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4] 새 그라나다와 함께 치른 신고식
2018-07-06  |   98,410 읽음

새 그라나다와 함께 치른 신고식  

1톤 트럭 한 대쯤의 부품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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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마감 막바지에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매물로 올라와 있는 그라나다를 발견했다. 전라남도 해남에 있다는 차는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으로 봤을 때 지금의 그라나다보다 훨씬 깨끗해 보였다. 차의 상태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1톤 트럭 한 대쯤의 부품을 갖고 있다’는 문구였다. 솔깃한 마음이 드는 순간 손은 벌써 전화기에 가 있었다. “값은 원하는 만큼 드릴 테니 며칠만 기다려달라”는 주문을 하고 마감이 끝난 뒤 전라남도 해남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땅끝 마을이 있는 해남은 정말 멀었다. 점심때 서울 여의도에서 출발했는데 깜깜해진 뒤에야 겨우 그라나다의 오너를 만날 수 있었다. 기자는 무엇보다 그가 젊다(28세)는 데 놀랐다. 기자가 그 동안 만난 사람들 가운데 그라나다를 기억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30대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대단한 카매니아인 그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정작 급한 그라나다는 보지도 못한 채 많은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떠날 채비를 하고 그라나다가 있는 마당으로 나갔다. 

잇단 트러블로 정신 없이 지나간 한 달

마당 한쪽 창고에 그라나다 부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헤드램프와 방향지시등, 브레이크 등, 새 범퍼와 라디에이터 그릴은 물론 쇼크 업소버와 제너레이터, 클러치와 브레이크 디스크, 디스트리뷰터, 라디에이터……. 그라나다 한 대를 더 만들 수 있을 정도다. 더구나 계기판이나 시거잭, 윈도 스위치 등은 ‘포드 서비스 파트’ 로고가 새겨진, 비닐을 뜯지도 않은 새것이었다. 이것이 꿈일까, 생시일까.

문제는 이 많은 부품을 차에 싣는 일이었다. 일단 눈에 보이는 대로 트렁크와 뒷좌석, 조수석 할 것 없이 실었지만 반도 못 싣고 차가 가득 찼다. 너무 많은 짐을 실어 낡은 그라나다의 쇼크 업소버가 견뎌낼 지 의문이었다. 결국 트렁크 패널 등 도저히 실을 수 없는 부품들은 1월 마감이 끝난 뒤 가져가기로 하고 서울로 향했다.

‘부드럽고 조용하게 나가는 그라나다의 생생한 엔진’에 감동(?) 받으면서 느긋하게 달리다가 오가는 차도 없는 깜깜한 국도에서 첫 난관에 부딪쳤다. 액셀 페달이 갑자기 바닥으로 꺼져 올라오지 않는 것이다. 예전 그라나다에서도 자주 겪었던 증세인데 걸림쇠가 헐거워 액셀 페달의 케이블이 빠지는 것이 원인이다. 케이블만 다시 끼우면 되기 때문에 부담 없이 보네트를 열어 보았다가 밤에 정비하기 편하도록 환한 램프가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어두운 밤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불현듯 ‘한밤중에 자주 엔진룸을 열어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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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다음날, 어제는 괜찮았던 계기판의 수온계가 자꾸 올라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보네트를 열어 보았더니 냉각팬이 돌지 않았다. 찬바람이 라디에이터를 식혀주는 공랭효과(?)를 기대하면서 집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힘들게 버텼지만 10분이면 갈 거리를 3시간 넘게 걸려서야 도착했다. 도착한 다음에는 아예 시동이 꺼져 버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엔진오일을 확인해보니 게이지에 오일이 한 방울도 찍히지 않는다. 오래된 차는 실린더에서 오일이 타는 경우가 많아 종종 엔진오일을 보충해야 하는데, 차를 산 지 하루만에 이렇게까지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밤 장거리 고속도로를 달린 후 정비를 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주유소에서 엔진오일을 사다가 부었더니 2X는 족히 들어간다. 실린더 벽은 이미 상할 대로 상한 뒤였다.

