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XJ와 함께한 유럽 1,000km, 반세기 시간 여행 - 하
2018-10-26  |   64,791 읽음

역대 XJ와 함께한 유럽 1,000km 

반세기 시간 여행 -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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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지수 기자 

사진 재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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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009

약 300km 가량을 달려 영국에서의 시간 여행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제 다음 목적지는 프랑스로 넘어가기 위한 선착장뿐이다. 시간은 2008년식 4세대 XJ(X350)로 35년을 훌쩍 뛴다. 트윈 램프와 늘씬하게 빚은 차체는 분명 과거를 바라보지만, 그 아래 품은 리벳접합 알루미늄 차체와 V8 수퍼차저 엔진 내공은 미래를 바라보는 모델이다. 


감회가 새롭다. 학창시절 드림카를 10년의 세월이 흘러 클래식카로 만나다니. 게다가 이 차는 그중 최고 사양인 2008 다임러 수퍼 V8이 아닌가. 세계에 단 863대 팔린 모델을 탄다는 감상에 젖어 괜히 한번 보닛을 쓰다듬어 본다. 


시트에 앉자 엉덩이가 폭 파묻힌다. 높은 벨트라인(옆 유리창과 문짝 위 경계선)과 낮은 시트 높이는 영락없는 요즘 세단의 모습. 가로로 길쭉한 나무 무늬 대시보드는 1세대부터 이어온 과거의 흔적이다. 현대와 과거를 멋지게 버무렸다. 영국 신사 지팡이 같은 도톰한 J 게이트 변속 레버를 뒤로 당겨 앞으로 나아갔다. 


선착장까지는 고속도로가 이어졌다. 구름 위를 둥둥 떠다녔던 1세대와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안정감이다. 35년 세월이 흐르면서 운전대엔 유격이 사라졌고, 서스펜션은 부드럽지만 눌림에 따라 팽팽히 굳어 휘청거리지 않는다. 더욱이 3,160mm의 길쭉한 휠베이스가 웬만한 충격은 시소 타듯 흘리니 언제나 여유롭다. 고속도로에서 4.2L 400마력 출력을 맘껏 쏟아낼 수 있던 이유다.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오후 8시. 널찍한 남쪽 평야의 해는 오래도 걸려있다. 하늘이 일찍이 붉게 물들었음에도 포츠머스 선착장에 도착할 때까지도 빛이 남아있었다. 배에 XJ를 집어넣으며 첫날 일정, 그리고 영국 일정은 모두 끝났다. 200km 가량을 배로 이동해 11시간 뒤 프랑스 세인트 말로 선착장에 닿으면 다시 시간 여행 시작이다.


XJ40에 얽힌 이야기

재규어 설립자 윌리엄 라이온스의 손길이 닿은 마지막 XJ다. 그는 XJ40출시 1년전 세상을 떠났지만, XJ40 개발 과정에 자문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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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잡힌 스타일이 돋보이는 XJ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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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300은 변속레버와 센터패시아가 깊숙이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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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350보다 뻣뻣한 스타일 덕분에 고풍스럽게 느껴지는 X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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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세인트 말로에 도착한 XJ 


1986~2002

11시간 뒤 프랑스 세인트 말로에서 눈을 뜨자, 이제 시간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식 3세대 XJ(X308, XJ8 오토)다. 4세대 X350과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비교적 바람 빠진 듯 뻣뻣한 모습이 더 고풍스럽다.


실내 역시 X350과 같은 구성이나 한결 더 평평하다. 그런데 놀라운 트릭을 발견했다. 페달 위치에 맞춰 시트를 조정했더니, 다리가 보닛 아래로 깊숙이 들어간다. 대시보드가 코앞으로 다가와 이래도 되나 싶지만, 깊게 파인 센터패시아와 변속레버 위치가 알맞은 자리란 걸 알려준다. 덕분에 뒷좌석 무릎 공간은 널찍이 벌어진 상황. 아, 이는 길쭉한 보닛과 트렁크로 멋을 살리면서도 공간까지 확보한 재치였다. 비록 운전자는 보닛에 바짝 붙은 시야가 다소 답답하지만 밖에서 멋있으니 그걸로 됐다.


