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 508 GT, 진짜 사자가 되어 돌아온 508
2019-03-06  |   78,239 읽음

Peugeot 508 GT

진짜 사자가 되어 돌아온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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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의 기함이 풀 모델 체인지 되었지만 509가 아니라 여전히 508이다. 이는 새롭게 바뀐 푸조의 작명법 때문. 디자인을 파격적으로 바꾸고 첨단 기능까지 더해 존재감을 단번에 끌어올렸다.


차 이름만 가지고는 세대(generation) 구분이 잘 안 되는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에 비하면 푸조는 아주 확실한 작명법을 가졌다. 제품명이 그대로 세대를 뜻하기 때문이다. 맨 앞 숫자가 세그먼트, 가운데는 장르(0은 승용, 00은 크로스오버), 마지막은 세대를 표현했던 푸조의 작명법은 그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불가피했다. 세대 변화를 표시할 자리수가 더 이산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논의 끝에 푸조의 새 작명법이 확정된 것이 2012년. 이전까지 세대 구분의 자릿수였던 1자리 숫자는 8을 끝으로 더 이상 늘어나지 않으며, 시장의 입지를 강조해야 할 모델, 이를테면 ‘가장’ 싸거나 ‘가장’ 빠른 차에 한해 ‘1’이라는 숫자를 쓰게 된다. 플래그십 508의 후속차량이 509라는 이름을 쓰지 않을 것임은 이미 7년 전에 정해져 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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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푸조의 앞모습은 그대로 담겨있다. 본네트 위에 붙인 508 엠블럼이 이채롭다  


변화된 푸조 디자인을 상징하는 차 

선대보다 조금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은 착각이 아니었다. 푸조-시트로앵의 소형/중형 모듈러 플랫폼 EMP2(Efficient Modular Platform) 기반으로 만들어진 차는 60mm 낮고 80mm가 짧아진 대신 20mm 넓어졌다. 개성이 넘치다 못해 지나쳤던 407과 몰개성만이 살길인 듯 만든 선대 508을 거쳐 나온 차는, 이제야 비로소 개성의 밸런스를 찾은 모습이다. 좋은 비율을 간결한 선과 면으로 다져놓은 솜씨에서 어쩐지 예전 피닌파리나가 만들던 푸조를 느끼게 된다. 이 균형 잡힌 디자인을 튀어나온 것은 마치 사자(푸조의 로고)의 송곳니 같은 주간 주행등이다. 룸미러로 이 모습을 보게 된다면 어쩐지 자리를 비켜줘야 할 것만 같은 공격적인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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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바퀴 굴림 세단임에도 마치 후륜구동 같은 프로포션이 되어버렸다. 선대에 비해 짧고 낮아졌으며, 휠베이스는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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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라인을 낮춘 탓에 뒷좌석은 머리공간이 넉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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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백인 만큼 뒷시트를 접어 공간을 1,500L까지 확장 가능하다


실내는 지금까지의 세단과는 궤를 달리하는 파격의 연속이다. 푸조의 최신 인테리어인 아이콕핏(i-cockpit) 2.0을 테마로 한 대시보드는 그 진보적인 디자인뿐 아니라 이례적인 배치방식에 조금 당황하게 된다. 일반적인 차와 달리 스티어링 휠을 통해 계기판을 보지 않는다. 12.3인치의 넓은 LCD 계기판을 대시보드 상단으로 올려붙인 뒤, 시인성에 방해되지 않도록 스티어링 휠의 사이즈를 줄인 것도 모자라 아예 위아래를 납작하게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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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어링 휠을 통해 계기판을 보지 않는 푸조의 아이콕핏은 처음 대할 때는 좀 당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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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는 일반적인 유럽 세단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마치 고성능 스포츠 모델을 연상시키는 것은 스티어링 휠뿐만이 아니다. 형상만 놓고 보면 스포츠성을 잔뜩 강조해 놓은 시트는 막상 앉아보면 생김새와는 판이한 편안함에 한번 놀라고, 예상치 않은 마사지 기능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가죽, 알칸타라와 나무를 빈틈없이 조합한 실내는 구석구석 앰비언트 무드 라이팅이 은은함을 더한다. 이 근사한 인테리어에서 딱 한 가지 불만은 촌티 나는 인포테인먼트 모니터. 베젤이 이렇게까지 두꺼운 것은 가로로 긴 10인치 모니터 자리에 8인치 디스플레이를 집어넣은 탓이다. 한국 내비게이션의 해상도에 맞추기 위한 궁여지책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멋진 인테리어에 옥에 티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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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젤이 저렇게 큰 이유는 이게 원래 10인치 와이드 스크린 자리이기 때문이다.한국형 내비의 화면 해상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모양. 개성만점 인테리어에서 유일한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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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실내에 어울리는 독특한 시트. 생긴 것과 다르게 매우 푹신하다


변화가 크고 영민한 전자제어식 댐퍼

4기통 2.0L 디젤 엔진은 서 있는 동안은 역시 시끄럽다. 아이들링 직후 가속 시 회전 질감도 다소 거칠다. 다만 이런 느낌은 처음 잠깐 동안 뿐, 회전수가 올라갈수록 엔진은 매끄러워진다. 100km/h에서 회전수는 1,500rpm. 엔진의 존재감을 거의 느끼기 힘든 조용하고 느긋한 항속 주행이 가능하다. 가속이 필요할 때는 수치상 출력(177마력, 40.8kg·m)보다 훨씬 경쾌하게 차체를 이끈다. 이 차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지점은 여기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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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구 옆에 자리한 요소수 주입구. 푸조는 승용 소형 디젤에 SCR을 도입한 최초의 브랜드 중 하나다


