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와 차, 메카닉 애호가
2018-11-20  |   46,818 읽음

MECHANIC ENTHUSIAST


자동차 메이커가 머신을 만들고 팀을 운용한다. 여기에 워치 메이커가 스폰서로 붙는다. 자동차 경주 대회 출전 팀의 일반적 공식이다. 리벨리온은 이 공식을 보기 좋게 뒤집는다.


 김민겸 기자

사진 리벨리온, 레드불


올해 열린 르망24시 레이스에는 이전과 다른 점이 많았다. 매년 우승후보로 꼽히는 포르쉐와 아우디가, 그것도 가장 강력한 클래스 중 하나인 LMP1 불참을 선언한 것. 따라서 이번 LMP1 클래스에는 토요타와 리벨리온 레이싱팀 등 6개 팀 10대의 경주차가 달리게 됐다. 결과는 토요타의 어부지리 우승. 리벨리온이 토요타에 이어 3위를 기록하며 대회가 마무리됐다. 그런데 리벨리온 레이싱팀? 왠지 들어본 것 같으면서도 생소하다.


레이스 향한 열정 담아

리벨리온(Rebellion) 레이싱팀은 ‘반란, 모반’이란 뜻을 가진 사명답게 야심찬 포부를 늘 가슴에 지니고 있다. 사실 이번 르망24시에서도 아우디와 포르쉐가 빠졌다고 해서 토요타가 손쉬운 승리를 거둔 건 아니다. 하이브리드 차량을 갖고 출전한 토요타는 평균 랩타임에서 4~5초 앞서며 선두를 유지했지만, 리벨리온이란 강력한 추격자가 있었기에 더 빨리, 더 열심히 달릴 수 있었던 거다. 르망24시 출전 팀은 크게 팩토리 레이싱팀(워크스팀)과 프라이비터로 나뉘는데 토요타는 일반 차 생산과 레이스를 겸하는 전자에, 리벨리온은 후자에 해당한다. 아무래도 규모에서 뒤쳐지는 독립 레이싱팀은 레이스에 대한 열정이 필수적이다. 이번 대회 참가는 영국 스포츠카 메이커 TVR과 프랑스 엔진오일 제조사 모튤의 합종연횡 하에 이루어진 것이지만, 리벨리온의 집념과 열정이 없었다면 성사되지 않았을 이야기. 이 외에도 리벨리온 레이싱팀은 영국 깁슨 테크놀로지에서 엔진, 엑스트랙에서는 변속기를 공급받으며 긴밀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레이싱에 대한 그들의 열정은 프랑스 유명 레이싱 만화 <미셀 베이앙> 속 레이스카를 이번 르망24시에서 현실로 소환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리벨리온은 수퍼카 등 다양한 차를 판매하고 튜닝하는 자동차 사업도 매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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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R, 모툴 등과 함께하는 리벨리온 레이싱팀


실력 인정받은 워치메이커

리벨리온은 레이싱팀 외에도 스위스 독립 시계 브랜드 리벨리온 타임피스(Rebellion Timepieces)를 보유하고 있다. 그야말로 공산품 중 복잡하기로는 으뜸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분야다 리벨리온이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건 위블로, 리차드 밀 등 스위스 하이엔드 워치 메이커들이 경쟁에 열을 올리던 투명시계를 만들면서다. 매그넘 540 투르비용(Magnum 540 Tourbillon)이 바로 그것. 레이싱팀 리벨리온이 제조사와 부품사들끼리 헤쳐 모여 식으로 르망24시 프로젝트를 수행한 것처럼 워치메이커 리벨리온 역시 프로젝트로 시계를 만드는 독특한 방식을 고수한다. 해리 윈스턴(Harry Winston), MB&F의 프로젝트 워치 개발을 담당한 에릭 지로(Eric Giroud)가 디자인을 맡았다. 레이싱팀을 운영하는 브랜드가 만든 시계답게 케이스백 구조가 레이스카의 뼈대를 연상시키는 것이 특징으로 투명 케이스를 완성하는 데 무려 100여 일이 걸렸을 정도라고. 사파이어 글라스는 일일이 다이아몬드 드릴을 이용해 깎고 폴리싱하는 과정을 거쳤다. 케이스가 투명해지는 만큼 그에 따라 작은 나사부터 각종 패널 그리고 개스킷도 이에 맞춰 투명한 실리콘으로 제작해야 했다. 리벨리온 타임피스는 이를 통해 하이엔드 워치 메이커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실력을 몸소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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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넘 540 


1000시간 내구레이스

기계에 열광하는 미캐닉들로 이뤄진 리벨리온에서 자사 시계에 레이싱 DNA를 담지 않는다면 그 또한 어불성설. 그래서 몸소 본보기를 만들어 보였다. 그 결과가 T-1000(T1K)이다. 보통 기계식 시계의 성능을 가늠할 땐 파워리저브 시간을 기준으로 삼는다(논크로노 모델 기준). 즉,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태엽 내에 보관하느냐를 기술력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이다. 보통 입문용 기계식 시계는 40~50시간 내외가 많고 여기서 나아가 80시간, 심지어 일주일까지도 에너지를 저장하는 시계가 있다. 이런 모델들은 일명 ‘세븐데이즈’라는 애칭을 붙여 은근히 실력을 과시하곤 한다. 리벨리온에게도 파워리저브 시간은 중요한 가치다. 르망24시 내구 레이스에 참가하는 회사에서 만든 시계라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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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얼 방식이 자동차 계기판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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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00


T-1000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1,000시간에 달하는 파워리저브를 자랑한다. 대충 어림잡아도 40일 동안 시계가 멈추지 않는다는 뜻. 그보다 중요한 건 자동차의 각 파츠를 구현한 시계 디자인에 있다. 3년 여 연구개발 끝에 완성한 무브먼트 REB-1000은 수직 형태로 만든 휠 트레인이 자동차의 트랜스미션을 떠올리게 한다. 독특한 형태로 기울어진 밸런스 역시 중력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투르비용으로 설계되어 보는 맛을 더한다. 평범한 시침과 분침 대신 회전식 다이얼을 채택해 시간을 알려주는 것 역시 재밌는 요소. 측면에서 보면 자동차의 타이밍벨트를 보는 듯한 위트까지 더했음을 알 수 있다. 리벨리온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최신작 T2M을 선보였다. T 뒤에 붙은 2M은 2개월을 의미한다. 자그마치 두 달 간, 정확하게는 1,400시간 동안 에너지가 저장된다. 이는 종전 세계 최장 파워리저브 타임 기록을 갖던 위블로 MP-05 라페라리를 젖히고도 남는 수준. 보다 적은 수의 메인스프링(8개)을 쓰면서도 파워리저브 시간 경쟁에 가뿐히 종지부를 찍었다. 가격은 현지 소매가 기준 15만 스위스프랑, 우리돈으로 약1억 7천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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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벨트를 형상화한 기어 트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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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시간의 파워리저브를 자랑하는 T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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