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카로 부활한 전설의 이름 브라밤 BT62
2018-06-05  |   37,797 읽음

수퍼카로 부활한 전설의 이름

BRABHAM BT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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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차를 타고 F1 챔피언이 된 유일무이한 존재. 전설 속 이름 브라밤이 수퍼카로 부활했다. 



잭 브라밤은 세 번의 F1 월드 챔피언을 차지한 호주 출신 명 드라이버. 게다가 직접 컨스트럭터를 세우고 차를 만들어 챔피언에 오른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유명 드라이버가 팀을 만든 경우가 아주 드문 것은 아니다. 알랭 프로스트와 에머슨 피티팔디, 그레이엄 힐, 재키 스튜어트가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자신의 차를 타고 챔피언에 오르지는 못했다. 브라밤이라는 이름이 특별한 이유다. 


레이서로 시작해 컨스트럭터가 되다

드라이버 잭 브라밤이 동향 친구인 론 토라낙과 함께 1961년 설립한 브라밤은 초기에 MRD(Motor Racing Development)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당시 브라밤은 쿠퍼팀 소속이라 자신의 이름을 공공연히 사용할 수 없었다. 1962년 시즌부터 첫 오리지널 섀시 BT3를 사용하기 시작한 브라밤은 1966년에 드디어 세 번째 드라이버즈 챔피언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차를 만들어 직접 챔피언이 된 역사상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이듬해에는 미국 출신 댄 거니가 챔피언이 되면서 2년 연속으로 드라이버즈와 컨스트럭터즈 더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때가 브라밤의 첫 번째 황금기였다. 잭 브라밤 은퇴 후 새롭게 주인이 된 버니 에클레스턴은 고든 머레이를 새로이 치프 엔지니어로 앉혔다. 창의성 넘치는 시도로 F1 기술 역사에 인상적인 발자취를 남긴 브라밤 제2의 황금기였다. 하지만 80년대 중반 이후 하락세에 들어간 팀은 86년 머레이가 떠나고 에클레스턴마저 88년 팀을 매각하면서 1992년 시즌 도중에 F1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한편 은퇴한 잭 브라밤은 존 저드와 함께 레이싱 엔진 회사인 저드를 설립하고 영국 컨스트럭터 심텍 경영에도 참여하는 등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다양한 활약을 이어갔다. 대영제국훈장(OBE)과 함께 경(Sir)의 칭호를 받은 그는 2014년 5월 18일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 세 명(제프, 게일리, 데이비드) 모두가 모터스포츠 분야에 진출했는데, 대외적으로는 3남인 데이비드 브라운이 가장 유명하다.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아메리칸 르망 시리즈 챔피언 2번과 르망 24시간 종합우승(2009년, 푸조) 등 내구 레이스 분야에서 이름을 날렸다. 이번 브라밤 부활 프로젝트를 주도한 것 역시 데이비드 브라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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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아 브라밤 오토모티브를 설립한 데이비드 브라밤   


신차에 붙여진 BT는 브라밤이 지금까지 사용해 왔던 경주차 이름이다. 공동 창업자인 잭 브라밤과 론 트라낙에서 이니셜을 따 왔다. 1992년 브라밤 최후의 경주차는 BT60B였지만 신차가 BT62인 이유는 BT61의 존재 때문. 1993년 시즌을 위해 준비했던 이 차는 끝내 완성되지 못하고 도면 위에서 사라졌다. 

브라밤이 설계하고 BT라는 이름을 붙인 차는 F1 머신 뿐은 아니었다. 그래도 포뮬러 B나 포뮬러2, 타즈만 같은 오픈휠 포뮬러 머신이 대부분이었고 자동차라고 할 만한 것은 1987년 알파로메오의 의뢰로 만들었던 BT57이 거의 유일하다.

