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짧은 봄의 아쉬움, 꽃으로 달래고… 이 봄에 가볼 .. 2005-03-28
입춘과 우수는 지난 지 오래고 겨울잠 자던 동물들이 깨어난다는 경칩이 내일 모레다. 가끔 때늦은 추위가 기승을 부리기도 하지만, 해는 길어졌고 바람의 찬 기운도 많이 가셨다. 사람들의 옷깃은 아직 두텁지만 남녘에는 여린 꽃줄기들이 동장군을 몰아내고 꽃을 피웠다. 한라산의 복수초는 얼음 속에서 노란 얼굴을 내밀었고, 지리산 부근에서는 산수유나무가 꽃망울을 머금었다. 전남 광양 매화축제 3월 12∼20일 사군자 중에 봄을 상징하는 것이 매화다. 섬진강은 지리산을 곁에 두고 흐르다가 화개장터를 지나면서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경계를 이룬다. 화개장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전남 광양시 다압면이 나온다. 매화마을로 유명한 이곳에서 3월 12일(토)부터 20일(일)까지 매화축제가 열린다. 매실 명인으로 유명한 홍쌍리 씨가 운영하는 청매실농원이 있어 다압면은 아예 매실의 본고장으로 자리를 굳혔다. 청매실농원 뒤편의 낮은 구릉에 매화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 이곳을 걷노라면 하얀 꽃구름 같은 매화의 향에 취하게 된다. 올해로 9회째를 맞는 매화축제에는 농악과 풍물, 품바 공연 등의 전통 공연과 밸리댄스, 스포츠댄스, 재즈댄스 등의 댄스 공연도 열린다. 13일에 열리는 보물찾기는 모든 참가자가 함께 할 수 있는 이벤트다. 볼거리들은 주로 토, 일요일에 열리므로 여유 있게 매화를 감상하고 싶다면 평일에 찾는 것이 좋다. 축제기간 중에는 백운산 작설차도 맛볼 수 있다. 매화마을을 찾아가려면 섬진강 따라 뻗어 있는 19번 국도에서 화개장터 앞에 있는 남도대교를 건너 하동·진주 방면으로 861번 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섬진교 못 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으면 매화마을이 나온다. 남해고속도로 하동 나들목이 가깝다. 문의 : 다압면 사무소 (061)797-2607 www.maewha21.co.kr 전남 구례 산수유꽃축제 3월 19∼27일 봄꽃에는 노란색이 잘 어울린다. 봄을 맞은 지리산 아래 상위마을은 노란 꽃망울들로 가득하다. 이 산수유꽃들은 3월 말에 꽃망울들을 터뜨려 마을을 노란색으로 뒤덮는다. 3월 19(토)∼27일(일)까지 산수유꽃축제가 열려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봄소식을 전한다. 산수유나무는 한때 ‘대학나무’라고 불리기도 했다. 늦가을에 열리는 붉은 산수유는 한약재로 쓰여 꽤 좋은 수입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산수유꽃은 좁쌀만한 꽃 수십 개가 모여 다시 하나의 작은 꽃을 이루는데, 산동면에는 수십만 그루의 산수유나무들이 있어 꽃이 활짝 피었을 때는 마을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4월 중순까지는 꽃을 볼 수 있다. 올해 열리는 축제는 제7회로 50여 개의 크고 작은 행사들로 꾸밀 예정이다. 지역적 특색에 맞게 동편제 판소리 공연이 열리고, 절기에 맞춰 고로쇠약수 마시기 행사도 있다. 가는 길은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이나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함양 나들목에서 빠져 나와 남원과 구례를 잇는 19번 국도를 탄다. 남원 조금 지나 밤재터널을 통과해 지리산온천을 찾으면 된다. 반대 방향에서는 섬진강 따라 19번 국도를 계속 타거나 남해고속도로 서순천 나들목을 통해 17번 국도로 오다가 19번 국도를 찾는다. 문의 :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061)780-2224 www.gurye.net 전남 여수 오동도 동백꽃축제 3월 12∼16일 선운사의 고즈넉함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뒤뜰의 동백만은 변함이 없다. 다른 꽃들은 잎을 압도하여 온통 꽃색으로 주변을 물들이지만 동백꽃은 오히려 짙은 녹색의 잎에 묻힌다. 그래서 붉은 동백꽃을 제대로 보려면 대웅보전 뒤의 동백숲을 찾아 가까이에서 꽃송이를 봐야 한다. 혹은 무리 지어 떨어지는 동백꽃을 보는 것도 방법이다. 미당은 수만 송이 동백꽃이 지면 그 넋을 위로하려 고창 사람들이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3월 말이 절정.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 나들목으로 나가 22번 국도에서 선운사 방향으로 가면 된다. 충남 서천의 동백정은 500년 된 동백나무가 85그루 있어 천연기념물 169호로 지정되었다. 지역적인 특징 때문에 3월 말에서 4월 말이 절정이다. 동백은 해풍을 맞아야 예쁘다는 말이 실감난다. 동백정에서 바라보는 서해는 그 풍경이 동해와 헛갈릴 정도로 빼어나다. 서해안고속도로 춘장대 나들목에서 나와 춘장대 해수욕장 혹은 서해화력발전소 이정표를 찾으면 된다 오동도에서는 이보다 조금 이른 3월 12일(토)부터 5일 동안 제7회 ‘오동도 동백꽃 축제’가 열린다. 축제기간 중에는 동백가요제와 동백나무 분재 전시회 등이 열린다. 문의 : 여수시청 관광홍보과 (061)690-7064 선운산도립공원 관리사무소 (063)563-3450 벚꽃· 진달래·철쭉 넘어 여름으로 꽃이 전하는 봄소식은 겨울 끄트머리인 3월에 가장 반갑지만, 그 후로도 꽃잔치는 계속된다. 봄꽃 축제의 대명사인 벚꽃축제는 4월에 잡혀 있다. 4월의 문턱을 넘어서기가 무섭게 남해안부터 ‘벚꽃전선’이 북상한다. 진해 군항제와 화개장터 10리 꽃길, 섬진강 80리 벚꽃길을 꼽을 만하고 도심에서는 서울 여의도의 윤중로 벚꽃축제가 유명하다. 봄의 절정인 4, 5월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있다. 진달래는 여수 영취산과 대구 비슬산의 진달래가 환상적이지만 산중이니 발품을 팔아야 볼 수 있다. 무형문화재인 두견주(진달래주)가 손짓하는 충남 당진의 면천 진달래축제는 올해로 5회째. 4월 8∼10일에 열린다. 서해안고속도로 당진 나들목을 이용한다. 4월 중순을 넘어가면 철쭉의 향연이 펼쳐진다. 철쭉은 주로 산에 많아 소백산, 지리산 바래봉 등지에서 철쭉제가 열린다. 관악산에서도 철쭉제가 열린다. 철쭉이 지면 여름이다. 봄이 왔나 하면 여름이라 짧아진 봄이지만, 꽃이 피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금세 왔다 가는 봄 동안 전국은 몇 차례 울긋불긋한 물이 들었다 진다. 꽃이 지는 것은 한 순간이라 자칫하면 온통 신록으로 물들 것이니 봄이 짧다 아쉬워 말고 봄꽃 축제를 찾아 봄을 즐겨 보자.
남해안 연육교 3 미지의 섬을 현실로 끌어들인 2005-03-23
앞 가까이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갈 수 없는 곳, 섬. 발을 디디기 전까지 섬은 여전히 환상의 세계로 남아 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서 혼자 있고 싶을 때, 여생을 한적한 곳에서 보내고 싶을 때 문득 무인도를 떠올리는 것은 환상 속에 자신을 가둬두고 싶은 생각에서가 아닐까. 그 이면에는 누구도 다가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 또한 숨어 있을 것이다. 섬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대교’라는 이름 아래 뭍과 연결되어 섬이라고 부르기가 무색한 곳이 한둘 아니다. 남해안 일대의 연육교에서는 더 이상의 환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절의 소통이라는 현실만이 남아 있었을 뿐. 서로 다른 모양의 5개 다리가 한데 모여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진주 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 순천방향으로 갈아타면 바로 사천 IC가 나온다. 이곳을 빠져나가 3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쭉 내려가다 보면 남해 북동쪽의 단항과 사천의 삼천포항을 잇는 창선·삼천포대교를 만난다. 모개섬과 초양도, 늑도, 창선도 등 네 개의 섬은 징검다리처럼 다섯 개의 다리로 연결되었고 이를 통칭해 창선·삼천포대교로 부른다. 특이한 것은 마치 다리 전시장 마냥 다섯 개의 다리를 모두 다른 공법으로 지었다는 것. 금문교를 떠올리게 하는 삼천포대교는 두 개의 주탑이 우뚝 솟은 사장교다. 모개섬과 초양섬을 잇는 초양대교는 아치를 다리 밑까지 내린 것이 특징. 아무런 치장을 하지 않아 단아한 멋을 풍기는 늑도대교는 초양섬과 늑도를 연결한다. 창선도와 늑도를 잇는 창선대교는 세 개의 아치를 상판에 얹어 마치 피어나는 뭉게구름처럼 보인다. 창선도 안의 단항교는 가장 짧아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살포시 숨어 있는 것이 꽤 매력적이다. 바닷가 시골마을에 이렇게 멋들어진 다리가 눈앞에 펼쳐지니 신비롭기까지 하다. 사막 한가운데서 오아시스 왕국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랄까. 관광지 분위기지만 계절 탓인지 찾는 사람이 없어 고즈넉하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한려해상의 수려한 풍광은 가슴속을 푸른 바닷빛으로 물들인다. 삼천포대교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어 해돋이 장소로도 유명하다. 새해 첫날에 사람들로 바글거렸을 다리 위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진을 찍어 주는 아저씨만이 차가 서지 않나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해질녘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했더니, 알고 보니 우리나라 9대 일몰 풍경의 하나로 꼽힌다는 그 유명한 ‘실안 낙조’다. 수평선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한 섬 뒤로 넘어가는 붉은 해는 운해 속의 산봉우리 뒤로 넘어가는 그것을 보는 듯하다. 해가 지고 나면 삼천포대교와 초양대교, 창선대교는 형형색색의 빛을 발하며 천의 얼굴로 변신한다. 적막한 어둠 속에 유일하게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는 존재감은 나 자신의 존재마저 잊게 만드는 마력을 뿜어낸다. 내가 이곳에 서 있음을 일깨워 주는 잔잔한 파도소리마저 없다면 아로마향과도 같은 은은한 불빛에 취해 언제까지고 다리를 바라보며 서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번잡한 통영대교, 소박한 저도교 통영대교는 통영운하 위에 당동과 보디섬, 미수동을 잇는 총연장 591m, 너비 20m의 다리다.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이제 막 관광지가 된 삼천포대교와 달리 통영대교는 찾아가는 길부터 시작해 곳곳에 도시의 번잡함이 배어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멋을 달리하는 것이 특징. 아파트단지를 배경으로 하는 생활 속의 다리가 되는가 하면 바다가 보이는 한 폭의 자연 풍경을 연출하기도 하고, 운하와 어우러져 관광지다운 운치를 뽐내기도 한다. 통영대교는 다리 자체도 볼만하지만 통영운하와 같이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 통영대교 아래를 지나는 통영운하는 너비가 약 55m로, 원래 육지였던 것을 인공적으로 파서 만든 운하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에 패해 도망가던 왜군이 육로를 파 물길을 낸 것이 시초. 이후 1931년 길이 1천420m, 수심 3m의 운하로 정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밤이 되니 통영대교 상판 아치구간 140m에는 반딧불이 모여 있는 것처럼 푸른빛을 낸다. 여기에 운하 주변의 건물과 가로등이 쏟아내는 불빛들이 수면에 투영되면서 아름다움은 극에 달한다. 형형색색의 촛불들이 물속에서 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 손으로 보다듬어 따뜻함을 느끼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 정도로 그 오묘함이 기막히다. 저도교는 한적한 시골마을의 정취가 그대로 살아 있다. 마산시 구복리와 저도를 연결하는 이 다리는 영화 속 ‘콰이강의 다리’와 비슷하게 생겨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라 불린다. 1987년 만들어진 철제 다리로 길이 170m, 너비 3m, 높이 13.5m에 이른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푸른 바다의 풍광은 시원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바로 옆에 새로 생긴 웅장한 다리 때문에 소박한 정취는 묻혀 버려 아쉬움이 남는다. 특색 있는 모양 때문에 ‘인디언 섬머’ 등의 영화도 찍었다지만, 지금은 텅 빈 횟집까지 어울려 황량함이 감돈다. 옛 정취가 더 정겨울 법도 한데 도보여행을 온 듯한 한 무리의 젊은 여행객들은 새로 지은 다리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 슬쩍 쳐다보고 지나치는 그들에게 20년이 채 못된 허름한 다리는 그저 오래된 다리였나 보다. 글 | 임유신 사진 | 정진호
