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발상과 새로운 시도- 개척자들
2017-07-19  |   38,832 읽음

 

창의적인 발상과 새로운 시도

개척자들

 

SUV는 그동안 수많은 한계를 넘어왔다. 트럭에서 파생되어 무겁고 둔하던 SUV는 최신 모노코크 SUV에 이르러선 세단만큼이나 아늑해졌다. 어디 그뿐인가? 이젠 스포츠카에 버금가는 주행능력을 지닌 SUV도 허다하다. SUV의 영역을 크게 확장시킨 아이코닉 SUV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흔해빠진 성공방정식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한 개척자들의 이야기. 

*글 <자동차생활> 편집부

 

벤틀리 벤테이가

장인정신 깃든 초호화 S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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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의 첫 번째 SUV인 벤테이가는 해마다 성장을 거듭하는 프리미엄 SUV 시장을 겨냥해 제작됐다. 콧대 높은 브랜드도 변화의 흐름을 마냥 두고 볼 수는 없었을 터. 카이엔으로 성공을 맛본 포르쉐의 눈부신 성과도 무시 못할 유혹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벤테이가는 벤틀리 역사상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양산화된 모델로 자리한다. 컨셉트 승인에서 양산형 조립까지 불과 42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폭스바겐 그룹 MLB 플랫폼을 바탕으로 벤틀리의 장기인 장인정신을 실내외 곳곳에 녹인 벤테이가는 풀사이즈 럭셔리 SUV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동시에 벤틀리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벤테이가’(Bentayga)라는 이름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북아메리카를 동서방향 띠 모양으로 둘러싼 침엽수림 명칭인 타이가(Taiga)와 벤틀리(Bentley)의 합성어다. 소비자로 하여금 장엄한 자연의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미가 담겨 있다.


2012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공개된 컨셉트카, EXP 9 F의 방향성을 이어받은 디자인은 기품이 넘친다. 양산을 위해 차체 비율을 수정하고, 커다란 원형 헤드램프 사이즈를 줄였지만 당당함은 여전하다. 실내는 호화로움 그 자체. 대런 데이(Darren Day)가 디자인한 인테리어는 우아함의 연속이다. 질 좋은 가죽과 값 비싼 원목, 그리고 정교하게 짜인 금속 패널로 둘러싸인 내부는 영국 크루 공장의 숙련된 장인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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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12 6.0L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은 최고출력 608마력, 최대토크 91.8kg·m를 발휘한다. 0→시속 100km 가속은 단 4.1초, 최고속도는 시속 301km에 달한다. 숫자 그대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SUV이자, 포르쉐 카이엔에게 굴욕감을 주기에 충분한 성능이다. 다양한 노면 환경에서 큼직한 체구를 안정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액티브 안티롤바 시스템을 달았고, 강력한 엔진에서 비롯된 화끈한 퍼포먼스를 적극 보조한다.


벤테이가가 시작한 SUV 초고급화 경쟁은 롤스로이스의 참전으로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프로젝트 컬리난이라는 이름으로 개발 중인 롤스로이스 첫 SUV는 이미 프로토타입이 공개된 상태. 게다가 람보르기니 우르스까지 등장할 예정이서 프리미엄 SUV 시장은 새로운 영역으로 끝없이 확장되고 있다.

문서우 기자

BMW X5

SAV의 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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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등장한 BMW X5는 미국 시장을 겨냥했다. 이미 라이벌 메르세데스 벤츠는 2년 앞서 ML 클래스를 선보이며 미국 부유층 아기엄마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차로 자리잡은 상황. ML 클래스가 기존의 SUV 제작방식을 따랐다면 후발주자인 BMW X5는 ‘SAV’(Sports Activity Vehicle)를 표방하며 성격을 달리했다.


‘SAV’는 ‘도구’라는 뜻의 Utility 대신 ‘활동’을 뜻하는 Activity로 대체한 신조어였다. 90년대 BMW는 ‘The Ultimate Driving Machine’이라는 브랜드 슬로건을 사용했을 만큼 주행성능을 강조했다. BMW X5 역시 이런 성격이 녹아 있었다. 당시만 해도 무게중심이 높고 차체가 무거운 SUV의 한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X5는 탄탄한 서스펜션과 안정감 있는 고속주행 등 기존의 SUV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수준 높은 주행성능을 보여주었다.


