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호 박물관 요코타 컬렉션
2017-10-18  |   23,494 읽음


일본 자동차 역사를 간직한 군마의 명소
이카호 박물관 요코타 컬렉션


군마는 인기 만화 ‘이니셜 D’의 배경이 되는 지역으로 주인공 타쿠미의 홈그라운드인 아키나산 고개길을 품고 있는 산악 지역이다. 자동차 마니아라면 지나치기 힘들 군마의 명소 이카호 박물관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일본 자동차 역사의 화려한 나날을 돌아보고 ‘이니셜 D’의 명장면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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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자동차 보유율이 가장 높은 지역을 꼽자면 동계올림픽으로 유명한 나가노와 ‘이니셜 D’의 배경이 되는 군마 지역이다.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싸인 군마는 혼다의 트윈링 모테기 서킷이 있는 모테기와 일본 왕실의 별장이 있는 휴양지 토치키와 이웃하고 있다.


군마를 상징하는 지역은 단연 이카호와 하루나산. ‘이니셜 D’에 아키나 호수, 아키나 산으로 등장하는 이곳은 아름다운 산악 드라이브 코스와 호숫가의 리조트가 유명하다. 타쿠미가 매일 새벽 두부를 배달하던 리조트는 아키나 호수 건너편에 실제 자리하고 있으며, 도랑 타기를 했던 고갯길도 모두 만화와 90% 이상 흡사하다. 도로와 건물 등 만화에 등장하는 배경 거의 대부분이 실존하기 때문에 ‘이니셜 D’를 관심 있게 봤던 사람이라면 이카호 근처의 도로나 편의점, 작은 도심이 무척이나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여전히 깊고 넓은 일본 자동차문화
일본에는 ‘이니셜 D’ 외에도 자동차와 레이스를 다루는 다양한 콘텐츠가 있다. 만화를 비롯해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 셀 수 없이 많은 관련 서적, 매달 나오는 잡지까지 일본의 자동차문화 규모가 예전에 비해 작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하고 심도가 있다. 1960년대 마이카 시대를 시작으로 로터리 엔진, 고급 스포츠카, 스페셜리티카(스포츠 루킹), GT카, 스포츠 세단 등이 아직도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새로운 물건도 인기가 있지만 오래된 것을 보존하고 즐기는 그들의 방식에는 독특하면서도 생소한 면이 많다. 또한 연대별, 차종별, 국가별로 세분화된 오프라인 커뮤니티도 우리와는 그 형태가 많이 다르다. 물론 지금은 젊은 세대들이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없어 매년 자동차 판매량과 관련 산업 규모가 줄어들고 있지만 예전 것들만으로도 충분한 즐길거리가 되고 있다.
도쿄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상상을 초월하는 교통체증을 뚫고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군마는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쯤 되는 곳이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이카호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도로가 좁고 신호도 많았다. 철저하게 지켜지는 지정차로와 여유가 있는 운전자들, 넉넉한 보행신호 등을 통해 그들은 좁고 열악한 도로 환경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인형부터 자동차까지 볼거리가 가득
확실히 군마에는 소형차나 경형 사륜구동차가 많이 보인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임을 도로에서도 느낄 수 있다. 아기자기한 마을을 몇 개 통과해 도착한 곳은 이카호 부근에 위치한 개인 박물관. 익살스러운 아저씨의 얼굴이 있는 간판(이카호 박물관의 주인인 마사히로 요코타의 캐리커처)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이카호 인형/장난감/자동차 박물관’(이하 이카호 박물관)으로, 전시장은 세 가지 구간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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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에는 1960년대 일본의 마을 풍경이 재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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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없다는 역도산의 자료는 요코타 씨가 아끼는 수집품 중 하나다

 

주목할 점은 개인 자동차 컬렉션으로는 일본에서 손에 꼽히는 컬렉션이라는 것. 박물관장이자 사업가인 마사히로 요코타 대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클래식카 수집가다. 이카호 박물관에 있는 자동차는 모두 일본의 한 시대를 대표했던 내수형 모델로 대부분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이다. 요코타 대표가 소유한 특별 차종은 개인 개라지에서 관리 중이며, 일반인들에겐 개방되지 않는다.  