고성 송지호와 화진포호 겨울 호수의 그윽한 정취에 .. 2005-02-25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푹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 시인 정지용은 ‘호수’라는 시에서 그리운 사람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호수에 비유해 읊었다. 보고 싶은 마음이 다들 바다같이 크기만 한 것일까? “겨울 바다를 찾는 사람은 많아도 왜 겨울 호수는 찾는 사람이 없을까?”라는 물음에 동행한 사진기자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황량하잖아” 하고 내뱉었다. 해질녘 도착한 화진포호에서 제일 먼저 반겨준 것은 차가운 겨울바람. 수천 마리가 모여든다는 철새와 고니도 남쪽으로 떠나 버리고 거니는 사람 하나 없이 고요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얼음 위로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석양과, 목도리처럼 호수를 두르고 있는 갈대숲, 호수를 다시금 쳐다보게 만드는 전설이 기다리고 있었다. 때묻지 않은 정취 그대로인 송지호 강원도 고성에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가 두 곳 있다. 송지호와 동해안에서 제일 큰 화진포호가 그곳. 속초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가다 보면 송지호 해수욕장 이정표가 나온다. 구성리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군부대 지나 오른쪽으로 조그만 샛길이 있다. 시멘트로 단정하게 포장해 놓은 길을 따라 조금만 들어가면 눈앞에 넓은 호수가 펼쳐진다.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송지호는 천연기념물인 겨울철새 고니의 도래지로 알려져 있다. 물빛이 청명하고 수심이 일정해 바닷고기와 민물고기가 함께 살고 있어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지금은 낚시를 금지해 겨울 정취를 살려 주는 강태공의 모습은 볼 수가 없다. 포장길을 조금 지나면 흙길이 나온다. 구불구불한 호반길을 갈대를 벗삼아 걷다 보면 야트막한 동산에 서 있는 정자와 마주친다. 정자에 올라서면 너른 호수와 함께 저 멀리 동해바다가 보인다. 고니와 가을 철새들은 이미 떠나 버려 얼어붙기 시작한 호수 위엔 철새의 발자국과 깃털만이 남아 있다. 송지호는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이제는 상상 속에 그려봐야 한다. 1996년과 2000년 두 번의 산불이 이곳 소나무들을 휩쓸고 가버렸기 때문. 처음 봤을 때 목장에 온 듯한 이국적인 풍경은 바로 산불이 만들어낸 것이다. 송지호에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조선 초기에 송지호는 비옥한 땅이었다고 한다. 이곳에 욕심 많은 부자가 살고 있었다. 성격이 포악하고 인색한 부자는 집에 찾아온 거지 부녀를 흠씬 두들겨 패서 내쫓았다. 부녀의 딱한 모습을 본 금강산의 유명한 고승 또한 정부자의 집에 찾아갔다가 쇠똥만 잔뜩 얻은 채 쫓겨났다. 고승은 쇠절구를 부자의 금방아가 있는 쪽으로 던졌다. 그러자 쇠절구가 떨어진 곳에서 물기둥이 치솟아 정부자의 집과 금방아간 그리고 논이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정부자는 물귀신이 되고 말았다. 송지호에서 나와 다시 북쪽으로 가다 지하차도 지나 좌회전, 1.5km 정도 가다 보면 왕곡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에는 북방식 전통가옥 2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곳은 마을을 둘러싼 다섯 개의 큰 산 덕분에 6·25 때 폭격을 피할 수 있었고,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초가집을 헐어내는 새마을운동의 영향을 받지 않아 옛 모습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96년 고성산불 때도 이곳에는 불길이 미치지 않았다고. 솔숲과 바다가 빚어내는 절경, 화진포호 왕곡마을에서 나와 한참을 올라가다 보면 화진포호에 닿는다.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 이름 붙여진 화진포는 둘레 16km의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다. 해마다 11월이면 넓은 갈대밭에 수천 마리의 철새와 고니가 날아들고 울창한 송림으로 둘러싸여 주변경관이 빼어나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호수 주변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이기붕 전 부통령, 김일성 별장 등이 자리잡고 있다. 거의 자연상태에 가까운 송지호와 달리 화진포호는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해 고즈넉한 분위기는 잘 살아 있다. 화진포호는 그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운치 있지만 언덕배기에서 솔숲 사이로 보는 경치도 빼어나다. 특히 7번 국도상에서 보는 호수와 바다와 하늘이 한데 모인 풍광은 얼어서 하얘진 호수와 푸른빛이 감도는 바다의 선명한 대비가 잊지 못할 여운을 남긴다. 송지호와 마찬가지로 화진포호에도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지금의 호수 자리에 열산현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어느 해 큰비가 내려서 마을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날씨가 좋고 바람이 잔잔해 물결이 일지 않을 때는 옛날 마을터와 담장을 쌓았던 흔적이 보인다고 한다. 봉이 김선달에 관한 전설도 있다. 겨울이 되어 호수가 얼고 갈대가 쓰러진 모습이 마치 가을 들녘 같아서 김선달이 서울 부자에게 큰 평야라고 속여 호수를 팔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전설, 화진포에는 옛날 이화진이라는 성질이 고약한 시아버지와 착한 며느리가 살고 있었다. 노인은 시주하러 온 스님을 푸대접했고 이를 지켜본 며느리는 미안한 마음에 쌀을 퍼들고 스님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스님은 찾을 수 없었고 며느리가 살던 집과 텃밭은 시퍼런 호수로 변해 버렸다. 며느리는 허망하고 애통해 허리띠를 풀어 목을 매 죽었다. 그후 온 나라에 홍수와 흉년, 전염병이 돌았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며느리의 시신을 찾아 분묘를 만들고, 일년에 한 번 서낭굿을 해준 뒤로는 농사도 잘되고 전염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겨울은 만물을 움츠러들게 한다. 겨울 호수 또한 봄가을의 정취를 떠올리며 찾아갔다가는 실망감에 발자취만 남기고 오기 일쑤. 하지만 바람 한 점, 햇살 하나에도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한다면 겨울 호수의 쓸쓸함조차도 멋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글 | 임유신 사진 | 박창완
보령(保寧) 서해 푸른 먼바다, 노을에 지다 2005-02-21
서해에 가면왠지 이별의 정서가 느껴지는 것은 비단 정태춘의 노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해 뜨는 동해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해지는 풍경, 노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라지는 것은 떠나는 것이기에 서운하고 또 아련한 것. 겨울 바다는 어디나 쓸쓸하겠지만 서해는 겨울에서야 차디찬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푸르다. 누가 이번 겨울이 춥지 않다고 했던가. 어디 두고보라는 듯 맹렬하게 지속되는 영하의 날씨는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다. 삼한사온은 이제 영 옛말이 되었다. 몹시 추운 날 겨울 바다에는 어쩌면 얼음 기둥이 서 있을지 모른다. 맑고 투명하고 푸른… …. 그 속에 물새는 박제가 되어 있을까. 매운 바람에 떠오르는 상념은 아주 오래 전의 기억으로 데려간다. 빈 절터에서 절집으로, 성주사터와 무량사 도시의 이름은 때로 작은 게 큰 것을 삼키기도 하는 법이다. 보령도 이와 같아서 지난 95년 대천시와 보령군을 합치면서 보령시로 이름을 바꾸었다. 표지판을 보면 보령이라는 지명 옆에 괄호 표시로 대천이라 써 놓은 연유다. 그래서 철도역 이름도 보령이 아닌 대천역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1986년 보령군이 보령군과 대천시로 분리되었기에 어쩌면 원상회복의 의미도 있다. 그러나 대천이란 이름이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서해 최대의 해수욕장인 대천 해수욕장 때문이다. 바다를 길게 끼고 있는 보령은 부여, 청양, 홍성, 서천 등과 맞닿아 있는데, 차령산맥의 줄기 끝인 성주산에는 한때 충남지역에서 무연탄 산지로 첫손 꼽히는 성주광업소가 들어서 있었다. 지금은 그 터에 석탄박물관이 자리하고 있고, 휴양림 등이 있어 도시인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백제 때 지었다는 큰절 성주사가 있던 터가 이곳 언저리에 있다. 대천역에 내려 먼저 성주사터를 찾아가기로 한다. 역사를 빠져 나와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서서 체이스컬트 매장 앞으로 가면 성주 가는 버스가 선다. 도회지를 벗어난 버스는 시골길로 들어서고, 이윽고 버스기사가 일러준 정거장에서 내린다. 미산농협이 있는 삼거리다. 주변 탄좌가 폐광이 된 뒤에 다시 물이 깨끗해졌다는 성주천을 끼고 걷는 길, 개천 아래 갈대숲이며 오래된 나무들이 늘어선 풍경이 좋다. 걷는 맛이 있는 길이다. 바람은 차지만 겨울다운 청명함이 하늘을 더욱 푸르게 한다. 얼마 걷지 않아 시야에 들어오는 탑으로 미루어 성주사터다. 빈 절터에 탑이 있다는 말은 어느 절터에 가나 첫 번째 감상으로 다가온다. 또한 저마다 다른 특색은 분명히 있는 법이어서 그 차이를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된다. 탑도 자주 보면 감흥이 덜한 법인데 성주사터의 탑들은 첫눈에 반듯하게 잘 생겼다는 인상이다. 몸돌 위 처마 끝을 어찌나 날렵하고 우아하게 꺾어 올렸는지 나무를 다듬어도 저보다 잘 만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빈 절터의 중심을 잡고 있는 5층탑 뒤로 불상의 흔적인 금당터 석조연꽃대좌가 있고, 그 너머 세 기의 삼층탑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이 이채롭다. 그 모습이 단아하면서도 위엄이 있다. 그 뒤 외따로 서 있는 석불입상이 보인다. ‘코를 긁어 달여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 때문에 얼굴 주변이 마모되어 시멘트로 때웠는데 소박한 표정이 울먹이는 듯하다. 그냥 그대로 두고 보존하면 안되었을까. 예전의 절 규모는 무척 컸을 테지만 이제는 가까이 민가들이 들어서 있다. 어느 집에선가 못질하는 소리가 청량한 바람을 타고 울려온다. 덩달아 개 짖는 소리 공허하게 들린다. 삼거리로 다시 나와 외산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마침 시간표가 맞아 버스는 금방 도착하고 15분 남짓 달려 외산 종점에 닿았다. 마을 어귀에서 무량사까지 2km 거리라는 표지가 붙어있다. 한참을 걸어야 하는데 지나는 스타렉스가 절 아래 주차장까지 태워준다. 그이의 말로는 실제 3km거리는 될 것이라 한다. 여하튼 무량사에 온 것이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해 지은 ‘하여가’(何如歌)에 나오는 그 만수산 기슭에 자리잡은 무량사는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부여군에 들어간다. 하지만 만수산이 보령시 미산면과 부여군 외산면에 걸쳐있기도 하거니와 주변 마을 사람들은 굳이 그 경계를 따지려 하지 않는다. 보령에서나 부여 어디서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빈 절터에서 갑자기 절집으로 바뀐 풍경이 어색하지 않다. 공간이 마음에 있다면 현재의 있고 없음은 역시 생각에 달린 문제일 터이다. 겨울 산사의 사람 없는 호젓함은 풍경소리의 쓸쓸함을 더해주는데 마당에 뛰노는 아이 하나의 움직임이 세상을 비추는 빛처럼 환하다. 무량사에서는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2층 구조의 극락전이 인상적인데 건물이 주는 장중함과 더불어 고유하고 은근한 멋이 일품이다. 셀 수 없다는 뜻의 무량사는 극락정토를 지향하고 그 본전 이름이 극락전이다. 개인적으로 절집을 다니면서 하나의 버릇이 생겼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문살 모양을 살피는 것이다. 자칫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조그만 발견에서 얻는 기쁨이 크다. 이곳 극락전의 1층 가운데 쪽으로 조심스레 걸어가 보면 색채는 없어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소슬빗꽃살창을 볼 수 있다. 포구에서 다시 포구로, 대천항 그리고 오천항 대천항 가는 길에 용두해수욕장에 잠시 멈춰 서 바다를 본다. 썰물. 바다는 저 멀리 도망쳐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이 신기루처럼 보인다. 남포방조제와 죽도를 지나고 대천해수욕장을 지나 대천항으로 간다. 대천해수욕장 앞 번화한 거리는 텅 비었다. 모텔 등 숙박업소가 가득한 거리는 스산하기 이를 데 없다. 구광장은 대천해수욕장이 발전을 시작한 근거지로 그 규모를 넓혀 나간 곳.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항구가 나온다. 먼저 보이는 것은 연안여객터미널이 있는 신항이고 구항은 조금 더 들어가야 한다. 구항은 포구 특유의 어시장 난전이 정겨운 풍경을 드러낸다. 커다란 예인선 검은 굴뚝에 검은 연기가 매캐한 온기를 뿜어내고, 방파제 위로는 길다랗게 조개구이 따위를 파는 천막촌이 늘어서 있다. 천막촌 사이를 걸어 방파제 끝 붉은 등대로 향한다. 천막이 끝나는 곳에 바로 등대의 밑동이 드러난다. 여기가 끝이다. 등대 앞에 서자 비릿한 포구의 전경이며 또 하나의 하얀 등대가 보이고 그 너머로 나란히 선 6기의 거대한 굴뚝이 보인다. 이윽고 붉은 노을이 하늘을 물들인다. 어느새 구름이 몰려왔는지 해가 바다에 떨어지는 것을 가리고 만다. 밤이 내리고 포구의 밤도 얼어붙기 시작한다. 도시의 네온사인은 왠지 따스하지 않다. 어느 가게 앞에서 빈 드럼통에다 나무를 넣고 태운다. 그 불꽃에 손을 녹인다. 바람에 춤추는 불꽃은 한없이 따뜻했다. 뚝딱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니 창 밖 아래가 바로 조그만 선박들을 만들고 수리하는 조선소이다. 지난밤 대천항에서 이곳 오천항에 온 것이다. 포구의 정취를 찾아 이곳으로 온 것은 아니다. 오천항은 백제 때부터 배가 드나들던 유서 깊은 항구이기도 하지만 조선조 충청수군절도사영이 있던 곳으로 그 흔적인 오천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닷가에서 경찰서가 보이는 골목으로 가면 오천성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지금 남아 있는 석문 홍예는 과거 서문이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돌을 쌓은 모양이 정연하고, 나무와 집들과 잘 어울려 고풍스런 분위기를 낸다. 홍예를 지나면 진휼청 관아건물이 하나 보이고 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공주 공산성을 떠올리는 성곽길이 나타난다. 발아래 오천항 전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도로가 난 때문에 길은 곧 끊어진다. 2차선 길을 건너 오르면 오천수영 관아건물이 보인다. 담장을 따라 송전탑 쪽으로 가면 끊어졌던 성곽길의 흔적이 이어지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언덕으로 성벽만 조금 남아있을 뿐이다. 앞바다에 보이는 보령방조제 위로 성냥갑 만한 자동차가 달리고, 아래에는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오천항 주변의 바다는 내륙으로 감싸있어 호수처럼 잔잔하다. 오천항을 돌아 나가는 길, 어디쯤에선가 버스 차창으로 화력발전소가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다. 대천항에서 등대 너머로 보던 그 굴뚝들이다.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는 순간,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문득 초현실적인 느낌에 사로잡힌다.
