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 레이싱 시뮬레이터를 만나다
2012-11-23  |   24,138 읽음

처음 마주한 알크래프트의 시뮬레이터는 그 모습이 상상과는 조금 달랐다. 뭔가 커다란 다리 여섯 개가 과격하게 시트를 흔들어대는 본격적인 장면을 상상했던 사람에게 알크래프트의 시뮬레이터는 그 모습이 좀 ‘단촐’해 보이기까지 한다. 3장의 47인치 디스플레이가 운전자를 감싼 모습은 꽤 박력이 넘친다. 그러나 시트 쪽만 봐서는 그 능력이 짐작되지 않는다. 약간의 진동 정도만 지원되는 것일까? 시트의 뒷면을 지지하고 있는 두 개의 지지대가 이 시트가 움직일 것임을 막연하게 짐작하게 할 뿐이다.

알크래프트는 PC기반의 시뮬레이터다. 따라서 PC용 레이싱게임은 거의 모두 지원한다. 대표적인 PC 프랜차이즈인 니드포스피드는 물론 랠리 레이싱인 DIRT나 F1 2012도 지원한다. 게임이라기보다는 본격적인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인 rFactor나 Live for Speed도 충실히 지원하고 있는 데다 신작이 나오면 속속 지원 리스트에 추가해 넣기 때문에 지원부분에서 염려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버킷시트에 앉아 시트포지션을 조정한 뒤 레이스용 하네스로 몸을 고정시킨다. 이제 게임을 선택하면 비로소 본격적인 주행이 시작된다.

이 시뮬레이터, 대단하다
시트를 고정하는 두 개의 막대는 알고 보니 전동식 액추에이터로 차의 롤링과 피칭은 물론 주행시의 격렬한 진동과 충격까지 표현해낼 수 있다고 한다. 니드포 스피드 시프트2에서 포르쉐 911 RSR을 꺼내 뉘르부르크링 서킷을 달려보기로 했다. 스타트하기 전부터 엔진의 거센 맥동이 시트로 전달되고, 출발을 하면 굉음과 함께 온몸이 말 그대로 요동치기 시작한다. 롤케이지로 둘러싼 뒤 돌덩어리 같은 서스펜션을 단 레이스카의 거친 주행감각이 여과 없이 그대로 전달된다. 변속 패들을 챌 때마다 충격이 등을 가격하고, 풀 브레이킹과 동시에 시트는 앞으로 꼬꾸라지며 운전자를 몰아붙인다. 진동과 충격이 실제보다는 과장되어 있지만, 실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닌, 실감을 재현하는 것이 시뮬레이터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식의 과장은 오히려 즐겁다.

이어서 랠리 게임인 Dirt3로 오프로드를 달린다. 수풀 사이의 자갈길로 랠리카를 전속력으로 몰아붙이는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47인치 모니터 3대가 우거진 숲속을 달리는 느낌을 스케일감 있게 표현할 동안 바닥에 튀어오르는 자갈은 정신없이 시트를 두들겨댄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점프. 요란한 차의 움직임이 갑자기 뚝 끊기고 허공을 가르는 차 속 정적감을 시뮬레이터가 재현해내는 순간은 감동 그 자체다.

이 날 운전의 백미는 F1이었다. 레이싱 시뮬레이터니까 동경하던 팀의 레이스카에 타고 영암 인터내셔널 서킷을 달리는 것도 가능하다. 드라이버의 시선으로 보는 넓은 시야각을 따라 빠른 속도로 흐르는 정경과 함께 오픈휠만의 특권인 휠과 서스펜션 움직임이 실감나게 표현된다. 마침 날씨는 퍼붓는 빗속,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물보라 속에서 시속 280km로 앞차를 바짝 추격하는 상황의 긴박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실제로 이것을 해내는 F1 드라이버의 능력도 경이롭지만, 이 정도의 긴박감을 시뮬레이터를 통해 느껴보는 것도 무척 근사한 경험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린다면 당신도 팬
초기의 밀물 같은 감탄이 지나가고 나면 조금씩 단점도 보이기 시작한다. 게임에 따라서는 자세변화가 적극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멀미를 부를 정도로 액션이 지나친 게임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조절할 수 있지만, 세팅이 복잡해 일일이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시뮬레이터가 최고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경험해 보았는데 그 거동이 너무 진짜 같다보니 쉽게 피곤해진다. 약간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신경질적인 차와 싸우다 보면 치밀어 오르는 스트레스에 어쩔 줄 모르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소소한 단점 따위는 다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알크래프트의 시뮬레이터는 매력적이다. 그곳이 뉘르부르크링이든, 뉴질랜드의 자갈길이든, F1 서킷이든 일단 선택하고 달려보라. 격정적인 레이스의 끝, 실제 레이스를 벌인 듯 후들거리는 다리를 지탱하며 일어날 때면 누구라도 이 머신의 매력을 거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취재협조 | 알크래프트 버추얼 레이스파크 www.virtualracepark.com