이카호 박물관의 모습은 굉장히 다채롭다. 입구는 테디베어를 비롯한 다양한 인형들로 가득하고 곧장 이어지는 공간에는 1960년대부터 거품 경제가 한창이던 1980년대까지의 일본 연예인과 광고, 장난감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쇼와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거리 모습이 당시 시대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역도산의 자료도 전시되어 있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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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입구는 쇼와 시대의 거리를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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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문화 컨텐츠인 애니메이션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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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 그대로의 플라모델​

자동차가 전시된 공간은 인형, 장난감 전시장을 합친 것보다 몇 배는 규모가 크다. 전체 전시 공간은 3개 층에 이르며, 일본의 대중차와 스포츠카, 소형차, 경주차로 테마가 구분되어 있다.

동선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경차들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스바루 360이나 마쓰다 삼륜차 등 마이카시대가 시작될 무렵 일본의 골목골목을 누비던 차들이다. 비교적 공간이 좁아 다닥다닥 붙어 있지만 설명판 대신 출시 연도에 인기가 있었던 소품을 활용해 이해를 돕고 있었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당시 유행했던 문화 컨텐츠를 함께 전시함으로써 관람자들로 하여금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기 쉽도록 배려한 점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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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카라 불리는 경차는 일본의 경제와 마이카 시대를 이끈 주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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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부터 1971년까지 39만대 이상이 팔린 스바루 360은 일본 자동차 문화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차다


곧장 이어지는 공간은 ‘미니 뮤지엄’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데, 다양한 버전의 클래식 미니들이 아기자기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오스틴과 로버 미니를 비롯해 픽업, 숏보디를 가진 초로Q 버전, 레이스 버전, 과격하게 튜닝된 오프로드 버전, 경찰차와 컨버터블 등 클래식 미니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중에는 매년 이카호에서 열리는 이카호 클래식 랠리와 이카호 클래식카 미팅에 출전했던 모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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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뮤지엄에는 다양한 종류의 클래식 미니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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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빼앗는 이니셜 D 세트
자동차 마니아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공간은 ‘이니셜 D’의 세트가 있는 곳부터다. 2016년 5월에 공개된 ‘이니셜 D’ 세트는 만화에 등장하는 후지와라 두부점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주인공 타쿠미의 차인 AE86과 배경인 후지와라 두부점의 모습은 말 그대로 싱크로율 100%를 자랑한다. 엔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15인치 RS 와타나베 8스포크 휠과 후지와라 두부점 데칼은 자동차 마니아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모습. 바로 옆의 RX7 역시 만화에 등장하는 모습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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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셜D에 등장하는 후지와라 두부점과 주인공의 차인 스프린트 트레노(AE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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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마는 이니셜 D가 먹여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라모델을 비롯해 스티커, 캔디, 심지어는 엔진 첨가제 모양의 간장까지 있다


실제 일본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만화 속 형태 그대로 튜닝하는 것이 인기를 끌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니셜 D’의 AE86은 토요타의 워크스 튜너인 TRD가 1990년대 초반 컴플리트카 형태로 판매하기도 했었는데, 자연흡기 5밸브 4AG 엔진에 독립 스로틀을 달고 L당 100마력에 육박하는 출력을 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원래는 여성들을 위해 개발된 AE86은(스프린터 트레노, 레빈) 저렴한 가격과 튜닝 포텐셜로 인해 드라이버를 키우는 차로 불리기도 했으며, ‘이니셜 D’의 모티프를 제공한 드리프트 킹 츠치야 케이치의 차이기도 하다. ‘이니셜 D’의 원작자인 슈이치 시게노와 극장판 타쿠미의 성우를 담당했던 미키 신이치로 역시 만화에 등장하는 것과 똑같이 튜닝된 차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카호 박물관에서 가장 오래된 차는 세계적으로도 몇 대 없는 1938년식 닷선이다. 요코타 대표가 차대를 구입해 직접 리스토어한 것으로, 사진을 통해 그 과정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 뒤로는 1960년대부터 일본에서 출시된 패밀리카들이 자리잡고 있다. 닛산 체리 같은 소형 패밀리카부터 스포츠 버전까지 등장했던 미쓰비시 갤랑, 스카이라인, 블루버드, 코롤라 등 거품경제와 함께 성장한 일본 자동차 시장의 대표 모델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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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식 닷선의 복원 과정.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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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식 닷선은 전세계적으로 몇 대 남아있지 않다. 전시차는 요코타 씨가 직접 리스토어 했다

클래식 반열에 오른 일본 스포츠카들
한 층 위에는 일본 대표 클래식 스포츠카들이 자리잡았다. 혼다 S800을 비롯해 페어레이디 Z, 생산량이 극히 적었던 2세대 스카이라인 GTR(켄메리), 이스즈 베렛 1600GTR, 마쓰다 유노스 코스모, 토요타 2000GT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 중 가장 눈여겨볼 모델은 197대만 생산된 2세대 스카이라인 GT-R.