일출명소 ‘3’ 새해 아침, 떠오르는 해를 보며 소.. 2005-01-26
1 경주 대왕암과 감포항 경주시내에서 4번 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향하면 추령터널을 통과하고 기림사와 골굴암 입구도 지난다. 곧바로 나타나는 양북면 삼거리. 직진하면 감포항으로 가고 오른쪽 길을 타면 감은사지 입구를 지나 대왕암 해변에 닿는다. 새해가 되면 각지에서 찾아온 여행가족들이 이곳 대왕암 해변에 모여 해맞이를 즐긴다. 동해시 바닷가에 추암이 서 있어 일출을 아름답게 만들 듯이 경주시 바닷가에는 대왕암이 자리를 잡아 일출의 감동을 한껏 살려 준다. 대왕암은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납골을 뿌린 산골처로 알려져 있다. 대왕암 가운데 문무대왕의 시신이 모셔져 수중릉이라고 일부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나 사실이 아니라고 역사학자들은 진단한다. 해맞이를 마치고 찾아가는 곳은 감은사지. 문무왕은 부처님의 힘을 빌려 왜구를 물리치겠다며 대왕암이 바라다보이는 용당산 양지 바른 곳에 감은사를 세운다. 그러나 완공을 못 보고 세상을 떠나자 아들인 신문왕이 절을 완공하고 감은사라 이름 짓는다. 이 절터에는 동서로 두 기의 삼층석탑이 서 있어 답사객의 발길이 잦다. 대왕암과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감상한 다음 바닷가와 나란히 달리는 31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이윽고 닿는 곳은 감포항. 등대와 고깃배, 갈매기떼 등 3박자가 잘 어울린 포구다. 밤샘 어로작업 끝에 포구로 돌아온 배에서 싱싱한 생선들이 부려지는 모습을 보자면 문득 시장기가 느껴진다. 포구 뒤편의 좌판 어시장에서 찬 바람 맞으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도시생활의 게으름을 반성해 보기도 한다. 고깃배 사이를 부지런히 날아다니는 갈매기떼의 분주한 날갯짓을 보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의무감도 배우게 된다. 3일과 8일은 감포장날. 이날만큼은 감포항 뒤편 차도가 내륙에서 온 상인들로 가득 찬다. 바닷가 사람들에게 산나물이며 옷가지가 전해진다. 가위를 쩔그렁대는 엿장수도 신이 나고 말린 가자미, 소쿠리에 담긴 횟감을 파는 포구 사람들도 흥겨운 날이다. 감포항 위편으로는 오류해수욕장이 있다. 파도가 밀려왔다 사라지는 해변, 잠시 산책하기에 더 없이 좋은 해변. 그 겨울바다는 여행객들에게 시심을 불러일으키고 예술가의 혼을 빌려 주기도 한다. DATA 홈페이지 : 경주시청 www.gyeongju.go.kr 문의 : 경주시청 문화관광과 관광홍보 담당 779-6396 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 경주 나들목→경주시내→보문단지→4번 국도→추령터널→양북면→929번 지방도→대왕암 바닷가 주변 명소 골굴사 : 골굴사는 종종 ‘한국의 둔황석굴’로 비유된다. 거대한 바위산에 12개의 굴을 뚫어 부처를 모시고 벽화 대신 바위에 부처를 새겨넣은 사원이 골굴사다. 수십 미터의 석회암 절벽에 크고 작은 동굴이 군데군데 뚫려 있고, 절벽의 맨 꼭대기에는 충남 서산시의 마애불처럼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마애불(보물 제581호)이 앉아 있다. 오금 저리게 좁은 통로와 가파른 계단을 지나 마애불 앞에 서면 골굴사 주변의 울창한 숲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조망이 탁월하다. 기림사 : 함월산 기슭에 들어선 기림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12년(643)에 천축국의 승려 광유가 창건했다고 한다. 당시의 이름은 임정사였으나 뒤에 원효가 주석하면서 기림사로 개창되었다. 기림사란 부처님께서 생전에 제자들과 함께 활동하던 인도의 ‘기원정사’를 뜻한다. 한때 불국사를 말사로 거느릴 만큼 사세가 대단했다. 불국사의 말사가 된 오늘날에도 건칠보살좌상, 대적광전, 지정도삼존불, 소조비로자나삼존불의 복장유물(불상의 배 부분에 넣어둔 유물) 등이 남아 있어 절의 연륜을 짐작케 한다. 양동민속마을 : 안강읍의 양동마을은 우리나라 7대 전통마을 중의 하나다. 월성 손 씨와 여강 이 씨의 씨족마을로 무첨당, 향단, 관가정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것은 손동만가옥(서백당), 낙선당, 이원복가옥, 수졸당, 이향정, 안락정, 강학당 등이다. 옥산서원은 조선 중종대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회재 이언적을 모신 서원이다. 양동마을과 옥산서원을 두루 답사하고 나면 양반의 초청을 받아 고졸한 한나절 나들이를 흠뻑 즐긴 기분에 젖어든다. 맛집 팔우정 로터리 주변에 해장국집이 많고 구로쌈밥집(쌈밥, 749-0600), 본가966옛날두부(두부보쌈, 744-3303) 등이 있다. 숙박 보문관광단지에 경주현대호텔(748-2233)를 비롯해 경주힐튼호텔(745-7788), 콩코드호텔(745-7000) 등. 시내에 경주장(742-8100), 광림장(749-0086) 등. 2 무안 도리포 ‘땅끝마을’이라는 곳은 언제나 여행자를 유혹한다. 그 끝에 가면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을 강렬하게 자극한다. 그래서 해남의 땅끝마을이 유명세를 타지 않던가. 전남 무안군 해제반도의 도리포도 그런 곳 중의 하나다. 무안읍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현경면과 해제면 유월리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도리포 가는 길이 시작된다. 7km를 달려 도착한 곳이 함평만 길목을 지키고 있는 해제면 송석리 도리포다. ‘도로 끝’이라는 표지판이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도리포는 숭어회가 맛있는 곳으로 소문난 포구이다. 도리포에서는 반드시 새벽 일출을 감상할 일이다. 서해안에서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비롭기만 하다. 몇 년 전부터 일출 감상 여행붐이 일면서 서해안에서도 아침 해를 볼 수 있는 여행지가 하나 둘 개발되기 시작했다. 충남 당진의 왜목마을이 가장 먼저 주목을 받았고 뒤를 이어 충남 서천의 마량리가 대열에 끼었다. 그리고 이제는 무안의 도리포도 영광스런 반열에 올라섰다. 도리포에서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특이한 지형 때문이다. 도리포가 자리한 곳은 해제반도의 귀퉁이가 북쪽으로 길게 뻗어나간 끝 지점이다. 도리포는 함평만과 칠산 앞바다의 경계에 자리해 있다. 고깃배들이 정박하는 부둣가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물결 잔잔한 함평만이 넓게 펼쳐지고, 그 뒤로 야산들이 남북 방향으로 줄지어 달린다. 해는 이 야산 위로 솟아 오른다. 수평선 위에서 해가 뜨는 왜목마을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계절이 여름철로 가까워질수록 태양은 남쪽에서 떠오르고 겨울철에는 위치가 북상한다. 동해의 일출은 바다 위에서 불쑥 솟아올라 장엄미를 느끼게 하고 남해의 일출은 아기자기한 다도해의 섬 사이로 떠올라 친근미가 돋보인다. 이에 비해 도리포 등 서해에서 맞는 일출은 어슴푸레한 새벽 공기 속에 숨은 야산들의 머리 위로 올라와 한 폭의 수묵화를 감상하는 듯한 푸근한 서정미를 안겨 준다. 황금빛 아침 햇살이 함평만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면 고깃배 주변에서 단잠을 자던 갈매기들이 일시에 깨어나 삶의 징표인 날갯짓을 연신 해댄다. 주차장도 제법 넉넉하고 선창 주변이 꽉 찼다면 도리포 입구 도로변을 이용해도 좋다. 다만 화장실이나 민박 같은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이 불편한 점이다. DATA 홈페이지 : 무안군청 muan.go.kr 문의 : 무안군청 관광문화과 450-5226 가는 길 : 서해안고속도로 무안 나들목→무안읍 소재지→60번 지방도→현경면 소재지→77번 국도→해제면 유월리→송석리 도리포 주변 명소 법천사 : 목포대학교 뒤편에 우뚝 솟은 산이 승달산(317.7m). 이 지역 사람들은 ‘광주에 무등산, 목포에 유달산이 있다면 무안에는 승달산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승달산을 사랑한다. 승달산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영산호, 서쪽으로는 서해와 무수히 많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승달산 북쪽 기슭인 몽탄면 달산리에 법천사가 자리했다. 법천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사찰 대웅전 앞의 설명문에는 백제 성왕 때 창건했다고 되어 있고, 군에서 만든 자료에는 신라 성덕왕 때 서역국에서 건너온 승려 정명이 세웠다고 한다. 해남 대둔사의 말사인 법천사 입구에서 눈여겨볼 것은 두 기의 석장승이다. 왼쪽에 있는 것이 할머니 장승이고, 오른쪽에 세워진 것이 할아버지 장승이다. 두 장승 모두 인상이 좋아서 무안 땅까지 찾아간 여행자들의 피곤함을 잘 다독거려 준다. 이 장승들은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임자도 : 도리포를 뒤로 하고 24번 국도로 다시 나와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려가면 짤막한 연육교를 건너게 되고, 신안군 지도읍 점암마을에서 길이 끝난다. 이 마을에서는 임자도행 철부선이 자주 떠난다. 점암마을에서 배로 15분 거리인 임자도는 대광해수욕장이라는 멋진 해변을 지닌 섬이다. 해변 길이가 무려 12km에 달한다. 임자도 북쪽의 전장포는 새우젓으로 소문난 포구지만 지금은 새우가 잘 잡히지 않아 쓸쓸하기만 하다. 맛집 도리포횟집(454-6890)에 가면 숭어회를 추천해 준다. 자연산 숭어는 값이 싸고 맛은 고급어종 뺨친다. 회를 먹은 뒤에는 식탁에 숭어창젓, 조기새끼로 만든 꽝다리젓 등 독특한 젓갈들이 오른다. 몽탄면의 녹향가든(453-8360)에서는 돼지짚불구이를 맛볼 수 있다. 삼겹살을 석쇠에 가지런히 깐 다음 볏짚을 태워가며 고기를 익힌다. 볏짚 특유의 향이 고기에 배어 맛이 좋고 기름기가 쫙 빠졌다. 망운면의 곰솔가든식당(452-1073)은 기절낙지를 잘 한다. 숙박 무안국제호텔(454-8500), 무안비치모텔(454-4900), 은하장여관(453-3302), 장미장여관(453-3901), 동남장여관(453-3075), 우강파크모텔(452-7980) 등. 3 고성 화진포 강원도 동해안에는 석호라는 것이 발달해 있다. 석호는 바닷가와 근접한 호수로 해류나 조류, 바람, 육지에서 밀려든 토사의 작용 등으로 바다로 흘러가던 물길이 막혀 형성된다. 지하를 통해서 해수가 유입되기 때문에 일반 호수에 비해 염도가 높은 편이다. 화진포호수도 청초호, 영랑호와 함께 대표적인 석호 가운데 하나이다. 강원도 고성군 거진항 위편에 형성된 화진포호수는 고니와 청둥오리 등 겨울 철새들이 날아드는 탐조여행지이면서 통일전망대가 가까운데다 바닷가에서는 일출을 감상할 수 있어 겨울이면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다. 호숫가를 한 바퀴 도는 일주도로도 닦여 있어 커플 여행지로 안성맞춤이다.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와 죽정리 그리고 거진읍 화포리와 이어진 화진포는 둘레가 16km에 이르는 제법 큰 호수다. 호수 물 밑으로는 아주 오래 전에 잠긴 마을과 연어, 숭어, 도미 등이 노니는 모습이 보일 정도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뒤섞인 호수 옆 해변에는 조개 껍데기와 바위가 해풍과 세월에 부서져 만들어낸 백사장이 펼쳐져 신비감을 더해 준다. 화진포의 옛날 이름은 열산호다. 최북단의 일출 감상지답게 수평선을 박차고 솟아오르는 아침해는 그 어느 곳보다도 진한 감동을 안겨 주며 대기가 워낙 깨끗해서 크기도 다른 곳의 두 배쯤은 되어 보인다. 금강산을 스쳐 내려온 겨울 바람은 손발을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차지만 북녘땅과 근접한 바닷가에서 민족통일을 기원하며 일출을 감상한다는데 까짓 추위가 무슨 대수랴. 거센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며 모래사장에서 사그라드는 모습, 편대를 그리며 새벽 공기를 가르는 기러기떼, 수평선 위에 점점이 떠서 불을 밝히며 거진항으로 돌아오는 고깃배들. 그 풍경 하나하나가 사진 찍기 좋아하는 여행객에게는 멋진 소재가 된다. 통일전망대에서는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은 볼 수 없지만 외금강과 해금강은 두루 보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녀가 자신의 가슴 한쪽을 떼어내 만들었다는 옥녀봉과 낙타의 등처럼 생겨 낙타봉이라고도 하고 구선봉이라고도 부르는 바다 쪽 암산, 말들이 바다 위를 뛰어 다니는 모양을 이룬다 해서 말무리 반도로 불리는 해금강이 가슴에 가득 안겨든다. 통일전망대 관람 문의 (033)682-0088. DATA 홈페이지 : www.goseong.org 문의 : 고성군청 문화관광과 681-2191 가는 길 : ①영동고속도로→동해고속도로 현남 나들목→7번 국도→속초시→고성군 간성읍→거진항 입구→화진포호수→통일전망대 ②홍천→44번 국도→인제읍→진부령→건봉사 입구→간성읍→화진포 주변 명소 거진항 : 거진읍은 ‘거탄진’이라는 갯마을이 발전해서 이제는 읍이 될 만큼 성장했고 거진항에는 수십 척의 어선이 드나든다. 등대가 선 방파제, 해안에 늘어선 촛대바위와 방어바위, 무당바위 등이 어우러진 정경은 정겹기만 하다. 어항 북쪽으로는 자갈해안이 100m 넘게 펼쳐져 있어 여름에는 해수욕장으로 변모한다. 거진항은 오징어뿐만 아니라 명태 산지로도 유명하나 이제 뱃전에 명태를 싣고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다. 대신 먼 바다로 나가서 잡아오는 원양명태가 풀릴 때나 떠들썩해질 뿐이다. 원양명태는 거진항에서 깨끗하게 씻겨져 진부령, 대관령을 비롯한 여러 덕장으로 팔려 간다. 근해에서 잡히는 명태는 미리 예약한 사람이 비싼 값을 치러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건봉사 : 건봉사는 금강산이 시작되는 초입의 해발 911m인 건봉산에 자리하므로 특별히 ‘금강산 건봉사’로 불리고 있다.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사찰이다. 건봉사는 법흥왕 7년인 서기 520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사지에는 전하지만 신빙성이 떨어진다. 법흥왕 7년이면 백제가 불교를 공인하기 전이고 아도화상은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승려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승병들을 훈련시켰는데 그들이 공양할 쌀을 씻은 물이 개천을 따라 10리도 넘게 흘러갔다고 한다. 지금처럼 폐허가 된 것은 한국전쟁 때이다. 맛집 거진항 입구의 성진식당(682-1040)은 생태찌개와 북어해장국을 맛볼 수 있는 집. 생태는 그날그날 안주인이 거진항에서 산다. 아침 7시부터 문을 열며 황태가 아닌 북어로 해장국을 끓여 준다. 그 외 소영횟집(682-1929), 해맞이횟집(681-5868) 등. 숙박 성진식당 바깥주인이 거진항과 가까운 곳에서 보배성 펜션(682-2772)을 운영하고 있다. 미리 주문하면 생태찌개를 숙소까지 배달해 준다. 현대장(681-2058), 옵바위모텔(632-8803), 청간정모텔(632-3344) 등도 괜찮다.
