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봉고Ⅲ 트럭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게 한
2004-03-16  |   25,270 읽음
재미있었던 일과 멋진 장면이 오버랩 되는 차가 트럭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운전면허 시험장에서의 일. 승용차와 SUV는 운전석이 앞바퀴 뒤쪽에 있지만 트럭은 바퀴 위에 있다. 당연히 핸들을 트는 시점이 다르다. 이런 이유로 운전학원에서는 굴절과 S자 코스에서 대시보드에 몇 조각의 색종이를 붙여 놓고 코스 라인과 색종이가 딱 맞아떨어질 때 핸들을 돌리라고 일러주기도 했다.

80년대 초반 봉고신화의 주인공
고속도로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컨테이너를 싣고 달리는 화물차를 볼 수 있다.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높은 자리에 앉아 전방을 살피며 운전하는 드라이버, 뱃고동 소리와 맞먹는 ‘빵빵’ 울리는 혼 소리가 멋져 ‘나도 언젠가는 저런 트럭을 몰아 봐야지’라는 꿈을 가졌다.
운전면허를 딴 뒤에야 컨테이너 화물차는 특수면허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또 멋이 아니라 삶의 수단으로 큰 차를 운전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세상물정 모르던 그때를 생각하면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최근 1톤 트럭을 몰아 볼 기회가 생겼다. 울렁거리면서도 아기자기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선배 기자의 말에 설렘이 앞선다.
기아 봉고 1톤 트럭이 풀 모델 체인지되었다. 국산 1톤 트럭은 1977년 일본 미쓰비시의 델리카를 바탕으로 만든 현대의 HD1000 포터가 처음이다. 하지만 81년 2월 ‘자동차 합리화조치’가 발표되면서 HD1000 포터는 생산을 멈춘다. 반대로 기아는 80년 일본 마쓰다 트럭을 들여와 봉고 1톤 트럭을 만들면서 ‘봉고신화’를 탄생시켰다.
86년 자동차 합리화조치가 풀리면서 현대가 델리카를 다듬은 차체에 2.5X 디젤 엔진을 얹은 포터를 내세워 기아 봉고에 도전장을 냈다. 이에 대응해 기아는 자체 개발한 2.7X 디젤 엔진의 와이드 봉고를 내놓는다. 기아는 97년 ‘봉고 프론티어’라는 이름으로 2세대 모델을 발표했다. 봉고의 뒤를 이으면서 다른 분야를 개척한다는 야심이 더해진 차다. 현대는 리베로로 다시 맞불을 놓았고 2002년형 봉고는 월드컵을 기념해 ‘뉴 봉고 사일런트’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나왔다. 이처럼 1톤 트럭 시장은 현대와 기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장해 왔다.

