일제 강점기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던 일본인들이 경비행기의 이착륙을 위해 닦았을 것이다. 봄볕이 화사하게 내리쬐는 활주로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장승포에서부터 지세포만, 일운면 땅이 골고루 눈에 들어온다. 한 민박집 위뜰에는 지금 유채꽃이 피어나 동백꽃과 함께 지심도의 봄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컹컹 짖어대는 진돗개 소리도 꽃바람 속에서는 고향 언덕에서 휘날리는 풀피리 소리처럼 들려온다. DATA 지역번호 055 홈페이지 : 거제시청 www.geoje.go.kr 문의 : 거제시청 문화공보담당관 639-3208 가는 길 : 장승포동사무소 옆의 지심도행 도선장(682-2233, 681-6007, 선장 김재곤 011-835-2276)에서는 오전 8시, 12시 30분, 오후 4시 30분 등 하루 세 차례 배가 출항하지만 여행객이 많으면 오전 10시 30분, 오후 2시 30분 선편이 추가된다. 지심도에서는 오전 8시20분, 12시 50분, 오후 4시 50분에 장승포항으로 출항한다. 왕복 배삯은 7천 원. 주변 명소 여차-홍포 해안 : 꿈결 따라 찾아간 지심도 동백꽃 여행을 마친 뒤 거제도로 이동해서 꼭 가볼 곳은 거제도 최남단의 여차마을과 홍포로 이어지는 비포장 해안도로이다. 해안도로 드라이브의 낭만을 살리려는 뜻에서 일부러 포장을 하지 않고 있는 길이다. 진달래꽃, 제비꽃, 생강나무꽃 등이 군데군데 피어 봄꽃 여행의 의미를 한껏 살려준다. 이 해안도로에서는 병태도, 매물도와 소매물도 등의 다도해에 박혀 있는 자그마한 섬들이 눈에 가득 들어와 시심을 불러일으킨다. 외도 : 자연과 예술이 조화를 이뤄 ‘남해의 낙원’이라고도 하는 외도해상농원은 1995년 4월 개장, 사계절 내내 많은 여행객들이 방문한다. 해금강을 조망하기에 좋은 이 섬에는 늘 은은한 음악이 흐르고 다양한 포즈의 조각작품과 잘 지어진 건물이 방문객을 반기는가 하면 아열대풍의 정원수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산책코스가 봄나들이 기분을 산뜻하게 만들어 준다. 왼쪽 섬 비탈길로는 각종 정원수가 빽빽하고 반대편 평지에는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을 축소해 놓은 듯한 ‘비너스가든’이 자리잡고 있다. 외도를 방문하는 해상관광유람선사는 장승포유람선사(681-6565), 구조라유람선사(681-1188), 학동유람선사(636-7755), 해금강유람선사(633-1352), 와현유람선사(681-2211), 해금강해양공원(632-8787) 등. 맛집 신현읍에 선향낙지마당(낙지전골, 635-2589), 독로횟집(활어회, 635-8842), 장승포동에 항만식당(해물뚝배기, 본점 682-3416, 분점 682-4369) 등. 항만식당 해물뚝배기는 20여 가지 해산물을 풍성하게 넣었으며 칼칼한 국물 맛이 살아 있다. 숙박 애드미럴호텔(옥포동, 687-3761), 거제관광호텔(신현읍, 632-7002), 장승포비치호텔(장승포동, 682-5151) 등. 펜션으로는 필그림펜션(681-2268), 학동몽돌펜션(011-884-9286 ), 마로니에펜션(632-7467), 솔레미오펜션(633-4243), 윤들펜션(681-0521) 등. 완도군 보길도 동백 봄을 시샘하는 한풍 속에서도 빨갛게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는 동백은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 희망을 맛보기 위해 우리는 동백꽃 명소로 여행을 떠난다. 그 여로에 어울리는 시가 한 수 있다면 발걸음은 더더욱 가볍다. 완도군에 딸린 섬 보길도를 찾아가는 카페리 안에서 서정주 님의 ‘나의 시’를 음미해 본다. ‘어느 해 봄이던가 머언 옛날입니다./ 나는 어느 친척의 부인을 모시고 성 안 동백나무 그늘에 와 있었습니다./ 부인은 그 호화로운 꽃들을 피운 하늘의 부분이 어딘가를 아시기나 하는 듯이 앉아 계시고/ 나는 풀밭 위에 흥건한 낙화가 안쓰러워 주워 모아서는/ 부인의 펼쳐든 치마폭에 갖다 놓았습니다.’ 윤선도 유적지와 예쁜 다도해 풍경 세연정 등 고산 윤선도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보길도는 봄에 찾아갈 경우 동백꽃도 감상할 수 있는 여행지이다. 청별선착장에 당도한 뒤 세연정의 동백부터 감상한 다음 북부에서 서부로 난 해안도로를 따라 보옥리 해변으로, 보죽산으로 찾아가면 곳곳에 동백꽃 군락이 미소를 머금고 손님을 반긴다. 