경주 토함산 해를 향해 가다 2005-01-19
‘마알간 해야, 네가 웃음지면 홀로라도 나는 좋아라. 어둠 속에 묻혀 있는 고운 해야 아침을 기다리는 애띤 얼굴(중략). 고운 해야, 모든 어둠 먹고 애띤 얼굴 솟아라.’ 해를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 먹으니 박두진의 시 ‘해’에 곡을 붙인 가요의 한 구절이 머릿속에 맴돈다. 문득 앳되고 고운 해를 떠올린 것은 ‘태양’이 더 어울릴 법한 장엄한 해보다 따스하게 보다듬어 줄 수 있는 그런 해를 바라서인지 모르겠다. 연말이 오고 신년 초하루가 되면 누구나 한번쯤 평소와는 다른 ‘제대로 된’ 해를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기 마련. 신년 첫날 곳곳의 해돋이 명소에 수만 명의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드는 것은 이제 너무나 낯익은 풍경이다. 온 국민의 통과의례처럼 되어 버린 신년 해맞이의 그럴싸한 목적은 새로운 각오와 희망을 다지자는 것. 하지만 그동안 쌓이고 쌓인 회한을 뜨거운 첫날의 빛으로 녹여 버리고자 하는 맘은 분명히 그보다 앞설 것이다. 일출 놓친 아쉬움 석양으로 달래 경주의 동쪽을 둘러싸고 있는 토함산(吐含山)은 해발고도 745m로 경주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경부고속도로 경주IC에서 빠져나가 계속 직진하면 7번 국도와 만나고, 우회전 후 902번 도로로 갈아타면 토함산에 이르게 된다. 토함산은 신라인의 얼이 깃든 영산으로 계룡산(서악), 태백산(북악), 지리산(남악), 팔공산(중악)과 함께 동악으로 불린다. 너무나도 유명한 불국사, 석굴암 말고도 신라 천년의 역사를 말해 주는 수많은 유물과 유적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토함산이라는 이름은 들이마시고 토해낸다는 뜻. 산이 동해바다 가까이 있기 때문에 안개가 자주 끼는데, 바다 쪽에서 밀려오는 안개를 들이마시고 토해내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또 하나는 신라 4대왕인 탈해왕의 이름에서 유래한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토함산의 날씨는 변화무쌍 그 자체. 눈앞의 크고 작은 봉우리가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다가 어느 틈엔가 걷혀 동해의 넘실대는 푸른 물결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일출로 유명한 토함산은 이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석양을 선사한다. 불국사에서 약 8km에 이르는 도로를 타고 올라가면 해돋이와 석양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석굴암 주차장에 닿는다. 가을 단풍길로 잘 알려진 이 도로는 아흔아홉 굽이로 되어 있다고. 이 말이 곧이곧대로 들릴 만큼 그 구불구불함에 잠시도 숨돌릴 틈이 없다. 넓은 평야에 우뚝 솟은 산을 바라보면 첩첩산중과는 또 다른 신비감이 든다. 산의 뿌리를 볼 수 있기 때문. 토함산에서 바라보는 서쪽은 경주시내를 품고 있는 평야 뒤로 간간이 자그마한 봉우리 한 두개가 보이고 그 뒤로 본격적으로 산맥이 시작된다. 산의 뿌리이기보다 산맥의 뿌리이기에 신비하다 못해 장엄한 기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저 멀리 수많은 높은 봉우리들이 능선처럼 이어져 있는 곳은 마치 세상의 끝을 보는 듯하다. 그 끝은 하루종일 광명을 내비친 해의 보금자리리라. 정상에 걸린 해는 이것이 뜨는 것인지 지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사그러들 줄 모르는 그 기운은 형체를 잃어 버리며 서서히 주변으로 붉게 물들어 간다. 활화산의 용암이 분출하듯 시뻘겋고 샛노란 기운은 다음날의 일출을 기다리는 이에게 진한 그리움과 여운을 흩뿌린 채 가라앉는다.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 동안 눈을 한번 감았다 뜰 때마다 색조를 달리하며 찬란한 변화를 거듭하는 석양. 그 색조의 한 켠 한 켠마다 지나온 한 해의 온갖 고민과 갈등을 담아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어스름이 짙어갈수록 조급함만 커져 간다. 토함산에서 바라보는 해돋이는 우리나라 8경 중의 하나로 꼽힌다. 양옆으로 펼쳐진 수많은 봉우리와 그 끝에 이르러 푸르게 펼쳐지는 감포 앞바다. 바다와 산을 아우르기 때문에 가슴속에 꿈틀거리는 감동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생명력 가득한 겨울 목장 풍경 무작정 해돋이를 보기 위해 달려왔지만 바다의 푸른 기운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짙은 구름 때문에 뒤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잠시 구름의 빈 자리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는 것. 보다 정갈한 맘의 준비를 하고 와야 속내를 드러내려는 심산인가 보다. 멀리까지 찾아온 것에 대한 보답으로 잠시 얼굴을 내비친 아량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 나중에야 안 것이었지만 토함산 이름의 유래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바다에서 직접 올라오는 해는 일 년에 두세 번밖에 볼 수 없다고 한다. 토함산에서 놓치기 쉬운 것이 바로 토함산 목장. 석굴암에서 내려오다가 불국사 쪽으로 꺾지 말고 직진하면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내리막으로 바뀔 무렵 오른쪽에 너른 풀밭이 나타난다. 산자락에 펼쳐진 목장의 초입은 왠지 초라한 모습이다. 알고 찾아갔더라도 “에게~ 겨우 이거밖에 안되잖아” 하면서 그냥 지나쳐 갈지도 모를 일. 하지만 첫눈에 보이는 것은 목장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시멘트로 대강 만들어 놓은 목장길은 겨우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지만 둘이 걷기엔 아주 넉넉하다. 목장을 휘감고 도는 목장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초입에서 느꼈던 실망감은 어느새 탄성으로 바뀐다. 입체감의 오묘함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드넓게 펼쳐진 목장은 올려보다 내려보고 어느새 평탄해지기를 반복한다. 봄의 푸르름이 그리워지고 하다못해 가을에라도 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갖게 마련. 하지만 겨울에 보는 목장도 썰렁하지는 않다. 흔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황량함과는 거리가 먼, 군데군데 푸른 빛이 도는 풀밭은 다가올 봄날의 생명력을 미리 가늠케 한다. 목장의 풍광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다 보면 언제 이곳이 목장이었냐는 듯 운치 있는 억새 밭이 펼쳐진다. 억새밭을 지나면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를 내리막길과 솔숲으로 뻗은 갈림길이 나온다. 좀더 거닐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빠듯한 일정을 떠올리며 되돌아 나왔다. 무언가 아쉬움을 남기고 가야 나중에라도 다시 한 번 찾지 않을까 하는 핑계거리를 마음에 품고…….
