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시장 공략의 첨병, 현대 i 시리즈
2012-11-22  |   33,068 읽음

“현대차는 시장 포트폴리오가 참 좋습니다. 전세계를 통틀어 한 지역에 25% 이상 치우친 경우가 없거든요. 미국과 중국, 인도 역시 이런 전략에 충실해요. 판매를 여러 시장에 적절히 분산시켜 놓았어요. 최근 토요타가 위기를 겪은 것은 미국 시장에 75%나 의존한 결과였지요.”

지난 7월 만난 현대차 오석근 부사장(디자인센터장)의 설명이다. 여러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현대차이지만 북미는 역시 현대차의 최대 시장이다. 오랜 세월 공을 들인 결과다. 현대는 지난 1986년 포니 엑셀을 앞세워 처음 미국에 진출했다. 첫해에만 16만 대를 팔아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듬해엔 한 술 더 떠 26만여 대를 팔았다. 그러나 곧 내리막을 걸었다. 품질과 서비스가 뒷받침되지 않은 탓이었다. 1989년 캐나다 브로몽에 세운 공장은 판매 부진으로 6년 만에 문을 닫았다.

지난해 현대차는 북미 진출 25주년을 맞았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안정적인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했다. 나아가 지금은 북미에서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속에서도 성장해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2009년 제네시스에 이어 올해는 아반떼가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되기도 했다. 급기야 지난해엔 현대/기아차의 북미 시장 판매가 국내 시장보다 많았다.

불황 속에서도 가파르게 성장하는 현대차
현대차는 유럽 시장 공략에도 가속을 붙이고 있다. 유럽이 북미와 맞먹는 시장 규모를 지닌 까닭이다. 사실 현대차는 북미보다 유럽 시장에 훨씬 먼저 진출했다. 1977년 포니를 내보낸 게 처음이었다. 21세기 들어서는 현지화에 나섰다. 2000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현대차 유럽법인(HME, Hyundai Motor Europe GmbH)을 세웠다. 2004년엔 유럽기술연구소(HMETC, Hyundai Motor Europe Technical Center GmbH)를, 2008년엔 체코에 공장을 지었다.

지난해 6월엔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17번째 정식 회원사로 가입했다. 유럽에서 공식적으로 인증한 자동차 제조업체가 되었다는 뜻이다. 1991년 설립된 유럽자동차공업협회는 유럽의 자동차 정책이나 법안 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현재 회원사 가운데 유럽 이외 지역에 본거지를 둔 업체는 GM과 포드, 토요타와 현대차뿐이다.

지난 11월엔 독일과 프랑스에서 현대차 판매를 맡았던 스웨스 프레이 그룹과 대리점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직영 판매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현대차는 이미 영국과 이태리, 스페인, 폴란드, 노르웨이에 현지 판매법인을 운영 중이다. 여기에 독일과 프랑스를 더하면서 현대차는 유럽 전체 자동차 수요의 80%에 해당되는 시장에서 직접 판매에 나서게 되었다.
한편, 지난해 5월 현대차 유럽법인은 “유럽 진출 34년 만에 누적판매 500만 대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수치보다 더 놀라운 건 상승세다. 현대차의 유럽 누적판매는 2001년 200만 대, 2005년 300만 대, 2008년 400만 대로 빠르게 늘고 있다. 덩달아 유럽 시장 점유율 역시 치솟고 있다. 2009년만 해도 2.4%였는데, 올 상반기엔 3.2%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현대차는 올 상반기 유럽 시장에서 총 29만1,273대를 팔았다. 전년 동기보다 10.6% 증가한 실적이다. 재정위기로 유럽 시장이 심각하게 위축된 가운데 거둔 실적이어서 더 관심을 모았다. 현대차 관계자는 “유럽 시장에 특화된 전략 모델을 연이어 출시해 현대차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크게 바꿔놓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최근 현대차의 유럽 판매를 이끄는 견인차는 i 시리즈다. 지난 8월까지 i 시리즈의 유럽 누적 판매는 21만4,332대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10.4% 늘어난 수치다. 그 결과 현재 i 시리즈는 현대차 유럽 판매의 73%를 차지했다.