조선 인조대왕이 청나라에 항복한 것을 한탄하며 고산 윤선도는 세상을 등지겠다는 마음으로 제주도로 향한다. 보길도를 지날 무렵 폭풍을 만나 잠시 상륙했다가 그만 산수절경에 취해 정착하기로 결심, 마침내 찾아낸 거처가 부용동이다. 윤선도는 51세에 보길도에 첫발을 디딘 이후 85세 때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는 부용동에 머물면서 ‘어부사시사’와 32편의 한시를 남겼고 전통 조경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연정’을 건축했다. 청별선착장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1.5km 가면 부용동의 초입인 세연정에 닿는다. 세연이란 ‘주변 경관이 깨끗하고 단정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라는 뜻이다. 세연정 건물을 중심으로 수령이 제법 오래된 동백숲이 울창하다. 연못 위에 떨어진 동백꽃과 뒤편 보길초등학교로 이어지는 오솔길에 우수수 떨어진 동백꽃을 감상하다 보면 여행객들은 저마다 시인이 된다. 보죽산의 위용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보옥리 해변 입구에도 동백숲이 짙은 숲그늘을 드리운다. 보죽산(195m, 일명 뾰족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좌우로도 동백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DATA 지역번호 061 홈페이지 : 완도군청 wando.jeonnam.kr 보길도닷컴 www.bogildo.com 문의 : 완도군청 문화관광과 홍보담당 550-5227 가는 길 : ①완도군 화흥포항(555-1010)에서 소안농협(553-8188∼9)의 보길도행 카페리 하루 8∼9회 운항, 1시간 10분 소요. 소안농협 보길대리점 553-2555. 완도공영버스터미널에서 화흥포항까지 소안농협의 셔틀버스 무료 운행. ②해남 땅끝선착장 해광운수 소속 카페리 하루 8∼9회 운항, 40분 소요. 땅끝매표소 533-4269, 보길매표소 553-5632. 보길도내에는 버스가 3대 운행되고 있다. 버스회사 553-7077. 주변 명소 장도 : 완도 본섬에는 일주도로가 잘 닦여져 있다. 완도연육교를 건넌 다음 왼쪽 13번 국도로 방향을 잡으면 청해진유적지인 장도부터 들르게 된다. 완도읍 장좌리 앞바다의 장도는 통일신라시대의 해상왕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고 동북아 해상무역의 전초기지로 삼았던 섬이다. 썰물 때는 걸어서 들어갈 수 있으며, 목책성과 판축토성 등의 유적을 살펴볼 수 있다. 장도는 섬 전체가 사적 제308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지도 : 완도항 맞은편의 섬은 신지도다. 2005년말 완도읍과 신지도를 잇는 신지대교가 완공되어 섬 방문이 수월해진다. 신지도의 명사십리해수욕장은 여름철이면 피서객들로 크게 붐빈다. 남향을 한 곱디 고운 모래밭이 이름 그대로 10리에 걸쳐 뻗어 있으며 모래찜질을 즐기기에 좋다. 면소재지에서 월양리로 넘어가는 독계령 고개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신리 마을 풍경과 명사십리, 신지도 최고봉인 상산(324.1m) 등이 시원하게 보인다. 문의 신지면사무소 550-5605. 맛집 보길면 부황리에 섬마을가든(활어회, 매운탕, 553-6727), 청명회관(활어회, 552-8506), 호반식당(활어회, 553-6220), 청별리에 보길도아가씨가든(활어회, 555-2775) 등. 완도읍 개포리 완도항 부근에 보고수산(조개구이, 555-2746), 완도버스터미널 근처에 대도한정식(한식, 554-3537) 등. 숙박 윤선도 유적지 주변에 황원포횟집민박(553-6353), 동천다려민박(554-2858), 어부사시사민박(553-5019), 보길민박(553-6776), 삼일민박(553-6533) 등. 예송리에 선숙이네횟집민박(553-7176), 쉼터민박(553-6419), 보옥리에 김철한민박(554-3807), 보옥민박(553-6650), 중리에 갯마을횟집민박(553-6947) 등. 해남군 보해매원 매화 매화꽃의 명소라면 전남 광양시 다압면 섬진마을의 청매실농원이 우선 떠오른다. 해남군 산이면의 보해매원은 그보다 늦게 유명세를 타게 된 매화 감상 명소다. 해남읍내 서북쪽에 영암호와 금호호로 휘감겨 낙지 머리 모양을 한 산이면이라는 고장이 있다. 