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귀한 BMW 천국, 열정을 넘은 어느 마니아의 차고
2018-02-16  |   15,126 읽음

진귀한 BMW 천국

열정을 넘은 어느 마니아의 차고

 

자동차 마니아의 가장 큰 꿈은 개인 차고(개러지)를 갖는 게 아닐까. 운전을 즐기는 것처럼 자신의 차를 직접 관리하는 것도 차를 즐기는 여러 방법 중의 하나다. 그러나 이는 어느 나라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적, 시간적 여건이 맞아떨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열정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 이번 미국 취재 때 방문한 어느 자동차 마니아의 개인 차고는 그래서 더욱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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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취재를 준비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다양한 방법으로 차를 즐기는 모습을 직접 보는 것이었다. 늘 그렇지만 엄청난 재력가든 낡은 올드카 오너든 직접 만나 그들의 카라이프를 듣는 건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다. 재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자동차라는 공통 주제 아래 서로 생각만 맞으면 친구가 될 수 있는 게 자동차 마니아가 누릴 수 있는 큰 메리트다. 

 

원래 계획은 LA 공항을 출발해 옥스나드, 샌 라몬, 새크라멘토, 리노를 거쳐 다시 LA로 돌아와 남부 캘리포니아 자동차 관련 시설을 살펴보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타국에서는 계획이 종종 틀어지기 마련. LA에서 가장 먼저 방문하려 했던 유명 방송인 제이 레노 차고 방문 계획부터 틀어졌다. 별천지에 가까운 그의 차고를 취재하기 위해 사전에 어렵사리 허가를 받았건만, 예정된 날짜에 제이 레노의 방송 촬영이 늘어지는 바람에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부랴부랴 현지 코디네이터가 수배한 곳은 어느 자동차 마니아의 한 차고. 전세계 단 2대 남았다는 BMW 700 RS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그곳은 한 마니아의 열정과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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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차고 치고는 규모가 큰 편. 클래식 BMW가 가득하다

 

 

Old BMW Heaven 

급하게 잡은 일정이었지만, 차고 주인은 흔쾌히 우리를 맞이했다. 35°가 넘는 기온, 교통체증 가득한 어바인 시내를 빠져나와 프리웨이를 달려 도착한 곳은 남부 캘리포니아의 작은 도시 산후안 카피스트라노. 깔끔하게 정돈된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동네에 도착하니 정오가 훌쩍 지났다. 부랴부랴 취재 요청을 했음에도 차고 주인은 두 가지 조건만 지켜주면 취재를 허락하겠다고 했다. 첫째는 차고 주인의 신분과 사진을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차고의 위치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렵지 않은 조건이다. 물론 차고 주인이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거나 우리나라처럼 세무조사를 걱정해서가 아니다. 단지 순수한 자동차 마니아로 만나자는 의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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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3시리즈의 전신 BMW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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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식별로 다른 카뷰레터(기화기)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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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마다 번호를 표기해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그의 차고는 BMW로 가득했다. 주인장이 사무실 뒤편에 마련한 공간으로, 개인 차고 치고는 규모가 큰 편이다. 용인에 있는 레이싱팀 캠프 규모보다 살짝 더 큰 정도. 리프트식 주차 시설과 부품 창고, 작업 공간, 실외 주차장으로 구성됐으며 어느 곳을 봐도 BMW만 가득했다. 현재 보관 중인 올드 BMW는 총 55대로 모두 언제든 주행 가능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으며 모든 차의 관리는 2명의 미케닉이 상주해 담당한다. 가장 최신 모델이 1980년대 말에 생산된 것으로, 늘 새것만 찾는 우리 자동차 문화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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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 중이 아닌 차는 언제든 주행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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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마니아에게 인기 있는 M 시리즈는 미국형 5마일 범퍼 사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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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을 장식한 소품마저 모두 BMW다

 

 

BMW 인기는 어딜 가도 마찬가지

BMW 팬층은 전세계 어딜 가도 가장 흔하다. 그러나 클래식 혹은 올드 BMW를 수집하는 마니아는 손에 꼽을 정도다. 메르세데스 벤츠와 달리 BMW는 역사를 주름잡던 명차가 비교적 적기 때문이다. 물론 507이나 2002 시리즈 같은 대단한 명차들도 있긴 하지만.