알크래프트 개발자 인터뷰
알크래프트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노치석 대표는 국내 뮤직 시뮬레이션 게임의 장을 열었던 EZ2DJ를 만든 장본인으로 국내 아케이드 게임과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다. 개발을 진두지휘한 김무광 기술이사의 경우 본업은 3D그래픽 디자이너. 마쓰다 RX-7으로 레이스에 출전하면서 쌓은 실전 경험을 시뮬레이터에 피드백하면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척박한 레이싱문화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며 직접 레이싱 시뮬레이터를 만들어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보통 어떤 사람들이 시뮬레이터를 구입하는지요?
A. 
처음에는 레이싱팀에서의 수요를 기대했습니다만 구매로 연결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경제적으로 항상 쪼들리는 팀에게 4,000만원에 가까운 시스템의 가격은 부담스러웠던 것이지요. 현재 평택과 건대입구의 레이싱파크 외에 몇몇 업소에 납품되었고 국내 가전사 한 곳에서는 3D TV 홍보 캠페인 용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연구목적으로 구입해간 대학도 있고 드물지만 개인도 있긴 합니다.

Q. 2축 모델보다 자유도를 키운 제품은 고려해 보셨나요? 이를테면 3축이나 6축 같은 것들 말입니다
A. 
안 했습니다. 필요가 없으니까요(웃음). 우선 3축 모델은 2축과 비교할 때 사용자 경험에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6축 모델은 모든 운동을 구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제품 자체가 대단히 크고 무거운 데다가 비싸지며, 매우 큰 공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보통의 상업공간에서 구동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비용과 구동능력을 생각했을 때 현재의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방식은 2축입니다.

Q. 기본적으로는 PC 기반의 소프트웨어에서 작동되는 제품으로 보입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이나 XBOX360 같은 콘솔기반으로의 진출도 고려하고 있는지요?
A. 
콘솔을 저희 시뮬레이터에 접목시키는 일은 기술적으로는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서드파티 인증이라는 현실적인 장벽이 있습니다. 소니나 MS가 제시하는 서드파티 등재 요건이 큰 개발사 위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저희 같은 소규모 회사가 접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Q. 그동안 투자유치나 기술도입은 없었는지요?
A. 
별도의 투자를 받지 않고 자비로 만들었고, 기술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자체적으로 연구하며 만들어나간 것입니다. 기술을 구현해내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자금 문제로 몇 번의 고비가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물건의 주문이 온다든지 샘플이 갑자기 팔려나간다든가 하는 식으로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Q. 국내에는 아직 레이싱 시뮬레이터를 소비할 만한 문화가 없는 상태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이러한 제품을 만들어낸 계기가 있나요?
A. 
10여 년 전 골프는 귀족의 스포츠였습니다. 그렇지만 몇 명의 뛰어난 한국인 선수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언제 어디서나 골프를 즐기고 싶다는 욕구가 스크린골프 붐을 전국적으로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포뮬러원을 개최한 지 삼 년째인 한국의 카레이싱은 많은 면에서 스크린 골프 대중화의 직전 시점을 떠올리게 합니다. 레이싱문화가 자리를 잡아갈수록 시뮬레이터를 통해 운전을 즐기려는 수요는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레이싱 시뮬레이터 또한 스크린 골프만큼이나 빠르게 생활 속에서 자리를 잡아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시뮬레이터의 분류
모션 시뮬레이터는 얼마나 자유롭게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는지에 따라 크게 몇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국내에서는 ‘축’이라는 용어로도 불리는 DOF(Degree OF Freedom)가 그것으로 XYZ 각 방향의 직선운동 세 가지(전후/좌우/상하)와 각 축의 회전운동 세 가지(롤링/요잉/피칭)를 합한 총 여섯 가지가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DOF 수가 늘어날수록 시뮬레이터의 표현범위는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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