여유롭게 꽃구경 할 수 있어 대부분의 땅은 황토구릉지대다. 배추밭과 보리밭이 초록의 향연을 펼치고 있는 틈틈이 부지런한 농부들이 잘 갈아 놓은 황토밭이 보일 때면 빌딩숲의 그림자에 가위눌려 있던 여행자들은 환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 가도 가도 녹색과 황토색만 교차되는 산이면 땅의 중간쯤, 예정리라는 마을에 매화꽃 가득한 별천지가 숨어 있다. ‘보해매원 해남농원’이라는 곳이다. 영암방조제와 해남읍을 잇는 806번 지방도에서 간판을 따라 구불구불 1.8km를 가면 매화 세상과 조우한다. 매화꽃단지 가장자리에는 붉은 꽃망울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동백나무가 3천여 그루나 심어져 있어 선홍색의 동백꽃 감상은 덤으로 얻는다. 마침내 매화단지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한 관리사에 도착, 옥상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면 보이는 것은 매화요, 바람에 날리는 것은 매화꽃잎이다. 농원의 규모는 무려 14만 평. 국내 최대의 매화꽃 감상지 아닌가. 매화나무단지 사이사이로 경운기며 작업차가 돌아다닐 길이 만들어져 있다. 발품 팔며 매화꽃 터널 속으로 들어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되새겨 보기에 좋은 길이다. 이 농원은 전남 무안 출신으로 보해양조를 창업했던 고 임광행 선생이 가꾼 매화 과수원이다. 2002년 작고한 임광행 선생은 해남땅이 매실재배에 적합하다고 판단, 1978년 14만여 평에 달하는 국내 최대규모의 매실농원을 조성했다. 현재 이 농원에서는 1만4천여 그루 가량의 매화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곳 보해매원은 광양의 섬진마을과 비교했을 때 인파에 부대낄 일 없이 한적하게 매화꽃을 감상할 수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눈이 내린 듯 하얀색 일색인 듯하나 가까이 서면 상아색, 분홍, 연분홍 등 고운 빛깔들이 바람을 타고 춤을 춘다. 관리사무소를 중심으로 사방 어디를 가건 매화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고, 터널 밑에 들어서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면 꽃비가 우수수 쏟아진다. 매화꽃을 감상할 때 꽃가지를 꺾는 일은 절대금지. 문의 (061)532-4959 DATA 지역번호 061 홈페이지 : 해남군청 www.haenam.go.kr 문의 : 해남군청 문화관광과 530-5229 가는 길 : 목포시와 영암군을 잇는 영산호하구둑을 건너는 것이 매화를 만나러 가는 여행길의 단초. 이어 대불방조제 영암방조제 코스를 달리고 산이면으로 들어간다. 산이면소재지를 지나 해남읍내로 3km 가량 향하다 보면 보해농장 팻말이 보인다. 주변 명소 미황사 : 바위 능선이 발달, 해남의 금강산이라고도 하는 달마산(489m) 중턱에 자리한 미황사는 우리나라 내륙의 절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는 사찰이다. 송지면 해원리와 현산면 월송리를 잇는 한적한 시골길 중간에 절로 올라가는 길이 열려 있다. 자그마한 저수지에 이르러 고개를 들면 공룡의 등줄기처럼 하늘로 삐죽삐죽 솟은 달마산이 머리 위에 솟아 있고 그 바위 군상 아래에 절집이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보게 된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 의조화상이 인도에서 불상과 경전, 탱화, 나한 등을 싣고 온 왕과 만난 뒤 지금의 자리에 절을 지었다. 주요 전각으로 대웅보전(보물 제947호)와 응진전이 있으며 동쪽 10분 거리의 동백나무와 소나무숲 속에 부도밭이 있다. 말 없이 미황사의 역사를 들려주는 부도밭은 여러 절집의 부도밭 가운데에서도 특히 아름답다는 평을 듣는다. 대흥사 : 고려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두륜산 대흥사는 영화 ‘서편제’의 주요 촬영장소이기도 했다. 영화 중 송화(오정해)와 동호(김규칠)가 고목나무 위에서 사랑가를 연습하던 장소가 대둔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중간에 있고 유봉(김명곤)이 춘향가를 부르던 유선여관이 절 입구에 있다. 집단시설지구에서 경내까지 이어지는 십리 숲길. 