X5의 이런 다재다능한 능력은 당시 BMW가 소유한 랜드로버사의 SUV 제작 노하우와 스포츠 세단으로 칭송받는 BMW 5시리즈(E39)의 뼈대를 기반으로 만들었기에 가능했다. 명가와 명품이 만나 이룬 결실인 셈이다. 처음 만들어본 SUV였지만 제품과 판매 면에서 모두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0년 제네바모터쇼에서 공개한 X5 르망 컨셉트카는 X5의 고성능 이미지를 대변하는 작품이었다. 1999년 르망 24시에서 우승한 BMW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모델로 르망 우승차의 V12 엔진을 X5 보닛 아래에 그대로 이식했다. 최고출력 700마력 이상으로 0→시속 100km 가속에 4.7초밖에 걸리지 않았고 최고속도는 300km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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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싱 버킷시트와 4점식 안전벨트, BBS 휠에 카본파츠로 경량화하였고 일부 내장재도 탈거해 전형적인 레이스카로 탈바꿈했다.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 랩타임은 7분 50초로, 당시 뉘르부르크링을 달린 가장 빠른 SUV 중 하나였다. 이후 등장한 BMW M3(E92) CSL의 기록이 7분52초였으니 얼마나 빨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인주 기자

스즈키 짐니

축소지향주의 오프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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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니는 일본의 경차다. 그러면서도 공간효율성을 위한 원박스형 차체나 FF 기반 구동계 등 일본 경차의 일반적인 상식을 따르지 않는다. 래더 프레임에 엔진은 세로로 얹고, 트랜스퍼 케이스를 갖춘 파트타임 4WD와 앞뒤 리지드 서스펜션으로 오프로드를 지향한다. 본격적인 구조의 경차규격 오프로더는 매우 희귀한 존재이지만 강력한 팬층을 만들어내며 무려 40년 이상 살아남았다.


원래 짐니를 개발한 것은 3륜 자동차로 유명한 호프자동차였다. 경차규격을 만족시키면서도 네바퀴굴림과 앞뒤 리지드 서스펜션을 갖춘 본격적인 오프로더를 개발한 호프는 호프스터 ON형 4WD라는 긴 이름을 붙였다. 스즈키가 1967년 이 차의 제조권을 사들일 때만 해도 사내의 반대가 무척이나 심했다. 당시로서는 성공을 장담하기 힘든, 지나치게 유니크한 컨셉트였기 때문.


호프는 소규모 회사였기에 미쓰비시 엔진과 부품 등을 많이 활용했다. 스즈키가 만들기 위해서는 미쓰비시 부품을 걷어내고 대량생산에 맞추어 설계를 바꾸는 등 많은 개량이 필요했다. 이렇게 태어난 신차에 짐니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프(jeep)와 미니(mini), 타이니(tiny)를 뒤섞은 이름이다.


구동계는 경트럭 캐리의 2기통 359cc 2사이클 25마력 엔진과 2단 변속기를 활용했고 PTO(동력 추출장치)도 달았다. 1970년 시장에 나온 짐니는 일본 최초의 경차규격 네바퀴굴림 오프로더였다. 결과적으로 이 차는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 소형 오프로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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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1년 만에 풀 모델 체인지된 2세대는 2박스형 보디를 기본으로 갖추었다. 당시 스즈키 경차들은 모두 4사이클 엔진을 썼지만 저회전 토크를 확보하기 위해 구형의 2사이클 엔진을 개량해 얹었다. 이 SJ30 시리즈는 1987년까지 생산되었는데, 일본 최후의 2사이클 엔진 자동차였다. 86년부터는 전자제어 연료분사식 4사이클 엔진(543cc 터보)이 추가되었고, 1990년부터는 개정된 경차규격에 맞춘 657cc 엔진을 얹기 시작했다. 사실 초창기 짐니는 일반적인 경차가 아니라 세금 등에 유리한 4넘버 경화물차였다.


