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형 다임러 4.0 너무나 사랑스럽고 우아한 영국차
1999-11-28  |   17,382 읽음
다임러는 롤즈로이스와 함께 영국 왕실의 차로 오래 쓰여졌다. 합병과 분리로 얼룩진 영국의 자동차 역사에서 다임러는 1960년 재규어의 식구가 된 이후 420G를 베이스로 한 자체 모델을 마지막으로 생산했다. 다임러라는 이름은 이제 재규어의 모델라인에서 고급형을 의미할 뿐이다.
모터사이클용 사이드카 제작으로 역사를 시작한 재규어는 30년대 비교적 싼값에 시속 160km를 낸 2인승 스포츠카 SS100을 내놓았고, 50년대에는 르망에서 얻은 4번의 우승으로 클래식한 보디에 스포츠카의 이미지를 다졌다. 윌리엄 라이온즈경의 손길로 다듬어진 XK120, 마크 II, XK-E 등 주옥같은 차들은 자동차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었다.
재규어 XJ6은 68년 선보인 이후 재규어의 주력 모델이었다. 우아한 4도어 세단은 영국차만의 전통적인 모습에 스포티한 매력을 더함으로써 벤츠와 BMW에 맞서는 영국의 자존심이 되었다. 영국신사는 양복에 넥타이를 즐겨 매지만 한편으로 럭비를 즐기는 등 스포츠에도 열심이다. 재규어는 이런 영국신사를 닮아 클래식한 보디에 터질 것 같은 타이어와 듀얼 머플러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재규어의 매력은 영국적인 멋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낮게 드리운 우아한 차체의 2세대 모델
효율적인 패키지보다 멋을 우선으로 해


XJ6은 시리즈 1, 2, 3로 이어지는 1세대가 86년까지 18년 동안 생산되었다. 시승차는 86년에 데뷔한 2세대(코드네임 XJ40)로 90년형이다. XJ6은 94년 다시 코드네임 X300의 신형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XJ40형 XJ6은 기본형 위로 소브린과 다임러의 고급형이 나왔다. 다임러는 XJ6의 최상급 모델로 윗면이 주름진 다임러 그릴과 리어 가니시를 달고, 뒷시트도 3인승이 아닌 2인승으로 최상의 품위를 내세운다.
롤즈로이스보다 컴팩트한 보디는 실용성이 강한 영국의 고급차로 자리매김되었다. 1세대 XJ6의 보디라인을 따르는 XJ40의 보디는 앞선 모델과 같이 납작하고 늘씬한 몸매가 기능보다는 멋을 내세운 기분이다. XJ6은 항상 고급차로서 실내가 비좁지만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몸매가 자랑이었다. 각형의 헤드램프, 1개뿐인 와이퍼, 트렁크 끝으로 살짝 치켜올린 립스포일러는 재규어의 새로운 흐름을 알렸고, 낮게 드리운 차체가 우아하다.
운전석에 올라타는 자세가 편한 것만은 아니다. 문턱이 높고 천장이 낮아 조심스럽다. 재규어만의 운전공간은 남과의 비교보다는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다. 쿠션이 탄탄한 시트는 인체공학보다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정성이 자랑이다.
약간 비좁은 듯한 운전공간과 낮은 천장 그리고 천연가죽과 천연 나무장식으로 그윽한 실내분위기는 언제나 재규어의 상징이었다. 1세대 XJ6의 분위기를 잇는 XJ40의 실내는 거의 그대로 X300으로 이어진다. 커다란 스티어링 휠 지름 안으로 늘어선 계기가 클래식한 무드 속에 명쾌하다.
에어백이 없는 차에서 자동차 10년 세월을 느낄 만하다. 이때만 해도 전자장비가 요즘 차 같지 않았다. 트립 컴퓨터를 갖추고, ABS를 달았지만 TCS나 차체 안정화 장치는 아직 없었다. 크루즈 컨트롤을 달았지만 CD 플레이어는 없었다. J게이트라 불리는 기어레버는 XJ40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이제는 전 모델에 쓰이는 재규어만의 또 하나의 개성이다. AT를 수동으로 조작할 때 오동작을 막는 배려가 돋보인다.
모서리마다 바느질 자국이 멋진 가죽트림이 고급스럽다.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아늑한 공간이다. 스티어링 휠 가운데로 자리한 다임러 엠블럼 디자인은 고전적인 분위기가 넘실거린다. 요즘은 경차도 우드 그레인을 달게 되어 다임러는 억울하다. 다임러의 우드 그레인은 플라스틱이 아닌 진짜 나무다. 장인들이 정성들여 나무를 다듬는 모습이 상상되고, 영국차만의 향기는 짙어간다.
시트마다 공간을 키우기 위해 천장을 파고든 모양에서 지붕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보게 된다. 천장이 낮은 차에 선루프는 더욱 불리하지만 멋쟁이 차에 안 달 수 없었다. 다임러는 효율적인 패키지보다 멋을 우선으로 했다.
2명만 앉게 한 뒷자리는 영국차만이 내보일 수 있는 우아함을 갖추었다.(물론 급한 경우에는 3명도 앉을 수 있게 2단의 센터 암레스트를 접을 수 있다.) 앞시트 뒤로 달린 접이식 테이블은 롤즈로이스나 재규어가 아니면 안 될 모습이다. TV에서 볼 때 다이애너비나 대처수상이 앉았던 자리가 바로 여기다. 다임러라는 이름 앞에 숙연해지는 순간이다.
다임러 모델의 엔진은 당시 최고급형인 직렬 6기통 DOHC 4.0ℓ이다. 원래 3.6ℓ이던 엔진 배기량을 4.0ℓ로 늘리고 ABS를 단 것은 오늘 시승차인 90년형부터였다. 최고출력 223마력은 2톤이 넘는 차를 부드럽게 내몬다. 상당한 무게를 느끼는 부드러움에서 다임러의 고급스러움이 이해된다. 페달 끝에서 전해오는 감각이 넘치는 힘은 아니다. 그러나 고급차를 만들기에 충분한 부드러움과 4단 자동기어는 귀한 분을 모시기에 부족함을 모를 성능이다.