투어 가이드 2005-01-14
호미곶 해맞이축제 포항시 영일만에서 동쪽으로 돌출해 있어 가장 먼저 일출을 볼 수 있다는 호미곶에서 새해 첫 해맞이축제가 열린다. 2004년 12월 31일 오후 8시부터 다음날인 2005년 1월 1일 오후 2시까지 계속되는 이 축제에는 전야제 행사로 오카리나 연주, 태극권 시범, 디카 촬영대회, 노래자랑, 인기가수 축하공연 등이 이어지고 새해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면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불꽃놀이가 동해바다의 밤하늘을 수놓는다. 새해 첫 해가 떠오르면 대형 가마솥에 끓인 떡국을 나누어먹는 행사와 청사초롱의 전통무용, 국악공연, 인기가수들의 축하공연 등이 펼쳐진다. 호미곶의 1월 1월 해뜨는 시각은 오전 7시 32분이다. 문의 : ☎(054)245-6064~5 http://sunrise.ipohang.org/event 부산 해맞이축제 다양한 볼거리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부산 해맞이축제가 올해에도 어김없이 용두산공원과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열린다. 12월 31일 밤 11시부터 다음날인 1월 1일 오전 12시 30분까지 용두산공원 종각에서는 소망풍선 날리기, 송년음악제, 카운트다운과 신년 타종식 등이 열리고 1월 1일 오전 6시 20분에서 오전 8시까지 해운대 해수욕장에서는 해상 선박퍼레이드, 경비행기 축하비행 등이 펼쳐진다. 특히 1월 1일 오전 5시부터 9시까지 4시간 동안은 평소 걸어서 통행하기 어려운 광안대교가 개방되므로 그 위에서 감동적인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문의: ☎(051)888-3396 www.festival.busan.kr 인제 빙어축제 강원도 인제군 내설악 지류와 내린천의 관문인 소양호에서 은빛 빙어를 주제로 2005년 1월 27∼30일 4일 동안 빙어축제가 펼쳐진다. 겨울이면 호수가 얼어 300만 평의 빙판이 만들어지는 이곳에 산란을 위해 둥지를 찾는 빙어 떼가 몰려들면 축제는 시작된다. 이번 축제에는 빙어낚시대회, 빙어 시식회 등 다양한 행사와 빙상볼링, 얼음축구대회, 산악자전거대회 등의 레포츠 경기, 그리고 눈썰매, 이글루, 눈 조각 전시 등 눈과 얼음을 주제로 한 행사들이 열리고 수몰지역과 산촌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민속놀이가 재현된다. 문의: ☎(033)460-2082(인제군청 문화관광과) www.injefestival.net. 한국민속촌, 겨울나기 민속체험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한국민속촌에서 우리의 전통문화와 옛사람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행사를 마련했다. 2004년 12월 25일∼2005년 2월 6일까지 열리는 겨울나기 민속체험에서는 연, 윷, 제기, 팽이 등의 민속놀이 도구를 직접 만들며 전통문화를 경험해볼 수 있고 썰매타기, 팽이치기, 윷놀이, 널뛰기 등을 하며 과거로 돌아가 볼 수도 있다. 고구마 구워먹기, 짚 생활품 만들기, 온돌체험 등의 프로그램도 흥미롭다. 문의: ☎(031)288-0000 www.koreanfolk.co.kr 충남 아산의 겨울 꽃 축제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봄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충남 아산의 세계 꽃 식물원에서 2005년 1월 30일까지 ‘세계백합축제, 겨울 꽃 축제’를 연다. 식물원 구근관에서 열리는 세계백합축제에는 각 나라에서 건너온 100여 종의 백합이 전시되고 유럽에서 새로 개발된 30여 종의 원예종 백합이 선을 보인다. 또한 겨울 꽃 축제에는 대형 포인세티아 500그루와 포인세티아 군락을 전시하고 주변은 다양한 꽃과 관엽식물들로 채울 예정이다. 축제기간 동안 20명 이상이 단체예약을 하면 꽃 비빔밥 만들기, 꽃을 이용한 손수건 천연염색, 수선화, 튤립, 히아신스 화분 심기 등을 체험해볼 수 있다. 입장료는 어른 6천 원, 중·고생 5천 원, 초등학생 이하 4천 원. 문의: ☎(041)544-0746∼8 www.asangarden.com 대관령 눈꽃축제 올해로 13번째를 맞는 대관령 눈꽃축제가 오는 1월 27일부터 30일까지 4일 동안 강원도 평창의 눈꽃축제장에서 펼쳐진다. 평창의 대관령 일대는 매년 겨울이면 3m 이상의 많은 눈이 내려 마을이 고립되기 일쑤다. 이런 자연환경을 축제로 연결한 것이 대관령 눈꽃축제의 시작이다. 이번 축제에서는 눈조각 경연대회, 전국 개썰매대회, 스키 페스티벌, 겨울 눈꽃등반, 국제 알몸 마라톤대회 등이 열린다. 특히 1월 30일 오전 10시에 시작되는 겨울 눈꽃등반은 눈 쌓인 겨울산의 아름다움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산에 오른 후 내려올 때는 비료포대를 이용해 눈썰매를 탈 수 있다. 1월 30일 오후 2시에는 알몸 마라톤대회가 열리는데 간단한 옷을 입고 대관령의 설경을 감상하며 달리는 이색체험의 시간이 될 것이다. 문의: ☎(033)330-2399 www.snowfestival.net 마량포 해돋이축제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해돋이 하면 동해를 떠올리지만 서해안에서도 동해 못지 않은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서해안의 해돋이 현상은 지구의 공전과 자전 때문에 나타나는데 11월에서 2월 중순까지 충남 서천의 마량리에 가면 동남쪽에서 뜨는 해를 볼 수 있다. 조금만 위치를 바꾸면 한자리에서 낙조를 감상할 수도 있어 이곳에는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보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마량포의 해돋이축제는 12월 31일부터 2005년 1월 1일까지 이어진다. 12월 31일에는 가는 해를 아쉬워하며 해짐이 길놀이와 풍물놀이, 어선 퍼레이드, 달집태우기, 마술쇼, 해맞이 콘서트 등을 열고 새 희망 불꽃쇼를 통해 새해를 맞는 기쁨을 나눌 예정이다. 특산품 판매장과 활어장터가 서고 부대행사로 모닥불 축제, 고구마 구워먹기, 김국 나눠먹기 등이 마련된다. 문의: ☎(041)950-4114 www.seocheon.go.kr/tour 태백산 눈꽃축제 눈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 볼까? 강원도 태백의 태백산 도립공원 당골광장 일대와 황지연못, 그리고 태백준용 서킷에서 오는 1월 21일부터 30일까지 제12회 태백산 눈꽃축제가 열린다. 이곳에 가면 눈으로 만든 스핑크스와 유니콘, 설인 등을 만날 수 있고 이글루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에스키모가 되어볼 수도 있다. 대형 얼음 미로에서 길 찾기 놀이를 하고 앉은뱅이 썰매를 타며 신나게 달리다 보면 한겨울 추위는 어느새 사라진다. 1월 23일 오전 9시에는 당골광장에서 출발해 천제단을 지나 문수봉에 오르는 태백산 등반이 예정되어 있다. 문의: ☎(033)550-2081,2828 http://snow.taebaek.go.kr/snow 서울 루미나리에 지난해 가을 경기도 부천에서 53만 명의 관람객을 모았던 루미나리에가 올해는 서울 광화문에서 빛의 판타지를 선보인다. 2004년 12월 15일부터 2005년 1월 3일까지 20일간 열리는 이 빛의 축제는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서 시작해 광화문 거리를 지나 코리아나 호텔과 덕수궁, 대한문, 그리고 정동교회 앞까지 이어진다. 이번 루미나리에의 테마는 크게 3가지로,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는 ‘희망의 빛’, 코리아나 호텔에서 세종로까지는 ‘나눔의 빛’, 덕수궁 일대는 ‘사랑의 빛’이다. 이 가운데 세종문화회관 앞에 세워질 150m 길이 빛의 터널은 축포를 쏘아 올리듯 화려한 빛이 쏟아지며 장관을 이룰 전망. 세종로와 덕수궁 앞에서도 화려한 전구로 장식된 갖가지 조형물을 볼 수 있다. 문의: ☎(02)724-6318 www.luminarie.paran.com 금강 철새탐조투어 2005년 2월 28일까지 충남 서천의 금강하구 일대에서 ‘금강 철새탐조투어’ 행사가 열린다. 서천군은 행사기간 동안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 2차례에 걸쳐 철새 탐조투어 버스를 운행한다. 버스는 금강하구둑 철새탐조대(마서면 도삼리)를 출발해 금강하구 일대와 한산모시관(한산면 지현리)을 거쳐 영화 JSA 촬영지로 잘 알려진 신성리 갈대밭 등을 돌아 나온다. 버스 비는 5천 원. 이와 함께 행사기간 동안 하루 2번씩 철새탐조대 앞 금강호변에서는 관광객들이 철새에게 먹이를 직접 주는 ‘철새부르기 행사’가 열린다. ‘자연의 새소리 영상관’을 비롯해 천연기념물 야생조수 박제전시관, 특산품 및 캐릭터 상품 전시판매장 등도 운영된다. 문의: ☎(041)950-4090 http://bird.seocheon.go.kr/kboard
아트센터 마노 안성에 가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2005-01-14
인터체인지를빠져 나와 한참 잘 가는가 싶더니 그만 길을 잃었다. ‘비봉터널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마노의 이정표가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에는 분명 이렇게 적혀 있는데 아무리 달려도 이정표는 보이지 않고 오직 들판뿐이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난감하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은데…….’ 그때 옆으로 경찰차가 한 대 지나간다.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저, 마노 찾아가려고 하는데요.” 차에서 경찰 둘이 내린다. 우리가 가진 약도며 자료를 보고 한참을 상의하더니 뭔가 알아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그렇게 경찰차 꽁무니를 쫓아 10분을 더 달렸을까, 드디어 오른쪽으로 이정표가 나타났다. 뾰족한 삼각지붕 땅에 대고 거꾸로 선 집 굵은 자갈이 깔린 야트막한 산길을 100m쯤 달리자 마술처럼 거꾸로 선 집이 보인다. 뾰족한 삼각지붕을 땅에 대고 거꾸로 서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황토색 벽돌로 벽을 두른 유럽 중세풍의 집들이 서너 채 있다. 가운데는 잔디구릉이고 거꾸로 선 집 위로는 옆으로 누운 집이 있다. 아트센터 마노다.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에 거꾸로 된 집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꽤 오래 전이다. 한번쯤 가봐야지 하면서 몇 년이 흘렀다. 그동안 웬만한 신문, 잡지의 사진기자들이 이곳을 다녀갔고 방송에서도 여러 번 취재를 했다. 그만큼 ‘거꾸로 선 집’이란 타이틀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우선 거꾸로 선 집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삐거덕거리는 계단을 열 개쯤 올라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양옆으로 공예품들이 보인다. 울퉁불퉁한 유리병, 동물모양 펜던트, 모자를 뒤집어놓은 듯한 유리그릇, 크리스털 액자……. 색깔도 모양도 독특한 다양한 유리공예품들이 발길을 잡는다. 저마다의 개성이 살아있는 이곳의 전시품들은 모두 작가들의 작품이다. 그래서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트숍 한켠에는 유리공예를 체험할 수 있는 공방이 자리한다. 마침 학생 몇몇이 엿가락처럼 늘어진 유리봉을 돌려가며 모양내기에 열심이다. 유리봉에 1천200℃의 불꽃을 쬐면 유리가 젤리처럼 녹아 내리면서 동글동글 맺히는데, 이것을 칼로 꾹꾹 눌러 납작하게 만든 후 나뭇잎 모양을 새기면 휴대폰이나 목걸이에 달 수 있는 예쁜 펜던트가 된다. 유리공예를 체험하는 비용은 1만 원. 이밖에도 공방에서는 유화 그리기, 누드크로키, 라이트 클레이 점토 작품 만들기 등도 해볼 수 있다. 체험비용은 1만∼1만5천 원. 1층 아트숍을 모두 둘러보고 2층 전시실로 향했다. 이곳에는 박기영, 변현수 2명의 작가가 종이를 이용해 만든 설치미술 작품들이 전시중이었다. 전시실은 1년 내내 쉬는 날 없이 작품을 전시한다. 관람료는 무료. 전시실의 주인공들은 주로 안성 지역 젊은 무명작가들이다. 거꾸로 선 집 뒤쪽으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옆으로 누운 집’이 있다. 이름처럼 창도 지붕도 모두 옆으로 누워있다. 비스듬히 기운 옆 창이 지붕이 되는 셈이다. 이곳에서는 커피나 녹차 같은 차에서부터 스테이크나 파스타 같은 식사, 그리고 맥주, 와인 등의 술까지 기분에 따라 취향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입안을 즐겁게 할 수 있다. 창가에 앉으면 큰 창으로 너른 잔디구릉이 보이고 따뜻한 햇살이 기분 좋게 얼굴을 감싼다. 창가에 매달린 유리모빌을 살짝 흔드니 맑고 깨끗한 소리가 난다. 옆으로 누운 집 옥상에 오르면 하늘을 이고 앉은 네모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갤러리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밤에는 쏟아지는 별을 두 눈 가득 담을 수 있다. 가든 뷔페를 가로질러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갔다. 정문에서 보였던 서너 채 집들의 정체는 하루쯤 묵고 가라고 마노에서 마련한 방갈로였다. 침대방과 온돌방이 3채 있는데 아늑한 모습이 유럽의 시골마을을 연상시킨다. 화장실과 샤워장을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불편하지만 은은한 나무향기와 새소리를 이불 삼아 잘 수 있다. 방갈로 앞 감나무는 어느새 새들의 차지가 됐다. 감 껍질만 주렁주렁 달린 채 갤러리를 조용히 굽어본다. 모든 집들을 찬찬히 둘러보고 잔디구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잔디구릉을 한바퀴 도는데 군데군데 자리한 조각상들이 시선을 끈다. 혼자 도드라지지 않고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작품을 구경하며 느릿느릿 산책하는 동안 어느덧 해가 발갛게 익었다. 화개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이곳은 산 가운데 있어 겨울이면 일찍 해가 진다. 저녁놀이 산머리에 앉으면 새들도 잠잘 준비를 하는지 잠잠해진다. 함박눈이라도 내리는 날엔 잔디 구릉은 온통 은빛세상으로 변한다. 그 위를 뽀드득 소리나게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하얀 눈이 간절히 기다려진다. 드라이브 메모 아트센터 마노는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에 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안성 방향으로 달리다가 안성인터체인지로 나와 38번 국도를 타고 안성 방향으로 5분쯤 달리면 대덕터널과 비봉터널이 차례로 나온다. 비봉터널을 지나 오른쪽으로 내려와 나오는 첫 횡단보도 앞에서 U턴해 굴다리 아래를 지나 우회전한 후 안성석재를 끼고 좌회전, 2.4km를 더 가면 오른쪽으로 마노 표지판이 보인다. 문의 ☎ (031)6767-815, www.mahno.com
