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 삼성 SM5, 노장의 마지막 카드
2018-09-10  |   18,870 읽음

RENAULT SAMSUNG SM5 

노장의 마지막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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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굴하지 않은 SM5에게 남은 건 이제 단 하나뿐이다.


SM6 등장은 사실상 SM5에겐 사망선고였다. 지난 1998년 삼성자동차 시작과 함께했던 20여 년 짧지 않은 역사의 마침표를 찍을 때. 그런데 촛불은 꺼지기 전이 가장 밝다고 했던가. SM5가 월 800~1,000대가량 꾸준한 인기로 제품 주기 마지막을 활활 불태우고 있다. 


썩어도 준치

비결은 두말할 것 없이 ‘가성비’다. SM5값은 2,155만원. ‘옵션이 하나도 없겠군’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이래 봬도 있을 건 다 있다. 웬만한 준중형 세단 값에 손에 넣을 수 있는 중형 세단이라니, 준중형차 찾던 사람들이 한 번씩 기웃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첫인상은 예상대로다. 우리가 2010년부터 질리도록 보아온 그 모습 그대로다. 분명 새 차인데 너무 익숙해 중고차 리뷰하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어찌 됐든 차가 커 풍채는 좋다. 길이가 SM6보다도 35mm 긴 4,885mm로 한결 여유롭고, 검은색 페인트를 둘러놓아 준중형차 타는 기자에겐 중후한 분위기마저 감돈다. 이제 영락없는 보급형 중형 세단이지만 17인치 휠과 앞뒤 풍부히 두른 LED 램프(15만원 어치 선택사양)가 ‘싼 차’ 이미지를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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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이 빛나는 LED가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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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인치 휠이 기본!


실내 역시 마찬가지. 덤덤하지만 넓다. 플라스틱 범벅 센터패시아엔 SM6가 내세우는 감성은 눈곱만큼도 없고 스타일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특히 스티어링 휠의 우레탄 감촉은 상용차가 아닌가 싶을 정도. 하지만 넓다. 운전석과 동반석 시트 사이가 넓고 뒷좌석 무릎 공간은 널찍이 벌어졌다. 뒷좌석에 부모님 모시는 상황을 상상하면 예쁘장한 최신 준중형 세단보다 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 오래됐어도 중형차는 중형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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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다. 그럼 어때 넓으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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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예쁜 뒷자리보다 넉넉한 뒷자리를 원하신다


오래된 실내를 찬찬히 살펴보면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 전동 조절은 물론 열선 및 통풍 기능이 들어간 가죽시트를 비롯해 좌우 독립 풀오토 에어컨, 전자식 룸미러(ECM) 하이패스 시스템 등이 모두 기본이다. 첨단 기능은 없지만 당대에 있던 건 다 들어간 실내다. 과거 철 지난 고급 세단 타는 기분이 딱 이랬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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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경차에도 없다는 우레탄 운전대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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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선·통풍 시트, 좌우 독립식 풀 오토 에어컨이 모두 기본이라니!


마음을 여유롭게

이 값에 화끈한 성능을 기대한 건 아니겠지? 한창 시절 SM5는 V6부터 1.5L 터보와 디젤까지 화려한 파워트레인 구성을 자랑했지만 이제 2.0L 가솔린 엔진 하나로 정리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저렴하고 무난하니까. 시동을 걸어도 역시 무난하다. 4기통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은 정숙한 가운데 은은하게 진동과 소리를 전한다. 한 세대 전 중형 세단답다. 