 외모는 중형 세단 164였지만 V10 3.5L 엔진을 미드십에 얹고 섀시를 노맥스, 카본, 알루미늄 등으로 제작한 순수 경주차로 대외적으로는 알파로메오 164 프로카4라 불렸다. 이렇게 보면 BT62는 일반 고객에게 판매되는 역사상 최초의 브라밤인 셈이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오스트레일리아 하우스에서 진행된 출시 행사에는 F1 역사에 이름을 올린 역대 브라밤 경주차들과 신차 BT62가 함께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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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하우스에서 열린 런칭 행사실내는 거의 레이싱카에 가까운 구성이다


 신생 브라밤은 잭 브라밤이 호주에서 레이서로 데뷔했던 1948년을 회사의 원년으로 보아 올해를 창립 70주년으로 삼았다. 이를 기념해 70대 생산되는 BT62는 브라밤의 그랑프리 35승에 맞추어 초기 35대를 한 가지 색상으로만 출하한다. 1966년 브라밤에게 첫 번째 승리를 안겨주었던 BT19 경주차의 색상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차체는 전체적으로 녹색이고, 노즈 주변을 시작으로 차체를 가로질러 황금색 띠를 넣었다. 독사의 이빨을 연상시키는 새 엠블럼은 이전에 사용했던 히싱 시드(Hissing Sid)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사자의 얼굴에 코브라의 몸통, 전갈의 꼬리를 가진 이 가상의 동물은 버니 에클레스턴과 디자이너 고든 머레이, 매니저 하비 브래시가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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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브레이크 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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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는 BT19가 사용했던 엔트리 넘버다 



F1은 아니지만 괜찮아

사실 브라밤의 부활의 시도는 2009년에도 있었다. 당시 참가팀 축소에 고민하던 F1이 신규 팀 참전을 독려함에 따라 캄포스, 마노, 입실론, 프로드라이버 등 적잖이 팀들이 F1 진출을 꿈꾸었다. 개중에는 독일의 사업가 프란츠 힐머도 있었다. 그는 2008년 5월 퇴진한 일본의 수퍼아구리를 매입하는 한편 브라밤을 팀명으로 사용할 계획을 세웠다. 당시 생존해 있던 잭 브라밤과 그의 가족들은 3년에 걸친 법적 다툼 끝에 이름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브라밤의 이름은 창업자의 손으로 돌아갔지만, 그것이 곧 F1 복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브라밤 부활 프로젝트는 물밑에서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다만 F1팀이 아닌 자동차 브랜드(Brabham Automotive)로써였다. 회사의 대표를 맡은 데이비드 브라밤는 “나의 아버지가 남긴 업적을 이어 브라밤의 이야기를 다음 장으로 진화시킬 수 있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보유한 팀과 공유하는 비전은 브라밤의 장기적인 비즈니스 전략에 탄탄한 반석이 될 것입니다. 그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는 BT62는 브라밤의 이름에 어울리는 진정한 가치를 지닌 자동차입니다.”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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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 시리즈의 명맥을 이어받은 브라밤 최신작은 62번째 작품이다  


BT62는 서킷에 특화된 모델로 레이싱카와 도로용 수퍼카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잡았다. 외모는 수퍼카의 전형적인 특징을 따른다.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노즈 아래 아스팔트 위의 자갈 한 톨까지 모두 긁어 담을 것 같은 프론트 스플리터와 거대한 리어윙, 다운포스와 냉각을 돕는 다양한 공기 입출구가 차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가늘고 긴 브레이크 램프는 양쪽 끝에서 Y자 형태로 갈라지는데, 람보르기니 센테나리오를 연상시킨다. 그 아래로는 레이싱카 수준의 대형 디퓨저가 자리잡았다. 앞뒤 푸시로드식 더블위시본 서스펜션에는 올린즈의 4단 조절식 TTX 댐퍼가 달렸다. 

인테리어는 장식을 철저히 배제했으며 FIA 안전기준을 만족시키는 주문제작 시트에 6점식 하네스를 조합했다. 조절식 페달 박스와 탈착식 스티어링, 소화기 등 운전석은 사실상 레이싱카에 준하는 구성이다. 일반 고객을 위한 자동차라는 사실은 알칸타라 트림과 가죽 도어 핸들, 보디 컬러에 맞춘 시트 서라운드 정도. 주문에 따라 조수석 카본 시트와 실내 커스텀 컬러, 그래픽 장식 등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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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는 거의 레이싱카에 가까운 구성이다  


구동계는 V8 엔진을 미드십에 얹은 뒷바퀴 굴림 레이아웃이다. 자체 조립하는 V8 5.4L 자연 흡기 엔진은 710마력의 최고출력에 최대토크 68.1kg·m를 낸다. 이 엔진의 베이스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많은 부분이 개량되어 현재는 거의 오리지널에 가깝다고 한다. 발표된 스펙에 따르면 보어 94mm, 스트로크 97mm의 롱 스트로크 구성에 32밸브, 드라이섬프 윤활계통을 갖추었으며 E85 연료 사용도 가능하다. 터보 과급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반응성과 필링, 내구성 등을 고려해서라고. 

