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식 포르쉐 911 카레라2 컨버터블 가자, 지평선 너머로
1999-12-30  |   20,071 읽음
나는 예순 살이 되어도 언제나 스포츠카만을 탈 것이라고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었다. 세월이 흐르고 어깨가 구부정해지면 어떻게 변할 지 모르지만 지금 현재도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만큼 고급 세단이 갖추고 있는 우아함과 장중함보다는 스포츠카가 주는 속도감과 날렵함이 나는 더 좋다.

세상의 표피 위를 아주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것, 성능 좋은 스포츠카를 타고 그 쾌감을 만끽한다는 것은 사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화두에 다름 아닌 것이다. 우리들 인생이라는 것도 저렇게 빠른 속도로 세상의 수면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니까. 그러므로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전셋집에 살면서도 차만큼은 고급 스포츠카를 고집하는 몇몇 호사로운 청년들을. 나는 그들의 결심을 존중한다. 안락한 집보다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차가 더 필요한 시기가 있는 것이다.


작지만 탄탄해 보이는 우수한 혈통의 종마
소프트톱, 버튼 하나로 가볍게 열리고 닫혀



포르쉐라는 이름은 자동차에 입문하면서부터 항상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중앙에 앞발을 들고 말이 포효하는 그림이 있는 중세 유럽 기사들의 붉은색 방패 문양만 봐도 가슴이 뛰었다. 특히 911시리즈는 가장 대중적으로 포르쉐의 성능을 검증시킨 차종이었고 세계 각지를 여행할 때마다 마주치게 되는 명차 중의 하나였다. 내 기억으로는 이상하게 홍콩에서 자주 보았던 것 같다. 작지만 탄탄하게 보이는, 마치 대대로 우수한 혈통을 이어받아온 종마처럼 그것은 언제나 내 눈앞을 지나갔었다.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내가 타게 된 포르쉐 911은 91년식 3천600cc였다. 89년부터 생산된 차종인데 차의 앞부분은 헤드라이트 부분만 길게 몸체와 일직선으로 되어 있을 뿐 가운데는 비스듬하게 가라앉아 매우 날렵한 인상을 주었다. 길이가 4천245mm, 폭이 1천660mm, 그리고 높이가 1천310mm밖에 되지 않는다. 키 큰 사람이 서면 차의 지붕이 가슴에 닿는 것이다.

여의도에 있는 월간 <자동차생활> 건물 앞 주차장에 서 있는 포르쉐를 보았을 때 나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얀색이었다. 그렇다. 붉은색이었거나 검정색이었으면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얀색이었다. 그것은 마치 나의 손길이 닿아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순결한 빛으로 떨고 있었다. 나는 기꺼이 문을 열어 젖히고 올라탔다.

자유로를 달리는 동안 처음부터 속도를 냈던 것은 아니다.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있기도 했지만 다른 차들 앞에서 꽁무니를 휘날리며 달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액셀 페달을 밟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자유로를 거의 다 빠져나갔다. 이미 출발할 때부터 소프트톱은 젖힌 상태였다. 소프트톱은 원터치 버튼으로 가볍게 젖혀졌다. 닫을 때도 마찬가지다. 손으로 또다른 수고를 할 필요도 없이 버튼 하나만 누르면 전자동으로 뚜껑이 열리고 닫힌다.

핸들이 빡빡했지만 속도감 있는 차이기 때문에 안정성 문제를 고려해 이해해 주었다. 그런데 브레이크도 너무 빡빡했다. 91년 처음 차주를 만난 뒤 지금의 차주가 두 번째라고 들었는데 최근에 브레이크 라이닝을 바꾼 것 같았다. 속도계와 시계, 오일과 RPM 계기판은 클래식한 은색 테두리 안에 둥근 원형 네 개로 핸들 앞부분에 놓여 있었다. 사이드 미러를 조작하는 버튼이 어디 있는지 몰라 한참을 찾아 헤맸고 그러는 동안 일산과 행주대교를 지나 차동차의 통행이 드문 자유로의 끝 부분에 이르렀다. 그때부터 나는 액셀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팁트로닉, 다이나믹한 운전 할 수 있어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를 나르는 기분



차는 가볍게 시속 200km를 돌파했다. 시속 230km 가깝게 달리는데도 뭔가 석연치 않았다. 내가 알던 포르쉐의 명성이 아니었다. 차가 돌진하는 가속력이 터무니없이 약했다. 나는 곧 그 원인을 발견했다. 보통 포르쉐는 수동기어가 달린다. 포르쉐뿐만이 아니고 스포츠카는 전부 수동기어로 생산된다. 차주들의 편의를 위해 원하는 경우 오토매틱으로 바꿔지는 경우도 있는데 내가 시승한 차는 팁트로닉 방식으로 출고되어 있었다. 4단 AT 듀얼게이트 방식으로서 보통 때는 자동기어지만 기어 레버를 드라이브(D) 레인지 오른쪽으로 밀면 매뉴얼 게이트로 바꾸어진다. 그래서 자동기어의 편안함과 함께 수동기어처럼 다이나믹한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매뉴얼 게이트로 바꾸고 난 뒤에도 기어 레버를 위로 툭 치면 기어가 한 단씩 플러스(+) 된다. 반대로 아래로 내려치면 마이너스(-)로 변하는 것이다.

