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과테말라 티칼(Tikal) 화려했던 마야문명의 꽃 2004-07-15
국경을넘어갈 때 항상 느끼는 것은 두 나라의 경제력 격차가 입국심사에 미치는 미묘한 차이점이다. 경제력의 격차는 노동시장에서 임금의 차이로 이어진다. 부자나라에서 가난한 나라로 들어갈 땐 비자 받기도 쉽고 입국심사도 간단하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나라로 들어갈 땐 까다롭기 짝이 없다. 가난한 나라 국민은 부자나라로 기를 쓰고 들어가려 하고 부자나라는 한사코 못 들어오게 하는 이유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나라의 노동시장을 교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나라 국민이 가난한 나라로 들어가는 것은 그 나라에 가서 돈을 쓰자는 것이기 때문에 환영이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이 그렇고 우리나라와 중국이 그렇다. 한 지역에서 여러 나라를 여행할 땐 부자나라에서 가난한 나라 순으로 가는 것이 편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번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역순이 되었다. 중미의 과테말라와 벨리즈(Belize)는 도토리 키 재기지만 그래도 과테말라가 비교 우위에 있어 벨리즈에서 과테말라로 들어가는 국경검문소는 장사진을 이뤘다. 울창한 정글 숲에 색색의 열대동물 노닐어 카리브 연안의 흑인소국, 벨리즈의 수도 벨모판에서 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한 시간 반쯤 가면 국경마을 카르멘에 닿는다. 간단한 출국신고 후 과테말라의 멘코스를 밟으면 긴 입국심사 행렬이 줄을 잇는다. 지겨운 시간 죽이기 끝에 내 차례가 되자 카키색 제복을 입은 콧수염 사내가 여권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어본다. “여행 목적은?” “티칼을 찾아서.” 쾅, 두말없이 스탬프를 찍고는 고개를 들어 빙긋이 웃으며 “피라미드엔 올라가지마”라며 손가락 짓을 한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땡큐”를 연발하고 마침내 과테말라로 들어갔다. 과테말라 국경마을 멘코스에서 탄 콤비는 지겨운 기다림 끝에 만원이 되자 마침내 출발이다. 멘코스를 벗어나자마자 흙먼지를 뽀얗게 날리며 산 넘고 물 건너 서쪽으로 달린다. 푹푹 찌는 날씨와 냉방이 안 되는 고물차에 땀 냄새로 범벅이 된 정원초과 승객들……. 차라도 옆으로 지나가면 노란 흙먼지를 꼼짝없이 뒤집어 써야한다. 한 시간 반쯤 달려 엘 크루세에 도착, 거기서 다시 차를 갈아타고 북쪽으로 한 시간쯤 달려가면 울울창창한 열대 정글에서 원숭이 울음소리 요란하게 들리고 앵무새가 날아오르는 티칼(Tikal)에 닿는다. 태양이 떠오르는 뚜껑처럼 정글 위에 피라미드가 우뚝 솟아올랐다. 울울창창한 정글이 하늘을 덮어 티칼의 오솔길은 한낮에도 어둑어둑하다. 이름 모를 온갖 새들이 제각각으로 울다 때로는 오색찬란한 모습을 살짝 보이며 후두둑 날고, 원숭이들은 겁 없이 길 앞에 어슬렁거리고, 나무 개구리들은 새소리에 질 새라 합창을 한다. 싱그러운 정글의 산소는 모세혈관까지 스며든다. 화려했던 마야(Maya)문명의 꽃, 티칼. 티칼은 도대체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사라졌을까? 치첸이차, 욱스말, 코판 같은 마야유적이 멕시코와 중미 곳곳에 산재해 있지만 티칼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티칼은 울창한 정글 속에 파묻혀 있다. 과테말라는 적도에 가깝지만 국토의 대부분이 고원지대라 사시사철 시원하다. 그러나 티칼이 자리잡은 북동쪽은 저지대로 전형적인 열대우림 지역이다.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자랑하던 마야왕국 티칼은 왜 시원하고 기름진 땅인 고원지대를 외면하고 푹푹 찌는 더위와 맹수, 모기, 독충이 우글거리는 이곳에 자리를 잡았을까? 해답은 단 하나, 이곳엔 납유리의 일종인 플린트가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플린트는 철의 제련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티칼이 마야 최강의 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제철이다. 이들은 온갖 철제 연장을 만들어 이웃나라에 팔아 부를 축적했다. 거대한 피라미드와 4천여 개의 유적 간직 티칼의 역사는 기원전 70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러나 세계 최대 마야유적인 현재의 티칼이 축조된 것은 예수가 태어난 기원과 동시대를 이룬다. 기원 250년 경, 재규어의 발톱이라 불리던 약스왕은 현재의 멕시코 중부까지 광대한 영역을 정복하고 다스렸다. 그 당시 전쟁 무기는 몽둥이와 돌멩이가 전부였지만 티칼 왕국의 군대는 날렵한 창과 칼로 무장해 적을 완파했다. 하지만 6세기 중반엔 티칼의 철 제련법을 익혀 칼과 창을 만든 동쪽의 이웃나라 카라콜이 티칼의 전쟁법을 전수 받아 티칼 왕국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티칼은 7세기 말엽까지 카라콜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 8세기초 다시 나라를 찾은 티칼의 문더블콤왕이 티칼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현재 남아 있는 티칼 왕국의 유적 규모는 엄청나다. 575m2에 50m를 육박하는 피라미드 옆으로 4천여 개의 유적이 산재해 있어 그 옛날 화려했던 티칼 왕국의 위세를 말해준다. 대광장의 쌍둥이사원은 위대했던 티칼왕 문더블콤의 묘지다. 44m 높이의 석조물 속에 180여 조각의 옥과 90여 개의 뼈 조각 상형문자, 그리고 진주와 가오리 척추에 사람의 피로 그린 그림……. 남서쪽 엘문도 페르디도엔 하늘을 찌르는 피라미드가 정글을 뚫고 우뚝 솟아 있다. 이 피라미드엔 가파른 돌계단이 천국으로 오르는 길처럼 상층부로 이어진다. 계단 앞엔 경고판이 붙어 있다. “계단을 오르지 마십시오! 경고를 무시한 미국인 두 명이 추락사했음!” 그제야 벨리즈에서 국경을 넘어올 때 콧수염 입국관리관이 했던 계단을 오리지 말라는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티칼 입구 광장에서 소형버스를 타면 티칼로 들어갈 때 거쳤던 엘크루세를 지나 한시간 반만에 플로레스(Flores)에 닿는다. 플로레스는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동서로 길게 누워있는 ‘라고데 페텐이차’ 라는 거대한 호수의 서남쪽 끝엔 ‘산타 엘레나’ 라는 도시가 호숫가에 앉았다. 이곳에서 호수 안으로 500m의 가느다란 제방 길을 따라가면 인구 2천 명의 섬, 플로레스가 나타난다. 그 옛날, 정복자 스페니시들이 휴양지로 만들어 놓은 이 섬은 스페인 별장 같은 예쁜 집들 사이로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엔 그림처럼 예쁜 수공예점 기념품가게, 술집, 식당, 작은 호텔들이 늘어서 있다. 그루타스 동굴, 공예촌 그리고 산타 엘레나 동쪽 10km에 있는 아르카스 정글에 가면 콩고잉꼬 앵무새와 거미원숭이, 킨카주곰, 큰 소리를 지르는 하울러원숭이, 그리고 운이 좋으면 재규어도 만날 수 있다.
지구 꼭대기에 서다 끈질긴 겨울의 땅에 봄은 찾아왔.. 2004-06-18
정말 지루하게 기다렸다. 이따금 우리는 인내의 한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갔다. 그러나 다행히 르노 세닉 RX4는 되살아났다. 화이트호스에 살고 있는 아일랜드 정비사 마크 오브라이언과 르노의 대담한 지원 덕택이었다. 프랑스에서 갓 도착한 새 엔진이 처음 굉음을 울리 때 벅찬 감격을 억누를 수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그 엔진의 감미로운 멜로디를 거의 잊고 있었다. 눈신을 신고 가루눈 속을 멀리 걸어다녔던 것도, 개썰매를 타고 달리던 기억도 사라진 뒤였다. 그러다가 다시 핸들을 잡고 충실한 우리 짐말을 몰고 나서게 되었다. 처음 몇 킬로미터를 달린 뒤 좋은 소식이 들렸다. 유콘강에 드디어 봄이 왔다는 것이다. 6개월 동안 이 땅을 휘어잡던 눈, 진눈깨비와 영하 20℃에서 40℃를 오르내리던 기온이 사라지고 포근한 봄이 찾아왔다니! 겨우내 강 위에 엉켰던 얼음판에서 큼직한 얼음조각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얼음은 녹아 내리고 깨어지며 봄을 알리고 있었다. 흐르는 강물과 영롱한 색깔이 돌아오고 있었다. 유콘 지방 주민의 모습도 변해 갔다. 느긋하고 큼직한 미소가 차차 돌아오고, 오랜 겨울에 지친 얼굴도 되살아나고 있었다. 낮의 길이도 변했다. 4월 중순이지만 오후 9시 30분까지 해가 지지 않았다. 유럽에서 해가 가장 긴 여름철과 같았다. 날마다 낮이 6분씩 길어졌다. 그러니까 1주일에 45분이었다. 엄청난 변화였다. 또 다시 덮친 겨울 유콘 지방에 여름 같은 날씨가 찾아왔다. 되살아난 세닉을 시험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화이트호스에서 남쪽으로 처음 나타나는 큰 도시가 알래스카 하이웨이를 따라 1천500km 떨어져 있었다. 그처럼 멀리 내려가기에 앞서 우리는 그 일대를 돌아보기로 했다. 유콘 지방 북동쪽에 케노 시티라는 작은 광산도시가 있다. 케노란 카지노에서 벌이는 게임 이름과 같다. 우리는 그 도시를 향해 출발했다. 비포장도로를 30km쯤 달리자 영화에나 나옴직한 고장에 들어섰다. 가문비나무숲에 덫사냥꾼들의 오두막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술집과 식료품상의 목조건물이 중심가 양쪽에 늘어서 있다. 색깔이 휘황한 건물 전면에 간판이 자랑스럽게 나붙어 있다. 훨씬 아래로 내려가자 광산박물관의 우중충한 건물이 나타났다. 근처에서 땅을 파서 횡재를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기념물이었다. 말과 마차가 없는 것이 영화와는 다른 점이었다. 그러나 케노의 마술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밤을 세우고 새벽에 일어나 보니 새로 온 눈이 융단처럼 덮여 있었다. 온 도시가 10cm의 눈을 뒤집어썼다. 전날 반소매를 입었던 우리는 스노부츠, 파카와 겨울모자를 다시 끄집어냈다. 함박눈이 세차게 내렸다. 무겁고 축축한 눈이었다. 나이 지긋한 덫사냥꾼이 세닉을 녹이는 우리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소리쳤다. “유콘에 온 걸 환영하오!” 북극권으로 올라가다 갓 내린 눈구덩이를 간신히 피하면서 케노를 떠났다. 그런데 같은 날 도슨시에 갔더니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사이 몇 킬로미터를 달려왔는데 봄이 되돌아왔다. 쓰고 있던 비버모자가 너무 더웠다. 앞으로 3일간 날씨가 쾌청하다는 일기예보가 흘러나왔다. 유명한 뎀프스터 하이웨이를 달려볼 황금의 기회였다. 도슨과 이누비크를 연결하는 750km의 비포장도로. 이누비크는 북극해의 바닷가에 있는 이누이트족의 땅이다. 이때는 어디서나 운전하기 좋다는 말을 듣고 운을 시험하기로 했다. 2004년은 이 신비로운 도로를 건설한 지 꼭 25주년 되는 해다. 놓쳐서는 안될 뜻깊은 기회였다. 알래스카를 돌아본 뒤 우리는 이런 여행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연료탱크를 가득 채우고, 25X짜리 연료통을 준비한 뒤 정북으로 차머리를 돌렸다. 아침 햇살을 반사하는 눈 덮인 산봉우리에는 아직도 안개 너울이 걸려 있었다. 우람한 소나무숲의 초록은 흰산과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었다.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이기도 했다. 냇물은 김을 내뿜고, 쌓인 눈더미 한복판을 뚫고 흘렀다. 그러다가 차츰 고도가 높아지자 설경이 세상을 덮었다. 해발 1천330m의 툼스톤 산꼭대기에 오르자 다시 한겨울이 우리를 에워쌌다. 지평선까지 뻗어나간 광막한 산줄기가 바로 아래 펼쳐졌다. 광대무변한 자연경관이 우리를 압도했다. 마치 지구의 정상에 올라온 듯 어디를 둘러보아도 눈길을 멈출 수 없었다. 주위 1천km의 땅에는 단 한 사람도 살지 않는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크든 작든 마을은 없었고, 여기저기 덫사냥꾼의 오두막이 몇 채 있을 뿐이다. 북쪽 저 멀리 산줄기가 평평해지면서 광막한 북극 고원을 이룬다. 덫사냥꾼 피터와 실베인 260km를 달리자 주위 풍경이 달라졌다. 흰눈 속에 사람의 흔적이 있었다. 천막 하나. 이곳에서는 ‘탐광꾼’ 천막이라는 그런 천막이었다. 19세기 말 골드러시 시절에 개척자들이 쓰던 것과 같았다. 잘라 묶은 가느다란 나무줄기에 희고 큼직한 캔버스를 덮어씌웠다. 입구에는 마치 환영단을 떠올리는 눈신 몇 켤레가 놓여 있었다. 캔버스 꼭대기에서 연기가 천천히 솟아올랐다. “들어오시오!” 얇은 칸막이 너머로 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머리를 쑥 디밀었더니 매트리스에 누워 있는 피터와 실베인이 눈에 띄었다. 그들 둘레에는 온갖 장비가 흩어져 있었다. 난로와 솥, 식료품이 널려 있고, 장작난로 위의 빨랫줄에는 옷가지가 걸려 있었다. 굴뚝이 캔버스를 뚫고 밖으로 솟아올랐다. “들어와서 함께 커피나 한 잔 합시다. 낮잠을 자다가 방금 깨어났소.” 희끗한 수염이 덥수룩한 피터가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그럴 것 같지 않았지만 피터는 덫사냥꾼이었다. 겨울철에 그는 훨씬 남쪽에 있는 통나무 오두막에서 산다. 그곳에서 덫을 놓고 살았다. 그러나 두어 주 전부터 봄기운이 돌자 퀘벡에서 온 숲 속 사람과 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함께 천막을 쓰며 숲 속 생활을 했다. 북극권의 고독 속에서 불편한 생활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나 피터와 실베인은 이런 생활을 무척 좋아했다. 그들이 떠난 남쪽으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들의 운명은 외로이 자연 속에 묻혀 사는 이곳에 있다고 굳게 믿었다. 고된 생존경쟁을 하면서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고 한다. 이처럼 하얀 사막 한복판에서 축복의 황홀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음이 녹아 앞길 막히고 덫사냥꾼 친구들과 헤어진 뒤 계속해서 정북을 향해 달렸다. 그들의 천막에서 200km 가량 달리자 북극권과의 상징적인 경계선이 나타났다. 우리는 잠시 꿈쩍도 않고 서 있었다. 프랑스를 떠난 뒤 이 경계선을 건너는 것이 이번으로 3번째였다. 처음에는 2000년 7월 노르웨이 북쪽, 2번째는 지난 여름 알래스카 북쪽끝 프루드호 베이에 가는 길이었다. 정북을 향해 계속 달렸다. 그러나 포트 맥퍼슨을 지난 뒤 곧 길이 막히고 말았다. 마지막 300km 저쪽에 있는 이누비크로 가는 길에는 얼음다리 3개를 건너야 매킨지강의 하류 삼각지를 가로지를 수 있다. 그래서 이 길은 겨울에만 제구실을 할 수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도로 관리소가 건너가지 못하게 길을 막기로 했다. 따라서 앞으로 한달 남짓 동안 이누이트시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곳으로 가는 페리는 얼음덩어리가 녹기 전에는 다니지 못한다. 결국 끈질긴 겨울의 땅에서 봄마저 우리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남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확실한 징조였다. 광막한 북극권에서 6개월을 보낸 뒤 떠나기로 결심했다. 우리 앞에는 대평원과 퀘벡이 가로놓여 있었다.