 

차고 주인이 BMW를 수집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간단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 차였던 2002와 쌓은 추억이 그가 성인이 된 후에도 진하게 남았기 때문. 그런 이유인지 몰라도 2002가 활약하던 시절 모델이 가장 많다. 개중에는 알피나 같은 특수 모델도 있고, 2002ti처럼 모터스포츠에서 활약한 모델도 있다. 02로 끝나는 BMW는 1966년부터 1977년까지 생산된 소형차다. BMW가 한참 경영난을 겪던 시절 등장한 02 시리즈는 1802, 1502의 인기에 힘입어 BMW를 소형차 시장에 안착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후 02 시리즈는 BMW 베스트셀러 3시리즈로 바뀌어 지금까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2002ti는 그가 가장 아끼는 차로, 디자인부터 성능까지(물론 지금 차와 비교해 고출력은 아니지만)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었다. 무엇보다 2002ti를 편애하는 이유는 독특한 운전 재미. 탈탈거리는 카뷰레터 소리부터 보디를 울리는 잔잔한 진동, 특유의 핸들링, 어린 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인테리어 구성 등 언제 차에 올라도 익숙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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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인 스타일이 돋보이는 1970년대 인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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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의 기술자가 상주하며 모든 차를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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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공수한 부품들. 창고 규모가 상당하고 정리가 잘 돼있다

 

 

정비중인 차를 제외하고 여기 있는 모든 차들은 모두 운행이 가능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차는 움직여야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차고에 있는 차들을 거의 매일 번갈아 가며 타고 있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2명의 미케닉과 함께 공구대와 작업대가 늘 어지러운 이유다. 이곳에서 판금과 도색 같은 보디 작업을 제외한 모든 작업을 소화한다. 소모품 교환부터 엔진 오버홀, 하체 유지 보수, 내장재 관리까지 모두 차고 내에서 이뤄진다. 그렇기 때문에 부품 창고 규모도 상당하다. 시트를 비롯한 인테리어 부품부터 작은 볼트, 엔진 부품에 이르기까지 연식별로 정리된 부품 창고만 둘러봐도 재미가 쏠쏠하다. 창고에 쌓인 부품들은 전세계에서 공수하는데, BMW는 워낙 생산량이 많고 판매된 지역이 넓어 수급이 수월하다. 컬렉션의 주류를 이루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차들의 부품을 구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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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시 작업 공간. BMW 외에 미국인의 로망, 핫로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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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둘 모으다 보니, 컬렉션이 되어버린 역대 BMW 운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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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즐겁게 일하는 이곳은 자동차 마니아가 꿈꿔온 공간이다

 

 

차고 외 공간에서도 자동차에 대한 주인장의 열정이 느껴진다. 곳곳에 자동차 관련 소품들이 놓여 있고 BMW 관련 서적과 미니카들이 가득하다. 차고 옆 사무실은 업무를 보는 곳이라고 들었지만 사무실이라기보단 자동차 테마 카페에 가까운 느낌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BMW 스티어링 휠을 모아 놓은 컬렉션. 크기별로 구분된 스티어링 휠 컬렉션은 OEM 사양과 특별 옵션 사양, 애프터마켓 사양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원래 예비 부품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컬렉션이 돼버렸단다.

 

BMW 700 RS

BMW 역사상 가장 생산대수가 적고 507과 함께 컬렉터들이 가장 눈독 들이는 귀한 RS 700을 이곳에서 마주했다. 한국에는 최초로 <자동차생활>을 통해 소개한다.

 

 

RS 700의 공식적인 생산대수는 2대. 한 대는 뮌헨 BMW 박물관에 있고 나머지 한 대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RR 레이아웃을 가진 소형차 BMW 700(1959~1965년 생산) 시리즈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RS 700(1961년형)은 경량 튜블러 섀시 위에 납작한 보디를 얹었다. 구동계 레이아웃은 700과 공유하지만 경량 설계와 공력 특성을 고려한 디자인은 RS 700을 위해 새롭게 만들었고, 모든 공정이 수제작으로 진행됐다. 엔진은 생각보다 작다. 700cc 2기통 수평대향 엔진은 최고출력이 85마력 정도에 불과하지만 차체가 워낙 가볍고, 크로스 레이쇼 5단 변속기가 달린 덕에 움직임이 민첩하다. 사실 이 차에는 조금 특별한 사연이 있다. 전 소유자가 지금 주인에게 팔기 전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독일 BMW 본사와 북미 BMW에 이 차를 넘기지 않는 것. 이유는 BMW가 미국에 본격적으로 상륙하던 시절 기존 BMW 고객에 대한 관리 소홀에서 비롯됐다. 원 주인이 그 부분에 매우 빈정이 상해 이 귀한 차를 절대 넘기지 않기로 다짐했다고. 주인장 말에 따르면 이 차는 레이스에 출전해 온전하게 완주한 유일한 차라고 한다. 박물관에 있는 나머지 한 대는 예선 도중 사고로 반파된 차를 리스토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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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욱익(자동차 칼럼니스트)  사진 | 류장헌 현지 코디네이터 Johan Lee(DRIVEN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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