사고는 이쯤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라나다는 오래된 차라 주유캡에 열쇠 구멍이 있다. 주유소에 갈 때마다 일일이 시동을 끄고 캡을 열어야 하기 때문에 ‘주유 중 엔진정지’ 만큼은 확실하게 지키는 셈. 사건은 셀프 주유소에서 주유캡에 차 열쇠를 꼽고 돌리다가 열쇠가 부러지면서 일어났다. 말문이 막힐 정도로 황당했고, 무엇보다 그라나다 순정 열쇠가 부러져 속이 상했다. 보조열쇠를 갖고 있었지만 이마저도 둘이 약속이나 한 듯 부러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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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카를 좌우에 끼고 사는 행복

 주인이 바뀌었다고 신고식을 치르는 것일까? 어이가 없어서 주유소에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부러진 열쇠에 순간접착제를 바른 뒤 곧바로 서울 한남동에 있는 찰리 공업사(☎02-793-7919)를 찾았다. 찰리 공업사는 주한미군 정비교관 출신의 윤행근 사장이 운영하는 곳으로 용산의 미8군들이 타고 다니는 희귀한 차도 ‘뚝딱’ 고쳐내는 솜씨로 소문난 곳이다. 비싼 세금 걱정에서 벗어나 있는 주한미군 가족들이 많이 탔던 그라나다쯤(?)은 이 곳에서 간단하게 수리할 수 있다.

냉각팬이 돌지 않았던 것은 전원을 공급해주는 전선이 끊어진 단순한 고장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고장이라기보다는 기자의 실수였다. 그라나다의 전 주인이 따로 냉각팬을 실내에서 켜고 끌 수 있는 스위치를 만들어놓았는데 실수로 그 스위치를 꺼버렸던 것이다. 내친 김에 액셀 페달 케이블도 단단히 고정한 후 서울 이태원에서 40년 넘게 열쇠 일을 한다는 노인을 찾았다. 일반 열쇠가게에서는 그라나다처럼 흔하지 않은 키를 복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곳에서 그라나다의 열쇠와 비슷한 모양을 찾아 ‘깎고 열쇠 구멍에 끼워보기’를 반복한 끝에 어렵게 복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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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카가 한 대 더 생긴 이후 생활은 또 달라졌다. 지난달 그라나다 일기의 제목이 ‘드림 카를 곁에 두고 사는 행복’이었으니 이번 달 제목은 ‘드림카를 좌우에 끼고 사는 행복’이라고 해야 할까? 기자의 꿈은 머리가 허옇게 센 뒤 차고가 딸린 집 뒷마당에서 오래된 그라나다를 고치며 여유 있게 사는 것이었는데, 그라나다 두 대에 부품 걱정도 덜게 되었으니 이런 소망에는 한결 다가선 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경제적 여유를 즐길 정도로 나이가 들지 않았고 차고 딸린 집도 없다는 사실이다. 꿈을 위한 소품은 준비되었지만 막상 꿈을 꿀 처지가 못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욕심 같아서야 두 대의 그라나다 모두 제 모습을 찾아주고 싶지만 일단 그라나다 일기의 주인공을 이번에 새로 산 그라나다로 바꾸기로 했다. 본래 타던 그라나다는 트렁크와 뒷좌석에 부품을 가득 실은 채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놓았다. 예전에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세워져 있는 그라나다의 모습이 항상 안쓰러웠는데, 상태가 조금 더 나은 그라나다가 생기는 바람에 예의 그 자리로 되돌려 버린 것이다. 마음 한 구석이 퀭하도록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찌해볼 여력이 없다. 다음 달에는 새 그라나다의 상태와 성능을 좀더 자세히 알아본 다음 구체적인 보강 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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