대족석각(大足石刻) 중국 불교예술의 결정체 2004-06-15
중국의 불교 석각예술은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불교가 흥한 남북조 시대에 그 유명한 운강과 용문석굴이 만들어지고 당과 송나라를 거치면서 그 제작기법은 점차 세련되게 다듬어져갔다. 송나라 때의 석각예술은 중국 특유의 섬세하고 사실적인 성격이 특징. 대족의 석각들은 대부분 당나라 말기에서 5대10국, 송나라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송 미인풍의 불상조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족(大足)은 중경에서 160km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로 아직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곳의 불교석각만큼은 중국 3대 석굴로 꼽히는 용문이나 운강, 돈황보다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대족이라는 이름은 부처의 족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마을 주변 산에는 약 5만여 점의 크고 작은 조각들이 남아 있다. 이 중에는 유교나 도교와 관련된 석각도 있지만 대부분은 불교에 뿌리를 둔 것들로 불만(佛灣)이라고 하는 얕은 마애석굴에 조각되어 있다. 송대 석각의 전형 보여주는 북산 대족석각은 지난 9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한 곳에 몰리지 않고 사방에 퍼져 있어 돌아보는 것이 쉽지는 않다. 석각 분포를 보면 대족 북서쪽의 북산(北山), 남서쪽의 남산(南山)과 석적산(石篆山), 묘고산(妙高山), 동쪽의 탑이산(塔耳山), 동북쪽의 보정산(寶頂山) 등 곳곳에 널려 있다. 이처럼 산재한 대족석각을 짧은 시간에 모두 돌아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 불교예술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운 북산과 보정산 석각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좋다. 대족 시내에서 2km 거리에 있는 북산에는 약 500m에 걸쳐 290여 가지에 이르는 불교 석각군이 남단과 북단으로 나뉘어져 있다. 시내에서 북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북산이 나온다. 완만한 계단이 놓인 산을 따라 다시 15분 정도 걷다보면 거대한 석각군이 몰려 있는 것이 보인다. 북산 석각은 대부분 송나라 때 작품이지만 3, 5, 9, 10, 51호 등 몇몇 석각은 당 말기의 것들이고, 이 중 51호 석각인 삼세불(三世佛)은 당나라 때 작품들 가운데서 최고의 수작으로 꼽힌다. 당나라는 중국역사상 영토나 문화적인 면에서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인 만큼 이 때의 석각들에는 장중하고 단단한 느낌이 감돌고, 송대에 만들어진 조각들은 세밀하고 우아한 면모가 돋보인다. 52호 석굴은 감실의 삼존상―아미타, 관음, 그리고 지장보살―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편성과 당대 특유의 중후함, 송대의 온화함과 현실감을 한데 품고 있어 당에서 송으로 넘어가는 중국 조각예술의 흐름을 잘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북산 석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136호와 155, 245호 석굴을 들 수 있고 그 중에서도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상을 그린 136호는 예술성이 매우 뛰어난 걸작으로 꼽힌다. 136호 석굴은 높이 4m, 내부 깊이만 6m에 이르는 큰 규모로 정면 벽에는 보리수 아래에 있는 석가모니가 새겨져 있고 주위 벽에는 문수, 보현, 관음보살과 역사상 등이 조각되어 있다. 이런 조각들은 대부분 크기만 2m가 넘는 것들로 하나같이 여인의 요염함이 깃들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저속한 느낌을 찾아볼 수 없다. 매끈하게 처리된 피부와 조각상 전체에서 느껴지는 시원시원함은 송대 조각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들. 원래 북산에는 1만여 개가 넘는 불상들이 조각되어 있었다고 하나 세월이 흐르면서 상당수가 파손되었고 그나마 보존 상태가 괜찮은 것들은 철창으로 막아놓아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다. 대족석각의 백미로 꼽히는 보정산 북산과 더불어 가장 많은 석각이 남아 있는 보정산은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15km 정도 떨어져 있다. 보정산 석각은 당 말기부터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조각들은 모두 남송 시대인 1179~1245년에 완성된 것이다. 보정산은 크게 대불만(大佛灣)과 소불만(小佛灣)으로 나뉘는데 중요한 석각은 대부분 대불만에 자리하고 있다. 말발굽 모양을 한 15~30m 높이의 절벽에 크고 작은 31개의 조각군이 형성되어 있고 2개는 석굴, 나머지는 얕은 마애굴이다. 보정산 석각은 현재 중국을 대표하는 대형 석굴 중에서 거의 마지막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무계획적인 북산과 달리 세밀하고 교묘하게 배치되어 있고 화려하며 웅장한 규모도 매력적이다. 보정산 석각은 그 소재가 다양하고 느낌도 강렬해 대족석각의 백미로 불린다. 석각의 내용은 주로 불교경전에 나오는 것으로 조상(彫像)들은 매우 생동감 있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나씩 살펴보면 육도윤회, 열반전(涅槃傳), 보은경변(報恩經變), 부모은중경변, 지옥변상, 천수관음(千手觀音) 등의 경변석화로 벽면에는 본존을 크게 드러내고 좌우의 여러 단에 각 이야기에 등장하는 군상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각 조상들은 남송 특유의 섬세함과 사실성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어 감탄을 절로 자아낸다. 보정산 석각 입구에서 관광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분노한 표정을 담고 있는 호법신상군. 절벽에 나란히 조각된 호법신상들은 밀교(密敎)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일반적인 선종의 호법신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밀교에서는 관음상을 주로 관능적이고 여성적으로 표현하고 호법신상은 남성적이며 분노에 찬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밀교의 호법신상이 석각 입구에 있기는 하지만 수문신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호법신상 다음에는 육도윤회(六道輪回)를 표현한 석상이 등장한다. 이 석상은 무상대귀(無常大鬼)가 커다란 바퀴를 입으로 물고 두 팔로 받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바퀴는 고해(苦海)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바퀴 한가운데에는 사람이 앉아 있고 그의 가슴에서 나온 빛에 의해 바퀴는 다시 여섯 갈래로 나뉘어진다. 각 갈래마다 작은 동그라미가 있고 그 안에는 부처나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는 ‘만물의 시작은 심장에 있고 심장이 일체를 말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작은 동그라미는 모든 사람이 부처나 보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육도윤회도 옆에 있는 3개의 커다란 불상조각은 화엄삼성상(華嚴三聖像)으로 보정산 석각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불상의 표정은 부드러우면서도 진지하고, 드리워진 가사는 섬세하고 힘차다. 3개의 불상 중 문수보살의 손에는 탑이 놓여 있다. 책을 들고 있는 다른 지역의 문수보살상과 달리 대족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모습이다. 단순한 진리 일깨우는 부모은중경변 화엄삼성도 옆에는 기념품이나 책자를 파는 상점이 마련되어 있고 그 안쪽에는 1천 개의 손이 조각된 황금빛 천수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조금 어지럽게 느껴지는 이 불상은 송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역시 보정산 석각을 대표하는 조각 중 하나다. 보정산에서 가장 유명한 석각 중 하나가 석가열반상(釋迦涅槃像)이다. 높이 5m, 길이 31m에 이르는 와불로 보정산 석각에서 가장 규모가 커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 이 석상은 석가모니가 인도의 쿠시나가르에서 열반에 든 것을 묘사한 것으로 와불 주변에 석가모니의 제자들이 도열해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열반상 바로 앞에는 꾸불꾸불한 도랑이 파여 있는데, 이는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많은 제자들이 그의 뒤를 따르려하자 부처가 자신의 손가락으로 길에 금을 그어 따라오지 못하게 했다는 일화를 표현한 것이다. 석가열반상을 지나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한없이 큰 은공을 묘사한 부모은중경변(父母恩重經變)이 눈길을 끈다. 태어날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입까지 비뚤어질 만큼 큰 출산의 고통을 참고 있는 임산부나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어머니, 자식을 품에 안고 누워 있는 여인상 등 주로 어머니의 은덕을 묘사하고 있다. 부모에 대한 효가 땅에 떨어져 버린 요즘 같은 시대에 이 석각들이 의미하는 바는 종교적 가치나 예술적 상징성 그 이상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보정산 석각의 마지막 즈음에 자리한 지옥변상(地獄變像)에는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이 많이 묘사되어 있다. 나쁜 일을 저질러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이 창에 찔리는 모습이나 두 다리가 잘린 사람, 타오르는 불 속에 던져지는 사람들, 혀가 뽑히는 장면 등이 무척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어 소름이 끼칠 정도. 석각에 새겨진 ‘나쁜 일을 하거나 부모에게 불효하면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글귀나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죄짓고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시내에서 남쪽으로 2km 떨어져 있는 남산 석각은 북산이나 보정산에 비해 규모가 작고 볼품도 없지만 두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도교 석각을 찾아볼 수 있다. 대족의 석각들은 단지 예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면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교훈과 깨우침을 주어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대족석각은 세월이 지나면서 과거의 아름다움이 많이 퇴색되었지만 평범하고 단순한 진리조차 망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깨우침을 주기 위해 오늘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족석각 여행정보 ● 항공: 대족과 가장 가까운 공항은 중경과 성도에 있다. 중경은 아시아나 항공이 매주 월, 수, 금요일에 운항하고 성도는 화, 목, 일요일에 연결된다. 중경에서 대족까지는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버스가 있고 약 2시간 걸린다. 성도와 대족 사이에는 매일 6번씩 직행버스(4시간 소요)가 오간다. ● 숙소: 대족에서 외국인이 숙박할 수 있는 호텔은 두 곳밖에 없다. 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은 대족빈관(大足賓館, ☎ 023-4372-1888)으로 2인실을 298~498위엔(元)이나 할인 받을 수 있다. 대족빈관보다 싼 곳에 머물고 싶다면 우정대주점(郵政大酒店, ☎ 023-4372-4200)을 이용하면 된다. 버스터미널에서 걸어 5분 거리에 있고 시설도 깨끗한 편이다. 2인실이 100~128위엔, 3인실은 158위엔이다. ● 먹거리: 터미널에서 나와 왼쪽으로 꺾어지면 바로 앞에 조형물이 서 있는 사거리가 보인다. 조형물 오른쪽에 있는 도로(중경 방향)에 저녁때면 많은 식당들이 문을 연다. 아주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어 식사하기는 무척 편하다. 이밖에 대족빈관 앞 보행자거리에도 밤이면 골목골목마다 노천식당이 많이 들어선다. ● 인터넷: 대족빈관 비즈니스센터에서 인터넷을 쓸 수 있다. 사용료는 1분에 0.6위엔(약 90원)으로 조금 비싼 편. 대족빈관 앞 보행자거리에도 싼값에 쓸 수 있는 PC방이 여럿 있다. PC방은 1시간에 2위엔으로 값은 싸지만 한글 프로그램이 깔려 있지 않아 다운로드받아 써야 한다. ● 여행요령: 대족석각은 한 곳에 몰려 있지 않고 사방에 퍼져 있어 돌아보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볼 만한 것들은 모두 북산과 보정산에 몰려 있으니 두 곳에만 집중하는 것도 좋다. 보정산 석각이 가장 아름다우므로 아침 일찍 북산 석각을 들른 뒤 오후에 보정산 석각을 차분히 살펴볼 것을 권한다.
돈황(敦煌) 사막 속의 오아시스 2004-06-10
혜초는704년(성덕왕 3년) 신라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출가한 스님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광조우(廣洲)에서 약관 16세에 배를 타고 천축국(지금의 인도)으로 구도여행을 떠났다. 그는 4년 동안 천축국의 동서남북을 고행하다가 남천축국의 여행길에서 고향에 대한 향수를 오언시로 읊어냈다. 날 밝은 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 뜬 구름은 너울너울 고향으로 돌아가네 나는 편지를 봉하여 구름 편에 보내려 하나 바람은 빨라 내 말을 들으려고 돌아보지도 않네 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고 다른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 해가 뜨거운 남쪽에는 기러기가 없으니 누가 내 고향으로 나를 위하여 소식을 전할까? 혜초는 천축국에서 돌아올 때 육로를 택했다. 지금의 캐시미르 지방에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북부를 지나 중앙아시아를 거쳐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돈황까지 왔다. 그는 돈황에 머무르며 천축국 여행기를 쓴다. 그것이 바로 ‘왕오천축국전’이다. 천 개의 부처를 모신 명사산 천불동 중국의 북경에서 서쪽으로 직선거리 4천km 지점, 감숙성 서북쪽 황량한 사막 속에 돈황(敦煌)이라는 오아시스가 자리잡고 있다. 기원전 한무제 때부터 당, 송, 원을 거치며 이곳은 해상교통이 열리기 전까지 서역으로 가는 대상로의 길목이었다. 중국 본토의 비단, 도자기, 비취 등의 귀중품이 서쪽으로, 서쪽의 명마(名馬) 보옥, 전포 등은 동쪽으로 낙타 등에 실려 인도, 이란, 터키, 유럽까지 건너갔다. 훗날 우리는 이 길을 실크로드라 이름 붙인다. 낙타 등에 비단을 싣고 서역으로 가던 대상들은 이곳 돈황에서 며칠을 쉬며 짐을 정비하고 낙타에게도 휴식을 갖게 하고 식량을 비축하며 정보를 얻었다. 실크로드는 동서양의 상품만 오간 것이 아니다. 그 길을 따라 문명과 문화, 종교도 널리 전파되었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문화가 들어온 것도 이 길을 통해서다. 8세기 ‘왕오천축국전’을 쓴 신라고승 혜초도 인도에서 돌아올 때 천산산맥을 넘어 돈황을 거쳐갔다. 기나긴 세월을 거치며 수많은 고승들은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돈황에서 동남쪽으로 25km쯤 되는 곳에 명사산이 자리잡고 있다. 이 산은 모래산이지만 동쪽 면은 절벽으로 이어지고 그 아래쪽으로는 실개천이 흐른다. 이 절벽을 일컬어 천불동(千佛洞)이라 부른다. 천 개의 부처를 모시는 석굴이 있다는 뜻이다. 멀리서 보면 1.6km나 이어진 절벽이 벌집처럼 석굴로 수놓아져 있다. 이것이 바로 세계적인 문화유산, 돈황의 막고굴인 것이다. 신비함, 경이로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많은 수수께끼, 끝없이 이어 지는 황당무계한 이야기, 화려한 채색벽화와 무수한 조상들로 돈황은 사막의 전설이 되고 있다. 웃지 못할 과거를 간직한 막고굴 19세기말 청나라가 기울자 서구의 열강들은 동양의 거대한 땅 중국을 먹으려고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들었다. 왕원록은 호북성 마성현 출신으로 숙주순방군 병졸로 있다가 제대하고 나니 해먹을 일이 없어 괴상한 옷을 걸치고는 자칭 도사가 되었다. 엉터리 왕도사는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 돈황으로 흘러들어 왔다. 돌아다니는 것도 지쳤는지 안주할 거처를 찾다가 그는 명사산 동쪽 절벽에 오가는 사람 없어 폐허로 남아 있는 수많은 동굴 중 비교적 상태가 괜찮은 동굴 하나를 골라 자리를 잡았다. 그 속에서 밥을 끓여 먹으며 겨울을 나기 위해 동굴 속 여기저기를 손질하다가 그는 입구 오른쪽이 터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 밑에 있던 모래를 치우니 이상한 소리를 내며 벽이 점점 갈라졌다. 왕도사는 이상한 생각에 귀를 벽에 대고 두드렸는데 그곳에서 빈소리가 났다. 벽을 헐자 벽 속에서 조그만 문이 나타나 그 문을 열어보니 안에는 수많은 경서와 문서, 회화 두루마리가 한방 가득 차 있었다. 왕도사는 깜짝 놀라 몇 권의 경서를 들고 돈황의 지사에게 보였지만 그가 별 관심을 나타내지 않자 석실을 다시 봉해 버렸다. 이때는 중국을 먹기 위해 서구 열강들이 중국의 변방으로 탐험대를 보내던 때다. 1905년 10월 러시아의 오브루 체프가 소문을 듣고 왕도사를 찾아와 하찮은 선물을 주고는 두 보따리의 경서를 가져갔다. 영국 탐험가 스타인은 1907년 봄 왕도사를 꼬셔 몇 푼의 돈을 주고 경서며 회화 25상자를 싸서 런던으로 보냈다. 같은 해 겨울, 인도차이나를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가 베트남 하노이에 있던 고고학 교수 펠리오를 돈황으로 보냈다. 그는 한문과 산스크리트어 등을 해독할 수 있었는데 왕도사의 굴에서 일일이 체크해 알짜배기들만 29상자를 골라 프랑스로 실어보냈다. 그 속엔 세계적 보물인 우리의 혜초스님이 쓴 ‘왕오천축국전’도 있었다. 왕도사는 펠리오가 던져준 얼마의 돈을 챙겼다. 펠리오의 돈황고서 발견은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돈황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생겨났다. 그제서야 돈황의 경서며 회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청나라 조정은 아무리 나라가 기울어도 이것만은 챙겨야 되겠다고 생각해 나머지를 북경으로 운반했다. 그러나 그중 쓸만한 것은 왕도사가 모두 빼돌린 후였다. 북경으로 운반하던 관리도 얼마를 빼돌렸다. 1912년엔 일본의 오오다니 탐험대가 왕도사가 숨겨둔 것을 사갔고 1914년엔 영국의 스타인이 다시 와서 싼값에 왕도사로부터 다섯 상자를 챙겨 갔다. 중국은 현재도 스타인, 펠리오, 오오다니를 중국 문화재 3대 도둑이라 부른다. 1917년 돈황의 막고굴에서는 또 한번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난다.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하자 전쟁에 진 러시아 병사 55명이 도망치다 이곳에 피신해 막고굴에서 불을 피워 끼니를 때우고 벽화 속의 금박을 벗겨내 정제를 했다. 지금, 사막의 오아시스 돈황은 웃지 못할 역사를 뒤로 한 채 그 신비스러운 이름으로 세계 각국의 여행객을 끌어 모은다.
