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뉴스] 삼성교통박물관 유럽 스포츠카 특별전
2019-06-17  |   9,914 읽음

삼성교통박물관 유럽 스포츠카 특별전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유럽 스포츠카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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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모터스포츠의 고향이다. 수많은 유럽 자동차 메이커들이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를 만들어낼 수 있는 토양이 바로 거기에 있다. 메르체데스 벤츠와 아우디, 푸조, 르노 등 대규모 메이커에서부터 TVR과 로터스처럼 백야드 빌더에 바탕을 둔 중소 브랜드,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부가티 등 수퍼카 제조사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기술과 개성을 담은 독특한 스포츠카들을 선보이고 있는 곳이 유럽이다. 다양한 성격의 스포츠카를 소화해내는 유럽 시장은 이들 메이커의 전통과 기술력 못지 않게 스포츠카 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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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나 일본 등에 비해 차종의 다양성이 크게 떨어지는 국내에서는 국산차가 아니라도 개성 넘치는 해외의 스포츠카들을 좀처럼 접하기 어렵다. 개인의 취향보다는 가족 전체의 수요를 먼저 고려하는 국내 자동차 문화의 특성과 도로사정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스포츠카의 설자리를 잃게 한다. 스포츠카는 단순히 잘 달리기 위한 차라는 성격뿐 아니라 메이커의 기술력을 한 단계 높이는 역할까지 하는 이미지 리더라는 점을 널리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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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모터스와 일본 오토트레이딩 후원으로 지난 5월 4일부터 19일까지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내 삼성교통박물관에서 열린 유럽 스포츠카 초청 전시회는 세계적으로 높은 명성을 얻고 있지만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다양한 유럽 스포츠카를 직접 보고 즐길 수 있는 기회였다. 이번 전시회에는 메르체데스 벤츠와 포르쉐, 페라리, 마세라티 등 세계 최고 메이커들이 만든 스포츠카를 비롯해 BMW와 푸조, 르노의 소형차 등 모두 20여 대의 차가 전시되었다. 최근 박물관이 새 식구로 들인 재규어 D타입과 피아트 아바스, 쉘비 코브라 등 올드카들을 만나는 재미도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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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회에서는 영국에서 온 3대의 TVR 스포츠카가 가장 큰 관심을 끌었다. TVR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메이커지만 국내에서 구경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탓이다. 


1947년 트레버 윌킨슨이 영국 랭커셔 지방 블랙풀에서 설립한 TVR은 백야드 빌더 출신 중에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꼽히고, 현재 영국에서 가장 많은 생산대수를 자랑하는 스포츠카 메이커이다. 페라리나 포르쉐보다 오랜 역사를 지닌 TVR의 초기 회사 이름은 설립자의 이름을 딴 트레버 모터스(Trevor Motors). 차 한 대를 만들어 판 자금으로 다시 한 대를 만드는 방식으로 운영된 백야드 빌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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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자동차 산업의 뿌리가 된 백야드 빌더는 기복이 가장 심한 사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희소가치가 높기 때문에 멋진 차를 만들어내면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지만 대부분 차 한 대를 수공으로만 만드는 작업공정 때문에 대규모 메이커처럼 주문량을 제대로 맞추기가 쉽지 않다. 또 인기 모델의 뒤를 이을 차를 바로 선보이지 못하면 폐업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백야드 빌더의 오너가 수시로 바뀌는 것도 이 때문. 적은 생산대수를 고집하면서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모건은 백야드 빌더의 성격에 비춰볼 때 오히려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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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R 역시 수많은 오너의 손길을 거쳤다. 새차가 히트하면 회사 규모를 키우다 쓰러지는 흑자 도산의 연속이었지만 명성을 잇는 차는 끊임없이 등장했다. 58년에 나온 그랜투라는 싼값에 빠른 데다 스타일까지 좋은 차였다. 63년 V8 4.7X 엔진을 얹고 등장한 그리피스는 AC 코브라 수준의 성능을 자랑했지만 용기가 필요할 만큼 불안한 핸들링을 극복하지 못했다. 넘치는 파워에 아름다운 보디, 적당한 값으로 승부를 걸어온 TVR의 고질적인 문제는 백야드 빌더의 차들이 대개 그렇듯 잦은 고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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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R이 안정적인 경영 상태를 유지하게 된 것은 82년, 석유시추장비 사업으로 큰돈을 번 지금의 사장 피터 휠러(Peter Wheeler)가 인수하면서부터다. TVR을 인수한 피터 휠러는 이전까지 쓰던 포드 엔진을 버리고 로버 V8 엔진을 얹기 시작했다. 이후 92년 생산에 들어간 신형 그리피스는 TVR의 전성기를 열어주었다. 로버의 V8 5.0X 340마력 엔진을 얹은 그리피스는 60년대 초 재규어 XK-E를 닮은 보디 라인으로 원초적인 스포츠카의 매력을 선보였다. 현재 TVR은 그리피스 외에도 주력 모델인 키메라와 타모라, 서베라, 투스칸 등 연간 1천500대 안팎의 스포츠카를 만들어내고 있다. 