굽이굽이 계류를 따라 걸어가는 산길이라 지루한 줄 모른다. 한번의 심호흡만으로도 세속의 때가 씻겨 나가는 느낌이 든다. 참나무, 느티나무, 동백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전나무 등이 신선한 호흡을 도와준다. 맛집 삼산면 구림리에 전주식당(표고전골, 산채정식, 532-7696), 해남읍 평동리에 용궁해물탕(해물탕, 535-5161), 해남읍 해리에 국향정(갈치찜, 낙지탕, 532-8922), 해남읍 연동리에 캐빈레스토랑(경양식, 536-9774), 장수통닭(닭 한마리, 536-4410) 등. 숙박 해남관광호텔(533-9002), 사파이어모텔(537-4825), 워커힐모텔(533-1119), 프린스모텔( 536-6255), 전원장(534-2500), 목화장모텔(537-6655), 궁전모텔(537-1067) 등.
짧은 봄의 아쉬움, 꽃으로 달래고… 이 봄에 가볼 .. 2005-03-28
입춘과 우수는 지난 지 오래고 겨울잠 자던 동물들이 깨어난다는 경칩이 내일 모레다. 가끔 때늦은 추위가 기승을 부리기도 하지만, 해는 길어졌고 바람의 찬 기운도 많이 가셨다. 사람들의 옷깃은 아직 두텁지만 남녘에는 여린 꽃줄기들이 동장군을 몰아내고 꽃을 피웠다. 한라산의 복수초는 얼음 속에서 노란 얼굴을 내밀었고, 지리산 부근에서는 산수유나무가 꽃망울을 머금었다. 전남 광양 매화축제 3월 12∼20일 사군자 중에 봄을 상징하는 것이 매화다. 섬진강은 지리산을 곁에 두고 흐르다가 화개장터를 지나면서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경계를 이룬다. 화개장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전남 광양시 다압면이 나온다. 매화마을로 유명한 이곳에서 3월 12일(토)부터 20일(일)까지 매화축제가 열린다. 매실 명인으로 유명한 홍쌍리 씨가 운영하는 청매실농원이 있어 다압면은 아예 매실의 본고장으로 자리를 굳혔다. 청매실농원 뒤편의 낮은 구릉에 매화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 이곳을 걷노라면 하얀 꽃구름 같은 매화의 향에 취하게 된다. 올해로 9회째를 맞는 매화축제에는 농악과 풍물, 품바 공연 등의 전통 공연과 밸리댄스, 스포츠댄스, 재즈댄스 등의 댄스 공연도 열린다. 13일에 열리는 보물찾기는 모든 참가자가 함께 할 수 있는 이벤트다. 볼거리들은 주로 토, 일요일에 열리므로 여유 있게 매화를 감상하고 싶다면 평일에 찾는 것이 좋다. 축제기간 중에는 백운산 작설차도 맛볼 수 있다. 매화마을을 찾아가려면 섬진강 따라 뻗어 있는 19번 국도에서 화개장터 앞에 있는 남도대교를 건너 하동·진주 방면으로 861번 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섬진교 못 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으면 매화마을이 나온다. 남해고속도로 하동 나들목이 가깝다. 문의 : 다압면 사무소 (061)797-2607 www.maewha21.co.kr 전남 구례 산수유꽃축제 3월 19∼27일 봄꽃에는 노란색이 잘 어울린다. 봄을 맞은 지리산 아래 상위마을은 노란 꽃망울들로 가득하다. 이 산수유꽃들은 3월 말에 꽃망울들을 터뜨려 마을을 노란색으로 뒤덮는다. 3월 19(토)∼27일(일)까지 산수유꽃축제가 열려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봄소식을 전한다. 산수유나무는 한때 ‘대학나무’라고 불리기도 했다. 늦가을에 열리는 붉은 산수유는 한약재로 쓰여 꽤 좋은 수입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산수유꽃은 좁쌀만한 꽃 수십 개가 모여 다시 하나의 작은 꽃을 이루는데, 산동면에는 수십만 그루의 산수유나무들이 있어 꽃이 활짝 피었을 때는 마을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4월 중순까지는 꽃을 볼 수 있다. 올해 열리는 축제는 제7회로 50여 개의 크고 작은 행사들로 꾸밀 예정이다. 지역적 특색에 맞게 동편제 판소리 공연이 열리고, 절기에 맞춰 고로쇠약수 마시기 행사도 있다. 가는 길은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이나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함양 나들목에서 빠져 나와 남원과 구례를 잇는 19번 국도를 탄다. 남원 조금 지나 밤재터널을 통과해 지리산온천을 찾으면 된다. 