눈보라 헤치며 알래스카를 달리다 ‘2004 로키.. 2004-05-19
국내 탐험여행 전문가 8명이 2003년 11월 27일∼2004년 3월, 120여 일간 쌍용 무쏘 스포츠를 타고 ‘로키-안데스 아메리카 대탐험’에 나섰다. 알래스카 페어뱅크스에서 시작해 캐나다∼미국∼멕시코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의 최남단 칠레의 푼타아레나스에 이르기까지 판아메리칸 하이웨이 7만8천800km를 달리는 대장정이다. 탐험대(팀장 함길수)는 쌍용이 협찬한 무쏘 스포츠 2대를 타고 15개국 100여 개의 도시를 누볐다. 그 여정을 6회로 나누어 싣는다. 지난 10여 년간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했던 탐험여행 동지 8명이 다시 뭉쳤다. 아메리카 대륙의 등뼈 구실을 하는 로키와 안데스 탐험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2004, Rocky-Andes America’ 대탐험은 15년간 탐험여행을 해온 필자에게도 녹록치 않은 도전의 대상이었다. 2003년 11월 27일 SBS 방송팀과 함께 알래스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앵커리지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항공화물로 미리 보낸 무쏘 스포츠 두 대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통관수속을 마치고 엔진 시동을 걸었다. 드디어 출발이다. 북극권에서 한국 젊은이 만나 밤새 이야기 나눠 11월 말 알래스카의 주도 앵커리지는 며칠 전 내린 폭설로 눈꽃 세상이었다. 수은주는 영하 15℃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다. 게다가 첫날부터 대원들의 팀워크와 화합이 최상이었다. 눈 덮인 도로를 차들은 스노 체인도 없이 잘 달리고 있었다. 타이어에 스파이크가 달려 있어 시속 80km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무쏘 스포츠는 서울서 준비해 온 스노 체인을 걸고 시속 80km로 달렸다. 도중에 체인에 이상이 생겨 도로 한 켠에 정차하고 있는데 뒤차가 우리의 정치신호를 못 보고, 뒤늦게 피하다 눈에 처박히고 말았다. 대원들은 무척 놀랐으나 현지인들은 별것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체인을 정비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하지만 조금 전 사고로 인해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알래스카 중부 도시 페어뱅크스로 방향을 잡고, 개썰매의 고장인 와실라를 향해 출발했다. 도로는 생각보다 잘 포장되어 이었다. 앵커리지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북미 최고봉 매킨리. 대원들은 앵커리지에서 승용차로 2시간 30분 가량 달려 북쪽의 토킷나(Tolkeetna)시에 도착, 8인승 경비행기에 올라 매킨리의 만년설을 향해 쌍발기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해발 6천194m의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는 인간을 압도하는 위용을 자랑한다. 비행기의 고공비행이 시작되었다. 빙하 지역을 지나자 이내 깎아지른 암벽과 깊이 1천260m의 빙하로 채워진 계곡, 디날리 국립공원을 감상하며 신비의 세계로 돌진한다. 대원들은 6천m 상공에서의 쾌감과 아찔함을 동시에 느끼며, 두통에 구토를 하기도 했지만 필자는 북미 최고봉의 짜릿한 감동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매킨리를 출발하여 알래스카 제2의 도시로 향하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눈보라 치는 빙판길의 앵커리지 페어뱅크스 구간은 처음 찾은 대원들에게는 가혹한 시련이었다. 페어뱅크스의 도착과 동시에 다음날 진입할 북극권(Arctic Circle)으로의 비행 일정을 체크하고 체나 핫 스프링스로 떠났다. 이곳은 알래스카 최고의 온천과 오로라 캠프, 개썰매 및 경비행기 투어로 유명하다. 쌍발기 프로펠러의 둔탁한 엔진 소리와 함께 탐험대는 새하얀 천지를 박차고 올라 북극으로 기수를 돌리고 있었다. 신이 빚어 놓은 동토의 대지를 한 마리 새가 되어 날고 있었다. 알래스칸 오일 파이프라인이 동토 위를 지나고 있다. 북쪽으로 기수를 돌려 날아간 지 1시간 반 만에 드디어 북극권 라인에 자리한 원주민 마을 비버크릭 빌리지의 공항 활주로에 사뿐히 랜딩했다. 강한 바람과 한기가 살을 애는 듯 했다. 대원들은 원주민 클리포드 애덤스의 뜨거운 환대를 받으며 마을로 향했다. 70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우체국, 학교, 마을회관, 공동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빠짐없이 들어서 있다. 최초로 이 마을에 이주한 일본인 프랭크 야스다가 살던 통나무집을 지나 클리포드의 아담한 집에 도착한 탐험대는 작은 오두막집에 들어서서 영하 40℃의 추위에 언 몸을 녹였다. 야스다는 1년에 30여 마리의 곰을 잡고, 연어와 무스 사냥으로 겨울 식량을 준비한다고 한다. 다음날 야외 온천과 얼음 동굴을 둘러보고, 점심식사를 하려는데 한국의 젊은이들이 서빙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놀라움과 반가움이 앞섰다. 그 날 밤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한국의 젊은 이상은 패기에 넘쳐 있었다. 우리는 김치찌개를 앞에 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델타 정션에서의 밤샘은 탐험대의 일상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내륙으로 들어오면서 추위는 더욱 심해졌다. 어둠이 내리는 오후 4시를 기점으로 영하 30℃를 오르내리는 혹한 때문에 자동차 동파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무쏘는 튼튼한 벤츠 엔진을 얹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짐짓 위로하며 잠을 청했다. 걱정했던 대로 이른 새벽 엔진이 멈추어 있었다. 여러 차례 시동을 걸어 보았지만 심장은 살아나지 않았다. 엔진에 따스한 이불을 덥고, 오래 예열을 한 다음에야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은 일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마의 삼각지대인 알래스카-캐나다 국경지대와 캐나디언 로키의 전초기진인 밴프, 제스퍼 구간의 결빙도로 탈출 드라이브가 시작되었다. 도로는 얼어 있고, 포장도로의 아스팔트 구간이 나타나면 블리자드가 몰아치곤 했다. 4WD로 전환해 시속 80km 정도로 달려야 했다. 이따금 오가는 거대한 유류 수송트럭들과 화물트럭이 눈보라를 일으켜 시야를 가렸다. 눈보라 속에서 촬영을 마치고 방송팀이 탄 2호차 안데스가 시속 100km 이상의 속력을 내면서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2호차가 시야에서 벗어났지만 빙판과 겹겹이 쌓인 눈 탓에 추격이 만만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2호차가 눈밭으로 굴러 버렸다. 도로 밖으로 굴러 떨어진 차를 보자 숨이 막혔다. 우선 대원들을 안심시키고 스노 체인을 걸어 견인을 시도했다. 수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차를 끌어 올리기에는 힘이 부쳤다. 포기하려는 순간 하이웨이 제설차가 우리의 차 앞에 멈추어 섰다. 체인을 건 채로 무리한 탈출을 시도한 탓에 브레이크 장치에 고장이 났다. 결국 토잉카(래커)를 불러 왔던 길을 되돌아가 차를 정비해야 했다.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방송대원과 탐험대원간의 업무협조와 무전교신 체제를 전면 수정해야 했다. 캐나다 최북단 유콘 테리토리를 향해 전날 2호차의 브레이크가 고장난데다 밤새 기온이 영하 40℃로 내려가 무쏘 스포츠의 심장은 또 다시 멎어 있었다. 인근 정비소로 두 차를 견인해 녹인 후 시동을 걸기로 했다. 불을 뿜는 송풍기를 돌린 지 40여 분, 무쏘는 잠에서 깨어난 듯 힘찬 엔진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차 부속이 없어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로키 B팀과 합류할 때 수리하기로 하고 브레이크 오일만 점검한 채 캐나다의 유콘으로 부지런히 출발했다. 알래스카 미국 국경을 통과해 캐나다 국경 지대인 비버크릭을 지나 화이트호스로 향하고 있었다. 앨버타주의 캐나디언 로키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최소한 2박 3일간 논스톱 주행을 해야 한다. 오전에 차 정비로 시간을 허비한 탓에 오후 4시경 캐나다 국경을 통과했고, 화이트호스는 밤 10시는 되어야 도착할 듯 하다. 거리는 800km. 해가 너무 짧아 하이네스 정션(Haines Junction)에서 밤을 맞게 되었다. 클루아니 국립공원은 해발 790m의 마운틴 로간이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는 유콘의 장엄한 산악풍경을 만나게 되리라. 대자연의 가없는 원시성에 감탄하며 유콘을 떠나 브리티시 컬럼비아로, 다시 미국의 해안지대인 스케그웨이로 기수를 돌렸다. 예상에 없던 또 한 번의 미국 국경을 통과해 목적지 스케그웨이(Skagway)에 당도했다. 작은 항구 도시에서 이튿날 페리에 차를 싣고 이동하게 된다. 제넬른 헤이거의 호스텔에서 팀원들은 오랜만에 와인 잔을 기울였다. 제넬른의 도움으로 몬티라는 어부를 소개받고, 다음날 10시경 출항을 하기로 했다. 그의 배를 타고 알래스카의 빙하와 바다표범, 고래를 구경할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2시간 30분간 거친 바다를 달려 하인스에 도착했다. 북구의 그린란드와 같은 이국적인 풍경에 감탄하며, 대원들은 코스트 마운틴의 장엄한 노을빛 하늘과 가없는 바다, 하늘을 찌를 듯 한 장대한 산맥에 몰입되었다. 어부들의 밝은 웃음, 동토의 대양 위에 봄을 기다리며 희망을 노래하는 범선들…. 알래스카 남단 협곡에 자리한 이 작은 마을은 자유와 희망을 찾는 알래스카의 프론티어이자 대륙을 향한 염원이며, 바다를 향한 타오르는 눈빛이다. 바닷길 달려 캐나다 내륙 로키로 태평양과 바다 위 군도가 모여 또 하나의 알래스카를 탄생시켰다. 이름하여 알렉산더 아키펠라고.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와 태평양에 둘러싸인 알렉산더 군도는 신비의 섬 제국이다. 알래스카에서 미 내륙 본토 혹은 캐나다 내륙으로 진입할 때 고단하고 지리한 육로 대신 알래스카 마린 하이웨이(Alaska marine Highway)를 선택한다. 알칸(Alaskan highway)이 내륙의 동맥이라면 알래스칸 마린 하이웨이는 해양 하이웨이다. 사실 캐나다 유콘의 화이트호스를 출발해 와슨 레이크, 포트 넬슨, 도슨 크릭을 지나 캐나디언 로키의 심장 밴프로 향하는 길은 로키의 시작을 알리는 3천m급 산맥의 융기와 함께 한다. 고단한 여정과 험로, 그리고 지루한 환경은 로키를 만나기도 전에 사람을 지치게 한다. 우리 탐험대는 바다를 선택했다. 험준한 산맥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알래스카 대양의 찬 공기와 거친 바다가 그리웠다. 페리의 갑판에 무쏘 스포츠 두 대를 올렸다. 스케그웨이를 지나 주도 주노, 피터스버그, 렌젤에서 한고비 쉬고 나면 마린 하이웨이의 동맥 케치칸이다. 그리고는 내륙의 시작점인 프린스 루퍼트에 이르게 된다. 페리가 대양을 가르고 있다. 오전 8시 대원들과 페리의 갑판에 섰다. 캐나다 서부해안을 끼고 내려오는 해안도시는 포근한 풍취를 풍기고 있었다. 이른 아침 고기잡이 어선들의 분주함이 삶의 희열과 희망을 느끼게 한다. 또다시 대륙으로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해발 4천m급 로키가 기다리는 밴프로의 장도가 시작된 것이다. 알래스칸 마린 하이웨이를 오가는 페리 ‘타쿠’와 이별이다. 대양을 뒤로 하고 로키산맥을 향해 탐험대는 전진하기 시작했다. 프린스 루터트에서 프린스 조지를 향하여 힘차게 액셀을 밟는다. 장장 8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야 했다. 하지만 탐험대의 목표는 로키의 심장 제스퍼와 애드먼턴이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겨우 프린스 조지에 닿았다. 건강을 염려해 쉬어 가자고 했지만 대원들은 제스퍼까지 내처 달려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로키의 심장부를 향해 주유소도 모텔도 없는 무인지경의 옐로 헤드 하이웨이를 4시간 동안 달려 장쾌한 롭슨 마운틴을 넘자, 우리의 안식처이며 로키의 중심부인 제스퍼가 탐험대를 맞이했다. 이때가 새벽 3시. 무스와 여우, 산양 등 다양한 산짐승들의 밤 외출 장면이 눈 앞에서 연출되었다. 드디어 2004 로키 안데스 아메리카 대탐험의 핵심 줄기인 로키의 허리에 온 것이다. 영하 30∼40℃의 혹한으로 매섭던 알래스카를 출발한 지 12일 만이다. 로키의 등줄기를 타고 내려온 대원들의 투지와 노고에 새삼 감사를 했다. 장거리를 달려온 대원들은 낙원 같은 에드먼턴의 도시에서 그동안의 여독을 풀기로 했다. 휴식은 보다 나은 도약을 예고한다. 로키를 배경으로 한 에드먼턴 사람들의 삶은 어떠할까? 시도 때도 없이 눈이 오는 엄동설한에도 쾌적한 삶과 쇼핑이 가능하도록 상점과 호텔, 유원지, 인공호수까지 유리 돔으로 덮인 세계 최대의 몰을 탄생시켰다. 바로 ‘웨스트 에드먼턴 몰’(WEM)이다. 빙점 아래의 한겨울에도 WEM에서는 수영복을 입고 파도풀을 즐기고, 모형 잠수함과 돌고래쇼를 구경한다. 스케이트장에서 얼음을 지치다가도 해변이 그리워지면 비치의 파라솔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남국의 정취를 즐기기도 한다. 영하의 도시 에드먼턴에 이상향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마침내 파란 하늘이 열렸다. 로키에 입성하는 탐험대를 축복하는 듯 눈부신 태양이 로키의 산중턱에서 내리비치고 있었다. 촬영팀과 대원들은 춤추듯이 로키산자락의 신비의 계곡, 말린 캐년을 향해 달려갔다. 북미대륙을 서쪽 연안 지대와 중부 대평원으로 가르는 거대한 산맥 로키의 심장부를 향한 진군이 시작되었다. 캐나디언 로키의 거점이 되는 제스퍼와 밴프 구간의 아이스 필드 파크웨이가 이번 로키 대장정의 하이라이트다. 유구한 시간의 흐름과 지속적인 빙하 활동이 환상적인 자연을 완성해냈고, 그 빙하시대의 자취가 콜롬비아 아이스필드다. 숨겨진 비경, 애서배스카 폭포를 만나기 위해 아이스 필드 파크웨이에 올랐다. 눈을 의심케 하는 로키의 장쾌한 산줄기들이 인간을 위협이라도 하듯 그 웅대함과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며,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를 겹겹이 에워싸고 있다. 영하 20℃의 겨울임에도 멀리서 폭포소리가 들려온다. 과연 어떤 형체의 폭포일까 생각하며 다가간다. 선웹터 강과 애서배스카 강이 합류하여 수량이 증가한 물줄기가 단단한 암반 사이의 좁은 수로를 뚫고 빙하가 녹아서 흘러 내리듯 거친 물줄기를 쏟아낸다. 폭포 주변은 산책로가 조성되어 다양한 각도에서 폭포와 로키산맥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폭포와 빙하 그리고 거대한 호수에 이르기까지 로키의 신비한 베일을 벗겨내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는 유구한 대자연의 교향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개썰매 경주 ‘유콘 퀘스트’와 랑데부 축제 북극.. 2004-05-19