포항(浦項) 구룡포에서의 아침, 일출보다 붉은 서정 2005-01-14
유난히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는 날, 따뜻한 남쪽 포항으로 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리 해가 뜨는 곳이란 수사는 하나의 상징일 뿐. 해는 볼 수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냥 해 뜨는 포구에서의 아침이면 족할 것이다. 길 떠나는 아침, 가슴속의 해는 이미 떠오른 것일 지 모른다. 서울에서 포항까지는 고속버스나 기차 어느 것을 이용해도 5시간은 잡아야 한다. 지루하게 먼 시간, 버스에서는 어지러워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게 흠이다. 그나마 며칠 전 대구-포항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는 바람에 20분 남짓 시간을 단축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경주로 해서 국도를 이용해야 했다. 고속터미널에 내리자 항구도시의 비릿함을 살짝만 담은 봄날처럼 훈훈한 바람이 쓱 지나간다. 시내 우체국을 지나 동빈내항 쪽으로 이정표를 따라가면 죽도시장이 나온다. 포항에서의 첫걸음은 죽도시장에서 시작하기로 한다. 포항의 어제 그리고 오늘을 담고 있는 동빈내항, 송도 사실 재래시장이란 게 어디나 비슷해 보이지만 지역마다의 특색이 있다. 우선 죽도시장은 그 규모에 놀라게 되는데, 여기에 와보면 재래시장의 위기라는 말이 난데없는 것처럼 들린다. 시장의 재미는 이곳저곳 걸어다니면서 구경하는 일일텐데 시장 골목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건어물 거리를 지나가면 양장점 골목, 모퉁이를 돌면 이불거리며 떡집골목이 나오는 식이다. 포항의 명물 과메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과메기 천지라고 할만큼 난전에 과메기를 내건 가게들이 이어지고 한쪽에는 아예 덕장을 차려 과메기를 직접 말리고 있다. 회센터골목도 엄청 큰 규모로, 새 도로가 나면서 대구 쪽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졌다고 한다. 도무지 시장의 시작과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동해안 일대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란 명성도 그렇거니와 불황의 그늘 없는 시장 고유의 활기찬 움직임이 기분 좋은 풍경이다. “와 이리 사람이 많노, 대목장이네.” 지나가는 아주머니의 말이 아니더라도 어시장 공판장 쪽 풍경은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특별한 일도 없는 평일 오후의 시장은 정말 대목처럼 붐볐다. 주차장은 만원이라 차들이 줄지어 섰고, 어깨를 부딪치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을 만큼 통로가 비좁다. 잘 정비된 시장통과 달리 아무렇게나 자리를 깔고 “꽁치 열 마리에 4천 원씩”을 외쳐대는 직거래형 공판장은 갓 잡아온 고기보다 더 펄떡거리는 치열한 생의 현장으로 다가왔다. 어시장 앞길로 걸어가면 다리 하나가 보이는데 ‘동빈큰다리’라 쓰여 있다. 이 일대가 바로 동빈내항이고, 다리를 건너면 송도다. 포항의 내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동빈내항과 송도. 형산강 하류지역으로 어부들만이 왕래했던 영빈동 지역에 마을이 형성된 것은 구한말에서 일제시대를 거치는 시기로 짐작하는데, 오늘날 죽도시장을 옆에 끼고 있을 뿐 아니라 포항-울릉도간의 여객터미널과 각종 화물선박의 기항지로서 포항의 관문이 되고 있다. 다리 주변은 멀리서보면 마치 강원도 속초같고, 가까이에서 보면 부산 영도처럼 보이면서도 전혀 색다른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송도, 송도의 송자는 소나무를 이름이다. 역시나 소나무가 울창하다. 해풍을 막기 위해 심었던 것이 이제는 여름철 피서객들의 쉼터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이윽고 송도해수욕장이다. 입구에 두 팔을 들고 서 있는 석고 여인상이 있으니 이름하여 ‘평화의 여상’이다. 촌스럽지만 어쩐지 정겨운, 70년대의 어느 때가 떠오를 법하다. 해변에 서자 오른쪽으로 ‘POSCO’ 글자가 선명한 탱크 주변으로 굴뚝이며 공장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로테스크하다고 해야할까, 어디선가 본듯한 풍경인데 바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 ‘푸른대문’의 배경이다. 주인공 두 남녀가 엉켜있던 다이빙대는 바닷물이 허리까지 차 물새들의 놀이터가 되어있다. 모래사장이 자꾸 유실되어 바닷물이 그만큼 들어찬 때문이다. 여느 해수욕장이 다 그렇듯 바다 가까이 축대를 쌓고 횟집이며 건물들을 지은 탓이다. 전국적으로 이름난 경승지였던 송도해수욕장은 해방 이후에도 그 명성을 이어갔으나 1968년 이후 이 지역에 철강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그 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추억 속의 장소는 항상 그대로일수는 없는 모양이다. 아무튼 겨울바다 물은 푸르다. 해수욕장은 3개의 방파제가 놓여져 마치 삼등분 해놓은 듯 보인다. 물살을 줄여 모래유실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방파제 위에는 사람들이 모여 게 따위를 잡고 있다. 모래사장에 텅 빈 노란색 철제타워는 여름철이면 안전요원이 올라와 호루라기를 불어제낄 것이다. 어물거리다 버스는 끊기고 구룡포까지는 택시를 타고 갔다. 거대한 포스코 앞을 지나며 택시기사는 경제기여도는 크지만 공해 문제, 외지인들이 많이 와 인심이 나빠지고 술집이 많이 생긴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서 왠지 허탈하고 쓸쓸한 냄새가 났다. 오래된 뒷골목의 정경, 목선 만드는 현장을 보다 구룡포에서의 아침 해뜨는 시각은 7시 38분쯤. 겨울이라 해도 늦잠을 자는 모양이다. 가장 동쪽 끝인 호미곶으로 갈까도 했으나 너무 인공적인 분위기가 싫었고, ‘상생의 손’이라는 조각은 마치 물에 빠져 절규하는듯한 처절함이 마뜩치 않았다. 해뜨기 전 이미 사위는 밝아있었다. 붉은 등대가 보이는 방파제로 나가 해를 기다린다. 아직 집어등을 끄지 않은 통통배들, 끼득거리는 갈매기들 저편 지평선 위로 붉은 기운이 강렬해진다. 바다 끝에는 먹구름이 낀 모양으로 일출을 보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순간 붉은 덩어리가 고개를 내밀더니 촛농을 떨어뜨리면서 바다 위로 솟구친다. 방파제에 선 발아래 삼발이들을 휘돌고 나가는 물소리가 처연하다. 해가 뜨는 장엄한 이 시각, 왠지 모르게 엄습하는 외로움은 왜일까. 그리운 이들이 너무 멀리 있다는 생각, 부질없는 일에 매달려왔다는 생각……. 구룡포가 너무 좋아 눌러 살게 되었다는 시인을 만나 구룡포에 대한 안내를 부탁했다. 강원도가 고향인 시인은 3년만 여기 살겠다고 왔는데 영영 떠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보는 풍경이 새롭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풍경을 매일 대하고 사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일까. 구룡포가 항구로 개발된 것은 일제 때였다. 그래서 골목 곳곳에는 적산가옥이 남아있는 등 일본풍 흔적이 엿보인다. 낡은 담장, 일본식 사철나무가 서 있는 2층집을 시인은 아는 체하며 들어갔다.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는 화분 가득 여러 꽃을 볕 좋은 창 아래 두고 있었다. 치자꽃 피면 향이 가득하니 그때 오면 더 좋다고 친절한 미소를 짓는다. 여관을 했던 집이라 조그만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지금은 쓰지 않는 2층방은 다다미가 깔린 것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옛날에 이 집에 살던 일본사람이 8살 때의 기억을 더듬어 낡은 사진 한 장 들고 얼마전에 찾아왔었노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구룡포 공원을 오르는 길, 그 앞의 2층 유곽처럼 화려한 흔적이 있는 집은 약방을 했던 곳이란다. 공원을 오르는 계단 가에는 이 지역에 공헌한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돌기둥이 늘어서 있었다. 그 뒷면에는 당시의 일본인 또는 일제에 부역한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는데, 지금은 시멘트로 발라져 있다는 설명이다. 공원에서 보니 구룡포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관사 뒤로는 용왕당이 숨긴 듯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언덕으로 몇 걸음 옮기면 낡은 철제대문이 나온다. 반쯤 열린 문으로 들어서자 일본신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도 신사가 남아있다니 놀라울 따름인데, 마당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서 있다. 일제가 물러간 이후 이곳을 성당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란다. 신사는 지붕 한쪽이 무너져 있는 등 태풍이라도 한번 불어닥치면 곧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시인이 목선 만드는 곳이 있는데 가보겠느냐고 물었다. 반색하고 따라나선다. 차를 타고 건너편 언덕으로 올라가니 구룡포 일대가 더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푯말에는 구룡포조선소라 쓰여 있었다. 목선은 요즘 거의 수요가 없어 몇 년만에 만드는 중이었는데 운이 좋았다. 옛말에 ‘군수한테 시집갈래, 배목수한테 시집갈래’ 물으면 배목수한테 가겠다고 할만큼 한창 벌이가 좋았고 인기도 높았다. 하지만 요즘 시절이 어디 그런가. 목선은 철선이나 FRP에 밀려 그 명맥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목선 만드는 모습이 신기해 이것저것 물어보려 하자 목수 한 분이 대뜸 말한다. “대충 알려고 해도 1년은 걸리고, 제대로 배우려면 10년은 목수일 배워야 해.” 그 말에 그냥 잠자코 보기만 할 따름이다.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목선은 물을 먹으므로 태풍이 와도 가볍게 날아가는 철선이나 FRP 배와 달리 잘 떠내려가지 않는다는 것. 바다와 진정 친밀한 것이 바로 목선인 것처럼 이 생과 좀더 친밀해지려면 그 대상에 스며들어야 할 일이다. 시내로 나가는 버스는 금세 왔고, 구룡포는 차창에 반사되는 햇살처럼 아련하게 멀어져갔다.
따스한 겨울 정경이 그곳에 남아 있네 향수를 느끼게.. 2004-12-23