유럽 시장에 특화된 i 시리즈
현대차는 2007년 최초의 해외공장(인도 첸나이) 전용 생산 모델인 i10을 출시했다. i10은 기아 모닝(현지명 피칸토)의 자매 모델이다. 출시 당시 1.1L 엔진을 얹고 66.7마력, 10.1㎏·m를 냈다. i10은 동반석 에어백, ABS, 시트벨트 프리텐셔너 등 기존 소형차의 수준을 뛰어넘는 안전장비로 주목받았다. 센터 콘솔박스, 글러브박스 등 수납공간도 풍성하게 갖췄다.
i10은 2010년 9월 페이스리프트로 거듭났다. ‘플루이딕 스컬프처’를 테마로 범퍼에 선명한 무늬를 넣고, ‘헥사고날’ 그릴을 씌웠다. 헤드램프도 보다 입체적으로 빚었다. 스마트폰을 연결할 수 있는 블루투스 기능도 더했다. 엔진은 2010년 2세대로 가변밸브 타이밍 기구를 얹어 2세대로 거듭난 1.2L 카파2와 3기통 1.1L 디젤 터보 등을 얹는다.

i20는 i10의 형뻘이다. 2008년 12월 데뷔해 지난 3월 부분변경을 거쳤다. 현대 클릭의 유럽 버전인 겟츠의 후속으로 선보인 i20는 정갈한 유럽풍 스타일과 넓은 실내 공간, 각종 안전사양 및 편의사양을 두루 갖춘 콤팩트 카다. 클릭보다 휠베이스를 70㎜ 늘려 한층 여유로운 공간을 확보하고, 실내는 유럽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해 간결하고 실용적으로 꾸몄다. 엔진은 모두 직렬 4기통으로, 1.2~1.6L 가솔린과 1.1~1.6L 디젤 등 총 7가지다. 1.2L 카파 엔진의 경우 최고출력 80마력, 최대토크 11.4㎏·m를 낸다. i20는 유럽의 신차평가 프로그램 ‘유로 NCAP’에서 별 5개 만점을 받아 화제를 모았다. 가죽 스티어링 휠, 쿨링 글러브박스, 전동 접이식 사이드미러 등을 갖춰 ‘프리미엄’ 소형차를 지향한 것이 특징.  

ix20는 i20를 밑바탕 삼아 만든 소형 다목적차(MPV)로 2010년 파리모터쇼에서 데뷔했다. 계보를 따지면 라비타의 후속이다. ix20는 현대차 유럽연구소에서 현지 라이벌을 꼼꼼히 분석해 디자인했다. 매끈하고 스포티한 스타일로 다목적차 특유의 딱딱한 이미지에서 벗어났다. 지붕을 i20보다 110㎜ 더 높여 공간감과 개방감을 두루 키웠다.

엔진은 1.4L 90마력, 1.6L 126마력 등 가솔린과 1.4~1.6L 디젤 등 총 4가지다. 한편, ix20는 기존 i 시리즈보다 ‘효율’을 한층 강조했다. 이를 위해 경제운전 안내 시스템, 전동식 파워스티어링(MDPS) 등을 달았다. 나아가 뛰어난 연비를 강조한 ix20 블루도 별도로 선보였다. 이 모델은 ISG(아이들 스톱&고)와 저구름저항 타이어까지 갖췄다.

ix35는 투싼의 유럽형이다. 실제로 유럽에서 디자인했다. BMW에서 현대 유럽 디자인센터로 옮긴 토마스 버클(Thomas Buerkle)의 솜씨다. 1.6~2.0L 가솔린과 1.7~2.0L 디젤 엔진을 얹고 앞바퀴 및 네바퀴굴림으로 선보였다. 그 밖에 러시아 등 일부 시장엔 베라크루즈를 ix55로 선보였다. 한편, 현대차는 그랜저급 세단인 i50도 개발 중이다. i50은 앞바퀴굴림 베이스의 AWD 버전까지 거느릴 것으로 알려졌다. 