유콘 지방의 북쪽 엘도라도가 도슨시티. 우리는 북극권에 있는 이 도시에서 6개월을 보낸 뒤 마침내 떠나기로 결심했다. 대평원과 퀘벡, 동해안으로 달려가자! 화이트호스에서 정남을 향해 떠났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겨우 100km를 갔을까. 엔진이 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새 엔진 올 때까지 두 달 기다려 실은 알래스카의 북극해를 떠나 남쪽으로 갈 때 계속해서 이상한 소리가 우리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페어뱅크스에는 르노를 아는 정비사가 없었다. 그래서 엔진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달렸다. 규칙적으로 ‘딱딱’하는 소리가 났지만 엔진 출력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몇 주일 혹한이 몰아닥쳤다. 한때 도슨시티는 5일 연속 영하 40℃를 밑돌았다. 추위 앞에 엔진이 풀이 죽은 듯 했다. 우리는 눈보라 속에 세닉을 세워 두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시동을 걸었다. 엔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제일 가까운 마을에서 정비사를 불러다 실린더를 검사했다. 압력이 아주 낮았다. 타이밍 벨트에 고장이 났을까? 손을 대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제발 어떤 밸브가 일그러지지 않았기를 빌었다. 너무 외딴 곳이어서 세닉을 가까운 도시 화이트호스로 끌어가기로 했다. 남쪽으로는 2천km가 넘는 에드먼튼에 이르기까지 도시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출발지점으로 되돌아갔다. 아주 큰 골칫거리가 된 기계고장 때문이었다. 화이트호스에는 약 15개 서비스센터가 있었지만 우리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북아메리카에서 르노가 판매를 중단한 지 20년이 넘었기 때문에 르노의 최신 모델을 손질할 사람도, 부품도 없었다. 지평선을 아무리 바라보아도 제일 가까운 르노 딜러는 멕시코 국경 너머에 있었다.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르노를 팔지 않는 땅에 와서 궁지에 몰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가령 인도와 네팔에서도 비슷한 곤경에 빠졌다. 그러나 이곳에는 사방에 차가 돌아다니지만 우리를 도우려는 사람이 없었다. 정비사가 겁을 먹고 있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문제가 일어나면 변호사가 끼어 드는 일이 잦다. 전문 직업인들은 점점 몸을 사리고, 곤경에 빠질 일은 아예 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를 도우려고 선뜻 나설 사람이 없었다. 10일간 수소문한 끝에 드디어 아일랜드계 정비사가 우리를 도우러 왔다. 엔진 상부를 뜯어내고 타이밍 벨트가 온전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실린더 헤드가 망가져 있었다. 캠샤프트의 통로 주변이 심하게 닳았다. 르노 본사의 고객서비스 기술진은 우리에게 새 엔진을 보내겠다고 회답했다. 엔진이 올 때까지 2개월 동안 우리는 그 자리에 묶이게 되었다. 좋은 음식 먹고 안마까지 받는 경주용 개들 이 무슨 불운일까. 우리는 북극권에서 한겨울의 추위에 갇히게 되었다. 평균기온 영하 25℃에 하루 낮은 4시간뿐이었다. 낙원과 같은 섬들과 청록색 석호가 있는 남부 태국에서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러나 두려움은 금방 사라졌다. 이 지방에서 벌어지는 한해 최대의 행사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유콘 퀘스트. 세계에서 가장 힘든 개썰매 경주였다. 화이트호스 거리와 신문에는 온통 개썰매 선수들의 무용담으로 가득 찼다. 올해 출전하는 팀은 30개. 알래스카 페어뱅크스에서 화이트호스까지 1천600km를 지원도 받지 않고 달려야 한다. 개썰매 선수들은 눈보라를 뚫고 얼어붙은 호수, 빙판길과 눈 덮인 산마루를 달려간다. 썰매에는 개를 먹일 육류와 연어 자루, 난로와 비상장비를 싣는다. 하얀 눈과 빙판길을 달릴 최소한의 식량과 장비만을 실어야 한다. 중간에 체크포인트는 8개뿐이다. 길게는 300km에 이르는 스테이지를 통과하기 위해 개들의 체력을 가장 알맞게 안배해야 한다. 5∼6시간마다 개를 세우고 먹이를 주고 상처를 치료한다. 필요하면 마사지도 해주어야 한다. 특히 발과 발톱을 꼼꼼히 살핀다. 개들은 모두 헝겊으로 만든 작은 부츠를 신고 있다. 날카로운 얼음에 상처를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구실을 한다. 경주 코스의 중간지점은 도슨시티. 모든 팀이 36시간의 의무 휴식을 지켜야 한다. 추운 날씨에도 작은 도시에 구경꾼이 북적댄다. 신문과 TV 보도진이 몰려든다. 선수들이 쉬는 동안 개를 돌볼 전문 사육사들도 대기하고 있다. 얼어붙은 강을 따라 천막이 늘어서 있었다. 탐광꾼들의 천막이 있는가 하면 장비를 모두 안에 두고 장작 난로를 피우고 있는 덫사냥꾼들의 천막도 있었다. 다른 쪽에는 길다란 천막에 개를 넣어 두었다. 몸값이 비싼 운동선수들처럼 개들도 좋은 음식을 먹고, 안마를 받았다. 시끌벅적한 각종 콘서트로 오두막 열병 씻어내 도슨시티에서 푹 쉰 뒤 개썰매들은 다시 오솔길을 따라 내려갔다. 매서운 추위 속에 달려가야 할 거리가 800km 남짓 남아 있었다. 결승점인 화이트호스에 도착하면 엄청난 상이 기다리고 있다. 동시에 이 고장에서 겨울철에 두 번째 중요한 행사가 벌어진다. 바로 랑데부(RendezVous). 길고 긴 겨울철에 북극권 주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른바 ‘오두막 열병’이라는 폐쇄공포증이다. 통나무집에 갇혀 있다가 꼭 필요할 때만 밖에 나가 빙글빙글 돌다가 미쳐 버린다. 이런 착란증을 겪은 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광부와 덫사냥꾼들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랑데부의 주요 목적은 오두막 열병을 털어내는 데 있다. 한 주일 내내 이 도시는 황금을 찾던 골드러시 시대로 되돌아갔다. 가게 주인들은 가게에 전통 장식을 걸어 놓았다. 날마다 저녁이면 프렌치 캉캉 무용수들이 이 술집에서 저 술집으로 돌아다니며 춤을 추었다. 각종 콘서트가 벌어졌다. 심지어 ‘미스 랑데부’ 선발대회도 열렸다. 차 대접이나 책읽기 등으로 경쟁을 시키고는 가장 뛰어난 아가씨를 골랐다. 축제 마지막 날 시내 중심가에서 경쟁이 벌어졌다. 전기톱 최고수를 뽑기도 하고, 밀가루 포대를 실은 썰매로 유콘에서 힘이 가장 센 개를 고르기도 했다. 어떤 행사를 하든 배경에는 컨트리 뮤직이 흘렀다. 담배 연기 자욱한 술집에는 날마다 밤이 늦도록 컨트리 음악이 울려 퍼졌다. 그래서 유콘에서 마지못해 보내게 된 겨울은 우리게 좋은 기회가 되었다. 세계 일주여행을 떠난 지 벌써 4년. 그래도 여행을 하면 놀라운 일이 끊이지 않는다!
별을 보고 잠들어 새소리에 깨어난다 비박에서 캠핑카.. 2005-07-16
아웃도어에서는 잘 입고 잘 먹고 잘 자야 잘 놀 수 있다. 그래서 야외에 나갈 때는 의·식·주를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옷은 계절과 기능에 맞게 갖추면 되고 먹을거리는 라면이든 꽃등심이든 입맛 따라 고른다. 가장 고민되는 것은 잠자리. 야영장비를 일일이 챙겨 다니는 것은 부피든 가격이든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호텔까지는 아니더라도 콘도나 펜션 혹은 휴양림을 많이 이용한다. 계절에 상관없이 안심할 수 있고 마음놓고 쉴 수 있으며 물도 펑펑 쓸 수 있으니 편리하다. 하지만 야영에 비하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낭만이 없다. 한여름에도 서늘한 자연의 밤바람을 느끼며 잠들고 이른 아침 풀내음과 새소리에 잠을 깨는 기분은 겪어 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야영을 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준비를 해야 할 터. 마음에 맞는 스타일을 고르시라. ‘자연노숙’이라 할 수 있는 비박(bivouac)부터 ‘자연 속 호텔’ 격인 캠핑 트레일러까지 다양하다. 비박 비박(bivouac)은 ‘노숙’이라는 뜻의 프랑스 말이다. 쉽게 말하자. 골판지를 깔고 신문지를 덮고 있는 어느 이름 모를 지하도의 노숙자를 떠올려 보자. 바닥에 깔린 골판지를 에어 매트리스로 바꾸고 바람에 팔랑이는 신문지 대신 거위털 침낭을 덮는다. 그리고 지하도의 회색 풍경을 온통 녹색으로 바꾸면 노숙자의 찡그린 인상은 캠퍼의 행복한 표정으로 바뀔 것이다. 사실 비박이란 야외 잠자리의 하나라기보다 아웃도어에서 텐트를 칠 상황이 아닐 때 최소한의 잠자리를 확보하는 것으로 암벽등반이나 종주산행에서 사용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가장 자연과 가까운 잠자리이기 때문에 요즘에는 하나의 잠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노숙에 비유했다고 해서 비박이 싸게 해결될 수 있는 잠자리는 아니다. 1인용 텐트나 비박색은 20만∼30만 원, 침낭커버만 해도 10만 원이 넘고, 침낭 역시 수십만 원에 이른다. 가장 싸게 잘 수 있는 방법은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판초우의나 은박매트리스를 몸에 두르는 것, 이슬만 피하는 것이다. 텐트 텐트는 야외에 간이집을 지은 꼴로 가장 대중적인 야외 잠자리이다. 돔형과 캐빈형으로 나뉘는데 돔형은 말 그대로 둥근 모양으로 가볍고 튼튼한 대신 높이가 낮아 생활하기에 불편하다. 캐빈형은 통나무집 모양의 텐트로 생활하기 편하지만 무겁고 바람에 약하다. 화창한 날씨에 오토캠핑을 떠난다면 캐빈형이 ‘딱’이다. 요즘에는 높이가 높은 돔형 텐트도 많이 나온다. 텐트를 칠 때는 평평한 곳을 골라 비닐을 깔고(비닐은 지물포에서 파는 김장용 비닐, 비닐과 텐트 사이에 골판지를 깔면 더 좋다) 그 위에 텐트를 친다. 텐트 안에는 야외용 은박 매트리스를 깔고 그 위에 매트리스를 놓는다. 주변의 벌레가 걱정되면 담배 두 개피 희생해서 주변에 뿌린다. 플라이 끈은 팽팽하게 할 것. 플라이 끈 중간부분에 은박지(알루미늄 호일)를 감아 놓으면 쉽게 눈에 띄어 지나는 이들이 걸리지 않는다. 값은 그야말로 천차만별. 돔형이든 캐빈형이든 기본적으로 최소한 20만 원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일명 ‘명품 텐트’로 불리며 캠퍼들을 자극하는 스노우피크 텐트는 6인용 돔텐트가 100만 원이 훨씬 넘는다. 대신 매트리스가 필요 없고, 돔형이지만 천장이 높아 활동하기 편하며 천이 튼튼해 이슬이 스미지 않는다. 텐트에 관심이 있다면 자신의 용도와 형편에 맞는 텐트를 고른다. 루프텐트 루프텐트는 텐트를 자동차 지붕에 올려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차 위에 텐트를 고정시켜 이동 중에는 접고 잘 때만 펴면 된다. 일반 텐트처럼 땅을 고를 일도 없고 돌멩이 쥐고 펙 박을 일도 없다. 게다가 접어도 안에 공간이 있기 때문에 루프 박스로 써도 된다. 루프텐트 안에는 매트리스가 깔려 있어 별도로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제품에 사다리가 포함되어 있어 지붕까지 올라가기도 쉽다. 루프텐트의 장점은 마음만 먹으면 집이 ‘뚝딱’ 만들어진다는 점. 낮에 잠깐 눈 붙일 때도 그늘에 차를 대고 잠깐 올라가 편안하게 잘 수 있다. 현재 루프텐트는 이탈리아 수입제품과 국산품이 있다. 수입품의 경우 FRP 유리섬유를 이용해 무겁고 비싼 편. 월드카펜션(www.carpension.com)에서 만드는 ‘카펜션’은 ABS 수지로 만들어 가벼우면서도 저렴하다. 길이는 2m 10cm로 성인이 눕기에 충분하다. 가스식 쇼크 업소버를 이용해 여닫기도 편하다. 종류에 따라 125만∼155만 원. 캠핑카·캠핑 트레일러 캠핑카는 제대로 된 집을 차로 끌고 다니는 개념이다. 커다란 차에 집을 얹으면 캠핑카, 별채의 집을 차에 연결해 끌면 캠핑 트레일러라고 보면 된다. 이 둘을 통틀어 편의상 캠핑카라고 부르자. 앞의 3가지 잠자리 형태에 비해 캠핑카의 매력은 최고의 안락함과 편의성을 누릴 수 있다는 점. 캠핑카만 있다면 ‘급한 볼 일’도, 끈적함을 없애는 샤워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다. 물론 오물통을 비우는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 캠핑카는 수입하기도 하고 국내에서 만들기도 한다. 국산의 경우도 내장재를 수입하기 때문에 가격이 만만치 않다. 선택장비에 따라 값은 하늘과 땅 차이. 빌리는 것은 주말 24시간 기준 25만 원선. 캠핑 트레일러를 사려할 때 생각할 점은 차의 견인력. 내 차의 견인력에 맞는 트레일러를 사야 끌고 다닐 수 있다. 트레일러의 무게가 750kg 이상이면 특수면허가 필요하고 이동할 때는 트레일러에 사람이 탈 수 없다는 점도 알아둔다(자세한 내용은 본지 6월호 캠핑카 기사 참조). 글|서승범 기자 사진|박창완 사진팀장
Gallery The best place for t.. 2005-07-15
천지가 불상과 탑이나 '천불천탑'이네 그려 전남 화순 운주사 운주사에는 그 흔한 일주문 하나 없다. 험상궂은 얼굴로 악귀를 쫓는 사천왕도 안 보인다. 대신 곳곳에 널린 듯 서 있는 석불과 석탑들. 어떤 것은 부서져 처연하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모두들 이곳에 들른 갑남을녀의 고만고만한 소원들을 안고 있으리라. 해가 저물어 운주사 하늘에 붉은 기운이 돌면 평안과 지혜도 깊어진다.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가 등줄기의 땀을 식힌다 전남 담양 대나무숲 나무도 풀도 아닌 것이 곧기와 푸르기로는 으뜸이요, 고소한 죽순에서 선선한 기운을 전하는 죽물까지 그 쓰임새가 많으니 고마울 일이다. 허나 살아생전 대나무의 미덕은 바람소리, 몸과 마음을 맑게 하는 기운을 가졌다. 세상이 하 수상하여 모르고 뱉는 말, 남에게 상처 주는 말 많으니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에 귀를 씻을 일이다.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넉넉한 개펄 경기도 화성 제부도 ‘제부도’라는 이름에는 개흙의 냄새가 물씬하다. 거무스름하고 미끈미끈하여 유쾌하지 않을지 몰라도 섬 전체를 둘러싼 개펄은 자연의 신비요 넉넉한 보고다. 차가운 개흙이 발가락 사이로 스미는 것을 즐기며 개펄과 놀다 보면 알게 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물이 개펄에서 살고 있음과 개중에는 우리 입맛에 딱 맞는 것도 제법 있음을 말이다. 얘야, 봉평에 꽃 피었구나. 나들이 가자꾸나 강원 봉평 메밀꽃 메밀꽃은 7월 중순이 되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니 지금이야말로 ‘메밀꽃 필 무렵’이다. 굳이 소설가 이효석의 이름을 빌지 않아도 봉평은 메밀꽃의 고장이다. 게다가 강원도의 한적한 마을인지라 5일장에서는 메밀 인심이 후하다. 입심 좋은 아낙의 농은 덤이다. 슬쩍 발길을 돌려 메밀밭을 향하면 바람을 타고 꽃이 전하는 말이 들릴 것이다. 허허, 돌 구르는 소리 좀 들어보게 경남 거제 학동 몽돌해수욕장 한없이 아름답지만 전쟁의 상흔을 안고 있는 섬 거제. 이 섬을 감싸고 도는 14번 도로. 그 어느 구석, 아늑하게 패인 곳에 동그란 몽돌들이 모여 바다와 경계를 이룬다. 여기에 하얀 포말이 한차례 휩쓸고 가면 돌들은 ‘다라락, 다라락’ 서로를 토닥거리며 부둥킨다. 예쁜 몽돌 골라 가방에 넣을 생각일랑 말고 마음에 몽돌 담아 보다 너그러워졌으면 싶다. 복날 무더위에 뼛속을 스미는 얼음 바람 경남 밀양 얼음골 삼복더위엔 간담이 서늘해지고 북풍한설엔 훈훈한 바람이 나오니 이보다 더 고마울 수 있을까. 그리하여 명의 허 준은 스승 유의태의 시신을 이곳 얼음골에서 들여다보았던 것이다. 때로 휴가도 일인지라 피곤하다면, 하루쯤 혼자 빈손으로 이곳에 들러 여름 땡볕과 휴가 스트레스로 달궈진 몸과 마음을 식혀봄은 어떤가. 말 없이 조용히 있어 더욱 아름다운 섬 전남 신안 임자도 우리나라에는 3천 개가 넘는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국립공원의 이름을 가진 섬도 있고 영토분쟁으로 화제가 되는 섬도 있다. 임자도는 꽤 오래 전 간첩단 사건으로 잠시 입방아에 올랐을 뿐 지금은 잊혀졌다. 그저 섬 주민들의 생활 터전일 뿐인 섬, 되려 그래서 더 찾을 만하다. 섬이지만 차로 드나들 수 있는 것도 미덕이라 해야 할까. 산꼭대기에서 한 치 망설임 없이 내리꽂는 폭포 강원도 정선 백석폭포 강원도 정선의 졸두루 마을을 지나 한적한 59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멀리 산꼭대기에서 떨어지는 외로운 물줄기를 볼 수 있다. 봉우리는 갈미봉이고 물줄기는 백석폭포이다. 아니다. 실은 봉우리가 아니라 절벽 위 능선이다. 뭐 어떤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더위를 씻어 줄 수 있는 폭포라면 그것으로 족하다.