바짝 붙은 운전 자세는 나름 자신감을 심어줬다. 우측통행 프랑스에서 운전석이 오른쪽에 달린 영국 대형세단을 모는 불편한 상황이지만 각진 보닛 끝이 적나라하게 보여 별문제 없다. 덕분에 부담 없이 재규어 최초 V8 엔진을 만끽했다. 3.2L 엔진이 내는 243마력의 출력은 1.8t 덩치를 넘치지 않도록 부드럽게 이끈다. 당시 XJ 중 가장 작은 배기량인 만큼 화끈한 성능보다는 부드러운 주행에 초점이 맞춰졌다. 고급차답게 높은 rpm에서도 철저히 소리를 죽인다.


참고로 2세대 XJ40은 상황이 여의치 못해 동승만 해볼 수 있었다. 3세대(X300, X308)와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지만, 모두 한 플랫폼을 공유하는 사이다. 8방향으로 조절되는 전동 시트와 디지털 계기판 등 바로 이전 1세대 시리즈 3보다 편의사양이 많이 늘어난 게 특징이다. 개인적으로 각진 스타일을 좋아하는 기자가 이 차를 못 탄 게 지금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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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308에 얽힌 이야기

XJ 역사상 처음으로 8기통 엔진을 얹었다. AJ-V8 엔진은 이전 6기통과 12기통 엔진을 모두 대체했으며, 가장 강력한 모델은 수퍼차저를 더해 최고출력 375마력을 냈다. 아울러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XJ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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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스포츠카처럼 폭 파묻힌 X351 운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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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351은 구향 XJ사이에서 눈에 띄게 다르지만, 우아한 스타일만큼은 구형 못지않다


2009~현재

이제 최종 목적지 파리까지 1/4도 남지 않았다. 도시가 가까워지면서 차들이 많아져 불편해지는 상황. 다행히 우리의 마지막 차는 최신 XJ(X351, XJ50)다. 구형 XJ 사이에서 미운 오리 새끼마냥 톡 튀는 생김새지만, 우아한 분위기만큼은 클래식카 못지않다. 특히 길쭉하게 늘려놓은 리어 오버행과 그 위를 하나의 큰 곡선으로 덮은 과감한 실루엣이 압권이다. 


클래식 XJ를 타다 앉은 최신 XJ는 마치 스포츠카 같았다. 높은 센터터널과 벨트라인 사이 낮은 시트에 폭 파묻혀 보호받는 느낌이랄까. 대시보드 뒤로 넓게 두른 무늬목 장식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내내 봐왔던 거대한 나무 범벅 대시보드에 그새 정들었는지, 빈자리가 못내 아쉽긴 하다.


시간이 많이 지체된 탓에 우리는 꽤 빠른 속도로 파리를 향했다. 심장은 여태 탄 차 중 가장 작은 3.0L 디젤이지만, 대배기량 클래식 XJ들을 수월하게 비껴간다. 직분사와 트윈 터보 등 온갖 최신 기술이 끌어낸 71.4kg∙m 두툼한 토크는 배기량을 초월하기에 충분했다. 비록 질감만큼은 12기통 가솔린 엔진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말이다.


이윽고 파리에 들어서자 유서 깊은 돌길이 펼쳐졌다. 이 울퉁불퉁한 길을 최신 XJ와 함께여서 천만다행이다. 다른 차였다면 터덜거렸을 거친 길 위에서 XJ 에어서스펜션은 잔잔한 흔들림만을 남긴다. 이 은은한 흔들림을 즐기는 사이, 어느덧 개선문을 돌아 파리모터쇼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로써 영국 캐슬 브롬위치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1,000km 여정이 모두 끝났다. 분명 2018년을 달렸지만, 그 시절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XJ는 우리를 50년 전, 또는 30년 전으로 이끌었다. 평소 과거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일이다. 재규어는 XJ 반세기 역사를 생생히 지켜왔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를 찬란하게 조명한다. 헤리티지는 말로만 만들어지지 않았다.


XJ50은?

‘50’이라는 글씨에서 엿볼 수 있듯, 50주년 기념 특별 모델이다. 현세대 X351을 바탕으로 새로운 20인치 휠과 함께 곳곳에 XJ50 로고를 더해 꾸몄다. 우리나라에도 올 하반기 출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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