고급스럽게 다듬어진 디자인
시승차를 보는 순간 모양도 다르고 편의장비, 쓰임새는 물론 값에서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극과 극’인 폭스바겐 뉴 비틀이 떠올랐다. 발랄하고 경쾌한 연록색 차체 때문이다. 색이 바래고 녹슬어 색깔 구분이 안 되는 트럭을 많이 봐 온 탓인지 화사한 색깔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앞모습은 트럭 특유의 사각 캐빈을 둥글리면서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디자인으로 한마디로 귀여움 그 자체다. 라디에이터 그릴을 없앤 얼굴도 깔끔하다. 큰 눈을 치켜뜬 듯 한 클리어 타입의 대형 헤드램프는 강인함을 쏟아낸다. 이와는 반대로 트윈 서클 타입의 분리형 컴비네이션 테일램프는 단순하면서도 깜찍하다. 1천200mm의 오버행은 이전보다 40mm 늘어난 것으로, 이 또한 트럭의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립 타입의 도어캐치는 승용 감각이다. 프론티어는 캐빈 양쪽에 지지대를 세우고 사이드 미러를 붙여 뒷시야는 좋지만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새차는 디자인을 다듬어 캐빈에 붙였다.
범퍼에서 캐빈 아래쪽을 지나 적재함까지 이어지는 ‘J’자 라인은 생동감이 넘친다. 적재함에 오르고 내릴 때 쓰고, 추돌하는 차가 트럭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달아 놓은 리어 가드도 듬직하다.
정비 편의성에도 신경을 썼다. 정면에 숨겨진 세미 보네트를 열면 와이퍼 모터, 에어필터, 워셔액통 등 일상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것들이 모여 있다. 배터리 안쪽에 퓨즈와 릴레이를 통합시켜 놓았고, 공구상자도 키웠다.
트럭을 처음 접해 보았다면 차에 오르는 연습부터 할 필요가 있다. 멋을 낸 디자인에 각종 편의장비를 더했어도 트럭은 트럭이다. 오른 다리를 먼저 집어넣을까 왼쪽 다리로 발판을 밟고 올라갈까, 시트 등받이를 짚어야 하나 아니면 손잡이를 잡아야 하나. 트럭 구조상 어쩔 수 없지만 발판이 너무 앞쪽에 있어 발을 들여 놓기가 불편하다.
은회색으로 꾸민 실내는 심플하고 센터페시아와 계기패널, 기어 레버 주위는 메탈릭 컬러로 포인트를 주었다. 요즘은 트럭도 편의성을 강조하는 추세다. 핸즈프리와 핸드폰 거치대, 선글라스 케이스, 열선이 들어간 사이드 미러 등이 기본으로 달렸다.
도어 암레스트나 측면유리 서리제거 기능도 차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운전자를 고려한 장비다. 하지만 세로로 늘어뜨린 송풍구 컨트롤, 바람세기, 온도조절 스위치 등은 운전자가 만지기에 조금 멀다. 곳곳에 수납함을 두어 요긴하게 쓸 수 있다. A4 용지를 넣을 수 있을 만큼 깊고 넓은 글러브 박스에는 작은 수첩이 들어가는 2개의 수납함이 따로 있다. 보조시트 등받이를 접으면 컵홀더, 서류를 집을 수 있도록 앙증맞은 집게까지 있어 간이 테이블로 쓰기에 안성맞춤이다. 페트병이 들어가는 도어트림, 그물망을 댄 위쪽 수납공간, 기어 노브 아래쪽의 접이식 컵홀더 등도 쓰임새가 좋다.
운전석에 앉으니 높은 시트, 넓은 앞유리 덕에 시야가 훤하다. 반대로 가운데 보조석은 시트가 높고 앞으로 튀어나온 대시보드와 기어 레버 때문에 장시간 앉아 있기에 부담스럽다.
대부분 트럭이 그렇듯 운전을 위해서는 거의 눕다시피 한 스티어링 휠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인조 가죽시트는 편안하지만 좁은 느낌이다. 이중곡률 사이드 미러의 위쪽은 멀리 있는 차를, 아래쪽은 사각에서 따라오는 차를 비쳐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커다란 후방유리를 충분히 활용하기에는 룸미러가 너무 작다.