올 여름휴가는 텐트 안에서 보내는 거야! 안 가보면.. 2005-07-15
설악산 장수대 야영장 캠퍼들과 산악인들이 전국 으뜸으로 손꼽는 캠핑명소. 한계령 입구 산자락에 있는 장수대 휴게소 위에 있다. 한국전쟁 당시 전투가 치열했던 곳으로, 전사한 병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59년 당시 3군단장 오덕준 장군이 산장을 세우고 장수대(將帥臺)라 이름지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송림이 시원한 나무 그늘을 만들고, 야영장 사이로 설악산에서 흘러내린 한계천이 물길을 열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장수대 북쪽으로는 설악 서북릉이 솟아 있고, 남쪽으로는 가리봉과 주걱봉 그리고 삼형제봉이 나란히 자리했다. 장수대 야영장은 400여 동의 텐트를 칠 수 있다. 입구로 들어가 송림 속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그곳에서 바로 오토캠핑을 즐길 수 있다. 한계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화장실과 취사장이 각 2동씩 마련되어 있다. 한적한 캠핑을 하려면 다리를 건너가 자리를 잡는 것이 좋다. 국립공원 설악산관리사무소에서 입장료 어른 1천600원, 어린이 300원을 받는다. 텐트는 하루에 소형(3인 이하) 3천 원, 중형(4∼9인) 4천500원, 대형(10인 이상) 6천 원. 설악산 관리사무소 (033)672-2883, 장수대 분소 (033)463-3476. 설악산 주변에는 장수대 외에 설악동 야영장과 오색 야영장이 있다. 설악동 야영장은 500동의 텐트를 칠 수 있고, 3동의 샤워장과 5동의 취사장을 갖췄다. 오색 야영장은 100여 동의 텐트가 들어가는 임시 야영장. 편의시설이 부족하고, 주차장도 100여m 떨어져 있어 오토캠핑은 어렵다. 장수대에서 대승령 등산길로 1.2km, 40분쯤 오르면 높이 88m의 대승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이밖에 야영장 주변으로 한적한 트레킹 코스와 등산 코스가 수없이 널려 있다. 장수대 가는 길은 44번 국도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팔당대교를 건너 44번 국도에 올라 그대로 직진해 홍천, 인제, 원통을 거쳐 한계령 길로 들어가면 된다. 한계령 휴게소를 지나 1km쯤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입구가 보인다. 말골 명사십리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에 자리한 유원지다. 말골은 모곡유원지에서 4km 정도 하류에 떨어진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홍천 서쪽 끝의 오지라서 장을 보기 위해서는 나룻배를 타고 춘천으로 나가는 길이 빠르다. 고운 모래알들이 강물 파도에 부딪히면서 울음소리를 낸다는 뜻의 ‘명사’(明沙)와 그 길이가 4km, 십 리에 이른다 해 ‘십리’(十里)라는 이름이 붙었다. 인제에서 시작된 홍천강이 넓고 깊어지면서 모곡리와 마곡리 일대의 강가에 은색 모래밭이 만들어졌고, 말골까지 이어진다. 말골의 강에서는 체장 20∼30cm에 달하는 잉어과 민물고기 누치가 잡힌다. 이밖에 쏘가리, 모래무지, 잉어, 끄리 등을 낚는 재미를 즐길 수 있다. 인근 상점에서 낚시도구(견지대 2∼3만 원)와 장작(1단 5천 원)을 살 수 있다. 쓰레기 처리비용으로 매년 6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어른 2천 원, 어린이 1천 원의 요금을 받는다. 그 외 기간에는 무료. 홍천군 서면사무소 (033)434-0031. 명사십리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한 모곡 유원지도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강변에 나무가 있어 그늘을 찾을 수 있고, 주변 민가에서 식수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명사십리에서 강 위쪽으로 올라가면 낚시바위, 배바위 등 절경이 펼쳐지고, 온통 모래로 뒤덮인 남이섬이 나온다. 말골 인근에 임진왜란 때 왕실의 피난처로 쓰였다는 왕터산(해발 400m)이 자리했다. 높지는 않지만 트레킹 코스로 제격. 서울과 양평, 청평을 잇는 37번 국도를 타고 가다 신청평대교를 건넌다. 394번 지방도를 타고 직진해 청평유원지를 지나 가평군 설악면 신천리, 위곡리를 거쳐 홍천군 서면 모곡리까지 들어간다. 모곡리 한서중학교 앞에서 말골 이정표를 따라 6km쯤 달리면 명사십리다. 연포 오토캠핑장 태안반도 일대는 해수욕장의 천국. 그 중에서도 연포해수욕장은 가족 단위 피서지로 제격이다. 해수욕을 즐기면서 오토캠핑도 할 수 있기 때문. 충남 태안군 근흥면 도황리에 자리했다. 1985년 문을 연 연포 오토캠핑장은 숙박시설과 유흥가가 있는 중앙해변(로맨스 비치), 청소년 야영장 중심의 해변(고고 비치) 그리고 오토캠핑장(아리랑 비치) 등 해변이 세 개로 나뉘어 있다.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1만4천 평 부지를 갖췄고, 잔디밭 위에 인공그늘막동을 세우는 등 각종 편의시설을 마련했다. 차 한 대당 13평씩 개인 캠프구역이 주어진다. 해변의 경사가 완만하고 정남향이어서 수온이 다른 해수욕장보다 높다. 갯바위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고, 썰물 때는 조개나 고동을 직접 잡는 재미도 쏠쏠하다. 주변 관광지가 없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고운 모래와 소나무숲과 더불어 바닷가에 핀 해당화를 볼 수 있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기암도 볼거리. 입장료는 1천100원. 텐트는 4∼5인용 한 동을 기준으로 1만 원, 6인 이상 1만2천 원, 10인 이상은 1만5천 원이다. 다른 곳에 비해 요금이 비싼 편이지만 전문 오토캠핑장인 점을 감안하면 저렴한 편이다. 연포번영회 (041)674-0909. 연포 오토캠핑장의 단점은 주변에 역사 유적지나 관광명소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안흥항에서 유람선(안흥성)을 타고 서해안을 관광할 수 있다. 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에서 빠져나와 서산 방향으로 좌회전해 32번 국도를 타고 태안 쪽으로 직진한다. 태안에서 2.3km를 달려 왼쪽으로 603번 지방도를 만나면 좌회전. 9.1km를 더 가면 연포해수욕장을 알리는 이정표를 만난다. 함허동천(涵虛同天) 야영장 강화도의 최고봉 마니산(469.4m) 서쪽 기슭에 자리한 함허동천은 200m나 되는 암반이 넓게 펼쳐진 계곡에 폭포까지 간직한 아름다운 계곡이다. 조선 전기의 승려 기화가 마니산의 정수사를 짓고 그곳에서 수도했다고 해서 그의 호인 함허를 따서 함허동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계곡의 너럭바위에는 기화가 썼다는 ‘涵虛洞天’ 네 글자가 남아 있는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1988년 국민관광단지로 문을 연 함허동천 야영장은 취사장과 놀이마당, 잔디광장 등이 마련되어 가족 단위 캠핑은 물론 단체 캠핑에도 적합하다. 가장 큰 매력은 산 너머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점. 새해 일출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주차장 위쪽 매표소 근처에 좋은 자리가 많지만 사람들을 피하고 싶다면 상류 쪽으로 올라가는 것이 좋다. 입장료는 1천500원이고, 4인용 텐트는 2천 원, 5∼9인용은 3천 원을 받는다. 10인용 이상은 4천 원. 주차는 무료. 함허가 지은 정수사부터 들러 보자. 신라 선덕여왕 8년에 회정대사가 창건하고, 조선 세종 8년에 함허대사가 보수한 것으로 알려진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인근에 동막해수욕장이 자리해 갯벌체험과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동막해수욕장의 끝에는 조선시대 요새로 사용했던 돈대가 자리했다. 강화도 해안도로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강화도로 들어가는 길목은 48번 국도가 지나는 신강화대교와 그 아래에 84번 지방도가 지나는 강화제2교(초지대교) 등 두 가지다. 어느 다리를 건넜든 84번 지방도를 타고 마니산이나 참성단 이정표를 따라 남쪽으로 달리면 함허동천 이정표를 볼 수 있다. 대관령 자연휴양림 1988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조성된 자연휴양림. 울창한 소나무숲과 맑은 계곡, 바위가 어울러진 대관령 기슭에 자리했다. 휴양림 안에 50∼200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찼다. 백두대간에 자리잡은 대관령 자연휴양림은 연평균 기온이 8℃밖에 안된다. 휴양림 고개 너머에 자리한 숲 속 수련장은 강의실과 숙박시설, 잔디광장, 체력단련실 등을 마련해 청소년 수련시설로 안성맞춤이다. 또 숲을 체험할 수 있는 길과 야생화 정원, 황토 초가집과 물레방아, 숯가마터 등도 색다른 볼거리. 산림문화휴양관 앞에 자리한 금바위폭포에서는 옛날에 사금을 채취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20동의 텐트를 칠 수 있는 야영장이 마련되어 있다. 원목으로 만든 ‘숲 속의 집’과 산림문화휴양관, 15명이 들어갈 수 있는 단체숙소를 이용할 수 있다. 입장료는 어른 1천 원, 어린이 600원. 야영장은 4인 기준 하루 4천 원. 중·소형차는 3천 원, 대형차(25인승 이상)는 하루 5천 원의 주차요금을 내야 한다. 숲 속의 집은 7평형이 하루 4만4천 원, 10평형 5만5천 원. 휴양림 관리사무소 (033)644-8327. 휴양림에서 나와 동쪽으로 20여km만 달리면 경포대해수욕장이다. 25km 떨어진 참소리 박물관은 세계에서 유일한 축음기 박물관이다. 에디슨이 발명한 세계 최초의 축음기에서 현재의 오디오에 이르기까지 4천500여 점의 전시물과 함께 축음기 발전사를 공부할 수 있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촬영지로 유명하고,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정동진역에도 들러 보자. 영동고속도로 강릉IC에서 나와 성산·대관령 방향으로 내려간다. 영동고속도로 옛길을 따라 대관령 방향으로 직진해 왼쪽으로 대관령 박물관을 지나 어흘리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회관 앞에서 오른쪽 비포장길을 따라 700m쯤 들어가면 휴양림에 닿는다. 미천골 자연휴양림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미천골에 자리했다. 7km에 달하는 미천골 계곡은 곳곳에 크고 작은 폭포를 만들며 굽이쳐 흐른다. 응복산, 조봉, 만월봉 등 백두대간의 고봉들에 둘러싸인 심산유곡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휴양림 안에는 100평 규모의 오토캠핑장과 신라시대 고적인 선림원지와 불바라기약수터, 재래봉(토종꿀) 보호구역 등이 자리해 문화유적 탐방과 함께 자연교육을 겸할 수 있다. 피서철에는 입장객 수를 제한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반드시 예약하고 간다. 미천골 휴양림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면 인근 서림천과 공수전유원지, 용소골도 추천할 만하다. 미천골 아래의 서림천은 피서철에도 크게 붐비지 않는 한적한 곳이다. 서림천과 이어지는 공수전 유원지와 용소골도 제3의 피서지. 매년 7월 10∼8월 20일에 개장한다. 넓고 평평한 솔밭이 있어 야영하기에 좋다. 미천골 자연휴양림은 입장료 어른 1천 원, 어린이 300원. 주차요금은 하루에 중·소형 3천 원. 2곳의 야영장 이용료는 하루 2천 원, 나무 평상(데크) 위에 텐트를 칠 수 있는 곳은 4천 원이다. 오토캠핑장은 하루 1만 원. 휴양림 관리사무소 (033)673-1806. 휴양림에서 30km 달리면 설악산이다. 법수치마을과 어성전, 오색약수, 오색온천, 낙산해수욕장 등 유명 관광지가 가까운 것이 미천골 휴양림의 매력이다. 휴양림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물놀이를 위해 해수욕장으로 출퇴근하는 것도 색다른 피서법이다. 주변에서 인진쑥, 장뇌삼, 송이, 산채 등 지역특산물도 살 수 있다. 구룡령 정상에서 휴양림 쪽으로 이어지는 56번 국도는 수려한 계곡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드라이브 코스로 손색 없다. 홍천에서 양양으로 이어지는 56번 국도를 이용하는 것이 빠르다. 구룡령을 넘어 32km쯤 달리면 ‘황이리’라는 마을에 들어선다. 왼쪽에 ‘미천골 공예사’가 있고, 그 오른쪽으로 미천골 자연휴양림을 알리는 대형 안내판이 보인다. 