최고의 테크닉으로 맛본 스포츠카의 본능 

하루종일 부슬비가 내리던 지난 5월 3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TVR 투스칸을 만났다. 쭉 빠진 보네트와 가슴에도 미치지 않는 낮은 차체, 코발트빛 보디 컬러가 시선을 잡아당긴다. 마치 튜닝숍에서 새로 단 것만 같은 굵직한 머플러는 묵직한 배기음을 내뿜고 있다. 워낙 강렬한 성격을 지닌 차인 데다 노면까지 젖어있는 탓에 직접 시승은 못하고, 카레이서 이명목 선수가 모는 차의 옆자리에 앉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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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R의 차들이 모두 그렇듯 투스칸의 도어는 사이드 미러 아래에 숨겨진 작은 버튼을 눌러서 연다.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보디에 손잡이 하나 다는 것조차 껄끄러웠나 보다. 도어를 열고 우윳빛 시트에 몸을 밀착시켰다. 좁은 등받이는 옆구리를 단단하게 잡아주지 못하고 터널 같은 레그룸도 편하지 않다. 불편하게 앉은 자세는 긴장감을 더한다. 두텁고 높은 센터 터널은 기어를 조작할 때 자연스럽게 팔 받침대 역할을 한다. 

출발과 동시에 형광색으로 빛나는 계기판의 바늘이 바로 시속 100km를 넘어선다. 맹렬한 가속력이다. 쉴새없이 움직이는 와이퍼 너머로 90° 각에 가까운 급코너가 보인다. 이명목 선수의 손이 바쁘게 시프트 다운을 하는가 싶더니 그대로 코너를 공략한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횡가속도. 빗길이라 평소보다 낮은 속도로 달리는데도 짜릿한 전율이 느껴진다. 첫 번째 코너를 빠져나간 다음 다시 급가속, 헤어핀을 빠져 나오는 순간 차의 뒤쪽이 휙 돌아간다. ‘이런, 슬립이다.’ 도어 손잡이를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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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 가득한 표정과 달리 이명목 선수의 손놀림은 기계처럼 정확하고 매끄럽다. 속도를 거의 줄이지 않은 상태에서 스티어링 휠 카운터만으로 슬립을 막아내는 테크닉이 놀랍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한 마디. “내가 좋아하는 타입은 아닌데……. 진짜 스포츠카답네요.” 드라이빙 테크닉에 감탄하고 투스칸의 넘치는 힘에 또 한번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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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X 350마력 엔진의 힘은 사방팔방으로 터져 나갈 듯 넘친다. 스포츠 드라이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투스칸의 박진감에 반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편하게 운전할 수 있는 수퍼 스포츠카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시대를 거부한 투스칸의 원초적 본능이 전해주는 짜릿함은 한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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