현행모델인 3세대 짐니(JB23형)가 등장한 것은 1998년. 전통적인 디자인 요소는 유지하면서도 모서리를 둥글렸다. 래더 프레임과 리지드 액슬 서스펜션 등을 그대로 계승했으며, 동급 승용 4WD와 달리 체인식 트랜스퍼 케이스에 4L/4H 전환이 가능한 본격적인 구성이었다. 현행모델은 버튼으로 구동방식을 전환한다. 오버팬더로 차체를 넓힌 짐니 시에라는 경차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대신 1.3L 88마력의 강력한 엔진으로 보다 쾌적한 주행이 가능하다.
짐니는 일본 경차 중 가장 오랫동안 사용되어온 이름이다. 북미에서는 사무라이로, 호주에서는 홀덴(당시 스즈키는 GM과 제휴관계였다)에서 개조해 드로버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일본에서는 마쓰다에 OEM 공급되어 AZ-오프로더로 판매되기도 했다.

이수진 편집장

 

기아 스포티지

승용감각 도시형 SUV의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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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지는 세계최초 도시형 콤팩트 SUV로 평가받는다. 승용차 같은 승차감과 주행성, 운전편의성을 갖추면서도 넓은 실내를 갖춰 SUV의 안전성과 험로주파성, 레저 기능이 더해진 다재다능한 자동차였다. 시대를 앞선 컨셉트는 무명의 자동차 회사를 전세계가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세피아와 더불어 국내 최초로 플랫폼을 독자 개발한 첫 번째 작품이었다. 이를 통해 기술자립도가 부족했던 기아자동차가 일약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로 도약하게 된다.


기아자동차는 1988년 5월, 포드와 함께 준비하던 소형 SUV 공동개발 계획에서 영감을 얻어 단독으로 스포티지 신차개발에 들어갔다. 하지만 당시 기아차의 기술능력은 보잘 것 없었다. 차체설계의 근간이 되는 언더보디는 물론이거니와 어퍼보디조차 독자적인 설계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발자들은 앞서 진행한 월드카 프로젝트(프라이드)에서 얻은 노하우를 기반으로 신차에 대한 윤곽을 만들어나갔다.


스포티지의 첫째 조건은 라이선스 제약 없이 수출할 수 있는 기아 독자모델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당시 국내 SUV 시장은 아주 작았기 때문에 세계 시장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또한 도시감각의 스타일, 중형차 수준의 조향성 및 승차감, 안정성, 적당한 크기 및 활용성에 개발 컨셉트를 맞추었다.


이를 위해 기아 엔지니어들은 미국 빅3의 새차 개발과정에 관한 자료를 참고해 공부했고, 최대 시장인 미국으로 건너가 당시 인기 있던 SUV 포드 브롱코와 스즈키 사무라이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한편 다양한 4WD 차들을 갖고 미국 전역을 달리며 비교 테스트를 벌였다. 그리고 성능이 우수한 몇 개의 차들을 선정해 이를 기준으로 스포티지의 설계 목표를 삼았다.


이렇듯 심혈을 기울여 만든 스포티지의 선진 설계는 여러모로 다른 SUV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객실 쪽의 차체프레임 부분만 최대한 낮게 설계해 타고내리기가 쉬웠고, 무게중심을 낮춰 승차감과 조종성능이 좋았다. 또한 크지 않은 차체를 고려해 보닛을 짧게 설계함으로써 실내공간을 최대한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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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은 당시 기술도입선이던 마쓰다의 2.0L FE 유닛을 후륜구동 방식으로 손질하고 변속기와 트랜스퍼 케이스는 새로 설계했다. 서스펜션은 중형차 수준의 승차감과 핸들링 성능을 위해 앞에는 더블위시본, 뒤에는 온·오프로드 모두에서 우수한 성능을 낼 수 있는 장구형 4링크식 코일 스프링을 채택했다.