불정동 자연휴양림 경북 북동쪽, 문경새재 남쪽에 자리했다. 행정구역은 문경시 불정동 시유림. 약수산이라 불리는 수정봉(487m) 산자락에 안겨 아늑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수정봉은 숲이 울창하고 맑은 계곡이 흘러 문경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 50동의 텐트가 들어가는 야영장과 14개의 야영 데크가 마련되어 있다. 불정동 자연휴양림의 특징은 놀거리가 많다는 점. 매표소 위에 자리한 청소년수련관에는 게이트볼 광장이 있고, 잔디광장과 체육시설도 갖췄다. 계곡물을 막아 물놀이터도 만들었다. 또 휴양림에서 차를 타고 8km, 10분 정도 나가면 클레이 사격장이 있다. 어른 5천 원, 청소년 3천 원을 내면 MTB도 하루종일 빌릴 수 있다. 계곡 인근 벚나무 아래 긴 나무의자가 놓여 햇빛을 피해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좋을 듯. 14개의 야영데크도 소나무 아래 마련되어 시원하다. 입장료는 어른 1천 원, 어린이 500원. 주차요금은 하루 3천 원(중·소형). 야영 데크는 하루 7천 원, 원두막은 1만 원이다. 휴양림의 통나무집은 하루 기준 6평이 5만 원, 10평 7만 원, 20평은 15만 원이다. 청수년수련관 (054)552-9443, 550-6456. 휴양림에서 20km, 30분쯤 벗어나면 조선시대 영남과 기호지방의 문턱 역할을 하던 문경새재다. 차로 20분쯤 거리에는 문경온천이 자리하고 있다. 문경온천은 지하 774m에서 솟아오르는 칼슘 중탄산 온천수로, 연한 황토빛이 나고 끈끈한 특성이 있어 혈액순환과 피부에 좋다. 수려한 경관과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 자랑인 쌍용계곡도 볼거리. 휴양림 건너편에는 약수로 유명한 운암사가 터를 잡고 있다. 문경시에서 3번 국도를 타고 문경새재 방향(북쪽)으로 8km쯤 달리다가 첫 번째 삼거리가 나오면 운암사 이정표에 따라 좌회전한다. 여기서 1.8km 직진하면 불정동 자연휴양림 간판이 보인다. 유명산 자연휴양림 가평군 설악면 가일리에 자리잡은 유명산은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 유명산 자연휴양림은 해발 862m의 유명산 입구 계곡 안쪽에 자리해 산이 울타리를 두르고 있다. 참나무가 많은 천연림 지대와 낙엽송, 잣나무 등을 심어 놓은 인공림 지대가 어울려 풍경이 뛰어나다. 기암괴석과 계곡을 따라 완경사·급경사가 조화를 이루는 등산로 주변에는 갈참나무, 단풍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정상에는 고사리와 억새밭이 있고, 지역특산물인 취나물, 고사리, 더덕, 머루와 표고버섯 등이 자생한다. 휴양림에는 야영 데크 21개와 한꺼번에 1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 야영장, 50여 대가 들어갈 수 있는 오토캠핑장이 마련되었다. 휴가철에는 찾는 이들이 많아 피하는 것이 좋다. 수도권에 살고 있다면 평소 주말 나들이 코스로 유명산 휴양림만큼 좋은 곳도 없다. 입장료는 다른 휴양림과 마찬가지로 어른 1천 원, 어린이 300원이다. 야영장은 텐트 1동에 2천 원, 야영 데크 4천 원. 오토캠핑장은 8천 원을 받는다. 주차장은 하루 3천 원. 숲 속의 집은 5평형이 4만 원, 9평형이 5만5천 원이다. 휴양림 관리사무소 (031)589-5487. 가평은 청평유원지, 산장유원지, 명지계곡, 운악산, 현등사, 용추계곡 등 군 일대가 전부 관광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유명산 옆에 우뚝 솟은 어비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이 어비계곡. 유명산과 아주 가까워 잘 알려진 곳이다. 유명산 동쪽으로는 해발 1천157m 용문산이 이웃해 있다. 약 2km쯤 걸어올라 만나게 되는 용문사와 1천100년을 살았다는 은행나무가 명물이다. 6번 국도를 타고 양수리, 국수리를 지나 양평 시내 초입에 있는 양평군민회관 사거리까지 직진한다. 회관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해 37번 국도를 타고 계속 직진. 양평 한화콘도 입구와 중미산 자연휴양림을 지나 유명산 입구에 닿는다. 글│장한형 기자
외로운 바다 짜릿한 낚시 무녀도 갯바위에서 낚시에 .. 2005-07-15
prologue 하나. 날씨가 더워지면서 물이 그리워졌다. 시원하기로 따지면 그늘진 숲의 계곡을 따라갈 곳이 없겠으나, 아직은 햇볕이 따갑지 않아 보는 것으로도 만족할 것 같았다. 대신 관광객 넘쳐나는 바닷가는 곳곳의 쓰레기와 어지러운 소음 때문에 사양하고 싶었다. 그래서 섬을 찾기로 했다. 둘. 그동안 낚시라고는 생수통에 낚싯줄 감아 해본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낚싯대 드리우고 물고기와 밀고 당기는 신경전도 벌여야 낚시를 해봤다고 할 수 있지 않겠나. 그것도 망망대해에 배를 세우고 하는 낚시나 파도가 날름대는 외로운 갯바위에서 해야 제대로 된 낚시일 것 같았다. 셋. 한때 회를 질리도록 먹는 것이 꿈이었다. 어렸을 적 자장면처럼. 하지만 양이 풍부해지면 질을 가리는 법. 이제는 어종을 가리고 양식/자연산을 따지게 되었다. ‘완전자연산’ 물고기의 쫄깃한 느낌은 거부할 수 없었다. 게다가 요즘은 감성돔이 많이 잡힌다고 하니 …. 6월14일 5:00 - 배에 몸을 싣다 전날 서울에서 내려가면서 군산낚시프라자 정재열 사장과 통화를 했다. “언제 찾아뵈면 되겠습니까?” “3시에 오세요.” “네? 지금 4시가 넘었는데.” “내일 새벽 3시요.” 그래서 저녁을 서둘러 먹었다. 이른 잠자리가 어색할까 싶어 소주도 한 잔 곁들였다. 일찍 잠을 청했지만 뒤척거리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금세 울리는 휴대전화 알람. 서둘러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가게 앞이 밑밥을 만드는 낚시꾼으로 붐빈다. 밑밥을 챙겨 배를 타러 떠난 시간은 3시 반 무렵. 재미있다. 기자가 끌고 간 차만 빼고 죄다 SUV다. 정 사장의 코란도 패밀리를 비롯해 갤로퍼, 테라칸, 쏘렌토…. 낚시가 아니라 오프로드 동호회 그룹 주행인 듯한 착각. 군산항에서 일부 배를 태워 보내고 우리는 야미도로 향했다. 고군산군도로 향하는 배가 이곳에서 떠나기 때문이다. 야미도 역시 고군산군도에 속하는 섬이었지만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되어 버렸다. 새만금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아무나 드나들 수 없지만 낚싯배를 타러 가는 것은 괜찮다. 오프로드 랠리 코스 같은 비포장길을 10km 넘게 달려 도착한 야미도. 군산낚시프라자의 지점이 있는 이곳에서 낚시 채비를 꾸린다. 다시 차를 타고 2∼3분 가면 배를 타는 곳이 있다. 시침은 어느새 5시를 가리키고 있다. 해가 뜨진 않았으나 이미 동이 터서 하늘이 파랗다. 6월 14일 5:17 - 서해의 모든 ‘감생이’여 나에게 오라 배에 올랐다. 잠시 후 도시락이 오자마자 배는 출발한다. 잔잔한 물살을 타는 배의 흔들림은 유쾌하기까지 하다. 배가 향한 곳은 고군산군도. 예전에는 고군산열도라 불렀다. 사람이 사는 유인도가 10개여서 그렇게 불렀다는데, 지금은 63개의 섬 중 유인도가 16개란다. 옛날 고려시대에 이곳에 군산진이라는 수군진영이 있었지만 조선 세종 때 진영이 육지로 가면서 군산이라는 이름도 가져갔다. 대신 이곳에는 ‘옛 고(古)’자를 붙여 고군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가장 유명한 섬은 신선이 놀았다는 선유도. 선유도와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는 다리가 놓여 마음대로 오갈 수 있다. 배는 대장도보다 더 멀리 떨어진 관리도를 향한다. 감성돔이 잘 잡힌다는 포인트에 낚시꾼들을 하나둘씩 떨어뜨린다. 장소에 따라 물살과 바닷속 지형이 달라 감성돔이 잡히는 수심도 다르다. 그래서 선장 김태선 씨는 포인트마다 수심을 일러준다. “거기는 4m로 하세요. 그리고 너무 멀면 안돼요. 좀더 가깝게 …. 그렇지, 그렇지.” 야미도가 고향인 김태선 씨는 선장생활 30년 가까운 베테랑이다. 낚시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뱃길을 다닌 세월이 세월이다 보니 물고기의 움직임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바다낚시에서 중요한 것은 포인트만이 아니다. 같은 어종, 같은 포인트라도 물이 들고 날 때 다르고 사리(조석의 차가 가장 클 때)와 조금(사리의 반대)이 다르다. 그리고 날씨에 따라서도 물색과 온도가 달라지기 마련. 바다는 평화스러웠다. 가끔씩 오가는 낚싯배의 소리와 수면 위를 오가는 갈매기 소리를 빼면 고요 그 자체였고, 곳곳에 보이는 양식장 역시 평화롭기 그지없다. 이미 자리를 잡은 낚싯꾼들 역시 조용히 물 위의 찌만 바라볼 뿐이다. 여러 섬을 들러 드디어 마지막 목적지인 무녀도에 도착했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파랗던 하늘은 어느새 노랗게 물들어 있다. 해는 떴지만 구름이 많이 낀 탓이다. 갯바위에 내려 낚시 준비를 한다. 낚싯대를 꺼내 바늘을 끼우고 자리를 잡는다. 갯지렁이를 끼우기도 하고 크릴 새우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지렁이 한 마리 혹은 크릴 새우 한 마리로 물고기를 유혹하기엔 약하다. 그래서 크릴 새우와 집어제(물고기가 좋아하는 향을 넣어 물고기를 유인한다)를 섞은 밑밥을 뿌린다. “감생이(감성돔)나 한번 잡아볼까?” 낚시 가이드를 하는 최진규 씨는 기자의 낚싯대를 조립해 주고 나서 감성돔 낚을 채비를 한다. ‘일단 회를 먹고 주변에 인심도 쓰려면 못해도 예닐곱 마리는 잡아야 될텐데, 한 시간에 한 마리씩만 잡아도 충분하겠다’ 싶은 마음에 기자도 덩달아 자신만만. 하지만 조금 전 배에서 들었던 김태선 선장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감성돔은 힘이 좋아서 기술이 없으면 먹이만 먹고 가 버려요.” 그리고 기자는 돌아오는 배에 올라탈 때까지 이 말을 계속 되뇌어야 했다. 6월 14일 7:30 - 잔챙이는 가라, 월척만 오라 가이드를 맡은 최진규 씨 외에도 요즘 낚시의 맛에 빠진 허 원 씨와 부산에서 온 차정석 씨가 함께 자리를 잡았다. 준비를 마치고 낚싯대를 물에 드리우자 사방은 조용해진다. 이제 남은 것은 물고기를 낚는 것. 릴 낚시를 처음 해보는 까닭에 아직 손에 익지 않다. 릴 고정 장치도 익숙하지 않고 미끼를 끼우기 위해 낚시 바늘을 잡는 것도 여의치 않다. 어렵진 않다. 다만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20∼30분 해보면 금방 손에 익는다. “줄을 더 줘요. 더. 더. 더.” ‘이제나 무나, 저제나 무나’ 기다리고 있는데 최진규 씨가 한마디 한다. 그렇게 잡고 있어 봐야 절대 못잡는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미끼도 가장 토실토실한 새우로 끼우고 미동도 않고 있는데…. 최진규 씨의 말은 낚싯줄을 팽팽하게 하지 말고 느슨하게 드리우라는 뜻이었다. 물고기가 입질을 할 때 먹이가 따라 내려가야 물기 때문이다. 줄을 팽팽하게 잡고 있는 기자는 함정만 파고 위장을 하지 않은 꼴인 셈이다. 경치도 좋고 바람도 좋지만 낚시 자체의 스릴은 입질과 손맛이다. 물고기 입장에서야 먹느냐 마느냐가 목숨을 건 결정이다. 그래서 건드려도 보고 입도 대봤다가 ‘괜찮겠다’ 싶으면 덥썩 무는 것이다. 손끝에 전해 오는 간지럼을 참지 못하고 낚싯대를 당기면 물고기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다. 낚아채고픈 유혹을 참고 찌가 물 속으로 쑥 들어갈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참을성이 필요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차정석 씨의 찌가 물 속으로 숨나 싶더니 이내 낚싯대가 휜다.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것은 손바닥만한 노래미. 어류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횟대목 쥐노래미과에 속하는 어류이고, 낚싯꾼의 눈에는 게와 새우를 좋아하고 미끼를 깊게 드리워야 잡을 수 있는 물고기이다. 하지만 술 한 잔 꺾기 좋아하는 일반인의 생각에는 육질이 단단하여 횟감으로 그만인데다 작은 것은 뼈째로 써는 ‘세꼬시’감으로 으뜸이다. 노래미를 시작으로 이런 저런 물고기들이 낚싯바늘에 걸려 올라온다. 유독 기자의 찌만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고 수면을 떠돈다. 그래도 욕심은 난다. ‘요런 잔챙이 말고 좀 커다란 놈 안 무나. 잡지에 나오는 50∼60cm짜리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어른 팔뚝만한 놈은 좀 물어 줘야 되는데.’ 그때, 바로 앞에 어른 팔뚝만한 숭어가 모습을 드러낸다. 크기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가장 작은 녀석도 묵직해 뵌다. 