영월 섶다리 섶다리는 요즘 만나 보기 힘든 생활유물이다. 한겨울 수량이 적어지고 강폭이 줄어들면 영월 사람들은 힘을 모아 마을 앞의 강에 다리를 놓았다. 소나무나 버드나무 같은 나무 중에서 Y자 모양을 한 나무들을 잘라 교각으로 삼고 그 위에 상판을 얹은 뒤 솔가지를 촘촘하게 덮은 다음 뗏장이나 흙을 뿌려 다리의 형태를 완성시킨다. 섶다리는 겨울로 접어들 때 만들었다가 이듬해 장마 때면 물에 떠내려 가도록 내버려두기도 하고, 중요 목재들을 수습해 두었다가 다시 활용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정선 아우라지 강변의 섶다리가 꽤나 유명했다는데 지금은 튼튼한 교량이 마을을 잇고 있다. 동강, 서강, 주천강, 서만이강 등 강이 많은 영월에서는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섶다리 놓는 풍습을 지키고 있다. 특히 주천면 소재지의 주천2교와 가까운 주천강변에는 2003년부터 쌍으로 섶다리를 놓은 ‘쌍섶다리’가 등장, 겨울여행을 즐겁게 해준다. 다른 곳의 섶다리는 외줄기 다리지만 주천리와 신일리를 이어 주는 다리는 두 개가 나란히 놓인 쌍섶다리다. “조선조 숙종대에 조정에서는 신임 강원 관찰사들이 단종의 무덤인 장릉을 참배하도록 했습니다. 원주를 출발한 일행은 주천강을 건너 장릉으로 가야 하는데 외섶다리로는 사인교와 말 등이 통행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주천리와 신일리 주민들이 경쟁하면서 하나씩 다리를 만들어 쌍섶다리를 놓게 되었습니다.” 주천면 출신으로 ‘계경목장’이라는 요식업체인점 대표인 최계경 씨는 고향을 관광명소화하자는 뜻에서 쌍섶다리 재현에 앞장섰다. 최 씨의 설명에 따르면 쌍섶다리 놓기는 일제시대에 이르러 자취를 감췄다가 이제 와서야 본모습을 되살리게 되었다. 이 쌍섶다리 말고 또 하나 이름난 섶다리가 판운리 섶다리이다. 주천면에서 평창 방면으로 가다가 판운리에 이르면 밤뒤마을과 미다리마을 사이에 놓인 섶다리를 보게 된다. 함박눈이라도 펑펑 쏟아지는 날, 마을 사람들이 섶다리를 건너는 모습은 1960년대 한국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쌍섶다리 아래 얼음 언 곳에서는 귀가 빨개지는 줄도 모르고, 콧물이 줄줄 흐르는 것도 모르고 동네 꼬마들이 썰매를 타고 팽이를 돌린다. DATA : 지역번호 033 홈페이지 : 영월군청 gun.yeongwol.gangwon.kr 문의 : 영월군청 문화관광과 370-2542, 2092 가는 길 : 중앙고속도로 신림 나들목을 나가 88번 지방도를 타고 영월읍 방면으로 향한다. 신림터널과 황둔리를 지나면 주천면 소재지에 닿는다. 판운리 섶다리를 보려면 면소재지에서 평창읍 방면으로 간다. 주변 명소 법흥사 : 643년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면서 창건되었다가 두 번이나 소실되어 중요 건물은 다 사라졌다. 1902년에 법흥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과 사리탑, 토굴, 보물 612호인 징효대사의 보인탑비만이 법흥사의 오랜 역사를 말해 줄 뿐이다. 법흥사의 적멸보궁은 오대산 상원사 등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으로 꼽히는 자랑할 만한 유적 중 하나. 법흥사의 적멸보궁은 선승들이 수도하는 승방에서 어른 걸음으로 200보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법흥사 종무소에서 적멸보궁까지는 15분 정도 걸어야 끝이 보일 만큼 긴데, 길 자체가 나무터널이라 산림욕장을 지나는 듯하다. 선암마을 : 주천면에서 영월읍내로 가자면 88번 지방도를 타고 가면서 서면을 거친다. 서면 옹정리에 선암마을이라는 강변마을이 있고, 인근 야산에 오르면 한반도 지도와 흡사한 지형을 감상할 수 있다. 평창강과 서강이 합수하면서 빚어낸 한반도 지형의 물도리동. 물도리동의 동해안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한 선암마을은 10여 가구의 주민이 옥수수와 수수, 고구마, 감자, 고추 농사를 하며 살고 있다. 마을 앞 강변 모래사장은 여름이면 야영장으로 변한다. 영월책박물관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선암마을에 닿는다. 선암마을로 들어가기 직전 왼쪽 비포장도로를 타고 조금 더 가면 주차장에 닿고, 여기서 10분 정도 언덕을 오르면 한반도 지형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다. 맛집 계경목장 영월본점(돼지불고기, 374-9266), 콩깍지밥상(두부전골, 372-9434), 무릉송어장횟집(송어회, 372-8388), 주천묵집(묵밥, 372-3800), 복미집(다슬기전골, 372-8282) 등. 숙박 영월군 남면 북쌍리 들꽃민속촌 옆에 우구정가옥(372-5704, 011-9419-5707)이 있다.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70호로 지정된 이 집은 민박으로도 운영되고 있다. 예약을 하면 장작불로 구들을 달군 온돌방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다. 금강 하구 겨울 철새들이 한반도를 찾아오는 계절이다.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이들은 남으로 이동하면서 한반도를 중요 경유지나 목적지로 삼는다. 철원평야를 비롯해 서산의 천수만, 금강하구둑 주변, 고창 동림저수지, 해남 고천암호, 순천만, 을숙도, 우포늪, 동해안의 화진포호수, 송지호, 경포호, 제주도 하도리저수지 등이 대표적인 탐조여행 대상지. 전북 군산과 충남 서천 사이를 흐르는 금강 하류에는 금강호하구둑, 금강대교, 웅포대교 등이 차례로 놓여 있다. 12월부터 이듬해 3월 초까지가 금강 하구에 찾아드는 철새를 관찰하기에 좋은 계절. 첫쨋날 오후 서해안고속도로 군산 나들목→군산시 나포면 서포리 십자들→강경 방면 706번 지방도→나포나루→익산시 웅포면 강변도로→웅포대교→부여군 양화면→서천군 한산면 신성리 갈대밭→금강호하구둑 북부 주차장 인근 철새탐조대 순으로 한 바퀴 돌고 이튿날 아침에 역순으로 금강변을 돌면 철새들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다. 비록 서해안고속도로, 금강호하구둑을 이용한 29번 국도 등이 있어 철새의 월동에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이곳에 철새가 많은 것은 물줄기가 거세지 않고 강변 양안과 강심에 갈대밭이 드넓게 형성되어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낙곡을 주워 먹을 수 있는 들판이 넓고 갯벌이 가까워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 이곳에는 해마다 고니, 가창오리, 기러기, 도요새 등 100여 종의 철새 40여만 마리가 찾고 있다. 군산시 성산면에 철새 조망대가 설치되어 있는가 하면 서천군에도 금강하구둑 북단에서부터 서해안고속도로 금강대교 북단까지 강변도로가 조성되어 철새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여행객들의 탐조활동에는 도움을 준다. 한국조류보호협회 군산지회에 따르면 금강 하구에서 가장 많이 관찰되는 종은 오리과, 도요과, 물떼새과 조류다. 특히 도요새와 물떼새류 종 중 약 50%가 이 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금강대교를 기준으로 금강 상류 쪽에는 고니류가 주로 눈에 띄고 대교에서 하류 쪽에는 큰기러기 등 기러기류가 주로 관찰된다. 또 하류 쪽으로 조금 떨어진 하구둑에는 수면성 오리류가 많고, 조금 더 내려가면 도요와 물떼새류가 주로 관찰된다. 강에서 조금 벗어난 들녘에서도 각종 철새가 보인다. DATA : 지역번호 063 홈페이지 : 군산시청 www.gunsan.go.kr 문의 : 군산시청 문화관광과 450-4554 가는 길 : 서해안고속도로 군산 나들목으로 나가 706번 지방도를 타면 군산시 나포면의 들녘으로 이어진다. 서천 나들목을 빠져나가 21번 국도를 타고 금강호 하구둑으로 내려가도 철새를 만나 보기에 좋다. 주변 명소 군산 월명공원 : 서울 남산공원처럼 군산의 상징인 이곳에서는 사방으로 군산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다. 해망굴 옆 희천사 입구에 차를 대고 114개의 계단을 오르면서 월명공원 산책이 시작된다. 수시탑이나 전망대에서는 군산 앞바다를 오가는 작은 어선과 대형선박들, 금강 건너편의 장항 일대가 시원스레 내려다보이고 바다조각공원에 가면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조각공원에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채만식선생문학비와 조우한다. 봉수대터가 있는 정방산 정상에 오르면 금강과 서해바다의 장관을 다시금 감상하게 된다. 본래 월명공원은 봄철 경관이 멋진 곳. 4월이면 동백꽃과 개나리, 진달래가 앞다퉈 피고 5월이면 왕벚꽃과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서천 신성리갈대밭 : 부여군 양화면과 맞닿은 서천군 신성리에 있다. 논길을 가로질러 제방도로에 오른 순간, 여행객은 눈앞에 펼쳐지는 갈대밭 천국의 진풍경에 입을 벌리고 만다. 신성리 마을 사람들은 갈대밭을 갈밭이라고 줄여서 말한다. 갈대밭은 용산리까지 이어진다. 제방도로의 길이로 1.5km 가량 된다. 이처럼 갈대밭이 훌륭하게 조성된 이유는 금강 하류 지역이라 퇴적물이 쌓이고, 범람의 우려로 강변 습지에서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이다. 이병헌, 송강호가 출연했던 ‘공동경비구역 JSA’의 한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맛집 계곡가든(꽃게장백반, 453-0608), 군산횟집(회, 442-1114), 경산옥(아구찜, 442-4223) 등. 계곡가든 꽃게장은 한약재와 각종 양념을 섞은 뒤 발효시켜 간장에 넣어 만든다. 짜지 않고 비린내가 없는 것이 특징. 이 식당의 꽃게장 제조방법은 특허등록까지 되어 있다. 포장판매하고 택배도 실시한다. 숙박 군산시에 군산관광호텔(443-0811), 리츠프라자관광호텔(468-4681), 군장써미트관광호텔(450-1000), 도원파크장(452-4404), 골든파크(446-6923) 등. 청송 주왕산 경북 청송군의 주왕산. 면적이 그다지 넓지도, 그리 높은 봉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국립공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기이한 풍광이 많아서다. 중심 봉우리인 주왕산 자체는 720m로 높다고 할 수 없지만 그 주위로 태행산(933m)·대둔산(905m)·명동재(875m)·왕거암(907m) 등 1천m 가까운 봉우리가 에워싸 산들이 병풍을 친 듯한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주왕산은 1976년 3월 12번째로 국립공원이 되었다. 병풍 같은 봉우리들 사이로 주방천 상류인 주방계곡이 군데군데 폭포를 이루고 있다. 주방계곡의 이쪽저쪽으로 기암·아들바위·시루봉·학소대·향로봉 등 생김새를 따다 이름 붙인 봉우리도 한둘이 아니니 주왕산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매표소에서 대전사를 향해 가는 길, 흰 바위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 바위가 주왕산 산세의 특이함을 대표하는 기암이다.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이런 바위들은 주왕산 가까운 포항 내연산, 영천 보현산, 청도 운문산 등에서도 볼 수 있다. 대전사 뒤편으로 기암이 보여 조상들은 주왕산을 조선 8경의 하나로 대접했다. 주왕산의 매력은 기암이 빚어낸 절경에도 있지만 주왕산이라는 이름을 낳게 한 전설에도 있다. 중국 당나라 때 주도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이라 칭하고 779년에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으로 쳐들어갔으나 크게 패해 쫓기다가 숨어 들어온 곳이 이곳이었다고 한다. 이름도 여러 가지다. 바위가 병풍을 펼친 듯하다 해서 석병산, 나라에 난리가 날 때마다 피난온 사람이 많고 도통한 인물들이 산 속에 살았다고 해서 대둔산, 신라 왕족인 김주원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주방산으로 불리다가 고려 때 나옹 스님이 주왕의 전설 들어 주왕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주왕산에는 고찰 대전사를 지나 등산할 수 있는 길이 여러 갈래 있다. 주방천과 함께 난 평탄한 길을 따라가면 차례로 제1·2·3폭포를 만나고, 제3폭포를 지난 산 속 깊숙한 곳에는 내원동이라는 오지마을이 숨어 있다. 대전사를 중심으로 한 주방천 일대는 외주왕, 그 남쪽의 절골 일대는 내주왕이라고 불린다. DATA : 지역번호 054 홈페이지 : 청송군청 www.cs.go.kr 문의 : 청송군청 관광문화담당 870-6063 가는 길 :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으로 나간다. 34번 국도를 타고 임하댐 입구∼진보면 소재지∼청송읍 우회도로∼주왕산 매표소 코스를 이용하거나 안동대학교 앞∼임하면 소재지∼길안면 소재지∼914번 지방도∼주왕산 매표소 코스를 달린다. 주변 명소 달기약수 : 주왕산을 등산한 후 꼭 가봐야 할 곳이 청송읍 부곡리의 달기약수탕이다. 탄산, 철 성분 등이 함유되어 위장병, 피부병에 효능이 있다. 약수터의 유래를 보면 조선 철종 때 청송부사 권경하가 수로공사를 하던 중 바위틈에서 솟는 물을 발견, 사람들이 그 물을 마셨다. 그러자 트림이 나고 속이 편안해졌다는 것. 이후 위장이 약한 사람들이 음용하기 시작하면서 약수터로 개발되었다. 옛 지명이 청송군 부내면 달기동이라 달기약수라 불리게 되었다. 주산지 : 주왕산국립공원 구역 안의 주산지는 부동면 소재지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다. 조선 숙종 46년(1720) 이공이라는 사람이 계곡을 막아 제방을 쌓으면서 생겨났다. 제방의 길이는 100m, 수심은 8m, 면적은 1만 평 정도. 이 인공저수지에도 재미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저수지 건너편 산자락 별바위 사이로 떠오른 별을 보면서 과것길에 오른 선비가 소원을 빌자 장원급제했다. 한적하게 물과 숲이 어울린 풍광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이다. 특히 물 속에 뿌리를 박고 사는 30여 그루의 왕버드나무가 인상적.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주산지에서 촬영되었으나 세트장은 남아 있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맛집 대전사 입구에 수달래식당(산채정식, 873-3052), 주왕산꽃돌식당(산채정식, 873-0900), 청송읍 부곡리에 약수탕가든(약수토종닭백숙, 874-1122), 청송읍 월막리에 시골식당(버섯전골, 873-9707) 등. 수달래식당의 경우 20여 가지 산채와 밑반찬에 된장찌개, 우거짓국 등이 곁들여 나와 구수한 인심을 느끼게 한다. 약수탕가든에서는 토종닭백숙에 달기약수, 황기, 대추, 밤, 녹두 등을 넣어 보양효과를 높이고 있다. 숙박 주왕산관광호텔(874-7000∼4), 파라다이스모텔(873-5563), 코리아나장(872-2881), 로즈모텔(872-7881), 주왕산장여관(873-5511), 대경장여관(873-6897) 등.