i30에 이어 i40로 모델 다변화
현재 i 시리즈의 구심점은 i30다. 현대차 유럽시장 공략의 핵심 모델이다. i30는 2006년 파리모터쇼에 등장한 컨셉트카 ‘HED-3(아네즈)’에서 비롯되었다. 이듬해 3월 제네바모터쇼를 통해 유럽 시장에 공식 데뷔해 지금껏 46만 대 가까이 팔렸다. i30는 유럽 C 세그먼트 시장을 겨냥했다. 그것도 이 시장의 베스트셀러인 폭스바겐 골프를 라이벌로 삼았다.

유럽 데뷔 당시 i30는 전모델에 EBD-ABS와 듀얼 에어백을 달았다. ‘유로 NCAP’에선 만점을 받았다. 승차감과 핸들링은 유럽인 눈높이에 맞췄다. 기존 현대차보다 탄탄하고 쫀득했다. 올해 나온 2세대는 한층 자신감 넘치는 디자인을 자랑한다. 1.6L 가솔린 및 디젤, 1.8L 가솔린 등 3가지 엔진을 얹는다. 2세대 i30는 지난 3~8월 유럽에서 4만 대나 팔렸다.

현대차는 지난해에 i40도 투입했다. 소형차에서 중형차로 영역을 넓히기 위한 새 유럽 전략의 신호탄이다. i40는 유럽 D 세그먼트 시장에서 폭스바겐 파사트 등 터줏대감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왜건과 세단 두 가지 차체로 선보였다. 엔진은 1.6과 2.0L 가솔린, 1.7L 디젤 등 총 4가지다. 현재 국산 중형차 가운데 유일하게 디젤 엔진을 얹은 모델이기도 하다.

현대차는 i40 국내 출시행사 때 “폭스바겐 파사트 바리안트보다 경쟁력이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가 유럽 브랜드의 특정 차종을 라이벌로 지목한 첫 번째 사례였다. 그만큼 열심히 연구했고 자신 있다는 방증이었다. i40는 ‘유럽 차체기술 컨퍼런스’에서 아우디와 메르세데스 벤츠를 따돌리고 ‘2011 유럽 올해의 차체 기술상’을 거머쥐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유럽 상용차 시장에서도 i가 활약 중이다. 현대차는 그랜드 스타렉스를 유럽에서 i800으로 팔고 있다. 6인승 밴은 i로드(Load)란 이름으로 선보였다.

한편, 현대차는 최근 국내에서 i 시리즈 집중 마케팅에 나섰다. i30와 i40를 벨로스터와 함께 ‘PYL(프리미엄 유니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묶고 보다 젊은 층을 겨냥한 마케팅에 뛰어들었다.
현대차는 유럽 공세의 수위를 나날이 높일 계획이다. 최근 i30엔 5년 무제한 보증을 내걸었다. 현대차는 “유럽에서 2013년 판매 50만 대, 2015년 시장점유율 5%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또한 이번에 열린 파리모터쇼에서는 신형 i30 3도어를 내놓는 한편 “내년 i20 경주차를 앞세워 WRC(세계월드랠리챔피언십)에 복귀하겠다”고 밝혀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일부 모델이 유럽에서 i 시리즈로 판매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i 시리즈는 처음부터 까다로운 유럽 시장의 눈높이를 맞춘 차들이다. 유럽 현지 메이커들조차 현대 i 시리즈에 강한 경계감을 표할 만큼 i 시리즈는 유럽차들을 잔뜩 긴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유럽 감성이 가득한 i 시리즈를 한국에서도 탈 수 있는 건 즐거운 일임에 분명하다.   

< 저작권자 -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