반대 방향에서는 섬진강 따라 19번 국도를 계속 타거나 남해고속도로 서순천 나들목을 통해 17번 국도로 오다가 19번 국도를 찾는다. 문의 :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061)780-2224 www.gurye.net 전남 여수 오동도 동백꽃축제 3월 12∼16일 선운사의 고즈넉함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뒤뜰의 동백만은 변함이 없다. 다른 꽃들은 잎을 압도하여 온통 꽃색으로 주변을 물들이지만 동백꽃은 오히려 짙은 녹색의 잎에 묻힌다. 그래서 붉은 동백꽃을 제대로 보려면 대웅보전 뒤의 동백숲을 찾아 가까이에서 꽃송이를 봐야 한다. 혹은 무리 지어 떨어지는 동백꽃을 보는 것도 방법이다. 미당은 수만 송이 동백꽃이 지면 그 넋을 위로하려 고창 사람들이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3월 말이 절정.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 나들목으로 나가 22번 국도에서 선운사 방향으로 가면 된다. 충남 서천의 동백정은 500년 된 동백나무가 85그루 있어 천연기념물 169호로 지정되었다. 지역적인 특징 때문에 3월 말에서 4월 말이 절정이다. 동백은 해풍을 맞아야 예쁘다는 말이 실감난다. 동백정에서 바라보는 서해는 그 풍경이 동해와 헛갈릴 정도로 빼어나다. 서해안고속도로 춘장대 나들목에서 나와 춘장대 해수욕장 혹은 서해화력발전소 이정표를 찾으면 된다 오동도에서는 이보다 조금 이른 3월 12일(토)부터 5일 동안 제7회 ‘오동도 동백꽃 축제’가 열린다. 축제기간 중에는 동백가요제와 동백나무 분재 전시회 등이 열린다. 문의 : 여수시청 관광홍보과 (061)690-7064 선운산도립공원 관리사무소 (063)563-3450 벚꽃· 진달래·철쭉 넘어 여름으로 꽃이 전하는 봄소식은 겨울 끄트머리인 3월에 가장 반갑지만, 그 후로도 꽃잔치는 계속된다. 봄꽃 축제의 대명사인 벚꽃축제는 4월에 잡혀 있다. 4월의 문턱을 넘어서기가 무섭게 남해안부터 ‘벚꽃전선’이 북상한다. 진해 군항제와 화개장터 10리 꽃길, 섬진강 80리 벚꽃길을 꼽을 만하고 도심에서는 서울 여의도의 윤중로 벚꽃축제가 유명하다. 봄의 절정인 4, 5월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있다. 진달래는 여수 영취산과 대구 비슬산의 진달래가 환상적이지만 산중이니 발품을 팔아야 볼 수 있다. 무형문화재인 두견주(진달래주)가 손짓하는 충남 당진의 면천 진달래축제는 올해로 5회째. 4월 8∼10일에 열린다. 서해안고속도로 당진 나들목을 이용한다. 4월 중순을 넘어가면 철쭉의 향연이 펼쳐진다. 철쭉은 주로 산에 많아 소백산, 지리산 바래봉 등지에서 철쭉제가 열린다. 관악산에서도 철쭉제가 열린다. 철쭉이 지면 여름이다. 봄이 왔나 하면 여름이라 짧아진 봄이지만, 꽃이 피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금세 왔다 가는 봄 동안 전국은 몇 차례 울긋불긋한 물이 들었다 진다. 꽃이 지는 것은 한 순간이라 자칫하면 온통 신록으로 물들 것이니 봄이 짧다 아쉬워 말고 봄꽃 축제를 찾아 봄을 즐겨 보자.
남해안 연육교 3 미지의 섬을 현실로 끌어들인 2005-03-23
앞 가까이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갈 수 없는 곳, 섬. 발을 디디기 전까지 섬은 여전히 환상의 세계로 남아 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서 혼자 있고 싶을 때, 여생을 한적한 곳에서 보내고 싶을 때 문득 무인도를 떠올리는 것은 환상 속에 자신을 가둬두고 싶은 생각에서가 아닐까. 그 이면에는 누구도 다가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 또한 숨어 있을 것이다. 섬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대교’라는 이름 아래 뭍과 연결되어 섬이라고 부르기가 무색한 곳이 한둘 아니다. 남해안 일대의 연육교에서는 더 이상의 환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절의 소통이라는 현실만이 남아 있었을 뿐. 서로 다른 모양의 5개 다리가 한데 모여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진주 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 순천방향으로 갈아타면 바로 사천 IC가 나온다. 