조금 튀는 듯한 서스펜션 안정감 있어
깔끔한 핸들링과 뛰어난 브레이크 성능


시동을 걸면 엉덩이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은 리어 서스펜션의 셀프 레벨링 시스템이 작동시작을 알리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소음이나 승차감 역시 고급차에 기대할 만큼이다. 바람소리도 잔잔하게 묵직한 감각이 좋다. 재규어만의 마무리가 10년이라는 나이를 잊게 한다. 재규어는 항상 클래식했다. 어느 정도 튀는 듯한 서스펜션은 미니의 원뿔 서스펜션 감각을 닮아 `이것이 영국적인 것인가` 생각하게 한다. 시트 포지션이 낮아서인지 가속감이 크다. 시속 120km에서 이미 시속 150km를 달리는 기분이다. 최고속은 시속 200km 가까이 달렸다. 안정감은 좋은 편이지만 요철에 심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굴곡진 도로에서 다임러의 핸들링은 깔끔했다. 어느 정도 몸이 무거운 차의 한계는 품위를 중요시하는 차의 특성으로 이해된다. 조금 묵직하게 느껴지는 핸들이 의외다. 항상 미국시장을 염두에 둔 재규어는 미국차를 닮아 가벼운 핸들감각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 성능 또한 무거운 차를 멈추는 데 손색이 없다. 다임러는 그렇게 묵직한 주행감각이 고급차로 손색없는 프레스티지 세단이었다.
XJ40은 구형보다 보디패널을 136개 줄이고(전체의 25%) 조립을 단순히 하는 공정으로 바꾸면서 그 동안 재규어의 고질병이던 불량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XJ40의 인기가 기대보다 덜했던 것은 디자인 때문이다. 시리즈 1, 2, 3의 구형 재규어 XJ6은 자동차 역사에 남을 명작이었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우아한 차는 손대기가 힘든 걸작이었다. 자동차 디자인의 대가 쥬지아로가 좋아하는 차로 꼽았던 차였다.
XJ40은 과거의 영광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차가 되었다. 고객은 각진 헤드램프를 가진 차는 진정한 재규어가 아니라고 했다. 각진 테일램프도 어색하다고 했다. 전체적인 불량률도 나아지지 않았다. XJ40은 결국 8년만에 새차 X300으로 바뀐다. X300은 과거의 1세대 XJ6의 영광을 닮은 차로 만들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X300 역시 1세대 XJ6을 따라가기에 역부족이라는 생각이다. 마음을 흔드는 디자인은 과거의 차를 흉내내기보다 영감을 통해 재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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