하코스카라 불리는 1세대 스카이라인 GT-R이 1960년대 일본 모터스포츠를 휩쓸며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1973년 등장한 2세대는 그렇지 못했다. 1세대의 기술력을 발전시켰지만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스포츠카 시장이 주춤한 때문이다. 2세대 스카이라인 GT-R의 별명인 켄메리는 당시 광고에 등장했던 커플의 이름에서 비롯된 애칭이다. 일본차 치고는 생산량이 극히 적었던 탓에 최근 컬렉터들 사이에서 인기가 치솟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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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포츠카인 닛산 스카이라인과 갤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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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대수가 극히 적었던 2세대 스카이라인 GT-R 캔 메리도 볼 수 있다

 


닛산 페어레이디Z 432 역시 최근 클래식카 시장에서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모델이다. 프린스 엔지니어들이 개발한 직렬 6기통 S20 엔진을 올린 Z 432는 페어레이디Z의 특별 버전으로 420대​가 만들어졌으며, 일부는 일본 경찰차로 사용되기도 했다. 2.0L 엔진은 최고출력 160마력을 자랑했으며 432의 의미는 실리더당 4밸브, 3개의 미쿠이 카뷰레터, 2개의 캠 샤프트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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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의 성공적인 스포츠카 페어레이디 Z 중에 가장 희소가치가 높다는 페어레이디 Z 432


토요타 2000GT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차 가운데 가장 먼저 국제 시장에서 클래식카로 인정받은 2000GT는 1967년부터 1970년까지 3년 동안 351대가 생산되었다. 디자인부터 모든 개발 과정을 자체 해결한 최초의 토요타 GT로, 희소가치로 따지면 일본차 중 최고로 꼽힌다. 디자인은 이보다 먼저 발표된 토요타의 경량 스포츠카인 스포츠 800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이카호 박물관에는 2대의 2000GT가 있는데 한 대는 전시장에, 나머지 한 대는 계단 옆 자동차 운반용 엘리베이터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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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부터 설계까지 모든 부분을 토요타 내부에서 담당한 2000 GT는 일본 최초의 GT로 불린다


이카호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느낀 점은 일본의 자동차문화가 생각보다 폭 넓고 오래 됐으며 다양하다는 점이다. 마이카시대에 접어든 1960년대를 기점으로 거품경제로 상징되는 풍요로웠던 시절 일본의 자동차는 우아하고 성능도 괜찮았으며, 가격 또한 합리적이었다. 여기에 스포츠 버전과 각종 한정판을 간간히 발매하면서 그야말로 자동차 마니아들이 요구하는 특별 버전부터 일반적인 사양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많은 종류의 자동차가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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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패밀리카는 생각보다 종류가 많다. 이중에는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모델도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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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리카로 유명했던 셀리카는 이미 1960년대부터 괜찮은 패밀리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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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을 대표하는 스포츠카인 페어레이디 시리즈의 초기형인 페어레이디 2000 로드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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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의 첫 로터리 모델인 코스모 스포츠도 국제 클래식카 시장에서 인정받는 일본산 차 가운데 하나다


현재 일본에는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 박물관이 있지만 일본 내수형 모델만 전시한 곳으로는 이카호 박물관이 가장 규모가 크다. 또한 이곳은 개인이 운영하는 자동차 박물관 중 일본차들만 모아 놓은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단순히 자동차만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문화, 생활상, 판매 카탈로그와 가격까지 같이 전시해 관람객들이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한 점도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이 자료들을 수집하기 위해 일본 전역을 돌아다닌 요코타 대표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이카호 박물관에서 옥에 티를 꼽자면 접근성이다.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힘든 곳에 위치해 있어 일반인이 찾아오기에는 무척 번거로운 게 사실. 하지만 자동차 마니아라면 렌터카라도 빌려 주변의 이카호와 드라이브 코스를 함께 즐길 것을 추천한다.

 

 

이카호 인형/장난감/자동차 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ikaho-omocha.jp

입장료: 성인 1,080엔, 중·고등학생 860엔, 4세 이상 유아 및 초등학생 430엔

개관시간: 연중무휴 
4월 25일~10월 30일: 오전 8시 30분~오후 6시
11월 1일~4월 24일: 오전 8시 30분~오후 5시

 

글, 사진 황욱익(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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