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 카멜트로피 디스커버리 험로 주파력 뛰어난 오프로드의 명장
1999-10-25  |   47,106 읽음



랜드로버 카멜트로피 디스커버리  

 험로 주파력 뛰어난 오프로드의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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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를 캐주얼화 이름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랜드로버라는 이름은 오프로드 매니아들 사이에서 거룩함 그 자체로 통한다. 지프가 전쟁터에서 맹위를 떨치고 돌아왔다면 랜드로버는 2차대전 이후 현재까지 오지탐험의 선봉장으로 그 가치를 빛내고 있다. 랜드로버 팬들은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지만 그 수는 많지 않다. 차가 비싸기 때문이다. 랜드로버는 험로를 달릴 목적으로 만들어진 차다. 도로를 달릴 때의 안락함이나 쾌적성은 무시하고 오로지 험한 오프로드를 헤쳐나갈 수 있는 기능과 내구성만을 전제로 만든다. 그 결과 랜드로버는 생명이 가장 긴 차가 되었다. 지금도 세계의 오지에는 선교사들이 타고 왔다 남겨 놓은 랜드로버가 굴러다닌다.

랜드로버와 레인지로버를 잇는 디스커버리

카멜트로피 공식차로 오프로드서 맹위 떨쳐

랜드로버에 1972년 레인지로버라는 고급스러운 모델이 더해졌다. `오프로드의 롤즈로이스`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얻은 레인지로버는 부호들의 차로 자리잡았지만 너무 비싼 값 때문에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 시대가 바뀌어 다양한 오프로더들이 등장해 SUV시장이 넓어지면서 현대화된 랜드로버의 후계모델이 등장했다. 바로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다. 디스커버리는 높은 차체와 현대적인 스타일링으로 랜드로버와 레인지로버의 간격을 메우는 역할을 맡았다. 뛰어난 오프로드 성능을 지닌 랜드로버는 너무 거칠고, 레인지로버는 반대로 너무 고급스럽고 비쌌다. 이 두 모델의 중간에 서는 디스커버리는 단숨에 주력모델로 떠올랐다. 

랜드로버의 험로주파력은 카멜트로피(Camel Trophy)라는 자동차 원정경기의 경주차로 쓰이면서 널리 알려졌다. 1981년에 시작한 카멜트로피는 자동차경주와는 달리 같은 코스를 같은 차로 달리면서 벌이는 독특한 자동차 크로스컨트리 경주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 펼치는 카멜트로피는 가장 험난한 경주로 명성을 높였다.

참가자들의 단결과 모험심을 중요시하는 이 이벤트 경기는 오프로드 랠리와도 다르다. 2명이 한 팀이 되어 정확하고 안전하게 코스를 달려야 한다. 차로 험로를 헤쳐나가기도 하고 산악자전거나 카약 경주도 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한마디로 메이커들의 경쟁이 아닌 선수간의 경쟁이 카멜트로피의 본질이다.

랜드로버는 처음부터 카멜트로피의 경주차로 제공되었던 모델이다. 10년 동안 카멜트로피의 공식 경주차였던 랜드로버의 뒤를 디스커버리가 이어받았다. 그리고 90년부터 97년까지 세계 도처에서 맹위를 떨치다 지난해부터 프리랜더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었다.

몇 해 전 필자는 영국 솔리헐에 자리한 랜드로버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때 랜드로버를 타고 공장 안에 만들어진 정글 트랙을 달려보았다. 길이가 3km쯤 되는 짧은 코스였지만 등판로부터 계곡, 개울, 늪지대까지 다양한 오프로드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 그때 탔던 차가 바로 랜드로버 디스커버리였다.

9월 초 <자동차생활>로부터 전화가 왔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의 카멜트로피 버전을 시승하라는 것이다. 들뜬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이튿날 만난 디스커버리는 사진에서 자주 보았던 진흙차가 아니었다. 말쑥한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황토색 차체에 검정 무광 보네트, 루프 캐리어와 카멜트로피 로고를 보고나니 새로운 흥분이 생겼다.

 

온로드에서는 다른 SUV와 차이 없어

험로 돌파력 뛰어나고 승차감 부드러워

디스커버리를 보면 오프로드가 생각난다. 그러나 코스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 차나 오르는 어설픈 오프로드에서 흙먼지나 날리며 감상에 젖는 일은 카멜트로피에서 뛴 디스커버리에게는 모욕일 것이다. 그래서 바위가 뒤덮인, 길답지 않은 곳을 목적지를 정하고 경기도 가평읍 근처의 용추계곡으로 가기로 했다.

 

시승차는 조수석 사이드 미러가 달아난 상태고 윈드 실드도 금이 가 있었다. 하지만 범퍼와 범퍼가드 사이에 절묘하게 자리잡은 윈치와 알루미늄판으로 만든 언더가드를 덧댄 모습에서 터프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랜드로버차를 보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단단한 하체 때문이다. 마치 대형트럭의 하체를 보는 것처럼 투박하면서도 단단한 부품과 조립상태가 어떤 길이라도 거뜬히 돌파할 것 같은 듬직한 믿음을 준다. 카멜트로피 버전은 에어필터로 이어지는 스노클이 지붕으로 나와 깊은 개울을 만나도 자신감을 잃지 않게 한다. 

