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 렉스턴 RX5 EDi 정상의 끝에서 스스로를 경쟁자로 만들어버린
2004-01-27  |   47,481 읽음
선거철만 되면 후보들의 자질 문제가 항상 시빗거리가 된다. 특수한 환경 탓에 국내에서는 가장 민감한 것이 병역 문제. 정당한 이유가 있건 얕은 수로 피해 갔건 자식을 군대에 안 보낸 후보들은 냉가슴을 앓게 된다. 유권자들의 눈초리와 상대 후보의 끈덕진 추궁을 피하고 당선되는 길은 오직 하나,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것이 아닐까?
렉스턴은 대한민국 최고의 SUV로 인정받아왔다. 하지만 최첨단 커먼레일 디젤과 150마력 이상의 힘 좋은 엔진이 판치는 SUV 시장에서 오래된 벤츠 엔진과 120마력의 출력은 말못할 고민거리. 경쟁차들은 이런 약점을 물고 늘어졌고, 렉스턴 엔진의 더디고 묵직한 초기 반응은 힘없음과 개성 사이에서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비난을 피하는 길은 단 하나, 고출력 커먼레일을 얹는 일. 지난 12월 렉스턴은 170마력짜리 제3세대 커먼레일 디젤 엔진을 얹고 새롭게 태어났다.

디테일 위주의 변화와 늘어난 편의장비

이제 막 생산라인을 빠져 나와 비닐도 벗기지 않은 렉스턴이 새차 특유의 냄새를 풍기며 기자를 맞았다. 청은색과 회색의 투톤으로 은은한 멋을 풍기는 시승차는 가장 윗급 모델인 RX5 EDi,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노블레스 버전이다. 시승차의 잠을 깨워 지하주차장의 좁고 가파른 커브를 다섯 번이나 돌아 나오는데 가뿐하고 경쾌한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엔진만 바뀌었단 소리를 듣고 찾아갔지만 엔진 이상의 변화가 느껴진다.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2004년형 렉스턴은 ‘뉴’(new)라는 식상한 수식어를 달았지만 겉모습에서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다. 데뷔 당시 파격을 불러일으킨 미래적 스타일은 질리지 않는 무난함으로 받아들여지고 이력이 나기에는 아직 유효기간이 남아 있다. 휠 디자인을 눈 결정 모양으로 바꾸고 사이드 가니시의 수직 비드를 없애며 크롬도금 라인을 두른 것이 옆모습의 변화. 라디에이터 그릴은 세 가닥 선이 옆으로 길어져 처음 볼 때는 약간 어색하지만 체어맨, 무쏘와의 통일성이 커 쌍용 고유의 아이덴티티는 한층 살아났다.
한편 인테리어는 내장재를 블랙 톤으로 바꾸고 우드그레인도 짙은 색의 호두무늬 패턴을 써 이전의 투톤 컬러보다 고급스러워지고 중후한 맛도 더했다. LED 블랙 페이스 계기판은 속도계가 중앙에 큼지막하게 자리잡았고 눈금에 옥색 띠를 둘렀다. 밝은 곳에서는 일반 액정화면처럼 밋밋해 별다른 감동을 주지 않지만 어두운 곳에서는 고려청자에 불을 비춘 듯한 신비감이 물씬 풍겨난다. 기어 노브는 바뀐 트랜스미션에 맞춰 디자인을 새롭게 했고 3열 헤드레스트를 인체공학적인 모양으로 바꿨다. 이밖에 2, 3열 시트에 보드를 달아 넓고 편평한 공간을 만들 수 있게 하는 등 세심하게 신경 쓴 부분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국내 자동차 시장의 경향은 차급에 관계없이 새 모델이나 이어 모델을 내놓을 때 온갖 편의장비로 무장하는 것. 렉스턴도 이러한 흐름을 충실히 따르며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귀찮을 정도로 많은 편의장비를 더했다. 하지만 뉴 렉스턴의 가장 큰 변화는 엔진. 그동안 많은 장점을 갖고도 출력 경쟁에서만은 기죽어 지내던 렉스턴이 선보인 비장의 무기는 170마력의 힘을 내는 커먼레일 디젤 엔진. 최고출력이 차의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지만, 유독 SUV 시장에서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던 출력 논쟁에서 렉스턴은 165마력 엔진으로 맞불 작전을 펼친 테라칸을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170마력 엔진으로 뿜어내는 힘의 여유