최진규 씨가 숭어 낚기에 나섰다. 낚싯대를 거둬 줄을 바싹 당긴다. 감성돔은 깊은 물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수심을 깊게 주지만 숭어는 수면 바로 밑에 있어 미끼가 보일 정도로 수심을 얕게 줘야 한다. 숭어를 낚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에는 숭어를 치어라 하면서 ‘의심이 많아 화를 피할 때 민첩’한 성질을 갖고 있다 했다. 아울러 ‘맛이 좋아 물고기 중 제일’이며 ‘진흙을 먹으므로 백약에 잘 어울린다’고도 썼다. 이로써 숭어를 낚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한 녀석이 미끼를 무나 싶더니 그대로 고개를 돌린다. 밑밥을 계속 뿌려 숭어들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도록 하고 계속 기다린다. 20분쯤 지났을까. 숭어 하나가 미끼 주변을 맴돌더니 미끼를 툭툭 치다가 덥썩 문다. 숭어는 크고 힘이 좋아 자칫하면 낚싯줄이 끊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너무 세게 낚아채면 주둥이가 터지기도 한다. 일단 줄을 감고 다시 풀었다가 또 감는다. 그러다가 숭어의 힘이 좀 빠졌다 싶으면 물 밖으로 끌어낸다. 숭어가 공기를 마시면 힘이 더 빠진다고 한다. 최진규 씨와 숭어의 기싸움은 2∼3분의 실랑이 끝에 최진규 씨의 승리로 끝났다. 뜰채로 건진 숭어는 40∼50cm는 족히 되어 보였다. 6월 14일 9:00 - 내게 손맛을 보여다오 벌을 치는 이들은 동이 트기 전에 벌꿀을 채집한다. 아직 벌들이 잠에서 덜 깨 정신이 없을 때 그들의 먹이를 빼앗는 것이다. 이때는 벌이 잘 물지도 않을 뿐더러 물려도 그닥 아프지 않다. 하지만 해가 뜬 다음은 상황이 달라진다. 웽웽거리는 소리도 클 뿐 아니라 물리면 얼굴 형태가 달라질 정도로 아프다. 같은 이치인지는 모르겠으나 낚시꾼들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새벽부터 해가 제대로 내리쬐기 전인 9시나 10시 정도까지 그날 잡을 고기의 80∼90%가 잡힌다. 대개 오후 2∼3시에 철수하는데 그때까지는 어렵게 나온 길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란다. 물고기들의 입질이 한가해지면서 낚시꾼도 덩달아 할 일이 없어졌다. 가끔 낚싯대를 들어 미끼가 아직 붙어 있는지 확인하고, 없으면 새로 꿸 뿐. 한가해지니 배가 고프다. 눈뜬 지 7시간이 지났으니 배가 고픈 것도 당연한 일. 잠시 낚싯대를 놓고 모여 앉아 도시락을 펼친다. 단체로 주문한 도시락인지라 푸짐하진 않지만 배고픔을 생각하면 진수성찬. 이런 뱃속 사정을 알았는지 밥을 꾹꾹 눌러 담았다. 밥을 얼른 먹고 쓰레기를 정리해 놓고 다시 낚시 대형으로 흩어진다. “방해하지 말고 저쪽으로 가요. 아줌마가 있으면 고기들이 오겠어요?” “낚시나마나 고기가 하나도 없구만, 뭘. 나는 봤잖아요. 고기 없어요.” 우리 쪽에 가까이 온 해녀와의 대화다. 10시 넘은 시간이라 이제 고기가 그다지 많지 않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기자는 이제껏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이리저리 낚싯대를 조금씩 옮기다가 뭔가 걸린 느낌이 들어 잡아당기는데 이 녀석 힘이 보통이 아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가이드에게 도움을 청한다. 가이드는 몇 번 잡아당겨 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수초에 걸렸네요” 하며 툭툭 잡아 당긴다. 릴을 감으니 낚싯바늘에 물고기 대신 수초가 매달려 있다. 물고기가 외면하는 낚싯대 앞에서 기자는 작아진다. ‘잡히지 않아도 좋다. 손맛이라도 보게 해다오.’ 빈 낚싯바늘에 크릴 새우만 축내기를 십수 회. 팔이 아파 겨드랑이에 낚싯대를 끼고 삐딱하게 서 있는데 겨드랑이에 미세한 진동이 전해진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번에는 뭔가 물긴 문 것 같다. 낚싯대를 손으로 잡으니 저 안에서 어떤 녀석인지 입질을 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내 찌가 물 속으로 사라진다. ‘걸려라!’ 주문을 외며 휙 잡아 당겼다. 올커니, 걸렸다. 저항이 꽤 센 걸 보니 큰 녀석이 아닐까 하는 기대도 든다. 조심조심 릴을 감자 물고기 한 마리가 펄떡거리며 모습을 드러낸다. 노래미다. 크기는 겨우 한 손에 감쌀 정도. 바늘을 빼려 물고기를 잡자 손을 튕겨낸다. 넓은 바다에서 활개치고 다녔으니 얼마나 힘이 좋으랴. 바늘을 깊이 삼켰는지 여간해서 빠지지 않는다. 겨우 잡아 빼서 그물에 넣었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더 작은 치어가 잡혀 다시 놓아준 것을 빼면 손맛만 서너 번 맛보았을 뿐 실적은 형편없다. 허 원 씨도 별 재미를 못 보았다. 최진규 씨와 경력이 오랜 차정석 씨만 이따금씩 물고기를 잡아올릴 뿐이었다. 11시가 넘고 12시가 지나자 햇빛이 뜨거워진다. 그늘 한 점 없는 갯바위에 찌만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우리를 태워 갈 배는 3시에 오기로 되어 있고, 물통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장마철에 귀한 것이 물이듯, 천지가 물인 갯바위에서도 가장 아쉬운 것은 마실 수 있는 물이다. 6월 14일 13:30 - 기나긴 하루가 지나다 수면을 스치는 길다란 은빛의 물고기들. 학꽁치다. 단정하게 생긴 은빛 몸매와 더불어 주둥이가 학의 부리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와 학꽁치로 불린다. 성질머리가 급해서 낚싯바늘에서 빼기도 전에 죽어 버린다는 학꽁치이자 일본사람들이 ‘사요리’라 부르며 사족을 못쓴다는 학꽁치이다. 그만큼 맛이 기가 막힌 물고기다. 한가하던 갯바위의 분위기가 다시 고조된다. 학꽁치가 은빛 꼬리를 흔들며 낚싯줄에 매달려 올라오자 탄성이 나온다. 저것이 씹다 보면 저절로 녹아 목구멍으로 사라진다는 학꽁치 아닌가. 아직도 학꽁치들은 우리 앞을 기웃거리고 있다. 최진규 씨가 밑밥을 아낌 없이 뿌리면서 미끼를 던져 보았지만 학꽁치들은 밑밥만 맛나게 먹을 뿐 입질할 생각을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가해진 입질과 따가울 정도로 강한 햇빛, 침이 마르는 갈증은 지루함으로 다가온다. 지겨운 현실을 이기는 방법은 즐거운 상상. 주인공은 우럭이다. 차정석 씨 : “우럭 새끼를 맛나게 먹을라카믄(먹으려면), 살짝 얼려가(얼려서) 올리브유를 살살 발라가(발라) 후라이팬에 놀짱놀짱(노릇노릇하게) 구버가(구워) 소금 살짝 찍으면 마 맛이 끝내준데이.” 허 원 씨 : “우럭요? 우럭은 번개탄 피워 갖고 목장갑 끼고 딱 들고 뜯어야 제맛이요.” 최진규 씨 : “숭어도 맛있어요∼. 여그 숭어는요 비린내도 없어요. 아주 맛나요. 있다가 함 먹어 봐요. 내가 장담한다니까.” 3시가 다 된 시간. 아침 9시에 먹은 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 칼과 초장도 준비하지 않았으니 방법은 하나, 배가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시간은 기다림이 절실할수록 더디 가는 법이어서 30분이 3시간처럼 느껴진다. 멀리 뿌연 섬의 실루엣 옆으로 배의 모습이 나타난다. 엔진 소리가 우리가 탈 배라고 한다. epilogue - 회를 눈앞에 두고 돌아서다 사실 고군산군도에 왔다면 선유도에 들러 한번쯤 신선이 되어 보는 것이 섬에 대한 예의겠지만, 함께 낚싯배를 타고 가야 하니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하지만 신선이 되지 못한 아쉬움보다 더 컸던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었다. 야미도에 내려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들이키니 시간은 4시를 훌쩍 넘겼다. 하루를 돌이켜보면 바다를 보며 학꽁치의 부드러운 육질이든 우럭의 쫄깃한 육질이든 소주에 곁들이는 것이 맞지만, 취재 일정을 생각하면 이미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최진규 씨는 다른 손님들의 물고기를 다듬어 얼음에 재고는 우리가 잡은 고기들을 손질한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진짜 아쉬운데요, 일정 때문에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회는 한 젓가락 뜨고 가셔야죠. 같이 고생했는데 ….” 바다낚시는 어렵다. 물고기에 따라 낚싯대나 미끼도 달리 해야 되고, 낚는 방법도 달리 해야 한다. 물때도 따져 봐야 되고, 하루 종일 땡볕에 서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외롭다. 거꾸로 그렇기 때문에 낚시의 참맛을 알 수도 있다. 외로움을 달래 주는 것은 오로지 바닷속에서 전해오는 손맛의 유혹뿐이기 때문이다. 취재 협조 : 군산낚시프라자 (063)442-4046 gunsannaksi.com 글|서승범 기자 사진|정진호 기자 초보자 바다낚시 가이드 즐기려면 잘 챙겨라! 낚싯꾼의 세계는 ‘오로지 낚시’다. 그래서 먹을 것도 사람 먹을 밥보다 물고기 밑밥과 미끼를 더 챙긴다. 하지만 바다낚시를 경험하고 싶은 이라면 든든한 먹을 거리와 시원한 마실 거리, 긴 소매 옷을 준비해야 한다. 먹을 거리는 제대로 된 한 끼 밥과 여러 가지 간식거리가 필요하고 마실 거리는 얼려가는 것이 좋다. 긴 소매 옷은 새벽에는 추위를 막고 낮에는 피부가 타는 것을 막는다. 낚시점이나 등산장비점에서 1인용 방석(2천 원) 하나 있으면 엉덩이가 편하다. 갯바위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매너 3가지. 옆 팀 방해 안하기, 조용히 하기 그리고 자기 쓰레기 치우기다. 다른 사람이 낚싯대를 드리운 곳에 낚시를 던지지 않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낚시 예절. 시끄럽게 하면 고기들이 오질 않는다. 물고기가 입질을 할 때는 숨소리도 내지 않는 것이 ‘꾼의 세계’이다. 재미로 읽는 코너 물고기도 물을 마실까? 갯바위에 대여섯 시간 머물다 보면 바닷물이라도 마시고 싶을 만치 목이 마르다. 물 속에 있는 물고기가 부러울 뿐. 하지만 물고기도 갈증을 느낀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의 경우 몸 속의 염도보다 바닷물의 염도가 높기 때문에 삼투 현상에 의해 몸 안의 물이 빠져나간다. 그래서 물고기는 입을 뻐끔거리며 바닷물을 마신다. 물론 바닷물의 염분은 아가미로 내뱉고 수분만 흡수한다. 민물고기는 반대. 몸 안의 염도가 물의 염도보다 높아 수분이 몸 안으로 들어온다는 뜻. 그래서 민물고기는 먹이를 통해 염분을 보충한다. TIP 고군산군도 낚싯배가 아닌 일반 여객선을 타고 간다면 군산 여객선 터미널을 이용한다. 하루 4차례 오가며 값은 성인 기준 편도 1만1천 원 안팎. 유람선은 군산항에서 떠나 다시 군산항으로 돌아오는 유람 코스로 코스에 따라 1만5천 원에서 3만 원 사이. 낚싯배를 이용할 경우 비응항이나 내항에서 출발하면 3만∼4만 원 정도, 야미도에서 출발하면 거리에 따라 1만∼3만 원 정도 한다. 이밖에 흑도는 4만 원선, 어청도는 6만 원 정도 한다. 시간 여유가 된다면 낚시 뿐만 아니라 선유도를 둘러봐야 한다. 선유도와 다리로 연결된 장자도의 해지는 풍경은 놓치기 아까운 장관이다. 선유해수욕장은 주변에 자잘한 섬들이 많아 높은 파도가 없고 망주봉을 안고 있어 경치가 좋다. 금강하구둑 금강하구둑은 400여 km를 달려온 금강물이 서해로 접어드는 곳. 지난 1990년에 만들었으며 농업용수와 공업용수 공급은 물론 흙과 모래가 바다로 흘러드는 것을 막아 군산항을 보호하고 바닷물의 역류를 막아 농경지를 보호한다. 금강하구둑 덕분에 군산과 장항은 이웃이 되었고, 바로 옆에는 철새도래지가 있어 장관을 이룬다. 휴게소 꼭대기에 간이전망대가 있다. 동백정은 동백꽃으로 유명하지만 꼭 철이 아니라도 동백정은 꼭 한 번 들러볼 만하다. 너른 바다를 배경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소나무가 일품이며 그 사이로 부는 바람 또한 상쾌하기 때문이다. 바로 옆의 서해안화력발전소 때문에 운치는 덜하지만 소나무숲 산책길은 갔던 길을 다시 오게 만드는 힘이 있다. 동백정 옆에는 홍원항과 서천해수욕장이 있어 포구의 정취와 해수욕장의 관광도 겸할 수 있다. 희리산 자연휴양림 군산에서 금강하구둑을 건너 서천에 오면 희리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희리산은 높이 329m의 낮은 산이지만 늘씬한 해송들이 있어 찾은 이를 반긴다. 희리산 자연휴양림은 여느 휴양림처럼 산막과 야영장이 있다. 휴양림 안에 물놀이장이 있어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7평형 4만4천 원, 21평형 12만 원. 인터넷 www.huyang.go.kr에서 오른쪽 지도의 충청도-희리산자연휴양림 선택. 군산에는 군산버스터미널 근처에 여관이 많다.