차에 오르자 터프한 겉모습과 달리 실내는 여느 디스커버리와 같다. V8 3.9ℓ 엔진과 수동 5단 트랜스미션이 차이다. 도로상태를 예측하기 어려운 오프로드에서는 수동기어가 힘과 토크를 이용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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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가평군 용추계곡 입구까지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달리며 V8 엔진이 뿜어내는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온로드 주행성능은 그리 감동적이지 못했다. 온로드에서는 다른 SUV들과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시승차는 뒷차축의 휠 얼라인먼트가 틀어져 차체가 한쪽으로 계속 쏠렸고, 클러치 오일이 모자라 기어조작이 아주 거칠고 힘들었다. 하지만 이같은 문제는 오프로드에서 모두 사라진다. 오프로드에서 디스커버리가 발휘한 성능에 푹 빠져 사소한 문제들은 모두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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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계곡으로 접어들자 오프로드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이 정도 길이라면 디스커버리가 아니라도 달릴 수 있다. 조금 더 험한 길을 찾아 계곡을 달렸지만 디스커버리만을 위한 험로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먹만한 돌이 깔린 길을 달리며 아쉬움을 달랬다. 거친 돌길에서 디스커버리는 제 성능을 보여주었다. 긴 스트로크를 쓰는 서스펜션은 노면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한다. 이런 승차감은 다른 SUV에서는 찾기 힘든 부분이다. 험한 산길을 오랫동안 달려도 차체 진동으로 정신이 나간 듯한 멍한 상태가 되지 않는다. 정장 차림을 하고도 오프로드를 달릴 수 있는 차라는 생각이 든다.

온로드에서 출렁거리던 디스커버리는 험로에서 가치를 발휘했다. 파도를 누르며 유유히 물살을 가르는 유람선처럼 거친 노면을 잊은 듯 평온하게 달려준다. 그러면서도 노면의 기울기에 따라 차체가 같이 기울기 때문에 운전자는 주행감각을 잃지 않고 차체를 추스를 수 있다.

바윗길과 깊은 개울도 거침없이 헤치고

로버 코리아에 전시, 판매되지는 않아

디스커버리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까. 어느 SUV 오너가 길 가장자리로 치워 놓은 듯한 커다란 바위에 올라가고 싶어졌다. 큰 주파력이 필요할 때 쓰는 저속 트랜스퍼에 걸고 가볍게 액셀 페달을 밟았다. 마치 경사로를 오르듯 가볍게 바위로 올라선다. 기를 쓰며 올라서는 보통 SUV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대로 바위를 타고 넘으면 사이드 스텝이 부딪칠 것 같아 후진으로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함께 오프로드를 찾은 일행들은 이런 디스커버리에 놀란 눈치다. 

디스커버리 카멜트로피 버전의 진가를 알기 위해 도로를 벗어나 깊은 개울로 방향을 틀었다. 미끄러운 바위와 높낮이를 알 수 없는 웅덩이를 숨긴 개울을 건너기는 쉽지 않았다. 물길을 거침없이 헤쳐나가지만 하체가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에 걱정이 든다. 개울을 건너자마자 하체를 살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싶을 정도로 말짱했다. 알루미늄 합금의 언더 커버가 하체를 단단히 보호했기 때문이다.

카멜트로피에 버금가는 코스를 찾지 못한 짧은 시승이었지만 디스커버리의 성능을 충분히 맛본 시간이었다. 바윗길이나 깊은 개울도 거침없이 헤치고 나가는 디스커버리에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휠베이스가 긴 왜건형 차체로 이처럼 험로주파력이 뛰어난 차는 찾아보기 힘들다. 벤츠 G바겐이나 신형 레인지로버 정도가 떠오를 뿐이다. 험로주파력만 따지면 AM 허머가 낫다. 그러나 허머도 디스커버리의 승차감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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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커버리는 오프로드 돌파력과 승차감을 모두 만족시키는 오프로드 명장이다. 어떤 이는 디스커버리의 핸들링이나 주행성능이 차값에 비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디스커버리는 승용차가 아니다. 헤비 듀티 오프로더에 가장 가까운 SUV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디스커버리보다 더 편안하고 잘 달리는 SUV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오프로드에서 디스커버리만큼 듬직한 달리기를 보여주는 SUV는 찾기 힘들다. 그래서 가치가 더욱 빛난다. 디스커버리는 거친 길을 달리며 모험과 자유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가장 절친한 벗이 될 것으로 믿는다. 카멜트로피에서 은퇴한 시승차는 로버 코리아 전시장에서 지난날의 영광을 되새길 것이다. 아쉽게도 이 차는 판매되지 않기 때문에 고객들은 일반 디스커버리로 만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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