조용한 실내, 경쾌한 달리기
트럭은 짐을 싣는 차다. 따라서 빈 차를 탔을 때는 장·단점을 파악하기 힘들다. 속도를 내는 차도 아니기에 또 서스펜션도 적당한 짐을 실었을 때에 맞춰 세팅하기 때문에 ‘최고시속이 어떻고, 빠른 속도로 코너를 도니 꽁무니가 따로 놀더라’라는 식의 시승도 큰 의미가 없다.
새차의 심장은 2천902cc 커먼레일 디젤 엔진. 보쉬제 펌프식 연료분사장치를 쓰는 2천476cc 94마력 디젤 터보 인터쿨러 엔진을 그대로 두고 새로이 더한 것이다. 2.9X 커먼레일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 123마력, 25kg·m의 최대토크를 낸다. 수동기어임을 감안해 1단에 기어를 놓고 조심스럽게 출발한다. 디젤차는 클러치 조작이 좀 서툴러도 시동이 꺼지지 않아 편하다.
수동기어보다 신경 쓰이는 것이 긴 차체지만, 사실은 기분일 뿐이다. 봉고Ⅲ의 길이×너비×높이는 5천110×1천740×1천995mm. 국내 RV 중 4천930mm로 가장 긴 카니발보다 180mm, 세단인 에쿠스보다 겨우 35mm 길뿐이다. 반대로 포드 뉴 윈드스타보다는 30mm 짧다. 길이 때문에 달리기나 주차가 어렵지는 않다는 얘기다.
rpm을 높이고 기어 단수를 바꾸면서 속도를 높인다. 변속 충격을 느낄 틈도 없이 속도가 부드럽게 올라간다. 조용하면서도 기분 좋게 들리는 디젤음이 오히려 속도를 높이도록 북돋는다. 제원상 0→시속 80km 가속 14.6초. 실제로도 치고 나가는 힘이 좋다. 4단에서 변속을 멈춘 채 시속 110km에 다다르자 ‘이제야’ 조금씩 소음이 들려 온다. 상상 이상으로 ‘잘’ 나가고, 생각한 것보다 ‘엄청’ 조용해 놀라울 따름이다. 5단으로 바꾼 뒤 시속 120km대를 유지한다. 고속에서 무거워져야 할 핸들이 이상하게 가벼워져 꽉 움켜쥐게 된다. 무리 없이 시속 140km를 치고 나가지만 바람소리와 엔진소리가 뒤섞여 제법 크게 틀어 놓은 라디오 방송을 듣기가 힘들다.
문제는 빈 차로 달렸기에 거친 노면을 지날 때 전해지는 출렁임이다. 놀이동산 바이킹을 타듯 울렁거린다. 고속에서 스티어링 휠에 전해지는 자잘한 충격도 거슬린다. 뒷바퀴굴림의 특성상 약간의 물기를 머금은 잔디밭에서도 스핀하기 일쑤고 약간 급한 언덕을 후진으로 오르기에도 무리가 따른다. 코너에서 심하게 틀어지며 캐빈을 쫓아오는 적재함의 움직임을 느끼고 있자니 부지런을 떨며 짐을 싣지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1톤 트럭은 자영업자의 사업 동반자가 될 때 가장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들에게 트럭은 사업수단이며 자가용이기 때문에 고급스러움과 여유로움이 필요하다. 트럭이 짐차만일 수 없는 이유다.
1980∼96년 만들어진 봉고 1세대는 1톤 트럭 시장의 57%를 차지했지만 1997∼2003년 2세대로 넘어가면서 현대 포터와 리베로에 밀려 42%로 내려갔다. 기아는 3세대 모델로 시장점유율을 다시 50%까지 올리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밖에서 보기에는 현대와 기아의 집안싸움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자존심이 걸린 결투의 현장이다. 25년 동안을 지켜온 기아가 ‘봉고신화’를 되살려낼지 지켜볼 일만 남았다.

은회색으로 꾸민 실내는 심플하다. 센터페시아와 계기패널, 기어 레버 주위에 메탈릭 포인트를 주었다. 요즘은 트럭도 편의성을 강조하는 추세여서 편의장비를 많이 넣었다. 봉고Ⅲ는 상상 이상으로 잘 나가고, 생각한 것보다 엄청 조용해 놀라울 따름이다

기아 봉고Ⅲ 1톤 트럭 2.9 CRDi
Dimension
길이X너비X높이(mm) 5100×1740×1995
휠베이스(mm) 2615
트레드(mm)(앞/뒤) 1490/1430
무게(kg) 1785
승차정원(명) 3
Drive train
엔진형식 직렬 4기통 DOHC 디젤 터보 CRDi
최고출력(마력/rpm) 123/3800
최대토크(kg·m/rpm) 25.0/2000
구동계 뒷바퀴굴림
배기량(cc) 2902
보어×스트로크(mm) 97.1×98
압축비 18.4
연료공급/과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크기(L) 65
Chassis
보디형식 2도어 트럭
스티어링 볼 너트(파워)
서스펜션 앞/뒤 더블 위시본/리지드
브레이크 앞/뒤 V디스크/드럼(ABS)
타이어(앞, 뒤) 195R15-9PR, 5.00R12-8PR
Transmission
기어비 ①/②/③
④/⑤/?
4.270/2.282/1.414
1.000/0.813/3.814
최종감속비 3.727
변속기 수동 5단
Performance
최고시속(km) 137
0→시속 100km 가속(초) -
연비(km/L) 10.5
Price 1,12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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