휴가철 안전한 자동차여행을 위한 체크포인트 미리 점.. 2005-07-12
무더위가 본격화되는 7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흐르고 마음은 이미 바다나 강으로 떠난 지 오래다. 가족, 또는 연인과 함께 바캉스를 갈 생각에 들뜬 기분은 7월이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들뜬 기분에 자칫 사고가 날 수 있으므로 미리 준비하는 것이 최선이다. 올 여름 휴가철을 맞아 자동차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다음의 체크포인트를 꼭 기억하도록 하자. 할인점에서 용품 구입과 정비를 한번에 해결 바캉스를 떠나기 앞서 먼저 할 일은 자동차 점검이다. 먼저 엔진 오일과 브레이크 오일, 변속기 오일 등의 상태와 양을 체크해본다. 오일이 부족하다고 바로 차가 서지는 않지만 그대로 놔두고 장거리를 달리다 보면 엔진에 고장을 일으켜 수리비가 만만찮게 들 수 있다. 또한 황사로 인한 먼지나 비가 내리는 길을 달릴 때 더러워지기 쉬운 앞 유리를 닦아주는 워셔액도 확인해보고 부족하면 채워 넣자. 워셔액이나 엔진 오일은 자동차 용품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이밖에 여름용 시트커버, 발수 코팅제, 그리고 햇빛 가리개 등과 같이 바캉스 길에 필요한 자동차 용품들을 미리 정리해두는 것도 안전운전에 도움이 된다. 타이어 상태도 출발 전에 확인하자. 타이어 공기압은 너무 낮거나 높지 않게 규정치(30∼34psi)에 맞춰 채운다. 공기압이 맞지 않은 상태로 장거리를 달리면 심한 편마모가 일어나 타이어를 교환해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타이어가 많이 닳았거나 편마모된 상태라면 미리 교환하는 것이 안전하다. 타이어 교환 때는 휠 얼라인먼트도 꼭 확인하도록 한다. 떠나기 준비도 바쁜데 자동차와 관련된 워셔액이나 타이어 점검을 위해 용품점과 정비소를 두 번이나 다닐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이 있으면 대형 할인점의 자동차 코너를 방문하자.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할인점에서는 바캉스 시즌을 맞아 자동차 용품 할인 행사와 더불어 간단한 자가정비를 도와준다. 대부분 용품과 정비코너를 한 곳에 같이 두는 곳이 많아 용품 구입과 안전점검을 한번에 끝낼 수 있다. 다음은 효율적인 짐 챙기기 요령이다. 요즘 7∼9인승 SUV가 부쩍 늘었다지만 여전히 세단형 승용차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차들은 SUV나 미니밴에 비해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작기 때문에 많은 짐들을 싣는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보통 트렁크에 넣고도 모자라 차 안 여기저기에 쑤셔 넣으면 짐 때문에 정작 사람이 비좁게 앉아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우선 트렁크의 잡다한 자동차 용품을 정리한다. 꼭 필요한 공구 등만 남겨두고 여행에 쓸모가 없는 것은 깨끗이 치운다. 다음으로 도착한 후 꺼내는 순서를 생각해 짐을 싣는다. 캐리어를 사용하면 승용차도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다. 보통 루프 캐리어는 선반형과 파이프형이 있는데, 선반형은 디자인이 투박하고 무겁긴 하지만 짐이 많이 들어가 실용적이다. 파이프형은 루프라인을 따라 달린 두 개의 봉에 짐을 얹는 제품이다. 이러한 루프 캐리어는 루프랙에 쉽게 달 수 있고, 루프랙이 없는 차라면 별도의 키트를 붙여 고정한다. 이밖에 지붕에 얹는 루프 박스는 다양한 짐을 수납하기에 좋은 제품이다. 지붕에 갖가지 물건을 얹는 게 불안하다면 트렁크에 붙이고 끈으로 고정시키는 트렁크 캐리어도 꽤 유용하다. 루프 캐리어만큼 많은 짐은 실을 수 없지만 웬만한 여행용 가방 같은 것을 올려두기에 좋다. 용품점 등에서 살 수 있는 캐리어는 보통 스웨덴과 일본, 프랑스에서 수입한 제품을 비롯하여 국산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10만∼40만 원 정도 들이면 구입에서 설치까지 끝낼 수 있다. 2가지 코너링 원칙으로 가족이나 친구 등을 태우고 떠나는 길은 안전이 최우선이다. 보통 운전을 하다 보면 난코스를 만나게 되는데 운전중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미리 익혀보자. 강원도처럼 유난히 급커브가 많은 국도에서는 몇 가지 주의할 운전 요령이 있다. 특히 초보 오너에게는 눈앞의 굽은 길이 그리 만만치 않다. 먼저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방법부터 알아보자. 안전하게 커브를 돌아나가려면 양손이 엇갈리지 않는 요령이 중요하다. 먼저 한 손은 스티어링 휠을 아래로 당기고 다른 한 손은 위로 올려주는 ‘논 크로싱’ 조작법을 익혀두자. 이 방법은 주로 스티어링 휠을 수직으로 나누었을 때 왼쪽은 왼손이, 오른쪽은 오른손이 잡는다는 기분으로 다루면 무난하다. 스티어링 조작법을 익혔다면 이제 코너링의 두 가지 원칙인 아웃-인-아웃과 슬로 인-패스트 아웃을 살펴보자. 아웃-인-아웃은 코너에 진입하기 전에 내가 빠져나갈 라인을 먼저 찾는 것이다. 차가 코너를 따라 돌 때에 밖으로 나가려는 특성을 원심력이라 하는데 회전반경을 크게 하면 원심력을 줄여 안전하게 코너를 공략할 수 있다. 방법은 코너에 들어서면 먼저 길 바깥으로 차를 튼 다음 코너 중간에서는 안쪽으로 붙이고 코너를 빠져 나올 때 다시 바깥쪽으로 달리는 것이다. 구불구불 코너가 연속적으로 이어진 곳은 첫 번째 코너를 빠져 나올 때 너무 바깥으로 붙으면 다음 코너에서 차를 제어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때는 도로의 중앙에서 곧바로 다음 코너의 바깥쪽을 찾아야 안전하게 코너를 빠져 나올 수 있다. 이는 최대한 직선에 가까운 라인을 타기 위한 방법으로 원심력을 줄여 스티어링 휠을 최대한 작게 틀면서 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7월은 집중호우 및 소나기가 내리는 일이 많다. 비가 내려 미끄러운 길에서는 절대 서행해야 한다. 도로 위에 묻어 있는 기름기가 비와 섞이지 못해 표면에 뜨게 되므로 타이어의 접지력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급한 코너에 진입하기 전에는 충분히 속도를 줄이고 코너 중간에서 브레이크를 밟는 일이 없어야 한다. 액셀 페달도 완전히 직선로에 들어선 다음 한 박자 느리게 밟아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가 중심을 잃고 도로 중간에서 돌아버리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상태에서 빗물 등이 고여 있는 곳을 발견했다면 브레이크나 액셀 페달의 조작 없이 그대로 빠져나가는 것이 최고의 안전운전이다. 급한 내리막길에서는 꼭 엔진 브레이크를 쓴다. 긴 내리막길에서 풋 브레이크를 계속 밟으면 제동력이 약해져 자칫 브레이크가 한순간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내리막 정도에 따라 2∼3단으로 바꾸면서 엔진 브레이크와 함께 브레이크 페달도 조금씩 나눠 밟아 속도를 줄인다. 자동변속기가 달린 차 D레인지에서 오버드라이브 스위치를 끄거나 기어를 3단에 놓는다. 만약 경사가 심할 경우 2와 L레인지로 바꾸어 넣으면 안전하게 내리막길을 빠져 나올 수 있다. 도로 폭이 좁거나 왕복 2차선 도로가 대부분인 국도는 때에 따라서 앞지르기를 해야 할 경우가 있다. 이때는 중앙선이 점선으로 그어진 구간만 추월이 허용되므로 상대방 차와의 거리와 속도에 맞춰 재빨리 추월을 끝내야 한다. 앞차의 속도를 미리 생각하고 마주 오는 차의 거리를 계산해 안전하다고 판단이 되면 왼쪽 방향 지시등을 켜 앞차에게 앞지르겠다는 뜻을 전하고 기어단수는 달리던 속도보다 한 단 낮춰 순간가속으로 앞질러 나간다. 보험회사별 긴급번호를 미리 알아둬야 운전중 차가 고장 나거나 도로 중간에 멈춰 섰다면 비상등을 켜고 도로 한쪽에 차를 세운다. 운전자 공구에서 삼각 표지판을 꺼낸 후 충분한 거리를 두고 차 뒤쪽에 세워 고장 차가 서 있음을 알려야 한다. 삼각 표지판을 세울 때는 뒤따르는 차가 없는지 등을 확인하고 안전사고에 주의한다. 차를 세운 후 자동차 메이커나 보험회사(표1) 등이 운영하고 있는 긴급출동 서비스를 요청하고 운전자나 승객이 갑자기 몸에 응급상황이 일어나면 119로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한다. 사고가 났을 때는 즉시 차를 세우고 사상자부터 확인한다.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자는 사고가 경미하다면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후송한다. 부상이 크거나 목 허리 등을 다친 때에는 움직여서는 안 되고 그대로 119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다. 구호조치를 끝낸 뒤에는 사고를 목격한 증인을 확보하고 사고차들의 최종 위치 등의 증거를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노면에 표시해둔다. 사상자가 없는 단순한 물적 피해만 일어난 사고는 보험회사에 사고처리를 위임하거나 운전자끼리 합의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렇지 않은 사고는 반드시 경찰서에 신고해야 뒤탈이 없다. 운전을 오래하다 보면 졸음이 쏟아지기도 한다. 특히 휴게소 등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바로 출발했다면 식곤증으로 졸음운전을 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 보통 운전자들은 껌이나 사탕 등을 먹거나, 오디오 볼륨을 높여 졸음을 참아가며 운전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졸음운전은 사고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시간을 충분하게 잡아 출발하도록 하고, 목적지에 가는 도중 졸리면 휴게소에 들러 잠깐 동안 차 안에서 눈을 붙인 뒤에 다시 출발하는 것이 안전을 지키는 기본이다. 이때 갓길에 차를 세우고 자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 필요한 용품을 사고, 자가정비도 모두 마쳤다. 여기에 운전의 요령까지 익히고 보니 어느새 들뜬 마음에 자신감이 넘친다. 이제 즐겁게 바캉스를 떠나는 일만 남았다. 모처럼 일상을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는 길, 안전한 여행이 되도록 좀더 주의를 기울이자. Z Tip 달리는중 차에 이상이 생겼다 - 손쉽게 할 수 있는 자동차 정비법 운전중 타이어 점검 운전중 타이어 점검은 음악을 끄고 틈틈이 창문을 열어 타이어의 소음을 점검해본다. “틱틱” 거리는 소리가 타이어 쪽에서 난다면 타이어에 이물질이 박혀 있다는 증거다. 이때는 안전한 장소에 차를 세우고 소리의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못이나 파편 등이 있다고 바로 빼버리면 바람이 급하게 빠질 수 있으니 주의한다. 만일 펑크가 나서 움직일 수 없다면 스페어 타이어로 바꿔준다. 먼저 차를 세워둔 상태에서 렌치를 이용해 휠 볼트를 한번 풀어준 후 잭을 꺼내 차체를 들어올리고 휠 볼트를 완전히 풀어낸 후 스페어 타이어를 끼운다. 한편 용품점에서 파는 타이어 펑크용 접착액도 급할 때에 요긴하게 쓰인다. 타이어의 펑크난 부분에 접착액을 넣어 메꾸는 방식인데 임시 방편임을 명심해야 한다. 와이퍼 고장 주룩주룩 비가 오는데 와이퍼가 움직이지 않는다. 이때는 와이퍼를 돌리는 모터가 이상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먼저 퓨즈박스를 열어 퓨즈가 끊어지지 않았는지 점검해보고 끊어졌다면 예비퓨즈로 갈아준다. 모터는 도는데 와이퍼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와이퍼 끝의 나사가 풀려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렌치로 조여준다. 응급조치로 비눗물 등을 앞유리창에 바르면 어느 정도 발수 효과를 볼 수 있어 빗물이 유리창에서 잘 흘러내린다. 배터리 방전 야영지에서 차를 세워둔 채 랜턴이나 전기 제품을 시거잭에 꽂아 쓴다면 배터리가 방전될 수 있다. 다행히 다른 차가 있다면 점퍼 케이블을 이용해 충전한다. 케이블을 연결할 때는 두 차의 배터리에 +극은 +극끼리 연결하고, 상대방 차의 -극에 연결한 선은 방전된 차의 엔진 블록에 연결하면 된다. 시동이 걸리면 가속페달을 조금씩 밟아주면서 10분 이상 공회전을 시켜 배터리를 충전시킨다. 도움 받을 차가 없다면 수동기어 차의 경우엔 밀어서 시동을 걸 수 있다. 시동키를 ‘ON’ 위치에 두고 기어를 1단이나 2단에 넣은 후 클러치를 밟고 있다가 차가 움직여 탄력이 붙었을 때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서 클러치를 떼면 된다. 다만 내리막 길 등에서는 위험하므로 평지에서 하는 것이 좋다. 오버히트 내리쬐는 햇볕에 장시간 달리다 보면 수온계가 올라가고 보닛에서 김이 날 때가 있다. 이렇게 엔진이 오버히트(과열) 했을 때는 되도록 그늘 밑에 차를 세우고 보닛을 열어 엔진을 식혀야 한다. 냉각팬이 돌면 시동을 켜 놓고, 돌지 않으면 꺼서 식히는 것이 좋다. 엔진이 식은 후 냉각수의 양이 부족하면 수돗물로 보충해준다.
“풀처럼만 농사되었으면 벌써 부자되고도 남았지” .. 2005-06-22
단양시내에서 남한강변을 따라 도담삼봉을 향하는 길.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해가 뜬 덕인지 밭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바쁘게 오가는 자동차와 유유히 흐르는 강물 사이에서 흙을 매만지는 사람들. 차머리를 돌려 강변으로 내려섰다. 저 만치에 꽤 오래됨직한 자전거가 서 있고 손잡이에는 하얀 잠바가 걸려 있다. 바로 옆, 열 평이나 될까말까 하는 밭에는 노부부가 밭일에 한창이다. 이순에 농사를 시작하다 “옥수수란 놈이 비료를 많이 먹어요.” 밭두둑을 덮은 검은 비닐 사이로 키 작은 순들이 나란히 나왔다. 옥수수다. 이성복(69세) 씨는 순과 순 사이에 구멍을 내고 요소 비료를 넣고 있다. 바로 옆 더 작은 밭에는 손가락 두어 마디만 한 것들이 자라고 있다. 얼마 전 뿌린 양대콩이다. 아내 김옥분(69세) 씨는 양대 주변에 파릇한 잡초들을 뽑고 있다. 비료를 넣고 김을 매는 이들의 손길이 마치 손주 녀석에게 밥을 떠 먹이고 잠자리를 봐주는 듯 하다. 이성복 씨가 나고 자란 곳은 구 단양, 지금의 단성면이다. 1985년 충주댐이 만들어지면서 살던 마을이 수몰되어 지금의 단양으로 옮겨왔다. 비료를 주던 손을 잠시 쉬고 담배를 빼어 물었다. 집 하나하나와 골목골목까지 또렷하게 생각나는 마을이 그립다. 스스로 떠나온 것이 아닌 까닭에 더욱 그렇다. 고향이 멀면 날을 잡아 찾고 이북이라면 통일을 기다리겠건만, 물 속에 갇혀 버린 고향 마을은 찾아 갈래야 방법이 없다. 김옥분 씨가 이곳으로 시집온 것은 1957년, 그의 나이 스무 살 때였다. 여섯 살 때는 어머니와 함께 일본에 징용 가는 아버지를 보며 함께 울었고 전쟁 때는 경북 상주로 피난 가서 아버지와 함께 곶감 장사를 하기도 했다. 매운 시집살이와 4남매를 키우면서 보낸 세월이 벌써 반 백 년이 되었다. 칠십 평생 가슴에 묻어 둔 것들이 많아 속은 까맣게 타버렸단다. 이 말을 하면서도 호미를 쥔 손은 여전히 바쁘고 얼굴은 무심하여 남의 얘기를 하는 듯하다. 이 부부가 농사일을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20년 넘게 식당을 하다가 자식들 뒷바라지가 거의 끝나 손을 털었다. 하지만 늘 뒤돌아볼 겨를 없이 바쁘게 살았던 탓인지, 놀리던 몸을 쉬자 병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소일거리 삼아 농사를 시작했다. 땅은 남한강변의 수자원공사 땅을 빌렸고, 돈 벌 욕심 없이 그저 먹고 자식들한테 인심 쓸 만큼만 짓기로 했다. 마늘이 유명한 단양인지라 마늘도 좀 심었고, 그밖에 이런저런 것들을 조금씩 심었다. 남는 것은 단양장(1, 6일장)에 나가 팔아 용돈에 보태기도 한다. 자식들과 손주들이 보고 싶지 않은지 물었더니 손주들은 군대 갔고, 자식들은 지난 어버이날에 왔다 갔다고 한다. 올해 오십이 된 큰 아들과 중학교 교사인 딸, 또 그 밑으로 아들 둘을 두었지만 모두 객지에서 살고 있다. 그래도 자주 볼 수 있으니 다행이라며 자식자랑은 아니하듯 계속된다. 다만 한 가지 남은 걱정은 내년에 마흔이 되는 막내 아들. 아직 미혼이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계집애들이 서로 전화질이더니, 나이 많으니까 주변에 여자가 없습디다.” “성질이 지랄 같아서 가만있으면 병 납디다” 날마다 밭일을 나오는 것은 아니다. 힘이 들거나 다른 일이 있으면 하루 거르기도 하지만, 오래 쉬지는 않는다. 아니 쉬지 못한다. 몸이란 일을 하다가 쉬면 병이 나고 농사일이란 끝없는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날도 피곤해서 쉬다가 점심 들고 낮잠이 오질 않아 밭에 나와 풀을 뽑았다. 풀은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다. 김옥분 씨는 가벼운 타령조로 흥얼거린다. ‘풀 농사∼ 지었으면∼ 나는 진즉에 부자가 되었지∼.’ 곧 칠순을 바라보는 이 부부의 손이 닿으면 흙은 고운 갈색 속살을 드러낸다. 도시에서처럼 시간을 정해 두고 하는 일이 아니라 손놀림과 표정에는 여유가 있다. 팔아 이문을 남겨야만 할 이유가 없으니 계산이나 조급함이 끼어들 틈이 없다. 부부는 말이 없다. 늘 함께 일을 하기에 말할 필요가 없다. 이따금씩 부는 상쾌한 강바람을 타고 대화가 독백처럼 이어질 뿐이다. 헌데 이 어색한 대화가 편안하기 그지없다. 옆으로 맑은 물과 푸른 산을 둘러 두고 접하니 사람도 닮는 모양이다. “이 씨네는 그 아들래미 어떻게…, 결혼 시키기로 했대?”“… …” “… …” “몇 시여? 밥 때 안되었어?” “… …” “… …” “아이고, 배고파서 일 못하겠다. 밥 먹으러 갑시다.” “… …” “… …” “어, 그려….” 글│서승범 기자 사진│최진호(프리랜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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