이곳을 빠져나가 3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쭉 내려가다 보면 남해 북동쪽의 단항과 사천의 삼천포항을 잇는 창선·삼천포대교를 만난다. 모개섬과 초양도, 늑도, 창선도 등 네 개의 섬은 징검다리처럼 다섯 개의 다리로 연결되었고 이를 통칭해 창선·삼천포대교로 부른다. 특이한 것은 마치 다리 전시장 마냥 다섯 개의 다리를 모두 다른 공법으로 지었다는 것. 금문교를 떠올리게 하는 삼천포대교는 두 개의 주탑이 우뚝 솟은 사장교다. 모개섬과 초양섬을 잇는 초양대교는 아치를 다리 밑까지 내린 것이 특징. 아무런 치장을 하지 않아 단아한 멋을 풍기는 늑도대교는 초양섬과 늑도를 연결한다. 창선도와 늑도를 잇는 창선대교는 세 개의 아치를 상판에 얹어 마치 피어나는 뭉게구름처럼 보인다. 창선도 안의 단항교는 가장 짧아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살포시 숨어 있는 것이 꽤 매력적이다. 바닷가 시골마을에 이렇게 멋들어진 다리가 눈앞에 펼쳐지니 신비롭기까지 하다. 사막 한가운데서 오아시스 왕국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랄까. 관광지 분위기지만 계절 탓인지 찾는 사람이 없어 고즈넉하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한려해상의 수려한 풍광은 가슴속을 푸른 바닷빛으로 물들인다. 삼천포대교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어 해돋이 장소로도 유명하다. 새해 첫날에 사람들로 바글거렸을 다리 위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진을 찍어 주는 아저씨만이 차가 서지 않나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해질녘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했더니, 알고 보니 우리나라 9대 일몰 풍경의 하나로 꼽힌다는 그 유명한 ‘실안 낙조’다. 수평선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한 섬 뒤로 넘어가는 붉은 해는 운해 속의 산봉우리 뒤로 넘어가는 그것을 보는 듯하다. 해가 지고 나면 삼천포대교와 초양대교, 창선대교는 형형색색의 빛을 발하며 천의 얼굴로 변신한다. 적막한 어둠 속에 유일하게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는 존재감은 나 자신의 존재마저 잊게 만드는 마력을 뿜어낸다. 내가 이곳에 서 있음을 일깨워 주는 잔잔한 파도소리마저 없다면 아로마향과도 같은 은은한 불빛에 취해 언제까지고 다리를 바라보며 서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번잡한 통영대교, 소박한 저도교 통영대교는 통영운하 위에 당동과 보디섬, 미수동을 잇는 총연장 591m, 너비 20m의 다리다.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이제 막 관광지가 된 삼천포대교와 달리 통영대교는 찾아가는 길부터 시작해 곳곳에 도시의 번잡함이 배어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멋을 달리하는 것이 특징. 아파트단지를 배경으로 하는 생활 속의 다리가 되는가 하면 바다가 보이는 한 폭의 자연 풍경을 연출하기도 하고, 운하와 어우러져 관광지다운 운치를 뽐내기도 한다. 통영대교는 다리 자체도 볼만하지만 통영운하와 같이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 통영대교 아래를 지나는 통영운하는 너비가 약 55m로, 원래 육지였던 것을 인공적으로 파서 만든 운하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에 패해 도망가던 왜군이 육로를 파 물길을 낸 것이 시초. 이후 1931년 길이 1천420m, 수심 3m의 운하로 정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밤이 되니 통영대교 상판 아치구간 140m에는 반딧불이 모여 있는 것처럼 푸른빛을 낸다. 여기에 운하 주변의 건물과 가로등이 쏟아내는 불빛들이 수면에 투영되면서 아름다움은 극에 달한다. 형형색색의 촛불들이 물속에서 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 손으로 보다듬어 따뜻함을 느끼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 정도로 그 오묘함이 기막히다. 