변속기를 공급하는 호주의 홀링거 모터스포츠는 잭 브라밤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 온 오랜 파트너다. 유압식 6단 시퀸셜 변속기는 스티어링 휠에 달린 패들로 작동되며 다운시프트 때 자동으로 엔진 회전수를 맞추어 준다. 차체를 카본 복합소재로 만들고 편의장비를 거의 달지 않은 대신 차중은 972kg에 불과하다. 반면 본격적인 에어로파츠 덕분에 최대 1,200kg의 다운포스를 얻는다. 이번에 공개된 차는 서킷 전용 모델로 미쉐린과 공동개발한 슬릭 타이어를 장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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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에는 모터스포츠계 명사들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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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포스를 만들어내는 거대한 디퓨저


찻값에 드라이버 교육 프로그램 포함 

로터스와 캐이터햄을 거친 폴 버치가 기술 감독으로서 BT62 개발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완전히 빈 종이에서 시작한 이 차는 브라밤을 새로운 시대로 이끌 첫 번째 작품입니다. 최신 소재와 기술, 공정을 사용했으며 2년의 개발과정을 거쳤습니다. 그 결과물인 BT62는 드라이버의 적극적인 참여를 필요로 하는 존재로 엄청난 보상과 만족감을 제공할 것입니다.” 폴 버치의 설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BT62는 단순히 옛 챔피언의 이름을 붙인 컬렉션용 수퍼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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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과정의 많은 부분이 서킷에서 이루어졌다   


100만 파운드(14억5,800만원)에 달하는 가격표는 맥라렌 세나와 비슷한 수준. 그런데 브라밤의 경우 여기에 드라이버 육성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다. 강력한 성능에 비해 제어 장비라고는 트랙션 컨트롤이 유일하기 때문에 주문자가 BT62를 제대로 다룰 수 있도록 전문적이고도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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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값에는 드라이버 육성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다


BT62는 호주에서 올 하반기 생산을 시작한다. 새 공장이 위치한 아델레이드는 80~90년대 F1 호주 그랑프리가 열렸던 곳이자 호주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 브라밤이 새로운 역사의 장을 시작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장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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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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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호주 시드니 서쪽 허스트빌에서 채소 가게 아들로 태어난 잭 브라밤은 12살에 가게 트럭을 운전했고 학교에서는 금속 가공과 도면 그리기 등을 배웠다. 아버지 가게 뒤편에서 오토바이 사업을 시작한 잭은 18살이 되던 1944년에 공군에 입대해 정비사가 되었다. 제대 후에는 미젯 레이스와 힐클라임 등에 참전해 드라이버로서의 능력을 꽃피웠다. 브라밤이 올해를 창업 70주년으로 잡을 것은 잭 브라밤이 호주 모터스포츠계에 데뷔한 1948년을 원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1955년에는 영국으로 건너가서는 쿠퍼(Cooper)와 인연을 맺었다. 2차 대전 종전 후 유럽은 F1을 비롯해 모터스포츠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당시 최첨단의 미드십 경주차 개발에 참여한 브라밤은 1955년 29세의 늦은 나이에 실버스톤에서 F1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서서히 성적을 올리더니 1959년에는 개막전 모나코에서 본인은 물론 쿠퍼에게도 최초가 되는 F1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 해에만 두 번의 우승 포함 시상대에 5번 올라 챔피언이 되었다. 이듬해는 더욱 압도적이어서, 제4전 네덜란드부터 5연승을 휩쓸어 2연속 챔피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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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브라밤의 데뷔전 파트너인 미젯 경주차. 정식 레이스에 데뷔한 1948년이 브라밤 역사의 시작이다


레이스에서의 큰 성공에도 불구하고 쿠퍼의 치프 엔지니어 오언 매독과는 이견을 보였다.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던 브라밤과 달리 매독은 다소 보수적이었다. 결국 호주에서 알고 지내던 론 토라낙을 불러들여 MRD(Motor Racing Development)를 설립하게 된다.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당시 쿠퍼 소속 드라이버였기 때문이다. 브라밤 경주차에 쓰이는 모델명 ‘BT’는 브라밤과 토라낙의 이니셜을 더한 것이다. 

