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모하비 유럽횡단 여행기 제4탄 (최종회)
2017-04-07  |   43,929 읽음


기아 모하비 유럽횡단 여행기 제4탄 (최종회)
동유럽 발칸반도에서 발트해를 따라


발트해 남동해안의 세 나라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를 누비며 열강에 침략당한 약소국의 서글픈 역사를 공감했다.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이었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코소보, 몬테니그로 등 발칸반도의 많은 나라를 쉴 새 없이 달렸다. 코소보에서 내전의 시대를 상기하고, 루마니아에서 몰락한 사회주의 체제를 되짚었으며,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선 제1차 세계대전의 배경과 그 뒷이야기를 떠올렸다. 연재는 마무리되지만 여행은 계속된다. 모하비의 용감한 바퀴는 서유럽을 가로질러 저 멀리 아프리카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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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구 시가지는 붉은 지붕과 밝은 파스텔 색조로 마감을 한 중세 건물로 빼곡했지만 전혀 화려하지 않았고, 강하지 않은 콘트라스트로 인해 오히려 소박하고 정겨운 느낌을 줬다. 언덕에 자리한 알렉산더 네프스키 대성당은 거대한 반구형 지붕이 시선을 사로잡는 러시아 정교회 대성당으로 1900년에 완공되었다. 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중앙 광장인 라에코야 플라츠에 건축된 탈린 시청은 북유럽에 남아 있는 가장 높은 고딕 양식 건축물이다. 1404년에 세워진 이곳을 중심으로 15세기 이후 지어진 파스텔 톤의 건축물이 구 시가지를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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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평야지대로 이루어진 구 시가지에는 톰페아라는 작은 언덕이 있다. 이 언덕은 소비에트연방으로부터 발트 3국의 독립을 요구한 시민 독립운동의 시발점이자 소비에트연맹 해체의 서곡이 울린 역사적 장소다. 1989년 8월 23일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그리고 리투아니아의 국민 100만 명이 600km 떨어진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있는 게디미나스 타워까지 서로의 손을 잡아 인간 사슬을 만들었다. 이때까지 발트 3국은 소비에트연방 아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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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 외곽에 있는 카드리오르그 궁전을 찾았다. 러시아의 차르인 표토르 대제가 에스토니아를 정복한 후 그의 아내 예카테리나 1세에게 사랑의 정표로 지어 선물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인데 현재는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많은 외세의 침략과 전쟁을 겪은 나라다. 에스토니아의 일부 지방은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고 독일과 스웨덴도 이 나라를 점령하고 통치했다. 1721년부터는 표토르 대제의 침략에 의해 러시아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1918년 10월 혁명으로 러시아 왕정이 붕괴되며 한때 독립을 쟁취했으나 1940년 스탈린에 의해 다시 소련으로 흡수되었다가 1991년 8월에야 온전한 독립을 이룬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리적으로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민간 교류도 활발하지 않지만 그 역사를 알고 나니 왠지 에스토니아가 가깝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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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의 침략 견뎌낸 에스토니아 나르바 
에스토니아 동쪽 끝에 있는 국경도시 나르바는 러시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다. 두 나라는 1991년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기 전까지는 같은 나라였다. 나르바는 에스토니아 제3의 도시다. 근세 유럽으로 진출하려는 러시아와 이를 저지하려는 유럽 지배 세력의 치열한 각축이 일어난 역사적인 곳이다. 그저 국경 도시로서 통과만 하고 지나치기엔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 도시 구석구석을 둘러보기로 했다. 나르바에는 요새가 있는데 보기 드물게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국경 너머 러시아의 이반고로드 요새 사이로는 나르바 강이 흐르고 그 위에 놓인 다리의 중앙이 에스토니아와 러시아의 국경이다.


나르바는 1581년부터 1704년까지 스웨덴령이었다. 스웨덴은 1583년에서 1585년 사이에 러시아의 서진 팽창정책을 막기 위해 요새를 축조했으며 러시아는 스웨덴의 러시아 동진을 막기 위해 이반고로드 성을 만들었다. 나르다 강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두 요새는 중세의 서유럽에서 얼마나 치열한 영토전쟁이 벌어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세계 전쟁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는 나르바 전투. 1차는 스웨덴의 승리였고 2차는 표토르 대제의 러시아가 승리했다. 열강들의 전쟁터였던 이곳에서 에스토니아의 역사를 배운다.