저도교는 한적한 시골마을의 정취가 그대로 살아 있다. 마산시 구복리와 저도를 연결하는 이 다리는 영화 속 ‘콰이강의 다리’와 비슷하게 생겨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라 불린다. 1987년 만들어진 철제 다리로 길이 170m, 너비 3m, 높이 13.5m에 이른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푸른 바다의 풍광은 시원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바로 옆에 새로 생긴 웅장한 다리 때문에 소박한 정취는 묻혀 버려 아쉬움이 남는다. 특색 있는 모양 때문에 ‘인디언 섬머’ 등의 영화도 찍었다지만, 지금은 텅 빈 횟집까지 어울려 황량함이 감돈다. 옛 정취가 더 정겨울 법도 한데 도보여행을 온 듯한 한 무리의 젊은 여행객들은 새로 지은 다리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 슬쩍 쳐다보고 지나치는 그들에게 20년이 채 못된 허름한 다리는 그저 오래된 다리였나 보다. 글 | 임유신 사진 | 정진호
고성 송지호와 화진포호 겨울 호수의 그윽한 정취에 .. 2005-02-25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푹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 시인 정지용은 ‘호수’라는 시에서 그리운 사람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호수에 비유해 읊었다. 보고 싶은 마음이 다들 바다같이 크기만 한 것일까? “겨울 바다를 찾는 사람은 많아도 왜 겨울 호수는 찾는 사람이 없을까?”라는 물음에 동행한 사진기자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황량하잖아” 하고 내뱉었다. 해질녘 도착한 화진포호에서 제일 먼저 반겨준 것은 차가운 겨울바람. 수천 마리가 모여든다는 철새와 고니도 남쪽으로 떠나 버리고 거니는 사람 하나 없이 고요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얼음 위로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석양과, 목도리처럼 호수를 두르고 있는 갈대숲, 호수를 다시금 쳐다보게 만드는 전설이 기다리고 있었다. 때묻지 않은 정취 그대로인 송지호 강원도 고성에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가 두 곳 있다. 송지호와 동해안에서 제일 큰 화진포호가 그곳. 속초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가다 보면 송지호 해수욕장 이정표가 나온다. 구성리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군부대 지나 오른쪽으로 조그만 샛길이 있다. 시멘트로 단정하게 포장해 놓은 길을 따라 조금만 들어가면 눈앞에 넓은 호수가 펼쳐진다.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송지호는 천연기념물인 겨울철새 고니의 도래지로 알려져 있다. 물빛이 청명하고 수심이 일정해 바닷고기와 민물고기가 함께 살고 있어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지금은 낚시를 금지해 겨울 정취를 살려 주는 강태공의 모습은 볼 수가 없다. 포장길을 조금 지나면 흙길이 나온다. 구불구불한 호반길을 갈대를 벗삼아 걷다 보면 야트막한 동산에 서 있는 정자와 마주친다. 정자에 올라서면 너른 호수와 함께 저 멀리 동해바다가 보인다. 고니와 가을 철새들은 이미 떠나 버려 얼어붙기 시작한 호수 위엔 철새의 발자국과 깃털만이 남아 있다. 송지호는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이제는 상상 속에 그려봐야 한다. 1996년과 2000년 두 번의 산불이 이곳 소나무들을 휩쓸고 가버렸기 때문. 처음 봤을 때 목장에 온 듯한 이국적인 풍경은 바로 산불이 만들어낸 것이다. 송지호에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조선 초기에 송지호는 비옥한 땅이었다고 한다. 이곳에 욕심 많은 부자가 살고 있었다. 성격이 포악하고 인색한 부자는 집에 찾아온 거지 부녀를 흠씬 두들겨 패서 내쫓았다. 부녀의 딱한 모습을 본 금강산의 유명한 고승 또한 정부자의 집에 찾아갔다가 쇠똥만 잔뜩 얻은 채 쫓겨났다. 