기아자동차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자동차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시판에 앞서 1991년 도쿄모터쇼에서 스포티지를 공개했다. 여기서 전세계 자동차 전문가들로부터 “한국에서도 저런 컨셉트의 차를 만들 수 있느냐”며 호평을 받자 기아는 스포티지 성공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실제 판매는 2년 뒤인 1993년부터 이루어졌다. 하지만 해외 판매망이 제대로 없었던 데다 후발 주자들(토요타 RAV4, 혼다 CR-V)이 비슷한 컨셉트의 모델을 발빠르게 내놓으면서 시장 선점효과는 크게 누리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기아는 경영부진으로 97년 부도를 맞아 2년 뒤 현대자동차에 인수되었다. 시대를 선도할 만한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시장의 흐름을 타고 태어났지만 집안이 풍비박산나는 바람에 제대로 꿈을 펼치지 못한 불운의 아이콘인 셈이다. 


스포티지는 1996년에 휠베이스를 30cm 늘인 롱보디 모델을 추가했으나 국내에서 2002년 단종되어 잠시 명맥이 끊어졌다가 2004년 현대 산하에서 2세대로 부활해 현재 4세대에 이르고 있다.

이인주 기자

지프 코만치

지프가 만든 모노코크 픽업 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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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는 엄밀히 말해 SUV가 아니라 SUV 브랜드 지프가 만들었던 픽업이다. 북미 시장은 픽업 수요가 엄청나다. 따라서 미국 브랜드에서 픽업트럭을 선보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하지만 오늘날 크라이슬러(FCA)는 닷지에만 픽업을 배치했을 뿐, 지프는 철저하게 SUV 브랜드로 운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프 엠블럼을 붙인 픽업은 무척이나 낯설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코만치의 데뷔년도는 1985년이지만 지프 픽업의 역사는 조금 더 오래되었다. 랭글러 전신인 CJ-7의 휠베이스를 늘여 80년대 초 선보인 CJ-8이 바로 픽업이었다. 스크램블러라 불린 이 차에는 뒷부분을 하드톱으로 덮은 버전(CJ8 오버랜더)도 있었다.


당시 지프는 크라이슬러 소속이 아니었다. 2차대전 중 아메리칸 반탐에 의해 개발된 지프는 종전 후 제조 메이커였던 윌리스 오버랜드에 의해 상표등록되었고, 몇 번의 매각과정을 거치며 1970년 AMC(American Motors) 소속이 되었다. 현재 지프의 주력 라인업인 체로키 역시 AMC 시절에 내어난 모델이다.


1984년 발매된 코만치는 체로키(XJ)의 픽업형으로 스크렘블러의 후속모델이었다. XJ는 초대 체로키와 이름만 같았을 뿐 사이즈는 줄었고, SUV 시장에서 아직 낯설던 모노코크 섀시를 도입했다. 덕분에 코만치는 당시로서는 매우 진귀한 모노코크 픽업이었다. 엔진룸과 캐빈룸은 모노코크이되 뒤쪽 트럭 베드에 레더 프레임을 사용한 일종의 하이브리드 구조.


70년대 말 판매부진에 시달리던 AMC는 르노의 자본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대주주 르노마저도 경영부진으로 휘청거렸다. 결국 1987년 크라이슬러에 매각된 AMC는 이글과 한데 묶여 지프-이글 디비전이 되었다. 크러이슬러는 판매가 신통치 않은 코만치를 단종시키고 비슷한 시기 태어났지만 조금 더 전통적인 구조를 지닌 닷지 다코타 픽업을 생존시키기로 했다. 코만치는 1992년까지 19만446대가 생산되었다.

이수진 편집장

 