신형 508의 탁월한 점은 디자인보다는 확실히 달리기다. 4기통 디젤 엔진의 전륜구동 세단에 대한 선입견은 버려도 된다. 승차감부터 전자제어식 댐퍼의 덕을 톡톡히 보는 느낌이다. 주행 모드 설정에 따른 변화가 클 뿐 아니라, 특히 스포츠 모드는 전자식 댐핑 시스템의 영민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도로 상태에 따라 감쇠력을 조절하는 서스펜션의 능력은 주행성능을 크게 끌어올렸다. 크고 작은 충격을 쉴새없이 차단해내면서도 노면 접지력까지 확보했다. 핸들링은 앞바퀴 굴림 디젤 세단에 대한 보통의 기대치를 생각하면 ‘지나칠 정도’로 높게 만들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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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 게이트의 대혼란도 푸조 만큼은 비켜나갔다. 2.0L 디젤 엔진은 시종일관 두툼한 토크를 낸다 


국내에서는 독일의 위세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푸조는 핸들링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갖춘 회사다. 앞 맥퍼슨 스트럿에 뒤 멀티링크라는, 남다를 것 없는 방식을 쓰면서도 이런 달리기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매번 감탄하게 된다. 지름이 작은 스티어링 휠 덕에 특유의 찰진 조향 감각이 한층 더 조여진 느낌이 강해졌다. 노면 상태와 스티어링 조작에 따른 반응은 중형 세단에서는 단연 톱클래스. 코너링 때마다 네 바퀴를 따라 전해지는 끈끈한 트랙션이 차의 다음 움직임에 대한 확신을 준다. 이 끈덕진 접지력의 타이어가 뭔가 싶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19인치의 미쉐린 파일럿스포츠4다. 수준 높은 타이어와 잘 조여진 하체, 전자식 댐퍼가 어울린 덕에 코너링의 선회와 탈출 속도는 동급 세단 중 최고 수준이다. 속도를 끌어올리는 과정이 빠르고 부드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계기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체감속도와 크게 벌어진 실제 속도를 보고 다급히 속도를 줄이는 상황을 여러 번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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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인치 휠에 끼워진 타이어는 미쉐린 파일럿스포츠4. 이 차의 즐거운 달리기에 큰 역할을 한다. 마치 송곳니 같은 508의 주간주행등은 앞차의 리어뷰 미러를 통해 보면 꽤나 압박이 느껴진다


푸조에 대한 평가를 나락으로 떨어트렸던 변속기 MCP 대신 선택한 아이신제 8단 자동 변속기는 차의 성능 전반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마치 듀얼 클러치 변속기 마냥 동력 전달에 적극적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D모드에서의 변속은 영민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지며, 이게 토크 컨버터식임을 느끼게 되는 것은 패들 시프트를 조작할 때다. 재깍 시작되어야 할 다운시프트가 한 템포 쉰 다음에야 일어나기 때문이다. 빠르게 달릴 때조차 그냥 D 모드에서 엔진의 토크로 밀어붙이는 쪽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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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신의 8단 변속기는 MCP따위와는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성능이 좋다


일상주행이 대부분인 세단이지만, 브레이크는 그 이상을 감당하게 만들어져 있다. 제법 빠른 페이스로 산길 와인딩을 왕복해 보았지만, 페이드로 성능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페달 답력이 초반에 지나치게 몰려 있어 시내에서는 좀 익숙해져야 하지만, 막상 페이스를 올릴 때는 강약을 조절하기가 쉬운 믿음직한 제동성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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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단이지만 리어 윈도우가 모두 개폐되는 패스트백 모델이다. 브레이크등의 움직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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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식 테일 게이트는 버튼 대신 발을 범퍼 아래에 가져다 대는 것으로 열 수 있다


반자율 주행 (Semi-autonomous Drive)의 매력

이처럼 운전이 즐거운 차이지만, 508GT는 운전하지 않을 때도 여전히 즐거운 차다. 운전을 ‘시킬’ 때는 그 즐거움이 최고에 달한다. 본격적인 자율주행의 바로 전단계인 반자율 주행을 지원하는 차는 스스로 가감속과 스티어링을 통제하면서 달린다. 마치 핀볼처럼 차선의 이쪽저쪽을 튕기며 달리는 차선이탈방지(LKA, Lane Keeping Assist)와 비교하면 이 차의 차선 중앙 유지(LPA, Lane Positioning Assist) 기능은 두 배 가격의 프리미엄 차량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장치를 활성화하고 난 뒤에 할 일은 스티어링에 손을 얹은 채 전방을 주시하는 정도. 정해진 차선에서 주변 차량의 흐름에 따라 알아서 속도를 조절하며 차선의 한가운데를 꾸준히 물고서 달린다. 돌발적으로 끼어드는 차조차 능숙하게 처리해 낸다. 직접 운전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저속 브레이크가 약간 거친 정도일 뿐, 고속도로라면 크루징은 물론 정체 상황에서도 안심하고 운행을 맡기게 되니 운전 피로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아진다. 법규상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는 완전 방임 모드는 허용하지 않지만, 현재 양산차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완성도를 기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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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508은 중형 세단 시장에서 옅어졌던 푸조의 존재감을 단박에 끌어올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차다. 숨은그림찾기 마냥 장점을 찾아야만 했던 선대 모델에 비하면 뚜렷한 디자인과, 빠질 것 없는 최신기능으로 무장했으며, 무엇보다도 자동차를 조작한다는 본연의 즐거움에 놀라울 정도로 충실하다. 지금과 같은 섀시에 더 자극적인 파워트레인이 올라간다면, 훨씬 운전하기 재미있을 것이다. 국내도입을 확신할 수 없지만 실제로 R모델이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2.0L 디젤 엔진만으로도 이렇게 즐겁게 달릴 수 있는 세단을 타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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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변성용 객원기자 

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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