팁트로닉으로 수동기어로 바꾸고 나자 포르쉐의 명성 그대로 차가 가볍게 허공을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자유로의 끝, 판문점 입구까지 액셀 페달을 온몸으로 누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휙휙 나를 때리며 지나쳐갔다. 다른 컨버터블과 다른 것은 차의 엔진이 뒤쪽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행기를 탔을 때처럼 묵직한 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차가 가속을 내면 곤충의 꽁지처럼 비스듬하게 내려앉은 뒷 꽁지부분의 날개가 자동으로 위치를 바꾸며 바람의 저항을 없애준다.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를 나르는 기분이었다. 온몸을 때리는 바람의 채찍 같은 것, 맞아도 좋았다. 아니 오히려 맞는 것이 더 쾌감이었다. 얼마든지 때려라, 내 온몸이 바람의 채찍에 의해 시퍼렇게 멍든 상처로 뒤덮이도록. 그래서 영원히 바람의 흔적을 기억할 수 있도록. 속도계 끝은 시속 300km까지 표시되어 있었지만 실제 최고속도는 시속 250km 내외였다.

나는 판문점 앞에서 유턴을 해야만 했다. 허가 받은 사람만 출입할 수 있다는 안내판이 아쉽기만 했다. 이대로 북녘땅까지 달릴 수만 있다면. 개성을 지나 평양까지, 그리고 신의주와 압록강까지 포르쉐 컨버터블로 달리면 불과 두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이다. 그 짧은 거리를 마음놓고 달릴 수 있는 시기가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다. 우리 세대가 아니면 그 다음 세대에게라도 그런 순간은 반드시 주어질 것이다.


쏠림 현상 없이 안정감 보이는 코너링
명차, 운전자 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나는 차를 돌려 다시 임진각 쪽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문산 방향으로 진로를 바꿔 통일동산까지 오는 동안 마주치는 차는 거의 없었다. 오직 바람과 늦가을의 차가운 햇빛만이 나와 한몸이 된 포르쉐를 비춰주었다. 뒤쪽에서는 계속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차의 지붕을 씌우면 소리는 많이 약해질 것이지만 그러나 아무리 11월의 늦가을이라고 해도, 바람이 싸늘하다고 해도, 포르쉐 컨버터블을 시승하면서 차의 지붕을 닫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멀리 커브길이 나타났다. 회전할 때의 성능을 보기 위해 액셀 페달을 밟으면서 코너를 돌았다.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였지만 차는 전혀 쏠림 현상 없이 안정감을 보여주었다. 역시 명차는 다른 것이다. 간혹 차들이 드문드문 나타났다. 가물가물 보이던 앞차의 꽁무니가 금방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1차로에서 2차로로 차선변경을 하면서 시속 230km의 속도로 달리다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브레이크는 뻑뻑했지만 성능은 좋았다. 가속도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브레이크였다.

내 손과 발이 이제 슬슬 911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차는 전신의 감각으로 운전해야 한다. 필요 이상으로 긴장할 필요도 전혀 없지만 그렇다고 잠시라도 방심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특히 이렇게 순간가속도가 빠른 차를 운전할 때는 그렇다. 0→시속 100km 도달속도가 6.6초니까 순간가속도가 아주 빠르다고 볼 수는 없다. 1km를 가는 시간이 26초. 통일동산 음식점 앞에서 만나기로 한 <자동차생활> 팀과의 약속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질주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차를 세워 놓고 우리는 마치 해부학 실습시간에 메스를 들고 실습을 하는 의대생처럼 천천히 차를 뜯어보았다. 흰색 포르쉐는 거품을 물고 으르렁거리며 조금 전까지의 질주를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8년 동안 6만마일 밖에 달리지 않았으면 차주들이 가끔씩 드라이브용으로 썼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지나치게 과속을 했는지, 정비불량인지 오일에 조금 문제가 있었다.

포르쉐 카레라2 911은 꼭 한 번 타고 싶었던 차였다. 하지만 지나친 기대감 때문일까? 내가 시승한 포르쉐는 상상했던 것 이상의 질주와 힘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분명히 내 기대가 과다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명차라고 해도 그것을 운전하는 자의 손에 따라 차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차를 운전하는가 하는 것보다는, 지금의 자기 차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는가, 그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나는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포르쉐911 카레라2 컨버터블의 주요 제원
크 기 길이*너비*높이(mm) 4245*1660*1310
휠베이스(mm) 2272
트래드 앞/뒤 1380/1385mm
무게(kg) 1350
승차정원(명) 2+2
엔 진 형식 공냉식 수평대향 6기통 SOHC
굴림방식 RR
보어*스트로크(mm) 100.0*76.4
배기량(cc) 3600
압축비 11.3
최고출력(마력/rpm) 250/6100
최대토크(kg m/rpm) 31.6/4800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77
트랜미스션 형식 팁트로닉 4단AT
기어비①/②/③ 2.479/1.479/1.000
④/⑤/ⓡ 0.728/-/-
최종감속비 3.667
보디와섀시 보디형식 2도어 컨버터블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 맥퍼슨 피니어(파워)
서스펜션 뒤 세미 트레일링 암
브레이크 앞/뒤 모두 디스크
타이어 앞 205/55ZR 16
타이어 뒤 225/50ZR 16
성 능 최고시속(km) 259
0→시속 100km가속(초) 6.6
시가지 주행연비(km/l)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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