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전통 위에서 미래를 그리다 - LAND ROVER RANGE ROVER
2012-10-24  |   43,329 읽음

한때 한국에서 랜드로버는 유명한 신발 브랜드(한국 명칭은 랜드로바)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고급스러운 SUV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동안 한국 수입차 시장이 크게 성장했을 뿐 아니라 특히 프리미엄 분야의 성장이 눈부셨던 결과다. 영국을 대표했던 랜드로버는 로버가 90년대 초 공중분해되면서 BMW와 포드에 연이어 팔렸고, 이제는 인도 타타의 자회사가 된 신세. 한때 식민지였던 인도에 영국 대표 브랜드가 매각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세간의 우려와 달리 재규어/랜드로버는 꽤 성공적인 미래 청사진을 그려나가고 있다.

첨단 알루미늄 모노코크로 경량화
신세대 재규어인 XF는 꽤 성공적인 모델 체인지로 평가받고 있다. 아울러 랜드로버는 크기를 줄이고 소형 엔진을 얹은 이보크를 통해 오프로더로 고착화된 이미지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보크는 소형, 효율, 저탄소 그리고 도심화라는 패러다임에 대한 랜드로버 나름의 명확한 해답인 셈이다. 이보크가 굳이 레인지로버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했지만 레인지로버 자체가 이보크로 완전히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역사와 전통의 기함 레인지로버는 여전히 건재하며 그 차세대 모델이 최근 공개되었다.

1948년 처음 등장한 랜드로버 시리즈1은 2차대전 중 유럽으로 건너가 활약했던 윌리스 지프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되었다. 상당히 성공적이었지만 1960년대 접어들면서 새로운 모델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것이 사실. 단순하고 기능적인 랜드로버 시리즈1과 후속작 시리즈2가 오프로즈 주행에 초점을 맞춘 무척이나 기능적인 디자인이었던 데 비해 1970년 등장한 레인지로버는 대형 차체에 현대적 디자인과 기술로 무장한 고급 SUV였다. 이후 레인지로버는 럭셔리 SUV의 대명사로서 ‘사막의 롤스로이스’라는 애칭을 얻어냈다.

파리모터쇼를 통해 공개되는 4세대 레인지로버는 적어도 디자인에서만큼은 42년 전 태어난 초대 모델과 맞닿아 있다. 특히 넉넉한 왜건형 보디와 높은 지붕, 옆창 디자인, 특히나 D필러의 각도만으로도 이 차가 레인지로버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사각형의 대형 헤드램프는 위아래로 얇아지고 양쪽 끝을 잡아늘여 이보크와 통일된 이미지를 추구했다. 지금까지 거의 수직이었던 그릴과 범퍼에 경사를 붙인 것도 큰 변화 중 하나. 짧은 프론트 오버행과 약간 쳐들린 듯한 엉덩이 아랫부분은 오프로드 입사각과 탈출각 확보를 위한 디자인으로 이 차가 여전히 오프로드 DNA를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신형 레인지로버는 올 알루미늄 모노코크를 채용했다. 오프로더 시절의 SUV들은 많은 수가 트럭 섀시를 바탕으로 했었고, 더구나 험로의 극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고강성 프레임을 바닥에 넣은 레터 타입 섀시가 많았다. 그러던 것이 온로드 주행이 많아지면서 지금의 스틸 모노코크로 정착된 것. 그런데 랜드로버는 일부 고급, 고성능차에서 사용 중인 알루미늄 모노코크를 과감하게 도입해 무게를 350kg이나 경량화시켰다. 최초의 랜드로버 역시 알루미늄 보디였음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듀얼 글라스 루프로 채광성을 높인 실내는 3세대 이미지가 많이 남아 있으면서도 더욱 고급스럽게 꾸며졌다. 직선 기조의 대시보드 디자인은 전 세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모니터와 에어 벤트 위치가 바뀌었고, 우드 장식의 센터터널과 뒷좌석 독립 공조/시트 조절 스위치 등 편의장비를 더했다. 우드트림은 블랙 래커와 마카사르, 월넛 등 세 가지. LED 무드등은 무려 10가지 색상을 선택할 수 있다. 아울러 앞좌석에 3모드 마사지 기능을 장비했으며, 42mm 늘어난 휠베이스를 활용해 뒷좌석 레그룸을 118mm 연장했다. 리모컨과 타이머를 활용해 탑승 전 미리 차를 덥히거나 시원하게 만들어놓을 수 있기 때문에 한겨울이나 폭염 속에서도 한결 쾌적하게 탑승할 수 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결합된 메리디안의 최고급 오디오도 빼놓을 수 없다. 영국을 대표하는 홈 오디오 브랜드 메리디안은 새로운 레인지로버를 위해 380W 출력에 29 스피커를 갖춘 3D 사운드 시스템을 개발했다.

구동계는 가장 강력한 V8 5.0L 수퍼차저 510마력의 LR-V8 엔진(0→시속 97km 가속 5.1초)을 비롯해 V8 4.4L 디젤 SDV8 339마력과 V6 3.0L TDV6 258마력 엔진이 준비되어 있다. TDV6의 경우 CO₂ 배출량 196g/km(-22%)과 13.3km/L의 연비를 자랑한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내년 하반기 출시 예정인 디젤 하이브리드 버전. 아직 자세한 스펙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SUV 최초의 디젤 하이브리드 버전이 되며 km당 CO₂ 배출 169g을 목표로 한다.

올 터레인 리스폰스와 각종 첨단기술로 무장해
랜드로버가 자랑하는 올 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은 더욱 갈고 다듬어 얹었다. 4WD 시스템과 2단 트랜스퍼, 전자식 트랙션 컨트롤을 통합 제어하는 이 장비는 깔끔한 포장도로부터 본격적인 락 크롤링까지 폭넓은 주행능력을 제공한다. 아울러 높이조절이 가능한 서스펜션이 더해짐으로써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환경 적응력을 자랑한다.
이밖에도 자동 브레이크 기능이 추가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자동주차 기능인 파크 어시스트, 주차장과 오프로드 주행에서 유용한 서라운드 카메라, 블라인드 스폿 모니터링 등의 첨단장비를 두루 갖추고 있다.

레인지로버는 랜드로버 브랜드를 대표하는 모델일 뿐 아니라 오프로더에서 시작해 지금의 프리미엄 SUV의 기초를 다진 선구자. 남들이 온로드와 고성능이라는 흐름을 쫓을 때 오프로더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게 발전을 거듭해왔다. 여전히 40년 전 이미지를 바탕으로 하지만 알루미늄 보디를 도입해 과감히 경량화하고 디젤 하이브리드 구동계로 저탄소, 고효율이라는 시대적 요구에도 부응했다. 레인지로버 이보크가 기존 역사에 얽매이지 않는 모델이라면 4세대 레인지로버는 역사와 전통 그리고 미래라는 세 가지 요소를 완벽하게 조화시킨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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