속도를 올리는 감각은 매우 부드럽다. 토크 곡선이 자연스레 오르는 자연흡기 엔진에 토크컨버터로 출력을 전하는 무단변속기가 맞물린 덕분이다. 대신 그만큼 가속은 먹먹하다. 페달을 끝까지 밟아도 그저 나긋하게 속도를 높일 뿐이다. 최고출력 141마력, 최대토크 19.8kg·m 성능을 내는 엔진이 1,420kg 차체를 호쾌하게 쏘아붙일 리 만무하고, 무단변속기는 엔진 회전수를 6,000rpm 부근에 고정한 채 속도를 높인다. 다른 최신 무단변속기처럼 단계적으로 변속해 일반 변속기 흉내 내는 기능은 없다. 수동으로 조정해 봐도 마치 수동변속기 클러치를 반쯤 누른 채 변속하는 듯 어색하기는 마찬가지. 변속기도 시간의 흐름을 비껴갈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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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출력 141마력을 내는 2.0L 엔진. 플라스틱 엔진 덮개도 가죽 운전대와 함께 사라졌나 보다


차분히 속도를 높이다 보면 그래도 시속 160km까지 달릴 수 있다. 그러나 이쯤 되면 페달을 모두 밟으나 적당히 밟으나 차이가 없을 만큼 힘이 빠진다. 페달을 끝까지 밟을 때마다 에어컨이 꺼지는 게 부족한 힘을 드러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 그래도 고속에서의 안정감은 썩 나쁘지 않다. 무게중심이 높지 않아 바닥에 제법 잘 달라붙고, 적당히 무거워지는 속도감응형 파워스티어링도 만족스럽다. 단지 페달에 올려놓은 발만 조급할 뿐이다.

그래서 SM5는 적정 속도로 달릴 때 가장 만족스럽다. 시속 100~110km 구간에서 안정적으로 달리는 건 물론 힘도 적당히 남기 때문. 역시 묵직하게 항속하는 중형 세단 특유의 감각이 매력적이다. 지난 3월호 닛산 알티마와 SM6 비교 시승에서 알티마의 강점으로 드러난 중후한 주행감이 SM5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참고로 큰 의미는 없지만 알티마(4세대 L32, 5세대 L33)와 SM5(L43)는 르노-닛산 D 플랫폼을 일부 공유하는 관계다.

그렇다고 SM5를 고갯길에서 알티마처럼 날카롭게 쏘아붙일 수는 없다. 운전대 감각이 느슨해 어색하고, 연속되는 코너에선 앞뒤가 허둥대기도 한다. 141마력 중형 세단에 무얼 기대했나. 그저 마음을 여유롭게 먹고 편히 달릴 때 가장 만족스러운 패밀리 세단이다. 


야속한 시간

SM5엔 ‘최신’이라는 단어가 어디에도 없다. 요즘 인기인 첨단 운전자 보조 기능으로 내세울 만한 건 30여 년 전 소나타에도 있던 크루즈컨트롤 정도가 전부다. 더욱이 순정 내비게이션도 고를 수 없어, 시승차엔 완성도가 다소 떨어지는 애프터마켓 제품(출고 시 액세서리로 판매)이 달려있었다. 차라리 깔끔하게 내비게이션 빼버리고 스마트폰을 거치해 쓰는 게 나아 보일 정도. 최신 장비를 향한 열망은 가격을 떠올리며 참아야 한다.

준중형차 보던 사람들이 망설일 또 다른 이유는 유지비다. SM5 공인 연비는 11.3km(도심-고속 복합). 2.0L 중형 세단다운 효율로 요즘 준중형 세단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실제 시승 중 380km를 달리는 동안 표시된 연비는 고작 리터당 9km에 불과했다. 또 2.0L 자동차세가 1.6L 준중형 세단보다 연간 약 23만원 높은 것도 생각해야 한다. 값은 준중형을 넘보더라도 유지비는 어쩔 수 없는 중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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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륜 중형 세단의 강점은 역시 공간. 트렁크도 널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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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6도 부러워할 뒤 멀티링크 서스펜션


평소 이런 차가 한 대쯤 있으면 했다. 세월이 흘러 매력이 줄어든 만큼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새 차. 중고차처럼 부담 없는 가격으로 더 높은 급을 노릴 수 있으면서도, 새 차이니 품질에 대한 불안함도 적을 테다. SM5가 중형 세단 시장에서 그 길을 성공적으로 열고 있다. 비록 2,155만원 가격만큼 곳곳에 원가절감 흔적이 엿보이지만, 중형 세단의 공간과 여유로운 승차감, 풍부한 편의장치는 그대로다. SM5의 역사는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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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수 기자

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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