쌍용이 99년부터 4년에 걸쳐 개발한 XDi270 엔진은 배기량 2.7X로 1천600바의 초고압 분사 방식을 쓰는 제3세대 커먼레일 디젤. 4천rpm에서 최고출력 170마력을 내고 일상주행의 거의 전 영역인 1천800∼3천200rpm에서 34.7kg·m의 토크를 내뿜는다. 정지상태에서 액셀 페달을 끝까지 밟자 잠시 주춤하더니 디젤 특유의 경쾌한 엔진 소리를 내며 묵직하게 뻗어나간다. 출발할 때 한 박자 늦게 전해오는 엔진 반응은 이전과 다를 것 없지만 반응 시간이 상당히 빨라졌고 넘치는 힘을 한데 모으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한 여유가 느껴진다. 시프트 업은 4천rpm에서 이루어지고 매 단수마다 시속 40km씩 속도가 올라간다. 폭발적인 가속은 아니지만 시속 160km까지 스트레스 없이 꾸준한 가속이 이어지고 고속에서의 안정성도 뛰어난 편. 속도가 낮을 때는 2톤이 넘는 거구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가벼웠던 스티어링 휠도 속도가 올라가자 적당히 무거워져 피로감이 덜하다. 시속 160km를 넘어서면 속도계 바늘 올라가는 것이 힘겹다. 도로여건상 시속 165km 이상은 못 내봤지만 레드존까지 몰아붙이면 제원표 상의 최고속도인 시속 170km는 물론 그 이상도 가능해 보인다.
렉스턴의 달리기 성능은 확실히 변했고 1등 공신은 두말한 나위 없는 엔진. 32비트 ECU로 제어되는 XDi 엔진은 부드럽게 시동이 걸리고 아이들링 소음 또한 절제되어 있지만 전반적으로 소음과 진동에서 이전 모델보다 나아진 맛은 없다. 급가속이 아닌데도 실내로 들어오는 소음이 기대했던 것보다 좀 크고 부하가 걸리기 시작하는 2천rpm 부근에서는 특정 주파수의 잡음이 귀에 거슬린다. 하지만 고압으로 움직이는 커먼레일 엔진의 특성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일이고 생산라인을 막 빠져나와 길들이기가 덜 된 시승차만의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에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커먼레일의 장점을 충분히 살린 170마력의 높은 출력과 10.4km/X에 이르는 1등급 연비, 유로3을 만족시키는 친환경성만으로도 XDi 엔진은 이미 합격점에 도달했다.

부드러운 변속과 뛰어난 핸들링

탁 트인 자유로를 내달리며 속도를 올렸다 줄였다 하는 동안 벤츠의 5단 T-트로닉은 재빨리 기어를 바꾸며 새 엔진의 늘어난 출력을 잘 소화해낸다. 빠르게 반응하면서 변속충격을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움직임이 일품. 렉스턴에 또 하나의 벤츠 프리미엄을 안겨준 T-트로닉은 전진 5단, 후진 2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움직이며 수동 모드가 다이내믹한 드라이빙을 제공한다.
굴곡이 꽤 심한 자유로의 진출 램프를 무심결에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들어서자 차가 기우뚱하면서 타이어가 비명을 지른다. ‘아차! 키큰 SUV였지’ 하고 사태수습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것도 잠시, 코너링 동선을 놓치지 않고 제 길을 되찾아 달리는 듬직한 모습에 속도나 더 높여보자는 욕심이 들었다. 부드러운 승차감이 말해주듯 서스펜션은 약간 무른 감이 있지만 앞 더블 위시본, 뒤 코일스프링 타입의 5링크 서스펜션과 폭 255mm의 타이어가 만들어내는 접지력이 노면충격을 잘 걸러내고 코너에서도 안정감을 잃지 않고 차체를 잘 잡아준다. 여기에 이전 모델에 없던 자세제어 프로그램인 ESP가 더해졌으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야트막한 동산의 경사진 돌밭 길을 오르내리며 잠시나마 오프로더의 본성을 읽을 수 있었다. 노면 상태에 따라 구동력을 나눠주는 TOD(Torque on demand) 4WD 시스템이 등판능력을 키워 고랑이 패고 울퉁불퉁한 돌밭 경사로를 온로드와 별반 차이 없게 올라간다. 길고 급한 경사로를 브레이크의 도움 없이 슬금슬금 기어 내려오는 로 기어의 세팅도 수준급. 문득 고난이도의 오프로드 성능이 궁금해졌지만 대부분의 SUV가 온로드용으로 쓰이는 만큼 이 정도 테스트만으로도 충분하다 싶다.
2004년형 렉스턴은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의 스피드웨이에서 새차발표회를 가졌다. 지난번에 출력이 12마력 늘어난 132마력의 2003년형 모델을 소리소문 없이 내놓은 것과는 사뭇 다르다. 편안함과 화려함을 자랑하는 자칭 대한민국 최고의 SUV가 럭셔리한 분위기의 호텔을 마다하고 한겨울 찬바람이 씽씽 부는 서키트를 데뷔 무대로 골랐다. ‘이게 웬 언밸런스한 조화냐’는 생각이 든다면 겉만 보고는 알 수 없는 렉스턴의 숨은 그림 찾기를 해보시라. 숨은 그림을 다 찾아냈다면 오랜 설움을 떨쳐 버리고 강한 힘과 다부진 달리기 성능을 뽐내고 싶은 메이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쌍용 렉스턴 RX5 EDi의 장단점
장점
·스트레스 없이 꾸준한 가속
·엔진과 T-트로닉 AT의 부드러운 조화
단점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굼뜬 출발
·어색한 프론트 그릴

쌍용 렉스턴 RX5 EDi
Dimension
길이X너비X높이(mm) 4795×1870×1865
휠베이스(mm) 2820
트레드(mm)(앞/뒤) 1550/1540
무게(kg) 2120
승차정원(명) 7
Drive train
엔진형식 직렬 5기통 DOHC 디젤
최고출력(마력/rpm) 170/4000
최대토크(kg·m/rpm) 34.7/1800~3200
구동계 4WD
배기량(cc) 2696
보어×스트로크(mm) 86.2×92.4
압축비 18.0
연료공급/과급장치 직분사 커먼레일/터보
연료탱크크기(L) 80
Chassis
보디형식 5도어 왜건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더블 위시본
브레이크 앞/뒤 V디스크/디스크
타이어(앞, 뒤) 모두 P255/65 R16
Transmission
기어비 ①/②/③
④/⑤/?
3.595/2.186/1.405
1.000/0.831/3.167(1.926)
최종감속비 -
변속기 자동5단
Performance
최고시속(km) 170
0→시속 100km 가속(초) 13.4
연비(km/L) 10.4
Price 3,656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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