다시 자동차에 올라타고 ‘로맨틱 타운’이라고 불리는 빌잔디에 들렀다. 아름다운 빌잔디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한 인구 2만 명의 작은 도시다. 1283년도에 이미 도시가 형성되어 종교와 교통의 중심지로 발달해온 빌잔디의 시가지는 중세 모습 그대로 간직한 채 현재도 사람이 거주하고 있으며 13세기 중반부터 1932년까지 사용되었다는 상점은 사적으로 보존되고 있었다. 중심 광장에는 중세에 지어진 타운 홀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길을 따라 달리다보니 부지불식간에 라트비아 국경을 넘었다. 긴가민가해서 차를 돌려 에스토니아로 들어갔다가 다시 라트비아로 나왔다. 자동차로 백 번을 들락날락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은 쉥겐 협약에 가입한 EU 국가의 국경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라트비아는 발트 3국의 가운데에 위치한 나라이다. 1991년까지 소비에트연방에 속해 있다가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와 함께 독립한 신생국이다. 발트 3국 중에선 경제지표가 다소 열세이며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은 나라다. 자동차로 달리며 느낀 바로는 도로포장 상태도 좋지 않았고 비포장 구간도 꽤 많았다.


에스토니아 국경에 근접한 세시스를 찾았다. 세시스의 벤덴 성은 1209년도에 축조된 성으로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보존 상태가 상당히 좋았다. 중세에는 제법 번성한 도시였으나 1577년 이반 4세에 의해 러시아에 점령당했다. 이 먼 곳에서 또 다시 이반 4세를 만나게 되니 그의 세력이 얼마나 멀리까지 미쳤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 여기까지 멀기도 하거니와 교통도 불편했을 텐데 참 멀리도 원정을 왔다. 세시스 성당 앞의 수도사는 ‘낮은 곳으로 임하라’라는 성경의 말씀에 충실한 듯 한껏 자세를 낮추고 걸어가고 있었다.


시굴다를 찾았다. 가우야 강을 중심으로 국립공원이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공원 내에 많은 문화유적과 놀이시설, 체육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라트비아의 대표적인 멀티플렉스 공원으로 꼽힌다. 이곳의 투라이다 박물관 유적지는 시굴다의 대표 관광명소로서 1214년경 중세 시대의 성과 교회를 완벽하게 복원해 놓았다. 종교 통치자였던 대주교가 거주하였으며 종교와 군사적 목적을 함께 가졌던 성으로, 전망대에 오르면 가자 강 주변으로 펼쳐진 울창한 국립공원 지대가 한눈에 펼쳐진다. 세계 자동차 여행을 통해 수없이 많은 문화유적지를 보았지만 이곳에선 적잖이 실망했다. 싸구려 붉은 벽돌과 시멘트를 사용해 복원된 트라이다 성은 한눈에 보기에도 과거를 현재로 되살리는 데에 실패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복원할 바에야 차라리 원형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더 나았겠다 싶을 정도다. 대부분의 유적은 철저하고 완벽한 고증을 통해 현대의 기술로 복원된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 유적을 복원하기 위한 건축가, 역사학자, 민속학자, 고미술가 등 여러 분야 관련자들의 노고와 열정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EU 국가 대다수가 고대 유적의 복원에 탁월한 경험과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의 도움을 받았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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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굴다에는 재미있는 공원이 있었다. 바로 지팡이 공원인데, 시의 상징이 지팡이라고 한다. 시굴다는 문화유적의 보고이다. 1207년 요새로 지어졌다가 나중에 수도원으로 사용된 크리물다 중세 성은 일부만 복원되고 나머지는 원형 그대로 보전되고 있는데, 중앙 광장은 콘서트 홀로 사용된다. 가자 강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이곳을 점령했던 러시아의 이반 4세가 앉았다는 ‘황제의 의자’에 앉아 당시 이반 4세의 기분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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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의 진주, 리가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로 들어갔다. 발트 3국이 한 나라로 독립을 했다면 그 수도는 리가였을 것이다. ‘발트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리가의 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중세기 민족적 연대가 강했던 유럽 여러 도시들의 상인 조합인 한자동맹 시절 리가는 중요한 무역항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상업 및 경제적 발전을 이뤘다. 구 시가지의 상징인 베드로 성당은 리가 상인들의 기부금으로 건설됐다. 그만큼 리가 내에서 많은 부의 창출이 이뤄졌고 국제 무역도 성행했다.

