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함으로 돌아가는 길, MGB(3)
2018-12-20  |   61,123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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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함으로 돌아가는 길

Car Life with MGB(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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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처음 알게 된 시절부터 최근까지 돌아보면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물론 기술이 더 좋아지고 그만큼 편해졌지만 모든 걸 직접 조작해야 하는 번거로움에서 오는 즐거움도 함께 잃어버렸다. MGB가 처음 오던 날은 모든 게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하나하나 원점에 다가갈수록 잊고 살아온 것들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고, 어린 시절 그렇게 집착했던 운전의 즐거움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거라고는 오작동 심한 오토초크 외에 없는 MGB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릴 듯했다. 어떤 때는 의도하는 대로 정확하게 움직이고 어떤 때는 투정을 부리기도 하는 것에 이제는 어느정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차에 시동을 걸 때 그날그날 컨디션에(MGB의 컨디션) 따라 잘 움직이기도 하고 앙탈을 부리기도 한다. 혹자는 그런 얘기를 한다. 번거롭고 귀찮고 불편한 차를 타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해답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MG는 이 차를 1960년대부터 만들어 1980년대 초까지 생산했다. 그 당시 우리의 자동차 시장은 어떠했나? 에어컨이 있지도 않았고 전자제어나 파워 스티어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불과 몇 십 년 전인데 말이다. 

뻑뻑한 클러치와 지름이 큰 논파워 스티어링 휠, 한참 전에 밟아야 말을 듣는 브레이크 등 MGB의 구성은 요즘 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불편함 투성이다. 그런데 이 차에는 특별함이 있다. 요즘 차와는 다른 드라이빙의 본질에 대한 순수함이 가득하다. 간단한 조작으로 톱이 열리는 장점도 있고 기분 좋은 진동이 살아 있는 직결식 변속기는 짧은 스트로크의 오도독오도독 손맛이 그만이다. 여기에 OHV 엔진 특유의 매끄러운 털털거림까지 생각하면 번거로움과 불편함은 한순간 사라진다. 마치 어린 시절 ‘차는 이래야 해’라고 여겼던 모든 요소가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면 눈앞에 나타난다.  

대부분 시간은 톱을 열고 다녔다. 폭염이 가득했던 여름에는 잠시 닫고 다녔지만 차 내로 들어오는 지열과 열기는 어쩔 수 없었다. 땀범벅이 돼도 마냥 즐거웠다. MGB를 타고 다니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의 하나가 ‘에어컨 있어요?’인데 당연히 없다. 공조 장치가 있긴 하지만 히터와 송풍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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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의 유일한 최신 장비 카오디오 아래 공조장치 버튼이 붙었다. 가을이 오니 자연스럽게 머리는 차가워지고 하체는 뜨거워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톱의 뒷부분은 지퍼로 열 수 있었고 운전석 아래에는 앞쪽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조절할 수 있는 바가 있었다. 나름 운전자를 고려한 장치가 있음에도 뜨거운 여름에는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허탈했지만. 내년에는 꼭 써먹어야겠다는(사실 제대로 된 기능을 할지에 대한 의심이 있긴 하다)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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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웠던 여름 끝자락에서야 알게 된 톱의 기능. 열고 달리면 생각보다 시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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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 아래 정체불명 막대기는 주행 시 앞쪽에서 들어오는 공기를 조절하는 장치였다 


4단+오버드라이브, 엔진 브레이크, rpm 보정 

해가 짧아지고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MBG를 운전하는 즐거움은 배가 됐다. 차창 너머로 살살 불어오는 바람은 늘 기분 좋게 만들어 주고 부담스러웠던 사람들의 시선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앞쪽 유리창은 요즘 로드스터와 비교하면 폭이 좁고 바짝 서 있는 편이다. 그래서 와이퍼도 3개. 개방감은 요즘 차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운전석에 앉으면 차와 내가 일체가 되는 느낌도 좋고 힘들긴 했지만 논파워 스티어링의 묵직함도 익숙해졌다. MGB를 타다 요즘 차를 타면 확실히 편하고 빠르다. 그런데 그 안에는 자동차와 운전자가 함께 하는 무엇인가가 부족하다. 맛을 안 봤다면 상관없겠지만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예전의 감성을 찾아간다는 행위 자체가 운전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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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차에 비해 작은 유리창 덕분에 와이퍼가 세 개다. 아래 공기흡입구는 실내에서 열고 닫을 수 있다


MGB 출력은 고작 70마력 정도다. 요즘 경차보다도 낮지만, 동력 손실을 최소화한 설계 덕에 체감 출력은 기대 이상이다. 변속기는 4단+오버드라이브다. 4단까지는 일반적인 조작과 같지만 정속 크루징이 필요할 때는 기어노브 위의 스위치를 넣으면 오버드라이브가 작동하면서 회전수가 500rpm 정도 떨어진다. 오버드라이브를 잘 활용하면 고속도로에서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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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단+오버드라이브. 오버드라이브 기능은 전자식으로 작동한다 


처음에 가장 어렵고 적응이 오래 걸린 부분은 멈춰 설 때다. 브레이크의 감이 요즘 차와는 전혀 다른데다 브레이크 성능 자체가 그다지 좋지 못해 정지할 때는 항상 여유를 둬야 한다. 그런데 서울은 교통상황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급정지할 상황이 생각보다 많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MGB를 재미있고 능숙하게 몰려면 엔진 브레이크를 잘 활용해야 한다. 여기에 울컥거림을 방지하려면 rpm까지 적당히 맞춰줘야 하는데,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기술인 힐 앤 토를 사용하면 편하다. 엔진 브레이크와 힐 앤 토.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익숙해지기 힘든 아주 기본적인 운전 기술이다. 

MGB는 원초적인 부분도 많지만 스포츠카와 로드스터의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갖추고 있다. 과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운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많으며, 누구라도 쉽게 즐길 수 있다. 가을 끝자락으로 갈수록 운행 가능한 날이 줄어들 테니 즐길 수 있을 때 실컷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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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B를 타면 일상이 아름답다 


 황욱익(자동차 칼럼니스트) 

사진 황욱익, 류장헌 

취재 협조 라라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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