브라밤(MRD)의 시작은 1961년이지만 당시에는 자금 확보를 위해 외부에서 주문받은 경주차 개발에 우선해야 했다. 결국 자신들의 F1 머신인 BT3는 1962년 시즌 중반에서야 완성할 수 있었다. 이듬해에는 새로 영입한 미국인 드라이버 댄 거니가 2승으로 활약했지만 경주차의 신뢰성 부족이 발목을 잡았다. 1966년에는 경주차 규정에 큰 변화가 있었다. 3.0L(혹은 1.5L 터보)로 배기량이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 엔진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브라밤이 선택한 호주 랩코의 620 엔진은 출력이 떨어지는 대신 신뢰성은 높았다. 브라밤은 제3전 프랑스를 시작으로 내리 4연승을 거두며 3번째 드라이버즈 챔피언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자신이 만든 경주차를 타고 스스로 챔피언에 오른 유일무이한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때 사용된 경주차 BT19는 원래 4기통 엔진에 맞추어 개발되었지만 랩코 엔진은 큰 개량 없이 얹을 수 있을 만큼 콤팩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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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밤의 명성을 만들어준 BT19


1967년에는 팀 동료 데니 흄이 챔피언이 되면서 2년 연속으로 드라이버즈와 매뉴팩처러즈 타이틀을 휩쓸었다. 브라밤 최고의 전성기였다. 1968년에는 거짓말처럼 리타이어가 연발했고, 이듬해에는 잭이 부상을 당하면서 하향세가 이어졌다. 

은퇴를 결정한 잭 브라밤은 1969년 말에 팀을 트라낙에게 매각했다. 그런데 부담을 느낀 트라낙이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 나섰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이름이 버니 에클레스턴이다. 후에 F1을 상업적으로 성공시키며 막후실력자로 활약하게 되는 인물. 고든 머레이가 새로운 치프 엔지니어가 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창업자는 모두 떠났지만 에클레스턴의 수완과 머레이의 실력에 힘입어 좋은 성적을 이어갔다. 이 시기의 머레이는 참신한 아이디어에 과감히 도전했는데, 첫손에 꼽는 것이 1978년 시즌용 BT46이다. 차체 표면에 평평하게 장착한 라디에이터는 물론 스웨덴 GP에서는 뒤편에 거대한 팬을 갖추어 다운포스를 높인 팬카 디자인으로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팬카는 당시 규정상 합법이었지만 라이벌팀들의 항의가 너무나 거세 한 경기 만에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에클레스턴 시대에 챔피언 타이틀을 손에 넣지는 못했지만 2위에 두 번(75, 81년)에 넬슨 피케가 드라이버즈 챔피언 타이틀을 두 번(81, 83년) 차지하는 등 제2의 전성기라 부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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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술적 시도를 선보였던 BT46 


F1에 대한 흥미를 잃은 에클레스턴이 1988년 철수를 선언하면서 브라밤은 월터 브룬, 요하임 루티를 거쳐 일본 미들브리지 레이싱에 매각되었다. 자금부족과 성적부진의 이중고에 시달리다가 1992년 시즌 도중 자취를 감추었다. 브라밤 최후의 경기가 되었던 제11전 헝가리 그랑프리는 아직 루키였던 데이먼 힐이 출전했다. 간신히 예선을 통과해 리타이어 없이 완주했지만 우승자 세나에 무려 4랩이 뒤쳐진 11위였다. 헝가리전 이후 팀은 심각한 자금 부족으로 시즌을 이어갈 수 없었고, 자금을 빌렸던 랜드허스트에 뇌물을 제공한 것이 발각되어 정부 조사를 받았다. 결국 해체되어 여기저기에 매각되면서 브라밤의 화려했던 역사는 끝을 맞이했다





글 이수진 편집장  사진 브라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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