또 세계 건축사의 새로운 장르를 열었던 아르누보 건축물은 이곳의 자랑이다. 바로크니 로코코니 하는 기존의 패턴과 양식에 얽매이지 않고 국가와 종교, 인종을 초월한 진보된 형태의 새로운 건축양식이다. 리가의 구 시가지는 에스토니아의 탈린보다 중후하고 화려했는데 석재와 파스텔 톤의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에스토니아 수도인 탈린의 구 시가지가 한산했던 것과 달리 리가는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카지노와 펍이 많아 유흥 문화가 많이 발달한 도시이다. 심수봉이 부른 ‘백만 송이 장미’도 리가 출신의 레이몬츠 파올스가 작곡한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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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비아는 오랜 기간 외세의 침략과 지배 속에 살아온 나라이다. 소비에트연방으로부터 독립한 지 겨우 20여 년이 지났을 뿐. 외세의 지배와 간섭이 없어진 만큼 과거의 영광과 번영이 다시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체메리 국립공원은 수도 리가에서 46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자연과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휴식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무엇보다 자연생태계의 보존을 위해 1997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손상되지 않은 늪지와 그 아래에 형성되어 있는 유황성분의 미네랄워터, 조류의 서식, 울창한 낙엽송의 산림 등이 이곳이 추구하는 가장 의미 있는 자연보존의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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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잘못 헛디디면 땅 속으로 푹 꺼져 버리는 늪지대 위에 놓인 보드워크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으며 광활한 늪지대와 그 안의 작은 호수들, 그리고 그 위에 싹을 틔우고 자란 소나무…….

수천 수 만 년을 이어온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이 절로 인다.

체메리 국립공원의 면적은 구리시의 12배나 되는 381.65㎢로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습지이다. 늪으로 이루어진 평원 안에 셀 수 없이 많은 호수를 품고 있는 이 습지생태 공원은 자연 생태계의 보고다. 발을 잘못 헛디디면 땅 속으로 푹 꺼져 버리는 늪지대 위에 놓인 보드워크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으며 광활한 늪지대와 그 안의 작은 호수들, 그리고 그 위에 싹을 틔우고 자란 소나무……. 수천 수 만 년을 이어온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이 절로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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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달레 왕궁은 바우스카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이런 시골구석에 커다란 궁전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겨울궁전을 설계한 이탈리아 건축가 바르톨로메오에 의해 1736년부터 4년간에 걸쳐 건축되었다. 궁전 뒤편으로는 로즈 가든이라고 불리는 커다란 정원이 데칼코마니같이 좌우 대칭형으로 만들어져 형형색색의 장미들이 식재되어 있고, 드넓은 정원은 질서 정연한 관목에 의해 구획되어 있었다. 룬달레 궁전을 ‘발트해의 궁전’이라고 칭하기도 하고 ‘발트해의 베르사유’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유도 이 정원 때문이다. 궁전 안에는 많은 회화와 조각, 공예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룬달레 왕궁의 많은 작품 중에서 회화의 경우는 대다수가 실제 작품이 아니고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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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스카 성은 한창 복원 공사 중이었다. 작업대 위에서 남녀 두 명이 벽돌을 붙이고 있었는데 철저한 고증을 거쳐 전문가의 자문과 감독 아래 복원이 되고 있는 것인지 심히 우려스러웠다. 우리나라는 발굴될 당시의 원형 보존에 역점을 두고 있는 반면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의 많은 나라는 발굴 후 원상 복원에 치중하는 것이 특징인데, 어느 것이 좋은지는 결국 후세들이 판단할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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