그리움 품은 겨울 포구 3 7번 국도 속초~고성을 .. 2004-12-21
‘길은 목적지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다. 길 위에 서 있기 위해 그 길에 나서는 사람은 거의 없다. 허나, 때로는 마음 속에 새겨진 어떤 길 하나가 밤바다의 등대처럼 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때가 있다. 시린 날에 더욱 그리워지는 동해 바다, 그 넓디넓은 폭을 바짝 끌어안고 달리는 7번 국도는 아름다운 해수욕장과 항·포구, 작고 예쁜 어촌마을들이 파노라마처럼 연이어지는 국내 최고의 로맨틱 로드다. 몽유병 환자처럼 이끌려 도착한 영동고속도로 끝에서 북으로 방향을 잡아 2박 3일을 붙들리고 만 속초~고성 해안도로. 속초와 설악산을 수없이 지나면서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바닷가 마을 3곳을 카이엔과 함께 찾아냈다. 매번 동해에 가도 아는 데만 다니는 사람, 그래서 동해가 뻔하다고 말하는 사람, 내년엔 꼭 이 곳에 가보자. 우리가 밟아보지 못한 처녀지가, 그곳엔 아직도 많더라. 운치가 남다른 내 작은 바다, 외옹치항 겨울 바다, 그것도 동해를 여행지로 선택하는 사람은 조금 스산한 기분에 빠져 있거나, 그도 아니면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일 공산이 크다. 이들에게 밤 포구에서의 한 잔 술은 빼놓을 수 없는 일. 금방이라도 쨍하고 깨질 것 같은 찬 공기에 살갗을 대고 비릿한 바닷내음과 파도 소리를 벗삼아 술 한 잔 걸치기에, 동해의 유명 항구들은 너무 번잡스럽다. 대낮의 시골 장터에라도 온 양 어지러운 난전판에 호객행위도 요란한 속초 대포항이 대표적. 포구이되 좀 작고 한갓지며, 운치는 있으나 화려하지 않은, 그런 곳은 없는 걸까? 상상 속에만 그리던 술맛 절로 나는 밤바다가 대포항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있다. 이름도 멋진 외옹치항. 대포항 북쪽 1.5km 거리에 있는 외옹치항은 1980년대에 개발된 작은 항구로, 근처의 군부대가 철수하면서 막 관광지로 떠오르는 중이다. 마을 이름은 항아리를 엎어놓은 형상의 뒷산, 옹치산에서 따온 것. 5~6년 전 우연히 들렀을 때는 미로 같은 골목길을 헤매다 어찌어찌 해 튀어나오던(그래서 다시 찾지는 못할 듯한) 작은 어촌이었을 뿐인데, 지금은 7번 국도에 뚜렷한 이정표와 함께 진입로가 뚫려 있다. 80여 세대가 성황당을 모시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전통적인 어촌마을인 외옹치는, 그 성황제가 춘천시 동면 조양리 전치곡 마을과 함께 장승을 세우는 풍속이 살아 있는 몇 안 되는 부락제로 민속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여행객들에게는 뭐니뭐니 해도 이 마을이 품고 있는 바다 풍경이 매력적이다. 바닷물이 큰 우물처럼 마을 안쪽을 파고든 외옹치항에는 저녁 7~8시면 문을 닫는 활어난전 대여섯 채가 일렬로 늘어서 있고, 그 앞 한 발짝도 못 미친 바다에 정박된 배 몇 척이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고 있을 뿐이다. 좀 춥더라도 천막 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바닷가에 숯불을 피워 달라하면 그 날 막 잡아 올린 가리비며 밖에 널어 말리던 오징어를 턱하니 얹어 구워준다. 쫀득쫀득 씹히는 해물과 소주 한 잔, 손에 따뜻한 숯불을 쬐어가며 발 앞 3평쯤의 바다를 내 것인 양 차지하고 앉은 기분이란, 동해의 여느 포구에서도 느낄 수 없던 낭만을 안겨준다. 낮에는 옛 군부대 터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속초 전경을 감상할 수 있고, 방파제에서 릴이나 대낚시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시들해진 삶을 절로 일으켜주는 아침 항구들 밤의 포구가 인생의 고락을 풀어놓고 쉬게 한다면, 아침 포구는 시들해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생명연장제’ 같다. 일출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해안절벽 위의 정자, 청간정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바닷가 마을은 아야진. 어여쁜 이름에 마음이 끌려 찾아든 아야진은 ‘게 다리’처럼 긴 방파제 두 개로 바다를 가두어 큰말항, 작은말항 두 개를 거느린 꽤 큰 항구다. 좁은 진입로로 들어서 느닷없이 마주친 아침 항구는 유난히 분주해 보였다. 막 배가 도착했었는지, 커다란 그물에 아주머니 열댓 분이 매달려 주렁주렁 올라오는 생선들을 재빠른 손놀림으로 훑어 내리는 모습을 보며 차를 세우는 사이, 갈매기 한 마리가 독수리 같은 속도로 눈앞의 생선더미에서 실한 놈 하나를 채어 달아나고 이를 본 아주머니가 하늘에 대고 욕짓거리를 퍼부으면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까악까악 소리치며 공중돌기를 하던 갈매기떼가 사라지자 아주머니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바삐 손을 놀린다. “지금 만지시는 생선이 뭐예요?” “양미리여. 지금이 제철이야. 아주 바빠 죽갔어.” 연이어지는 질문에 냉큼 대꾸를 해주면서도 아주머니의 손놀림은 조금도 늦춰지지 않는다. 이 곳은 11~12월이 양미리 철. 갓 잡은 것을 바로 손질해 3일에서 1주일쯤 밖에다 걸어 자연건조한 뒤 조리거나 구워 먹으면 아주 고소한 맛이 난다. 항구의 멋이라 하면 고성군에서 가장 큰 거진항도 빼놓을 수 없다. 규모가 제법 큰 항구인 만큼 다양한 종류의 배들이 네다섯 겹씩 줄지어 정박해 있고 짠 냄새를 맡으며 활기차게 살아가는 바닷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항구 북쪽 산의 등대공원은 귀찮더라도 꼭 올라볼 것. 거진 등대는 원래 유인 등대였다가 가까운 대진 등대에서 동시 관할하게 되면서 주변을 체육공원으로 단장했다. 소나무숲길 끝, 거진항이 내려다보이는 나무 벤치에 앉아 있노라면 ‘이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 멀리 고동을 울리며 항구로 들어오는 배와 먼저 들어와 정박되어 있는 배들, 부둣가에 앉아 그물을 다듬는 사람들이며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일꾼, 담배를 물고 쉬고 있는 아저씨들까지…… 어쩌면 모두가 한 그림으로 그렇게나 생기 있어 보일까 싶다. 거진항은 입구의 건어물 가게들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물건을 떼어다 팔기 일쑤인 동해안의 많은 건어물 센터들과 달리 집집마다 직접 빨래처럼 널어 말리고 있는 오징어며 명태, 양미리 등이 눈길을 잡아끌기 때문. 거진항은 매년 2월 열리는 고성군 명태축제의 메인 이벤트가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아주머니가 방금 뜯어 담고 있던 황태채 한 봉지와 빨랫줄(?)에서 바로 걷어 구워주는 오징어 한 마리를 들고 차에 오르니, 서울 오는 내내 입도 심심하지 않아 좋았다.
남원(南原) 춘향 그리고 지리산의 마음 2004-12-16
안녕히 계세요/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도솔천(兜率天)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어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불 때/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여요. 서정주 시, 춘향유문(春香遺文) -춘향의 말·3 전문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이 시가 생각난 것은 이번 행선지가 바로 춘향전의 고장인 전북 남원이기 때문이다. 고전은 영화나 뮤지컬 등으로 자주 오르내려 스토리가 너무 잘 알려져 있고 한편으로는 진부하다는 관념이 있다. 그럼에도 또 그것이 되풀이되는 것은 어떤 불멸의 가치가 있음일 게다. 서정주의 춘향유문을 다시 읽으며 생각한 것은 춘향의 그 절대적인 사랑의 깊이였다. 광한루 맑은 연못, 햇살에 투영되는 사랑의 전설 버스는 전주 시내를 관통해 남원으로 들어간다. 터미널에 닿기 전 차창으로 혼불문학관, 만인의총 등의 표지가 지나간다. 박경리 ‘토지’의 무대가 경남 하동이라면 최명희 ‘혼불’의 무대는 이곳 남원인 것이다. 작가의 고향이며 소설의 주요 무대로 등장하는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은 ‘혼불마을’로 지정되어있고, 문학관도 들어서 있다. 광한루원으로 가는 길, 추어탕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남원을 상징하는 먹거리가 바로 추어탕인데, 미꾸라지를 곱게 갈아 뼈 등이 씹히지 않게 내놓는 것이 남원식이다. 마침 점심때라 택시기사의 소개를 받아 찾아간 곳은 번듯하고 큰 식당들을 지나 시장 골목통의 허름한 집. 간판도 그냥 현식당으로 추어탕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먹고 나서야 가장 맛있는 집이라고 알려준 이유를 알겠다. 기와지붕 담벼락을 따라 광한루원 정문으로 들어선다. 탁 트인 마당 왼쪽으로 맨 앞에 보이는 것이 완월정이라는 정자인데 주변 연못물이 너무 맑아 바닥이 훤히 보인다. 비단잉어가 붉은 단풍과 어울려 화려한 늦가을 색채를 뽐내고 있다. 완월정 마루에 올라 앞 전경을 본다. 아래 연못에는 돌기둥 주춧돌이 물에 잠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옛 신전의 흔적인양 신비롭게 보인다. 햇살은 마치 어둠 속을 비추는 랜턴처럼 물 속을 투영한다. 그 물 속 깊이 사랑의 전설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오작교를 건너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즐거운 표정들이다. 그런데 다리 건너편 쪽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는 모양이 뭔가 큰일이라도 난 것 같다. 허벅지 만하다고 해야할까 엄청나게 큰 잉어가 떼로 몰려 진풍경을 보여주고 있는데, 사람들의 감탄이 끊이질 않는다. 오작교를 건너면 오른편에 광한루가 서 있다. 누각에는 올라가지 못하게 해 놓았으니 짐짓 실망이다. 그 앞 연못가에 자라 모양으로 만든 자라돌이 이채롭다. 그 내력은 이렇다. 조선 선조 15년, 마을에 재난이 일어나자 이 자라돌을 만들어 삼신산(三神山)을 마주보게 하였더니 재난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삼신산이 어디에 있나? 알고 보니 연못 가운데 인공으로 만들어놓은 것이 바로 삼신산이다. 왼쪽 영주산, 가운데 봉래산, 오른쪽 섬(오작교 옆)을 방장산이라 하고 구름다리를 만들어 왕래하게 하였다. 돌다리를 건너 삼신산으로 들어가면 현판이 없는 정자(영주각) 하나 고즈넉하게 앉아 있고 가운데 공간에 대숲이 보기 좋다. 방장산에는 6각의 방장정이 있는데 처마를 받치고 있는 6마리의 용머리 공포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활기찬 문양이다. 연못가에 첨벙대는 물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노 젓는 나룻배가 지나간다. 연못을 청소하는 관리인이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으로 청소하는데도 운치가 있어, 물이 맑고 깨끗한 이유를 알겠다. 광한루 앞에서 한복을 빌려 입고 사진 찍는 여학생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새처럼 파드득 하늘로 날아간다. 광한루원을 나와 건너편 춘향테마파크로 가는 대신 남원의 명동이라는 시가지 하정동으로 나가본다. 택시기사는 남원이 물위의 도시라고 말했다. 바닥에는 몽돌이 깔려있다고……. 이어지는 얘기는 아래쪽에 조산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산에 묶어놓은 배(도시)가 바로 남원이라는 것이다. 일제가 남원의 정기를 끊기 위해 철길을 놓아 세웠다는 남원역사는 얼마 전 새 역사로 옮겨가고 이제 폐사가 되어있다. 인적이 끊긴 곳이 그러하듯 기차가 다니지 않는 레일은 금세 녹이 슬었다. 끊어진 레일 조각들, 콘크리트 조각들이 쌓여있고 텅 빈 수하물 창고, 순천이며 여수 방면의 이정표들, 빈 벤치 위의 자욱한 먼지에는 한때 이 역을 지나쳤을 또 타고 내렸을 수많은 기억들이 묻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다. 녹슨 레일 아래 나무 침목이며 자갈들도 같이 녹슬어가고, 주생 방면 철길에는 노란색 선로작업차량이 멈춰 서 더 이상 달릴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지리산 자락 들녘에 선 실상사에서 아침을 맞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뱀사골 가는 버스를 타고 운봉, 인월을 지나 주산에 내려 15분 남짓 걸어가면 실상사다. 해질 무렵 운봉을 지나며 몇 해 전 바래봉 철쭉을 보러왔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이곳 지리산 자락 모두가 행정구역상 남원에 드는 셈이다. 다음날 아침 6시 무렵 실상사에 간다. 마을 길가에 바로 절 매표소가 있는 것도 특이한데 입구에서 절까지의 거리가 200m에 불과할 만큼 매우 가깝다. 어느 절이나 그렇지만 이른 시각 관리인이 나오기 전에 가면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문득 보니 사방이 모두 산으로 에워싸여 있다. 지리산 깊은 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은 바닥을 드러낼 만큼 얕은데 그 물소리가 크기도 하다. 주변에는 물안개가 자욱히 피어오른다. 내의 이름은 황강천이고, 다리 이름은 해탈교다. 다리를 건너기 전 입구에 돌장승 하나 서 있고, 건너면 두 개의 돌장승이 반겨준다. 절을 등지고 선 상등성이 위로 붉은 기운이 내비치기 시작한다. 이윽고 사방 모든 산 위로 붉은 기운이 퍼지고 옅은 하늘색 빛깔로 채색된다. 능선은 완만하게 이어져 포근히 감싸고 있다. 머리 위에는 반달이 아직도 밝다. 금세 실상사 입구에 닿는다. 처음에는 지리산 실상사라 해서 어느 정도 산행을 각오했으나 싱거울 만큼 마을 가까이 있는 평지 가람이다. 일주문은 보이지 않고 천왕문이 먼저 나온다. 정면으로 보이는 보광전(대웅전) 앞마당으로 2개의 삼층석탑과 석등이 은근한 모습으로 서 있다. 동·서로 나란히 선 탑은 신라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1972년 불국사 석가탑의 상륜부를 복원할 때 이 탑을 본보기로 했을 만큼 잘 보존되어 있다. 반송이라는 소나무는 부채처럼 여러 가지를 활짝 펼치고 서 있다. 석등은 등을 켤 때 올라가기 쉽도록 사다리 모양의 돌 받침대를 만들어 놓은 것이 이채롭다. 그런데 탑 주변에 울타리가 없다. 대신 국화를 심은 화분으로 빙 둘러 철책을 대신하고 있다. 대개의 절이나 문화재라고 하는 것에서 눈에 가장 거슬리는 것이 미적 감각 없이 아무렇게나 해놓은 울타리 철책인 데 비추어보면 이 절의 안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그 흔한 불사 하나 없이 소박한 분위기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절집 중에서 보물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을 만큼 속으로 빛난다. 단청을 하지 않은 오래된 나뭇결의 보광전 건물에서도 소박하고 자연스런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종의 가운데에 일본열도를 그려놓았다는 동종은 법당 안에 있었다. 종을 한번 칠 때마다 일본열도가 진동했을테니 얼마나 통쾌한가. 실상사를 호국사찰이라 부르는 이유다. 어느새 해가 능선에 걸치며 산기슭의 안개가 햇살을 받아 눈부시다. 능선을 벗어난 해는 실상사에 온전히 퍼져 따뜻한 기운을 준다. 보광전 옆으로 약사전에는 철조여래좌상이 있는데 경주 석굴암 불상과 비슷한 모양이다. 불상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천왕봉이 있다. 약사전에는 또한 화려한 색깔의 꽃문살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아침 햇살이 비친 하얀 창호지의 은근한 멋에 더 마음을 뺏긴 것은 실상사의 순수한 마음이 담겨있는 풍경이 바로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리산 자락 들녘에 선 실상사에서의 아침은 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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