라다 니바

러시아가 사랑한 원조 소형 S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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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강산이 바뀌어도 적어도 몇 번은 바뀌었을 유구한 시간이다. 그런데 이 긴 시간 동안 변함없는 모양새로 팔리는 차가 있다. 바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SUV 라다 니바. ‘러시아는 그런 차 많아. 심지어 옛날 코란도도 그대도 팔리는 걸’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니바는 그저 그런 러시아차가 아니다. 러시아를 넘어 세계의 사랑을 받는 SUV다. 1977년부터 지난 2010년까지 생산대수만 해도 약 1,350만대이며, 지금도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니바는 라다 브랜드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대표하는 자동차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니바는 러시아 최대 자동차 회사 아브토바즈의 브랜드 라다가 처음 독자개발해 1977년 선보였다. 우리나라 현대차로 치면 포니쯤 되는 셈. 서민을 위한 저렴하고 경제적인 차, 그리고 험난한 지형과 날씨를 버틸 수 있는 차가 필요했던 러시아의 사정이 맞물려 태어났다. 덕분에 간단한 구조, 경제적인 가격, 튼튼한 내구성으로 인정받아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8년 파리모터쇼를 통해 해외에 선보인 후 80~90년대 러시아의 주력 수출 차종으로 올라선다. 가까운 동유럽에 주로 팔렸지만 캐나다, 서유럽, 남미, 그리고 일본에도 수출되었다. 이후 큰 변화 없이 지금까지 인기리에 판매 중이다. 니바의 인기와 상징성은 블라디미르 푸틴 현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타고 있다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니바는 라다의 독자모델이지만 앞서 라다가 피아트를 들여와 만든 쥐굴리(VAZ-2101)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 직렬 4기통 1.6L SOHC 72마력 가솔린 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는 물론 여러 부품을 공유했다. 다만 앞쪽 독립식 서스펜션과 4륜구동은 독자기술로 채웠다. 최고시속 130km는 지금 기준에서 형편없지만 당시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대신 오프로드 성능이 뛰어났다. 당시 주행 테스트 결과에 따르면, 60cm 깊이의 물길을 통과하고 58도 경사를 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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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조금씩 개선되어 최근에는 1.7L 83마력 엔진을 얹는다. 최고속도는 142km/h,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17초가 걸린다. 여전히 클래식한 외모에 걸맞은 클래식한 성능이다. 참고로 니바라는 이름은 2002년 쉐보레에 내어주고 지금은 라다 4X4로 불린다.

윤지수 기자

​미니 모크

군용차를 꿈꾼 당돌한 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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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1세대 오리지널 미니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어여쁜 스타일과 경제성으로 전세계인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깜찍한 미니가 한때 군용차를 꿈꿨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전장을 누비고자 태어났지만 평화로운 휴양지 비치 버기로 더욱 사랑받은 차가 바로 미니 모크다.


1950년대 후반, 영국군은 헬리콥터로 옮길 수 있는 가벼운 차가 필요했다. 당시 군용차였던 랜드로버는 너무 무거웠기 때문. 이를 파고든 미니(당시 BMC)는 1959년 작고 가볍다는 강점을 살려 미니를 군용차로 개조한 미니 모크를 선보였다. 헬리콥터가 부담 없이 옳길 수 있을 만큼 작고 가벼웠다. 하지만 군용차는 험지를 누벼야 한다. 미니 모크는 4륜구동이 아니라는 이유로 입찰에서 탈락하고, 1962년 두 개의 엔진이 달린 4륜구동 미니 모크로 재도전하지만 역시 바닥 높이가 낮다는 이유로 다시 한번 고배를 마셨다. 결국 군용차의 꿈을 접고 민간으로 눈을 돌려 저렴한 펀카, 특히 휴양지 비치 버키로 널리 쓰였다. 참고로 영국군이 선택한 모델은 경량화된 랜드로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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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모크는 오리지널 미니와 마찬가지로 알렉 이시고니스가 만들었다. 미니를 바탕으로 미니 부품을 많이 썼다. 스틸 모노코크 차체에 미니의 서브프레임을 붙이고 직렬 4기통 848cc A시리즈 엔진과 4단 수동변속기를 맞물렸다. 서스펜션도 미니에서 그대로 가져오고 심지어 작은 바퀴마저 그대로 썼다. 모양만 군용차로 바꾼 미니인 셈. 덕분에 작은 크기에 네 명이 탈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특징이었다.


물론 군용차다운 특징도 곳곳에 남아 있다. 언제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평평한 앞 유리창과 철판을 깍둑깍둑 접은 스타일도 특징. 문과 지붕은 없다. 대신 패브릭 지붕으로 비바람을 피한다.


미니 모크는 미니와 마찬가지로 영국 자동차 업계의 통폐합에 따라 BMC, 오스틴, 모리스 등 여러 브랜드로 옮겨 다녔다. 공장 역시 영국에서 시작해 호주,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지를 전전한다. 그래도 경제적인 펀카, 특히 휴양지에서 타는 평화로운 차로 각광받으며 1964년부터 1992년까지 장수를 누렸다. 28년간 총 생산대수는 약 5만여 대다.

윤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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