고승은 쇠절구를 부자의 금방아가 있는 쪽으로 던졌다. 그러자 쇠절구가 떨어진 곳에서 물기둥이 치솟아 정부자의 집과 금방아간 그리고 논이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정부자는 물귀신이 되고 말았다. 송지호에서 나와 다시 북쪽으로 가다 지하차도 지나 좌회전, 1.5km 정도 가다 보면 왕곡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에는 북방식 전통가옥 2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곳은 마을을 둘러싼 다섯 개의 큰 산 덕분에 6·25 때 폭격을 피할 수 있었고,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초가집을 헐어내는 새마을운동의 영향을 받지 않아 옛 모습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96년 고성산불 때도 이곳에는 불길이 미치지 않았다고. 솔숲과 바다가 빚어내는 절경, 화진포호 왕곡마을에서 나와 한참을 올라가다 보면 화진포호에 닿는다.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 이름 붙여진 화진포는 둘레 16km의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다. 해마다 11월이면 넓은 갈대밭에 수천 마리의 철새와 고니가 날아들고 울창한 송림으로 둘러싸여 주변경관이 빼어나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호수 주변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이기붕 전 부통령, 김일성 별장 등이 자리잡고 있다. 거의 자연상태에 가까운 송지호와 달리 화진포호는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해 고즈넉한 분위기는 잘 살아 있다. 화진포호는 그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운치 있지만 언덕배기에서 솔숲 사이로 보는 경치도 빼어나다. 특히 7번 국도상에서 보는 호수와 바다와 하늘이 한데 모인 풍광은 얼어서 하얘진 호수와 푸른빛이 감도는 바다의 선명한 대비가 잊지 못할 여운을 남긴다. 송지호와 마찬가지로 화진포호에도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지금의 호수 자리에 열산현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어느 해 큰비가 내려서 마을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날씨가 좋고 바람이 잔잔해 물결이 일지 않을 때는 옛날 마을터와 담장을 쌓았던 흔적이 보인다고 한다. 봉이 김선달에 관한 전설도 있다. 겨울이 되어 호수가 얼고 갈대가 쓰러진 모습이 마치 가을 들녘 같아서 김선달이 서울 부자에게 큰 평야라고 속여 호수를 팔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전설, 화진포에는 옛날 이화진이라는 성질이 고약한 시아버지와 착한 며느리가 살고 있었다. 노인은 시주하러 온 스님을 푸대접했고 이를 지켜본 며느리는 미안한 마음에 쌀을 퍼들고 스님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스님은 찾을 수 없었고 며느리가 살던 집과 텃밭은 시퍼런 호수로 변해 버렸다. 며느리는 허망하고 애통해 허리띠를 풀어 목을 매 죽었다. 그후 온 나라에 홍수와 흉년, 전염병이 돌았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며느리의 시신을 찾아 분묘를 만들고, 일년에 한 번 서낭굿을 해준 뒤로는 농사도 잘되고 전염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겨울은 만물을 움츠러들게 한다. 겨울 호수 또한 봄가을의 정취를 떠올리며 찾아갔다가는 실망감에 발자취만 남기고 오기 일쑤. 하지만 바람 한 점, 햇살 하나에도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한다면 겨울 호수의 쓸쓸함조차도 멋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글 | 임유신 사진 | 박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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